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단모음 A와 O

라틴 알파벳에서 A와 O는 통상적으로 ㅏ, ㅗ 음가에 대응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독일도 그렇고, 또 영어의 종주국인 영국도 그런 편이다.
하지만 영어를 사용하는 실질적인 최대강국인 미국에서는 이들 발음이 변해 버려서 비영어권 국가에서 외래어의 표기에 많은 혼란을 주고 있다.

걔네들은 ㅏ, ㅗ이던 것이 ㅐ, ㅏ로 변해 버렸다. 그러고 보니 U도 ㅜ냐 ㅓ냐 갖고 굉장히 오락가락하네.. 모음삼각도로 표현하자면, 다들 시계 방향으로 살짝 회전해 버린 것 같다. 안 변한 건 I(ㅣ)와 E(ㅔ)뿐이다.

그래서 톰이냐 탐이냐.. 도트냐 닷이냐도 헷갈리고, 할로윈이냐 핼러윈이냐도 헷갈린다. shop도 쇼핑, 워크샵/워크숍, 포토샵 등이 매우 혼란스럽다.
일본에서는 단모음 A는 일편단심으로 ㅏ로만 적고 있다. 그래서 패밀리는 그냥 파미리이고, 애니메이션도 아니메이다. 그러니 쟤들은 ㅏ와 ㅐ가 구분이 잘 안되겠지만 우리말에서는 A와 E, 즉 ㅐ와 ㅔ가 구분이 안 돼서 문제이다.
우리나라는 미국 스타일로 음차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일본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시기가 굉장히 일러서 그런지 영국· 독일의 보수적인 스타일을 여전히 고수하는 것 같다.

그래서 '아이패드'(pad)는 일본어로 '아이팟또 アイパット'인데.. '아이팟'(pod)은 '아이포또 アイポ-ト'라고 한다.
A와 O의 발음 괴리의 직격타를 제대로 맞았다. ㄲㄲㄲㄲ

영어의 이런 발음 변화는 영어 자신의 관점에서도 별로 좋은 현상이 아니다. 스펠링과 발음이 심하게 따로 노는 언어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 빼면 영어 정도면 다른 언어들에 비해 문법이 단순하고 배우기 쉬운 축에 드는 것 같다.
영어 정도의 과거형 불규칙이나 복수형 불규칙 난이도가.. 설마 한국어의 미친 높임법과 호칭, 용언 불규칙 활용 난이도에 비하겠는가? =_= 라틴어나 러시아어, 독일어의 미친 굴절에 비할 수준이겠는가? 그럴 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말은 한때는 ㅏ와 ㅓ가 다른 것만큼이나 ㅐ와 ㅔ가 달랐던 적이 있긴 한 것 같은데 말이다.. 근데 어쩌다 '내'와 '네' 1인칭과 2인칭 대명사가 구분되지 않는 난장판이 돼 버렸을까?
이건 심각한 문제이다. 그러니 '네'가 현실에서는 '너'나 '니'로 불안하게 자꾸 바뀌는 것이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 학습자의 입장에서도 아주 보기 좋지 않다.
아울러, '날다'의 활용형이 '나는'이 돼 버려서 I am과 겹치는 것도 영 보기 좋지 않다. '날으는'을 무작정 비표준으로 치부하고 금지하기가 곤란한 노릇이다.

2. 한자어처럼 생긴 외래어

바지 선(barge), 바자 회(bazaar), 마지노 선(프랑스의 지명 Maginot), 지로 용지(giro), 모기지 론(mortgage loan), 비박(Biwak)...;;

이런 것들은 한자어가 전혀 아니다. 특히 모기지 론은 '론'조차도 論이 절대 아니고 loan일 뿐이다. 마지노 선이 마지+노선(路線)이 아니듯이 말이다.
'비박'의 경우는 무려 독일어 일반명사이고, 사실은 우리말로도 '비바크'라고 표기해야 맞다. 숙박 泊하고는 전혀 관계 없다.

이래서 옛날에는 사람들이 표기를 더 꼼꼼하게 하려 애썼던 것 같다. 국한문 혼용은 말할 것도 없고, 인명 지명 같은 고유명사나 심지어 외래어는 폰트(서체)를 달리해서 표기해 놨다.
한글에다가 한자의 획 모양을 접목해서 날카로운 느낌을 주는 '순명조'라는 서체 말이다. 이게 옛날 동화책이나 교과서에서는 외래어를 표기하는 서체였다.

난 한자 혼용까지는 너무 오바이다만, 그 대신 개인적으로는 성 이름을 띄어 쓰는 것, 그리고 외래어 고유명사 뒤에 붙는 명사는 띄어 쓰는 것에 지지 소신이다. 이것까지 안 하면 구분이 너무 안 되는 것 같다.
태산, 백두산, 일본어, 평화선
에베레스트 산, 나일 강, 후지 산, 산스크리트 어, 마지노 선

3. 표기 수단

일본어는 변별 가능한 음운이 부족해서 그런지, 장단(긴/짧은)이라도 한국어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구분하려는 것 같다. 그래서 대놓고 길쭉한 가로줄이 장음 부호로 쓰인다. 같은 소리라도 이게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서양의 알파벳 기반 정서법에서는 짤막한 가로줄(하이픈)이 (1) 정도가 좀 약한 띄어쓰기, (2) 긴 단어를 앞뒤 줄에 걸쳐서 열거하는 용도로 쓰이니 이와 좋은 대조를 이루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서양 정서법에서는 일본어의 장음 부호 같은 긴 가로줄은.. 음운 계층에서의 장음이 아니라 우리 식으로 치면 ‘줄표’.. 문장 단위에서 뜸을 들이는 걸 나타낸다. 음운 계층에서의 장음은 그냥 글자를 aa ee ei 늘어놓는 식으로 해결하니 말이다.

문자에 대해 더 생각해 보자면.. 라틴 알파벳은 대소문자 구분이 있어서 문자 용도에서 수직적인 상하 계층을 만든다. 고유명사나 이니셜을 대문자로 쓴다.
일본어는 히라가나-가타카나 구분이 있어서 수평적인 역할 구분을 형성한다. 잘 알다시피 외래어나 의성어가 가타카나로 표기된다. 알파벳으로 치면 이탤릭에 얼추 대응할 듯?

한글은 글자 차원에서는 초중종성을 모아서 스스로 굉장히 잘 완성된 형태를 형성한다. 한국어 역시 일본어보다는 음운이 풍부하고 또 복잡한 훈독이 없으니, 자국 모아쓰기 표음문자만 닥치고 늘어놓는 ‘전용’을 하는 방향으로 정서법이 깔끔하게 정착했다.

그게 대체로 좋긴 하지만, 그래도 장단을 표기에 너무 반영을 안 하다 보니 길고 짧음의 구분이 한국어에서 통째로 소멸하는 것 같아 아쉽다. 그런데 한글은 그 상태로 완성도가 너무 높기 때문에-_- 추가적인 계층을 만들 여지도 별로 없는 것 같다. 그 이상 글자의 형태를 구분하는 건 폰트의 영역으로 가야 할 듯..

필요한 경우, (1) 장음/단음이나 (2) 사이소리 정도는 기호 차원에서 표현할 방법이 꼭 있어야 할 것 같다. 이건 음운 차원이고..
더 욕심을 내자면 평소에는 붙이지만 필요에 따라 체언-조사 내지 용언-어미를 구분하는 마크, 이 명칭이 외래어나 고유명사임을 나타내는 마크, 이 어절이 체언인지 용언인지를 나타내는 마크 같은 것도 좀 있었으면 좋겠다. 가운뎃점은 일본에서 유래된 건지 모르겠다만.. 콤마보다 더 크거나(세미콜론) 작은(가운뎃점) 보조 구분자도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4. 나머지

(1) 영어권에서는 글자를 읽을 때 같은 글자가 연속해서 나올 때 double/triple로 더 즐겨 대체하는 성향이 있다.
C++ C double plus / 007 double O seven / www triple W
우리말 "씨뿔뿔, 공공칠, 더블류더블류더블류"와 비교해 보자. =_=;;

(2) 베트남 - 비엣남, 베토벤 - 베트호픈, 맥아더 - 매카서..
뭔가 대놓고 독일식 같지는 않은데 실제 발음과 미묘하게 동떨어진 외래어 표기가 좀 있는 것 같다.
한국어와 영어의 음절 구분 방식이 다른 것도 있고, 옛날에는 실제 발음보다는 스펠링 형태를 더 고려해서 한글 표기를 정했던 것도 있다.
하지만 이미 굳어지고 정착해 버린 건 어쩔 수 없다 치는데.. 하루아침에 터키 대신 튀르키예는 너무 뜬금없고 좀 문화 충격까지 느껴졌다. =_=;; 스페인 - 에스파냐도 아니고 이건 뭐..

(3) 메시지 - 마사지 - 소시지~~ 음운 형태가 비슷한 단어들이다.
'메세지'라고 쓰고 싶다면 소시지도 소세지가 돼야 맞으며, '맛사지'라고 쓰고 싶으면 메시지도 멧시지가 돼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서로 표기 방식을 보완하면 된다.
디저트 - 데저트(사막)-_-도 영어 스펠링과 발음이 헷갈리기 좋은 듯.. 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23/10/12 19:46 2023/10/12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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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단어들의 형태와 의미

1. 단어 의미의 차이

(1) '오타쿠'라고 그 이름도 유명한 일본어가 국내로 유입돼 들어왔는데.. 이게 표현과 의미가 분화됐다.
앞부분을 떼어낸 오덕은 말 그대로 일본 애니, 미소녀, 모에 하앍하앍, 피규어.. 이런 특정 분야와 관련된 원래 뜻이고,
뒷부분을 떼어낸 덕후는 매니아, 전문가, 기크, 너드..라는 뜻인 것 같다. 역덕 밀덕 철덕에서는 접사로도 쓰인다.

(2) 나룻배는 뭐고 거룻배는 뭐지..??
수하물 수화물도 그렇고. 마치 성경 용어 환난과 환란만큼이나 별 차이 없이 섞여 쓰이는 단어 같다.

(3) 외도: 한국어에서는 ‘배우자의 외도’라고 보통 불륜, 간통, 음행 쪽만 가리킨다. 그러나 일본어에서는 그냥 일반적인 부도덕 죄악 악행을 모두 가리킨다. 휴먼버그 대학교 고문 소믈리에의 대사를 통해서 알게 됐다. -_-
외모: 한국어에서는 일단은 성형수술과 관계 있을 정도인 겉모습에만 국한되어 쓰이는 편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은 외모를 취하지 않으시고”(person)는 가오뿐만 아니라 능력, 피지컬처럼 사람의 전반적인 스펙을 모두 일컫는 의미이다.
外자가 들어가는 흥미로운 단어 쌍이다.

(4) 저것 말고도 '비겁', '묵살' 같은 한자어도 한국어와 일본어가 뉘앙스가 미묘하게 다르다는 게 잘 알려져 있다.
우리말로는 둘 다 아주 부정적인 뉘앙스의 단어인 반면.. 일본어로는 전쟁에서 적을 기막히게 속이고 낚고 농락해서 싸그리 몰살시켜도 비겁(!!)하다고 그런다. 긍정적인 뉘앙스가 담긴 교활이나 악랄, 영악이라는 의미도 좀 포함한다는 뜻이다. 선전포고 없이 진짜 치졸 비열하게 진주만을 공격한 거 말고, 저런 것까지 말이다.
그리고 묵살은.. 한국어에 의미하는 ‘무시’의 강화 버전뿐만 아니라 신중한 보류..까지 의미한다. 과연 사무라이뿐만 아니라 에둘러 말하기의 달인인 일본 문화답다. 허나, 쟤들은 포츠담 선언까지 묵살한다고 모호하게 답변했다가 결국은 핵을 쳐맞았다. -_-

(5) 컴퓨터 프로그래밍에서 직렬화란.. 어떤 오브젝트의 내부 상태를 스트림 형태의 비휘발성 메모리에다가 쭉 덤프해서 나중에 다시 원래대로 읽어들이고 복원 가능하게 하는 기능을 말한다. 배열, 리스트가 아니라 트리 구조 같은 비선형 컨테이너는 직렬화를 위해서 코딩 기법이 좀 필요하다.
그런데 병렬화는? 같은 목적을 위해 수행되는 많은 작업들을 CPU 코어 여러 개에다 분산시키고 동시에 수행하도록 해서 전체 소요 시간을 줄이고 성능을 끌어올리는 걸 말한다. 그러니 직렬화-병렬화는 분야가 서로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닌다~!

(6) 우리말 내지 이쪽 문화권에서는 돼지가 무척 공격적인 동물이라고 생각했는가 보다. 그래서 ‘저돌적’이라는 단어가 있으며, 여기서 ‘저’는 돼지 猪이다. 심지어 '저돌희용'이라는 한자성어가 있다. '멧돼지 희'라니.. 참 희한한 한자인데.. 울나라 상용 한자가 아닌 듣보잡 글자이다.
그런데 영어권에서는 숫양이 사납고 성깔 더럽다고 생각했는지, ram에 저돌적이라는 뜻이 들어있다.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다, ‘공성 망치로 공격하다, 배끼리 서로 들이받다’ 같은 옛날 전쟁 전술과 관련된 살벌한 뜻이 들어있다.
옛날 영화 벤허에서도 갤리선에서 최고속을 가리키는 용어가 3등 battle speed, 2등 attack speed를 넘어 ramming speed였다..;;

(7) 영어에는 prosecute(기소)와 persecute(박해)가 형태가 비슷해서 이를 이용한 언어드립이 있는 걸 개인적으로 어디선가 봤었다. 악질 검사한테 박해 받는다..;; 뭔가 심상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translation(번역)과 treason(반역)도 비슷한 관계이다. 이건 굉장히 공교롭게도 영어와 한국어 모두 형태가 비슷한 단어쌍이다~!

(8) AV..
AV 단자라고 하면 오디오/비디오라는 뜻이다.
AV 1611이라고 하면 공인된 번역본이라는 뜻이다.
일본 AV라고 하면... 19금이라는 뜻이 된다. 의미와 용도가 완전히 제각각이다.. ㅋㅋㅋㅋㅋ

2. 욕처럼 들리는 단어

(1) 시발: 시발 자동차, 구로 역 시발..;;; 전설적인 예시이다.
채널A 카톡쇼에 출연했던 어떤 자동차 업계 원로의 회고에 따르면.. "시발 시발 우리의 시발~~~" 이러는 라디오 광고 CM쏭까지 있었다고 그런다.
그리고 필리핀에는 시발롬 Sibalom 이라는 지역이 있다.. ㅠㅠㅠㅠㅠㅠ.

(2) 옛날 일본의 히로히토 천황은 본명이라고 해야 하나 휘호가 迪宮였는데.. 발음이 '미치노미야'였다. 영어로도 Prince Michinomiya Hirohito 라고 썼다.
일제 식민지 조선인들한테 "미친놈이야"라고 당연히 놀림감 0순위였으며, 일본도 이 사실을 광속으로 인지하고 단속을 벌였다.

(3) rape: 어떻게 노란 유채 식물이 이런 끔찍한 범죄와 동음이의어인지 궁금하다. 그래서 영어로는 원래 명칭대로 안 부르고 카놀라 Canola라고 부른다.
하긴 유채는 순우리말 명칭도 굉장히 뜬금없다. '평지'라고 하네...;;;

(4) retard: 학창 시절에 접했을 음악 나타냄말에도 '리타르단도'(점점 느리게)가 있고, 또.. 항덕이라면 비행기 조종에서도 어떤 기종은 착륙 착지 때 GPWS에서 retard, retard~~ 라고 안내를 해 준다. '엔진 출력 낮춰, 속도 줄여~!' 이런 뜻..
근데 현실에서는 retard는 음악이나 비행기 출력이 아니라 지능 발달이 더딘 사람을 일컫기도 한다. '백치 아다다'에서 백치처럼 말이다.
비행기가 성공적으로 착륙하면 이탈리아 같은 일부 문화권에서는 승객들이 환호하고 박수도 치는데.. 정작 조종실 계기판에서는 병~~신 병~~신(약오르지ㄲㄲ) 이런 어감의 놀림(??)이 흘러나온다는 게 웃기게 느껴질 수 있다.

3. 언어유희

  • 헌신만 하다가 헌신짝 취급 당한다.
  • 다짐을 너무 많이 하면 다 짐이 된다
  • 교사 지침서 때문에 교사가 지침..
  • 지적이지만 지적질 하지는 않는 사람이 좋다~~ ㄲㄲㄲㄲㄲㄲ

그리고 파이널 Pinal air park(애리조나), 페인 Paine field(워싱턴 시애틀).. 둘 다 항공과 관련된 유서깊은 시설이 있는 지명이다.
전자는 노후 비행기 보관소이다. 그래서 최후 final과 비슷한가..?? -_-;; 그리고 후자는 위치에서 짐작이 가듯, 보잉 사 에버렛 공장에서 생산되고 출고된 비행기들이 첫 출발하는 곳이다. 비행기의 출산의 고통을 의도해서 pain 드립을 쳤는지 모를 일이다. -_-;;

Posted by 사무엘

2023/10/10 08:35 2023/10/1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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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허블 우주 망원경으로 그 억만 광년(!!) 까마득하게 멀리 떨어진 은하의 모습을 척척 선명하게 찍곤 하는데..
그걸로 가까이 있는 우리 동네 천왕성, 명왕성, 심지어 달 표면 사진은 좀 찍을 수 없나? 매번 번거롭게 탐사선을 보내야 하는가?

꽤 그럴싸한 질문인 것 같다. 하지만..

A. 태양계의 행성들은 매우 매우 가까이 있는 대신, 가까운 것 이상으로 크기도 깨알같이 너무 작다. 어두운 건 덤. 그렇기 때문에 우주 망원경을 동원한다고 해도 행성 사진을 그렇게 고퀄로 찍을 수는 없다.
과거에 허블 우주 망원경으로 명왕성을 찍은 적이 실제로 있었다. 하지만 화질은 이게 한계였다. -_-;;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니 태양계 행성들을 자세히 관찰하려면 번거롭지만 탐사선을 보내야 한다.
유의미하게 선명한 명왕성 표면 사진은 뉴 호라이즌스 호가 2006년에 발사되고 무려 9년 동안 명왕성을 향해 직접 날아간 뒤, 2015년에야 얻을 수 있었다.

지구 풍경에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10km 넘게 떨어진 저 건너편 건물이나 산을 확대해서 볼 수 있는 망원경이 있다 해도, 그걸로 바로 엎어지면 코 닿는 곳에 있는 콩알이나 쌀알의 표면을 제대로 관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ㄲㄲㄲ 그건 서로 분야가 다르다. 저격소총과 자주포가 용도가 다르듯이 말이다.

이 정도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된 것 같다. '1분만'이라든가 '사물궁이' 같은 잡학 채널에서 선뜻 다룰 법도 한데.. =_=;;;
허블 우주 망원경은 지구를 도는 인공위성이다. 그러니 지표면에 설치된 우주 망원경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지구를 뱅글뱅글 돌고 있다. 그 상태로도 촬영 목표물을 향해 시선을 흔들리지 않게 고정하는 게 무슨 함포 사격 통제장치마냥 정교하게 갖춰져 있어야 한다. 이 일은 피사체가 가까이 있을수록 난이도가 더 올라가며, 먼 은하가 아니라 겨우 태양계 행성을 촬영한다면 더 불리하게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우주 망원경이 지구상의 천문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한 건 잘 알다시피 지구 대기로 인한 시야 핸디캡이 없다는 것이다.
뭐.. 중량 제약이 심하게 걸리기 때문에 지구 천문대와 같은 거대하고 무거운 망원경을 설치하지는 못한다는 다른 핸디캡은 있다.
운영 비용이 살인적이라는 것도 덤.. 테이큰 대사 "인공위성 카메라의 각도 하나 변경하는 데 드는 비용이 얼마인지 생각은 해 봤냐?"는 빈말이 아니다. ㄲㄲㄲㄲㄲㄲ
그러나 대기빨 안 탄다는 장점이 워낙 넘사벽 독보적이기 때문에 학계로부터 우주 망원경의 수요는 마를 날이 없다.

* 여담: 우주에 대해서

(1) 핵융합이라는 게 일어나려면 극악의 고온 고압 환경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낱 지구의 실험실 나부랭이 수준에서는 엄두를 내기 어려우며, 꿈의 에너지원이라는 핵융합 발전도 아직은 SF의 영역이다.
근데 우주 규모의 거시세계에서는 물질이 정말 지구 따위 쌈싸먹을 정도로 너무 많이 쌓여서 자기 중력을 못 견디고 붕괴해서 핵융합이 일어날 정도이다.;;; 쉽게 말해 100% 철로만 이뤄진 지름 1백만 km짜리 공은 재료공학 차원을 넘어서는 이유 때문에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별들은 무슨 석유· 가스를 태워서가 아니라 수소 핵융합으로 열과 빛을 낸다. 원자가 입자 차원에서 붕괴해서 중성자별이 됐다가 블랙홀이 됐다가 이런다. 중력과 원자력,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이 이렇게 연계한다는 게 천체물리학에서만 볼 수 있는 신기한 면모인 것 같다.

(2) 옛날에 TV나 라디오로 방송국 전파가 없는 주파수/채널을 돌렸을 때 나는 그 흰 쌀알 소용돌이 애니메이션=_=과 우렁찬 씨이이이치이이이이이이 잡음은 그냥 개소리 잡소리가 아니라 먼 옛날 우주 배경 복사의 흔적이다. ㄷㄷㄷㄷㄷ 그저 전자 기기에서 자체적으로 발생하는 열잡음만 있는 게 아니다.
먼 옛날에 엄청난 에너지의 발산이 없었다면.. 임의의 주파수/채널을 돌렸을 때 그냥 아무 신호 없이 조용해야 정상이 아니겠는가? 그냥 비디오 테이프의 무음부를 재생하거나 터널 안에 들어갔을 때 위성방송이 조용히 끊기는 것과 비슷한 반응이 와야 할 것이다.

왜, 척 노리스 개드립 시리즈 중에 이런 게 있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전화기를 발명해서 개통해 봤더니 척 노리스로부터 부재 중 통화가 3통이나 찍혀 있었다"..;;; 이 상황과 그나마 근접하는 현실 버전이 바로 우주 배경 복사 전파 수신인 셈이다.

옛날에는 저게 개나 소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잡음이었는데.. 오디오 비디오 기술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뀐 뒤부터는 이걸 청취하는 게 생각보다 꽤 어려워졌다!! 유튜브에 백색잡음이 일부러 올라와 있을 정도로..
요즘 기기는 전파 신호 자체를 쌩으로 그대로 전하는 게 아니다. 정상적으로 압축 해제되지 않는 신호는 통째로 버린다. 그러니 무의미한 백색잡음은 다 걸러지는 것이다. 이런 것도 기술의 발전이다.

(3) 태양계가 얼마나 크면 지구와 달 사이 거리에 모든 행성들이 다 들어가고, 태양과 수성의 거리만 해도 태양 지름의 수십 배라고 그런다.
근데 태양이 수십억 년 뒤에 적색거성이 되고 나면 태양의 반지름만 무려 2AU에 달할 정도로 팽창해서 지구와 화성까지 다 삼켜질 거라니 이건 또 무슨 변고인가 싶다.

태양 자체는 맨눈으로 보면 그냥 닥치고 눈부시게 밝은 백색광이다. 붉은 노을이나 누런 불빛은 빛 산란과 보정을 많이 거친 색깔일 뿐이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뜰 때나 질 때 태양의 모습이나 하늘 색깔은 아무 차이가 없으며, 서로 구분 불가능하다.

(4) 별은 우리가 지구에서 관측할 때 의미를 지니는 겉보기 밝기와, 거리를 동기화시키고 측정하는 절대 밝기를 따로 다룬다. 태양조차도 절대 밝기는 겨우 4~5등성이지만 이것만으로도 우주 전체의 별들 중에서는 최상위권의 밝은 별이라고 일컬어진다.
그것처럼 지진도 그 자신의 절대적인 강도 (규모)와, 우리가 지표면에서 피해 정도(진도)를 따로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3/10/08 08:35 2023/10/0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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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의 정보 기억장치는 다음과 같은 속성에 따라 분류 가능하다.

(1) 배열처럼 아무 지점이나 O(1) 시간 복잡도로 즉시 접근 가능한가? 아니면 링크드 리스트처럼 순차적으로만 접근 가능한가?
Random Access memory라는 건.. 아무렇게나 읽고 쓰기가 가능하다는 뜻이 아니라, 임의 지점 접근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물론 오늘날은 테이프 같은 극단적인 물건 말고는 RAM이 당연시되고 있다. 테이프는 임의 접근이 안 되니 번거로운 감기 기능이 필요했지만.. CD는 아무 트랙이나 바로 갈 수 있다.

(2) 읽고 쓰기 가능한가, 아니면 읽기 전용인가?
ROM이라고 불리는 물건들은 RAM의 속성을 지니면서 동시에 ROM인 셈이다. ROM은 RAM의 엄밀한 반의어가 아니니 유의할 것.
CD 같은 광학 디스크는 요즘 기술로 '쓰기' 자체는 가능하다. 하지만 아무 부작용이나 부담 없이 자유자재로 아무렇게나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3) 휘발성인가, 비휘발성인가
아주 중요한 속성이다. 전원이 끊어지면 내용이 싹 다 날아가느냐, 아니면 그 뒤에도 내용이 남아 있느냐? 읽기 전용 메모리는 당연히 비휘발성이어야 할 테니 이건 읽쓰 겸용 메모리가 대상이다.
반도체 기반의 주메모리는 속도가 빠른 대신 전자이고, 나머지 보조 기억장치들은 느린 대신 용량 많고 후자의 속성을 지닌다.

(4) 매체와 reader/writer가 쉽게 분리 가능한가? 아니면 붙박이인가?
이거 무슨 철도 차량으로 치면 기관차-객차 vs 동차 같은 차이점 같다.

(5) 그리고.. 어떤 기술 배경에 따라 만들어졌는가?
다음과 같이 세 계열로 나뉜다.

1. 자기장: 테이프, 디스켓 // 디스크, 드럼.

매체 분리형에서는 테이프만이 무슨 방송국이나 데이터센터 급의 백업/아카이빙 용도로 쓰이고 있고 나머지는 도태했다. 디스켓이고 zip드라이브고 뭐고 다 망했으니까. 붙박이형은 디스크만이 '하드'의 형태로 남고 다 도태했다.
1950년대에 슈퍼컴퓨터 용으로 무려 5MB짜리 하드디스크를 지게차에다 조심스럽게 실어 나르던 시절을 보면 참 격세지감의 극치가 따로 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는 전통적인 트랙이니 섹터니 하는 구조 구분과 '포맷'이라는 게 통용되는 기억장치이다. 하드디스크는 실린더라는 것도 있었고 말이다.
똑같은 디스켓이라도 운영체제에서 소프트웨어적으로 공간 구획을 구분하고 인식하는 방법이 다르다. 과거에는 플랫폼과 운영체제에 따라 이런 파편화가 더 심했기 때문에 디스켓들이 포맷되지 않은 채로 판매되곤 했다. 물론 IBM PC와 MS-DOS가 천하를 평정한 뒤부터는 디스켓들이 다 미리 포맷되어서 나오기 시작했다.

하드디스크는 전원이 끊어질 때 안전을 위해 파킹이라는-_- 마무리 동작도 권장되곤 했다. 물론 훗날 자동 파킹이 지원되면서 별도의 파킹 유틸리티는 화면 보호기만큼이나 별 필요 없는 눈요기 잉여로 전락했다.

2. 반도체: USB 스틱, SD카드 // SSD

메모리 반도체는 100% 전자식으로만 동작하는 물건이다. 빠른 대신에 비싸고, 무엇보다도 그 특성상 전기가 끊어지면 내용도 다 날아가는 '휘발성 메모리' 전용이었는데.. 기술의 발달로 보조 기억장치 역할도 가능한 메모리 반도체가 등장했다.
얘 덕분에 기존의 테이프나 디스켓이 완전히 전멸해 버렸다. 그리고 SSD도 가격 내려가고 용량 올라가면서 기존 기계식 하드디스크의 입지를 상당수 위협하고 있다.

SSD는 조각 모음이 필요하지 않으며, 동작하는 특성이 기존 디스크와는 많이 다르다.
USB 스틱은 매체와 구동부가 일체형인 반면, SD카드는 매체와 구동부가 분리돼 있다. (별도의 reader가 필요)
옛날 8비트 시절에 게임용으로 쓰였던 롬팩 카트리지도 1번이 아니라 2번 반도체 기반이었던 거지..??

전자기기에서 캐퍼시터(축전기)와 본격적인 화학 전지의 관계가 반도체 메모리와 타 보조 기억장치의 관계하고 비슷해 보인다~!!
전자는 충전· 방전이 아주 빠르고 용량이 아주 작으니까. 그리고 캐퍼시터를 용량을 왕창 키워서 배터리처럼 사용하려는 연구가 진행 중이기도 하다.

3. 광학(레이저)

얄팍하고 비까번쩍 빛나고 뭔가 하이테크스럽게 생긴 원반이다. 1990년대에 첫 등장했을 때는 얼마나 간지 뽀대 났겠는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얘는 그 특성상 붙박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고 드라이버와 매체가 분리돼 있다. 기억장치들 중 디지털 방식의 음반· 영상매체와 가장 친화적이라는 특징도 있다. (그 반면, 테이프는 '아날로그' 방식의 매체..)
얘는 '쓰기'와는 그렇게 친화적이지 않다. 디스크에다가 작정하고 새로 기록 추가만 가능하며, 한번 새겨 버린 내용을 자유자재로 덮어쓸 수 없다. 평범한 디스크 저장이 아니라 종이에다 인쇄하는 것과 얼추 비슷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디스크의 영어 스펠링은 disk와 disc가 혼용되는 듯한데.. disc는 특별히 대놓고 원반 모양인 광학 매체에 한정되어 쓰이는 것 같다. 가령, 하드는 hard disk이지만, CD는 compact disc이다.
그리고 CD(+ DVD, 블루레이)는 지름이 12cm인 반면, 과거에 있었던 레이저 디스크는 지름이 12인치였다는 아주 흥미로운 차이점이 있다. 뭐, 거기에다 미니CD라고 지름 8cm짜리 규격도 있긴 하고 말이다.

한때 광학 기억장치는 용량이 방대하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오늘날은 빛 바랜 장점이다. 이제는 컴퓨터에서 광학 드라이브 자체가 거의 퇴출되었고, 운영체제 설치도 그냥 네트워크나 USB로 다 되는 세상이 됐다.
그래서 DVD의 다음 규격인 블루레이는 용량이 더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존재감이 매우 미미하다. 블루레이에다가 수십 GB짜리 패키지 게임을 담아서 판매하는 시대도 아니니 말이다.

옛날에는 뭔가 레이저를 사용하는 컴퓨터 주변기기는 가격이 억소리 나게 비쌌던 걸로 악명 높았다. 레이저 프린터, 그리고 씨디 라이터.. 그게 어쩌다가 가격이 확 떨어지고 개인용 컴퓨터에 씨디를 굽는 기능까지 내장되어 들어갔는지.. 경이롭기 그지없다.
기껏 들어갔던 기능이 이제는 필요 없어져서 퇴출되는 지경이고..

※ 여담 1: 옛날 추억 더

  • 1990년대에 VGA 이후로 SVGA 그래픽 카드들이 표준 규격 없이 난립했던 것처럼.. 확장 디스켓도 표준 규격 없이 너무 난립했던 것 같다. 더구나 USB니 plug & play니 없던 시절에는 하드나 디스크 드라이브를 하나 더 장착하는 것도 엄청나게 어렵고 컴퓨터 하드웨어 지식이 많이 필요하던 과업이었다. 그러니 그런 싸제 물건들이 성공적으로 보급되기가 어려웠다.

  • 그나저나 이 바닥은 자동차 브레이크 말고도 '디스크와 드럼'을 쌍으로 구경할 수 있는 또 다른 분야인 게 신기하다. '자기 드럼'은 어떤 형태로 동작하는 물건이었을까..?? 개인적으로 무척 궁금하다.

  • 옛날에는 테이프나 디스크에 물리적인 쓰기 방지 탭이나 딱지 같은 게 붙어 있기도 했지만.. 요즘은 그런 관행을 찾을 수 없다. (운영체제 셸이 그런 데다가도 메타데이터나 썸네일 캐시 같은 걸 임의로 써 넣곤 함)

  • 옛날에는 광자기 디스크라는 것도 있었던 것 같은데.. 뭐지? 1번과 3번의 하이브리드인가 싶다.

카세트 테이프(자기장)나 롬 카트리지(반도체)는 8비트의 산물이다. 16비트 IBM 호환 PC급에서 저런 것들을 취급하는 사례는 내가 아는 한 없다.
그 대신 디스켓 FDD는 컴퓨터 붙박이 형태로 16비트 이후 시대를 풍미했다가 64비트 시대에는 사실상 전멸했다.
CD-ROM은 16비트 도스 시절에도 존재하긴 했지만 mscdex니 뭐니 하는 굉장히 무거운 드라이브를 실행해야 사용 가능했다. 그리고 386, 486급 이상 PC의 전유물이었다.
그 뒤로 USB 메모리는 도스와의 유의미한 접점이 없다. ^^

아무리 생각해도 1990년대 중후반에 plug & play와 USB는.. 2000년대 중후반의 64비트와 멀티코어하고 굉장히 비슷한 관계인 것 같다.
서로 담당하는 분야는 다르지만 결국 비슷하고 관련 있는 성격의 기술이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 여담 2: 정보 저장이라는 관점에서 성경 본문 고찰

성경에는 뭔가 정보 기록 매체를 암시하는 얘기가 있다. 가령, 요한복음의 21장 25절 제일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다른 일들도 많으므로 만일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심지어 이 세상이라도 기록된 책들을 담지 못할 줄로 나는 생각하노라."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찬송가의 3절 가사는 이렇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흠, 책이 아니라 SD카드라면 어떨까? 자기 테이프라면 어떨까..??
혹시 생명책이 실제로는 책이 아니라 무슨 SQL 서버가 돌아가는 IBM 메인프레임인 건 아닐까?

Posted by 사무엘

2023/10/05 08:35 2023/10/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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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보안

1. 고전적인 폭탄 테러

비행기는 타 교통수단보다 훨씬 더 빠르고 위험하고, 엔진이 꺼졌다가는 바로 추락해 버린다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여객기의 경우 진작부터 테러의 표적이 되었으며, 보안의 필요성이 타 교통수단보다 더욱 부각되었다.
1970~80년대에 수하물 폭탄 테러가 몇 건 발생하자, 여객기 업계에서는 인원과 수하물이 무조건 일치해야만 비행기를 출발시키는 절차를 추가했다.

환승 등 어떤 형태로든 주인 없이 슬쩍 싣는 짐이 기내에 절대 존재하지 않게 한 것이다. 그 짐 속에 폭탄이 들어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짐과 짐 주인을 맞추는 게 마치 울나라 군대에서 탄피 개수를 맞추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 됐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는데..
누군가가 비행기 안에 들어갔다가 탑승을 포기하고 도로 내리는 경우, 이때도 객실과 수하물을 전부 싹 뒤지고 검사를 다시 하게 됐다. 이건 어디 건물에 폭탄 설치 협박 전화가 들어온 것과 완전히 동일 상황이라고 가정하는 거다.

비행기가 떴다가 응급환자 때문에 도로 회항하면.. 이번엔 승객들 짐은 건드리지 않지만 비행기가 비상 착륙을 위해 연료를 다 버려야 하는 민폐 상황이 벌어진다.
그런데 뜨기 전에 승객이 일부 빠져나가면, 이번엔 연료는 안 버리지만 저렇게 보안과 관련된 시간과 인력 낭비 민폐 상황이 벌어진다.;;

우리나라는 대한항공 858 (김 현희..) 이후로 수하물 폭탄 '테러'는 더 겪지 않고 있다.
그 대신, 화물기에 실렸던 리튬이온 배터리가 폭발하는 바람에 추락 사고가 난 적이 있었을 뿐.. (아시아나 항공 991편, 2011년. 조종사들 사망)

2. 자살 테러

짐칸에다가 폭탄을 못 실으면 사람이 직접 조종실로 쳐들어가서 조종사들을 제압한다~!!
우리나라는 1958년의 창랑호, 1969년 YS-11기 같은 북괴의 납북 테러 공작 때문에 진작부터 이런 거 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반면, 미국은 2001년 9· 11 테러를 당한 뒤에야 보안이 뒤늦게 아주 아주 강화됐다.

20세기까지 항공 보안 이념에는 "테러리스트들이 아무리 비행기를 납치하더라도 설마 자기들까지 다 죽을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전제 조건, 선입관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9· 11 테러는 그 선입관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부정해 버렸다. 그러니 충격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이제 수하물뿐만 아니라 기내 반입 소지품도 더욱 까다롭게 검사하기 시작했다. 기내식 스테이크를 써는 플라스틱 나이프조차 안 주고 미리 다 썰어서 주기 시작했다. 식사 때 포크와 나이프를 통제하는 곳은 교도소밖에 없지 싶은데, 이거 뭐 여객기도 그 범주에 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조종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밖에서는 절대로 못 열고, 심지어 수류탄을 터뜨려도 안 열릴 정도로 문이 필요 이상으로 엄청 튼튼하게 개조됐다.

3. 조종사의 일탈

그랬는데.. 21세기에 와서는 비록 극소수이지만 정말 의외의 뜬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바로, 외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내부의 조종사가 나쁜 마음 품고 일탈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더라는 거다.
기장과 부기장 중 한 명이 화장실 갔을 때 남은 한 명이 조종실 문을 잠가 버리고 비행기를 고의 추락시키면.. 이건 아무도 저지할 수 없게 됐다.

아니, 여객기 조종사까지 될 정도로 인생 성공한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가 도대체 저런 짓을 왜 하나 싶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으며, 기준이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이다.
그 파일럿들 엘리트 조직 안에서도 서로 꼴보기 싫은 사람이 있다. 나이 50이 넘도록 기장 진급 못 하고 눈칫밥 먹는 열등감 쩌는 찐따도 있고,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이나 조현병 따위에 시달리는 조종사도 없으란 법이 없다.

이 사람들 역시 받는 액수가 좀 상위권일 뿐, 사기업 다니는 월급쟁이 근로자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월급만으로 성이 안 차서 다른 데서 돈놀이 하다가 실패해서 빚더미에 앉은 케이스도 있다. 당장 울나라에서도 옛날에 무려 대학 교수가 돈 문제 때문에 지 애비 죽인 사례가 있었다.

1999년 이집트 항공 990편 추락, 2015년 저먼윙스 9525편 추락은 블박을 보아하니, 정말 충격적이게도 부기장에 의한 고의 추락이 거의 확실시됐다. 2014년에 실종된 말레이시아 항공 370편은 물증이 부족하긴 하지만 기체 결함이 절대 아니고 얘도 누군가에 의한 고의 추락으로 가닥이 기울어 있다.
작년 봄에 중국에서 거의 수직으로 내리꽂혔던 중국 동방 항공 5735편 사고도 정황상 조종사에 의한 고의 추락이다.

오늘날 정치· 군사 분야가 아니면서 한 사람이 수백 명의 목숨을 왔다갔다 할 수 있고 막대한 책임감과 스트레스가 부과되는 업종은 의료나 원자력이 아니면 비행기· 선박 같은 교통수단이지 싶다.

옛날에 항공기관사가 있어서 조종실 승무원이 3명이나 있던 시절에는 이런 고의 추락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할 수가 없었다. -_-;;
옛날에 시내버스에 운전사뿐만 아니라 차장도 있던 시절에는 파주 시내버스 팔 끼임 사망 사고 따위 날 수 없었던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수동 변속기 시절에 요즘 같은 급발진 따위도 절대 없었을 테고.

이런 게 무인화 자동화가 가져오는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이다.
뭐, 조종실 문을 봉인한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닐 테니 요즘은 부기장· 기장 중 누가 화장실에 가면 객실승무원이라도 호출해서 조종실에 언제나 2명이 있게 운항 매뉴얼이 개정됐다.

사람이 935명이나 타는 KTX 열차는 1명이서 운전한다. 열차야 앞뒤로밖에 오가지 못하고, 안전성 면에서 타 교통수단의 추종을 아득히 압도하기 때문에 그게 가능하다.
오죽했으면 쟤들은 시속 300으로 달리는데도 좌석에 안전벨트가 없고 입석 승객까지 버젓이 받는다. 그리고 기관사가 생존 반응 확인 신호에 응답하지 않기만 해도 비상 정지한다.
이런 시스템은 오직 철도에서만 구현 가능하다. 그 반면, 여객기는 부기장마저 없어지는 1인 단독 조종이 될 일은 가까운 미래에 없을 것 같다. 이건 LPG 충전소가 무인화 셀프화되는 것과 동급이 아닐까 싶다.

(아 그러고 보니 1982년엔.. 기관사까지 버젓이 있는 와중에 기장이 기체를 고의로 추락시켰던 일본 항공 350편 같은 사례도 있긴 했다. 그건 얘기가 복잡해지는데, 일단 논외로 하자. -_-)

Posted by 사무엘

2023/10/03 08:34 2023/10/03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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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의 특성 이야기

1. 대미지 컨트롤

인체는 어떤 나쁜 환경이나 대미지에 오래 노출돼서 몸이 다치고 상했더라도, 치료한답시고 그 반대편 상황에 곧장 성급히 집어넣어서는 안 된다는 특징이 있다.

동상을 입었더라도 그 부위를 갑자기 뜨거운 물 같은 데에 집어넣지 말아야 한다.
화상을 입었더라도 그 부위를 갑자기 얼음물 급의 찬물에 풍덩 집어넣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미지근한 물에다가 오래 담가서 냉찜질을..)

아주 오랫동안 굶어서 죽기 직전인 사람한테 갑자기 밥과 고기를 많이 먹이는 짓은 금물이다. 그러면 몸이 그걸 못 받아들여서 토사곽란을 일으키고 심하면 죽을 수도 있다;;
탄광 매몰이나 삼풍 백화점 붕괴 같은 사고 때문에 10일 넘게 암흑 속에 갇혔다가 구조된 사람들은 눈을 가린 채로 나온다. 갑자기 빛에 노출되는 것도 눈에 안 좋다고 들었다.

피부가 쇠붙이에 깊숙이 심하게 찔렸다면 그 이물질을 함부로 빼내지 말아야 한다.
어디 무거운 물체에 오랫동안 깔려서 깔린 부위가 괴사할 지경이 됐지만, 그 물체를 함부로 치우지 말아야 한다. 깔린 부분에만 고여 있던 독소가 온몸으로 퍼져서 압좌 증후군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의료 보건 업종이 일이 힘든 것 같다. 각종 금단증상이라는 것도 각종 나쁜 중독이나 자극이 갑자기 없어졌을 때 더 심해진다는 게 주지의 사실이고..
사람이 밥을 먹는 과정은 자동차 연료통에다가 기름을 꿀꿀 집어넣는 게 아니라, 배터리를 급속 충전하는 것과 더 비슷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2. 유아 기억상실증

"사람들은 대부분 3살 이전 시기를 기억하지 못한다. '유아 기억상실증' 때문이다. 유아 기억상실증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흔한 현상으로, 삶의 초기 3~5년 정도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사람이 떠올릴 수 있는 생애 최초의 기억은 대략 3살부터 3살 반 정도에 형성된다."

이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나도 저기에 정확하게 해당된다.
나도.. 거의 86~87년 사이가 마지노 선이고 그 이전은 선사시대-_-이다.
아부지가 내게 나이를 물으셨는데 내가 제대로 대답을 못 하니 "넌 4살"(한국식이겠지)이라고 대답을 들었던 게 스스로 인지하고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제일 어린 나이이다.

텔레비전으로 본방을 봤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는 제일 오래된 공익광고도 유튜브를 뒤져 보니 86~87년이다. 그때는 TV를 틀면 온통 올림픽 준비하느라 난리이기도 했고 말이다. -_-
난 흑백 TV나 흑백 사진, 중고딩 가쿠란-_- 교복을 주류로 본 경험은 없다. 그리고 당대에 인지했던 제일 옛날 대통령은 딱 노 태우였다.

인간은 아기 때 주변에서 들리는 모국어를 신기에 가까운 능력으로 흡입해서 언어 구사 능력을 갖춘다. 도대체 어떻게 그 나이대에 그게 가능한지는 내가 알기로 과학적으로 여전히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그렇게 언어 습득과 등가교환으로 언어 습득 이전의 옛날 기억은 지워져 버리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걸 생각하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의 의미도 다시 곱씹게 된다.
어차피 기억을 못 하니까 3살 이하 아기들을 마음대로 학대해도 되는 것도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때 부모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충분히 받는지의 여부로 그 애의 인격이나 정신 건강이 평생 결정되어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참 신기한 일이다.

갓난아기한테 기계적으로 물리적인 젖과 물만 주고 씻겨 주고 기저귀 갈아 주기만 하고, 아무 관심 안 주고 교감과 애정 표현 안 하고 스킨십 안 해 주면..??
놀랍게도 그 아기는 몇 달 못 가 죽는다고 한다!! 무슨 마루타 생체실험을 한 것도 아니고 법적으로 학대는 절대 안 한 것 같은데, 아기한테는 이것만으로도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다. 먼 옛날에 이런 비정한 실험을 실제로 한 군주 내지 학자가 있었다고 한다.;;;

이건 마치 식물이 햇볕을 못 봐서 죽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아무리 물 많이 주고 땅이 비료로 기름져 있어도 햇볕 없고 통풍이 불량하면..;;

3. 이와 잇몸

신체 기관 중에 구강은 외부로 노출되어 있으면서 음식물이 들어가는 부위이다. 여기가 평소에 청결하지 않고 음식물 찌꺼기 때문에 세균이 끼면 이나 잇몸.. 혹은 둘 다 탈이 나게 된다.
이의 병.. 충치, 치아우식증에 대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경각심을 일깨우고 교육을 하는 편이다. 그러나 잇몸의 병.. 풍치, 치은염-치주염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 본인 역시 잇몸에 피는 비타민 C 결핍증 정도로만 아는 게 전부였다.

충치가 생기면 이가 윗쪽부터 시커매지면서 썩는다. 에나멜질이 썩네 상아질이 썩네, 신경까지 닿네.. 그러면서 진행 단계가 4개나 세분화돼 있다.
그런 것처럼 잇몸병도 얼추 4단계로 나뉜다. 잇몸은 다른 곳보다도 이와 이 사이의 양치가 제대로 안 될 때 탈이 나기 쉽다.
얘는 시커먼 건 없다. 그냥 벌개지고 붓다가 나중에는 이의 아래쪽이 다 드러나 보이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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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는 건물이 화재나 폭발, 테러 때문에 폭삭 주저앉고 붕괴하는 것과 비슷하다.
후자는 건물이 지진이나 홍수 때문에 지반이 싹 없어지는 바람에 그냥 자빠지는 것과 비슷하다.
"꿩 대신 닭"은 가능할지 몰라도 "이 없으면 잇몸"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이 없이 잇몸만으로 어떻게 고기를 씹겠는가.

건강한 치아를 위해서는 소금이니 알코올이니 하는 어설픈 민간요법 찾아볼 시간에, 동네 치과에서 단돈 1~2만 원으로 의료보험 받을 수 있는 스케일링부터 받는 게 훨씬 더 낫다.
그리고 그냥 약품 가글은 물리적인 칫솔질을 결코 대체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이를 무슨 때 밀듯이 너무 세게 닦는 것도 이와 잇몸에 안 좋다고 하니 인체는 뭔가 극단적인 것에 취약한 게 틀림없다.

비전공자인 내가 아는 건 이 정도까지.
근데.. 입안이 무슨 배 속 내장도 아닌데, 같은 입안을 보고 치과마다 진단해 내는 충치 개수가 다르고 치료 견적이 들쭉날쭉이라는 얘기가 왜 나오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내 주변 지인들 얘기를 들어 보면 치과 진료에 대한 과잉진료 불신이 여전히 없지 않다. 자동차 정비 쪽에 과잉 정비(멀쩡한 부품까지 몽땅 다 갈아 버리는-_-) 폐단이 있는 것처럼 의료도 사정이 비슷한가 보다.;;

  • 통상적인 칫솔질 → 치실 → 스케일링 → 잇몸 치료의 순으로 쑤시는 정도가 하드코어해지는 것 같다. 약한 잇몸을 찌르고 쑤시는 건 마치 손톱 끝을 찌르고 쑤시는 것처럼 괴롭게 느껴진다. >_<

  • 양치할 때 치약 묻힌 칫솔에다가 습관적으로 물도 묻히고 싶다. 거품이 잘 나고 치약이 잘 도포되는 것 같으니까. 하지만 치과 의사들은 막 해롭고 나쁜 짓까지는 아니어도 그걸 별로 권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들 중 하나로 흔히 검색되는 "치약 성분이 희석되기 때문"은 좀 의아하게 느껴진다. 물을 묻히든 안 묻히든 치아에 닿는 절대적인 치약의 양은 동일하고 물리적인 솔질 강도도 동일한데 왜 약효가 떨어진다는 걸까? 그리고 광고에 나오는 것보다 치약을 훨씬 적게 써도 된다는 지론과도 별로 안 맞아 보이기 때문이다.

  • 이빨이 몽땅 나가는 것보다는 눈 한두 개를 잃는 게 더 치명적이다. 보험에서도 실명을 더 크게 보상하며, 군대에서도 이건 곧장 4급이나 면제 등으로 처분해 준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눈을 다칠 정도의 극단적인 이벤트는 자주 찾아오는 게 아니니, 안과보다는 치과가 존재감이 더 크고 사람이 치과를 찾을 일도 더 잦은 듯하다.

4. 손발가락

'쇠냄새'라는 건 사실 쇠 자체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다. 손으로 그런 금속을 만졌을 때, 손 표면에서 분비되는 고유한 성분이 금속과 닿아 변질되면서 나는 냄새일 뿐이다. 하긴, 그런 미묘한 분비 성분이 있기 때문에 사람 손이 닿는 곳마다 지문 채취도 가능할 것이다.

손가락 발가락은 인체의 말단 부위이다 보니, 질병이나 사고로 일부가 절단되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조폭이나 비밀결사 같은 뒷세계에서는 맹세나 징벌· 각인의 의미로 약손가락이나 새끼손가락의 첫 마디를 일부러 자르는 관행도 있다. 그래도 이런 부위는 절단되더라도 지혈만 잘 해 주면 생명에 지장은 없다.;;

잘려서 떨어져나간 그 말단 부위를 잘 챙겨 가서 적절히 치료를 받으면 도로 봉합해서 붙일 수도 있다. 봉합 가능 조건을 구체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좋은 상태에서 치료를 최대한 빨리 받아야 하지 싶다.
당연한 말이지만, 잘린 손발가락이 자동으로 재생되지는 못한다.;; 인체는 무슨 플라나리아나 불가사리, 도마뱀 꼬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재생이 잘 되는 단순하고 물렁물렁한 생물들은 물리적인 절단에 강한 대신, 온도나 주변 염분 농도 같은 게 조금만 틀어져도 바로 녹아 버린다. 용어 좀 쓰자면, '항상성 유지' 능력이 고등한 동물보다 훨씬 못하다. 인체야 상처에다 소금 뿌리면 드럽게 아픈 걸로 끝이겠지만, 플라나리아는 소금 테러만으로도 사람으로 치면 온몸에 염산· 황산 테러를 당한 거나 마찬가지 상황이 될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사고로 멀쩡한 손발가락이 잘리는 거 말고.. 다른 질병이나 세균 때문에 이 말단 부위까지 피가 잘 안 통해서 조직이 괴사하고 썩어서 잘라내는 경우도 있다. 이런 조직은 절단하지 않으면 근처의 살아 있는 부위까지 부패균과 독소가 다 퍼지고 썩기 때문이다.

  • 동상: 인체가 견딜 수 없는 저온에 너무 오래 노출돼 있으면 물질대사에 애로사항이 꽃피고 피가 잘 못 돈다. 이 경우 인체는.. 심장에서 멀리 떨어졌고, 없어도 생명에 지장이 없는 말단 부위부터 먼저 포기하게 된다.
  • 버거 병: 이번엔 저온이 아니라 혈전 때문에 혈관이 막히고 피가 제대로 못 돌아서 손발이 차가워지고 작살 나는 병이다. 결과는 역시 괴저로 인한 사지 절단..;; 통계적으로 골초 흡연자가 걸릴 확률이 매우 높아서 상관관계가 명백하나, 그 구체적인 이유인 인과관계가 의학적으로 다 규명되지는 않은 듯하다.
  • 참호족: 1차 세계 대전 참호처럼.. 세균이 득실대는 더러운 진창 똥물에 피부, 특히 발이 너무 오래 노출되면 피부병을 넘어 피부가 썩어들어간다.;;; 이건 습성 괴저이다.
  • 당뇨발: 참호족만 있는 게 아니라 당뇨발도 있다. 혈당 때문에 말초혈관과 신경이 손상돼서 위와 비슷한 결과가 야기되고 발가락이 시커멓게 썩을 수 있다.;;;
요거 말고 또 다른 케이스가 있는지 궁금하다~~
그러고 보니 동상의 반대편 극단인 화상도 3도 이상을 입으면 당연히 피부 이식 아니면 절단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으로 간다.

Posted by 사무엘

2023/09/30 08:36 2023/09/3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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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을 호박 근황

요즘 날씨가 참 좋다.
늦더위가 지난 9월 중순까지 계속되더니만.. 그래도 한바탕 가을비가 내리고 나니 이제야 여름이 완전히 끝난 것 같다. 낮 기온은 20도 중후반이고 햇볕이 여전히 강하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 좋게 덥다. 그리고 밤과 새벽엔 기온이 10도 중후반으로 뚝 떨어지고 눈에 띄게 쌀쌀해졌다.

날씨가 이러니 낮에 야외 활동을 하기에도 좋고, 밤에 캠핑을 하기에도 좋다. 무더위가 물러가는 건 좋지만, 호박 농사 시즌도 끝이 보이는 것 같아 일면 아쉽다.
시기가 지난 8월말 이후로 1달 정도 지났으니 이번엔 호박 농사 근황을 좀 전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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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호박을 다음과 같은 형태로 보유하고 있다.

  • 어딜 가나 늘 휴대하는 저 호박 쿠션
  • 사 놓고 실내에서 감상하는 늙은 호박: 지난 8월 중순에 사 놓은 아이들은 아직 잘 있다. 10월 중에 도축해서 호박죽을 만들어 먹을 것이다.

  • 실내 창가에서 키우는 호박: 사생활 노출의 여지가 있어서 지금까지 그닥 언급하지 않았지만, 심은 지 1~2달쯤 된 아이가 있고 아주 잘 자라고 있다. 창가를 다 꼬불꼬불 뒤덮었고 덩굴 길이가 4~5미터 정도 됐다. 그런데 아직까지 꽃은 하나도 핀 적 없다. 그냥 영양 생장에만 재미 붙인 듯..

  • 집 옥상에다 화분을 놓고 키우는 호박: 역시 지금까지 언급이 없었지만 요 9월 동안 아주 많이 잘 컸다. 열매까지 몇 개 맺혔다.
  • 강변에서 무단 경작하는 호박: 지금까지 제일 자주 거론했던 애들이다. 지난 7월 폭우의 피해를 크게 입었지만 이제 많이 회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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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마지막 두 아이템인 옥상 호박과 강변 호박 얘기를 주로 할 것이다. 먼저 강변 호박.. (9월 초 어느 새벽에 찍었던 저 꽃 사진이 인상적이다~^^)
이 아이들은 7월 물난리 때문에 거의 다 멸망해 버렸고, 일부 잔당 두어 포기만이 슬금슬금 삼손의 머리털 다시 자라듯이 줄기가 새로 돋아났다.

세력이 정말 많이 회복되긴 했지만, 역시 물난리 이전처럼 다 뒤덮은 지경은 아니다.
게다가 환삼덩굴 잡초들이 그 물난리 직후부터 너무 많이 잘 자라기 시작해서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다. 지금 저 풍경도 잡초를 낫과 가위로 정말 많이 베고 또 베어서 그나마 저렇게 된 것이다.

7월 폭우 전에는 호박들이 알아서 잡초들을 다 뒤덮어 버렸기 때문에 내가 일부러 매번 잡초를 뽑을 필요가 없었다.
호박밭 갈 때마다 잎을 10~20장씩 뜯어 와도 별 티가 안 날 정도였는데.. 이젠 호박이 잡초를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잡초한테 뒤덮여서 누렇게 시든 잎도 있고 말이다. ㅠㅠㅜ 폭우 전과 같은 영광은 다시 찾아오지 않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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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동안은 강변 무단경작 호박이 싱싱하게 잘 자랐고, 옥상 화분 호박은 비리비리한 편이었다.
잎이 탈모 아저씨의 정수리 머리털이 숭숭 빠지듯이 다 빠지고 앙상해지고 시들어 가니.. 이거 갈아엎고 농사 다시 지어야 되나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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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는데 8월 하순쯤.. 비가 좀 내리고 그때에 맞춰 액상 비료를 발라 줬더니 옥상 호박들이 폭풍 분발했다. 한동안 꽃이 죽어라고 안 피다가 지난 8월 30일에 암꽃이 4송이인가 한꺼번에 폈다~!
이때는 강변 호박의 꽃가루를 자전거로 수송해서 옥상 호박 암술에다 묻혀 줬다. 수분이 다 성공한 건 아니지만 새 생명이 잉태되었다. 원래 7~8월 동안 10여 개는 봤어야 했을 아이들을 9월이 다 돼서야 늦둥이로 구경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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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그란 아이는 2주 동안 잘 커서 사과 정도 크기가 됐는데.. 위의 줄기가 다 시들고 말라 비틀어졌길래 따서 먹었다.
겉에 무늬가 너무 없어서 외형은 좀 이질적이었지만.. 겉이 단단하고 속에는 중심부가 약간 노랗게 익기도 했고 아무 이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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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에 이 아이들도 생후 약 2주 만에 맛있는 애호박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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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박 예찬
생후 1주일 된 이 아이들의 앞날에 한없는 복이 임하기를..
영양실조(중도 낙과), 악천후, 병충해 안 겪고 무럭무럭 잘 커서
토실토실 포동포동 뒤룩뒤룩 살찌다가
납작둥글 쭈글쭈글한 채로 허옇게 폭삭 늙어 버리기를!
아아, 세상에 어느 식물 채소가 이런 예술적인 삶을 살 수 있으리요?

너는 그 이름도 예뻐서 호박이더라.
살아 생전엔 너를 보는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힐링과 위안을 선사하고,
훗날 살코기를 먹는 사람에게는 좋은 영양분을 공급해 주고,
자기와 똑같은 2세를 ctrl+C, ctrl+V로 퍼뜨릴 튼실한 호박씨도 수백 개씩 듬뿍 남기기를..
이 미천한 씨 뿌리는 자가 씨 맺는 채소의 창조주께 삼가 간절히 축원하나이다.

* 성경의 책 이름도 하박국이 아니라 호박국이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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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이 아이 하나가 유일하게 장기 복무에 합격해서 생후 1달째 됐다. 우왓~~!
7월 물난리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강변 호박에서도 이런 커다란 아이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을 텐데.. 올해 딱 한 번을 못 버텼다. ㅠㅠㅠ
그런데 7월 물난리 이전에 강변에서 몇 개 땄던 작은 호박들은 다 단호박이었다.
일반호박으로서 이 정도로 큰 아이를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람의 모든 수고는 자기 입을 위한 것이나 그래도 식욕은 채워지지 않느니라” (전 6:7)
호박 농사에 대한 정확한 통찰이 담긴 성경 말씀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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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8월 30일로부터 3주쯤 지났던 9월 22일에는 옥상 호박들이 단체로 암꽃을 한꺼번에 피웠다(5송이). 평소에는 매일 수꽃만 5~10송이씩 피다가 갑자기 암꽃 만발 이벤트 시즌 2가 또 찾아온 것이다. 그나마 이때는 수꽃도 많이 같이 폈기 때문에 여기 호박들끼리 수분이 가능했다.

이걸 보면 호박의 내부 생태는 도대체 뭘까? 쟤들은 머릿속에 무슨 생태 알고리즘이 입력돼 있는 건지 몹시 궁금하다.

(1) 무슨 조건이 만족되면 싹이 나고 무슨 조건이 만족되면 몸집이 커지다가 꽃을 피우고 열매가 맺히는 건지 모르겠다.
일단 주변이 많이 추워졌을 때.. 10월 중하순이 돼서 호박들이 자기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 싶을 때 갑자기 발악하다시피해서 암꽃을 마구 피우긴 한다. 이건 내 경험상 확실한 것 같다. 식물에게도 종족 보존 본능이 있으며, 호박에게 그 정도 지능과 알고리즘은 있다.
그래도 한여름에도 암꽃이 안 피는 건 아닌데..? 이런 세세한 조건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2) 요 근래에 공부(?)를 해서 알게 된 건데.. 식물은 같은 몸체 안에서도 생장 부위별로 영양분과 수분을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자기 몸집을 키우려는 놈, 새순을 만들려는 놈, 꽃과 열매를 만들려는 놈 등..
여러 스레드들이 한 리소스를 두고 경합이라도 하는 건가?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경쟁에서 도태 당하면 암꽃 씨방이라도 맺히려다가 말고 시들어 떨어지기도 한댄다. 그리고 열매를 많이 보려면 '필요 이상'으로 무성한 잎이나 줄기는 적당히 제거도 해 줘야 된다.
음 그런 것이구나. 이런 걸 잘해야 호박 박사가 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3) 화분에다가는 물과 비료를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자주 많이 과감하게 줘도 되겠다. 예전에 호박이 자꾸 시들어 가던 게 그냥 물이나 영양분의 부족 때문이었던 것 같다. 비료를 한꺼번에 너무 많이 주면 식물이 오히려 말라 죽는다는 말에 쫄아 있었는데.. 호박 덩굴이 덩치가 충분히 커진 뒤부터는 그런 말에 너무 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100% 야생인 강변 호박은 이제 뿌리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물을 주고 싶어도 못 주는 지경이 됐다. 그런데 여기는 관리 하나도 안 해도 흙이 언제나 적당히 축축하고, 화분 호박보다 대체로 더 잘 자라긴 하는 것 같다.

(4) 요즘은 이상하게도 꿀벌이 보이질 않는다~! 원래 8~9월에도 꿀벌이 있지 않나?
지난 5~7월엔 꽃이 피기만 하면 새벽 5~6시 사이에도 꿀벌이 도대체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건물 옥상까지 날아다니곤 했는데 말이다. 그래서 호박 암꽃이 있으면 내가 인간 꿀벌 역할을 하고 있다.

이상이다.
난 뭔가 호박이 내게 지금까지 이런 기쁨을 줬으니 나도 그 보답으로 호박을 지켜 줘야겠다~~ 이런 관념이 생겨 있다. 부성애 비스무리한..
강변 호박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옥상 호박은.. 필요하다면 화분을 통째로 들어서 옮길 수도 있는데 앞으로 날씨가 추워지면 보온을 좀 어찌할 수 없겠는지 고민된다.

Posted by 사무엘

2023/09/27 08:35 2023/09/2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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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시스템, 용어 등 이야기

1. 궤간

수요가 적은 곳에 철도를 건설할 때는 중전철 대신 경전철로 축하중과 차량 크기를 줄이는 건 기본이요, 전차선은 가공전차선 대신 제3궤조로 만들고, 1량짜리 꼬마 동차를 투입하고 심지어 부산처럼 선로 수까지 후려쳐서 단선으로 만드는 극단적인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제아무리 규모가 작은 경전철이라도 요즘은 협궤는 쓰지 않는 게 국룰이다. 그렇잖아도 요즘은 1435mm 표준궤에다가 폭이 3m가 넘는 차량을 얹어서 굴리는데, 궤간을 후려치면 차량이 너무 비좁아지고 주행 안정성이 떨어지고 각종 부품 호환에도 문제가 생긴다.
요즘은 쬐끄만 스마트폰이라도 CPU는 64비트이지, 작은 기기라고 해서 구닥다리 16비트나 32비트 CPU를 쓰지는 않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비트수까지 후려치는 건 사람이 직접 다루지 않는 임베디드 환경 한정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은 미국이 표준궤로 건설하려다가 만 것을 일본이 물려받았으니 망정이지.. 처음부터 100% 일본의 자본과 기술로 건설됐으면 협궤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첫 단추를 표준궤로 깔았으니 경부선과 경의선도 선뜻 일본 자국의 표준과 다른 표준궤로 잘 만들어질 수 있었다. ㄲㄲㄲㄲ
참고로, 잠깐 활동하다가 말았던 대한제국 철도국은 미국의 영향을 받아서 처음부터 나라의 표준 철도 궤간을 일본 같은 협궤가 아니라 표준궤로 지정했었다고 한다.

2. 등판능력

우리집 근처의 모 지하철역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출입구 계단은 수평으로 정사각형 블록을 두 개 이동하는 동안 수직으로 한 칸 상승하는 각도이다. 기울기가 0.5, 즉 50%이고 이를 각도로 환산하면 약 27도이다. 그나마 이것도 어지간한 고층 건물 비상구의 계단보다는 완만한 경사이다. 그런 곳은 거의 30~32도대에 달한다. (60%대 초반)

그리고 우리나라 스키장에서 경사가 가장 심한 슬로프의 경사각도 이와 비슷한 20후반~30초반이고 기울기로 환산하면 60%대이다. 이 정도면 연비 따위 쌈싸먹은 중량과 출력에다 무한궤도까지 깔아서 접지력과 마찰력을 극대화한 군용 탱크 정도나 오를 수 있다.

오늘날 고무 바퀴로 달리는 대부분의 자동차들의 등판능력의 한계는 35%~40%대이다. (18~20도) 참고로 대형 여객기의 이륙 상승각이 15도~20도이니 이와 비슷하다.
국내의 자동차 도로의 법적 오르막 설계 한계는 17%라고 한다. (9~10도) (도로의 구조·시설 기준에 관한 규칙 제25조 종단경사)

물론 이 정도 각도면 완전 극단적인 험지이며 자동차가 정상적으로 달릴 수 있는 경사가 아니다. 낡고 제대로 정비 안 한 자동차는 이런 경사를 오래 오르면 엔진 힘이 딸려서 퍼져 버린다.
종이에다가 저 기울기를 그려 보면 전혀 가팔라 보이지 않지만, 실제 지형을 보면.. 이것만으로도 엄청 급격하고 가팔라 보일 것이다.;;;

자동차가 다니는 산길의 경사는 계단의 경사보다야 훨씬 더 원만하다.
그러나 철도 차량은 그런 자동차보다도 등판능력이 훨씬 더 부족하다.
저 바닥에서는 백분율 %보다 더 작은 단위인 퍼밀(천분율)을 쓰며, 최고 열악한 선로에 대해서 35퍼밀(3.5%)을 한계로 규정한다. 이것은 각도로 환산하면 2도밖에 되지 않는다. (국유철도건설규칙 제11조 구배의 한도)

30퍼밀, 3%대만 되어도 철도의 입장에서는 기관차가 굉장한 부담을 느끼는 험한 경사이다.
서울 2호선 합정-당산, 그리고 경의선 전철 효창공원-용산 구간이.. 철도의 입장에서 법적인 한계를 간신히 준수하는 극악의 급경사이다.

이건 엔진 출력을 강화해서 극복 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세게 밟아 봤자 바퀴만 헛돌지, 경사를 못 오르고 미끄러지기 때문이다.;;
인천 지하철 2호선 검바위 역 부근의 급경사는 5.5%로, 이건 고무바퀴 경전철이니까 가능한 오르막이다. 일반 철도에서는 존재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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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러시아-우크라이나 일대에 있는 크림대교도 도로교와 철교가 이렇게 완전히 다르게 생긴 것이다.
철교를 도로교처럼 저렇게 봉긋 솟아오르게 만들면 열차가 자력으로 전혀 지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_=

크림대교는 울나라 인천대교나 영종대교와 달리, 현수교나 사장교 형태로 만들지는 않았나 보다. 건설비를 절약하려고 단순한 공법을 사용했는지, 교각이 굉장히 촘촘하고 높이도 낮은 편이다. 그래서 큰 선박이 아래로 통과할 수 없겠다.

3. 시설

우리나라의 고속도로는 (1) 톨게이트를 모조리 없애고 미국 프리웨이처럼 (2) 노선과 진출입로에 번호를 매기는 것이 장기적인 미래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럼 철도는? 역 번호는 초창기부터 잘 정착했다. 광역전철이나 경전철 노선들은 아직까지 번호 없이 이름만으로 통용되고 있는데, 이것도 노선이 10개쯤 되면 번호를 부여하자는 얘기가 차차 나오지 싶다. GTX 노선이야 특정 지명만으로 이름을 붙이기 난감하기 때문에 진작부터 ABC라고 번호에 준하는 명칭이 붙었다.

한편, 고속도로의 톨게이트에 맞먹을 급으로 우리나라 철도에서 가까운 미래에 완수하려는 과업은.. (1) 모든 기관차를 1인 승무로 바꾸는 것, (2) 그리고 역들 승강장을 고상홈으로 바꾸는 것이지 싶다.

대형 여객기를 부기장 없이 1인만으로 조종하는 건 정서적으로 여전히 거부감이 많다. 그러나 철도야 900명이 넘게 타는 KTX도 이미 한 명이 운전하고 있는데 기존 기관차도 사각지대 카메라를 늘리고 각종 절차들을 간소화· 자동화해서 승무원을 줄이는 게 업계의 유행이다.
지하철/전철 쪽도 최장길이인 서울 1~4호선 10량은 아직까지는 앞의 기관사, 뒤의 차장 이렇게 2인 승무인데.. 가까운 미래에 1인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고상홈이야.. 자동차에서 저상버스가 도입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물론 고속버스는 아래의 짐칸 때문에 현실적으로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일본의 신칸센 역들은 진작부터 고상홈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장거리 고속열차를 마치 지하철 타듯이 계단 없이 간편하게 타고 내리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다. 우리나라도 그런 스타일을 도입하게 될 것이다.

4. 용어

우리나라가 군대에서 일본식 한자어나 일본어식 음차가 많다며, 엑스반도(밴드-_-), 구보(달리기 뜀뛰기), 고참(선임), 미싱(물청소), 도수체조(맨손체조), 반합(밥통, 도시락), 요대(허리띠), 모포(담요), 화이바(헬멧, 방탄모), 총기수입(손질) 등의 용어들을 바꿔 가는 추세이다.
심지어 헌병이라는 말조차 군사경찰로 바꿨는데 이건 짧고 익숙한 단어를 굳이 왜 바꿨는지 모르겠다.

그것처럼 철도 업계에도 일본식 한자어.. 뭔가 무슨 한자로 이뤄졌을지 얼추 짐작은 되지만 좀 딱딱하고 건조하고 약간 위압적으로 느껴지는 용어가 좀 있다.
방금 얘기가 나왔던 구배(경사)부터 시작해서 사구간(절연구간).. 대합실은 거의 20년 전에 이미 맞이방이라고 바뀌었다.
차량기지는 딱히 일본식 용어 같지는 않은데 괜히 차량사무소라고 공식 용어가 바뀌었다.

'-창'.. 공작창, 정비창이라는 말도 요즘은 안 쓴다. '자전차, 변소'(자전거, 화장실)라고 하면 굉장히 옛날 할아버지 말투처럼 들리듯이 말이다. 군대 영창은 용어뿐만 아니라 그 제도 자체가 요 몇 년 전에 폐지됐다.
그러고 보니 '무'(務)자가 들어간 장소 이름들이 우리나라에서 잘 안 쓰는 일본식 한자어로 여겨지는가 보다. 내무반(군대), 역무실(철도), 형무소(교정시설)처럼 말이다. 의무실조차도 공식 용어가 아니고 '건강관리실'이 표준이다.

우리나라도 해방 이후에 한동안 형무소라는 말을 써 왔다. 그러나 리 승만 할배 이후에 경무대가 청와대라고 이름이 바뀐 시기(1960~61)에 수형 시설의 이름도 교도소와 구치소로 바뀌고 세분화됐다.
우리나라는 반일 감정, 그리고 ‘무 duty’라는 의미에서 느껴지는 건조함과 권위주의 위압감 때문에 정서적으로 이런 조어를 피한 것 같다. =_=

그에 반해 일본에서는 태평양 전쟁 전범들이 사형 선고를 받고 처형된 걸 '법무사'(士가 아니라 死!!!!)했다고 표현을 정도이니.. 일본이 저 '무'자를 정서적으로 우리나라보다 더 즐겨 쓰긴 하는가 보다. 참고로 '경무대'는 '무'의 한자가 武이며, 일본식 한자어가 전혀 아닌 조선 고유의 명칭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3/09/24 19:35 2023/09/2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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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5년의 병맛 영화

2015년엔 꽤 인상적인 병맛 독립영화가 국내외에 여럿 만들어졌던 것 같다.

(1) 쿵 퓨리 Kung Fury (스웨덴)
얘는 뭐 더 말하면 입만 아플 약 빤 명작이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간이 꽤 많이 지났는데 2편은 왜 소식이 없나 모르겠다. 흐지부지된 건가?

(2) 무서운집 (한국!!!)
쿵 퓨리와는 좀 다른 방식으로 '일부러 못 만든 병맛 괴작'을 추구한 영화이다. 무려 오프라인 극장 개봉까지 했다.
물론 듣보잡 취급 받으며 관객 수도 1천 명 남짓한 처참한 수준이었지만-_-.. 얘는 전체 제작비가 100만원이 채 넘지 않은 극초저예산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작 그 관객으로도 제작비의 몇 배 이상을 뽑으며 흑자-_-를 냈다고 한다.;;
개미가 자기 체중의 몇 배 이상을 거뜬히 들어 나르고, 벼룩이 자기 키의 수 배 이상 높이를 점프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ㄲㄲㄲㄲㄲㄲ

그리고..
(3) Modern Educayshun (호주) (☞ 보기)
7분 남짓한 분량이니 영화라기보다는 요즘 인기 많은 '너덜트' 스타일의 꽁트 영상에 가깝다.
요즘 별 걸 갖고 차별이네 프레임을 씌우는 이상한 PC(정치적 올바름.. -_-)질을 굉장히 신랄하게 풍자한 작품이다.
직접 보면 안다. 댓글을 보면 "정말 참신한 사이다 같은 풍자다~ 시대를 앞서갔다~ 이런 미래 예언물이 무려 2015년에 만들어졌었다니!!!" 같은 감탄 일색이다.

2. 컴퓨터 기반의 통신을 소재로 한 영화

1997년쯤이었나.. '접속'이라는 국산 멜로 명작 영화가 크게 히트를 쳤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비슷한 시기에 Contact라는 제목으로 우주 관측을 소재로 하는 외국 SF 영화도 개봉하긴 했지만 그거랑은 소재· 장르가 완전히 다르고...ㄲㄲㄲ '접속'은 PC 통신 채팅으로 남녀가 만나는 얘기이다.

그런데 그때 이후로 PC 통신은 인터넷으로 바뀌었고 스마트폰과 SNS가 등장하고, 네트워크 속도는 정말 미친 듯이 빨라졌고, 사진으로 모자라서 동영상까지 초고화질로 실시간으로 주고 받는 시대가 됐는데..
훗날 통신을 소재로 한 영화로는 '소셜포비아'(한국, 2015),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일본, 2023)처럼 그닥 밝고 긍정적인 소재가 아니다.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접속'과 무척 비교되는 것 같다.

곤지암(2018)은 저 작품들처럼 대놓고 범죄를 다루는 건 아니지만, 기괴한 컨텐츠를 갖고 시청률 조회수에 목숨 거는 인터넷 방송? 유튜버의 어두운 면모를 다루고 있다.

3. 1967년작, 흥부와 놀부

옛날 국산 영화들을 뒤져 보다가 정말 놀라운 작품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1967년작 “흥부와 놀부” 인형극이다. 얘는 그 시절에 흔치 않게 올컬러인 데다, 손이나 실로 조종하는 흔한 인형극 촬영이 아니다. 무려.. 스톱모션 애니이다. ㄷㄷㄷㄷㄷㄷ (☞ 보기)

1967년, “빨간 마후라”, “소령 강 재구”와 거의 같은 옛날에 울나라에서 이런 애니메이션을 만든 적이 있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CG도 없고 전자 음향도 없던 시절이니 크레딧 화면은 전부 손글씨와 실물 그림을 촬영한 것이다. 게다가 인형들의 저 정교한 움직임을 생각하면? 근성 면에서는 머털도사, 흙꼭두장군 이런 것보다 더 고퀄 같다.

60년대 아니랄까 봐, 구렁이를 때려죽이는 걸 피까지 철철 흐르면서 필요 이상으로 너무 잔인하게 묘사한 것 같다. ㅜㅜ 애들 보는 인형극이라면 그냥 쫓아내서 없애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이는데.
그리고 뒷부분에서 놀부의 박에서 튀어나오는 괴물과 귀신도.. 어지간한 공포물 수준이다. =_=;;

내가 울나라 옛날 영상물들을 여럿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어 간다.
이 바닥은 1960년대에 뭔가 잊혀진 중흥기 같은 게 있었다. 1960년대를 만만하게 보지 말라.
오히려 5공 3S니 뭐니 하던 1980년대가 암흑기 침체기였다.

옛날에 KBS에서 왕자와 거지, 아라비안 나이트 이런 거 갖고 인형극을 방영했던 것 같다. 추억 돋네.. 그건 아래쪽에 철사가 연결된 조종 방식이었다.
요즘이야 실사 인형 같은 CG 애니메이션이 있을 뿐이지, 구닥다리 인형극 같은 건 안 만들 것이다.

4. 생명보험사의 첨단 CG CF들

지난 2021년 여름엔 신한 라이프의 CF에서 가상 인플루엔서 ‘로지’가 격렬한 댄스를 선보였다. 기억하는 분 계신가? (☞ 보기)
이게 실존 인물 무명 신인이 아니었다는 게 알려지면서 시청자들이 적지 않게 놀랐다. 1990년대 말의 사이버 가수 아담 시절에 비하면 CG가 정말 장족의 발전을 한 게 느껴진다.

그 뒤 2023년 초엔 KB 라이프의 CF에서 배우 윤 여정 씨가 50여 년 전 20대 시절의 자기 모습과 조우하는 모습이 나왔다.
이건 대역 배우가 동원되기는 했지만, 거기에다가 AI를 접목하여 합성 보정을 거친 영상이다. 대역 배우와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 됐다. (☞ 보기) 신한 다음에는 KB가.. ㅡ,.ㅡ;;

햐~ 1990년대 중후반엔 환경 보호 공익광고에서 “그 맑은 물이 그립습니다” 이러면서 신 윤복의 풍속화가 애니메이션으로 바뀌던 게 당대 최첨단 CG 기술이었었다.
조선 시대 그림풍으로 물이 실제로 졸졸 흐르고 아낙네가 진짜로 머리를 감고 씻었다.;; 아니면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가 애니메이션으로 돌아간다거나..

거기에다 초보적인 에이징/디에이징 기술을 동원해서 경북대 무슨 교수 연구팀이 용역 받아서 “실종된 성서 초등학교 개구리 소년 5인, 만약 지금 살아 있다면 이런 얼굴일 것임” 정도나 깨작거리며 만들었다. 지금 기술에 비하면 정말 어설픈 수준이었다.

옛날에는 아담 정도의 CG만 해도 최하 워크스테이션 급 컴에서 X뺑이 치면서 며칠씩 렌더링 시켜야 했겠지만,
지금은 그 정도 CG는 어지간한 그래픽 카드만 장착된 PC라면 게임 실시간 렌더링으로 나올 것이다.
실존하지 않는 눈발이나 불꽃, 머리카락, 물결을 재연하는 기술뿐만 아니라 실존하지 않는 인물을 통째로 재현하고 나이 속이는 기술이 정말 눈부시게 발전했음을 느낀다. 아까 저 1960년대 인형극 영화와 비교하면 기술 배경이 그야말로 극과 극 상전벽해 그 자체이다.

그나저나 윤 여정의 진짜 20대 시절 작품인 1971년도 영화 "화녀"가 있다.
1960년엔 그렇게도 명작이라던 국산 흑백 영화 "하녀"가 있었는데.. 화녀도 있군..!!
KB 라이프의 CF를 제작한 사람들이 이 영화도 응당 참고했을 것이다. (☞ 보기)

Posted by 사무엘

2023/09/22 08:35 2023/09/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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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흡 충동과 산소 부족은 서로 별개

인체는 숨을 오랫동안 참고 있으면 곧 극심한 괴로움을 호소하면서 기도를 열어서 무엇이라도 무조건적으로 빨아들이려고 애쓰게 된다. 주변이 온통 물이나 유독가스뿐이더라도 말이다. 이 때문에 다른 물질(흡입), 다른 도구, 외력(강제로 호흡 차단)으로 인해 질식사를 할지언정, 혼자 숨을 참아서 자살할;;; 수는 없다. 이건 인간이 스스로 호락호락 목숨을 끊을 수 없게 하는 일종의 안전 장치이기도 한 것 같다.

글쎄, 과거에 대종교의 핵심 간부이면서 독립 운동가였던 나 철, 서 일 같은 사람은 스스로 숨을 참아서 목숨을 끊고 자결· 순국했다고 전해진다. 마치 어느 만렙 불교 승려가 꼿꼿한 가부좌 자세로 분신 인신공양을 한 것만큼이나.. 저게 아주 특수한 수련을 통해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평범한 일반인에게 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숨을 안 쉬어서 인체가 괴로움을 느끼는 판단 기준은.. 정말 의외인데 산소 부족이 아니다. 반대로 체내에 축적된 이산화탄소의 증가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것만큼이나 이산화탄소는 물질대사로 인해 계속해서 생성되니까.. 그리고 이게 산소 부족보다 먼저 감지되는 더 민감한 현상이다.

코나 입을 틀어막거나 목을 조르는 게 아니라 그냥 얼굴만 비닐봉지로 씌워서 밀폐해 보면(...;;) 얼마 못 가 숨이 가빠지고 얼굴이 벌개지긴 한다. 이것도 산소 부족 때문이 아니라 봉지 내부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해서 호흡만으로 이산화탄소의 배출과 농도 조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요즘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평균 농도가 0.04%, 대략 400ppm으로 여겨지는데, 날숨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4%가량으로, 약 100배 증가한다.

이산화탄소의 배출은 잘 하고 있으면서 순수하게 산소만 부족한 상황은 인체가 제대로 감지를 못 한다고 한다. 그냥 나른하고 체력이 딸리고.. 물론 그 상태로 등산 같은 무리한 신체 활동을 하면 고산병 같은 증세도 일어나겠지만, 대기압이 정상이면서 격렬한 신체 활동 없이 산소만 없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픽 쓰러지고 훅 갈 수도 있다.

하긴, 그렇게 위험을 감지할 기력 자체가 사라지니까 말이다. 스타에서 다크 템플러가 일꾼을 원샷 원킬 하는 것은 under attack 경보가 안 뜨듯이.. 일산화탄소 중독 같은 걸로 질식한 사람만 해도 다 그냥 픽 쓰러지지, 얼굴 벌개지고 켁켁거리면서 의식을 잃지는 않는다는 걸 생각해 보자.

그리고 굳이 그 정도로 위험한 유독가스가 아니라 질소만 100% 있는 곳에 있어도 사람은 똑같이 픽 쓰러질 수 있다. 누가 나쁜 마음 품으면 이런 중독과 질식을 이용해서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고통 없이 쉽게 가는 자살· 살인 방법을 고안할 수도 있을 정도이다.

수영을 하면서도 과호흡이라고 해야 하나, 이산화탄소만 내보내어 인체가 내보내는 자연스러운 호흡 충동을 강제로 억제함으로써 실제 체력보다 더 오래 숨을 참는 테크닉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도 조심해서 활용해야 한다. 멀쩡히 수영하던 중에 뇌의 산소 부족 때문에 아무 이상 징후 없이 의식을 잃고 익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가리키는 Shallow Water Blackout이라는 현상 내지 용어도 있으니 참고하시라.

이런 맥락에서, 요즘은 하품도 산소가 부족해서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라고 여겨진다. 최소한 주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졸음 운전은 명백하게 차내의 이산화탄소 증가로 인한 현상으로 여겨진다. 물론 그래도 날숨보다는 훨씬 낮은 농도이니까 졸리기만 하는 것으로 끝나지, 그 이상이면 탑승자들이 견디지 못한다.

운동을 할 때 몸이 지치는 것에도 숨이 차는 것과 근육이 저린 건 별개의 영역인데, 호흡과 관련해서도 산소 부족과 이산화탄소 과다는 서로 완전히 별개로 생각해야겠다.
그래도 호흡이 어느 물질이 어떻게 변화하는 과정인지를 생각해 본다면,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체내의 산소 부족과 이산화탄소 과다는 대부분, 사실상 동치라고 봐도 무방하긴 하다.

여담이지만.. 호흡 하니까 떠오르는 게..
음식의 맛은 혀로 느낀다고들 그런다. 그런데 숨을 참으면서 음식을 먹을 때는 절대로 감지되지 않다가, 숨을 코로 내쉴 때만 느껴지는 그 형언할 수 없는 ‘끝맛’은 도대체 무슨 기관 내지 장기가 어떤 원리로 감지하는 것일까? 굉장히 궁금해진다.

2. 혹한 속에서 탈의

인체가 자기 상태를 잘못 판단하는 경우는 저런 호흡 관련 말고도 몇 가지 더 알려져 있다. 허기를 표현하는 배꼽시계만 해도 지금 정말로 영양분이 부족한 상태만을 곧이곧대로 나타내는 게 아니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며..

한겨울에 눈에 파묻혀서 저체온 동사하기 직전인데, 정작 당사자는 정신줄을 놔 버렸는지 신체에서 무슨 반응을 내보냈는지.. 불타는 듯한 더위를 느껴서 스스로 옷을 훌훌 다 벗어 던져 버릴 수 있다 (paradoxical undressing). 물론, 그렇게 옷 벗은 뒤에는 더 빨리 의식을 잃고 죽는다.

그래서 이런 상태로 발견된 나체 시신은 본의 아니게 단순 사고를 넘어 강력 범죄를 당하기라도 했나 오해를 받곤 한다. 자가색정사처럼 말이다.
요즘은 이런 현상에 대해서도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동사한 사람이 다 저러는 건 또 아니라는 게 의아한 점이다.

군대에서 혹한기 훈련을 하면서 이와 비슷한 체험을 한 사람의 회고도 전해진다. 갑자기 너무 더워져서 옷을 벗으려 했는데, 그랬다간 진짜 얼어 죽는다며 고참이 말렸다고 말이다.
옛날에 일본에서 러일 전쟁을 앞두고 동계 산행 행군을 하다가 수백 명의 군인들이 준비 미비로 인해 눈 속에서 얼어 죽는 참사가 벌어졌었는데.. (핫코다 산 참사) 이걸 묘사한 영화에서도 어느 군인이 정신줄 놓고 맛이 가서는 옷 훌훌 벗는 장면이 묘사됐었다.

사람이 죽기 직전에 엔도르핀이 분비돼서 헤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 화재 현장 같은 데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초인적인 힘이 순간 나왔다가 그 뒤에 퍼지는 것.. 그런 면모가 있는 것 같다.

3. 뇌사

똑같이 의식을 (반)영구적으로 상실한 상태이더라도 뇌사는 식물인간하고는 완전히 다른 상태이다.
뇌사는 소생 가능성이 0%이고, 기계만 떼어내면 맥박이고 호흡이고 다 정지해서 무조건 바로 죽는다.
더구나 기계가 인체의 모든 생명 활동을 다 대체하지도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뇌사자는 기계로 도배를 해 놔도 1~3주 안에는 결국 심폐사에도 도달해서 어차피 죽는다.

그러니 뇌사자가 살아난다는 건 무슨 성경의 기적이 아닌 한 인류 역사상 전무하며 절대불가능이다. 아주 극소수 뇌사라고 오인된 식물인간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뇌사자가 놀랍게도 뭔 자극에 반응해서 양팔을 갑자기 치켜들었다가 자기 가슴에다 살포시 놓을 수 있다고 한다.
이건 ‘나사로(라자루스) 징후’ 내지 spinal reflex라고 불리는 현상인데, 이건 뇌가 아니라 그냥 척수에서 보낸 기계적인 반응일 뿐이다. 환자가 이제 살아나는 거 아니냐고 설레발 칠 필요가 전혀 없다.

뱀이라던가 일부 동물이 목이 잘린 뒤에도 일부 신체 부위는 뇌가 아닌 신경 반응을 보이는 것과 동일하다. 물론 그렇게 놔 두면 산소와 영양의 부족으로 인해 언젠가는 다 죽기는 한다.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 현행법은 심폐사에 완전히 도달하지 않은 뇌사는 사망과 동급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하지만 뇌사도 사망으로 더 적극적으로 일찍 인정해 줘야 1분 1초가 급한 장기 이식을 더 수월하게 시행해서 “살 가능성이 있는 다른 환자”를 더 많이 살릴 수 있다~~~ 이런 말이 오가며 논란을 일으킨다. 안락사하고는 비슷해 보이지만 좀 다른 분야의 얘기이다.

작년에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아베 신조 전 총리 총격 피습 사건을 생각해 보자. 그가 의료진으로부터 정식으로 사망 판정을 받기 전까지 몇 시간 동안은 ‘심정지’라고만 언론에 보도됐다는 걸 생각해 보자.
심장과 뇌의 관계가 이렇게 미묘하다. 컴퓨터에다 비유하자면 파워 서플라이랑 CPU의 관계와 비슷해 보이는데 말이다.;;

정작 전통적인 사망 판정 기준인 심폐사는 뇌사보다 소생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게 아이러니이다. 멈췄던 심장이 갑자기 다시 뛸 수 있고, 심폐소생술, 제세동, 심지어 심장 이식 같은 대체가 제한적으로나마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족의 입장에서는 가족의 사망이야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체 남기면서 일체의 희망이나 뒤끝 없이 깔끔하게 딱 죽어 버리는 게 차라리 더 나을 정도로 다른 방식으로 더 나쁘게 되는 가능성도 존재한다.

  • 실종: 생사불명. 사망과는 차원이 다른 잔인한 희망고문을 선사한다;;
  • 전신 마비: 외관상 사지 멀쩡하고 생명과 의식이 있고 지능도 100% 정상이지만.. 척수가 나가서 목 아래의 몸체를 조종을 못 한다..;; 평생 혼자서 대소변 통제도 못 하고(변의 자체를 못 느끼는 채로 그대로 싼다ㅠㅠㅠ), 간병인이 주기적으로 체위도 바꿔 줘야 한다(욕창 예방). 살아도 산 게 아님.
    아까 저 뇌사자조차 무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 ‘나사로 징후’를 못 하는 반대편 극단에 속한다.
  • 중증 치매나 이와 비슷한 급의 정신 질환: 역시 살아도 산 게 아니며, 주변 보호자의 인생까지 파탄으로 몰아넣는다. 오죽했으면 가족인 보호자가 환자를 작정하고 죽여 버린 뒤에 경찰에 자수하고 제 발로 교도소로 간 비극적인 사연이 나올 정도이다!! 이건 보호자를 절~대로 비난할 수 없는 사항이다.
  • 양안 완전 실명: 앞을 못 봄. 사망 다음으로, 혹은 심지어 사망에 준할 정도로 생명보험금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엄 여인 사건이 괜히 발생한 게 아니다. 여느 식물인간이나 사지절단보다 더 암울하다.
  • 뇌사: 사실상 사망이나 마찬가지다. 의료 기술이 발달하면서 심폐사가 아닌 뇌사를 사망 기준으로 공식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있긴 하다.

제아무리 생명 존중하고 안락사 부류를 금기시하는 종교나 문화라도, 아무짝에도 쓸모나 의미가 없는 연명 조치까지 무작정 강요하지는 않는다. 뇌사는 이 범주에 속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살인이랑,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가시려는 걸 억지로 막지 않고 놔 두기" 이 둘의 차이는 아동학대와 사랑의 체벌의 차이만큼이나 분간하기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Posted by 사무엘

2023/09/19 08:35 2023/09/1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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