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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행적

대부분의 네티즌들과는 달리, 미국의 보수 우익 크리스천들은 현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를 굉장히 싫어한다.
그 이유인즉슨, '겉으로는 크리스천을 표방하고 있지만 정신은 골수 이슬람이다', '복지와 분배라는 허울 좋은 명분 하에 국고를 펑펑 축내고 있다', '미국을 점점 친아랍 반기독교 반이스라엘 노선으로 교묘하게 몰아 가다 대차게 나라 말아먹을 것이다' 등등.

오바마를 싫어하는 사상적 배경이 뭔지 대충 이해가 될 것이다. 걔네들은 부자 내지 사유 재산을 바라보는 시각이 한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실, 미국처럼 청부 사상을 표방하는 게 원래는 이상적이지..;;) 정말로 사회 구조가 삐딱하게 돼 있어서 국가가 부자에게서 세금 팍 걷어서 뭘 좀 하겠다고 하면, 그런 발상조차도 곧바로 공산주의, 빨갱이로 와전될 지경.

우리나라에서 생각하는 통념과는 달리, 걔네들은 총기 금지 정책도 극렬 반대한다. 총 들고 자기 집 지키는 건 헌법에도 명시된 아주 신성한 권리인데, 그렇게 총을 빼앗기고 나서 다음엔 성경을 빼앗길 거라고까지 우려한다. 아무리 군 복무 중에 사고로 죽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군대를 없앨 수는 없듯(그리고 한국은 아마도 징병제도), 그들은 총에 대해서도 그런 정도로 생각한다. 뭐, 미국은 성경적인 기반 위에서 정치가 안정되다 보니, 개인 총기가 허용되고도 소말리아 같은 꼴이 안 난 건 대단하긴 하다.

어쨌거나, 그들이 오바마에 대해서 보이는 혐오감의 수위라든가 사상적 배경 등은 우리나라로 치면 일부 계층이 주장하는(던) '노 무현은 빨갱이다'와 굉장히 비슷한 구석이 있다. -_-;;

솔직히 본인은 보통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만치 오바마를 좋아하지도 않고, 보통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만치 부시를 싫어하지도 않았다.
뭐, 몇 년간 오바마를 지켜보니까 그도 일부 계층에서 그렇게 오버하는 것만치 나라를 막장으로 다스리는 건 아닌 거 같다만, 그래도 잘은 모르겠다.

다만, “오바마가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으면 미국을 상대로 테러를 저지르겠다”라고 협박을 하는 친구들도 있는 걸 보면 오바마가 골수 이슬람이 아닌 건 확실한 것 같다. -_-;; 그렇다고 그가 구원받은 독실한 크리스천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겠지만. 이 정도가 그나마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평가가 아닌가 싶다.
미국에서는 일단 정치 생명이 유지되려면 크리스천들로부터 표를 받아야 하고, 자기 소신과는 상관없이 킹 제임스 성경에다가 손을 얹고 선서를 해야 하니까...;;

이런 사실들이 의미하는 게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조율· 통솔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지도자는 늘 자기 소신대로만 행동할 수는 없다.

독재자의 딸-_-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박 근혜 씨. 서울 현충원에서 아버지의 묘지를 참배해서 특정 계층으로부터 욕 얻어먹었지만, 나름 호남 지방에 가서는 아버지의 잘못에 대해 사죄-_-도 해서 이번엔 반대 진영으로부터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전에 내가 예를 들기도 했지만, 노 무현 전대통령이라고 해서 한미 FTA나 이라크 파병 같은 이슈에 대해 진보 진영 입맛에 맺는 결단을 내릴 수는 없었다.

이 명박 대통령은 재임 중에 종교 편향 행위(?) 때문에 욕 많이 얻어먹었지만, 선거 유세하던 시절에만 해도 법당에 가서 불상 앞에서 절까지 한 적이 있으며, 그때는 당연히 크리스천들로부터 까였다. -_-;;

미국의 9· 11 테러와 심지어 카트리나 같은 대재앙이 미국이 아랍 국가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이스라엘 땅을 떼어 주고 유대인들을 몰아낼 때마다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의 주장이 맞다면, 이 두 사건이 언제 일어났나? 그 이름도 유명한 조지 W. 부시 대통령. 정치는 좀 못했어도 오로지 기독교 신앙에 충실하다는 메리트 하나 덕분에 재선까지 성공한 양반의 재임 시절에 일어난 일이다. 동성애와 낙태의 합법화에 반대하고 사형 제도에 찬성했다 하더라도, 저런 국제적인 이슈까지 독단적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일련의 현상과 비슷한 맥락으로, 본인은 오래 전부터 성경의 이 구절이 굉장히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해 왔다.

요담이 자기 아버지 웃시야가 행한 모든 것에 따라 주의 눈앞에서 올바른 것을 행하였으나 주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백성은 여전히 악하게 행하였더라. (대하 27:2)

왕은 선한 통치를 하려 하는데 정작 백성들이 악했다니. 이 얼마나 생뚱맞은 진술인가!
세상의 거의 모든 역사 기록이나 문학 작품에는 악한 통치자 밑에서 신음하는 백성들만 나오지 그 반대의 경우는 찾을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그런 정서가 더 심하다. 나라가 어려울 때는 맨날 민초들이 힘을 합쳐서 외적을 물리쳤다고만 하고...

그러나... 정말 객관적으로 보면 역사상 악한 통치자만큼이나 악한 백성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악한 통치자도 그런 악한 백성 가운데서 나오게 마련이다.
악덕 기업주만 있는 게 아니라 무능하고 게으르고 악한 직원들 때문에 망한 사장도 엄청 많을 것이다. 진실은 신만이, 하나님만이 알고 있겠지만.
내가 성경이 좌우 이념에 치우치지 않으며, 인간의 입맛과 사고방식에 맞춰 기록된 책이 아니라고 인정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사상, 종교, 색깔, 이념 때문에 사회가 분열되고 온갖 다툼과 비극이 발생해 왔다고들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걸 싹 없애고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생각, 그리고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게 옳다는 생각이 '실용'의 탈을 쓰고 팽배하는 건.. 더욱 위험한 현상이 아닐지.

그래서 오늘날의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수준에 맞춰 더욱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박쥐, 기회주의자처럼 돼 가는 것 같다. 그러면서 정부와 시민 사이의 불신풍조는 더욱 심해질 것이고.. -_-
차라리 분명한 소신과 색깔이 대접받던 시절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뭐 옛날에 그런 이념도 어차피 다 폐단과 부작용을 경험하고 나서 트렌드가 오늘날처럼 바뀐 거겠지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1/06/12 08:53 2011/06/12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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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여러 잡설

※ 서울 3대 전철 회사들의 전동차에서 방영되는 동영상의 주된 테마

서울 메트로: 2005년부터 도입된 2호선 신형 차량을 주축으로 하여, 차내 동영상 방송 트렌드를 가장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자기네가 전국에서 역사가 제일 긴 지하철 회사라는 걸 강조하면서 옛날 흑백 사진도 보여주고, 지금까지 수송 거리 n억 킬로미터, 수송 인원 n백억 명.. 같은 걸 자랑한다.
그리고 대국민 캠페인을 제일 열심히 한다. 무리해서 승차하지 말라, 내릴 사람은 전역에서 미리 내릴 준비를 하라, 두 줄로 서라 등.. 테러· 화재 시의 대처 요령 같은 걸 계속해서 방영한다. 이런 분위기는 오로지 서울 메트로 구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코레일: KTX를 운행하는 전국구 회사인 만큼, 철도 자체가 친환경 녹색 교통수단이라는 걸 귀가 따갑도록 강조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를 이용하면 나무 n그루를 심는 효과가 있습니다' 드립. 그러면서 가끔 철도 안전 캠페인도 틀어 준다. 컬러 모니터는 1호선 같은 주류 노선에서는 보기 힘든 편이며, 중앙선· 경춘선· 경의선· 광명 셔틀 같은 곳에서 더 쉽게 접할 수 있다.

도철(SMRT): 역사가 가장 짧고 구세대 LED 전광판을 가장 먼저 도입한(당대엔 이게 롤지나 플랩 표지판에 비해서 최신형이었음) 회사인 만큼, 컬러 모니터의 도입은 가장 늦다. 하지만 요즘 심심찮게 컬러 모니터로 시설이 교체되고 있는 중이다. 도철이 보여주는 건 맨날 자기네 기술력 자랑뿐이다. 자체 전동차 SR-001은 절대 빠지지 않으며, 음 사장님이 인건비 절감 고효율 경영을 위해 이런 기술을 개발하고 이런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걸 홍보하느라 바쁘다.
도철은 과거에 지하철 벽 프로젝션 광고를 가장 먼저 시도했고, 심지어 주행 중 터널 홀로그램 광고라는 엽기적인 시스템도 도입했으며, 서울 3대 전철 회사 중 스크린도어를 가장 먼저 전구간 완성한 회사이기도 하다.

Excercise: 서울 1기 지하철(1~4호선)과 비교했을 때, 2기 지하철(5~8호선)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시스템을 모두 고르시오.
(1) ATC 신호 시스템
(2) LED 전광판
(3) VVVF 인버터
(4) 1인 승무
(5) 직· 교류 겸용 전동차
(6) 콘크리트 노반
(7) 장대 레일

※ ABB? ABBA?

잘 알다시피 서울 지하철 5호선 전동차의 VVVF 인버터는 ABB라는 유럽계 회사(스웨덴)의 제품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1970년대의 유명 팝송인 Dancing Queen을 부른 가수 그룹의 이름은 ABBA이고 이들의 국적은 스웨덴!
Dancing Queen과 서울 지하철과의 묘한 연결 고리가 생기는 게 느껴지지 않는가? ㄲㄲㄲㄲㄲㄲ

※ 아래아한글 2007

아래아한글 2007은 2006년 한글날에 출시된 후 2010년 3월에 차기작인 2010이 출시될 때까지 3년 반 가까이 지냈던 메이저 버전이다. 그렇다 보니, 두 버전 사이의 간극은 MS 오피스 2003과 2007의 간극에 맞먹는다(2003년 가을 ~ 2007년 초).
그 동안 2007은 업데이트가 굉장히 많이 뿌려졌으며, 2007 RTM과 지금의 2007은 가히 어마어마한 차이가 존재하게 되었다.

단순히 보안 패치 같은 보이지 않는 안정성 차이뿐만이 아니라..
F4 구역을 잡은 상태에서 Ctrl+Home/End가 동작하냐 안 하냐
키매크로와 스크립트 매크로가 동작하냐 안 하냐 같은 당장 눈에 띄는 기능 차이도 적지 않다
.
그렇기 때문에 아래아한글 2007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려면 “님, 버전 번호가 뭔가요? 최신 패치는 설치하셨나요?”부터 물어 봐야 할 지경이다.
About 화면에 아직도 (c) 2006이라고 적혀 있는 아래아한글 2007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 원격 터미널 클라이언트

컴퓨터 프로그램에는 크게 다음과 같은 유형이 있다.
1. CPU 사용량의 편차가 크지만, 어쨌든 오랫동안 끊임없이 켜져 있고 돌아가야 하는 프로그램: 서버
2. 끊임없이 CPU를 혹사하면서 실시간으로 결과를 만들어 내는 프로그램: 게임, 시뮬레이션
3. 사용자에게 클라이언트 상으로 뭔가를 오랫동안 표시하고 보여주는 게 목적인 프로그램: 프레젠테이션, 동영상
4. 로컬 환경에서 사용자의 응답에만 그때 그때 반응하는 프로그램: 대부분의 GUI 기반 애플리케이션

일반적으로 개인이 PC에서 다루는 프로그램의 유형은 4가 대부분이다 보니, 컴퓨터는 사용자가 오랫동안 키보드나 마우스를 건드리지 않으면 화면 보호기를 돌리고, 더 시간이 흐르면 컴퓨터의 전원을 부분적으로 차단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대부분의 경우 나쁘지 않은 전략이며, 절전과 환경 보호까지 달성할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전세계에서 동작 중인 수많은 컴퓨터들이 잡아먹는 전기는 가히 엄청난 양이며, 이래서 IT 산업이 친환경적이지 못하다는 비판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1~3이 돌아가고 있다면 사용자가 건드리지 않더라도 컴퓨터가 꺼져서는 안 된다. 특히 3은 CPU 부하는 그리 크지 않은 것에 비해 모니터가 절대로 꺼져서는 안 된다는 특이점이 존재한다. 윈도우 운영체제에서 3과 같은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이라면 WM_SYSCOMMAND의 SC_MONITORPOWER와 SC_SCREENSAVE 메시지에 별도로 응답하여, 내가 실행되고 있는 동안은 화면 보호기나 절전 모드가 동작하지 않도록 운영체제에다 요청을 해야 한다.

FTP나 웹브라우저 같은 프로그램은 다운로드가 진행 중일 때는 모니터는 끄더라도 컴퓨터는 안 꺼지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PuTTY 같은 원격 터미널은 어떨까? 통신 기능은 있지만 딱히 대용량 파일 전송에 최적화돼 있지는 않다. 그냥 프롬프트에서 놀고 있을 때는 장시간 무응답 시 접속을 끄고 컴퓨터도 끄게 할 수 있지만, 서버 접속하여 명령줄로 한창 긴 빌드를 걸어 놓은 상태인데 컴퓨터가 그렇게 정신줄을 놓아 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두 상태를 구분하는 방법이 있어야 할 것 같다.

※ 미묘한 개념 차이

퍼센트는 비율을 나타내는 매우 유용한 단위이다.
그런데 60%라는 수치가 30% 증가하면 78%가 될까, 90%가 될까?
퍼센트에도 퍼센트가 적용된다고 보면 60%의 30%에 해당하는 18% 증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퍼센트 수치가 문자 그대로 덧셈으로 증가했다는 차이를 나타낼 때는 '퍼센트 포인트'라는 단위를 쓴다. 속도로 치면 가속도에 해당하는 개념 되겠다.

따라서 2%이던 실업률이 3%가 되었다면, 실업률은 겨우 1% 포인트 증가한 것이지만,
무려 50%나 증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통계는 수학적이고 객관적이지만, 이를 이용한 말장난 숫자놀음에 놀아나지는 말아야겠다.
'흉악 범죄자 싸이코패스들은 100% DHMO라는 위험한 약물에 중독되어 있으며 이걸 매일 마시지 않으면 못 산다' 같은 루머조차도 과학의 이름으로 퍼뜨릴 수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또 비슷한 예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성경을 많이 찍어낸다고 들었는데, 성경뿐만 아니라 외국의 화폐도 굉장히 많이 찍어서 수출한다.
우리나라가 6· 25 당시에는 일본에서 임시로 돈을 찍어서 쓰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우리나라의 조폐 기술이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듣자하니 EU 유로화 화폐를 거의 전량 한국에서 만든다고 함.

그런데, 돈을 얼마짜리만치 만들어서 수출했다고 하면, 이건 우리나라가 챙긴 액수(제조 원가+이윤)를 말하는 걸까, 찍어낸 돈 자체의 액면가를 말하는 걸까?
이것도 마치 퍼센트와 퍼센트 포인트의 차이 같은 미묘한 개념 차이가 발생하는 영역이 아닐 수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1/05/27 19:48 2011/05/27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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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

<아Q정전>(阿Q正傳)이라는 이름도 참 괴상한 소설을 본인은 중· 고등학교 시절에 접했다.
주인공인 아Q는... 그야말로 정신과 가치관이 병들 대로 병들었으면서 자기가 병들었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비운의 주인공이다.

그는 빈곤층 하층민에다 요즘 시쳇말로 잉여인간 빵셔틀-_- 동네 북인데.. 아예 대놓고 백치 아다다 같은 타입이라거나 불쌍하고 착해 빠진 인물이라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다.
뭔가 오타쿠 내지 찌질이 같은 이미지가 느껴지는 한편으로, 자기 자신도 기회주의적이고 자기보다 더 약한 사람에게는 잔인한, 비열함 그 자체인 인간 쓰레기 타입이다.

아Q에게는 자기만의 인생 테크닉이 있었다. 일명 '정신 승리법'.
말만 들어 보면 무슨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기는 요령이라든가, 공부 비결, 정신 무장 같은 게 연상되지만... 그런 것과는 전-_-혀 거리가 멀다.
현실에서 무슨 짓을 당하든, 알량한 자존심 하나만으로 “내가 지금 육신은 쳐 맞고 있어도 정신으로는 너를 이긴 것이다”.. 로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고 상대방을 멸시한다. 이게 정신 승리법이다. -_-;; 헐~ 이 똥배짱의 원천은 대체 뭐냐?

이건 어찌 보면, 오늘날 인터넷 공간의 암적 존재인 키배 워리어들의 난독증 내지 병신 논리하고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ㅜㅜ
작가인 루쉰이 설마 21세기 트롤· 찌질이의 존재까지도 예견한 건 아니겠지. -_-;;

루쉰은, 과거의 찬란했던 영광만을 간직한 채 막장 테크를 타고 있던 청나라와, 이 분위기에 편승하여 눈깔이 완전히 썩어 있던(= 맛이 간) 주변 백성들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시국이 어느 정도로 막장이었냐 하면, 일본군이 중국인들을 누명을 씌워 학살하고 있는데도 같은 중국인 구경꾼들이 “와 재미있다, ㅋㅋㅋㅋ 어서 죽여라 죽여!” 할 정도였으니까...

자기 조국이 서구 열강에게 캐관광 당하든 어찌 되든 말든, 우리는 여전히 정신적으로 승리해 있는 것이고 나만 잘 살면 되고 피아 식별 따윈 중요하지 않다는 식의 생각이 팽배해 있었다. 루쉰은 이런 현실을 몸서리치게 혐오했으며, 이를 아Q라는 인물의 막장 인생을 통해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풍자했다. 실제로, 당시 소설이 출간되자 독자들은 아Q의 행적을 보고 “이거, 완전 내 얘기잖아!!” 하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한다.

루쉰은 사상가 겸 사회 개혁가였고, 중국스러운 유교· 봉건 사회 시스템을 굉장히 싫어했다. 일종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같은 생각? 또한, 중국의 문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굉장한 한자 안티로도 이름을 날렸다. “이놈의 빌어먹을 한자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중국 인민은 진짜로 망한다” 정도의 극언까지 남겼으며,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한창 한글· 한자 논쟁이 뜨겁던 시절에 한글 진영이 즐겨 인용하기도 했다.

지금은 컴퓨터 성능이 워낙 좋아져서 한자의 구조적인 단점이 그나마 많이 가려졌으니 망정이지, 그가 살던 시절은 컴퓨터도 없었고, 간체자도 없던 때였다.
한국에서처럼 가~끔씩 유식한 티 낼 때나 한자 한두 자 인용해 주는 것하고, 아예 100% 그 복잡한 한자만으로 모든 생활을 해야 하는 건 서로 가히 차원이 다르다. 루쉰의 눈에는 한자는 정말 높은 문맹률의 주범이요, 그렇잖아도 무지한 국민들을 진짜 우민화하고 암흑 속에 가두는 주범으로 충분히 보일 만도 했을 것이다.

그가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1만여 명에 달하는 조문객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그는 조국과 동포를 향해 신랄한 비판과 독설을 퍼부었으나 조국과 동포를 한 순간도 저버리거나 잊은 적이 없던 애국자였다. 그 시절에 중국에서 루쉰 같은 선각자가 살았던 건 국가적인 축복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정신 승리법'은 아무리 다시 봐도 그 의미가 21세기에 위와 같이 재조명되어 정말 웃긴다.. -_-;;;

Posted by 사무엘

2011/05/23 08:40 2011/05/23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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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 id 소프트웨어는 PC 환경에서 궁극의 최적화 기술을 선보이며, 1인칭 3차원 FPS 장르를 개척한 선두주자였다. 둠(Doom)은 두말 할 나위도 없이 불멸의 명작으로 기록되었고 수많은 매니아· 폐인들을 양산했다. id의 기술력은 그 후에도 Quake 시리즈로 이어지며 발전을 거듭했다. 후속작인 퀘이크는 이 장르에서 스프라이트가 아닌 100% 3D 폴리곤을 실현한 첫 작품이기도 하다.

음침한 던전과 곳곳에서 들려오는 몬스터들의 살벌한 울음 소리. 피떡이 된 몬스터 시체들;;
둠은 잔인성과 폭력성 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으며, 특히 SF에다가 오각형, 염소 머리 등 지극히 오컬트· 사탄주의-_-를 가미한 세계관은 기독교 진영으로부터도 풍부한 까임거리를 제공했다.
“미국에서 총기 사고를 내고 자살한 어느 비행 청소년은 평소에도 Doom 중독자였으며, 게임을 하듯 사람을 죽이고 싶어했던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밝혀졌습니다”처럼. ㄲㄲㄲㄲ

그랬는데 일대일 대전 격투 게임 분야에도 Doom과 비슷한 위상을 차지하는 명작이 있다. 바로 모탈 컴뱃(Mortal Kombat).
그 장르의 게임으로는 의외로 미국산 게임이 별로 없다. 본인이 아는 건 삼국지 무장쟁패, 스트리트 파이터, 철권, 버추어 파이터 따위가 고작인데, 어느 것도 미국산이 아니다.

그에 반해 모탈 컴뱃은 미국산이다. 하지만 게임 로고에서부터 용의 그림이 등장하고 좀 동양스러운 느낌이 난다.
모탈 컴뱃은 1992년, 그러니까 울펜슈타인과 버추어 파이터 1하고 비슷한 시기에 첫 편이 나온 후, 오늘날까지 꾸준히 후속편이 출시되어 왔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K 발음이 나는 C에 일부러 K를 집어넣었다. 코브라도 Kobra. 그렇게 적으니까 꼭 한국스러운 느낌이 나는구나(Korea? Corea?).

모탈 컴뱃이라는 말 자체는 격투 룰을 가리킨다고 한다. 마치 배틀 로얄(Battle Royale)처럼 말이다.
본인이 중딩 꼬꼬마이던 시절에, 주인공의 그래픽이 실사처럼 아주 큼직하고 정교하고, 마지막에 Finish him/her!이 나오는 격투 게임을 잠깐 본 적이 있었는데 그 게임이 바로 저 게임이었다.

그리고 스프라이트는 '실사처럼'이 아니고 '실사'가 맞다. 모탈 컴뱃은 1995년에 출시된 3편까지는, 비록 2D 도트이지만 액션 배우의 움직임을 그대로 촬영한 스프라이트를 써서 상당히 획기적인 그래픽을 선보였다. 실사 이미지로부터 잘 편집된 256색용 스프라이트를 얻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을 텐데, 대단하다. 그야말로 엄청난 노가다였을 것이다.
(무려 1989년에 페르시아의 왕자의 스프라이트를 만들 생각을 했던 조던 메크너만큼이나 획기적인 시도이다. ^^)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본인은 옛날에 256색 모드에서 궁극의 팔레트 최적화도 엔지니어들의 어지간한 덕력과 근성이 아니었으면 엄두도 못 냈을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스타크래프트를 생각해 보라. 어떻게 그 그래픽에서 8종족 색깔별로 클록킹 유닛(알파 블렌딩)을 구현했으며, 퀘이크는 동적 광원을 구현했겠는가!

이 게임의 백미는 격투 말미에 다 죽고 헤롱헤롱하고 있는 상대편을 필살기로 끔살하는 일명 Fatality 기술이다.
퀘이크 3 아레나에 레일건이 있고, 카트라이더에 드리프트가 있으며, 스타크래프트에 스팀팩과 사이오닉 스톰이 있다면...
모탈 컴뱃에는 Fatality가 있다.

이게 정말 성경에 나오는 '인간의 상상하는 바가 원천적으로 악하다'(창 6:5, 8:21)는 걸 입증하는 것 같다. 사지를 각을 뜬다거나, 전기로 지지거나 산 채로 불태우거나 뭐 기타 등등...;;
주인공별로 가히 기상천외한 엽기적인 방법으로 상대편 캐릭을 작살을 낼 수 있다. 저런 현란한 비주얼을 어떻게 만들 생각을 다 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도 그런 거 보면 쾌감이 느껴진다. 아담의 본성이다. -_-

그 후 모탈 컴뱃 4는 당대의 게임계의 추세에 따라 드디어 주인공이 3D 폴리곤으로 바뀌었다. 비록 그때는 현란한 각도 회전을 대가로, 예전의 2D 스프라이트가 뽐내던 도트 단위의 화려한 비주얼은 어느 정도 희생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 3D 그래픽은 가히 실사나 다름없다. full 3D 게임이 처음으로 나오던 때는 버추어 파이터도 주인공이 가히 목각 인형에 불과했고, 퀘이크도 파티클은 그냥 사각형 픽셀로 처리될 정도로 허접했다.

동양스러운 느낌 하니까 생각나는데, 퀘이크 3 아레나도 싱글 플레이의 최종 보스인 Xaero는 사이보그 로봇이 아니고, 오크나 저그 같은 괴물도 아니다. 대머리에 중국 내지 티벳 승려 차림을 한 아저씨이다. 예전의 FPS 게임들의 최종 보스가 무식하게 높은 HP + 물량전 컨셉이었다면, 퀘3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마치 결투를 하듯 정밀도가 높은 레일건으로 플레이어와 승부한다. 이런 모습을 보고 본인은 퀘3을 처음 하던 시절에 무척 놀랐었다. FPS에다가 격투 게임 비슷한 디자인을 도입한 셈이다.

모탈 컴뱃은 툼레이더나 둠처럼 영화화도 되었다. 동양을 배경으로 말이다. 퀘이크에 매니아 계층인 '퀘이커'(개신교 교파인 퀘이커 말고-_-)가 있다면, 모탈 컴뱃도 '모탈리안'이라고 불리는 매니아 계층이 서양에는 굉장히 많다고 한다.
유튜브에 스타크래프트 실사판이 나돈 적이 있었는데-_- 이 양덕후 모탈리안들은 모탈 컴뱃 실사판도 만들어서 UCC랍시고 올린다. ^^;;

대전 액션 게임의 내레이션은 톤이 극도로 낮고 좀 사악한(?) 느낌이 나는 남자 목소리로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다. “Fight one. Ready, go” / “Round one. Fight!” / “You win” 등. -_-

이렇게 본인이 갑자기 모탈 컴뱃에 대해서 글을 쓴 이유는...
고등학교 시절에 본인이 만들었던 오목 게임의 이름도 아마 모탈 컴뱃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은 것 같아서이다. ㅋㅋ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1/05/05 09:03 2011/05/0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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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C++ IDE (정확히는 비주얼 스튜디오)에는 간단하게나마 위지윅 HTML 에디터가 내장되어 있다. 다만, 입력하는 내용에 따라 프로그램이 생성해 주는 HTML 코드가 굉장히 지저분한 편이어서(여백, 정렬 상태 등~) 본인은 이를 즐겨 사용하지는 않는다.

물론, 언어별로 IDE가 따로 놀던 비주얼 C++ 6의 IDE에는 HTML 편집기가 없었으며, 웹 편집은 비주얼 InterDev라는 프로그램이 따로 담당하고 있었다. 그 대신 비주얼 C++ 6은 OLE 기술을 이용하여 심지어 MS 오피스 문서를 자기 IDE 내부에다 가져와서 편집하는 기능이 있었다! 물론 MS 오피스가 설치되어 있는 경우에 한해서.

File-New 대화상자를 보면 맨 오른쪽 탭에 MS 오피스(워드, 엑셀 등) 문서를 만드는 항목이 있었지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을 것이고, 그 기능을 이용하거나 그렇게 OLE 친화적인 업무용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비주얼 스튜디오에서도 이후 닷넷부터는 그런 잉여 기능이 제외됐다. 내 기억이 맞다면 딱 하나, MS 오피스에 이어 아래아한글 2002가 그렇게 문서를 만드는 기능을 지원했다.

비주얼 스튜디오 닷넷은 잘 알다시피 모든 언어들의 IDE가 Microsoft Development Environment라는 이름으로 한데 통합했으며, 그래서 한 프로그램으로 소스 코드, 텍스트, 웹 문서 등을 모두 한데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비주얼 스튜디오가 제공하는 웹 에디터는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그냥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제공하는 에디팅 엔진을 그대로 차용했다.

본인은 비주얼 스튜디오가 제공하는 웹 에디터는 ‘진하게’를 왜 b가 아닌 strong 태그로 표현하고, ‘이탤릭’을 왜 I가 아닌 em으로 표현하는지 의아해했다. 200x년대에 사용하던 나모 웹에디터와 FrontPage는 b, I를 썼기 때문이다. 기능이 동일하면 더 짧은 표현이 좋기 때문에.. ㄲㄲ

물론 그 이유는 웹 표준의 개정 때문이다. HTML은 워드 프로세서 문서처럼 글자 비주얼이 아니라 문서의 논리적인 구조와 의미를 표현하는 용도로 유지하기 위해서 물리적인 비주얼을 표현하는 방식을 CSS 위주로 바꾼 것이다.

글씨체를 바꿨을 때 태그가 생성되는 방식은, 놀랍게도 비주얼 스튜디오의 버전마다 서로 다 다르다.
2003까지는 그냥 대놓고 <font face="무슨체"> 였다.
2005는 <span style="font-family:무슨체">가 되었다.
2008은? 아예 head 태그 내부에 그 서체를 지정하는 새로운 스타일이 등록되고 <span class="style1">이 생성된다.

똑같은 운영체제와 똑같은 IE 버전 하에서도 서로 다르게 동작하는 걸 보니, 이건 전적으로 비주얼 스튜디오의 버전별 차이로 보인다.

여기까지만 분석을 하고 말려고 했는데...
비주얼 스튜디오 2008은 웹 에디터가 뭔가 바뀌었다. 지금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2003과 2005가 단순히 IE 기반인 것에 비해,
2008은 위지윅 에디터(소스 편집이 아닌 디자인 모드)의 윈도우의 클래스 이름이 FrontPageEditorDocumentView. 다시 말해 MS 오피스 2003 이후로 개발이 중단된 FrontPage의 에디팅 엔진을 얹었다는 뜻 되겠다! ㄷㄷㄷ;;;

덕분에, 2008 이전의 비주얼 스튜디오(VS) 내장 웹 에디터는 디자인 모드 아니면 소스 편집 모드 이렇게 두 가지 모드만 제공하였으나, 2008은 FrontPage처럼 한 화면에서 디자인과 소스를 한꺼번에 보고 편집하는 분할 모드도 같이 지원한다. 그리고 FrontPage처럼 태그 단위로 텍스트를 한꺼번에 선택하고 속성을 지정하는 정교한 편집 기능도 지원한다. 단순한 IE 기반 엔진만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기능임.

그런데 그런 것만 바뀐 게 아니라, VS 2008의 웹 에디터는 진하게/이탤릭 태그도 과거의 FrontPage처럼 b, i로 되돌아갔다. 이런?
VS 2010은 어떤지 모르겠다. 듣기로는 소스 코드 에디터도 완전히 새로 다시 짰다고 하니 또 바뀐 게 있겠지.

그래서 지금부터는 FrontPage 얘기를 좀 하겠다.
FrontPage는 여타 회사에서 개발되던 웹 에디터를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수하여 90년대 후반부터 개발을 시작했다. 그래서 초창기 버전에는 윈도우의 클래스 이름이라든가 생성된 HTML 코드의 generator 메타태그에 원래 회사의 이름 이니셜 같은 걸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HTML 태그는 아무나 만지는 물건이 아니다 보니 웹 에디터 역시 워드, 엑셀 같은 전국민 필수품은 아니며, 아웃룩처럼 업무용 필수품도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게 액세스라든가 비주얼 스튜디오 급의 전문 개발자 영역도 아니다 보니, 이런 프로그램이 차지하는 위상은 무척 어중간했다.

다이어그램을 그리는 프로그램으로 윈도우 3.x 시절부터 명성을 떨쳤는데 나중에 역시 MS에게 인수된 비지오(Visio)와 비슷한 위상 같다. FrontPage는 MS 오피스 제품군의 정식 멤버는 아니었지만 어째 오피스 XP 및 2003과는 동일한 타이밍에 버전업을 거쳤다.

FrontPage는 XP와 2003의 동작 방식이 서로 굉장히 달랐다. XP는 모든 html 코드를 자기 컨벤션대로(줄당 문자 수, 들여쓰기 등) 무조건 깔끔하게 정리하는 기능이 있었고, 심지어 html 코드 최적화 기능까지 있었다. 이게 잘 동작할 때는 무척 유용하지만,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태그를 제멋대로 고쳐 버리기까지 해서 믿음직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것이 2003에 와서는 정책이 정반대로 바뀌어서, 이미 만들어진 코드는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수정된 부분에 대해서만 최소한의 변경만 가하는 방식이 되었다. 이것도 좋긴 하지만, 수정을 거듭하다 보면 앞서 말했듯이 코드가 무척 지저분해져서 싫다. 그리고 <li>, <ol>처럼 목록을 표현하는 태그에서 여닫기 처리를 제대로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휴대전화의 카메라 기능이 발전하면서 기존 디지털 카메라들은 아예 DSLR 같은 더 전문적인 영역으로 경쟁 구도가 바뀌었듯, 오늘날은 블로그가 발달하고 웹에서 바로 위지윅 html 에디터 내장 게시판을 쓰는 시대가 됐다. 로컬 환경에서 html 에디터를 쓸 일이 무척 줄었다.

그래서 FrontPage는 2003 버전을 끝으로, 더 전문적인 웹 디자인 솔루션인 MS Expression Studio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개발이 중단되었다. 그리고 그 FrontPage의 엔진이 비주얼 스튜디오의 2008에 전해져 오는 모양이다. ㅋㅋ

본인은 FrontPage를 내 홈페이지 편집과 프로그램 도움말 제작용으로 지금까지도 애용 중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Expression Studio를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나저나 요즘 드림위버는 살아 있나?

Summary:
1. 위지윅 웹 에디터로 각종 아기자기한 클립아트를 넣으면서 자기 홈페이지를 만들던 시절이 그립다. ㅋㅋ
2. 여러분은 html 편집을 무엇으로 하십니까?

Posted by 사무엘

2011/04/22 18:46 2011/04/22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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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박사 석 주명

우리나라가 낳은 위대한 나비 박사인 석 주명 박사 얘기를 인터넷으로 우연히 접했다. 1908년 말 평양 출생이니 공 병우 박사와 나이 및 고향이 같지는 않지만 아주 비슷하다.
이분은 일본의 학자들이 잘못 분류해 놓은 한국의 나비 분류를 다 바로잡았고, 나비 연구에 관한 한은 세계구급으로 인정받은 걸로 유명하다. 나비에 대해서 창세기 2:19와 비슷한 일을 했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75만여 마리나 되는 나비를 채집하여 분류하고 연구한 건, 전국을 돌아다니며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 정호를 뺨치는 근성이 아닌가 싶다. 방학 때 어린 학생들에게 나비 채집 숙제를 내는 관행도 이분이 만든 거라고 한다.

실제로 그는 공 병우 박사 같은 근성이 있어서 시간을 굉장히 아끼고 어디 자투리 시간, 이동 시간을 아까워했다. 하루종일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거기서 모든 일과를 해결했다. 그러나 무슨 희귀종 나비가 어디에 있다고 하면 산간벽지를 막론하고 찾아가서 채집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가정 생활조차 원만하지 못할 지경이어서, 결혼한 지 몇 년 못 가 이혼하고 만다.

이 역시 공 박사와 비슷한 점이다. 공 박사도 천재 외골수 타입인지라 그렇게 가정적이지는 못한 사람이었다. 온통 타자기 생각밖에 안 하고 지내던 시절엔 좀 과장 보태면 가정 파탄 상태였다. 그나마 의사인 덕분에 돈은 굉장히 많이 벌었으니 가정이 유지되었지만.. 유지만 되면 뭘 하나? 세벌식은 내가 알기로 공 박사 유족도 별 관심 없어하고 안 쓰는 글자판이다. -_-;;

공 병우 박사도 6· 25 때 북한군에게 붙잡혀서 고초를 겪기도 했다만, 이 전쟁은 석 주명 박사의 인생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말았다.
서울 시내가 폭격을 받는 바람에, 20년간 수집해 놨던 나비 표본을 날렸다! 나 같아서도 그럼 정말 죽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1950년 10월, 길거리를 다니던 중에 북한군으로 오인받아 총격을 받고 50이 채 안 된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죽으면서도 “이놈들아, 나는 나비밖에 모르는 사람이야!”라고 절규했다고 전해진다. 정말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석 박사와 비슷한 인물로는 우 장춘 박사도 생각나고, 또 한글학자 정 태진 선생이 떠오른다. 영어 잘 한 덕분에 미군정 때 얼마든지 교수, 장관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었는데 끝끝내 조선어 학회로 돌아와서 큰사전 편찬에만 매진한 분이다. 그는 1952년, 전쟁 중에 식량 구하러 트럭에 얻어 타고 가던 도중에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러고 보니 석 박사도 개인적으로는 언어학 기질이 있어서 제주도 방언을 연구하고 에스페란토 교재를 집필하기도 했다고 한다.

나도 “나는 철도밖에 모르는 사람이야!”라고 후회 없이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1/03/02 08:11 2011/03/02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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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개의 분야 이야기들이 또 한데 컬렉션 형태가 됐다.

1. Personalization of Windows

이건 아무나 쉽게 할 만한 건 아니지만, 아마 윈도우 파워 유저들은 한번쯤 시도해 봤지 싶다.

콘솔(명령창)의 글꼴 바꾸기
솔직히 나도 Terminal 기본 서체는 이제 지긋지긋해서.. 똥 묻은 파르페 다음으로 싫다.. -_- 과거 윈 9x는 도스 프롬프트의 코드 페이지를 영문 437로 바꾸면 Courier New나 Lucida Console이라도 나와서 괜찮았으나, 2000/XP의 콘솔 글꼴은 너무 단조롭기 그지없다.
특정 레지스트리 부위에다 00이라는 키를 추가해서 원하는 글꼴을 지정한 뒤 재부팅을 하면 된다고 하는데, 난 여러 사이트들에서 시키는 대로 해도 안 되더라...;; 잘 모르겠다.

XP의 경우, uxtheme 패치
자세한 배경 설명은 생략하고. 요지는.. XP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Luna 테마 대신 다른 시각 테마를 쓰는 것이다. 그런데 테마를 바꾼다는 건 단순히 색깔이나 이미지 같은 데이터뿐만이 아니라 각종 화면 요소를 그리는 실행 코드 자체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운영체제의 안정성 및 보안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래서 운영체제는 기본적으로 디지털 서명이 존재하는 테마만 고를 수 있게 돼 있다.
그러나, 개인 테마 제작자가 일일이 자기 작품에 대해서 $를 지불하고 번거롭게 디지털 서명 인증을 받는 건 쉽지 않은 노릇이고.. 결국 디지털 서명이 없는 테마도 지정 가능하게 아예 운영체제 자체를 크랙하는 테크닉이 나돌게 됐다. 아이폰으로 치면 탈옥 정도 되겠다.

난 XP의 파란 Luna가 예뻐서 거기에다 custom 글꼴 & 그림만 붙여서 잘 썼다. 테마를 바꿀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비스타로 갈아탄 지 3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XP Luna가 그리울 때가 있다. 하긴, 비스타에서 Luna 커스텀 테마를 일부러 구해다 쓰는.. 흠좀무스러운 사람도 있다고는 하더라...

2. Phone number as the hyperlink

남이 내게 문자 메시지로 다른 전화번호를 알려 줬다. 이렇게, 발신자 그 자체가 아니라 본문에 포함돼 있는 전화번호를 번거롭게 암기하거나 수첩에 적지 않고 그대로 저장하거나 전화를 걸 수는 없을까?
마치 http로 시작하는 문자열이 인터넷 주소이고 "@ ." 같은 패턴이 이메일 주소이듯, 전화번호를 나타내는 정규 표현식이 통용되어 이런 건 전화기가 마치 클릭 가능한 하이퍼링크처럼 본문에다 표시해 주는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

자동으로 링크를 못 만든다면 최소한 번호를 마우스로 긁어서 복붙 정도는 되어야겠지.
간단하기 때문에 스마트폰에는 이미 구비되어 있는 기능일지도 모르겠다?
아래아한글 도스용에 있던 전화번호부와 팩시밀리 기능이 불현듯 떠오른다. COM 포트를 통해 컴퓨터가 모뎀으로 전화를 걸어 주던 시절이었다.. ^^;;

3. 디렉터리 생성을 좀 더 똑똑하게

컴퓨터의 파일 시스템에서 지우기 명령에 하위 디렉터리를 재귀적으로 몽땅 다 지우는 기능이 있다면,
디렉터리 생성 명령에도 중간의 다단계 디렉터리를 한꺼번에 생성하는 기능이 있어야 한다.
또한, 디렉터리를 생성한 후 바로 거기로 가는(change directory) 기능 내지 옵션도 있으면 편하지 않을까?
이건 114로 치면 전화번호를 물은 후 그 전화번호로 바로 거는 기능에 해당한다.

다단계 디렉터리를 한꺼번에 생성하는 기능은 있지만 생성한 디렉터리로 바로 가는 기능은 프로그래밍 API라든가, 각종 유틸리티 프로그램이나 명령으로도 내가 본 기억이 없는 듯하다.
요즘은 옛날에 비해 디스크/파일을 다루는 유틸리티에 대한 필요성이 훨씬 덜해지긴 했지만.. 특정 디렉터리나 드라이브로 곧바로 이동 가능하고 특정 프로그램을 단축키 하나로 바로 실행해 주고 한 화면에서 압축 파일이라든가 FTP 연동이 바로 되는 유틸리티가 있으면 컴퓨터 생활이 정말 편해진다.

토탈 커맨더, NexusFile 같은 프로그램이 유명하긴 한데 본인은 단축키가 완전히 손에 익어 버려서.. 개발이 중단된 구닥다리 WinM을 못 버리고 있다.

4. DR만 들어가면 다 박사?

DR이라는 약어가 하도 '닥터'라고 통용되니까, 과거에는 이로 인해 재미있는 오해가 발생한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있었다.
MS-DOS의 경쟁자 중 하나이던 DR-DOS는 그래도 다 대문자로 쓰고 MS-DOS도 '엠에스'라고 읽다 보니, '디알'이라고 통용되었던 것 같다. MS-DOS를 설마 '미스 도스'이라고 하지는 않잖아? 도스의 모에화ㄲㄲㄲㄲㄲ 훗날 나온 노벨 도스의 전신이 DR-DOS인 줄은 모르고 있었네..;;

그러나 그래픽 소프트웨어인 '닥터할로'는 답이 없다..;; Dr. Halo라고 쓰면.. 누구에게라도 영락없이 '할로 박사님'처럼 보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설마 개발자가 박사 학위 소지자이기라도... 한지는 모르겠지만 Dr은 그냥 '드로잉'을 줄인 말이라고 한다.

5. 스마트폰 OS 에뮬레이터

PC에서 안드로이드 에뮬레이터가 실행되는 속도는 실제 기계에 비해서... "꽤", 훨씬 더 느리다. 난 약간 느릴 줄 알았는데 이 정도까지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하긴, 도스박스조차 200x년대의 컴에서 같은 x86 아키텍처용 도스용 프로그램을 펜티엄급으로밖에 실행을 못 하는데, x86와 ARM은 인스트럭션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게다가 요즘 스마트폰은 CPU와 메모리로만 치면 이미 최하 윈도우 98/2000 정도는 너끈히 돌리는 성능이다. 무슨 고전 게임도 아니고, PC와의 격차가 의외로 높지 않으니 PC에서 에뮬레이팅이 버거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애플리케이션들은 그나마 네이티브 코드도 아니고 잘 알다시피 자바 기반.

그리고 마지막 복병이 있는데 바로 그래픽 가속이다. OpenGL 같은 통일된 인터페이스가 있다지만 그래픽 가속은 워낙 민감한 부위여서 그런지 가상화가 더디다. 가상 머신에서 돌아가는 윈도우 비스타/7이 Aero 효과를 내지는 못하며, 에뮬레이터에서 돌아가는 스마트폰 OS는 실물만치 현란한 비주얼을 선보이지는 못한다.

그러나 PC+에뮬레이터가 디스크 I/O만은 실물보다 훨씬 더 빠르게 수행한다.
이런 식으로 스마트폰 앱은 에뮬레이터에서 돌릴 때와 실물에서 돌릴 때의 성능 편차가 의외로 크며, PC에서 개발하더라도 수시로 실물에서 올려서 확인이 필요하다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1/01/31 22:28 2011/01/31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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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IT인에게 필수라는 얼리 어답터 기질이 별로 없다. 옛날엔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진 듯.. -_- 1990년대 중반의 인터넷 트렌드를 받아들인 것 역시 굉장히 더뎌서, 개인 홈페이지도 2001년이나 돼서야 개설했을 정도이다. 그 기질이 지금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으니, 일례로 본인이 몇 년쯤 뒤에나 스마트폰을 쓰게 될지 모르겠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걸어다니면서 노트북으로 MP3 듣는 것까지 똑같으니 원.. ㅎㅎ
그 대신, 옛날에 얼리 어답터 기질이 있던 시절에 대한 복고풍 향수병이 좀 있다.

1. 소프트웨어 UI의 문체와 표기

난 20년 가까이 컴퓨터를 사용해 오면서, UI에서 반말, 그것도 단순히 ‘해라’체가 아니라 완전히 구어체 반말 쓴 소프트웨어는 딱 하나 기억난다.
이거 기억하는 사람은 엄청 old timer일 텐데, 고 호석이라는 분이 개발한 <Hot Time>이라는 마작 게임이다. 나중에 VGA 용으로 만든 버전 말고, 무려 허큘리스에서 돌아가던 것.

초딩이던 본인은 마작 같은 건 할 줄도 모르고 관심도 없었다. 그때 할 줄 알았던 건, “돈 놓고 돈 먹기”라고 심심풀이 땅콩으로 제공하던 사다리 도박 게임이었는데, 본인이 사다리 게임이라는 개념 자체를 그때 난생 처음으로 접했었다.
대화상자에서 Yes/No 조차 ‘응(아니면 “그래” 던가?)/아니’라고 적혀 있던 프로그램은 저것 이후로 본인은 전혀 보지 못했다. 요즘은 게임이라 해도 UI는 정중한 합쇼체가 필수인데 말이다.

지금은 작품 이름이나 개발자 이름으로 구글 검색을 해도 관련 정보가 전혀 뜨지 않는.. 그 정도로 묻힌 추억의 옛날 소프트웨어(특히 국산은 더욱 정보가..)가 여럿 있는데 때로는 그런 게 그립다.

MS 사의 제품 중 윈도우는 3.1을 포함해서 95까지 도움말은 ‘하라/해라체’ 반말로 적혀 있었다. 이것도 기억하는 분이라면 old timer임;; 그러다가 IE 4.0이 나올 무렵부터 완전히 존댓말로 바뀌었다. 국가를 막론하고 자기네 회사와 제품 이름은 대외적으로 무조건 영문 원어로만 표기하기로 정책을 확정한 것도 아마 그 무렵일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한글’의 로마자 표기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마치 한국 MS도 도스 완전 초창기 시절에는 조합형 코드를 사용한 적이 있었듯이(20년도 더 전, 거의 2~3.x 시절), 그때에 한글 MS 도스가 분명히 Hangeul을 사용한 걸 본인은 봤다. 그 기억이 있고 그게 현행 한글 로마자 표기법에 맞기도 해서 <날개셋> 한글 입력기도 지금까지 그걸 사용해 왔으나...
현실은 Hangul이 훨씬 더 대중적으로 많이 퍼져 있는 것 같다.

2. 90년대의 3D FPS 게임

울펜슈타인 3D와 둠은 1990년대 초· 중반에 ID software에서 차례로 내놓은 전설적이고 선구자적인(특히 PC 환경에서!) 3D FPS 게임이다.
둠이 전작인 울펜슈타인에 비해 기술적으로 월등히 발전했다. 잘 알다시피 고저 차이 표현, 사각형 격자가 아닌 임의의 각도의 평면, 초보적이나마 광원, 천장과 바닥의 텍스처, 오르내리는 지형과 애니메이션 텍스처 등 많다.

그런데 그런 굵직한 것 말고 이런 차이도 있다는 걸 최근에 뒤늦게 발견했다. 아래의 두 그림을 보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당시의 컴퓨터 성능의 한계상 안티앨리어싱이 안 되어서 텍스처의 점이 다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치는데, 둠은 가까이서 비스듬히 본 벽면의 텍스처 도트가 원근법에 의해 ‘사다리꼴’ 모양으로 보이는 반면... 울펜슈타인은 어떤 각도에서 보더라도 모든 도트가 무조건 x, y 축에 수직인(orthogonal) 직사각형 형태로 보인다는 걸 알 수 있다. 오호라, 286 AT에서 실시간 3차원 텍스처 렌더링을 구현하기 위해서 이런 꼼수를 부렸다는 것.

그래도 꼼수를 부린 것치고는 비주얼 상으로 의외로 그렇게 큰 티는 안 난다. 계단 현상은 그저 화면과 텍스처의 해상도가 낮아서 그러려니 하면서 은근히 그냥 넘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진짜 100% 폴리곤 3D 세상은 1996년, 둠의 후속작인 퀘이크가 개막하게 된다. true 3D를 구현한 것뿐만이 아니라 로켓과 함께 다이나믹하게 바뀌는 광원도 굉장히 신기했다.
이거 하나의 시스템 요구 사양이 윈도우 95와 비슷했다. 그것도 나름 그 사양에서 돌아가게 만들려고 폴리곤 개수와 맵 크기에서 상당히 절충을 해서 얻은 결과물이다.

둠과 퀘이크 모두, 게임 개발자가 무슨 game mechanics를 표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고 강한 몬스터는 로켓 런처의 스플래시 데미지에는 반응하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었다. 그래서 둠의 Cyberdemon와 Spider mastermind, 그리고 퀘이크의 Shambler는 로켓 런처로는 유난히도 잘 죽지 않았다.
이게 스타로 치면 유닛의 크기별로 데미지를 받는 등급을 달리하는 소형, 중형, 대형과 진동형, 일반형, 폭발형 같은 개념이라 할 수 있는데... 왜 대형 몬스터가 로켓 런처에 더 강하게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3. 옛날 에디터의 단축키

요즘이야 윈도우 운영체제의 영향으로 인해, Shift+화살표는 어디서나 selection, 즉 블록을 잡는 동작으로 통용되고 있다. 아래아한글은 이뿐만이 아니라 도스 시절의 잔재인 F3 블록도 여전히 지원해 주고 있는데, F3 블록을 잡으면 블록 옆에 있는 커서가 여전히 깜빡이고 있고 Shift를 안 눌러도 화살표 키로 계속 블록을 잡을 수 있다는 차이가 존재한다.

그런데 터보 C 2.0의 IDE, 그리고 이 인터페이스의 영향을 받은 과거 도스 시절 PC 통신 에뮬레이터 이야기의 텍스트 에디터는 Ctrl+K,B(시작점), Ctrl+K,K(끝점)이라는 괴악한 방식으로 블록을 만드는 걸 지원했다.

이건 한편으로는 직관적이지 못하고 불편하다. 비슷한 맥락에서, 파일 ‘오려두기’ 동작도 UI 심리상 인간에게 직관적인 느낌을 못 준다고 함. 그러나 커서 위치와 블록의 시작점 내지 끝점이 완전히 따로 놀 수 있으며 시작점만 잡아 놓고 한참 딴짓을 하다가 끝점을 나중에 잡을 수 있다는 특성상, 이 기능은 매크로 같은 걸 만들 때 굉장히 편리할 수 있겠다.
가령, 본문에서 [ ] 로 둘러싸인 문자열만을 몽땅 찾아 지운다고 할 때 저런 식으로 블록을 잡을 수 있다면 매크로로 깔끔하게 해결이 가능하다.

4. 알툴즈

위의 예에 비해서 그렇게 고전 소프트웨어는 아니지만.
본인, 지인에게 한 몇백 MB짜리 ZIP 압축 파일을 전해 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지인 컴퓨터에서는 압축이 풀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파일은 지인의 다른 컴퓨터에서는 압축이 풀렸고.. 나중에 알고 보니 압축이 안 풀린 컴퓨터에 깔린 프로그램은 알집 7이었고 풀린 곳은 WinRAR이던가 아무튼 다른 프로그램이었다. 흠좀무..;;

이래서 알집이 악명 높았나 싶었다.
물론 본인은 지금은 알툴즈 안 쓴다. 하지만 FileZilla로 갈아타기 전에는 수 년 동안 알FTP로--그것도 최신 버전 업데이트를 꼬박꼬박 한 것도 아니고..-- 거의 모든 홈페이지 관리를 해 왔으며, 지금까지 딱히 사고를 겪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알FTP는 알집보다 더 악명이 높던데..?? -_-

언제부턴가 이런 공짜 압축 프로그램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WinZIP이나 WinRAR 따위 안 쓰고, 사용 압축 포맷도 알고리즘이 완전히 공개되어 있는 zip 아니면 7z 정도만 쓰게 된 것 같다. zip은 MS 오피스 문서 파일이라든가 게임 롬 파일 같은 여타 포맷의 컨테이너로도 진짜 널리 대중화하긴 했다. 그보다 좀 더 나은 유료 포맷이 있다고 해도 어차피 거기서 거기이고, 지금이 무슨 PC 통신 시절처럼 1바이트라도 더 깐깐하게 줄여야 하는 시절도 아니니까 말이다.

그나마 ZIP이 옛날에 RAR, ARJ 같은 방식에 비해 큰 약점이 있던 게 플로피 디스크 복사를 위한 분할 압축이 지원되지 않는다는 점이었으나... 요즘은 거의 필요 없는 기능이 됐다. 전혀 필요 없는 잉여 기능은 물론 아니지만..;;

알집 처음으로 구경한 게 10년 전에 4.8 때부터였는데 참 많이 컸다. 새 폴더며, 각종 익살스러운 문구가 많은 게 인상적이긴 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1/01/10 07:55 2011/01/10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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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 오피스의 역사

간단한 IT계 역사 메모부터 남기고 새해를 시작한다.

95: 최초로 100% 32비트 코드로 제작되고, 각종 UI에서 운영체제의 공용 컨트롤을 적극 활용함.
Caption bar에 검정-파랑 그러데이션이 있었고, Microsoft가 고딕+이탤릭이었음. 나름 non-client 영역의 painting을 95 특유의 방식으로 처리했으며, 이게 당대에 출시된 윈도우 95 프로그램들의 유행이 되기도 했다. 아직은 16비트 프로그램을 32비트로 단순히 포팅만 했다는 느낌이 강하던 시절.

97: 메뉴와 도구모음줄이 모두 자체 제작 컨트롤로 대체됨. flat style 도구모음줄 + 도구모음줄 아이콘이 병기되어 있는 메뉴가 유행이 됨. Office 길잡이가 최초로 도입됨!
내부 문자 체계가 유니코드(정확히 말하면 wide string)로 바뀜. 당대로서는 굉장히 혁신적이던 벡터 그래픽 라이브러리가 도입됨(3차원 그림자 등).
윈도우 NT 3.x를 지원한 마지막 버전.

2000: 오늘날 오피스의 근간이 된 기능이 많이 도입되었다. Windows Installer 도입. 최초로 프로그램들 아이콘이 프로그램별로 고유색을 지닌 픽토그램 형태로 바뀜.
Word는 MDI 형태를 탈피하고, Excel은 블록이 검은 반전색이 아닌 옅은 파랑으로 생기기 시작. Word의 Plus pack에 한양 PUA 기반 옛한글 입력기 제공.
두 줄로 걸친 Toolbar와 personalized 메뉴, HTML 도움말(97은 HLP 기반이었음!). 윈도우 95를 지원한 마지막 버전.

XP (2002): 메뉴와 도구모음줄이 회색 3D 모양을 탈피하여, MS스럽지 않은 산뜻한 비주얼로 탈피함. Task pane 도입. TSF 문자 입력 시스템 도입. 이때부터 MS 오피스는 윈도우 운영체제와는 별개의 자체 IME를 제공하는 게 관례가 됨.
GDI+를 사용하여 벡터 그래픽에 안티앨리어싱. Word는 불연속적인 블록을 여럿 잡는 게 가능해짐. 스마트 태그. Plus pack의 옛한글 입력기가 유니코드 표준 방식으로 개선됨.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개발 정책 변경으로 인해 이 버전부터는 이스터 에그가 완전히 사라졌다. 윈도우 98/ME/NT4를 지원한 마지막 버전.

2003: 윈도우 XP 기준으로 메뉴와 도구모음줄에 전반적으로 파란 비주얼. Word에 읽기 모드 view 추가. 리서치 탭. OneNote와 InfoPath라는 새로운 프로그램 도입. 프로그램이 새로 추가된 것 외에 기존 Word, Excel 같은 프로그램이 크게 바뀐 것 같지는 않다.
이 버전은 2004라고 불릴 수도 있을 정도로 꽤 늦가을에 출시되었다. 윈도우 2000을 지원한 마지막 버전.

2007: 맑은 고딕. 리본 인터페이스. 새로운 XML+ZIP 압축 기반 문서 파일 포맷 도입. Live preview 등, UI가 굉장히 많이 바뀜.
Word는 자체 수식 편집기가 추가됨. Excel은 편집 가능한 시트 크기가 더욱 커지고, 드디어 천연색을 표현할 수 있게 됨. 97 이래로 큰 변화가 없던 벡터 그래픽 및 글자 꾸미기 라이브러리의 기능이 크게 향상됨. (PowerPoint의 화려한 비주얼에 일조)
서비스 팩 및 추가 패키지를 설치하면 ODF 읽기/쓰기와, PDF 저장도 프로그램 차원에서 자체 지원함.

2010: 드디어 x64 바이너리 출시. 그리고 또..?

Posted by 사무엘

2011/01/01 19:57 2011/01/0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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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동국대, 변 정용 교수

본인의 고향은 경주이다.
그리고 본인의 고향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은... 바로 동국 대학교 경주 캠퍼스이다.

어렸을 때는 집에서 시내로 가는 길이 시청과 경주 역 쪽으로 가거나, 아니면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동국 대학교 정문을 경유하는 경로밖에 없어서 동국대 일대는 본인에게 아주 친숙했다. 아, 그러고 보니 동국대 경주캠도 정문 근처 아래로 중앙선 철길이 지난다. (야 신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이 경로를 경유하여 경주를 순환하는 41번과 40번 시내버스가 경주의 서울 지하철 2호선과 같은 황금 노선이었다. 20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번호조차 바뀌지 않고 살아 있다.
내 기억으로 41이 일명 외선 순환, 40이 내선 순환 격이나 다름없는데, 서로 경로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부분도 있어서 별도의 번호가 부여된 것이지 싶다.

경주에는 경주대도 있다. 하지만 경주 시내에서는 꽤 멀리 떨어져 있고 본인이 거기 갈 일은 없었다.
지금까지는 없었는데, 이제부터는 이따금씩 좀 구경할 일이 생겼다.
왜냐고? 집에서 KTX 신경주 역까지 가는 길목에서 늘 경주대 입구를 경유하게 됐기 때문이다.
경주는 도시 크기에 비해서 고속철 지나지, 고속도로 있지, 중앙선 밤차 이용할 수도 있지.. 교통이 굉장히 편하다.

신경주 역은 경주 대학교보다도, 심지어 고속도로 경주 IC보다도 더욱 외곽에.. 거의 건천읍에 있다.
그래 봤자 본인의 서울 거처에서 연세대까지의 거리와, 경주 집에서 신경주 역까지의 거리는 서로 아주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세대보다 신경주 역이 집에서 훨씬 더 멀리 느껴진다. 그 이유는 당연히 경주와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의 크기 차이와 대중교통 인프라의 차이 때문이다.
연세대는 지하철만으로 아주 손쉽게 갈 수 있는 반면, 신경주 역은 버스로 가려면 1시간은 잡아야 하고 현실적으로 택시 아니면 자가용이 답이다. 게다가 택시 타면 시외 구간이라고 할증 붙는다. -_-;;;

이래서 지방의 외곽에 세워진 고속철 역은 연계 대중교통이 절실하다. 그래도 신경주 정도면 고속철 초창기 계획에 애시당초 포함되었던 역이고, 경주 자체가 굉장히 작은 도시여서 외곽처럼 느껴질 뿐 절대적인 거리가 심하게 먼 건 아니다.
그러나 울산(울산 고속도로 타고 한참을...)이나 김천구미(구미 시내와는 아예 산으로 가로막혀 있고 김천 시내와도 그리 가깝지 않은..) 같은 역은 시내와의 접근성이 정말 안습하기 그지없다.
뭐 근본적으로 지금 고속철은 역을 너무 많이 만든 것부터가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흠 좀 쓸데없는 얘기가 길어졌으니 다시 동국대 얘기로 돌아오겠다.
잘 알다시피 경주에 있는 것은 동국대의 이원화 캠퍼스이고 본캠은 서울 중심부에 있다. 서울 지하철 3호선에 아예 '동대입구'라는 역이 있다.
본인은 경주캠에 있는 건 의대, 간호대, 관광학과 정도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거기도 나름 컴퓨터/전산학과가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거기에 변 정용 교수가 계시는데...;;
이분이 국어 정보학 바닥에서는 아주 잘 알려진 한글 에반젤리스트이다.
아래의 짤방은 1996년 <세계로 한글로>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모습.

사용자 삽입 이미지

뭐, 한글 예찬론자들의 문자관이 다 서로 일치하는 건 아니다.
자음은 왼손, 모음은 오른손으로 글자판 배열이 가능하다는 게 두벌식 사고방식으로는 대단한 발상이지만,
본인 같은 "세벌식 학파"-_-의 관점에서는 더 좋은 방식을 놔두고 겨우 저런 걸 자랑한다는 게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본인은 이분이 의심의 여지 없이 서울캠에 계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근무하시는 곳이 경주캠.
쉽게 말해 본인 고향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좀 과장 보태면,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계시는 국어 정보학자이다. 홈페이지는 여기... 동국대 소속답게 아주 독실한 불자이신 듯하다.
본인과 아는 사이인 분이어서가 아니고, 그냥 좁고 좁은 세상이 놀라워서 인물 탐방 블로그 포스트를 또 올리게 됐다. ^^;;
아주 옛날, 정부 과천 청사에서 글자판 전문 위원회 할 때 저분과 서로 대면한 적은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0/12/28 09:10 2010/12/2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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