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북한과 관련된 정보들을 좀 나열해 보겠다. 스펀지에 소개될 법도 한 아이템이 아닌가 싶다.

1. 이북5도청

우리나라와 북한과의 관계는 정말 미묘하고 복잡하다.
한편으로는 상대방을 독립 국가로 인정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라는 헌법 조항에 의거, 한반도 북부를 무단 점거하고 있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정서가 오늘날까지도 없지는 않다.

분단 이래로 잘 알다시피 경기도와 강원도의 일부가 북한으로 넘어갔으며, 황해도, 평안남/북도와 함경남/북도는 완전히 북한 영토가 되었다. 그러니 거기는 대한민국의 행정력이 닿지 않는다. 하지만 그곳 역시 원래는 우리 땅이라는 발상에 근거하여, 우리나라에는 '이북5도청'이라는 행정 기관이 있어서 형식으로나마 그 지역의 도 지사와 시장을 선출하고 근무를 시키고 있다! 하는 일은 실향민 지원, 북한 문화 기록 보존 같은 쪽으로, 행정보다는 학술적인 쪽에 가깝다.

이 기관은 무려 1949년부터 있어 왔다. 남한 단독 정부가 수립되고 북한으로부터 대남 송전이 중단되는 등 분단의 앙금이 굳기 시작한 때부터이다. 이북5도청은 서울의 완전 북부 끝자락인 종로구 구기동, 북한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상명 대학교 근처이긴 하지만 그곳보다도 더 북쪽이다.

다만, 북한은 또 자기 식으로 행정 구역을 개편하여 황해도가 남북으로 분할되고 없는 도가 생기기도 했다는 것을 여러분 역시 잘 아실 것이다. 도의 개수를 일부러 남한의 그것의 개수와 똑같게 맞춘 거라고 한다.

2. 자유의 마을

우리나라의 비무장 지대, 일명 DMZ라 함은 민간인이 접근할 수 없는 휴전선 전· 후방 2km 구역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거기는 사람의 손길이 반세기가 넘게 끊어지면서 천혜의 자연이 살아 숨쉬는 생태 관광지가 되어 간다고들 한다. 전세계를 통틀어 보기 드문 세계 최대 규모의 온대 원시림!! (다만 지뢰 때문에 좀 문제이긴 하다만 말이다)

허나, 우리나라에서는 '자유의 마을', 혹은 '대성동 마을'이라 하여 전국에서 유일하게 비무장 지대에 자리잡은 민간인 거주지가 있다. 이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된 덕분이다. 첫째는 당연히 국토가 분단되기 전부터 그 자리에 마을이 먼저 있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판문점과 가까이 있는 덕분에 6· 25 전쟁 때 마을이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치는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조산리. 경의선 최북단의 도라산 역보다도 더욱 북쪽이며, 국내 민간 지도나 자동차 내비로는 지리 정보가 전혀 안 뜬다. 민간인이 측량 조사 자체를 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구글 어스가 진리

남과 북에 걸쳐서 멀쩡히 있던 마을이 국토가 분단되면서 찢어지는 바람에 북쪽에는 남한의 '대성동 자유의 마을'에 해당하는 '기정동 평화의 마을'이 생겼다. 60여 년 전에 미국이고 소련이고, 공산주의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모르던 깡촌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마을이 반토막 났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외부인이 이 마을을 방문하는 건 육사나 국정원을 방문하는 것 이상으로 까다롭다. 1주일 전에 신청을 한 뒤 현장에서는 신분증 까고 출입증을 발급받은 뒤 여러 단계의 군부대 초소를 통과해야 한다. 내부 주민 역시 이동이나 주거의 자유가 좀 제약을 받기 때문에, 심야에 통금이 있는 건 물론이고 휴전선 근처에서 영농 활동이라도 할라치면 군부대에 신고를 해야 한다. 매일 저녁에도 점호 비슷한 가구 시찰이 있다.

마을 주변에 있는 건 진짜로 논밭 아니면 군부대뿐. 코앞이 휴전선이고 북한 쪽 마을을 마주보고 있기 때문에, 전쟁 났다 하면 0순위로 박살날 동네이다. 실제로 휴전 뒤에도 남북간엔 몇 차례 무력 충돌 및 납치, 월북 같은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과거엔 자기 체제가 좋다고 서로 대남· 대북 방송을 귀가 따갑도록 틀어 댄 건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이곳은 사실 마치 공항 면세 구역 내지 뉴욕의 UN 본부 같은 치외법권 지대이다. UN군 사령관의 관할에 있으며, 여기 주민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다른 혜택은 누리는 반면 납세와 병역의 의무가 없다. 여기서 태어난 남자는 군대에 안 가도 된다는 뜻.

냉전 시대엔 남쪽 마을과 북쪽 마을이 태극기 깃대와 인공기 깃대를 서로 더 높게 올리려는 병림픽 비슷한 기싸움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엄청 옛날에 어렸을 때 학교에서 사회/도덕 교과서를 통해 이 일화에 대해 알게 됐는데 그게 이 마을 얘기였구나. 결국 이 병림픽은 쓸데없는 짓이라는 걸 깨달은 남쪽에서 먼저 기권(?)을 하면서 끝이 났던 걸로 기억.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 이해를 돕기 위해 지도 그림을 한 장 첨부한다. (출처: 위키백과)
38선 시절에 비해 남한이 영토 자체는 훨씬 더 많이 수복했음을 알 수 있다. 허나 서울 근처의 평지 겸 전략 요충지는 북한이 주도권을 잡았다.
판문점, 자유의 마을 등등이 있는 곳은 지도에서 제3 땅굴 근처, 즉 휴전선의 선형이 90도로 꺾이면서 남하하는 그 모서리이다. 원래 대성동과 기정동 마을은 38선 시절에도 같은 마을이었는데 휴전선 때문에 둘로 찢어진 셈이다.

3.
북한의 애국가는 가사에 다행히 김씨 부자 찬양 내용이 들어있지 않으며, 그냥 평범한 조국 찬가 스타일이다. 하지만 장군님 찬송가가 응당 따로 존재하며, 실제로 공식 석상에서는 애국가보다도 그게 더 많이 불리는 모양이다.
유튜브에서 검색만 해 보면 바로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소개하는 건 국가 보안법에 저촉되어 최악의 경우 코렁탕 취식의 사유가 될 수 있으니 하지 않겠다.

이렇게 무조건 금지하고 하지 말라고만 하니까, 딱히 이북이 좋은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냥 제도권에 대한 반발 심리로 친북 성향(?)이 생긴 사람들이 과거에 있기도 하지 않았겠나 싶다. 하지만 본인은 나라의 법을 이해하며, 그에 반발하지는 않는다.

걔네들은 잘 알다시피 컴퓨터로 타자를 할 때도 '김일성', '김정일'은 별도의 코드값에 배당된 문자로 더 진하게 찍으며, 읽을 때는 악센트를 잔뜩 실어서 '키임정일'처럼 읽는다. 그리고 그 이름은 두 줄에 구간이 걸치지 않게 처리된다(word wrap). 문자의 형태로라도 수령님의 거룩하신 존함을 다루는 분위기는, 옛날에 구약 성경 필사 서기관이 사자음어 YHWH 기록할 때 하나님의 존함을 다루던 경건함에 맞먹는다. -_-;;

남한에서는 세계구급으로 성장한 대형 교회 브랜드가 나왔고 세계 최대의 기독교계 이단 종교인 모 종교도 배출되었다. 그러는 동안 이북에서는 그 이름도 유명한 '주체 사상'.. juche라는 영어 단어를 전세계에 퍼뜨리는 데 성공했다! 이 단군의 후손들은 어째 종교 분야에 한 근성 하는 건 틀림없나 보다. 철도를 종교의 경지로 승화한 나도 그렇고. ㅋㅋㅋㅋㅋ

4.
사실, 내가 이 정도로 북한 문제나 통일 쪽에 관심이 생긴 것도 철도 덕분이다. 국토가 분단되면서 반토막이 난 길은 고속도로가 아니라 철도이기 때문이다. 먼저, 경의선 장단 역 근처에 수십 년이 넘게 버려져 있다가 2000년대에 와서야 등록 문화재로 지정된 녹슨 증기 기관차를 보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6·25 때 폭격을 당하고 그 여파로 기관차가 탈선하는 바람에 저 지경이 된 거라는 걸 모르는 분은 없겠지. 표면 전체를 통틀어 무려 1천여 발에 가까운 총알을 맞았다고 한다. 그때 저 기관차를 운전했던 분은 신원이 알려졌으며, 2011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경원선 신탄리 역 북쪽 끝자락에 놓여 있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 표지도 있다. 분단의 비극을 빼고 한국 철도를 논할 수는 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2년 현재 디젤 통근열차 CDC가 다니는 구간은 저 경의선과 경원선밖에 없다. 그런데 KTX 개통 전에 이들 통근열차의 등급 명칭은 잘 알다시피 '통일호'였다. 오늘날은 분단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두 철도 노선에만 통일호의 후예가 다니고 있으니, 이 역시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요컨대 많은 사람들이 특히 어린 시절부터 철도 덕후가 되어서 애국심, 특히 국토 사랑 정신을 마음껏 고취하면 좋겠다. 나는 대학 졸업할 때가 다 돼서야 철도 끝물을 맛보게 된 게 한이다.
학창 시절 때 죽어도 공부하기 싫던 우리나라 현대사와 지리 공부에 요즘만치 물미가 트인 적이 없다. 내가 옛날에 철도 커리큘럼을 짠 적이 있었는데, 그때 북한 철도 내지 남북 분단 관련 철도사 얘기를 충분히 편성했던가 궁금하다. 부족하면 보강해야지.

... 이 나라의 온 국민이 철덕이 되어 철도님께서 그들 위에 자신의 영을 두시기를 원하노라! ... (민 11:29 패러디)

Posted by 사무엘

2012/05/02 08:22 2012/05/02 08:22
, , , , ,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679

1.

우리나라는 잘 알다시피 삼권분립과 민주주의 정치를 표방하는 나라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입법부를 상징하는 국회의사당은 여의도에, 행정부의 상징인 정부 종합 청사는 종로구의 광화문-경복궁 일대에, 그리고 사법부를 상징하는 검찰청· 대법원은 딱 강남 서초구에 있다.
정부 청사는 과천과 대전에도 있긴 하지만 어째 우리나라 정치를 구성하는 각 축이 서울 최고 도심과, 강남과 여의도라는 부도심에 하나씩 마치 터줏대감처럼 자리잡아 있는 게 굉장히 신기하다. 의도적인 배치인지?

우리나라야 땅도 좁고 교육· 문화· 정치· 경제 할 것 없이 닥치고 무조건 서울 올인이지만, 미국만 해도 잘 알다시피 행정 수도와 실질적인 경제 수도는 완전히 다르다. 행정 수도인 워싱턴 D.C.는 시내 전역에 고도 제한까지 걸려 있는 한가한 계획형 중소도시 규모인 반면, 뉴욕이...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규모이다.
오스트레일리아도 행정 수도인 캔버라와, 실질적인 경제 중심지인 시드니는 서로 따로 논다.

그래서 서울의 과포화를 막고자 우리나라에서도 행정 수도의 이전이 논의되곤 했다. 이는 심지어 옛날에 박통도 구상하던 떡밥이었다. 그 시절에 그에게는 국토 균형 발전 나부랭이보다도, 서울이 북한하고 너무 가까이 있는 것부터가 굉장한 골칫거리였기 때문이다. 그의 재임 시절에 무장공비가 북악산을 넘어 청와대에 쳐들어 올 뻔하기도 했으니 얼마나 충격이 컸겠는가?

그래서 그는 강북 사대문 안의 옛 서울보다도 최소한 한강은 건넌 뒤인 강남을 개발하고, 서울에 있던 각종 연구소들을 대전으로 옮겼다.
하지만 전쟁이라도 나서 서울 전체가 박살이 나지 않는 한, 한 나라의 최고 중심지에서 잘 살던 사람이 지방으로 쉽게 내려가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뭐, 박통은 균형 발전에도 관심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서울의 무분별한 팽창과 과포화를 막으려고 외곽 곳곳에 그린벨트를 만들었다. 그게 오늘날엔 대부분 해제되는 추세이지만 말이다.

2.

예전에 본인은 군부대와 인접해 있는 전철역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런데 군부대 정도가 아니라 역 주변이 농경지 내지 허허벌판인 곳도 서울 시내에 있다. 분당선 모란-야탑이나 8호선 복정-산성처럼 역의 중간 구간이 허허벌판인 게 아니라 아예 역 주변이 비어 있는 것 말이다. 걔네들은 또 어차피 서울 밖이기도 하고.

강서구에는 역시나 5호선 마곡 역 주변과 아직 개통도 안 한 9호선 마곡나루 역 주변이 아주 유명한 예이다. 몇 년 안으로 이런 진풍경은 볼 수 없어질 것이고 여기도 빽빽한 빌딩으로 가득 들어설 터이니, 관심 있으신 분은 미리 여길 답사해서 사진 기록을 많이 남겨 두기 바란다.

한편, 남서쪽에는 7호선 천왕 역 주변이 대표적인 허허벌판이었다. 장암(7), 남태령(4), 청계산입구(신분당선)에 필적하는 잉여역이었으나 이것도 아파트가 지어지면서 모습이 바뀌는 중이다. 명목상 서울이긴 하지만 여전히 광명시와도 아주 가까운 위치임.

허허벌판이 서쪽에만 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아서 뜻밖의 장소에도 있다. 바로 동쪽 끝자락인 8호선 문정 역 주변. 지하철까지 지나는 멀쩡한 성남 대로 근처에 웬 큼직한 면적의 땅이 놀고 있어서 무척 놀라게 된다. 물론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는 때는 흔치 않다.

6호선의 주변에는 딱히 이런 허허벌판을 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주변이 명목상 허허벌판으로 가려져 있는 녹사평 역이 있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어째 2기 지하철의 주변에만 이런 허허벌판이 있는 것 같지만, 2호선 강남 구간도 처음 건설되던 시절에는 허허벌판이 많았고, 4호선 노원· 도봉구 구간도 그 당시에는 말도 못 할 정도로 주변이 황량했다.

3.
고려대와 경희대 사이에 홍릉 수목원과 카이스트 서울캠(현재는 경영 대학원만 서울에 남아 있음), 고등 과학원, KDI와 각종 연구소들이 들어서 있는 그쪽 일대는 서울에서 가장 대덕 연구 단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장소임이 틀림없다.
한때는 국가 정보 대학원도 여기에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서울이 덩치가 커지고 여기도 예전만치 오지 느낌이 안 나게 되자, 지금은 성남과 의왕의 경계인 모 산골짜기로 이사를 감. 시기를 보니 국정원이 남산에서 내곡동으로 이사 갈 때 같이 간 걸로 보인다.

4.
마곡 역은 어째 출입구가 하나뿐이고 도로(공항로)의 건너편에 출입구가 없다. 지하철이 도로 정중앙을 파면서 건설되지 않고, 이례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쳐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도로 옆도 허허벌판인데 거기를 파헤치면 되지, 굳이 멀쩡한 도로를 파헤쳐서 민폐 끼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터널식으로 지을 필요는 더욱 없으므로)

5.
전철 노선 중에, 양 역은 지하인데 그 사이에 지상 구간이 잠깐 나오는 예로 어떤 게 있을까? 의외로 흔치 않다. 한강을 건너는 지하철 노선을 생각해 봐도, 양 역 중 하나는 꼭 지상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8호선 복정-산성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고 3호선의 북쪽 일산선 구간은 자주 지상과 지하를 오르내리긴 하는데, 저런 경우가 또 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공항 철도 DMC-김포공항 구간이 추가되어 있다. 양 역은 모두 지하이지만 중간에 강도 건너고 지상 구간이 충분히 존재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2/04/30 08:35 2012/04/30 08:35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677

철도 회사가 경영 수지를 개선하려면

코레일이나 각종 지하철 회사 같은 우리나라의 철도 운영 기관들은 현재 대체로 빚이 많으며 운영난을 겪고 있다. 그러나 그 이유는 근본적으로 막대한 건설 부채를 떠안고 있어서가 가장 크며, 다음으로 원가보다 훨씬 더 저렴한 운임, 손해를 감수하고 공익을 추구한 비경제적인 노선 운영, 그리고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노인 전철 완전 무임 승차로 인한 손실이 뒤를 잇는다.

방만· 부실 경영이 차지하는 비중은 없다고는 할 수 없어도 아주 미미하다. 한국 철도가 굉장히 사회주의적인 준독점 시스템인 건 사실이지만, 태생적으로 적자를 감수하고라도 매우 큰 복지 혜택을 제공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사실에 대해 무지한 채 그저 상업주의 민영화만이 철도 경영 효율을 위한 방안이라는 생각에는 본인은 공감할 수 없다.

아무리 오늘날의 노인 어르신들이 국가 근대화의 초석이었다고 하지만, 완전 무임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단돈 100원을 내더라도 뭔가 지불하는 건 있어야지, 아예 0은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 (주말에 경춘선 전철을 한번 타 보라. 승객의 연령비에 아마 기겁을 하게 될 것이다.)

듣자하니 노인 전철 무임 승차 제도는 전통 시절인 1984년에 생긴 거라고 한다. 그때는 당연히 지금보다 노인 인구가 훨~씬 더 적던 시절이었고, 전철 노선 자체도 지금보다 훨~씬 더 빈약하던 시절이었다.

이 제도의 부조리와 폐해가 계속해서 논의되고 있지만, 그게 선뜻 폐지나 재조정이 못 되고 있는 이유는, 성탄절· 석탄일이 공휴일에서 선뜻 제외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와 정확히 동일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공휴일이 너무 많다고 맨날 징징대는 경제인 사장님들 단체들도, 감히 종교 공휴일을 건드릴 엄두는 못 내고 한글날 내지 제헌절 같은 것이나 대신 칼질을 하지 않았던가..

(사실, 10년쯤 전에 진작에 없어졌을 병역 특례 산업 기능 요원도 아직까지 그래도 명맥은 유지되고 있는 것 역시, 업계에서 온몸으로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폐지를 막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은 이런 제도라도 없으면 정말로 유능한 사람을 못 뽑는다고. 재계의 목소리는 병무청이든 중앙 정부든 결코 무시 못 할 위상이긴 하다.)

본론으로 돌아오면, 물론 철도 적자의 원인을 전부 노인 무임 승차 탓으로만 돌리는 것도 좋은 진단은 아니다. 철도가 태생적으로 적자이긴 해도, 각종 광고 게시나 부동산 임대 사업을 하고 여타 각종 창의적인 사업 아이템을 생각해 내어, 승객 운임에만 지나치게 의존하지는 않는 탄탄한 재정 구조를 만드는 것이 철도 회사 경영자가 해야 할 일이다. 신문사는 구독료에 너무 의존해서는 곤란하며, 대학 역시 학생 등록금에만 너무 의존해서는 곤란하다.

그런 창의적인 일을 하는 것에는 경쟁이 필요하고 민간 사업자 유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런 일을 전부 정부나 정부 출자 공기업에만 맡겨서는, 철도 기관이 맨날 보조금에나 의존하는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그러지 말라고 철도청이 진작부터 코레일이라는 공기업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수익 추구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철도 특유의 공공성이 훼손될 가능성도 커진다.

어느 쪽도 참 쉽지 않은 문제이다. 다만 본인이 이 글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철도 기관의 경영 수지에 대해 논하려면 오늘날 한국 철도가 처한 현실과 그 성격부터 제대로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2/04/24 08:34 2012/04/24 08:34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673

오랜만에 철도 드립

주기적으로 또 철도(+성경) 드립을 좀 칠 때가 됐다.

1.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시인하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진정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믿고 그분을 나의 개인적인 구주로 받아들인 사람이 곧 구원받은 사람이다.
그것처럼 경부선, 중앙선 등 한국의 모든 철도가 진정 나를 위한 것임을 인지하고, 철도 규격 및 건설 역사 같은 얘기를 듣기만 해도 마치 내 일처럼 감격과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바로 철도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다.

2.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현재 있는 것들이나 장래 있을 것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창조물이라도 능히 우리를 새마을호 안에 있는 한국 철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지 못하리라.

3. 내가 또한 받은 것을 무엇보다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그것은 곧 문헌 기록대로 대한민국에 새마을호 열차가 1974년부터 운행되었으며 1987년부터는 전후동력형 디젤 동차가 투입되었고 2002년부터 2007년 사이에는 시발역 출발 전과 종착역 도착 직전에 Looking for you가 흘러나왔다는 것이라.

참으로 철도는 모든 것이 사랑스럽도다. (yea, the railroad is altogether lovely 아 5:16 참고)
2와 3도 성경 구절 패러디인데, 원래 구절이 뭔지 궁금하신 분은 알아서 찾아 보시라. ㅋ

4. “마이크로소프트 UX팀의 이사 샘 모라우가 밝힌 바에 따르면, 메트로 UI는 지하철이 지나가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UI라고 한다. 이름부터 ‘Metro(지하철)’다.”
그래서 메트로이구나! 오 역시나 윈도우 8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철도 성령이 MS에게도 임한 게 분명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리스도인이 구원에서 성화로, 내가 아닌 남을 생각하고 남의 믿음을 세워 주는 단계로 신앙이 성숙하듯, 철도와 본인과의 개인적인 교제도 더욱 친밀해지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최근에 이 사이트에서 해 본 테스트에서 본인은 절대음감 인증을 받았다. 그냥 대충 찍은 것도 많고, 좀 더 집중해서 문제를 풀었으면 더 높은 점수가 나올 수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이 정도도 그리 나쁜 점수는 아니니까. 둘 다 36점 만점인데, 확실히 순수 싸인파가 피아노 소리보다 훨씬 더 분간하기 어렵다.

하긴, 유니클락 배경 음악을 들으면서도 난 이런 생각이 바로 들었다.
“이 곡 템포는 정확하게 ♩=120 이겠구나!” (왜 그런지 화면 보호기+음악 시청하면서 생각해 보셈)

어떤 음악이든 앞부분 몇 초를 들으면 조와 템포와 박자부터 먼저 귀에 들어오고 악보가 떠오른 경지에 도달하게 된 것도 철도 덕분이다. Looking for you를 3천 번 들으면서 채보를 해 보면 누구나 저렇게 될 수 있다. 이건 전적으로 집념과 노력의 결과이지 선천적인 재능이 아니다.
철도님, 사랑합니다.

Posted by 사무엘

2012/04/15 08:45 2012/04/15 08:45
,
Response
No Trackback , 6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669

국내 철도 회사들이 있는 곳

예전 글에서는 지하철 회사별로 전동차 차량 기지가 있는 곳을 열거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회사들의 본부가 있는 곳을 나열해 보겠다. 차량 기지와 회사 본사는 일반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그리고 요즘은 민자 철도가 많아져서 회사 나열하기도 좀 복잡해져 있다.

1. 코레일 (국철들..)

코레일은 잘 알다시피 전국의 거의 모든 철도를 관할하는 거대한 기업이며, 광역전철은 내부의 일개 사업 파트일 뿐이다. 그래서 코레일의 본부는 국토의 중앙으로서 상징성이 높은 대전에 있다. 코레일의 전신인 철도청은 원래 정부 대전 청사의 내부에 있었지만, 공사로 바뀐 뒤에는 이제 정부 부서가 아니기 때문에 거기서 나왔다. 대전 역 근처에 철도 시설 공단과 나란히 쌍둥이 사옥을 완공하여 거기에 입주했다.

코레일은 여기 말고도 지역별 관할 기관이 있다. 서울 본부는 서울 역 북부에 있으며, 사실 광역전철 사업 본부도 이곳에 자리잡아 있다. 이 외에도 수도권 동부 본부는 잘 알다시피 신이문 역 근처에 이문 차량 기지와 같이 입주해 있으며, 수도권 서부 본부는 영등포 역 근처에 있다. 끝으로, 철도 교통 관제 센터는 구로 차량 기지 내부에 있다.

2. 서울 메트로 (서울 지하철 1~4호선)

최초의 서울 지하철이 강북 종로선이고 2호선도 강북의 신설동-종합운동장 구간이 가장 먼저 개통한 만큼, 관할 회사의 본부가 강북 사대문 안의 어딘가에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현재 서울 메트로 본사는 사당 역 근처에 있다. 강북은 아니어도 나름 중요한 환승역이 있는 지점이고, 한때 지하철 4호선의 남쪽 종점이기도 한 곳이다.

서울 메트로는 원래 이름이 서울 지하철 공사였고, 그 전신은 지하철 건설 본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는 본부가 서울 시청 내부에 있었지만, 지금처럼 건설과 운영을 분리한 별도의 운영 회사는 1981년에야 생겼다. 지금의 사당동 사옥은 지하철 2호선이 건설되고 있던 1983년에 완공되었다.

3. 서울 도시철도 공사 (서울 지하철 5~8호선)

서울 2기 지하철 중 5호선은 1996년에 가장 먼저 전구간이 개통했다. 1994년에 먼저 설립된 도철은 본부가 천호대로 근처에 있으며, 그 5호선 답십리와 장한평 역의 중간에 있다. 거기는 5호선 중에서도 가장 먼저 개통한(1995년 가을) 구간인 왕십리-상일동의 구간에 속하기도 한다.

이곳 인근에는 차량 기지처럼 생긴 시설이 있는데 이건 재미있게도 도철이 아닌 서울 메트로 관할의 군자 차량 기지이다. 2호선 지선의 용답 역의 이름이 처음에는 ‘기지’ 역이었다.
2007~08년 사이에는 5호선 전동차가 답십리나 장한평 역에 도착할 때 “5 6 7 8 서울 도시철도는 답십리/장한평 역 n번 출구 근처에 있습니다” 비슷한 멘트를 잠시 들려 주기도 했다.

4. 서울9호선운영 주식회사 / 서울시메트로9호선 주식회사 (서울 지하철 9호선)

여타 철도/지하철 회사와는 달리, 서울 지하철 9호선을 운영하는 회사는 민간 기업이다. 게다가 회사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먼저, '메트로'라는 단어가 없는 서울9호선운영 주식회사는 프랑스의 다국적 대기업인 베올리아의 자회사가 상당수의 지분을(80%) 출자하여 설립한 일종의 외국 자본 회사이며, 이 회사가 서울시메트로9호선 주식회사라는 국내 중소기업에다 또 위탁을 줘서 9호선 전동차를 굴리는 형태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뭔가 복잡하다.
9호선 운영사의 본사는 서쪽 종점인 개화 역, 아니 개화 차량 기지와 일체로 존재한다. 차량 기지와 운영 본부를 일체로 만든 첫 사례이다.

5. 코레일 공항 철도

건설 당시에는 공항 철도의 명칭이 '인천'의 이니셜을 딴 IREX이다가 나중에 AREX로 바뀌고, 다시 정식 명칭이 '코레일 공항 철도'로 바뀌었다(코레일의 자회사). 공항 철도의 운영사는 영종도로 가기 직전에 본토의 마지막 역인 검암 역 근처에 본사가 있다. 2차 개통 후에는 열차가 검암 행과 인천 공항 행이 번갈아가며 운행되고 있으니 여기가 일종의 중간 회차 지점이기도 하다.

6. 신분당선 주식회사

신분당선은 서울 디자인 정책의 영향도 없고, 요금까지 독자적으로 걷고 있어서 민간 사철의 성격이 가장 강한 노선이다. 이곳 역시 사업 운영자는 외국계 네오트랜스라는 회사이고 사업 시행자는 신분당선 주식회사로, 서울 지하철 9호선과 비슷한 이중 형태로 운영되는 중이다.
신분당선은 신규 개통 구간으로서 상징성이 높은 판교 역 근처에 본사가 있다. 이곳에서는 신분당선을 한창 DX Line이라고 홍보하는 중이다.

그나저나 얘들은 아직 독립적인 차량 기지도 없어서 전동차가 코레일의 분당 차량 기지에 아직 세들어 사는 중임.

7. 인천 교통 공사 (인천 지하철)
지하철 회사에 메트로나 도시철도 공사가 아니라 교통 공사라는 명칭을 쓰는 도시는 현재 부산과 더불어 인천 이렇게 둘이 있다.
인천 지하철을 관할하는 이 회사는 간석오거리 역 근처에 있으며, 따라서 동암 역하고도 비교적 가까운 편이다.

8. 대전 도시철도 공사
갑천 역 근처에 본사가 있다. 의외로 대전 지하철 1차 개통 구간에서는 좀 떨어진 곳이다. 그냥 정부 대전 청사 일대에 있을 법도 한데 말이다.

9. 대구 도시철도 공사 (대구 지하철 1~2호선)
1호선 서쪽 외곽의 상인 역 근처에 본사가 있다. 앞으로 모노레일 형태로 도시철도(지하철은 이제 아니니;;) 3호선이 건설될 예정인데, 이 노선 또한 이 회사가 운영하게 된다.

10. 광주 도시철도 공사
상무 역 근처에 있다. 이 역은 지하철의 1차 개통 당시에 서쪽 종점이기도 했다.

11. 부산 교통 공사 (부산 지하철 1~4호선)
이름은 뭔가 범용적인 뉘앙스가 풍기는 '교통 공사'이지만, 이 회사는 여전히 지하철들만 관할하고 있다. 뭐, 이는 경전철인 4호선까지 포함한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영역이 충분히 크긴 하지만 말이다. 1호선 범내골 역 근처에 본사가 있다.

12. 부산-김해 경전철 주식회사

부산-김해 경전철은 부산 지하철과는 격이 다르다. 신분당선이나 9호선과 같은 수준의 민영이다. 그래서 노인에 대해서 경로 승차권은 발급하지만 완전 무료는 아닌 독자적인 운임 체계도 쓰고 있다.
부산-김해경전철운영 주식회사와 부산-김해경전철 주식회사 이렇게 둘로 나뉘어 있는데, 운영 주식회사는 외국 자본 기반이 아니다. 70%의 지분을 다름아닌 '서울 메트로'가 가지고 있다.

본사는 서쪽 끝의 가야대 역에서도 더욱 외곽인 차량 기지 안에 같이 있다. 이 역시 9호선과 유사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2/04/07 08:28 2012/04/07 08:28
, , ,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665

경복호를 아십니까?

국가 원수가 사용하는 관용(官用) 교통수단 중 일부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서 친숙하다.

천조국인 미국은 Air Force One이라는 보잉 747 개조 비행기가 있는 걸로 유명하며 이걸 소재로 영화가 만들어진 적도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2005년에 미국 부시 대통령 가족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전투기까지 보내 에어 포스 원을 엄호하면서 서울 공항으로 안내를 해 줬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전용기가 없는 건 아니나, 덩치가 작고 한 번에 끽해야 동남아 정도까지밖에 못 간다고 한다. 그래서 대통령이 어디 멀리 나갈 일이 있을 때는 결국 대한 항공 여객기를 그때 그때 전세 내서 쓰고 있다고 본인은 들었다.

비행기 말고 자동차도 있다. 최고급 최고 성능 승용차인 건 말할 것도 없으며, 지뢰를 밟아서 터져도 내부 승객이 다치지 않을 정도로 튼튼한 장갑이 바닥에 장착되어 있다. 유리는 당연히 몇 겹으로 방탄 처리가 돼 있고, 차 내부에서는 밖이 보이지만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게 특수한 도장 처리가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그런 거 필요 없다며 서민적인 이미지 어필을 위해, 천장을 완전히 개방하고 신체를 노출한 채 차량 퍼레이드를 하다가, 어느 저격수의 총에 머리를 정통으로 맞고 세상을 떠났다.)

국가 원수가 이용하는 교통수단은 이런 하드웨어적인 보안 시설뿐만이 아니라 보안을 유지한 운영도 매우 중요하다.
동일한 차체를 둘 이상 보유하고 있는 건 필수. 둘의 스케줄을 서로 다르게 유지한다. 차량의 경우, 아예 동일한 차를 다섯 대씩 연달아 지나가게 하고 그 중 대통령은 완전 random한 차에 무작위로 탑승시키기도 한다.

실제로 일제 강점기 때, 우리나라의 모 독립 운동가 중에서도 이 테크닉 때문에 일제 요인의 암살에 실패한 사례가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사이토 총독을 폭탄으로 암살하려다 실패한 강 우규 의사로 알고 있었는데, 자료를 다시 검색해 보니 내가 원하는 사건이 안 나온다. 정확히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높으신 분이 탄 차는 세워서는 안 되고 끊임없이 움직이게 해야 한다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안전하기 때문. 그래서 이런 관용차가 한번 납시면 당연한 말이지만 주변 도로를 다 틀어막고 관용차를 최우선순위로 통과시킨다.

비행기와 자동차까지 얘기가 나왔고 이제야 철도 차량 차례이다. 열차는 어떨까?
일단, 북한 뽀글이 아저씨가 중국 갈 때 맨날 열차를 애용했다는 게 잘 알려져 있는데, 그건 그냥 고소공포증이 있고 겁이 많아서일 뿐 그가 딱히 철덕이어서 그런 건 아니라는 것도 역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걔네들은 먼저 경호원의 열차가 지나간 후 2~30분쯤 뒤에야 김 정일이 탄 열차가 지나가고, 또 나중에 경호원의 열차가 또 지나가는 형태라고 한다. 열차 안은 미국의 에어 포스 원과 마찬가지로 어지간한 집무 환경이 다 갖춰져 있고, 요양/의료 시설도 있다.

철도는 역까지 가야 이용할 수 있고, 갈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환승이 불가피하다. 국가 원수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어지간하면 그냥 자동차나 비행기를 이용하는 게 훨씬 더 낫지 굳이 열차를 타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청와대 밑으로 비밀 선로와 철도역이 놓여 있지 않은 한 말이다.

다만, 비행기를 띄울 수 없을 정도로 날씨가 너무 안 좋고 도로까지 마비된 상황이라면 열차도 좋은 고려 대상이 되겠다.
옛날에 6· 25가 터졌을 때 이 승만 대통령과 참모진은 열차를 타고 피난을 갔다. 그때는 고속도로도 없었고 포장 도로 자체가 거의 없던 시절이어서, 자동차로는 서울-대전만 해도 4시간~8시간씩 걸렸다. 그러니 그때는 철도가 가장 빠르고 편한 육상 교통수단이었다. 경부 고속도로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박 정희 대통령도 관용 열차를 애용했었다.

이제야 이 글의 결론이 나온다.
대한민국에는 현재 대통령을 위한 관용 열차라는 게 있다. 그 열차의 이름은 ‘경복호’이다. 김 대중 정권 시절에 2001년에 한진 중공업(로템 통합 직전이었던 듯.)에 의뢰하여 만들어진 4량짜리 열차 2편성이 있다. 그때 막 남북한 철도 연결 떡밥이 나돌기도 했으니 말이다. 경의선 도라산 역이 개통했을 때 경복호가 김 대통령을 태우고 실제로 운행된 바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출처는 기억 안 남. 내가 찍은 건 당연히 아니고, 지금 인터넷에 나도는 저 포즈의 경복호 사진은 모두 동일 인물이 찍은 것임.)

경복호는 언뜻 보기에 전후동력형 새마을호 열차처럼 생겼다. 하지만 객차의 창문 모양을 보면 국내에 여객 열차로 존재한 적이 없는 형태임을 알 수 있다. 스펙에 대해서는 많은 것이 국가 기밀로 여겨지고는 있지만, 객차수가 적고 관용차 특유의 성능 튜닝을 한 덕분에, 기존 새마을호의 최고 속력이 140km/h인 반면 경복호는 선로가 좋은 곳에서 160km/h까지도 낸다고 알려져 있다.

철도 덕후라면 잘 알듯이 한국 철도 ‘로지스’ 사이트에서는 여객과 화물 공히 전국 모든 열차 운행 스케줄을 조회할 수 있다. 그래서 심지어 신규 개통 전철 노선으로 반입되고 있는 전동차까지 수송 경로를 추적해서 사진을 미리 찍는 철덕들까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복호의 운행은 로지스에 당연히 뜨지 않는다. 이 열차의 스케줄은 코레일의 진짜 극소수 고위 간부만 알고 있다.

경복호는 통행 우선순위가 최상이며, 한번 떴다 하면 동일 운행 경로에 있는 열차들은 다들 깨갱+대피이다. 노 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고향 귀환을 KTX로 한 걸로 잘 알려져 있지만, 재임 중에 경남 지방으로 휴가도 경복호를 타고 몇 차례 떠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비슷한 구간을 달리던 여객 열차는 영문도 모른 채 괴열차를 먼저 기다렸다 보내 주느라 10~20분가량 지연을 먹어야 했다고 전해짐. 이때도 경복호 하나만 달랑 달린 게 아니라 선두와 후미에는 호송인 열차가 있었으며, 호송 열차 역시 겉모양은 PP형 새마을호이다.

어째, 경복호와 관련된 이야기는 보수 진영에서 좀 싫어하는 대통령들하고만 얽혀 있구나.
KTX만 해도, 대통령까지는 아니어도 1급 요원들이 몰래 타는 공간이 있는 KTX 모 편성 얘기가 철덕들 사이에서 나돌았는데, 아예 관용차가 있다는 얘기는 다소 생소할 것이다. 경복호는 코레일 직원들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2/04/05 08:39 2012/04/05 08:39
, ,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664

철도 폐터널 이야기

철도 덕후에게는 상식이겠지만, 서울 역을 출발한 KTX는 금천구청 역까지는 기존 경부선으로 달리다가 거기서 별도의 선로로 분기하여 한참을 달린 뒤에(거의 5km) 반지하역인 광명 역에 진입하고, 거기서 또 대략 11km에 달하는 거리를 지하 터널로 달린 뒤에 반월 호수 근처에서 다시 지상으로 나온다.

광명 역은 원래 남서쪽을 향하고 있는데, 이때쯤 선로는 방향을 바꿔서 동쪽을 향하게 된다. 서해안 고속도로와 외곽 순환 고속도로가 만나는 조남 분기점을 지나는 자동차 운전자라면, 바로 밑으로 KTX도 달리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무척 흥미로울 것이다.

그 뒤 KTX는 화성 시내 대부분의 구간을 지상 고가로 달린다. 그런데 화성시 봉담읍 상리 일대를 보면, 왼쪽에 삼봉산이라는 작은 산이 있고 고속선은 산을 완전히 비껴서 완만하게 커브라면 커브를 틀면서 달리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원래 경부 고속선이 처음 건설되던 당시에는 이런 계획이 아니었다. 산기슭을 다 터널로 뚫어서 완전히 직선으로 길을 낼 생각이었다. 즉, 고속철은 수원여대 혜란 캠퍼스 쪽으로 더 가깝게 건설될 수 있었다.

이런 계획이 빗나가게 된 것은, 산 속 고속철 예정 노선의 바로 밑으로 폐광산의 갱도가 뒤늦게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화성시 봉담읍 상리 산 104번지에 소재한 삼보 광산. 원래 아연과 납 따위를 캐던 광산이었는데 채산성이 없어지면서 1991년에 사업을 접은 곳이었다. 완전히 폐광된 때는 1999년이라고 함.

폐광산의 갱도 때문에 지하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데, 그 위로 복선 전철 선로가 깔리고 수백 톤짜리 고속철이 시속 300km로 달린다면 노반이 붕괴할 위험이 있다고 안전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결국, 1990년대 중반에 총길이 약 2.2km를 목표로 이미 300m 정도 뚫었던 터널은 공사가 “취소”되었고, 그보다 동쪽으로 500m 정도 비껴 간 완전 지상 우회 구간이 대안으로 선택되었다. 그것이 오늘날의 고속선 선로이다. 이 때문에 공사 기간도 길어지고 그 터널 뚫느라 든 110억 원가량의 국비는 허공으로 갔다..;; 그리고 경부 고속철 '상리 터널'은 영원한 흑역사로 전락했다.

(참고로 옛날에 국립 국어원에서 표준 국어 대사전을 처음 만들 때 든 예산이 112억 원 남짓이었다. 만들어진 시기가 비슷하니 물가 차이도 별로 안 난다. 세상에 철도글 쓰면서도 사무엘님의 직업병이 아니랄까봐, 어문 관련 사건이 관련 검색 결과로 떠오르는구나. ㅋㅋ)

철도의 폐터널은 기존 철도가 복선· 전철화나 선형 개량으로 인해 이설되면서 잉여로 전락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상리 터널의 경우는 아예 짓다가 만 경우이기 때문에 드문 사례이다. 공사 전에 좀 더 지반 조사를 똑똑하게 했다면 건설비를 좀 더 절약할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해당 지역에서는 폐광산 근처를 생태 공원으로 조성하거나 청소년 시설을 건립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모양이다.
공사가 중단된 터널은 그 당시엔 입구가 봉인된 채 폐쇄되었지만, 지금은 이미 사유지가 되어서 내부가 유용히 쓰이고 있는 모양이다. 사실 폐터널은 각종 곡물의 저장 창고 등의 용도로 굉장히 좋다. (☞ 관련 링크)

경부선만 해도 복선화 과정에서 왜관-구미 구간이 대대적으로 이설된 적이 있기 때문에, 옛 단선 구간에 존재하던 터널이 진작부터 비슷한 용도로 쓰이고 있었다.
포항 이북으로 일제가 건설하다가 공사가 중단되어 버린, 동해 중부선의 폐터널도 포항에 남아 있다.
철도 폐터널의 낭만을 잘 묘사한 아래의 글도 참고하라. 철덕이라면 하악하악 하기에 충분한 아이템이다. (☞ 관련 링크)

지하철은 태생적으로 망할 일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대도시에 건설되다 보니, 전쟁이라도 나서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되지 않는 이상, 지하철 터널이 잉여로 전락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서울 지하철 6호선이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때문에, 건설 중에 허겁지겁 노선을 변경하긴 했었지만 딱히 짓다 만 터널이 생겼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그런 게 있더라도 일반인은 가 볼 수 없을 것이고) 다만, 신설동 역의 잉여 지하 승강장 같은 아이템이 있긴 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2/03/23 08:30 2012/03/23 08:30
, , ,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658

오랜만에 오덕질 근황

날씨는 봄 기운이 만연하고 좋다.
그런데 기름값은 또 왜 이리 미친 듯이 지구 종말 수준으로 오르고 있는지? 2000도 모자라서 2100 돌파. 그래도 진짜 지구 종말 직전엔 기름값이 3천~5천 원 이상이 될 수도 있으니, 그런 극단적인 표현은 나중을 위해 아직은 아껴 두고 있다.

3년 전에 나의 일기장에 “기름값이 1600원대로 폭등했다”란 문장이 있는 걸 보고는 그저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말세의 반이스라엘 감정은 아마 기름값 하나만으로도 아주 쉽게, 금방 조장되고 달성될 것이라 본인은 믿는다.
어쨌든 그건 그거고 오랜만에 각 분야별 내 오덕질 근황이나 좀 올려 본다.

1. 본업

난 이번 학기가 석사 논문 학기이다. 이 때문에 이번 학기는 정말로 프로그래밍을 제대로 못 할 것 같다.
논문 작성 과정에서 대략 아래와 같은 애로사항이 꽃피고 있다.

내용 채워 넣는 난이도 10
남에게 설득, 어필하는 난이도 30
형식에 맞춰 쓰는 난이도 60 ㅠㅠㅠㅠㅠㅠㅠ


다만, 이 달 말쯤 <날개셋> 한글 입력기 6.51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6.7로 바로 건너 뛰는 건 좀 무리이고, 6.51로 결론. 6.5 이래로 주로 바뀐 곳은 편집기이기 때문에, 외부 모듈을 쓰는 분은 별로 업그레이드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주요 변화 사항은 현재까지 다음과 같다.

  • 예전에 블로그에다 글을 올렸듯, type 3 키보드에서 한자 키의 보정 방식을 바꿈 (이건 외부 모듈에도 적용되는 공통 사항)
  • 오토마타에, 3.0 이래로 -7까지 있던 대체 상태에다 -8과 -9라는 새로운 대체 상태 추가 (이건 아주 특수한 기능이고 말 한 마디로 설명하기가 곤란해서...)
  • 편집기에 있는 여러 사소한 버그들 잡음. (그냥 평범하게 쓰는 데는 별 영향 없음)
  • 북한 표준 두벌식 글쇠배열의 오류를 바로잡고, 글쇠배열이 아닌 입력 유형 파일로 제공. 고증을 거쳐서 낱자 결합 규칙과 오토마타까지 북한의 실제 한글 입력 방식을 재현함.
  • 완전히 잉여 기능이긴 하지만, 2.0 이래로 10년째 변함없이 갖고 있던 한컴 2바이트 완성형 옛한글의 변환 테이블에 존재하던 일부 오류 수정

진짜로 작업하고 싶은 것들은 규모가 훨씬 더 큰 것들인데.. 이거 작업은 아무래도 논문 통과 후에나 가능할 것 같다. 단어 단위 한자 변환 기능은 도대체 언제 넣나. ㅜㅜ

2. 철도

<자유 여행 패스와 함께하는 경전선 3일 여행> 클릭.
본인은 지난 겨울방학 때 하나로 티켓으로 경전선을 완주한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저런 글은 정말 뼛속까지 철덕력으로 넘치는 사람만이 쓸 수 있다는 걸 적극 공감한다. 한 우진 님께 그저 존경과 찬사를 보낼 뿐이다.

‘두 역 갔다가 한 역 되돌아오기’라는 게 있을 수 있다는 걸 본인은 알고 있었지만, 이걸 저 글에서처럼 이론으로 정립한 건 처음 본다.
대전에서 서울까지 직통 열차가 좌석이 없을 때도 대전-천안, 천안-서울처럼 구간을 나누면 두 구간 모두 대체로 좌석이 생긴다. 이런 것처럼 열차는 중간 정차역이 있다는 특성상 단순 point-to-point 교통수단인 고속버스나 비행기보다는 뭔가 ‘테크닉’이 많이 발달할 수 있는데, 이런 것도 철도의 매력임이 틀림없다.

3. 기독교

모처럼 UCC 하나 공개한다.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찬양인 <놀라운 주의 은혜>(Wonderful Grace of Jesus)의 1절을 혼자 아카펠라 4부 합창으로 불러 봤다. 여자친구라도 있으면 듀엣이 됐을 텐데 그렇지 못해서 그냥 싱글 코어이다. ㅋㅋ 들어 보시라. 이것이 화음의 위력이다.

그리고 본인은 작년 겨울방학 때, 킹 제임스 성경과 기독교회사에 대한 아주 유익한 다큐멘터리 영화 A Lamp in the Dark의 대본 번역에 참여한 바 있다. 그 영화가 드디어 자막이 삽입된 영상물로 완성되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클릭해서 보시기 바란다. 무려 3시간에 달하는 분량.

난 2010년부터 블로그로 홈페이지 체계를 고친 이래로, 종교 관련 글에 내가 믿는 게 좋다는 식의 글은 잔뜩 올렸어도, 남이 믿는 게 잘못됐다는 글은 거의 올리지 않고 그런 건 최대한 자제하면서 지냈다.

그랬는데 요 최근에 성경의 역사 시리즈와 천주교 시리즈처럼 수위가 센 글이 갑자기 올라온 이유는... 바로 이 번역 작업을 하면서 동기 부여를 받아서였다. 이건 좀 양심상 글로 좀 정리해서 올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의 부담이 들어서이다. 이 영화를 보면 참된 교회사와 천주교의 정체, 바른 성경과 부패한 성경의 출처와 원인 등의 모든 것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강추.

4. 한글 진영

어제(17일 토), 정말 오랜만에 한글 학회를 찾았다. 지금까지 연락을 너무 안/못 하고 지낸 분들께 인사도 드릴 겸 해서이다. 임원 모임과 더불어 <한국어의 힘>이라고 김 미경 교수의 특별 강연도 있었는데, 무척 유익한 내용이었다. 대략 이런 요지.

  •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단일 모국어가 공식 언어로 통용되어 계층간에 위화감이 없고 소통에 불편이 없는 사회가 얼마나 복 받은 것인지 알아야 한다.
  • 모국어라는 건 그렇게 호락호락 취사선택 가능한 게 아니며, 이중 언어 국가들은 두 언어가 동등하게 공존하고 있는 구도가 결코 아니다. 복 거일 씨의 영어 공용화론은 가정 내지 전제 조건부터가 잘못 설정되었다.
  • 한국인만치 이민 2세가 자기 모국어를 쉽게 저버리는 민족은 별로 없다. 교포와 국내 외국인들에 대한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이 절실하다. 모국어 실력은 국가 경쟁력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내가 다니는 대학원 소속의 다른 학생들도 들으면 참 좋았을 텐데(특히 한국어 교육이 세부 전공인 분들) 아쉽다.
김 선생님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이런 언어 이슈에 많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아쉬워하셨는데, 그때 현장에 있던 사람은 나 빼면 진짜로 전부 5, 60대 이상 중년들밖에 없었다.;; 안타깝지만 한글 학회에서 여는 모임들이 대부분 그런 분위기이다. ㅡ,.ㅡ;;

철도와 성경 덕질에 한동안 밀려 있던 이쪽 분야에 오랜만에 새 기운을 좀 충전했다. 그나저나, 한자 진영은 이 2012년에 아직도 초등학교 한자 교육 시행에 목숨을 걸고 있다니, 정말 놀랍다.. ㅜㅜ

5. 노트북 교체

본인, 조만간 새 노트북을 장만할 예정이다. 무척 정들었지만 구닥다리가 되어 버린 코어 2 듀오 기종을 거의 4년 가까이 썼다. 마침 부모님께서 쓰시는 더욱 고물 구닥다리 컴퓨터는 듣자 하니 이제 하드웨어가 맛이 가고 진짜로 폐기할 때가 된 듯하다. 그래서 지금 내 컴을 고향으로 보내고 나는 새 걸 장만하는 게 계획인데.. “맥북이냐 아니냐” 때문에 너무 고민된다.

  • 장점: 10년 넘게 Windows 독점만 경험하다가 이번 기회에 좀 새로운 세계로.
  • 단점: 내가 모든 걸 알고 통제하지 못하는 운영체제를 써야 하는 데서 예상되는 굉장한 이질감과 적응 기간 (비록 Windows를 같이 쓴다 하더라도 불편 불가피)

일반 유저가 아니라 개발자, 프로그래머이기 때문에 맥북을 더욱 써 봐야 할 명분이 있는 반면, 역설적으로 그 이유 때문에 Windows 기득권을 희생하기도 대단히 곤란한 처지이다.
뭐, 내가 10년 전 고등학생 시절처럼 인제 와서 본격적으로 xcode와 맥 프로그래밍을 공부할 여력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윈도우 하나만 해도 앞으로 8이 나오면 또 이상한 게 잔뜩 도입되어 바뀌어 있을 텐데. IT계는 정말 너무 복잡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2/03/18 08:20 2012/03/18 08:20
,
Response
No Trackback , 5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656

Looking for you의 작곡자, MALTA

이제는 더 말하면 입만 아프겠다만,
본인은 2003~2004년 사이에 새마을호에서 Looking for you라는 음악을 들으면서 철도 성령을 체험하고 철도 덕후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 Looking for you를 작곡한 사람은 MALTA라는 예명을 쓰는 일본의 재즈 색소폰 연주자이다. (☞ 공식 홈페이지) 유튜브에서 검색해 보면, 공유 정신이 투철한 네티즌들 덕분에 이 사람 주요 곡은 물론, 심지어 과거의 실황 공연 동영상까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생각보다 연세가 지긋한 분이고, 본인의 부모님 연배이다. 아니, 부모님보다 나이 더 많다..;;
일본인이라기보다는 서양 사람처럼 생겼다. 덩치도 그렇고.

공식 홈페이지에 기재된 프로필에 따르면, 그는 13세 때부터 색소폰을 불기 시작해서 도쿄 예술 대학을 졸업했다. 그 후 미국 유학을 선택하여 그 이름도 유명한 버클리(Berklee) 음대를 졸업하고 거기서 강사도 역임했다고 한다.
재즈 내지 실용 음악이 강한 학교에 잘 찾아간 듯하다. 몇 년 전에 본인이 뒷조사를 해 본 기억에 따르면, 버클리 음대 Alumni 리스트에 저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1983년 11월, 일본에서 MALTA라는 예명으로 활동을 시작하고 첫 음반을 냈다.
Looking for you가 수록된 앨범은 Obsession으로, 1988년에 발매됐다. 즉, 여전히 상당히 초창기 시절의 작품인 것이다. 그때는 기술과 장비가 차이가 있었는지, 음반 녹음을 미국 LA에서 했다고 자랑을 치던 시절이었다. 즉, 우리가 지금 듣는 Looking for you도 원판은 미국에서 녹음됐다는 뜻.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철도 성령을 소환해 낸 전설의 곡 Looking for you가 첫 소개된 그 앨범)

생각을 해 보라. 어느 때에 한국의 대중교통에서, 운행 시작 전이나 종료 후에 객실 내부에서 저렇게 가슴 터질 것 같은 빠르고 경쾌하고 톡 쏘는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왔던가? 그리고 그 당시 철도청이나 코모넷(새마을호 내부의 시청각 UI를 담당하던 하청 업체) 담당자는 어째 이렇게 매니악한 음악을 선곡할 생각을 했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통방통하지 않은가?

난 재즈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저 음악만은 예외로 그냥 닥치고 수백, 수천 번 듣고 또 들었다. 눈 지그시 감고 앉아서 새마을호 객실에서 저 음악 들으면서 타거나 내리던 시절을 회상하는 게 습관이 됐다. 그리고 전곡을 허접하게나마 nwc 악보로 옮겼다.

참고로 Looking for you는 새마을호에 처음으로 비디오 화면이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2001~2002년 사이에 등장했다가, KTX가 개통한 2004년 중반부터는 종착역 도착 때만 흘러나오는 걸로 바뀌었고(출발 전에는 이제 Steve Barakatt의 Dreamers로 변경), 2007년 중반 무렵에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본인이 2006년에 세 차례 Looking for you 열차내 재생 장면을 촬영하여 유튜브에 올린 것은 이제 전설적인 역사 기록으로 등극해 있다.

나는 흔히 말하는 각종 가요나 연예인, 영화, 락 음악 같은 것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대신, 그쪽 똘끼가 여기에 전부 쏟아졌다.
MALTA 당사자는 꿈에도 모르겠지만, 역사는 그의 음악이 한국에서 극렬 철도 덕후를 한 명 배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기록할 것이다. 철도님, 사랑합니다.

Posted by 사무엘

2012/02/11 08:12 2012/02/11 08:12
, , , ,
Response
No Trackback , 4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640

도로의 확장

단칸방에서 살림을 시작한 신혼부부가 세월이 흘러 경제력이 생기고, 또 자녀들 때문에 더 넓은 행동반경이 필요해지면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간다.
어떤 교회가 성도 수가 늘고 기존 건물이 너무 비좁아지면, 역시 더 큰 곳으로 예배당을 옮긴다.
건물을 예로 들었지만 길도 예외가 아니다. 처음에 설계했던 길의 크기에 비해 교통량이 지나치게 늘면 길을 넓히게 된다.

과거에 경부 고속도로의 건설이 끝난 뒤, 박 정희 대통령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내가 야당이 하도 반대를 해 대서 일단 4차선으로만 만들었지만, 이 도로는 얼마 못 가 너무 비좁아지는 때가 분명 온다. 그러니 언제든지 확장을 할 수 있게 대비해 두고, 도로의 양 옆 50m에는 건물 건축 허가를 내 주지 말아라.”

오늘날 박통의 예상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늘날 경부 고속도로가 40년 전의 4차선 형태 그대로 아직까지 남아 있는 곳은 영천-경주-울산과 추풍령 일대의 극소수 구간뿐이다.
비록 경부 고속도로가 처음에 너무 저비용으로 단기간에 날림으로 만들어져서 나중에 땜질을 하는 데 비용이 더 들었다는 비판이 있긴 하다만, 박통 역시 정황상 원하던 규모로 도로를 애시당초 못 만든 고충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1. 길을 넓히는 작업은, 이상적인 경우라면 기존 도로의 양 옆에 차선이 하나씩 추가되는 게 가장 자연스럽다. 중앙 분리대의 위치가 바뀌지 않으며, 기존 도로의 센터를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점이 매우 좋다.
다만, 터널이나 교량은 유연한 확장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양 옆으로 같은 시설을 더 만드는 식으로 확장이 이뤄진다. 오래 된 터널이 세 개 존재하고 중앙의 2차선짜리 터널 내부에 중앙선이 있다면, 그건 100% 나중에 1차선짜리 터널이 추가로 건설된 거라고 보면 된다. (예: 서울 종로구의 사직 터널)

2. 그러나 기존 도로의 한쪽 옆에 동일한 규모의 새 도로가 건설되어 기존 도로는 상행, 새 도로는 전체가 하행이 되는 식으로 확장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존 도로와 새 도로가 완전히 분리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서로 고저 차이가 있기도 하다.

서울의 대표적인 횡축 자동차 전용 도로인 강변북로(그리고 아마 올림픽 대로도)가 이런 식으로 확장된 좋은 예이다. 강변북로는 지금의 서쪽 방향이 원래 있던 도로였다. 편도 2차선의 4차선짜리 도로였는데 좀더 한강 쪽에 가까운 4차선짜리 고가 도로가 추가로 건설됨으로써 총 8차선이 되고, 새 도로는 동쪽 방향을 맡게 되었다.
터널 중에서는 남산 제1터널이 이런 방식으로 확장되었다. 추후에 옆에 터널을 하나 더 만든 뒤, 각각 상· 하행 역할 분담.

3.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 그냥 옆에, 혹은 복층으로 독립적인 상· 하행 방면이 존재하는 새 도로가 추가되는 걸로 끝난다. 중부 고속도로(고속국도 35호선)가 좋은 예이다. 험준한 산 위에 놓인 높은 고가는 이거 뭐 건드릴 수가 없기 때문에 옆에 그냥 제2 중부 고속도로(고속국도 37호선)를 추가로 만드는 것 외엔 답이 없었다. 철도로 치면 방향별 복복선이 아닌 선로별 복복선처럼 되었다.

세 가지 경우 중 기존 선로나 차선의 상하행 용도가 바뀌기도 하는 방식은 2번이 유일하다. 그래서 길에 각종 신호 시스템이 정교하게 얽혀 있는 철도가 2번처럼 확장되기란 대단히 어렵다. 뭐, 철도는 복선에서 복복선으로 바뀌는 것 자체가 수도권 대도시가 아니면 대단히 드문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경부· 경인선은 1번과 같은 방식으로 복복선으로 확장되었지만, 이들이 합류하는 구로 이북의 서울 시내 구간은 3번 방식으로 확장되었으며, 이는 아마 부지 문제 때문에 그렇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식으로, 어떤 길이 처음엔 작았다가 나중에 확장되었다는 증거는 구조물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자동차 전용 도로의 경우는 진출입로에서도 드러난다.

우리나라는 자동차가 우측통행을 하며, 편도 4차선 도로라면 진출입로는 당연히 맨 오른쪽 끝인 4차로에 있다. 중앙선과 가장 가까운 곳이 1차로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강변북로의 동쪽 방면 도로는 맨 왼쪽 끝의 1차로에 진출입로가 수시로 존재한다. 마포 대교나 원효 대교의 진출입 램프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왜 그럴까?

그것은, 예전 도로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진출입로의 영향 때문이다.
강변북로가 확장되기 전에는, 한강 다리의 북단에서 강변북로의 동쪽 방면으로 진입하려면, 지금은 서쪽 방면으로만 쓰는 옛 도로의 오른쪽 끝으로 진입로(램프)가 이어져야 했다. 그게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그 길을 크게 고치지 않은 채로, 옆에 있는 강변북로 동쪽 방면으로 살짝 연결시키다 보니 새 도로에 처음 닿는 곳은 4차로가 아닌 중앙선 근처의 1차로가 된 것이다. 즉, 강변북로 동쪽으로 갈 때도 서쪽 방면 도로를 살~짝 찍은 뒤에 동쪽 방면으로 건너간다는 뜻이다. (옛 도로의 오른쪽 끝인 2차로 → 새 도로의 왼쪽 끝인 1차로로 바뀜) 이해가 되시겠는가?

동서 방면 도로와 남북으로 가는 도로가 십자형으로 만나고 어느 방향에서든 모든 방향으로 진입할 수 있는 입체 교차로의 가장 교과서적인 형태는 두말 할 나위도 없이 클로버형 나들목이다. 그러나 한강과 복잡한 시가지를 끼고 있고, 더구나 기존 시설물까지 존재하는 서울 시내의 자동차 전용 도로가 그런 깔끔한 모양을 유지하기란 현실적으로 곤란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약간의 복잡한 시설물이 만들어진 것이다.

한 도로에서 다른 도로로 갈아타는 입체 교차로 램프가 좀 복잡하고 삽질스럽게 생겼다 싶으면, 이것도 옛 도로가 확장된 흔적이기라도 한가 의심해 봐도 좋을 것이다. 입체 교차로는 신호 대기가 없어서 무척 좋긴 하지만, 자동차에 내비가 보급되기 전에는 이런 복잡한 도로를 어떻게 찾아갔을지 옛날에 운전하던 분들이 초행길에 적응하느라 힘들었을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2/02/05 08:36 2012/02/05 08:36
, ,
Response
No Trackback , 4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637

« Previous : 1 :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 29 : Next »

블로그 이미지

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 사무엘

Archives

Authors

  1. 사무엘

Calendar

«   2026/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Site Stats

Total hits:
3938343
Today:
1129
Yesterday:
1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