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의 차이

1. 남장 여자

“난징! 난징!” 영화를 보면 난징 대학살 당시에 중국 여성들이 머리를 삭발에 가깝게 짧게 깎고 최대한 남장을 하고 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일본군이 점령지에서 민간인을 보이는 대로 강간하고 약탈, 학살을 벌였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에 우리나라도 상황이 비슷했다.
질 낮은 소련군 병사들이 수시로 부녀자를 강간하고 손목시계 약탈을 저질렀다. 그러니 미혼 여성은 남장을 하고 다녔고, 딸 가진 부모는 딸을 무리해서라도 당장 시집 보내서 유부녀로 만들려 애썼다.

그럼 저런 막장 상황에서 여성만 피해자인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미국 흉악범 교도소라든가 그에 준하는 정신나간 곳에서는 까딱 잘못하면 남자라도 항문=_=을 온전히 보전할 수 없다. 여자 역할을 하는 남자로 전락해 버리고 젊은 나이에 기저귀 차고 다니게 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몸에다 온갖 화려 현란 끔찍한 문신을 도배하고 칼빵도 파고, 몸집 불리고 꼴마초 산적처럼 보이게 해야 한다. -_-;;;
뭐, 헤어스타일이 여자처럼 장발일 수는 있다. 허나, 그럴 거면 여자에게 존재하지 않는 털(ex: 수염)도 치렁치렁 길게 나 있어야 한다. 요게 핵심.. 그래야 변태 양아치들이 자기를 보고 이상한 생각을 할 엄두를 못 낸다.

아까 난징에서 겨우(?) 삭발과 남장이던 게, 막장 교도소에서는 문신과 칼빵으로 업글된다는 게 흥미롭다.
저렇게 미국 교도소에서 벌어지는 짓을 ‘남색’, 영어로는 sodomy라고 한다. 저런 데는 애초에 절대 안 가는 것만이 답이다.

2. 여성 호소인

지난 1972년, 서독의 뮌헨 올림픽은 ‘검은 9월단’ 테러 때문에 망해 버린 비극적인 대회였다.
우리나라는 이때 여자 배구에서 동메달이 걸린 3, 4위전을 무려 북한과 치렀다. 북한과의 관계가 꽤 살벌하고 무시무시했던 시절에 말이다. (참고로 실미도 사건이 1971년에 벌어졌음!)

결과는..? 우리나라는 3:0으로 단 한 게임도 이기지 못하고 북한에게 정말 깔끔하게 졌다.
김 증복인지 뭔지 하는 선수가 지금 우리나라로 치면 김 연경에 맞먹는 북한의 에이스였나 보다. 기량 면에서 도저히 감당이 안 됐다고 한다.

그랬는데.. 반공이 국시이던 우리나라에서는 한낱 괴뢰 집단한테 운동 경기를 졌다는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나 보다.
“김 증복 저 사람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임이 틀림없다~! 저건 여자한테서 나올 수 있는 실력이 아니다! 진짜 여자가 맞는지 확인해 달라!!” 올림픽 위원회를 상대로 이렇게 이의를 제기하며 뗑깡(?)을 부렸다고 한다.

물론 북한은 수틀리면 국제 사회에서 각종 룰이나 약속 따위 안 지키기고 주작 조작을 일삼는 양아치이기는 하다.
허나, 여자 배구에다가 여장 남자(!!!) 선수를 슬쩍 출전시킨다는 발상은 무슨 부정선거 음모론의 스포츠 버전처럼 비쳐졌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제3자의 반응은.. “하다못해 약물 도핑 의혹”도 아니고 그냥 ‘이뭐병’이었다고 한다.;; 이의 제기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랬는데, 저 50여 년 전의 해프닝은 참 아련한 추억이 돼 간다.
이제는 후천적 여성 호소인 선수가 버젓이 여자 종목에 참가해서 진짜 선천적 여자 선수들을 합법적으로 양학 저지르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알기로 저런 사람들은 반드시, 꼭~ 구기나 격투기처럼 피지컬 잘 타는 종목에만 출전한다.
사격, 양궁, 승마처럼 멘탈 비중이 크고 피지컬 별로 안 타는 종목에 여성호소인 선수들이 참가한다는 얘기는 난 전혀 못 들었다.
현실 인물은 아니다만 오징어 게임 3에서 '조 현주'는 정말 인성 좋고 리더십 있고 피지컬도 뛰어난 선역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그 상태로 몸 쓰는 스포츠에서 여자 선수로 출전한다??? 그러면 수많은 논란을 일으킬 것이다.

* 본인은 (1) 남자는 남자답고 여자는 여자다운 게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대체로 가장 좋다, (2) 유리천장이 없어지면 유리바닥도 없어진다, (3)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성 정체성을 후천적으로 바꾸려 드는 것을 세속 국가가 무슨 형사 처벌 수준으로 금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걸 반대로 인권 복지 차원에서 세금까지 투입해서 지원하고 장려해서도 안 된다고 본다.

* 서유럽의 3대 강국인 영프독~~ 중에서 영(2012), 프(2024)에 비해 독일만이 마지막으로 올림픽을 개최한 시기가 독보적인 옛날에서 멈춰 있다. 독일은 나름 올림픽을 두 번이나 개최하긴 했지만 하나는 테러 때문에 망했고, 더 옛날 1936년 첫 버전은 아예 히틀러 나치 프로파간다의 선전장이었으니.. 둘 다 기억이 별로 좋지 않다. =_=;;

Posted by 사무엘

2025/07/14 19:35 2025/07/1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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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야세노바츠 수용소

나치 독일이 점령지에서 인종 청소 대량학살을 목적으로 운용했던 수용소로는 아우슈비츠가 독보적인 인지도를 자랑한다. 그러나 그것만 있었던 게 아니다. 마치 북괴에서 운용하는 정치범 수용소가 요덕만 있는 게 아니듯이 말이다.

저 시절에 일본이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웠듯, 나치 독일은 자기 점령지에다가 '크로아티아 독립국'이라는 괴뢰국을 수립했다.
크로아티아가 어떻고 유고슬라비아가 어떻고 보스니아, 세르비아가 어떻고 등등.. 저기도 나라 사정이 엄청나게 복잡하긴 한데, 내가 그런 걸 다 알지는 못한다. 핵심만 말하자면 저기에는 정치 쪽은 골수 크로아티아 인, 종교 쪽은 골수 가톨릭인 '우스타샤'라는 열성당원이 있었다. 근데 걔들이 파시즘에 물들어서 나치 독일과 손잡았다.

나치 독일은 걔들에게 완장을 채워 주면서 이 점령지의 통치를 맡겼다. 그리고 수용소도 떡 지어서 불순 반동분자들을 마음껏 가두거나 죽일 수 있게 했는데.. 이 우스타샤라는 놈들은 나치 독일도 학을 뗄 정도로 또라이들이었다. 상전인 나치로부터 살인 면허를 받자, 얼마 못 가 오히려 나치 측에서 기겁하고 뜯어말릴 정도로 더 미쳐 날뛰었다.

얘네들은 나치의 주적이던 유대인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들과 민족적으로 종교적으로 대립하고 있던 이웃 세르비아 인들을 더 집중적으로 괴롭히고 조졌다. 쟤들은 혈통도 다르고, 또 종교도 정교회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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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 링크)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에 대한 견해가 다르다거나, 성모 마리아나 유아 세례에 대한 교리적 입장이 다르다고 사람을 죽인 게 아니다. 정교회는 개신교· 침례교보다는 가톨릭과 교리가 훨씬 더 가깝고 호환되는 종파일 텐데..
이거 뭐 성호를 긋는 순서가 다르다고 사람을 죽이다니 이건 중세 종교 재판보다도 더 막장인 것 같다. -_-

야세노바츠 수용소는 사람을 극한까지 부려먹으면서 천천히 죽이는 시설이지, 사람을 바로 죽이는 시설은 아니었다. 그래서 아우슈비츠 같은 가스실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스타샤 놈들이 저지른 만행을 생각하면 차라리 가스실을 구비하는 게 더 자비롭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 또라이들은 절대로 사람을 급소에다 총알 박아서 단번에 죽이지 않았다.
냉병기로 목을 치거나 눈알을 뽑고 사지를 짜르고, 산 채로 배를 갈라서 내장을 끄집어내거나 불지르는 등..
난징 대학살이나 캄보디아 킬링필드 이상의 잔혹한 학살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했다. 게다가 아기나 어린애들한테도 이런 짓을 했다.

쟤들은 세르비아 인들을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뭐, 목숨이 붙어 있더라도 수용소 내부 환경이 얼마나 끔찍하고 열악했는지는.. 그건 아우슈비츠와 호각이었을 테니 더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더 자세한 설명: 링크1 / 링크2

로마 가톨릭은 무려 교황청 차원에서 이런 극악무도한 만행에 대해 침묵을 넘어 은폐했으며, 우스타샤를 그저 애국 민족주의 독립운동 진영 정도로 미화해 왔다고 한다. 이건 로마 가톨릭의 엄청난 과오 흑역사가 아닐 수 없다.

4. 악당들의 최후

2차 세계 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면서 나치 전범들은 다음과 같이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1) 가장 먼저, 수괴인 히틀러는 자살했다. 자기는 죽으면 죽었지 베를린을 떠나지 않을 거라고 못을 박았으며, 한편으로 패자 루저는 더 존재할 가치가 없다면서 주변을 몽땅 다 부수고 불지르라는 광기어린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건 자국(알베르트 슈페어)이든 프랑스 점령지이든(콜티츠 장군) 해당 나와바리 담당자들이 히틀러의 지시를 거부하고 이행하지 않았다.

(2) 히틀러의 심복 나팔수였던 요제프 괴벨스도 순사라도 하듯이 자살했는데.. 히 총통님이 없는 세상에서는 인생을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본인만 자살한 게 아니라 가족을 몽땅 동반 살해했다!!
출산이 애국이라면서 애를 6명이나 낳고 애들 이름도 다 히틀러를 따라 ㅎ(H)로 시작하게 지었는데.. 그 애들을 다 수면제와 독약을 먹여서 죽인 것이다. 저 사람은 정말 상상 이상의 또라이 미치광이였다.

(3) 하인리히 힘러는 친위대 SS와 게슈타포 비밀경찰의 수장이었다. 이 사람은 체포되고 나서 자기 정체가 드러나게 되자.. 즉시 청산가리 앰플을 깨물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렸다. 재판 받고 교수대에 서는 비굴한 꼴은 어떻게든 안 당하려고 발악을 했다.

(4)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도 힘러 못지않은 SS와 게슈타포 쪽의 고위 간부였으며, 유대인들을 국가 차원에서 씨를 말려 버려야 한다고 결정한 주동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나치 독일이 점령했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총독의 권한대행을 역임했다. 능력이 좋았는지 겨우 30대 나이에 엄청난 고관대작이 됐으나..

체코 망명정부와 영국이 손잡고 일으킨 암살 작전에 말려들어 밥숟가락을 놓았다. 수류탄 파편을 많이 맞은 것이 패혈증을 일으켰고, 이것 때문에 1주일 뒤에 쇼크사한 것이다. 1942년 6월, 아직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에 비교적 일찍 죽었다.

저 사람은 윤 봉길 의사의 의거로 인해 죽은 일본군 장성인 시라카와 요시노리와 처지가 비슷해 보인다.
후자의 경우, 폭탄 파편을 맞은 당일에는 멀쩡해 보였지만 100여 군데나 생긴 상처에서 패혈증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결국 당일로부터 딱 1개월 뒤에 사망했다.

(5) 아돌프 아이히만은 수뇌부인 저 하이드리히의 명령(전략)을 정말 성실히 수행하면서 유대인들을 아주 조직적으로 대량 학살한 실무(전술) 책임자였다. 전자가 기업 임원· 회장급이라면 후자는 공장장 정도 되는 듯?
이 사람은 나치의 패망 이후에 자기 신분을 숨기고 아르헨티나로 도피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배신자의 밀고가 아니라 아들이 입을 잘못 놀리는 바람에 인생이 꼬였다.

장남이 여친에게 자기 아버지 자랑을 실컷 했기 때문이다. 여친이 유대인 출신이며 심지어 여친의 부친부터가 당장 홀로코스트 피해자인 걸 정말 까~~맣게 모르고 말이다..;;;
아이히만 저 인간은 자기 행적을 전혀 후회하지 않고 자랑스럽게 떠벌려 왔으며, 자신의 반유대주의 신념을 전수받은 후학을 양성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니 자기 아들에게는 평소에 밥상머리 세뇌 교육을 어떻게 했겠는가? 이건 100% 자업자득이었다.

여친은 속으로 기겁을 하면서 남친을 신고했고, 이 소식은 여친 쪽의 아버지를 거쳐 무려 이스라엘 총리의 귀에도 들어갔다. 결국 모사드 요원까지 동원해서 1960년 5월, 현지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을 사냥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를 기어이 이스라엘에서 재판에 넘기고 처형해 버렸다.

쟤들은 유대인 학살 전범이라면 그야말로 지옥까지 쫓아가서라도 제거하려고 눈에 불을 켠 복수귀 상태였다. 감정 같아서는 모사드 요원이 곧바로 그놈을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고문해서 한 100번은 죽이고도 남았을 것이다.
허나, 최고 상관인 총리가 절~~대로 그러지 말고 놈을 멀쩡하게 생포해서 반드시 재판정에 보내라고 엄명을 내렸다. 사적 보복을 그렇게 간신히 막았다.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은 무려 9개월이나 걸렸으며, 주요 장면이 전파를 타고 전세계로 모조리 중계됐다고 한다. 이 사람의 배배 꼬이고 뒤틀린 심리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
아이고 아이히만 얘기가 너무 길어졌네.. 암튼 이 사람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을 피해 갔지만 훗날 잡혀서 더 험한 꼴을 당하고 이스라엘 법정으로부터 단죄를 받은 유일한 사람이다.

(6) 다음으로 '요제프 멩겔레'. 이 사람은 일본 731 부대의 사령관이었던 '이시이 시로'의 독일판이었다.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들을 마루타 취급하면서 자기 꼴리는 대로 온갖 잔혹한 생체실험을 벌였던 인간백정인데.. 전후엔 그 아이히만처럼 남미로 도주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안 잡히고 천수를 누렸다!!

기록에 따르면 1970년대 말에 브라질에서 수영을 하던 중에 심장마비로 60대 후반의 나이에 급사했다고 하는데.. 행적에 비하면 정말 편안한 최후였다.
다만, 이 사람도 아이히만이 덜컥 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정말 엄청나게 쫄고 겁 먹고 멘탈이 약해지기는 했었다고 한다.

참고로, 생체실험에 관여한 나치의 악마 의사는 멩겔레 말고도 '카를 브란트'라든가 '카를 게프하르트' 같은 사람이 더 있었다. 얘들은 다행히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 회부돼서 사형 판결을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7) 하인리히 뮐러는 히틀러 친위대의 간부에다 게슈타포 국장을 역임했던 나치의 핵심 간부였다.
저 아돌프 아이히만의 상관이었으며.. "아이히만 같은 일꾼이 우리 독일에 50명만 더 있었으면 유대인들은 금세 씨가 말랐을 것이고 우리나라가 전쟁을 이겼을 것이다~" 이런 말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은 독일의 패전이 임박했고 히틀러가 자살한 직후~~ 싹 증발해 버렸다. 나치 고위 간부 전범들 중에 유일하게 '실종'돼서 전후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
남미로 도망쳐서 완벽하게 잠적하고 자연사했다기보다는 아마 실종 당시에 폭격을 맞아서 죽고 시체가 사라진 게 아닐까 싶다.
참고로 나치당의 우두머리에다 히틀러의 개인 비서까지 역임했던 '마르틴 보어만'도 베를린 포위전 이후로 실종 상태였다.. 허나, 이 사람은 1972년에야 시신이 발견되면서 사망이 확인됐다.

(8) 헤르만 괴링은.. 히틀러빠 광신도에 유대인 혐오로 똘똘 뭉친 뚱뚱한 아저씨였다. 자세한 행적은 잘 기억이 안 난다만 이 아저씨는 체포돼서 전범 재판을 받고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총살형을 내려 달라는 요청이 소련 측에 의해 묵살되고 교수형이라는 통보를 받자 매우 실망=_=, 낙담하여 몰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이라는 점은 힘러와 동일하지만, 그 타이밍이 다르다.
한편,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소장 출신인 '루돌프 회스'는 아이러니하게도 동일한 수용소에 세팅된 전용 교수대에서 처형 당했다.

(9) 회스 말고 '루돌프 헤스'는..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을 받아 적은 이력이 있을 정도로 히 총통의 오래된 최측근이었다. 허나, 1941년에 일찌감치 연합군에게 체포돼 버리는 바람에 전쟁 중에 대놓고 사고를 치고 전쟁 범죄를 저지른 건 없었다. 그는 이 점이 감안되어 전범 재판에서 사형까지는 안 당하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는 다른 여러 나치 전범들과 함께 '슈판다우 교도소'에 수감됐는데.. 어쩌다 보니 무려 1980년대까지 살아남으면서 넓은 교도소를 혼자 전세 내어 사는 처지가 돼 버렸다. 다른 죄수들은 만기 출소하거나 건강이 너무 나빠져서 죽거나 가석방 됐는데 이 사람만 그 어떤 조건에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나치에게 제일 치를 떨던 소련조차도 "쟤는 이제 그만 풀어 주자"에 동의할 지경이 됐으나.. 그는 1987년에 무려 93세의 나이로 굳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 사람이 죽으면서 슈판다우 교도소는 통째로 철거됐다.
나치 전범들 중에 이런 식으로 감옥에서 죽은 사람은 헤스가 유일했다.

5. 뒤끝

(1) 독소 전쟁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됐던 1941년 11월, 나치 독일은 흑해에서 소련의 병원선 아르메니아 호를 폭격기로 공격해서 격침시켰다. 배에는 5000명이 넘는 피난민과 상이 군인들이 타고 있었는데 모조리 몰살당해 버렸고, 생존자는 단 8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 뒤 전쟁이 끝나 가던 1945년 1월에는 반대로 소련 잠수함이 독일의 유람선 ‘빌헬름 구스타프 호’를 어뢰로 공격해서 격침시켰다. 이때는 무려 1만 명이 넘는 피난민과 상이 군인들이 타고 있었는데 그 중 9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두 케이스 모두 엄밀히 따지면 군함이 병원선이나 민간 선박을 공격한 것이기 때문에 제네바 협약 위반이고 전쟁범죄였다. 특히 빌헬름 구스타프의 경우, 이건 인류 역사상 단일 선박에서 사람이 제일 많이 죽은 침몰 사고였다. 우리나라의 우키시마 호? 대한항공 007 격추? 그것들 희생자를 아득히 능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자기 배를 격침시킨 소련에다가 항의하고 따질 수 없었다. 자기들이 먼저 한 짓이 정상적인 짓이 아니었으니까.. 공론화하지 않고 그냥 쉬쉬 하고 넘기는 수밖에 없었다.

(2) 나치 독일이 패망하고 2차 대전이 끝난 직후에.. 홀로코스트에서 겨우 살아남은 유대인들, 가족과 친지를 나치에 의해 잃은 사람들은 당연히 독일이 죽이고 싶도록 미울 수밖에 없었다. 이건 한국인들이 해방 직후에 가졌을 반일 감정보다도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트라우마로 인해 더 극단적인 신념을 갖게 됐다. 나치 전범 윗대가리 겨우 수십 명만 감방에 가두거나 죽이는 걸로는 텍도 없으니 니들도 우리와 똑같이 죽어 보라고.. 독일놈들이 유대인을 수용소에서 600만 명 죽였으니까 이젠 우리도 독일인들을 신분 지위 불문하고 똑같이 600만 명 죽여야 직성이 풀리겠다고..
그걸 시도했던 유대인이 있었다. ㄷㄷㄷ

이들은 ‘나캄’(히브리어로 ‘복수’!!)이라는 이름의 비밀 결사를 만들어서 독일 내부의 상수원에다가 독을 타고 수용소에 납품되는 식료품에다가 독을 집어넣는 식으로 공작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공작이 허술했는지 금세 잡혔다.

독일 경찰은 나캄 조직원들을 체포하기는 했지만.. 이제 막 나치가 패망했던 와중에 이 사람들을 도저히 단죄하고 처벌할 수 없었다. 저들의 원한과 빡침을 생각하면 그들을 잘못 건드렸다간 독일의 이미지만 더 나빠졌을 것이다.
그러니 독일 측에서는 그들을 기소하지 않고 이건 서로 없던 일로 하고 유야무야 넘겼다.;

이상이다.
원래 연합국 진영에서는 일본이나 독일 같은 패전· 전범국들을 국가와 민족을 유지는 시켜 주지만 차 떼고 포 떼고 농업이나 경공업밖에 못 하는 나라로.. 앞으로 전쟁의 전 짜도 입에 담지 못하는 약소국으로 거세시키고 싶어했다. 쟤들이 워낙 크고 끔찍한 사고를 쳤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았다.

같은 연합국 진영에서 미국과 소련이 이념 차이로 갈라졌다. 그러니 미국은 공산주의를 견제하려는 속셈으로 이런 전범국들을 슬그머니 다시 소생시켜 주게 됐다. 나라가 너무 못 살고 백성들이 굶주리면 사상적으로도 그만큼 취약해지며, 적화되기가 상대적으로 더 쉬워지기 때문이다.

저런 나라들은 전쟁에서 지고 인프라가 다 파괴됐어도, 고급 인재들 머릿속에 있는 지식과 노하우는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금방 다시 일어나서 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 일본은 전쟁 폐허 상태이던 1947년에 최초로 노벨 상 수상자까지 배출했고 말이다.

뭐, 일본은 헌법에다가 군대 미보유와 전쟁 포기를 명시했고, 독일은 탈나치화를 워낙 빡세게 했더니 통상적인 애국심 민족주의조차 없어지고 밍밍해져서 난리일 지경...이다.
특히 이 두 나라들은 핵 무장은 일~~절 안 하고 조용히 지내고 있다. 걔들이 전범국 주제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핵을 개발하겠다고 깝친다면.. 이건 국제 어그로를 제대로 끌면서 진짜 작살이 났을 테니 말이다.;;

오늘날의 UN 상임이사국을 제외하면 오히려 인도, 중국 등 신흥 강국들, 2차 대전 이전에는 식민 지배도 받고 약골이었던 나라들이 핵을 보유하려 난리를 치는 편이다.
그 대신 독일은 몰라도 일본은 상임이사국 자리를 아주 오래 전부터 탐내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피해자인 한국과 중국의 견제와 뒤끝 때문에 그건 쉽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5/07/11 08:35 2025/07/1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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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서 1933년부터 1945년은 뭐랄까 광란과 암울의 시기였다. 세계적인 경제 호황 황금기였던 1920년대가 대공황이라는 날벼락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이때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의 치욕을 갚으려고, 일본은 나락으로 가는 경제를 살리려고 군국주의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국부를 창출할 방법이 없으니 남의 나라를 쳐들어가고 빼앗고 식민지를 늘려서 문제를 해결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일본은 딱 저 무렵에 상하이 사변을 일으키고 만주국을 세웠으며.. 국제 연맹을 탈퇴하고 해군 군축 규제를 생까기 시작했다.
독일은 권력이 나치에게 완전히 넘어갔으며, 히틀러가 총통 자리에 올랐다. 히틀러는 주변 강대국들이 머뭇거리는 동안(1차 대전의 트라우마 때문에..) 체코나 오스트리아 같은 이웃 나라들을 야금야금 먹기 시작했고, 유대인들을 조직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런 폭주가 나중엔 중일 전쟁, 태평양 전쟁, 독소 전쟁으로 이어졌으며, 2차 세계대전이라는 대재앙을 만들어냈다. 얘들은 명분 없는 침략 전쟁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점령지에서 정말 반인륜적이고 끔찍한 학살을 저질렀고, 그러면서 결국 연합국에게 지기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빼박 악의 축으로 전락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딱 정확하게 이 기간 동안 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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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절에 있었던 일들 중에 본인 기억에 인상깊게 남아있는 것을 몇 가지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폴란드, 퀴리 부인

우리나라는 위로는 중국, 아래로는 일본에 치이면서 19세기 말~20세기 초의 현대사가 불운하고 기구했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폴란드가 역사적으로 처지가 한국과 매우 비슷했다고 한다.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껴서 19~20세기 사이에 양쪽으로부터 번갈아가며 지배 받고, 걔네들 마음대로 영토가 분할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당장 2차 세계 대전부터가 바로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는 걸로 시작됐었다.
오죽했으면 그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도 폴란드 땅에 만들어졌다! 독일 본토가 아니다.
그러니 나중에 독일이 전황이 점점 불리해지고 점령지를 상실했을 때는 거기 수감자들을 점점 더 독일 본토에 가까이 있는 수용소로 이감을 해야 했다.

그랬는데.. 더 옛날 19세기 중후반엔 폴란드가 러시아 제국의 식민지였다.
마리 퀴리(퀴리 부인)가 그 시기에 이 지역 출신이었다.

아마 중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였던가..?? 마리 퀴리의 학창 시절 일화가 실려 있었다.
러시아에서 불시에 학교 시찰을 보내서 수업 중인 선생한테 "이 교실에서 제일 똘똘한 애를 하나 지목하시오. 당신이 학생들을 우리 교육방침대로 잘 가르치고 있나 확인해 보게" 대뜸 이런 요구를 했다.

애들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얼어붙어서 'ㄷㄷㄷㄷㄷ 제발 저는 지목하지 마세요!!!ㅠㅠㅠ' 이러던 와중에 넘사벽급 우등생 모범생이던 마리 퀴리가 답정너 지목됐다.
교과 내용 질문뿐만 아니라 국가관 사상 검증 질문까지 모든 답변이 러시아어로 막힘없이 술술..

러시아 장학사인지 누군지는 아주 흡족해하며 떠났다. 허나, 그렇게 위기를 넘긴 뒤에 그 선생과 마리는 부둥켜안고 서럽게 엉엉 울었다... 이런 내용이었다. 비슷한 시기의 "마지막 수업" 소설과 비슷한 분위기다.

햐, 러시아에 나치에.. 이런 지경이었으니 훗날 동아시아에서 중-일 전쟁이 터졌던 것과 비슷한 구도로 독-소 전쟁이 터졌나 싶기도 하다.
그 사이에 낑겼던 폴란드는 2차 대전 피해를 극심하게 당했다. 뭐, 마리 퀴리는 프랑스 과학자와 결혼해서 프랑스로 귀화했고, 2차 대전이 터지기 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험한 꼴을 보지는 않았다.

마리 퀴리가 그냥 타고난 천재이고 독한 공부기계 괴수였다고만 말하는 건 고인에 대한 모독일 거다.
이 사람은 약소민족 차별과 설움, 학계에서 여자라는 성차별 유리천장, 하루에 사과 하나 빵 한 조각밖에 못 먹을 정도의 가난과 굶주림..

그야말로 신체 장애만 빼고 어지간한 역경과 핸디캡을 다 겪었는데 이걸 오로지 실력과 노력만으로 다 극복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방사성 원소 라듐이 그런 과정을 거쳐서 최초로 발견되었다.

퀴리 부인의 둘째딸이 "어머니, 아버지, 언니, 내 남편.. 다 노벨 상 받았는데 나만 못 받았으니 나는 가문의 수치입니다" 이런 정신나간(...) 소리를 늘어놓을 정도였는데.. 그런 가문이 저런 배경 속에서 만들어졌다.

마리 퀴리는 독일의 그 유명한 과학자.. 공기로 빵을 만든 과학자, 하지만 동족을 죽이는 독가스의 개발에도 참여했던 과학자 '프리츠 하버'와 생년 몰년이 거의 같은 동갑내기였다. 암모니아를 인공 합성한 거나, 방사성 원소를 처음으로 발견한 거나.. 다 비슷하게 넘사벽이었다.

2. 연설과 선동의 천재

꼭 과학 쪽에만 천재가 있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의 소파 방 정환 선생은 동화 구연의 천재였다.
이 사람이 감방 안에서도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하면 동료 죄수들은 물론, 밖의 간수들도 실실 쪼개거나 눈물 짰다는 전설적인 일화가 전해진다.
옛날이 지금보다 오락거리가 없고 신파가 더 잘 통하는 시절이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저건 비범한 능력이었음이 틀림없다.

근데 히틀러는.. 연설· 웅변의 천재였다.
"비겁하게 팩트 따위 들이대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날조와 선동으로 승부하자!! 대중들에게 막연한 공포와 적개심을 팍팍 조장하자!"의 훌륭한 모범을 보였다.

"여러분, 살기 힘드시죠? 우리 위대한 게르만 민족이 국력이 부족해서 전쟁에서 진 게 아닙니다.
우리가 요 모양 요 꼴이 된 거, 알고 보면 이게 다~~~ 노뭏... 아니 유대인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배신자 쥐새끼들로부터 비열하게 뒤에서 총질을 당했기 때문에 졌을 뿐입니다!!"
이 말을 눈짓 손짓 총동원해서 고래고래 고함 치듯이 외치니까 다들 입 헤 벌렸다.

히틀러는 쿠데타(뮌헨 맥주홀 폭동)가 실패하고 붙잡혔는데, 재판정에서도 연기까지 가미해서 이렇게 피 끓는 호소를 했댄다.
"이러쿵저러쿵.. 그러니 존경하는 판사님, 제 눈을 똑바로 보십시오. 저에게 죄가 있다면 내 나라 내 민족을 사랑해서 국민의 권리를 지키려고 싸운 죄밖에 없을 것입니다!"

얼마나 말빨이 좋았는지, 저 호소에 법정 방청석에서는 "옳소!"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오고 검사와 판사까지 정신줄을 놔 버렸댄다.
"응..?? 여기서는 우리가 피고인을 심문하고 판결을 내려야 되는데.. 왜 반대로 우리가 피고인한테서 연설을 잔뜩 듣고 있는 거지..???? 병신 같지만 아주 멋있는걸? 우리가 설득 당하겠어?"

그 결과, 히틀러는 내란 정치범으로 금고 5년이 나오긴 했지만.. 책상 있고 침대 있는 넓은 독방에서 외부인 접견도 자유롭게 하면서 진짜 편하게 잘 쉬었다. 최소한의 형식적인 솜방망이 처벌만 받다가 겨우 13개월 만에 석방됐다.

그 동안 담당 간수가 "저 같은 미물이 감히 선생님을 곁에서 모시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이랬다. -_-;; 히틀러는 애국자 VIP 양심수로 예우받으면서 이 전과가 정치 커리어에서 커다란 플러스로 추가됐다.;;
울나라로 치면 안 두희를 살해한 박 기서 씨가 받았던 대우와 비슷했다. 저 사람도 살인죄 5년을 최대한 감경해서 3년형이 나왔지만.. 17개월 남짓 만에 삼일절 특사로 석방됐으니 말이다.

히틀러의 선동 기술은 그야말로 악마의 나팔수였던 괴벨스의 도움이 합쳐져서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냈다.
미국은 나라가 부유하고 잘 살다 보니 1920년대에 이미 중산층 서민들이 자가용을 굴리고 라디오도 갖고 있었다고 하던데.. 독일에서는 국민들을 히틀러 연설로 세뇌시키려고 저가형 '국민라디오'를 저렴하게 찍어내서 뿌렸다. 주파수는 특정 채널로 답정너 고정돼 있었고..

히틀러를 유대인 학살 같은 죄악을 빼고 평범하게 정치인, 군인(패배하긴 했지만)으로서만 생각하면 뽀대나기는 한다.
한자 문화권도 아닌 동네에서 웬 卍짜를 심볼로 쓴 것도 그 당시엔 꽤 참신한 디자인이었을 것이고, 나치 SS 군복이 일본군 군복보다야 비주얼이 멋있는 건 사실이니까. =_=;;;

히틀러의 종교관은 김 일성의 종교관과 비슷한 유형의 떡밥인 것 같다. 신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결국 개인 숭배로 빠지고 이상한 쪽으로 흑화했다는 공통점이 있으니까.

히틀러는 영화 배우 찰리 채플린과 생년월일이 겨우 4일밖에 차이 나지 않는 완전 동갑내기였다. 찰리 채플린은 나치 독일을 풍자하는 영화에서 히틀러 역을 맡아서 연기를 했으며, 히틀러 역시 그 영화를 보기도 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5/07/08 08:35 2025/07/0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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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변천사

본인은 유튜브를 돌아다니다가 근래에 꽤 재미있는 영상을 봤다.
이름하여 '음악의 변천사'.. 이 주제로 이 영상 하나만 있는 건 당연히 아니고 여러 개가 굴러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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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보니 "오 그렇군..!" 무릎이 쳐지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인류의 역사 수천 년 동안 음악이라는 건
오랫동안 장송곡 아카펠라에다가 단선율 붙인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 악기의 음색이나 음계도 지역별로 파편화가 심했다. 고대/중세의 그레고리안 성가도 다 이런 스타일이지 않았던가?

그러다가 르네상스 시대부터는 음악이란 게 교회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좀 더 파격화 세속화가 이뤄졌다. 사람들 코러스가 더 화려하고 웅장해지고 예뻐졌고 피리 소리가 더 예뻐졌다.

그 뒤 17세기 바로크 정도부터 바이올린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악기 소리가 들리고 악기가 더 다양해지고, 요런 유럽 음악이 타 지방 민속 음악과는 차별화된 독보적인 면모를 갖추게 됐다.
1700~1800년대가 딱 클래식이다. 교회 찬송가도 대부분 이 시기 곡들이다. 처음에는 작곡가도 당대 귀족들처럼 치렁치렁 가발을 쓰고 있었다가(바흐, 모차르트) 후대 인물부터는 그런 게 없어진다는 것도 포인트..

1800년대 후반, 낭만주의의 끝물쯤 되면 음색은 클래식이지만 좀 더 격식이 풀리고 선율이 자유로워진 것 같다.
1900년 초중반부터는 그냥 귀족들이나 듣는 라이브 교향곡이나 오페라/뮤지컬 음악뿐만 아니라!! 음반에 담긴 가요나 영화 음악도 등장한다.

20세기 중반에 와서는 재즈에다 락이며 힙합도 등장한다. 실용음악이란 게 클래식과 완전히 분리되고 양지로 나와서 별개의 영역으로 전문화된다.
1970~80년대, 전자악기며 MIDI, 컴퓨터 음악이 등장한 뒤부터는 판도가 또 확 달라진다. 요때 음악부터 디지털화가 됐고, 1990년대엔 그 다음으로 영상까지 CG가 등장하니 말이다.

현대의 인류는 그야말로 지난 5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조상들이 겪지 못했던 음악의 홍수를 경험하고 있다. 단조에 단선율 장송곡 노동요를 크게 벗어나지 않던 음악이 나중에 왕족 귀족 후원 받아서 명맥을 유지하는 클래식이니 교향곡으로 바뀌고, 나중에는 이거 자체가 엄청 돈 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바뀌면서 비틀즈, 마이클 잭슨, 서태지, 강남 스타일 뭐 이런 걸로 바뀌었다. 정말 상전벽해 그 자체이지 않은가?

또한 음악을 널리 공유하고 퍼뜨리는 기술도 상상을 초월하게 발달했다.
소리바다가 없어진 대신에 유튜브로 그냥 아무 음악이나 다 찾아 들을 수 있다..;; 새로 출시되는 음반뿐만 아니라 옛날에 발매됐던 음반까지 몽땅 다 아카이빙까지 하고 있으니 실로 무서운 물건이 아닐 수 없다.

출판물의 폰트라든가 자동차 디자인, 건물 모양, 사람들의 옷차림(특히 여성)을 보고서 우리는 대충의 연대기를 알 수 있다. 반대로 시대극의 고증 정확성도 판단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음악 스타일도 시대별로 개성이 아주 명확하기 때문에 연대기의 판단에 유의미하게 기여할 수 있다. 1500년대에 루터가 지은 “내 주는 강한 성이요”만 해도 그 시절엔 정말 격식파괴 그 자체인 강렬한 CCM이었다는데 말이다.

음악의 유형 내지 역사와 관련하여 본인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1. 락과 힙합

(1) 마초 백인 아저씨가 치렁치렁 장발에다 바이크 운전자 같은 가죽잠바 차림에,
일렉기타 들고 찌링찌링 소리와 정신없는 드럼 비트에 맞춰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거랑....

(2) 농구 유니폼 같은 차림의 흑형이 세 손가락으로 xyz축 삿대질 하면서
적당한 비트에 맞춰 "헤이 요 왓썹 피스~~!!" 이러고 롸임 맞춰서 재잘재잘 랩 하는 거.
야외에서는 붐박스 들고 비보이 댄스, 실내에서는 LP판떼기 들고 디제잉.
이 둘은 영역이 서로 많이 다른 거구나.. 이놈의 음알못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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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본 환타 CF에서는 A반 카와장 선생과 F반 DJ 선생이 제각기 나왔던 것이었다.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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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들이 흑인영가, 째즈(루이 암스트롱!!)에 이어서 힙합까지 만들어 낸 건가? 대단하다.
저게 원래 자기네들 커뮤니티에서는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같은 전통민요 노동요가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20년 전에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 나돌았던 병맛 Visual Studio 2005 CM쏭 링크를 걸어 본다. ㄲㄲㄲㄲㄲㄲ 가사에 "고객 / 고개, 팀장 / 심장, 후배 / 두 배" 롸임도 나름 절묘하게 들어가 있다!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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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악과 R&B

내가 보기에 성악은 으아아아아아아~ 단음을 귀가 찢어질 정도의 성량으로 크게 내지르는 거고, (박 종호, 조 수미 같은)
R&B는 여러 음을 오르내리면서 우우~우으으으으으으~~~ 아놔 글로 표현할 수는 없는데, 이러는 거 같다. ㄲㄲㄲㄲㄲㄲㄲ (나얼, 박 정현 같은)

가요는 댄스곡과 뮤직비디오의 비중이 커지면서 정작 본질인 노래를 녹음으로 때우는 립싱크 관행이 논란이 됐었다.
그러나 성악은..?? 공연장에 애초에 마이크가 없다~!! 클래식 성악은 마이크나 스피커, 녹음기 같은 음향 장비가 발명되기 전부터 존재했던 장르이기 때문이다. 립싱크 따윈 상상도 할 수 없다.

3. 리듬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들었던 제일 기괴한 리듬 톱 쓰리는

  • 강남스타일(옵, 옵, 옵, 옵.. 오빤 강남 스타일),
  • 마카레나(뻡 '뻡 뻡 뻡 뻡... =_=), 그리고
  • 주토피아 try everthing (오 오 오 오오~~)

이다.
음높이의 변화 없이 박자만으로 사람을 굉장히 흥겹게 하거나 심지어 긴장· 흥분시킬 수도 있다는 거다.

특히 try everything 저 리듬은 오선지를 생각하면서 들어 보면 점8분음표가 쫙 이어졌다 이러면서.. 나 같은 비전공자한테는 시창이나 채보가 대단히 어렵다.
옛날에 Looking for you에서 반음계 단위로 멜로디가 현란하게 오르내리는 구간을 채보하던 것보다 이 리듬 채보가 더 어렵더라.
컴퓨터로 치면 word 경계에 align이 안 된 메모리에 계속 접근하는 느낌이다. 그러니 한 클럭 만에 처리가 안 되고 여러 클럭이 든다.

음치가 있는 것처럼 길치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악보 읽으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16분음표나 8분음표 박자에 딱딱 맞게 들어가고 발성하는 거.
운전하면서 내비 안내를 읽으면서 여러 모퉁이들 중 어느 쪽에서 오른쪽, 어디에서 좌회전을 맞게 찾아가는 거.
지도 그림과 전방 실제 화면을 맞게 동기화시키는 거. 이것도 뭔가 서로 비슷한 일 같다. ^^

4. 핫한 뮤지션들

(1) 그나저나 브루노 마르스..?? 이 사람이 초대박을 치면서 요즘 그렇게도 잘나가는 뮤지션이구낭.. 여자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본좌이고. 이 사람들은 뭘 그렇게 천재적으로 잘해서 히트곡을 만들어 내고 빌보드 차트에 오르고 떼돈을 번 걸까? 요즘은 음반 판매량도 아니고 음원 스트리밍 조회수와 노래방 로얄티(!!!!)로만 수익이 나올 텐데 말이다.

(2) APT 아파트라는 노래가 작년에 그렇게도 히트였다는데.. 브루노 마르스가 블랙핑크 '로제'라는 한국계 가수와 같이 만들고 부른 곡이다.
얘는 아무래도 술자리 게임 노래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보니 기반 리듬이 심하게 어렵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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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파트 아파트~ 딴 딴딴 딴딴딴.. 이건 굿거리는 아니고 휘모리 장단인데???
물론 이것만 반복되는 건 아니고 바리에이션 리듬도 나온다. =_=;;

(3) 2012년에 말춤으로 전세계를 뒤흔들었던 싸이는 요즘은 뭐 하고 지내는지.?? 이 사람은 유튜브의 역사상 최초로 32비트 정수 범위를 초과하는 동영상 조회수를 달성했었다!
글쎄, 평생 먹고 살 돈 다 벌었으니 은퇴를 했는지 다른 사업을 하는지.. 모르겠다.
배우 김 희원이 방탄유리의 아성을 또 넘어서기 어렵듯, 저 아저씨도 강남 스타일의 아성을 또 넘기는 어려워 보인다.

(4) 닥터 드레, 이박사...;; 뮤지션들 중에 은근히 박사 호칭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트로트'가 복고 유행인지 케이블TV(종편) 위주로 그렇게도 뜨고 있는데, 이런 건 세계화가 가능할지 모르겠다.
참, 미국 가요계에는 반대로 우리나라 같은 걸그룹=_=은 없는 듯하다.

5. 보딩뮤직

자동차에서 3점식 안전벨트를 최초로 도입한 제작사는 볼보이지만, 카오디오라는 걸 최초로 장착한 회사는 미국 GM이었다고 그런다. 운전하면서 라디오나 음반도 들으라고 말이다.

현대엔 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자가운전하는 게 생활의 일부가 됐다. 그리고 고급스럽거나 장거리· 장시간 가는 대중 교통수단들은 출발 전이나 도착 직전에 적절한 BGM을 넣어 주는 게 승객에게 청각적으로 굉장히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는 관행이 됐다. 그러면 그 곡의 작사· 작곡자나 가수에게는 소정의 로얄티가 지급될 것이다.

그래서 '보딩뮤직'이라는 장르가 등장했다. 이건 음악 성향 자체의 역사라기보다는 음악의 활용 역사에 가까운 듯?
거북이 '비행기'는 정말 대놓고 이 용도로 만들어진 노래 같고, 김 동률 '출발', 그리고 이들보다는 최근곡인 볼빨간사춘기 '여행'.. 얘들은 울나라 대한항공의 여객기에서 보딩뮤직으로 사용된 적이 있거나 현재도 흘러나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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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빨간사춘기 '여행'은 뮤직비디오부터도 비주얼 영상미가 정말 작살..ㄷㄷㄷㄷ)

그랬는데.. 항공 쪽이 아니라 대한민국 철도청이 이 분야에 의외로 선구안이 있었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선보였던 새마을호 Looking for you는 ‘보딩뮤직’이라는 장르에서 세계 음악사에 한 획을 당당히 긋게 되었다. 이때가 정말 리즈 시절이었다.
음악의 역사 얘기를 하는데 Looking for you 얘기를 빼먹는다면 섭섭하지 않겠냐 말이다. ㄲㄲㄲㄲ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25/07/04 08:35 2025/07/0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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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들, 취향 존중합니다

1.
우리에게 아이작 뉴턴은 "사과가 왜 땅에 떨어질까?"에서 시작해서 고전역학을 엄밀하게 정립한 위대한 물리학자, '프린키피아'의 저자, 미적분학의 초창기 선구자 정도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거기서 좀 더 나가면.. 너무 연구에 몰두한 나머지, 계란 대신 회중시계를 끓는 물에다 집어넣어 삶아 버렸을 정도로 초인적인 집중력의 소유자 정도?

이 사람은 수학· 과학뿐만 아니라 다방면으로 천재였고 덕질을 한 게 많았다.
그는 과학자이기에 앞서 조폐국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있었다. 화폐위조범들을 과학적 증거로 잡아내서 기소하고 중형을 때리는 걸 즐겼다. "드디어 정의가 실현되었구나!! ㄲㄲㄲ"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의 우사미 짱 같은 기질이 있었다;;

그는 경제· 금융, 재테크 쪽도 잘알이어서 굉장한 부자였다. 몰빵 투자를 하나 잘못하는 바람에 요즘 대한민국 시세로 수십 억에 달하는 재산을 한순간에 날린 적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 정도로 하루아침에 쫄딱 망한 알거지로 전락하지도 않았다.
"내가 우주 천체의 운동은 다 계산하고 예측해 냈지만 이놈의 사람 심리와 돈의 흐름은 도무지 모르겠다" 라는 명언이 이때 나왔었다. 뭐, 서양은 조선 시대부터 이미 기업이란 게 있고 주식· 선물 거래도 있었다는 게 놀랍기도 하지만 말이다.

게다가 뉴턴은 과학, 철학을 넘어 신학에도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성공회 신자를 표방하면서 확실하게 유신론자이긴 했지만, 자기 식으로 요모조모 따져 가며 독특하게 믿었다.
그는 '아리우스 파' 성향이었는지, 삼위일체를 믿지 않았다. 예수는 신이 아니라 신과의 매개자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렇게도 신학에 조예가 깊었다면서 그럼 요일 5:20 같은 구절은 못 봤나~ 하는 생각이 든다만.. =_=

그리고 그는 더 나아가..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면서 딤전 3:16에 '하나님'이라든가, 요일 5:7 같은 구절은 "원래 성경에 없던 말이 후대에 무단으로 추가된 거다~~ 추적을 해 보니까 무슨 1500년대(자기 기준으로는 겨우 100년 남짓 전) 필사본에서 추가됐다..;;"

즉, 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일종의 변개된 성서 본문 옹호를 했다!! 와~ 바로 자기 고국에서 불과 반세기쯤 전에 킹 제임스 성경까지 출간돼 나왔는데 말이다.. =_=;; 킹 유일주의자가 보면 뒷목 잡았을 일이겠다.

2.
20세기 초, 체코의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는 골수 미친 철덕이었다고 한다.
집채만 한 쇳덩어리가 칙칙칙쉭쉭쉭 소리 내면서 굴러가는 걸 보고는 한눈에 반해 버렸다.
열차 타거나 누구 마중 나갈 일이 없는데도 철도역을 기웃거리면서 열차 지나가는 걸 구경하면서 입 헤 벌린 건 말할 것도 없고..

"내가 다시 인생을 산다면 단순히 기관사 정도가 아니라 증기 기관차를 개발하는 엔지니어 공돌이가 되고 싶다",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내가 지금까지 만들었던 교향곡을 다 포기해도 좋다" 이런 말까지 공공연하게 했다.
이 사람은 증기 기관차가 아니라 전기 기관차/전동차의 VVVF 구동음을 들었다면.. 그 음향을 응용해서 교향곡 하나 무조건 만들었지 싶다.

3.
한편,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영국의 그 간호사· 보건행정가)은 골수 캣맘이었다고 한다.
“고양이는 인간보다 연민, 감성이 더 풍부하다! 하트뿅뿅~~” 이랬고, 평생 거의 60마리에 달하는 길고양이들을 돌봤던 것으로 여겨진다.
심지어는 자기 애착 고양이 중 하나에다가는 당대 독일 제국 수상의 이름을 따서 ‘비스마르크’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나이팅게일은 병원에서 발로 뛰며 부상병들 병수발 한 건 크림 전쟁 시절에 아주 잠깐뿐이었다. 그 뒤로는 "이런 조치를 취했더니 부상병 사망률이 몇 프로 줄었더라" 병원 위생을 개선시키고 정치질 싸움질까지 불사하면서 보건 관련 예산을 타내는 등.. 보건 행정 쪽으로 훨씬 더 큰 공을 세운 사람이다.
허나, 저 사람은 닝겐 환자가 아니라 꼬냉이는 진짜 사랑과 헌신으로 돌봤던 건지도 모르겠다.;;

4.
우리나라에 고스톱이라는 건 정황상 우 장춘 박사가 최초로 퍼뜨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_=
일본 화투 게임 룰을 일부 변형하여 그 이름도 유명한 '고스톱'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만들고 대한민국 땅에 이걸 퍼뜨린 장본인은....;; 저 사람이었을 거라고 추정된다~!

우 장춘은 을미사변에 가담했던 우 범선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일본인이었다.
우 범선은 국모의 원쑤를 갚는다는 명목으로 고 영근에게 곧 암살 당했고, 아들인 우 장춘은 일본인 어머니 편모 가정에서 컸다. 졸지에 과부가 된 그 일본 여인이 나름 조선 혈통의 아들을 대학까지 보내고 위대한 과학자로 키운 것이다.

우 장춘은 어린 시절엔 한국어를 몰랐다. 일본 애들 사이에서 왕따 안 당하고 고등교육까지 받으려면 당연히 완벽하게 일본인 행세를 해야 했다.
그러다가 그는 어른이 된 뒤에야 무슨 모세처럼 한국인 정체성이 생겼다. -_-;; 공 병우 박사가 이 극로 선생을 만나서 뭔가 각성을 했다면, 우 장춘은 김 철수라는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에게서 감화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종전 후엔 일본에 남지 않고 한국에 들어왔으며, 일체의 정치질이라고는 안 하고 죽을 때까지 우직하게 종자 연구만 했다. 국민들이 굶주리는 와중에 잘 자라고 과육 많이 맺는 고효율 종자를 들여오고 개발하고, 자기 생활비 사비로 쓰라고 받은 돈까지 몽땅 다 종자 구입하는 데 썼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이 사람은 연구 말고는 인생에 일체의 재미나 낙이라고는 없는 샌님이 아니었다. 게임 쪽에 은근히 승부욕 있고 화투의 승리 확률을 수학적으로 분석도 했다는 사람이라네.. ㄷㄷㄷㄷㄷㄷ
이거 무슨 세종대왕이 고기를 너무 좋아하고 고기만 잔뜩 먹어대서 비만에 성인병 달고 살았다는 소리처럼 들린다.

구한말의 풍운아로 태어나서 농학박사가 되고 다윈 진화론을 보강시키고, 농업 종자를 연구하면서 고스톱까지 만들어 퍼뜨린 우 장춘 박사는 공 병우 박사 못지않게 진짜 대단한 분 같다. ㅠㅠㅠㅠㅠㅠㅠ

* stop의 발음이 우리말에서는 '스돕' (고스돕 =_=)처럼 되고, 영어로는 '스땁'처럼 되는 것 같다. ㅌ을 그대로 발음하기는 불편한지 ㄷ나 ㄸ로 다들 바뀐다.

말이 나왔으니 천재들 얘기를 좀 더 늘어놓고 글을 맺겠다.
만 24세 나이(또는 ±1 부근) 때...

  •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피에타' 조각상을 만들었다.
  • 필립 캐츠는 zip 압축 알고리즘과 파일 포맷을 만들고, pkware라는 회사를 차렸다.
  • 빌 게이츠는 하버드를 잠깐 다니던 시절에 팬케이크 정렬 알고리즘에 대해서 이산수학 학술지 논문을 투고했다.
  • 손 기정 선수는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 존 카맥은 Doom 게임을 만들었다. 어셈블리어 안 쓰고 C 코드만으로 486 PC에서 텍스처 매핑이 적용된 준 3D FPS 게임을 만들었다.
  • 앨런 튜링은 저 나이 때 "계산 가능한 수에 대하여"라고 튜링 기계 개념을 제시한 논문을 발표했다.
    과학/철학에서는 "재현 가능, 반증 가능"을 논하고 천문학에서는 "관측 가능"을 논하는데, 전산학에서는 "계산 가능" 그 자체, 또는 "다항식 시간 안에 계산 가능"을 중요하게 따진다.

그리고 이건 머리 천재하고는 약간 다른 영역이지만..

  • 윤 봉길 의사는 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천장절 행사 때 폭탄을 던졌다.
  • 김 대건 신부는 24를 약간 초과했지만 비슷한 나이 때 순교했다;;;;

난 벌써 나이가 40을 넘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ㅠㅠㅠㅠㅠ 이 나이 먹도록 뭐 했나.
나는 만 24살 때 뭐 하고 있었지??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인제 버전 4.x이던 초 허접 상태였다. 그 나이대일 때 성경 노선도를 만들었고 Looking for you 악보 채보를 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5/07/01 08:35 2025/07/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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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리 승만 할배는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으로서 0에서 1을 만든 거인 위인 초인인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는 20세기 초 젊은 시절에 가츠라 테프트 밀약을 당하는 걸(조선이 미국으로부터 버림받고 일제 식민지가 승인됨) 직접 겪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로부터 반세기 뒤에 자기가 대통령이 됐을 때는 미국이 울나라를 버리고 싶어도 못 버리게 나라 틀을 짰다.

생각을 해 보셔, 해방 직후부터 용산에 주한 미군 기지가 있었으면 6· 25 당시에 겨우 사흘 만에 서울이 함락됐겠냐?
친서방, 시장 경제 자유 민주주의, 농지 개혁, 독도 평화선, 주한미군, 반공포로 석방, 한미 상호방위조약, 학생들한테도 민주주의 교육, 국비 유학 장학생 양성..
폐허 속에 붕괴 직전이던 집을 정말 초인적인 인맥 빽 동원해서 무너질 일이 없게는 만들어 놨다.

뭐, 큰 고비를 넘긴 뒤, 인의 장막 속에서 서서히 자기과시와 흑화 조짐이 보인 것은 사실이다.
곳곳에 할배 동상이 세워졌다. 1950년대 후반 몇 년간은 3월 26일인가 할배 탄신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됐다. 지폐에 할배 얼굴은 진작부터 들어가 있었고.
우리나라 역사상 생존 현직 대통령이 이 정도로 라이브로 떠받들어졌던 건 저 1공 시절이 유일 전무후무하다.

그래도 이때는 한국인들이 대통령이란 걸 처음으로 경험해 보고, 조선 왕정 시대와 일제 시대의 관념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었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도 꼴랑 10년 남짓이었다.
할배는 조선 황실을 그렇게도 싫어하고 박대했는데 그래도 늘그막에 자기가 왕 같은 대접은 좀 받고 싶어한 것 같다. 그러니 할배 주위에 아부꾼 간신배들도 끊이지 않았던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배는 잘못한 것보다 잘한 것이 압도적으로 훨씬 더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 역시 주지의 사실이다. 할배가 진짜로 악의적인 독재자였으면 애초에 젊은 애들한테 민주주의 교육을 안 시켰을 것이다. 4 19 따위는 그 시절 북괴나 동구권 나라에서 그랬던 것처럼 기관총과 탱크로 유혈진압 하면 그만이었다.

이 자리에서 내가 긴 말 하지는 않겠지만, 리 승만이 악의적인 분단의 원흉이라니(!!) 친일파 득세 원흉이라니, 리 승만 대신 김 구만 대통령 됐으면.. 그거는 정말 일고의 가치가 없는 소리이다.

2.
자, 저렇게 리 승만 할배는 항일 독립운동으로나 훗날 울나라 초대 대통령으로나 워낙 큰 족적을 많이 남겼다. 공도 있고 과도 있으며, 그거 갖고 호불호도 많이 갈리는 편이다. 과는 공에 비하면 그야말로 자릿수가 다를 정도로 쨉이 안 됨에도 불구하고!

(아, 오해하지 말라. 리 승만이 정치인으로서 실책을 저지르고 잘못한 것이 작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잘한 것이 정말 너무 넘사벽급으로 엄청나다는 말을 하는 것일 뿐이다.
디즈니 뮬란의 끝부분 대사처럼 말이다. "뮬란, 자네는 제멋대로 가출해서 입대해서 자기 상관을 속이고 궁궐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온갖 사고를 치고는.. 우리 국가와 민족을 구해냈다" 할배의 공과 과가 이런 관계라는 얘기다.)

이런 할배에 비해 서 재필은 그 정도 임팩트가 없어 보인다. 해방 후에 국내에서 정치를 하지를 않았으니 실책이나 악행, 과오를 깔 것도 없다.
그러니 서 재필에 대해 막연히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그냥 미쿡인이었음. 한국어도 다 까먹고 고국과 동족을 깔보고 무시했음. 미국으로 돌아가서 지 한몸 편하게 잘 살았음. 친일파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막 애국애족 한 것도 아님.”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말이다. 무덤에 누워 있던 서 재필이 저 말을 들으면 벌떡 일어나서 “뭐가 어쩌고 저째?” 하면서 불같이 화를 내지 싶다. 그 사람이 왜 미국인 행세를 했는지 생각은 해 보셨는가?

서 재필은 20세 청년 나이로 벌였던 갑신정변이 실패하는 바람에 역적으로 몰려서 정말 참혹한 멸문지화를 당했던 사람이다. 자기 부모, 와이프, 심지어 자기 아들, 양아버지, 형.. 집안이 몽땅 싸그리 몰살당했다. 처형, 자결, 노비로 강등..

우리의 고종은 갑신정변 잔당들을 해외로 자객까지 보내서 집요하게 제거했다. 가령, 김 옥균은 중국 상하이에서 피살당한 뒤, 목이 짤리고 머리가 한양 시내에 내걸렸다. (시체를 방부 처리해서 한국으로 운구해 와서는 일부러 저런 짓을)
서 재필은 목숨 부지하려고 일본을 거쳐서 미국까지 도망치게 됐다. 이 모든 게 무슨 고대 근대 중세도 아니고, 1880년대에 구한말 한반도 땅에서 벌어졌다!!

서양에서는 아예 왕을 암살한 반역범이라 해도 가족한테까지 저런 보복을 하지는 않았다. 저 때로부터 수백 년 전에도 말이다. 당사자야 사지 찢기고 내장 끄집어내진 채 죽었을지언정, 가족은 추방이나 신분세탁 정도로 끝났다. 한 마디로 조선이 미개했거나 최소한 고종이 엄청난 암군 폭군이었다. (+ 민씨 일가도)

서 재필은 영어의 영 짜도 모르던 상태에서 인종차별도 쩔던 미국 한복판에 알거지 상태로 내던져졌다. 그러니 생존하려면 이를 악물고 정말 미칠 듯이 주경야독 공부, 공부밖에 할 게 없었다.
결국 그는 만학도 신분으로 고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하고(졸업생 대표 연설), 미국 시민권을 받고 거기서 의대를 나와서 의사까지 됐다! 박 정희가 신분 상승을 위해 외국 나가서 만주군 장교가 됐다면, 서 재필은 더 먼 외국에 나가서 저렇게 출세한 것이다.

그는 미국 간 지 12년 만에 성경의 요셉과 비슷한 급으로 신분이 바뀌어서 조선 땅에 돌아오게 됐다. 독립협회 세워서 자기 고국을 청나라 간섭 없는 나라, 미국 같은 선진적인 시스템을 갖춘 나라로 만들려고 말이다.

이런 그가 자기 가족을 절멸시켜 버린 애증의 고국에서 “헤이, my name is 필립 제이슨. // 오우 노!! 코리아는 이래서 노 답!! ㅉㅉㅉ” 이렇게 미국인 행세를 한 거는 정말 정말 소심한 복수이자 귀여운 애교인 거 같은데 말이다. 미국인 행세를 해야 자기가 미국 정부로부터 보호를 받고 남들이 자기를 함부로 해코지를 못 하지 않겠는가?

그는 진짜로 자기 고국이 싫어졌으면 박 중양처럼 신념형 친일파가 됐거나, 미국에 틀어박혀서 평생 병원이나 경영하면서 떵떵거리며 살았을 것이다. 미쳤다고 현실의 서재필처럼 살았겠냐?
정말 살다 살다 별 희한한 소릴 듣는다.

더 코미디 같은 건.. 이런 서 재필조차도 리 승만의 업적을 가리고 존재를 지우는 대타 용도로는 잘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_=
왜, 미국에 세계 각국 영사관에는 각 나라의 국부들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우리나라는 거기에도 리 할배 대신 서 재필 동상이 있는 식으로 말이다. (영화 건국전쟁 참조) 정말 썅소리 나오지 않을 수 없다.

3.
할배는 대통령으로 선출은 합법적으로 됐는데 장기 집권을 하려고 법을 고쳤던 반면..
박 정희는 첫 시작부터가 군사정변이고 집권 중에도 유신 쿠데타,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다.
정치적인 사고를 제일 크게 쳤고 제일 오래 집권했지만, 그 규모에 비해서 자기를 내세우려 한 정도는 덜했다. 과묵하고 뚝심 있는 편이었다.

박 정희는 우리나라 대통령들 중에 명예박사 학위가 전혀 없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딴 요식행위 다 쓸데없다고 거절하고 안 받았다.

  • “학생 여러분은 내일의 주인공이지 지금 오늘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쓸데없이 좌익분자들한테 선동돼서 반정부 데모질 시위 하지 말고 조용히 공부나 하기 바랍니다)”
  • “내가 벌이는 일이 지금은 잔뜩 욕 먹을지 모르지만 평가는 후세가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할 겁니다. 그래도 성이 안 차면 나중에 내 무덤에다 침이나 실컷 뱉으시오.”

쿨하고 씨크하고.. 뭔가 미래를 바라보고 행동하는 구석이 있었던 것 같다.
저 사람은 암살당하지 않았으면 과연 언제까지 대통령을 했을까? 9대 임기가 끝나는 84년쯤에 자체개발 핵무기 공개하고 90년대 올림픽 유치까지 마치고 나서 퇴임했을까?
저 사람은 제 명에 죽었다면 자기 무덤도 성대하게 꾸미지 말라고 유언을 남겼지 싶다. 지금 같은 왕릉처럼 만들지 말라고 말이다.;;

박 정희는 영부인이 역대 제일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것도 생각할 점이다.
영부인이 소록도까지 찾아가서 위문했던 것 때문에 오죽했으면 2012년도 대선 때 그 동네가 7시 지역에서 '유일'하게 레카 표가 뭉괴 표보다 더 많았었다.

그리고 더 여담을 보태자면..
박 정희는 야망이 있는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뭔가 모욕이나 무시를 당하면 그걸 절대로 넘기지 않고 언젠가 반드시 다 설욕했다.
그래서 학교 선생질 하다가 일본인 교사들로부터 무시 당하자 아예 만주국 장교가 돼서 돌아와서 걔들을 데꿀멍 시켰으며,
가난한 놈팽이라고 장인어른으로부터 무시 당하자.. 아예 나라를 뒤집어엎고 대통령이 돼서 장인으로부터 사과까지 받았다.;; 무섭지 않은가?

또 저 사람 가문은 부친, 당사자, 아들에 이르기까지 다들 아들을 40~50 나이가 돼서야 얻었다. 대를 이은 노산 가문인 게 인상적이다. 박 정희가 1917년생인데 아들 박 지만의 막내아들이 2014~2015년생이니.. 그래도 박 지만은 요즘 세상에 아들만 넷인 애국자 집안이 됐다.;;

4.
이런 박 정희에 비해.. 후임 전땅끄는 좀 더 '촐랑촐랑' 경박한 이미지인 것 같다. =_=;;
자기를 드러내고 쑈맨십 내세우는 걸 좋아했다.
오죽했으면 이때 '땡전뉴스'라는 게 있었다. 심지어 영부인도 남편이랑 같이 어디서 환호를 받으면 같이 손 흔들면서 화답도 했다.
"인간 전두환", "이 시대에 대한민국을 위해 준비된 답정너 대통령"...;;

박 정희 때는 5 16이나 유신 쿠데타 시절에도 언론이 이 정도로 치켜세우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ㅎㅎ 리 승만 시절과는 좀 다른 형태의 아부꾼이 등장했다.
왜, 옛날에 미국 맥아더 원수도 쑈맨십 있고 언론을 적절히 잘 구워삶던 사람이지 않았던가?
인물 사진, 풍경 사진 한 장을 언론에 내보내더라도 이 구도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를 치밀하게 계산하는 거 말이다. 전땅끄에 대해서도 그런 기질이 느껴진다.

그 과시욕이 어딜 가지 않아서 제주공항 신설 활주로 준공식에 참석하러 갈 때도 군용기까지 악천후에 무리해서 의전용으로 띄웠다가 날려먹은 적이 있었다.
땅끄는 평생 사는 방식이 그러했기 때문에 정치질의 달인이 됐고, 그 기질이 나중에는 "카메라들이 나만 좀 삐딱하게 찍어. / 요즘 젊은 친구들이 나한테 감정이 안 좋은가 봐. 내한테 당해 보지도 안 해놓고"라는 희대의 멘탈갑 명대사로 이어졌다.

전땅끄는 할배나 박 정희와 달리, 직선제 선거를 통해 당선된 내력이 전혀 없는 대통령이었다.
그래도 저 사람도 권좌에 오르는 과정이 좀 에바였지, 일단 대령통으로서 재임 중의 뚝심 있는 행적은 괜찮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저 사람도 죽을 때는.. 북한 땅 보이는 전방에 이름없이 묻어 달라고 당부했었는데.. 지금 장지를 정하기는 했나? 어디 묻혔나? 참 궁금하다.

※ 나머지 여담

(1) 백범 김 구에 대해서 '킬구'라는 별명이 나도는데.. 이건 당사자의 성깔과 행적을 감안하면 마냥 터무니없는 별명이나 멸칭이 아니었다.
소싯적에 일본인 민간인을 린치해서 죽였던 ‘치하포 사건’뿐만이 아니라, 그는 임시정부를 운영하던 시절에도 수틀리면 테러와 암살을 종종 사주했기 때문이다. 변절한 안 중근의 아들을 암살하려 했고, 김 립 같은 생사람을 밀정이라고 의심해서 죽여 버리기도 했고.. 뭔가 주토피아 땃쥐 “Ice them!” 같은 인상이다.
그랬는데 그도 결국은 암살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2) 할배와 박 정희 사이에 잠깐 대통령을 했던 윤 보선은.. 권력욕이 있었는지 2공 시절 대통령을 퇴임하고도 3공 시절에 대선에 ‘또’ 출마를 했던 유일한 인물이다. 신기하지 않은가?
1960~61년 사이 윤 보선 시절에 경무대가 청와대로 바뀌고, 형무소가 교도소로 용어가 바뀌었다.

(3) 할배는 “대통령은 n회 이상 중임할 수 없다. 단, 초대 대통령은 예외로 한다”라고 정말 속내가 노골적으로 뻔히 보이는 개헌을 추진했었다.
그 뒤 전땅끄는 선례가 선례인 관계로 옛날 같은 독재 장기집권을 대놓고 추진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국가원로 자문회 운운하면서 대통령 위의 ‘상황’ 자리를 만드는 데 진심이었다. 꼼수 보소.. 그 흔적이 현행 헌법에까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당연히 사문화된 지 오래다.

(4) 대한민국 역사상 범죄자를 길거리에다 조리돌림 시켜서 망신 준 건 1961년에 “나는 깡패입니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읍니다” 시절이 유일, 전무후무했다.
한편, 살인이 아니라 강간 절도 범죄 누범만으로 무려 ‘사형’이 집행된 건 1985년 즈음, 전땅끄 시절의 가정파괴범 처벌이 유일했다.

(5) 박 정희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때 빡쳐서 북괴를 상대로 “미친 개는 몽둥이가 약이다”라고 일갈했었다. (내 철모와 군화를 가져오너라!)
김 영삼은 역사 바로 세우기 명목으로 중앙청 건물 철거를 강행하면서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라는 말을 남겼다.

Posted by 사무엘

2025/06/27 19:35 2025/06/2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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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올해 상반기가 끝나 간다.
본인은 이제 좀 슬럼프를 벗어나서 일상으로 돌아온 듯하다. 한때 꽁꽁 얼어붙었던 블로그의 글 빈도도 회복됐고, 손을 완전히 놔 버린 지경이던 한글 입력기 개발도 재개됐다.
예전에는 글을 분량에 따라서 2, 2.5, 3일 간격으로 올렸는데 이제는 최소 2.5, 3, 3.5로 텀을 좀 늘렸다.

오는 6월 28일 토요일엔,

  • 인천 지하철 1호선의 북쪽 검단 연장 구간이 개통할 예정이다.
  • 서울· 수도권 지하철의 기본요금이 150원 더 오를 예정이다. (2년 전, 버스· 지하철 요금이 올랐을 때부터 계획됐던 사항임)
  • 정확히는 전날(27일) 저녁이긴 하지만, 오징어 게임 3이 공개될 예정..이다. ㄲㄲㄲㄲㄲ

요 때에 맞춰서 날개셋 프로그램들 새 버전도 공개됐으면 좋겠지만 그건 못 해서 아쉽다. 현재로서는 그저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타자연습은 무려 4년 만에 4.0을 낼 예정이고, 입력기도 10.8? 정도가 되겠다. 이번 7~8월은 안 넘기고 나왔으면 좋겠다.
이건 개발자가 유부남이 되고 나서 공개되는 첫 버전이 되겠다.

역사적으로 6월 28일은..

  • 뭉괴 시절에 진짜 아무 명분도 없이 뜬금없이 바뀌어 버린 철도의 날. (누가 9월 18일로 도로 좀 되돌려라!)
  • 그리고 6 25 사변 초기에 서울이 함락당하면서 벌어졌 서울대 병원 대학살일이다.

그 다음날 6월 29일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 선언(1987), 삼풍 백화점 붕괴(1995), 제2연평해전(2002)과 같은 굵직한 사건들이 있었다.
백범 김 구는 6 25 사변일으로부터 거의 정확히 1년 전에 피살 당했구나. 1949년 6월 26일 일요일. 흥미롭다.;;

날짜와 관련해서는 이런 과거 역사와 미래 사건들이 떠오른다만..
이 글에서는 그보다 전인 이 달 초, 현충일 연휴 때 만들었던 추억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본인은 그때 와이프와 함께 양양의 낙산 해수욕장과 하조대 해수욕장, 그리고 하조대 전망대와 정자를 다녀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경치가 상상 이상의 대박이었다. 대한민국에 이런 퀄리티의 해변이 있었나 다시 보게 됐다.
신혼여행 가서 봤던 동남아 모 바닷가 색깔의 절반에는 근접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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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먼저 들렀던 낙산 해수욕장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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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이 어쩜 이렇게 계곡 물처럼 맑고 투명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다음에 맑은 낮 시간대에 하조대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하조대 해수욕장의 모습은 환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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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하늘 아래에 에메랄드 색 바다. 그리고 가까이에서 보면 3~5m 아래 밑바닥이 보일 정도로 청명한 바닷물, 상아색의 고운 모래.. 물에 들어가 보니 수온은 완전 냉탕..
이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싹 시원해지고 힐링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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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에 비하면, 서울에서 가까운 영종도 황해 바닷가는 그냥 흙탕물 호수일 뿐이구나 싶었다.
바닷물은 1미터 깊이에서도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구정물인 데다, 모래사장도 모래라기보다 시커멓고 찐득찐득한 진흙에 더 가까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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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조대는 해수욕장은 저렇고, 언덕 위의 '하조대' 정자 부근은 정말 추울 정도로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었다. 시원한 바다에 시원한 솔숲 언덕이라니 여기는 정말 기가 막힌 피서지였다.
울나라 애국가의 2절 가사 "남산 위의 저 소나무"가 실제로 저 하조대 소나무를 말하는 거라 카더라.

그리고 그 당시에 또 인상적이었던 건 양양과 강릉의 날씨 차이였다. 양양과 강릉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은데 낮 기온 차이가 많이 났다.
전자는 25도 부근에 머물렀던 반면, 후자는 30도.. 강릉이 훨~씬 더 더웠고 햇볕 열기가 강했다. 오후 4~5시 사이의 강릉이 오후 1~2시 사이의 양양보다 더 더웠으니 말 다 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이상이다.
한때 양양의 해수욕장들은 뭔 계기가 있었는지 젊은이들 사이에서 서핑 명소로 유명해졌다.
그랬는데 한편으로 풍기문란한 장소=_=;;라는 프레임이 씌워져서 "가족 단위로 휴가 가기에 민망한 곳"이라는 편견이 생기고, 이 때문에 피서객이 오히려 감소했다고 한다. 양양 주민들 입장에서는 억울해서 펄쩍 뛸지도 모르겠는데..

어쨌든 해수욕장이 정식 개장하기 전에 미리 가 보니 양양의 바닷가는 해수욕장으로서는 정말 최고 퀄리티였다.
속초나 고성까지 너무 북쪽으로 올라가지 않아도 이렇게 좋은 해수욕장이 있으니 여름에 놀러 다녀오면 좋을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5/06/25 08:35 2025/06/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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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0년대엔 공룡기업 IBM이 메인프레임에만 안주하느라 개인용 컴터 PC 시장의 흐름을 못 읽었다. 그 결과 그 나와바리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한테 다 내줘 버렸다. IBM은 나름 컴퓨터 아키텍처를 설계할 줄 알고 OS/2 같은 운영체제를 만들 기술도 있는 하드· 소프트 겸비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나중엔 거의 같은 패턴의 역사가 또 반복되었다.
마소와 인텔도 공룡기업이 된 뒤엔, 2000년대 후반 모바일 시장의 흐름을 못 읽었다. 결국, 그 나와바리는 구글과 애플(소프트), 퀄컴과 ARM(하드) 등에게 다 내줘 버렸다.
앞으로 이런 식의 파이와 기회가 또 새로 생길지, 저 기업들조차 후발주자에게 뭔가 주도권을 빼앗기는 날이 올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2.
좀 옛날 얘기를 하자면..
1940년대에 강대국 해군 장성들은 "앞으로 해전의 주인공은 항공모함이 될 것이냐 전함이 될 것이냐.."를 갖고 많이 고민했었다.
그게 삼성이니 LG 경영진이 2010년대에 "지금이라도 스마트폰을 육성할까? 아님 그냥 원래 하던 피쳐폰에나 계속 올인할까?" 고민하던 거랑 아주 비슷한 양상이었지 싶다.;;

이때 노키아, 모토로라, 블랙베리 같은 쟁쟁한 업체들이 몰락했으며, LG도 실패해서 MC사업부를 통째로 정리해 버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전자만이 성공했다.
저 S사도 처음에 Windows Mobile 기반으로 옴니아를 밀던 시절에는 그냥 갤갤거리면서 삽질을 많이 했었는데 언제부터 무슨 계기로 안드로이드 기반의 갤럭시로 기사회생 했나 모르겠다. 그 이면에도 수많은 공밀레 비화가 있지 싶다.

3.
옛날에 코닥 사는 한때 마케팅 잘하고 연구개발 인력도 우대하는 엄청난 모범 기업이었다. 무려 1970년인가 1980년대에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까지 했었다.
그러나.. 디카의 미래를 과소평가하고 계속 필카만 고집하다가 지금처럼 몰락했다.

그 당시에는 디지털 카메라를 만들어 봤자 이 거대한 디지털 정보를 신속하게 처리해 줄 컴퓨팅 환경이나 메모리 기술이 가성비 있게 뒷받침되지 못할 거라고 경영진들이 판단했던 것 같다. 그러니 이미 잘나가고 있는 필카와 쓸데없이 팀킬만 벌일 것 같은 분야의 상품화를 접어 버렸지만.. 그건 단견이었다.

4.
전에 한번 얘기했지만 이스트소프트는 한때 알툴즈 프로그램들의 품질과(특히 '알집'과 알FTP) 유료화 정책 때문에 무진장 욕을 많이 먹었다. 컴덕들 사이에서 평판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러나 저 회사 자체는 지금까지 뭔가 뜬다고 하는 유행 분야들만 귀신같이 공략하면서 중견기업으로 어째어째 살아 있다.

1990년대에 워드 프로세서, 2000년대 초에 유틸리티와 온라인 게임, 2010년대 중반부터는 본격 AI 기업으로..;; 알집을 만들던 회사가 요즘은 버추얼 인플루엔서를 만들어서 운용하고 있을 정도로 체제를 싹 바꿨다.
긴 세월 동안 주력 사업 분야를 저렇게 자유자재로 바꿔 온 IT 기업은 흔치 않은데 말이다.;; 그 중에 진짜 고인물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초대박 난 게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요즘 하도 AI, AI 하니까 삼성에서는 애플 아이폰에도 없는 뭔 동작 자동 인식 AI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글쎄, 당장 신기하기는 하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은 기능이 괜히 들어가서 폰 가격이 비싸지고 배터리가 더 두툼해지고 CPU와 전력 소모가 늘어난다거나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5.
1990년대 말부터 2010년대까지 약 20년 남짓한 기간 동안은 PC 환경에서 인스턴트 메신저 내지 인터넷 전화 솔루션이란 게 존재했다. ICQ, MSN 메신저, 스카이프, 네이트온 같은 추억의 프로그램들 말이다.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라면 다 고유한 IP 주소가 있을 테니, 특정 IP 주소로 텍스트 메시지를 쏴 주는 원시적인 툴이야 운영체제의 기본 유틸리티 차원에서 제공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실용성이 떨어지고 보안도 심히 취약하다. 결국 회원 가입을 받아서 id로 사용자를 식별하는 중앙집중형 메신저 프로그램이 등장하게 됐다.

그랬는데.. MSN이 2010년대 초에 제일 먼저 서비스를 접고 없어졌다. 마소가 아예 스카이프를 인수해 버렸고, MSN을 이걸로 대체했다.
한때는 인터넷 전화 분야에서는 스카이프가 독보적이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못 읽었는지, 기업 경영상의 삽질과 오판이 있었는지 스카이프는 비교적 최근인 지난 5월부로 완전히 섭종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스카이프가 망한 이유에 대해서 분석한 유튜브도 여럿 있다.

공교롭게도 ICQ는 작년, 2024년 6월 말이니 지금으로부터 거의 정확히 1년 전에 섭종했다. 햐~ 30년 가까이 시대를 풍미했던 메신저인데.. 아 그러고 보니 천하의 구글에서도 2010년대에 잠깐 구글 플러스라는 이름으로 PC+모바일+웹 복합인 구글 메신저를 선보였다가 사업 접었었다.
한때 대한민국 국민 메신저였던 네이트온은 산소호흡기 장착한 채로 살아 있기는 한가 보다. 한때는 '이야기'나 '새롬 데이타맨'처럼 PC 통신 에뮬을 개발하던 국내 업체들도 인터넷 전화 분야로 사업을 개척했었는데.. 잘나가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는 뭐 스마트폰 시대와 함께 카카오톡이 이 바닥을 완전히 평정해 버렸다. 애초에 2010년 그 초창기에도 카카오톡 때문에 피쳐폰을 버리고 스마트폰을 장만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고, 이제는 관공서에서 보내는 각종 고지서와 통지서 우편물조차 카카오톡으로 보내는 세상이 됐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전화 요금이나 문자 요금으로 과금되는 통신 트래픽을 훨씬 더 저렴한 인터넷 데이터로 대체해서 동일한 기능을 수행해 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동차에다 비유하자면, 전기차를 만들어서 기름값에 부과되는 세금을 회피하고, 저렴한 산업용 전기로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 말이다. 이러니 통신사들이 심기가 불편해서 한때는 아이폰이 국내에 수입돼 들어오는 것조차 이것저것 태클 놨었다.

WorksMobile 같은 업무용 메신저라든가 Zoom 같은 본격 화상 회의 프로그램은 카카오톡과는 영역이 좀 다른지 현역으로 남아 있다. 사내 인터폰은 스마트폰과 별개로 재래식 유선전화기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업무용 메신저는 B2B 솔루션이니까 고객사에다 바로 과금을 하면 될 테고, 화상 회의 앱은 동시 참석 가능자 수나 회의 가능 시간 같은 것에다 제약을 걸고 부분유료화를 하면 승산이 있어 보인다.

MSN이고 카카오톡이고 무엇이든지.. 세월이 흐를수록 무진장 무거워지고 느려져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게 보안· 암호화 관련 코드 때문에만 무거운 게 절대 아니다. 그냥 간단히 글과 그림을 주고받는 기능만 있으면 수익을 낼 수 없으니 상업 광고가 들어가고 각종 예쁘게 꾸미는 기능, 유료 써비스 관련 기능이 어떤 형태로든 들어가기 때문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바람직한 변화가 아니지만 이건 뭐 어쩔 수 없다.

오죽하면 어떤 해커가 그 메신저 프로그램의 내부 프로토콜을 분석해서 기본 기능만 돌아가는 light weight 클론을 따로 만들기도 할 정도이다. 물론 이건 브라우저의 광고 차단 플러그인 만큼이나 일단은 개발사에서 기를 쓰고 단속하는 행위이다.;;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를 단속하던 게 광고 차단 단속으로 바뀌었다니.. 참 격세지감이다!

6.
아이고 메신저 얘기가 많이 길어져 버렸는데.. 다시 기업 얘기로 돌아와서 좀 어두운 사례들을 나열하도록 하겠다.

블리자드라든가 보잉, 인텔 같은 기업들은 한때 자기 분야에서 날고 기면서 초일류를 자랑하던 집단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들의 최근 행보를 보면 20년~30년 전에 펄펄 날던 그 기세가 절대 영원하지 않다는 걸 느낀다.

넥슨의 흑역사 서든어택 2가 나왔을 때는 블리자드의 오버와치와 얼마나 비교되며 까이곤 했는데, 그 오버와치를 만들었던 모범 개발사조차도 디아블로 이모탈이니 워크래프트 3 리마스터링은 정말 처참하게 욕 먹으며 망했다. 스타크래프트는 주요 개발진이 모두 퇴사해서 유지보수 역량조차 없다고 여겨지지 않는가.

인텔과 보잉은 공통적으로 엔지니어와 연구 개발을 우대하던 경영진이 물러나고.. 인건비 절감과 단기 흑자 실적만 강조하는 경영진 때문에 난리가 났는가 보다. 제품 품질이 떨어지고 장기적으로 더 큰 손해를 당했다.
비행기에서는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허술한 결함과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하고, 인텔은 AMD 같은 후발주자와의 격차가 갈수록 줄어들고..

인텔은 자기 사정이 좋지 않았는지 2020년부터는 1997년부터 20년이 넘게 물주 역할을 했던 인텔 국제 과학기술 전람회(ISEF)의 후원을 중단했다. 이제 그 대회는 I는 떼고서 개최되고 있다~!
글쎄, 더 찾아보니 국내에서는 장학퀴즈(2024)라든가 도전 골든벨(2020)도.. 비교적 최근인 2020년대에 다들 종영했다.

스펀지 같은 단순 지식 정보 프로라든가 노래 경연대회(창작 동요 + 대학 가요) 부류는 시대의 흐름 때문에 폐지될 만하지만(넘쳐나는 유튜브+나무위키 ㅋㅋㅋㅋ).. 저렇게 공익성 있는 프로는 기업 후원이 끊긴 게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제 요즘 자라나는 애들은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제3악장의 의미를 알 기회가 없을 것이다. =_=

7.
우리나라 대형 메이저 게임 개발사 중에서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고, 자체 야구단이 있고 AI 기반 자연어 처리 연구에도 유난히 진심이던 좀 특이한 기업이 있었다.
직원들 연봉과 복리후생은 업계 최상이고 사내 병원과 어린이집까지 있는 꿈의 직장이었다.

웬 게임 개발사가 '한글 및 한국어 정보처리 학술대회'에도 후원을 왕창 하고 거기 소속 연구원이나 엔지니어가 논문을 꾸준히 내길래..
나도 한때는 "진짜 인간 같은 AI라도 개발해서 NPC나 GM 역할을 자동화하려나?" 이런 생각까지 했었다.

저 회사는 20년 30년 묵은 고인물 썩은물 석유 아저씨 유저들만 집중적으로 과금시켜서 먹고 사는 것 같더라만.. 그래도 모바일 게임 하나 잘 만들어서 그걸로도 돈을 빗자루로 쓸어담았다고도 들었다.

하지만 정말 의외이고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게임 개발은 과거의 성공에만 안주하다가 많이 말아먹었고, AI나 NLP는 그쪽대로 딱히 별 성과 없이 돈만 왕창 날린 것 같다.
오히려 거길 나와서 따로 회사 차린 사람들이 더 대박 게임 출시해서 승승장구 중이랜다. 이 정도라면 정말로 이전 직장이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2010년대부터 그렇게도 오래 육성을 했지만 2020년대에 LLM 기반 AI가 왕창 뜨면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AI 전문 스타트업에 비해서도 차별점이 없다. 이제는 그 분야 사업 내지 연구를 접고 매몰비용 처리하려나 보다.;;
오죽했으면 지금도 '연간적자'라고 검색을 하면 나라 살림 적자랑 저 회사 적자 소식 요 둘만 주루룩 뜨네. -_-;;

특히 30여 년 전에 과학고에 카이스트 수석, MIT 박사, 30 초반에 SK 상무 출신이었다는 그 천재소녀 부사장은 미친 스펙에 비해서는 그 이후에 세상을 뒤집어엎을 연구 성과를 낸 게 없고, 행보가 정말 너무 초라하긴 했다;;
과거의 명성 대비, 연봉에 "비해서" 말이다. 결국 작년에 경질됐다.

이렇게 끝날 거였으면 사업이나 경영에 관여할 게 아니라, 그 엄청난 공부 머리를 살려서 평범하게(?) 공대 교수만 하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비슷한 연배인 중국 리 페이페이 교수 같은 사람이 됐어야지.
뭐 지금이야 이미 억만장자일 테니 이제 평생 일할 필요 자체가 없겠지만.. 그 사람이 겨우 그렇게만 탱자탱자 사는 건 재능낭비이고 카이스트의 국비 장학생 제도에 대한 자괴감을 야기할 것이다.

서든어택2 삽질, 블리자드의 삽질.. 등등의 소식을 들어 왔지만 이 회사의 삽질은 그런 것과도 성격이 좀 다른 것 같다.
이제는 전통적인 메이저 게임사 3N 중에서 여전히 메이저로 대접받는 N은 사실상 하나밖에 안 남았다고 여겨진댄다. 다음으로 스마일게이트, 크래프톤 이런 신생업체가 떠오르는 강자라고..

물론 저 회사가 지금 이 정도 위기만으로 무슨 자금줄 끊긴 중소마냥 당장 오늘내일 하는 지경인 건 전혀 아니다.
그러나 지금 이 위기를 잘 극복하고 조직을 쇄신해서 새 사업 아이템으로 과거의 영광을 새로 되찾을지, 아니면 결국 과거의 영광만 껴안고 장렬히 자폭하거나 서서히 쪼그라들지.. 중대한 기로에 놓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5/06/21 19:35 2025/06/2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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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이야기를 성인이 돼서, 특히 정보 보호 보안의 관점에서 현실성을 생각해 보니.. ㄲㄲㄲ

1.
저 시절에 도둑들은 평범한 열쇠나 카드키, 비밀번호 도어락이 아니고, 지문이나 안면· 안구 홍채 같은 생체 인식도 아니고, 무려 음성 인식 기반의 첨단 보안 시스템을 구축했구나 싶다. 이거 생각보다 대단한 기술이 동원됐다~~ ^^
특정 인물의 성문을 정교하게 판독하는 건 아닌지, 아무나 "열려라 참깨"라고 외치기만 하면 된다. 두목뿐만 아니라 알리바바나 형 카심까지 다 문을 열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건 주문, 암구호.. 아니 패스워드를 누군가가 엿들을 수 있기 때문에 보안 관점에서는 별로 좋지 않은 시스템이다. -_-;; 그러니 알리바바한테 바로 털렸다.
저 도둑들은 매일은 아니어도 최소한 매주나 매월 암구호를 바꾸기라도 했어야 했다... 들깨건 후추건 다른 단어로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 아니, 근본적으로 장물들이 털린 걸 인지한 그 직후에 당장 암구호를 교체했어야 했다. 알리바바의 방문 이후에 카심이 방문하기까지 텀이 하루 이틀보다는 훨씬 더 길었을 텐데 말이다.

2.
알리바바의 형 카심은 도둑들의 기지? 아지트? 소굴 안에서 휘황찬란 금은보화 장물(..)들을 보고는 넋이 나가는 바람에 패스워드를 까먹었다. 그래서 굴 안에 갇혀 버렸고.. 나중에 기지로 돌아온 도둑들에게 곧바로 살해당했다.

문이 안 열릴 때 카심은 얼마나 당황하고 패닉에 빠졌을까? 얼마 후에 반대편 바깥에서 도둑 일행들이 도착해서 웅성웅성 소리가 들릴 때는 진짜 바지에 쉬도 지릴 정도로 멘붕했지 싶다.
또한, 이런 일이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졌다면 카심이 저렇게 곱게 깔끔하게 단칼에 죽을 가능성은 전혀 없을 것이다.. =_=;;

저 도둑들은 다른 용어로 표현하자면 산적? 마적이라든가 조폭?? 같은 무시무시한 집단이다.
카심은 온몸이 결박당한 채 손가락이 하나씩 잘리거나.. 하다못해 꼴깍꼴깍 코렁탕이라도 주입 당하면서 "네놈은 누구야? 여길 어떻게 알고 들어왔어? 저번에 없어졌던 우리 장물들도 니가 가져간 거지? 어디로 처분했어? 어서 불어!" 이런 심문과 함께 정말 처참 끔찍하게 죽었을 것이다.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전기 고문은 없었겠지만. ㄲㄲㄲㄲ

동화에서는 오로지 동심파괴를 방지하기 위해서 곧바로 푹찍악으로 서사가 단순화됐을 뿐이다.

3.
몇 년 전엔 우리나라에서 오피스텔 건물 출입문들에 누군가가 정체 모를 괴표식을 그려 놔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입주민들, 특히 혼자 사는 여성들이 자기가 범죄 표적이 된 거 아니냐고 질겁을 하고 경비실 내지 경찰에 신고를 했다는 게 뉴스에 보도되었다.

자 그런데.. 부자가 된 알리바바 역시 이런 일을 당했었다!
도둑들은 카심의 시체를 꿰멘 업자를 수소문해서 알리바바의 집을 알아냈다. 그래서 일단 저 대문에다가 X표를 그려 놨다.
그 시절에는 GPS도 없고, 오늘날의 도로명주소 같은 행정구역 체계도 없었기 때문이다. 집 주소나 지리 좌표만 간단히 적어 오는 건 가능하지 않았다.

허나, 알리바바의 하녀 모르기아나가 이걸 보고는 수상함을 느꼈다. 그래서 길거리 모든 집들에다가 똑같이 X표를 해서 개인정보 유출 시도를 막아냈다.
X표를 지우는 것보다는 발품 팔아서라도 몽땅 다 그리는 게 차라리 더 쉬웠는가 보다.

알리바바의 집을 알아냈다고 보고했던 부하는 모르기아나의 대처로 인해 임무에 실패했다. 이 때문에 판본에 따라서는 개갈굼 당하는 걸로 끝나거나, 아니면 열받은 보스에게 즉결처형 당했다. -_-;;;

4.
도둑들은 삽질 수고를 감내한 끝에 알리바바의 집을 다시 알아내고 이번엔 정확하게 숙지했다. 그 다음으로는 두목이 알리바바를 암살하려고 기름 상인으로 위장하고 알리바바의 집을 찾아갔다.
이때 자기 부하들 40명을 각각 드럼통.. 아, 아니 그에 준하는 기름 항아리에다가 몰래 집어넣어 놓고 낙타에 실었다.

옹.. 도둑들은 평소에 활동할 때는 말을 타고 다녔을 텐데 낙타도 그만치 보유하고 있었구만.
그런데 칼을 든 성인 남자가 들어가려면 항아리가 얼마나 커야 했으며 부하들은 꼼짝달싹 못 하면서 얼마나 개고생 했을까? -_-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때도 알리바바의 하녀 모르기아나는 정말 현명하게 대처했다. 처음엔 도둑들 정체를 간파하고는 저 40개에 달하는 항아리에다가 끓는 기름을 차례로 부어서 부하들을 혼자서 몰살시켜 버렸다!!!
사람 40명을 그렇게 죽이고도 태연하게 써빙을 계속했으며.. (고기 요리랍시고 죽은 도둑들 인육을 냈던가??? ㄷㄷㄷㄷㄷ)
나중에 칼춤으로 도둑 두목까지 저격했다니... 모르기아나는 일개 하녀가 아니라 거의 살인 기계 공작원 수준의 멘탈을 보유한 것 같다.

그리고 사람을 그런 방식으로 즉사· 무력화시키려면 무슨 쇳물이나 황산· 염산이라도 부었어야지, 겨우 튀김용 기름 정도로 사람이 순식간에 끽 소리 못 하고 순식간에 무력화될 것 같지는 않다. 그 정도면 화상만 입은 채 항아리 깨고 튀어나올 수 있고, 무엇보다 옆의 동료들이 비명을 듣고 튀어나와서 모르기아나에게 얼마든지 역공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암튼 여러 모로 동화는 동화로만 알고 봐야 할 것 같다. 디테일이 거 참... ^^
모르기아나의 저런 초인적인 행적 정도면.. 하녀가 뭐야, 진짜 알리바바의 양녀가 되기에 손색이 없었을 것이다.

어떤 동화책은 머리말에 "세상에 모든 계모들이 다 (이 동화에 나오는 것처럼)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이렇게 편찬자의 코멘트가 붙어 있곤 했다. 콩쥐팥쥐, 장화홍련, 신데렐라 등등등..
알리바바의 경우, "단, 알리바바도 정직한 방법으로 부자가 된 건 아닙니다." 이렇게 쓰인 책이 있었다. ㅎㅎ

* 참고로 참깨와 들깨는 깨라는 열매의 형태와 용도만 비슷할 뿐, 근본적으로는 서로 다른 농작물이다. 깻잎을 고기쌈 용도로 생으로 먹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고 한다. 들깨잎을 먹지 참깨잎은 그 대상이 아니다.

Posted by 사무엘

2025/06/19 08:35 2025/06/1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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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표준의 필요성

1. 새마을호 객차

옛날에(1980~2010년대) 우리나라에 새마을호 열차가 다니던 시절에..
새마을호는 기관차 견인형과 액압변속 디젤동차형 둘로 나뉘었던 걸로 유명했다.
동차형 새마을호는 동력분산이 아니라 동력집중식이었다. 즉, 맨 앞, 맨 뒤 양쪽의 동력차만 빼면 그 사이의 객차들은 엔진 같은 게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므로 기관차 견인형 새마을호의 객차와 동차형 새마을호의 객차는 크기와 좌석이 동일하고 인테리어 동일하고 외형적으로 다를 것이 전혀 없었으나..
모종의 이유로 인해 전원 점퍼 같은 세부 규격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고 호환되지 않았다. 그래서 같은 새마을호 객차이지만 기관차 견인형과 동차형을 서로 섞어서 편성할 수 없었다..!

물론 새마을호 전용 동력차로부터 전력을 받는 거랑, 그런 거 없이 통상적인 기관차나 발전차로부터 전력을 받는 게 내부적인 구현 형태는 많이 다르긴 했을 것이다. 그리고 동차 편성은 그 특성상 유동적인 객차수 조절을 별로 염두에 두지도 않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입출력 인터페이스가 달라야 할 필요가 없는 물건이 규격이 서로 일치하지 않은 것은 좀 아쉬운 점이다.

이제 우리나라에 동차형 새마을호와 비스무리한 외형을 유지하고 있는 열차는 경복호밖에 남지 않았다.

2. 아폴로 13호 우주선

1970년, 미국의 아폴로 13호 미션 때는 사령선에서 폭발 사고가 났다. 이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달 착륙선에 있던 전기와 산소까지 어떻게든 끌어다가 사령선의 승무원들을 생존시키고, 이들을 지구로 생환시켜야 할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사령선의 이산화탄소 제거기와 달 착륙선의 이산화탄소 제거기는 서로 다른 제조사에서 만들었는지 단자 모양이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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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있던 엔지니어들이 단자 모양을 어떻게든 맞추는 방법을 찾아내 알려주고 위기를 간신히 모면했다.
이렇게 똥줄 타는 경험을 한 뒤, 아폴로 14호부터는 두 기계는 단자 모양이 당연히 서로 호환되게끔 시정 조치가 취해졌다.

3. 일본군의 육· 해군 대립

2차 세계 대전 시절에 일본군에서는 육군이 잠수함을 만들고 해군이 탱크를 만들기도 했던 게 아주 유명하다. =_=;;;;; 서로 노하우 공유나 부품 호환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전부 따로국밥..
해병대 상륙함이라든가 폭격기 같은 건 육· 해군 경계가 모호할 수도 있다고 치지만, 탱크와 잠수함은 너무했다. -_-;;;

구 일본군의 병크가 워낙 유명하긴 하지만, 컴터 업계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는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꽤 악독했다.;;; 구글, 애플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내부의 팀들끼리 경쟁하고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다. 정보 공유 같은 것도 없고 같은 기능의 중복 개발이 난무했다.

현재 시스템에서 실행 내지 load돼 있는 프로세스· DLL을 조회하는 API를 Windows 9x 팀과 NT 팀이 어떤 정보 공유도 없이 제각기 따로 개발했질 않나, (dbghelp vs psapi)
Visual C++ 팀과 Windows 팀이 C 런타임 라이브러리를 오랫동안 서로 따로 만들고 놀았다.
Office 팀은 파일 대화상자를 자체적으로 따로 개발하고 심지어 한중일 IME도 따로 자체 개발했었다. (Windows XP 시절까지)

4. C++ 표준 라이브러리

하긴, C++이라는 언어도 말이다. 처음부터 정교하게 설계된 언어가 아니라 "C에다가 객체지향만 살짝 얹은 그 무언가"에서 출발했다가 차츰차츰 아주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진화된(evolved) 언어이다.

얘는 처음 등장했을 때 자기만의 표준 라이브러리, 클래스 라이브러리라는 게 없었다. 언어 차원에서 기본 제공되는 모든 오브젝트들의 뿌리 기본 클래스라는 개념도 없다. 그저 void*만이 있을 뿐;;;

1990년대 초, C++ 3.0에서 템플릿이라는 게 추가되고 나서 이를 이용한 범용적인 알고리즘/컨테이너 구현체인 STL이라는 게 알음알음 등장하고, C++98이 돼서야 라이브러리의 표준화가 논의됐을 뿐이다. 다른 객체지향 언어들과 비교했을 때 표준 라이브러리가 너무 늦게 제정됐다.

그 와중에 C++ 컴파일러가 등장하고 컴퓨팅 환경이 DOS에서 Windows로 넘어가는 동안..
수많은 라이브러리 개발사들은 그새 자기만의 문자열 클래스, 자기만의 동적 배열, 자기만의 링크드 리스트 컨테이너 등등을 만들고 또 만들게 됐다. re-invent the wheel!! 뭐, 이거는 앞에서 언급했던 마소 부서들의 중복 구현과는 성격이 좀 다른 현상이지만 말이다.

5. 전기 플러그

전기· 전자는 표준 규격이라는 게 오만 데 다 필요한 분야임이 틀림없다. (1) 가정용 교류 전기의 전압(100, 220)은 대표적인 예이고, 교류의 경우 주파수도 말이다(50 또는 60hz). 난 직류는 뭔가 민물고기(강=도시철도?) 같고 교류는 바닷물고기(광역/일반/고속철도??) 같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 왔다.

(2) 전기 자체의 물리량뿐만 아니라 전원 플러그의 외형적인 모양도 어쩌다 보니 세계적으로 완전히 통합되지 못했다. 전부 합하면 10여 종이나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전세계 모든 전원 플러그에 대응 가능한 뚱뚱한 플러그가 공항 면세점이나 잡화점에서 팔리곤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전기 플러그는 전압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옛날 100V용으로 쓰였던 각진 type A형 플러그로 220V를 넣을 수도 있고, 반대로 오늘날 220V용으로 쓰이는 동그란 돼지코 type C 플러그로 100V를 넣을 수도 있다. 그냥 정하기 나름..
그런 맥락에서 만능 플러그 역시 변압은 해 주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그건 소비자가 알아서 변압기를 구비해서 해결해야 한다.

승압을 하면서 플러그의 모양까지 딴 걸로 바꾼 건 뭐랄까 마소에서 16비트에서 32비트로 갈아탈 때 실행 파일 포맷이라는 껍데기를 NE에서 PE로 바꿔 버린 것과 비슷한 변화 같다.

6. 충전 단자

전원 플러그 다음으로는 충전기도 생각해 보자.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국내 핸드폰/피처폰들의 충전기와 짹 모양이 전부 제각각이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폰을 통째로 받침대에다 찰칵 꽂아 놓고 충전했던 적도 있는데..

이제는 USB 포트가 전자기기 간의 연결뿐만 아니라 소형 전자기기들의 충전까지 책임지는 만능 단자로 등극했다. 오죽했으면 그 도도하던 아이폰까지 USB C를 도입할 지경이니까.
하지만 컴퓨터와의 접점까지는 없는 일부 저렴한 손전등이나 전동 면도기 중에는 여전히 듣보잡 고유 단자와 전용 충전기만을 고집하는 물건이 있다. 이런 것들은 차차 정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울러..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충전 상태를 나타내는 시각 피드백도 좀 통일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충전 중엔 적색이다가 완료 후엔 녹색.
  • 충전 중엔 녹색이다가 완료 후엔 녹색 점멸;;
  • 충전 중엔 황색이다가 완료 후엔 불빛 꺼짐
  • 충전 중엔 황색 깜빡이다가 완료 후엔 황색

옛날에 폰과 디카의 배터리를 따로 꺼내서 충전하던 시절엔.. 본인은 위의 케이스들을 전부 다 봐 왔다.;;;

7. 좌표계

국가별로 도로에 좌측/우측통행 기준이 다르다면, 컴퓨터에는 CPU 제조사에 따라서 비트 배열 순서(엔디언)가 차이가 있다. 그런데 컴퓨터에는 그것 말고 기하학적인 좌표의 취급 방향도 살짝 파편화된 구석이 있다.

2차원에서는 Y축의 양수가 아래로 가느냐, 위로 가느냐가 다르다. 아래는 글을 써 내려가는 방향과 일치하는 반면, 위는 수학 좌표계와 일치한다.
이건 뭔가 번호 다이얼(아래로)과 계산기의 숫자(위로) 배열 방향 차이와도 비슷해 보이는데..?

BMP 그래픽 파일은 위쪽(수학) 좌표계를 염두에 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Windows에서는 원초적인 픽셀 기반의 MM_TEXT 좌표계만이 아래쪽이고, 나머지 현실 단위계와 대응하는 좌표계들은 위쪽이다. macOS 환경은 MM_TEXT라는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고 몽땅 위쪽인 걸로 난 알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차원을 넘어 3차원으로 가면.. XY 평면 위로 Z축의 양수가 어느 쪽으로 뻗느냐에 따라 왼손 또는 오른손 좌표계로 나뉜다. 오래된 표준 그래픽 라이브러리인 OpenGL은 오른손 좌표계이지만, 후발주자였던 DirectX는 왼손 좌표계를 채택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상이다.
자고로 어떤 기계나 컴퓨터 프로그램은 겉으로는 똑같이 동작하더라도 내부 디테일은 어떤 규격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제품의 유지보수라든가, 타사 제품과의 연계를 위해서는 산업 표준을 만들어서 그걸 따라 만들게 하는 게 좋다.

컴퓨터 세계를 더 살펴보자면, 유니코드라는 게 없던 1990년대 초까지는 한글 코드조차 조합형이니 완성형이니 난립해서 문제였었다. 21세기 초까지는 동영상 코덱도 난립(1990~2000년대)했었다.
철도는 궤간이 대표적인 문제이고.. 아날로그 TV 시절에는 디지털 동영상 코덱이 아니라 아날로그 영상 신호 내부 구조가 PAL이니 NTSC니 하는 표준 규격이 있었다. 이런 걸 다 다루기에는 시간과 지면이 부족하니 이 글에서는 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5/06/15 19:35 2025/06/1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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