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권 선언

지난 1948년에는 이스라엘이 건국됐고(5월) 대한민국도 미군정을 졸업하고 정식으로 정부를 수립하여 건국됐으며(8월), 이어서 연말인 12월 10일엔 UN 총회를 통해 '세계 인권 선언'이란 게 선포됐다. (☞ 한국어 번역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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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어떤 아지매가 4절지? 2절지 정도 되는 큼직한 종이에 뭔가가 빼곡히 인쇄된 걸 펼쳐들고 있는 모습 패러디 짤방을 본 적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그 아지매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영부인이었고, 원전이 바로 세계 인권 선언이라는 것을 본인은 비교적 최근에야 알게 됐다. =_=

  • 어린이 헌장도 아니고(어린이를 학대하지 말고 기본적인 건 보장해 주며 특별히 보호해 주자),
  • 제네바 협약도 아니고(전쟁을 하더라도 지킬 건 지키고 싸우자, 포로의 인권을 최소한은 보장하자),
  • 국민 교육 헌장 같은 것도 아니고(교육 잘 하고 잘 받아서 민족을 중흥시키고 새 역사를 창조하자)..

모든 인간은 누구나 인종 피부색 국적 종교 무관하게 존엄하고 평등하다, 저것 갖고 부당한 차별 박해를 하지 말자,
인간에게는 결혼하고 먹고 자고 국적 선택할 권리가 있고, 거주지 옮기고 직업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전근대적인 세습 노예 제도나 피의자 고문은 잘못됐다, 자국민을 무국적자로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등등~~

지금 우리로서는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그야말로 제국주의 식민지와 우생학, 2차 세계 대전 같은 비극적인 짓거리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 30개에 달하는 조항에 담겨 있다.

이 선언은 비록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저기에 담긴 이념이 세계 자유 진영 국가들의 헌법에 그대로 녹아들어가 사실상 국제 관습법이 됐다. 그리고 성경 같은 여느 유명 문헌 만만찮게 수백 가지의 언어로 번역됐다.
이 시기에 세계 각국의 나라들이 왕정을 버리고 공화정으로 체계가 바뀌었다. 오죽했으면 조선 만만찮은 꼴통 카스트 신분제 국가이던 인도조차도 최소한 법으로는 이제 신분제를 부정하고 만민이 평등한 민주 국가를 표방하게 됐을 정도이다.

물론 지금은 인권 운동이라는 것들이 너무 오바하고 선 넘어서 사형 제도 폐지와 동성애 합법화, 범죄자 인권만 챙기기, 죄 지을 권리만 챙기기, 죄를 죄라고 말하는 것을 반인권 프레임 씌워서 금지시키기.. 이딴 식으로 변질된 면모도 많다. 하지만 저 시절에 저런 인권 선언이 세계적으로 선포된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이었다.

저런 인권 선언이 없던 옛날을 생각해 보자. 서양은 타 인종· 타 민족을 노예로 부렸고, 조선은 자국민의 과반을 노비로 부려먹었다. 그리고 서양에서는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국력이 강해지고 나니 아예 인종 전시회, 인간 동물원을 열었다.
흑인 노예는 짐승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과도기 생물 정도로 여겨졌다. 죽은 시체를 해부해 보니 장기 구조가 백인과 아무 차이가 없는 걸 보고는 "어 그럴 리가 없는데..?" 이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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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원주민 여성인 사키(세라) 바트만(1789-1815). 유럽인들의 침략으로 영국에 혼자 끌려와서 알몸으로 구경거리 취급을 당하다가 타지에서 한 많은 삶을 일찍 마감했다.)

그리고 상피병이나 이상한 비늘증 유전병에 걸려 외모가 흉측해진 사람은 구약 시절의 문둥병 환자 취급이었다. 천벌 받은 죄인이니까 왕따 시키거나, 아니면 서커스에 보내서 놀림감으로 만들었다. (요 9:2 같은..).
세계 인권 선언은 바로 저런 짓을 앞으로 되풀이하지 말자고 다같이 결의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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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메릭(1862-1890). 흑인이 아니라 엄연히 유럽 백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전병으로 인해 심각한 피부 기형이 발생하여 인간 취급을 못 받았다. 평생을 놀림과 학대를 받으며 기구하게 살았다. 이 사람의 일대기를 배경으로 the elephant man (1980)이라는 영화도 이미 나와 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바빌론 포로 70년을 겪고 나니 종족 특성이 싹 바뀌었다. 비록 그 뒤에도 주 하나님을 마음과 뜻을 다해 100점짜리로 섬긴 것은 여전히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 옛날처럼 바알 같은 우상을 대놓고 따르지는 않고 외형적으로 골수 유일신 민족으로 탈바꿈했다.
그것처럼 이 인류도 2차 세계 대전이라는 참극까지 겪은 뒤에야 옛날 같은 식민지 쟁탈전, 인종과 종교로 인한 전쟁이 '1세계의 외형'으로 한정이긴 하지만 어쨌든 멎었다. 아쉬운 대로 평화가 찾아온 셈이다.

다음으로 국제 기구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보자.
기독교계 중에서도 꼴통에 가까운 보수 우파, 그리고 정치 종교 통합과 세계 단일 정부 음모론 이런 걸 진지하게 고려하는 진영에서는 UN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는 편이다. 심지어 UN이 창립된 뒤부터 세상은 전쟁이 오히려 더 늘어나고 더 혼란스러워졌다고 까며, 미국 한정으로는 "The UN wants your gun! 총을 빼앗긴 다음에는 성경을 빼앗길 겁니다" 이런 괴담까지 나도는가 보다.

물론 UN이 딱히 기독교 성경적인 이념을 실천하는 기관은 아니다. 하지만.. 당장 우리나라부터가 UN이 없었으면 어떻게 버텼겠는가?
글쎄, 미래엔 성경의 예언대로 세계가 연합해서 이스라엘을 대적할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6 25 사변 때는 세계가 연합해서 대한민국을 도와줬다. 우리나라는 그게 너무 고마워서 향후 수십 년간 UN 창립일을 공휴일로 기념하고 놀 정도였다.

그리고 20세기 중후반에 전쟁이 늘어난 것은.. 오히려 식민지 지배를 하던 강대국들이 물러나고 나서 그 지역 조무래기들이 정치가 불안정해서 툭탁거리고 싸우는 것의 비중이 더 크다. UN이 능력이 부족한 건 있어도 UN이 잘못한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뭐, 내가 보기에도 21세기의 UN은 20세기 중반의 창립 당시 초심을 갖고 있던 UN과 같은 성격의 조직이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쟤들의 존재 자체를 근본부터 백안시하고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죽했으면 국제 연맹을 계승해서 UN이란 게 생겼을까? 그것도 세계 대전 연합국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따 와서 말이다.
창조 진화 논쟁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우 장춘 박사와 종간 잡종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고, 연대기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우주 배경 복사와 방사성 원소 연대 측정법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다. (어떤 입장에 대해 찬성하건 반대하건, 그 대상이 뭔지는 정확하게 알아야 하므로!)

그런 것처럼 세계사, 기독교적 세계관에 관심 있는 사람, 프란시스 셰퍼의 "그러면 우리는 어찌 살 것인가" 의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UN과 세계 인권 선언의 등장 배경과 맥락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제국주의 시절에 진짜 불쌍한 사람과 희소병 환자의 인권을 당대의 기독교회가 챙겨주지 못했다면, 훗날 그냥 무신론적 인본주의에 입각한 인권 선언이 태동하는 것을.. 신자들이 마냥 부정적· 회의적으로 보고 목소리를 내기란 곤란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반대로 세계 인권 선언의 등장 배후에 성경적인 동기가 들어간 걸까..?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1/06/21 08:36 2021/06/2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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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죽다 살아나온 사람

"한글이 목숨"....;;; 이라는 압도적인 문구를 남긴 외솔 최 현배 선생(박사).
그리고 "죽으면 죽으리라"라고 한국 교회에 큰 족적을 남긴 안 이숙 여사.

이분들은 대놓고 정치· 군사· 외교 쪽으로 항일 독립 운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어 한글, 그리고 기독교 신앙이라는 자기 관심분야를 통해서 한국은 일본과 같지 않고 우리 민족은 일본이 강요하는 천황 숭배와 전쟁 프로파간다에 따를 수 없음을 주장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저것 말고도 굉장한 공통점이 있다. 무엇인지 아시는가?

일제 말기에 투옥됐고, 1945년 8월 18일에 형무소에서 처형될 예정이었는데 그 전날 17일에 극적으로 석방됐다는 일화가 전해진다는 것이다. ..;; 이건 검증 가능한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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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현배는 조선어 학회 사건 때문에 1942년에 체포· 투옥돼서 징역 4년형을 받고 함흥 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안 이숙의 기록은 정확도가 더 떨어지는 것 같다. 1939년에 일본 국회의사당에서 불온삐라(?)를 뿌린 뒤 체포됐는데 굳이 조선의 서대문도 아닌 평양 형무소에 옮겨져서 해방될 때까지 옥고를 치렀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무슨 죄로 징역 몇 년을 선고받았는지는 모르겠다. 둘 다 이북 지역이긴 하네..
(뭐, 주 기철 목사도 정식 재판과 형 선고 없이 그냥 경찰서 명의로 멋대로 구금 당한 채로 옥사함)

이 자리에서 모든 정황 근거를 나열할 수는 없지만.. 일제는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고 자기 나라가 망하는 최악의 상황이 올 경우.. 식민지의 형무소 죄수들을 몽땅 죽여 버리고, 본토 안에 있는 조선인들도 어떻게든 제압하고 해코지하고 같이 동귀어진할 시나리오 정도는 준비해 놓고 있었다.
히틀러가 전쟁에서 지자 프랑스 파리를 포함해 자기 휘하의 도시들을 몽땅 불살라서 없애려 했던 것과 정확히 같은 심리, 같은 이치이다. 북괴도 무력 싸움에서 지게 되면 저런 식의 자폭을 얼마든지 감행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은 원자폭탄 두 방으로 인해 일본이 8월 15일에 갑작스럽게 항복하고 허겁지겁 본토로 돌아간 건 우리 입장에서도 굉장한 호재이고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전쟁이 장기화됐으면 굳이 8월 18일이 아니었더라도 저 사람들 다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뭐 광복군이 참전을 못 해서 나라가 분단됐네..? 애걔 그 병력으로 싸우긴 뭘 싸우냐, 아무 영양가 없는 소리이다.

그런데 정말로 쟤들이 8월 18일에 최소한 함흥과 평양.. 전국의 모든/대부분의 형무소에서 사형 판결을 받지도 않은 죄수들을 제멋대로 한꺼번에 몽땅 죽여 버릴 계획을 세워 놓았었는지는 나로서는 판단을 못 내리겠다. 비밀 행정 명령 문서 같은 거 나오는 게 없으려나..?? 8월 18일이 또 다른 D-day이기라도 했는지 말이다.

2. 일제 말기의 한국 교회 강제 통합

안 이숙 여사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잘 알려지지 않은 그 시절 얘기를 하나 첨언하자면..
1945년 7월, 우리나라의 모든 기성 기독교 교파들은 일제에 의해 강제 통합되어 '일본 기독교 조선 교단'이라는 단일 교파로 잠시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이건 갑자기 하루아침에 된 게 아니라 거의 1940년대 초부터 일제가 한 교파씩 야금야금 회유시키거나 없애면서 집요하게 노력한 끝에 이뤄낸 것이었다.

이제 무슨 평양 봉수교회마냥 어용 단일 교파만이 공인 정통이고, 나머지는 몽땅 비인가 이단이 된 것이다. 주 기철 목사가 순교한 지도 1년 넘게 지난 때이고, 내가 보기엔 이건 신사참배 이상으로 교회의 정체성을 훼손한 더 심각한 문제 같은걸..? 그러나 다행히도 이 상태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일제가 그로부터 겨우 한 달 남짓 뒤에 완전히 패망했기 때문이다.

미군정이 시작되었던 1945년 9월 8일, 서울 새문안 교회에서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구세군 등 기존 교단 교파 지도자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다.
그리고 긴 토론 끝에 통합 상태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교파별로 다시 찢어지고 각자 제 갈 길 가기로 결의했다. 이것은 마치 정교분리만큼이나 불가피하면서도 바람직한 결정이었다. 그리고 이런 거야말로 진정한 일제 잔재 청산이었다.

3. 과거 커밍아웃

박 영희 여사는 함흥여고보에 재학 중이던 1942년경, 전혀 의도치 않게 조선어 학회 사건이 벌어지는 빌미를 제공했다. (자세한 내역에 대해서는 이전 글을 참고할 것.)
저분은 그 당시에는 경찰서에 연행돼서 고생 좀 했지만 곧 풀려나고 학교를 무사히 졸업도 했는데.. 그 뒤로 저런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엄청난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이 사건을 일생의 비밀 흑역사로 치부한 채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다.

그랬는데 40년이 지난 1982년 여름, 일본에서 자기네 역사 교과서를 개정해서 침략을 진출이라고 수정하고 일본어 강요를 자발적인 일본어 선택 같은 식으로 말을 이상하게 바꿨다는 게 알려지면서 한국과 중국이 크게 반발하게 됐다. 이때 이분은 자신이 조선어 학회 사건의 발단이 됐던 그 여학생 박영희였다고 커밍아웃을 했다.

“아직 나 같은 역사의 증인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일본놈들은 아직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너무 뻔뻔합니다. 나 때문에 고초를 겪으신 분들께 너무 죄송합니다” 라고 언론에다 인터뷰를 했다. 그게 1982년 8월 2일자 중앙일보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이것도 지금도 검색해 보면 나온다.

이분은 1982년 당시에 환갑을 앞둔 58세였다고 소개됐다. 그러니 한국식 나이라면 1925년생이겠다.
이분은 그 뒤로 딱히 다른 근황이나 소식 없이 평범하게 살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분이 지금도(2021년) 살아 있을 확률은 극히 낮을 것이다. 1982년 이후로 또 거의  4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러 있으니..

그리고 저 박영희 여사보다 훨씬 더 유명한 사람.
김 학순 할머니(1924-1997)는 1991년 8월 14일, 자신이 태평양 전쟁 기간에 타지에서 일본 군인들에게 납치와 윤간을 당하고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 노릇을 하다가 살아서 나온 피해자라고 국내에서 최초로 공개 증언했다. 요즘 용어를 동원하자면 일종의 ‘미투’ 운동을 시작했다.

박 영희 여사와 거의 같은 연배이고, 위안부로 끌려갔다는 시기도 41~42년 사이.. 조선어 학회 사건과 아주 비슷한 시기이다. 그랬는데 전자는 그나마 학교를 다니던 중에 저런 사건을 겪었고, 후자는 그렇지 못하고 더 험한 일을 당했다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커밍아웃을 한 시기가 9년 정도 차이가 있다.

최 현배 박사 vs 안이숙 여사 다음으로는 박 영희 여사 vs 김 학순 할머니 비교가 나왔다. 판단은 각자 알아서..
그래서 나는 1980년대, 길어야 90년대까지 아직 암울하던 시절에 반일 하던 것은 그럭저럭 진정성을 인정하지만, 2010년, 2020년대에까지 뗑깡 부리듯이 되도 않은 반일 거리는 것은 진정성 신빙성을 굉장히 의심하고 반쯤 정신병으로 치부한다.
여사와 할머니라는 호칭은.. 중요한 커밍아웃을 하던 당시의 나이를 감안해서 서로 달리 붙였다.

4. 조선어 학회와 한글 학회의 사무실

정 세권(1888-1965)이라고 일제 시대인 1920년에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근대식 부동산 개발 회사인 ‘건양사’를 설립해서 건축 사업을 진행한 기업가가 있다. (☞ 관련 링크)

일제 시대에는 남산과 남대문에서 가까운 용산-중구 일대엔 일본인이 주로 살았고(지금의 서울/경성 역도 처음엔 이름이 남대문 역)..
좀 더 북쪽으로 서대문 근처 중-종로구 일대엔 조선인이 주로 살았다. 경부선 철도가 맨 처음 생겼을 때는 서대문 역이 경성 역 역할을 했는데 3· 1 운동 이후에 그 구간이 없어졌다.

이에, 정 세권은 일본인의 주거 구역이 서울의 북쪽으로 더 올라오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서 종로구 북쪽에 한옥 주택을 많이 지을 생각을 했다. 지금의 북촌 한옥 마을도 이때 그의 계획에 따라 조성된 주택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사업을 하면서도 항일 독립운동을 적극 도왔다.
특히 국어사전을 편찬하고 있던 조선어 학회에다 건물을 기부해서 사무실을 무료로 마련해 줬다~! 영화 <말모이>에서도 주된 배경으로 나오는 그 작업실 말이다.

딱 종로에다가 사무실을 마련해 줬기 때문에 거기서 일하던 간사장 이 극로 선생이 눈병에 걸렸을 때 근처의 공안과를 찾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공 병우 박사가 안과 의사에서 한글 덕후 세벌식 타자기 발명가가 되도록 동기를 불어넣을 수 있었다. 사건의 인과관계가 이렇게 연결된다.
정 세권은 건축과 자금으로 민족 정체성(!!)을 지킨 큰 공로가 인정되어 사후에 당연히 각종 훈장이 추서되었다.

그리고 조선어 학회는 해방 후에 한글 학회로 간판을 바꿔 단 뒤에도 장소와 관련된 혜택을 받았다.
지금까지 입주해 있는 광화문 근처의 빨간 벽돌 한글 회관은 1970년대에 지어진 것이다.
이거 건립을 위해 대한민국 초대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애산 이 인 선생이 사재를 무려 3천만 원이나 기부했고.. (당시 현대 포니 승용차 한 대가 230만 원 남짓) 그걸로도 모자라 죽을 때 자기 재산을 몽땅 한글 학회에다 기증했다.

그리고 박 정희 대통령이 1억 원을 기부하고 그걸 당시 영애이던 박 근혜가 직접 전해 줬다고 전해진다.
한글 회관은 이런 식으로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지어졌다. 4년쯤 전에 블로그에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또 한번 이렇게 복습해 보았다.

Posted by 사무엘

2021/06/18 08:35 2021/06/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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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회중 찬양 인도 회고

* 본인은 다니는 교회에서 10년 넘게 예배 전의 회중 찬송 인도를 했다. 그리고 지금은 우한 폐렴 때문에 무기한 중단된 지 1년이 넘었지만, 그래도 청년부 특송의 선곡과 지도도 6년 가까이 해 왔다.

1. 현충일 주일

올해는 2010년 이후로 11년 만에 현충일이 일요일(주일)과 겹치게 됐다. (그 전에는 2016년이 윤년이어서 토요일 다음에 일요일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월요일로 이동함.. ㄲㄲㄲ)
그래서 난 이 날은 준비찬송 곡에다가도 조기를 달았다. 바로.. 곡을 몽땅 단조로만 편성했다.

찬송가라는 업계에서 단조는 굉장히 드물다. 이름부터가 괜히 ‘마이너’가 아니다..

  • 중세 엄근진 스타일: “우리 주(여호와) 하나님”이 이 카테고리에서 거의 유일 독점에 가까운 인지도를 자랑한다.
  • 단조이지만 좀 경쾌한 느낌이 드는 CCM: “온 땅이여 주를 찬양” 같은 거..
  • 히브리 민요 스타일: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내가 의도한 건 물론 중세 엄근진이다. 분투와 승리가 아니면 고난, 십자가 장르가 이런 날 어울릴 것이다.
(1) “우리 주 하나님” 다음으로 (2) “온 인류의 구주께서”(behold the savior of mankind)라는 신곡을 발견해서 넣었다. 악보를 읽어보니 “우리 주 하나님”과 거의 같은 중세 엄근진 스타일에 가사도 괜찮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3) “어느 민족 누구게나” 이건 뭐.. 분투와 승리 장르에 있는 절대지존의 단조곡이기 때문에 현충일 주일에 0순위로 광속으로 선택됐다.

끝으로, (4) “밝은 빛을 따라서”는 이스라엘 국가 Hatikvah(희망)와 같은 멜로디이다.
예전에 악보를 처음으로 읽어 보니, 첫 시작이 동요 “썰매” (모두 모두 달려라 달려라)하고 조가 같고 첫 마디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걸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레미파솔 라 라 / 시b …).
그래서 얘도 그 동요처럼 굉장히 경쾌하고 빠른 곡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공식 연주 음원을 들어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훨~씬 느리고 진지한 분위기(?)의 곡이었다.

저런 것들로 곡이 편성됐다.
다만, 세상 음악은 단조라고 해서 마냥 장송곡 스타일만 있는 게 아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기는 좀 그렇지만 댄스곡들도 단조가 많으며, 또 요즘 애들이 단조 음악을 제일 많이 접하는 경로는 누가 뭐래도 게임 BGM이지 싶다. 게임 BGM이 장조이면 분위기가 너무 명랑 발랄하고 안정적으로 바뀌어서 몰입감과 긴장감이 떨어질 것이다.

  • 단조로 시작했다가 중간에 장조로 전환되는 곡으로는 “6 25 노래”(아아 잊으랴), 그리고 송 명희/최 덕신 “동참”(너 고통 당할 때) 정도가 기억 난다.
  • 기독교에는 “부활과 영생”이란 게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예배는 분명히 누군가의 죽으심을 기림에도 불구하고 분위기가 세상 현충일 기념식과 같지는 않다. “무슨 장례식 온 듯이 깜장으로 조폭처럼 쫙 빼 입고” 마냥 옛날 순교자들을 꺼이꺼이 추모하고 성역화하고 묵념만 하는 게 아니다.
  • 과거에 주일이 9월 18일 철도의 날과 겹쳤을 때는 난 “구원 열차”(나는 구원 열차 올라타고서 ...) 내지 “다함께 천국행 기차를 탑시다”를 넣기도 했다. 이 얼마나 적절한 선곡인가! ^___^

2. 무반주 생목소리

요즘이야 울 교회가 인원이 늘어서 어지간한 집회(주일 예배, 여름 수련회 집회 등) 때 참석자 중에 피아노 반주가 가능한 사람이 전혀 없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옛날에는 집회를 앞두고 준비 찬송을 불러야 하는데 반주자가 전혀 없을 때가 아주 가끔 있었다.
그럴 때는 부득이하게 인도자인 내가 그냥 무반주 생목소리로 찬송을 부르곤 했다.

그렇게 생목소리로 찬송을 부르는 중에 반주자가 뒤늦게 도착하기도 하는데..
반주자는 피아노 앞에 앉아서 멀뚱멀뚱 기다리다가 다음 곡부터 반주를 하는 게 아니다.
지금 불러지고 있는 부분으로 바로 들어와서 반주를 시작한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내가 무반주 생목소리로도 반주가 있을 때와 아무 차이 없이, 언제나 악보와 동일한 음높이로 찬송가를 부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주자가 악보대로 코드 넣고 반주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들어올 수 있다.
반주자가 직접 형제님하고는 아무 때나 이렇게 같이 호흡 맞출 수 있고 반주하기가 편하다고 얘기하는 걸 듣고서야.. 이 기질이 반주자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난 예나 지금이나 조가 반음이라도 올라가거나 내려간 곡은 다른 곡으로 인식한다. 뭔가 음식이 쉬어서 맛이 변한 것 같은 차이가 느껴진다.
음반에서 G장조로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곡을 Ab 같은 다른 조로 바꿔서 부르게 되면.. 음반을 들으면서 경험했던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색소폰 같은 이조악기를 배울 때도 굉장히 애먹었다.

3. 마구니

한번은 "이 세상의 모든 죄를"이라는 찬송가 3절을 부르던 중..
"아버지를 멀리 떠나 바른 길을 저버리고 여러가지 죄악으로 주홍같이 되었으니
물 같은 것 가지고는 씻을 수가 아주 없네, 주님 귀한 보배피로 날 정결케 하셨도다"

글자가 순간 "물 같은 것 끼얹어선"이라고 눈에 들어와서 피식 뿜을 뻔했다. 진짜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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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소리는 방송 타고 퍼지고 있는데.. >_<
순간 아찔했다. 다행히 스스로 감정을 컨트롤 해서 겉으로 드러나는 방송사고는 나지 않았다.
어떤 목사가 바둑에 빠져 버려서 기도 마무리를 아멘 대신 '아다리'라고 했네 그게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찬양인도자도 가끔은 마구니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기름이나 화학약품 화재는 물을 부어서 끌 수 없으며, 인간의 죄는 물 같은 걸로 씻을 수 없다.

4. 추억의 특송 편성

예전에도 몇 번 자랑한 적이 있었지만..
본인이 기획했던 역대 교회 청년부 특송 중에서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 가장 공들였고 가장 창의적이고 훌륭했다고 생각하는 작품은 2017년 4월작이었다.

“맑고 밝은 날 / 변찮는 주님의 귀한 약속 / 사랑해요 목소리 높여”
19세기 찬송가의 앞뒤로 짤막한 1970년대 CCM을 넣은 3곡 메들리이다. (☞ 듣기)

이건 특정 테마 없이 완전히 백지 상태에서 1100여 곡이 수록된 찬송가 책을 거의 2시간 가까이 뒤진 끝에.. 세 곡 조합을 자체적으로 발굴한 것이었다.
박자와 조가 동일하고(E장조 4/4박자), 멜로디와 가사가 모두 연달아 부르기 적합한 곡들 조합 말이다.

세 곡 모두 우리 교회에서 한 번도 불린 적 없었고 나도 모르던 신곡이었다. 처음 보는 곡의 악보를 머릿속으로 읽기만 하면서 “이 곡이 이렇게 끝나니, 다음엔 얘를 부르면 되겠다” 이렇게 시뮬레이션을 하며 곡을 골랐었다.
전주와 간주, 반복 같은 바리에이션도 다 내가 직접 구상했다.
내가 없는 멜로디를 새로 만들어 낼 능력은 없지만, 그래도 이미 있는 곡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스킬은 이때 그럭저럭 발휘됐다.

  • “맑고 밝은 날”은 어린이 찬송 스타일의 분위기 띄우는 짤막하고 명랑 발랄한 첫곡.
  • “변찮는 주님의 귀한 약속”은 예수님이 우리의 본보기 예제이다, 우리는 그분을 따르겠다는 가사의 중간 주제곡. <예수 나를 오라 하네>와 후렴 가사가 거의 같다.
    • Where he leads I’ll follow, follow all the way (저거)
    • Where he leads me I’ll follow, I’ll go with him all the way (예수 나를 오라 하네)
  • “사랑해요 목소리 높여”는 워십쏭 스타일의 조용하고 우아한 마무리 곡. 특히 조를 올려서 한번 더 반복한다.

지금 다시 보니.. 첫 곡의 마지막 소절 가사 “매일 주님 사랑 따라 말씀대로 살리라”의 원래 영어 가사는 Living each day by the PROMISES in God’s WORD 이다.
그런데 다음 곡 “변찮는 주님의 귀한 약속”은 1절 가사가 Sweet are the PROMISES, kind is the WORD이다.
우와~~! 대박인데? 영어로 불렀으면 똑같이 약속과 말씀이라는 단어가 나오면서 시너지 효과가 더욱 커졌겠다. 이어서 부르기 더욱 적절한 조합이었다.

교회에서 특송이 계속됐으면 나도 이런 것들 연구를 계속하고 더 많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만..
이게 중단된 지가 벌써 어언 1년 반이 돼 가니 아쉽고 안타깝다.
나야 이 타이밍에 맞춰 청년부 졸업 준비를 하니 그나마 타격이 덜하지만, 20대 시절, 대학 시절의 추억이 집콕과 마스크에 가려져 삭제된 세대는 좀 안습한 처지가 됐다.

Posted by 사무엘

2021/06/15 08:35 2021/06/1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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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셋 한글 입력기 10.2 이후로 약 3개월 만에 다음 버전인 10.21을 공개하고자 한다. 그리고 타자연습도 오랜만에 버전업을 해서 3.93이 나왔다. 하지만 둘 다 0.01밖에 증가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한글 입력기는 (1) 보조 입력 도구(화면 키보드, 문자표 등)들을 구동하는 엔진 개선, 그리고 (2) 세벌식 동시치기 기능 강화.. 이 둘을 10.x 중반에서 마무리 짓고 나서 내부적인 자체 기능 개발은 이제 진짜 끝을 내려 한다. 이것 말고 ARM64 지원이나 크롬 브라우저 이슈(미래에 또 발생한다면) 같은 건 외부 이슈들이다.

이번 버전은 지난번 개발 근황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크롬 브라우저 보정 내역 업데이트, 보정 UI의 보강, 여러 UI 개선과 버그 수정이 있었다. 그때 이후로 추가로 발생한 변화 내역은 다음과 같다.

1. 설치 UI에서 간략한 입력 설정 초기화 기능 제공

프로그램을 설치할 때 다음과 같은 선택 단계를 추가했다.

물론 이것들은 설치를 마친 뒤에 날개셋 제어판을 꺼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작업이다.
하지만 사용자가 원한다면 프로그램을 제거/재설치하면서 입력 설정도 같이 싹 리셋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한글 로마자 입력 방식은 사용자가 원한다면 특별히 이렇게 바로 지정 가능하다. 제어판을 꺼내서 로마자 입력기 빠른설정을 번거롭게 불러올 필요조차 없다. 안 그래도 내 프로그램은 아직 영문 도움말도 없는데(UI만..) 외국인이 Windows 환경에서 한글 로마자 입력 방식을 더 간편하게 쓸 수 있게 했다.

2. 한글 출력 치환 관련

한글 출력 치환은 문자 생성기를 ‘고급’으로 지정했을 때 사용 가능한 기능으로, 내부적으로는 한글 입력 상태이지만 겉으로 비한글 문자가 섞여서 표시되는 처리를 담당한다.
여기서 비한글 문자라는 건 한글 자모를 여러 자로 풀어서 표현하는 것도 포함된다. 간단하게는 히라가나/가타카나 같은 일본어 문자를 한글로 입력하는 것(글자 단위 치환)부터 시작해 한글 한 글자의 범위를 넘어서는 온갖 복잡한 한글 입력 동작을 이 기능으로 구현할 수 있다.

한글 한 글자라는 경계를 기본 입력과 고급 입력으로 구분한 것은 개인적으로 오랜 연구와 고민의 결과였다. 그렇잖아도 고급 입력기는 통상적인 한글 조합과 무관한 사용자 정의 조합을 자체적으로 제공하기도 하니, 한글을 조합하고 있을 때는 이런 customization을 제공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이치에 맞기도 하다.

아무튼.. 이 기능이 지금까지는 아무 낱자도 입력되지 않은 상태인 0낱자에 대해서는 치환이 지원되지 않았는데, 이번 버전에서는 이것도 가능하게 했다. 즉, 글쇠가 아직 눌러지지 않은 성분에 대해서 기본적인 치환 문자열이 미리 표시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출력 치환 기능은 ‘기본’ 입력기에서 이미 제공하고 있는 가상 낱자와 같이 맞물려서 동작한다. 출력 치환이 걸리고 있는 낱자는 대부분의 경우, 자기가 원래 있던 자리에서는 0으로 치환되어서 아무것도 표시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제어판 UI에서 물리적인 낱자가 존재하지 않는 300, 500 같은 영역에서 문자열 치환을 지정했다면, 그 낱자 자신은 0으로 치환되도록 가상 낱자 규칙도 자동으로 추가되게 UI 동작을 개선했다.
이제 낱자 단위 출력 치환 설정을 한 뒤에, 가상 낱자에다가도 0치환을 추가하는 번거로운 두벌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타자연습은..

  • 기본 연습글에 UN 세계 인권 선언문을 추가했다. 수백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이라는 개념을 세계 각국의 법률에다 각인시킨 역사적인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말 번역이 심하게 길고 어색하고 장황한 번역투인 것은 좀 아쉽다.

  • 내 프로그램은 인터넷 유행어와 개드립이 연습글로 수록되어 있는=_=;;; 게 조금씩 입소문을 타면서 주목받고 있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과 "독일의 과학력은 세계 제이이이일!!"을 추가했다. 김 성모 어록, 세스코 질답 모음, 부산 운전 후기, 클레멘타인 영화 감상평, 어둠에다크에서 따위는 한참 전부터 이미 있었던 것들이고..

  • 사소한 사항이지만.. 긴글 연습 입력란을 감싸는 두꺼운 테두리도 고전 기본 스타일이 아니라 다른 창들과 마찬가지로 테마가 적용된 새끈한 형태로 변경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 근래에 타자연습 프로그램이 바뀌어 온 건 멀티모니터 지원, 1픽셀 여백 반영, 그리고 테두리 모양.. 이렇게 정말 소소한 것들밖에 없는 듯하다.;; 그런데 아무 의미가 없는 건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는 반영하고 버전업을 해야 한다.

이상이다.
2021년 현재까지도 공 병우 박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벌식 자판을 사용하고 10년 이상 날개셋 브랜드 프로그램들을 애용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린다. 정말 느리고 몇 번이나 양치기 소년 같은 불발탄 선언으로 그치긴 했지만, 이 프로그램의 주된 기능 개발도 정말 끝이 보이고 있다.

한글처럼 알파벳이나 한자와는 완전히 다른 독특한 문자가 애초부터 아예 없었다면 모를까, 기왕 있다면 그 한글의 구조적인 장점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 세벌식 자판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윤디자인에서도 한글 IME를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됐다. 오.. 2019년이면 한컴에서 IME를 만든 때와도 얼추 비슷해 보이는데?
내가 대학교 말년, 날개셋 버전 3.x 시절에 TSF라는 규격을 만지면서 낑낑거리고 나서 한 13~15년쯤 뒤에야 다른 싸제 TSF 기반의 한글 IME도 조금씩 만들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잘 알다시피 ‘나빌’이라는 입력기도 나왔고..

유튜브에다가 새마을호 Looking for you 동영상을 올리던 시절에만 해도 이런 마이너한 곳에 한국어 댓글이 달릴 일이라고는 없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댓글 천지가 됐듯이..
중국? 일본이 아니라 한국에서 TSF 쪽 API를 파는 사람은 전국에서 나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이런 IME도 개발되어 나온다니 일면 반갑다.

IME들 간에 평범한 기능들은 결국 다 비슷비슷하게 제공되고 격차가 없어져서 상향평준화 수렴진화할 것이다.
하지만 타 IME들이 결국은 이미 있는 글자판이나 옵션들 몇 가지만 지원하는 반면,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세벌식에 특화돼 있고 입력 동작의 모든 면모를 프로그래머 수준으로 customize 가능하다는 점에서 다른 제품들과는 근본적인 차별화 요소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06/13 08:35 2021/06/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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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0년대 중반의 제품 데모: 3D Studio R3, Windows 95

인터넷이란 게 없던(= 가정용으로 널리 보급되지 않은) 시절에 컴퓨터로 바깥의 최신 문물을 접하는 방법은 기껏해야 PC 통신, 아니면 컴퓨터 잡지와 함께 배포되던 부록 CD였다.
그런데 모뎀으로 접속하던 PC 통신은 접속 시간에 비례해서 부과되는 전화비의 압박이 심했으며, 전송 속도도 지금의 인터넷 전용선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느렸다. 그렇기 때문에 수십~수백 MB 이상의 대용량 자료를 배포하는 수단으로는 CD 같은 물리적인 매체가 여전히 의미가 있었다.

PC 통신 자료실이건, 잡지 부록 CD건, 이런 매체에는 유명 소프트웨어의 무료 체험판과 데모가 많이 포함돼 있었다. 유료로 판매되는 제품에서 일부 기능만 사용할 수 있거나 사용 기간이 제한된 것 말이다. 아니면 애초에 사용자가 조작해 볼 수 있는 기능은 없고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처럼 일방적인 기능 소개와 화면 시연만 들어있는 데모 프로그램도 있었다.

그 중 본인이 인상깊게 봤던 것은 3D Studio R3.. 3DS에 MAX라는 이름이 붙기도 전, 게다가 도스용이 존재하던 시절 버전의 데모이다. 이거 화면을 유튜브에서 다시 보는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정말 유튜브에 별별 것들이 다 올라온다..;; (☞ 링크)

요즘 같으면 파워포인트.. 하다못해 플래시로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몇몇 화면 전환이나 프로그램 실제 화면 애니메이션 같은 건 난이도의 압박이 있을 것 같다.
1994년에는 아직 플래시도 없었기 때문에 도스에서 exe 형태로 저런 프레젠테이션 데모만 제작하는 전문 업체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소개하고 싶은 것은.. 국내에서 제작됐던 Windows 95의 데모 겸 기초 기능 튜토리얼이다. 95~96년 사이에 이거 보신 분 계신가..?? (☞ 링크)

"윈도우즈 구십오", "엠에스 더~스" 라고 또박또박 말하는 여성 나레이터 목소리가 찰지게 느껴진다.;;
도스와 Windows 3.1의 타성에 젖어 있던 사람들한테 시작 메뉴와 바탕 화면, 탐색기, 단축 아이콘(현재 명칭은 '바로가기') 개념을 처음으로 가르치고 홍보하느라 마소에서 그 당시에 돈 엄청 많이 쓰긴 했다.

이 데모 프로그램은 Windows 95 한글판의 CD에 포함된 프로그램은 아니었는데 어느 경로로 유포되었는지 궁금하다. 그냥 PC 통신이나 잡지 부록 CD였는지..?

2. 게임 데모

예전에도 한번 언급한 적이 있지 싶은데.. 과거에 스티브 잡스는 소수의 추종자 매니아를 양성하는 식으로 제품을 판매한 반면, 빌 게이츠는 정말 통 크게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전세계에 컴퓨터를 보급해서 세계인들의 생활을 확 바꿔 놓고, 그 컴퓨터라는 기계에 우리 회사의 운영체제를 몽땅 뿌려 버리겠다는 심보로 장사를 했다.

그래서 Windows 95에서 드디어 32비트로 체제를 바꾸기도 했으니.. 얘를 본격적으로 게임용 홈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으로 만드는 일에 가히 사운을 걸었다. 그래서 거의 곧장 DirectX를 만들었으며, 특히 세계적인 히트를 치고 있던 Doom 2 게임 정말 0순위로 Windows용으로 포팅을 지원해 줬다.

PC에서, 그것도 DOS가 아닌 Windows에서 텍스처 매핑이 적용된 실시간 3D 게임이 돌아간다는 건 굉장히 획기적인 일이었다. Windows는 그저 지뢰찾기나 카드 게임 같은 가벼운 게임만 하는 플랫폼이라는 고정관념이 드디어 깨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Windows 95 원본 CD에는 Hover!이라고.. 범퍼카를 몰고 맵을 돌아다니며 깃발을 상대방보다 먼저 뺏는 게임이 있었다. 마소가 게임 전문 개발 업체는 아니지만, 이건 외주가 아니라 마소에서 직접 개발했던 듯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얘는 비록 세계적인 명작인 Doom만치 막 박진감 넘치는 요소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그래픽은 Doom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초보적이나마 1층 공간 위에 2층이 구현돼 있기도 했다는 점에서 Doom 엔진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Windows 95와 거의 동시에 Fury라고.. Hover의 공중 버전 내지 윙 커맨더의 축소판 같아 보이는 게임도 개발돼 나왔다. 얘는 외부 개발사와 합작 내지 외주 형태로 개발됐고 Windows 95에 포함돼 있지는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게임 진행은.. 뭐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총 쏘고 부수는 것 정도만 기억에 남아 있다.
마소는 Fury니, Hover!이니 하는 아기자기한 게임들을 같이 내놓으면서 우리 Windows 95는 저런 화려한 3D 그래픽이 가능한 게임용 플랫폼이라는 걸 기를 쓰고 내세웠던 듯하다.

그러고 보니 Win95의 발매 직후에는 DirectX라는 것도 아직 완전 듣보잡이거나, 버전이 2~3 이러던 시절이었을 텐데.. 3D 그래픽 가속이라는 건 퀘이크도 나오고 최소한 96~97년, Voodoo니 뭐니 하던 게 나온 시절부터 주목 받았을 텐데 저런 게임들은 CPU빨만으로 3D 그래픽 애니메이션을 구현했던 건지 궁금해진다.

끝으로, 비록 저렇게 1인칭 3D는 아니지만 3D 핀볼이라는 유명한 번들 게임도 있었다. 얘는 나름 Windows 3.1 + win32s에서도 돌아갔던 까마득한 옛날 프로그램이다.
마소에서 외부 업체로부터 소스 코드를 구입해서 자사 제품에다 포함시켰는데.. the old new thing 블로그에서의 회고에 따르면 코드가 주석 한 줄 없이 도저히 유지보수 가능한 상태가 아니었다고 한다.

훗날 Windows가 32비트에 이어 64비트로 갈아탈 때가 임박했는데, 얘는 내부적으로 오프셋 계산에 문제가 있었는지 64비트에서는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고 어디를 고쳐야 할지를 알 길이 없었고, 그렇다고 얘는 오픈소스화가 가능한 물건도 아니다 보니 64비트에서는 핀볼이 결국 짤리게 되었다.
그 외부 업체가 코드를 컴파일만 가능하고 유지 보수는 도저히 가능하지 않은 형태로 일부러 변조해서 줬던 것 같다.

3. 왓콤 win386

1990년대에 왓콤(Watcom)이라는 컴파일러 제조사는 PC의 도스 환경에서 32비트 프로그램의 개발 환경을 시세 대비 매우 저렴하게 제공한 일등공신으로 칭송받았다.

그 시절에는 아직 386/486급 PC의 가격도 아주 비쌌고, 32비트 코드 생성을 지원하는 컴파일러도 비쌌고, 특히 도스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돌아가게 해 주는 DOS Extender도 아주 고가였다. 그런데 왓콤은 32비트 컴파일러와 무료 번들용 DOS extender까지 아주 파격적인 가격에 보급했던 것이다. 그러니 아주 전문적인 대형 고급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분야에서 수요와 고객을 확보할 수 있었다. 볼랜드나 마소 같은 주류 컴파일러 제조사들은 그저 16비트에 안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왓콤의 무서운 면모는 도스용 32비트 개발툴만 만든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1990년대 초, 아직 Windows NT 3.1이 정식으로 나오기도 전에 멀쩡한 Windows 3.0/3.1를 마개조해서 32비트 코드를 구동해 주는 win386 Extender를 개발했다~! 그리고 이 시스템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32비트 코드를 생성하는 Windows 타겟용 컴파일러를 덤으로 보급했다. 기존의 16비트짜리 도스/Windows API를 호출할 때는 물론 입출력값을 변환할 테고 말이다. (☞ 더 자세한 소개)

이게 내부적으로 어떤 원리로 동작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오늘날의 Windows NT처럼 PE 포맷을 사용하지도 않았을 텐데..
하긴, 16비트 시절에는 Windows용 한글 바이오스(한메한글~!!)도 있었으니, 뭔가 시스템 내부를 마개조하기가 더 쉬웠던 것 같다.
당장 마소에서 옛날에 개발했던 FoxPro 2.5~2.6이 왓콤 win386을 기반으로 개발됐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 마소 본가에서 Windows NT를 출시해서 32비트 Windows API가 제대로 정립되고, 32비트용 Visual C++ 1.0과 win32s 같은 게 줄줄이 나오면서 왓콤 win386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됐다.
Windows의 32비트화 내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real 모드: 1.0~3.0 (1985~1990) 사실상 640KB 기본 메모리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초 열악 모드.
  • 286 standard: 2.0~3.1 (1987~1993) real보다는 나은 것 같지만 정확하게 언제 처음으로 등장했고 차이점이 뭔지 존재감이 매우 없음.
  • 386 enhanced: 3.0~ (1990~??) 아직 32비트 코드를 시행하는 건 아니지만 도스창을 완전히 가상화할 수 있고 확장 메모리를 더 사용 가능함.
  • Win32s: 3.1 (1992~1996) 딱 32비트 코드 실행만 가능한 최소한의 모드
  • Windows 9x: 95~ME (1995~2000) 프로세스 별 주소 공간이 독립하고, 멀티스레드가 가능해짐
  • Windows NT: 3.1~10 (1993~현재) 유니코드 기반, 온전한 메모리 보호, 16비트 코드의 완전 가상화까지 실현

사실 386 enhanced mode라는 건 Windows 3.0 이전에 2.x의 386 에디션에서 최초로 도입되긴 했다. 하지만 이건 마치 Windows XP의 x64 에디션만큼이나 존재감이 없다.

4. 오 성식 생활 영어 SOS

우와~~ 이거 정말.. 추억의 멀티미디어 CD 타이틀이었다. (☞ 링크)
그 시절에 ToolBook이라고 CBT 멀티미디어 교육용 소프트웨어 저작도구가 있었는데..
쟤도 바로 툴북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었다.
컴터에서 avi 허접 동영상이 재생된다는 것만으로도 왕창 신기하던 시절에 나왔던 물건이다.
저 타이틀에서는 도움말 나레이션만 낭독한 이 보영 씨 역시 현재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는 유명 영어 강사이다.

그 뒤 저런 멀티미디어 컨텐츠를 만드는 플랫폼은 플래시로 넘어갔다가..
요즘은 플래시를 쓸 필요도 없이 저런 건 그냥 웹에서 HTML5 자바스크립트만으로 다 처리 가능하게 된 지 오래다.

쟤는 프로그램을 바로 종료하려 하면.. "공부라는 건 최소한 50분은 넘게 집중해서 해야 효과가 납니다. 그래도 지금 바로 종료하시겠습니까..."라는 확인 질문이 떴다.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접했던 소프트웨어들 중 가장 훈계조로 종료를 저지하는 물건이었다.
반대로 Doom 2 게임은 온갖 농담 조크를 날리면서 종료를 저지했던 프로그램이고..

인트로 화면 보소..
딱 미리내 소프트웨어 "그 날이 오면 3" 게임의 인트로와 비슷한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가..??

레 솔솔 라 레레 솔 라시 레 시라솔 라~~
25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나는 멜로디를 정~확하게 녹음기로 틀어 놓은 듯이 기억하고 있다. 초딩 나이로 워낙 환상적인 경험이어서...

Credits를 보니.. 요 아름다운 인트로 음악을 작곡한 사람이 이 영수 교수(1951-2018. 영남 대학교 음대 작곡과)였다고 나온다.
어머니의 마음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의 멜로디를 만든 작곡가 이 흥렬의 아들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06/10 08:36 2021/06/1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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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이야기

물리학이 작용 반작용이 어떻고 하다가 전자기력, 핵력 따위를 다룬다면, 화학은 산과 염기가 어떻고 극성과 무극성(수용성 지용성..), 유기물과 무기물이 어떻고를 논하는 꽤 오묘한 과학 분야이다.
다만, 화학과하고 화학공학과는 일반 음대와 실용음악, 물리학과와 기계/전자공학, 심지어 언어학과 문예창작(!!)이 다른 것 이상으로 공부하는 것과 지향하는 바가 매우 다르다.;;;

20세기 이래로 인류가 누리는 복 중 하나인 합성섬유와 플라스틱, 냉장 냉동 시설의 냉매, 휴대용 전자기기에서 쓰이는 고성능 배터리, 이것 말고도 각종 저렴한 인조 물질들을 존재 가능하게 한 것이 화학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의 다이어그램에서 파랑이 아닌 주황색 화살표는 아무래도 물리보다는 화학의 비중이 더 큰 영역이라 생각된다.
그림에서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열을 효율적으로 내기 위해서 연료를 잘 정제하는 것도 응당 화학의 몫일 테고.. 그러니 화학 회사는 전지 쪽이든 석유 쪽이든 '에너지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좀 있다.

비전공 화알못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화학에서 굉장히 의미심장 대단한 변화/발견이라고 생각하는 건 다음과 같다.

1. 산과 염기 정의의 확장

전자기학에서 + -라는 양극을 다루는 것과 비슷하게 화학에서는 산과 염기라는 상극 개념이 있다. 그런데 그걸 엄밀하게 정의하는 게 은근히 난감했다.
처음에는 물에 용해됐을 때 H+ 이온을 내놓는 물질이라고 비교적 단순하게 정의됐는데(19세기 아레니우스의 정의).. 나중에는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예: 수용액이 아닌 곳에서는?).

그래서 화학에서도 산· 염기의 특성을 더 미시적으로 규정한 새로운 정의가 등장하게 되었다. 비전공자로서 본인이 기억하는 건 루이스의 정의 정도가 전부이다.
이런 게 물리로 치면 미터와 초의 정의가 더 엄밀하게 바뀌는 것과 비슷하고, 수학에서 음수의 거듭제곱이나 로그, 팩토리얼, 제타 함수 따위를 대수적으로 확장하여 정의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스타에서 디바우러가 뱉어내는 독성 물질이 설정상으로는 산성의 독액이다.;;
글쎄, 황산 염산에 비해 강염기가 금속을 녹인다는 말은 딱히 못 들어 본 것 같다. 하지만 생체 단백질을 녹이는 성능은 염기도 산보다 더하면 덜하지 결코 못하지는 않다.

그나저나 염기하고 '알칼리'의 차이는 뭐지..?? 단순 별칭인가?
원래는 동일한 개념인데 지질학인가 특정 분야에서는 둘을 약간 다른 용도로 구분해서 쓰지 싶다.

2. 유기물의 합성

인류는 연금술을 이용해서 구리에서 금을 '저렴하게' 인위로 만들어 내는 건 성공하지 못했다.
(오늘날은 뭐.. 입자 가속기 돌려서 원자 단위의 조작을 가해서 금을 이론적으로 만들어 낼 수는 있다..;; 하지만 실패 확률이 매우 높고 초극미량밖에 안 생기는데 비해 가속기 돌리는 비용은 가히 살인적.. 그냥 금은방에서 금 현물을 구입하는 게 더 쌀 정도로 가성비가 안 맞을 뿐이다. 물질을 원자 수준에서 본성을 유지시키는 원초적인 힘은 매우 매우 어마어마하게 강하기 때문에 현대의 과학 기술로도 제어하고 조작하기가 몹시 어렵다.)

그 반면, 인간이 금 생성 대신 다른 영역에서 성공한 것이 있는데.. 바로 요소라는 유기물을 실험실에서 자체적으로 합성해 낸 것이다.
그 전에는 고온에 노출됐을 때 곱게 녹고 달궈지고 증발하기만 하는 물질과(비등점), 불이 붙어서 에너지를 내며 활활 타고 재가 되는 물질(발화점).. 동식물 생명체로부터 유래된 물질은 근본이 서로 완전히 다르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그 통념이 깨지게 됐다. (플라스틱만 해도 열가소성 수지와 열경화성 수지로 나뉘는 걸 생각해 보자~!)

금을 인위로 만드는 것과 동급으로 불가능이라고 여겨졌던 유기물의 인위 합성(무기 화합물로부터)은.. 프리드리히 뵐러라는 독일 화학자가 1828년에 최초로 성공했다. 수학으로 치면 초월수임이 최초로 증명된 수, NP 완전 문제임이 자가증명된 최초의 문제와 비슷한 지위라 할 수 있겠다.

이것은 연소와 관련하여 플로지스톤설이 부정되고, 생명의 자연발생설이 부정되고, 빛의 속도가 유한하다는 것이 알려진 것과 비슷한 급의 혁신이었다. 19세기에 물리학에서 전자기학이 새로 태동한 것처럼, 화학에서는 복잡한 탄소 화합물의 분자 구조를 다루는 유기화학이라는 난해한 분야가 이때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요소 말고 다른 유기물들도 실험실에서의 합성 성공 사례가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나왔다.

3. 암모니아, 아세톤의 합성

역시 독일의 화학자인 프리츠 하버는 1909년, 공기 중의 질소로부터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공법을 개발했다. 이 덕분에 질소 비료를 원하는 만치 인위로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됐고 콩이나 휴경 같은 자연 요법 없이도 지력을 유지하며 농사를 계속해서 지을 수 있게 됐다.

이건 정말 '공기로부터 빵을 만드는 기적'을 행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식량 생산이 인구 증가를 못 따라간다는 맬서스 트랩이 이 업적 덕분에 불식되었다.
그래도 이 사람도 구리로 금을 만들지는 못했기 때문에 조국 독일의 1차 대전 패전 배상금을 갚기 위해서 바닷물을 대량으로 증발시켜서 거기 녹아 있던 금을 추출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건 가성비가 안 맞아서 곧 포기..

비슷한 시기에 '하임 바이츠만'이라는 영국계 유대인 화학자는 또 다른 유기물인 아세톤을 인위로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해서 화약의 대량 생산과 1차 대전 연합국의 승전에 큰 기여를 했다.
그는 그거 보답으로 유대인들이 들어갈 팔레스타인 땅을 요구했고, 훗날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까지 됐다. 프리츠 하버와 하임 바이츠만의 비교는 수 년 전에 이미 한 적이 있으니 여기서는 그냥 링크로 대체하겠다. (☞ 링크)

20세기 전반은 정말 화학 강세였던 시절 같다. 정확하게는 화학공학..

Posted by 사무엘

2021/06/07 08:33 2021/06/0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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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질적이지 않은 오해와 중상모략

세상에는 기독교의 탈을 쓴 이단 사이비가 여럿 있다. 이단들은 단번 속죄 구원의 영원한 보장 교리를 이상하게 배배 꼬는 경향이 있다.
아예 구원의 상실, 행위 구원을 가르치는 건 예사이고, 반대편 극단으로 가서 이제 죄 용서 받았고 구원받았고 무슨 짓을 해도 지옥은 안 가니 "니 꼴리는 대로 살아도 된다, 심지어 일체의 참회나 회개를 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롬 6:1-2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헛소리를 하는 곳도 있다.

이런 소리를 정상적인 크리스천이 들으면 "그건 성경의 가르침을 일부만 그것도 아주 잘못 적용한 이단 교리일 뿐이다. 성경은 그런 막장 결론을 의도하거나 조장하지 않으며, 우린 그런 가르침하고는 아무 관계 없다"라고 항변하고 싶을 것이다. 영화 밀양에서 묘사된 것처럼 "나는 신에게 다 용서받았으니까 괜찮아~" 이러는 양심 마비자를 제정신 박힌 크리스천이라고 간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비슷한 논리로, 진화론에 대해서도 진화론적 세계관, 무신론, 유물론, 우생학, 사회 진화론 이런 것까지 연루시키면서 이놈의 사탄 마귀적인 진화론의 영향을 받아서 나치즘과 공산주의가 생겨났고 젊은이들의 정신이 황폐해지고 어찌 됐네 이렇게 프레임을 씌운다면... 단순히 과학 이론으로서 진화론을 지지하는 사람하고는 더 대화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진화론자라도 "흑인은 인간과 짐승 사이에 진화가 덜 된 생물이다" 이딴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개인적인 소신은 당연히 "이 우주와 생명이 우연히 저절로 생긴 게 아니고 절대자가 있다"라는 신의 창조이다. 그 정도 진화가 가능하다고 해서 인간 정도의 고등한 생명체가 그런 진화의 산물로 저절로 생기는 건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믿음을 발휘할 영역과 과학 관찰로 승부할 영역,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파생 효과 내지 오해· 중상모략 같은 것은 분명하게 분간해서 주장해야 할 것이다.

2. 과학 관찰은 종교색과 무관

이 세상 학계에서는 누구 말마따나 그저 하나님을 인정하기 싫어서 과학 시간에 창조론을 가르치지 않는 걸까? 20세기에 천문학계에서 벌어졌던 논쟁을 생각해 보면, 이 문제를 좀 다른 관점에서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천동설과 지동설, 창조와 진화 같은 것과 마찬가지로.. 천문학계에서는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 대폭발설(일명 빅뱅)과 정상 우주론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그 당시엔 두 이론이 모두 상대편 이론을 완전히 제압할 정도로 과학적 증거가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심상을 고려하면 오히려 빅뱅이 뭔가 시작과 기원, "빛이 있으라" 같은 창세기 1장 느낌이 물씬 풍긴다. 게다가 빅뱅이라는 개념을 1930년대 초에 최초로 제안했던 사람은 천문학자 겸 현직 가톨릭 신부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무신론 과학자들은 이를 심리적으로 거부했다.

이와 달리 정상 우주론--딱히 기원이 없고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동일하게 있음--은 벧후 3:4의 심상과 비슷하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이건 잘못된 사고방식이라고 깐다. -_-;;
그랬는데.. 훗날 우주 배경 복사라는 게 발견되면서 이 주제는 빅뱅이 맞는 것으로 사실상 결론 지어졌다. 정상 우주론은 천동설 급으로 완전히 폐기된 건 아니지만 거의 소수설 비주류로 전락했다.

요지는.. 세상 학계도 과학적인 증거만 있다면 창세기 냄새가 좀 풍기는 학설이라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공립 학교에서 과학 시간에 창조론(?)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세상 인명 사전에서 예수에 대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다음으로 "사흘 만에 부활했고 승천했다"라고 차마 쓰지 않는/못하는 것과는 성격이 약간 다르다.

비슷한 예로 초능력이니 UFO니 하는 것도 꼭 기독교계에서 사탄의 미혹 운운하며 난리를 치지 않더라도, 과학적으로 검증 가능하지 않으면 이 바닥 종사자들이 알아서 배척한다.

물론 과학이 만능은 아니고 과학으로 알 수 없는 현상도 많다. 하지만 그 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지성은 최소한의 합리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정작 창조 과학 진영에서는 빅뱅을 여전히 배척한다는 게 아이러니이다. 빅뱅이 기원이라는 개념 자체는 성경과 일치하지만 연대기는 젊은 우주를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창 1:1,3이나 벧후 3:4가 지구를 넘어 우주의 기원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구절인지 잘 모르겠다. 이사야서에 나오는 "땅의 원 위에 앉으신 이"가 딱히 지구가 둥글다는 걸 말하지는 않으며, 계시록에 나오는 "땅의 네 모퉁이"가 지구가 평평하다는 걸 말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성경에 따르면 세상이 과거에 있었던 세상, 현 세상, 다가올 세상이라는 세 종류가 존재하고 하늘도 세 계층이 있다는 것 정도까지만 알 수 있다. 그 개념이 현대의 지질학이나 천문학이 밝혀낸 자연의 모습과 어떻게 대응하는지는 인간이 적절히 잘 풀어야 하는 숙제일 것이다. 다만, 성경이 문자적으로 사실이기 위해서 반드시 젊은 우주, 젊은 지구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본인의 소신이다.

3. 창조 과학의 정체성

창조 과학회라는 곳에서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 성경 내용은 문자적으로 옳고 정확하며, 과학적으로 사실이다.
  • 이 세상(우주, 지구, 생물..)은 우연히 저절로 만들어질 수 없으며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
  • 지구와 우주의 나이는 젊다.

성경이 오류가 없고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은 본인도 적극 동의하는 바이다. 창세기의 6일, 계시록의 1000년이 대표적인 예이다. 성경에 나오는 각종 인물, 명칭과 숫자들, 사건들은 대놓고 비유 허구라고 명시된 게 아닌 한 당연히 역사적으로 과학적으로 정확한 레알이다. 피나 일부 위생 관념에 대해서 말한 것은 분명히 시대를 앞섰던 것도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성경이 원자와 분자를 논하고 definition, theory, lemma가 나오는 이공계 학술서적 스타일로 저술된 책은 또 아니다.
성경에는 하늘에 해와 달과 별들만 나오지, 당장 금성 화성 목성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난 성경에 딱히 지구 자체가 둥글거나 평평하다고 말하는 암시는 없다고 생각한다. 욥기 38장에서 하나님의 질문은 이런 식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내가 우주를 한 점에서 시작해서 대폭발 시킬 때 네가 어디 있었느냐? 니가 인간 DNA의 염기 서열을 아느냐? 양성자와 중성자가 서로 붙어 있고 전자가 원자핵을 돌게 하는 힘이 어디서 나고 그게 무엇 덕분에 가능한지 니가 아느냐?
길바닥의 이끼도 해내는 광합성의 명반응 암반응 메커니즘을 니가 아느냐? 네가 전자기파의 속도가 유한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능히 측정할 수 있겠느냐?”


그러니 성경이 문자적으로 사실이긴 한데.. 도대체 어느 문맥과 scope까지 문자적인 사실인지, '모든'이라고 했을 때 얘는 도대체 어느 범위의 전체를 말하는 건지 정도는 그래도 최소한 성경이 자체적으로 정해 놓은 원칙에 따라 분간을 해야 한다. 그러니 창조 과학이라 해도 과학뿐만 아니라 바른 신학을 저변에 깔고 있어야 한다.

그 다음 지적 설계는 심증으로서는 매우 유력하며 신앙을 갖기에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시 19나 롬 1:19가 말하는 일명 자연 계시 말이다. 하지만 신의 존재는 과학으로 증명도 반증도 제대로 할 수 없으며, 이것이 과학의 관점에서 '물증'이 될 수는 없다.
이건 당연한 귀결 아닌가? 그렇다 하더라도 예수 믿는 사람들은 조금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창조 과학 진영에서 위의 두 명제.. 즉, 성경의 사실성과 지적 설계를 입증하기 위해서 그 다음으로 끄집어낸 카드가 바로 젊은 지구이다.
지구와 우주의 나이가 젊다는 학설? 가설 자체는 신학하고 전혀 무관하게 오로지 과학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분야이다. '세상이 우연히 만들어질 수 없다', '성경은 사실이다' 이런 것과는 좀 성격이 다르다.

이게 제대로 진행됐다면.. 세상 학계에서도 "난 무신론자여서 성경이니 신이니 그딴 건 모르고 믿지도 않음. 하지만 그와 별개로 지층을 관찰하고 물리 법칙을 생각해 보니 우주와 지구의 나이는 1만 년 이내로 보인다" 이렇게 주장하는 과학자가 나와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과연 그러한가? 창조 과학이 성경과 과학 중 하나라도 제대로 잡고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무척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나로서는 젊은 우주/지구에 대한 일말의 증거가 있다면 그건 아담 이래로 재창조된 현 세상의 연대기가 젊다는 과학적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니 good luck~! 우주 배경 복사나 방사선 연대 측정법의 허를 찌르면서 부디 과학계에 좋은 기여를 하길 바란다. 무슨 지구 온난화 허구설, 지구 평평 같은 이상한 유사과학 음모론으로 치부되지 말고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06/04 19:35 2021/06/0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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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이 된 와중에 문득 생각을 해 보니.. Windows 8과 8.1은 정말 존재감 없이 소리소문 없이 싹 묻히고 사라진 것 같다.
XP, 7 다음에 바로 10이다. 8 계열은 20년 전의 ME만치 망한 건 아니지만 Vista보다는 더 흑역사이다.

사실 난 개인적으로는 옛날에 XP 다음의 Vista는 그 정도로 욕 먹을 퀄리티는 아니었으며, 일부는 오해와 누명을 쓴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5년 만에 출시됐다 보니 갑자기 시스템 요구 사항이 너무 높아지고 일부 하드웨어와 호환이 깨지고, 사용자 계정 컨트롤이 도입된 게 반발을 일으켰을 뿐..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고 사후 재평가의 여지가 있는 이질감이었다. 7이라도 XP 다음에 바로 갑툭튀였다면 맞았을 질타를 미리 맞아 준 것의 비중이 크다.

그럼 8 계열은 사정이 어땠을까? 잠시 10여 년 전 당시 상황으로 되돌아가 보자.
이때는 나름 격변기였다. 아이폰이니 안드로이드니 하면서 본격적으로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컴퓨팅 생태계가 조성되고 있었으며, 마소에서도 초대 원로 경영진(빌 게이츠, 스티브 발머)이 대거 은퇴하고 세대가 교체되고 있었다. 사내 분위기가 크게 요동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와중에 얼리어답터들은 “Windows가 7 이후로 2010년대엔 도대체 어디까지 변모할까? 마소는 이 시점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이며 PC와 모바일과의 접목은 어떻게 이룰까?”라고 기대와 주목을 잔뜩 하고 있었다. 그때는 다음 버전이 심지어 재래식 NT 커널을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개발된다는 루머까지 나돌았다. (실제로는 그럴 리가.. NT 커널은 지금 Windows 10에서도 건재함! 없어질 수가 없다)

그랬는데.. Windows 7의 차기 버전인 8은 결과적으로 뭔가 구심점 없고 나사 빠진 듯한 망작이 되었다.
비주얼이 다시 심플해진 것은 그렇다 친다만, 갑자기 시작 메뉴가 없어지고 전체 화면으로 바뀐 것은.. PC와 스마트폰의 크기와 용도의 차이에 대한 고찰이 결여된 자충수였다. 게다가 8은 시작 메뉴 버튼 자체가 없었다~! 이런 제품이 어째 QA나 사용성 테스트를 통과하고 출시됐는지 모르겠다.

더 옛날인 2000년대엔 새 밀레니엄 컴퓨팅을 표방하면서 인텔 Itanium이라는 64비트 프로세서가 출시되었고 Windows는 2000뿐만 아니라 ME도 나왔었는데.. 아시다시피 Itanium과 ME는 대차게 망했다. 그런 것처럼 2010년대를 개막했던 Windows 8은 사용성 면에서 큰 혹평을 받으면서 XP와 7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그리고 사실은 스마트폰 OS의 쟁탈전도 매우 싱겁게 끝났다. 지금 다들 경험하시는 바와 같이 안드로이드 아니면 iOS로 양분되었고, 마소는 이 바닥에서의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겼다. 심지어 웹 브라우저마저 IE 독점은 진작에 물 건너갔고 Edge 브라우저도 자체 개발을 포기하고 크로뮴 엔진에 흡수되지 않았는가?
국내로 치면 모바일에서 주도권을 완전히 주도권을 빼앗기고 삼성 전자와는 정반대의 처지가 된 LG 전자와 비슷하다고 하겠다..;

그러니 8 시절부터 Windows에 도입된 Metro 앱이니 하는 것 역시 폰에서는 볼 일이 없어졌다. Universal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해졌고 지금은 그냥 스마트폰 같은 큼직한 글자의 UI 엔진이 제공되는 특이한 프로그래밍 플랫폼? 가상 머신?처럼 됐을 뿐이다. NT 커널 없이 새로 개발된다는 엔진이 이런 곳에 적용된 거라고 보면 되겠다.

그렇게 결판이 난 뒤 마소에서는 스마트폰용 OS가 아니라 그냥 기존의 데스크톱용 Windows 10을 스마트폰용 CPU인 ARM64에다가 포팅하는 식으로.. 즉,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모바일 환경에다 손을 내민 상태이다. 요즘 PC와 스마트폰의 경계가 많이 모호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PC는 안 쓸 때도 24시간 내내 켜 놓는 물건은 아니며, 떨어뜨려도 될 정도로 튼튼한 물건도 아니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스마트폰은 프린터나 재래식 하드디스크 같은 장치와는 여전히 친숙하지 않다.

그렇게 Windows 8 내지 8.1은 2010년대 초반 마소의 시행착오가 깃들어 있는 비운의 작품이 됐다.
개인적으로는 Windows 제어판이 Metro 기반인 ‘설정’으로 야금야금 대체된 건 글쎄.. 그냥 reinvent the wheel 삽질 같고 멀쩡한 인도 보도블록을 교체하는 듯한 느낌이다. 기존 제어판에 익숙한 사용자를 괜히 헷갈리게만 하고 말이다.
지금도 키보드의 반복 속도를 최대로 조절하는 것만 해도 설정에서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재래식 제어판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프로그램의 제목 표시줄에 제목이 가운데 정렬로 표시되었던 Windows는 과거의 16비트 시절 1~3.x 아니면 후대의 8/8.1밖에 없다~!! 거기 말고는 MS Office가 뜬금없이 2007부터 현재까지 가운데 정렬을 하며 따로 노는 중이다.

나머지 Windows 95, NT4부터 7, 그리고 지금의 Windows 10은 다 왼쪽 정렬이다.
Windows의 역사상 32/64비트 시대에 프로그램 제목을 가운데에다 표시했던 버전, 그리고 시작 버튼이 없던 버전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한글 IME의 개발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Windows 8 계열은 메트로 앱에 대해서는 키보드 포커스를 얻었을 때 가/A 한영 상태를 IME가 근처에다 팝업 창으로 수동으로 잠깐 띄워주고, 상태가 바뀌었을 때도 그걸 띄우는 수고를 해 줘야 하는.. 약간 원시적인 조치가 필요하던 유일한 운영체제였다.
메트로 앱은 전체 화면에서 실행되는 관계로, 운영체제의 기존 도구모음줄(language bar)의 보조를 전혀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도 아무리 생각해 봐도 뻘짓이었다. 도구모음줄을 IME가 제각각으로 구현해야 했던 1990년대도 아니고.. Windows 10부터는 메트로 앱도 창 모드로 실행 가능하고, 입력기의 상태를 작업 표시줄(task bar)에서 확인 가능하기 때문에 저렇게 할 필요가 없어졌다. 즉, 저 관행 역시 일회적인 이벤트로 끝났다는 것이다.

이상. 이 글에서는 Windows 8 계열에 대해 주로 다뤘지만, 걔네 말고 Windows라는 운영체제 제품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의아하거나 궁금한 점을 더 꼽자면 다음과 같다.

1. 비현실적인 권장 사양

마소에서는 Windows 7 64비트 정도의 시점을 마지막으로.. 자기 운영체제의 동작을 위한 최소 PC 사양과 권장 사양을 더 올려서 기재하지 않고 있다.
7이 램 최소 1GB 이상, 권장 2GB 이상인데.. 이게 Windows 8과 10까지 동일하다. 하지만 이건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완벽한 허위· 과장 광고라고 여겨진다.

도대체 어느 정도 돌아가는 게 최소 사양이고 어느 정도로 여유가 남는 게 권장인지 정확한 정의는 잘 모르겠다만.. 요즘 Windows 10은 램 8GB에서 돌려도 부팅 직후에 크롬 브라우저 창 몇 개나 MS Office 프로그램, Visual Studio 같은 걸 열면 메모리가 거덜난다. 정말 못 해도 16GB는 돼야 넉넉하다는 느낌이 든다.

Windows 7에서야 최소 1GB, 권장 2GB는 수긍할 만하며 램 8GB는 펄펄 날아다니는 용량이다. 하지만 10은 절대 그렇지 않다. 아무리 못 해도 최소 2, 권장 4 이상으로는 수정돼야 하리라 여겨진다. 그리고 요즘도 32비트 에디션이 나오고 있나 모르겠는데.. 걔는 이제 단종시켜도 될 것이다.

2. 서버 제품군의 존재감

Windows의 개인 사용자용 제품군은 아시다시피 2015년부터 10이라는 단일 브랜드 하에서 주기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프로그램을 진화(?)시키는 형태로 바뀌었다. 하지만 서버 제품군은 여전히 2008, 2012, 2016 등의 연도 브랜드를 쓰고 있어서 다소 이질적이다. 이런 이원화된 버전 넘버링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마치 Office 365와 기존 Office 20xx 패키지의 관계만큼이나 궁금해진다.

그리고 더 결정적으로는 기업 같은 데서 서버 제품군을 쓰는 곳이 있긴 한지..?? 이건 마치 Itanium 컴퓨터만큼이나 본인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구경해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서버 제품군을 쓸 정도의 컴퓨터라면 차라리 유닉스 터미널이 내장돼 있는 리눅스나 맥OS를 쓰고 말지 Windows를 쓰지는 않기 때문이다.

서버 에디션은 원래 Windows NT나 2000까지는 동일 버전의 바리에이션 형태로만 존재해 왔다. 그랬는데 XP 때는 웬일인지 Server 2003이라고 제품명은 물론 내부 버전 번호까지 다르게 붙일 정도로(5.1 vs 5.2) 차별화를 했었다. 그 대신 XP는 개인용 에디션이 홈 vs 프로로 더 세분화됐다.
그 뒤로 서버 제품군은 버전 번호는 클라이언트와 동일하지만 제품명은 저렇게 Server 20xx 식으로 나가고 있다.

3. 자잘한 UI 버그

  • 가끔씩 재래식 TSF 입력 도구모음줄과, 작업 표시줄 쪽의 Windows 10 스타일 입력 상태 아이콘이 동시에 나타나는 버그는 꽤 유명했는데 19xx나 20xx 사이에서 드디어 고쳐진 것 같다. 요즘은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caret (cursor)이 여섯 번 정도 깜빡이다가 깜빡임이 중단되는 버그는 여전히 건재한 듯하다. Windows 3.1 이래로 이런 특이한 현상은 처음이다.

  • 가~~~끔. 컴을 절전 모드에서 꺼냈을 때나 프로그램 창을 전환했을 때.. 이미 띄워져 있는 프로그램 창들이 부르르 다시 그려지면서 깜빡이고 떨리는 현상.
    내 개인용 컴과 회사 컴이 모두 그러는데 좀 보기 거슬린다.
    윈10 초창기에는 이런 현상이 없었고, 특정 컴에서만 그러는 것 같지는 않은데 왜 그러나 모르겠다. (2004대 버전 기준)

  • 컴퓨터에 따라서 케바케이긴 하지만.. 메뉴가 '파일, 편집' 같은 라벨의 우측 하단 ┗ 모양이 아니라 ┛ 왼쪽으로 펼쳐지는 기괴한 현상이 왜 발생하는지 모르겠다. 아랍권도 아닌 멀쩡한 한국어/영어에서 말이다.
    로컬라이즈나 사용 접근성을 위해 필요한 옵션이라면 제어판에라도 옵션을 정식으로 갖다 놓든지..? 저런 동작이 왜 존재하는지도 모르겠고, 또 사용자의 동의 없이 불쑥 바꿔 놓고는 원상복구를 왜 레지스트리 수정을 통해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1/06/02 08:36 2021/06/02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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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가 음향의 재송신/녹음 문제

전화기에는 수화기 쪽의 소리를 키워서 굳이 귀를 기기에다 갖다대지 않아도 소리가 충분히 크게 들리게 하는 '스피커폰' 모드라는 게 있다. 이건 여러 사람이 통화 내용을 동시에 들어야 하는 모임이나 원격 회의 같은 데서 유용한 기능이며, 중공 폐렴으로 인해 비대면 모임이 활성화되면서 이런 기능도 더욱 즐겨 쓰이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건.. 그럼 전화기는 자기 스피커폰에서 난 소리를 또 송화기를 통해 상대편으로 보내고, 상대편에서도 자기가 받았던 소리를 크게 틀어 놓느라 또 우리에게 보내다 보면.. 마치 거울을 앞뒤로 평행하게 배치한 것처럼 동일한 소리가 무한히 송수신을 반복하며 울리게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전화기는 무전기가 아니니, 송신과 수신이 둘 다 동시에 행해지기 때문이다.

이거 무슨 전화기의 역설처럼 들리는데.. 직접 해 보면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비슷한 예로, 한 컴퓨터에서 A라는 프로그램에서 사운드를 크게 틀어 놨는데 B라는 프로그램에서 마이크를 이용해 그걸 자가 녹음하는 건.. 다들 해 보시면 알겠지만 이 역시 잘 되지 않는다. 사람 귀에는 똑같이 크게 들리는데 바깥 소리만 녹음되고 자기가 내는 소리는 녹음되지 않는다. 뭔가 순환 논리를 일부러 막는 로직이 있는 것 같다.

2. 자석

대형 마트의 에스컬레이터는 지하철역이나 백화점에 있는 여느 에스컬레이터와는 형태가 많이 다르다.
쇼핑 카트를 동반한 채로 층을 오르내릴 수 있게 하기 위해 경사가 굉장히 완만하며, 계단이 아니라 경사만 진 무빙워크 형태이다. 게다가 이용 중에 카트가 미끄러져 내려가지는 않게 바퀴를 자석 같은 걸로 착 고정도 해 준다. 어떤 원리로 그 무거운 카트를 고정해 주는지 '사물궁이 잡학지식' 같은 데서 다룰 법도 해 보이는데 아직 딱히 못 본 것 같다.

3. 키보드에 들어가는 건전지

직장에서 사용하는 무선 키보드가 건전지가 다 소모돼서 AAA 사이즈 건전지 2개를 안에다 집어넣었는데..
키보드 배틀을 앞두고 총에다가 총알을 장전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AAA 건전지의 길이가 44mm인데,
NATO 표준 소총 총알 길이가 구경 5.56에 길이 45mm..
게다가 건전지 색깔도 황동 탄피를 연상케 하는 금색.. ㅋㅋㅋㅋ

자동차건 비행기건 총알이건.. 고속으로 움직이는 물체는 무작정 동그란 구형으로만 만드는 게 장땡이 아니다. 단면적 대비 유체역학적으로 공기 저항을 덜 받는 디자인은 따로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속도 상관없이 극한의 수압을 견뎌야 하는 심해 잠수정이나 동그랗게 만들곤 한다.

반대로 우주 탐사선은 전혀 유체역학적으로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냥 건물 구조물에 더 가까운 모양인 거고..
BB탄 같은 동그란 납덩이 총알, 또는 볼링공 같은 동그란 대포 탄환은 중세나 길어야 근대까지만 현역으로 쓰이다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지금으로부터 몇백 년 전엔 화약이란 게 얼마나 비싸고 귀한 물건이었는데.. 게다가 그 화약도 총 한 발 쏘고 나면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전투를 제대로 치를 수 없을 정도로 짙고 뿌연 연기를 내는 놈밖에 없었는데..

그에 비하면 지금은 총알이 얼마나 싸고 흔해 빠진 존재가 됐으며 1초에도 총알을 드르르륵 갈기는 기관총 기관포까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이 역시 눈부신 과학 기술의 발전 덕분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음 뭔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 오늘도 키보드 배틀 파이팅이다~ ^^

4. 소음

손톱깎이는 가위나 병따개 같은 지레 기반의 다른 물건하고는 어떤 차이가 있어서 손톱을 자르는 순간에 생각보다 큰 짤깍 소리가 나고, 손톱이 꽤 멀리까지 튀는 걸까? 개선하는 방법이 없을까..? 아주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그 이유를 물리학적으로 설명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손톱깎이하고 완전히 다른 영역이겠지만 진공 청소기도 여느 평범한 선풍기나 헤어 드라이어와 달리 왜 이렇게 시끄러울까? 내연기관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바람을 내뿜는 것하고 빨아들이는 건 방향만 다른 게 아닌지..?? =_=;; 잘은 모르지만 소음은 기술적으로 더 줄이기는 힘들다고 한다.

5. 구기 종목

세상에 존재하는 공놀이들은 경기 형태 내지 득점 조건이 크게

  • A형: 자기 자리에서 상대방과 공을 주고받다가 확 세게 던져서 상대방이 못 받게 만들기
  • B형: 아니면 여러 명이 우루루 상대방 진영까지 직접 쳐들어가서 공을 상대편 골대에다 집어넣기

이렇게 둘 중 하나로 나뉘는 것 같다.

종목 득점조건 공 크기 수단 이동반경 인원 비고
배드민턴 A형 제일 작고 가벼움 라켓 내 자리만, 좁음 1~2인  
탁구 A형 작음 라켓 아주 좁음 1~2인 탁자
테니스 A형 중간 라켓 내 자리만, 좁음 1~2인 장비만 바뀐 배드민턴 같음
하키 B형 작음 라켓 전체, 넓음 11인  
야구 ?????? 중간 배트, 글러브 전체, 넓음 9인 룰이 제일 기괴하고 세팅할 것도 많음
배구 A형 맨손 내 자리만, 보통 6인  
농구 B형 맨손 전체, 넓음 5인  
축구 B형 전체, 아주 넓음 11인 골키퍼

A는 작은 공을 도구를 써서 조종하는 편이고 B는 비교적 큰 공을 다룬다.
하지만 하키는 공은 A과 비슷하게 다루면서 득점은 B와 비슷하게 하는 일종의 짬뽕에 속한다.
그 반면, 배구는 반대로 공의 형태는 B에 가깝고 득점 조건은 A에 가깝다.
이런 구기종목들은 여자 선수단도 존재하긴 하는데, 남자는 아무래도 축구가, 여자는 배구 쪽이 유명한 것 같다. 작은 공을 다루는 종목은 큰 공 종목에 '비해서'는 피지컬을 덜 타는 듯..

끝으로.. 난 2021년 현재까지도 야구는 룰과 득점 조건을 전혀 모른다. 빠따로 공 치고 나서 선수들이 무슨 역할로 나뉘어서 무엇을 위해서 열심히 달려가는지 여전히 모름. 그러니 관중들이 무엇에 열광하는지도 알 리가 있나.. 평생 죽을 때까지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다. ㄲㄲㄲ

6. 무덤

이민 간 교포는 2세대 3세대 n세대로 갈수록 부모의 모국어를 잊어버리고 현지인과 결혼하고 현지 문화와 동화되면서 어지간해서는 결국 현지인이 된다. 코리아타운, 차이나타운 같은 곳은 새로 이민 오는 사람이 계속 있기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지 싶다.
친척은 혈연의 근거인 부모/조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서로 촌수가 증가하면 볼 일이 없어지며, 연락과 교류가 차츰 끊기고 서로 남남이 된다.

그것처럼 조상 산소도 몇십 년이 지나고 직계 후손이 죽고 나면 관리하는 사람이 없게 되고, 베고 또 베어도 계속 솟아나는 잡초들에 뒤덮혀서 결국 자연과 하나-_-가 된다. 유해뿐만 아니라 관과 무덤 봉분까지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잡초가 생명력이 끈질겨서 별로 티가 안 나는 거지, 인간의 무덤도 골프장만큼이나 나름 산림을 많이 파괴함으로써 유지되는 것 같다.

죽은 사람이 언제까지나 땅을 그렇게 점유하면서 후손들의 수고까지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니 유해도 무슨 태풍 이름이나 야구 선수 번호처럼 영구 결번시킬 만치 충분히 유명한 사람, 좋은 업적을 남긴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에 대해서만 묘지를 만들고, 나머지는 화장+봉안당 안치로 일괄 변경하는 게 합리적이어 보인다. 아무리 자기 부모님이라 해도 돌아가셨다고 삼년상...;; 어휴~ 옛날 유교 문화--변질됐건 아니건--는 너무 갑갑하고 비생산적이었다.

시대가 흐르면서 설· 추석 같은 명절의 풍속이 확 바뀌었듯, 매장 대신 화장, 미리 유서 써 놓기처럼 사망과 장례 관련 문화도 바뀔 필요가 있으며 실제로 바뀌고 있기도 하다.

Posted by 사무엘

2021/05/30 08:35 2021/05/3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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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어휘 관련 이야기들

1. 접두사

한국어에서 '반'이라는 접두사는 반대· anti라는 뜻이 있고(반작용, 반중력, 반물질, 반동..), half라 하더라도 반자동, 반원, 반계탕(...)처럼 뭔가 온전· 완전하지 않은 반쪽짜리라는 뜻을 지닌다.

하지만 '반영구'는 어떨까? 이건 의외로 100점의 반대편인 0점이나 절반인 50점을 뜻하는 게 아니다.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미래에 일어날 일을 단정적으로 예측할 수 없고 무조건 100%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으니까 90, 99 내지 99.9%라는 뉘앙스를 담아서.. 저건 '거의 사실상 영구적인'이라는 뜻이다. "이 기계는 정비 없이 반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합니다"처럼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영구, 영원'이라는 건 수학적으로 봤을 때 무한을 나타낸다. 그런데 무한대는 반으로 나눠 봤자 여전히 무한대일 테니, '반영구'도 뜻이 저렇게 될 수밖에 없겠다.
'반영구'와 비슷한 방식으로 개인적으로 의아함을 느꼈던 단어가 영어에도 있는데.. 바로 depress이다.
de-에는 잘 알다시피 반대 역행(decode), 제거(defrag, deice..), 감소(decrease) 등의 뜻이 있다.

그러니 depress가 의기소침, 우울, 불경기, 불황 등의 뜻이 담긴 동사인 것은 이해가 되지만.. 이것 자체에도 press와 별 차이 없는 "버튼, 페달 따위를 누르다"라는 중립· 물리적인 뜻도 있는 것은 의외인 것 같다. 마치 반영구와 영구가 뜻이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자동차 운전석에서 특정 페달을 밟는 동작도 depress로 표현 가능하다.

re-가 붙어서 원래 단어와 별 차이 없거나 강조 뉘앙스가 담긴 다른 뜻이 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예: avenge-revenge, award-reward, plenish-replenish)
de-도 비슷한 작용을 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liberate - deliberate, light - delight도 둘이 서로 반의어 관계는 아니니 말이다.

2. 크다/작다, 많다/적다

'크다/작다'(대소)와 '많다/적다'(다소)는 직관적인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언어 차원에서 엄밀한 구분이 쉽지 않은 개념이다.

(1) 먼저, 이산적이고 양자화되어 수효를 셀 수 있는 디지털 개체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많다/적다 many/few’가 쓰인다. 사람이라든가 자동차 등.. 영어라면 이런 개체가 하나만 존재할 때는 부정관사 a가 붙을 수 있다.

(2) 이와 달리, 단일 개체에 대해서 시각적인 size를 논할 때는 ‘크다/작다’가 쓰인다. 영어로는 large/small, big/little 같은 단어 쌍이 있으며, 이 외에도 great, huge, tiny 같은 단어도 있어서 표현이 다양하다. 사람의 키, 건물의 높이에 대해서는 tall도 쓰인다.

(3) 각각의 개수를 셀 수 없는 아날로그스러운 물질.. 가령 액체 기체 같은 유체에 대해서는 수가 아니라 양(부피)이 많거나 적다고 말한다. 한국어로는 표현이 동일하지만 영어는 잘 알다시피 much/little을 사용한다.
이거 경계가 좀 모호한 편이다. 고체의 경우, 사람의 머리카락이나 쌀알, 콩알은 1자리 단위의 개수를 세는 게 무의미하고 양만을 측정하긴 하지만 그래도 many가 쓰이는 듯하다. 모래알이나 흙 정도는 돼야 much가 된다.

(4) 그리고 애초에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 사랑, 근성, 노력 같은 건 당연히 셀 수 없는 개념들이다. 영어로는 응당 much/little이 쓰이지만.. 우리말은 둘의 구분이 막 엄격하지 않고 ‘많은 사랑, 큰 사랑’ 다 집어넣어도 말이 되는 것 같다. 하긴, 영어로도 great와 much를 생각해 보면 ‘크다’와 ‘많다’가 모두 가능한 듯하다.

(5) 끝으로, 많고 적음을 나타낼 때 숫자가 쓰이기는 하지만, 숫자의값 자체는 크거나 작다고 수식한다. 이것을 영어로는 great/little이라고 하며, 비교급은 greater/less이다. 이건 시각적인 크기를 나타내는 (2)와 표현은 비슷해도 관점은 약간 다르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수와 양의 구분이 분명치 않고 메롱인 상황에서는 ‘적다/작다’도 덩달아 헷갈리게 된다.
영어의 little은 가산명사와 불가산명사에 대해서 뜻이 너무 다양하게 함축적으로 많이 들어있는 것 같다. 심지어 little과 少에는 ‘어리다’라는 뜻도 들어있다.

3. 동물 명칭

한국어에는 가축 급의 친숙한 동물 몇 종에 대해서..
말-망아지, 소-송아지, 개-강아지 이렇게 짤막한 총칭에다가 접사 '-아지'가 붙어서 그 품종의 어린 새끼를 가리키는 패턴이 존재한다. 신기하지 않은가?

그런데 옛날에 원래는 '돼지'도 저런 관계였다고 한다. 돼지를 가리키는 총칭은 '돝'...;;; 이었고, 새끼돼지를 '도야지'라고 불렀는데.. '돝'이라고만 해서는 변별이 잘 안 됐나 보다. 나중엔 '도야지'가 돼지의 총칭이 되고 음운이 축약되어 오늘날의 '돼지'로 정착했다. 오늘날은 '도야지'는 돼지의 방언 내지 귀여운 별칭 정도로나 여겨지고 있다.

사실, '돝'은 너무 짧아서 돛도 아니고 dot도 아닌 것이 좀 난감하긴 해 보인다. 먼 옛날의 한국어에는 지금보다 모음 양 옆(음절초나 음절말)에 여러 미세한 자음들이 붙는 게 더 자연스러웠는가 보다.
'돝' 말고도 저렇게 짤막한 단어가 현대에는 더 길어지고 늘어난 게 내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여럿 더 있다. 참고로 나무 열매 '도토리'도 '돝'에서 유래되었으며, 다람쥐뿐만 아니라 돼지 역시 도토리를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아울러,

  • '돝'에서 음운이 더 탈락해서.. 윷놀이에서 말을 한 칸만 움직이는 명칭인 '도'도 돼지의 흔적이다.
  • '-아지'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접사가 영어에는 '-ling'(저글링;;)이나 '-ette'(디스켓) 정도 있는데, 이들도 막 활발하게 생산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 영어는 소와 돼지에 대해서 해당 동물의 '고기'를 가리키는 단어가 별도로 존재한다. pork, beef... 그리고 몇몇 고양잇과 동물의 새끼를 총칭하는 cub라는 단어가 있는데, 한국어는 딱히 그에 대응하는 개념이 없다.
  • 닭의 새끼인 '병아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됐는지 '닭'하고는 관계가 전혀 억고, '-아지'하고도 완전히 같지는 않은 게 인상적이다.

4. 천둥, 번개, 벼락

천둥, 번개, 벼락은 동일한 기상 현상에서 유래된 단어이며 모두 ‘-(내리)치다’가 붙을 수 있는 대상이다. 별 구분 없이 섞여 쓰이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묘사하는 관점이 원래 서로 제각기 다르다. 마치 열차, 기차, 전철, 철도 등의 뒤죽박죽 단어처럼 말이다.

  • 천둥: 쿠구궁~~ 콰르릉 같은 엄청나게 크고 우렁찬 소리를 가리킨다(청각). ‘天動’이라는 한자어에서 유래되었으며, 원래 순우리말은 ‘우레’이다. 우뢰가 아님. 아마 한자 뢰(雷)의 영향으로 말이 바뀌는 것이지 싶다. 영어로는 thunder이다.
  • 번개: 구름과 구름, 또는 구름과 대지 사이에 전기 방전이 일어나서 번쩍이는 그 직선 모양의 불꽃을 가리킨다(시각). 번갯불, 번개 모양 아이콘/아이템 등의 형태로 쓰이며, 비유적으로는 몹시 빠르고 날쌘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영어로는 lightning이다.
  • 벼락: 번개와 비슷하지만.. 특별히 번개가 떨어져서 지면에 닿는 현상을 가리킨다(낙뢰?). 그러니 천둥 번개가 비교적 중립적인 심상인 반면, 얘는 “벼락 맞아 뒈지라”,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인적· 물적 피해를 동반하는 부정적인 심상이 강하다. 청천벽력이라는 한자어에서 유래되었다(벽력). 영어로는 thunderbolt에 가깝다.

현실에서는 광속과 음속의 차이로 인해 번개 비주얼과 천둥 소리가 동시에 발생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같은 현상에서 유래되었지만 언어 차원에서 둘을 더욱 분리해서 별개로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다만, 번개와 벼락의 구분은 한국어에 좀 독특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5. 접사 '호'

한국어는 선박을 여성형 대명사로 가리키며 모에화(...)하지는 않지만, 선박의 이름 뒤에 꼭 '-호'라는 접사를 붙이는 관행이 있다.

-호 (號) [접미사] 배· 비행기· 기차 따위의 이름에 붙여 쓰는 말. (표준 국어 대사전)


이건 받침 있는 사람 이름 뒤에 붙는 잉여 접사 '-이'(복순이, 갑돌이)하고도 물론 같지는 않지만 좀 비슷한 구석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순서를 나타내는 1호, 2호(의존명사) 내지 창간호 따위의 '호'와는 성격이 명백히 다름을 유의하시라.

옛날에는 사람이 타는 교통수단이란 게 매우 희귀하고 수가 적고 신기한 물건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개체가 이름이 붙고 고유명사화· 인격화되곤 했다.
과거의 우리나라 열차 이름 해방자호, 융희호 따위는 해당 열차 등급이 아니라 특정 차량의 명칭에서 유래됐다.
심지어 1950년대에는 여객기에도 각각의 기체에다 만송호, 창량호, 우남호 같은 이름이 붙었을 정도였다. (꼴랑 세 기..)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작명 방식에도 한자어가 아닌 영어물이 들면서 이런 '-호' 관행은 쓰이지 않게 됐다. KTX호, ITX-청춘호 이러지는 않으니 말이다.
오로지 선박만이 각각의 선체에다가 이름을 붙이는 관행과 함께 '-호'가 여전히 현역인 것 같다. 심지어 거기는 외래어 명칭 뒤에도 '-호'가 잘만 붙는다.

스포츠 신문에서는 운동 선수들이 감독과 함께 한 배를 탔다는 걸 비유하고 싶어서인지 '히딩크호, 허정무호 순조롭게 출항' 이런 말을 쓰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나로호'는.. 열차도, 선박도 아니고 우주 로켓임에도 불구하고 어째 '-호'가 자연스럽게 붙었다. 이 21세기에도 '-호' 네이밍이 완전히 죽지는 않은 듯하다.

다만, 이런 저런 정황을 감안하다 하더라도 옛날에 태풍 이름에도 '-호'가 붙은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의아하다. 대표적으로 1959년의 그 악명 높았던 태풍 '사라호' 말이다. 태풍은 그냥 자연 현상일 뿐, 인간이 개발한 교통수단이나 발명품이 전혀 아닌데..?
그때는 태풍더러 좀 순해지고 피해를 덜 끼치라고 국제적으로 여성 이름이 붙던 시절이었다(1979년까지).. 이 '사라'는 실제 여성 인물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는 뜻에서 '-호'가 추가된 걸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05/27 08:34 2021/05/2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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