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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 의식의 변화

1980년대 말, 한강 고수부지에 가기 위해 사람들이 무려 올림픽대로를 무단횡단으로 건너고.. 아예 자전거를 몰고 역주행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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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수도권 전철 1호선 신도림 역에서 내린 시민들이 한두 명도 아니고 패거리로.. 개집표기를 통과하지 않고 그냥 울타리를 넘어서 지상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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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다 옛날에 9시 뉴스 카메라 출동 같은 데서 소개된 아이템들이다.
우리나라가 국민 의식이라는 게 저 정도로 무지하고 미개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저런 걸 고발하는 방송계도 남말 할 처지는 아닌 게.. 지금 같은 저작권 의식이 없어서 일본 TV의 시그널송이나 드라마 같은 거 무단으로 베껴 오는 건 예사였다.
지금 같은 초상권 보호나 개인정보 보호 그딴 관념도 없음. 저 부끄러운 짓을 하는 사람들을 그 어떤 보호 처리 없이 대뜸 인터뷰 해서 쌩얼을 내보냈다. 신기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2, 30년 전 사람들이 지금 세대보다 특별히 더 사악한 게 아니다. 그냥 하는 짓도 수위가 세고, 그걸 통제하고 계도하는 방식도 수위가 셌을 뿐이다.
단군의 후손들이 역사상 피똥 싸는 가난을 떨쳐낸 지 얼마나 됐다고, 법과 질서와 시스템과 국제 매너라는 걸 접한 게 얼마나 됐다고 지금 같은 의식 수준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그 시절에 올림픽대로의 경우는 도로 크기 대비 차도 지금보다 훨씬 덜 다녔으니 무단횡단이 가능했던 측면도 있을 것이다.
경부 고속도로가 갓 만들어진 시절에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전용 도로라는 개념이 존재한 적이 없었고, 지금처럼 자동차가 넘쳐나는 때도 아니었으니.. 그때는 "고속도로에 보행자는 제발 얼씬도 하지 마세요. 제발 무단횡단 하지 마세요. 소 끌고 다니지 마세요"라고 지겹도록 계도와 홍보를 해 댔다.
게다가 일부 비상활주로 구간을 정기적으로 틀어막고 아예 전투기 이착륙 훈련도 할 정도로 고속도로가 널널했다. 지금은? 그랬다가는 작살나지..

(그리고 전철역의 경우도, 저 많은 사람들이 불법 무임승차를 했다는 소리는 아니므로 오해 말 것. 그때는 지금 같은 교통 카드가 없었다. 출발역에서 승차권을 선불로 끊은 뒤 도착역에서 그 승차권을 넣고 나가야 하는데, 나가는 절차만을 생략한 것일 수 있다. 그 시절의 마분지 승차권이야 어차피 재사용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물론, 집표를 안 했으니 2구간 이상 장거리를 이용하고도 1구간 요금만 지불한 뒤 쓰윽 나갔을 가능성은 있음.)

뭐, 1970년대에 서울 지하철이 처음 개통했을 때는 "지하철 열차 안에는 화장실이 없습니다."(통상적인 여객 열차와는 달리) 이런 것도 차내 안내방송으로 나왔을 정도였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198~90년대에 우리나라에 마이카 + 너도 나도 해외여행 풍조가 막 생겨났다. 그때는 인구당 교통사고 발생 세계 1위에, 외국 나가서 진상과 추태 부리는 어글리 코리안 이러면서 각성하자는 공익 광고 + 교통 안전 캠페인도 엄청 많았다.

이거도 무슨 조센징들만 국민성이 유전자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거나, 이 엽전노무 새끼들이 노예근성 쩔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보릿고개 이러다가 겨우 30년 남짓 만에 자동차라는 문명의 이기와 외국 여행이라는 걸 난생 처음 접해서 그런 것일 뿐이다.

난 어렸을 땐 우리나라 국민성에 뭔가 진짜 심각한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 근데 이거 뭐 해외여행 전면자유화가 된 게 무려 1989년부터이고 그 전엔 외국행 어학연수와 신혼여행, 배낭여행 자체가 없었더구만, 지금까지 개같이 일하고 돈 버는 것밖에 안 해 본 집단한테서 하루아침에 뭘 선한 게 나오길 기대하겠는가?

지금이야 많이 고쳐졌다. 뭐, 레알 선진국 수준으로 고상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이웃집 '대륙'에서 우리나라의 전철을 밟고 따라오고 있을 뿐이다. 걔들도 국력 대비 외국 나가기 굉장히 어려운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며, 그나마 제일 만만하게 갈 수 있는 외국이 제주도이니 거기에 왕창 몰리는 것이다.
'대륙의 기상' 이러면서 유커들의 미개한 짓을 보면서 비웃는다면, 과거에 한국인들도 외국에서 그렇게 비웃음 받았을 거라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며 왜 일본인이 선진국들에서 한국인보다 더 높은 대접을 받는지도 같이 생각해야 한다.

자동차에 이어 1990년대 말엔 국민 의식 관련 최대의 이슈는 응당 "공공장소에서는 휴대전화 제발 진동 모드로 해 놓으세요"였다. 기억나시는지? 그게 세뇌 수준으로 정착하고 공감대가 형성된 덕분에 지금은 그래도 이 정도로 괜찮아졌다.

이런 역사 선례들을 감안할 때 본인은 필요 이상의 '국까'나 "민중은 개돼지" 이런 식의 비하의식에 공감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도 미개하던 옛날에 바랄 걸 바라야지, 모 대통령이 경제는 살렸지만 민주주의는 죽였네 뭐네 하는 배부르고 비현실적인 불평불만 피해의식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195, 60년대에 애초에 무슨 성숙한 민주주의 같은 게 있었다고 개수작을. 어유;;; ㅉㅉㅉ

※ 우리는 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가 지금 같은 사회 구조와 분위기에서 예측 가능한 미래에 과학 분야의 노벨 상 수상자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도대체 뭐가 잘못됐고 무엇부터 바로잡아야 할지 난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저 사회 탓, 제도 탓, 우리 모두의 잘못 이런 식으로 어물쩡 넘어가서도 안 될 문제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분야를 막론하고 '한국형'이라는 이름을 달고 시작했던 무슨 프로젝트들이 잘되고 성공하고 지금까지 이어진 예가 있나? 이 역시 거의 없다시피할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나라는 점점 성장 동력이 멈추고 있다. 제발 내 느낌일 뿐이었으면 좋겠지만, 옛날, 특히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던 시절 같은 팀웍과 화합이 다시 이뤄지지 못하고 뭔가 국운이 다한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든다. 지금까지 해 놓은 것, 벌어 놓은 게 적지 않으니 당장 몇 년간은 먹고 살겠지만 중국이 추격하고 일본· 미국이 더 격차를 벌리면 건축· 전자· 기계· 컴터· 항공우주 등 분야들이 미래에 어떻게 도태하고 뒤쳐질지 모른다.

지금만 해도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그저 오로지 돈, 돈, 돈, "스펙 아무리 좋아 봤자 부모 재력 절대 못 이김", "금수저 흙수저 헬조선 계급론" 같은 인식이 팽배한 지경인데 우리나라가 지금보다 훨씬 더 못살던 시절에는 도대체 무슨 일말의 희망이 있었을까 싶다.
그러니 옛날에는 나라에서 앞장서서 단순무식 반공뿐만 아니라 국뽕 주입도 정말 많이 했다. 엽전의식 노예근성을 없애려고 도로를 하나 닦고 지하철 노선을 하나 개통해도 현수막에 "선진조국 창조", "우리는 할 수 있다" 프로파간다를 집어넣었다. 그 시절 기록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지금이야 옛날 같은 그저 "국산품 애용, 과소비 추방, 닥치고 저축" 같은 국뽕스러운 경제 이념은 의미가 많이 퇴색했다. 그러나 애국심 마케팅이 필요없어진 것 자체도 알고 보면 그 전에 한창 애국심 마케팅 하에서 육성된 국내 기업들이 세계적으로 꿀리지 않는 경쟁력을 갖춰서 외제품 수입하는 것만치 수출과 국부 창출도 대등하게 가능해진 덕분에 이뤄진 것이다.

그런 거 못 하면? 우리나라도 그저 다국적 기업들에게 원자재 싸게 공급하는 셔틀 국가밖에 못 된다. 아니, 우리나라는 애초에 1차 산업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처지도 아니지. 외국에 기술 식민지, 경제 식민지가 돼 버리면 국산품과 수입품 한가하게 골라서 사는 사치를 누리는 시절도 다 끝난다.

이런 와중에 다시 나라의 기운이랄까, 성장 동력을 재충전할 만한 이벤트가 있으면 좋겠다. 올해는 안 그래도 대선도 있는 해인데.. 군인으로 치면 "이 지휘관 휘하에라면 내가 기꺼이 믿고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칠 수 있겠구나!"처럼, 자기 나라를 사랑하고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연구할 만한 동기를 제공하는 지도자가 나왔으면 좋겠다.

※ 물가 등 추가 회상

국민의식이고 뭐고 하는 골치아픈 얘기는 마치고, 이제부터는 순수하게 옛날 모습 회상만 더 하고자 한다.
내가 여기저기서 모은 자료들을 종합하자면,
1899년 9월에 경인선 개통했던 당시에 인천-노량진간 경인선 열차의 운임은 상등(퍼스트?) 1원 50전, 중등(비즈니스?) 80전, 하등(이코노미?) 40전이었다. 쌀 한 가마의 가격이 4원 정도 하던 시절이니 저기에다 0이 4개 정도 더 붙어야 지금 가격과 비슷할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 한반도의 철도는 지금의 일본처럼 사철 위주로 굴러갔으며, 물가 대비 운임은 지금보다 더 비쌌다. 지금 일본의 철도 운임이 매우 높은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일제 강점기 때 한반도에서 돌아갔던 철도 회사들은 대체로 수지가 잘 맞았으며 흑자를 많이 냈다는 통계가 전해진다.

그러니 그 시절에 기차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가는 것은 지금으로 치면 비행기를 타는 것과 비슷한 위상으로 생각해야 했다. 그것도 저가항공도 아니고 대한항공 급 비행기 말이다.
1899년 철도가 갓 개통한 직후의 얘기이긴 하지만, 그 시절의 느린 증기 기관차로도 최대 100분 남짓이면 갔을 서울-인천 거리에 무슨 장거리 여객기처럼 좌석이 3등급이나 존재했던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 가능할 것이다. 경인선에 첫 도입되었던 증기 기관차는 탄수차가 별도로 있지 않았고 그리 큰 열차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신분제가 지금보다 더 고착화했던 시절임을 감안하더라도 많이 삽질스럽다.

그로부터 반세기쯤 뒤, 지금 "문화역 서울 294"로 바뀐 옛 서울 역 건물은 1925년에 완공됐으며 그 시절 물가로 건설비가 94만 5천원이 들었다고 전해진다. 이것도 지금 물가라면 '만'이 '억~십억'급은 돼야 할 것이다. KTX 광명 역을 건설하는 데도 3천억이 넘는 비용이 들었다고 하니 말이다.
강 우규 의사가 이 역 광장 근처 위치에서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저격을 시도하긴 했지만, 시기가 1919년이기 때문에 이 건물이 있던 때는 아니었다.

그 다음 1935년, 소설가 심 훈이 잘 알다시피 소설 <상록수>를 집필해서 동아일보 발간 15주년 기념 소설 공모에서 당선되었다. 그때 상금이 500원이었던 걸로 유명하다. 소 한 마리의 가격이 60원 정도라고 하니 1900년대 초의 쌀 한 가마 4원과 대조해 보시길.
그 500원은 지금 물가로 최하 수천만~억대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심 훈은 상금의 일부를 떼어서(아마 100원) 장학 재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1935년과 그리 멀지도 않은 1937년도 노래 중에는 놀랍게도 <백만원이 생긴다면>이라는 곡이 있다.
가사는 검색해 보면 나온다. 금비녀 보석 반지 살 거고 그랜드 피아노에.. 자동차도 아니고 비행기를 살 거라고 한다. 지금 100만원이면 당연히 택도 없는 소리지..

저때 100만원은 지금의 100억~1000억 원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1960년대도 아니고 1937년에 저런 문명의 이기들은 서민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사치품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고.

가사가 1960년대에 한번 리메이크가 됐는데, 이때는 그 시대 상황을 감안해서 TV를 장만하고 3절에 아예 "로케트 타고 달나라 가지"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1930년대에는 비행기가 각광받던 시절이었고 1960년대는 우주 시대가 관심사여서 그랬던 것이지 싶다. 참고로 지금도 혼자서 우주 정거장 정도까지 갔다오는 데 저 몇백~천억 가까이 돈이 든다.

사실, 일제 강점기와 그 이후 대한민국 사이에는 워낙 격변이 심하고 화폐 단위도 여러 번 바뀌긴 했다. 그걸 감안하고 계속 살펴보면,
1968년에 금성사에서 최초로 내놓은 국산 텔레비전의 가격이 68000원이었다. 그 당시 제조업 생산직 근로자의 1년 연봉에 맞먹는 가격이었으며 굳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도 TV는 집집마다 들여 놓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이걸 감안하면 독일이 영상 기술이 아주 앞서 있긴 했다. 나치 치하에서 1936년에 베를린 올림픽을 하던 시절에 벌써 공공장소 곳곳에 TV를 비치해서 경기 장면을 중계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브라운관'의 원조 국가답다.

1976년 초부터 국내 판매가 개시된 현대 자동차 포니는 그 당시 대당 가격이 230만원 남짓이었다. 1974년에 개통한 서울 지하철이 기본 운임이 30원부터 시작했고 짜장면 한 그릇이 140원가량 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자동차 가격이 저러했다.

그 뒤, 1990년대 초로 가서 내가 직접 겪고 기억한 물가를 나열하자면, 봉지 라면과 200ml 우유가 전부 200원대이던 시절이 있었다. 포니 택시의 기본요금은 700원이었고, 버스비는 초딩 기준으로 80원으로 시작했다가 140원까지 올랐다. 그러다가 1995년에 광역시 등 행정구역 통합이 이뤄지고 본인이 중학생으로 업글하면서 버스비는 400원으로 폭증했다.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600원대 이러던 걸 본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나중에 IMF 외환위기 이후부터 주유소마다 가격이 들쭉날쭉이 되고 또 리터당 1000원대 이상으로 가격이 확 올랐다.

서울 택시의 기본요금은 2005년에 1600원다가 지금은 거의 3000원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올랐다. 그래도 여전히 택시 뒤를 보면 "10년째 동결인 주행 요금 재조정하라" 이런 구호가 붙은 게 있는데, 당연히 기본요금이 아니라 임률을 말하는 것이다.

버스/지하철의 기본요금은 10여 년 전에 600원인 것부터 봤다가 700원으로 오르고, 2004년 대개편 때 800원이 된 후 900 (2009), 1050 (2012)을 거쳐서 지금은 1250 (2015)이 돼 있다. 이 요금이 지금까지 은근히 가파르게 많이 올라 왔다.
한 줄짜리 일반 김밥도 2000년대 초에 김밥천국이 처음 나타났을 때는 1000원에서 시작했다가 지금은 1500, 2000이 된 지 오래다. 식당에서 시켜 먹는 사이다 한 병도 1000이 유지되는 곳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중.

그러고 보니 옛날에 지하철은 지금처럼 에어컨이 있는 것도 아니고(천장에 그냥 선풍기!) 열이 후끈후끈 올라오는 원시적인 저항 제어 방식인 데다, 기껏 직원용 사무실에 설치된 에어컨의 실외기가 승강장에 있는 무개념 구조이기도 했다. 그러니 승강장와 열차를 막론하고 여름에는 정말 찜통 불지옥이 따로 없었다.

옛날에는 유인 매표소가 있어서 "구로 하나요!" 이러면서 동전을 내밀면 직원이 마분지 승차권을 쓱 주곤 했었다. 요즘 시대엔 그건 인건비 투입하면서 하기에는 너무 단순하고 비생산적인 업무로 간주되어 다 무인화되고 없어졌음. 마치 버스 안내양이 없어지듯이 없어진 거다.
게다가 옛날에는 승차권을 개찰하는 직원도 있었다. 일반열차의 관행이 지하철에도 있었던 셈인데, 지금은 일반열차조차도 개찰이 없어진 지가 오래이니 생소하다.

1966년 서울 모습이 컬러 사진으로 담겨 있는 유튜브 링크를 소개하며 글을 맺겠다. 공교롭게도 서울 찬가(패티김)가 발표된 것도 1969으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 옛날이다. 증기 기관차, 노면 전차 같은 게 싹 사라지던 시절. 또한, 산업화 전이라고 해서 마냥 환경이 깨끗하고 푸른 풀숲이 살아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옛날 '컬러'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뭐, 일본에도 <나 도쿄에 갈란다> 같은 노래가 있으니, 어디든 사람 많이 모여 사는 곳에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 심리는 변함없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7/01/17 08:38 2017/01/17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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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문제 끝장내기

난 소위 말하는 친일파· 민족 반역자라는 건 다음과 같은 세 그룹으로 나뉘며, 이들을 분명히 나눠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A: 매국의 대가로 일제로부터 예우 받고, 당대에나 지금까지도 일체의 참회 없이 대대로 금수저로 잘 쳐먹고 잘살고 있어서 어그로 (조선 말기의 일부 관료· 지주· 황족 출신과 그 후손)
  • B: 일제 강점기 동안 독립운동가를 고문하고 때려잡는 짓을 해서 어그로 (악질 헌병· 경찰 복무자)
  • C: 공인으로서, 지식인으로서 먹고 살려고 권력에 아부하고, 자기 인지도를 이용해서 신사참배 내지 황국신민 징병 권유 같은 짓을 해서 어그로

그리고 난 이들의 적극성과 죄질은 명백하게 A > B > C의 순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비주얼한 임팩트는 B가 가장 강하겠지만 실질적으로는 A가 앞선다. 시간적인 등장 순서도 A, B, C의 순에 가깝고, 해당되는 사람 수도 A < B < C로 갈수록 많아진다.
점점 더 당대 사람의 책임보다는 애초에 나라를 말아먹은 선조의 책임이 더 커지며, 죄질이 가벼워지고 정상 참작의 사유가 생기는 건 당연지사다. 단적인 예로, 내가 그 시절을 살았다고 가정하더라도 내가 C가 될 가능성은 조금 있지만 B나 A 같은 간 큰 짓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일제 강점기 35년을 나치 치하에 한 몇 년만 점령당했던 프랑스하고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본데, 어디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세대가 바뀌어 버리니 한반도의 경우 해방 당시엔 태극기 모양을 기억 못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고 어린애들은 "어? 우리나라(=일본)가 전쟁에서 졌는데 왜 어른들이 다들 기뻐해?" 이럴 정도였다. 프랑스가 나치 독일한테 이렇게까지 오래 점령당하고 세뇌당했었냐? -_-;;

이 완용· 송 병준 같은 놈들은 A이고, 노 덕술은 B, 김 활란 같은 사람은 C다. 박 정희가 B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그 증거는 없다. 그냥 평범한 도적을 잡는 일만 한 경찰이나 중공군하고만 싸운 군인이라면 난 문제삼지 않음.
그 시절에 일제 치하의 공무원(교사, 경찰, 헌병 등등)에 취업하려 한 것 자체는 요즘 애들이 전부 공무원, 대기업에만 몰리고 과학고 나와서 의대에만 몰리는 것하고 하나도 다를 바 없다고 여겨진다. 공부 잘하면 다들 남을 통솔하고 다스리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싶어하지, 너 같았으면 평생 농사만 짓거나 프롤레타리아 로동자 기술자로만 살았겠는가? 굳이 "조센징 엿먹어라"가 아니라 단순 출세욕 때문이라는 것이다.

난 죄질을 A > B > C의 순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똑같은 일제 강점기 여주인공이 나오는 영화인데 C급인 <청연>은 친일 논란에 휩싸이면서 망한 반면, A급에 '준하는' <덕혜옹주>나 <명성황후>는 어째 항일투사로 미화되면서 필요 이상으로 흥행하는지 이해가 잘 안 된다. 비록 그 사람들은 적극적인 매국노와 같은 급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한 것도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그 시절에 이 완용 내지 을사오적 같은 특정 개인 몇 놈만 없었다고 해서 대세가 뒤엎어졌다거나 나라가 안 망할 수 있었다거나 한 게 아님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만, 이 완용이 진짜 개새끼인 이유는 매국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뒤의 태도와 처신이 더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건 정말로 그 어떤 실드의 여지도 없다.

A, B는 몰라도 C는 법적인 처벌까지는 아니고 도의적인 비판· 비난, 불이익 수준이 적절하다고 여겨진다. 음주운전 적발 경력 같은?
그 시절에 일제한테 그 정도 협조 내지 영혼 없는 립서비스조차 안 했으면 조선인이 기업을 경영하고 고급 기술을 그만치 만질 기회라고는 있을 수 없었을 거란 점을 감안해야 한다.

물론 그땐 그랬다 치더라도 해방 후에도 일말의 반성이 없이 고개 꼿꼿하게 세우고 잘나가고 있다면 그 꼴은 보기가 참 민망하겠지만, 그래도 C 욕하는 그 의협심 강한 깨시민들도.. 자기가 그런 위기에 처하면 걔네 역시 십중팔구 변절하고 깃발 바꿔 달 거라는 건 내가 절대 장담한다. -_-;; 지금 중국에 대한 태도만 봐도 안 봐도 비디오, 안 들어도 오디오다.

신사참배 갖고 한국 교회가 썩었네 어쩌네 하는 좌독들이 있다. 물론 신사참배 결의는 한국 교회의 치욕적인 흑역사인 건 사실이다. 또한, 이 역시 외압에 굴복하여 신사참배를 결의한 것 자체보다도, 해방 후에까지 곧장 참회하지 않고 뻣뻣한 목을 유지한 것이 더 큰 죄악이긴 하다.

허나, 한편으로는 지들은 그 상황에서 과연 꼿꼿하게 버텼을까? 일제가 그땐 가족까지 인질로 잡아서 얼마나 치사하고 악독하게 협박과 회유를 일삼았는데? 흔히 생각하는 단순히 부정부패 때문에 굴복한 거 아니다! 그런 것들을 감안해서 판단한다. 저건 비판받을 사항이긴 하나, 자기가 도덕적으로 우월한양 정죄를 일삼고 교회 정체성을 부정할 정도는 명백히 아니다.

우리나라가 건국 초기에 반민특위의 해체와 친일 군경· 관리 재등용 때문에 문제가 되고 좌빨들에게 두고두고 꼬투리를 잡히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이건 C보다는 수위가 높은 B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아마 롤모델로 삼고 있을 북한조차도 B들을 재등용해서 쓴 건 동일할 뿐만 아니라, 내가 늘 말하지만 그건 정말 전적으로 불가피하게 그렇게 된 것이다. 인재가 부족해서 말이다.

"친일 군경들이 해방 후에 그대로 옷만 갈아입고 반공투사로 변신"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이건 절~대로 부정적이기만 한 현상이 아니다! 그땐 그런 반공투사라도 없으면 안 됐다! 그 시절에 불가능했던 일을 이루지 못했다고 자꾸 이상한 피해의식 망상 집어넣는 선동질에 속지 마라.

우리나라는 건국 당시에 대통령과 내각 등 브레인들이야 당연히 다 독립운동가에 광복군 출신이었다. 단지, 말단에서 궂은일 하는 중하급 군경 간부들 중에는 일제 부역자들이 있었다. 이거는 램 4MB에서 돌아가는 Windows 95가 32비트 껍데기 밑에 불안정한 16비트 도스 코드가 부득이하게 호환성 때문에 여전히 포함돼 있던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이유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건국 당시의 백성들의 컴퓨터 사정은 Windows NT 따위는 절대로 돌릴 수 없는 여건이었으니 말이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남는 A급 잔당들은?
일일이 색출해서 재산 몰수했으면 좋겠지만 워낙 극소수이기도 하고 B급과 겹치는 놈도 있고, 그 혼란한 와중에 일일이 죄질을 파악해서 공산당 식으로 일을 처리하기 어려웠다. 이런 놈들이 일부 오늘날까지 호의호식하고 있는 건 안타깝고 화가 나긴 하지만, 정말로 예외적인 경우일 뿐이지,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 비관하고 탓할 정도는 절대 아니다.

2010년이던가, 산낙지 살인 사건 기억하는가? 이건 단순 사고가 아니라 보험사기를 노리고 남자가 여친을 살해한 악질 살인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 모든 심증 정황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증거가 없고 피해자인 여자애가 일찍 화장되어 없어져 버리는 바람에 용의자는 증거불충분으로 덜컥 무죄 선고를 받아 버렸다! 그런 것과 비슷하다. 세상엔 그런 분통 터지는 일도 있다. 무고한 사람을 막 빨갱이로 몰아가서 억울한 피해자를 만든 '유죄 추정의 원칙'만큼이나, '무죄 추정의 원칙'도 이런 식으로 한계와 부작용이 있는 법이다. 100% 만능이 아니다.

또 다른 예로는, 가평과 춘천 사이에 있는 남이섬 유원지가 A급 친일파 반역자 민 모 씨 가문의 후예 소유라고 알려져 있다.
물론 직접적으로 일제로부터 향응 차원에서 남이섬을 하사받기라도 한 건 아니다. 그랬으면 해방 후에 국가에서 정말 0순위로 몰수했어야지. 반쯤은 자기들이 원래부터 한국은행장도 배출할 정도로 출세하기도 했고, 그래서 1970년대에 자기 돈 내고 전주인으로부터 남이섬을 통째로 산 거라고 한다. 이 정도면 어디까지가 친일매국의 댓가이고 어디부터가 개인 사유재산권 추구인지 따지기가 솔직히 모호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명백한 친일파 후손이 남이섬을 우리나라 안의 딴 세상 '나미나라 공화국'처럼 꾸며 놓았다는 걸 알면 그게 마냥 재미인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잠재적 내란죄? 남이섬이 평범한 국공립 유원지라면 마케팅을 그런 식으로 할 리는 절대 만무하지 않겠는가?
거기서 한 해 벌어들이는 입장료 수입이 어마어마하다던데, 이 문제에 양심이 민감한 분이라면 남이섬 관광 같은 건 안 가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이상이 맨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친일 청산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친일파라는 건 용어의 정의 내지 범위는 오락가락 하는데 빨갱이와 더불어 한국 사회에서 남을 인격 모독하고 억울하게 매장할 수 있는 마법의 단어 양대산맥이다.

자기도 감당하지 못했을 '의로운' 잣대를 강요하면서 남을 정죄하고 쓸데없이 세상 비관하는 건 옳지 못한 자세이다. 하지만 반대로 C급만 부각시키면서 단순 가담자와 악질 주동자를 한데 싸잡아 "그땐 누구나 다 그랬을 것"이라는 양비론으로만 퉁치는 것 역시 옳지 못하다. (1) 나라도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겠냐 (2) 동족을 괴롭히고 등쳐먹는 등 물질· 정신적으로 악한 영향을 적극적으로 끼쳐서 사익 챙겼냐 (3) 그 뒤에 참회· 반성하고 있냐 정도를 잣대로 판단하면 큰 오류에 빠질 일은 없으리라 여겨진다.

참고로 아래의 부류들은 이 글에서 진지하게 다루는 부정적인 심상의 '친일파' 라인이 아니므로 오해 없도록 하자.

  • 김 옥균: 매국 의도 제로. 정말 악의 없이 일본을 선하게 보고 걔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려 했던 옛날 사람일 뿐이다.
  • 오덕: 그냥 비정치적으로 일본 문화만을 좋아하는 사람.
  • 김 완섭: 그냥 책 팔아먹으려는 관심병자 또라이 생계형 친일파일 뿐이다. 이 승만 대통령이 잘못한 게 부정선거 야당 탄압 독재 등등 많은 흑역사 과오들을 제치고 평화선을 그어서 독도를 빼앗은 것이라고 말하는데 더 일고의 가치가 있겠나? 국가 정체성에 아무 위협이 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끼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5 18 민주화 운동 유공자랍시고 국가로부터 예우와 혜택도 받고 있다.
  • 일본과 일제 강점기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긍정적으로 말하는 편인 일부 우파 논객: 진짜 일본과 커넥션이 있고 자기 재산 지키고 싶고, 한편으로 우리나라가 망하길 바라는 개XX라면 절대로 저런 짓 안 한다. 얼굴 내밀고 소신 발언 하면서 어그로 끄는 멍청한 짓 따윈 절대 안 한다. 일부 과격 극단으로 치우친 견해가 있더라도 진짜 북한과 커넥션이 있고 지령도 받고 있는 종북 좌빨보다야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로 해롭지도 위험하지도 않은 사람들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12/14 08:31 2016/12/14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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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에서 수뇌부가 거주하는 곳은?

우리나라야 대통령이 근무하는 관저는 북악산 기슭에 있는 '청와대'이다. 대통령은 출퇴근 이동을 하지도 않으며, 잘 알다시피 보안을 위해 아예 이 캠퍼스 안에 가족이 다 눌러앉아서 지낸다.
그럼 한편으로 북한에서 청와대에 해당하는 건물은 무엇일까?

일명 주석궁이라고 불리는 평양의 그 거대한 건물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지 모르겠다. 본인 역시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됐다.
주석궁은 2~30년 전, 김 일성이 살아 있던 시절에는 '금수산 의사당'이라고 불리면서 김 일성이 거주하고 집무하는 관저로 쓰인 게 맞다. 그러나 저 사람이 죽고 나서는 그 궁전 전체가 무슨 성경에 나오는 지성소 같은 성역이 되어 버렸다. 이름도 '금수산 기념 궁전'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금수산 태양 궁전'이 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직 대통령이 서거하면 현충원에 묻어 준다. 그것처럼 김 일성 역시 개인적으로는 북한의 현충원뻘인 '대성산 혁명렬사릉'에 묻히길 원했으나.. 독재자를 한도 끝도 없이 우상화해야만 체제가 유지될 수 있는 북한에서 바랄 걸 바라야지. 그 유언은 상큼하게 씹혔다. (베트남에서는 호치민의 유언도 그렇게 씹혔음.)

그 큰 주석궁 전체가 예전에는 프로토스 넥서스에 해당했는데 이제는 시타델 오브 아둔 같은 역할로 바뀌었다. 김 일성의 미라가 들어갔으며 나중에는 김 정일의 미라까지 추가로 들어갔다. 그리고 근처의 지하철역이던 광명 역은 보안 강화를 위해 폐역되고 열차가 무정차 통과하게 됐다. 달랑 미라 두 구만 보관하기에는 아무래도 너무 큰 건물인데.. 다른 공간은 어떻게 바뀌었나 모르겠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인해 금수산 태양 궁전은 일종의 박물관 내지 왕릉 같은 곳이 됐기 때문에 지금 김 정은이 거기에 늘 상주하지는 않는다. 김 일성이 죽은 뒤 오늘날까지 김씨 가문이 사용하는 관저 내지 아지트는 평양, 신의주, 원산, 심지어 백두산 근처 등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 평양 근처에 있는 걸로 알려진/추정되는 아지트도 시내에서 상당히 떨어진 외곽 모처이며, 위성 첩보 사진으로 위치를 추측할 뿐이다.

요컨대 거기는 워낙 폐쇄적이고 비밀도 많은 집단이다 보니.. 대한민국의 청와대, 미국의 북악관 같은 딱 떨어지는 단일 집무 공간이라는 개념이 현재 공식적으로 없는 셈이다. 더구나 그런 아지트들의 지하에는 무슨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가 깔려 있을지 생각하면 의문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2. 김 정일의 카게무샤(대역)

우리나라 육군에는 KCTC(육군 과학화 전투 훈련단)이라는 훈련장이 있으며, 거기엔 '전갈 대대'라고 타 부대를 상대로 북한군 코스프레를 하면서 가상의 적군 역할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부대가 있다. 얘들은 마치 버추어 파이터의 듀랄 컨셉 같아 보인다고 본인이 예전에 언급한 바 있다. 여느 군부대 사격장이나 각개전투장에서 볼 수 있는 북한군 차림의 인형(?) 표적만으로는 실전 같은 훈련을 하기에 충분치 못하니 군대에서 저런 것까지 도입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북한군 코스프레만 하는 게 아니다. 북한 김돼지의 코스프레를 전문으로 하는 북한 전문가를 몰래 양성해서 운용하기도 했다. 요즘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에는 그런 게 확실하게 있었다는 것이 김 달술 씨 같은 전직 코스프레 요원의 증언을 통해 알려져 있다.

그런 사람을 왜 두냐고? 북한의 고위 관료나 심지어 김돼지를 직접 만날 예정인 우리나라 측의 대통령 내지 고위 관료를 비밀리에 교육· 훈련시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언어는 일단 같은 한국어를 쓰는데 현실적으로는 일본보다도 위험한 반국가단체 빨갱이들의 수괴요 적장이고.. 그런데 또 대놓고 적대시만 하기에는 좀 민망한 존재이니..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누게 되더라도 절대로 기선제압 당하지 말고 쫄지 마라."라는 취지에서 우리 내부에서 모의 훈련을 할 만도 해 보인다. 이건 북파 공작원을 양성하는 것과도 목적이 완전히 다르다.

김돼지 등 북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무슨 공작원처럼 인간흉기로 양성되지는 않는다. 단지, 자고 일어나면 맨날 역대 로동신문과 평양 방송을 송두리째 흡입하면서 북한 정세를 학습하고 김돼지의 말투와 몸짓, 요즘 관심사, 머리에 든 것 따위를 숙지했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단순히 정치 드라마에서 김돼지 연기만 하는 배우와는 차원이 다른 양의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런데 남한 내부에서 북한의 사고방식을 룰 기반으로 정공법으로 익힐 수는 없으니, 결국 통계 기반으로 북한에 대한 빅데이터 머신 러닝 딥 러닝을 몸으로 실행하는 셈이다. 또한, 마치 음란물 자동 탐지 필터를 개발하는 엔지니어가 직업적으로 맨날 음란물에 파묻혀 지내야 하듯, 저 아저씨는 합법적으로 맨날 이적표현물에 파묻혀서 산다고 볼 수 있다.

북한 내부에서는 쿠데타나 암살에 대비해서 가짜 김돼지가 예비용으로 돌아다닐 법도 한데, 어쨌든 남한에서는 뭔가 다른 용도로 김돼지의 코스프레가 이런 식으로 그것도 몇 대에 걸쳐 비밀리에 양성되어 왔다는 게 신기하다. 인간을 화성으로 보낼 생각으로 지구의 하와이 모처에다가 화성 같은 환경을 꾸며 놓고 우주인들에게 몇 개월 동안 생존 훈련을 시키는 것과 비슷한 관행으로도 보인다.

우리가 자체적으로 이런 짓을 해 봤자 도대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북한 사람과 만나는 데 무슨 도움이 됐겠냐 싶지만... 카더라 통신에 따르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실제로 김 정일이 만나서 거론한 것, 질문한 것은 남한에서 자체적으로 준비해 간 예상 문제의 범위를 별로 벗어나지 않았으며 적중률도 대단히 높았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 역사상 북한 수뇌를 최초로 직접 대면한 김 대중의 경우 70대 중반의 고령에도 참모진들이 준비해 준 대응 매뉴얼을 일일이 숙지하면서 답변을 아주 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때문에 이 나라에서는 안 그래도 지금까지 곳곳에 비밀도 많고 비리도 많고 숨겨진 게 너무 많은 채로 돌아갔던 게 사실이며, 저 카더라 통신도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이니 전적으로 믿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렇게 기껏 철저히 준비하고는 김돼지를 만나고 와서 이뤄진 열매가 겨우 이 모양이라면 말이다.
김 대중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국정원을 싹 뒤집어엎고 북파 공작원들의 신원을 북쪽에다 넘겨 줘 버렸다는 말까지 나도는데.. 그것도 내가 직접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다만 김 대중· 노 무현 같은 친북 성향의 정권이 설령 악의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북한에 엄청난 거금을 퍼 주고도 북한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으며 전화· 서신 왕래 하나 제대로 이뤄진 게 없었다. 가만히 놔두기만 하면 붕괴했을 북한 정권은 이 돈으로 원래 계획했던 핵을 무난히 개발하는 쾌거를 이뤘다. 철도 연결이나 이산가족 상봉 깜짝쇼쯤은 도박판에서 돈 다 날리고 받은 위로금 개평 수준?

남북 경제 협력 명목이랍시고 이뤄 냈다는 개성 공단을 온갖 이상한 논리와 궤변으로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양심이 있다면 박통 시절에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 여건(특히 전 태일 열사)을 같이 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박통 시절에 아무리 노동자 인권이 열악했어도 임금의 90%를 체제 충성 비용으로 국가가 떼어 가던가?

이래도 햇볕 정책이 악의적이지 않은 실책일 뿐이라고 별다른 비판 없이 넘어간면, 그렇다면 6· 25 때 이 승만 정권의 한강교 폭파와 인명 살상이야말로 훨씬 더 악의적이지 않은 실책일 뿐이라고 실드 치고 넘길 수도 있겠다. 이게 전체 그림의 진실인 것이다.

정치색 들어간 얘기는 이쯤에서 접고 다시 본문으로 돌아오면..
이렇듯 국가 대표로서 적성국가 사람과 대면하는 건 어지간히 힘든 일이 아니다. 옛날에 이 후락 중앙정보부장도 몰래 북한을 방문했을 때,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 만약을 대비해 언제든지 즉시 자폭 가능하게 독약 앰플을 준비해 갔을 정도였다.

그리고 같은 전방에서도 상대적으로 낙후해 있는 동부 전선 강원도 산간지대 말고.. 서울과 가까운 평지이고 판문점도 있는 서부 전선이 훨씬 더 엄선된(체력· 사상 모두) 정예 군인들이 배치된다. 여기 일대는 민통선과 DMZ의 구분이 좀 므흣해서 북한군과 직접 대면하기 쉽고 각종 높으신 분들도 많이 오며, 덩달아 어느 지역보다도 월북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여기가 그야말로 노다지 진급 코스이다. 육사 졸업생은 바로 이런 데에서 소대장으로 첫 근무를 시작한다.

3. 탈북자가 가는 곳

북한 주민들이 탈북을 하는 경로는 신분과 지위에 따라 다양하다. 외국에 파견 나가 있다가 별안간 망명을 신청하기도 하고, 천신만고 끝에 중국 국경으로 넘어간 뒤 다른 나라를 거쳐 한국으로 오기도 한다. 배를 타고 넘어오거나 국경에서 근무 중인 군인이 별안간 남쪽으로 오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남쪽으로 넘어오는 북한 주민들은 명목상으로는 반국가단체의 지배 하에 있다가 탈출해 온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자유 대한의 품에 안긴 그들을 최대한 인간적으로 대우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탈북자로 위장 행세를 하는 간첩도 있기 때문에, 대접을 하기에 앞서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의심과 검증은 거친다. 탈북했다가 별안간 "나 마음이 바뀌었으니 북으로 다시 보내 주쇼" 하고 떼쓰는 이상한 아줌마도 있는데 이건 99.9% 간첩이다.

필요 이상으로 이상하게 북한을 자주 방문하는 사람도 굉장히 의심해야 한다. 그런 놈들은 북에 가서는 돈 왕창 바친 뒤 또 지령 받아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정치· 종교 쪽으로 유명한 사람이 북에서 자기 지위와 관련된 약점을 한번 잡힌 뒤부터는(마약이나 성 스캔들 같은) 북에 대해서 소신 발언은 끽소리도 못 하는 친종북 인사가 돼 버린다.

뭐 이런 경위가 있기 때문에, 탈북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접수되면 곧바로 하나원 같은 정착 지원 시설로 가는 게 아니다. 이들은 정확한 신원 파악을 위해 먼저 탈북자 전용 신문 센터에 며칠간 수용되어 정밀 조사를 받는다. 이건 국정원 자체는 아니지만 국정원에서 관할하는 시설이며, 시흥시 수인로라는 대로변에 자리잡아 있다. 당연히 아무 이정표도 없고, 밖에서 봐서는 이런 시설이 있는지 일반인은 전혀 알 수 없다.

정밀 조사를 통해 이들이 정말로 북한에서 왔고 악의가 없는 탈북자가 맞는지를 최종 확인한다. 우리나라도 정부 수립 이래로 지금까지 탈북자가 한두 명 쌓인 게 아니고 이 바닥 장사를 하루 이틀 하는 게 아닌데, 수많은 탈북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교차 검증 가능한 데이터쯤이야 왕창 쌓여 있다. 정말로 북한의 그 지역에서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내용을 거듭 질문해서 제대로 대답하는지 확인한다.

검증을 통과한 뒤 탈북자들은 하나원에서 총 12주간 남조선 사회 제도에 대한 교육을 받은 뒤, 각종 정착 자금을 받고 사회로 배출된다. 게임에서 튜토리얼을 한 뒤, 캐릭터가 본게임 필드에 스폰돼서 처음엔 깜빡거리는 실드 모드이다가 그 뒤부터는 실드 모드가 꺼지는 것과 같다.
세월이 흐르면서 탈북자가 워낙 많아지고 이들을 받아들이는 게 '귀순 용사'로 일일이 띄울 필요도 없는 일상적인 일과가 되자.. 하나원 역시 2010년대에 와서는 화천군에 멀티를 또 만들었다. 본원은 안성 품곡마을 근처에 있다.

하나원과 신문 센터 모두 법적으로 '가급 보안 시설'이고 지도에는 전혀 나와 있지 않다. 북한이 위치를 알아서 좋을 게 하나도 없는 시설이니까. 국정원 본원 자체도 코렁시설이지만 신문 센터라든가 국가 정보 대학원 같은 추가적인 연계 코렁시설도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나저나 서독산과 수리산의 사이에 있는 안양 박달동은 보아하니 산지 같은데 산 전체가 몽땅 온갖 군부대로 가득하구나. 예비군 훈련장도 당연히 있고. 산 전체가 탄약고인 천안 성환읍 학정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12/05 19:37 2016/12/05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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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2014년에 썼던 글을 관련 내용을 크게 보강하여 리메이크 한 것이다.

디지털 컴퓨터라는 게 0과 1, 2진법을 사용하다 보니, 2^n이라 하면 정보량과 관련해서 특히 컴퓨터쟁이들에게 아주 친근한 수이다.
그런데 2^n보다 1 더 크거나 작은 수가 소수라면 제각각 수학적으로 좀 독특한 의미를 갖게 된다.

1.
2^n-1 형태인 수를 메르센 수라고 한다. n층짜리 하노이의 탑의 원반을 옆으로 모두 옮기기 위해서는 이 메르센 수만치 지수함수적으로 증가하는 횟수만치 원반을 이동시켜야 한다. 그리고 메르센 수 중에서 소수인 놈을 메르센 소수라고 한다.
얘가 소수이려면 n도 반드시 소수여야 한다. n을 a와 b라는 두 자연수의 곱이라고 생각하고 2^ab - 1을 인수분해해 보면 그래야만 하는 구조적인 이유를 알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ab는 (2^a)^b 와 같다. 2^(a+b)하고 혼동하지 말 것.)

n이 합성수여서 2 이상인 두 자연수 a, b의 곱으로 나타내어질 수 있다면 2^n-1은 빼도 박도 못하고 무조건 합성수가 돼 버린다. 전체 결과가 소수가 되려면 a는 1이고 b는 소수로 귀착되는 것밖에 가능성이 없다. 비록 이 조건이 만족된다고 해서 2^n-1이 언제나 반드시 소수가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가장 작은 반례는 2^11-1이다. 11은 소수이지만 2047은 23*89로 소인수분해 되는 합성수이다.

메르센 수는 2^n에서 1이 부족한 형태라는 특성상 2진법으로 나타내면 모든 자리수가 1이다. 컴퓨터에서 취급이 간편하기도 하고, 또 n의 소수 여부를 판정한 뒤에 곧장 무려 2^n-1이라는 방대한 수를 취급할 수 있다는 특성상.. 컴퓨터로 가장 큰 소수를 찾는 프로젝트는 대개 메르센 수를 대상으로 진행되곤 한다. 물론 실제로는 메르센 수가 아닌 소수도 많이 있으며, 반대로 메르센 수 중에서도 메르센 소수는 매우 드물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저런 거 찾는 건 거의 애니메이션 렌더링과 같은 급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계산량으로 컴퓨터를 열받게 하고 혹사시키는 작업이다. 그나마 양만 많지 내부 과정 자체는 단순무식한 편이니 병렬화가 수월한 건 다행인 점이다.

메르센 소수는 짝수 완전수와 필요충분 관계로 정확히 대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약수의 합이 자신과 같은 6, 28, 496 같은 수) 메르센 소수 2^n-1에다가 2^(n-1)을 곱하면 완전수가 나오기 때문이다. 괄호 순서에 유의할 것. 즉, 저기서 n에다 소수를 집어넣으면 된다. 천재 수학자 오일러가 모든 짝수 완전수는 이런 형태라는 것을 증명했다.
현재까지 메르센 소수는 약 50여 개가 알려져 있으나, 무한히 존재하는지는 불명이다.

2.
그럼, 다음으로 2^n+1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1은 -1보다 더 자비심이 없다. n은 소수가 아니라 반드시 2의 거듭제곱 형태여야 그 값이 소수일 일말의 가능성이 생긴다. 이는 n의 소인수 중에 홀수가 절대로 존재해서는 안 됨을 의미한다. 아까 전과 비슷한 방식으로 2^ab + 1을 인수분해해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n의 소인수에 홀수가 존재해서 그걸 b라고 설정하면 아까 -1일 때와는 부호만 미묘하게 다르게 저렇게 인수분해가 되며, 이 수는 100% 합성수임이 보장돼 버린다. (2^a - 1)이라면 a=1인 걸로 맞춰서 없앨 수라도 있지만, (2^a + 1)은 도저히 처분할 방법이 없다.

하긴, 고등학교 공통수학 수준의 인수분해 공식을 생각해 봐도, n이 홀수일 때에 한해서 (a^n + b^n)은 a+b로 나눠 떨어지며 인수분해가 된다. 나눠진 몫에 해당하는 항은 a^n에서 b^n으로 a와 b의 차수가 조금씩 늘고 줄고 부호가 교대로 바뀐다.
이를 일반화하면, n이 굳이 홀수가 아니더라도 6이나 10처럼 홀수 소인수가 포함돼 있으면(3, 5) (a^n + b^n)은 굳이 a+b가 아니더라도 (a^2+b^2) 같은 것으로라도 나눠 떨어지며 인수분해가 된다. 그렇지 않고 홀수 소인수가 전혀 없다면 +의 경우는 인수분해를 할 수 없다.

부연 설명 차원에서 인수분해된 식들이 전개되는 양상을 시각적으로 살펴보면 이러하다.
a^n - b^n은 n의 값과 관계없이 언제나 a-b로 나눠 떨어지며, 나눠진 몫의 항들은 부호가 모두 +가 유지된다. 전부 +인 항들이 한 칸 옆으로 물러간 채 -로 바뀌어서 전부 +/-가 상쇄돼 버리고 맨 앞의 +와 -만 남는다
++++
 ----
+...- (a-b)

하지만 a^n + b^n일 때는 +와 -가 교차하는 항들이 한 칸 옆으로 맞물려서 상쇄돼야 맨 앞과 뒤의 +가 남을 수 있다. 그러니 이때는 항이 홀수 개여서 양 끝이 +가 유지돼야 인수분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
 +-+-+
+....+ (a+b)

(쪼개고 쪼개도 분자 단위에서 계속 앞뒤로 + - 극을 갖는 자석 같아 보이기도 하고..;;)
이 두 경우를 모두 종합한 듯이 인상적인 상황은 (a^n - b^n)에서 n이 2의 거듭제곱 형태일 때이다. n=8인 경우를 예로 들어 보면, 이 식은 (a^4 + b^4)(a^2 + b^2)(a + b)(a - b)라고 아주 드라마틱하게 인수분해가 된다. n이 2의 거듭제곱이면 (a^n + b^n)은 -일 때와는 반대로 인수분해가 도저히 더 되지 않는 다항식계의 소수(?) 같은 존재가 된다.

그렇기에 2^n+1도 n이 반드시 2의 거듭제곱 형태여야만 구조적으로 인수분해가 되지 않고 소수일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2^(2^n)+1 형태인 수를 페르마 수라고 하며, 그 중 소수인 놈을 페르마 소수라고 한다. 간단하게 2^n-1로 정의되는 메르센 수와는 양상이 다르다.

그러니, 태생적으로 딱 봐도 페르마 소수는 메르센 소수보다도 더욱 드물 것 같이 생겼는데, 실제로 그러하다.
n에 비례해서 숫자가 넘사벽급으로 너무 폭발적으로 커지는 관계로, 페르마 소수는 n=0..4인 처음 겨우 5개밖에 알려져 있지 않다(3, 5, 17, 257, 65537). n이 아니라 2^n으로 계산한 것이다.

여기서 페르마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내지 추측을 제시했던 17세기 프랑스의 그 엄친아 변호사 겸 아마추어 수학자를 가리키는 거 맞다..
페르마 자신은 저런 형태로 생성된 모든 수들이 소수일 거라고 1637년에 추측하였으나, 그로부터 100여 년 뒤인 1732년, 오일러가 n=5인 2^32+1은 소수가 아니라고 반증을 해 버렸다. 아까 그 메르센 소수와 완전수 관계를 증명한 그 오일러 말이다.
지금이야 그 정도 크기의 수는 컴퓨터로 소수 여부를 아주 간단히 판별할 수 있지만 오일러는 컴퓨터도 없던 시절에 저걸 도대체 어떻게 알아낸 걸까? 찰스 웨슬리가 찬송시 And can it be that I should gain을 쓰기도 전의 일이다(1738).

제곱근인 65536 이내의 모든 홀수들을 브루트 포스 식으로 일일이 주판 돌려서, 제자들까지 멀티코어로 동원해서 나눠 본 건 물론 아니고..
2^32 + 1의 소인수는 반드시 64k+1 의 형태라는 것을 어떤 계기로 알아내고는 찾았다고 한다. 범위를 많이 좁힌 것이다.
실제로 2^32 + 1은 641 * 6700417인데, 이는 (64*10+1)*(64*104694+1)이다.
그는 이를 일반화하여 페르마 수의 소인수는 반드시 "2의 거듭제곱의 a배 + 1"이라는 사실까지 정립했다.

n=5에 속하는 2^32+1에 이어 n=6 (2^64 + 1)의 경우도 합성수라는 게 추가로 밝혀진 건 오일러 이후로 또 100년이 넘게 지난 무려 1855년의 일이다(by Thomas Clausen). 나머지 페르마 수들도 대략 32까지 구해 보니 줄줄이 다 합성수라는 것이 계산을 통해 밝혀졌다. 페르마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흘러간 셈이다.
그러니 65537을 끝으로 페르마 소수는 더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닌가 추측되고 있으나, 이 역시 홀수 완전수의 존재 여부만큼이나 정식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다.

메르센 소수가 짝수 완전수와 동치 관계이듯, 페르마 소수 역시 굉장히 의외의 곳에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작도 가능한 정다각형의 특성과 관계가 있다. 변의 개수의 소인수가 2 and/or 페르마 소수들로만 이뤄진 정다각형은 눈금 없는 자와 컴퍼스를 이용해 작도 가능하다. 작도 가능한 수는 아무래도 사칙연산과 '제곱근'만으로 기술 가능한 수이니, 제곱근만을 연달아 적용하는 건 2의 거듭제곱만치 또 거듭제곱을 하는 것과 심상면에서 비슷해 보이긴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도 불가능한 최초의 정다각형은 정칠각형이며, 반대로 정17각형은 절차가 굉장히 복잡하고 까다롭긴 해도 작도 가능하다. 17은 페르마 소수이니까. 이걸 발견하여 증명한 사람은 오일러...는 아니고 18세기 독일의 천재 수학자인 가우스이며, 그것도 굉장히 어린 나이에 발견했다. sin 1도가 초월수가 아니라 대수적인 수이듯, cos 2*PI/17 역시 형태만 복잡할 뿐, 대수적인 수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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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출처: 나무위키)
뭐, 이론적으로만 가능하다는 거지, 실제로 해 보면 누적되는 오차와 지저분한 보조선들 때문에 감당이 어려울 것이다. 하물며 정257각형과 심지어 정65537각형은? 이것도 이론에서나 작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자, 지금까지 한 얘기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a^n-b^n은 언제나 a-b로 나눠 떨어지며 2^n-1 역시 그런 꼴의 수이므로, 얘를 소수로 만들려면 a-b가 반드시 1인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메르센 수에서 그 경우란 n이 소수인 경우밖에 없다.
  • 그리고 2^n+1의 일반형인 a^n+b^n은 아까처럼 한쪽 인수를 1로 만드는 게 불가능한 대신에, 인수분해 가능 여부가 n의 차수에 따라 조건부로 결정된다. 소수를 만들려면 물론 애초에 인수분해를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하며, n은 단순히 짝수인 정도를 넘어 소인수에 홀수가 전혀 없어야 한다. 그래서 n 자체가 2의 거듭제곱 형태인 것만 남는다.

그러고 보니 페르마뿐만 아니라 메르센도 17세기 동시대를 살았던 프랑스 사람이기 때문에 둘이 공통점이 있다. 메르센은 블레즈 파스칼의 스승이기도 했다. 프랑스, 독일 그쪽은 수학· 과학 쪽으로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한가닥 하고 있는 대단한 동네이다.

* 소수 관련 여담

(1) 소수 자체가 안 그래도 수가 커질수록 (log n) / n 급의 스케일로 자연수에서 등장 빈도가 극도로 드물어진다. 그런데 그 소수들 중에서도 굉장히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하는 메르센 내지 페르마 소수 같은 것들은 한계치 최대치가 존재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을 것이다. 굳이 수 자체가 특이한 게 아니더라도 2 간격으로 나란히 존재하는 쌍둥이 소수 쌍(5와 7, 11과 13, 17과 19..) 같은 것도 말이다. 그런데 한계치가 있다면 그 최대값이 알려져 있어야 할 텐데 그것이 수수께끼이다.

(2) 오일러의 업적 중에는 소수와 관련해서도 정말 살떨리는 것들이 많다. 자연수의 제곱의 역수의 무한합이 원주율과 관계 있는 수로 수렴한다는 것을 규명했을 뿐만 아니라 이건 소수의 분포와도 관계가 있기 때문에 임의의 두 수가 서로 소일 확률과 같다고 입증한 건 뭐..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예전에 본인의 블로그에서 다룬 적이 있다.

(3) 또한 그는 소수의 개수가 무한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소수의 역수의 무한합이 무한대로 발산한다는.. 거의 충격과 공포 안드로메다급의 명제도 증명했다. 물론 속도는 이중 로그(로그에다 또 로그) 급으로 끔찍하게 느리니 기대하지 말자. 그냥 자연수의 역수의 합만 해도 얼마나 느린데 하물며 소수의 역수는! 쉽게 말해 10에다 0을 10의 20승개만치 붙인 영역만치 소수의 역수를 더하면 합이 20이 될까말까 한다는 뜻이다. 쟤가 도대체 제곱의 역수의 무한합보다 뭐가 더 나은 구석이 있다고 발산을 하는 걸까?

단, 쌍둥이 소수들의 역수의 합은 유한으로 수렴한다고 한다. 쌍둥이 소수가 유한하다면 당연히 유한 수렴이겠지만, 무한하다 하더라도 얘는 발산하지 못한다고.. 구체적인 값은 모르겠지만 추세가 그렇게 된다는 큰 그림만 증명을 한 것이다. 어떻게 증명했는지는 나한테 묻지 마시길.

(4) 가우스, 오일러 등 인류 역사상 수많은 괴수 천재 수학자들이 초월적인 업적을 남기고 갔지만, 어떤 형태로든 소수 생성 규칙을 표방하는 모든 예측· 추측은 지금까지 하나도 완벽하게 적중한 게 없었다. 저 페르마의 추측처럼 말이다.
소수를 생성하는 규칙을 무슨 정보 검색이나 패턴 매칭에다가 비유해서 설명하자면, 정밀도와 재현율(precision & recall) 어느 것 하나라도 확실하게 잡는 규칙이 지금까지 발견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정밀도가 100%라면 모든 소수를 커버하지는 못해도 일단 이 규칙이 생성하는 수는 다 소수임이 보장되는 것이고, 재현율이 100%라면 종종 소수가 아닌 놈(false alarm)이 섞여 있더라도 소수는 하나도 빠짐없이 커버한다는 뜻이다.

(5) partition number라는 게 있다. f(2)라면 1+1, 2 이렇게 2가지, f(3)이라면 1+1+1, 2+1, 3 이렇게 3가지, f(4)라면 1 1 1 1, 2 1 1, 2 2, 3 1, 4 이렇게 5... 뭔가 테트리스 조합처럼 올라가는데, 이 수열이 2 3 5 7 11 (15 22...) 이렇게 앞부분은 소수와 굉장히 비슷한 양상으로 시작한다. 무슨 파이의 그럴싸한 근사값을 보는 듯한 느낌이나, 얘는 실제로는 소수와는 수학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놈이다.

n에 대해서 f(n)의 값을 구하는 건 다이나믹 프로그래밍으로 해결 가능하다. 피보나치 수열 구하는 것보다는 어렵고 꽤 재미있는 프로그래밍 excercise이므로 관심 있으신 분은 도전해도 좋다. 참고로 점화식 함수 내지 테이블은 보기와는 달리 1변수로는 안 되고 2변수 형태로 짜야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6/11/30 08:31 2016/11/30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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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계획과 달 탐사 이야기

* 옛날 2012년에 썼던 글을 리메이크 한 것이다. 월면차와 도킹 관련 내용을 새로 추가했다.

1. 인간이 달에 가기까지

콩코드 여객기가 날아다니고 인간이 달에 갔다 오던 1970년대는 그야말로 항공 우주덕을 꿈꾸는 과학도가 많이도 생겼을 것 같은 시기이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인간이 달뿐만이 아니라 화성도 정복하고 우주 식민지를 개척할 것 같은 희망에 부풀지 않았었을까 싶다. 비록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지만 본인은 이 시절을 어느 정도 동경까지 하고 있다.

아시아 최초의 우주인인 일본의 모리 마모루 박사는 그 당시에 만화영화 아톰을 보면서 과학자의 길을 꿈꾸었으며, 세계적인 우주론 전문가로 손꼽히는 천문학자인 연세대 이 영욱 교수도 어렸을 때 비슷한 체험을 하고 아폴로 계획의 성과에 감화도 받으면서 이 분야의 진로를 선택했다.

이 교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는 것을 봤다. 그 뒤 천문과 우주에 빠져 매일 하늘을 바라보게 됐다”면서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우주에서 쏟아지는 유성우(流星雨)를 본다고 3시간 동안 집 마당에 서있기도 했다. 마침 아폴로 달착륙 때 해설을 통해 ‘아폴로 박사’로 유명해진 고(故) 조경철 박사도 연세대 교수였다. 그렇게 연세대와 인연을 맺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 링크 클릭)

모리 박사는 13세이던 1961년 옛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로 나가는 것을 보고 우주인이 되겠다는 꿈을 꿨다고 한다. 그래서 무엇보다 어린 시절의 꿈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 링크 클릭)


이제 막 통신 위성을 통한 TV 중계 기술이 개발되어 1964년의 도쿄 올림픽이 역사상 최초로 지구 반대편으로 생방송 중계된 올림픽으로 기록되던 시절이었는데, 그로부터 겨우 5년 남짓한 시간 만에 인류는 달 착륙 모습을 라이브로 중계하는 데 성공할 줄이야! 대단하지 않은가?

물론 성경은 바벨 탑(창 11:4)이라든가 루시퍼의 반역(사 14:13)에서 볼 수 있듯, 하늘로 자꾸 오르려는 인간의 욕망을 부정적으로 디스하는 경향이 있다. 하늘이 인간에게는 금단의 영역이라는 심상은,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 이야기에도 반영되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순수하게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과학 기술을 개발하는 것 자체는 딱히 선악 대립 구도가 없는 이념 중립적 영역이라 하겠다. 아폴로 8호 승무원은 달을 돌면서 오죽했으면 감격에 겨운 나머지 1968년 크리스마스 이브를 기념하여 창세기 1장을 낭독하기도 했다. 바로 이런 광경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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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아폴로 8호는 새턴 V 로켓으로 유인 우주 비행을 최초로 시도하는 것이었으며, 아예 지구 궤도를 벗어나서 달의 궤도까지 가는 것도 완전 최초였던 미션이었다. 달 착륙선만 빼고 각종 위험한 모험은 다 하고 왔다. 오히려 그 다음 9호는 달까지 가지는 않고 지구 궤도에 머물면서 달 착륙선과 우주복의 안정성을 시험했다.

구소련은 1950년대 말에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쏴서(= 대륙간 탄도 미사일 발사 기술까지 인증) 스푸트니크 쇼크를 일으키며 미국을 도발했다. 하지만 미국이 작정하고 NASA를 만들고 쇼미더머니를 치면서 이 분야를 무섭게 추격하자 10여 년 만에 전세는 역전되었다.

소련은 달에 무인 탐사선을 보내서 달 뒷면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고, 달 표면까지 내려가서 월석을 채취해 오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달 표면에 사람을 착륙시키는 것까지는 차마 달성을 못 했고 천조국 미국이 대신 해냈다.

한때는(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갑자기 ‘달 착륙 구라설 / 아폴로 계획 자작극 음모론’이 인터넷에 나돌았다. 무슨 사진 모양이 이상하고 그림자 모양이 이상하다는 둥. 그 당시 기술로 우주선이 밴 앨런 벨트를 살아서 통과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둥. 그리고 그때 달에 착륙했다가 다시 출발은 어떻게 했겠냐는 둥.

그러나 이것은 우주 개발 역사와 달 탐사 우주선의 메커니즘 디테일도 제대로 모르는 비전문가의 무지의 소치이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은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게 아니라 점진적인 연습과 리허설을 거듭한 끝에 이뤄진 과업이다.

  • 아폴로 8호와 9호를 거쳐서 10호 때는 드디어 착륙선을 내려서 승무원이 달 표면 고도 10km대까지만 내려갔다가 도로 되돌아와서 사령선에 합류했다. 그 당시 착륙선은 기술적으로 달에 착륙까지는 가능했지만 거기서 재이륙을 아직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 최종 단계인 그것만 빼고 달에 갔다가 돌아오는 리허설을 다 수행했다. 10호 미션 도중엔 그 유명한 "이 똥이 누구 똥이냐"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 그 후 아폴로 11~17호 중 13호만 빼고 미국은 무려 여섯 차례나 인간을 달에 성공적으로 착륙시켰다가 귀환시켰다. 13호는 중간에 발생한 문제로 인해 착륙은 포기하고, 달 궤도를 멀찍이 삥 돌기만 한 후 지구로 귀환했다. 그래도 목숨 부지하고 돌아온 것만 해도 어디냐. 13호의 승무원은 인류 역사상 지구에서 제일 멀리까지 나갔다가 돌아온 사람이 되었다.
  • 사령선은 달의 궤도를 가까이서 빙빙 돌고 있고, 여기서 착륙선을 별도로 내려 보내서 착륙한다. 승무원 3명 중 1명은 모선인 사령선에 남아 있고, 2명만 달 표면을 밟게 된다. 사령관은 혼자 달을 빙빙 돌면서 고독스럽게 사령선을 지킨다. 어두컴컴한 달 뒷면을 도는 동안은 다른 승무원 내지 지구 기지와도 통신이 전면 두절된다.
  • 수 차례의 달 탐사가 진행되면서 인간이 달에다 남겨 놓고 온 흔적들도 많다. 가령, 착륙선의 발사대와 발사 흔적도 그렇고 아폴로 11호는 레이저 반사경을 달 표면에다 놔 두고 돌아왔으며, 이건 지금까지도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를 측정할 때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 아폴로 11호 때는, 미션 완료 후 착륙선이 다시 발사되어 올라가면서 발생한 배기가스의 강한 후폭풍 때문에, 인근에 꽂아 놨던 성조기가 쓸려 날아갔다. 어이쿠.. 그래서 그 뒤의 아폴로 미션 때는 성조기는 착륙선보다 최소 30m 이상 충분히 멀리 떨어진 곳에다 꽂게 되었다. 달 표면은 생각보다 딱딱해서 깃발을 꽂기가 힘들었다고 함.

이런 디테일을 모두 제대로 알기나 하고서 음모론, 자작극을 주장하는 사람을 난 못 봤다.
내가 기독교 식으로 좀 강한 비유를 동원하자면, 인간이 달에 갔다 왔다는 건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인 것만큼이나 확실한 사실이다. 마치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고 안 믿으려면 무수한 역사적 사실들을 부정해야 하듯, 달 착륙도 증거가 의혹보다 월등히 더 많다.

만약 NASA의 달 착륙이 진짜로 자작극이라면 미국의 모든 첩보 기관들은 그 진실을 알고 있는 전세계 수많은 대학과 연구소, 기업들을 입 막고 매수하는 일에 대부분의 예산과 정보력을 쏟아붓고 있을 것이다. 정말이다. 성경의 마 28:12-13이랑 완전 똑같은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요즘 NASA는 달 내부에서 아폴로 11호의 착륙 지점 같은 역사적으로 너무나 유서 깊은 장소를 있는 그대로 영구 보존하고, 훗날 이곳을 찾는 타국의 달 탐사선이 이를 훼손하지 못하게 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려 하는 중이다.
다음은 역대 아폴로 계획 착륙선들이 달 표면에 착륙한 지점을 한데 나타낸 것이다. 무슨 사격 훈련 후에 표적지에 찍힌 탄착군을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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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월면차

인간이 만들어 낸 전기차 중에 가장 독특한 임무를 수행한 물건은 월면차이지 싶다.
달은 공기가 없으니 기름으로 달리는 내연기관 차량을 운용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산소를 연료와 함께 섞어서 폭발 추진을 시키는 로켓을 만드는 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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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면차는 아폴로 계획 11~17호 미션 중에서 15회 때부터 총 세 차례 투입되었다.
이게 없던 시절엔 기껏 쒜빠지게 고생해서 달에 갔는데.. 너무 힘들어서 승무원들이 좀 멀리까지 주변 지역 탐사를 하기가 어려웠다.
온갖 생존 장비들이 달린 우주복은 무게가 100수십 kg이 훌쩍 넘어갔기 때문이다. 그나마 중력이 1/6인 달이니까 부담이 군인의 '완전군장' 수준으로 줄어들었지, 지구였으면 자력으로 들고 일어서지도 못한다. 그 상태로 월석을 채취까지 하면 중량 부담이 얼마나 더 커졌을까?

월면차는 달에 간 우주비행사들의 기동성을 크게 올려 줬다. 같은 거리를 더 빠르게 가고도 산소 소모량은 1/3 수준으로 줄여 줬다! 달에 두 명이 내려갔으니 월면차 역시 두 명이 모두 같이 탈 수 있었다. 개인 월면차 두 대를 제각기 끌고 다닌 건 아님. 지구에서 테스트할 때보다 더 펄펄 날아다녔다는 것도 두 말하면 잔소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없이 멀리 가지는 못했다. 혹시 월면차가 중간에 퍼지더라도 차를 버리고 착륙선이 있는 곳으로 걸어서 돌아올 수 있게, 착륙 지점으로부터 반경 6km 이내까지만 돌아다니게 FM에 명시를 했다고 한다. 달에는 보험사 긴급출동 같은 것도 있을 리 없으니까..!

월면차의 주행 장면은 달 착륙이 사실임을 매우 강력하게 입증하는 흥미롭고 감격스러운 영상이다. 저거 대수롭지 않아 보여도 지구에서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는 영상이 아니다.
진공이니 (1) 바퀴가 튀긴 흙먼지조차도 연기를 형성하지 않고 마치 물보라처럼 착착 가라앉는다. (2) 차 속도 대비 흙먼지는 꽤 높고 큼직하게 생기며 지구보다 느린 속도로 가라앉는다. 그런데 사람의 동작은 슬로우 모션이 아님.

지구에서 CG 없이 1970년대의 아날로그 기술만으로 저런 걸 치밀하게 주작할 수 있었을까?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아예 무중력이어서 사람이 둥둥 떠다니는 건 와이어 써서 어설프게나마 만들었겠지만, 흙먼지가 저렇게 천천히 떨어지는 걸 어떻게 구현하겠는가? 훨씬 더 어렵다.

그 월면차들은 지구로 귀환할 때 회수한 게 아니라 전부 달에 버려져 있다..;; (오오~) 아예 월면차에다가 카메라를 장착한 뒤, 인근의 착륙선이 도로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이건 월면차의 투입과 동시에 시도했던 것이지만, 카메라를 지구에서 원격 조종해야 하니 꽤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한다. 마지막 17호 때에야 간신히 성공했다. 아폴로 17호 때 촬영한 둥근 지구 사진(아프리카 대륙이 나온)만큼이나 아주 유명한 과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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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면차를 두고 온 대신 아폴로 승무원들은 월석을 더 싣고 왔다. 월석은 지구의 사막이나 극지방에 있는 돌멩이는 물론이고 공기와의 마찰을 경험한 운석과도 성분이 다르고 유니크하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3. 도킹과 재진입

달에 처음 갈 때는 어마어마한 지구 중력을 탈출하기 위해 인류가 발명한 가장 대형+고성능 로켓이 투입된다. 이름하여 새턴 V. 얘는 높이가 110미터, 연료 만재 중량이 3000톤에 달하며, 1단 엔진의 출력은 1억 6천만 마력이 넘는다!

지구의 중력뿐만이 아니라 공기의 저항까지 극복하면서 위로 올라가야 하고 하중은 기계선과 착륙선· 연료의 무게까지 전부 감안해야 하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런 로켓 한번 쏘는 데는 가히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이 든다. 이걸로 달까지 가는데 3~4일 정도 걸린다.

하지만 달 착륙선이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 이륙할 때는 차 떼고 포 떼고 아주 작은 로켓이 발사된다. 일차적으로는 달이 대기가 없고 중력이 작은 덕분이며, 또한 얘는 달을 돌고 있는 사령선이 있는 고도에만 도달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늘로 오르기만 하면 장땡인 게 아니다. 달의 공중에서 착륙선과 사령선이 정확하게 한 지점에서 만나서 도킹 합체하는 게 얼마나 어려울지 상상이 가는가?
착륙선은 처음엔 수직 상승을 하다가 점점 수평으로 속도를 내야 하고, 그렇게 사령선과 상대 속도를 비슷하게 맞췄다가 착 합체를 해야 한다.

비행기로 치면 공중 급유, 혹은 지상으로 치면 말이나 오토바이를 탄 채로 옆에서 달리는 다른 자동차나 열차에 옮겨 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뭐 하나 삐끗 했다간 끝장이다. 그러니 아폴로 11호 이전 미션들이 달 궤도 진입 및 착륙선 분리와 합체를 차근차근 조심스레 리허설을 해야 했다.

달에서 도킹에 실패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달에 착륙했던 두 승무원은 달을 빠져나가는 데 실패하고 거기서 죽어 버리고, 사령선 선장만 혼자 돌아오는 참극이 벌어진다. 이건 어찌 보면 '깔끔하게 전원 사망'보다도 당사자에게 더 큰 트라우마를 안기지 않겠는가?

그것도 달 표면에 단번에 추락사 같은 부류라면 모르겠는데, 달 표면에 당장 생존은 한 채로 버려진다면 더 골치 아파진다. 그들은 굶어 죽거나, 아니 그 전에 산소가 먼저 고갈될 것이니 천천히 질식사한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청산가리 독약이라도 미리 챙겨 가지 않았다면 말이다. 아니, 이 사람들은 독약은 몰라도 최소한 유서는 미리 써 놓고 달에 갔다 왔지 싶다.

지구에서 이들에게 뭔가 도와 줄 수 있는 건 이제 없다. 그냥 통신을 끊고 미국 대통령은 "평화를 갈망하며 미지의 세계를 찾아갔던 영웅은 이제 그곳에서 평화롭게 영면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도전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유족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ㅠㅠ" 이런 담화문이나 발표하고 세계는 그냥 초상집 분위기가 됐을 것이다.
그리고 먼 미래에 남극에서 로버트 스콧의 시신, 에베레스트 산에서 조지 맬러리의 시신을 발견하듯이, 후속 발사된 발사된 유인 또는 무인 달 탐사선이 아폴로 우주선 승무원의 시신을 찾아낸 게 보도되거나 할 것이다.

뭐, 합류를 성공적으로 했다 하더라도, 그 다음으로 공기가 없던 곳에서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재진입도 묘기가 따로 없다. 속도를 낮춰서 천천히 발사의 역순으로 90도 강하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재돌입할 때는 우주선에 아무 연료도 남아 있지 않다. 즉, 동력이 없이 지구의 중력에 그대로 끌려 들어오면서, 컬럼비아 우주왕복선 꼴, 유성 불쏘시개 꼴도 나지 않아야 한다는 게 큰 딜레마이다. 그래서 재돌입이 어렵고 위험하다.

이런 걸 생각하면 인간이 우주로 나간다는 건 정말 유리몸을 가진 캐릭터를 조종하는 아케이드 퍼즐 게임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뭐 하나 잘못되어서 경로를 이탈하거나 트랩을 툭 건드리면 즉사다. 칼날 위로 외줄타기를 하는 거나 다름없다. 게임 오버인데 현실은 게임이 아니다.

이 와중에 그 우주 개발 시대 동안 그래도 지구 바깥에서 사람이 사고로 죽어서 시신이 우주로 유실된 게 없다는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중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것도 다 지구에서 시신이 수습됐으니까.

아폴로 13호의 경우, 지구 중력은 완전히 벗어난 뒤에 달 착륙을 얼마 남기지 않았을 때 문제가 터진 게 정말 기적적인 천만다행이었다. 이미 사령선과 착륙선이 분리되어 달 착륙이 시작됐거나, 아예 지구 중력을 벗어나기도 전이거나, 지구 대기권 재진입 도중이거나.. 뭐 그랬으면 그 당시 귀환을 위해 동원되었던 테크닉의 대부분이 적용 불가능했을 것이고 승무원들이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필 13공포증을 극복하긴커녕 오히려 더 증폭시킨 미션이 돼 버린 건 안타까운 일이다)

50년 전의 기계· 전자 기술로 달까지 사람을 보내고 오는 기술을 개발했던 미국, 그리고 그에 준하는 기술을 보유했던 구소련이 정말 대단하고 경이롭게 보인다. 이런 기술과 오늘날의 인터넷· 통신 기술이 세상에 공존하지 않는다는 게 뭔가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11/19 08:30 2016/11/1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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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간에 이종교배를 하면 예전에 없던 새로운 종(종간잡종) 자체는 나올 수 있다. 동물의 경우 노새나 라이거가 대표적인 예이고 식물도 그런 예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교배했다고 원하는 형태의 잡종이 툭툭 튀어나오는 건 아니다. 가령, 감자와 토마토가 지상과 지하에서 동시에 열리는 포메이토 같은 건 SF 수준의 유전자 조작이 필요해 보이는데 만드는 게 이론적으로 가능한지, 그리고 감자와 토마토 정도야 그냥 따로 키우면 되지, 왜 그런 이상한 생물을 가성비 차원에서 굳이 만들 필요가 있는지 필요성 자체조차 난 잘 모르겠다. 이런 거라도 만드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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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를 채찍질 하는 게 유전공학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또한 잡종은 일반적으로 번식 가능하지 않다. 노새와 라이거는 유전자가 서로 맞지 않기 때문에 이대로 대를 잇는 자손을 남길 수는 없다. 유전과 관련하여 나름 금도의 벽이 있는 셈이다. 이 분야에 대해 비전공자로서 본인이 아는 건 이 정도까지가 전부이다.

그런데 동물을 성질을 죽이기 위해 화학적으로 거세시켰다는 얘기는 들었어도 식물에다 특수한 처리를 해서 씨 없는 포도나 씨 없는 수박을 만든 건 정말 대단해 보인다. 프로그래밍으로 치면 치밀한 API 훅킹이나 문서화되지 않은 꼼수 기능을 동원해 불법복제 크랙을 만들거나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것과 비슷해 보인다.

씨 없는 수박의 경우 씨가 아예 안 만들어지는 건 아니며, 검고 딱딱한 진짜 씨가 생기기 전에 하얗고 물렁물렁한 초기 단계의 씨 흔적 정도는 남아 있다고 한다. 이건 '뼈 없는 닭갈비' 같은 급은 아닐 테니까. 그래도 그런 씨의 잔재는 수박을 먹는 데 불쾌함을 주지는 않는다고 한다.

동식물을 막론하고 그 자그맣고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씨에서 엄청난 동식물 성체가 자라난다는 건 손톱만 한 SD카드에 수 GB에 달하는 정보가 저장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난 자연 창조 섭리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그 열매 안에 씨가 안 생기도록 유전적인 제어는 또 어떻게 하는지 이 역시 신기한 영역에 속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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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이말년 본좌님의 압박..!! ㅋㅋㅋㅋㅋㅋ
단, 우 장춘 박사는 이미 일본인 학자에 의해 발명된 씨 없는 수박을 국내에 처음으로 들여와서 소개했을 뿐이지, 통념과는 달리 그걸 최초로 발명한 분은 아니다.

우 박사가 업적을 남긴 분야는 따로 있다. 배추와 양배추를 교배해서 얻은 잡종이... '유채'라는 이미 존재하는 다른 제3의 종과 유전자 차원에서 완전히 동일함을 입증했다. 라이거와는 달리 번식에도 아무 문제 없다. 그게 유채에서만 어떻게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음. 어떻게 배추와 양배추를 교배했는데 배추와는 별 관계 없어 보이는 유채가 나오지?

유채는 공교롭게도 한국어와 영어에서 모두 이름과 관련된 우여곡절이 존재한다.
'유채'라는 단어는 한자어인데, 얘의 순우리말 이름은 웬 뜬금없는 '평지'이다. 물론 지금은 plain / flat land라는 한자어에게 소리를 완전히 빼앗겨서 유채를 저렇게 부르면 아무도 못 알아들을 듯하다.

영어로는 더 골때리게도 rape여서 흉악 범죄와 완전히 동음이의어이다! 욕설과 동음이의어인 ‘시발 자동차’가 차라리 덜 민망할 지경. 그래서 유채씨를 짜서 만든 식용유를 과거에는 rapeseed oil이라고 부르다가 지금은 ‘캐나다’라는 나라 이름을 일부 집어넣어서 ‘카놀라유’라는 새로운 마케팅 명칭이 통용된다.

우 박사는 이 유채를 연구해서 1930년대에 유전학적으로 '종의 합성'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제시했다. 이 덕택에 종의 분화를 설명하는 다윈의 진화론이 일부 수정되고 보강됐다고 한다.
여느 외국인도 아니고 무려 한국인 과학자가 종과 종 사이의 변화를 실험으로 입증해서 U's triangle이라고 자기 이름을 학계에 남겼을 정도인데 이건 창조 진화 논쟁에서 꽤 중요한 사건이 아닌가? 특히 대진화를 믿지 않는 진영에서 인정할 건 인정하고 해명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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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 진영의 아젠다는 진화란 소진화와 대진화로 나뉘며, 종과 종이 바뀌는 대진화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반면 안티들은 대진화도 얼마든지 관찰되고 실험으로 입증되었는데 창조좀비들이 스스로 귀를 막고 눈을 막아서 반박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깐다.

창조 진영에서 말하는 "종과 종 사이의 변화는 관찰되지 않는다"라는 명제는 화학으로 치면 원소가 다른 원소와의 화학 반응을 통해서 다른 원소로 변하는 일은 없다는.. 그러니까 싼 물질에다 마술을 부려서 금을 짠~ 만들겠다는 연금술은 그저 떡밥일 뿐 그런 기술은 존재 불가능하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의 주장으로 보인다.

오늘날이야 원자보다 더 작은 단위(원자핵, 전자 등등)의 관찰과 조작을 해서 동일 원소의 동위원소도 논하며, 무슨 방사능 가속 실험실에서 새로운 원소를 너끈히 만들어 내고 심지어 이런 원소가 존재한다면 이런 특성을 갖고 있을 거라고 예측까지 가능한 세상이 됐다. 그러니 원소야말로 절대불변의 물질의 본질을 나타내는 경계 단위라는 통념은 엄밀히 말해 진작부터 깨져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기술 덕분에 원래의 목표이던 구리를 초원자 단위로 조작해서 금을 뚝딱 만드는 게 가능해지고 저렴하게 실용화됐나? 금값이 구리값과 대등하게 폭락하고 금융계에 일대격변이 일어났나? 그렇지는 않다는 거다. 극한의 환경에서 잠깐만 존재 가능하다가 0.1초 만에 원자핵이 붕괴해서 다른 원소로 변해 버리는 그런 불안정한 방사성 원소를 하나 만들어 낸 게 학술적인 의미 이상으로 우리의 일상생활을 당장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않는다.
인조 다이아몬드는 있어도 인조 금 같은 건 없다는 얘기다. 또한 인조 다이아몬드조차도 퀄리티나 제조 원가가 다이아몬드의 가격을 흑연의 가격과 동등하게 낮출 정도의 물건은 결코 아니다.

그러니 생물 쪽으로 가서 종을 원소에다 비유해 보자. 유채건 뭐건 그런 종간변화가 관찰된 것 자체야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종의 기원' 진화 이론이 바뀌었다고 해서, 원숭이건 뭐건 미지의 공통 조상이 진화해서 지적 생명체인 인간이 되었다는 그 비현실적인 확률을 설명하는 데 그게 실질적인 기여를 한 건 여전히 거의 없다.
그러니 창조 진화 논쟁은 서로 주장하는 바가 다르고 서로 핀트가 어긋난 쪽만 공략하면서 소모전을 계속하고 있으며, 여전히 생명의 기원과 분화에 신의 창조가 들어가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게 본인의 생각이다.

물론 신의 개입이라는 건 과학으로 재연이나 설명 가능하지는 않다. 과학은 천체들이 뉴턴의 법칙대로 돈다는 것만 설명할 뿐, 처음에 누가 그 천체들을 만들어서 언제 그렇게 힘을 가해서 뺑뺑이 돌리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답을 주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달은 그 외형이나 특징이 너무 특이해서 인위적인(?) 개입이 있었지 아무래도 우연히 저렇게 만들어진 것 같진 않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격이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할 것이 있다.
성경의 하나님은 생물, 생리, 천문 등 여러 분야에서 사람에게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지 말라는 법칙을 정해 놓았다. 하지만 인간은 그것들을 거스르고 금기의 벽을 깨고, 자신에게 당장 불편하다 싶은 건 안 불편하게 하는 기술을 그 좋은 머리로 꾸준히 개발해 왔다(전 7:29).

간단한 예부터 들자면.. '네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으리니'(창 3:19)에 반대하여 땀 안 흘리고 편하게 일하려고 에어컨 같은 엄청난 냉방 기술을 개발했으며, '고통 중에 자식을 낳을 것이요'(창 3:16)를 무효화하려고 무통 분만 기술을 개발했다.
'땅을 일정 주기로 쉬게 하라'라는 명령을 어기려고 질소 합성법을 개발하여 식량 생산에 치트키를 입력해 넣었다.
인간은 땅과 첫째 하늘까지만 영역을 두고 사는 게 원칙이지만.. 알다시피 우주 개발도 진행해서 왕년에는 인간이 달에까지 갔다 왔다.

분야를 불문하고 이런 엄청난 일들을 벌여 온 인간인데 하물며 유전공학 쪽은 어련하겠는가?
성경의 하나님은 잡종· 이종교배를 통해 생명의 본디 프로토타입인 유전자가 교란되는 것을 명백히 싫어하시는 것으로 보인다. 레 19:19가 대표적인 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노새'라는 가축이 가성비가 뛰어나고 좋으니 잡종을 만들며, 그 밖에 어느 동식물이든 필요하다면 유전자 조작도 얼마든지 일삼을 것이다.

자, 그런데.. 이런 일체의 시도 자체가 다 나쁘기만 할 것일까? 그걸로 인해 무슨 성경이나 하나님의 권위가 깎이기라도 하는 걸까?

하나님의 법칙을 자꾸 거슬러서 인간이 나중에 어떤 형태로든 보이지 않는 대가를 치르고 삽질하는 것이야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문제이고 뭐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 더운 여름에 에어컨이 발명된 것 자체를 저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주 개발을 하느라 돈지랄 하는 걸로 다른 사회 복지에나 좀 투자할 것이지!" 뭐 정치적으로 이런 이견이 제기된다면야 그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우주 개발 덕분에 월석의 특징이 밝혀지고 천왕성과 명왕성 사진이 공개된 것 자체를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비록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법에 도전하는 영역일지언정 과학 기술 자체는 거대한 칼과 같아서 기본적으로 가치 중립적이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뿐이다. 크리스천이 전쟁 무기를 생산하는 회사에 다니는 걸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듯, 유전공학을 연구하는 과학자 내지 NASA에서 근무하는 항공 우주공학자가 되지 말라는 법은 전혀 없다.

기독교 변증법 중에서 좀 구차하다면 구차하지만, "인간이 지금까지 밝혀 낸 지식이 이것밖에 안 되는데 그 영역의 밖에 있는 신이 없다고 단정지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게 있다.
그런데 이런 논리는 대상을 외계인으로 바꿔도 동일하게 적용 가능하며, 난 둘 다 말이 된다고 본다. 몇백억 광년에 달하는 방대한 우주에 지적 생명체가 인간밖에 없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으니 SETI 프로젝트도 하고 옛날에 외행성 탐사선에다가 외계인들 있으면 보라고 금속판도 집어넣는 쇼를 한 것이다.

물론 본인은 크리스천으로서 이 방대한 우주에 지적 생명체는 인간밖에 없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고 여긴다. 허나 그건 내 믿음일 뿐이니,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큼이나 외계인을 찾는 그 심정은 동의하진 않더라도 동일하게 기회를 보장해 주고 존중해 줘야 한다고 본다. 그 시도 자체를 종교의 힘으로 봉쇄하고 강제로 찍어누르는 건 옛날 갈릴레오 재판 같은 병신짓을 재연하는 것일 테고.

말이 길어졌는데, 결론을 내리자면 이렇다.
다른 분야들도 그렇겠지만 과학과 종교 사이의 논쟁을 보면 양 진영들이 진실을 서로 다른 쪽에서 부분적으로만 갖고 있으며, 상대방을 향해서 뭔가 헛발질만 일삼는 게 눈에 많이 띈다. 원거리 공격이 제대로 먹히지 않고 말이 안 통하니, 서로 빡치고 감정만 상해서 결국은 인신공격을 일삼는 백병전으로 논쟁의 양상이 바뀐다.

본인은 창조과학(?) 쪽이 문자적인 6일 창조를 목숨 걸고 사수하는 것 하나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창 1~3이 허구 설화라고 매도하고 하루가 원어로는 어떻고 헛소리 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허나 예전부터 내가 우려해 왔듯이 창조과학 진영도 다른 데서 쓸데없는 적을 만들고 삽질하는 게 너무 많아서 역효과가 크다. 과학과 성경 어느 하나도 확실하게 방어를 못 한 채 쓸데없이 저격당하고 털릴 구실을 많이 주고 있다.
자기들이 삽질해 놓고는 감당 못 하겠으면 딤전 6:20 "거짓으로 과학이라 불리는 것"이라는 실드 뒤에서 정신 승리하고 쏙 숨어 버리는 식이니 누가 인정해 주겠는가? 아무리 목적이 선하다고 해도 그럼 창조 과학조차도 "거짓으로 과학으로 불리는 것"일 가능성은 없을 줄 아는가??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지금 기독교회들은 진화론 걱정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노아의 홍수의 과학적 증거가 발견됐네 그딴 걸 한가하게 논할 때가 아니다. 과학에 앞서 자기들 본업인 성경 해석 노선부터가 진영별로 다 찢어지고 파편화돼 있다. 이게 해결되지 않는 한 창조과학회 식의 문제 접근 방식은 세속 과학계를 절대로 설득할 수 없고 논쟁을 이길 수 없다고 난 장담한다. 자기 코가 석 자라는 것부터 알고 정신 차려야 할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성경과 과학 논쟁의 핵심에 있는 '간극'이고 말이다. 이전 세상의 멸망을 지질학· 천문학과 결부지어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전에 성경 용어와 루시퍼의 타락 같은 자기네 교리 체계부터 정립하는 게 선행돼야 할 것이다.

제발 쓸데없는 논쟁 헛발질은 하지 말고... 상대방의 의견을 반대하더라도 그 의견이 정확하게 뭔지는 알고서 반대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창조 진화 논쟁은 여느 정치· 종교 분야 논쟁만큼이나 서로 덕 될 게 없어 보인다.
신자들은 인간이 저렇게 도발적인 시도를 하는 것 자체가 무슨 하나님이나 성경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거라는 속좁은 생각은 하지 말고, 오히려 걔네들 위에서 여유롭게 "그래 종과 종 경계도 얼마든지 그렇게 흔들릴 수 있지. 하지만 그래 봤자 부처님..은 아니고 하나님 손바닥 안일 뿐이야" 이렇게 상대하려면 과학 지식과 성경 지식이 모두 균형 있게 갖춰져 있어야 할 텐데.. 쉬운 일은 분명 아닐 것이다.

이상, 지난 여름에 수박 먹으면서 문득 들었던 잡생각을 글로 정리해 보았다.

* 여담 1: 우 장춘, 석 주명, 공 병우 박사

우 장춘 박사는 일본에서 고생 잔뜩 하고 자라면서도 공부 엄청 열심히 해서 과학자로서 성공했고, 또 해방 후에 우리나라에서도 일체의 물욕과 명예욕 없이 너무 우직하게 학자의 길, 농학자 외길만 고집한 존경스러운 분이다.
사적으로 쓰라고 준 돈도 몽땅 영농 선진화 연구를 위해 종자를 구입하는 데 쓰거나, 연구소에 물을 대기 위해 우물을 파는 작업을 발주하는 비용으로 써 버린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그 와중에 그래도 자식 농사도 잘 지어서 딸은 미국에서 저명한 대학 교수가 돼 있다. (영문학자+수필가인 피 천득의 딸도 외국에서 대학 교수인데.. 그것도 부친 같은 문과가 아니라 물리학과로!)

나비 박사 석 주명은 6· 25 전쟁 때 표본 데이터도 날리고 서울에서 아군의 오인 사격으로 인해 참 원통하고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지만, 우 장춘은 생활권이 일본과 부산 사이여서 그런지 6· 25의 포화도 직접적으로 맞지 않고 잘 생존한 듯하다. 농작물뿐만 아니라 수목 쪽으로도(산림 녹화) 공헌한 숨은 과학자들이 여럿 있는데, 언젠가 이런 분들에 대해서도 다룰 일이 있으면 좋겠다.

한편, 공 병우 박사는 애초부터 한반도 북부의 실향민이기도 하고 6· 25 때 이북에 끌려가기까지 했다가 월남했다.

* 여담 2: 당신은 어느 레벨인가?

(1) 이 세상은 우연히 저절로 생긴 게 아니라 신에 의해 창조된 거다.
이 정도야 뭐 물증이 없더라도 심증상으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고, 증명도 반증도 가능하지 않은 신념의 영역이니 누가 뭐라 할 사람 없다.

(2) 이 세상은 신에 의해 지금으로부터 6천여 년 전에 엿새 만에 창조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의 입장은 “지금 현 세상이 그때 그렇게 창조된 거지 그게 우주 전체의 완전 첫 기원을 말하는 것은 아님”이다. 6일 창조만 이용해서 모든 기원을 갖다붙이고 노아의 홍수만으로 모든 지질 시대 격변을 설명하다 보면, 결국은 어거지가 등장하고 생물학뿐만 아니라 지질학 천문학까지 여러 분야와 적을 만들게 된다.
많고 많은 크리스천 과학자들이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결국 유신론적 진화론을 동원하거나 '하루'의 문자적 해석을 부정하게 된다. 성경의 용어 정의는 놔두고 관점을 바꿔서 "세상들"을 분리할 생각은 왜 안 하는 걸까? 성경을 바르게 나눌 줄 모르기 때문이다.

(3) 지구는 가만히 있고 태양 포함 다른 행성과 별들이 지구를 돈다. 일명 천동설.
성경에는 여호수아와 히스기야 시대에 그림자의 회전이 잠시 멈추었다는 기록이 있긴 한데, 내가 보기엔 그것도 차라리 지구의 자전을 중단시키는 게 태양의 공전(?)을 중단시키는 것보다는 구현하기 더 쉬울 거 같다. -_-;;

(4) 지구는 납작 평평하다.
설마 '땅의 원 위에 앉으신 이'(사 40:22) 내지 '땅의 네 모퉁이'(계 7:1) 같은 걸 flat earth의 근거로 갖다붙인 건 아니겠지.. 3~4 때문에 1이나 2(부분)까지 도매급으로 비웃음과 조롱 당할까 심히 두렵다.
1~4를 두고 생각나는 한자성어와 속담이 있다. ‘화사첨족’. 잘 그린다고 하니까 뱀 발까지 그린다.

Posted by 사무엘

2016/11/16 08:28 2016/11/16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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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저항에 대한 생각

물이나 공기 같은 물질은 고정된 형체가 없기 때문에 물리학적으로 유체(fluid)라고 분류된다. 얘들은 비록 형체가 없을지언정 자신만의 밀도와 점성이 있기 때문에 그 안에 담겨 있는 다른 물질(기체 속의 액체/고체, 혹은 액체 속의 고체)을 상대로 이것저것 힘을 작용한다. 부력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저절로 작용하는 힘이지만 양력과 항력은 유체 속에서 고유한 운동을 하는 놈에게만 덤으로 생기는 힘에 속한다.

유체역학에서 항력이라고도 불리는 이 저항은 물체의 운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계산하는 일을 무척 어렵고 복잡하게 만든다.
가장 기초적으로는, 종이나 나뭇잎을 높은 데서 떨어뜨렸는데 자유 낙하하지 않고 팔랑거리며 천천히 떨어지는 게 공기의 저항 때문이다. 미개하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공기 저항과 중력 가속도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서 막연하게 가벼운 물체는 천천히 떨어지고 무거운 물체는 빨리 떨어지는 줄 알았던 듯하다.

하지만 공기를 쫙 뺀 진공 속에서는 깃털과 쇠구슬이 엄연히 동일한 속도로 떨어진다. 또한 달에 간 아폴로 월면차가 인증을 했듯이, 거기는 그 가벼운 흙먼지조차도 지구처럼 자욱한 연기 형태로 남지 않고 파도 물보라처럼 곧장 깔끔하게 낙하해 없어지는 걸 알 수 있다. 지구의 물보라보다 천천히 떨어지기 때문에(중력 가속도가 더 작음) 뭔가 실사 같지 않고 게임에서 나타나는 흙먼지 이펙트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걸 1970년대 초에 CG로 재연한 게 아니라면 이건 지구에서 자연스럽게 촬영하기란 불가능하다.

공기의 저항이란 게 없다면 낙하산도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이 공기 저항 덕분에 무려 수 km에 달하는 높은 고도의 구름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고도 사람이 다치거나 물건이 부서지지 않는다. 이거 생각해 보면 꽤 신기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빗방울이 일정 속도 이상으로는 더 가속이 되지 않는 덕분이다.

하물며 공기보다 밀도가 월등히 더 높은 물의 저항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공기 중에서 총알을 빠르게 발사시키는 총은 물 속 불과 수십 cm 깊이에 잠겨 있는 목표물에도 거의 무용지물이다. 운동 에너지 1/2 mv^2에서 차라리 v를 크게 희생하고 m이라도 더 높인 작살총을 쏘는 게 더 나을 정도이다.

물 속에서 다리로 바닥을 저벅저벅 디디면서 빠르게 걷기란 저항 때문에 불가능에 가깝다. 작정하고 수영을 하며 나아가는 사람을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 신발조차도 거추장스럽기 때문에 벗어야 할 정도이다.
수영은 단순히 물에 떠서 생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물에서 빠르게 나아갈 수 있게 한다는 의미도 있다. 비행기가 단순히 공중에 뜨는 것뿐만 아니라 빠르게 비행하는 것도 중요하듯이 말이다.

유체 속에서 운동하는 물체에 작용하는 항력은 물체의 속도가 올라갈수록 급격히 커진다. 설마 지수함수 급은 아니지만 일단 유체와 그 물체 사이의 상대속도의 '제곱'에 비례하며, 이것 말고도 유체의 밀도와 물체의 운동 방향 단면적, 그리고 유체의 모양이 결정하는 '공기저항(항력) 계수'에 비례한다. 더 자세한 것은 위키백과 설명과, 이 분야 전공자로 추정되는 어떤 분의 블로그 글을 링크하는 것으로 설명을 생략하겠다.

이 저항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동력은 아예 속도의 3제곱에 비례한다. 저 항력 방정식에다가 속도가 한번 더 곱해지기 때문이다. 이러니 공기 중에서 달리는 차량은 고속에서의 가속이 급격히 힘들어지며, 일정 속도 이상부터는 공기 저항에 적극 대비하는 설계가 대단히 중요해진다.

물론, 정지 상태에서 첫 출발하는 것도 정지 마찰력의 극복 때문에 힘이 대단히 많이 필요하며, 저단 기어가 이런 이유 때문에 존재한다. 하지만 경제 속도를 넘어선 고속은 안 그래도 엔진이 토크가 떨어지고 힘을 쥐어 짜다시피하는 상태인데 공기 저항 때문에 더욱 어려워진다.

심지어 자동차에 에어컨이 아무리 엔진 힘을 깎아 먹는다 해도, 어지간한 고속 주행 중엔 그냥 그 에어컨을 켜는 게 창문을 열어서 바람 저항을 받는 것보다 더 나을 정도이다. 승객도 시원하고 차에도 부담이 덜 가고.. 공기의 저항이란 게 에어컨의 오버헤드에 맞먹을 정도라는 뜻이다.

이러니 부가티 베이런이 500마력에서 1000마력으로 엔진 출력을 두 배로 올렸는데도 최고 속도는 시속 300대에서 겨우 400대로밖에 못 올렸다.
아예 공기와의 마찰열까지 고려해야 하는 건 왕복엔진 자동차 수준에서 걱정할 일은 아니겠지만 차체는 아니어도 타이어가 열받는 것 정도는 현실성이 있다. 이건 무슨 법칙에 근거해서 발생하는 현상이며 무슨 변수로 기술 가능한지 잘 모르겠다.

공기 저항의 극복을 위해서는 물체의 단면적을 그저 작게만 만드는 게 장땡이 아니다. 일명 '유선형'이라고 불리는 매끄러운 설계가 필요한데, 그 수학 이론적인 배경은 잘 모르겠다. 단지 베지어 곡선이라는 것도 비행기를 설계하는 어느 엔지니어가 이 분야만 파다가 만들어 낸 곡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공기 저항 공식에서 단면적 외의 다른 변수가 바로 '항력 계수'이며, 주요 도형에 대해 알려진 항력 계수는 다음과 같다. 유명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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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계수들은 도형의 모양을 기술하는 수식에 대해 온갖 적분 등 복잡한 연산을 동원해서 산출했는지, 아니면 그저 경험적으로 얻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아, measured라고 써 놓은 걸 보니 경험적으로 얻은 값인 듯.

위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 의외로 그저 동글동글하게만 만드는 것도 장땡이 아니다. 물론 걔도 아예 각이 진 놈들보다는 계수가 작지만 말이다.
정말로 동글동글하게 만들어야 하는 건 사방팔방으로부터 가해지는 극심한 수압을 견뎌야 하는 잠수정이다. 그리고 걔들은 고속 주행이 목표인 물건이 아니다.

하다못해 골프공조차도 매끈한 구가 아니며, 표면이 온통 옴푹 패여 있다. 이 역시 나름 유체역학적으로 공기 저항을 극복하고 잘 날아가라고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며, 골프공 제조사의 고유한 기술과 노하우가 담겨 있다. 이걸 영어로 dimple이라고 하는데, 사람 얼굴에 옴푹 패인(?) '보조개'라는 뜻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여 년 전 대우 에스페로가 광고에서 항력(공기 저항) 계수가 0.29라고, 그 당시 국산 양산차들 중 최저인 과학적인 외형이라며 이 수치를 최초로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자랑을 쳤었다. 마치 뇌세포의 성분 DHA가 들어간 '아인슈타인 우유'처럼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좋아 보이게 마케팅을 한 셈이다. 본인은 이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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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페로는 첫 출시되었을 때는 쏘나타 같은 2000cc급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후기 모델들은 아반떼 같은 준중형급으로 엔진을 다운사이징한 게 이례적이다. 물론 차체의 크기는 동일한 채로 말이다.)

한편, 이륜차는 단면적이 일반 자동차보다 작음에도 불구하고 공기 저항에는 의외로 그리 유리한 외형이 아니다.
오토바이는 워낙 가볍고 단위 중량 당 마력이 큰지라 초반 가속은 자동차를 아득히 관광 태운다. 하지만 의외로 시속 200 이상급의 고속은 헉헉대는데, 다름아닌 공기 저항에 걸리기 때문이다. 이륜차가 그런 고속 주행을 하면 안전 관점에서도 심각하게 안 좋기도 하고 말이다.

엔진 없이 사람의 발로 페달을 밟아 달리는 자전거도 돈지랄을 한 경량화에다 기어비 최적화, 초인적인 라이더 같은 최상의 변수를 동원하면 순간적으로나마 거의 시속 100을 능가하는 고속을 낼 수 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의 초고속 주행 기록은 앞에서 커다란 우산? 양산?을 후방으로 펼쳐 주고 주행하는 자동차를 바짝 붙어서 따라가면서 세운 거라고 한다. 다시 말해 공기 저항을 앞의 자동차가 대신 받아 주니 고속 주행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단체 관광버스들이 교통사고의 위험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앞뒤로 대열운행, 일명 떼빙을 여전히 일삼는 이유는 1차적으로는 다같이 무리해서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서일 것이다. 허나, 보조적인 이유로는 연비 때문이기도 하다고 한다. 커다란 선두가 공기 저항을 다 받으면서 출발하니까 뒷차들은 상대적으로 나아가기가 쉽다고..
그 정도로 연료 절감 효과가 존재하고 경험적으로 입증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원리는 철도 차량에도 적용 가능할 듯하다. 단순히 쇠 레일+쇠 바퀴로 인한 마찰 계수 감소 말고, 다수 차량의 밀집 운행으로 인한 효율 증대도 장점이 되겠다.

사실, 자동차의 옆에 툭 튀어나와 있는 백미러는(후면경) 유체역학적으로는 굉장히 안 좋으며, 방해가 되는 물건이다. 비행기의 날개처럼 양력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돌출된 것도 아니고..
허나 운전을 위해서는 절대로 없어서 안 되는 필요악이기 때문에 달려 있다. 이걸 자그마한 카메라로 100% 대체가 가능하다면 연비 개선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상...;;
열역학에서는 이상 기체라는 개념까지 설정해서 기체가 열과 압력을 받아서 액화나 기화하고 그 과정에서 열을 수송하는 과정을 수식으로 설명한다. 거기는 물리뿐만 아니라 반쯤은 화학에도 속하는 영역 같다. 물론 엔진이나 냉동 기관 같은 게 다 열역학 이론에서 비롯된 기계이므로 이건 굉장히 중요한 학문이요 기술이다. 에어컨이 발명된 덕분에 인간이 거주하고 도시를 건설할 수 있는 영역이 크게 넓어졌으며, 냉장· 냉동고가 발명된 덕분에 식품의 장거리 수송과 장기간 보존이 가능해졌다. 동력 엔진의 발명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고.

하지만 유체역학에서는 그렇게 기체의 상태 변화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 안에서 운동하는 강체의 에너지 효율을 다룬다. 서로 영역이 다른 셈이다. 하지만 자동차나 비행기가 만들어졌는데 걔네가 조금이라도 연료를 덜 소모하고 더 경제적으로 움직이게 하려면 차체를 유체역학적으로 잘 디자인 하는 게 필수이니 두 역학 분야는 동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바늘과 실 같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11/11 19:29 2016/11/11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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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강 위에 교량(다리)을 건설한다고 하면 우리는 강의 양쪽 건너편을 잇는 통상적인 형태의 다리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다리가 꼭 그런 것만 있는 건 아니다. 강을 건너는 다리가 아니라 강을 따라 그냥 물 위를 지나는 다리도 드물지만 있다. 쉽게 말해 강과 수직이 아니라 평행인 다리 말이다.

작은 개천의 경우 물줄기를 따라 그 위에다 길을 놓아서 개천을 완전히 덮어 버린 '복개 고가 도로'가 있긴 하다. 과거에 서울의 청계천도 그 위에 고가 도로가 닦여 있었지만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에 철거된 걸로 유명하다. 이런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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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개 도로만으로 복개가 절대 불가능할 정도로 폭이 큰 하천에도 남단이나 북단을 나란히 지나는 교량이 있다.

그런 교량은 아무 이유 없이 만드는 건 아니고.. 강을 따라 닦였던 기존 도로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건설되곤 한다. 차선수를 늘려야 되는데 한쪽은 강이고 다른쪽은 바위산이거나 이미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서 확장의 여지가 없을 때 말이다. 그럼 다리를 놓음으로써 없는 길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강을 건너는 다리라면 남단과 북단을 최단거리로 연결하기 위해 당연히 직선 형태로 만들어지는 반면, 강을 따라 지나는 다리는 교량 주제에 커브가 존재하기도 한다.

한강의 서울 시내 구간에서는 북단의 강변북로와 남단의 올림픽대로에 이런 다리가 모두 존재한다.
강변북로는 1970년대에 먼저 4차선이라는 초라한 규모로 건설됐다. 이거 건설과 확장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한때는 용산-왕십리 방면의 경원선 철길을 없애 버리는 게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제안되기도 했다. 하지만 모 철도 관계자가 이를 필사적으로 만류한 덕분에 그렇게 되지 않았으며, 경원선은 오히려 용산-성북 복선전철로 거듭났다.
그리고 강변북로의 기존 도로는 서쪽 방면 전용이 되고, 동쪽 방면 도로는 일부 구간이 교량 형태로 새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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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올림픽대로는 1980년대의 5공 시절에 "한강 종합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서울 올림픽의 유치에 성공한 그 당시 분위기를 반영하여 평범한 '강변남로' 대신 저런 거창한 이름이 붙었다. 하긴 이 도로는 김포 공항과 서울 올림픽 경기장을 직통으로 쭉 잇기도 하니 이름이 88 올림픽 '고속도로'보다는 훨씬 더 타당성과 개연성을 갖추고 있다.

올림픽대로는 노량진동과 동작동 사이의 2km 남짓한 구간이 '노량대교'라고 불리는 교량이다. 강변북로와는 달리 처음 만들어진 1986년 당시부터 상· 하행이 모두 교량이다. 다만, 30년 전 처음부터 지금 같은 광활한 10차선은 아니었으니, 지금 여기를 달려 보면 다리가 덕지덕지 작은 구획으로 나뉘었다가 확장되고 합쳐진 흔적을 볼 수 있다. 교량의 폭을 확장하는 건 터널의 폭을 확장하는 것만큼이나 보통일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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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대교는 엄연히 이름이 붙어 있는 교량임에도 불구하고 올림픽대로 내부엔 교량 구간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어떤 표지판도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 다리는 한강을 '건너는' 다른 교량들을 아래로 지나서 입체 교차한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운전자가 노량대교의 존재를 인지하기는 쉽지 않다. 어느 샌가 교량에 진입했다가 어느 샌가 빠져나가 버린다.

다음으로, 서울을 빠져나가서 국도 6호선을 타고 양평 쪽으로 가 보면.. 병풍처럼 펼쳐진 산의 아래로 강이 유유히 흐르는 게 경치가 대단히 아름답다.
원래 거기는 험준한 지형 때문에 좁고 구불구불한 2차선짜리 도로였지만 1990년대에 공사를 통해 4차선으로 확장됐다. 남한강이 북한강과 합류하기 직전 지점(중앙선 철도로 치면 양수-신원 사이 구간)에서는 땅에서 도로를 확장하기가 여의찮은 관계로, 동쪽 방면 도로는 강변북로처럼 강 위에 교량을 나란히 설치하는 방식으로 부설했다. 이 다리는 이름이 '용담대교'이며 지난 1996년에 개통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용담대교는 나름 전국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이다. 이 사진보다 색감이 더 아름다운 사진도 있는데 그건 다 가로 크기가 500픽셀 남짓에 불과할 정도로 작아서 선택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 (남)한강은 서울 시내 구간과는 달리 상수도 보호 구역이라는 것이다. 수질 오염을 야기할 수 있는 일체의 개발· 건축 행위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양평이 괜히 경치가 좋은 게 아니다. 강가는 온통 개발 제한 구역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도 6호선의 교량은 공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질 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굉장히 특수한 공법을 동원해서 건설됐다고 한다.

끝으로, 유사한 사례가 아니라 대조군을 소개하고서 글을 맺겠다.
경부선 철도는 잘 알다시피 밀양의 삼랑진 역 이남부터 낙동강을 나란히 따라 달린다. 그런데 거기도 복선화 공사를 하면서 노반 확보를 어찌 할지가 문제가 되었다. 한쪽은 그냥 강이고, 다른 한쪽은 바위산이었던 것이다.

경부선이 만들어지던 당시에는 교량을 만드느니 차라리 산에다 불가피하게 터널을 뚫는 걸로 문제를 해결했다. 그래서 삼랑진-원동-물금 일대엔 상행은 그냥 평지인데 하행만 터널을 지나는 기묘한 구간이 몇 군데 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다음 지도 캡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철도는 좌측통행인 건 다들 아실 테고.. 이를 통해 우리는 경부선은 상행 방면이 먼저 생겼고 복선화 공사 때는 오른쪽에다 하행 선로를 '나중에' 추가했으리라 유추할 수 있다. 터널까지 뚫지는 않아도 되는 쉬운 곳에다가 선로를 먼저 만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이상. 본문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1. 교량 중에는 강을 수직으로 건너는 놈만 있는 게 강을 나란히 따라가는 놈도 제한적이나마 있다.
  2. 그런 교량은 대체로 산과 강 사이에 낀 기존 도로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만들어지곤 한다.
  3. 다만, 경부선 철도의 경우 낙동강 구간에서 그 흔적이 편도 교량이 아니라 편도 터널로 남아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6/10/20 08:28 2016/10/20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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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를 구성하는 기체들

지구 대기권을 구성하는 '공기'라는 물질은 아무 색도 맛도 냄새도 없어서 '공기수송'처럼 존재감 없음을 비유하는 대상이 되곤 한다. 하지만 이 공기는 실제로는 생각보다 구성이 복잡하고 무게와 압력도 있는 물질이다. 공기 덕분에 양력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어서 그 무거운 비행기가 뜰 수 있으며, 반대로 자동차나 비행기는 공기에 의한 마찰과 저항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고속화가 힘들다.
즉, 공기는 물리적으로 엄연히 존재감이 있으며, 화학적으로 성분도 제법 다양하다. 오늘은 오랜만에 기초 과학 상식을 복습해 보고자 한다.

기체는 눈에 안 보이고 몹시 가볍기 때문에 양 내지 성분 비율을 논할 때 부피가 참 직관적이긴 하지만, 그건 온도와 기압을 동기화시켜야 제대로 된 비교가 가능하다는 맹점이 있다. 기체의 '질량(무게)'과 '부피'는 중학교 과학 시절부터 날 참 헷갈리게 했던 주제이며 지금까지도 별로 와 닿지가 않는다. (그냥 시험 점수를 위해서 달달 외우는 정도를 넘어 본질과 원리를 밑바닥부터 싹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

'몰'이라는 단위도 따지고 보면 질량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하지만 공기 중의 약 78%가 질소라고 할 때 그 비율은 일단 내가 알기로 1기압에서의 부피 비율이다. 실생활에서 기체의 양이라고 했을 때 현실적으로 더 큰 의미를 갖는 건 질량보다는 부피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1. 질소

공기에서 3/4 내지 4/5 가까이 차지하는 가장 많은 물질은 질소이다. 무슨 유독가스가 '공기보다 무겁다/가볍다'라고 할 때 그 레퍼런스와 가장 가까운 기체는 응당 질소이다. 질소는 원자 번호가 7번으로 얘보다도 가벼운 원소는 수소, 헬륨 등 극히 드물다. 공기보다 가벼운 가스보다는 무거운 가스가 더 많다.

무색 무미 무취 무독성에 안정적이고 물질의 변화를 촉진하지 않는 기체가 지구 공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점으로 보인다. 질소처럼 공기 중에 75~80%씩이나 들어있는데도 호흡 시 인체에 아무 탈을 내지 않는 기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물론 산소가 없이 질소'만' 그렇게 꽉 차 있으면 사람은 응당 질식(사)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고압 심해에서 있다가 갑자기 나올 때 혈관 내에서 기포를 형성해 혈관을 막는 '잠수병'의 주범 기체도 질소이다. 아무래도 대기에서 차지하는 성분이 많기 때문에 그렇다.

변질 걱정 없이 굉장히 장기간 보존해야 하는 공산품은 진공 포장을 하는데, 식료품의 경우 산화 방지를 위해 일명 '질소 밀봉 포장'을 해서 보존한다. 이게 과도하다 보니 "질소를 한 봉지 구입하시면 감자칩을 요만치 보너스로 드립니다"라는 개드립이 나오기도 했다.
비행기 랜딩기어 타이어에는 일반 공기가 아니라 100% 질소를 주입한다. 착륙 마찰열로 인한 발화· 연소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기 위해서다. 얘를 액화한 액체 질소는 초강력 냉각과 냉동 용도로 쓰인다. 산소보다도 끓는점이 더 낮다.

그런데 얘는 그저 안정적이고 다른 원소와 결합하지 않는 비활성 기체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자동차 실린더 같은 고온 고압에서는 환경 오염 물질인 질소 산화물로 합성되기도 한다. 그리고 질소 화합물은 아이러니하게도 폭발물의 제조에도 쓰인다.
더욱 신기한 것은 이런 질소가 의외로 단백질의 주요 구성 성분이고 비료의 원료라는 것이다. 산소만큼이나 질소도 알고 보면 생명 유지에 매우 중요한 원소인 셈이다. 물론 이건 대기 성분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원소로서의 특성일 뿐이기 때문에 공기 중의 질소를 쌩으로 바로 활용하는 건 가능하지 않았다. 그러다 '질소 고정' 같은 과학 기술의 발전을 통해 20세기에 와서야 가능해졌다.

2. 산소

질소가 단백질을 구성하여 생명체를 존재 가능하게 한다면, 산소는 그 생명체가 본격적으로 생명 활동을 할 수 있게 한다. 산소가 없이는 인간 포함 코로 호흡하는 생명체들은 단 몇 분간도 살 수 없다.
공기 중에 산소 농도가 높으면 사람 역시 조금만 숨을 쉬어도 더 크고 많은 신체 활동을 할 수 있다. 반대로 산소가 부족한 고산지대에서는 전문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인이라면 발을 땅에서 떼어서 걷는 것만으로도 100미터 전력질주를 한 듯이 숨이 차서 고생하게 된다.

모든 신체 활동에 산소가 쓰인다. 하지만 근육을 쓰는 비중이 더 높기 때문에 오래 했을 때 근육이 땡겨서 못 하는 건 무산소 운동이다. 반대로 팔다리 근육은 그다지 힘든 상태가 아닌데 오로지 숨이 차서 못 하는 건 유산소 운동이다.
가만히 있으면서 무거운 기구를 들거나 옮기기를 반복하는 힘 쓰는 운동은 대체로 무산소이다. 그 반면, 수영· 등산· 달리기처럼 순간적으로 강한 근력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꾸준한 신체의 이동을 수반하는 운동들은 대체로 유산소 운동이다. 둘은 비슷한 자질 같지만 서로 완전히 동등하지는 않다.

화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산소는 말 그대로 '산화'라고 불리는 물질의 화학 반응에 그야말로 터보 모드 가속을 넣는다.
익히 아는 바와 같이, 꺼져 가는 불씨를 순수 산소 속에다 집어넣으면 불길이 확 일어나서 탄다. 자동차 엔진의 터보차저는 본질적으로 하는 일이 공기를 더 집어넣는 건데,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산소를 더 집어넣는 거라고 볼 수 있다.

철 같은 금속도 불꽃을 일으키며 맹렬하게 타 버려서 어떻게 태우느냐에 따라 산화철로 바뀌거나 아예 녹는다. 금속을 녹일 정도인 초고온의 불꽃을 만들기 위해서는 연료를 특수한 걸로 많이 투입해야겠지만, 고농도의 산소를 공급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산소는 자신은 아무 변화 없이 화학 반응을 촉진만 하는 '촉매'가 아니다. 화학 반응을 일으킨 뒤 자신은 다른 원소와 결합하여 '산화물'이라는 다른 물질로 바뀌어 버린다. 제일 흔하고 만만한 산화물은 바로 이산화탄소 되겠다. 동물은 호흡으로, 그리고 각종 동력 엔진들은 폭발과 연소를 통해 온통 산소를 없애고 이산화탄소를 배설하기만 하는 반면, 녹색 식물은 광합성이라는 경이로운 메커니즘을 통해 물과 빛, 이산화탄소를 역으로 산소와 양분으로 바꾼다.

현대 과학으로도 이런 식물이 하는 일을 흉내 내고 대체하는 기계는 못 만들고 있다. 그나마 인간이 백열등과 형광들을 거쳐서 LED라는 사기적인 빛을 만드는 것까지 성공한 덕분에, 미래엔 날씨를 안 가리는 실내 농업이 가능할지 논하는 정도이다. 질소 공급이 해결됐고 빛 문제도 해결됐다고 치는데 다음으로 물 문제는 변덕스러운 자연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조달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산소는 여러 모로 유익한 기체이긴 하나, 그렇다고 산소가 공기 중에 지금의 질소가 있는 것만치 대부분을 차지해 버리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된다. 불이 너무 쉽게 붙고 화재 진압을 하기 너무 어려워진다. 그리고 사람 같은 생물체 역시 폐에 과부하가 걸리고 산소 중독이 발생하여 신체 이곳 저곳에 탈이 난다.
나중에 언급할 일산화탄소 중독에 걸려서 죽어 가는 사람이라면 헤모글로빈에 달라붙은 일산화탄소를 떼어내기 위해서 100% 고압 산소 주입 처방을 내리긴 한다. 허나 그건 예외적이고 특수한 응급 상황이기 때문에 그러는 거다.

산소에는 지금까지 언급한 것과 같은 유익한 산소만 있는 게 아니다. 노화를 촉진하고 인체의 수명을 깎아먹는 '활성산소'라는 것도 있다. 둘 다 같은 O2이지 않은지? 이게 화학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물도 경수만 있는 게 아니라 얼음이 가라앉는 '중수'라는 게 있을 수 있는데 활성산소도 뭔가 돌턴의 원자설 범위를 넘어서는 미세한 차이가 있는 산소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3. 이산화탄소

탄소는 그야말로 마법에 가까운 화합물을 만드는 능력이 있는 만능 원소이다. 다이아몬드, 흑연, 그을음 검댕이 다 동일 원소 기반의 물질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얘가 불꽃을 활활 내어 타면서 산소와 결합하고 난 기체 찌꺼기가 이산화탄소이다. 그나마 식물이 있으니 산소와 이산화탄소 사이를 오가면서 탄소가 재활용 순환이 가능하다.

단, 이것도 조건이 있다. 산소 공급을 잘 받으면서 '완전 연소'를 이뤘다면 불꽃이 파랗고 에너지도 더 많이 나면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좀 답답하게 '불완전 연소'를 했다면 불꽃은 노래지고 에너지가 덜 나며 연기· 그을음이 발생하면서 부산물도 일산화탄소가 나오게 된다.

이산화탄소는 질소나 산소 같은 기체와는 특성이 많이 다르다. 끓는점이 그런 기체들보다 훨씬 더 높아서 비교적 쉽게 액화나 응고 가능하다. 드라이아이스라고 다 들어 보셨을 것이다. 또한 얘는 물에도 더 잘 녹는 편이며, 이때 물을 탄산이라는 비교적 약한 산성으로 바꾼다. 탄산은 톡 쏘는 맛이 좋아서 청량음료를 만들 때 쓰인다.

이산화탄소는 공기에 대략 0.03%(백분율), 혹은 표현을 달리하면 300ppm(백만분율) 정도 존재하니 질소와 산소에 비하면 가히 극미량이다. 사람이 내뱉는 숨은 산소가 몽땅 이산화탄소로 바뀐 게 아니라 20% vs 0.03%이던 것이 16% vs 4% 정도로 바뀐 수준이라고 한다. 다만, 최근에는 화석 연료 소비의 증가 때문에 전지구적인 이산화탄소 농도가 0.04%로 증가했다고 전해진다.

이산화탄소는 연소의 부산물로 나온 물건인 만큼, 산소와는 정반대로 불을 꺼 버리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질소나 산소보다 인체에 훨씬 더 해롭다. 위키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공기 중에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찔끔찔끔 증가하여 0.x%정도가 되면 슬슬 나른함이 느껴진다고 한다. 그리고 공기 전체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사람의 날숨과 근접하게 되면(이산화탄소 2~3%) 점점 호흡이 거칠어지고 어지러움이 느껴질 지경이 된다.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정상적인 날숨의 농도인 4%대를 초과하게 되면 두통, 구토 등 본격적인 이상 증세가 나타난다. 호흡을 통해서 이산화탄소를 내보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폐가 상하고 운동 능력이 떨어진다. 수 시간 이상 이런 환경에 노출되면 영구적인 장애와 사망까지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도 이산화탄소 농도이면 촛불쯤은 바람 없이도 곧바로 꺼뜨릴 수 있다고 한다.

10%를 넘는 이산화탄소에 노출되면 사람은 불과 몇 분 만에 활동 불가능에 빠지고 의식을 잃는다. 물에 얼굴까지 잠긴 것과 마찬가지로 신속하게 질식한다. 하물며 이산화탄소가 지금의 산소 농도와 비슷한 수준으로 있다면.. 사람은 그런 곳에 들어가는 즉시 폐가 이산화탄소로 인해 작살이 나면서 기절하고 죽는다.

이런 이산화탄소는 유감스럽게도 온실효과를 일으키며 지구 온난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양도 얼마 안 되는 주제에 인간에게 끼치는 민폐가 꽤 크다. 그래서 세계는 지금도 탄산가스 배출을 줄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그런데 태양계에서 지구의 이웃인 금성은 대기의 무려 95% 가까이가 이산화탄소이며 양도 엄청 많아서 대기압이 지구의 90배에 달하는 완전 미친 행성이다. 이 정도 공기압은 바닷속 수심 900미터에서 받는 압력과 비슷해서 빈 깡통쯤은 곧장 찌그러지며 어지간한 잠수함들조차 내려가지 못하는(심해 전용 잠수정 필요) 살인적인 압력이다.
이러니 금성은 낮과 밤, 여름과 겨울, 적도와 극지대 구분이 없이 지표면 전체가 1년 내내 섭씨 450~500도에 달하는 고온 고압 불지옥을 자랑한다. 가스형 행성도 아니고 지구와 가장 가까운 행성이 어쩌다 저 지경이 됐는지가 참 안쓰러울 뿐이다.

4. 일산화탄소

일산화탄소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분자에서 탄소 원자가 이산화탄소보다 하나 더 적다. 원래는 이산화탄소가 생겨야 할 상황에서 뭔가 2% 부족한 여건 때문에 생기는 물건에 가까우며, 똑같은 무색 무미 무취..이지만 그런 것치고는 원조인 이산화탄소와 비교했을 때 특성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마치 같은 산소 원자 기반임에도 불구하고 기체 분자로서 산소와 오존은 서로 확 다르듯이 말이다.

이산화탄소가 섭씨 -100도 이상의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도 액화· 응고하는 것과 달리, 일산화탄소는 다시 질소· 산소처럼 -200도에 가까운 엄청나게 낮은 온도에서 액화· 응고한다. 또한 일산화탄소는 이산화탄소처럼 더 반응할 게 없어서 불을 꺼뜨리지 않으며, 산소와는 불꽃까지 내면서 활활 타며 반응해서 원래 의도했던 목적지인 이산화탄소로 변한다.

사실, 진공이라고 해도 정말 아무 물질도 없는 0의 진공은 만들기가 거의 불가능하듯, 현실에서는 대체로 완전연소가 이뤄지는 상황에서도 일산화탄소는 극미량 찔끔찔끔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차가 엄청 많이 다니는 도심은 농촌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뿐만 아니라 일산화탄소의 농도도 상대적으로 더 높다. 불완전연소가 일어나서 사람 건강이나 기계의 동작 효율에 좋을 건 하나도 없다.

산소는 질소만큼 있으면 위험하고 이산화탄소는 지금의 산소만큼만 있어도 사람을 즉사시킬 정도인데.. 일산화탄소는 그 적은 이산화탄소만큼만 있어도 극도로 위험하다. 이산화탄소는 농도를 논할 때 퍼센트와 ppm이 번갈아가며 쓰이지만 일산화탄소는 스케일이 워낙 작기 때문에 십중팔구 ppm으로 농도를 기술한다.

일산화탄소가 위험한 이유는 잘 알다시피, 사람의 뻘건 혈액 속에 존재하는 철 이온 기반 헤모글로빈이 산소보다 일산화탄소와 반응을 거의 200배가 넘게 더 잘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 걸까..? 그러니 일산화탄소가 정말 극미량만 있어도 헤모글로빈이 병신이 돼 버리고 뇌 방면 산소 공급에 애로사항이 꽃핀다. 곧바로 두통, 어지럼증, 체력 저하가 발생하며 심하면 사망. 단적으로 말해 연탄가스 중독의 주범이 요놈이다. 옛날에는 이걸로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아니면 뇌가 손상되어 평생 장애인이 되거나.

일산화탄소의 부피 대비 농도가 겨우 10ppm만 돼도 당장 죽지는 않지만 거기서 수십 분간 있어 보면 사람의 컨디션이 살짝 달라진다. 호흡 계통에 문제가 있는 환자는 겨우 이것만으로도 몸 상태가 더 나빠질 수 있다.
농도가 지금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비슷한 급의 세 자리수 ppm에 진입하면 혈액이 본격적으로 제 기능을 못 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금방 숨이 차고 신체 활동이 힘들어진다.

1000ppm이 넘어가는 농도에서 몇 시간째 노출되면 사람은 드디어 금세 의식이 몽롱해지며 얼마 못 가 매우 높은 확률로 픽 쓰러져 죽는다. 이산화탄소가 이 정도 농도이면 아직 그냥 아주 살짝 나른함이 느껴질 정도에 불과하며, 건강과 생명엔 여전히 아무 지장이 없다. 얘는 치사량이 이산화탄소의 수백 분의 1 이하에 불과해서 훨씬 더 위험함을 알 수 있다.

전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로봇은 동력 계통의 유연함이 인간의 근육에 미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기계는 생명체와 달리 방사선 피폭에 강하고, 또 호흡을 하지 않기 때문에 유독성 기체 속에서도 잘 버티는 게 장점이다.
사실, 생명체도 헤모글로빈이 아닌 헤모시아닌(구리 이온) 기반인 무척추동물들은 일산화탄소 중독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헤모시아닌은 산소 운반 효율도 헤모글로빈의 1/4에 불과하다는 게 단점이다. 개미나 바퀴벌레를 터뜨려 죽였는데 무슨 피 빨아먹은 모기도 아닌 것이 죄다 시뻘건 혈흔을 만들어 낸다면 그것도 참 골칫거리이지 싶다.. -_-

5. 특별판: 수소

원래는 지구의 대기에서 질소와 산소 다음으로 많이 있는 기체는 '아르곤'이라는 진짜 비활성 기체이다(부피 비율은 대략 1%가량). 얘도 화학적으로 다른 용도가 있긴 하지만 워낙 화합물을 안 만들고 존재감도 없다 보니 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겠다. 그 대신, 질소, 탄소, 산소 얘기가 다 나온 마당에 왠지 누락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수소 얘기를 하고서 글을 맺겠다.

수소는 원자 번호 1번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으며, 지구뿐만 아니라 우주를 통틀어서 가장 가볍고 가장 흔하고 많은 원소이다. 그리고 산소와 반응도 아주 격렬하게 한다. 불꽃이 튀면 퍽 하고 타 버리는 게 무슨 천연가스 같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천연가스 같은 연료로 사용하기에는 수소는 너무 가볍고 한편으로 위험하다. 지구 대기에 수소를 거의 찾을 수 없는 이유는 그 가벼운 수소를 대기로 가둬 두기에는 지구의 중력이 충분치 못하기 때문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지만, 수소를 채운 풍선이나 비행선이 하늘로 둥둥 뜨는 걸 생각하면 좀 이해가 될 것이다. 너무 가볍고 자유로운(?) 기체답게 액화와 응고는 절대영도보다 겨우 10~20도 높은 극한에 근접해야만 가능하다. 압축과 보관도 평범한 기술로는 할 수 없다.

탄소가 붙은 탄화수소(알코올, 천연가스 등) 계열이 아니라 순수하게 수소만을 연료로 활용할 수 있다면 효율도 좋고 고갈 걱정도 없고 탄산가스가 아닌 수증기만 나오는 매우 깨끗한 엔진을 만들 수 있을 텐데.. 그건 다름아닌 저런 기술적인 난관으로 인해 21세기인 오늘날까지도 아직 제대로 실용화가 안 된 채 떡밥에 머무르고 있다. 또한 원소로서의 수소가 아니라 수소 기체는 지구상에 흔치 않으며, 물을 전기 분해해서 수소를 얻는 비용도 그리 만만찮다는 걸 알아야 한다.

수소는 앞서 소개한 기체들과는 달리, 대기 중 농도가 얼마인 곳에 인체가 노출되면 무슨 반응이 오고, 독성이 있고 하는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수소가 그만치 대기 중에 섞여 있었다가는 자기가 진작에 스스로 폭발해서 다른 화합물로 변해 버리고 없기 때문에 인체의 반응 자시고 할 게 없다. 폭발이 위험한 거지 딱히 폐에 생화학적인 민폐를 끼칠 여지는 없다.

이런 수소는 자기 바로 다음으로 가벼운 비활성 기체 원소인 헬륨과는 특성이 완전히 상극이다. 헬륨은 수소 같은 반응성이 없으며, 양도 수소보다 훨씬 적고 값이 더 비싸다.
수소가 들어간 화합물 중에 물이야 워낙 특이하고 유명한 놈이다. 그것 말고 그다지 깨끗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화합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메탄(탄소+수소): 자연에서는 쓰레기가 썩을 때, 더 구체적으로는 식물이 부패· 분해될 때(초식동물의 소화 과정도 포함) 생성된다. 그러니 쓰레기 매립지에는 이렇게 생성된 메탄을 수집해서 연료로 활용하는 설비도 있다. 하지만 메탄 자체는 천연가스의 주성분이며, 무색 무취로 별로 더럽지 않은 물질이다. 메탄과 메탄'올'의 차이는 CH4와 CH3OH의(수산화기 OH) 차이에서 유래된다.
  • 황화수소(황+수소): 달걀 썩는 악취의 주범으로, 황을 포함한 단백질이 부패할 때 난다.
  • 암모니아(질소+수소): 대변이 아니라 소변 테크로부터 유래되며, 화장실의 지린내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6/10/17 08:39 2016/10/17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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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형차가 대형차를 추돌

요즘 자동차들은 안전 장치들이 워낙 발달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차가 폐차 수준으로 박살 날 충돌· 전복 등의 사고가 나도, 탑승자는 벨트만 잘 매고 있으면 어지간해서는 경상 수준을 넘지 않고 잘 살아남는다.
하지만 이런 발전하는 기술에도 불구하고, 소형차가 대형차를 들이받으면 여전히 십중팔구 중상· 사망 급의 사고가 난다. 당연히 소형차에서.

물론 차량의 덩치와 무게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양 차체의 높이 차이로 인해 소형차가 범퍼와 엔진룸부터 충격을 받는 게 아니라, 앞유리와 A필러를 직통으로 거쳐(;;) 캐빈(탑승 공간)이 곧바로 박살나기 때문인 게 무척 크게 작용한다.
영화 <테이큰>에서도 공사장 차량 추격씬에서 이게 잘 묘사돼 있다. 브라이언을 쫓던 마지막 악당이 불도저의 블레이드 부분과 정면충돌하는 장면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차라리 앞이 꽉 막힌 담벼락을 꼬라박는 것보다도 이런 유형이 더 치명적인 사고인 것이다. 저 악당은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가로등도 안 켜진 깜깜한 길가에 그것도 커브길에 불법주차된 대형 트럭을 뒤늦게 발견하고 들이받는 바람에 승용차 운전자가 골로 간 사고 사례가 종종 전해지곤 한다. 링크를 거는 이 사고에서도 탑승자 2명이 모두 숨졌다.

이런 유형의 사고의 극단적인 사례로는 지난 2014년 10월 28일, 호남 고속도로 상행선에서 발생한 교통사고가 있다. 군 입대를 하는 친구를 배웅하러 애들이 5명이서 승용차를 렌트해서 달렸는데.. 과속 상태로 커브를 틀다가 균형을 잃고 갓길에 서 있던 4.5톤 트럭(도로 보수 차량) 후미를 들이받았다.
차가 트럭의 밑으로 말려 들어가면서 딱딱한 트럭 짐받이가 딱 저렇게 캐빈을 강타했으며, 이 때문에 차는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 그리고 입대 당사자를 포함한 탑승자 5명은 전원 사망하고 말았다.;;; 당사자의 지인뿐만 아니라 여친까지 다같이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니 자동차 회사들은 범퍼뿐만 아니라 앞유리와 A필러(앞유리+앞좌석 사이의 지지대)도 최대한 튼튼하게 만든다.
먼저 앞유리야.. 더 말이 필요하지 않다. 아무리 충격을 받아도 금만 쩍쩍 갈 뿐 '와장창' 깨지지 않게 유리에다 온갖 첨가물을 섞어서 특수한 방법으로 제조된다.

다음으로 A필러도 단순한 금속 기둥이 아니며, 여기에도 자동차 회사들의 기술이 집약된다. 그래야 (1) 차량이 전복되거나 (2) 차량 위로 위험물이 떨어지거나, (3) 저렇게 차체가 높은 장애물과 충돌하더라도 차의 형체가 '최대한' 유지되고 캐빈 내부가 위험에 노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1)과 (3)은 그렇다 치더라도 (2)도 적재 불량 화물차에서 뭔가가 떨어질 때 내지, 도로에 떨어진 이물질을 앞차가 밟으면서 튕겨 올라가서 뒷차를 강타할 때처럼 생각보다 발생 가능성이 높은 돌발상황이다.
물론 이렇게 하고도 탑승자가 사망 혹은 중상으로 귀결되기 십상이지만 이것도 그나마 옛날 자동차보다는 생명을 많이 구한 결과이다.

평상시에야 A필러는 차량이 모퉁이에서 회전할 때 운전자에게 측면 사각지대를 만들어서 회전축 안에 있는 장애물이나 사람을 못 보고 부딪치게 만드는 위험 요소이다. 그러나 이게 사고 시에는 자동차 내부의 탑승 공간을 충격으로부터 보호하는 꽤 중요한 안전 장치 역할을 한다. 이렇듯, <테이큰> 영화 한 장면으로부터도 자동차 안전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을 할 수 있었다.

2. 대형차가 소형차를 추돌

위의 경우와는 반대로 대형차가 소형차의 뒤를 추돌하면..
이것도 역시 상황이 별로 다르지 않을 듯하다. 소형차는 다 박살이 날 것이다. 특히 대형차가 엄청난 운동량을 이기지 못해 소형차를 깔고 올라타는 지경에 도달하면 제아무리 단단하게 만든 A필러라 해도 다 짓이겨질 것이고 탑승자는 전원 사망 확정이라고 봐야 한다.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2009년 4월 23일의 서울 수유동 대형 관광버스 교통사고이다. 관광버스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모두 하차시켜 주고 공차 회송 상태였다. 버스 기사는 모든 업무를 마쳤으며, 이제 차를 회사에다 세워 놓고 퇴근하는 일만 남은 상태였다. 그런데 하필 이때 날벼락이 떨어졌다. 평소에도 정비 불량으로 인해 맛이 갈 기미를 보이던 브레이크가 4· 19 묘지 인근의 어느 내리막길에서 드디어 말을 전혀 듣지 않기 시작했다.

급발진 수준은 아니었겠지만 내리막이니 차량은 점점 속도가 붙었으며, 가로수와 승용차 몇 대를 들이받고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신호 대기 중이던 승용차 한 대를 추돌한 걸로도 모자라 그 차를 밑에 깔고서 160미터 가까이를 밀고 갔으며, 더 앞의 승용차 7대를 추가로 들이받고 전신주를 들이받고서야 멈췄다. 승객이 탄 것도 아니고 빈 버스인데도 속도가 붙자 엄청난 파괴력이 나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버스에게 깔린 채로 끌려간 승용차에는 계모임을 마치고 찻집으로 이동하던 학교 교직원들이 하필 7명이나 구겨서 타고 있었는데.. 아무도 차에서 살아서 나오지 못했다. 그 어떤 알량한 안전장치라도 이 정도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도움이 될 수 없었다.
이 사람들은 자기 인생이 이렇게 끝나게 될 거라고는 전혀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투신 자살하는 사람한테 깔려 죽는 것만큼이나 정말 운 한번 더럽게 없다.
듣기로는 2차를 가지 않고 먼저 귀가한 계 멤버 딱 한 명만 화를 피해서 살아 남았다고 전해진다. =_=;;;

이 사고로 버스 운전사, 버스 회사 사장, 버스의 정비 업체까지 줄줄이 경찰에 소환되었다. 너무 큰 피해가 났기 때문에 버스 운전사는 징역 2년 6월형을 받았다. (참고로 2010년 7월 3일, 인천대교에서 고장난 마티즈 CVT를 피하려다가 교각 아래로 추락해서 14명의 사망자를 낸 공항 리무진 운전자는 금고 3년형이 선고됐다. 1차 원인 제공자인 김여사는 금고 1년.) 그만큼 무거운 대형차 운전자는 사고가 났을 때의 책임이 막중하다.

그리고 또 안타까운 사고가 더 있었다. 2013년 12월 14일, 경부 고속도로 하행선의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방면에서는 승용차 간의 접촉사고 때문에 후속 차량들의 정체가 시작됐는데, 이걸 뒤늦게 발견하는 바람에 또 4중 추돌 사고가 났다.
문제른 부딪친 차량들의 배열 순서였다. 맨 앞은 그랜저였고 그 뒤는 25톤 탱크로리. 그 뒤엔 벽돌을 가득 실은 25톤 화물차였는데.. 양 25톤짜리 대형차의 사이에는 승용차가 한 대 있었다.

25톤 화물차는 운동량을 주체하지 못하여 앞의 승용차를 그대로 짓눌렀고, 승용차는 양 대형차 사이에서 완전히 으스러졌다. 승용차에는 두 집에서 제각기 남편만 빼고 아내와 자녀 두 명이 타서 총 6명이 타고 있었는데.. 이 사고로 모두 끔살 당했다. 두 집의 가장들은 하루아침에 처자식을 모두 잃는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이런 사고는 올해에도 계속됐다. 지난 5월 16일엔 남해 고속도로의 터널에서 대열 운행을 하던 관광버스들이 정체 구간 급정거로 인한 9중 연쇄 추돌 사고를 냈는데, 전후의 관광버스 사이에 끼여 있던 모닝 승용차가 다 짜부러지는 바람에 거기서만 탑승자 4명이 모두 숨졌다. 그리고 이걸로도 모자라서 7월 17일엔 영동 고속도로 봉평 터널 인근에서 관광버스가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은 채 앞차를 네댓 댄가 연달아 들이받고 특히 바로 앞의 K5 승용차를 완전히 짓뭉갰다.

영동 고속도로의 사고는 대열 운행도 없었고 브레이크 고장도 아니었고 순수하게 운전 기사가 졸다가 어처구니 없는 사고를 낸 것이었다. 앞차엔 강원도로 피서 여행을 다녀 오던 20대 여대생 4명이 차를 꽉 채워 타고 있었는데 모두 남해 고속도로 사고처럼 비명 한 마디 못 지르고 전원 즉사했다. 운전자 남성 한 명만 중상.
이 글에서는 사진 첨부는 생략하지만 이들 역시 잔해의 모습이 위에서 소개한 것들 만만찮게 처참했다. 소형차는 대형차의 곁을 달려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진리를 확인하게 된다.

그럼, 이런 충돌 사고가 났을 때 꼭 대형차의 탑승자만 생존에 무조건 유리하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2013년 8월 7일, 중부 고속도로에서는 운전 중 시비가 붙어서 한 승용차 운전자가 고속도로 위에서 차를 고의로 급정거하는 미친 짓을 했다. 시비가 붙은 차와 추가로 뒷차 3대까지는 급정거를 했지만, 다섯 번째로 달려오던 5톤 트럭은 제대로 정지하지 못하고 앞차를 모조리 들이받았다.

그런데 이 사고에서는 가장 큰 차를 몰고 가장 뒤에서 추돌한 트럭 운전자 한 명만 숨졌다. 트럭은 승용차와는 달리 전방에 엔진룸이 없어서 전방을 들이받으면 운전석이 곧장 충격을 받기 때문이다.
이 모든 사고와 비극을 야기한 고의 급정거 운전자는 징역 7년 구형에 3년 6월형이 확정되는 엄벌을 받았다. 앞서 거론된 버스들의 사고보다 사상자 수는 적지만 죄질이 워낙 나쁘기 때문이다. 부디 길을 틀어막고 만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보복· 위협운전이 근절되기를.

3. 음주운전자가 낸 후방 추돌 교통사고

지금까지 차량 대파와 인명 사고를 야기하는 교통사고를 후방 추돌 위주로 살펴봤다.
후방 추돌은 정면 충돌보다야 충격량이 작을지 모르지만, 승용차의 경우 연료 탱크가 뒤에 있기 때문에 이걸로도 화재가 발생할 수 있어서 더욱 위험하다.

아무리 천천히 가더라도 멀쩡히 잘 가고 있는 앞차를 뒷차가 대놓고 들이받는 경우는 잘 없다. 시내 도로 교차로라면 신호 대기 중인 차를 뒤늦게 발견해서이고, 자동차 전용 도로에서는 갑자기 정체 구간 또는 사고 현장이 나타난 걸 대처를 못 해서 사고가 나는 편이다. 대처를 못 하는 원인으로는 (1) 브레이크 고장 같은 대형차의 기술적인 사정뿐만 아니라 (2) 무리한 떼빙(좁은 간격으로 대열 운전), (3) 과로로 인한 졸음 운전이 있다.

이것보다 좀 더 어처구니없는 원인은 (4) 운전 중 스마트폰/DMB 조작하다 전방 주시 태만이 있다. 제일 죄질이 나쁜 건 두 말할 나위 없이 (5) 음주운전 되시겠다. 그래도 음주운전은 개인의 승용차 레벨에서 발생하지, 트럭 운전이 생계인 대형차 기사가 대놓고 겁대가리 상실하고 음주운전을 하지는 않는다.

지난 6월엔 이 지선 씨가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받고 졸업했다. 안면이 다 타고 일그러지는 중화상을 그 쌩고생을 해서 치료하고 피부 이식을 해서 복원한 게 겨우 저 모양이다. 16년 전인 2000년 7월경에 음주운전자가 낸 7중 추돌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그분의 인생이 저렇게 달라진 것이었다. 그나마 얼굴이 그렇게 다 불타는 와중에 렌즈까지 끼고 있던 눈은 다치지 않아서 시력을 전혀 잃지 않은 건 기적적인 천만다행이었다. (그분 수기에 언급돼 있음)

2012년 6월 11일 새벽, 인천 공항 고속도로에서 음주운전 차량이 앞에 멀쩡히 가던 승용차를 거의 전속력으로 추돌했다. 이 때문에 피해 차량에서는 불이 났으며, 공항에서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던 가장을 포함해 일가족 4명이 기절한 채로 불타는 차에서 모두 몰살을 당했다.

그런데 인간은 어째 역사로부터 배우는 게 없나 모르겠다. 2015년 2월 3일 새벽에는 고속도로가 아닌 구미 시내에서 만취 음주운전자가 외제차로 앞의 경차를 추돌했다. 아까와 똑같이 경차에서는 불이 났고, 운전자인 학원 선생과 여고생 3명, 탑승자 4명이 모두 숨졌다. 이것도 시속 100이 훨씬 넘게 밟으면서 급발진 급의 추돌 사고를 낸 것이니 차와 탑승자가 멀쩡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2016년 6월 10일 밤, 인천 청라 국제도시에서는 또 음주운전자가 신호 대기 중이던 승용차를 들이받아서 이번엔 불은 안 났지만 일가족 3명이 숨졌다. 전~부 후방 추돌이다. 그리고 피해자는 탑승자 전원이 몰살이지만 가해자는 경상에 그치고 살아 있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더욱 분통 터진다.

음주운전자가 추돌 사고를 낼 거면 아까처럼 세워져 있는 대형차나 들이받아서 자기 혼자나 죽을 것이지, 꼭 왜 저런 식으로 남까지 죽이는 사고를 내나 모르겠다. 글쎄, 가해자도 죽은 사고도 있긴 했지만 이미 죽은 사람은 따로 음주 측정을 안 해서 안 알려진 건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음주운전자가 가로수를 들이받거나 고가에서 추락해서 그나마 민폐는 덜 끼치고 자기 혼자만 다친 사고 사례도 있긴 하다.

2014년 7월 20일 새벽에 대전에서는 (1) 한 음주운전자가 신호 대기 정차 중에 퍼질러 자 버려서 파란불이 됐는데도 출발 안 함. (2) 그 차량을 다른 음주운전자가 추돌해서 사고를 냈고, 덕분에 경찰 조사 과정에서 (3) 두 운전자가 모두 혈중 알코올 농도 0.1% 초과급의 음주운전이 적발되어 둘 다 사이좋게 면허 취소됨.. 요렇게 음주운전자끼리 병맛스러운 팀킬을 벌인 일이 있었다. 경찰의 입장에서는 한 번 단속으로 일석이조 실적을 올렸다.

그리고 2016년 1월 26일, 청주에서는 눈에 뵈는 게 없던 한 음주운전자가 경찰서의 순찰차 주차 구역에다가 제 발로 차를 몰고 와서 차를 당당하게 세우는 바람에 곧바로 경찰에 현행범으로 검거되기도 했다. "거기는 일반 주차 구역이 아니에요. 아저씨, 차 빼 주세요. → 어라? 아저씨 좀 술냄새가 심하게 나네요?"처럼 된 셈. 이건 사고를 낸 것도 아니고 차라리 귀여운 사례이다.
아무튼 술 마신 뒤에는 제발 운전대 좀 잡지 말자.

* 여담

교통사고에 대해서만 글을 잔뜩 썼다가 또 얘기가 부득이하게 옆길로 새게 됐다만.. 말이 나왔으니 이 지선 씨와 관련된 여담도 좀 늘어놓자면 이렇다.

- 정확한 시기와 발표 주체는 기억이 안 나지만, 이분의 개인 홈페이지는 2000년대 중반경에 어디선가 조사한 국내 개인 홈페이지들 중에 전체 트래픽/방문자수 2등을 차지할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참고로 1등은..? 시스템 클럽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_=;; )

- 교통사고 화재 현장의 화상뿐만 아니라 화공 약품 테러로 인한 화상도 끔찍한 사고 내지 사건이다. 앞서 이 지선 씨는 그래도 눈은 멀쩡히 남았지만, 1999년 5월 20일.. 입에 담기조차 끔찍한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사건의 피해자인 김 태완 군은 전신 3도 화상에다가 실명까지 한 채로 7주간을 깜깜한 사경을 헤매다가 결국 패혈증으로 숨졌다. 도대체 어떤 놈이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는 밝혀지지 못한 채 영구미제로 남게 됐다.

- 2009년에 겨우 20대 중반의 나이로 회사에 체납 임금 청구 소송을 벌였는데 악덕 업주로부터 황산 테러를 당한 모 여직원도.. 지금은 그나마 많이 회복됐고 이 지선 씨와 마찬가지로 사회 복지 분야를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대외적으로는 마치 과거의 지존파 피해 여성처럼 가명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건 실명은 아니다. 어쩌다가 저런 블랙 기업에서 첫 발을 잘못 디디는 바람에 이런 불행을 겪었는지가 안타깝다.

Posted by 사무엘

2016/08/29 08:21 2016/08/29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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