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교리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원색적인 문구에 잘 요약되어 있듯, 뭐니뭐니해도 내세관이 아주 분명하다는 게 특징이다.
이걸 믿지 않는 분이라면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고 본인 역시 그들을 설득할 생각이 없다.
다만, 그 교리가 논리적으로 성립하려면, 어떤 사람이 구원받아서 하늘로 가며 하늘나라에서의 삶은 어떨지 이런 면모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1. 어린아이들은 무조건 하늘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내가 예전 글에서도 쓴 적이 있지만, 너무 어려서 스스로 선이나 악을 판단할 수 없으며 아직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질 능력이 없는 아기, 영· 유아, 어린이, 정신박약아, 지적 장애인은 죽으면 무조건 하늘로 간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분명한 논리로 요약할 수 있다.

- 그들은 구원자 예수님을 자기 의지로 스스로 영접하지 못하지만, 거부하지도 않았으므로(못하므로)
- 그들이 태생에서부터 아무 죄가 없고 순수하고 깨끗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법적으로 그들에게 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에

아멘!
다윗이 삼하 12:23에서 이 사실을 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어른들의 욕심과 잘못 때문에 이런 애들이 죽는 것은 분명 슬픈 일이고 죄악의 결과이다. 당장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하여 태어난 첫 아이도, 다윗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명목으로 1주일을 열병을 앓다가 죽었다. 애가 무슨 잘못이 있나?

하지만 그들이 죽어서 하늘로 가는 것 자체는 나쁜 게 아니며, 오히려 아이를 잃은 부모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 다윗은 죽어서 하늘나라에서 그 아이도 다시 보게 됐을 것이다.

심지어 2000여 년 전에 예수님이 태어나던 당시에도, 헤롯 왕이 예수님의 동갑내기 2살 이하 유아들을 대상으로 학살극을 저지른 적이 있다. 온 인류의 구원자가 태어난 덕분에 주변의 동갑내기 아기들이 다 뒈져셔 지옥으로 떨어졌을 리는 없잖아? 아이들이 죽어서 가는 곳에 대해서는 이 이상 어떤 논쟁도, 이견도 필요하지 않다.

2. 그러나 동물은 죽으면 끝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기를 쓰고 기독교의 지옥 교리를 부정한다. 그 대신 내세우는 것이 영혼 멸절이다. 즉, 죄인은 그냥 자기 인격체가 완전히 없어지고 끝난다는 것.
그러나 성경에 따르면 영혼 멸절은 사람이 아닌 다른 짐승들에 한해서만 성립한다.

발생· 유전학적으로 사람과 굉장히 비슷한 유인원 동물이 존재하여 소위 진화론의 근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말을 하는 것, 불을 다루는 것 이상으로 사람이 짐승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영적인 위상이라고 성경은 말한다(전 3:21).

사람은 불멸이지만 짐승은 죽으면 그걸로 끝이다. 가령, 어떤 개가 아무리 충성스럽고 어지간한 인간 말종 개차반보다도 낫다 하더라도, 개는 개일 뿐이다. 짐승은 지옥에 가지 않는 것만큼이나 하늘로도 가지 않으며 완전히 없어진다.
지금 당신이 현 세상에서 보는 바로 그 동물은, 비록 지금 아무리 사랑스럽게 보일지라도 내세에서 볼 수 없다. 이 사실을 알면 사람과 짐승 사이의 우정(?)을 다룬 각종 문학 작품에도 그리 애착이 가지 않게 될 것이다.

3. 사람 식별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성경에는 예수님 같은 생사람을 못 알아봐서 실수를 한 주변 사람들 얘기는 나오지만, 정작 고인을 못 알아본 경우는 없다.
예수님이 변모하시고 모세와 엘리야가 내려왔을 때, 제자들은 모세와 엘리야의 생전 모습을 전혀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사진 같은 것도 없던 시절!) 그들을 바로 알아봤다(눅 9:28-34).
그리고 예수님이 미래에 지구에 재림하실 때도 세계 어디에서도 이 사람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못 알아볼 사람은 없을 거라고 성경은 말한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할지 그 디테일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하늘나라에서는.. 신참이 한 명 들어올 때마다 마치 공항 입국장처럼 지인들이 이름 적힌 피켓 들고 사람 찾는 광경은 없을 걸로 보인다. 시대를 초월한 상봉이 이뤄질 때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1번과도 연동하여, 하늘나라에 가서 어떤 사람으로부터 “내가 예전 세상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지적 장애아였을 때 형제님이 나를 잘 보살펴 주셨군요. 정말 고맙습니다” 같은 인사를 들을 걸 생각해 보라.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게 이런 데서 나오는 법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왜 장애인을 만들었는지에 대해서조차도 답을 주고 있다. 이런 게 감히 아메바· 원숭이 진화론이나 귀신 이야기 따위와 비교가 되겠는가!

4. 이 땅에서와 같은 결혼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늘에 있는 천사와 같다”라는 한 마디로 모든 논란이 끝난다.
하늘에 있는 사람들은, 육신을 입고 현 세상에서 살던 때와 같은 결혼의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배우자가 죽었을 때 재혼이 가능하다. 성경은 간음과 음행을 그토록 싫어하지만, 과부에게 평생 수절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이건 무척 중요한 개념이란 걸 알아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다윗의 범죄처럼 간음을 재혼으로 합리화하기 위한 살인에 대해서도 이미 다 예상하고 언급하고 있고, 이 체계를 악의적으로 비비 꼰 트집성 질문에 대해서도 해답을 마 22:23-33에서 마련해 놓았다. 난 성경에서 이 논리 체계를 발견하고서는 개인적으로 무릎을 탁 치고 감탄했었다.

더 현실적인 예를 들어 보겠다.
소설 <상록수>의 스토리를 잘 아실 것이다. 지금 안산에 가면 상록수 공원이 있는데, 거기에는 실제 여주인공인 최 용신하고, 그분과 약혼한 사이였던 김 학준이 나란히 묻혀 있다. 김 학준에게는 훗날 실제로 결혼한 부인(길 금복 여사..)이 따로 있었는데도 말이다.

근본적으로는 김과 최가 연애 기간이나 약혼 기간을 너무 길게 잡지 말고 가능하면 어서 결혼을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게 훗날 문제가 되긴 했다. 또한, 옛 약혼녀 옆에다 묻어 달라고 부탁한 김의 이런 유언 때문에 가정에 내부적으로 좀 갈등이 일기도 했다. 상식적으로 충분히 갈등이 있을 만도 하지 않은가? 이건 대놓고 저지른 불륜은 아니지만 뭔가 좀 미묘한 감정 싸움이다.

허나, 세 분 다 크리스천이었고, 세 분 다 지금은 고인이 되어 하늘에 있다. 그들이 거기서 한데 만나서 이 세상에서와 같은 질투와 갈등을 겪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시겠는가?
이런 맥락에서 보면, 세상 매체에서 말하는 '영혼 결혼식'이라는 건 부질없는 개념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5. 다른 건 못 가져가도 자식은 가져간다

저 하늘나라에 우리가 도대체 돈을 가져가겠는가, 집과 차를 가져가겠는가, 심지어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가져가겠는가?
다른 건 못 가져가도 육신의 자식은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보고 지내게 된다.
아 물론, 이건 제대로 키워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식에 한해서 말이다.
아니면 차라리, 앞의 1번 항처럼 엄청 어렸을 때 불의의 사고로 잃은 자식이라면, 부모가 구원받았다면 최소한 하늘에서는 다시 만날 수 있다.

요즘 정말 결혼할 엄두를 못 내고 애 낳고 키울 엄두를 못 낼 저출산 시국인 거 나도 너무나 잘 안다.
또한 하나님은 음행을 극도로 정죄하는 것만큼이나 그와 반대로 결혼한 부부끼리의 사생활은 그 어떤 형태라도 무조건 존중해 주시며, 이는 자녀 계획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어느 게 정말 영원을 생각하는 투자인지 크리스천이라면 이 변수도 잘 생각해 봐야 한다.

6. 이 땅에서 갖고 있던 기억은 과연?

이건 무척 재미있으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이다.
현 세상에서 습득된 개개인의 인격과 지식이 그곳에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가령, 본인의 철도 덕후 기질은 하늘나라에서도 변함없을 것이기 때문에 본인은 거기서 온 우주를 누비는 철도를 구상하고 있을 것이다.

거기서는 육신의 성별이나 나이가 의미가 없을 것인데,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부활한 예수님처럼 33세 남자처럼 될까? 내 애인과 어머니까지? 거기까지 당장 여기서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세상에서 사랑하고 친하게 지내던 가족과 지인들 중 상당수가 예수 안 믿고 죄 가운데 죽어서 지옥· 불못으로 영원히 이별을 하고 말았는데 우리가 과연 하늘나라에서 기쁘게 지낼 수 있겠나?”라는 고전적인 질문이 있다.
일단,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따지기나 하지 말고 당장 가족과 지인에게 복음부터 전해야 할 것이다. -_-;; 그렇게 자기 할일부터 다하고 그것 때문에 무시와 따돌림과 핍박까지 당했는데도 그들이 끈질기게 복음을 거절한 것이면 그들이 자업자득이고 우린 덜 슬프겠지.

(그리고 당신의 신앙을 비웃고 조롱할 가능성이 훨씬 더 많은 사람들과 당신이 지금까지 지나치게 잘 어울리고 아쉬울 것 없이 지내 왔다면, 당신의 영적 본분에 대해서도 어차피 다시 생각을 좀 해야 할 것이다.;;)

큰 백왕좌 심판 후에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자기 백성들에게서 눈물을 닦아 주실 거라는(계 21:4) 약속이 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성도의 죄악을 다시는 기억도 하지 않는 것처럼(할렐루야!), 그리고 반대로 지옥에 떨어진 죄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기수열외'되고 단절되고 잊혀지는 것처럼, 이때 우리는 과거의 '흑역사'에 해당하는 온갖 쓰라리고 아픈 기억들이 말 그대로 '포맷'되기도 할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이 세상에서의 기억은 영원히 남는 것도 있고 잊혀지는 것도 있지 않을까 싶다.

7. 고참, 말년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무한대에다가는 1을 더해도 무한대이고 1억을 더해도 무한대이다. 하늘나라도 영원하고 지옥· 불못도 영원하다.
하나님의 사고방식에는 은퇴· 졸업 같은 게 없다. 수료만 있을 뿐이다. 나는 이 말을 어렸을 때 주일학교를 수료하고서 목사님에게서 들었다.
마치 마태복음 1장은 오로지 '낳고'만 있지, 창세기 5장처럼 '죽었더라'가 없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랄까?

군대에 고참· 말년이 있고 이등병부터 말년병장까지 계급별로 온갖 독특한 문화가 존재하는 건 '제대'가 있기 때문이다.
군대에 영원무궁토록 갇혀 있어야 한다면 그런 관행이 생기겠는가? -_-
명심하자. 내세에서는 고참, 말년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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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늘나라와 지옥 구성원하고, 하나님이 실제로 생각하시는 하늘나라와 지옥 구성원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굉~장히' 차이가 크다.
예수님을 절대적인 의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 사람이라면 절대적인 선과 악 관념이 있을 수가 없다. 그저 상대적인 권선징악 패러다임에다 “이런 사회 시스템 하에서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지”, “남들만치만 하면 되지”, “이 상황에서는 어느 누구라도 해먹지 않을 수 없지”, “죄도 적당히 즐길 줄만 알면 되지”의 악순환을 벗어날 수 없다.

완전히 반성경적인 내세관을 전달하고 있는 웹툰 <신과함께> 같은 걸 보아라, 기반 사상이 딱 저것이다. (개인적으로 내용을 무척 재미있게-_- 봤으나, 안타깝긴 하다.;;) 내세를 소재로 하면서 성경을 배제한다면 솔직히 저 수준을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으니 말이다.

하늘나라(그리고 지옥)에 대해서 이 글과 비슷한 방향으로 알 레이시 목사가 디테일을 재미있게 잘 논증한 바 있다.
예전에 말씀과 만남 출판사에서 <천국은 있다>(Window of Heaven)라는 책이 나왔고, 이걸 현재 그리스도 예수안에 출판사에서 <천국과 지옥 바로 알기>라고 천국편과 지옥편 합본을 내놓았으므로 관심 있으신 분은 참고하기 바란다.

끝으로, 글을 맺기 전에 한 마디 더... 하늘나라는 거룩~하고 경건한 꼴통들만 있어서 조용하고 따분하고 지겹기 그지없는 곳인 반면,
오히려 지옥이 신나고 화끈하고 다이나믹한 곳이라는 식의 말도 안 되는 드립에 결코 현혹되지 말기 바란다.
성경이 말하는 지옥은 아버지와 함께 럭키짱 만화책이나 볼 수 있는 곳이 결코 아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원래 대사가 '지옥'으로 알려져 있는데, 짤방을 뒤져 보니 '저승'이구나..)

Posted by 사무엘

2011/10/16 08:42 2011/10/16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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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약 율법과 말라기 구절을 근거로 십일조 헌금을 부과하고, 심지어 솔로몬을 따라 일천번제(?)라는 이상한 헌금 제도까지 시행하는 교회가 적지 않다.
2. 목사는 거~룩한 “주의 종”이고 구약으로 치면 레위 인이다. 교회 예배당은 거룩한 ‘성전’이다.
3. 안식일은 고증상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이라며, 어떤 교회는 토요일에 예배를 드린다. 안식일도 모자라서 유월절을 지키는 곳도 있다.
4. 오늘날 수많은 개독안티들은 모세오경을 집중적으로 공부하여 트집을 잡는다. 그러면서, 기독경 바이블이 말하는 신은 반인륜적이고 잔인하고 장애인을 비하하는 신이라고 공격한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고 행한다면 이런 것도 그대로 행하겠냐ㅋㅋ라고 막 빈정댄다.
5. 성경을 잘 모르지만 어쨌든 위의 조롱을 좀 의식하는 사람들은.. “구약의 하나님은 진노와 심판의 신인 반면, 신약의 하나님은 자비와 사랑의 신”이라는 식의 드립? 쉴드?를 친다. 이 사람들은 구약 성경을 근거로 제시되는 각종 ‘보수적인’ 기독교 윤리관(사형 제도, 동성애, 낙태, 옷차림과 외모 등등등)에 대해서도, 동일한 알고리즘을 적용하여 쏙 빠져나간다. -_-;;


이 모든 사례는 성경을 바르게 나누지 않아서 발생하는 촌극이다. 그 사례가 겨우 저 다섯 가지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신약과 구약 교리를 잘못 분간하여 저질러지는 병크는, 기독교회가 존재하는 한 아마 지구상에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_- 구원받은 크리스천이든, 개독안티이든, 성경을 공부하지 않으면 방향만 다를 뿐 그 누구라도 똑같이 걸려 넘어지고 오류에 빠지게 된다. 성경은 그렇게 호락호락 만만하게 쓰여진 책이 아니다.

위의 다섯 사례들에 대한 본인의 코멘트는 이러하다.

1. 이스라엘 백성과 신약 성도는 복, 믿음에 대한 구도와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말 3:10 같은 십일조에 대한 보상 자체가 오늘날의 크리스천에게는 약속되어 있지 않다. 성경 어디에도 신약 성도가 예수 잘 믿거나 교회 열심히 잘 다니거나 헌금 많이 하면 물질적인 복을 받고 부자 된다는 약속은 없다. 신약 성도들이 이미 받은 영적 복은 엡 1:3에 규정되어 있고, 헌금 원칙은 고후 8:12 같은 자발적인 규정이 전부이다. (이 관행에 대해서 통탄하는 어느 목사님의 글)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몸과 시간과 물질을 바치지만, 그 일을 하는 동기에다 구약의 마인드를 집어넣는 건... 정말 생뚱맞고 안 어울리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미 받은 믿음으로 헌신할 뿐이지, 걔네들처럼 ‘십일조 바치면 정말로 하나님으로부터 보상 받는지 따져보자’ 이러는 구도이기라도 하단 말인가?

2. 구약 성경은 말할 것도 없고 벧전 2:9, 엡 2:21, 고전 3:16 같은 구절과 비춰 봤을 때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 -_-;;;
물론 본인은, 자긴 그 잘난 제사장의 의무를 다하지도 않으면서 입으로만 만인 제사장 운운하는 뺀질이를 아주 싫어하며, 목사와 교사 직분 자체를 부정하는 모임도 명백히 잘못됐고 비성경적이라고 여긴다.

3. 오늘날 신약 교회가 지키는 주일은 안식일이 아니며, 그와 아무 관계가 없다. 일요일 예배는 예수님이 부활한, 더 정확히 말하면 부활이 알려진 날에서 유래되었을 뿐이다. 태양신 축제와 연관 짓는 건 성탄절, 이스터 정도로 족하다. 일요일 자체는 아무 문제될 게 없다.

4. 이런 부류들은 도대체 어디부터 상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고환이 상한 자, 안면이 함몰된 자는 군대에 가지 못할지니라”고 하면, 얘네들은 군대가 장애인을 비하하고 차별하는 집단이라고 드립을 칠 친구들이다. 가나안 백성들을 다 진멸하라고 명령한 하나님 탓할 줄만 알지,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 명령을 100% 이행 안 하고 걔네들로부터 안 좋은 거 배워서 동화되다가, 죄에 빠져서 하나님에게서 똑같이 큰 벌 받은 건 눈에 안 들어온다.

트집 잡는 게 다 저런 식이다. 저 친구들은 성경에서 그런 의문과 이해가 안 되는 부분만 해결되면 성경을 믿겠다는 의향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게 아니다. 그들의 불순한 의도를 알기 때문에, 나도 더 친절하게 설명 안 할 생각이다.
수학의 ‘수’짜도 모르는 초딩이 “님들아, 입실론 델타 증명부터 로피탈의 정리까지를 A4 한 장에다 내가 알기 쉽게 좀 설명해 주셈” 질문 달랑 던져 놓고는, 답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욕지거리 하는 것과 같은 꼴.

그리고 끝으로,
5. 성경 66권을 통틀어 짐승과 수간하지 말라고 명령되어 있는 곳은 구약 율법밖에 없다. 그럼, 저 논리대로라면, 신약 크리스천들은 짐승과 수간해도 괜찮겠다. ㄲㄲㄲㄲ
저 사고방식의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의 성품이 시대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 게 절대 아니라는 데 있다. 단적인 예로, “하나님은 소멸시키는 불”이라는 명제는 신약과 구약에 동급으로 인용되어 있다(신 4:24, 히 12:29). 그리고 구약 율법에도 정말 가난한 자, 어려운 자를 배려하는 사랑의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난 구절은 얼마든지 있다.

신약과 구약의 공통점과 차이에 대해서 여러 할 말이 있지만, 요약하고 또 요약하자면 이렇다.
구약 시대는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선택하셨다. 각자 자기 favorite gods들을 찾아 떠난 이방 민족들을 상대로 누구의 신이 진짜 신인지 객관적으로 맞장 뜨는 구도였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는 신정 국가 컨셉의 특이한 규범이 많았고 당장 눈에 띄는 보상에 대한 약속도 많았다. 그러나 몇몇 얘네들의 민족적 특수성이 감안된 규범을 제외하면, 윤리와 관련된 대다수 규범들은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유익한 것들이다.

그 후 신약 시대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는데 정작 유대인들은 그분을 거부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방인을 상대로 교회를 만들고, 교회로 하여금 유대인들의 질투심을 유발해서 유대인들까지 예수님을 믿게 만들 작정이었다.
그래서 신약 규범은 비격식· 비가시적이고, 자율적이고, 영적인 것이 많다. 그런데 그게 더 수준이 높다.

다만, 이런 하나님의 경륜의 저변에 깔린 공의와 사랑이라는 두 성품은 시대를 불문하고 불변 동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사실을 전제에 깔면 신구약과 관련된 상당수의 오류를 예방할 수 있다.

불신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신자? 개독?)들은 도대체 왜 너네 주장만 맞다고 생각하느냐? 맞다는 근거로 맨날 성경을 들이대는데 그건 순환논리이고 우리 같은 불신자한테는 씨알도 안 먹힌다.”
본인은 왕년에 종교 배틀을 한두 번 벌여 본 것도 아니고, 걔네들의 심리 정도는 다 꿰뚫고 있다.

그런데, 참 애석하게도... 진짜로 성경은 순수한 동기로 먼저 믿어야지 나머지 부분도 나중에 차츰 이해가 되게 된다. 나도 저것보다 더 속시원한 반격을 하고 싶어 죽겠는데, 더 할 게 없다. 성경 신자들의 신앙은 세속 논리학의 관점에서 봤을 때 당연히 순환 논리도 갖고 있고,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도 범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하나님이 나 자신을 두고 맹세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겠는가.

단, 일단 먼저 믿어서 나쁠 게 절대 없는데도, 안티들은 성경을 잘못 적용한 극단적이고 이상한 부류들이나 들먹이면서, 그걸 일반화하여 종교가 사람의 정상적인 이성을 마비시키고 우민화한다고 깐다. 그건 그렇지 않다고 그 정도는 본인이 반박해 줄 수 있다. 이해나 증명이 불가능한 몇몇 핵심 명제만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그 이후부터 기독교 교리는 그걸 바탕으로 철저한 논리와 일관성과 질서 그 자체이다.

본인은 구약 율법과 크리스천의 관계를 군대에다 비유한 적이 있다.
율법은 군인에게 부과되는 온갖 제약과 규율들이다. 그 중에는 각종 심신 단련과 규칙적인 생활처럼 인간에게 궁극적으로 유익한 게 많다. 인간에게도 유익하고 군대가 돌아가는 데도 필요하니까 그런 게 명시된 거겠지.

마치, '10시 취침, 6시 기상'은 전세계 군대나 민간인들이 지켜서 나쁠 게 없는 규정인 반면, '우리의 주적은 북한'은 20세기 중반 이후의 대한민국이라는 민족의 특수성 하에서만 유효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리고, 개독안티들이 비판하는 건, '전시에 적진으로 도주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같은 법규를 보고는, 잔인하고 반인륜적이라고 욕하는 것과 거의 똑같다. 저 군법이 과연 잔인하고 반인륜적인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신약 교회의 크리스천은 민간인이다. 그걸로 끝이다. -_-;;
내가 아는 한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이보다 더 확실하게 먹혀드는 비유는 없을 거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가 낳은 사람들 가운데 침례자 요한보다 더 큰 자가 일어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왕국에서 가장 작은 자가 그보다 크니라. (마 11:11)

위의 말씀은, 제아무리 뼛속까지 FM인 1등급, A급 병사라 해도, 제대한 민간인보다는 못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뭐가 못하다는 건지 모르는 분은 없을 테고.

오늘은 요기까지만 쓰련다.
신약 vs 구약과 더불어 자매품(?)으로는, 신구약 ‘과도기’의 교리와 신약 교리를 잘못 분간하는 오류가 있다는 걸 아울러 밝힌다.

요놈의 주된 부작용으로는 치유나 방언 같은 잘못된 은사주의 교리가 있다. 그래서 행 2:38이 교회 성도들에게 직접 적용되는 교리로 왜곡되고, 막 16:17-18을 오늘날 크리스천들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 버린다. 배운 적이 없는 외국어를 구사하고, 중환자에게 안수만 하면 병이 즉시 낫고, 청산가리 같은 걸 마셔도 안 죽고..;; 우리가 시도했다가는 다윈 상 수상자밖에 되지 않을 것 같은데? -_- ㄲㄲㄲㄲㄲㄲㄲㄲ

이건 다른 책보다도 마태복음과 사도행전과 히브리서를 잘못 적용했을 때 나타나기 쉬운 증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1/09/30 08:46 2011/09/30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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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 받던 시절

찬송가를 부르고 간단한 준비 운동을 한 뒤, 나는 침례를 받았다. 우선 허리까지 차는 깊이까지 바다로 들어갔다. 침례자는 내 얼굴을 수건으로 감싼 뒤, 나를 얼굴까지 바닷물 속으로 뒤로 제꼈다가 다시 들어올렸다. 오호~ 이런 게 침례로구나. 정말로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2002년 8월 11일자 본인의 일기 중에서)


본인은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니면서 중· 고등학교 미지의 시기에 예수님을 자연스럽게 내 구주로 영접했다. 그 후 대학 시절에 킹 제임스 성경(KJV)을 접했다. 그 전엔 기독교 신앙이라는 게 막연하게 그저 맹목적으로 무조건 믿는 수밖에 없어서 불신자들 앞에서는 말도 못 꺼내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킹 제임스 성경은 단순히 읽는 성경뿐만이 아니라 세세한 교리 노선까지 바꿨다. 그 과정에서 본인이 바르게 알게 된 교리 중 하나가 바로 침례이다.
침례는 성도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은 후, 예수님의 죽으심과 매장· 부활에 내가 동참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의식이다. 신약 교회에서는 침례와 더불어 주의 만찬이라는 단 두 종류의 의식만이 성경에 명시되어 있다.

침례는 그 성격상 온몸이 물에 잠기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물을 가져와서 행하는 게 아니라 물이 있는 곳에 사람이 가서 하게 된다. 마치 플룻이나 기타는 악기를 가져와서 연주하지만, 피아노는 악기가 있는 곳에 사람이 가서 치듯이 말이다.

선행이 구원의 조건이 아닌 것만큼이나 침례도 구원의 조건이 절대로 아니다. 먼저 구원받고 나서 그 증표로서 침례를 받는다.
그리고 침례는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알고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으며, 스스로 자기 믿음을 고백할 수 있을 정도로 자란 사람만이 받을 수 있다. 군대에 가거나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비행기 비상구 좌석에 앉을 수 있는 수준... 보다는 덜 엄격하겠지만, 어쨌든 최소한의 조건은 있다.

하나님 앞에서 세례는 무효이다. 더구나 유아세례는 더욱 잘못된 관행이다. 쉽게 말해서 아래 그림에서 (1)이 맞고 (2)는 틀리다는 것. 예수님이 요르단 강에서 침례 받으시는 모습을 묘사한 온갖 성화· 성경 만화들 중에, 고증상 오류가 있는 게 정말 허다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침례를 기름부음(anointing)과 헷갈려서는 안 된다. 또한 침례는 할례하고도 아무 연결 고리가 없다.
성령 baptism은 성령님이 이마에만 찔끔 임하는 게 아니며, 불 baptism은 이마에만 불이 붙어 활활 타는 게 아니다.
세례든 침례든 뭐가 대수냐고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옛날에는 그것 때문에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하곤 했다. -_-;;

이건 잘못된 걸 바로잡아야 할 차원이지, 성경 자체를 세례 에디션, 침례 에디션으로 따로 내는 건 마케팅 전략일 뿐이다. 침례를 주는 게 당연한데도 오늘날은 침례를 주는 교파만을 침례교라고 따로 부를 정도이니, 매우 통탄스러운 현실이다.

2002년! 킹 제임스 성경을 갓 알게 된 후, 본인은 인터넷으로 관련 분야 지식을 탐독하면서 본인과 함께할 믿음의 동지들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침례를 줄 곳이 주변에 없는지도 찾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한글· 세벌식 진영에서 알게 된 어느 지인이 KJV 쪽으로도 안면이 있는 분이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그리고 그분이 나가는 교회 모임에도 따라 나가게 되었다.

거기는 가정 교회? 지방 교회? 비스무리한.. 그런 모임이었다. 66권 전서가 번역되어 있다는 이유로 흠정역을 쓰긴 하지만, 안티오크의 권위역(당시 신약만 존재하던)을 더 좋아하는 듯했다. 히 9:15-17을 근거로 '유언'(testament)이라는 말을 아주 좋아했다.
일체의 기성 개신교회의 관행을 다 부정하고, 목사도 싫어하고(그래도 자기네 모임에도 결국 목사 역할을 하는 사람은 있는데!),
속세를 떠나 아미쉬나 워치만 니처럼 사는 걸 좋아하고,
자매는 예배 때 머리에다 너울을 씌우고,
매주 모일 때마다 만찬을 하고, 포도즙 잔을 돌려가면서 입 닦으면서 마시고,
제비뽑기로 예배 인도자를 뽑고는 성도들끼리 돌아가면서 성경을 강론하고...
뭐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KJV를 알기 전에 겨우 20대 초반이던 본인의 영적 수준은,
“나중에 서울에서 지내게 되면 어느 유명한 대형 교회에 등록할까? 그런 곳에 다니면 최신 기독교 문화를 최전방에서 바로 접하면서 살 수 있겠지?”
“NIV 다음으로는 표준새번역, NASV, NLT 등 중에서 무슨 성경 역본부터 읽을까?”
이랬었다. 진짜로.

그랬으니, 갓 KJV를 알게 된 직후, 본인은 아직 그쪽 지식이 충분치 못했으며, KJV를 옹호하고 기존 가톨릭이나 개신교의 비성경적인 관행을 반대하기만 하면 무조건 나의 아군으로 간주했었다. 그래서 난생 처음 보는 저런 작은 모임에도 나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본인은 그 모임에 수 개월 나간 후, 여름 MT 행사에서 드디어 침례를 받게 되었다.

뭐, 그분들은 침례를 밥티스마라고 불렀다. -_-;; 그리고 너 정말 구원받은 거 확실하냐고 내게 거듭 확인을 하곤 했다. 나중에 딴소리 하면서 침례를 다시 받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사연을 거쳐 본인은 침례탕도, 수영장도 아닌 자연에서 흐르는 물속에서 침례를 받았으며 그때의 신앙 고백을 갱신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 후로 본인에게 침례를 준 교회 진영과는 교제를 중단하게 된 것이 아쉽긴 하다. 나도 지식이 늘면서 점점 벌어지는 교리 차이와 분위기 이질감 때문에, 자연스럽게 거기를 탈퇴했다. 비록 교리는 정당한 교제 중단 사유이긴 하지만, 좀 곱게 나오지 못한 건 유감스러운 점이긴 하다.

그리고 2003년, 본인은 흠정역을 사용하는 다른 교회를 대전에서 다니게 되었고, 그 계열의 교회를 서울에서 오늘날까지 계속 출석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반 년 남짓 뒤엔 새마을호 Looking for you 대부흥 + 철도 성령 강림이 있었고. ㄲㄲㄲㄲㄲ
지금으로부터 벌써 8~9년 전인 2002~2003년이 내 인생에서 흥미롭던 시절이긴 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1/09/28 09:05 2011/09/2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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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말, <날개셋> 한글 입력기 6.2가 공개된 때와 아주 비슷한 타이밍에, 그리스도 예수안에 출판사에서는 영어 킹 제임스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KJV 출간 400주년 기념판’을 내놓았다. 버전으로 치면 5판이다. 4판이 나온 지 3년 만의 일이다.

2~4판 사이에서도(특히 3판에서) 한국어 문장에 revision과 breaking change가 적지 않았지만, 2011년은 아주 특별한 해이지 않던가. 영국에서 KJV 출간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미국은 의회가 아예 KJV가 미국에 남긴 공적을 기리는 성명서를 냈을 정도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예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의 엄청난 공을 들여서 번역을 다시 가다듬었다. 전체적으로 예전보다 좀 더 영어 직역에 가까워졌다.

성경이 무슨 컴퓨터 프로그램도 아닌데, 본문을 자꾸 패치한다고 해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 책을 만드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모두 시간과 돈이 들고, 번거롭고 귀찮고 골치아프다. 성경은 모름지기 권위가 담긴 텍스트여야 하는데 명분이야 어떻든 자꾸 바뀌어 버리면, 그럼 예전 판은 무슨 신세가 되는지에 대한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요즘 컴퓨터 프로그램이 보안 업데이트를 귀찮더라도 자꾸 해 줘야 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그걸 왜 꼭 해야 하며,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프로그램 개발자는 너무 자세히 알려 줄 수 없다. (당연히, 모방범죄 같은 안 좋은 파급효과 때문)

성경 번역자도 이와 비슷한 처지인지라, 성도들에게서 안 좋은 소리와 심지어 오해까지 받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사명감 때문에 이런 개정을 하는 것이다.

이미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에 법인까지 만들면서 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하고 이를 교계에 가장 먼저 알린 단체는 대한 항공 조종사 출신의 모 목사가 설립한 ㅁㅂㅎ라는 곳이다.
이들은 교리도 그럭저럭 건전한 편이었으나, 초창기에 세상 교회를 상대로 appeal을 굉장히 잘못하는 바람에 이곳과 더불어 킹 제임스 성경은 한국 교회에서 이상한 이단으로 완전히 낙인찍혀 버렸다. 그게 1990년대 중후반의 흑역사이다.

진리를 정말 성령 충만한 애끓는 사랑으로 호소하며 전해도 말귀 못 알아듣는 사람이 태반이며 열매가 맺힐까말까인데, 그걸 육신의 깡을 동원한 온갖 과격· 극단적인 표현으로 밀어붙였으니 튕겨나오는 역효과는 100배이다. 뭐, 나라도 겪었을 시행착오이니 ㅁㅂㅎ를 그렇게 욕할 생각은 없다.

둘 다 잘못했다. 비록 ㅁㅂㅎ도 잘못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성경이 역본마다 다르고 변개· 삭제된 말씀이 있다고 해도 아무 경각심도 안 느끼고 최소한의 진실 규명도 안 하는 사람들 역시, 크리스천의 자질이 굉장히 의심되는 부류가 아닐 수 없다! 교회 다니고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의 영감성과 무오성, 보존에 대해서는 불신자 내지 개독안티와 동일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요즘 굉장히 많다.

그런 사람들은 도대체 자신의 신앙의 정체성과 근간이 뭔지 난 정말 궁금하다. 겨우 그런 허술한 근간으로 예수쟁이 행세하고 교회 댕기기에는, 기독교계가 요즘 저지르는 병크가 너무 많고 예수쟁이들보다 인격적으로 훌륭한 불신자들도 너무 많으며 반기독교 정서는 너무 팽배해 있지 않은가?

아무튼, 이런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한국의 킹 제임스 성경 진영은 안 그래도 소수이던 것이 n갈래로 더욱 소수로 쪼개지는 비극을 겪었다. 이때 모 공대 교수가 다시 동지들을 모아서 ㅁㅂㅎ의 <한글 킹제임스 성경>과는 별개로 성경 번역을 시작하였고, 그래서 나온 것이 <킹제임스 흠정역>이다. 초판이 나온 게 2000년 여름인데, <날개셋> 한글 입력기 1.0이 태어난 시기와 비슷하다.

성경 번역이란 건 자금과 지지 기반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치성도 띠고 있다. 본인은 그래서 우리나라 KJV 진영의 양상을, 우리나라 근현대사에다 비유해 보곤 했다.

일제의 갑작스러운 패망 이후 우리나라는 온갖 정치 집단과 이념 세력의 각축장이 되었고 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 이처럼 한국 교계도 개역성경의 권위가 무너져 내리고 ㅁㅂㅎ 진영까지 분열된 후, 어중이떠중이가 다 KJV를 번역하겠다고 나서면서 난장판이 되었다.
(단, 그렇다고 해서 개역성경이 일제 같은 존재는 절대 아니다. 오해 말길!)

이때 흠정역의 주 번역자는, 우리나라의 독립 운동가 겸 정치인으로 치면, 이 승만 같은 일을 해냈다. 당연히 긍정적인 면에서 말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를 간단히 설명하겠다.

일제 강점기 때 국내의 독립 운동가들이 무력 투쟁 정도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반면, 이 승만은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랐다. 미국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국제 사회의 냉정한 현실을 직시했고, 당대의 강대국이던 미국을 일본이 아닌 한국의 친구로 만들려 애썼다. 그리고 당대의 여타 민족 지도자들과는 달리, 공산주의의 해악을 완전히 간파하고,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 이념이 지켜지는 국가를 한반도에다 세우고 정부를 수립했다. 이북처럼 자기 지지자들만 잘 먹고 잘 사는 개막장 독재 국가를 세우지 않았다!

그것처럼 흠정역의 주 번역자 역시, 명색이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공대 교수이다. 객관성과 정확성을 생명으로 여기는 분야에서 학문 하는 훈련을 한 사람이다. 그는 성경 번역자라는 소영웅주의에 도취해 자신을 드러내고 appeal한 게 아니라, ㅁㅂㅎ로 인해 치명적으로 실추된 KJV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했다. 그리고 자기가 만든 성경이, 성경 오타쿠들이나 자기 교리 노선· 자기 진영을 지지하는 사람들만 보는 성경이 되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기존 성경의 컨벤션을 존중하고, 교리적으로 튀는 번역을 절대로 하지 않았다. 이거 정말 대인배적인 마인드이지 않은가? 난 그 의도가 존경스럽다.

기존 개신교회들이 변개된 성경을 쓰고 잘못된 관행을 저지른다고 비판하고 까기만 하는 건 쉽다. 나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로 하여금 어떻게든 KJV를 읽게 하려고 노력한 끝에, 자기 출판사를 기성 기독교 인터넷 서점에 입점시키는 데 성공한 것은 과연 KJV 교계의 이 승만 같은 사람의 업적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지금까지 어느 KJV 진영도 한국 기독교회에 KJV를 이런 방식으로 알리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잘한 건 티가 별로 안 나는 반면 못하면 바로 티가 나고 온갖 괴담과 비방, 오해가 나돌기 딱 좋은 분야이다. 이 승만이 악의적인 세력들에 의해 부관참시 당해 온 것만큼이나 저 번역자도 성경 번역 하나 때문에 지금까지 이단 소리 듣고, 반대편 진영으로부터 욕도 얻어먹고 험한 꼴 꽤 많이 봤다. 평범하게 자기 연구만 계속하면 돈도 훨씬 더 많이 벌고 교수로 아주 편하게 잘 살았을 텐데, 지금까지 인생의 어마어마하게 많은 부분을 성경 하나 때문에 희생한 것이다.

어쨌든 여러 모로 유사점이 보인다. 본인은 이런 식으로 비교한 글을 예전에 모 기독교 커뮤니티에다 올린 적이 있다. 당사자더러 보라고 쓴 글은 아니었지만, 어째 정보가 퍼져 나갔는지 그분의 사모님께서 그 글을 보고는 본인에게 따로 연락을 주셨다. “우리 쪽에서 직접 말하기 민망한 심정을 잘 이해하고 대변해 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이다.
뭐, 그래도 이 승만을 그저 증오하는 사람들은 그 글을 보고도 불편해하더라. ㅋㅋㅋㅋㅋ

그에 반해, 흠정역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간 모 진영이 있다. 예수스 크리스토스, 파울로, 밥티스마 같은 말을 일일이 만들면서 완전히 자기네 진영에서만 쓰는 독자적인 번역을 만들었다. 기존 개신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여타 KJV 진영과도 일체의 교제를 끊고는, 자기 말고는 전부 배도하고 타락했다고 거의 사람 취급을 안 한다. 내가 보기에는 덜 배운 친구들이 이 승만이 친일 공화국 만들었다고 욕하는 것과 쎄임쎄임이다. 머리에 든 게 부족하면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보인다.

양 진영이 맺은 열매는 난 이렇게 비유하겠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notice&write_id=81
그분은 채팅과 교제를 통해 많은 추종자를 얻었지만 저(흠정역 진영)는 성경과 교회들과 성도들을 얻었습니다.

http://systemclub.net/bbs/zb4pl5/zboard.php?id=new_jee&no=2563
김 구는 아들에게 유언장을 남겼지만, 이 승만은 국민에게 대한민국과 주권을 남겨주었다

이게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꾼을 쓰신 수준의 차이이다! 킵바이블 사이트의 글과, 시스템클럽의 글을 이런 식으로 비교해서 종합한 사람은 지금까지 나밖에 없지 싶다. ㅋㅋ

말이 길어졌다. 이런 이유로 인해 본인은 그리스도 예수안에 킹제임스 흠정역 진영을 지지하며, 이 성경을 쓰는 교회에 다니고 있다. 흠정역이라는 이 우리말 성경은 만만하게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게 아니다. 킹 제임스 성경 진영을 국내에 이 정도로 정착시키기까지 성도들의 무수한 노력과 헌신, 기도가 있었다. 부디 KJV에 대한 근거 없는 이단 낭설이 하루빨리 불식되고, 이 땅에 바른 성경과 바른 교리가 굳게 서고 이를 전파하는 지역 교회들이 많이 세워지길 바랄 뿐이다.

(흠정역 홍보 동영상 클릭)

Posted by 사무엘

2011/09/19 08:13 2011/09/19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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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 이야기

본인은 성경을 믿는 크리스천으로서 분명한 종말론자이다. 그리고 어찌 보면 시한부 종말(그것도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도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종말 날짜를 1년 단위 이하로 구체적으로 확정한다거나, 한술 더 떠서 그 종말 날짜에 맞춰 현 사회로부터 이탈을 감행한다거나 무슨 특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는 결코, 절대로 주장하지 않는다.

그런 걸 부추기는 인간들은 그 어떤 명분을 내세우든지 무조건 성경을 벗어난 이단 사이비이며, 세상에 민폐 끼치는 사회악이다. 그들이 순진한 사람들 내지 현 사회에 불만 많은 약자들을 현혹하여 가정 파탄내고 사람 인생 망치고, 성경에 입각한 건전한 진짜 종말론까지 죄다 사이비로 매도시킨 해악을 생각하자면, 그들은 가히 “숨쉬지 마라, 산소 아깝다. 네놈을 살려 두긴 쌀이 아까워!” 급의 암적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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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본인이 말하는 종말론이란, 이 인간 세상이 언제까지나 이대로 지속되지는 않으며, 특히 여러분에게 더 잘 와닿게 말하자면, 21~22세기를 넘길 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 맥락에서이다.

특히, 예수님이 가까운 미래에 공중과 지상으로 재림할 것이고(특히 공중 재림의 경우 휴거 포함) 성경에 기록된 것 그대로 세상이 끝날 뿐, 무슨 핵 전쟁이나 태양의 백색왜성화, 온실효과, 외계인 침략 같은 것 때문에 인류가 허무하게 멸망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지구에 재림하실 터인데 달이나 화성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이걸 생각하면 크리스천은 각종 SF물도 김이 확 빠지고 재미없어서 못 본다. -_-;;

종말에 대해 성경은 무어라 말하는가?
일단 종말 자체는 있으며, 말세엔 재림이고 종말이고 뭐고 다 안드로메다로 보낸 채 사람들의 내세관 자체가 무뎌질 거라는 예언이 성경에 있다. 베드로후서 3장이 다 이런 내용이다. 예수님은 속히 올 거라고 성경의 끝부분에다 약속해 놓으셨다. (계 22:20)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종말의 날짜를 결코 알려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 ... (막 13:32)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 때나 그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신의 권능 안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행 1:7)

천국, 지옥을 보고 왔다는 얘기가 순도 100% 구라인 것만큼이나, 어느 날 어느 때에 예수가 재림하고 휴거가 일어나고 세상 종말이 온다는 소리도 순도 100% 구라이다.
전자는 장소의 금기이고 후자는 시간의 금기라 하겠다. 우리 착한 크리스천들은 절대로 그런 데에 현혹되지 말기 바란다. 천국, 지옥 자체는 절대적으로 존재하며 재림과 휴거(흔히 말하는 종말) 역시 절대적으로 사실이라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맥락에서 말이다.

인간이 종말의 시기를 정확히 알고 있다면,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그 날짜가 되기 전에 이미 종말이 온다.
개그 만화 일화 종말편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다. 아니, 세상은 그보다 훨씬 더 막장으로 치닫는다. 그때 사람들이 그 애니에 묘사된 대로 곱게 똥이나 처바르고 앉아 있겠는가? -_-;;;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러분이 인간을 창조하고 언젠가 세상을 심판하려고 스케줄을 짜 놓고 있는 신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런데 인간들이 신이 생각도 안 하고 있는 날짜를 잡아서 종말드립을 치고 있으면, 신이 보기엔 이것들이 무신론자 이상으로 얼마나 같잖고 한심하게 보일까? 종말의 사유를 자기들이 제공해 놓고는(자승자박) 또 종말에 대비도 하겠다고 설치는 꼴이다.
신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라. 미쳤다고 종말 날짜를 인간들에게 계시해 주겠는가?

윤 성목 목사님의 글 클릭.
...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자신들의 예언이 틀리면 회개하는 법이 없습니다. (언제나 변명만 할 뿐입니다)
... 2012년은 정말 기대되는 한 해입니다. 많은 종교 단제에서 2012년에 재림, 종말, 심판 등을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 예언이라면 적중률은 무조건 100%이다. 단 하나라도 틀리면 그건 거짓말이다. 죄가 단 하나라도 있으면 안 되는 것과 정확히 동일한 맥락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의 예언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인 것도 결코 아니다. 수 6:26와 왕상 16:34 (여리고 재건자), 그리고 왕상 13:2와 왕하 23:16 (요시야 왕)정도로 섬뜩할 만치 정확하게 맞아떨어져야 한다.

오죽했으면 참 계시와 거짓 계시를 구분하는 방법은 아주 허탈하게도 '그 계시의 성취 여부'라고 성경에 쓰여 있을 정도이며(신 18:22), 거짓 대언자로 판명된 사람은 사형으로 즉결 처분이었다(신 13). -_-;; 신정 국가 이스라엘에서는 그게 마치 위조지폐를 유포하는 것만큼이나 건전한 신앙의 기강을 문란케 하는 악질 중의 악질 중죄였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요즘 이단 사이비 교주들은 한국이나 미국 같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만나서 참 좋은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다. -_-;;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20세기 초반에 미국에서 여러 번 시한부 종말론을 시전했다가 버로우 탄 적이 있다. 그들의 흑역사이다. 종교와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종말설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10년도 더 전의 Y2K 문제는 어땠던가?

특별히 한국에서는 1992년 10월 28일 다미선교회 휴거 병크가 한국 교회에서 재림· 종말 신앙의 씨를 완전히 말려 버렸다. 특히 요한계시록은 이단 교리들의 원천으로 매도되면서 사 29:11-12와 같은 급의 금기· 봉인의 책이 되고 말았다. 난 성경을 믿는다면서 휴거와 예수님의 지상 재림을 안 믿는 사람을 보면 놀라는데, 그쪽에서는 나를 보고 또 놀라더라.
(참고로, 정말 재미있게도 그 이튿날인 1992년 10월 29일은 연세대 마 광수 교수가 외설 혐의로 체포되었던 날이다. ㄲㄲ 우연의 일치이겠지..)

그런데, 이 많고 많은 거짓 종말론자들이 예언이 빗나간 후에 공개적으로 사죄하고 회개했다는 소리는 난 정말 못 듣고 지냈다. 이것도 신기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이 빨리 뒤집어 엎어져 버리길 바라는 사회 부적응자, 그리고 진리가 아니라 자기가 믿고 싶은 걸 믿는 잘못된 욕심쟁이 위주로, 잘못된 종말론에 현혹되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있어 왔다. 그리고 이런 수요(?)에 부합하는 거짓 교사, 거짓 대언자는 앞으로도 없어질 일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조차도 “저런 혹세무민하는 나쁜놈들은 생기는 족족 내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 죽여 버리겠다”고 약속하신 적이 없다. 오히려 너희들이 진짜로 재물이 아닌 주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갈망하고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서 저런 낚시꾼들의 출현을 종종 허락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음을 잊지 말자(신 13:3).

하나님이 너무해 보이는가? 성경의 하나님은 완전히 마음이 삐딱해져 버린 사람에게는 잘못된 기도에도 응답해 주시고, 그를 심지어 더욱 완악하게 하고(출애굽기의 파라오), 그가 잘못된 생각에 그대로 속아넘어가게(아합 왕) 골탕도 먹이는 다이나믹한 분이다.

폴 워셔(Paul Washer) 목사 같은 분은 한술 더 떠서 “저렇게 이단 교리에 속아넘어간 사람들은 불쌍한 피해자가 아닙니다. 자업자득이며, 그 마음 상태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심판의 결과일 뿐입니다”라고까지 부르짖는다. 그분은 행실에 변화가 없는 사람은 아예 구원도 못 받은 거라는 식으로 너무 또 주권 구원 내지 행위로 가는 경향이 없지는 않는 듯하나, 그래도 잘못된 은사주의와 종말론이 난무하는 오늘날 교계에 오아시스 같은 용기 있고 훌륭한 분인 건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예수님은 과연 언제쯤 다시 오실까? 휴거는 언제쯤 일어나고 세상은 언제쯤 끝날까?
점점 그때가 임박하고 있다는 막연한 말만 할 수 있을 뿐 그건 정말 나도 모른다.
기름값이 1리터당 얼마가 되고 대학 등록금이 얼마가 됐을 때쯤 끝이 날지, 서민 경제가 얼마나 더 파탄나고 국가의 부채가 얼마까지 치달으며, 이 명박보다 얼마나 더 막장인 대통령이 나올 때쯤 세상이 끝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암울한 예만 드니, 종말이 생각보다 가까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_-;;;;; ㄲㄲㄲㄲㄲㄲ

난 다음에 누가 대통령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3, 4년쯤 뒤엔 “차라리 2MB 시절이 나았어” 분명 이런 말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오래 전부터 예상해 왔다. 하지만 2MB 님을 몸서리치게 싫어하는 분들은 “그건 아니야. 정말 2MB가 역사상 최악이야. 다음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저놈보다는 나을 거야”라고 얘기를 하는데...;;;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_-;;

비록 앞서 예를 들었던 그런 나쁜 시한부 종말론만치 해롭지는 않지만, 성경을 믿는 일부 사람들이 실수를 저지른 것도 있다. 세상 정세와 과학 기술을 성경에다 너무 아전인수격으로 갖다붙인 나머지 베리칩이 666이고 유럽 연합이 요한계시록의 열 뿔이라는 식으로 드립을 많이 쳤다. 의도야 어떠했든, 오류는 오류였다고 정직하게 인정해야 할 것이다.
무화과나무 비유를 들면서 이스라엘의 국가 수립을 목격한 세대가 예수님의 재림도 목격할 거라고까지 하는데, 그렇다면 재림은 1950년대로부터 늦어도 7, 80년 안으로 일어나야 한다. 과연?

난 '개인적으로는', 정말 내 추측으로는 우리 부모 세대는 아슬아슬할 수도 있고, 내가 중장년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아마 끝이 올 것 같다. -_-;; 7, 80년까지는 아니더라도 100년 안으로. 어쩌면 32비트 유닉스 time이 끝나는 2038년대와 근접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하늘나라 가서 이 예측의 오차가 얼마나 됐나 분석해 볼 생각이다. ㄲㄲㄲ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각종 세상 정세와 전쟁, 재앙을 보고 “말세야 말세. 세상은 곧 끝장 날 거야”라고 탄식했지만 종말은 그리 호락호락 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세상이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이상한 양상을 보이며 막장으로 치닫는 속도를 보면 또 오래 지속은 못 될 것 같고.. 이런 생각들을 종합한 타협점을 그 정도로 잡고 있다는 뜻.
이건 내가 전혀 책임지지 않는 추측이므로 그냥 재미로 읽고 잊어버리는 게 여러분의 정신 건강에 좋다.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 난 분명히 이렇게 얘기했다.

어떤 경우든, 미리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빠져나가고 벙커 짓고 농사 짓는다거나 하는 뻘짓을 할 필요가 없다. 특히 대환란 통과론자들의 공갈에 현혹되지 말라. 그냥 마지막 순간까지 사회에서의 자기 본분에 충실하고 신실하게 주의 일을 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종말 대비책이다.

크리스천은 먼 앞날을 내다보고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안목도 키울 필요가 있다. 왜냐 하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아담 이래로 전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인 것만큼이나, 그분의 재림도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런 중요한 날을 그렇게 호락호락 예측 가능한 날에, 그것도 하나님 모르는 죄인들이 만들어 낸 과학 기술이나 국제 정세에 그리도 쉽게 휘둘려 집행하실 리는 없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 언제 오시더라도 우리는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정신줄 놓고서 헛짓 안 하는 건데..-_- 역시나 주님은 너무 빨리 오셨어!” 라고 탄식할 수밖에 없게 될 입장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자마자 하늘로 당장 데려가시지 않고, 왜 이 험악한 세상에 불신자들과 함께 어울려 놔두고 계신지를 생각해 봐도 답은 명확하지 않은가?

Posted by 사무엘

2011/07/25 08:32 2011/07/2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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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갖가지 종류의 상(prize)이 있다.
그 중 세계구급인 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그토록 입상자를 배출하려고 애써도 결국 못 받고 있는 노벨 상(과학 분야)이 있고, 수학 분야에서 노벨 상보다 더 받기 어렵다는 필즈 상이 있다.
그리고 전산학계에는 튜링 상이 있고, 사회· 정치 분야에는 막사이사이 상도 있으며 교육· 문화 분야에는 세종대왕 상도 있(었)다고 카더라.

이런 상들은 연구 실적을 기관에서 따로 평가하여 입상자가 결정되는 상이지만, 아예 contest, competition을 치러서 입상자를 결정하는 대회 성격이 짙은 상도 있다. 각종 올림픽, 올림피아드가 그 예이며, 이런 곳은 상이 메달의 형태로 등급이 매겨져 있다.

그런데, 이런 세상의 많고 많은 상 중엔 영예(honor, pride)가 아닌 굴욕(humiliation)에 가까운 상도 있으니,
다윈 상이라고 혹시 들어 보셨는가?
이건 개그 내지 풍자 성격으로 온라인 공간에서 수여되는 상인데...
열성 유전자를 지닌 사람이 자신의 씨를 스스로 끊음으로써 인류의 발전/진화-_-에 공헌한 경우 수상할 수 있다.
공식 홈페이지는 여기. http://www.darwinawards.com/

그래, 한 마디로 개소리이다. -_-;;;
쉽게 말해서 ㅂㅅ같은 개죽음을 맞이하거나 최소한 생식불능이 된 사람이라면 이 상을 받을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조건이 있다.

1. 수상자는 기막히고 놀라울 정도로 충분히 멍청한 짓을 하거나 어이없는 일을 당해야 한다.
2. 수상자는 그로 인해 죽거나 고자가 돼야 한다. 내가 고자라니
3. 그 행동은 의도했건 안 했건 자신의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의지로 인해 야기된 것이어야 한다.
4. 당연한 말이지만, 수상자는 정상적인 지적 능력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
5. 행적에 신빙성이 있어야 한다. 공신력 있는 매체에 보도되었다거나, 증언이 충분히 믿을 만하다거나.

예를 들자면,
- 공짜로 음료수를 마시기 위해 자판기를 기울이다 자판기에 깔려 죽은 사람. -_-;;; (1994년)
- 독사에게 물렸는데, 병원에 안 가고 술집에서 술이나 퍼 마시면서 깡으로 “난 독사에게 물리고도 끄떡없어”라고 자랑을 하고는 곧 죽어 버린 어느 미국인 남성 (1997년)
- 자기 집에다가 수심이 자기 키보다 얕게 수영장을 설치하고는 다이빙 후 목이 부러져 죽은 사람 (1998년)
- 광산에서 수정을 캐고 있었는데 위에 달려 있던 수정이 떨어지면서 거기에 정통으로 찔려 죽은 멕시코의 광부.. (2001년)
- 벌집을 옮기려고 온몸을 얼굴까지 보호막으로 둘러쌌는데, 작업 중에 그만 밀폐된 비닐봉지 안에서 질식사한 농부.. 숨구멍을 안 뚫었다. -_-;; (2002년)

이런 사람들이 받아 왔다. ㄲㄲㄲㄲㄲㄲㄲㄲ

이런 상이 다루는 사건들이든, 이런 상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이든 모두 단순히 엽기 해외 토픽 정도로 치부될 법도 한데
이 다윈 상은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작년(2010) 여름에 우리나라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첫 다윈 상 수상자가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대전 지하철 서대전네거리 역에서 휠체어 탄 채로 추락사한 어느 장애인.. ㅠㅠㅠㅠㅠ

구체적인 스토리를 아는 분도 있겠지만...
고인은 8월 25일, 지하철 타러 내려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아주 간발의 차이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한참 전에 먼저 탄 어느 60대 여인 혼자만을 싣고 매정하게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가 버렸다.
내가 알기로 지하철의 엘리베이터는 한번 문이 열리고 나면 닫히지 않고 굉장히 오랫동안 열려 있으며, 주행 속도도 아주 느리다. 비장애인들이 남용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러니, 이 엘리베이터를 놓치면 또 몇 분이 그냥 날아가는지 모른다.

나라도 짜증 났겠다. 그래서 고인은 빡쳤는지, 닫힌 엘리베이터 문을 휠체어로 쾅쾅 들이받았다. 그런데 2타 때는 약한 엘리베이터 문이 벌어졌고, 3타 때는 그가 그대로 밑으로 엘리베이터 문 아래로 추락해 버렸다.
서대전네거리 역이 얼마나 깊은 역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역이 무슨 여의나루나 만덕 같은 역이 아닌 이상, 설마 사람이 추락사할 높이였겠나 싶다. 허나, 몸이 불편했던 장애인은 충격을 최소화하는 자세를 유지하지 못했는지, 아래의 엘리베이터 상부에 휠체어에 앉은 채로 떨어져서 그대로 사망. 떨어지면서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_-;;;

여인이 탄 엘리베이터가 아래층에 막 도착하려던 찰나, 그 장애인과 휠체어가 엘리베이터 카 위로 쾅 떨어졌으며, 충격을 받은 엘리베이터는 그대로 불이 꺼지고 고장이 났다. 결국 그 여인도 엘리베이터 안에 한동안 갇혔다. -_-;;; 마른 하늘에 날벼락.
이 모든 장면은 CCTV에 고스란히 찍혔다.
동영상은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퍼졌으며, 외국에까지 소개되면서 네티즌들은 이 사람을 올해의 다윈 상 1등급 수상자로 뽑게 되었다.

듣자하니, 당시 엘리베이터에 구조적인 이상은 없었다고 한다. 무거운 휠체어로 그 속도로 저 정도로 작정하고 쾅쾅 들이받는 건 어차피 설계 기준을 초과하는 충격이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관리자의 관점에서는 면책 사유가 성립한다고. 그러니 고인의 죽음은 정말 빼도 박도 못하고 자업자득인 꼴이 됐다. 완전 캐굴욕. 그저 묵념뿐이다.

다윈 상의 취지 자체가 고인드립인 건 말할 것도 없고, 한국식 정서라면 망자에 대한 명예 훼손감일 텐데. 에휴...;;
사실은 찰스 다윈조차도 그런 상의 이름에 자기 이름이 붙은 것으로 인해 통탄할지도 모르겠다. 다윈에 대한 고인드립 ㄲㄲㄲㄲㄲ
하지만 다윈 상의 발상 자체가 진화론적이니 이 역시 자업자득이다.
참고로,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나라는 한때(일제 강점기 때) 다윈의 기일을 기려서 과학의 날을 제정하기도 한 적이 있다. 왜 하필 다윈일까.;;

에어장 목사 정도면 다윈 상의 범주에 들지 궁금하다. 그런데 그건 굴욕적이긴 해도, 바보짓이라기보다는 천하의 개쌍놈짓을 하다가 자업자득으로 명을 다한 것이기 때문에 조금은 성격이 다르다 하겠다.

다윈 상 자체에는 뭔가 노골적인 종교적 이념이 없지만, 그래도 이건 창조· 진화 논쟁을 의식해서, 더 나아가 기독교를 좀 조롱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다는 뉘앙스가 전혀 없다고 말하면 그 역시 거짓말일 것 같다. 날으는 스파게티 괴물(FSM 날스괴;;)처럼 말이다. 유한 상태 기계가 아니다!
FSM 의 공식 홈페이지: http://www.venganza.org/

FSM 하니까 여러 모로 라면교 교주가 떠오르던데.. 한국 버전은 라면이고 양놈들 버전은 스파게티이다. -_-;;
라면교 교주는 끓는 물에 돌아가셨다가 3분 만에 부활하셨다거나, 극악한 사탄의 무리인 비빔면과 짜파게티 무리를 조심하고 적그리스도인 뿌셔뿌셔에게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는 둥 그냥 웃고 넘길 수 있는 패러디 수준인 반면..
FSM에는 좀 더 수위가 높은 비수가 꽂혀 있다.

FSM 신도들이 웬만하면 하지 말았으면 하는 짓
1. 웬만하면 나를 믿는다고 남들보다 성스러운 척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남이 나를 믿지 않는다고 마음 상하지 않으며, 어차피 안 믿는 자들에게 하려는 말들이 아니므로 말 돌리지 마라.
2. 웬만하면 내 존재를 남들을 괴롭히는 핑계로 사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
6. 웬만하면 내 신전을 짓는데 수억금을 낭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더 좋은 데 쓸 데가 많다.
7. 웬만하면 내가 임하여 영지를 내린다고 떠들고 다니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웃을 사랑하랬다. 좀 알아 먹어라.
뭐 이런 것들이 있다.

흔히 “종교는 나약한 사람들이나 의지하는 수단이지. 난 차라리 내 주먹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거보다 조금 온화(?)한 사람이 한다는 말은 뻔하다. “뭐, 심신 수양을 위해서 종교 하나 갖는 거 나쁘지는 않지. 하지만 너무 빠지지는 말고, 특히 네 종교만 옳다는 독단에 빠지지는 마라”

국내외의 유~명한 개독안티 석학들은 종교가 지금까지 저질러 온 온갖 폐해들, 종교 때문에 벌어진 각종 참극은 둘째치고라도 그게 사람의 이성을 얼마나 마비시키고 우민화해 왔는지를 지적한다.
그걸 직설적으로 표현 안 하고 교묘하게 sarcasm을 섞어 풍자하다 보니 FSM 같은 것도 만들어진 것이리라.
애초에, FSM교는 “어이쿠! 창조론과 지적 설계를 가르칠 정도로 학교 교육이 막장으로 치닫는다면, 아예 날으는 스파게티 괴물님을 가르쳐도 되겠네요 ㅋㅋㅋㅋㅋ” 이런 비꼼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난 그런 것에는 별로 대응할 필요를 못 느껴서 대응 안 한다.
걔네들의 말 중에서 한 20~30% 정도는 특정 문맥에서 '몇몇 가정이 성립한다는 전제 하에서' 맞는 말도 물론 있다.
마치 성경에서 “어리석은 자가 '마음 속으로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라는 문장 자체는 참인 것과 같은 맥락에서 말이다.

신을 찾아 온 것도 인간이고 그 신이 필요없다고 신 없이 살자고 부르짖는 것도 인간이다. 그런데 과연 신 없이 인간이 잘 살면 얼마나 훌륭하게 잘 살 수 있을까?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과연 당신의 혼을 사랑하고 걱정해서 그렇게 말하는 걸까?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에게 진짜 중요하고 필요한 가치는 눈으로, 시스템으로 측정할 수 없으며 돈과 권력과 과학 기술로 얻을 수 없다.
그걸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의 입시 위주 교육 제도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고, 아무리 사회 개혁을 외쳐도 사회 구조는 여기서 저기로 쳇바퀴만 돌 뿐 바뀌지 않는 것이다. 잘 생각해 봐라.
아무리 돈을 쳐발라서 스펙 완벽한 배우자와 결혼해도 행복한 결혼 생활을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상류층들이 이혼을 엄청 많이 한다. 이래도 아직 이해가 안 되겠는가?

뭐 이런 예가 부지기수이다. 인간이 우주에 갔다 오고 핵무기를 발명하고 지구촌을 인터넷으로 연결했다 한들, 과연 저 구도가 본질적으로 바뀔 수가 있을까?
이건 내 주관적인 생각이다만, 세상에 사람들의 빈부 격차가 이토록 심하고 환경과 여건 차이가 난다고 해도 하나님이 공평하다고 하는 이유가 이런 곳에 있는 것 같다. 인간에게 진짜로 공평해야 하는 건 여전히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저렇게 영적으로 불만족스럽고 부족한 것이 존재하는 한, 무신론자들이 아무리 날뛰어도 절대자를 찾는 사람(굳이 기독교가 아니어도)은 없어질 수 없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무신론자 중에 미신에 빠진 유신론자들이 너무 불쌍한 나머지 그들을 위해 대신 죽을 정도의 사랑을 그들에게 베푸는 사람이라도 나오지 않는 이상 말이다.
세상에 저런 데에 왜 매달리는지 내 머리로 진짜 이해가 안 되는 시한부 종말론자, 도박 중독자, 이단들도 세상에 절대로 안 없어지고 있는데 그것보다 훨씬 더 건전한 게 당신의 논리에 설득되어 없어질 거라고? 꿈 깨라.

끝으로..
나의 종교가 '철도'라고 말한다면 그건 맞을 가능성이 높다. ㅋㅋㅋㅋ
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복음은 나에게 종교가 아니다. 편의상 여타 종교들 중 하나인 것처럼 분류하는 경우는 있지만 본인이 개인적으로 그걸 종교 차원에서 받아들이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도대체 기독교는 왜 이리도 교파가 많고 이단들도 많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간단하다.
“윈도우즈에만 온통 악성 코드나 보안 이슈가 들끓고 있고 맥OS나 리눅스는 바이러스가 거의 없는 것과 비슷한--같지는 않지만-- 이유 때문입니다. 설마 그게 OS의 기술적 우열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하시지는 않겠죠?

Posted by 사무엘

2011/07/02 08:15 2011/07/02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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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설교 외

* 스포일러: 이 글은 잘 나가다가 뒷부분부터 삼천포로 빠지는 구조이다.

본인은 정확하게 언제 구원받았는지 모르는 예수쟁이이다. 고등학생이던 1998년 가을에 처음으로 성경을 한 번 완독했으며, 2002년 무렵에 KJV believer가 되고 세례 대신 침례를 다시 받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06년엔,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거리 설교 때 난생 처음으로 preaching을 해서 지금까지도 이를 계속하고 있다. 본인은 길거리에서 직접 설교를 하는 교회 형제들 중에서는 최연소자이다.

주변의 불신자, 개독안티, 무신론자와 얘기를 나눠 보면, 그들은 교회 댕기는 주변 사람들의 행실 때문에 실망하고 기독교에 대한 호감을 잃은 경우가 많다. 도대체 어디서 접했는지 별 희한한 교회, 예수 사칭하고 다니는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사람에 의한 온갖 나쁜 기억과 응어리는 꼭 하나씩 갖고 있는 듯했다. 저런 놈들 때문에 예수 못 믿겠다고.

물론, “크리스천들의 행실은 불신자들이 보는 성경”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크리스천들은 세상을 상대로 좋은 본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고 본인도 당연한 말이지만 그 점에서 거의 대부분의 경우 예외가 아니다-_-. 그런 못난 것들이, 자기보다 훨씬 더 훌륭하고 고상하게 산 사람들도 다 예수 안 믿었기 때문에 죽어서 지옥 간다고 말하면 그것만치 기분 나쁘고 정 떨어지는 소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기독교는 애시당초 선행으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 종교가 아니다. 그리고 교회란, 열심히 도 닦고 인격 수련해서 구원을 받으려 애쓰는 고매한 사람들의 모임이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 다니는 일종의 병원 같은 곳이다. 병원에 완벽한 사람, 성한 사람이 다닐 리가 없잖아..;; 100% 완벽한 교회에 당신이 가입하고 나면 그 교회의 100% 완벽 무결성은 깨진다. -_-;; 그러나 예수님의 구원 초청에 차별이 있던가?? 신앙생활이란 그런 마인드로 하는 거다.

그리고 기독교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불신자들의 안목이 늘 객관적이고 정확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대형 교회에 대해서는 부패하고 비리 많고 돈만 밝힌다고 욕하면서, 한편으로 진짜 성경대로 좁은 길을 고집하는 마이너 교회에 대해서는 자기밖에 모르고 편협하고 옹고집 교조주의라는 식으로 응수한다면?
교회는 어떤 노선을 가든 어차피 욕을 하게 돼 있는 불신자의 취향까지 만족시켜 줄 의무는 결코 없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쉽게 말해서 마 11:18-19 같은 부류들.

난 지금까지 살면서 참 다행스럽고 고맙게 여기는 점이 하나 있는데, 신앙생활에 관한 한 사람 때문에 시험 들고 실족한 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내가 또라이-_- 짓과 괴팍한 성격 때문에, 남들로 하여금 예수 믿는 사람이 원래 다 저렇나 식으로(ㄲㄲㄲㄲㄲㄲㄲㄲ) 시험 들게 하고 간증 망친 게 더 많을 것이며, 기독교계 전체의 관점에서는 내가 빚진 게 더 많을 것이다. -_-;;; 죄인을 받아준다는데 내가 왜 마다하며, 다른 죄인으로부터 끼친 여파에 그렇게까지 피해의식에 사로잡힐 필요가 있겠는가?

나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 사후 심판이 있다는 것, 인간은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으며 인간의 의는 몹시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거나 그에 반감을 품어 본 적이 없다. 신이 인간을 지옥에 보낸다는 말에 불쾌해하기에는 인간의 죄악이 너무 극심하다는 현실에 훨씬 더 공감이 갔다. 이런 발상의 차이가 불신자의 사고방식과 신자의 사고방식의 차이를 만들어 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누구 만만찮게 나만의 인생 개똥철학에 빠져서 하나님에 대해서 굉장히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히고, 죄의 결과와 여파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다가 열폭하고 인생이... 으, 생각도 하기 싫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지금의 내가 되었으니” (고전 15:10)

길거리에서 복음을 설교하는 사람들의 메시지를 들어보면 자기만의 패턴이 있다. 그리고 나도 나만의 패턴이 있다. 나는 내가 깨달은 것을 강조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성경이 어떤 책인지 먼저 얘기한 뒤, 인생은 유한하고 언젠가 죽음과 심판이 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죄에 대해서 얘기하고 예수님은 우리의 경제· 교육· 정치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죄 문제를 해결하러 오셨고 그게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얘기한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살인· 간음을 저질러서 지옥 가는 게 아니라 예수 안 믿어서 지옥 간다. 지금까지 하나님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던 것, 죽으면 다 끝이라고 생각하던 것, 절대적인 선과 악이란 없다고 생각하던 것들을 모두 바로잡아야 한다” ... 이걸 전하려고 한다.

거리 설교라는 게 처음에 입을 떼기가 힘들다. 본인도 초창기에는 원고를 미리 써 보기도 하고 여러 방법을 찾아 봤는데, 결국은 여러 번 하고 나니까 요즘은 원고 없이도 한번 말을 하면 최하 15분은 금방 지나는 것 같다. 나 자신이 복음과 구원 메카니즘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면, 이를 조리 있게 얘기도 곧장 할 수 있다.
내가 평소에 다른 곳에서 공개적으로 얘기를 하다가 말 더듬고 혀 꼬이고 실수하는 것에 비하면, 내가 생각해도 거리 설교는 꽤 유창하게 잘 하는 것이다. -_-

오히려 나는 인터넷 공간도 그렇고 길거리도 그렇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메시지 전파가 차라리 속 편하다.
단적인 예로, 이곳 인터넷에서는 내 인격-_-보다 내가 쓰는 글의 메시지 자체만이 비교적 쉽게 전달되기 때문에 신앙의 동지도 여럿 만나고 이끌어 올 수 있었다. ㅋㅋ 하지만, 나와는 반대 방면으로 재능이 있는 분도 있겠지.

또박또박 길거리에서 설교를 하고 나면 굉장히 기쁘고 후련한 마음이 든다. 내 신앙 노선을 이미 잘 아는 분도 계시겠지만, 난 체험이나 경험 같은 데에 가중치를 덜 두고 그런 것 판단은 아주 보수적이고 신중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 설교를 하고 나면 감회가 새롭다. 이런 육신의 체험은 나도 보증 가능하다. 이걸 기독교식으로 표현하자면 “내 안에 거주하는 성령님이 주는 기쁨”이라고 한다.

“네가 드디어 나에 대해서 공개 석상에서 당당히 증언을 할 정도로 성장했구나! 아이고 기특해라!” 정도? ㄲㄲㄲㄲ
거리 설교가 주는 유익: http://biblebaptistpublications.org/streetpreaching.html 클릭. (영어)

그런데, 그도 그럴 것이 난 어차피 좀 덕후에 남 눈치 볼 줄 모르는 철면피 기질이 있어서.. -_-;;
하루는 거리 설교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문득 이런 선포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여러분은 매일 이용하는 지하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우리나라 철도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전해 드리고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어쩌구저쩌구... 중략)

이처럼 철도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습니다. 철도는 21세기의 트렌드에 어울리는 친환경 고효율 교통수단입니다. 우리나라 철도를 알면 역사와 지식을 보는 눈이 바뀝니다. 철도는 정서 수양과 교양 함양에 좋습니다. 철도를 알면 국토 사랑 정신이 생깁니다. 이렇듯 철도 덕질(?)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선한 간증이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앞으로 철도에 관심을 갖고, 여행 갈 때 철도를 적극 이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드디어 본색이 드러났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설마 진짜로 길거리에서 이렇게 외치고 왔다면, 여기 계시는 크리스천들께서 “용묵 형제가 부디 철도를 끊고 주님께로 돌아오도록” 기도라도 하셔야 할 배도(背道)-_- 단계이겠지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철도를 전하는 데는 영적 전투가 필요하지 않다. 철도를 전하다가 순교? 순직?했다는 사람 얘기는 못 들었다. -_-
철도를 전하기 위해서는 죄, 죽음, 심판, 지옥 같은 유쾌하지 못한 주제를 꺼낼 필요가 없다.
“버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존중해 줘야지 왜 너만 독단적으로 구냐?” 이런 말을 들을 일도 없다.

요즘은 철도역, 시외버스 터미널, 고속버스 터미널을 통합해서 교통 허브로 건설하는 게 유행이라지만, 그게 무슨 교통수단간의 에큐메니컬 운동이랍시고 경계라도 해야 할 대상이지는 않다.

허나, 철도에는 불행히도 혼을 구원하는 능력이 없다. 하늘로부터의 보상이 있다고 약속되어 있지도 않다. 그런 인센티브가 없으니 철도 전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을 해야지 뭐, 별 수 없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내 안에 거주하는 성령님도 철도를 좋아한다고 굳게 믿는다. (뭐, 주변에서는 용묵 형제가 철도 덕질을 할 때마다 성령님은 탄식할 거라고 악담을 하는데... ㄲㄲㄲㄲㄲ) 새마을호 객실에서 Looking for you가 내 귀에 울려 퍼지던 그 날은 내게 정말 오순절 성령 강림절이나 마찬가지인 날이었다. 철도와 본인과의 만남은 가히 운명적이고 필연이었다.

본인은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 밑으로 지하철이 깔리는 날을 꿈꾼다. 누가복음의 므나 비유에서 “열 도시를 다스리라”(눅 19:17)가 ‘10개 철도 노선(사철 ㄲㄲ)을 다스리라’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make straight in the desert a highway for our God.”(사 40:3)는 사막에서 철도가 건설되는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어디 가서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나, 지하철 시스템에 대해서 강연이라도 실컷 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나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이상으로 철도 얘기를 담대하게 늘어놓고 싶다. ^^;;

나는 한때는, 요즘 같은 영악하고 험악한 세상에 나 같은 별종, 괴짜, 덕후가 아니면 누가 성경 따위를 믿겠는지 의구심을 품은 적이 있다. 세상의 유행 풍조하고 성경의 사고방식은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르니까...;; 다시 말해, 철도 덕후나 KJV believer나 비슷한 수준의 geek라고 생각했....는데, 후자에 속한 분에 따르면 그건 절대로 그렇지 않으며, 그 둘을 상호 동급으로 취급하지 말라고 그러네.. ㅋㅋㅋㅋㅋ 정말인지?? ㅠㅠ

Posted by 사무엘

2011/05/21 08:41 2011/05/21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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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매년 4월 중하순에는 어지간한 개신교회들이 부활절이라고 지키는 절기가 있다. 잘 알다시피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한다고들 한다.
부활 신앙은 창조 신앙만큼이나 신자와 불신자를 가르는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인 기독교 교리이다.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절대로 성립할 수 없다고 성경에 직접 선언되어 있다(고전 15:12-19).

일단 예수가 역사적으로 실존한 인물이었다는 건 세속 역사가들도 도저히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건 인정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백과사전이나 세계사 관련 서적을 보면, 예수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이렇게 살다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까지만 서술하고 끝난다. 그 이상을 적으면 종교색을 띠는 민감한 영역이 되어 버리니까..;; 아니면 부활 승천 떡밥의 출처는 '카더라' 통신이라고만 얼버무린다. 이건 마치 “성경이 소설이냐, 비소설이냐?”와 비슷한 영역에 속하는 논쟁거리이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이 죽어서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부활'했다고, 다시 말해 스스로 살아났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의 전말에 대해 좀 살펴보자.

각종 종교 성화나 영화들은 예수님을 무슨 리처드 스톨먼 같은 치렁치렁 장발의 나이 지긋한 도인, 교주, 심지어 록스타-_-처럼 그려 놓는 경향이 있는데, 내가 보기엔 좀 고증 오류가 아닌가 싶다. 더구나 한국어 성경은 예수님의 언행을 다 아주 위압적인 반말 '해라체'로 기록하고 있으니, 심리적으로 느껴지는 예수님의 연령대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생애 시절의 예수님의 육신의 나이는 30대 초중반의 청년, 기껏해야 노총각이다. 그런데 벌써 제자를 뒀을 정도면 그들은 도대체 몇 살이란 말이냐?

어쨌든, '아름다운 청년'이든 도인 교주이든, 죽은 자를 살리고 물 위를 걷고 5천 명의 군중을 오병이어로 배불리 먹이던 화제의 인물이, 어느 날 갑자기 악질 흉악범으로 몰려 그것도 민족 대명절에 너무도 무기력하게 십자가형을 당해 버렸다. 종교 지도자들에게 매수당한 사람이나, 예수가 슈퍼스타답지 않게 자신들의 정치적 육신적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는(않는) 것에 대해 실망한 사람들은 옳다구나 예수님을 마음껏 조롱하고 욕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가히 패닉에 빠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 인맥으로 좋은 감투라도 얻으려고 제자들 내부에도 줄서기 파벌이 생길 지경이었는데(마 20:20-24 같은) 그런 꿈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 “난 모든 걸 버리고 오로지 그분만 따랐는데 내 주인님이 이렇게 죽어 버리시다니!”
물론 예수님은 그 전에 자신의 고난과 죽음, 부활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수차례 예고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당시엔 말귀를 전혀 못 알아들었다.

성경은 예수님이 죽으시고서 사흘간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완전히 침묵한다. 그 시간 동안 제자들은 OTL(좌절) 모드로 있으면서 패잔병의 심정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생업에 종사할 채비나 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 중에 너무 상심한 나머지 자살한 사람은 없어서 다행이다. 물론 예수님을 대놓고 배반한 가룟 유다는 제외하고.

그랬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그 부활한 주님을 처음으로 알현하는 영광을 누린 사람은 제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연약한 여인들이었다. 무덤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어야 할 군인들은 어디론가 달아나고 없고, 역사 기록에 따르면 황제의 봉인까지 굳게 쳐져 있었다는 무덤 입구는 뚫려서 훤히 열린 상태였다.

누가복음 24장에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부활한 예수님이 나타난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뭔 일 때문에 그렇게들 난리요?” / “헐, 요즘 예수 시체 증발 사건을 모르는 사람은 간첩이에요. 님은 소문도 못 들었어요?”
글로바라는 사람이 예수님에게(예수님인 줄 모르는 채로), 근래에 있었던 사건의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본인은 눅 24:19-24의 기록은 정말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진술이라고 생각해 왔다. 거짓· 과장이나 왜곡이 없고, 세속 신문이나 백과사전 기사, 그리고 21세기로 치면 블로그 포스트로도 손색이 없다. 성경을 직접 읽어보기 바란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의 반응은 '오, 그래. 그 괴이한 사건에 대해 육하원칙에 의거해서 알기 쉽게 참 잘 설명했구나'가 아니었다. 오히려 기가 막힌다는 심정으로 그를 크게 나무라셨다! 이 점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오 어리석고 대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일들로 고난을 당하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함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넌 왜 그걸 남의 일인양 꼭 불신자처럼 얘기하느냐?)”

예수님께서 친히 성경(=구약)을 펼쳐서 창세기의 이건 내 예표, 레위기의 저것도 내 이야기, 이것도 내 예언, 저것도 내 예언... 풀이를 해 주자 그제서야 제자들은 마음이 열리고, 지금 시국은 겨우 가십거리 미스터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이 이뤄진 것이고 그게 바로 자기를 위한 것이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의심과 혼동의 구름이 걷히고 마음이 뜨겁게 달아올랐다(눅 24:32). 그때 왜 예수님이 글로바를 책망하셨는지 하나님의 그 답답한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크리스천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각종 성인군자들, 사이비 종교 교주들, 그리고 심지어 공산 독재 국가의 원수들은 다 무덤이 성대하게 꾸며져 있다. 특히 후자 같은 경우는 시신의 미라화와 방부 처리를 하느라 별 돈지랄까지 다 한다.
그러나 교회의 머리이고 굳이 말하자면 기독교의 교주인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다! 이것이 기독교의 자랑거리이다.
죄를 알지도 못하는 예수님이 인간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으나, 그 사망 권세가 예수님을 가둬 두지 못했으며 인간의 죄값이 2000여 년 전에 십자가에서 완전히 치러치고 청산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당당히 부활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그 어떤 조직보다도 피비린내나는 순교 행렬이 넘쳐났음에도 불구하고, 예배 때 묵념이나 추모가 없다. 그분들이 다 지금도 살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흔히 '죽다'의 높임말로 '돌아가시다'(자연으로, 흙으로 완전히 돌아갔기 때문에 지금은 세상에 안 계심)가 통용되는 반면, 예수님에 대해서는 일회적인 죽는 동작만을 높여서 '죽으시다'가 쓰인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이 얼마나 복된 소식인가? 이 기쁨을 힘차게 잘 표현한 대표적인 찬송가가 바로 <무덤에 머물러>이다. 마치 비행기가 이륙하는 느낌이다. '무덤에 머물러...'(택싱), '원수를 다 이기고...'(엔진 throttle 시작), '사셨네'(이륙 결심 속도 돌파.. 상승-_-)

예수님의 부활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이 되었는지 모른다. 부활한 주님을 목격한 제자들은 겁쟁이에서 불과 며칠 만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자 같은 주의 용사로 180도 돌변했다. 조금 외람된 구석은 있지만, Looking for you를 듣기 전과 들은 후 본인의 철도관의 변화 추이 정도에 비유할 수 있겠다. (엥?)

흔히 말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죽으신 날은 금요일이 아니다. 자세한 고증 과정은 생략한다만, 예수님은 수요일 오후에 죽으셔서 진짜 말 그대로 사흘 밤낮을 무덤에 계셨다. 그러다 딱 사흘 뒤인 토요일 오후에 깨어나서 막힌 벽을 쓱 통과하든(요 20:26처럼) 군사들을 쫓아내든 무덤을 일찌감치 탈출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인 일요일 아침에 여인들이 빈 무덤을 발견한 것이다. 쉽죠?

목요일은 명절인 유월절 안식일이고, 토요일은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안식일이다. 유대교 신자인 유대인들은 안식일인 토요일에 회당에서 집회를 열지만, 기독교회의 예배 시기는 예수님의 부활 시기에 초점을 두고 일요일이 전통으로 정착하게 됐다. 요 20:1, 요 20:19, 행 20:7, 고전 16:2 등. 여기서 first day of the week는 다 일요일을 뜻한다.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기 위해서 “예수는 잠시 기절해 있다가 무덤에서 깨어났다. 나중에 도망쳐서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여 후손까지 남겼다”-_-;; 같은 엄청난 낭설을 지어내는 사람이 있는데...;; 반박할 가치도 없는 개드립이다. 오히려 당시 문헌 기록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검토하다 보니, 예수님의 부활을 도저히 의심할래야 의심할 수 없고 부인할 수 없어서 예수님을 믿게 된 무신론자 석학도 존재한다. 부활은 기독교를 여타 종교와 근본적으로 구분하는 핵심 요소임이 틀림없다.

※ 관련 아이템 1: 예수님과 요한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과 관련지어 하나 생각해 볼 주제는 예수님과 요한과의 관계이다. 다른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지만 이 어린 요한은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십자가로 돌아왔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육신의 모친 마리아를 맡겼다(요 19:26-27).
얼마 전 최후의 만찬에서 “너희들 중 하나가 나를 배반할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폭탄 선언에, 다른 제자들은 다 “그게 혹시 저입니까?”라고 반문하였으나 요한만은 예수님 품에 스스럼없이 기대어 “주님, 그 사람이 도대체 누구이죠?”라고 물었다(요 13:21-25). 그는 그만큼 그분과 각별히 가까운 사이였다.

이런 요한은 본이 아니게 아마 순교하지 않고 제자들 중에 제일 장수할 거라는 복선을 얻었으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그로부터 먼 훗날, 요한은 예수님을 전하다가 박해를 받고 90대의 백발노인이 된 몸으로 파트모스(밧모)라는 섬에 귀양을 갔다.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상황이었을 텐데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요한은 성경의 마지막 대단원인 요한계시록을 기록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오오~~~

예수님께서 가장 비참하고 고독하게 고난을 당하고 계실 때 요한이 십자가 곁에 있었으며, 그때 그는 비록 정확한 나이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아무래도 20대 청년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제 완전 늙었고 홀로 외로이--자기 동료들은 거의 다 순교하고 없다-- 임종을 앞두고 있었을 때, 반대로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 주신 것이다. 이때 요한이 수십 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얼마나 기뻤을까?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가 훗날 예수님으로부터 “네가 날 사랑하느냐?”란 질문을 세 번 받았다는 일화만큼이나, 요한과 예수님 사이의 에피소드도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그분의 인상은 계 1:13-16에 묘사되어 있듯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예수님과 그토록 친밀했던 요한조차도 그 위엄에 완전히 압도되어 꼼짝없이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 관련 아이템 2: 부활절과 이스터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거창한 명분과는 달리, 오늘날의 기독교 문화권에 존재하는 일명 부활절은 유감스럽지만 그리 성경적인 기원에서 시작된 게 아니다. 영문 명칭부터가 이스터이고, 이는 기독교를 세상적으로 공인한 로마 제국이 이교도들의 절기를 기독교 관행에다 적당히 짬뽕하면서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아주 유명한 논쟁거리가 있다.
킹 제임스 성경은 현존하는 성경 역본들 중 부활절의 유래를 정확하게 알려 주는 유일한 성경이다. 바로 사도행전 12:4에서 이례적으로 '이스터'(Easter)라는 튀는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통계에 따르면, 성경에서 그리스어 '파스카'는 행 12:4를 포함해 약 20여 회가 쓰였으며, 다른 곳에서는 유대인들의 명절 '유월절'(passover)이라고 번역하는 게 맞다. 그러나 KJV는 딱 한 군데 저기서만은 그 단어를 '이스터'라고 번역했다. 파스카는 유월절도 되고 이스터도 되는데, KJV는 그 둘을 잘 맞게 분별한 것이다.

성경 본문을 보면 악한 헤롯 왕은 기독교를 박멸하기 위해 야고보를 죽인 후, 베드로까지 잡아들였다. 성경에 따르면, 베드로가 체포된 시기는 무교절 기간이었다고 한다. 헤롯은 베드로를 감옥에 가뒀다가, 파스카라는 명절이 다 끝난 뒤에 백성들 앞에 끌어내서 그를 아마 공개 처형이라도 할 작정이었다.

여기서 문제는, 무교절은 유월절이 끝난 뒤에 이어진다는 것. 레위기 23장처럼 구약 율법을 조금이라도 공부해 본 사람에겐 이건 상식이다. 헐, 그런데 무교절 기간에 체포된 사람을 유월절이 끝난 뒤에 끌어낸다고라? 이건 21000원짜리 밥을 사 먹고 나서 돈은 20000원 내고, 포장마차 주인에게 “잔돈으로 애새끼들 과자나 사 주라”는 계산법을 구사하는 김 성모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논리이지 않은지? -_-

그래서 KJV의 번역자는 당대의 언어와 역사· 문화 배경상, 이 파스카는 유대인의 정통 성경 명절이 아니라 이교도들의 짝퉁 명절인 이스터라는 판단을 내리고 '파스카'를 정확하게 번역해 냈다.
KJV를 헐뜯는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KJV에도 오역과 오류가 많답시고 다른 수많은 궤변을 들고 덤빌지 모르나, 우리는 다른 건 몰라도 이스터 하나는 절대로 속아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 본인은 지금까지 이스터에 대한 KJV 안티들의 재반박은 전혀 접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스터 하나만 딱 보고는 '우와!' 무릎을 탁 치고 KJV 유일주의자로 전향한 크리스천은 봤다. ^^;;

※ 관련 아이템 3: 십자가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죄사함 받고 구원받아서, 지금 당장이라도 죽으면 바로 하늘로 갈 확신이 있는 크리스천이라면...
그래서 예수님의 은혜가 너무 고마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면,
현재 가정과 교회와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당신 앞에 바로 놓여 있는 십자가나 묵묵히 지면서 주님을 잘 따르면 된다. '나는 하나님은 믿지만 교회는 안 믿는다' 같은 소리 하지 마라. 그 고마운 예수님이 바로 교회의 머리이다.

예수님의 명령은 안 지키고는, 없는 십자가를 만들어서 질 필요 없다!
특히 주님의 고난을 몸소 체험하겠답시고 육체적으로 자학을 한다거나 그런 짓 하지 마라..;;
교회 성도가 대환란 겪을 준비를 하겠다고 뻘짓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지금 세상이 그렇잖아도 성경대로 살기가 불가능에 가깝게 얼마나 힘든 시국인데, 그것도 모자라서 무슨 고난을 더 보태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11/05/07 08:49 2011/05/07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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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진화 -- 下

※ 창조 vs 진화 배틀

솔직히 본인은 논쟁을 할 정도로 충분하게 창조론이나 진화론을 공부한 적이 없으며, 별로 하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요즘 악의적인 네티즌들이 얼마나 말 꼬투리 잘 잡고 키보드 배틀 잘 뜨는지도 익히 안다. 그래서 본인은 본인의 주장을, “만약 진화론이 이런 걸 주장한다면, 나는 창조론자로서 당연히 성경 말씀과 약간의 과학적/경험적 사실에 따라 그걸 거부한다. 그 이상은 내게 묻지 말라” 정도의 선에서 끝내고자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진화론을 믿는다고 해도, 최소한의 이성이 있는 과학자라면 “나의 x대 조상은 원숭이이고 y대 조상은 아메바이다. 그러니 인간도 동물과 동일한 진화선상에 있는 생물일 뿐이기 때문에, 아무런 도덕적 책임도 없고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 ㅋㅋㅋ”라고 대놓고 이러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이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서 공부도 안 하고서, 진화론자들이 하지도 않는 주장을 지어내서는 “이런 황당한 걸 믿느니 차라리 신의 창조를 믿고 말겠다. 진화론자 비엉~신!” 이렇게 깐다고 그들을 굉장히 싫어한다. 가령, “진화론은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유물론, 나치즘, 공산주의, 인종 우생학 같은 악한 사상에 영향을 끼쳤다” 같은 태클. -_-;;;

본인도 다윈이 딱히 골수 개독안티였다거나, 인종 차별주의자, 유물론자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다윈이나 여타 이성적인(?) 과학자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진화론은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데 본이 아니게 오· 남용되었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보기에 사실이다.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인류가 지금처럼 인권 따지기 시작한 지는 정말 얼마 안 됐다. 그 옛날엔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것도 과학적(?)으로 입증된 마당에, 루저들은 진화가 덜 된 종자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노예로 부려먹고 죽여도 된다” 같은 사상은 너무나 잘 퍼져나갔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게 세속 과학이 말하는 관찰 결과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더라도 말이다.

“아메바보다도 멍청한 놈”이라는 욕설 역시 누가 뭐래도 진화론에서 유래된 상징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학원물인 <구타교실>(소설)에도 나오고 <말죽거리 잔혹사>(영화)에도 나온다.
평범한 들짐승이나 가축이 하는 짓이 띨띨하면 거기서 욕설이 유래될 수도 있겠지만, 아메바는 도대체 뭐냔 말이다.

진화론자들은 창조론자가 창조론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것만치 진화론을 신봉하지도 물론 않는다. 그들에게 진화론이란, 단지 현존 생물들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으로 현재 정설로 여겨지고 있는 이론일 뿐이다. 그런데 거기서 나온 시나리오들이 잘 알다시피 성경에 나오는 6일 창조 메카니즘과 정면으로 충돌하다 보니 끙..;;

서로 사이가 심하게 안 좋다. 서로 조작되고 잘못된 자료나 기록을 아직도 써먹는다고 상대방을 헐뜯는다(필트다운 인, 베이직 원인 vs 공룡과 인간 발자국 등).
창조론 진영에서는 어차피 진화론도 재연 가능하지 않으니 과학이 전혀 아니라고 지적하지만, 진화론에서는 창조론과 자신이 동일선상에서 취급받는 것 자체를 수치스러워한다.

창조론에서는 진화론 진영에서 창조의 과학적 증거를 고의로 외면하고 인정 안 한다고 주장하지만, 진화론 진영에서는 창조 과학을 과학계의 환단고기 급으로 완전히 사이비 취급하는 중이다. 이는 기독교에 반감을 지닌 학자일수록 더욱 심하며, 게다가 가재와 게 사이어야 할 크리스천 중에도 창조 과학회를 싫어하는 사람이 꽤 된다는 것은 심각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진화론자의 주장에 따르면, 무슨 조건에서는 종과 종을 넘나드는 대진화도 발견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창조론자가 진화론을 반박할 때 자주 써먹는 엔트로피 법칙도 생물의 진화에다 적용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받아친다.
더 나아가 현대의 진화론이 주장하는 건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는 게 아니라, 인간과 짐승이 같은 조상으로부터 진화했다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것도 좀 말장난 같은 게, 그럼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가 아니라면 진짜로 아메바이기라도 하냐는 것이다.

엔젤하이로 위키에는 “자잘한 발달 없이 갑자기 만들어진 복잡한 기관이 존재하는 것이 증명되거나 (...) 한다면 현대의 진화론은 붕괴하겠지만 창조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필사적인 연구에도 불구하고 발견된 일이 한 번도 없다”라고 적혀 있는데... 반대로 창조론 진영에서는 진화론자들의 필사적인 연구에도 불구하고 중간 화석 따위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반대편을 까잖아? ㄲㄲㄲ

또한 본인은 창조 과학회 글에서 다윈이 동물의 눈이 어떻게 갑자기 만들어졌을까 엄청 고민했다는 자료를 접한 적이 있다. 눈은 잘 알다시피 굉장히 정교하고 복잡한 기관이며, 진화를 통해서 서서히는 만들어질 수 없다고 말이다. 어쨌든 창조론자나 진화론자나 상대방 진영에 대해서 잘 모르기는 다 마찬가지인 것 같다. ㅋㅋㅋ

※ 천동설과 지동설

생명 기원 문제 얘기를 하다 말고, 잠깐 다른 얘기.
성경은 인간 중심일 뿐만 아니라 지극히 지구 중심이기도 하다. 사실은 유전자 조작이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도전하는 것만큼이나 우주 개발도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대한 도전이다. 단, 도전이 다 반역이라는 뜻은 아니므로 오해하지 말길. 과학은 가치 중립적이다. 크리스천 과학자라고 해서 게놈 프로젝트 연구 따윈 때려치거나 우주 개발 계획에 참여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단지, 하더라도 조심해서 해야 한다.

성경의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해와 달이라는 두 광체를 만들어서 전자는 낮을, 후자는 밤을 주관하게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두 광체라는 해와 달이 실제로는 크기와 위상 면에서 서로 가히 넘사벽급의 차이가 있다. 그게 바로 성경의 진술 방식이다. 선언형 프로그래밍 언어의 코드를 절차형 프로그래밍 언어의 복잡한 알고리즘 구현으로 바꾸는 것과 같다.
성경의 묘사만 읽고서 지동설 사고방식을 생각해 내기란 매우 어렵다. 뭐, 이사야서에 지구가 둥글다는(circle of the earth) 표현이 나오고 욥기에 지구가 우주 공간에 매달려 있다는 진술이 있다는 argument까지는 있으나, 이 역시 문맥이 좀 모호하고 어거지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하나님의 관심사는 인간의 그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러니 성경책이 과학책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성경이 어쩌다 과학적 사실에 대해 언급한다면, 그건 당연히 과학적으로 일치해야 한다. 하나님이 그 모든 과학 법칙을 만들었으며, 성경은 그분의 절대무오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경에는 당대 사람들이 모르던 과학적 사실을 언급하고, 여타 신화나 설화와는 차원이 다르게 정확하게 진술한 부분도 여럿 존재한다. 이런 건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오늘날 창조론으로도 모자라서 천동설까지 믿는다고 하면 제대로 미친놈 취급받을지도 모르겠다. 천문 현상 중에 천동설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게 있으며, 또 잘 알다시피 갈릴레이 갈릴레오 종교 재판이 기독교계에 가히 평생까임권 급의 병크로 남아서 말이다. 그런데 여호수아기에 있는 태양 정지 사건이라든가, 정지로도 모자라서 아예 역주행까지 한 히스기야 왕 사건은 반대로 지동설 패러다임으로는 꽤 설명하기 힘들다.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돌던 지구가 갑자기 자전을 멈추면 관성 때문에 지표면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참고로, NASA에서 태양계 시뮬레이션을 하다가 이 시간을 찾아냈다고 하는 건 구라로 판명됐고. ㄲㄲㄲㄲㄲㄲ)

솔직히 천동설이냐 지동설이냐는, 창조냐 진화냐만치 사람의 가치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건 아니고 영적으로 덜 중요한 문제이긴 하다. 하나님이 특별히 배려를 해서 지동설로도 히스기야와 여호수아의 기적을 안전하게 구현했을 거라고 믿어 버리면 또 할 말이 없다. 하지만 태양계의 우두머리인 태양도 뭔가를 돌고 있고 우리은하도 돌고 있고 세상에 절대적으로 멈춰 있는 기준이 뭔지도 모를 마당에, 사실 절대적으로 멈춰 있는 건 지구뿐이라고 누군가 단정지어 버린다면...? 거기까지는 내가 결론을 못 내리겠다.

아무리 아담의 생물학적 나이가 n년짜리 성인이라고 해도, 하나님이 “너도 낚였음. 저 아담은 10분 전에 내가 성인으로 창조한 거임” 해 버리면 끝이다. 천동설· 지동설 문제도 그런 맥락일지도 모르겠다.

※ 맺는 말

본인은 절대자의 지적 설계를 믿으며, 무생물로부터 생물이 저절로 발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그건 파스퇴르가 이미 150년 남짓 전에 입증한 사실이기도 하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인간이 무생물· 아메바·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말만큼이나(기원), 인간이 죽어서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된다거나 환생· 윤회한다는 말도(내세) 참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매우 해치는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죽고 나면 이 세상을 완전히 떠나 버리고, 자기의 믿음과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아 하늘 아니면 지옥으로 딱 깔끔하게 떨어진다. 연옥 같은 것도 없다. 예수 믿고 나니까 무수한 거짓된 고인 드립-_-과 미신들, 소위 귀신 이야기 같은 것들에 관심이 안 가게 되어 정신 건강상으로 얼마나 많은 유익을 얻었는지 모르겠다. 부활에 대한 소망이 생긴 것은 보너스이다. (예수쟁이들은 부모 제사도 안 지내는 호로자식이 아니라, 살아 계신 부모님을 공경하고 제사로부터 해방되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말하는 심증을 과학이 말하는 물증으로 입증하기란 쉬운 일만은 아닐 수도 있으며, 그게 꼭 가능해야 할 필요도 없다. 본인은 기본적으로 창조 과학회의 노선을 지지하고 거기서 말하는 지식을 수용하지만, 그렇다고 다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또한 그들이 세속 과학계로부터 안 먹어도 될 욕을 필요 이상으로 먹고 좀 뻘짓을 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진실은 언제나 저 너머에 있는 걸지도..;;

Posted by 사무엘

2011/03/29 09:43 2011/03/29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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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진화 -- 上

준비 운동: Vancouver Film school에서 제작하여 인기를 모은 창조 진화 대조 UCC The Duelity (2007) ㄲㄲㄲㄲㄲ GOD의 이니셜이 정말 센스 작렬;;


※ 인간의 독특한 면모 1

인간이 짐승과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무엇일까?
인간이 언뜻 보기에 생물학적으로 짐승과 굉장히 비슷한 점이 많다는 건 심지어 성경도 인정하는 바이다. (전 3:18-20) 물론 인간과 짐승이 완전히 같은 건 아니어서 최근 우리나라에 극심한 피해를 안긴 구제역이 인간에게는 영향을 거의 끼치지 않으며, 반대로 동물에게 흔히 존재하는(=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풍토병이 인간에게는 치명적인 병원균으로 돌변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걸 보면 신기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뿐이라면 그럼 인간은 그저 숨만 쉬고 똥 만드는 기계요, 털 적고 지능 약간 더 뛰어난 원숭이 업그레이드 버전에 불과한 것일까? ㄲㄲㄲ

진화론의 관점에 따르면 인간도 여타 동물과 별 차이 없이 진화 중인 생명체에 불과하다.
그러나 성경에 입각한 창조론에 의하면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격체이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유인원과 인간이 무슨 생물학적 특성이 많이 일치하는 것은, 이들이 동일한 설계자(designer)에 의해 창조되었음을 암시할 뿐 공통의 조상(ancestor)으로부터 진화했다는 걸 증명하지는 않는다.

더 나아가서 생각해 보면, 이 끝없이 넓은 우주 공간에 인간, 아니 생명 자체가 겨우 지구에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대단히 괴상한 일이다. 하필 지구에서 달과 태양의 겉보기 크기가 일치하는 것, 그리고 달은 공전 주기와 자전 주기가 딱 일치하는 것만큼이나 이건 너무 어색하고 뭔가 인위적인 조작이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반기독교 진영에 있는 과학자일수록 외계 생명 찾기에 혈안이 돼 있는 것은 필연이라 하겠다. 생명이 진화의 산물이라면, 그 진화가 그 넓고 넓은 우주의 많고 많은 행성들 중에서 굳이 지구에서만 일어나란 법은 '절대' 없기 때문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라엘리안 무브먼트 정도까지 가면 어지간한 불신자라도 싸이코 취급하면서 멀리하겠지만.

인간은 그 어떤 짐승에게도 없는 후천성 언어 구사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말을 할 수 있다. 어린 아기가 언어를 습득하는 것은 오늘날까지도 그 원리가 제대로 규명되어 있지 못할 정도로 신비로운 현상이다. 그리고 인간은 불을 다룰 줄 알며 이 역시 그 어떤 짐승도 갖고 있지 못한 능력이다.

'호모 사피언스'처럼 인간을 나타내는 학명(?)들은 인간만이 지닌 이런 특성들로부터 유래된 게 많다. 단순히 단체 생활을 하는 동물이야 인간 말고도 포유류나 곤충 중에 많고, 개미는 심지어 집단끼리 전쟁까지 벌이고 포로와 전리품 노획까지 할 줄 안다. 동성애나 심지어 자살을 할 줄 아는 동물도 있다고 하던가? 그건 모르겠다.

※ 인간의 독특한 면모 2

인간과 짐승의 차이는, 튜링 완전성을 갖춘 컴퓨터가 인간이 만든 여타 기계들과 다른 점하고도 비슷한 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오로지 본능대로밖에 움직일 줄 모르는 짐승과는 달리, 인간은 학습에 의해서 가히 무한대에 가까운 후천적인 지식과 기술· 사상을 습득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인간은 각자 넘사벽 급으로 다른 양상의 인생을 살 수 있다. 컴퓨터 역시 프로그래밍을 통해 그야말로 상상도 할 수 없는 무한한 가짓수의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타 전자 기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던가.

물론 사람과 컴퓨터 사이에도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는 건 두말 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이걸 속 시원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좀 영적인, 종교적인 용어가 동원되어야겠다. 인간에게는 오늘날의 컴퓨터가 결코 흉내 내지 못하는 자유 의지가 있다. 디지털 컴퓨터가 겨우 0과 1밖에 분별을 못 하는 것과는 달리, 인간은 창세기 앞부분에 나와 있듯이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알고 자기 행동에 대해 도덕적인 책임을 질 줄 안다.

성경에 따르면 오로지 인간만이 하늘(천당)이나 지옥 같은 내세가 존재하고 사후 심판이 존재한다. 인간만이 혼이 불멸이다. 그리고 예수님 역시 오로지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다.
그 반면, 짐승은 죽으면 그걸로 소멸하고 완전히 끝이기 때문에 하늘나라에서 볼 수가 없다. 지옥에 안 가는 것만큼이나 하늘에도 안 간다. 그러니 애완동물에 너무 애착을 가질 필요가 없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말하는 혼의 멸절 교리는 실은 동물에게나 적용된다. -_-

최근에 잘 알다시피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교육비에 답이 안 보이고, 또 요즘은 남녀 모두 예전처럼 오로지 가정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지도 않는다.
가히 암울한 현실이긴 하지만, 이거 하나는 알 필요가 있다. 죽어서 돈이나 다른 재산은 못 가져가도, 하늘에서까지 영원히 같이 남는 건 육신의 자식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아주 어렸을 때 죽었거나 최소한 구원받은 자식에 한해서이겠지만. 이걸 감안하면 결혼과 출산이 세상의 불신자들이 말하는 것만치 어리석은 행동만으로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 사람과 하나님의 관점의 차이

자, 본인은 지금까지 성경이 말하는 사람의 정체성에 대해서, 동물 내지 컴퓨터를 대조군으로 제시하면서 짧지 않게 설명했다.
여러분도 곰곰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저렇게도 인간만을 정말 너무나 유별나고 독특한 영적 존재로 취급하는 성경에 진화론 사고방식이 들어갈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을까? -_- 최소한 창조면 창조, 진화면 진화 이렇게 둘 중 하나이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같은 유인원도 다 하나님이 만들었고 진화가 창조 메카니즘의 일부라는 소위 유신론적 진화론이 과연 성립 가능하겠는가?

본인은 크리스천으로서 분명히 창조론자이다. 그러나 이 글의 집필 의도는 찌질하게 화석이 어떻고 무슨 연대기 측정이 어떻고 하면서 싸우는 게 아니다. 서로 상대방의 사고방식이 어떤지, 왜 창조와 진화 논쟁이 영원히 평행선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지 문제의 본질부터 좀 보라는 것이다.

인간의 진화에 대해서 학교에서 다루는 과목으로 흔히 생물학이나 지구과학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넓게 보면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천문학하고도 연결이 되고, 국사에서도 본격적으로 고조선으로 들어가기 전에 아주 잠깐 유인원 내지 선사시대가 다뤄진다. 세속 역사에서는 인류가 불을 다루고 농사를 짓고 바퀴를 발명하고 문자를 만들고 화폐를 발명한 게 아주 대단한 업적이고 인류 역사에서의 대전환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성경은 어떤가? 그딴 것 없다. -_-;; 바퀴나 문자는 모르겠지만, 불을 다루고 농사를 짓는 건 아예 최초의 인간인 아담부터가 당장 바로 할 줄 알았던 일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런 건, 자기 피조물인 인간의 지능을 감안했을 때, 아주 금방 자연스럽게 알아내고 습득하고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에 전~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성경에 따르면 인간에게 애초에 야만적인 선사시대 같은 건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고대인들은 현대인보다 더 지능이 뛰어났으며, 자동차· 컴퓨터· 인터넷의 힘을 빌지 않고도 정교한 기계와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 냈다. 물론 자동차나 컴퓨터 자체는 지식과 기술 자체만으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물건이니 논외로 하더라도.

인간의 관점에서는 인류가 이뤄 낸 산업 혁명, 컴퓨터의 발명, 비행기의 발명, 달 착륙, 인터넷, 스마트폰, 정보화 혁명 같은 게 대단한 변화이지만 하나님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그런 건 말세 이전에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질 트렌드에 불과할 것이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 하나님이 인류의 역사에서 관심을 갖고 계신 건 교회사이며, 당대의 교회의 보편적인 상태이다. (거기에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이스라엘.) 온갖 핍박에도 꿋꿋이 버티던 교회가 오늘날처럼 극도로 변질되고 막장으로 치달은 때야말로 세상이 끝날 때가 임박한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관점'을 이해한다면 창조와 진화 논쟁을 접근하는 방식도 바뀌게 된다. 크기가 무려 200억 광년에 달한다는 온 우주를 만들고 인간과 생물의 그 복잡하고 정교한 DNA를 일일이 다 설계했을 하나님께서 왜 오로지 지구에만 초점을 맞췄을까? 그리고 보잘것없는 성막 하나에, 성전 하나에 왜 그리도 많은 관심과 성경 지면을 할애하여 시시콜콜 자세한 묘사를 해 놓았을까? 이러니 성경대로 믿는 크리스천은, 당장 이해가 안 가더라도, 자기의 사고방식을 하나님의 관심사에다 맞추는 것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창조와 진화 얘기를 계속 진행하도록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1/03/27 08:49 2011/03/27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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