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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뒷부분을 읽으면서 먼 옛날, 예수님이 배반 당하고 악의 무리들에게 체포되고 '답정너' 어거지 재판을 받은 후 십자가에 달리시는 장면을 곰곰이 묵상해 보았다.

성경을 알면 알수록.. 이 십자가 사건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이상하고 기괴한 이벤트만 골라서 벌어진 끝에 가능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예수님이 가끔은 자신을 아버지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발언 때문에 어그로를 끌긴 했지만, 일단은 기적 때문에 대중적으로 최소한의 인기와 지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백성들 눈치를 보는 '높으신 분'들은 예수님께 함부로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명절에는 체포와 처형을 더욱 피하려고 했는데.. 그런데 현실에서는 최악의 상황만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가룟 유다를 보고는 예수님께서 “니가 이제 뭘 하려는지 난 뻔히 알고 있지만, 이건 짜고 치는 고스톱이니 니 할 일 하러 가라”와 다름없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유다를 밖으로 보내 주셨다. 적들과 내통하러 나가는 건데도 어찌나 곱게 보내 줬으면, 그때 다른 제자들은 유다가 다른 돈이나 물건을 챙기는 심부름을 하러 나가는 줄 알았을 정도였다.
그 뒤, 군중이 붙어 있지 않은 한밤중에 예수님이 거의 “옜다, 나 잡아 가슈” 급으로 일부러 한적한 바깥에 나가서 낚여 줬다. 그 덕분에 체포가 가능했다.

제아무리 악의 무리라 해도 예수님이 선한 일을 한 것.. 즉, 병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린 걸 트집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어설픈 거짓 증언들은 같은 상황에 대해서 자기들끼리도 진술이 일치하지 않아서 법적 효력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나마 트집 중의 하나가 뭐냐 하면 '성전 사흘 재건' 떡밥인데... 이건 처음 등장하는 곳이 원래는 요 2:19이지만 '카더라' 명목으로 마 26:61에서 먼저 미리 등장한다.
솔로몬이 기도를 한 내용이 있기도 하니 유대인들은 물리적인 성전 건물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컸던가 보다. 그런데 그 엄청난 성전을 걸고 저런 충격적인 말을 예수님이 하셨으니 그게 예수님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모양이다.

물론 앞뒤 문맥 행간 다 짤라먹고 사람을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찌라시 기레기들의 수법은 지금이나 그 시절이나 다를 바 없었다. “예수, 성전 폭파 발언 충격 일파만파”처럼 말이다.

예수님은 다른 그 어떤 거짓 고소 개드립에도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않아서 침묵으로 일관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는 즉각 대답하셨다. 대제사장 앞에서든(마 26:63-64), 빌라도 앞에서든(마 27:11) 말이다. 그것이 당장 자기 신변을 불리하게 만드는 답변이더라도 말이다.
예전부터도 예수님은 시종일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마 16:15)

다른 사람들은 마태복음 22장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 종교, 시사 등 온갖 주제로 예수님께 질문을 했지만 예수님은 그냥 즉문즉답이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은 별로 중요한 주제가 아니니 제끼고, 그분이 카운터어택으로 딱 하나 바리새인들에게 질문하셨던 것은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인데 왜 선조인 다윗이 자기 후손을 보고 주님이라고 불렀을까?” 정체성 질문 하나뿐이었는데..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떡실신했다.

그러니 이런 패턴을 아는 예수님의 적들이 트집을 잡은 방법은 역시나 100% 걸려들 수밖에 없는 종교라는 형이상학적인 영역을 악용하는 것이었다. 다니엘을 모함한 대신들이 다니엘을 행실로는 트집 잡을 수 없으니 기도라는 종교 관습으로 올가미에 넣었듯이 말이다. 다니엘도 그냥 그 30일 동안은 그냥 문 닫고 골방에서 몰래 기도할 수도 있었지만, 일면 고지식한 바보 같이 일부러 흉계에 걸려들었다.

이처럼 예수님도 자기 정체성만은 당당하게 드러내셨다. 대제사장은 드디어 명목상 신성모독이라는 중대한 껀수를 하나 잡았으니 이렇게 기쁠 데가. 하지만 겉으로는 옷을 찢고 오버하면서 “oh my god!! ㅠ.ㅠ 어머나 세상에 제 입으로 제 발로 하나님을 사칭하는 놈이 있다니 이런 참람할 데가! 이 이상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하단 말이냐? 이 새퀴는 뒈져야 마땅하다”라고 짜여진 각본대로 아주 생지X(비속어 죄송~~)을 해 댔다. 옛날에 악의 무리들이 나봇을 신성모독죄 누명을 씌워 인민재판을 벌이고 죽였을 때처럼 말이다.

이것은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고 인간을 창조한 그 창조주가 현신했는데 피조물들로부터 따귀를 맞고 침뱉음, 조롱, 학대를 당한 것이다. 왜? 무엇 때문에?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그 피조물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예수님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때문에 제자들은 실족하고 멘붕에 빠지고 도망쳤다. 5천 명의 군중을 먹이고, 물 위를 걷고, 중병을 고치고 마귀들을 내쫓고 죽은 사람까지 살렸던 자기 스승이 언제부턴가 고난, 죽음 얘기를 하면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더니.. 왜 이렇게 너무 나약하게 험한 꼴을 당하는 걸까?

베드로는 의욕이 넘쳐서 처음엔 예수님의 적들을 향하여 용감하게 칼까지 휘두를 정도였지만.. 예수님이 자기 기대와는 너무 딴판으로 행동하자 제풀에 기가 죽었고.. 결국은 예수님의 예언대로 위급한 상황에서 그분을 세 번 부인하는 인생일대의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반역죄 신성모독죄로 몰아서 죽이고 싶었지만, 자기들도 로마 제국의 식민지인 판에 자체적으로 사형 집행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은 그분을 제거하기 위해 자신들의 정치적 원수인 외세까지 끌어들이는 비열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나중에는 “우리에게는 카이사르 외에는 왕이 없나이다” 이러기까지 한다. 일제 강점기로 치면 조센징들이 “우리에게는 덴노 외에는 왕이 없나이다” 이런 짓을 한 거나 마찬가지이다! 이걸로도 모자라서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파 버린 확인사살 크리티컬은 “저 사람의 피가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아올지어다”이고 말이다.

하지만 빌라도도, 헤롯도 예수님을 찬찬히 살펴보니 저 사람은 딱히 사형을 당할 만한 중죄인이 절대 아니었다. 헤롯은 예수님을 그냥 해롭지 않은 미치광이 정도로 치부한 듯하나 빌라도는 예수님이 보통사람이 아니란 걸 직감했다. 목숨을 전혀 구걸하지 않고 태연한 그분의 포스에 자신이 오히려 압도당하고 초조해졌다. “다.. 당신은 왜 아무 말도 없느냐? 주변에서 온통 당신을 고소하는 말이 들리지 않느냐? 나에게는 너를 처벌하거나 풀어 줄 권한이 있는데 왜..? 으응..??” 같은 식.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 주고 싶었지만 이미 민심은 광기로 치닫고 있었다.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선동을 당했는지, 아니면 무기력한 예수님의 모습에 실망했는지 백성들조차 폭도 바라바를 석방하라고 요구하고 예수님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최악의 흉악범에게나 집행되는 십자가형을 요구했다. 그리고 빌라도는 자기 정치 생명 보존을 위해 이를 허락해 버렸다. 그것도 명절 기간에..;; 이때 같이 들러리로 끌려나와 갑자기 십자가형을 당한 죄수 두 명은 날벼락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온갖 기적을 베풀며 당장이라도 자기 민족을 로마 제국으로부터 해방시킬 것 같던 슈퍼스타 예수가 하루아침에 너무도 무기력하고 나약하게 십자가형을 당하자.. 무지한 군중들은 그분에게 온갖 야유를 퍼부었다. '성전 사흘 재건' 떡밥도 다시 나온다. (마 27:40)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더니 당신 꼴 좋다~!”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는다더니 저 사람은 자기 자신은 못 구하네? ㅋㅋㅋㅋㅋ 당신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 & 유대인의 왕이라면 한번 그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ㅋㅋㅋㅋ”

그러나 이때 예수님의 기도는 정말 비장하고 숙연하기 그지없었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눅 23:34)
십자가에 같이 매달린 두 강도들도 처음에는 같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욕했었다. 제 코가 석 자인 주제에.
그러나 누가복음의 진술에 따르면 둘 중 하나는 나중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정말 드라마틱하고 놀라운 회심을 했다. (눅 23:42)

그 뒤의 결말은 여기서 굳이 길게 각색해서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형을 당한 여느 죄수들과는 달리 불과 몇 시간 만에 일찍 숨이 끊어졌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이것은 생물학적으로 불가피한 죽음을 맞이한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생명을 내어놓은 거라고 한다. 십자가형은 참수나 화형과는 달리 죽을 때까지 죄수를 내버려 두는 형벌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저런 행적이 나올 수가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장사되고 묻힌 지 사흘 만에 부활했으며, 이를 본 제자들은 그야말로 가슴이 터질 듯 기쁨으로 용기백배하여 담대한 복음 전도자로 바뀌었다. 그 어떤 난관이나 심지어 죽음과 순교도 이들의 증언을 꺾지는 못했다. 그래서 기독교가 태동할 수 있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종교들 중 신이 인간을 먼저 사랑했고 인간을 위해 고난을 당하고 피흘려 죽었지만 부활까지 했다고 가르치는 유일한 종교이다!

국내에는 송 명희 시인이 예수님의 고난을 뭔가 인간적인 애틋한 심상으로 그리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얼마나 아프실까>, <우리의 어두운 눈이 그를>, <누구 때문에> 같은 찬양 말이다. 물론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은 단순히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나 여느 순교자 같은 성격은 아니다. 또한 무슨 도살장에서 도축 당하는 짐승을 불쌍해하듯이 인간의 입장에서 무작정 동정할 만한 성격도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은 뭐랄까 정말 엄청나고 대단한 일인 건 틀림없다.

예수님이 부활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봉인까지 아무 문제 없이 뚫고 무덤을 탈출하자, 기존 악의 무리들은 보초병들을 매수하여 여론 조작을 시도했다. 보초병들이 조는 사이에 제자들이 무덤에 침입해서 예수 시체를 훔쳐 갔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리는 걸로 대응했다.
그 시절에 로마 군인이 근무 중에 졸다가 적발되었다? 이건 중대 군기 문란죄이며 당사자는 그야말로 끔살을 면치 못했다. 또한 죄수 같은 걸 놓쳤다면 지키던 간수가 자기 목숨을 대신하여 책임을 져야 했다. (행 12:19 베드로를 놓친 감옥 간수들의 최후. 행 16:27 감옥이 지진으로 파괴되자 간수는 곧장 자결하려 함)

아무리 유대교 종교인들이 돈을 많이 주고, 또 졸았던 것에 대해서 자신들이 적극 변호하고 실드를 쳐 주겠다고 약속은 했어도... 졸다가 예수 시체를 도둑맞았다는 소문을 로마 군인이 퍼뜨린다는 건 어지간해서는 자충수에 가까운 짓이었을 텐데 싶은 생각이 든다. 뭐, 고의성이 있든 없든 예수님 시신을 놓친 군인들은 어떤 경우든 신변이 좀 걱정되는 처지가 되었겠지만.

우리는 종교 지도자들의 앞뒤가 안 맞는 행적을 좀 더 살펴볼 수 있다.
자기가 내리는 결정에 대해서 절대적인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아니라, 백성들 눈치를 보고 그들의 예상 반응을 시뮬레이션하고, 서로 의논을 하면서 잔머리를 굴린다. “요한의 침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에 대한 대답도.. 예 아니면 아니요라고 하면 될 것을 그들은 어떻게 대처했던가? (마 21:25-27)

또한 온갖 율법을 어기면서 예수님을 거짓 고소하고 추악한 짓은 다 했으면서... 가룟 유다로부터 반환받은 돈은 제 딴에 더러운 돈이라고 성전의 보고에다 안 넣고 율법 따지면서 종교적인 행세를 한다(마 27:6).

그들의 또 다른 위선적인 면모는 예수님께서 “화 있을진저”라고 그들을 맹렬하게 책망하시는 23장에 기록되어 있다. 마 23:29-33을 보면.. 한 마디로 이런 내용이다. “우리 선조들은 참 병신 같아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참 대언자들을 핍박하고 죽였어요. 우리가 그 시대를 살았다면 안 그랬을 겁니다.”
허나, 이들이 얼마 안 있어 예수님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걸 생각한다면 피식 웃음이 나오지 않는가?

물론, 우리라고 해서 예수님과 동시대를 살았다면 과연 예수님의 진면모를 영적으로 파악하고 그분의 길을 따랐을지.. 아니면 역시나 육신적인 선동에 혹해서 그분을 정죄하는 일에 동참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성경은 인간이라면 바다가 갈라지고 홍해 중앙을 멀쩡히 건너는 넘사벽 기적 체험을 하고도 딱 사흘 뒤엔 목 말라 죽겠다고, 이딴 식으로 고생하면 뺑이 칠 거면 걍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하나님께 불평을 늘어놓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기 영웅 예수님이 입성하는 걸 흥분해서 환영하던 인파들도 며칠 뒤에 태도가 180도 돌변하여 “폭도 바라바를 풀어 주고 예수라는 저 무능한 꼰대는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인간이 생각보다 굉장히 변덕이 심하고 간사하다고 말하는 책이다. 당신이라고 해서 안 그럴 것 같은가? “천만에”다.

바리새인들은 나름대로 바빌론 포로 귀환 이래로 이제 절대로 우상 숭배 안 하고 최소한 구약 성경 유일신만 믿기로 작정을 한 종교 꼴통들이다. 그리고 서기관들은 구약 성경을 필사하고 보존해 온 종교 전문직 종사자들이다.

이들이 비록 예수님 당대에 전반적으로 영적으로 좀 맛이 가 있긴 했어도 이들만이 마치 악의 축인 양 싸잡아 정죄하는 것은 성경 독자로서 옳지 못한 태도이다. 세상에는 바리새인만도 못한 인간들 역시 엄청 많다는 걸 알아야 하며, 특히 예수님을 죽인 민족이라고 크리스천이라는 사람이 유대인들을 핍박하고 반유대주의 풍조에 동조하는 건 절대로 성경적인 자세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결국 글이 굉장히 길어져 버렸는데.. 맺기 전에 하나만 더, 빌라도와 가룟 유다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 보겠다.
먼저 빌라도. 그는 현장에서 저렇게 우유부단하고 고뇌하던 모습으로 인해, 그저 운 나쁘게 저 현장에 있었을 뿐이고 악의적이는 않았던 나약한 보신주의자라는 식으로 실드 치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빌라도를 필요 이상으로 긍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쨌거나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헤롯하고도 다시 친해졌을 정도로(눅 23:12) 결국 예수님의 대적들 편에 확실하게 섰기 때문이다. “진리가 무엇이냐?”(요 18:38) 이건 진지한 구도적인 질문이 아니라,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그냥 한 마디 툭 던진 립서비스일 뿐이었다. “ㅉㅉ 이 상황에서 뭔 놈의 얼어죽을 진리 타령이냐?”에 가깝다.

원쑤지간이던 빌라도와 헤롯이 과연 무엇을 매개체로 화해했을지도 생각해 보면 뻔한 노릇이다. 까놓고 말해 술자리에서 술안주로 예수님을 같이 씹으면서 친해진 게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내가 보니 그 사람 완전 바보 싸이코더구만! ㅋㅋㅋ” “그러게? ㅋㅋㅋ 사실은 나도 똑같이 생각했지!” 그는 예수님을 대면하면서 양심이 좀 찔리던 기억은 이런 식으로 잊어버리고 훌훌 털어내 버렸다.

그리고 유다는 인간적으로는 예수님의 제자였다가 한 순간에 대실수를 저지르고 그걸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수습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사람 정도로 여겨진다. 하도 부정적으로만 평가되다 보니 마치 원 균을 재평가하듯이 유다도 최대한 개인 상황을 감안하여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는 신학 해석도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유다는 단순히 사람이 아니라 동정의 여지가 없이 성육신한 마귀라는 해석이 있다. “그 중의 하나는 마귀이니라” (요 6:70)가 비유가 아니라 평이한 사실 진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행 1:25에서도 베드로가 유다는 단순히 죽은 게 아니라 자기 처소로 돌아갔다고 얘기하는 게 뭔가 저 사람 정체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암시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성육신하고 나서 얼마 있지 않아 마귀 역시 짝퉁 성육신해서 훗날 예수님의 제자로 위장해 들어갔다는 뜻이 되는데.. 사실이라면 많이 무섭다. 성경에는 유다 자체가 마귀라는 말뿐만 아니라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다”(눅 22:3), “사탄이 유다에게 이상한 생각을 넣었다”(요 13:27) 같은 상이한 진술이 모두 들어있다.
이것은 마치 다윗의 잘못된 인구 조사의 배후에 무슨 일이 있는지에 대해서 성경이 상이하게 진술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삼하 24:1, 대상 21:1). 동일한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조명한 것으로 보인다.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했다가 나중에 목을 매어 자살했는데, 이 사건은 마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 사도행전의 증언을 보면 그는 내장이 튀어나오며 상당히 끔찍하게 죽은 것 같다. (행 1:18)
단, 사도행전 1장에서 언급되는 피 밭과, 마태복음 27장에서 언급되는 피 밭은 개념상 서로 다른 장소이다.
전자는 유다가 개인적으로 비축해 둔 돈으로 산 자기 땅이다. 그러나 후자는 따로 토기장이의 땅을 사서 조성한 공동묘지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4/11/10 08:30 2014/11/1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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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세기 초· 중반이 배경으로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찍는다면 그 당시 길거리를 달리던 옛날 자동차들도 재연되어야 한다. 이런 '올드카'들은 상업적인 임대 수요가 있으며, 이를 대여해 주는 업체도 응당 존재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원하는 올드카를 못 구하면, 외국으로 진작에 수출된 옛날 국산차를 다시 역수입해 와서 쓰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진작에 처분된 차들이 외국에서는 아직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만, 1990년대 이전의 옛날 자동차는 지금의 자동차하고는 당장 연료가 호환되지 않을 텐데 그런 건 어떻게 극복했나 모르겠다. 당장 휘발유만 해도 유연과 무연의 차이가 존재하며 경유 역시 유황 성분이 더 줄어들고 이것저것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는.. 어차피 화면에는 올드카의 외형만 비치면 되니까 엔진은 요즘 차량의 것으로 싹 갈아 버릴 수도 있다.
요즘 관광용으로 일부러 도입해서 굴리는 증기 기관차는 겉모양만 증기이지 석탄이 아닌 석유로 물을 끓인다거나, under the hood는 아예 내연 기관이 달린 디젤 기관차인 경우가 대부분이듯이 말이다.
하지만 자동차의 경우 엔진 교체는 쉽게 가능한 일이 아니며, 엔진이 다른 것으로 교체되어 버리면 엔진음은 옛날 차의 것이 그대로 재연되지 못할 것이다.

본인은 지난 올해 상반기 중에 서울 시내에서 포니 2를 한 대 구경한 적이 있다.
그렇게 한 차를 20년, 30년씩 굴린 차주들은 당연히.. 주변에서 “그랜저를 줄 테니, 그 포니를 내게 파시오.” 식으로 제안하면 절대로 응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머리카락이나 손톱을 엄청나게 길게 길러서 기네스북급의 기록을 갖고 있는 사람들만 해도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그걸 안 자른다. 하물며 자기 인생을 함께한 올드카 애마를 돈 몇 푼에 처분하겠는가?

우리나라의 올드카 수집가로 유명한 사람은 이걸로 아예 직업을 삼은 금호 상사의 대표 백 중기 씨이다. 금호 렌터카와 혼동하지 말도록. 이미 1970년대부터 길거리에서 소리없이 사라져 가는 올드카에 대한 경각심을 느끼고 시발 자동차 택시, 기아 삼륜차, 이 승만· 박 정희 대통령의 관용차 등 까마득한 올드카들을 수집해 왔다고 한다.

단종되고 제조사로부터 A/S가 더 없고 부품을 정상적인 통로로 구할 수 없는 자동차는 소프트웨어로 치면 지원이 완전히 종료된 abandonware나 마찬가지이다. 저분은 수백여 대의 올드카를 보유하고 있다는데 단순 정태보존인지, 아니면 운전이 가능한 동태보존의 비율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세금· 보험료 같은 굴레 없이 수집이 가능했는지도 궁금하다.
거기에다 평상시에 보존· 유지를 위해 물리적으로 깨지는 비용을 생각하면 올드카 임대를 통해 그렇게까지 많이 수지 맞는 장사를 해 온 건 아니라고 함. 아무튼 덕업일치에 좋은 일을 해 온 대단한 분이다.

2.
그리고 올드카 얘기 하나 더.
예전에 이 블로그에서 새한 자동차 시절의 구닥다리 8.5톤 덤프 트럭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한 자동차계의 노인학대가 존재한다는 정보를 엔하위키를 통해 전격 입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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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에서 생산한 바퀴 10개짜리 카고트럭.
무려 1940년대 중반에 생산된 군용차인데, 현역에서는 1970년대에 물러나고 민수용으로 풀린다.
그런데 그런 차가 충북 내지 강원도의 오지에서 적어도 2000년대 중후반까지 혹사당하고(?) 있다고 한다.

이 차의 애칭은 '제무시 트럭'이다. GMC를 일본식으로 읽으면 '지-에무-씨'가 되는데 그걸 줄여서 '제무시'라는 기괴한 명칭이 된 것.
군용차는 무겁고 완전 기름 먹는 하마 급의 연비를 자랑하지만, 그만큼 어마어마하게 튼튼하며 어지간한 트럭이 지나갈 엄두를 못 내는 험지나 오르막도 거뜬히 오른다.
시간이 정지한 듯한 이 트럭의 활약기를 살펴보시기 바란다.

3.
세워진 자동차에 주차료가 부과되는 것만큼이나 공항에 세워져 있는 비행기에는 시간에 비례하여 주기료가 부과된다. 이거 생각보다 꽤 비싸다. 인천 공항에 보잉 747 여객기를 세워 놓는 비용은 하루 기준으로 거의 100만원이 조금 넘는다. (지금은 더 올랐을지도 모름)

물론 보잉 747은 어마어마하게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거대한 물건이긴 하나, 어쨌든 금액의 스케일이 10분당 1천원 꼴로 주차료를 받는 서울 시내의 좀 비싼 유료 주차장의 임률도 아득히 초월하는 셈이다. 게다가 인천 공항 정도면 주기료가 합리적이지, 공항 이용 비용이 악랄하게 비싼 축에 드는 공항도 아니다.
비행기는 하늘을 날면서 승객과 화물을 나를 때는 돈을 벌어다 주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하고 만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수 년 전엔 인천 공항의 주기장 한쪽 구석에는 태국, 이란 등 운영이 제대로 못 되고 있다가 사실상 망한 항공사의 여객기가 최대 4대 무단 방치된 적이 있었다. 2년 넘게 방치된 비행기는 당장 운용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주기료도 수억원 대가 넘게 밀렸을 텐데... 2010년대 이후로는 뉴스 기사가 더 보도되지 않는 걸로 보아 지금쯤은 인천 공항 측에서 그런 흉물을 임의로 압류· 매각을 해서 처리하지 않았나 싶다.

우리나라도 남북 관계가 안 좋아져서 개성 공단이 가동이 몇 달 중단된 동안 기계들이 다 망가졌다고 공장주들이 울상이었다. 자동차만 해도 한 달 정도만 안 몰고 있으면 상태가 어찌 될지 알 수 없는데 기계라는 게 참 그런 특성을 가진 물건인 것 같다. 장기간 가동을 안 할 거면 연료를 빼내고 장기 보존 가능한 특수한 처리라도 해야 할 터.

4.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모하비 사막에는 '모하비 공항'이라는 생소한 공항이 있다. 얘는 세관· 검역 시설을 갖춘 국제공항도 아니고 정기 운항 비행기도 없이 사막에 덩그러니 놓인 듣보잡 공항일 뿐인 것처럼 보이나, 다른 공항에는 없는 특별한 속성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식 타이틀이 단순 airport가 아니라 air and space port라는 것. 즉, 여기는 단순 항공기뿐만 아니라 민간 우주선(Spaceship One 같은)이 이착륙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는 바로 민항기의 양로원 내지 무덤이다. 건조하고 땅값 저렴한 사막이다 보니 전세계에서 퇴역한 항공기, 혹은 망한 항공사로부터 매각된 항공기들이 여기에 수두룩하게 쌓인다. 아직 현역으로 구를 만해서 다른 항공사로 저렴한 중고로 팔려간다면 다행이지만, 상품성을 상실할 만큼 심하게 노후한 항공기는 여기서 폐기되어 부품이 뜯겨 나간다.

5.
그리고 캘리포니아 주 근처(근처..래 봤자 수백~천수백 km 떨어져 있지만)에 있는 아리조나 주의 데이비스 몽선(Davis-Monthan) 공군 기지 인근에는 '노후 전투기 보관소'가 있어서 수천 대에 달하는 퇴역 군용기들이 보존되어 있다. 미 해군, 공군, 해병대가 쓰다가 퇴역시킨 군용기들은 거의 다 여기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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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남아 있는 항공기들은 대략 70%가량은 약간의 수리를 거친 뒤 다시 비행이 가능한 정도라고 한다.
모하비 공항은 인근에 에드워즈 공군 기지가 있긴 하지만 공항 자체는 민간 공항이다. 하지만 여기는 주 보존 대상도 군용기들이고 엄연한 공군 시설 내부이다.

이 보관소의 항공 사진을 보노라면 “전투기는 많지만 조종사가 없습니다(부족합니다)!”라고 하는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의 대사가 고증에 굉장히 충실하게 만들어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여러 조종사가 한 비행기를 굴리가면서 타는 게 일반적이지, 전투기가 조종사보다 더 많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과연 show me the money 국가인 미국이니까 가능한 스케일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4/11/07 08:27 2014/11/07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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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반적인 자동차

잘 알다시피 핸들 조작을 통해 앞바퀴의 진행 방향을 좌우로 꺾을 수 있다. 앞바퀴의 조향은 직관적이며 조향 중에 전방만 잘 응시하면 된다는 장점이 있다. 모퉁이에서 너무 서둘러 조향을 시작하는 바람에 회전 방향의 안쪽의 장애물과 차가 충돌하는 사고가 날 가능성을 줄인다는 뜻. 하지만 제일 전방에 있는 바퀴가 돌기 때문에 조향을 위한 회전 반경이 커진다는 단점도 있다.

방향이 꺾인 앞바퀴는 회전 중에 좌우의 바퀴가 서로 다른 속도로 돌게 된다. 회전반경 안쪽의 바퀴가 더 천천히 돌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전륜구동이라면 회전 중에 이런 것까지 감안해서 좌우의 바퀴에 엔진의 동력이 서로 다른 비율로 전달돼야 한다는 점을 혹시 생각해 보셨는지? 자동차 파워트레인의 차동기어가 하는 일이 이것이다.

2. 지게차

좁은 공장 안에서 작업하는 것까지 염두에 둔 이런 차량은 회전 반경을 최소화하기 위해 앞바퀴뿐만 아니라 뒷바퀴도 자유자재로 조향 가능하다. 평소에 도로를 직진으로 주행할 때도 조향은 뒷바퀴로 하는 편이라고 한다.

3. 탱크 같은 무한궤도 차량

얘는 모든 바퀴가 무한궤도에 일렬로 매여 있기 때문에 특정 바퀴만 방향을 틀 수가 없다. 그럼 조향을 어떻게 할까?
의외로 간단하다. 왼쪽 궤도와 오른쪽 궤도의 회전 속도만 인위적으로 다르게 하면 된다. 바퀴가 마치 지네처럼 앞, 중간, 뒤 등에 온통 달려 있기 때문에, 오히려 차량의 중앙을 축으로 삼고 제자리에서 차체를 빙글빙글 돌리는 것조차 가능할 정도이다. 즉, 탱크는 조향 능력에 관한 한은 지게차에 필적할 정도로 탁월하다.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4. 철도 차량

깔끔하게 '노답'이다. 철도 차량은 운전대에 핸들에 대응하는 기기가 없으며, 오로지 전진 아니면 후진만 가능할 뿐 스스로 조향을 전혀 할 수 없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선로 분기는 전적으로 외부에서 해 줘야 한다.

5. 비행기

비행기는 날고 있을 때는 날개의 배치를 바꿈으로써 공기의 흐름을 바꿔서 좌우 정도가 아니라 상하로도 기수의 진행 방향을 조정한다. 양력을 얻는 주날개뿐만 아니라 수직 꼬리날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비행기의 랜딩기어 바퀴는 자동차 바퀴처럼 조향이 가능하다. 옛날 비행기는 뒷바퀴를 조향하는 형태였지만 요즘 비행기는 자동차처럼 앞바퀴를 쓰는 게 추세라고 한다.

대형 여객기는 복잡한 여객 터미널에서 활주로로 이동할 때 견인차의 도움을 받기도 하기 때문에, 바퀴는 어떤 것이든 방향 전환이 가능하긴 해야 한다.
물론 헬리콥터는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물건이니 지상에서의 조향은 전혀 필요나 의미가 없다.

6. 선박

선박의 추진력을 책임지는 선미 부분의 스크루를 보면, 뒤에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방향키라고 불리는 칸막이 같은 게 있다. 조타기를 돌리면 바로 그 칸막이의 각도가 바뀌며, 스크루의 회전에 의해 밀려난 물의 진행 방향이 바뀐다. 이로써 배의 진행 방향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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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배도 개념적으로 뒷바퀴를 조향하는 셈이다. 오늘날의 어마어마하게 크고 무거운 배를 항구에다 사고 없이 제대로 정박시키는 것은 '도선사'라는 별도의 전문직을 필요로 할 정도로 대단히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다. 자동차로 치면 '발렛 파킹'이다.

한편, 옛날의 외륜선은 그럼 조향을 어떻게 했는지가 좀 궁금해진다. 걔네들도 바퀴 바로 뒤에 물의 진행 방향을 바꾸는 장치가 있었나? 아니면 외륜 자체를 조향하는 장치가 있었는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동차는 일반적인 동그란 핸들이 달려 있다.
조향 장치가 없는 철도 차량은 가속과 감속을 시키는 레버가 운전의 상징이다.
(자동차만 핸들의 중심이 유난히 두터운 건.. 다들 에어백이 달려 있어서 그런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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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는 3차원 공간을 떠 다니는 물건이다 보니 조이스틱 같은 조종간이 있다.
그리고 배는.. 물레방아처럼 생긴 동그란 고리인데 고리의 밖에도 일정 간격으로 손잡이가 달린 그 전형적인 조타기가 아무래도 상징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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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소속 국가가 좌측/우측 중 어느 방향 통행을 표준으로 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운전대의 위치가 달라진다.
그러나 비행기는 승객은 진행 방향 기준 무조건 왼쪽으로 탑승하고, 화물은 오른쪽으로 탑승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전세계 공통 관행이다. 그러니 여객기에 승객용 탑승교가 연결된 사진을 찾아 보면 10이면 10 모두 왼쪽에 붙어 있다.
철도는 애초에 조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운전대 방향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고, 선박은 어떠한지 잘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4/10/29 08:31 2014/10/29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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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 게임 외

1980년대에 구소련은 미국 포함 전세계에 퍼져 나간 명게임을 두 종류 발명해 냈다.
하나는 1984년, 알렉세이 파지노프라는 프로그래머가 개발한 테트리스라는 비디오 게임이고,
다른 하나는 1986년에 드미트리 다비도프라는 심리학자가 고안한 오프라인 소셜 게임인 마피아 게임이다. MT 같은 데서 많이 해 보셨을 그 게임 말이다.

테트리스에 대해 잠깐만 언급하고 넘어가자면, 과거 도스 시절에 아래아한글은 테트리스와 두 번 인연이 있었다. 1.51도 나오기 전, 1.2 시절에 잠깐 텍스트 모드에서 실행되던 테트리스를 액세서리로 제공한 적이 있었다가 나중에 2.5 내지 3.0에서 덧실행 기능이 추가되면서 테트리스가 덧실행 프로그램이라는 명목으로 재도입되었다.

테트리스는 게임 자체야 메카닉이 매우 간단하니, 그래픽· 비주얼은 걍 발로 만든 수준으로 넘긴다 해도 게임 진행만 되는 물건 형태로는 고딩/대딩 수준의 프로그래밍 실력으로 몇 시간만 코딩하면 뚝딱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테트리스의 저작권을 보유한 회사가 지금도 시퍼렇게 살아 있으니, 이걸 상업용 소프트웨어에다 번들로 제공하거나 유료 게임 서비스를 하려면 꽤 막대한 양의 로얄티를 지불해야 한다.

잘 알다시피 테트리스는 엄청난 히트를 쳤다. 이것 때문에 학교와 직장 곳곳에서 지각과 태업이 속출하는 바람에, 이건 자본주의 진영을 몰락시키기 위해 소련이 몰래 개발해서 퍼뜨린 거라는 음모론이 나돌 정도였다. 그래도 테트리스 자체에는 딱히 이념적인 요소가 있지는 않다.
그에 반해 마피아 게임은 역시 소련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스머프도 주인공과 설정에 공산주의 프로파간다가 듬뿍 담긴 만화영화라는 음모론이 있는데, 그것보다는 더 현실적이다.

마피아는.. 인간의 죄성을 교묘하게 잘 이용하는 심리· 정치 게임이다. 게임을 해 본, 특히 크리스천이라면 이 말에 절실히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건국 초기에 벌어졌던 좌우익 진영 대립과 광기어린 학살극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마피아 게임의 현피 실사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전국 곳곳에서 파업, 폭동, 반란이 벌어지고 유언비어 공산주의 선동질에 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럽다. 이걸 가만히 놔 두면 나라는 완전히 끝장 나고 망한다. 그러니 쟤들을 색출해서 잡아 가두고 죽이긴 해야 하는데.. 악의 무리들이 대놓고 “내가 빨갱이요”라고 정체를 밝힐 리가 있나..;;

온갖 거짓말이 횡행하고 서로를 믿을 수가 없고, 자고 일어나면 누가 죽어 있을지 모른다. 위에서 까라니 까야 되고 실적을 만들어야 하는 아래 부하들 입장에서는.. 속된 말로 없는 빨갱이라도 만들어 내야 할 판이 된다. 이런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반공 진영이건 용공 진영이건 맛이 안 가는 게 이상한 일이다.

마피아만 해도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거짓말을 해야 하고 대신 남을 마피아로 몰아서 죽이는 것 때문에 일명 '우정파괴 게임'으로 통한다. 하물며 그게 당장 내 목숨이 걸린 현실이라고 생각해 보시라.
게다가 마피아 게임은 이거 뭐 아무 단서가 없으니 동등한 조건에서는 마피아가 승률이 시민보다 더 높을 수밖에 없다(심지어 경찰과 의사가 있다고 해도).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민주주의 인권 운운하는 국가라 한들, 이런 상황에서는 시민의 승률을 강제로 높이기 위해서 초법적인 비밀 첩보/수사 기관을 두는 것이다.

이런 상황 설명 없이, 남로당의 사악한 만행은 쏙 빼 놓고 서북 청년단만 무슨 악의 축인양 욕한다? 혹은 좌우익 둘 다 똑같이 잘못했다고 양비론으로 퉁쳐? 내 양심으로는 동의할 수 없다. 모르고 그런 주장을 한다면 바보인 것이고, 알고도 그런 거짓말을 일부러 퍼뜨리는 거라면 사악한 자이다. 이거 뭐 일본의 역사 왜곡을 욕하고 걱정할 처지가 아니다.

좌익의 요인 암살, 양민 학살, 대중 선동에 맞서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정신으로 화답한 게 우익 측의 폭력이었다. 자기는 기독교 욕하면서 남은 성령 충만한 크리스천이길 바라는 것은 도둑놈 심보이지 않은가?

4·3 사건 같은 것도.. 진압 과정에서 대규모 양민 학살이 있었던 것은 분명 너무 과한 흑역사긴 하지만, 그건 분명 주모자가 우리나라 건국을 방해하려고 사전 준비되어 온 조직적인 폭동을 일으켜서 경찰서를 습격하고 경찰 가족이나 젖먹이까지 죽이면서 일으킨 반란이다.

흑역사는 흑역사로 뉘우치고, 정부 입장에서 사과하는 것은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흑역사로 말미암아, 국가 전복 반역 행위가 그저 '민주화 운동'으로 둔갑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비유하자면 대한민국 정부는 미군에 의해 후세인이 축출된 이라크 정부, 조선로동당은 그 이름도 유명한 IS, 그리고 서북 청년단 같은 반공 단체는 IS의 착취와 악행에 완전히 학을 뗀 쿠르드 민병대 정도에 대응한다고 봐도 되겠다.

그러고 보니 제주도에는 4·3 사건 말고도.. 이 재수의 난 같은 사건도 있더군.. 이런 와중에 우리나라가 공산화되지 않고, 필리핀이나 중남미처럼 되지도 않고 이렇게 우뚝 선 건 정말 기적이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상, 마피아 게임으로부터 든 일련의 생각들이었다. =_=;;
남로당에 대해 절대 침묵하면서 서북단 청년단만 때리는 이런 치우친 아저씨들 때문에.. 한글, 철도, 기독교, 컴터 얘기만 화기애애하게 이어졌을 내 블로그와 SNS도 심각한 글, 과격한 글이 올라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누군가가 지금 대통령에 대해서, 일베에 대해서, 혹은 새누리당과 새민련에 대해서 정치적 견해가 다른 것은 얼마든지 용납한다. 그러나 필요악과 절대악의 관계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좀 용납하기 힘들 것 같다. 앞으로 어지간해서는 '필요악'을 주제로 또 글 쓸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4/10/27 08:23 2014/10/27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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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서 분석

구약 성경에서 예레미야는 일명 '눈물의 선지자(대언자)'라고 불리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으며, 이사야서 다음에 나오는 예레미야서와 예레미야애가의 저자이다.

앞의 책인 이사야서에서도 앞부분에 잠깐 민족의 타락 얘기가 나오지만 분량이 그리 많지 않으며 얘는 외국 민족에 대한 예언이 더 많다.
그 반면, 예레미야서는 외국 민족에 대한 예언은 뒷부분에 잠깐 나오는 게 전부이고 주 내용은 민족의 타락에 대한 책망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항복하고 바빌론으로 잡혀 가야 모두가 살 수 있다는 정치적인 얘기도 많다. 이 때문에 그는 당대의 동족들로부터 반역자라고 욕을 엄청 먹었으며 살해 위협을 받고 폭행, 투옥과 감금도 당했다.

예레미야라는 이름의 히브리 음차 알파벳 철자는 Jeremiah이지만, 그리스어가 기본인 신약 성경에 가면 Jeremias와 Jeremy도 나온다. 뭐, 신약이라고 해 봤자 실질적으로 나오는 책은 마태복음밖에 없지만. Jeremy는 오늘날에도 영미권에서 인명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마태복음에서는 예레미야의 예언이 성취된 게 두 건 있다고 언급한다.
하나는 렘 31:15 “라마에서 애통하며 몹시 슬피 우는 소리가 들렸는데 ...”를 인용한 마 2:17-18인데,
정작 구약 본문을 보면.. “엥? 그게 그 얘기예요? 이 문맥이 헤롯 왕의 유아 학살과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나요?” 싶은 생각도 든다.
마태복음의 저자가 그게 그 예언이라고 의미를 인위적으로 부여하지 않았으면 눈치를 채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본문 자체가 과거, 교리적, 예언적으로 굉장히 중의적으로 기록되기라도 했는가 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마 27:9인데.. 이건 좀 더 어려운 문제이다.
예레미야의 예언이 성취된 거라고 하나, 정작 예레미야서에는 예수님과 관련해서 은 30냥 인신매매 같은 걸 암시하는 구절이 존재하지 않는다. 토기장이? 예레미야서에는 18~19장 사이에서 토기장이가 빚는 토기 관련 퍼포먼스만이 있을 뿐이다.
오히려 예수님이 은 30냥에 팔리는 것을 암시하는 예언은 스가랴서에 있다. (슥 11:12-13)

그럼 이건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더구나 KJV 유일주의를 믿는 사람들은 이것과 거의 같은 패턴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KJV 이외의 다른 변개된 성경들이 잘못됐다고 까기도 했다.
바로 막 1:2-3 말이다. 거기에는 이사야서 인용도 있고 말라기서 인용도 있다. “이사야 + 말라기 = 대언자들(prophets)”이 돼야 맞는데, 변개된 성경에서는 말라기의 예언까지 싸잡아서 '대언자 이사야의 글'이라고 써 놨으니 이는 명백한 오류인 것이다.
애초에 이런 논리를 펴기까지 했으니 신구약간 예언 언급의 정확도에 대해서 KJV 빌리버는 민감하게 접근해야만 한다.

그러나 막 1:2와 마 27:9의 다른 점을 굳이 찾자면..
전자의 경우 명백하게 대언자들의 글이라고 written이라는 동사가 있는 반면, 마태복음의 예레미야 인용은 그냥 spoken이라는 것이다. 예레미야도 은 30냥 운운하는 예언을 하긴 했지만, 그건 구전으로만 전해졌을 뿐 예레미야서에 정식으로 기록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마치 예수님의 가르침 중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되다”(행 20:35)와 비슷한 급의 예외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저 말 역시 정작 사복음서에서는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사야서야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다”(7:14)를 비롯해 50장, 53장 등에서 예수님 예언이 잔뜩 들어있다. 하지만 예레미야서는 관심사가 온통 바빌론 포로일 뿐, 딱히 예수님 예언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예외적인 힌트를 통해 예레미야 역시 그 먼 옛날에 예수님에 대한 여러 암시와 힌트를 받긴 했다는 추측도 할 수 있다.

그럼, 다음으로 예레미야서 자체의 특징을 좀 살펴보도록 하자.

1. 성경의 다른 책들에 대한 오마주가 생각보다 많다. 간단한 예로,

  • 1인칭의 자조적인 기도(느헤미야)
  • 악인의 형통에 대한 회의와 의문: 시편 73편, 하박국 1장뿐만 아니라 예레미야서에도 12장에 이런 내용이 있다.
  • 자기가 태어난 날에 대한 저주(욥기): 특히 20장 끝부분은 이거 예레미야서가 아니라 욥기 3장을 읽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노골적인 분위기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예레미야서의 앞부분은 워낙 암울한 논조이기 때문에 저런 내용이 전부 등장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에스겔서 오마주라고까지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어서 아들까지 이가 시리다”라는 잘못된 조상 은덕/조상 탓 통념에 대한 반박이 렘 31:29와 겔 18:2에 같이 나온다.

또한 거짓 대언자와의 대결이 있다. 열왕기와 역대기에 '미가야 vs 시드기야'를 기억하시는지? 예레미야서에는 28장에서 하나냐와의 대결이 나온다.
거짓 대언자 시드기야는 참 대언자 미가야의 따귀를 때리면서 도발을 했는데, 거짓 대언자 하나냐는 예레미야가 퍼포먼스 차원에서 걸고 있던 나무 멍에를 뺏어서 부러뜨리면서 “여러분 이거(= 예레미야의 말)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하나님은 바빌론의 멍에를 '이렇게' 꺾어 버리실 겁니다!”라고 선동질을 제대로 했다.

이런 개막장 분위기에 예레미야는 기도 안 차서 그냥 자리를 떠 버렸고.. 하나냐는 그로부터 두 달 뒤에 하나님으로부터 천벌을 받아 급사했다고 성경에 나온다.

아울러, 예레미야서에는 사도행전을 오마주한 듯한 장면도 있다.
예레미야로부터 너무 과격하고 파격적인 메시지를 들은 뒤 사람들이 “이 자식 이거 어떡하면 좋을까? 예전에도 좀 똘끼 부리는 사람이 있긴 했는데 그때는 이렇게 됐었다” ... 처럼 '전례'를 따지고 드는 내용이 있다.
이건 베드로와 사도들의 설교를 듣고 유대인들 공회가 보인 반응과 매우 유사하다. 행 5:36-39와 렘 26:17 이후를 서로 비교해 보시라.

그 뿐만이 아니다. 성경에서 에티오피아 내시가 나오는 장면도 사도행전 8장과 더불어 예레미야 38장이며, 둘 다 긍정적으로 나온다. 전자에서는 내시가 예수 믿고 구원을 받고 침례를 받으며, 후자에서는 내시가 예레미야를 구출해 준다! 하나님 역시 그 내시에게 보상을 해 주셨다(렘 39:16-18).

2. 예레미야서에서 대표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단어 내지 관용구로는

  • 칼, 기근, 역병 sword, famine, pestilence 3종 콤보 세트
  • 일찍 일어나 ...하기 rising up early and ...ing
  • backsliding(타락하는): 성경 전체를 통틀어 예레미야에서만 압도적으로 자주 쓰인다.
  • unpunished: “니가 아무 벌도 안 받고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문맥에서 몇 번 나온다. 이 단어는 잠언과 예레미야서에서만 나온다.
  • horrible thing: “그 땅에서 놀랍고도 무서운 일이 이루어졌도다.” (렘 5:30) 요즘 식으로 치자면 충격과 공포 정도 되겠다.

이 정도가 있다.

3. 이 책에는 했던 말 반복 패턴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예를 들어 예레미야서는 성경에서 주 우리의 의(The LORD our righteousness)라는 말이 나오는 유일한 책인데, 23:6과 33:16에 걸쳐 반복해서 등장한다.

상처를 조금만 고쳐 주고는 평안이 없는데 평안 드립을 치는 것: 6:14와 8:11에서 반복된다.
도벳에 있는 힌놈의 아들 골짜기는 앞으로 '살육 골짜기'라고 불릴 것이다: 7:32와 19:6에서 반복된다.
그 많은 기적이 행해졌던 이집트 탈출 사건보다도 바빌론 귀환 사건이 더 큰 기적이라고 알려질 것이다: 16:14-15와 23:7-8에서 반복된다.

여러 이방 민족들에게 심판을 선포하는 뒷부분에서도 49:18-20과 50:40,44-45처럼.. 뭔가 copy & paste 같은 느낌이 드는 표현이 심심찮게 발견되는데, 단어를 하나씩 일일이 대조해 보면 완전히 같지도 않고 약간은 차이가 발견된다. 10:12-16와 51:15-19도 헛된 우상들을 까는 문맥에서 동일한 메시지 copy paste이다.

그리고, 열왕기하의 끝부분은 예레미야서의 끝부분과 같다. (왕하 25:27-30; 렘 52:31-34)
한편 역대기하의 끝부분은 바로 다음 책인 에스라서의 첫부분과 같다. (대하 36:22-23; 스 1:1-2)
그러니 역사서인 열왕기와 역대기는 책 자체에는 저자에 대한 정보가 전혀 존재하지 않지만, 이 역시 각각 예레미야와 에스라가 기록한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다소 설득력을 얻는다.

4. 이 외에 예레미야서에서 인상적인 부분

  • '하늘의 여왕'이 언급돼 있으며(7:18, 44:17-18) 크리스마스 트리를 까는 듯한 대목(10:3-5)이 나오는 유일한 책
  • '마음이야말로 가장 사악하다'(17:19), '옛 길로 가라'(6:16) 같은 유명한 구절이 있음
  • 일명 하나님의 전화번호라고 불리는 렘 33:3이 예레미야서에 있음

성경의 여느 역사서와 선지서들이 그렇듯이 예레미야서 역시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에 대해서 혹독한 경고와 심판을 선포한다. 그러나 그렇게 멸망하고 끝인 게 아니라 이 하나님의 선민들은 나중에 반드시 회복되며, 이들을 징벌하는 도구로 쓰였던 민족들이야말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만하게 굴었다가 아예 씨도 안 남기고 처절하게 망한다는 것이 성경의 일관된 결론이다.

“쟤들? 어차피 자기네 신 제대로 안 믿어서 저 꼴 난 거잖아? 그러니 우리가 마음껏 막 대해도 되지”...를 성경은 절~대로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게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이스라엘 애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민족이니 꼴 좋지”이다. 반유대주의는 그 어떤 경우에도 성경적인 생각이 아니다. 우리 말고도 이스라엘을 싫어하고 괴롭히고 그들을 심판하는 도구로 쓰이다가 덩달아 망할 악역들은 차고 넘치니 크리스천이 그런 데에 가담하지는 말아야 한다.

오죽했으면 네가 낮과 밤 천체 운동을 뒤집어엎을 수 있다면 이스라엘 회복 약속도 뒤엎어버릴 수 있을 거라고까지 성경은 말한다. (렘 31:35-37)
바빌론으로 70년간 포로로 끌려가더라도 “일단 항복만 하면 니 목숨은 내가 절대 보장한다. 무슨 여행, 요양이라도 다녀 오듯이 잘 갔다 오너라”이다.

사람 인생에서는 잠깐 갔다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던 여행이 영원히 못 돌아오는 단절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1차 세계 대전, 6·25 전쟁 중의 1·4 후퇴, 그리고 이 승만 대통령의 하와이 요양 등..
그런데 바빌론 포로 귀환은 이런 추세를 정면으로 역행하는 사건이다. 이때는 이집트의 10재앙 같은 것도 없고, 모세 같은 넘사벽급의 걸출한 지도자가 없는데도! 그래서 이 사건이 모세의 기적을 능가하는 초자연적인 사건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예레미야서는 이렇게 생각할 거리가 많을 뿐만 아니라, 성경 말씀의 보존이라는 관점에서도 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책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 불과 쇠망치에다 비유하였으며(23:29), 말씀 변개(perverted the words of the living God)에 대한 언급(렘 23:36)이 있기 때문이다. 36장과 끝부분에서는 성경 자필 원본이 소실되는 장면도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4/10/24 08:24 2014/10/24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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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컴퓨터라고 하면 미국에서 발명되었으며 그 때문에 각종 명령어와 메시지도 기본적으로 죄다 영어이고, 한국어· 한글과는 굉장히 어울리기 힘든 범접할 수 없는 기계라고 여겨져 왔다. 지금처럼 컴퓨터의 자원과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고 국제화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말이다.

그런데 컴퓨터와 더불어 현대 과학 기술의 양대 결정체라고 불리는 자동차도 사정은 비슷한 듯하다. 비록 자동차는 컴퓨터처럼 정보를 다루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문자· 언어와 직접적으로 얽혀 있지는 않지만, 국산차라 해도 차의 내부와 외부에서 한국어· 한글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물론 우리나라가 초기에는 외제차를 수입해서 조립 판매하는 수준이고 또 내수보다 수출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만큼, 차이름 역시 알파벳으로 적고 발음하기 쉽게 지어야 한 건 사실이다. 그래도 국산차에까지 한글 표기에 너무 인색했던 건 아쉬운 점이다. '시발' 자동차만 해도 당당히 앞에다가 ㅅㅣ-ㅂㅏㄹ이라고 풀어쓰기로 당당하게 이름을 적어 놓지 않았던가?

(여담. 풀어쓰기에다가 장음 부호 '-'까지 덧붙인 것은 아무래도 한글을 좀 일본어 카타카나 스타일로 표기한 게 아닌가 싶다. 오늘날에는 단어가 비속어 욕설과 비슷하게 들리게 되어 난감해진 건 차치하고라도, 장음 부호 때문에 '시발'이 아니라 언뜻 보기에 '사발'처럼 보이니 더욱 안습하긴 하다..)

아무튼, 본인은 언제부터 영어 알파벳을 읽고 쓸 줄 알게 됐는지 기억이 확실치 않다. 하지만 아마 컴퓨터를 접하기 전에 자동차의 뒤에 적혀 있는 EXCEL, PONY, PORTER 등의 이름들을 읽으면서 알파벳을 자연스럽게 습득했을 가능성이 높다. 즉, 알파벳을 뗀 뒤에 컴퓨터를 자연스럽게 시작한 것이다.

그럼 우리나라에 순우리말로 명명된 자동차가 전혀 없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시발'은 우리말이긴 하나 한자어이기 때문에 순우리말은 아니고.
대표적인 차는 바로 지금으로부터 거의 30년 전에 생산되었던 대우 자동차의 '맵시'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맵시'가 고유명사로 쓰인 예로는 아래아한글의 글자 꾸밈/배너 그리기 프로그램인 '글맵시'와 더불어 저 자동차를 떠올리면 된다. 본인은 아주 어렸을 때 실물을 본 기억이 있다.

'맵시'의 후속 모델은 '맵시-나'이다. 여기서 '나'는 다른 접사가 아니라 '가나다' 할 때의 '나'이다. 즉, 요즘 같았으면 '맵시 II(투)' 또는 '뉴 맵시'인 셈인데, 후속 모델을 뜻하는 단어까지 우리말로 붙인 것이다.

사소한 사항인지는 모르겠지만, 기껏해야 배기량 1500cc를 채 넘지 않는 소형차가 타이어의 휠너트가 5개인 것이 인상적이다. 현대 차의 경우 2000cc급부터 시작하는 그랜저조차도 초기 모델은 4개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그랜저는 뉴 그랜저부터 5개로 올라갔고, 쏘나타는 EF까지 다 여전히 4개이다가 NF부터 5개로 올라갔다.

옛날에는 휠너트가 5개인 승용차를 보면 최하 중형 이상급의 고급차 외제차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도 그런 걸 느꼈다.

자,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순우리말 자동차는 '누비라'인데, 맵시와 누비라 모두 대우 자동차의 작명이라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에스페로의 후속 차종인 '누비라'의 경우,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차가 되라는 의미로 김 우중 회장이 직접 지은 거라고 한다. 오늘날의 열차 이름인 '누리로'와 비교된다.

현대/대우/기아에서 내놓은 승용차 중에서는 이 정도가 전부인 듯하고, SUV중에는 쌍용 자동차의 '무쏘'가 바로 코뿔소를 뜻하는 '무소'를 변형한 명칭이다. 스포츠스러운 느낌을 그럭저럭 잘 표현했다.

그리고 '야무진'이라는 굉장히 기발한 이름의 1톤 트럭이 있었다. 삼성 자동차에서 아주 초창기이던 1998년에 내놓은 물건인데, 경영난 때문에 얼마 생산되지는 못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르노 자동차에 인수되기도 전의 일이다.

복고풍 유행을 타고 순우리말 이름을 가진 자동차가 또 등장할 날이 올지는 모르겠다.

다음으로 주제를 바꿔서 관련 잡설을 늘어놓도록 하겠다.

1.
그러고 보니, 영단어이긴 하지만 '맵시'만큼이나 '엑셀'도 자동차 이름 겸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이름이다.
엑셀보다 로터스 1-2-3이 도스에서 훨씬 더 유명했던 옛날엔 엑셀이 자동차 이름으로 날리고 있었고, (1990년대 중반까지)

공교롭게도 자동차 엑셀이 사라진 뒤(1990년대 후반)부터는 스프레드 시트 엑셀이 Windows에서 세계를 평정했기 때문에 두 이름의 심상이 국내에서 딱히 크게 충돌하지는 않았던 거 같다.

2.
대우 그룹은 IMF 때 진작에 분해되어 버렸고 대우 자동차라는 정체성은 이제 버스에서나 볼 수 있으며, 김 우중 회장은 그저 몰락한 파렴치 경제사범 정도로나 치부되는 편이지만.. 이걸 마냥 비판만 하고 폄하만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삼성의 이 건희 회장이 1993년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휴대전화 불량품 화형식을 거행한 뒤 “처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 신경영을 선포한 것처럼, 김 회장도 '탱크주의'를 내세우면서 품질 혁신을 외쳤고 특히 1993년엔 세계 경영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선포했다.

이때 시장 개척을 매우 잘 해 놓은 덕분에, 동유럽권에서는 대우라는 기업에 대한 이미지가 지금까지도 매우 좋다고 한다. 독일에서 차 범근 축구 감독을 아직도 기억하듯이!
가령, 국내에서는 진작에 자취를 감춘 '씨에로' 같은 대우 차가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공장이 '우즈대우'라는 이름으로 국유화된 상태로 지금까지도 생산되고 있다고 한다.

김 회장이야 잘나가던 시절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야망 넘치는 저돌적인 자서전을 남긴 게 유명하다. 1989년이니 공 병우 박사의 자서전 <나는 내 식대로 살아 왔다>와도 출간 시기가 비슷하다.

또한 저 사람도 공 박사 같은 급의 덕후는 아니어도 워커홀릭 기질에다가 시간 최적화에 일가견이 있었다.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녔지만 비행기는 언제나 밤 시간대만을 이용했다고 한다. 번거롭게 숙소 잡을 필요 없이 비행기 안에서 수면과 이동을 동시에 처리한 뒤, 곧바로 일하려고.

사업을 하고 거대한 기업을 이끌면서 수많은 종업원들을 먹여 살리려면 저런 머리와 근성 정도는 있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현대 자동차처럼 기술 개발에도 신경을 쓰지, 무리한 확장에만 치중하다가 대우 그룹이 망해서 사라진 것이 일면 아쉽게 느껴진다.

Posted by 사무엘

2014/10/18 08:23 2014/10/18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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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에서 컬러로 (2)

사진술과 관련하여 옛날에 비슷한 주제의 글을 하나 올린 적이 있었는데, 이와 관련하여 오랜만에 내용을 좀 보충하도록 하겠다.

1. 컬러로 복원한 흑백 사진

사실, 흑백 사진을 컬러 사진으로 '복원'한다는 개념은 엄밀히 말해 존재하지 않는다. 아예 없는 정보를 원래대로 재구성하는 건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되돌아가지 않는 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흑백 사진에다가 그럴싸하게 인위로 색을 입히는 과정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건 마치 가사를 하나 줘 놓고 멜로디를 붙여 보라는 주문 내지
외국어 텍스트를 줘 놓고 번역(특히 직역이 아닌 의역 형태로)을 하라는 주문과도 같기 때문에,
작업하는 사람마다 제각각의 느낌이 나는 작품이 나올 수 있다. 흑백 사진이 찍히던 당시에 원래 색상이 저랬으리라는 보장은 당연히 없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도 외국의 한 예술가가 만들어 놓은 결과물은 꽤 그럴싸하다.
20세기 초· 중반을 살았던 옛날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까마득한 옛날을 산 것 같아 보이지 않는 효과가 난다.
그 옛날 모습을 시각적으로 느끼는 방법으로는 (1) 흑백 사진, (2) 컬러 그림 아니면 (3) 그 시절을 대충 재현해 놓은 실사 영화 정도가 다일 텐데 (4) 채색한 흑백 사진은 그 중간에 속하는 새로운 영역인 것 같다.

참고로 사진이 찍힌 최초의 전쟁은 1850년대의 크림 전쟁이며, 1860년대의 미국 남부 전쟁도 사진이 전해진다. 물론 흑백. 그러나 이때는 노출 시간이 길었던 관계로 교전 중의 장면은 찍을 수 없었고, 전쟁이 끝난 뒤의 풍경이나 병사들이 작정하고 포즈를 취한 사진만을 찍을 수가 있었다.

2. 처음부터 컬러로 찍힌 고전 사진

우리나라에서는 196, 70년대의 박 정희 대통령 시절만 해도 컬러 사진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없다는 얘기는 아님).
하지만 예전 글에서도 썼듯이 컬러 사진 자체는 생각보다 굉장히 일찍부터 존재했다. 박 정희가 아니라 이 승만 대통령도 컬러 사진이 존재하며 2차 세계 대전 시절의 히틀러· 에바 부부도 컬러 사진이 있다.

초창기의 컬러 사진으로 유명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전에 제정 러시아 말기에 세르게이 프로쿠딘-고르스키라는 작가가 남긴 사진들이다.

단, 시대가 시대인지라 저 사람은 RGB별로 세 장의 풍경 사진을 찍어 놓기만 했지, 그걸 실제로 현상해서 컬러 사진이 완성된 걸 보지는 못하고 죽었다고 한다.
저 사진들은 원판을 토대로 훗날 합성해서 만들어 낸 이미지이니 이거야말로 '복원'이라는 표현이 말이 된다. 100년 전에 3원색 합성까지 완료된 컬러 사진 현물이 지금까지 저렇게 선명하게 전해져 온다는 뜻은 절대 아님. 그렇게 긴 시간이 흘렀으면 사진 자체가 누렇게 바래 버렸을 것이다.

후처리 과정을 거쳤다고 해도 그래도 흑백 사진 채색처럼 인위적인 해석이 가미된 것은 아니니 흥미진진하다. 저것은 그림도 아니고 재연이 아니라 진짜 100년 전의 사람과 풍경이었다니!
참고로 12번. '츄소봐니아 강' 사진에서 강물에 기름띠 같은 게 줄줄 보이는 이유는.. RGB별로 사진이 찍히는데 간격이 길어서 시시때때로 변하는 물결 모양으로 인한 불일치가 생겼기 때문이다.

1910~1911년이면 아문센과 스콧 일행이 남극에 갔던 시기와도 비슷한데 이때 남극의 모습이 컬러로 찍혔으면 어땠을까 싶다. 하지만 그 극지에 컬러 사진 촬영을 위한 막대한 양의 장비를 들고 다니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이다.

한편, 글 주제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사진 하니까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덧붙인다.
요즘처럼 영상 자료가 넘쳐나는 “seeing is believing” 시대에 실물이나 합성 사진이 아니고, 그렇다고 CG도 아닌 진짜 생그림으로 어떤 사건을 묘사했다고 하면.. 그건 십중팔구 뭔가 안 좋고 심각한 내용이다. 특히 인권 유린과 관계가 있는 것들이라는 걸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어린애가 자기를 성폭행한 가해자를 묘사했다거나, 탈북자들이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대해 증언한 것, 파륜궁 수련자에 대한 고문 장면 등.
사진을 남길 수 없는 곳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이고, 그렇다고 CG로 재구성을 하기에는 민망하고 돈도 안 되고 인권· 초상권이 침해되는 영역이니까.

물론, 난징 대학살이나 일본군 생체실험, 나치 수용소 같은 건 사진이 전해지긴 한다. 그건 그 집단이 정말 전부 맛이 가 있었으니까 가능한 일이고, 그나마 컬러 사진이 충분히 보급되기 전의 옛날 이야기이다. 인류 역사상 그런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할 터이나 현실은 지구 어디선가 아직도 그런 일이 있는 듯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4/10/10 08:17 2014/10/10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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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카메라 이야기

디지털 카메라는 20세기 말~21세기 이래로 세상의 문화 풍조를 바꿔 놓은 혁신적인 물건임이 틀림없다.
그 전까지는 컴퓨터 화면에서 사진이라는 걸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비디오 디스플레이 기술은 더 오래 전에 트루컬러급으로 발전했지만, 실사 사진을 얻는 방법은 TV 화면 수신이라든가 스캐너 정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뭔가 실사급의 그래픽을 자랑하는 게임이 상대적으로 더욱 신기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랬는데 지금은 정말 개나 소나 아무나 손쉽게 주변으로부터 사진을 얻을 수 있으며, 이를 혼자만 저장해 놓고 보는 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방방곡곡으로 알리고 퍼뜨릴 수 있게 됐다. 정지 사진으로도 모자라서 동영상까지 그 자그마한 기계로 가능하니 어지간한 소형 캠코더 역할까지 한다. 이로써 1인 미디어, UCC 같은 게 출현 가능해졌다. 그리고 필름 카메라와 카세트/VHS 같은 아날로그 시청각 매체는 급속히 퇴물로 전락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동영상은 용량이 크고 통신 트래픽이 방대한 관계로 인터넷 상에 올릴 데가 마땅찮았다. 그래서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동영상은 깨진 링크도 무진장 많았다. 그러나 유튜브 같은 전세계급 동영상 포털이 등장하면서 이마저도 옛말이 되었으니 참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인터넷에서 동영상을 하나 보려고 Media Player ActiveX 컨트롤을 까네 마네 하던 시절도 참 아련한 추억이 돼 간다. 플래시가 버전 7부터 flv 재생 기능이 추가된 것이 한 10여 년 남짓 전의 일인데, 이게 또 세상을 바꿔 놨다. 당장 유튜브가 이 기술을 기반으로 출현했으니 말이다.

본인이 최초로 사용해 본 디지털 카메라는 2002년인가 삼성 디지맥스라는 100만대 화소의 완전 초창기 골동품이다. 그때 이후로 디지털 카메라는 화소 수 증가 경쟁이 시작되었다. 수 년 뒤에 구입한 다음 카메라는 300만대의 화소에 간단한 무음 저품질 동영상 기능이 추가되었고, 그것 다음에 구입한 카메라는 이제 동영상까지도 그럭저럭 MPEG-2 급의 화질은 나오는 물건이 되었다.

이제는 어지간한 보급형 중저가 디카 급의 사진과 동영상은 카메라를 들고 다닐 필요도 없이 스마트폰만으로도 척척 만들어 내는 세상이 된 지 오래다. 그러니 종래의 디지털 카메라는 폰카로는 만들 수 없는 DSLR급의 고퀄 등급에서나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사진 분야에는 워낙 전문가 매니아들이 많으며, 고성능과 저성능 장비의 퀄리티 차이도 충분히 크기 때문에 그 업계가 망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본인은 원래는 그런 분야에 전혀에 가깝게 관심이 없었지만, 그래도 철도 촬영 때문에 카메라와 사진 같은 쪽에 그래도 일말의 식견은 생겨 있다.
성능이 안 좋은 카메라는 다음과 같은 한계가 존재한다.

※ 시야

1. 아무래도 시야각이 사람 눈보다는 작은 관계로, 넓은 장면을 한번에 담기 어렵다. 본인은 미국 가서 그랜드 캐년을 보면서 이걸 절실히 느꼈다. 이래서 파노라마 사진이라는 테크닉이 존재하는구나!

2. 또한 사진의 가장자리로 갈수록 상이 둥글게 휜다. 본인은 철길을 촬영하면서 아래의 레일이 둥글게 휜 걸 보고 이런 현상을 느꼈는데, 초소형 몰래 카메라 같은 건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한 걸 볼 수 있다.
사진이라는 건 컴퓨터그래픽에서 다루는 것처럼 사물들이 딱 rotation, projection을 거쳐서 정확하게 2차원 평면에 그려지는 게 아니라 아무래도 0차원의 점에 속하는 렌즈가 빛을 모으는 형태이다 보니.. 중심에서 먼 곳일수록 휘는 게 불가피한 듯하다. 옛날에 브라운관 TV/모니터만 해도 평면을 만들어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 빛을 모으기

3. 카메라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빛을 모으는 기능은 기계가 사람의 눈보다는 확실히 부족하다.
그래서 야경, 밤하늘의 별 내지, 명암 윤곽까지 보이는 선명한 보름달을 찍으려면.. 어지간히 좋은 장비와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닐 것이다. 노이즈를 감수하고라도 노출 시간도 굉장히 길게 잡아야 한다.

사실, 태양이나 목성, 토성 같은 천체의 사진은 실제로 사람이 우주 탐사선을 타고 밖으로 나간다고 해서 당장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다. 태양의 경우 어마어마한 넘사벽급으로 광량을 줄여서 찍은 것이고, 반대로 외행성들은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어마어마하게 빛을 모으고 또 모아서 보정하여 그런 이미지를 얻은 것이다.
광량을 그렇게 줄였기 때문에 태양이 그저 노랗게 보이고 흑점이 검게 보이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행성 관측하듯이 똑같은 광량으로 보면 태양은 흑점이고 뭐고 없이 그저 똑같이 맹렬한 흰 빛으로 보일 뿐이다. 그리고 눈이나 카메라는 곧바로 상한다.

4. 사진을 많이 찍어 본 분들은 이미 충분히 경험하셨겠지만,
디카는 집이나 교통수단 안에서 “내부와 창밖 외부를 동시에 균형 잡힌 명도로 찍기”가 몹시 어렵다! 어느 쪽에 focus를 주느냐에 따라 창밖이 너무 밝아지거나 내부가 너무 어두워지기 때문이다. 디카만 그런지 필카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이것을 사진 용어로는 '명암차'라고 하며, 좋은 카메라는 그 명암차의 dynamic range도 크다고 한다.

※ 흔들림 보정

5. 예기치 않은 흔들림 때문에 사진을 망치는 일 자체는 어쩔 수 없다. 허나, 이게 흔들린 사진이라는 걸 디카의 조그마한 preview 화면만으로는 확대해서 봐도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걸 애초에 알았으면 현장에서 촬영을 다시 했을 텐데, 출사를 다 끝내고 PC에서 사진을 큼직하게 확인한 뒤에야.. “에이 흔들렸잖아!” 이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blur된 이미지를 복원하고 카메라 차원에서 흔들림 보정 기술까지 등장해 있으니 이 역시 장비에 돈을 많이 투자하면 극복 가능한 장벽이긴 하다. 패턴인식 기술을 동원해서 “이건 흔들린 걸로 의심되는 사진입니다”를 감지하는 것도 어떠려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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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카메라의 특성을 알면, 사람의 눈이 얼마나 정교하고 대단한 신체 기관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바닥과 평행한 구도로 반듯하게 사진을 찍으려면 삼각대도 필요하고 이것저것 필요한 액세서리들도 추가된다.
또한, 정지 사진을 찍는 건 마치 사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셔터는 방아쇠이고, 격발 시 흔들림 현상이 없으려면 영점을 잘 잡아야 할 테니까.

Posted by 사무엘

2014/10/04 08:29 2014/10/04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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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지질학자 클레어 패터슨 (1922-1995).
굉장히 유명한 업적을 둘 남긴 것치고는 대중적으로 굉장히 덜 알려진 사람이다. 단, 과학사 내지 과학과 사회 윤리 이런 쪽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미 이름을 들어 보셨을 것이다. 그는,

(1) 방사성 원소 측정법을 이용해서 지구의 나이가 45.n억 년임을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정확도로 규명하였다. 이 연도는 오늘날까지 중등학교 과학 시간에도 가르쳐지고 있으며,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보다 더 정확한 값은 나오지 않았다. 쉽게 말해 이 분야에 끝판왕 급의 업적을 남겼다.

(2) 그리고, 자동차 유연휘발유에 첨가되는 테트라에틸납 성분이 대기 중의 납 농도를 증가시켜 사람의 건강을 치명적으로 해친다는 것을 규명하였으며, 전세계적으로 유연휘발유를 퇴출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다.

young earth creationism을 주장하는 진영(지구의 나이가 6천 년..!)에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을 연구를 하던 중에 지구와 인류를 구한 업적을 이뤘다는 게 참 특이하다.

조금이라도 오차가 있어서는 안 되는 실험 결과가 자꾸 어긋나는 게 이상해서 조사를 해 보니..
“공기 중의 미세한 납 성분이 실험 진행을 방해하고 있다 → 이거 아무래도 자동차 배기가스 때문인 거 같다 → 이건 사람 건강에도 치명적이다” 순의 발견까지 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의 행적은 유연휘발유를 제조· 판매하던 당대의 업계 종사자들로부터는 미움도 많이 받았다. 당연히 “저건 일반적인 빈도를 벗어나지 않는 산업재해일 뿐이며 딱히 유연휘발유가 해로워서 그런 건 아니다” 식으로 실드를 치고 치부를 은폐하려 노력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국제 추세에 맞춰 1987년 7월부터 무연 휘발유가 첫 도입되었으며, 1993년 1월부터는 유연 휘발유의 유통이 전면 금지되었다. 1987년 7월이면 민주화 항쟁에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디젤 동차 도입 같은 굵직한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그 시기에 무연 휘발유까지 등장한 거구나!

그래서 그 과도기에는 주유소에 유연 휘발유/무연 휘발유 구분이 따로 있었고, 새로 생산된 차들은 반드시 무연 휘발유만 넣어야 한다는 안내문 스티커가 붙곤 했다. 본인은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다시 패터슨 아저씨 이야기로 돌아오면,
지질학에서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6500만 년 전에 공룡이 멸종했다” 같은 식으로 맨날 'n년 전'이라는 말을 쓴다.
그때 '전'의 기준이 되는 지질학적 기준 시기는 “1950년 1월 1일”이라고 학계에서 정식으로 정했다. 방사선 원소 측정법이 정착하고 지구의 나이가 저런 식으로 규명된 때가 1950년대이기도 해서 말이다.

영어로는 before present를 줄여서 65 million years BP 이런 식으로 쓰는데, 이는 1950년으로부터 6500만 년 전이라는 뜻이다. 저 때가 컴퓨터의 유닉스 연대기의 기준인 1970년만큼이나 나름 학문적인 의미가 큰 해인 셈이다.

난 예전에도 글로 썼듯이 지구와 우주의 나이는 장구히 길고, 인류와 현존하는 생명체들의 내력만 6천여 년 남짓이라고 믿는다. 간극 하나만 설정하면 과학 얘기와 문자적인 6일 창조 성경 교리가 싹 깔끔하게 풀린다. 이건 어거지가 아니라 성경 자체가 교리적으로 그런 간극을 지지하고 있다. 6일 창조가 창조의 전부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 쪽으로든 성경 쪽으로든 젊은 우주/지구를 믿지 않는 진영에서는 창조 과학회를 굉장히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전자야 두 말할 나위도 없이 과학적인 연구 방법론도 모르는 사이비 유사과학이라고 까고, 후자 진영은 성경 말씀을 어줍잖은 과학으로 풀어서 교만한 짓거리를 한다고 깐다.

본인은 내 견해와 다르다고 해서 창조 과학회를 필요 이상으로 싫어하거나 매도하지는 않는다. 6천여 년 전에 6일 만에 모든 게 끝났다는 식으로 믿으면 뒤끝 없고 뭔가 기독교스럽고 깔끔해 보이긴 한다. 아담이 마치 성인 형태로 곧바로 창조되었듯이, 지구와 우주도 겉보기로만 오래 된 듯이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합리화를 해 버리면 뭐 답이 없다. 더 논쟁을 할 수가 없다.

단지 본인은 지구와 우주는 아담과 같은 부류는 아니라고 믿는다. 수많은 화석과 지층이 노아의 홍수만으로는 도저히 생겨날 수 없고, 지구 지형과 각종 천체가 수억~수십억 년이라는 장구한 기간 동안 생성되고 소멸된 증거가 명백히 존재하는데 하나님이 다른 것도 아니고 그걸 왜 훼이크를 칠 필요가 있는 걸까?

그런 직감에 근거하여 본인은 과학과 신앙의 관점에서 가장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걸 믿는다. 가령, 오래 전에 멸종하여 화석이 된 고생대 실러캔스는 옛 세상에서 있었던 놈이고, 오늘날 발견된 실러캔스들은 6일 창조 때 이미 있던 그 종류대로(after his kind) 다시 만들어진 놈이라는 식이다. 단지 인류는 아담이 최초이며, 소위 유인원들은 아예 원숭이이거나 아니면 실제로는 인간도 원숭이도 아닌 다른 생물인 것이다.

끝으로 여담이지만, 클레어 패터슨은 이름만 보고는 여자로 오인받기도 할 정도였다고 한다. 여배우 클레어 데인즈의 철자하고는 글자 하나 차이이다. Clair / Claire 옛날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이 문득 떠오르는구나!

Posted by 사무엘

2014/09/22 19:37 2014/09/22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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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범 수용소의 참상 같은 것보다는 덜 심각한 분위기로 비교적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자료들이다.

1. KBS 박 진희 북한 전문 기자

작년 말에 북한에서 장 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권좌에서 쫓겨나고 숙청당하던 당시에, 아주 이색적인 기자가 TV 전파를 타서 눈길을 끌었다.

박 진희 기자는 북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훗날 탈북하고, 일본을 거쳐서 2008년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한다. 빡세게 교정 훈련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구수한 평양 사투리가 아주 신기하며 인상적이다.
정치범 수용소 출신인 강 철환, 그리고 김일성 대학 출신인 주 성하 씨는 신문 기자인 반면 저 사람은 방송 기자이다. 게다가 여성. 이런 경우는 최초이다.

이 사람을 개인적으로 인터뷰한 기사도 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2. 김 정일 사망 발표

그 당시 TV에서 한동안 모습을 안 비추는 것 같던 리 춘히 아나운서가 검은 상복을 입고 완전 슬픈 표정으로 나타났다.
“위대한 령도자 뽀그리우스 동지께서 2011년 12월 17일 8시 30분에 현지지도의 길에서 급병으로 서거하셨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알린다. ㅠ.ㅠ”

17년 전에 김 일성이 죽었을 때도 보도 스타일이 저랬는가 궁금하다.... 가 아니라 당연히 그때도 온갖 미사여구로 혹부리우스의 죽음을 미화하고 애도하고 난리가 났었다.

3. 북한 관광을 온 외국인

굉장히 흥미로운 자료이다. 저 외국인들은 북한을 방문한 건 둘째치고라도 어떻게 이 정도 퀄리티의 영상을 녹화해 갈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아마 몰래 북한 정부에다 달러를 엄청 많이 줬지 싶다.

도착하자마자 북한 출신의 통역 가이드가 붙는다. 외국인이 North Korea라고 말하자 가이드는 곧바로 DPRK라고 표현을 교정한다. 아시다시피 북한에서는 자기 나라를 가리킬 때 '북'과 '한'이라는 형태소를 모두 싫어하기 때문이다.
쟤들은 김 일성 동상 앞에 헌화와 참배-_-를 한 뒤 전쟁 박물관과 심지어 판문점까지 관광을 한다. (2011년이라 아직 김 정일 동상은 없던 시절.) 북한의 위치에서 휴전선 이남의 태극기를 바라보는 장면은 마치 달에서 지구를 보는 것만큼이나 굉장히 흥미롭다. 국내 매체에서는 좀체 볼 수 없는 시점이니 말이다.

4. 3차 핵실험 보도

“조선 중앙 통신사 보도! 제 3차 지하 핵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
저 봐라.. 핵실험 한번 했다고 앵커는 펄럭이는 인공기를 배경으로 눈 부릅뜨고 목에 힘 주고 얼마나 의기양양하게 포고를 하는가? 병맛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북한 용어를 빌리자면 참 '기백 넘치는'(?) 말투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저 뉴스 보도 중에도 “우주를 정복한 그 정신 그 기백으로”라는 표현이 있다.

저런 북한 특유의 호전적인 웅변· 선동 말투는 한반도의 공산주의자들이 진작부터 개발해서 써먹어 왔지 싶다. 북한은 순수한 의미의 공산주의 국가는 아니지만, 공산주의자들이 사용한 온갖 추악한 거짓 선동 전술은 여전히 그대로 활용하고 있는 건 변함없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4/09/18 08:27 2014/09/18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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