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1.
신약 서신서가 딱 전반부는 구원 교리, 후반부는 일상에서의 행실 이렇게 나뉘는 편이라면..
다니엘서는 전반부는 재미있는 스토리, 후반부는 어려운 미래 예언으로 나뉘는 편이다. (뭐, 스토리에서도 일부 꿈 이야기는 예언이긴 하다만)

2.
인류 역사상 존재했던 동서고금의 그 어떤 절대권력자 폭군(네로, 진시황, 히틀러, 알렉산더, 시저, 스탈린, 북괴 김돼지 등등..)이라 할지라도
“내가 꿈을 꿨는데 내용이 하나도 기억 안 나거든? 그러니 니들이 내 기억을 되살려 내고 그 내용을 해석도 해라. 못 하면 몽땅 다 사형
이런 미친 또라이 같은 요구를 한 경우는 없다. 이런 군주는 느부갓네살 왕밖에 없었지 싶다.

3.
그런데 저 사람은 막장 폭군이고 적그리스도의 예표이기까지 한 것치고는.. 성경에서의 묘사가 막 심하게 나쁘지 않다.
다혈질적인 기분파이긴 하지만 한편으로 상벌 확실하고 쿨한 상남자처럼 묘사되었다.
처음에는 지혜자들을 몽땅 학살하려 했지만.. 그래도 자기 꿈이 말끔하게 재연되고 해석되자 군말 없이 다니엘을 엎드려 경배도 했다. ㄷㄷㄷㄷ (단 2:46) 그 대왕급 군주가 일개 포로 출신 교육생 청년에게 말이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이적을 본 뒤에는.. 이집트 파라오처럼 끝까지 뻗튕기다가 더 망가지는 게 아니라, 쿨하게 ‘인정을 할 줄 알았다.’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하고, “저 다니엘이 섬기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놈이 있으면 내가 먼저 죽여 놓겠다” 이런 선언까지 했다.
느부갓네살 왕 개인은 아마 구원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4.
저 사람은 자뻑을 좀 잘했다. 정말 엄청난 돈지랄을 해서 만들었을 황금 형상은 실물이 어떤 모양이었을지 정말 궁금해진다.
이전의 꿈에서 머리에서 발로 갈수록 재료가 싸구려로 바뀌는 인물 형상을 봤으니, 거기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_-;; 자기 형상은 몽땅 순금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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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다 왕국 성전의 각종 집기에서 노획된 금이 저 형상을 만드는 데 많이 들어갔지 싶다. 원래 솔로몬 왕 때 잔뜩 축적됐던 금 말이다.
하긴, 출애굽기 시절엔 이스라엘 백성이 빌린다는 명목으로 사실상 빼앗은 이집트의 금이 궁극적으로는 금송아지를 만들 때 쓰였다=_=. 성경에서 금의 흐름을 추적해 봐도 이렇게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진다. 성경에 최초로 등장하는 전국민 '금 모으기 운동'은 영적으로 별로 좋은 운동이 아니었다.

(이런 금과 별개로, 성경에서 언급되는 나라들은 화폐는 대체로 너무 비싼 금보다는 은을 기반으로 만들어서 통용하곤 했다. 즉, 은본위제인 셈이다. 데나리온, 세겔은 다 은화였으며, 예수님이나 요셉을 팔아서 거래된 돈도 다 은화였다. ㄲㄲㄲㄲㄲ)

5.
자뻑의 연장선으로 단 3:15는.. 세상에서 연주하는 팡파레.. 무슨 사단장 군단장 경례곡 같은 웅장한 빰빠라밤 뿜빠뿜빠의 원조이다.
거기에 맞춰서 “전 백성들은 몽땅 저 형상에게 절하도록 해라~!” 이건 하일 히틀러 나치 경례 저리 가라 수준이었지 싶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짤막하게 나오는 영화 제작사 소개 영상도 이와 비슷한 부류일 것이다. 스케일이 아주 작아지긴 했지만 말이다.

사도행전 12장에 나오는 헤롯은 교만해서 자뻑을 도 넘게 늘어놓자 천벌로 벌레에게 뜯어먹혀 끔살 당했다. (행 12:23)
그러나 느부갓네살은 비슷한 상황에서 정신병에 걸리는 징계를 받았을지언정, 다시 회복됐고 심지어 왕권도 되찾았다. (단 4:30~)
이런 걸 비교해 봐도 느부갓네살은 성경 전반에서의 심상은 부정적이 아니라 긍정적인 것 같다.

6.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저 경배를 거부해서 풀무불에 던져졌다가 나오는 동안, 다니엘 본인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을까?? 아마 우연히 타지로 공무상 출장을 가느라 저 짓거리에서 자연스럽게 열외된 게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건 “바울은 원래 결혼했었는데 사별했거나 아니면 종교 갈등 때문에 이혼 당해서 돌싱이 된 게 아닐까?”와 거의 같은 급의 추측이다.
풀무불에 던져지는 역경에서 자연스럽게 열외된 다니엘의 모습은 대환란을 겪지 않고 그 전에 먼저 휴거되는 신약 교회의 예표이다.

7.
킹 제임스 성경은 창세기에서 “니가 이 선악과를 먹으면 ‘신들’(gods)처럼 돼서 선악을 분별하게 된다”라고 써 놓았고, 다니엘서에서는 “용광로 안에 사람이 3명이 아니라 4명이 있는데, 추가된 한 명은 마치 ‘하나님’(God)의 아들처럼 생겼다”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KJV 외의 다른 성경들은 gods와 God의 배치가 서로 뒤바뀌었다.

8.
다른 모든 성경들은 다니엘 일행이 1장에서 다이어트 시험을 진행할 때 채식을 했다고 기록하지만, 오로지 KJV만은 아무 채소가 아니라 ‘콩’을 먹었다고 적혀 있다~! 다니엘 일행은 식물성 단백질에 대한 지식이 있었던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3/07/08 08:35 2023/07/0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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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동차와 비행기의 기술적인 차이

(1) 육상 교통수단에 '차-자동차'의 구분이 있는 것처럼, 공중에도 '항공기-비행기'라는 구분이 있다.
자동차는 일정 배기량/출력 이상의 기계 동력으로 일정 속도 이상을 내는 차량을 말한다. 비행기도 글라이더나 기구가 아니라 기계 동력으로 양력을 생성해서 뜨는 항공기를 말한다.

(2) 자동차는 시동 중에 주유 금지가 권장되는 정도이지만, 여객기는 승객이 탑승한 채로 연료 주입이 금지이다.

(3) 비행기는 자동차와 달리, 납이 들어간 유연 휘발유도 여전히 항공 연료 중 하나로 쓰이고 있다. 비록 가까운 미래에 규제가 걸릴 가능성이 높지만 아직까지는 그렇다. 그리고 이쪽 업계는 아무래도 디젤 엔진의 존재감이 아주 희박하다.

(4) 자동차의 타이어 안에는 그냥 일반 공기가 주입되며, 펑크가 났을 때 지렁이 땜빵만 해도 된다.
그러나 비행기의 랜딩기어 안에는 산소가 절대 없는 질소 100%만이 주입되며, 저런 부분적인 땜빵이 허용되지 않고 전면 교체를 해야 한다.

(5) 자동차는 한 엔진 안에서 실린더가 몇 개(3~8?)인지, 몇 기통인지를 따지지만 비행기는 엔진 수가 몇인지(1~4개)를 따진다. 엔진은 프로세스, 실린더는 스레드인 것 같다. -_-;; 플라이휠은 스레드를 동기화시켜 주는 장치인 건가..?

(6) 자동차는 주행 중에 야생 동물과 충돌하는 '로드킬' 사고가 날 수 있고, 비행기는 비행 중에 '버드 스트라이크'라는 충돌 사고가 날 수 있다. 그런데 투명한 도로 방음벽에 새가 부딪혀서 죽는 건.. 위의 두 사고의 중간 유형으로 분류해야 하려나 모르겠다.;;

(7) 자동차에 운전석 에어백이 있다면, 비행기에는 전투기 한정으로 사출 좌석이 있는 듯.. 전자는 화약을 터뜨려서 팽창하고, 후자는 아예 초소형 로켓이 달려 있다고 들었다.

(8) 굴러가는 자동차 바퀴 때문에 돌멩이나 각종 이물질이 밟혔다가 튀어오르는 것은.. 선박이 지나가면서 남긴 물결이나 비행기의 후폭풍, 심지어 초고속으로 날아다니는 우주 쓰레기와 비교할 수 있겠다. 평소에 차가 부드럽게 나아가는 것 같아도, 엔진이 내는 힘은 이 정도로 정말 무지막지하다는 뜻이다.

(9) 육상 교통수단은 외연 기관에서 시작해서 내연으로 바뀐 반면, 비행기는 처음부터 내연으로 시작했는데 왕복 엔진에서 제트 엔진으로 바뀌었다. 가스 터빈은 증기 터빈이나 왕복 내연기관보다 만들기 더 어려운 물건이었다.
(참고로 선박은 증기선에서 내연기관으로 바뀐 것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덜해 보인다. 그 대신 목재에서 철제로 바뀐 것, 범선에서 기선으로 바뀐 것, 외륜에서 스크루로 바뀐 것의 존재감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10) 자동차는 정지나 저속 상태에서는 정지 마찰력을 극복하는 데 힘이 많이 들고, 고속에서는 공기 저항과 엔진의 과부하 때문에 가속이 힘들어진다.
비행기는 저고도에서는 짙은 공기 저항 때문에 빨리 못 날고, 고고도에서는 연소에 필요한 공기가 너무 희박해서 엔진이 출력이 안 나오고 빌빌대니.. 둘 다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짐을 많이 실은 무거운 자전거를 타고 처음 출발할 때 페달을 밟는 것보다 땅을 차서 나아가는 게 더 편한 이유도 따지고 보면 정지 마찰 때문..).

(11) 자동차는 바퀴를 굴려서 앞으로 나아가지만, 비행기는 주변 공기를 뒤로 밀어내고 연소 배기가스를 내뿜어서 나아간다. 지상에 있을 때는 바퀴는 기체를 따라 저절로 굴러갈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행기는 역주행하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맞바람만 어떻게든 충분히 강하게 받을 수 있다면 물리적으로 수평이동을 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이륙할 수도 있다.
프로펠러가 비행기의 앞이 아닌 뒤에 달려 있어도 이륙 가능하다. 단지, 이런 디자인은 기수가 들릴 때 프로펠러가 땅을 긁을 위험이 크기 때문에 선택하지 않을 뿐..

(12) 단, 주변이 폭염 급으로 너무 더우면 비행기의 이륙이 힘들어져서 활주거리가 길어진다. 엔진 과열 문제 때문이 아니라 공기가 열팽창해서 밀도가 낮아지고, 이는 양력의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대로 한겨울에 기체에 눈이 쌓여 있으면 반드시 깔끔하게 다 치워야 된다. 이 역시 양력의 생성 효율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입장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변수가 비행기에는 아주 민감하게 작용하는 셈이다.

2. 탑승하는 절차

대중교통 중 육상 버전인 버스나 열차에 탑승하기 위해 구입하고 제시하는 차표를 우리는 '승차권'이라고 한다. 선박은 '승선권'이라고 부르는데.. 비행기는 '승기권'이라고 부르지 않고 '탑승권'이라고 부른다. 글쎄, 영어로는 비행기와 선박 모두 boarding pass라고 부르기는 한다만 말이다.

지금 같은 만능 교통 카드라는 게 없던 옛날엔 시내버스의 경우, 잔돈을 취급하느라 걸리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무슨 식권이나 동전 같은 버스 토큰이라는 게 쓰였다. 철도 쪽은 '에드몬슨 승차권' 내지 그에 준하는 마분지 승차권이 오랫동안 쓰였다.
그러다가 오늘날은 육상에서는 시외버스와 고속버스가 시스템이 점차 통합되고, 교통 카드로도 운임을 결제할 수 있게 돼 간다. 그러나 비행기는 그런 통합과는 딱히 접점이 없다. 아직은 말이다.

항공 쪽이 꽤 특이한 점은.. '항공권'과 '탑승권'이 구분돼 있다는 점이다. 먼저 무슨 증서처럼 생긴 항공권부터 발급받은 뒤, 공항에 가서 체크인을 하면서 그걸 실제 탑승권으로 바꿔야 한다. 이걸 제시해야 면세 구역으로 들어가고 비행기를 탈 수 있다. 이거 무슨 수표-현금의 관계처럼 느껴진다.

  • 좌석 번호 지정인가?
  • 운임이 거리와 등급별 편차가 큰가?
  • 유기명인가?

부담 없이 빨랑 타서 단거리를 잠시 이용하고 내리는 시내버스나 지하철이야 위의 속성이 모두 XXX이다. 그러나 시외버스/일반열차 이상급이 되면 OOX이고.. 사고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비행기나 선박 정도가 돼야 티켓에 탑승자의 신원 정보가 기재된다.
아.. 아니, 더 정확하게는 사고가 날 확률이라기보다는, 일단 사고가 났을 때 시체를 못 찾을 확률이 육상 교통수단보다 높기 때문에 탑승자의 신상을 매번 확인하는 것이다.

비행기는 운임 제도가 굉장히 복잡하며, 수하물의 무게를 재고 탑승자를 일일이 대면 확인도 해야 한다. 그래서 좌석 위치도 비행기의 실제 탑승이 임박해서야 비로소 결정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항공권과 탑승권이 구분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하나 더.. 공항은 보안도 더 엄격하기 때문에 한번 들어가면 되돌아 나올 수 없는 구역 구분이 더 엄격한 편이다. 단, 이건 공항이기 때문이 아니라 출입국이 수반되는 절차이기 때문에 적용되는 것도 있다.

3. 영공 통과료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주행할 때 톨비(통행료)를 내는 것처럼 국제선 비행기들은 타국의 영공, 정확히는 타국의 관제 영역에 들어갈 때 영공 통과료를 낸다.
이건 "남의 나와바리에 들어왔으니 돈 내!!" 같은 무역 장벽이나 삥뜯기 같은 개념이라기보다는.. 일단 남의 나라를 상대로 우리는 UFO(미확인..)나 심지어 적국 군용기가 아니라는 걸 당당히 알리고, 그쪽으로부터 관제 서비스를 받는 비용이다. "근처에 다른 비행기가 날아오고 있고 충돌 위험이 있음. 고도를 변경하시오" 같은 교통 제어 말이다.

그런데 이런 영공 통과료라는 개념이 최초로 제기된 건 1928년, 독일에서였다고 한다.
그 당시 미국엔 Popular Science라고.. 우리로 치면 뉴턴이나 과학동아 같은 장르의 교양 과학 잡지가 있었다. 이건 무려 1872년에 창간된 ㅎㄷㄷㄷ한 물건인데 지금으로부터 2년쯤 전인 2021년 4월부로 드디어 종이 잡지의 출판을 완전히 중단하고 100% 온라인 웹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PopSci의 1928년 9월호 65페이지의 한 토막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체덴(현재 폴란드 서부 체디니아) 지방의 자무엘 슈바르츠라는 사람이 루프트한자 항공사를 상대로 "내 집 위를 타넘어서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내게 비행료를 내시오~!!"라고.. 약간의 생떼 부리는 듯한 서한을 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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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는 루프트한자라는 항공사 자체가 생긴(1926) 초창기였고, 지금 같은 대형 여객기와 서민들의 대규모 외국 여행이 존재하던 시절도 아니었다. 아니, 찰스 린드버그가 최초의 무착륙 단독 대서양 횡단을 한 때가 바로 전 1927년이었다.

그런 시절에 이런 요구를 한 사람이 있었다는 건 정말 기발하고 대단하긴 하나.. 루프트한자 항공은 현행법상 그래야 할 근거가 없다면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긴, 저건 인터넷 초창기에 좋은 단어로 된 도메인 주소명을 자기가 쓰지도 않을 거면서 알박기 한다거나, 아니면 심지어 달 표면 부동산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처럼 뜬금없게 들렸을 것이다.;;

그랬는데 말이 씨가 되어 1944년 12월, 2차 세계 대전이 끝나 가는 시기가 돼서야 미국의 주도로 국제 민간 항공 협약이란 게 맺어졌다.
선박은 최소한 신고만으로 남의 나라 영해를 지나다닐 수 있는 반면, 비행기는 돈 내고 허가를 받아야 외국 영공을 통과할 수 있는 것으로 법이 이때 본격적으로 정착됐다. 선박보다 훨씬 더 빠르고 내륙까지 순식간에 들어올 수 있다는 위험한 특성이 고려됐지 싶다.

영공 통과료가 부과되는 영역은 항공 관제가 제공되는 영역과 대응한다.
태평양 한가운데는 어느 나라의 소유도 아닌 공해이니, 선박이라면 통행에 아무런 제약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행기는 그런 곳을 비행할 때도 세계 경찰 미국으로부터 항공 관제를 받는다면 미국에다 영공 통과료를 내야 한다. 이건 '영공 통과료'가 아니라 진짜 그냥 '관제 수수료'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레이더도 발명됐겠다, 오늘날은 아무도 모르게 몰래 슬쩍 비행하는 게 가능한 시대가 아닌 셈이다. 그리고 현재의 국제 항공법에 따르면, 여객기는 언제라도 n분 안으로 근처의 제일 가까운 공항에 비상 착륙 가능한 항로만 골라서 비행하게 돼 있다. 엔진 수가 적고 출력이 작은 비행기일수록 그 제약이 더 크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지름길이라 해도 무작정 육지에서 한없이 멀리 떨어진 망망대해를 대놓고 횡단하지도 못한다.

끝으로.. 국제 우주 정거장 같은 인공위성이야, 비행기나 항공 관제 시설이 범접조차 할 수 없는 대기권 너머 높은 우주에서 훨씬 더 빠르게 지구를 도니.. 저런 항공법에서는 당연히 열외돼 있다. 영공 통과료 따위 없다.
비행기의 고도를 나타내는 단위는 피트이지만, 우주 발사체의 고도는 엄연히 SI 단위인 킬로미터로 나타낸다. 서로 물이 완전히 다르다~!

4. 면세점

비행기의 영공 통과료는 새로운 문명과 기술이 등장한 곳에 규제와 세금이 따라 부과된 것에 가깝다.
그런데 여객기를 이용한 자유로운 외국 여행은 반대로 납세 의무가 '면제'된 새로운 장소를 개척했다. 바로 면세점..

이건 꽤 재미있는 계기로 등장했다. 1947년, 아일랜드의 섀넌 공항에서 Brendan O'Regan이라는 직원이 합리적인 제안을 한 게 시초라고 한다.

"출국 심사를 마치고 비행기를 타기 직전인 승객들은 법적으로 이제 이 나라에 있는 사람이 아닌데.. 쇼핑 때 여전히 이 나라의 세금이 부과된 물건을 사야 하는 건 부당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런 승객들을 상대로 간접세가 붙지 않은 저렴한 물건을 팔아서 이윤을 남겨 보는 게 어떨까요?"

이 관행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세계 각국의 공항들은 면세점을 갖추는 게 관행으로 정착했다고 한다.
완전 자그마한 나라의 듣보잡 공항인데.. 세계의 역사를 바꾸는 큰일을 했다..;;

요즘은 국제 공항뿐만 아니라 국제 여객선 터미널에도 면세점이 있다. 하지만 옛날에 여객선을 타고 대양 횡단하고 외국으로 가던 시절에는 이런 면세점이 아직 없었는가 보다. 면세점은 세계 대전이 끝나고 UN이 생기고 비행기를 이용한 외국 여행이 보편화되면서 등장했으며, 그걸 선박 쪽에서도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3/07/05 08:35 2023/07/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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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다르크

1400년대 초 프랑스의 전설적인 성녀 영웅이라고 일컬어지는 '잔 다르크' 말이다.
비록 불순한 의도로 띄워지고 치켜세워진 사례가 적지 않아서 지금이야 좀 식상한 구석이 있지만.. 그래도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음이 사실이다.
위인전은 말할 것도 없고, 영화화하기에도 너무 좋은 소재이니 지금까지 한두 개 만들어진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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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다르크에 대해서는 진짜 딱 이 두 장면만이 너무 강렬하다. 허나 이것 말고도 말이다.

자기 이름 정도밖에 못 쓰는 문맹이었음에도 탁월한 전략으로 남자 병사들로 구성된 군대를 잘 이끌었고, 성직자 신학자들 수십 명을 상대로 신학 논쟁에서도 밀리지 않았다는 게 말이나 되나..?? 무슨 나폴레옹과 루터를 합쳐 놓은 사람도 아니고. ㄷㄷ
게다가 진짜 무슨 신통력을 발휘해서 얼굴 본 적 없는 진짜 국왕이 변장하고 숨은 걸 알아챈 걸까?
잔 다르크와 관련해서 개인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인물, 사건 등이 유사 사례로 떠오른다.

1. 1760년대, 제보당의 괴수

시기는 좀 차이가 있지만 똑같이 프랑스 출신-_-인 거,
각각 믿어지지 않는 전설적인 행적을 남긴 사람과 동물인 거,
사진 없고, 직접 보고 그린 그림 초상화(잔) 내지 박제(괴수)가 전혀 전해지지 않는다는 거.. 신비주의와 관련해서는 꽤 비슷하다. 프랑스가 참 신비로운 동네인 것 같다. '미녀와 야수' 설화가 괜히 있는 게 아닌 듯. -_-;;

그러나 이런 사람, 이런 괴수가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는 그 옛날부터 너무나 분명하게 기록이 남아 있다. 심지어 이웃 외국이나 적국에서 남긴 기록과도 진술이 일치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존재 자체는 절대로 주작이 아닌 팩트이다.

2. 성경의 다윗

잔 다르크에 대해서 "아부지 뭐 하시노?"에 대한 답이 딱 정확하게 떨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촌뜨기 양치기의 딸이었다는 말이 있고 실제로 "양치기 소녀 잔 다르크"를 묘사한 옛날 그림도 몇 점 있다. (갑옷 입고 백마 탄 여기사뿐만 아니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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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촌에서 양 치다가 10대의 나이로 소명을 받아서 나라를 구한 거.. 나중에 자기 군주한테 밉보인 거는 다윗의 어린 시절과 비슷하다. -_-;;; 샤를 7세가 사울 같은 왕이었나?
물론 잔 다르크는 돌팔매질보다는 더 현실적인 방법으로 전투를 이끌었다. 그리고 훗날 왕이 되지는 못하고 일찍 죽었다. =_=;;

3. 우리나라 유 관순

처형 vs 옥사 차이는 있지만 나이 20도 못 돼서 아주 비슷한 나이에 죽은 거, 애국심 투철하고 종교적으로도 독실한 소녀였다는 게 비슷하다. 실제로 잔 다르크의 생년 몰년에다가 490을 더하면 유관순의 생년 몰년과 거의 일치한다. 얼추 500년 텀..
유 관순이 살았던 때가 잔 다르크 위인전이 이제 막 한반도에 번역되고 소개되던 시기였다. 유 관순은 잔 다르크의 생애에 굉장히 영향을 받았고 자기도 저렇게 살고 싶다고 어린 나이에 결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포루투갈 파티마 성모 발현 사건

10대 소녀가 시골 깡촌에서 갑자기 무아지경을 경험하면서 누구누구 뭐시기로부터 신의 계시를 받고 인생이 바뀌었다는 게 비슷하다. 매우 비슷하지 않은가? 중세는 그렇다 치지만, 파티마 저 사건은 그래도 무려 1917년에 있었던 일이다.

저 때 예언이 세 가지가 계시되었다고 한다. 그 중 둘은 곧 공개됐는데, 마지막 예언은 당시 교황 성하께서 표정이 급변하면서 공개 불가 봉인 처리해 버렸다.
이 때문에 이게 온갖 세기말 음모론 떡밥으로 쓰였었다. 심지어 예언 내용을 공개하라고 떼 쓰는 테러 범죄도 저질러질 정도였다.

지난 2000년에 내용이 공개되긴 했지만 정말 막연하고 밍밍하고 별 의미 없는 메시지일 뿐이었다. 이게 어딜 봐서 그 시절에 무려 교황이 멘붕을 일으키면서 공개 불가 처리한 예언이란 건지?
일부 호사가들은 "이건 진짜 마지막 예언이 아니다~ 어딜 속여?"라고 반발했다. 이에 교황청에서는 이게 진짜 맞다고 공식 성명을 내며 반박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

덧..

(1) 잔 다르크에 대한 재판 심문 기록을 읽어보니 뭔가 챗GPT가 답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챗GPT로 신학 논쟁이 가능하게 학습을 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ㄲㄲㄲㄲ

(2) 노아의 아내의 이름이 '잔/요안나'라는 개드립이 있다. arc가 ark(방주)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상 캐스터 중엔 '오 요안나'가 있군.
잔 다르크라는 이름은 원래 '아르크 출신의 잔'이라는 뜻이다. 무슨 아르크 자체가 성인 게 아니다. '나사렛 예수', '막달라 마리아'와 비슷한 용례이며, 영화 테이큰에서 Marko from Tropoja도 비슷한 맥락이다.

(3) 지금은 노스트라다무스니, 파티마니, 에드가 케이시니.. 수많은 세기말 예언들이 다 빗나가고 무려 2023년에 도달해 있다. 저런 자극적인 계시보다는 요한계시록 같은 진짜 검증된 예언 계시에만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다들 아직 전혀 이뤄지지 않은 예언이어서 지금 당장 와닿지 않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국제 정세에 어설프게 끼워맞출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3/07/03 08:35 2023/07/0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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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숫자 자리수 잉여 구분자

21세기 들어서 프로그래밍 언어들에 알음알음 몰래 도입돼 들어간 요소 중 하나로는.. 숫자 자리수를 구분하는 잉여 구분자가 있다.

가령, Java는 _ 밑줄을 이 용도로 지원한다.
그래서 a = 1234567890이라고 쓸 것을 a = 12_3456_7890이라고 써도 되고, a = 1_234_567_890이라고 써도 된다. 소수점도 3.141_592_653 이렇게 쓸 수 있고, 0xFFFF_0000처럼 타 진법도 마찬가지이다.

C++에서는 참 흥미롭게도 '(어퍼스트로피)를 동일 용도로 지원한다. C++11에서인가 추가됐다고 한다. a=1'234'567;
_은 공백을 염두에 둔 기호인 반면, '는 콤마를 염두에 둔 기호라는 차이가 있다.

이런 구분자는 컴파일러의 입장에서는 있건 없건 토큰을 인식하는 데 아무 차이가 없다. 주석과 동급으로 전혀 필요하지 않은 잉여일 뿐이다.
단지, 사람 입장에서의 가독성을 위해서 이 구분자만은 예외로 컴파일러가 이물질이라고 토해내지 않고 무시 처리해 주는 것이다.

64비트 double 부동소수점이야 16비트 시절부터 존재했겠지만, 64비트 정수 리터럴은 쌍팔년도에는 거의 볼 수 없는 물건이었지 싶다. 이 정도로 큰 수는 10진법으로 나타내도 글자 수가 거의 20자에 달하게 된다. 그러니 필요할 때 인위로 자리수를 끊어서 표기할 수 있다면 코드의 가독성 차원에서 깨알같은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학술적인 의미가 있지 않고 사람이 값을 참조할 일이 없는 단순 난수표 같은 숫자 테이블이라면 굳이 자리수 구분해서 적을 필요가 없을 듯하다.

그러고 보니 C++에는 0b로 시작하는 2진법 리터럴 표기도 추가됐다. 얘는 아무래도 길이가 굉장히 길기 때문에 8자 단위로 '로 끊어서 표기하는 게 확실히 유용하겠다.
그에 비해 C 시절부터 존재했던 8진법 표기는 진짜 아무데서도 안 쓰이는 잉여가 된 것 같다. FTP 파일 권한 777 이런 것 말고 딴 데서는 도통 본 적이 없다.

참고로 C/C++에는 줄 바꿈 문자를 없애고 토큰을 한데 이어 주는 \ 역슬래시라는 강력한 기호가 있다.
C/C++은 태생적으로 줄 바꿈에 연연하지 않고 중괄호와 세미콜론으로 문장을 구분하기 때문에 \ 가 필요할 일이 그리 많지는 않다. 사실상 #define 매크로 함수를 여러 줄에 걸쳐 길게 선언하는 용도로만 쓰인다.
하지만 그 특성상,

int a=123\
456;
const char b[]="abc\
def";

이렇게 써 줘도 얘는 a=123456이라고 인식되며, b에는 "abcdef"가 들어간다. \는 컴파일러라기보다는 거의 전처리기 수준으로 소스 코드의 두 줄을 기계적으로 연결해 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걸로 심지어 // 주석조차 다음 줄까지 계속되게 만들 수 있으니 말 다 했다.;;
참고로, 주석은 컴파일러의 입장에서 whitespace 하나로 간주된다. 그렇기 때문에 100/*ㅋㅋㅋㅋ*/00은 100과 00을 분리시키며, 100'00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없다.

객체 지향, 제네릭/메타프로그래밍, 함수형 등 갖가지 패러다임들이 C++, C#, Java 등 메이저 언어들에 다 도입되면서 프로그래밍 언어들은 서로 비슷해지는 '수렴 진화' 중인 것 같다. 물론 자기 고유한 정체성을 상실할 정도로 완전히 똑같아지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5. 오타

현직 프로그래머 내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코딩을 한다고 해서 맨날천날 시간 복잡도, 공간 복잡도 따지고 다이나믹이니 그리디니 하는 신선놀음 같은 알고리즘 고민을 하는 게 아니다.

현실에서는 알고리즘이야 이미 만들어져 있고 잘 돌아가는 검증된 라이브러리나 오픈소스를 가져와서 쓰는 게 훨씬 더 많다.
자기가 새로운 코드를 만들어 내는 것보다 남이 만든 기존 코드를 읽고 유지보수 하고 버그를 잡는 비중이 훨씬 더 크다.
그리고 그 와중에 그나마 새로운 코드를 작성하는 게 있다면.. "뭔가 이름을 붙이는 것"의 비중이 매우 크다. 동사구이든 명사구이든..

그러니 프로그래머가 자기 조직이 마음에 안 들 때 아주 교묘하게 사보타주를 하고, 자기 후임을 엿먹이고 생산성을 저해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자기가 작성하는 각종 클래스, 함수 등의 이름에다가 고의로 오타를 교묘하게 집어넣는 것이다.
아주 간단하게 getUserAdress 라든가.. receiveIncommingMessage 따위.

...;; 프로그램이야 멀쩡하게 돌아가니까 그 당시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문제는 나중에 그 프로그램의 버그를 잡고 기능을 추가하는 등 유지보수를 할 때다.
대놓고 약어를 쓴 것도 아니고 원래 그대로 풀어 쓴 듯한 영단어가 미묘하게 스펠링이 여기저기 틀려 있으면..
나중에 "검색"이 안 되어서 미치고 펄쩍 뛰는 일이 야기된다.

이런 코드는 여러 사람을 거쳐 가며 작업을 하기 어려우며, 처음 짰던 사람이 아니면 구조를 쉽게 파악할 수 없게 된다.
도서관에서 책을 꺼냈다가 일련번호 순서가 아닌 아무데나 꽂아 넣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잘못 꽂힌 책은 없는 책과 같습니다)

진짜.. 개발 환경에서는 프로그래밍 언어 차원에서 코드의 문법 오류만 빨간줄을 치는 게 아니라, 명칭의 영어 스펠링 오류를 체크하는 것도 꽤 도움이 되지 싶다.

먼 옛날에 컴퓨터가 너무 비싼 물건이고 텍스트 에디터의 인터페이스가 불친절· 불편하고 디스크 공간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뭐든지 getpid() 이런 식으로 짧게 줄여 쓰는 게 관행이었다. PC통신 채팅이나 전보에서 '안냐쎄여' 등으로 필사적으로 줄이는 것의 코딩 버전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디스크 용량 걱정이 없어지고, 한번만 명칭을 정한 뒤부터는 에디터에서 긴 명칭을 자동 완성해 주는 기능이 매우 편리하게 발달하고(거의 90년대 말.. =_=), 또 소프트웨어의 규모가 왕창 방대해지고 공동 작업의 중요성이 커진 뒤부터는 GetProcessID() 이렇게 길게 풀어 쓰는 게 더 바람직한 관행으로 정착했다.
소스 코드가 자연어와 더 비슷해지고 길어지고 나니 스펠링 오류에 대한 취약성도 더 커진 셈이다.

6. 함수 안에 함수, 클래스 안에 클래스

파스칼 내지 Ada 같은 옛날 구시대 언어 중에서는 함수 안에 함수를 만드는 걸 지원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에 비해 C는 함수 호출 구조를 단순화시키느라 그런 걸 제공하지 않았다. 한 함수 안에서만 잠깐 쓰이는 코드 반복 패턴을 표현하려면 그냥 매크로 함수를 쓰라는 취지였던 듯하지만.. 이건 막 깔끔한 해결책은 못 됐다.

오늘날은 함수형 프로그래밍이 도입되면서 람다 덕분에 함수 안에 함수를 넣는 게 '사실상' 가능해졌다. 다만, 예전에 생각했던 그런 문법이 아니라, 함수 몸체를 지역변수에다 대입하는 굉장히 이색적인 형태로 가능해졌다는 게 신기한 점이다.

함수와 달리, 클래스는 원래부터 자기 내부에 클래스를 또 가질 수 있다. 그래서 C++은 C와 달리 계층적인 다단계 scope을 구현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이거 표현을 간소화하기 위해 using이라는 키워드도 도입됐다.

함수건 클래스건.. (1) 내부에 안겨 있는 녀석의 명칭은.. 걔를 품고 있는 outer의 문맥에서만 유효하고 거기서만 접근 가능하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다.
그런데 안겨 있는 녀석은.. (2) 반대로 자기를 안고 있는 outer의 멤버(클래스의 경우)나 변수(함수의 경우)에 접근 가능해야 한다.

C/C++은 (2)를 지원하는 것이 미흡하고 인색했다. 그래서 C 시절부터 함수 안에 함수 같은 건 골치 아프니 지원하지 않았으며, 클래스 안의 클래스도 바깥 클래스의 인스턴스 멤버로 접근을 지원하지 않았다. Java로 치면 static class밖에 지원하지 않은 것과 같다.
C/C++은 포인터를 그렇게도 좋아하는 언어인데, 저것들은 정수 하나짜리 날포인터만으로 구현할 수 없는 개념이어서 지원을 안 한 것이지 싶다.

static 함수야 클래스에만 소속됐지, 클래스의 각 인스턴스에 매여 있지는 않아서 this 포인터가 존재하지 않는 함수이다(0). 사실상 전역 함수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this는 메모리 주소 딱 1개만 가리키는 포인터이지만.. 하지만 객체지향을 제대로 구현하려면 this의 크기가 한 칸만으로 충분하다는 고정관념을 깨야 할 것 같다. inner class라든가 다중 상속은 이런 문제를 훨씬 더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긴, 그래서 Java에서는 C++에 없는 Outer o = (new Inner()).new Outer(); 이런 코드가 가능하다. C++에서는 new 연산자를 오버로딩 하더라도 무조건 static 형태만 되는데, Outer는 this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Inner까지 사실상 두 파트로 구성되는 셈이다.
이게 가능하니 C++ 같았으면 다중 상속을 해야 했을 것도 저렇게 퉁치고, 프로그래밍을 더 작은 객체 단위로 깔끔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클래스는 그렇다 치고.. 함수가 outer의 변수에 접근하는 건 요즘 C++도 '캡처'라는 기능으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클로저'라고 부르는 개념이었지 싶은데 말이다. 이건 프로그래머/사용자의 관점에서는 아주 편리한 기능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역시 함수 실행 문맥을 가리키는 포인터를 집어넣고 어쩌구 하면서 꽤 힘든 과정을 거쳐서 구현된다.

Posted by 사무엘

2023/06/30 08:35 2023/06/3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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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이 C보다 편리한 결정적인 요인

C++은 템플릿, 람다 등 온갖 다양한 프로그래밍 패러다임이 추가되어 C보다 훨씬 더 방대하고 복잡한 언어가 되어 있다.
그러나 C++은 맨 처음에 객체지향 언어로 시작했기 때문에 C와의 근본적인 차이는 아무래도 이와 관련된 것들이다.
본인은 C++이 C에 비해서 더 편리하고 간결하게 코딩할 수 있고 사람의 실수를 줄여 주는 제일 강력하고 중요한 요소는 다음 세 가지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1) 클래스 멤버 함수 안에서 this 포인터를 생략하고 바로 자기 멤버를 참조해도 된다.
즉, C의 함수와 비교했을 때, 복잡한 구조체의 포인터인 첫째 인자는 생략 가능하다는 뜻이다. 매번 obj->member 할 필요 없이 바로 member를 쓰면 된다.

(2) 어떤 객체 변수를 선언해 주면(지역/전역) 생성자와 소멸자를 호출하는 코드가 앞뒤에 자동으로 삽입된다.
함수나 블록의 실행이 중간에 끝나더라도(return, break) 메모리를 해제하거나 파일을 닫는 코드를 거치게 하려고 지저분한 goto문을 쓰지 않아도 된다. 예외를 던질 때에도 소멸자 처리가 자동으로 된다는 건 longjmp 따위로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엄청난 축복이다.

(3) 상속이라는 걸 자동으로 제공하고, 포인터 형변환 때의 상위· 하위 상속 관계를 자동으로 맞게 판단해 준다.
파생에서 기반으로 가는 건 괜찮지만, 기반에서 파생으로 가는 건 바로 안 되고 최소한 static_cast라도 해 줘야 된다.
그에 비해 C언어는 void*냐 그렇지 않느냐 하나만 판단하고, void*가 아닌 다른 모든 타입의 포인터들은 서로 남남인 타입일 뿐이다.

2. C++과 Java의 enum class

컴퓨터 프로그램에서는 숫자가 산술 연산의 대상인 수가 아니라 그냥 이산적인 식별 번호로 취급되고, 각각의 값이 서로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프로그래밍 언어에서는 범용적인 정수형뿐만 아니라 sub-range 내지 열거형이란 걸 제공하곤 한다.

sub-range는 파스칼이나 Ada 같은 옛날 언어 유행으로 끝나는 분위기이고, 요즘 대세는 열거형이다.
C언어는 열거형이란 게 있긴 했지만 모종의 이유로 인해 매크로 상수가 훨씬 더 많이 쓰였다. 하긴, 그쪽은 참/거짓 bool 형조차 없었고 그냥 다 int로 퉁쳐서 썼을 정도로 int 만능 덕후 성향이 좀 있었다. =_=

C++에서는 C++11 버전부터 enum class라는 것이 도입됐다. (1) scope을 반드시 지정해 줘야 하고, (2) 정수형으로 암시적으로 형변환이 되지 않아서 type-safety가 강화되니 굉장히 적절한 변화인 것 같다.
즉, 평범한 enum이라면 int를 받는 아무 곳에서나 ENUM_VALUE라고만 써도 됐을 텐데, enum class라면 반드시 static_cast<int>( EnumClass::ENUM_VALUE ) 라고 길게 지정해 줘야 하게 된 것이다. type safety가 강화되었다.

Java에도 enum이 있긴 하지만, 후대인 Java 5에서 추가로 도입된 물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도 상수 명칭을 선언하는 용도로는 재래식 static final int 뭉치가 더 많이 통용돼 왔다.
같이 도입된 건지 또 나중에 추가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Java에도 enum class라는 게 존재한다. 그런데 이건 C++과는 관점이 전혀 다른 재미있는 물건이다.

public enum Planet {
    MERCURY (3.303e+23, 2.4397e6),
    VENUS   (4.869e+24, 6.0518e6),
    EARTH   (5.976e+24, 6.37814e6),
    MARS    (6.421e+23, 3.3972e6),
    JUPITER (1.9e+27,   7.1492e7),
    SATURN  (5.688e+26, 6.0268e7),
    URANUS  (8.686e+25, 2.5559e7),
    NEPTUNE (1.024e+26, 2.4746e7);

    private final double mass;   // in kilograms
    private final double radius; // in meters
    Planet(double mass, double radius) {
        this.mass = mass;
        this.radius = radius;
    }
   (... 이후 생략)
}

이렇게, enum {} 내부에는 명칭들을 쭈욱 쓴 뒤, 세미콜론을 찍으면 명칭 나열을 종결할 수 있다.
그 뒤, 다음부터는 클래스를 선언하는 것처럼 public이니 private니 어쩌구 하면서 멤버 함수와 멤버 변수를 쓰면 얘는 enum의 탈을 쓴 평범한 클래스가 된다.

허나, 이 enum 클래스는 new 연산자를 사용해서 임의의 인스턴스를 만들 수 없다. 이 enum의 인스턴스는 저 명칭으로 선언된 녀석들만이 허용된다. 그래서 enum 명칭을 선언과 동시에 저렇게 생성자 함수에다 전할 인자를 ()로 지정할 수 있다. 우와~~~

즉, 일반적으로 enum 명칭들은 0 1 2 3  같은 숫자의 alias에 불과한 반면, enum class는 각각의 명칭들이 이 클래스의 붙박이 인스턴스가 된다는 것이다.
enum은 상수를 나타내는 만큼, enum 클래스는 멤버들도 다들 final로 선언해서 실행 중에 값이 변경되지 않는 속성을 지정하게 하는 편이다.

enum 명칭이 하나밖에 없으면..?? 얘는 자연스럽게 이 클래스의 싱글턴/단일체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Java의 enum class는 싱글턴을 만드는 정석 디자인으로 통용되기도 한다.
생성자를 private로 감추는 등 별별 쑈를 해도 serialize나 reflect 같은 꼼수를 통해 싱글턴 객체를 여러 개 만드는 게 가능한 반면, enum class는 언어 차원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게 보증된다.

정말 신기한 용법이다. C++의 enum class는 클래스처럼 취급되는 enum이지만, Java의 enum class는 enum처럼 생긴 클래스라고 볼 수 있겠다.

3. 이름이 붙지 않은 일회용 함수/클래스

2000년대 이후부터는 C++, C#, Java 같은 주류 프로그래밍 언어에 객체지향뿐만 아니라 함수형이라는 패러다임이 도입되었다. 덕분에 중괄호 {}로 둘러싸인 코드를 통째로 변수에 대입한다거나, 심지어 함수의 인자로 일회용으로 익명으로 전하는 게 가능해졌다. 인자를 받아서 리턴값을 주는 코드의 묶음이지만 굳이 함수의 형태로 선언· 정의하고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클래스까지 이렇게 간편하게 선언해서 그 인스턴스를 넘겨줄 수 있다.
Java에서 무슨 이벤트에 대한 handler나 listener를 인자로 넘겨줄 때, new XXXX { } 이러면서 객체 선언과 새 파생 클래스 선언과 주요 함수 오버라이딩을 한번에 하는 것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름 없는 함수나 이름 없는 클래스는 태생적으로 이름이 필요한 요소를 언어의 문법 차원에서 구현할 수 없다.
람다 함수는 자기 자신을 호출하는 재귀호출을 구현할 수 없다.
그리고 이름 없는 클래스는.. 정말 웃기게도 컴파일러가 기본 생성해 주는 것 말고 자신의 독자적인 생성자와 소멸자를 가질 수 없다. =_=;; 흠..

C++은 Java처럼 저렇게 함수 인자에서 새 파생 클래스를 즉석에서 만드는 것까지 지원하지는 않지만.. 새 클래스를 선언할 때 이름을 생략할 수 있다. 이건 반대로 Java에서 지원하지 않는 문법이다.
이름 없는 클래스나 함수를 만드는 게 가능하니 이름에 의존하지 않고 생성자· 소멸자나 함수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방법이 있긴 해야 할 텐데.. 이건 그냥 언어 차원에서의 한계로 남겨 두려는가 보다.

참고로 C++은 이름 없는 namespace라는 것도 지원해서 얘는 C의 static의 상위 호환으로 간주하고 있다. 즉, 이 영역에 선언되는 함수나 변수는 다른 번역 단위에서는 인식되지 않는 private한 물건이 된다.
그 밖에 이름 없는 구조체· 공용체도 있는데, 개인적인 생각은 오프셋 보정을 위해 크기(자리)만 차지하는 용도이고 실제로 쓰이지는 않는 멤버에 대해서도 이름을 생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3/06/27 08:35 2023/06/2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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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화천의 계곡들

이튿날 아침이 밝았다. 6~7시쯤부터 이미 햇볕 열기가 느껴지고 추위가 풀리는 듯했다.
여기는 밤과 새벽에는 어제의 한탄강 주변보다 더 추웠고, 아침에는 거기보다 더 빨리 따뜻해진 것 같았다.
이 좋은 곳에서 더 오래 머물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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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댐 주변은 경치가 정말 멋지긴 한데, 7년 전에 가 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특별히 사진을 더 찍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 한적한 화천-양구 일대에서 월요일 평일 아침을 맞이하다니.. 이 기분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평화의 댐은 국가 기간 시설인 댐, 그것도 위험한 최전방에 있는 댐인 관계로, 주변 아무 데서나 호락호락 캠핑을 할 수는 없댄다. 아래의 강 주변에 오토캠핑장 정도나 있고, 여기에는 사람들이 여럿 이미 캠핑 중이었다.
본인은 거기를 지나서 더 북쪽으로 더 가 봤는데.. 여기서 그만 지상락원을 발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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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천미 계곡이다. 행정구역 상으로는 양구라고 한다. 예전에는 민통선 안에 있었는데 피서 관광 수요 때문에 민통선이 더 북으로 물러나는 걸로 개정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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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처럼 맑고 시원한 물, 아니 시원하다 못해 차가운 물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제일 깊은 웅덩이에는 물이 가슴 정도까지 찼다. 바닥은 진흙이 아니라 깔끔한 자갈이었다.
나름 자동차로 접근하기 좋고, 주변에 깔끔한 화장실도 있어서 1박 정도 하기에도 좋았다.

난 여기서 물놀이를 하고 그늘에서 좀 쉬면서 2시간 정도 머물렀다. 여기에 있으니 정말 행복했다.
그러고 보니 '두타연'이라는 곳이 그렇게도 유명하다는데, 그건 여기보다도 동쪽으로 한참을 더 가야 나오는 듯하다. 난 거기까지는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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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다음으로는 서남쪽으로 화천과 춘천 사이에 있는 사창리 마을로 향했다. 거기로 가는 길도 북한강을 따라 호수도 나오면서 경치가 아주 아름다웠다.
7년 전에 지나쳤던 화천댐을 다시 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동쪽 파로호 쪽이 아니라 서쪽으로 갔다.
강변 도로를 벗어난 뒤엔 철원-화천-양구 못지않게 굽고 가파른 산길이 이어져서 운전이 아주 재미있었다(국도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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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창리에 도착해서는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고 인터넷을 확인하고 노트북을 충전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은 음식과 취사 도구를 잔뜩 챙겨서 캠핑지에서 밥을 해 먹는데, 나는 그러지 않고 오지 캠핑지에서는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잠만 잤다. 먹고 마시는 보급은 마을에서 한다. ^^

벌써 셋째 날 오후가 됐으니 이제는 포천· 서울 방면으로 발길을 돌렸다(지방도 372).
내비 지도에 나와 있지도 않은 작은 개울이 길 옆으로 계속 지났는데, 아니나다를까 광덕 계곡이라는 게 있었다. 여기도 맑고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고 천미 계곡 만만찮게 환상적인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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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난 이런 걸 보면 정말 환장한다. ^^ 지상락원 2인 듯..
내려가서 접근하기가 좀 빡셌지만, 난 그런 건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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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도 당장 내려가서 물놀이를 하고, 바위에 앉아서 컴퓨터 작업을 하며 좀 쉬었다. 아무도 없는 계곡에서 자연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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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 계곡을 지난 뒤에도 계곡 내지 개울물이 길을 따라 계속 이어졌다. 나중에는 백운 계곡이라는 곳도 지났는데, 여기서는 물놀이를 하지는 않고 구경만 하고 넘어갔다. 여기는 주변에 식당도 이미 많이 들어서 있어서 자연을 즐긴다는 느낌이 훨씬 덜 났다.

이렇게 계곡 구경을 실컷 한 뒤, 포천으로 가는 국도 47에서 오랜만에 속도를 냈다. 시속 80 이상을 밟아 보고 신호 대기와 도로 정체를 보는 게 참 오랜만인 것 같았다. 철원이나 화천에 비하면 서울과 많이 가까워졌지만 그래도 집에서 여전히 60km 이상 떨어져 있었다.
5시 반쯤엔 길가의 중국집에서 밥을 사 먹었다. 그러고 보니 이게 오늘의 최초이자 유일한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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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보니 포천천이라는 강이 있었다. 차를 세울 수 있고 한적하고 강가에 접근도 어렵지 않아 보이니, 오늘 밤엔 여기서 텐트를 쳤다. 아침에 봤던 맑은 계곡에 비하면 수질이 아쉽지만, 이렇게 외박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해가 지자마자 좀 일찍 잠들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새벽 1시쯤에 눈을 떴다. 텐트를 철거하고 차로 돌아와서 곧장 서울로 귀환했다. 구리-포천 고속도로(29)에서 시속 150 가까이 밟으며 잘 달렸다.

이상이다. 이렇게 중북부 전방 지상락원 여행을 잘 마쳤다.
지난 2021년과 2022년은 우한 괴질 창궐과 몇몇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여름에 장거리 여행을 못 했다. 그냥 양평이나 영종도 정도나 다녀오고 말았는데..
이제 올해는 장거리 여행을 가고 그것도 몇 차례에 나눠서 갈 생각이다. 올 7~8월 사이엔 몇 년 동안 못 갔던 강원도 동해 바다에 다시 가 보련다.

계곡이 너무 아름다워서 은퇴하고 나서는 화천으로 이사 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진지하게 들었다.;; 여기서 호박 농사 짓고 애완용 멧돼지도 키우는 걸로.. ^^

Posted by 사무엘

2023/06/24 08:35 2023/06/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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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았다 뜨니 이튿날 새벽 5시 반이었다. 텐트에서 잘 자긴 했는데, 이 시간엔 날씨가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쌀쌀했다.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난 침낭을 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텐트 밖으로 나가니 지금이 무슨 10~11월은 된 것 같았다. 그나마 텐트 안은 바깥보다 훨씬 더 따뜻해서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지낼 만했다. 극과 극인 일교차를 다시 실감했고, 시원한 여기까지 찾아간 보람을 느꼈다.

철원에는 한킹을 사용하는 말보회 계열 지역교회가 있더라. 일요일이니 본인은 거기 가서 예배에 참석했다.
언뜻 본 기억으로 온 사람이 20여 명 정도 온 것 같았다. 이 시골에 이런 마이너한 교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목사님 부부를 포함해 교회 사람들이 본인을 아주 반갑게 환영하고 맞이해 주셨다. 목사님 부부는 평일에는 다른 생업이 있으신 듯했으며.. 사모님이 아주 당차고 믿음이 굳건하신 것 같았다. 그리고 아들이 아니라 딸이 있어서 예배 때 플루트를 부는 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교회에서 오전· 오후 예배에 참석하고 점심을 먹고 노트북 배터리도 든든히 충전했다.
여기 근처에 박 정희 대통령의 군 전역 기념 공원(현재 명칭은 군탄 공원)이 있다고 해서 잠시 들른 뒤, 다음으로 동북쪽 화천 방면으로 길을 떠났다(국도 5). "본인과 같은 불운한 군인이 다시는 없기를 바랍니다" 이 유명한 말을 한 곳이 여기였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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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은 이렇게 생겼고 넓은 풀밭이 잘 꾸며져 있었다. 국도 43호선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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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쪽 구석에 이렇게 박 정희 대통령을 기리는 조형물--동상, 기념비, 친필 석판--들이 세워져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박 정희 기념관 방문 같은 체험을 하고 가는구나. ^^.

(그나저나 박 정희도 그렇고 나중에 전 두환도 그렇고.. 이 사람들은 현역 시절에 유의미하게 복무한 계급은 투스타 소장이다. 중장은 몇 달 정도만 달고 있다가 대장으로 진급하고, 그러고 나서 거의 직후에 전역했다. 그래서 최종 계급은 다들 포스타인데..
장군 계급장이 무슨 병 작대기 계급장도 아니고 뭐냐..;; 전역하는 달 내지 당일에 병장 달아 주고 전역시키는 것 같은 느낌이다. -_-;; )

3. 철원-화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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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탄 공원을 둘러본 뒤, 본인은 국도 43호선을 타고 북쪽 끝까지 이동했다. 길은 저렇게 전형적인 좁은 시골길 모양이었다.
9년 전에는 제일 동쪽 끝까지 갔던 게 전선 휴게소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보다 더 동쪽이다.

그런데 국도 43에서 국도 5로 갈아타는 길목이 민통선으로 막혔고 더 진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남쪽으로 도로 후퇴해서 국도 56을 타고 막힌 구간을 우회한 다음에야 국도 5의 화천 방면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이 부분에서 예기치 못한 삽질을 좀 했다.
서쪽의 지방도 464도 일부 구간이 민통선으로 막혀 있는데.. 여기도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이걸로도 모자라서 철원과 화천을 왕래하는 국도 5호선 산길도 통째로 다 민통선 안이다.
하지만 여기는 외지인은 자기 연락처를 알려준 뒤, 임시 통행증을 받아서 단순 통과 정도는 할 수 있었다. 30분 안으로 건너편 초소에 도달해서 통행증을 반납하란다. ㄲㄲㄲ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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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말로만 들었던 근남면 마현리 마을이 바로 이 민통선 안에 있더라. 아아..

"그대들은 알아야 한다.
조국 강산의 가장 중심된 이 농토가 누구의 피땀으로 가꾸어졌는가를.
울진에서 발생한 태풍 사라의 수재민 66세대가 1960년 4월 7일 (4 19 의거 직전이었군!! 인생 한번 참 타이밍..)
이 땅에 입주하여 고달픈 천막 생활과 허기진 배를 주리며
피땀으로 얼룩진 괭이와 호미로 6· 25 동란 이후 버려졌던 황무지를 옥토로 가꿨던 것이다"

저 때는 울진이 강원도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강원도지사의 재량으로 철원 이주가 가능했다.

그랬는데, 일단 저기 가면 지원 많이 해 주겠다는 약속이 정권이 바뀌면서 전부 나가리 났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고 입주했던 첫 세대들이 새 되고 피똥 싸는 고생을 했다고 한다.
이건 기념비 옆에 선 내 모습 사진도 남기고 싶었으나, 동승자도 없고 주변에 다른 사람도 없어서 그러지 못했다.

기념비의 뒤에는 실제 입주했던 66세대의 세대주 명단이 새겨져 있었다.
경부 고속도로 건설 순직자 위령탑도 뒤를 보면 순직자 77인의 명단이 새겨져 있는데, 이와 같은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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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안은 이렇게 생겼더라. 마현 초등학교라는 학교가 있기도 했으나, 이건 이미 15년도 더 전에 폐교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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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으로 산을 타기 시작했는데.. 오오, 금성 지구 전투 전적비가 있었다. 저거 6 25 사변 중 최후의 고지전 전투가 아니었던가? (중공은 오늘날까지도 이 전투에서 국군과 UN군을 꺾은 걸 대대적으로 자랑하고 선전한다)

잠깐 차에서 내려서 돌아다니고 사진을 찍었다.
옆에 웬 탱크도 하나 전시돼 있어서 둘러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왔다.

"차량 번호 oooo 운전자 김 용묵 선생님이시죠?" / "네 그렇습니다" (왜??? 차 빼달라는 연락도 아니고 뭐지??)
"xx시 xx분경에 yyy초소를 통과하시고 지금 전차 옆에 서 계시죠?" (헉 뭐야)
"CCTV로 보고 말씀드리는 건데요. 정차하고 차에서 내리시면 안 돼서 연락드립니다"
(으악) "아.. 전적비가 하나 있어서 구경 좀 하고 있었는데.. ㅠㅠㅠ 네 알겠습니다."

웬 또랑또랑한 여자 목소리로 이런 얘기가.. 게다가 유선 전화도 아니고 010 개인 핸드폰 번호이던데 말이다.
너무 놀라서 탱크 사진은 찍지도 못하고 허겁지겁 차로 돌아갔다. ㄷㄷㄷㄷㄷ
작년쯤에 버스 정류장 안에서 마스크 써 달라는 방송을 듣고 화들짝 놀랐던 거 이래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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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저 전적비의 근처에는 이렇게 순직 군장병 위령비? 추모비가 있었다.
지난 1996년 7월 26~27일 사이에 여기 일대엔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고, 특히 산사태가 병영을 덮쳤던가 보다. 이 때문에 군인이 23명이나 순직했다고 한다. 병뿐만 아니라 간부도 여럿 희생됐다.
직장 사람 중에 공교롭게도 그때 저 지역에서 군복무를 해서 저 사고를 어깨 너머로 직접 들은 사람도 있었다.;;

이 추모비는 저 전화가 오기 전에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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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을 겪은 뒤, 5시 반쯤에 화천의 산양리 마을에 도착했다.
그 전에 마현리가 너무 길게 계속되는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철원 근남면 마현리와 화천 상서면 마현리가 서로 인접해 있다고 한다. ㄲㄲㄲㄲㄲ

동서울 터미널에서 행선지 이름으로만 봤던 '산양리'를 실제로 구경하다니!!
주변엔 식당, 편의점, PC방과 버스 터미널이 있어서 나도 캠핑을 앞두고 음료수와 간식을 샀다. 일요일 저녁이다 보니 휴가 마치고 복귀하는 듯한 군인들이 아주 많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여기는 곳곳에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이 있어서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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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더 동쪽으로 가려면 지방도 460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그러려면 남쪽의 읍내까지 가야 했다. 읍내에는 북한강이 거의 중랑천과 비슷한 강폭으로 흐르고 있어서 경치가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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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화천과 양구 사이의 가파르고 꼬불꼬불한 산길.. 그 이름도 유명한 지방도 460에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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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과 긴 터널을 지나서 한참을 달린 뒤에야 7년 전에 들른 적이 있는 '해산 전망대' 공터에 도착했다. 차를 세우고 한구석에 텐트를 치니 시간은 7시 반이 넘어 있었다.
산 속에서 해가 지니 조용하고 적막하고 으스스한 데다 쌀쌀하고 춥기까지 했다. 하지만 텐트 안은 바깥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포근하고 아늑했다.

이 뜻깊은 장소에서 캠핑을 하게 되니 너무 행복했다. 텐트로도 모자라서 침낭까지 뒤집어쓰고 눕는 이 편안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물가와는 달리 여기는 차와 텐트가 가깝고, 이동할 때 수직 이동이 없어서 더 좋았다.

Posted by 사무엘

2023/06/21 08:35 2023/06/2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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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는 말

본인은 지난 4월 말에 경기도 광주 일대를 다녀온 뒤, 이 달(6월) 초엔 우리나라 중북부 전방 지역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6일 현충일이 화요일이어서 징검다리 연휴가 있었는데, 마침 직장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사람은 전날 월요일에도 자기 연차를 써서 다들 쉬라고 사실상 전사 휴무 조치를 내렸다.

이에 본인은 날개셋 한글 입력기 새 버전이 나온 것도 기념할 겸, 6월 3일 토요일 아침에 집을 출발했다. 가평-춘천-철원-화천-포천의 순으로 동선을 짜서 6월 6일 현충일 아침에 집에 돌아왔다.

원래는 이번 여행에서 연천을 답사하고 싶었다. 태풍 전망대와 함께 횡산리 민통선 마을을 구경하고, 상승 전망대와 함께 제1 땅굴 관련 전시물을 관람하려 했으나.. 저기는 방문하는 게 좀 므흣해 보였다.
단체 안보 관광 패키지가 있지도 않으면서 동승자가 전혀 없는 1인 단독 방문은 번거로워서 그런지 (사실상) 받아들이지 않는댔다. 그래서 지금 내 처지로는 방문하기가 좀 난감해서 이번에는 보류하게 됐다.

이번 여행에서는 서쪽 연천 방향 대신, 동쪽 양구 방향으로 더 다녀왔다. 그런데 이것도 괜찮은 선택이었다.
2016년 강원도 여행과 약간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그건 벌써 7년이나 전 일이고 저기는 얼마든지 다시 가 볼 가치가 있었다.
사실, 철원에도 지난 2014년에 가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건 무려 9년 전 일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때와 전혀 겹치지 않는 곳만 들렀다. 이런 식으로 이번 여행은 예전의 여행을 많이 보완하면서 더 즐거운 추억을 내게 남겼다.

1. 가평 남이섬 + 춘천 시내

2010년 직장 워크숍 이후 13년 만에 남이섬에 다시 가 봤다. (그때는 경춘선 전철조차 아직 없던 옛날이었..)
개인적으로는 남양주를 넘어 가평과 춘천까지 열차가 아니라 자가용 운전으로 가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고속도로(60) 대신 수석-호평 고속화도로, 국도 46 등 다양한 도로를 타면서 갔다. 이른 아침부터 차가 생각보다 아주 많고 길도 좀 막힌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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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 주변의 북한강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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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중앙의 메타세콰이어길과 꼬마열차 철길밖에 본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섬 가장자리를 한 바퀴 돌고 중앙의 숲과 풀밭까지 다시 돌아다니면서 모든 구역을 꼼꼼히 살펴봤다. 쉬는 시간을 포함해서 2시간 반이 걸렸으니 오전 시간 전체를 여기서 보냈다.
남이섬은 둘레가 4~5km, 면적은 0.46제곱km에 달한댄다. 0.3제곱km 남짓인 마라도보다도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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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날씨가 너무 좋았다. 하늘이 맑고 파랗고, 더워도 딱 적당하게 기분 좋게 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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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컸다. 숲길, 풀밭, 흙길 등 여러 주제별로 생태 공원을 아주 잘 꾸며 놓아 있었다. 중앙에는 물론 카페와 공연장도 있어서 도떼기시장 같은 곳도 있다.
직접 이용하지는 않았지만 이동 수단도 꼬마열차뿐만 아니라 짚라인, 공중 레일바이크, 자전거, 전기차로 정말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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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왓, 이런 것도 예전부터 하고 있었나? 한쪽 구석에다가는 숙박업까지 시작했는지 아예 투숙객이 하룻밤 자고 가는 용도인 팬션과 호텔 객실도 지어져 있었다. 언젠가 나중에 나도 이용해 보고 싶다. =_=;;
아니면 돗자리 정도라도 가져갔으면 유용하게 썼을 텐데.. 옛날 기억이 너무 오래돼서 섬을 실제 크기보다 너무 작게 생각했던 게 실수였다.

아침 9시 무렵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섬이 아주 한산한 편이었다.
그러나 11시쯤 되자 사람이 급격히 늘었다. 본인이 퇴장할 때쯤엔 관광객이 수백 명씩 꾸역꾸역 들어오고 있었으며, 주차장은 관광버스들로 꽉 차 있었다. 역시 아침에 좀 일찍 출발했더니 이후의 모든 일정이 더 순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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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이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닭갈비가 그렇게 유명해졌나 모르겠다. 마치 마라도가 짜장면이 유명해진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데 말이다. =_=;;
남이섬에서 춘천 시내로 들어가는 길도 일일이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바깥 경치가 대단히 좋았다. 산과 강, 호수, 댐이 가득했고 길도 고가 교량 아니면 오르막 내리막 언덕 형태였다.

닭갈비는 다 똑같은 닭갈비인 것 같은데 유명 맛집은 그래도 뭐가 다른 것 같았다. 정규 식사 시간을 훌쩍 넘긴 오후 2~3시에도 주차장에 차들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예약 대기가 넘쳐났다. 이 식당은 낮 시간대 브레이크 타임이라는 게 없겠구나 싶었다.

뜬금없는 얘기이다만, "토평 IC"라는 표지판을 보니까 자꾸 토익 TOEIC이 떠오른다. 이것도 강박관념인가? -_-;;;
그리고 춘천이 호반의 도시가 아니라 호박의 도시라고 기억됐으면 좋겠다. ㅋㅋㅋㅋㅋㅋㅋ

2. 철원에서

이렇게 가평· 춘천을 찍은 뒤, 서북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철원으로 향했다. 포천을 거쳐서 철원으로 가는 길(국도 37, 43)은 큰 특징 없이 평범한 4차선 국도 위주였다.
저녁 5시쯤엔 포천 영중면의 38선 휴게소라는 곳에 도착해서 여기 풀밭에서 돗자리를 깔고 쉬고, 가져온 간식을 좀 먹었다.

그 뒤 날이 슬슬 저물어 가는 시간대에 철원의 남부 지역에 도착했다. 지도를 보고 근처에 한탄강이 지나는 곳을 무작정 찾아서 서쪽으로 갔는데, 교량 아래로 아주 멋진 낚시터 겸 캠핑용 공터가 있었다. 이미 낚시 중이거나 텐트를 친 사람도 몇몇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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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은 정말 시원스럽게 많이 흐르고 있고 유속이 빨랐다. 모든 것이 좋았지만 물이 흐리고 탁하고 별로 맑지 않았다. 이 때문에 물놀이는 못 하고 그냥 텐트 치고 물을 구경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돌아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한탄강을 제대로 즐기려면 동송읍 방면으로 최소한 고석정 정도 되는 상류를 찾아갔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의 동선은 그쪽이 아니다 보니 그리로 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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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하루 종일 돌아다닌 것 때문에 피곤했는지 금세 잠들었다. 사실, 철원으로 가던 중에도 운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졸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텐트 안도 많이 더웠지만 밤 11시가 넘어가니 이제 창문을 닫아야 할 정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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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이런 폭포 비스무리한 것도 있던데..^^
이렇게 첫째 날엔 그 유명한 철원 한탄강 부근에서 숙박을 했다. 좀 더 북쪽 상류로 가서 고석정 근처에서 캠핑을 했으면 경치가 더 좋았을 것 같긴 한데.. 그건 좀 아쉽다.

Posted by 사무엘

2023/06/18 08:35 2023/06/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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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합성

대변은 소변과 달리 생물학적 의미에서의 배설물이 아니라는 건.. 뭐 초· 중학교 수준의 상식이다.
그 뒤 생물에 대해서 공부를 쪼금 더 하면.. 동물이 아닌 식물에 대해서도 직관적이지 않은 의외의 사실을 하나 배우게 된다.

식물이 광합성을 해서 이산화탄소(+ 빛, 물)를 흡입하고 산소와 양분을 만들기는 하는데,
그 산소 O2는 이산화탄소 CO2를 구성하던 산소가 아니라는 거. 물을 구성하던 산소이다.

길바닥에 채일 정도로 널리고 흔해 빠진 잉여 잡초라 할지라도, 초록색 잎이 달린 놈들은 기본적으로 저런 작용을 하는 최첨단 생체 기계이다. 물과 공기(이산화탄소)와 햇볕만으로 산소와 포도당을 만들어 주는 생체 기계가 없다면,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은 당연히 생존할 수가 없다.
물론 잡초는 그 생산량 규모가 거의 자가생존이나 가능한 정도이고, 농작물 대비 극히 보잘것없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식물의 잎이 누렇게 시드는 건 그 첨단 생체 기계가 녹슬고 고장 나서 광합성을 못 하게 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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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합성은 명반응과 암반응이라고 나름 프론트 엔드와 백 엔드의 구분까지 있다. 프론트 엔드에서 물과 빛이 쓰이고(산소 생성), 백 엔드에서 이산화탄소가 동원된다(포도당.. 탄소 고정!). 백 엔드가 수행되기 위해서는 프론트 엔드의 결과물(ATP, NADPH)이 필요하다.

암반응의 구체적인 원리는 무려 20세기가 돼서야 규명됐고, 특별히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신학의 칼빈주의...가 아니고 '칼빈 회로'라고 불린다.
글쎄, 휘발유 엔진과 디젤 엔진 중에서 디젤만이 사람 이름이 붙어 있는 것처럼.. 광합성은 프론트와 백 중에서 백 엔드에 대해서만 사람 이름이 붙은 것 같다. 열기관 쪽에서는 '카르노 순환'이라는 개념이 있기도 한데.. 순환이건 회로건 영어로는 똑같이 cycle이다.

암반응 원리를 규명한 멜빈 캘빈은 그 공로로 1961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참고로 바로 이듬해 1962년에 왓슨과 크릭이 노벨 생리학상을 받았다는 걸 생각해 보자. DNA 구조 발견하고서 10여 년 만의 일이다.

통상적으로는 물을 전기 분해하기 위해 드는 에너지가, 그 부산물로 나온 수소가 내는 에너지보다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수소는 그냥 천연가스처럼 석유를 캐면서 덤으로 얻는 지경이며, 수소 연료전지는 진정한 의미에서 화석연료를 탈피했다고 보기도 민망하다. (종이 빨대가 친환경적인 것만큼이나??ㄲㄲ)

그런데 식물은 물을 증발만 시키는 게 아니라 '광분해'를 통해 어째 아예 분자 차원에서 산소-수소로 분해까지 시키는지? 참 신기한 일이다. 물론 스케일이 다르기 때문에 그 메커니즘을 기계의 동력원으로 바로 적용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탄소 고정은 광합성 암반응을 통해 녹색 식물이 보편적으로 행한다. 그러나 질소 고정은 아무 식물이나 못 하기 때문에 식물도 생장을 위해 일부 특수한 박테리아나 비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내가 학창 시절에 지리 역사를 얼마나 싫어했는데 뒤늦게 관심이 생긴 건 철도 때문이다.
내가 학창 시절에 생물을 얼마나 싫어했는데.. >_< 뒤늦게 관심이 생긴 건 호박 때문이다. ^^

2. 식물에게 물 잘 주는 요령

-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물이라는 건 식물의 광합성에서 암반응이 아니라 명반응 때 쓰인다. 이를 감안하면 물은 햇빛이 비치는 아침이나 낮에 주는 게 좋다.

- 흙의 물기가 마를 겨를이 없을 정도로 찔끔찔끔 자주보다는.. 적당히 간격을 뒀다가 한번 줄 때 많이 주는 게 좋다. 이러는 게 식물이 물기를 찾아 뿌리를 내리는 동기도 부여하고 좋다.
식물마다 케바케이긴 하지만, 보편적인 원칙은 식물 주변의 흙이 바짝 말랐다 싶으면 주면 된다.

- 다만, 일단 줄 때는 무식하게 끼얹지 말고 넓은 면적에 살포시 주는 게 좋다. 물뿌리개라는 물건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이게 사람이 음식 먹는 것에다 비유하면 꼭꼭 씹어서 천천히 삼키는 것과 같다.

- 자연에서 내리는 비는 자연재해급의 폭우가 아닌 한, 위의 두 원칙에 충실한 기상 현상이다. (한번 내릴 때 많이, 내릴 때는 살포시) 식물에 물 주는 것도 비가 더 자주 내려 주는 것과 비슷하게 수행하면 된다.

- 특별히 물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녀석들 말고 일반적인 육상 식물은 육상 동물과 마찬가지로 익사할 수 있다. 감당을 못 할 정도로 물을 너무 많이 줘 버리면 뿌리가 숨을 못 쉬어서 죽는댄다. -_-;; 아니면 축축한 거 좋아하는 곰팡이가 도져서 병충해를 입기도 한다.
직업 농사가 아니라 취미로 식물 가꾸는 사람들은 물을 안 줘서가 아니라 물을 너무 많이/잘못 줘서 식물을 죽이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고 한다.

- 식물이 잎이 축 늘어지고 기공을 닫고 있는 건 체내의 물이 부족해서 물을 증발시키는 걸 중단했다는 뜻이며, 이는 광합성을 못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때는 당연히 물을 줘야 한다.
근데 내 경험상 그냥 낮 기온 30도 이상으로 너무 더울 때도 이러고 있기도 한다. 이때는 물을 더 줘도 별 소용 없다. 축 늘어져 있는 게 언제나 죽기 직전 위급 상황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저녁이 되면 다시 잎이 살아난다.

- 그리고 물을 줄 거면 뿌리 부위에다 직격을 하는 게 좋다. 뙤약볕이 내리쬘 때 잎이 물을 맞아서 잔뜩 젖으면.. 물방울이 돋보기처럼 햇볕을 한데 모아서 잎을 미세하게나마 태우고 상처를 낸다. 그리고 그런 물기가 잎에 흰가루 같은 곰팡이성 질병을 야기하기도 한댄다.
비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에 잎을 젖게 만들기는 한다.. 하지만 비가 내릴 때는 뙤약볕이 내리쬐지는 않으니 저런 문제가 없다. ㄲㄲㄲㄲㄲ

식물은 햇볕이 너무 강할 때 동물처럼 자외선 맞아서 표면이 타고 조직이 상하는 건 없나 궁금했는데.. 저런 사정이 있구나.;;;
사람도 너무 덥고 맹렬한 뙤약볕 아래에서 물놀이를 하면, 물이 더위는 식혀 주지만 자외선은 더 잘 투과시켜서 피부를 태운다고 어디서 봤던 거 같다.

-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서는 예전에 가뭄이 너무 심했을 때 아침 11시부터 저녁 5시인가 대낮에 집 잔디밭에 물 주는 걸 금지했다. 공무원들이 돌아다니면서 단속하고 위반 시 과태료를 매겼다고..
그 시간대엔 물을 줘 봤자 곧 증발해 버리고 물 낭비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식물을 위해서가 아니라 물 절약을 위해서 저런 고육지책을 시행했던 것이다.

3. 호박 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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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자라게 하는 건 역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강한 햇볕과 충분한 비.. 요 둘인 것 같다. 에어컨이 필요할 정도로 상당히 더워진 5월 말쯤부터 내가 키우던 호박들이 무서운 속도로 커지고 길어지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는 거의 괴물 수준으로 잎이 커지고 줄기가 굵어졌다. 길이가 30~40cm에 달하는 잎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경이롭고 황홀했다. 그리고 이제 좀 덩굴이 옆으로 길게 뻗으려는 기미가 보였다.
종자나 모종을 따로 구매해서 심은 게 아니라, 늙은호박을 사 먹고 안에 있던 씨를 파묻었을 뿐인데.. 심은 지 50일 남짓한 기간 만에 참 많이도 컸다. ^^

호박은 (1) 힘줄 같은 굵직한 흰 줄무늬가 그려진 잎, (2) 가시인지 털인지 까칠까칠하게 난 줄기, (3) 납작하고 쭈글쭈글한 열매가 매력이다. ^^
다만, 한 줄기에서도 줄무늬가 있는 잎과 없는 잎이 동시에 돋는 것 갈다. 그리고 줄기도 처음에는 아무 특징이 없다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저렇게 털이 돋고 까칠해지고 확 굵어진다. 그러다가 나중에 뿌리 부근의 줄기는 뭔가 나무처럼 딱딱하게 굳기도 하는 것 같다. 성장 양상이 생각보다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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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호박잎을 먹기 위해서 뜨거운 물에 데치고 나면.. 이런 흰 힘줄이 없어지는 것 같다~! 표면이 다 시퍼래진다.)

호박을 그저 자라는 비주얼만 볼 게 아니라 열매를 제대로 얻을 목적으로 키우려면.. 뭔가 잘라내고 없애는 것도 적절히 해야 한댄다. 다음과 같이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 처음에 싹이 너무 조밀하게 많이 났을 때, 가망 없는 것들은 솎아내야 한다.
  • 그리고 줄기랄지 순이랄지.. 이것도 마냥 방치하지 말고 어떤 거는 잘라내야 한댄다.
  • 잎만 무성하게 너무 많이 자라면 그것도 잘라내야 한다. 내 경우, 위의 다른 잎들에 가려져서 어차피 햇볕을 많이 못 받는 것 위주로 잘라서 데쳐서 먹곤 했다.

잎이 광합성을 위해서 필요하기는 한데, 너무 많으면 이것도 잎이 소모하는 영양분이 잎이 만들어 내는 영양분보다 더 많아져서 효율이 떨어진댄다. 도대체 어떻게 수위를 조절해야 '적당히'인지.. 이게 참 알기 어렵다.
호박을 마냥 영양성장만 하게 놔두지는 말아야 할 텐데 말이다. 생식성장을 해야 작은 덩치에서도 꽃과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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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영양분이라도 너무 진한 액기스를 희석 없이 직통으로 내리꽂는 건 동물· 식물을 막론하고 좋지 않다. 그건 오히려 식물을 말라죽게 만든다. 소변을 식물에게 바로 뿌리는 게 이래서 좋지 않으며(사람이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동급), 비료는 식물 뿌리에 직접 닿지 않게 줘야 한다.
그에 비해 호박은 비료를 많이 필요로 하고, 처음에 심을 때 아예 퇴비에 파묻은 채로 심기도 한다는데.. 다른 식물들보다는 이런 데에도 더 강한 것 같다.

4. 나머지 얘기들

(1) 육지의 아마존 밀림보다도 바다의 식물성 플랑크톤과 바닷말들이 산소 생산에 기여하는 게 더 많다고 한다. 어떻게 측정한 것이고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심지어 바닷말은 엽록소가 있고 광합성을 함에도 불구하고 식물로 분류되지도 않는다는데 말이다.
그렇게 산소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바닷물 자체가 이산화탄소를 녹여서 보관해 줌으로써 온실효과를 억제하는 것도 장난이 아니라는데.. 이거 고삐가 풀려서 지구가 불지옥 행성으로 바뀌는 상황을 가정한 SF물이 벌써 15년 가까이 전에 발표됐던 만화 "호텔"이다.

(2) 비가 엄청 많이 내려서 주변이 물바다가 된 것 같은데, 비가 그치고 햇볕이 내리쬐면 기껏 떨어졌던 빗물이 삽시간에 증발해서 도로 하늘로 올라가 버린다. 지구에서 물의 순환이란 걸 생각하면 경이롭기 그지없다. 물이 '열을 보관하고 운반하는' 버퍼, 매체로서 지구에 기여하는 바는 실로 막대하다.

그나저나 그늘은 양지 100% 대비 태양열 몇 %만 받고 햇빛은 몇 %만 받으며, 식물의 생장 효율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지 궁금하다. 수성은 태양에서 그렇게도 가까이 있는데도 뒷면 등짝은 -100도대까지 내려간다고 하지 않은가? 물론 거기는 수증기나 공기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온도가 널뛰기하는 거다. =_=;;

(3) 사람이 없어도 2~3일 간격으로 알아서 옆의 식물에다 물을 뿌려 주는 타이머 물컵 같은 거.. 역시 검색해 보니 없을 리가 없다. ^^ 애완용 식물 키우는 인구가 늘어나면 이런 게 장사가 될 것 같다.
실내 말고 실외 텃밭에서도 쓸 수 있게.. 기능은 좀 적어도 좋으니 더 싸고 많이 도입할 수 있고 악천후 속에서 신뢰성이 더 강한 녀석이 있으면 좋겠다.

(4) 동물 쪽은 곤충, 식물 쪽은 잡초..가 정말 인류로 하여금 오랫동안 자연 발생설을 믿게 만든 원동력임이 틀림없다.. ^^

Posted by 사무엘

2023/06/15 08:36 2023/06/1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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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혼자 올라가서 텐트 치고 자는 거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요런 이야기들은 밤에 혼자 캠핑 중에 진지하게 읽어 보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ㅎㅎ

1. 1959년 2월, 소련 디아틀로프 사건

같은 대학교의 재학생과 졸업생으로 구성된 20대 초반의 청년 10명(남8 여2)이 한겨울에 얼추 2주 일정으로(1/28~2/12) 우랄 산맥 종단 산행을 떠났다. 이 사건의 이름 '디아틀로프'는 이 산악팀의 리더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들은 스키도 챙기고 아주 화기애애하게 출발하려 했는데.. 일행 중 딱 한 명이 출발 직전에 감기에 걸렸는지 두통과 고열 증세를 보여서 팀에서 빠졌다. 그 상태로 혹한기 산행을 강행했다간 몸을 더 망칠 우려가 있으니 아쉽지만 출발지에 남았다.

산행 5일차이던 2월 1일, 예정 경로인 산 쪽에 폭설이 내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낙오된 그 사람(유리 유딘)은 등산 중인 친구들에게 안부 무전을 날려 봤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텐트 치고 휴식 중이다. 아무 이상 없음"이라는 답을 받았다.
그러나 2월 1일자 무전이 마지막 연락이 되고 말았다. 바로 다음날부터 이들과는 연락이 영원히 끊어졌으며, 그들은 2월 12일 이후에도 귀환하지 않았다.

결국 실종 신고가 들어갔고 20일부터는 거기 일대로 수색이 시작되었다. 사태가 심각하니 군· 경 합동에 항공기까지 동원해서 필사적으로 수색했다.
기록에 따르면 2월 26일이 돼서야 찢겨지고 손상된 채 버려진 텐트가 발견됐고, 그로부터 반경 1.5km나 떨어진 다양한 지점에서 멤버들의 시신 5구가 발견됐다. 나머지 4명은 그로부터 2개월이 넘게 지난 5월이 돼서야 더 멀리 떨어진 계곡에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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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텐트가 외부로부터 공격받거나 파괴된 정황이 딱히 없이, 안에 있던 사람들이 텐트를 먼저 찢고 허겁지겁 밖으로 탈출해 나갔다. (왜??) 옷도 장비도 제대로 못 챙긴 채로 정말 황급히.. 그러다가 밖에서 다들 동사했다.
  • -20~-30도의 혹한 속에서 시신들이 다들 속옷 바람 탈의 상태였다. 나중에 발견된 4명이 먼저 죽은 5명의 옷을 더 걸치고 있기도 했다.
  • 리더인 디아틀로프는 밖에 나갔다가 이렇게 버티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텐트로 되돌아가서 옷과 장비를 더 가져오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텐트로 가던 길목에서 저체온증 때문인지 쓰러져서 숨을 거뒀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도대체 왜 텐트를 버리고 긴급히 탈출해야만 했는지, 그리고 그 뒤에 왜 저렇게 괴이한 최후를 맞이했는지가 도무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았다.
글을 쓰다 보니 이거 메리 셀러스트 호 사건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그 사건도 선원들이 멀쩡한 배를 도대체 왜 버리고 탈출했는지가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이니까 말이다.

소련 정부의 핵 실험이니 인근 원주민의 공격 같은 너무 극단적인 추측을 제끼면, 현재로서는 사건의 주범은 레알이건 낚시건 '눈사태'일 가능성이 높다.
이 사람들은 당시에 정체불명의 웅웅웅웅~ 기괴한 소음과 진동을 감지하고는 눈사태가 나는 줄 알고 한밤중에 겁먹고 뛰쳐나갔다가 변을 당한 게 아닌가 추측된다. 물론 이것도 100% 납득되는 설명은 아니고 아쉬운 점이 있지만 말이다.

건강 악화 때문에 산행을 아예 못 하고 낙오됐던 멤버 1명만이 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가 됐다. "그 날 밤에 내 동료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신에게 질문할 기회가 있다면 이건 정말 꼭 묻고 싶습니다.." 그는 평생 이 말을 입에 달고 살다가 2013년에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 1989년 7월, 일본 SOS 조난 사건

일본 홋카이도에 소재한 다이쎄스 산의 능선 평원에서 누군가가 자작나무 여러 그루를 베고 쌓아서 굉장히 큼직하게(글자 하나당 폭과 높이가 3~5 미터!!) SOS 문자 표시를 만들어 놓은 게 순찰 헬기에 의해 발견됐다.
그 헬기는 공교롭게도 근처에서 조난 당한 사람을 발견해서 무사히 구조는 했는데, 그 사람은 SOS 문자 표시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며 전혀 모른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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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화면 캡처여서 화질이 별로..)
게다가 알고 보니 그 SOS 표식은 더 이전인 1987년에 촬영한 항공 사진에서도 아주 희미하게나마 찍혀 있었다. 이걸 만든 사람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표식 근처를 수색하자 1984년쯤에 조난 당했던 한 20대 남성 회사원의 유골과 유류품이 발견됐다. 유류품 중에는 “도와달라. 나는 지금 벼랑 위에서 움직일 수가 없다~”라는 다급한 음성이 녹음된 카세트 테이프도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해서.. 유류품은 남자의 것인데 유골은 여자의 것이었고.. 비슷한 장소에서 84년에 죽은 사람의 흔적과 83년에 죽은 사람의 흔적이 서로 엇갈렸다느니 제3의 인물까지 거론되면서 온갖 괴담 미스터리가 나돌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것 없고 유골 검사에 착오가 있었으며 조난 당한 사람은 남성 1명이 전부라는 반론도 있다.

정황상 어떤 불운한 남성이 산을 잘못 내려가다가 그만.. 한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올 수 없는 급경사 아래에 고립돼 버린 것 같다. 그는 쓰러진 자작나무들을 이용해서 며칠에 걸쳐 SOS 표식을 혼자서 굉장히 힘겹게 만들고, 도와달라는 음성 메시지를 녹음도 했다. 그러나 그는 외부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탈진해서 산에서 뼈를 묻게 됐다. 여기까지는 확실하다.

그런데 저기 주변에는 자작나무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이것도 확실한 반박이 있는지? SOS 표식이 있는 곳은 진짜로 자력으로 빠져나가기 극도로 어려운 고립된 지형인 건지?
유품과 유골에 두세 명의 흔적이 뒤섞였다는 건 루머였다고 하더라도, 의문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는다. 산에서 고립된 게 무슨 바닷가 테트라포드 아래에 떨어졌거나 무슨 무인도에서 조난 당한 것 같은 느낌이다.

참고로, 1970년에 발생했던 후쿠오카 대학 반더포겔부 불곰 습격 사건이 이 다이쎄스 산의 바로 아래쪽 지역에서 발생한 거라고 한다. 이런 산은 급경사 절벽, 눈과 혹한, 거기에다 곰까지 위험 요소가 확실히 많기는 한가 보다.

3. 2014년 4월, 네덜란드 여대생 리잔-크리스 사망 사건
(정보의 출처에 따라서 리잔-크리스라고 이름을 쓰는 곳도 있고 프론-크레머르스라고 성을 쓰는 곳도 있음)

네덜란드 국적의 20대 여대생 두 명(리잔 프론, 크리스 크레머르스)이 머나먼 파나마로 졸업 여행을 떠나서는 4월 1일, 단둘이서 바루 화산 주변의 숲을 걸으며 당일치기 산행을 시작했다. 산 정상에 오르는 것도 아니고 능선이나 탐방로를 걷는 하이킹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들은 당일 오후와 저녁부터 연락이 뚝 끊기고 실종되어 버렸다. 검증되지 않은 루머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민박집 강아지도 같이 데리고 갔는데.. 저녁에 강아지만 혼자 돌아왔다고 한다. ㄷㄷㄷㄷ
4월 3일에 곧장 실종 신고가 접수됐고 현지 주민들을 동원한 수색이 시작됐다. 울창한 숲 속에서 그 짧은 시간 동안은 얼마 이동하지도 못했을 텐데 이 아가씨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실종된 지 10주..(2달 반!)가 지나서야 일행 중 한 명인 리잔의 배낭이 발견됐다. 산책로가 아니라 아예 인근 원주민의 텃밭 부근에서 발견됐다. 이걸 발견한 주민은 그 전날까지만 해도 그 자리에는 배낭 같은 게 없었다고 경찰에게 증언했다.;;
배낭 안에는 리잔의 핸드폰과 현금, 심지어 여권까지 포함해 유품이 단정하게 정리된 상태로 들어있었다..!! 참, 핸드폰은 신기하게도 리잔뿐만 아니라 크리스의 것까지 같이 들어있었다.

전화기에는 하이킹을 시작한 지 몇 시간 되지 않아 곧장 112(네덜란드의 119에 해당하는 번호)와 911에 연락하려는 시도가 기록돼 있었다. 하지만 전파가 잘 안 터져서 실제 교신은 실패... 이들은 생각보다 일찍 길을 잃거나 사고를 당한 것 같다. 전화기는 그 뒤로도 며칠 더 쓰이다가 각각 5일과 11일에 배터리가 나가서 꺼졌다.

카메라에는 출발 당일인 4월 1일에 평범한 셀카와 경치 사진이 들어있다가.. 4월 8일 새벽에...!! 별로 좋은 구도나 풍경이 아닌데, 의미나 의도를 알 수 없는 어두컴컴한 숲길 사진이 갑자기 90여 장이나 아무렇게나 무더기로 찍혀 있었다. 플래시까지 터뜨리면서 이런 사진이 찍힌 이유가 뭘까..?? 이것도 사건의 괴이함을 크게 증폭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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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배낭이 발견된 곳에서 수km 떨어진 곳에서 크리스의 청반바지가 곱게 잘 개어진 채로 있는 걸 발견했을 뿐, 이때는 수색 성과가 더 없었다. 이건 본인이 놔 둔 건지, 아니면 타인의 소행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다가 또 2개월 가까이 지난 6월 19일, 또 배낭 근처 지점에서 이번엔 신원 미상의 골반뼈와 부츠가 신겨진 발이 발견됐다.;; 그리고 강둑을 따라 뼛조각 30여 점이 발견됐다. DNA 감식을 해 보니 이건 역시나 리잔과 크리스의 일행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이렇게 유해로 발견되었다.;; (아까 디아틀로프 사건도 추가 유해는 2개월쯤 뒤에 발견됐네..)

이들은 어쩌다 조난을 당했는지, 살아 있는 동안 산 속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짐승에게 당했거나 사람에게 범죄를 당했는지..?? 4월 8일의 괴이한 사진이 찍힌 배경은 뭔지, 그들은 도대체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그들의 유품을 건드린 사람이 더 있었는지 같은 건 영원히 알 수 없게 됐다.

이런 걸 생각하면 첩첩산중에서도 망망대해 만만찮게 사람이 감쪽같이 실종되고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야산들은 아주 아주 안전한 축에 속한다. ㄲㄲ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23/06/12 08:35 2023/06/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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