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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보 저장, 상태 보관이란 걸 몽땅 실물로 해야 했음

세상에 컴퓨터와 정보 저장 매체라는 게 없던 시절엔..
길고 빽빽한 텍스트가 아니라 겨우 수 바이트, 수십 비트가 채 되지 않을 '객체 상태'도 일일이 다 실물로 관리해야 하니 참으로 번거롭기 그지없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 보드 게임의 말들은 잡히면 몽땅 다 즉사이지, HP 같은 건 없다. 윷놀이, 바둑, 체스, 장기..
그도 그럴 것이 각 말들의 HP가 깎이는 걸 또 별도의 기물로 구현하는 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 하다못해 죄수의 볼기를 줘 패도 매번 때릴 때마다 늘 "n대요~!!" 라고 크게 복명복창을 해야 했다. 정해진 횟수를 절대 틀리지 말라고.
(물론 단순 숫자 한두 개 정도는 마치 운동 경기 스코어 x:y처럼 종이 판떼기로도 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태형을 집행하는 국가에서 굳이 그런 물건까지 동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

-- 교통수단에서 환승 할인이란 걸 구현하는 게 참 난감했다. 기껏해야 승차권에다가 특수한 구멍을 뚫어서 인증하는 정도?

-- 고속도로 톨비도 말이다. 요즘 고속도로는 국영과 민영 구간이 오락가락이고, 대도시에서는 개방식과 폐쇄식이 왔다갔다 한다. 거기에다 차종과 이용 시간대별 할인이 있고, 심지어 차로 수가 적은 고속도로와 많은 고속도로 간에도 미세하게나마 요율이 다르다..!! 이거 정확한 계산을 재래식 종이 통행권으로 하려면 톨게이트를 엄청 많이 만들어 놓고 매번 차를 세워야 할 것이다.

-- 대중교통은 자리를 알아서 찾아서 앉는 자유석 형태로만 운용 가능할 것이다. 좌석 지정 탑승권은 거의 불가능. 1980년대에 새마을호 열차에서 전산 승차권(고정석) 발매가 그만큼 파격적이었던 조치였다. 그 반대급부로, 새마을호는 일부 객차만 자유석을 운영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행정에서 이 복잡한 state 계산의 끝판왕은 운전자 벌점이지 싶다. 이건 3년이라는 유효기간이 존재하는 마일리지와 비슷한 개념이다.
유효한 벌점이 40점 이상이 되면 면허가 정지되는데, 면허정지에 기여한 벌점은 처분벌점에서는 빠지지만 누산벌점에는 남아 있고 이건 또 뭐 어떻게 해야 없앨 수 있고... 나도 제대로 이해를 못 했다.

게임에서 이렇게 하면 HP가 깎이지만 이렇게 하면 HP와 관계없이 즉사(면허 취소)...;; 이렇다.
행정 전산화가 되기 전엔 이런 거 어떻게 관리했을까...?? 경이롭다.

2. 오늘날 같은 획기적인 무선 고속 통신 인프라가 없었음

-- 휴대폰이 없었을 때는 차를 운전하다가 사고 나면 보험사에다 연락을 어떻게 했을까..??
고속도로의 경우, 일정 거리 간격으로 긴급 통화가 가능한 전화기가 비치됐으며 일정 시간 간격으로 순찰차가 다니기는 했다. 그러나 고속도로처럼 잘 관리되는 도로가 아니라 시골 깡촌 농로나 산길이라면 정말 난감할 것이다.

참고로 카폰은 아직 엄청난 사치품이었다.
기계값도 값이지만 지금처럼 제한된 주파수를 쪼개고 쪼개서 수많은 사용자들에게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통신 기술과 인프라가 없었다. 카폰은 전화국과 교신하는 무전기보다 크게 나은 게 없던 지경..

그래서 지금처럼 전 국민이 무선 통화를 하는 게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다.
하긴, 더 옛날에는 유선 전화조차도 회선이 부족하고 자동 교환 기술이 부족해서 집집마다 개통하는 게 불가능했었다.

-- 쌍팔년도 시절, '브레인 바이러스'라는 악성 코드는 1985년에 파키스탄 사람이 만들었는데, 그게 1987년에 미국에서 첫 발견됐고,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에야 발견됐다.
무선 인터넷이 없던 시절엔 컴퓨터로 뭔가가 퍼져나가는 속도도 정말 끔찍하게 느렸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지경.

-- 좀 더 옛날 얘기를 꺼내자면 레이더나 무전기라는 것도 2차 대전 시기에 발명됐다.
그 전 제1차 세계 대전 때만 해도 아직 전령이라는 게 현역이었다! 목숨 걸고 발품 팔아서 전방 소식을 후방에다 전하는 병과 말이다. 히틀러가 이 시기에 전령병 출신이었고 그것만으로도 부상 당하고 훈장도 받았을 정도였다.
심지어 비둘기 발에다가 편지를 묶어서 전하는 구닥다리 테크닉까지 쓰였었다.

하긴, 2차 대전 때는 말 탄 기병이 아직 현역이었다. 자동차라는 게 있긴 했지만 아직 너무 비싸고 귀했기 때문.. 우리가 누리는 교통 통신 인프라가 지금 같은 가성비를 갖추게 된 건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3. 금융 거래도 전산화되지 않았음

-- 월급을 직접 현찰로 봉투에 넣어서 나눠줬다. 월급날 시즌에는 회사들마다 현금을 수송하느라 분주했다.
심지어 국제선 여객기를 조종하는 기장들도.. 도착지 공항에서 유류비를 지불하려고 돈다발이 들어있는 가방을 조종실에 싣고 다녔다.;;;

-- 신용카드라는 게 있긴 했으나.. 지금 우리처럼 간편하게 긁고 통신이 되는 형태가 아니었다.
가게에서는 손님이 카드를 긁었음을 입증하는 종이 전표 실물 뭉치를 잘 보관했다가 카드사에다 직접 청구하고, 카드사는 그걸 보고 대금을 지급했다. 옛날 신용카드에 카드 일련번호가 양각으로 돌출됐던 이유는 이걸 일종의 도장처럼 쓰기 위해서였다.;;; ㄷㄷㄷㄷㄷㄷ

단순히 음성과 영상을 주고받는 통신뿐만 아니라 금융 거래가 전부 무선 자동화 전산화된 것도 세상을 정말 편리하게 바꿔 놓았다. 종이 없는 사무실보다는 현금 없는 세상이 더 많이 실현됐다.
물론 통신으로 돈 거래를 몽땅 가상화시킨 배후에는 디지털 서명을 가능케 한 비대칭 암호화라는 특급 보안 기술이 있었다. ^^
영상· 음성을 디지털로 주고받는 배후에는 압축 알고리즘(코덱..)이 있듯이 말이다.

4. 정보 검색 인프라

지금 같은 학술 정보 검색 인프라가 없던 시절에는 논문을 어떻게 쓰고 참고문헌을 어떻게 찾아봤을까??
뭐 그 시절에는 학계마다 분야별 최신 논문 목록이 마치 전화번호부처럼 종이책 형태로 주기적으로 발간되기는 했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완전 골동품이겠지만..

그래서 그 시절 옛날 논문들은 참고문헌 목록이 21세기 이후 논문들처럼 풍부하지는 못했던 편이라고 한다.
이런 게 '정보 고속도로'니, 'information at your fingertip' 이런 90년대 구호가 실현되기 전의 모습이다. 유비쿼터스, IoT니 하는 구호는 2000년대 이후에나 등장했다.

하긴,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학위논문들이 타자기로 작성되곤 했다. 타자기로 수학식을 표현하려면.. ㄷㄷㄷ
좀 얼리어답터인 사람이 몇백만 원짜리 컴퓨터를 장만해서 아래아한글 1.X로 논문을 써 보겠네 마네 하던 지경이었다.

갤럭시니 아이폰이니 하는 오늘날의 스마트폰은 "둥그런 브라운관 화면을 통해 상대방을 보면서 영상 통화" 정도를 상상했던 쌍팔년도 시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 됐다. ^^

Posted by 사무엘

2024/10/12 08:35 2024/10/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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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0년대: 시점의 변경

우리나라의 대표 고속도로라고 일컬어지는 경부 고속도로는 1970년에 전 구간이 4차로 크기로 만들어졌다.
옛날 사진을 보니, 그 당시엔 중앙분리대에 화단이 꾸며졌거나, 아니면 비상활주로 운용을 염두에 두고 중앙분리대가 이동식으로 허접하게 꾸며진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1970년대 개통 초기에는 경부 고속도로의 법적 시점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즉 도심 한복판이었다.
그때는 한남대교와 그 이북 제1 남산 터널까지(남산 1호 터널) 합쳐서 '서울부산선'으로 쳤던 것 같다. 마침 얘들 역시 1969년 말(한남대교)과 1970년 광복절(터널), 경부 고속도로와 거의 같은 시기에 개통했으니 말이다.
그 당시로서는 저 교량과 터널도 어마어마한 토목 공사였고 "조국 근대화 잘 살아 보세, 우리는 할 수 있다" 국뽕 아이템이었다.

경부 고속도로 덕분에 한국에는 고속버스라는 것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초창기에는 서울 구시가지의 근처인 신촌이나 종로5가 같은 곳에 고속버스 터미널이 회사와 행선지별로 듬성듬성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믿어지지 않는 풍경이지만..

그러다가 1970년대 말에 강북 구간은 이 고속도로의 법적 시점에서 짤렸다. 지금으로 치면 한남IC 부근으로 시점이 남하했다. 옛날에 철도는 경부선 서울 역이 서대문에서 남대문으로 남하하기는 했었다만.. 고속도로는 아예 한강 이남으로 내려간 게 흥미롭다.

이때는 몇 차례 북괴의 도발을 겪고 나서(땅굴, 무장공비, 판문점 도끼 만행..) 가카께서 수도를 통째로 남쪽으로 옮길까 하는 극단적인 고민까지 하던 시절이었다.
그 정도 남하까지는 아니어도 이런 시국 덕분인지 서울 강남이 집중적으로 개발됐다. 그리고 이 시기에 서울 강남 반포에 최초의 통합 '고속버스 터미날'이 만들어져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당시에는 엄청난 외곽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지금은 이 터미널조차 주변이 너무 비좁다면서 이전 요구가 나오는 실정이다.

2. 1980년대: 서울 요금소의 남하, 최초의 확장 공사

(1) 경부 고속도로에 처음으로 확장 공사가 행해진 시기와 구간은 바로 1987년.. 중부 고속도로(35)와의 분기· 합류 지점이다. 회덕(대전)-남이(청주) 사이가 처음으로 6차로로 확장됐다. 그 뒤 나라에서는 중부 고속도로도 좀 이용하라고 강남 고텀에 이어 강변 동서울 시외버스 터미널을 개장했다~!

쌍팔년도 이전엔 경부 고속도로가 심지어 서울-판교-수원 구간조차도 아직 겨우 4차로였다는 것이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변 역 주변 역시 쓰레기 매립지였을 정도로 엄청난 미개발 황무지였다는 것도 믿기 어렵다.
다른 이름을 붙일 게 도무지 없어서 걍 밋밋한 '강변'이었던 거다. 마치 대전광역시의 이름이 과거에 '한밭' 뻘밭이었던 것과 비슷한 작명이다. 1987~88년 사이에 울나라 고속도로 업계에 참 많은 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경부 고속도로의 최북단 요금소인 서울 요금소에도 변화가 생겼다. 원래 이 요금소는 양재 IC 부근에 있었다. 그러던 게 1987년 말에 훨씬 더 남쪽인 지금의 성남 궁내동으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른다.
기존 요금소는 명색이 서울의 관문인데 매표소 차로가 겨우 7개 밖에 없어서 너무 너무 비좁았기 때문이다. 주변에 더 확장할 부지는 없고.. 더 남쪽 외곽으로 이사 가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오늘날 서울 요금소는 행정구역상 서울에 있는 게 아니다. 거길 통과하고도 한참을 더 달려야 인서울이 나온다.
옛 서울 톨게이트가 차지하던 부지는 만남의 광장 휴게소로 바뀌었다.

(3)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경부 고속도로'라는 명칭이 공식 명칭으로 정착한 것도 1980년대 초의 일이다. 그 전에는 얘는 그냥 서울부산선, 서울-부산간 고속도로라고 불렸기 때문이다.
남침 땅굴도 1970년대 당대에는 '지하 터널'이라고 불렸고, 한강대교 양화대교 한남대교도 1980년대 이전에는 그냥 제1~3 한강교라고 불렸듯이 말이다. 1980년대에는 이런 아기자기한 명칭들이 많이 확립됐다.

3. 1990년대: 계속되는 확장과 버스 전용 차로

경부 고속도로는 '빨리빨리 선개통 후개량'의 산물인지라 찔끔찔끔 땜질과 확장 공사가 끊이질 않았다. 그렇다고 이걸 악의적인 졸속 부실시공이라고 폄하하는 건.. 열악했던 예산과 부족한 시간과 온갖 시행착오 속에서 고생했던 작업자들에 대한 모독일 터. 그땐 고속도로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쌩판 처음이던 시절이었다는 걸 감안할 필요가 있다.

(1) 저렇게 최초의 확장 공사가 행해진 뒤, 1990년대 초엔 터져나가던 수도권 양재(서울)-수원 구간에 드디어 칼질이 가해졌다. 얘는 도로의 양쪽 끝에 차로를 더 만드는 게 아니라, 옆에다가 똑같은 4차로 도로를 하나 더 만드는 식으로 한꺼번에 8차로로 확장됐다.

같은 시기에 오늘날 수도권1순환(외곽순환) 고속도로의 전신인 구리-판교 고속도로도 건설이 시작됐다. 서울 요금소를 남쪽으로 옮긴 것은 쟤를 '개방식' 톨게이트 구간으로 만들기 위한 사전 작업 성격도 있었다.
그리고 이와 동시기에 철도 업계에서는 경부선에 구로-서울 3복선화 공사가 시작됐다. 경인선 2복선화와 경부선 수원-천안 2복선화도 시작됐지만 얘들은 2000년대가 돼서야 완료됐고..

(2) 1995년부터는 이렇게 넓어진 차로를 바탕으로 경부의 수도권 구간에서 버스 전용 차로가 처음으로 시행됐다.
서울 시내의 천호대로에서 중앙 버스 전용 차로가 시행된 것과도 시기가 거의 비슷하다. 시내버스와 고속버스는 분야가 완전히 다른데도 말이다.
천호대로는.. 서울 지하철 5호선을 건설하느라 어차피 파헤쳤던 도로를 복구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정류장을 설치할 수 있었다. 타이밍이 잘 맞았던 셈이다.

4. 2000년대 이후

(1) 2003년에는 김천-영동-옥천 쪽에 대대적으로 선형이 개량되었다. 산 타면서 꼬불꼬불 위험하게 가던 길이 고가 교량으로 바뀌었다. 30여 년 전에 그렇게도 고생하며 힘들게 만들었던 구닥다리 대전육교와 당재터널(옥천터널)이 드디어 현역에서 은퇴했다.

2000년엔가 추풍령 일대에서 연쇄 추돌 교통사고가 거하게 난 뒤에야 과업에 속도가 붙었다. 단, 얘들은 4차로로 만들어져 버려서 추후에 차로 확장이 꽤 난감해졌다.
비슷한 시기에 경부선 철도에서는 수원 역에서 전철의 평면교차 회차를 없애려고 수원-병점간 2복선화 공사가 한창이었다.

(2) 서울 수도권 구간은 10차로 더 확장됐고 대전· 대구 구간도 다 이런 식으로 확장됐다. 수원신갈 IC의 경우, 넘쳐나는 차들을 감당치 못해서 톨게이트가 상행과 하행별로 따로 분리되는 기괴한 구조가 됐다. 모든 차들이 종이 통행권 대신 하이패스가 장착돼 있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2010년대 중후반에는 아직도 4차로인 구간은 옥천 부근과 영천-경주-울산 두 곳밖에 남지 않았다.

그랬는데 드디어 경주 부근도 엄청 오랫동안 공사를 한 끝에 6차로로 확장됐다. 경부 고속도로 최초의 터널이라 일컬어지는 경주 터널도 옆에 광폭 터널을 하나 더 뚫어서 확장됐다.
이제 경부 고속도로 전체를 통틀어서 4차로는 20여 년 전에 개량됐던 옥천 구간이 유일하다.

(3) 그리고 2020년대에는 경부 고속도로에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칼질이 가해졌는데.. 바로 지하화다.
동탄 부근 1km 남짓한 구간이 잠깐 지하 터널로 내려갔다. 으음~~~
앞으로 이런 구간이 얼마나 더 생길지는 모르겠다.

이상이다. 경부 고속도로에 대해서 지금까지 글을 많이 썼지만 이런 식으로 역사를 정리하고 종합한 건 처음이지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24/10/09 08:47 2024/10/0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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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있으면 한글날이기도 하니 오랜만에 이 주제로.. ^^
나는 표준어와 맞춤법, 띄어쓰기 규정을 숙지하고, 어지간해서는 이것들을 최대한 준수하면서 글을 쓴다.
가령, 다르다/틀리다, 안/않, 되/돼 같은 거야 이견의 여지가 없으니 당연히 무조건 구분한다.
하지만 내가 꼭 지키지 않거나 예외를 두는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 순우리말 또는 우리식 한자 발음으로 성 1, 이름 2자 형태가 아닌 성명들은 띄어 쓴다. '윤봉길, 안중근, 김 구, 박 마리아, 남궁 억' (단, 여기 내 개인 블로그에서는 1:2 형태까지도 다 띄어 쓰고 있음)
-- 외래어 명칭 다음에 일반명사가 결합할 때도 띄어 쓴다.
백두산, 한라산, 한강, 흑묘백묘론, 불교, 유교
에베레스트 산, 후지 산, 마지노 선, 모기지 론, 양쯔 강, 나일 강, 라인 강, 이슬람 교, 힌두 교, 조로아스터 교

이건 글자 단위 붙여쓰기를 좋아하는 한자 패러다임에다가 단어 단위 띄어쓰기를 좋아하는 라틴 패러다임이 나중에 섞이면서 벌어지는 어쩔 수 없는 혼란이다.
그렇다고 한글을 몽땅 다 풀어 써 버리면서 완전히 후자대로 할 수는 없으니 전자와 후자를 적당히 절충해야만 한다. 잘 정의된 띄어쓰기는 특히 한글 전용 주장하는 사람이 영원히 풀어야 할 숙제이다.

옛날 사람들은 한자 혼용만 한 게 아니다. 같은 한글도 고유명사나 외래어를 별도의 폰트로 일일이 구분해서 표기할 정도로 세밀했다.
내 개인적으로는.. 필요하다면 이 어절이 체언-조사인지 용언-어미인지 엄밀히 구분하는 표기도 도입돼야 한다고 본다. '삶은 계란'이 계란의 상태를 말하는 건지 인생의 본질을 말하는 건지 기계적인 구분이 필요할 때 말이다.

-- 주요 행적이 20세기 중화민국· 현대 중국/대만 배경인 중국인은 현지음으로 이름 표기. 청나라나 그 이전 중국인은 한국식 한자음으로 표기.
-- 접사인지 관형어인지 긴가민가한 단어는 일일이 띄어 쓰지 않는다. '전세계' the whole world는 원래 '전 세계'가 맞다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붙여 쓰는 게 더 편하게 느껴진다.
-- '맞다'는 동사뿐만 아니라 형용사적 용례도 허용해야 할 것 같다. 유사 단어인 '걸맞다', '알맞다'는 다 형용사이지만.
-- "강하고 담대하라" 역시 비문이 아니라 좀 허용해야 할 것 같다. 저게 잘못됐으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알아듣는 데 아무 지장 없는 이런 선언도 틀리게 된다. '거룩하다'도 동사가 절대 아니고 '거북하다'와 동급인 형용사인데?
우리말이 용언이 정말 애매하고 므흣한 품사통용 면모가 있다.

-- "잘 되길 바래".. 이것도 원래는 '바라'가 맞는데.. 아무도 그렇게 안 쓴다. 사실상 특례가 주어져야 하지 않을지? "바랬다"는 "바랐다"로 고쳐야겠지만, 저 종결어미는... 글쎄다.
-- 'S+모음' 외래어를 그냥 외래어로 쎄게 적는 편이다. 씬(scene), 쏘리(sorry), 싸인파(sine), 싸인(autograph). 이럴 때 신, 소리, 사인은 얼마나 뜬금없게 보이는가.
현대차에서도 소나타를 쏘나타로 괜히 바꾼 게 아니다. ㄲㄲㄲ

-- 개인적으로는 '처' 대신 '쳐'라고 쓰는 걸 아주 선호한다. "이거나 쳐먹어", "창고에 쳐박혀 있는 물건", "잠이나 쳐 자?", "저 사람 쳐 돌았구만" 등등 ㅋㅋㅋㅋㅋ
-- 몇몇 접사 내지 의존명사는 '깜, 꽈, 짜' 이렇게 된소리로 쓰고 싶다.

지난 1988년 한글 맞춤법 개정 때는 한자어의 음을 한글로 표기하는 방식이 단순화됐다.
실제 발음 때 들어가는 사이소리를 무시하고, 언제나 원래 한자음만 적는 걸로 바뀌었다.
숫자, 곳간, 셋방, 횟수 같은 6개 예외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ㅅ을 뺀다. 촛점이 아니라 초점, 갯수도 아니고 개수..

저 쌍팔년도 시절에는 말에 된소리 거센소리가 늘어나면 사람 심성이 거칠어진다(!!!!!!) 이런 풍조가 강했다.
햇님이 아니고 해님.. 효과는 효꽈가 아니라 반드시 '효과' 그대로. 김밥도 김빱이 아니라 '김밥' 그대로..
그러니 사이소리는 말을 쓸데없이 쎄게 만드는(!!) 원흉이니, 표기에 더욱 반영되지 않고 무시됐다.

하지만 이 사이소리는 불필요하게 들어가는 게 아니라 동음이의어 구분이나 어원 구분, 형태소 경계 구분 같은 여러 역할도 한다.
여러 예가 있지만 하나만.. 내 개인적으로는 prime number를 뜻하는 '솟수'까지 '소수'라고 바꾼 건 잘못된 조치였다고 본다. '소수'는 안 그래도 뜻이 겹치는 동음이의어가 많은데 말이다.

개드립을 좀 치자면.. 표준어 제정한 사람들이 모두 문과 출신밖에 없어서 저렇게 된 게 아닐까? =_=;;;; 문송합니다 -_-;;
'솟수'라고 예외를 추가로 인정하거나, 아니면 씨수, 핵심수, 으뜸수 등.. 완전히 다른 말을 그때 새로 만들어서 학교에 보급했어야 했다. 그리고 대가도 뭐냐. 댓가라고 해 줘야지.

나는 뭐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이런 말을 순화하느니 그럴 게 아니라, '장' page / chapter 같은 기본적인 말부터 순우리말 대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로 들어서 변별이 안 되는 거를 한자로 표기해 봤자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이 프라임 '소수'라는 건 정수론에서 다루는 개념이기 때문에 '소수점' 따위하고는 영역이 겹칠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 소수하고는 혼동될 일이 없다.
하지만.. 소수의 반의어가 합성수도 될 수 있고, 다수도 될 수 있으니.. 꺼림칙하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이상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그러고 보니 지난 1990년대 이래로 지금까지 국내에서 30년 가까이 한글 맞춤법 검사기 내지 형태소 분석기 외길을 파 온 연구실은 다음과 같다. 이분들 2020년대 기준으로는 은퇴가 거의 임박했거나 이미 은퇴했다.

  • 부산대 권 혁철 교수: 아래아한글의 맞춤법 검사기
  • 한국외대 유 재원 교수: 마소 Word 한글판의 맞춤법 검사기
  • 항공대 이 긍해 교수: 두벌식 기반 한-영 자동 전환 오토마타를 개발했다.
  • 국민대 강 승식 교수: 초창기 한국어 형태소 분석기의 원조가 아니었나 싶다.
  • 울산대 옥 철영 교수: 형태소 분석기의 떠오르는 강자이다.

아래아한글의 맞춤법 검사기는 오랫동안 개발돼 왔고 퀄리티가 좋은 편이지만, 2000년대 이후부터는 단순히 학교 문법뿐만 아니라 민간 국어 운동 이념이 들어간 판정도 많이 하고 있어서 약간 논란거리이다.
가령, 그냥 맞춤법· 오타를 지적하라고 돌리는 검사기에서 "일제시대가 아니라 일제강점기라고 써야 맞습니다"...;; 이런 것까지 굳이 지적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식이다.

꼭 맞춤법 검사가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한국어· 한글 정보 처리 분야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기능은 다음과 같다.

-- 띄어쓰기를 재구성하기. 하나도 띄어 쓰지 않았거나, 임의로 줄이 바뀌면서 어절 경계 정보가 소실된--특히 pdf나 ocr에서 긁어 온-- 텍스트의 문장을 원래대로 재구성하기
(영문도 대소문자나 하이픈 관련해서 휴리스틱이 필요한 처리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한국어보다는 훨씬 더 간단하다.)
-- 텍스트를 쭉 읽으면서 한자어는 몽땅 한자로 바꿔 주기. 당연히 헷갈리기 쉬운 한자를 틀리지 말아야 한다.
-- 텍스트를 이대로 읽을 때, 쓰여 있는 대로 곧이곧대로 발음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토 달기 (긴소리, 사이소리, 말음 법칙, ㅢ의 발음 따위)

Posted by 사무엘

2024/10/06 19:35 2024/10/06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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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부자 금수저 열전

우리나라엔 삼성이니 현대니 백 종원, 이 수만=_=이니 하는 기업인 말고도 다음 인물들이 정말 엄청난 부자였다. 물려받았던 자수성가했건..

1. 육 영수 (훗날 박 정희 대통령 영부인)

옥천에서 손꼽히는 초호화 부잣집 출신이었다. 일제 시대 1930~40년대에 이미 집에 자가용이 있었고 전화기가 있었다. =_=;;
생가를 찾아가 보면.. 꼴랑 집 한 채가 아니라 고래등 같은 기와집들의 '단지' 형태이다. 근처에 있는 정 지용 시인 생가하고는 완전 넘사벽 급으로 차이가 난다.

그러니 이분의 애비(육 종관)는 사위 박 정희를 아주 깔보고 개무시했다. 가난한 군바리 놈팽이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저 때는 인재가 부족해서 30대에 무궁화나 별까지 다는 사람도 있는 "대신"에, 계급이 높아 봤자 군인들의 연봉이나 복리후생도 개판이었다.

"신랑 육 영수 군과 신부 박 정희 양.."은 실제로, 진짜로 그 당시 결혼식 사회자가 저질렀던 실수이다. 심지어 신부가 신랑보다 키도 더 컸고. ㄲㄲㄲㄲㄲ
그랬는데 사위가 결혼 후 10년 만에 나라를 뒤엎어버리고 대통령이 되니.. 장인어른이 뒤늦게 사위에게 사죄를 했댄다.

박 정희는 모욕을 당한 건 절대로 잊지 않고 이를 악물고 자기 신분을 상승해서 설욕하는 타입이었다. 교사였다가 일본군 장교가 돼서, 나중엔 대통령이 돼서..

2. 공 병우 (안과 의사 + 한글 기계화 연구인)

이 사람은 진짜 개룡남이다. 그 옛날, 1930년대에 혈혈단신으로 일본 유학 가서 나고야 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까지 따고 안과 의사가 됐다.
그 뒤 경성 한복판에서 개원을 했으니 진짜 돈을 빗자루로 쓸어담았다. 물려받은 거 없이 자기 노력 능력만으로 저렇게 됐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창기엔 개인 납세자 중에서 전국 톱급으로 세금을 많이 낸 걸로 유명세를 탔다. 안 그래도 능력자 억만장자인 데다, 강직하고 옳곧은 성품 덕에 소득을 하나도 안 숨기고 곧이곧대로 신고했더니 저런 세금폭탄이 떨어졌다.. 근데 그거 다 내고도 하나도 꼴리는 거 없었댄다.
"왜놈들로부터 해방돼서 이제야 내 나라가 세워졌는데 닥치고 정직하게 세금 내서 나랏님을 도와주자" 그런 마음이었다고.. ㅠㅠㅠㅠ

공 박사는 1950년대, 나라가 6 25 때문에 보릿고개니 국제시장, 몽실언니 이러는 개판오분전 폐허가 됐을 때도 혼자 여권 발급받고 미국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유학이나 비즈니스가 아니라 단순 관광 목적으로 말이다..!! (창랑호 만송호 이런 뱅기를 탔으려나?)
1960년대 글자판 표준화 갖고 싸우던 시절에도 이미 외제차 자가용을 굴렸고 아예 운전수까지 고용했다.

그때 나라에서 세벌식 자판을 표준으로 채택했으면 공 박사가 고맙다고 꾸벅꾸벅 하면서 ETRI 같은 기관에 저 사람 사재만으로 슈퍼컴이나 각종 연구 자재 장비가 더 기증될 수도 있었다(고 본다. 내 뇌피셜).;;;
그 시절에 공 박사 같은 애국자 천재와 국가가 대립하고 싸우는 관계가 돼 버린 건.. 참 두고두고 땅을 칠 국가적 불행이었다.

3. 백 남준 (예술가)

1950년대에 서울 한복판에서 자가용 있고 "피아노" 있고, 바나나를 먹을 수 있는 집에서 자랐다. =_=;; 자 이 정도면 말 다 했지? 아마 집에서 TV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니 그는 생계 걱정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덕질을 마음껏 할 수 있었고, 그게 개인적인 천재성까지 가미돼서 독보적인 비디오 아티스트가 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분은 정~~말 성품이 온화하고 친절하고 겸손하고, 칭찬이나 공을 주변 조력자들에게 돌리고.. 인성이 정말 킹왕짱이었다고 한다. 개차반 졸부가 절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공 병우 박사에 대해서는 2000년대 이후 스마트폰 모바일 시대까지 살아 있었으면 무슨 덕질을 했을지 궁금해진다.
백 남준은 2010년대 이후 브라운관 디스플레이가 없어진 뒤에는 무슨 덕질을 했을지 궁금해진다.
난 오랫동안 백 남준과 백 "낙"준이 헷갈리긴 했다.. ^^

4. 근현대사 관련 인물

  • 윤 보선도 예상 이상의 명문가 금수저 출신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제 시대에 사비로 영국 유학까지 가능했던 걸까?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은 의외로 정치에도 관심이 있었는지.. 2공화국이 물 건너간 뒤에도 박 정희의 라이벌 격으로 대선에 출마했었다.
  • 이 시영· 이 회영 6형제는 대대로 고위 벼슬을 지낸 갑부 집안 출신이었는데.. 독립운동 하느라 가산을 탕진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 그 반면 이 완용· 이 하영 이런 인간들은 친일매국의 댓가로 일제 시대 동안 신흥 갑부로 등극했다. 부동산 재산이 정말 엄청났었다. 물론 그게 전부 일제로부터 받은 건 아니고, 자기들이 머리 굴려서 재테크로 재산을 더 불린 것도 많다.

5. 나머지

  • 정석의 저자 홍 성대: 사립 고등학교를 설립하고 모교에다 강의동을 지어서 기증할 정도로 억만장자가 됐다.
  • 前 카이스트 화학과 김 봉수 교수: 생활비가 교수 월급만으로 감당이 안 돼서 주식을 시작했다는데.. 관심 분야 업계 흐름과 주식의 세계를 그야말로 자기 전공 공부하듯이 공부한 듯하다. 그야말로 교수 연봉의 수십, 수백 배를 벌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4/10/04 08:35 2024/10/0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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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근황

벌써 10월이 됐다. 두 주 남짓 전에 근황글을 올리고는 얼마 안 되어 또 근황 업데이트를 하게 됐다. =_=;;
본인은 연매와 결혼 준비 중이고 호박 농사도 잘 짓고 있다. 2024년과 그 이전.. 신혼집과 약혼자가 생긴 지금과 그 전은.. 생활 방식이 서로 너무 달라져 버렸다. 정말 꿈만 같다. 이전엔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지경이다.

올해는 10월 1일 국군의 날이 임시공휴일로 갑자기 지정돼서 놀게 됐다. 그렇잖아도 회사에 따라서는 개천절과 주말 사이의 금요일인 10월 4일을 전사 휴무(각자 연차 써서)로 지정한 곳이 있다. 그런데 10월 1일과 2일까지 연차로 연결하면 사기적인 연휴를 만들 수 있을 듯하다.

(막간을 이용해 정치 얘기를 좀 꺼내자면.. 윤통의 재임 기간이 이제 과반이 지난 듯하다. 전반적으로 잘하고 있고 특히 야당 그 정신나간 후보의 당선을 막은 것만으로도 이 사람은 정말 훌륭한 기여를 했다.
그 사람 덕분에 나라의 여러 부분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도 지난 몇 년간 이념 걱정, 정치 얘기를 꺼낼 일 없이 정말 편안히 지낼 수 있었다.

다만 영부인의 논란거리는 나도 차마 실드를 칠 수 없고, 의료 쪽은 왜 저리 깽판을 치는지 그건 우려스럽다. 의대 증원 갖고 욕 먹는 걸 예전 MB 시절 4대강이나 미국산 쏘고기 때문에 욕 먹는 것과 동급으로 칠 수 있는지?
나야 의료 행정 쪽은 문외한이기 때문에 뭐라 주장을 할 수는 없지만 뭔가 우려스럽긴 하다. 저 두 가지만 빼면 난 정치 쪽은 딴 불만이 없다.)

뭐 그건 그렇고.. 본인은 지난 추석 때는 처가(진)까지 포함해서 고향을 두 군데 다녀오면서 양가 부모님을 뵈었다.
올해는 주말과 명절이 이어져서 연휴가 길었으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근데 다들 아시다시피 올해 9월은 추석을 포함해 셋째 주가 다 지나도록 날씨가 어찌나 더웠는지... 80년이 넘는 관측 사상 제일 더운 9월을 기록했다. 추석 때 열대야와 폭염경보를 접하다니 살다 살다 별꼴을 다 본다.
9월 중순에 8월 중순 날씨가 계속됐고, 이건 추석이 아니라 그냥 하석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지금이야 밤에 10도대 중후반, 낮에 20도대 중후반이니 그런 미친 무더위는 끝났다. 추분이 지나서 낮 길이도 엄청 짧아진 게 느껴진다.
하지만 낮에는 여전히 땀 나고 덥고 실내에서 에어컨이 필요한 건 여전하다. 단지, 더워도 기분 좋게 덥고.. 아침과 밤에 시원해졌기 때문에 견딜 만할 뿐이다.

이번 여름에 살인적으로 더웠던 것처럼 올해 겨울은 반대로 엄청 혹독하게 추울 거라는 분석을 벌써부터 한 사람이 있다. 과연 그 전망이 적중할지 지켜봐야겠다.

1. 파는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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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때 고향 재래시장 곳곳에서 이렇게 호박이들이 쌓인 걸 볼 수 있어서 몹시 좋았다.
늙은 호박뿐만 아니라 동그란 풋호박도 잔뜩 담긴 게 정말 사랑스러워 보였다.
호박은 사랑이다~!! 집집마다 안방에 한두 개 갖다놓으면 미관에도 좋고 힐링이 된다. 내게는 늙은 호박이 뭐 복조리니 dream catcher이니 하는 물건 역할을 하고도 남는다.

2. 해수욕

추석 때 도대체 해수욕이 웬말이냐.. 햐 올해는 더워도 너무 더웠다. 이런 날은 물놀이를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계곡과 바다 중에 고민하다가 바다를 골랐고, 경주 감포에 있는 나정 고운모래 해수욕장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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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와~~ 여긴 정말 대박이었다.
진흙탕 없이 깨끗한 자갈 바닥에다, 물은 시원하고.. 해질녘인데도 발등까지 다 보일 정도로 맑았다. 흐리고 탁한 영종도 해수욕장 바닷물과는 차원이 달랐다.

저런 바닷물에 몸을 담그니 이루 말할 수 없는 시원함과 상쾌함이 느껴졌다. 하루 종일 흘렸던 땀이며, 고속도로에서 저속 차량 때문에 쌓였던 짜증을 바닷물에 모조리 흘려보냈다. 수십 km를 달려서 감포까지 찾아간 보람이 있었다.

3. 키우는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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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우리 호박이들이 축 늘어지고 제대로 못 자랐던 이유도 너무 더웠기 때문인 듯하다. 계절이 바뀌자 얘들은 다시 새순이 쭉쭉 돋기 시작했고 꽃도 예전처럼 자주 피우기 시작했다.
흰 줄무늬가 그어진 싱싱한 잎을 봄과 초여름에나 보다가.. 지금 다시 보니 몹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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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난 8월 초 이후 무려 50일 만에.. 암꽃이 하나 활짝 폈다. 얘를 주변의 다른 호박에서 수꽃을 꺾어 와서 수분시켰더니 수분 성공.. 그래서 제12호 열매가 탄생했다. 만세~!!!
수분된 지 하루 만에 옆으로 뻗었던 줄기는 아래로 축 내려갔다. 그리고 이 아이는 1주일쯤 뒤, 귤 정도 크기까지 부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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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는 9월 초에 암꽃이 잔뜩 폈었는데 지금은 타이밍이 좀 늦어졌다.
앞으로 기온이 더 내려가고 추워지면 호박들이 암꽃을 더 피울 것이다. 얘 이후로 13, 14, 15호 열매도 계속 맺혔으면 좋겠다.

4. 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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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내가 멧돼지를 좋아하는 걸 알고는 여친님이 한사토이(Hansa toy) 멧돼지 인형을 선물로 장만해 주었다. 우와~~~ 멧돼지와 호박이라니!! ^_^
크기는 새끼 같지만 새끼라면 다람쥐 같은 줄무늬가 있어야지. 저건 성체를 묘사한 인형이다. 그리고 한사토이에 멧돼지 새끼 인형은 또 따로 만들어 팔더라.
한사토이는 어린애들 갖고 노는 완구보다는 좀 더 진지하고 현실적으로 동물 박제라든가 인테리어를 추구한 동물 인형을 만드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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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지난번에 소개했던 그 검은 고양이와 자주 마주치고 있고 잘 지내는 중이다.
꼬냉이들은 태생적으로 몸에 물이 묻는 걸 싫어하고 심지어 물을 마시는 것조차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대신 자체적인 '그루밍'이라는 테크닉으로 몸을 깨끗하게 유지한다나..?? 개와는 다른 새로운 특성인 것 같다. ㅎㅎ

Posted by 사무엘

2024/10/01 19:35 2024/10/0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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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기와 장소별로 인상적이었던 작품들

(1) 1970년대 중후반에는 성행위, 폭력, 고문 등.. 뭔가 하드코어한 장면을 높은 수위로 묘사하는 걸로 주목 받은 영화가 여럿 등장했다. 이탈리아 영화 중에 "살로 소돔의 120일"(1975), "카니발 홀로코스트"(1980).
일본에는 "쇼군의 새디즘"(1976)이라든가 "감각의 제국"(1976)이 다 비슷한 시기의 작품이었다.

(2) "마지막 황제"(1987)와 "시네마 천국"(1988)도 비슷한 시기에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명작 영화이구나. 스토리 배경이나 장르는 둘이 서로 다르지만.

(3) 한때 인조인간이나 사이보그, 반쯤 좀비 귀신인 인간.. 이런 장르가 아주 인기였던 것 같다. 로보캅, 터미네이터, 아 그리고 가위손..! 드라큘라나 프랑켄슈타인은 원작 소설이 아주 옛날옛적부터 있었고.

(4) 후뢰시맨-_- 같은 특촬물이라든가 애니-실사 합성 영상물(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도 쌍팔년도 시절의 참신한 촬영 기법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냥 닥치고 다 CG가 대세가 됐다.

(5) 쉬리(1999) 이후로 본인의 대학 시절.. 딱 2000년대 초중반이 울나라 국산 영화의 중흥기 황금기였던 것 같다.
"라이터를 켜라"(2002)는 지금도 유튜브에서 요약, 평론이 올라오는 명작이고.. "지구를 지켜라"(2003)도 시대를 앞서갔던 문제작, 포스터를 너무 생뚱맞게 만들어서 망한 비운의 명작 소리를 듣는다. 이것 말고도 여러 작품들이 떠오른다.

(6) 그때 "친구", "공공의 적", "두사부일체" 등 조폭물 시리즈가 큰 인기를 얻었다.
그 뒤 2010년대에 들어서는 범죄도시 시리즈라든가 청년경찰, 나쁜 녀석들, 베테랑, 극한직업 같은 영화들도 잘 만든 것 같다.

(7) 2012년에는 일본에서 "공포의 물고기"라는 애니가 나왔고, 우리나라에서는 "파닥파닥"이 만들어졌다. 이것도 꽤 의미심장하다.;;

(8) 2015~16년 사이에는 우리나라에서 일제 시대 배경의 반일물이 인기를 끌었다. "암살"(2015)과 "밀정"(2016).
2019년이야 3· 1 운동 100주년이니 "항거", "말모이", "엄복동", "봉오동 전투" 등의 일제 시대 배경 작품이 유난히 많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얘들은 명작까지는 못 되는 퀄리티이거나 심지어 엄청난 졸작 망작도 있었다.
이거 유행이 식고 관객들이 식상하기도 했으니, 향후 몇 년간은 일제 시대 영화가 흥행 주류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2. 영화에서의 전쟁 전투 묘사

영화에서 각종 폭발(포탄, 자동차 등)은 화염만 실제보다 더 딥다 크게 묘사되고, 폭발음은 더 작게 묘사된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낑낑대면서 폭탄 전선 해체하는 장면 따위 없다. 발 떼면 터지는 지뢰 같은 것도 없다.

영화에서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마지막 한 사람까지 끝까지 싸우다 전멸하는 연출을 좋아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훨씬 더 조심하면서 신중· 소심하게 움직이며, 병력을 반도 채 잃지 않았어도 철수하고 후퇴하고 추가 지원을 요청한다거나 한다. 현실의 전장은 영화 300 같은 스타일이 아니다.

(1) 스타십 트루퍼스: 수백 년 뒤를 다루는 SF물인데도 저그 괴물들을 상대하는데 미사일은 안 쓴다. 알보병들이 수류탄 하나 깔 생각조차 안 하고 소총만 드르르륵 갈기다가 죽어나가는 게 참 이상하다.

(2) 태극기 휘날리며: 제아무리 1950년대 배경이라지만.. 마지막 금성 전투는 너무 비현실적인 백병전 지향적으로 연출됐다. 무슨 1차 세계대전 참호전이나 그 이하 19세기의 전투 같은 스타일이다.

(3) 봉오동 전투: 독립군 장수가 일본군 장교하고 검으로 맛다이 떠서 목 따는 씬이 있던데...;;; 정말 어이가 달아나는 줄. 저 때가 1920년대인지, 아니면 기원전 삼국지 무협지 시절인지..??
근데 이런 식의 국뽕 왜곡은 중국에서도 엄청 많이 한다. 중일 전쟁 시절에 재야의 은둔 쿵푸 고수가 일본군 1개 소대를 다 쳐바른다는 식으로.. 유튜브 검색하면 많이 나온다. ㅠㅠㅠㅠㅠㅠ

(4) 그레이트 월: 이 바닥 판타지의 끝판왕.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여군들 발 묶어놓고 아래로 점프하면서 괴물들 잡는 거는.. 현실성, 전술적 가치는 안드로메다 행이다. 잊을 수 없네.

(5) 패트리어트: 이때는 전열보병이라는 그 당시 전투 방식 자체가 미친 짓이었다. 그러니 영화가 특별히 더 왜곡하고 과장하고 고증 무시할 필요가 없었다. =_=

하긴, 전투기 공중전을 찍어도 적당히 도그파이팅 하면서 그림다운 그림이 나오는 거는 1~2차 세계대전 사이가 마지막이지 싶다.
오늘날의 전투는 버튼 띡 눌러서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갑자기 폭탄이 날아와서 적군을 쳐잡는 형태이기 때문에 영화 연출이 들어갈 게 별로 없다. 옛날처럼 드라마틱한 전쟁 영웅이 배출되는 형태로 전쟁이 진행되지 않는다.;;

Posted by 사무엘

2024/09/29 08:35 2024/09/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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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전화 급 범죄들

1. 장난전화

경찰 112와 소방 119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긴급전화는 그 어떤 극한 상황에서 타전되는 신고도 받을 수 있도록 정말 엄청나게 민감하게 설계되어 있다.
얘들은 돈이 없어도 공중전화로 바로 걸 수 있으며, 개통되지 않은 핸드폰으로도 전파만 물리적으로 터진다면 걸 수 있다. 발신자의 위치는 곧바로 추적되며, 걸었다가 발신자 쪽에서 끊어도 연결이 유지된다.

이런 하드웨어적인 특례뿐만 아니라 컨텐츠 면에서도 말이다.
112 신고는 통화가 아닌 문자 메시지로도 가능하다.
그리고 범죄자가 옆에서 듣고 있기라도 해서 말을 곧이곧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도 대비가 다 돼 있다. "중국집이죠? 여기여기여기로 짜장면 좀 갖다주세요" 주문을 진지하게 하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말귀를 알아듣고 그 주소로 경찰이 출동한다.

심지어는 구체적인 조건은 잘 모르겠지만, 그만 됐다고 안 와도 된다고 철회 전화를 해도 통하지 않는다. 그것조차 악당이 협박해서 철회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경찰이 일단은 무조건 온다는 것이다. 경이롭지 않은가?

그런 만큼 이런 곳에는 장난전화를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가 정말 정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위급한 상황에 처하거나, 아니면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목격했을 때에나 그런 번호로 연락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 기분이 꼴린다고 무슨 불장난 하듯이 장난전화를 걸고 심지어 허위 신고까지 하면.. 이제는 나라에서 이런 것에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경범죄로 끝나던 것이 과태료이고, 상습적이고 악질적이면 민· 형사 처벌을 때리면서 혹독한 금융치료 참교육을 시킨다(경찰· 소방관들의 출동 비용). 그래야만 마땅하다.

하긴, 굳이 경찰· 소방이 아니라 어디라도 장난전화를 걸지는 말아야지. 공항이나 철도역 같은 곳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거짓말은 죄질이 아주 나쁜 부류이고, 요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칼부림 예고라든가.. 중국집에 음식 허위 주문도 말이다.

20여 년 전에 용궁반점은 도대체 언제 어디서 벌어진 일인지 모르겠다만, 전설적인 장난전화 사례였다. 당장 들으면 웃기지만 이건 범죄에 가까운 수준으로 멀쩡한 가게에다 영업 방해를 저지른 게 아닌가? 아무래도 불편하게 들린다.
그러고 보니 '멘탈 갑 콜센터 직원' 이거는.. 장난전화라기보다는 그냥 무례한 깽판 진상 고객을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직원이 갖고 놀면서 잘 대처한 거구나. 이거는 사이다 같다.

지난 2012년에는 이 대웅이라고 당시 군복무 중이었던 청년이 나라 망신을 단단히 시켰다.
마치 IP 주소 속이듯이 발신자 번호를 속이는 앱을 이용해서 미국 뉴저지 경찰서를 상대로 자살 예고 내지 테러 협박 허위 신고를 수 차례 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해당 지역은 위험물이 진짜 있는지 경찰 특수부대가 출동하면서 수색을 해야 했고 엄청난 시간 낭비, 행정력 낭비가 초래됐다.

결국 수사가 시작됐고 범인은 이듬해에 잡혔다. 번호를 속여 봤자 결국은 추적하면 다 잡히는데 저런 바보짓을 왜 한 걸까.
저 친구는 다행히 미국으로 송환까지 되지는 않고 국내에서 벌금형만 받았다. 하지만 미국의 트라우마 역린을 제대로 건드리는 중범죄를 저질렀으니, 이제 미국엔 평생 못 가게 됐다. 자기 인생에 스스로 걸림돌을 놓고 장렬히 자폭을 한 거다.
장난전화를 걸 때는 짜릿하고 "등신들 엿먹어라~" 했을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그게 자기한테도 그대로 돌아왔다.

뭐.. 미국 내부에서는 더 과거이던 2004년경, 어느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에 웬 경찰 사칭 전화가 와서 "거기 모 백인 여자 알바생이 손님 돈을 훔친 걸로 의심되니 퇴근시키지 말고 소지품과 몸을 수색해라"...;;;를 시작으로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성희롱 성추행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점장은 그게 진짜 경찰의 지시인 줄 알고 그 짓을 진짜로 알바생에게 행했기 때문이다.

천조국이라면 이런 범죄는 정말 엄하게 처벌됐겠으나.. 천조국은 한편으로 악마의 변호사도 많은 나라인 듯하다.
정신병자 급인 가해자 당사자는 심신미약 비스무리한 이유로 형사처벌을 거의 받지 않았다. 그 대신 민사가 걸렸고, 애먼 맥도널드 본사만 직원 교육을 똑바로 시키지 않아서 이런 상황에서 대처를 잘 못 했다는 명목으로 배상금을 물게 됐다.

전화기는 얼굴 안 보이는 통신 수단이니 거 참, 정말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사람이 낚일 수도 있구나 싶다.

2. 비슷한 유형의 다른 범죄 사건

(1) 이 대웅 이후로 거의 10년 뒤엔 권 도형이라는 친구가 암호화폐 관련 사기를 쳐서 세계를 거하게 농락했다. 미국 행인지 한국 행인지 아직도 결정이 안 됐나?
요 몇 년 잠깐 동안은 떵떵거리며 살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쟤는 인생 끝났다. 젊은 시절은 몽땅 다 구치소· 교도소에서 보내게 되겠다. 재산 추징과 몰수도 행해지겠지?

(2) 그리고 또 생각나는 건 얼마 전에 착륙하는 여객기 안에서 비상구를 열어젖혀서 난동을 부린 친구이다. 이건 형사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으로 작년에 판결이 이미 났다.
벌금형이 아니라 징역이다. 비록 집행유예이지만 저 형량은 집유가 가능한 거의 상한선을 찍은 엄청난 중형이다.

비행기에서 헛짓거리 한 걸 국가 공권력이 얼마나 심각하고 중한 죄라고 여겼는지를 알 수 있다.
게다가 저걸로 끝이 아니고, 이 역시 금융치료가 남아 있다.
민사에서는 7억 3000여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이.. ㅡ,.ㅡ;; 저 애 부모는 정말 뒷목 잡지 않았을까 싶다.

비행기의 비상구 문은 잘 가고 있을 때는 열 필요가 없고, 바람 압력 때문에 열 수도 없다.
그러나 비상 상황이라면 저속 저고도 상태일 때고, 이때는 손으로 힘 줘서 열 수 있어야 한다. 비행기는 타 교통수단과 달리, 유리창을 깨고 탈출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상구 문은 한번 열었으면 도로 닫으면 되지, 그것만으로 뭐 탈출 슬라이드까지 다 펼쳐지고 비행기에 저 정도로 비가역적인 손상이 가해지나 궁금해지긴 한다.

(3) 얼마 전에 경복궁 담장에다가 스프레이 낙서질을 했던 미친놈들도 중고삐리여서 형사처벌은 면했으나, 금융치료는 비껴 가지 않았다.
1억 수천만에 달하는 복구 비용(약품값, 장비 대여, 복구 인력 인건비)이 청구됐다.

이상이다.
뒷일 생각 안 하고 지금 당장의 짜릿함이나 스트레스 해소, 화풀이를 위해서 장난전화 허위신고를 한다거나, 어디 불을 지른다거나 공공시설을 망가뜨리는 짓이 오늘날까지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불과 관련된 사례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 분야에도 싸이코가 적지 않았다. 숭례문을 불지른 놈, 지하주차장의 차들을 다 태워먹은 놈, 습관적으로 10여 년 동안 산불을 저질렀던 봉대산 불다람쥐놈, 등등.
음 그리고.. 지 기분 꼴린다고, 혹은 처음에 금전 거래로 상호 동의와 합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멀쩡한 상대 남자를 성추행 강간범으로 신고하고 무고하는 것도 장난전화 허위신고의 범주에 들겠다.

이런 것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이며, 어떻게 해야 저런 미친놈들이 더 나오지 않게 할 수 있을지..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의 탈을 쓰고 경제관념이 어째 저렇게 지지리도 없을 수가 있는지 참..
거짓말의 여파라든가 자기가 저지른 일의 뒷감당, 책임이라는 개념이 그런 인간들 머리 속에는 없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4/09/26 19:35 2024/09/26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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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써 놓고 보니 군대 이야기가 많아졌다.;;

1. 하이브리드 업종

세상엔 하이브리드 업종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먼저 연기 쪽.. 뮤지컬 배우는 연기를 기본으로 하면서 노래도 어지간한 성악가나 가수 수준으로 하는 사람이다. 두 영역의 능력이 다 필요하다.
쿵푸 무술 배우는?? 이연걸, 견자단 같은 사람을 생각해 보면 당연히 일반인보다야 훨씬 더 몸 좋고 힘 좋고 싸움 잘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연기를 위한 무술은 진짜 실전용 무술하고는 영역이 다르다.

연기용 무술은 실제로 상대를 타격하고 제압하고 무력화시키는 격투술 호신술보다는 화려한 연출 시범에 초점이 더 맞춰져 있다.
실제로 소림사에서도 레알 무술인 지망생이랑, 무술 연기 지망생은 따로 구분해서 무술을 가르친다고 한다. 사격만 스포츠 사격이랑 군대 사격이 다른 게 아니구만.
군인과 무인이 영역이 달라지고, 무술인과 연기자도 영역이 달라지는 건 필연인 듯하다. ㅎㅎ

다음으로 기상캐스터는.. 뉴스 아나운서나 방송 리포터 급으로 격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본격 연예인이나 레이싱모델도 아니다. 정체성이 뭘까..??

옛날에 김 동완 아저씨가 현역이던 시절에는 예보자가 라이브로 일기도를 그려 가면서 날씨 설명을 해야 했다.
하지만 크로마 키 기반의 화려한 CG가 발달하면서 사람은 각본대로 손짓 하면서 대본을 또박또박 읽기만 하면 되게 되었고, 예전에 비해 기상학 쪽으로 필요한 전문성은 다소 줄어들었다. (아예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님)
그래서인지 1990년대 이 익선 아나운서 이후부터 기상캐스터 자리는 그야말로 방송사별로 예쁜 아가씨들 각축장이 됐다.

각종 스포츠의 중계 방식을 보면 업계 경력이 있는 해설자, 그리고 해설을 일반인들에게 걸출한 입담으로 풀이해 주는 캐스터 2인으로 편성되는 편이다. 일기예보 하는 사람은 해설자이던 게 캐스터로 성격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하긴 일기예보가 하도 자주 틀리니 이제는 날씨 예보가 아니라 중계로 바뀌고 있다는 드립도 나돌곤 한다.;;

2. 각종 군종과 병꽈의 경계

군용기라는 게 꼭 공군에서만 운용하는 게 아니다. 공군은 비행기를 띄우기 때문이 아니라 제공권 장악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공군이다.
비행기를 몰더라도 공군이 아니라 육군 항공대에서 헬기 조종을 주로 할 수 있고, 해군 항공대에서 함공모함 함재기 조종을 주로 할 수도 있다.

회전익기는 고정익기하고는 영역, 성격, 조종 특성이 완전히 별개라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공격헬기 조종사를 양성할 때 무슨 5G~6G짜리 가속도를 견디는 훈련을 시킨다거나, 헬기 조종석에 사출 좌석을 설치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함재기는 그 특성상 아무래도 지상 기지에서 발진하는 공군 전투기보다는 작고 항속거리도 짧다. 하지만 훨씬 더 짧은 활주로에서 이착함 하는 게 훨씬 고되고 힘들 테니 그런 쪽으로 고충이 있다.
오죽하면 "공군 조종사는 비행 시간으로 짬이 차지만 함재기 조종사는 이· 착함 횟수로 짬이 찬다" 이럴 정도니까 말이다.

그래도 지상 기지 전투기와 항공모함 함재기가 근본부터 완전히 다른 비행기는 아닌 모양이다. 전투기 제조사에서는 같은 기체를 베이스로 해서 약간만 변화를 줘서 공군 에디션과 항모 함재기 에디션을 모두 만든다고 한다.
마치 과거에 같은 선체 베이스로 전함도 만들고 항공모함도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자동차는 같은 차체 프레임으로 트럭도 만들고 버스도 만든 것에다가 비유할 수 있겠다.

한편, 육· 해군에서 항공대를 운용하는 것처럼 반대로 공군에서도 지상 기지에서 미사일 터렛을 운용하는 게 있다.
대공포는 육군이 아니라 공군 관할이다. 그렇기 때문에 활주로가 있는 비행장뿐만 아니라 웬 산꼭대기에도 공군 부대가 있을 수 있다.

뭐, 육군은 보병과 포병이 주된 전투 병과인데.. 포 중에서 박격포는 포병이 아니라 보병 관할이다. 얘는 여느 화포와는 성격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완전히 같은 물건은 아니겠지만 뭔가 바주카 포와 비슷하달까? FPS 게임으로 치면 로켓 런처와 비슷하다.

하긴, 옛날에 공용화기로서 육중한 기관총이란 게 처음 발명됐을 때는 이걸 보병에다 넣어야 하나 포병에다 분류해야 하나 말이 많았었다고 한다. 인류의 전쟁사에 한 획을 그을 너무 획기적인 무기가 발명됐기 때문이다.
기관총 하나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전쟁이 종결돼 버릴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는데.. 실제로는 그 정도는 아니었고 핵무기가 발명된 뒤에야 옛날 같은 형태의 전쟁이 많이 없어졌다.

3. 한 분야 특화

뭔가 한 분야에 특화된 성능을 발휘하는 튜닝 물건은 험악한 환경에서의 안정성, 신뢰성, 생존성(?)이 떨어진다. 이게 자연의 보편적인 등가교환=_= 법칙인 듯하다.

(1) 살코기를 많이 만들도록 품종개량된 식용 가축 동물은 야생에서는 제대로 못 산다.
과육 열매를 많이 맺도록 품종개량된 농작물도 야생에 내던져지면 잡초와의 경쟁에서 당연히 못 버틴다.
똑같이 식물이 자라는 곳이어도 논밭이 진짜 자연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지극히 인위적인 장소가 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아무 데서나 무단경작을 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 농사가 유난히 고달픈 일인 이유, 성경 창 3:18-19의 의미와도 모두 일맥상통한다.

(2) 철이나 알루미늄 같은 금속은 돌보다 더 단단하고 튼튼하고, 한편으로 예쁜 광택이 나고 얇게 펼 수도 있고.. 여러 모로 활용하기 좋다.
특히 열에도 훨씬 더 강하다. 마그마나 용암은 용광로 쇳물이 아니다. 저런 건 삽으로 퍼서 철제 양동이에 아무 문제 없이 퍼 담을 수 있다. 뜨거움의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 (그러니 "쓰레기를 몽땅 다 화산 분화구에다 집어넣어서 태워 없애면 어떨까?"는.. 쓰레기를 우주로 날려 보내는 것만큼이나 현실성· 실용성이 없다. ㅎㅎ)

이러니 금속이 좋기는 한데.. 금속은 일반적인 돌덩어리에는 해당되지 않는 골치 아픈 문제가 있다. 화학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거.. 녹과 부식에 취약하다. 금속은 유기물 같은 부패는 없지만 부식이란 게 있다.
금속을 녹이고 가공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전에 광석으로부터 산소 원자를 떼어내고 순금속을 추출하는 것부터가 고열을 동반한 엄청난 첨단 기술이었다. 원시시대를 석기, 청동기, 철기로 괜히 나누는 게 아니다.

금속은 마치 과육만 많이 잘 만들고 생존력은 비실비실한 농작물만큼이나 부자연스러운 상태를 인위로 만들어서 억지로 유지시키는 것에 가깝다. 그 억지라는 건 페인트칠이나 도금 같은 걸 말한다.

(3) 옛날의 구닥다리 화승총은 현장 조달한 조악한 쇠구슬을 넣고도 쏠 수 있었겠지만 오늘날의 최첨단 초정밀 소총은 어림도 없다.
100년 전 구닥다리 자동차 엔진은 저질 기름을 넣어도 꿀럭거리기만 할 뿐 일단 돌아가기는 하겠지만.. 오늘날의 초정밀 자동차의 엔진에다 그랬다가는 큰일 난다. 배기가스 정화 계통이 다 망가지고, 엔진에 불순물이 끼고.. 그야말로 비가역적인 손상을 입는다.

(4) 일반 육군 보병들이야 사격의 유효사거리를 거의 100~200m 정도로 잡는다. 쟤들은 실전에서도 특정 타겟 조준사격보다는 다같이 엄호· 기선제압 사격을 훨씬 더 많이 한다. 그렇기 때문에 총 멘 채로 진흙탕도 구르고 유격에 각개전투에 별 짓 다 한다.

그렇지 않고 조준경 달고 2~3km 거리에서 저격을 하는 스나이퍼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런 초정밀 총은 초민감한 악기 다루듯이 전용 케이스에 넣어서 신줏단지 모시듯 보관해야 하고, 총과 저격수가 완전히 물아일체여야 한다. 사수는 그 감이 무뎌지지 않게 수시로 혹독한 훈련을 해야 하고, 총도 수시로 닦고 조이고 초정밀 관리를 해야 한다. 저격소총을 땅개들 돌격소총처럼 험하게 다뤘다간 큰일난다.

(5) 군인들을 위한 전투용 총기는 한없이 무겁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하루 종일 들고 다닐 군인들의 부담을 생각해서 말이다. 하지만 스포츠 사격이나 저격수용 총은 반동을 줄이는 것에 특화되어 엄청나게 무겁다.
칼도 다 같은 칼이 아니어서 사형 집행용 참수검은.. 찌르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베는 것에만 특화돼 있다. 그리고 엄청 둔기 수준으로 엄청 무겁다. 여느 검도용 검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저격수 사격은 스포츠 공기총 사격과도 영역이 완전히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최소한의 공통 테크닉 이후부터는 노하우가 서로 호환되지 않는다. 똑같이 피아노를 전공해도 재즈 피아노랑 클래식 피아노가 호환되지 않듯이..

Posted by 사무엘

2024/09/24 08:35 2024/09/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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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운전하면서 개인적으로 제일 열받았던 순간

하루는 본인은 시속 90~100으로는 밟아도 될 정도로 곧게 뻗은 4차로 도로의 1차로를 주행하고 있었다.

이 도로는 중간에 교차로나 횡단보도 없고, 보행자 튀어나올 일 없고, 근처에 초등학교 따위는 더욱 없고, 시야가 가려지는 것도 없고.. 지형적으로는 시화 방조제 같은 도로다. 위험 요소라고는 단 1도 없다.
그런데 여기는 4km 남짓 전 구간에 정말 빌어 쳐먹을 60 구간 단속이 걸려 있어서 운전할 때마다 열이 뻗치고 분노가 치민다.

그렇게도 과속이 싫으면 한두 군데 ‘지점’에만 80 이하 정도 단속만 걸어도 충분하다.
도대체 여기를 왜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병적으로 변태적으로 차를 못 달리게 하는 걸까?

이건 진짜 모든 대한민국 운전자를 잠재적 교통사고 유발자 범죄자로, 아니면 초등학생이나 유치원뻘 지능으로 취급하는 무식하고 우악스러운 규제 만능주의의 산물이다. 이건 자동차를 운전하는 게 아니고 그냥 놀이공원 범퍼카 운전이다.
운전자들이 다 자기가 정당하게 달릴 권리를 빼앗기고 10분 만에 갈 거리를 20분 넘게 가느라 시간을 빼앗기고, 자기 인생을 부당하게 빼앗긴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말 같지도 않은 "안전을 위해.." 가스라이팅에 세뇌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차를 천천히 부드럽게 운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오로지 연료를 절약하기 위해서이다. 기름값 걱정 없이 오로지 안전만이 목적이면 지금보다 훨씬 더 과격하고 운전하고 세게 밟아도 된다!!

이렇듯, 저기는 안 그래도 마음에 안 드는 도로인데.. 그 날은 내 앞의 1차로와 2차로에 차 두 대가 비슷한 간격으로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심지어 그 느린 60으로 달리는 것도 아니고 더 느리다.
당장 추월하고 싶은데 1차로 차는 2차로로 비킬 생각을 안 하고(옆에 뻔히 공간 있음!!) 내 옆의 2차로 차는 속도를 줄일 생각을 안 한다.

나 정말 분노가 치밀었다. 이거 정말 어디서 배워 쳐먹은 운전 매너냐?
내가 면허 딴 이래로 이 정도로 앞차에다가 빵빵대고 상향등 오래 켠 적이 없었다.
결국은 2차로 차가 속도를 줄여서 추월 자리를 만들어 주는 듯했으나.. 1차로 그 운전자는 정말 끝까지 꿋꿋하게 자기 자리를 비키질 않았다. 야 정말 제발..

* 도로는 뒷차 운전자로부터 빌려 쓰는 공간이다.
* 나의 뻘짓 병신짓 때문에 뒷차가 안 걸릴 신호에 더 걸려서 2~3분을 날릴 수 있다.
* 난폭운전 칼치기가 좋은 습관은 아니지만.. 칼치기를 유발한 진상 운전자 잘못도 아마 6~70%는 있을 거다.


이걸 좀 명심하라고.
천천히 가고 싶으면 그냥 n차로 맨 가에서 찌그러져 있고 수시로 뒷차한테 비켜 주기만 하면 정말 아무도 뭐라 안 한다. 도로 평화가 유지되고 난폭이니 보복운전이니 그런 거 생길 일 없다.
이런 마인드로 운전을 해도 시원찮을 텐데. 하여튼 우리나라는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담으로, 기억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지난 2019년 여름엔 시화 방조제에서 시속 무려 200을 넘게 밟으며 질주하던 어느 오토바이가..
저 앞에서 2차로로 쓰윽 변경을 하던 승용차와 부딪히는 바람에 운전자가 즉사하는 끔찍한 사고가 났었다.
그런데 그 사고 이후에 정말 엉뚱하게도 시화 방조제 도로에 시속 60 구간단속이 생겼었다고 한다.

미친 거 아냐..?? 도대체 오토바이 혼자 날뛰다가 뒤진 거랑.. 오토바이도 아니고 애꿎은 자동차들을 강제로 포복 단체기합 주는 게 무슨 상관인데..?? 나라의 교통행정이 이 따위로 멍청하고 저능하고 미개한 거다.
그리고 그 구간단속은 지역 주민들의 민원 때문에 도로 철거됐다. 차들이 빠릿빠릿 못 빠져나가서 정체가 너무 심해진다고 말이다.

그거 카메라 설치했다가 철거할 돈 있으면 그냥 나한테나 주지 제기랄..
난 구간 단속이랑 24시간 상시 어린이 보호구역 시속 30 단속이 너무 혐오스럽다. 내가 운전하던 시간대엔 전국의 모든 어린이 보호 구역에서 13세 이하 어린이가 거기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걸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2. 신호대기

세상에서 제일 무의미하고 쓸데없이 허무하게 낭비되는 시간은 바로 교통수단의 신호대기이다. 시간 낭비, 기름 낭비.
근데 인간이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생명체이다 보니 이걸 원천적으로 없앨 수는 없다. 없앨 수 없다면 그 시간을 누구든 그나마 최대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신호대기 중이라면 시내버스들이 중간 승하차를 조건부로 좀 허용해 줬으면 좋겠다. (짐 없고, 잽싸게 빨리 타고 내릴 수 있는 소수 인원 한정.. 하다못해 몇백 원 추가 운임을 받아서라도)
그 대신, 그때 발생하는 안전사고는 100% 전적으로 승객 책임. 기사에게 절대 책임 묻지 않는다는 걸 법으로 명시하고 말이다.
정류장에서 얼마 떨어지지도 않았구만 뻔히 승객을 태울 수 있는데 기사가 법 운운하면서 생까는 걸 보면.. 참 열받고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빌어먹을 신호대기 중이라면 운전기사가 간단히 개인 폰 카톡을 확인하거나 통화하는 것도 허용했으면 좋겠다.
그 대신 파란불 됐는데도 2초 안에 제때 출발 안 하거나 딴짓을 티가 나게 하는 게 적발되면 당연히 쎄게 징계.
나는 큰 자유, 큰 책임 신봉자다.

이런 게 잘 정착되려면 빨간불 남은 시간 초수를 신호등에 좀 표시해 주고, 신호등은 교차로 건너편에 설치했으면 좋겠다.
운전자가 아닌 보행자 입장에서도 차량 신호등은 건너편에 있는 게 "훨~씬" 낫다.
그래야 보행자도 차량들 신호를 파악하면서 내 횡단보도가 언제쯤 파란불이 될지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 횡단보도에다가 빨간불 남은 시간 표시를 해 주는 게 더 좋겠지만.

차들이 정지선 약간 좀 넘어와도 좋으니 나로서는 저런 정보가 더 필요하다.
도 넘게 침범한 차가 있으면 횡단보도 건너면서 차 툭툭 치고 쌍욕 좀 퍼부어 주고 건너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스트레스 해소 된다. 아니면 점잖게 신고해서 금융치료 때리던가. (차라리 욕만 먹고 뒤끝 없이 넘어가는 게 더 나을 거다! ㅋ)

좌회전 유도차로도 공간을 아주 효율적으로 쓰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인데.. 왜 없애고 난리인지 모르겠어..
자꾸 시동을 껏다 켜면 엔진에 무리가 가는지 아닌지 모르겠다만, 난 ISG 같은 장치도 찬성 지지 소신이다. 쓸데없는 신호대기 때 소모되는 기름은 단 100cc라도 아깝다.
나 좀 강박관념이 심한 건가~~??^^

3. 유령 정체는 사회적 낭비이자 사회악

고속도로에는 악명 높은 상습 정체 구간이 있다.
교통량 대비 차로가 부족하고 길이 좁다던가, 전방에 차량들의 대규모 분기· 합류가 발생한다면 뭐 어쩔 수 없다.
공사나 사고· 고장 차량 때문에 차로가 줄어들어서 막히는 거면.. 그것도 뭐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막힐 이유가 전혀 없는데.. 갑자기 차들이 속도를 줄이면서 지체· 서행· 정체되는 구간이 있다. 터널을 앞두고 꼭 그런 경향이 있더라.

아무 이유 없이 막히다가 터널만 통과하고 나면 거짓말같이 소통이 다시 원활해지는 거.. 특히 오르막 터널 말이다.
천안-논산 고속도로 차령 터널. (남풍세-정안 사이)
중앙 고속도로 다부 터널 부근.

이건 착각이나 기분 탓이 아니며, 교통공학적으로 원인이 다 규명돼 있다.
터널 앞에서 유령 정체가 제발 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요즘 도로공사에서 2차 사고 방지를 위한 국민 아이디어 공모전을 하던데.. 그것보다도 유령 정체를 없애고, 색출하거나 예방하는 방법을 스마트하게 좀 찾아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요즘은 그렇잖아도 고속도로에 터널과 교량이 많이 그것도 길게 만들어지는 추세이다.
그 긴 구간들을 쓸데없이 실선으로 만들지 말고, 차로 변경과 추월을 좀 자유롭게 허용했으면 좋겠다.
아니면 진짜로 1차로에서 천천히 가는 인간들 단속도 하면서 저것도 같이 단속해야 형평성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환경이 후손으로부터 빌려 쓰는 공간이라면, 도로는 뒷차 운전자로부터 빌려 쓰는 공간이다. 내가 쓸데없이 밟는 브레이크가 뒷차에게 큰 민폐와 도로 정체를 야기할 수 있다. 마치 연쇄적인 내리갈굼처럼 말이다. 이에 대한 경각심이 전국적으로 좀 형성돼야 한다.

4. 우회전 사망 사고

정말 잊을 법하면 맨날 우회전 중에 차와 보행자가 부딪혀서 보행자가 죽었다는 소식이 보도되곤 한다.
보도 자료에 따르면 우회전 사망 사고에서 대형차가 차지하는 비율이 36%라고 하는데.. 엥, 겨우 36%밖에 안 돼? 레알?

그런 멍청한 사고는 그냥 십중팔구, 90% 이상은, 사실상 몽땅 대형 트럭이나 버스만 내는 거 아님? (트럭 기준 4.5톤 이상, 에어 브레이크가 장착되는 정도의 크기)
내가 지난 6개월 동안 뉴스로 봤던 우회전 사망 사고 뉴스 보도는 전부 대형차였는데?
승용차 레벨에서는 우회전 사고를 내는 게 더 어려울 거 같은데. 안 믿어진다.;;

난 솔직히 말해서.. 우회전 직후에(직진 말고) 나오는 파란불 횡단보도에서.. 주변에 건너는 사람이라고는 코빼기도 없는데도 파란불 끝날 때까지 멀뚱멀뚱 멍청하게 서 있는 앞차 때문에 짜증난 적이 더 많았는걸 말이다.
그런 횡단보도 앞에서는 일시정지 했다가.. 주변에 보행자가 없으면 그냥 가면 된다!

언론에서 대한민국 운전자들이 우회전을 비보호로 안전하게 할 능력조차 없는 저능아 멍청이 빙신 쪼다로 몽땅 매도해서 저기까지 일일이 다 적록 신호등 설치하는 쪽으로 몰아가고 있으니 내가 숨이 다 막힌다.

5. 나머지

(1) 고속도로를 처음에 4차로로 만드냐 6~8차로로 만드느냐 하는 게 전철 운행을 4량으로 하냐 6~8량으로 하냐 하는 것과 아주 비슷하게 느껴진다.
분당선이 처음에 10량 기준으로 건설됐다가 지금은 끽해야 8량(역 시설) 내지 6량(현재 전동차 편성)만 쓰는 건 컴터에서 80비트 부동소수점이 현실적으로 쓰이지 않고 최대 64비트만 쓰이게 된 것과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2) 고기집에서 손님이 직접 고기 뒤집고 굽는 건 수동 변속-_-이고, 그걸 직원이 다 알아서 해 주는 건 자동 변속기 차량 같다. 후자는 인건비가 추가되어서 고기값이 더 비싸다. =_=;;;

(3) 2000년대부터 운전 중에 DMB 보다가, 혹은 휴대폰 통화하다가 부주의로 사고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건 좀 냉정하게 보면 음주운전 사고와 비슷하다.
요즘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건.. 고속도로에서 크루즈만 믿고 정신줄 놓고 있다가 정체 구간에서 앞차를 들이받는 거다. 이건 그냥 졸음운전 사고와 하나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4) 운행 중인 교통수단을 실행 중인 컴퓨터 프로그램 프로세스에다가 비유하자면..
블랙박스를 장착하는 건 디버그 정보를 추가해서 빌드· 실행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고가 나는 건 일종의 예외 상황이라 하겠다. 급발진은 SUAException 같은..

(5) 난 대한민국 땅에서 남자로 태어나서 토익 900과, 시속 200을 못 넘어 본 게 한이다...;;; 둘 다 비슷하게 근접만 해 봤을 뿐 저 리미트를 넘어 보지는 못했다.
영어는 듣기가 도저히 안 되니 지금보다 점수를 더 올리지는 못할 것이고, 스피드도 안전이나 차 성능 문제가 아니라 이놈의 과잉 단속 때문에 도저히 제대로 밟기 어렵다.

Posted by 사무엘

2024/09/21 08:35 2024/09/2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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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호박 농사 근황

8월이 가고 9월이 됐지만 날씨가 여전히 너무 덥다. 낮 최고 기온이 30도 아래로 내려갈 생각을 않는다.
그나마 열대야가 없어졌고 밤과 새벽에 약간 시원해진 것이 일말의 다행스러운 점이다. 그래도 밤에 집에서 에어컨을 틀어야 하는 건 여전하다.
이 와중에 오늘은 호박 농사 소식을 오랜만에 전하도록 하겠다.

지난 7월 말에 암꽃이 여러 송이 연달아 핀 덕분에 8호 이후로도 9호와 10호가 맺혔다. 그리고 내가 직접 수분을 못 했는데 고맙게도 11호가 자연수분으로 추가로 맺혔다~!!

하지만 경사는 여기까지였다. 8월 초의 이 아이들 이후로는 이 호박에서 암꽃이 지금까지 한 달이 넘게 전혀 피지 않았다.
아니, 수꽃도 피는 게 갈수록 뜸해지고 꽃을 구경하기 힘들어졌다.
흐음~ 물은 1~2일 간격으로 충분히 주는 편이었고 이따금씩 비료도 줬는데.. 얘들도 더위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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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8월 11일까지만 해도 이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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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두 주쯤 뒤의 모습이다.
막 대놓고 시들고 죽어가는 건 아니지만, 기세나 생명력이 좀 깎인 것 같다.
무엇보다도 요즘은 잎들에서 호박잎의 상징인 허연 힘줄 줄무늬가 눈에 거의 띄지 않는다. 뭐가 문제인 걸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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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이미 소개됐던 8호는 8월 초 당시부터 색깔이 서서히 누래져 갔다.
주름 없는 동글동글한 모양으로 잘 자랐고 8월 중순 언제쯤엔가 땄다.
8호를 키우던 덩굴은 기력이 다했는지,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팍 죽어 버렸다. 8호를 배출해 낸 덩굴에게 묵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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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땄던 호박 1,2,3호에다가 8호를 같이 늘어놓은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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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는 지난번 글에서 갓 수분 성공한 초기 모습만 소개됐었는데, 그때 이후로 이렇게 동글동글한 민무늬 모양으로 잘 자라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주 남짓 뒤에는 이렇게 사과나 배 같은 모양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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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신비로운 건.. 10호였다. 처음에는 9호와 비슷한 동글동글한 모양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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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거랑 저게 같은 호박이라는 게 믿어지는가?
8월 4일 다음으로 8월 10일. 개인 사정 때문에 엿새 가까이 현장을 모니터링하지 못하고 있던 사이에.. 이 아이는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바뀌어 버렸다!
비슷한 시기에 수분된 9호와 10호가 외형이 이렇게 서로 극과 극으로 달라지다니..! 변화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지 못해서 몹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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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본인이 올해 얻은 호박들 중에서 제일.. 맷돌호박의 FM에 충실한 모양인 것 같다..!!
동글동글하고 납작하고 쭈글쭈글
하고.. 너무 예쁘지 않은가?
심지어 나중에 따 보니 부피 대비 무게(밀도)도 제법 나가고 단단하고 묵직했다.
비록 크기는 이전의 1호, 2호보다 작지만. 정말 역대급 초우량 호박이 배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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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막내 11호는 8월 10일인데 아직 꽃잎이 붙어 있을 정도이니 제일 늦둥이이긴 하다.
쟤는 1주일쯤 뒤에 저렇게 바뀌었다. 주름이나 무늬는 적당히 이전의 1호나 2호와 비슷한 외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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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5일에 9호, 10호, 11호를 모두 땄다. 9호는 훨씬 더 늦게 맺힌 11호보다도 크기가 작고 색깔이 허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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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3호와 8~11호를 모두 한자리에 늘어놓아 보았다. 이때는 8월 31일.
4~7호들은 애호박 상태로 일찍 따서 먹었기 때문에 없다. (4호와 7호는 더 자라지 않고 낙과, 5호는 상처 부위 때문에, 6호는 가지 정리하다가 실수로 따서)

25일 이후 1주일 남짓한 시간 동안 10호는 짙은 초록색 기운이 더 빠지고 더 누래진 것을 알 수 있다. 8호는 두 말할 나위도 없고.. ^^
제일 고참인 1호와 2호는 이미 진작에 초록색이 완전히 없어져서 늙은 호박으로 바뀌었다.
이 아이들을 보면 그저 기쁘고 흐뭇할 따름이다. 호박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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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삼아 1호를 드디어 도축해서 호박전을 만들어 먹었다. 과육은 상태가 양호하고 아주 맛있었다.
수분되고 나서 겨우 3주 남짓한 시간 만에 땄지만 속에 씨가 제법 맺혀 있었고, 심지어 한두 개는 열매 안에서 싹이 터 버려서 콩나물로 바뀌어 있기도 했다.
이제 호박을 분해하는 일에 고맙게도 본인의 여친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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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이 새순과 함께 암꽃을 만들려고 노력은 하는 것 같은데 그 시도가 과연 얼마나 성공할까?

10월쯤 돼서 계절이 완전히 바뀌고 날씨가 추워지면 호박들이 자기가 죽을 때가 된 걸 알고 경쟁적으로 몸을 짜내서 암꽃을 피우기는 한다. 그때쯤에라도 얘들이 암꽃을 좀 피웠으면 좋겠다.
튼실한 열매가 하나 맺히면 얘들은 상자째로 실내로 옮겨서라도 11월 이후까지 계속 키울 테니 말이다.

다음 농사 소식글에서는 부디 12호, 13호 소개가 올라왔으면 좋겠다. 참, 여기서 일일이 언급은 안하지만 호박뿐만 아니라 대파와 깻잎도 약간 수확해서 잘 먹곤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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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농사 얘기는 이 정도면 된 것 같고..
바야흐로 9월이니 이제 가락시장에서 올해 수확된 늙은 호박을 볼 수 있게 됐다. (사실 거의 8월 중순쯤부터 볼 수 있음)
물론 이런 호박을 동네 채소 가게나 할인마트에서도 보려면 10~11월 정도는 돼야 할 것이다.

시장에서 사 온 호박에 비해 내가 직접 키운 호박은 크기가 참.. 장난감 수준이다.
어떡하면 저렇게 큰 호박을 만들 수 있을까? 나도 저렇게 키워 보고 싶다.

가락시장을 돌아다녀 보면 엄청나게 큰 호박들도 볼 수 있는데, 그건 대체로 판매 중인 상태가 아니다.
열려 있는 가게에 진열된 게 아니라, 문 닫은 가게나 공터에 대충 쌓여 있는 편이다.
그런 호박들은 판매 준비 중인 건지, 아니면 일반 소비자가 아니라 호박을 대량으로 가공하는 다른 업체에다 납품하는 건지.. 모르겠다.
늙은호박은 애호박이나 단호박과는 다른 그 무언가인 듯하다.

Posted by 사무엘

2024/09/18 08:35 2024/09/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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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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