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사진 분석 - 2

1. 다음 사진은 현직 초등학교 교사인, 본인의 모 지인이 최근에 보내 준 것이다. (내가 철도광이라는 걸 알고 친히..ㅠㅠ ㄱㅅㄱㅅ!)
애들이 보는 교과서가 아니라 교사용 지도서라서 사진이 흑백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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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덕이라면 철도 관련 사진을 보는 순간 눈에 불꽃이 튀면서 일반인들이 보지 못하는 주변 정보를 모조리 상상하고 유추해 낼 수 있어야 마땅하다.

1번은 대전 국립 중앙 과학관과 엑스포 과학 공원을 잇는 자기 부상 열차이다. 딱 보자마자 알아보시겠는가?

2번은 미카나 파시 같은 기관차는 아니고, 관광용으로 국내에서 최후에 도입했다가 지금은 운행 중지+정태보존 상태로 바뀐 '901호 증기 기관차'이다. 보일러의 양옆에 흰색 금속줄이 놓여 있는 걸 보면 바로 분간 가능하다.
현재 얘는 중앙선 풍기 역에 놓여 있지만, 주변 배경으로나 저 사진이 촬영되던 시기를 감안하면 저 사진은 더 옛날에 경북선 점촌 역에서 촬영된 것이다.

3번은 외형이 워낙 특이하니 인천 지하철 전동차임을 쉽게 분간할 수 있을 것이다. 지상 구간인 귤현-계양 사이에서 촬영되었을 것이다.

기관차라고 이름을 붙여 놓고는 동차를 소개해 놓은 건 3번뿐만 아니라 4번도 마찬가지다.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디젤 동차인 건 더 말하면 입만 아플 것이고, 촬영 장소는 아마 승강장의 천장 모양으로 보건대 그냥 서울 역이 아닌가 싶다.

난 그 지인에게 부탁했다.
혹시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 철도에 대해 에디슨 같은 호기심과 비범함을 보이는 미래의 꿈나무가 있다면, 날 생각해서라도 최대한 자상하게 지도하고 철덕으로 이끌어 달라고 말이다. ^____^;;

2. 다음 지도를 꺼내서 여기저기 지형을 살펴보고 있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국내외 주요 지도 사이트들은 신경주 역 주변의 항공 사진이 업데이트되지 않아서 현재의 모습과 지도의 모습이 맞지 않은 듯했는데 지금은 다들 개선되었다.

그런데, 부산 역 주변을 보니 선로에 KTX 한 편성이 놓인 게 보였다. (산천 말고, 1세대 TGV-K 차종)
요놈의 길이를 재 봤더니.. 역시나 진짜로 딱 388m가 맞았다.
항공 사진이란 게 있어서 이런 것도 확인이 가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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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쪽의 KTX 제원은 한국어 위키백과 페이지의 화면 캡처이다.

인천 역은 승강장이 두단식일 정도로 진짜 선로의 말단에 자리잡고 있는 반면, 오늘날의 부산 역은 승강장 이남으로도 거의 1km에 가깝게 선로가 더 뻗어 있다.
이것은 원래 부산 역은 지금의 부산 역보다 더 남쪽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 지금의 부산 역은 초량 역이었다.
그러던 것이 1953년에 부산 역 대화재 사건이 발생하면서 그 역이 없어지고, 초량 역이 있던 자리에 부산 역이 새로 세워진 것이다.

3. 이건 내가 찍은 사진은 아니다만,
딱 보면.. KTX 경부 고속선 서울-대전 구간이고, 역방향 좌석에서 찍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전자는 좀 guessing이 가미된 요소이지만, 후자는 사람이 보통 사진을 찍는 방향을 생각했을 때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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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금은 수도권 전철 1호선에 [노량진] - 대방 - 신길 - [영등포] - 신도림 - 구로 - 가산디지털단지 - 독산 - [금천구청](구 시흥)으로 역이 무진장 많이 있지만, 경부선 개통 당시에는 [ ]친 역밖에 없었으며 그 구도가 196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노량진과 영등포는 아예 경인선 개통 당시부터 있었던 역이요, (since 1899) 시흥은 부산역과 같이 개통하여 경부선 개통 초기부터 있어 왔다(since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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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1968년에 구로공단에서 제1회 한국 무역 박람회가 개최되었을 때는 '박람회 역'이라는 임시 승강장이 잠시 만들어지기도 했을 정도였다. 주변에 하도 역이 없어서..

대방, 구로, 가리봉(지금의 가산디지털단지) 역은 수도권 전철 1호선과 함께 개통했으며(since 1974)
신도림은 잘 알다시피 서울 지하철 2호선과 함께 환승역으로 개통(since 1984).
신길은 서울 지하철 5호선과 함께 환승역으로 개통(since 1998)했고 독산역도 이때 같이 개통했다.

사진을 보면 영등포-시흥 사이의 역간거리 숫자가 5인지 6인지 8인지 좀 희미한 편인데, 저건 8.2km이다. 어떻게 아냐고? 철도 영업거리표를 찾아보면 된다. 서울 기점으로 영등포가 9.1km이고 금천구청은 17.3km 지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3/07/20 08:37 2013/07/20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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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처음에 새마을호에서 시작되었던 철도 관심사가 KTX, 전기 기관차를 거쳐 요즘은 증기 기관차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옛날에는 기관차의 이름을 지금처럼 0000호대라는 번호로 붙인 게 아니라 미카, 파시, 마터, 허기 등의 이름으로 붙였구나.
고 김 재현 기관사가 몰았던 증기 기관차(미카)와, 경의선 장단 역에 방치되어 있던 녹슨 증기 기관차(마터)는 차종이 다른 것이었구나.”
같은 식이다.

증기 기관차까지 마스터해야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철도를 연계하여 다 꿰뚫은 진정한 철덕이 될 수 있다는 걸 깨우쳤다. 이렇듯, 한번 철도의 맛을 접한 철덕은 차량, 시설, 지리, 역사 등 분야별로 철도 안에서 계속 골고루 자라야 한다. 그 성장이라는 게 금방 빨리 되는 게 아니다.

철도 기관차의 동력원은 크게 증기, 디젤, 전기로 나뉜다. 내연기관 기반인 디젤은 동력비 조절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기어/유압/전기 변환식으로 분류되고, 전기는 전기대로 사용하는 전기의 종류와 집전 방식에 따라 다양한 분류 기준이 존재한다.

이런 것처럼 증기 기관차에도 증기에만 적용되는 중요한 분류 기준이 하나 있다.
바로, 구동하는 데 필요한 물과 석탄을 기관차 내부에 보관하느냐, 혹은 기관차의 바로 뒤에 연결된 별도의 탄수차로부터 공급받느냐는 것이다. 전자식은 탱크식(tank)이라고 하고, 후자는 텐더식(tender)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기관차가 사용하는 물과 석탄의 부피가, 내연 기관이 사용하는 기름의 그것보다 크다는 점 때문에 생긴 특성이다. 보일러의 부피도 내연기관의 엔진보다 더 커야 겨우 그 집채만 한 쇳덩어리를 굴릴 만한 수증기를 만들 수 있다. 그 이유는 증기 기관은 디젤 엔진보다 태생적으로 출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물과 석탄을 기관차 안의 좁은 공간에다가만 싣고 다녀서는 도저히 장거리를 달릴 수 없다. 우리가 기억하는 거의 모든 증기 기관차는 텐더식이며, 이는 심지어 <은하철도 999>에 그려진 열차도 마찬가지이다.
탱크식은 단거리 소형 열차에 한정된 형태로만 쓰인다. 이는 디젤로 치면 자동차처럼 기어로 변속하는 소형 기관차와 같은 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믿거나 말거나, 1899년에 개통한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 노량진-제물포(오늘날의 동인천)에 처음으로 다녔던 열차는 '모가'(mogul의 변형) 형 증기 기관차인데, 이 역시 아담한 탱크식이다. 더 큰 텐더식 열차는 경부선과 경의선이 뚫린 1906년 이후에야 슬금슬금 국내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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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최초로 달렸던 철마가 바로 이 물건이라니! 오오오오~~ 굴뚝이 깔때기 같은 모양이다.
오늘날 경인선을 달리고 있는 VVVF 전동차와 비교해 보면 가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같은 1435mm 표준궤를 달리는 철도 차량이 100년 사이에 이렇게 변할 수가 있을까?
철도에 대해서 좀 아는 사람이라면, 증기 기관차를 구경할 일이 있을 때 이놈이 탱크식인지 텐더식인지부터 먼저 눈여겨보게 될 것이다.

여담으로 영어 단어 공부를 좀 하자면,
tender는 ‘부드러운, 여린’을 뜻하는 형용사의 뜻이 있으며 특히 영어 성경에서는 tender mercies(친절한 긍휼)라고 해서 아주 즐겨 쓰인다. 그 반면, tender는 거룻배, 관리자, 탄수차 등을 뜻하는 명사도 되며, 둘은 어원상 아무 관계가 없는 동명이의어이다.

그리고 보너스.
얼마 전에 본인은 6·25 전쟁 당시에 총격을 받고 장단 역 구내에 버려졌던 '마터' 형 증기 기관차의 사진을 공개한 적이 있다.
'모가'가 우리나라 최초의 증기 기관차라면, '마터'는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40년대에 처음 제작되었으며, 크기도 크고 힘도 좋은 신형(?) 증기 기관차이다. 탱크식이 아니라 텐더식인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당시 '마터'는 한반도 중· 북부 지방에서만 운행되었으며 이들은 전부 오늘날의 북한에 속한 지역이기 때문에 남한과는 영 인연이 없는 열차였다. 지금이야 우리나라에도 태백선, 영동선 같은 산악 철도가 있지만, 그건 예전 글에서도 알 수 있듯, 해방과 분단 후 한참이 지나서야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만든 철도이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나 북한하고는 별 상관이 없다.

다음은 이 '마터'형 증기 기관차가 파괴되고 녹슬기 전의 원래 모습이 어떠했을지를 유추하게 해 주는 아주 좋은 자료이다. 북한에서 이 증기 기관차를 모델로 우표를 만든 적이 있다. 모든 증기 기관차는 원래 검은색 도색이며, 이는 저 기관차도 예외가 아니다. 또한, 파괴된 기관차 잔해는 앞부분의 좌우에 씌워진 철판 벽이 없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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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3/07/13 08:28 2013/07/13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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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선이라 하면 철덕이라면 모르는 분이 없을 것이다. 중앙선 및 경춘선보다는 살짝 이른 1937년 8월 5일에 개통하여 대한민국 최후의 협궤 철도로 남아 있었지만 1995년 12월 31일을 끝으로 운행이 중단된 추억과 비운의 노선 말이다.

단, 최후까지 살아 있던 구간은 인천-수원 전체가 아니라 한대앞-수원 사이의 비교적 한적한 구간이다. 한적하다는 말은 재개발을 위해 선로를 철거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여객 수요도 안습하다는 뜻이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운행 중단’ 상태라지만 실질적으로는 폐선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열차가 다니지 않게 된 선로를 곧장 악착같이 모조리 철거한 것도 아니었다. 관리가 중단된 협궤 선로는 이내 시뻘겋게 녹이 슬고 잡초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이런 것은 일상적으로 보기 쉽지 않은 구경거리이기 때문에 철덕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에 본인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8년 전인 지난 2005년에 상록수-한대앞 역 사이의 수인선 선로 흔적을 답사한 적이 있다. 그러나 수인선의 표준궤 복선 전철 공사가 진행되고 거기에 있던 선로는 의외로 얼마 못 가 철거되었다. 사진을 찍어 놓길 잘했다. 본인은 별다른 의심의 여지 없이 이제 수인선 협궤 선로 흔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추측은 사실이 아니었다.
한대앞 바로 다음의 중앙-고잔 사이에 선로가 아직까지 의외로 잘 보존되어 있고, 일부 구간은 안산시에서 관광 시설로 조성해 놓기까지 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의외로 각종 위키 부류의 정보 사이트에서도 수인선 잔여 구간에 대한 설명은 별로 없는 듯했다.

그래서 본인은 석가탄신일 연휴 때 곧장 안산으로 달려갔다. 그 날은 마침 사랑 침례 교회의 정 동수 목사님께서 뉴에이지 특강을 했는데, 안산선과 수인선 답사를 먼저 한 뒤, 안산에서 상대적으로 가까이 있는 편인 그 교회에서 강의도 듣고 왔다. 이렇게 동선을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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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에 없었지만, 잠시 반월 역 주변의 사진을 먼저 카메라에 담았다.
세상에 이렇게 전원적이고 산과 들로 뒤덮인 전철역이 또 있을까 싶다. 안산선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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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 역은 굉장히 드문 특성을 여럿 갖춘 특이한 역이다.
출입구가 하나밖에 없으며(이런 역도 몹시 드문데), 역무 시설과 승강장이 모두 지상 평지이면서 선로 횡단은 육교가 아니라 지하도로 한다. 지하철과의 환승역이 아니면서 이런 구조로 만들어진 역은 구일이나 대방 역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역 입구엔 작게나마 광장도 있다.

잘 알다시피 반월과 다음의 상록수 사이는 거리가 3.7km가량으로 수서-복정급으로 매우 길다. 두 역은 지상이지만 잠시 몇백 m 길이의 터널도 지나며, 아래로는 서해안 고속도로를, 그리고 위로는 경부 고속선을 모두 구경할 수 있다. 상당히 긴 역간거리에도 불구하고, 지형적인 특성으로 인해 이 사이에는 역이 또 생길 여지가 거의 없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본인은 여행을 계속했으며, 드디어 중앙 역에 도착해서 내렸다. 그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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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그분이 내 눈에 펼쳐졌다! 하앍하앍...;;
한대앞 역의 경우(그리고 안산 역도), 안산선의 승강장도 지상 평지이다 보니 수인선과 승강장이 나란히 건설되는 게 가능했던 반면, 중앙이나 고잔 역은 안산선 선로가 고가로 건설되어 있기 때문에 평지인 수인선은 역의 밖에 이렇게 있을 수밖에 없다.
금정 쪽으로 되돌아가는 한대앞 방면으로도 수인선 선로가 살짝 있긴 했지만 얼마 못 가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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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로 주변은 그야말로 경치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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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그렇다 쳐도 영문 서체는 마치 Mac OS 클래식의 서체와 닮은 것 같다.
이런 클래식 역명판도 누가 잘 보존해 놔야 할 텐데 말이다.
과거엔 이곳에 수인선 승강장이 있었기 때문에, 열차 승강장도 아니고 역의 외벽에 이런 물건이 붙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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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계속 이렇게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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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잔 역에 가까워지자 웬 이런 시설물도 있었으나, 식물 넝쿨 같은 건 없었다.
그래도 아까보다는 주변 식물들의 키는 낮아져서 시야가 확 트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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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수인선 고잔 역 승강장과 열차를 재연해 놓은 시설물도 있었다.
안산선의 역들 중 수인선을 가장 잘 보존해 놓은 구간은 중앙-고잔이며, 역 하나만 꼽자면 고잔 역 주변인 듯했다.

고잔 역은 수인선 시절부터 있었던 역일 뿐만 아니라 안산선이 개통한 뒤에도 한동안 수인선 영업만 하고 안산선 쪽 승강장은 수 년 뒤에 생겼을 정도이다. 그 정도로 정서적으로 수인선이 ‘갑’이었던 역이기 때문에 보존 시설도 고잔 역을 중심으로 생긴 게 아닌가 싶다.
그 반면, 그 옆의 초지(구 공단) 역은 그렇지 않다. 수인선이 본격적으로 망해 가던 1994년에 추가로 생긴 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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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잔 역을 지나고부터는 수인선 선로는 다시 잡초로 무성하게 덮이더니, 나중에는 안산선으로부터도 멀어지고 개천과 철길 공사장(원시-소사선!)에 가려져 선로가 더 진행되지 않았다.

땡볕에서 중앙-고잔-초지 사이의 거의 3km에 달하는 거리를 걸으면서 수인선 성지순례를 마쳤다. 그러고 보니 광역전철 분당선이 첫 개통한 날이 반대로 수인선의 상당 구간이 폐선된 날이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됐다. 마치 KTX가 개통한 날이 교외선 열차가 없어지고 경춘선 통일호가 없어진 날이기도 하듯이 말이다.

지금 오이도 역은 과거의 수서 역과 비슷한 위상이 돼 있다. 옛날에는 3호선의 남쪽 종점이 수서였고, 동시에 노란 분당선의 북쪽 종점도 수서였으며 둘은 한데 이어진 노선이라는 성격이 짙었다.
그랬던 것처럼 지금은 4호선의 남쪽 종점이 오이도이고, 동시에 분당선과 직결될 예정인 노란 수인선의 종점도 오이도인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3/07/04 08:27 2013/07/04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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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에 차고지가 있다면, 지하철에는 차량 기지가 있다.
2년 전에 본인은 수도권 전철의 차량 기지에 대해서 위치와 관할 회사 위주로 정리했었다. 그 뒤 이번에는 차량 기지가 수행하는 기능 위주로 옛날 글에서 다루지 못한 설명을 보충하도록 하겠다.

사실, 철도를 운영하는 데는 당장 차량을 굴리는 동력비(전기료)뿐만 아니라 선로와 차량을 정비하는 비용도 굉장히 많이 든다. 그리고 어느 주기로 차량을 어느 정도로 정비할지가 매뉴얼에 다 정해져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 기지에서 처음 나올 때: 차량이 정상적으로 굴러가고 주요 운행 장치와 접객 시설들이 동작하는지 최소한의 확인. 차량이 운행을 마치고 기지로 들어갈 때도 간략하게나마 점검을 실시함.
  • 3일 간격으로: 전동차의 내부 주요 장치의 기능과 외관을 검사
  • 2개월 간격으로: 좀 더 세부적인 부품에 대한 월상검사

한 대도시에서 지하철이 얼마나 중요한 교통수단인지를 생각해 보면, 이런 점검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철도는 오로지 선로 위만 달릴 수 있으며 차량이 스스로 방향 전환조차 할 수 없는 1차원 교통수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차량 하나가 정비 불량으로 인해 선로에서 도중에 퍼지면, 사실상 모든 열차가 올스톱되어 버린다. 그때 발생되는 영업 손해와 무너지는 승객들의 멘탈, 증가하는 폭력성-_-은 가히 추산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점검은 저런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2년~4년 주기로는 아예 전동차들을 싹 다 분해해서 모든 부품들을 일일이 검사하고 교체한 뒤, 다시 조립하기도 한다. 이 신문 기사를 참고하라.

짧게는 매일, 길게는 n개월 정도로 차량의 원형은 유지한 상태에서 차량을 점검하는 작업을 '경정비'라고 일컫는다. 그 반면, 최하 수 년 간격으로 차량을 완전히 분해했다가 재조립하는 작업을 '중정비'라고 일컫는다.
전동차 한 편성에 대한 중정비 작업은 당연히 당일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2~3주는 걸리는 대공사이다. 그러니 수십 편성에 달하는 전동차들을 모두 해체했다가 재조립하는 데는 1~2년씩 걸린다고 한다.

전동차의 차량 기지는 경정비와 중정비가 모두 가능한 놈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고 경정비만 가능한 놈이 있다.
경정비만 가능한 기지는 그냥 여러 편성의 차량들을 한꺼번에 넣어 두는 검수고만 있는 반면, 중정비가 가능한 기지는 중정비를 위한 공장이 한 채 곁들어져 있다. 그 공장은 입구가 툭 튀어나와 있기 때문에, 항공 사진을 보면 대체로 凸자 모양을 하고 있다. 사각형 모양이기만 한 검수고와는 외형이 다르다는 뜻이다.

또한 이것은 비록 중정비의 100% 필수 요소는 아니지만, 중정비가 가능한 기지 중에는 열차의 진행 방향을 바꾸는 U턴 회차 선로를 자기 주변에 갖추고 있기도 하다.
지하철 전동차는 전후 대칭형이기 때문에 들어왔던 형태 그대로 후진을 해서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전동차를 계속 그렇게만 운행하면 안쪽 바퀴와 오른쪽 바퀴가 불균등하게 마모되기 때문에 차량의 유지 보수 측면에서 좋지 않다. 당장 커브만 생각해 봐도, 커브 안쪽의 바퀴가 바깥쪽의 바퀴보다 덜 돌 테니 말이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열차를 U턴시킴으로써 각 바퀴가 얹히는 궤조의 방향도 바꿔 주는 것이다.

중정비 공장은 여러 노선들로부터 수많은 전동차들의 중정비 예약을 꾸역꾸역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1년 중에 노는 날이 별로 없다. 그리고 이런 데서 수십 년간 일한 기술자들은 소리만 들어도 전동차의 어지간한 상태를 다 진단해 낼 수 있는 프로, 베테랑들이다.

자, 이제 지하철 차량 기지의 항공 사진이라고 하면 사무실, 검수고에 이어 공장, U턴 선로까지 있는지 시설을 보는 안목이 다들 생겼을 것이다.
서울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 도시철도 공사는 노선별로 차량 기지의 배분이 가장 균형 있고 예쁘게(?) 되어 있다.

얘들은 메이저한 노선 5호선과 마이너한 노선 8호선, 그리고 메이저한 7호선과 마이너한 6호선을 서로 짝지어서 관리한다. 유실물 센터도 이렇게 두 노선을 한데 합쳐서 운영하고, 차량 기지도 그런 식으로 공유한다.
메이저한 노선에는 중정비까지 가능한 메이저 기지 1개와 경정비만 가능한 마이너 기지 1개가 붙어 있다. 그러나 마이너 노선에는 역시 마이너 기지 1개만 있다.

그래서 5호선과 8호선이 공유하는 메이저 기지는 그 이름도 유명한 고덕 기지이며, 공장과 회차선이 모두 있다. 둘은 여객 환승역인 천호가 아니라, 가락시장-방이 사이에 연결 선로가 존재하며(3호선 연장 구간과도 다른 경로임), 8호선 전동차는 이 선로를 통해 고덕 기지로 가서 중정비를 받는다.
마이너 기지는 방화(5)와 모란(8)이다. 고덕 기지는 도철의 차량 기지 중 가장 거대한 반면, 모란 기지는 가장 작다.

7호선과 6호선이 공유하는 메이저 기지는 장암 역이 자리잡고 있는 도봉 기지이며, 역시 공장과 회차선이 모두 있다. 환승역인 태릉입구 역 근처에 전동차의 연결 선로가 존재한다. 그리고 두 노선의 마이너 기지는 천왕(7)과 신내(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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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 차량 기지의 구글어스 사진. 연보라색 사각형은 검수고이고, 맞은편에 있는 凸자 모양의 하늘색 건물이 바로 중정비용 공장이다. 그리고 기지 외곽으로 U턴 선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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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면, 신내 차량 기지는 연보라색 검수고만 있으며, 공장이나 U턴 선로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도철 말고 다른 지하철 회사나 코레일은 사정이 어떨까?

서울 메트로 소속인 서울 2호선의 경우 군자와 신정 기지가 둘 존재하는데, 모두 중정비가 가능하다. 군자의 경우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건설되어 긴 역사를 자랑하는 차량 기지로, 한때는 근처에 있는 용답 역의 이름이 아예 '기지' 역이었을 정도였다.
1호선에 투입되는 서울 메트로 차량도 모두 여기서 정비를 받는다. 동묘앞 행 열차가 운행을 마친 후 가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양천구청 역 근처의 신정 기지는 검수고 위에 아파트가 지어진 걸로 유명하며, 이 때문에 기지의 전체 모습이 항공 사진에 잡히지 않는다. 그래도 검수고 위이지, 훨씬 더 시끄러운 소음이 발생하는 중정비용 공장 위에다 아파트를 지은 건 아니다.
이 두 기지는 중정비가 가능한 기지이지만 항공 사진상으로 U턴 선로는 보이지 않는다.

서울 메트로의 '고덕 차량 기지'뻘 되는 메이저 기지는 지축 차량 기지이다. 부지가 매우 넓고 경· 중정비가 모두 가능하고 U턴 선로도 있다. 그에 반해 수서나 창동 기지는 경정비만 가능하다.

서울 9호선의 유일한 차량 기지인 개화 차량 기지는 역시 경· 중정비+U턴이 가능한 full set 기지이다. 바로 옆에는 시내버스 강서 공영 차고지도 같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앞으로 9호선은 동쪽으로 더 연장될 예정인데 그래도 차량 기지는 여전히 하나만으로 유지되려나 궁금해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지하철들은 차량 기지가 있는 쪽부터 가장 먼저 개통한다. 양 끝에 두 곳이 있다면 중정비까지 가능한 메이저 기지가 있는 쪽부터 말이다. 그래서 서울 5호선은 고덕 기지가 있는 방향인 왕십리-상일동이 가장 먼저 개통했으며, 7호선은 온수 쪽이 아니라 강북의 도봉산-건대입구부터 먼저 개통한 것이다.
3호선과 4호선은 각각 지축과 창동 기지를 끼고 강북 구간인 구파발-양재, 상계-한성대입구부터 개통했다가 점차 남하한 반면, 8호선은 성남에 있는 모란 기지를 끼고 잠실-모란부터 먼저 개통했다가 암사까지 올라갔다.

2호선은? 더 말이 필요하지 않다. 군자 차량 기지를 경유하는 신설동-종합운동장 구간이 최초이다. 회사로 치면 창립 멤버뻘 되는 구간이다.

이제 코레일 광역전철을 생각해 보면.. 코레일 수도권 동부 지사가 자리잡고 있기도 한 신이문 역 인근의 이문 차량 기지, 경의선의 문산 기지, 안산· 수인선의 시흥 기지, 경춘선의 평내 기지(평내호평-금곡 사이)는 모두 경정비와 중정비가 가능하다. 분당 기지도 중정비는 가능하지만 딱히 툭 튀어나온 공장이 항공 사진에서 보이지는 않는 듯하다.
그리고 코레일의 메이저 기지들은 도철의 메이저 기지와는 달리 U턴 선로도 없다. 전동차의 방향 전환을 아예 안 하지는 않을 텐데, 이에 대해서는 다른 대책을 마련해 두고 있지 않나 싶다.

이들 말고 병점 차량 기지와 구로 차량 기지는 경정비만 가능한 마이너 기지이다.
원래 용산 역 일대에도 전동차 중정비 시설이 있었지만 지금은 재개발을 위해 모두 헐렸다. 용산으로도 모자라서 구로 기지마저도 지금은 재개발하고 더 외곽인 광명 일대로 기지를 옮기네 마네 하는 떡밥이 오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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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8 08:36 2013/06/2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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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철도의 집전 장치

전기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은 아니고, 훌륭한 동력 공급원이며 매력적인 에너지이다. 그러나 생산과 동시에 광속으로 흘러가 버린다는 특성상, 전기는 여느 물리적인 연료와는 달리 저장과 축적이 어렵다는 게 난감한 점이다. 획기적인 장거리 무선 송전 기술이라도 개발되지 않는 한, 전기로 움직이는 교통수단에다 전력을 공급하는 방식은 다음 세 시나리오 중 하나로 귀착될 것이다.

  1. 자기가 전력을 직접 생산해서 쓴다: 이건 뭐 원자력 잠수함에서나 가능한 일이니 제낀다. 디젤 전기 기관차 같은 경우도 응당 논외로 하고.
  2. 전적으로 배터리로부터 공급받는다: 무겁고 비싼 배터리의 충전 용량과 충전 시간, 그리고 수명 같은 여러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다. 게다가 배터리는 충· 방전을 거듭할수록 용량이 하락하기 때문에 교체가 필요한 소모품이다. 그래서 순수 배터리 기반 전기 자동차는 단거리나 소형 교통수단에 머물러 있고, 하이브리드는 반대로 무게와 가격 문제 때문에 중형급 이상의 고급차에나 적용되고 있다.
  3. 전차선으로부터 공급받는다: 철도는 그나마 이게 가능해서 다행이다. 아니면 딱 전차선이 놓인 노선만 달리는 시내버스 정도나 말이다.

그래서 3번에 속하는 전기 철도 차량의 경우, 차량의 일정 부분이 전차선과 접촉하면서 끊임없이 전기를 공급받아야 한다. 가장 무난한 방식은 전차선을 선로의 위에다 달고, 열차는 천장에 달린 팬터그래프가 그 전차선과 접촉하여 전기를 받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어떤 철도가 전철화되면 선로 주변엔 일정 간격으로 어마어마한 개수의 전봇대가 세워지고 빨랫줄마냥 전깃줄이 선로를 따라 주렁주렁 달린다. 전철화는 아무래도 주변 미관에는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없다. 무슨 지중화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전철화 작업에는 초기에 굉장히 많은 시설 부설 비용이 들기 때문에, 초기 투자 비용을 능가하는 이익이 날 거라는 확신이 설 정도로 장사가 잘 되는 노선만을 선별하여 전철화를 해야 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는 팬터그래프 집전 방식이 최초로 쓰인 것은 아니다. 전차선을 열차의 위에다 설치하는 게 아니라 아래의 선로에다 같이 설치하는 방식이 먼저 쓰였다. 일명 제3궤조 집전식.

여기서 용어 설명을 좀 하겠다.
'궤조'란, 열차 하나가 다닐 수 있는 철길을 구성하는 길다란 선 모양의 쇳덩어리 하나를 가리킨다.
이 궤조가 특정 궤간을 유지하여 평행하게 둘 깔리면 '궤도'가 된다. 열차가 궤도를 벗어나는 사고를 일으키면 탈선했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모노레일은 궤도가 단 하나의 궤조로만 구성된 교통수단이다.
끝으로, 노반이 다져지고 침목도 깔리고 열차가 실제로 달릴 수 있는 형태로 궤도가 놓인 철도 시설 전체를 '선로'라고 부른다.

따라서 제3궤조라 함은, 한 궤도에 양 바퀴를 올려놓는 두 개의 궤조뿐만 아니라 전력을 공급하는 제3의 궤조가 하나 또 놓인다는 걸 일컫는다. 전기 철도라고 해서 무조건 치렁치렁 전차선과 전봇대가 달려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꽤 유명한 사진이다. 이것은 독일의 베르너 폰 지멘스가 발명한 세계 최초의 전기 기관차로, 1879년에 베를린 박람회에 출품하여 선보인 모습이다.
좌우로 총 6명의 승객이 앉은 객차가 3개(= 총 18명) 편성되었으니, 영락없는 놀이공원용 꼬마열차 크기이다. 궤간은 겨우 490mm로 일본 케이프 궤간의 절반, 표준궤의 1/3 규모에 불과하다. 박람회장 내부에 설치된 시험선은 300m 남짓한 길이였다고 한다.

규모가 워낙 작기 때문에 혹시 그냥 배터리로 달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건 아니고, 그 작은 선로의 중앙에 직류 150V짜리 제3궤조가 있었다. (오늘날 지하철이 사용하는 1500V가 아님! 0이 하나 빠졌다. 그냥 가정용 전기 콘센트와 비슷한 규모의 전압.)
기관차는 3마력짜리 전동기로 그냥 사람이 살짝 빨리 걷는 속도인 시속 6km를 냈다고 한다. 단, 객차를 끌지 않고 기관차만 혼자 달릴 때는 그 두 배의 속도도 가능했다고.

제3궤조 집전식은 선로 주변의 미관을 해치지 않으며 시설 부설 비용이 저렴하다. 차량의 위에 치렁치렁거리는 주변 시설이 없으니 특히 지하철의 경우, 딱 열차 하나만 간신히 지나갈 만치 터널을 작게 뚫어도 된다는 큰 장점이 있다. 건설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게 극단적으로 작은 터널은, 팬터그래프 집전 방식을 기준으로 건설된 지하철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위의 사진은 세계에서 최초로 건설된 지하철인 런던 지하철이다. 런던이야 제3으로도 모자라서 제4궤조라는 특이한 집전 방식까지 독자적으로 개발해서 쓰는 동네이다만, 얘네들뿐만 아니라 고무 타이어로 유명한 파리 지하철도 제3궤조요, 일본 도쿄의 지하철도 초창기에 개통한 두 노선인 '긴자'(1927) 선과 '마루노우치'(1954) 선은 직류 600V 제3궤조 집전식이다. 그러니 이들 지하철이 다니는 곳은 선로 주변에 전차선이 보이지 않는다.

전차선을 차량 아래의 선로에다 또 하나의 궤조 형태로 설치하는 방식은 저렴하고 미관에 좋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단점도 만만찮아서 선로에 사람이나 이물질이 떨어지면 안전이 굉장히 위협받게 된다. 또한 선로 분기나 교차가 발생하는 지점에서 전력을 공급해 주기 어려우며, 건널목 같은 데는 아예 절연을 시켜 줘야 한다. 선로가 침수되거나 결빙됐을 때도 골치가 더 아파지는 건 덤이다. (작년 겨울에 의정부 경전철이 운행 멈춘 것 기억하시는지?)

물론, 바닥에 놓인 전차선의 위에다 덮개를 씌워서 제3궤조를 사람이 밟는 것 정도로는 감전이 되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안전 장치는 다 있다. 하지만 그 경우 열차의 입장에서 집전 설비가 더 복잡해지고 유지 비용이 증가하는 건 불가피하며, 이런 한계로 인해 제3궤조 방식 전철은 고속화가 좀 어렵다. 영국에서 있는 수단 없는 방법을 다 동원하여 시속 160~170km 정도까지 달려 본 게 최고 한계라고 한다.

게다가 제3궤조로는 직류 수백 V, 혹은 정말 많아야 1000몇백 V 정도까지는 보내도, 이런 방식으로 수만 V에 달하는 교류 전기를 보내는 건 아무래도 위험하고 무리이다. 장거리 철도로 쓰기에는 전력 손실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3궤조 집전 방식은 고속철 내지 장거리 간선용으로는 쓰이지 않으며, 끽해야 광역전철이고 지하철, 혹은 아예 저비용 경전철용으로 용도가 굳어져 가는 추세이다.
롯데월드에 가 보니 범퍼카가 천장을 향하는 집전봉이 달려 있지 않고 바닥으로부터 전기를 공급받는다는데, 이게 개념적으로는 제3궤조식으로 바뀐 셈이다. 하루 종일 눈 코 뜰 새 없이 움직여야 하는 카에 배터리가 있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공중에다 전차선을 따로 부설하는 방식도 사실 역사가 길며, 우리나라만 해도 그 기원을 찾자면 서울에 노면전차가 다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옛날에는 전차선으로부터 전기를 끌어 오기 위해 '집전봉'(trolley pole)이라는 막대가 쓰였다. 이건 점과 점을 일치시켜 접촉해야 했기 때문에 전차선이 레일과 조금만 어긋나 있어도 전기 공급이 끊어지기 쉬웠으며, 특히 한 상태로 차량이 전진과 후진을 동시에 할 수 없었고 고속 주행도 당연히 어려웠다.

그래서 접촉면을 점이 아니라 전차선과 수직 방향인 선으로 바꿔, 선의 아무 지점에나 전차선이 닿아도 집전이 가능하게 한 뷔겔(bow collector)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것도 전차선의 높이 변화라든가 주행 방향에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어서 스프링이 달린 팬터그래프 집전 방식이 발명되었으며, 이것으로 오늘날의 신칸센이나 KTX 같은 고속열차가 달리고 있다.

뷔겔과 팬터그래프의 차이는 간단하다. 전자는 열차 지붕에서 전차선까지 닿는 데 꺾이지 않는 막대기 하나가 쓰이지만, 후자는 사람의 팔처럼 한 번 꺾이는 막대기가 쓰인다.

앞으로 전기 철도를 구경할 일이 있으면 집전 장치가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도록 하자.

Posted by 사무엘

2013/06/03 08:37 2013/06/03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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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에 살으리랏다

1. 철도 기도문

고마우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민족을 사랑하셔서 대한민국에 철도라는 아름다운 문명의 이기를 교통수단으로 주시고 특별히 새마을호와 KTX 같은 열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행길에 지나가는 은빛 레일을 성결(sanctify)하게 하시고, 이 철도 여행이 영을 소생시키고 강건하게 하는 시간이 되게 하며, 열차 운전을 위해 수고하는 기관사와 승무원들에게도 힘과 지혜를 허락해 주시길 원합니다.

더 나아가 철도를 통해 이 나라가 복을 받고 부강해지며, Looking for you가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열차 객실 안에서 다시 울려 퍼져 듣는 이들에게 희열과 감동을 주고, 모두 철도 사랑 국토 사랑 정신으로 무장한 철덕후로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열차 탑승을 앞두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드리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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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다니던 시절, 철덕 초창기에 찍었던 사진이다. 지금은 볼 수 없어진 열차가 대전 역 플랫폼에 들어오고 있다.

철도는 고품격 웰빙 교통수단이다. 승객의 시간을 벌어 주고 국가 경쟁력과 생산성을 제고하는 기반 인프라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디젤 엔진 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아름다운 VVVF 구동음 음향을 들으며 사색에 잠긴다.

철도는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도로 정체, 소음과 진동, 급정거· 급커브 스트레스, 차멀미, 차냄새로부터는 구원할 수 있다.

2. 나의 꿈과 상상력을 이끌어 주는 책

사용자 삽입 이미지
머리에 다 집어넣어 버리고 싶다.. ㅠㅠㅠㅠㅠ

사법고시나 교원 임용 시험이 이런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난 고시생 모드도 할 만할 것 같고 법조인이나 교사가 될 수도 있을 거 같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않으며, 난 더 먼저 시작한 오덕질과 생업이 따로 있으니 이건 취미로만..ㅠㅠㅠㅠㅠㅠ.

3. 깨어나고 싶지 않았던 꿈

얼마 전의 주말엔 주중에 쌓인 피로를 감당치 못해서 낮잠을 좀 잔 적이 있었다.
이제는 나이가 나이여서 그런지 본인은 10여 년 전처럼 밤샘은 절대로 못 하겠고, 꼬박꼬박 최하 6시간 반 이상 자지 않으면 낮에 반드시 그 시간만치 채워서 자야만 하는 수면 시간 보존의 법칙이 성립하는 중이다.

그리고 본인은 “불면증이 뭐야? 먹는 거야?” 체질이다. 눈 한번 감았다 뜨면 최하 2시간이 그냥 앞으로(뒤로는 아니고ㅎㅎ) 워프되어 있고 아주 개운하다. 꿈도 거의 안 꾼다.
그런데... 그 날은 하필 꽤 진지한 개꿈을 꿨다.

꿈이 뭔고 하니..
서울시에서 공휴일에 하루 종일 지하철의 운행을 멈추고 터널을 시민들한테 무료 개방했다. -_-;;
그래서 나는 친구/지인들을 데리고 선로 곳곳을 누비면서 지하철 배선 구조를 그들에게 설명하고, 특히 선로와 선로 사이가 연결된 지점들을 답사했다.
(가령, 충무로 역에는 승객만 3, 4호선을 환승하는 게 아니라 전동차도 3, 4호선을 상호 건널 수 있는 비밀 통로가 존재한다)

꿈 꾸는 중에는 머리가 온전히 돌아가지 않고 사리 판단을 100% 온전히 할 수 없으니, 지하철이 올스톱했을 때 서울 시민들의 멘탈이 얼마나 붕괴되는지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허나, 그 와중에도 나는 신설동 역 지하 3층의 봉인된 승강장을 기억하고 찾아갈 생각을 할 정도의 지각이 있었다.

아마 용인 경전철을 시승했던 경험이 꿈에 그런 식으로 나타난 것 같다.
이거 마치 요셉이 자기 아버지와 형들에게 황당한 꿈 이야기를 하는 심정이다. ㅋㅋㅋ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3/06/01 08:29 2013/06/01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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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선의 역사

금강산선에 이어서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의 산악 철도 얘기를 좀 더 늘어놓아 보겠다. 즐거운 한국 철도 역사 탐방 -- 태백선 편이다.

태백선은 중앙선(제천)과 영동선(동백산) 사이에 있으며, 우리가 서울에서 강릉으로 열차를 타고 갈 때 거치는 노선이다. 고속철이나 대도시 광역전철이 아니면서 대한민국에 2013년 현재 마지막으로 건설된 지방 대 지방 ‘신규 간선 철도’로도 잘 알려져 있다.

태백선이 없던 시절엔 서울에서 강릉을 갈 때 무려 경상북도 영주까지 내려가서 영동선을 타고 다시 올라가야 했으니, 이는 어마어마한 우회와 낭비가 아닐 수 없었다.

태백선은 경부선처럼 처음부터 서울-부산 같은 식으로 전구간이 작정하고 한 번에 확 구상되고 건설된 게 아니다. 서로 다른 여러 소규모 철도들이 독립적으로 찔끔찔끔 건설되고 연장되어 왔는데 그것들을 통합하면서 최종적으로 태백선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뿐이다. 이름도 여러 번 바뀌었다.

위키백과의 다음 그림이 태백선의 복잡한 내력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철도 동호계에서 유명한 ‘조사부장’이라는 분이 만든 것이라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금강산선은 일제 강점기 때 건설되었다가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기 때문에 새로 치면 마치 멸종한 '모아'(moa)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태백선은 해방 이후에 전적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주도 하에 건설되었다.
생각을 해 보시라. 예전에 한반도에는 탄광과 공장이 거의 다 북부 지방에 몰려 있었는데 그게 이제 전부 북한 차지가 되어 버렸다. 남한으로서는 목숨을 걸고 자기네 지역에 있는 탄광이라도 개발해야 하지 않겠는가. 산업선 철도의 건설은 국가의 생존이 걸린 과업이나 마찬가지였다.

1955년에 처음으로 제천-영월(약 34.1km) 구간이 건설된 것이 영월선으로, 이것이 태백선의 전신 되시겠다. 그 후 이 철도는 연장되어 함백 역까지 이어졌으며 함백선이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그런데 함백 역에서 동쪽으로 더 연장을 하기가 어려웠다. 지형의 특성상 급커브와 급경사가 불가피했다.
그래서 함백이 아니라 전역인 예미에서 새 선로를 뻗어서 조동, 증산, 정선을 이었으며, 제천에서 정선까지를 통틀어 정선선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함백선은 예미에서 함백까지 가는 구선로만을 가리키는 지선이 되었다.

그럼 함백은 막다른 종착역(terminal)으로 전락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함백에서도 조동으로 가는 선로는 1975년에 추가로 건설되어 함백선에 편입되었다. 단, 저 그림에서 볼 수 있듯, 급경사를 감안하여 동그란 똬리를 그리면서 우회하는 형태가 되었다. 이것은 2013년 현재 대한민국 철도에 등장하는 4개의 똬리굴 중 하나이다. (중앙선에 두 곳, 영동선에 스위치백을 대신하여 건설된 솔안 터널, 그리고 저것)

결국 예미에서 조동으로 가는 길은 곧은 길과 함백을 경유하여 우회하는 길 두 갈래가 존재하게 됐다. 요약하자면 함백으로 가는 길이 가장 먼저 생겼지만, 그 뒤에 함백을 거치지 않고 바로 조동으로 가는 지름길이 나중에 생겼고, 함백에서도 조동으로 똬리를 틀며 가는 길이 가장 늦게 생겼다.

지선인 함백선과 태백선 본선은 지리적으로 서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이건 혹시 태백선의 부분복선 구간으로 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으며 이들은 서로 독립적인 단선이 둘 존재하는 형태일 뿐이다. 양 선로에서 상행과 하행이 모두 오간다.

다만, 똬리굴이 없는 지름길은 우회가 없는 대신, 법적인 설계 한계에 육박할 정도의 급경사를 자랑한다(30퍼밀). 2도가 채 안 되는 오르막도 철도 차량에게는 굉장한 부담이다.
그래서 무거운 화물 열차들은 상· 하행을 막론하고 함백선을 거쳐 가는 편이었다. 여객 열차는 맞은편에서 오는 열차와 원활히 교행하기 위해 함백선으로 진입하는 경우가 있었다고는 하는데 요즘은 그쪽으로 지나는 열차가 없다고 그런다.

태백선과 함백선의 관계는 이 정도로 충분히 설명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새로 건설된 예미-조동 지름길 선로(현재의 태백선 본선)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라멘(독일어 Rahmen) 식 교량 위에 놓여 있다. 일명 라멘교. 열차가 여기를 지날 때 창 밖으로 아래를 보면 함백선이 응당 내려다 보인다. (이 시점에서 FSM교의 'RAmen!' 구호라든가, 면발과 국물과 김치의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라면교가 떠오른다면 지는 거다 ㄲㄲㄲ)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게 1960년대에 조동-예미 구간이 개량되고 정선선이 건설되고 있던 동안, 증산(현재의 민둥산)에서는 정선뿐만 아니라 고한으로 가는 철도도 건설되었으며, 동쪽에서도 황지(현재의 태백)에서 백산까지 현재의 영동선으로 치면 지선에 해당하는 철도가 건설되어 있었다. 이제 슬슬 두 철도가 동서로 한데 이어져야겠다는 스멜이 스물스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3년에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가장 마지막으로 고한과 황지가 연결됨으로써 중앙선과 영동선을 한데 잇는 철도가 완성되어 최종적으로 태백선이 완성되었고, 정선선은 함백선과 마찬가지로 태백선의 지선이 되었다. 서울 방면에서 강릉으로 바로 올라가는 용도로 쓰이는 태백삼각선은 함백선의 똬리굴과 마찬가지로 1975년에 건설되었으며, 이 시기에 중앙선과 태백선, 영동선 구간은 전철화까지 완료되었다.

하지만 자동차 도로 교통이 발달하고 석탄 산업이 망하면서 이들 산업선의 지위 역시 오늘날 매우 쇠락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뭐, 화물 수요가 꾸준히 있고 사북-고한 구간은 강원랜드-_- 때문에 여객 수요가 있으니, 완전히 망한 수준은 아니지만 말이다.

다만, 평창 동계 올림픽에 맞춰서 제천도 아니고 아예 원주에서 분기하는 강원도 행 철도가 복선 전철로 깔끔하게 건설된다면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릉에 빨리 갈 수 있게 될 테고, 기존 태백선의 여객 수요는 크게 감소하는 게 불가피하지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3/05/29 08:40 2013/05/29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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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최초의 전기 철도, 금강산선

일제 강점기 때 우리나라에는 금강산선이라는 철도가 있었다. 경원선 철원 역에서 분기하여 국토의 딱 중부를 동서로 횡단한 뒤 금강산 근처의 내금강 역까지 가는 116.6km 길이의 철도이다. 처음에는 일본 내륙 철도 스타일의 협궤로 건설되었지만 이내 표준궤로 형태가 변경되어 전구간 개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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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선은 3·1 운동으로 인해 전국이 떠들썩하던 1919년 3월 말에 건설이 논의되어 1924년에 부분 개통하고 1931년이 돼서야 전구간 개통했다. 건설 도중에 현장이 극심한 수해를 입기도 하고 일본 본토로부터 납품받을 예정이던 열차 부품이 그 유명한 관동(간토) 대지진 때 소실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 금강산선은 한국의 철도 역사에서 무척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바로 한반도에 건설된 역사상 최초이자 일제 강점기 시절을 통틀어 유일했던 전기 철도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기존 글들을 뒤져 보면 전철이라는 금강산선의 위상에 대해 '최초'라는 타이틀은 많이 강조하지만, '유일'이라는 점은 상대적으로 덜 부각시키는 편인 듯.

전기 기관차는 매연을 뿜지 않으며, 물이나 석탄을 보충할 필요가 없이 전차선으로부터 에너지를 곧장 공급받아 아주 조용하고 우아하게 나아간다. 칙칙폭폭 같은 소리도 안 난다. 열차라고는 증기 기관차밖에 없던 그 시절에 전기로 달리는 열차가 있었다니 참으로 획기적인 면모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일제 강점기는 디젤 기관차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디젤 기관차가 도입된 때는 6·25 중이던 1951년이다. 금강산선을 달리던 전기 기관차가 시대를 얼마나 앞서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금강산선에 전기를 공급하던 원천은 인근의 산악 지대에 건설된 수력 발전소였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기관차의 차종들을 2000호대부터 8000호대까지 번호를 붙여서 식별하지만, 그때는 기관차마다 이름이 붙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전기 기관차는 '데로'라고 불렸다.

전기 규격은 팬터그래프를 이용한 직류 1500V. 그러니 요즘 어지간한 지하철과 동일한 규격이 되겠다. 100km가 넘는 간선이면 교류를 써서 더 고압의 전기를 보내는 게 효율이 더 좋을 법도 해 보이나, 그 당시엔 더 정교한 변압 시설을 갖출 여건이 안 됐던 것 같다.

금강산선은 기업이 영리를 위해 건설한 사철이었으며, 거리당 임률도 꽤 높은 편이었다. 용도는 대도시 통근을 위한 광역전철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하자원 수송을 위한 산업선도 아니었으며 건설 목적은 다름아닌 여가· 관광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웰빙 열차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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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은 예나 지금이나 천혜의 경치를 자랑하는 관광지로 명성이 자자했기 때문에 금강산선을 타고 금강산을 구경 가러 일본과 중국에서도 관광객이 왔으며 학교에서는 수학여행 코스로도 애용되었다. 서울에서 경원선과 금강산선을 직결하는 열차가 운행될 정도로 금강산선은 장사가 굉장히 잘 되었다고 한다. 내 기억이 맞다면 열차는 하루에 7번 정도 다녔다고.

이게 왜 전철로 건설되었느냐 하면, 노선의 성격상 스위치백까지 있을 정도로 험준한 오르막을 오르는 산악 철도이기 때문이다. 증기 기관차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힘 좋은 전철을 투입하고도 정차를 가장 적게 하는 최고속 열차로 금강산선 전구간을 편도로 완주하는 데 4시간 가까이 걸렸으니, 표정 속도는 오늘날의 지하철보다도 살짝 느린 시속 30km대에 불과했다. 복선은 아니고 물론 단선 전철이다.

이렇듯, 금강산선은 우리나라 최초+유일한 전철 겸 관광 컨셉 노선으로서 잘 굴러가고 있었으나, 그 영광은 오래 가지 못했다. 1944년에는 일제가 '전쟁 물자 공출' 명목으로 금강산 종점 부근의 선로를 무려 49km나 뜯어내는 병크를 저질러서 금강산선은 금강산까지 갈 수 없는 노선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해방 후 38선 시절에는 전구간이 북한으로 넘어가 버렸다. 6·25까지 터진 뒤부터는.. 그저 묵념.

앞의 지도에도 나와 있듯, 금강산선은 전반적인 선형이 오늘날의 군사 분계선과 묘하게 비슷하다. 경원선이나 경의선은 북쪽으로 향하는 종축 노선인 반면, 금강산선은 횡축 노선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철원 일부 지역은 대한민국이 수복했기 때문에 정말 극소수 일부 구간에 존재하는 금강산선의 옛 흔적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북한에 속한 일부 구간은 북한이 2003년에 금강산 댐을 건설하면서 아예 수몰되기도 했다. 철덕으로서 아쉬움이 교차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생각할 점은, 강원도는 남한과 북한 공히 양국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이라는 점이다. 방향만 다를지언정 양국의 입장에서는 최전방 지역인 데다 지형도 험준한 산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남북한이 통일되더라도 이제는 서울에서 금강산까지는 그냥 관광버스가 다니지 과연 철도가 다시 건설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금강산선은 재건되더라도 예전과 같은 선형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질 것이다.

금강산선 이후로 대한민국에 전기 철도가 다시 등장한 건 무려 1970년대 초에 태백선과 중앙선이 산악 철도 산업선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전철화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때 국가의 표준 전철 규격은 60Hz짜리 교류 25000V로 정해졌으며, 그 이름도 유명한 알스톰 사의 8000호대 전기 기관차가 도입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직류 1500V짜리 서울 지하철이 개통하기도 했다.

사실, 중앙선· 태백선 일대는 그 시절부터 만성적인 수송력 부족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래서 이론적으로는 전구간을 복선화라도 해야 하는데 그러자니 시간과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 그리고 선로 말고도 열차의 소통을 심각하게 저해하던 병목 중 하나가 바로 디젤 기관차의 열악한 출력이었다고 하니, 당시 전철화가 얼마나 시급했는지 짐작이 간다.

전기 기관차는 가감속 좋고, 한 기관차에 어마어마한 양의 객차/화차를 연결할 수 있으니, 복선화가 아니라 전철화만으로 수송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을 정도였다. 오히려 환경 이슈 같은 건 논의 대상조차 아니었다.

한편, 북한은 장거리 간선에 직류 3000V와 평양 지하철에 직류 750V를 쓰고 있어서 우리나라와는 전기 규격이 일치하지 않는다. 더구나 북한은 지하철은 팬터그래프가 아니라 제3궤조 방식으로 집전한다. 전철화 비율 자체는 한동안 북한이 남한보다 더 높았다고 하나, 전기 공급 자체가 원활하지 못해서 말짱 황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3/05/26 08:39 2013/05/26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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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적인 철도 드립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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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12. 23.
1984. 1. 1.

당신은 이런 날짜들만 봐도 가슴이 설레고, 우리나라 역사 속의 순간들이 곧장 떠오르는가?

내가 거의 9~10년 가까이 철도를 빨면서 느낀 건데, 철도는 혼의 구원만 빼고 인간 정서에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형태의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
학창 시절에 국사 과목을 지지리도 싫어했던 나 같은 사람도 연표 암기를 스펀지가 물 빨아들이듯이 할 수 있게 해 준 존재가 바로 철도이다. 정말 Looking for you를 3천 번 정도 들어 보면 사람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내 아이가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고 역사와 지리에 애착을 갖고 매사에 감사할 줄 알고 문과· 이과· 예체능을 골고루 갖춘 인재가 되길 원하는가? 그럼 어릴 때부터 온몸으로 철도를 경험시키고, 철길 주변에서 아이를 키워라. 난 대학 졸업할 때가 다 돼서야 철도를 접한 완전 늦깎이여서 그렇게 못 자란 게 한이다.

2000년대 초에 아직 코레일이 출범하기 전에 우리나라의 철도청은 정부 기관이었으며 승무원은 죄다 ‘공무원’이었다. 그리고 철도는 국영, 독점이라는 수식어를 받는 가장 경직되고 사회주의적인 교통수단이었다. 적자가 나도 그냥 세금으로 메우면 되고, 마케팅· 시장 경쟁 같은 건 필요 없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런 체계 하에서도 최고급 열차인 새마을호에서는 운행 직전과 종료 직전에 Looking for you라는 희대의 충격적인 음악이 흘러나왔다니! 이것은 도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으나 가히 신묘불측의 영역이요 주최 측의 농간이며, 치밀하게 계획된 음모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이 4분 20초짜리 음악 한 곡 때문에 당시 한 20대 초반의 대학생이 trance를 경험하고 완전히 철덕의 길로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을 Looking for you의 멜로디와 박자에 맡기자, 온갖 철도 지식과 우리나라 역사와 지리, 음악, 과학 등에 대한 향학열이 미친 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사람의 인생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버린 철도청 내지 그 후신 코레일은 날 빨랑 책임져라.. (엉? ㅋㅋ)

“지식은 우쭐대게 하나 사랑은 세워 주느니라.”
“오직 사랑 안에서 철도를 논하며”
“너희 속에 있는 철도 안의 소망의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며”

지금까지 내게 주어진 적이 있는 과분한 칭호들

철도 매니아, 진정한 의미의 오타쿠
철도교 교주
철도교 광신자
철도의 요정 (!!!)
천국에서도 철도를 만들 사람

“MALTA는 이 홈페이지 보면 상 줘야 된다” (Looking for you 음악의 작곡자!)
“철도청에서 너한테 상 줘야 된다”
“형제가 철도청 못 들어가면 그건 국가적인 손실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3/05/24 08:22 2013/05/24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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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 저수지 답사를 마친 뒤 다음으로 본인이 간 곳은 또 다른 철도 성지였다.

2. 철도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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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니 이제 내가 여기를 대중교통이 아닌 자가용으로 방문하는 날도 찾아오는구나! 그렇잖아도 의왕 역에서 철도 박물관까지 가려면 수백 m 이상 걸어야 했을 텐데 말이다.
주차는 공간이 아주 넉넉하고 요금 걱정도 없고 아무 문제 없었다.

예전에 철도 박물관은 겨우 몇백원 대의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저렴한 입장료를 징수했으며 그나마도 철도 회원은 동반 1인까지 아예 무료 입장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가 보니 그런 대인배스러운 제도는 언제부턴가 없어져 있었다. 일반인은 입장료 2천원을 내야 하며, 철도 회원 혜택 같은 거 없다.

물론 난 철덕으로서 예전에도 여길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기를 또 찾아간 이유는, 여기가 반월 저수지로부터 10km가 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이기 때문에 겸사겸사 또 찾아갈 만한 명분이 성립하고, 개인적인 볼일이 좀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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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경부선 선로에 대한 좋은 전망을 제공하는 것도 철도 박물관으로서 장점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아까의 KTX 촬영지와 마찬가지로, 이 박물관의 근처에도 저수지가 있다는 점이다.

철도 박물관에서 본인은 부족했던 박물관 관련 사진을 찍고 자료를 수집했으며, 방문 기념으로 구내 서점에서 다음 아이템들을 질렀다. (정 용태 님, 보고 계신지? 레일러 14호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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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판매하던 철도 박물관 도록은 이제 절판되고 없었다. 있을 때 사 놓길 잘했다. 그 대신 동인지 <레일러>를 박물관에서 정기적으로 구입할 수 있다.

그리고 박물관 직원을 불러서 새마을호의 역사와 관련된 날짜가 두 군데 잘못 소개되어 있는 걸 고쳐 달라고 건의를 했다.
차량실에 새마을호 PP 디젤 동차가 1987년 7월 1일부터 운행을 시작했다고 소개되어 있는 걸 7월 6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고,
반대로 새마을호 PP가 최초로 서울-부산 4시간 10분 운행을 시작한 것도 아니라고 얘기해 줬다. 그건 PP가 등장하기 전에 1985년 11월 16일부터 달성된 것이니까 말이다.

3. 오봉 역

철도 박물관 다음으로 승용차로 가 보지 않을 수 없는 철도 명소로는 오봉 역을 빼놓을 수 없다.
얘는 경부선에서 분기하는 지선인 남부 화물기지선의 끝에 있는 역으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여객 영업 없이 화물만 취급하는 역이다.
먼 옛날에는 경부선 전철 의왕 역의 이름은 '부곡'이고 오봉 역이 '의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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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박물관과 오봉 역의 거리는 4km도 채 되지 않는다.
입구에 경비실이나 차량 진입 차단기 같은 건 없는지라, 별 부담 없이 차를 끌고 들어가 볼 수 있었다. 단, “직원 차량 외 주차 금지”라는 압박을 주는 표지판이 있긴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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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건물은 이렇게 생겼다.
철덕들 중에는 아예 승강장 내부로 들어가서 사진 촬영을 한 사람도 있는 듯하던데 난 차마 그렇게는 안 하고 잠시 있다가 다시 나갔다. 그 대신 이런 근처의 선로 사진을 좀 남겼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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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과 부산 일대도 면적이 무척 넓고 철도 배선이 의외로 복잡하며, 항구나 공업 단지로 빠지는 지선 철도가 많기 때문에 승용차를 끌고 답사할 만한 곳이 무척 많을 것이다.

4. 김포 공항 근처

수도권 남부의 “반월 저수지-철도 박물관-오봉 역” 3대 명소를 아우르는 테마 여행을 이렇게 잘 마쳤다.
임무를 다 마쳤으니 이제 집에 갈까 생각했는데 아직 시간이 좀 더 남아 있었고, 철도를 출사한 날 비행기도 같이 출사하여 둘을 비교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래서 점심을 먹을 생각도 포기하고, 국도 1호선을 타고 서울 서부로 간 뒤 곧장 다시 김포 공항으로 향했다. 해가 지기 전에 가야 하니 말이다.

반월 저수지가 KTX 촬영의 명당이라면, 오쇠 삼거리는 비행기 출사의 명당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정말 공교롭게도 여기도 전철 김포공항 역으로부터는 3.2km 정도 떨어져 있다. 다만, 여기는 버스가 수시로 많이 지나다니는 편이기 때문에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기는 비교적 수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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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주변의 흔한 보안 경고문.
여기는 시끄러운 비행기 소리 때문에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무지이지만, 엄연히 국유지이기 때문에 민간인이 무단으로 이곳 땅을 이용하려는 어떤 시도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래도 처음 와 봤을 때에 비해서는 주변에 이것저것 공사도 많이 진행 중인 것 같았다.
덕분에 주차는 샛길 인근에 아무데나 얼마든지 해도 되니 걱정할 것 없다.
여담이지만 이 공항 주변의 황무지 일대에는 군부대인지 예비군 훈련장인지 어쨌든 군사 시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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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여기 온 보람이 있었다.
지금 비행기가 놓인 저 활주로 말고, 왼쪽에도 활주로가 하나 더 있었으며 공항 내부의 비행기는 그 왼쪽 활주로에서 이륙을 하는 편이었다.
김포 공항에서는 아까 KTX보다도 더욱 자주, 수 분 간격으로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비행기가 이착륙했다.

이륙은 본인이 서 있는 공항 남쪽으로 하는 게 아니라 북쪽으로 한 관계로 근접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하지만 착륙은 다행히 근접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마치 UFO처럼 아주 멀리서 불빛만 어렴풋이 보이던 비행기들이, 형체와 비행 소음이 갈수록 커지더니 공항 담장 너머로 사뿐이 착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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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덕들은 비행기 한 대만 보면 보잉 7xx 같은 기종은 물론이고 소속 항공사 같은 것도 곧바로 입에서 튀어나올 것이다.
의외로 여객기 말고도 소속이 어딘지 모를 터보프롭 경비행기 같은 것도 착륙하는 게 종종 목격되곤 했다.
그런 작은 비행기라면 모를까 중형 여객기 이상 되면, 랜딩기어가 활주로에 닿을 때 마찰로 인한 연기가 튀는 게 이 멀리서까지 보였다.

이곳에 공개하지 않은 다른 사진과 동영상도 많이 찍었다. 소기의 방문 목적을 달성했다.
내가 선 지점은 여전히 공항 담장으로부터 500m에 가깝게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그래도 비행기의 착륙 경로와 일직선상에 있고, 지대가 살짝 높은 덕분에 보다시피 공항 활주로까지 어렴풋이 보인다는 점이 좋았다. 다음에 또 촬영할 기회가 있을 때는 다른 장소도 탐색해 봐야겠다.

동영상들을 보니, 보잉 737급의 여객기가 내 머리를 지난 뒤, 활주로에 착지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23~25초였다. 그리고 내가 서 있는 곳에서 활주로의 착륙 지점까지의 거리는 정황상 거의 1km는 된다. 담장에서 활주로 사이에도 수백 m에 달하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착륙 직전 상태인 비행기의 주행 속도는 대략 시속 140~150km대는 된다는 추정을 할 수 있다.

시간이 조금만 더 늦었으면 퇴근 시간대가 되어 귀가하는 길이 도로 정체로 애로사항이 꽃폈을 것이다.
만약 그랬으면 난 정체 시간대를 피해서 그냥 밖에서 저녁을 먹고, 차에서 한두 시간 좀 자면서 아예 밤 9시 이후까지 기다렸다가 귀가하려 했다. 난 어차피 차에서 야영을 하는 걸 아주 좋아하니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 서울 외곽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길목만 좀 막혔을 뿐, 서울 시내에서의 자동차 전용 도로 주행은 그다지 최악의 상태는 아니었다. 그리고 무사히 잘 돌아왔다.

Posted by 사무엘

2013/05/07 08:31 2013/05/0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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