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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부의 광진· 중랑구와 구리시 사이에는 '아차산'이라는 산이 있다. 여기는 북한산이나 청계산 계열이 아니면서 제법 규모가 있는 산이며, 적당한 암반과 숲에다 한강을 포함해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경치도 훌륭해서 등산 경험이 아주 좋았다. 산 중에는 한번 등산을 시작하면 온통 나무들에 파묻혀서 정상이나 몇몇 전망대를 빼면 아래 경치를 거의 볼 수 없는 것들도 많은데 여기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또한, 서울의 산 하면 흔히 조선 시대스러운 한양 도성만 떠올리기 쉬우나, 이 산 일대엔 고구려 시대의 유적들이 이례적으로 발견되는 것도 이 산만의 고유한 개성이다.

아차산은 5호선 아차산-광나루 역 일대에서 접근하여 남쪽으로부터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서쪽에는 살짝 더 높은 봉우리가 있어서 이건 용마산이라고 따로 불린다. 이 산은 7호선 중곡-용마산 역에서 접근 가능하다. 두 산 모두 지하철역의 이름으로 당당히 쓰이고 있다.
두 산의 정상은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꼭대기 능선은 북쪽으로 무려 국도 6호선 도로 근처까지 꽤 길게 이어지는데, 여기에 있는 해발 280m 남짓한 봉우리를 '망우산'이라고도 부른다. 망우산 일대는 온통 망우리 공동묘지로 조성되어 있다.

본인은 옛날에 회사 사람들과 함께 아차산과 용마산을 오른 적이 있다. 하지만 대원 외국어 고등학교 일대에서 하산해 버렸지 북쪽을 더 탐험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차산은 제끼고 처음부터 용마산을 오른 뒤, 더 북쪽 망우산 구간을 탐험하겠다는 생각으로 중곡 역 일대에서 등산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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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기슭에는 이미 가파른 비탈길이 시작되고 있었다. 용마산로30길 주변엔 빌라들이 가득했다.
등산로 옆에는 웬일로 주차장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나 차를 가져올 수 있는 건 당연히 아니고 거주자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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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숲길은 어느 산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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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래를 내려다본 모습은 이러했다. 등산 당시는 이른 아침이고 아주 흐린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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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비탈길을 오르고 또 올라서 정상에 도착했다. 중간에 밧줄을 붙잡고 암반을 올라야 하는 곳이 있었으며, 정상에 도달하기 전에 정자와 전망대가 나오기도 했다.
지금 여기서는 사진 첨부를 생략하지만 정상 주변에는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단, 끝부분이 많이 해져서 교체할 때가 된 상태였다.
안 그래도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했는데 저 정상 인증샷을 찍자마자 정확히 그 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본인은 비를 피하러 허겁지겁 내려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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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에 있을 때는 빗방울 소리가 무척 크게 들렸지만, 정작 밖에 나가 보니 이 정도 비는 그럭저럭 맞을 만했다. 그래서 원래 가려고 하던 곳을 다 가기로 결심하고 북쪽의 망우리 공동묘지 방면으로 이동을 계속했다. 중간에 하산해서 용마 폭포 공원, 사가정 공원 같은 곳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그쪽으로 가지 않았다.
중간에 헬리포트를 두 곳 지났다. 그나저나 이 산엔 헬리포트 말고도 고구려 시절의 흔적이라고 무슨 '보루'라는 군사 시설이 놓여 있었다. 현대에 북한군의 침략에 대비해서 만들어진 군사 시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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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로 아차산 정상이 보인다. 아차산의 정상에는 저렇게 풀밭 평지가 꾸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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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산을 처음 오를 때와는 달리 여기서부터는 서쪽 서울 방면이 아니라 동쪽 한강과 구리 방면의 경치가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비 내리고 안개가 자욱한 날 혼자 산에 있으면 시원하고 운치 있고 좋긴 하지만, 그래도 산 아래의 경치 사진을 포기해야 하는 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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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서울 둘레길이 나와서 약간 넓은 시멘트길이 시작됐다. 이 길만 따라 쭈욱 가면 망우리 공원으로 가게 되는데, 본인은 망우산의 봉우리를 오르고 싶고 최대한 동쪽으로 가서 하산하고 싶었던지라, 중간에 갈림길이 나왔을 때 길을 오른쪽으로 갈아탔다. 그래서 다시 비포장 흙길이 시작됐다.
분기점은 용마 터널을 지나서 아마 서일 대학교과 비슷한 위도에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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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에다가는 묘지 사진은 대표로 이거 하나만 올리도록 하겠다.
망우산 제1보루를 통과하고 나니 서울 둘레길이 아닌 망우리 공동묘지 내부의 순환 도로가 나타났다. 엔진이 달린 교통수단은 못 다니고 자전거 통행까지만 가능한 1차로 정도 폭의 포장 도로이다. 그리고 그 사이엔 역시나 망우산의 깊숙한 봉우리로 더 들어서는 샛길이 있었다.

망우산이 왜 이렇게 인지도가 없는지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묘지의 규모가 생각보다 꽤 크다..;; 그렇다고 해서 등산로가 없다거나 일반 등산객은 출입할 수 없다거나 한 건 아니다.
또한 여기는 한 용운, 방 정환 등 20세기의 주요 인물들도 많이 묻혀 있다고 한다. 하지만 표지판의 설명만으로는 여기가 정확하게 어디이고 그런 분들의 묘지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본인은 순환 도로를 벗어나서 망우산 탐험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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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산에는 보루가 세 곳이 있다고 한다. 이제 북쪽으로는 충분히 이동했고, 본인은 어떻게든 망우산을 가로질러 구리 쪽으로 가 보려고 순환 도로를 이탈하여 보루 세 곳을 모두 통과했다. 중간에 이렇게 망우산 정상임을 나타내는 표식과 돌무더기가 달랑 놓여 있었다. 그 뒤로는 내리막이 이어졌다.

한참을 이동한 뒤에는 다시 묘지 내부 순환 도로가 나타났으며, 최종적으로 본인은 망우리 공동묘지 입구 + 국도 6호선 구간으로 하산했다. 동쪽 건너편 구리시의 전원마을 쪽으로 하산하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일단 묘지 구간에 들어서 버리자 묘지의 정식 출입구가 아닌 다른 등산로를 찾기란 대단히 어려웠다.

이렇게 그래도 순수 아차산 구간만 빼고 용마산과 망우산 일대를 몽땅 종단하는 데 성공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서울 시내와 상당히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딱히 조선 시대나 현대의 군사 안보와 관련된 느낌이 별로 안 느껴지는 산이라는 게 인상적이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6/07/06 19:22 2016/07/0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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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북쪽에 북한산 일대가 거대한 산들의 군집을 형성하고 있다면, 서울의 남쪽에는 관악산 내지 청계산 일대가 군집일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산들을 올랐는데 서울 서남부 지역에 있는 산들에 대한 탐사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예전에 회사 사람들과 함께 과천 쪽에서 관악산을 올라 봤고 경부 고속도로/신분당선 일대에서 청계산을 올라 봤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에 갔던 경로와는 달리, 과천에서 청계산 방면 등산로를 혼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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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4호선의 과천선 구간에 있는 대공원 역에서 내렸다. 평일 이른 아침이어서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여기 주변도 전반적으로 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특히 저 건너편에 관악산이 선명히 보였다. 하지만 이 사진의 전방이 내가 산을 오르려는 방향이다.

참고로 서울랜드는 서울 대공원의 하부에 속한 시설이다. 둘이 완전 별개이거나 동치인 관계가 아니다. 서울 대공원은 동물원도 있고 시에서 관리하는 좀 public한 시설이지만, 서울랜드는 사기업 관할이라는 차이가 있다. 다만, 테마 놀이공원으로서 서울랜드는 접근성은 롯데월드에 밀리고, 시설의 퀄리티는 용인의 에버랜드에 밀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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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는 전반적으로 이런 분위기였다. 산을 한두 번 올라 보는 것도 아니고 분위기가 익숙하다. 단, 계절이 바뀌니 주변이 온통 초록색이 돼 있었다. 날씨도 맑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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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근처에 상수도나 군사 시설이 있는 건 아니지만, 산림 보존과 동물원 경계 구분을 위해 전반적으로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하지만 모든 철조망이 관리가 잘 돼 있지는 않아서 무단 월담이 가능한 곳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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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정상에 도달했다. 이제 한 300~500m대 산들은 많이 올라 보니 어느 정도 오르면 되겠다는 감이 오며, 마을 뒷산 같은 친근함(?)이 느껴진다.

단, 이 글의 복잡한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 산은 봉우리 이름이 좀 혼동의 여지가 있다. 여기는 엄밀히 말하면 청계산의 권역에 속한다고 보기는 어렵고 청계산보다 더 남서쪽에 있는 봉우리이다. 지도에 따라서는 '매봉산'이라고도 표기되어 있다.
여기서 능선을 타고 청계산의 진짜 정상 근처인 국사봉, 이수봉, 매봉 등으로 갈 수도 있긴 하지만 거기까지는 몇 km 정도 떨어져 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거기 정상도 이름이 '매봉'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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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의 진짜 정상을 매봉이라고 부르는 문맥에서는 내가 오른 이 봉우리는 '응봉'이라고 불러서 구분하는 것 같다.
'매봉산'을 '청계산 매봉'이라고 적어 놓은 건 초행자에게는 여러 모로 굉장한 혼동을 줄 텐데 이름이 왜 이런 식으로 붙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산에 봉우리 이름은 고유명사라기보다는 보통명사에 가까워서 어차피 동명이봉이 엄청 많다. '깔딱고개도' 그렇고 말이다. 아무튼 이런 점을 감안해서 저기가 어딘지에 대해 혼동이 없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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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는 관악산 쪽으로는 거대한 철탑과 송전선들이 늘어서 있었다. 다른 산들에서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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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지도로만 봐 온 '문원동 마을'이다. 서울의 평창동만큼이나 산 중턱에 홀로 자리잡은 특이한 형태의 마을인데, 이런 마을이 언제 왜 어쩌다가 조성됐는지 무척 궁금하다. 이런 거 지리 공부를 하는 게 등산의 묘미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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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른쪽을 보면서 줌을 당기면 과천 저수지와 서울 경마 공원이 보인다. 그리고 그 위로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산은 바로 우면산이다.

저기도 기회가 되면 오르고 싶은 생각이 있으나.. 안 그래도 낮은 산인데 정상까지 갈 수가 없으며(군사 시설 때문), 예전에 근처의 구룡산과 대모산을 오른 적이 있다는 점으로 인해 우선순위가 좀 밀려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곧 가 볼 생각이다. 도심 근처의 산인 것치고는 숲이 아주 울창하게 잘 보존돼 있고, 또 그 자그마한 산 속에 지뢰 매설 구역까지 있다니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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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오른 뒤에는 동쪽으로 더 가서 청계산의 더 높은 봉우리로 갈 수도 있었다. 동쪽으로 계속 가면 경부 고속도로 근처의 청계산 등산로로 하산하게 된다.
그렇게 과천과 서울/성남 사이를 산길로 횡단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시간 관계상 본인은 그쪽으로 가지 않았다. 그 대신 더 남서쪽의 인덕원 방면으로 하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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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과 청계산 일대의 묘미는.. 여기가 김포 공항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민항기 항로 근처라는 점이다. 그래서 머리 위로 김포 공항을 향해 날아가는 비행기를 몇 분 간격으로 볼 수 있다.
여기보다 더 동쪽으로 서울을 벗어난 하남· 분당 같은 데서는 비행기를 볼 수 없다. 판교 테크노밸리 일대도 서울 공항과 가깝다는 점 때문에 종종 군용 수송기가 날아다니는 건 보이지만, 민항기는 보이지 않는다. 서울 공항이 민간 공항으로 개항하지 않는 한 말이다.

본인은 이 점을 처음부터 고려하고 예상한 상태에서 산을 올랐으며, 이번 등산에서 설정한 미션 중 하나가 '비행기 사진 촬영'이었다.
하지만 산 속에서는 나무들 때문에 하늘이 가려져서 비행기 사진을 찍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평소에 궁금했던 점인데, 이런 이유로 인해 역으로 항공 사진 지도로 등산로 따위를 찾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겠다는 사실에 수긍이 갔다.

위의 사진은 물론 서로 다른 시각에 지나간 두 비행기의 사진을 합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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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덕원 쪽으로 가면 지금 한창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는 '숲속마을 포일2지구'에 도달하게 되는데, 난 중간에 나타난 갈림길에서 다른 길을 선택하여 '옥박골'이라는 의왕시 청계동 소재의 전원마을에 도착했다. 산기슭에 자리잡은 집들은 다들 참 개성 넘치고 예뻤다. 나도 이런 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조금만 걸어 나가니 큰길과 버스 정류장이 나오고, 버스는 응당 인덕원 역으로 가는 놈이 있었다. 이걸 타고 오늘의 여행을 잘 마쳤다.

Posted by 사무엘

2016/07/04 08:33 2016/07/0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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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해공의 교통수단들 중에 가장 빠르게 이동하며, 반대로 사고가 났을 때 사람이 가장 큰 위험에 빠지는 물건은 두 말할 나위 없이 비행기이다. 육상 교통수단들은 주로 여타 사람이나 차량과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내는 반면, 비행기는 혼자서 추락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다른 장애물이 아니라 그냥 지면과 충돌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배는 침몰하면 구명보트라도 있지만, 비행기는 전투기의 사출 좌석 같은 예외를 빼면 일반적으로 그런 것도 없다.

비행기 추락 사고의 성격은 크게 다음과 같은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전투기: 잊을 법하면 전투기가 어디 야산에 추락했는데 파일럿이 사출되어 나갔네, 혹은 민가에 추락하지 않으려고 계속 조종간을 잡다가 산화했네 하는 소식이 전해진다. 전투기는 교전 중에 적기에게 피격· 격추되기라도 한 게 아니라면, 다 아군이 자체적으로 기체의 한계를 시험하는 온갖 가혹한 기동 훈련을 하다가 정비 불량이나 기체 노후화, 기능 고장의 여파로 기체가 삐끗 하는 바람에 추락하는 것이다. 전투기 조종사가 괜히 높은 G(가속도)를 견디는 가혹한 훈련을 받는 게 아니며, 무슨 민항기마냥 곱게 떴다가 사뿐히 착륙만 하는데 그 몇 백억짜리 전투기가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떨어지지는 않는다.

민항기: 전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수십~수백 명씩 실어 나르는 대형 고정익 여객기들이다. 이들은 전투기와는 달리 위험한 기동을 하지 않으며, 엄격한 규정 하에 검증된 항로만 이용하여 최대한 안전하고 보수적으로 운항한다. 하지만 민항기도 정비 불량, 조종사나 관제사의 과실, 악천후 천재지변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해 가끔 사고가 난다. 순항 중보다 이착륙 때가 훨씬 더 위험하다. 얘들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이용할 수 있다는 점, 한번 뜨고 나면 지상에서 통제를 할 수 없다는 점으로 인해 테러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헬리콥터: 회전익기는 고정익기보다 느리고 연비도 안 좋다. 하지만 활주로 없이 이착륙이 가능하고 공중 정지도 할 수 있는지라 군· 민을 통틀어 인명 구조나 공중 작업 같은 특수한 용도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사실은 전투기와 운용 방식은 다르겠지만, 심지어 공격/전투용 헬기도 있다.
고정익기와 헬기의 관계는 마치 일반 4바퀴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관계와도 비슷하지 않나 싶다. 이륜차가 사륜 자동차보다 훨씬 더 위험하듯, 헬기는 고정익기보다 항공역학적으로 훨씬 더 불안정하며 위험하다. 임무의 특성상 건물이나 구조물 같은 데에 살금살금 접근하다가 잘못해서 로터가 이물질과 부딪치는 사고가 난다. 그리고 그랬다가는 곧바로 수직 낙하 + 추락 사고 + 탑승자 전원 끔살로 이어진다.

즉, 비행기의 종별로 주된 위험 상황과 사고 발생 조건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무거운 쇳덩어리를 하늘로 띄우는 건 그저 바퀴를 굴리는 것보다 매우 힘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행기는 당연한 말이지만 비슷한 덩치의 자동차보다 연료 소모도 더 많고, 그만큼 연료를 더 많이 싣고 다닌다. 어지간한 여객기(무게)나 전투기(기동)의 연비는 자동차처럼 1리터 당 km가 아니라 1km당 리터 수로 따진다. 사람이 최대 겨우 두 명밖에 안 타는 전투기도 한번 띄우면 기름값만 몇백만 원 이상으로 깨진다. 공중에서 돈을 줄줄 흘리는 거나 마찬가지.. 그나마 일단 뜨고 나면 워낙 빠르게 이동하기 때문에 그 정도 연비라도 나오는 거다.

그리고 이 많은 연료들은 비행기가 사고가 났을 때 필연적으로 주변을 불바다로 만드는 기폭제가 된다!
자동차도 충돌 사고가 나서 영 좋지 않은 곳이 파손되면 복불복으로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 연료가 새어 나오고 거기에 점화 플러그의 불꽃이 튀거나 발화점 이상의 열이 가해졌을 때 말이다. 승용차는 연료 탱크가 뒤에 있기 때문에 후방 추돌로 인해 불이 나기도 한다.
그래도 자동차의 화재는 비행기의 화재보다는 훨씬 덜 발생한다. 교통사고가 나면 차들끼리 부서지고 구겨지고 말지, 어지간해서는 불까지 나지는 않는다. 액션 영화에서는 자동차들이 총 맞고 몇 번 구르기만 하면 펑펑 잘도 폭발하지만, 차들이 몽땅 유조차나 화약 수송 화물차가 아닌 이상 그건 좀 허구 과장이 섞여 있다.

이런 자동차에 비해 비행기는 추락해서 박살 났다간 자동차보다 훨씬 더 높은 확률로 화염에 휩싸인다. 이륙한 지 얼마 안 되어 연료가 많이 있는 상태라면 확률은 100%에 수렴한다. 이것은 사고 시에 안 그래도 낮은 탑승자의 생존률을 더욱 낮추는 요인이 아닐 수 없다.
석유 자체가 약간의 충격만 받으면 폭발하는 무슨 니트로글리세린 같은 위험물은 아닐 텐데, 추락하겠다 싶으면 빨리 엔진과 전기 장치라도 꺼 버리면 화재를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글쎄, 에어컨 실외기의 송풍기 바람으로 발전기를 돌리겠다는 식의 무의미한 발상인지도 모르지만.

항공 사건 사고들 중에 오늘은 예전에도 자주 다루는 편이던 고정익기가 아닌 헬리콥터 관련 사고들에 눈길이 갔다. 헬리콥터는 전투기 같은 성능, 화려함, 간지가 없으며 그렇다고 수송기나 민항기 같은 막대한 덩치와 수송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고정익기 조종사들이 유명한 TV 드라마 배우나 영화 배우, 걸그룹이라면, 헬리콥터 조종사는 성우나 재연 배우, 얼굴 없는 가수, 연극 배우처럼 항공 업계에서 약간은 비주류이고 덜 유명하고 2류 이하 급인 것 같다. 종사자들에게는 좀 송구스러운 얘기지만 현실이 그렇다는 뜻이다.

하지만 헬리콥터는 공중에서 그런 고정익기들이 결코 할 수 없는 궂은 일, 힘든 일, 위험한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다. 그렇게 임무를 수행하다가 불의의 사고가 난 것이 국내에서 21세기 이래로 세 건 정도 기억에 남아 있다.

1. 올림픽대교 사고 (군인)

서울 한강의 올림픽대교는 말 그대로 1988 서울 올림픽을 기념해서 만들어진지라 중앙의 꼭대기에 올림픽 성화 모양을 본딴 조형물이 있다. 그래도 이북의 주체사상탑과는 달리, 불꽃에 빨간 칠이 돼 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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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철제 금속으로 불꽃 모양을 만든 것이어서 무게가 10톤을 넘었는데, 국가에서는 군 헬기를 동원해서 조형물을 다리 위에다 올려놓게 했다. 아무래도 민간 업체에다 맡기는 것보다는 군을 투입하는 게 더 저렴해서 그랬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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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2001년 5월 29일, 민간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저 월남전스러운 모양의 CH-47 대형 군용 헬리콥터가 작전에 투입되었다. 그런데 그 당시 현장은 며칠째 바람이 많이 불어서 조형물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았으며, 몇 번 허탕치기를 반복했다. 잘못하면 조형물을 깨 부수거나 헬기까지 사고가 날 수 있었다. 고정익기로 치면 착륙을 못 해서 안절부절 못하다가 결국 복행에 실패해서 추락 사고가 나는 것과 비슷한 격이었다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처럼..).

그러다가 드디어 조형물을 살며시 내려놓는 데 성공했다. 헬기 안에서 작업을 지휘하던 간부는 "이제 임무를 완수했다. 복귀하겠다" 이렇게 보고를 하려는 찰나였는데...
가만히 공중 정지 중일 거라 여겨졌던 헬기는 하강 기류의 영향을 받아서 고도가 서서히 낮아지고 있었다. 이걸 헬기 안에 있던 승무원들은 알아챌 수 없었던 것 같다. 실제로 비행 중엔 주변이 온통 허허벌판이기 때문에 GPS 계기판 같은 거라도 보지 않으면 조종사는 자신의 위치나 속도 변화를 직감만으로는 거의 알 수 없다.

슬금슬금 하강하던 헬기는 로터가 조형물의 윗부분과 부딪치고 말았다. 그 결과 양력을 잃은 헬리콥터는 상하로 벌렁 뒤집힌 채 곧장 수직 낙하했으며, 다리 난간 부분에 걸친 채로 착지하면서 화염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헬기의 뒷부분은 다리 위에 잔류했지만, 앞부분은 더 아래의 한강으로 또 굴러 떨어졌다. 안에 있던 탑승자 세 명과 함께!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에 올림픽대교 근처의 어느 강변 아파트에 살던 어떤 사람이 마침 조형물 설치 작업을 캠코더로 촬영하고 있었다. 서울 시내에서 이렇게 군용 헬기가 뜬 걸 보기가 쉽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눈앞에서 저런 사고가 났으니 촬영자도 소스라치게 놀랐을 것이다.

사람이 멀쩡한 상태로 다리 위에서 한강으로 곱게 뛰어내리기만 해도 어지간해서는 어마어마한 착수 충격을 감당하지 못해서 기절하고 곧 익사한다. (예전에 남성연대 성 재기 씨처럼) 하물며 헬기 탑승자들은 전원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다. 잠수부들이 투입되어 거기 일대를 수색한 뒤에야 잔해와 시신을 모두 찾아내어 인양했다.

지금도 올림픽대교의 중앙 꼭대기에 놓여 있는 횃불 조형물의 뒷배경에는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있다. 허나 이때 희생된 군인 세 분을 알리거나 기리는 기념비나 추모 시설은 전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2. 삼성동 아이파크 충돌 사고 (사기업)

2013년 11월 16일, 토요일 아침엔 LG전자 소속의 헬리콥터가 김포 공항을 출발하여 잠실 경기장 인근의 한강 공원 헬리포트에서 높으신 임원진들을 태운 뒤, 전주 소재의 공장으로 시찰을 갈 예정이었다.
헬기는 김포 공항에서 이륙 허가를 받고 한강 수면 위로만 쭈욱 비행했으며, 10분도 채 되지 않아 목적지로부터 1km 남짓 떨어진 청담 역 근처(영동대로)까지 도달했다.

그런데 여기서 너무 짙은 안개 때문에 헬기는 착륙 지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항로를 이탈해서 방황하다가 삼성동 아이파크 아파트의 24~26층 높이의 외벽 쪽으로 돌진해서 충돌했다. 그 뒤 곧바로 아래의 화단으로 추락. 짙은 안개 때문에 사고가 난 건 비록 성격과 규모는 다르지만 1979년의 테네리페 참사와도 비슷한 구석이 있어 보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추락 후에 기체가 폭발하거나 화재가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이른 주말 아침이어서 그런지 아래에서 추가적인 인명 사고가 발생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헬기 탑승자(기장+부기장 2인)들은 역시 사고 현장에서 생존할 수 없었다.

본인은 옛날에 삼성 전자 수원 사업장의 어느 건물의 옥상으로 헬리콥터가 착륙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어디 또 높으신 분이 납셨나 싶었다. 주변은 생각보다 후폭풍이 심하고 소리도 아주 컸던 걸로 기억한다.
하물며 사고 당시에 그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던 주민들은, 너무 가까이에서 들리는 헬기 소리에다가 고막을 찢는 듯한 쾅 소리와 진동을 경험했으니 웬 테러나 전쟁이라도 난 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한다.

헬기와 부딪친 아파트가 안전 점검을 받는 동안, 피해층의 주민들은 본의가 아니게 강남 소재의 호텔에서 며칠 투숙하기도 했다. 비행기편의 지연과 취소 때문에 뜻하지 않게 호텔행을 경험하게 된 여행객처럼 말이다. 투숙 비용은 물론 LG 전자에서 부담했다.

3. 광주 시내 추락 (소방 공무원)

삼성동 헬기 추락 사고의 여파가 채 가시기 전에 또 충격적인 헬기 사고가 발생했다. 2014년 7월 17일, 세월호 침몰 사고 관련 현장 지원을 마치고 강릉으로 복귀하던 '강원도 특수구조단' 소속의 소방 헬기가 광주 광산구 장덕동의 성덕 중학교 근처의 도로에 갑자기 추락했다. 광주 공항에서 이륙한 지 5분 남짓밖에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사고 헬기는 기수를 아래로 숙인 상태로 무슨 카미카제도 아닌 게 거의 70도에 달하는 고각으로 바닥에 자유 낙하하듯 내리꽂혔으며, 그 뒤 불길에 휩싸였다. 사고 장면은 근처에서 신호 대기 중이던 자동차들의 블랙박스 화면에 고스란히 녹화됐다. 헬기에는 조종사와 구조대원 등 모두 5명이 타고 있었으나 역시 모두 숨졌다.

사고의 근본 원인은 예산 부족으로 인한 장비 노후화 내지 비전문가 직원의 투입(조종 미숙) 등이 거론되는 듯하다. 기체가 한창 상승하던 중에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오른쪽으로 기울고 급강하해 버렸다고 한다. 그걸 수습하지 못하고 헬기가 저 꼴이 난 것이다. 하긴, 헬리콥터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버린 걸 수습 못 하면, 목적지에 다 와 가지고 하강하는 중에도 갑자기 벌렁 뒤집히고 사고가 얼마든지 날 수 있다. 활주로가 필요 없다고 해서 장땡이 아니며, 평평한 헬리패드가 안전을 위해 괜히 필요한 게 아니다.

떨어지고 있을 때 이미 기체에 불이 붙은 상태였다는 말도 있는데 블랙박스 영상만 봐서는 정황을 모르겠다. 올림픽대교 사고처럼 로터가 장애물에 부딪친 것도 아니고, 멀쩡히 잘 날다가 갑자기 기체가 저 지경이 돼 버렸으니, 당시 승무원들은 정말 놀랍고 무서웠겠다.

사고 현장에 불까지 났지만, 다행히 달리는 자동차 위로 헬기가 떨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추가적인 인명 피해는 근처 버스 정류장에 있던 학생이 화상을 입는 정도로 그쳤다. 지금도 사고 현장 일대를 로드뷰로 보면 추락 지점은 아스팔트가 덧대어 다시 칠해진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전에도 글을 썼지만 비행기는 고정익이건 회전익이건 한번 상태가 꼬여 버리면 아무리 액셀을(자동차로 치면) 밟고 엔진 추력을 낸다 해도 곧바로 실속이 회복되고 뜨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히 조종이 더 어렵고 위험해 보인다. 헬리콥터는 기체 자체를 공기 중에서 고속으로 이동해서 양력을 얻는 게 아니기 때문에 뭔가 글라이더(활강)스러운 요소도 전혀 없고 더욱 불안정하다.
물론 사고라는 건 지금도 전세계의 하늘을 누비는 수많은 비행기들의 전체 대수에 비하면 매우 드물게 발생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부주의하면 사고가 나고, 사고가 나면 저 꼴 난다는 건 조종사나 승객이 숙지는 하고 있어야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6/07/01 19:28 2016/07/01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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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령길 탐방기

북악산 이후로 본인은 한동안 성남과 하남처럼 서울 동남부에 있는 산을 올랐는데, 그 다음에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 서울 북부로 갔다.
북한산이야 워낙 크고 넓으니 예전에 간 적이 없는 새로운 등산로를 얼마든지 개척해서 오를 수 있지만, 그건 뒤로 미뤘다. 여느 등산로 대신, 북한산과 도봉산의 경계에서 서울과 양주를 연결하는 '우이령길'에서 뭔가 특이함을 느껴서 거기부터 먼저 찾아갔다. 서울 강남에 우면동(우면산. 소가 쉬는 모습)이 있다면, 강북에는 우이동(소의 귀 모양)이 있는 게 흥미롭다.

우이령이라는 고개에 이런 길 자체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북악산의 제2 산책로(일명 김 신조 루트)와 마찬가지로, 1· 21 사태의 여파로 인해 보안을 위해 거의 40년간 민간인의 출입과 통행이 금지된 내력이 있다. 그 대신 군부대 유격장 같은 군사 시설이 여기 일대에 들어서게 됐다.
그러고 보니 6· 25 전쟁 중에 월턴 워커 장군이 교통사고로 순직한 곳도 지금의 서울 도봉구 일대이니, 우이령길 자체는 아니지만 거기 근처이다. 그리고 거기는 그 당시엔 아직 행정구역상 인서울이 아니었다.

군인을 제외하면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덕분에 우이령길 주변의 자연 환경은 비무장지대에 준하는 급으로 잘 보존되어 왔다. 여기는 역시 김 신조 루트와 동일하게 2009년경에 봉인이 풀리고 민간인에게 제한적으로 개방됐다. 아무나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건 아니고 예약을 해야 한다.

무슨 국정원이나 대성동, 판문점 같은 곳을 방문하는 것처럼 보안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다. 자연 보호를 위해서 단순히 단위 시간당 동시 접속자-_- 수를 제한하기 위해 그런다. 서울 우이동 쪽에서 500명, 그리고 반대편인 양주 교현리 쪽에서 500명 이렇게 매일 최대 1천 명만 입장과 통행을 허용한다고 한다.
입산은 아침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가능하고, 그 뒤 오후 4시 전까지 모든 입산자들은 산을 빠져나가야 한다. 낮이 긴 여름에도 예외가 아니다. 단, 하산(퇴장)할 때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든 반대편으로 나가든 그건 상관없다.

이런 점에서 우이령길은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보다도 경비가 더 삼엄한 셈이다. 북악산도 나름 인적 사항을 적고 목걸이를 받아야만 입산 가능하지만, 그래도 거기는 무슨 사전 예약까지 해야 한다거나 인원수 제한이 걸려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약은 인터넷으로 하는 게 원칙이나, 장애인· 외국인 같은 취약 계층에 한해서 전화 예약도 받는다. 환경 보존 명목으로 이렇게 예약을 해서 제한된 인원만 탐방 가능한 산길이 우이령길 말고도 전국적으로 국립 공원에 몇 군데 더 있는 모양인데, 거기들의 탐방 예약을 한 사이트에서 통합해서 받는다.

보안 때문에 예약을 받는 게 아니므로, 무슨 1~2주씩이나 전에 예약한다든가 할 필요는 없다. 예약은 방문 당일의 바로 전날 일과 시간(오후 5시) 중으로만 하면 된다. 한 사람이 최대 10명까지 동시에 예약할 수도 있다. 국가에서 공익을 위해 운영하는 시설인 관계로, 예약과 입장에 비용이 들거나 하지는 않는다. 단, 모든 입산자들은 길 어귀의 초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

요컨대 우이령길의 탐방에 제약이 걸려 있는 이유는 여행 금지 국가에다 비유하자면 북한이나 소말리아 같은 급이 아니라 남극과 같은 급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모든 산에는 등산객더러 지정된 등산로를 이탈하지 말고 자연을 보호하라는 캠페인이 권고 차원에서 붙어 있긴 하지만, 여기는 특별히 국립 공원이며 그 권고가 더욱 강하게 적용된다. 지정된 시간대와 지정된 탐방로를 벗어나서 산 속에 짱박혀 있다가 적발되면 과태료를 물게 된다.

서울에 이런 신기한 곳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본인 역시 예약을 했고, 우이령길을 잘 다녀왔다. 요 얼마 전에 등산을 했을 때와는 달리 이 날은 날씨가 아주 맑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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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기슭은 아무래도 도시의 변두리 외곽이며 시내버스나 지하철의 종점인 경우가 많은데,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검단산 인근은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연장 공사가 한창이더니, 여기는 우이 경전철의 건설 공사가 아직 한창이었다.
우이 경전철은 차량기지조차 몽땅 지하에 만들어져서 땅 위로 보이는 게 하나도 없을 거라고 한다. 무슨 평양 지하철처럼 말이다.;;

'우이령길' 쪽으로 계속 오르막을 오르자 '우이 유원지' 구간이 1km가 넘게 계속됐다. 온통 식당, 카페, 산장, 팬션 등등.. '송성훈 큰머리'체를 써서 만들어진 간판이 인상적이다.
용인의 '고기리 유원지' 같은 곳이 서울에도 있긴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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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 시설들이 없어진 뒤에도 몇백 m를 더 오르자 드디어 우이동 탐방 지원소가 나타났다. 자동차 도로로 치면 이제 고속도로 톨게이트가 나타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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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지원소를 지나자 군부대..가 아니라 전투경찰 숙소 건물이 나타났고, 그 뒤부터는 자연을 즐기면서 산책 탐방을 할 일만 남았다. 이런 식의 길이 계속 쭉 이어졌다.
사진은 내가 눈으로 직접 본 풍경을 완벽하게 재현을 못 한 것 같다. 색감이나 화각 같은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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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일명 '대전차 방호벽'이다.
전쟁이 나서 적군이 특별히 탱크를 몰고 쳐들어와서 이 길을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면, 저 위의 크고 무거운 시커먼 콘크리트 덩어리를 아래로 떨어뜨려서 진로를 차단한다. 물론 적군도 공병을 투입해서 장애물을 제거하겠지만, 그래도 그 작업 시간 동안만치 진격을 지연시키고 아군에게 시간을 벌게 해 준다.

교량이나 터널이라면 아예 끊어 버리거나 메우는 식으로 조치를 취할 수 있겠지만 그냥 땅 위에 놓인 멀쩡한 길이라면 이런 조치를 취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사실, 파주나 철원 같은 전방 도시의 주요 도로 길목엔 지금도 저런 대전차 방호벽이 놓인 걸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의정부나 고양처럼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위성도시에도 방호벽이 일부 있으나, 거기가 본격 수도권에 들어가고 아파트가 잔뜩 지어지고 인구가 늘면서..;; 도시 미관에 안 좋고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철거되기도 했다.

전차의 주행을 차단한다는 건 우이령길이 여느 등산로와는 달리 차량이 통과 가능한 길이라는 뜻이다.
우이령길은 처음부터 그렇게 넓게 닦인 길은 아니었다. 미군 공병대가 투입되어 1965년에 길을 확장한 덕분에 지금과 같은 형태를 갖춘 듯하다. 이 블로그에서는 사진 첨부를 생략하지만, 대전차 방호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를 기리는 개통 기념비가 있다. (미군 제36 공병단 소속의 109/102공병대대)

그런데 그로부터 몇 년 못 가 김 신조 사건이 터지면서 우이령길은 사실상 군 전용 도로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대전차 방호벽 역시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비록 김 신조 일행은 정규군이 아니라 비밀 공작원이니 100% 도보만으로 침투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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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굉장히 금방 우이령의 정상에 도달했다. 사실, 유원지 구간을 지나면서 우이령을 이미 많이 오른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이동 탐방 지원소에서 정상까지의 거리는 정상에서 양주 교현리 탐방 지원소까지의 거리보다 훨씬 짧다. 정상에는 넓은 공터와 벤치, 그리고 화장실이 있었다.

우이령길 탐방은 비록 고개를 오르는 것이지만 역시 어지간한 등산에 비해서야 훨씬 널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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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상을 지나서 교현리 방면으로 완만하게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저 멀리 오봉산 봉우리가 보였다. 주변 경치가 대단히 아름다웠다. 지도를 보니 저 오봉산을 오르는 등산로도 있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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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령길에는 가끔씩 이런 계곡도 있어서 주변에 물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편, 이쯤에서 웬 '석굴암'이라는 이름이 붙은 절과 함께 군부대 유격장이 있었다. 석굴암은 경주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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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아닌 양주 쪽이 가까워지자 길가엔 도랑 대신 울타리가 보이고, 전신주까지 나타났다. 서울 쪽이 더 잘 꾸며져 있고 경치가 더 좋긴 했다.

그리고 드디어 교현리 탐방 지원소에 도달함으로써 우이령길 횡단이 끝났다. 한 탐방 지원소에서 다른쪽 탐방 지원소까지 4km 남짓한 거리를 가는 데 약 1시간 10분 남짓밖에 안 걸렸다.
서울 우이동 방면 입구는 유원지여서 식당과 산장이 즐비한 반면, 양주 교현리 방면 입구엔 군부대 사격장이 자리잡고 있어서 분위기는 이거 뭐 서로 극과 극이 따로 없었다.
여기를 평일에 갔는데, 사격 훈련 중이었는지 사실은 고개 정상에 있을 때부터 총 소리로 추정되는 탕탕~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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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 담벼락에는 이런 뭔가 안 어울리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남한산성을 구경하러 청량산을 올랐을 때 지나쳤던 그쪽 군부대에도 담벼락에 동물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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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를 지나서 한참을 걷자 드디어 큰길(북한산로)이 나오고, 시내버스 정류장에도 도달했다. 길 건너편에는 마을 회관과 함께 이런 표지석이 있었다.
이 사진에서 뒷배경으로 깔린 저 언덕은 노고산의 끝자락이다. 노고산도 김 신조 일행이 서울로 침투하기 위해 넘은 산 중 하나이다.

여기 근처에는 온통 군부대, 특히 종로· 서대문 지역의 예비군 훈련장들이 밀집해 있다. 본인은 대학원 재학 중엔 이쪽에서 예비군 훈련을 몇 차례 받은 적이 있어서 여기 지리가 친숙했다. 단, 그때는 다 차를 가져갔기 때문에 여기서 버스를 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북한산로에서 뚜벅이들의 이동을 책임지는 시내버스는 704와 34 딱 두 종류이다. 전자는 서울 소속이고 후자는 경기도 소속이다.
본인은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학교에 들렀다. 저 버스들이 학교로 바로 가는 건 아니니, 구파발에서 버스를 한 번만 갈아타면 됐다. 버스 차창 밖으로 북한산로 일대, 구파발· 진관동, 그리고 학교의 서쪽에 있는 서대문구청, 자연사 박물관, 안산 옆의 백련산 언덕 등의 경치를 구경할 수 있었다. 서울 북서부로는 갈 일이 별로 없었는데 거기 관광에는 이런 묘미가 있다.

그나저나 은평구는 한자가 恩平이라고 한다. 그래서 옛날에는 여기서 자기 구를 홍보할 때 '은혜와 평화의 땅'이라고 수식어를 붙였고, 지금도 은평구청 홈페이지에서 들을 수 있는 구 노래에는 "은혜와 평화로세 은평이라네"라는 가사가 있다.
그런데, 저 이름이 처음에 그런 의도로 작명된 건 아니었겠지만, 이건 여느 종교에서는 찾기 힘든 굉장히 기독교적인 용어이다. 그 당시에 구청장이 아주 독실한 신자였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은혜와 평강(평화)'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만 얻을 수 있으며, 이건 바울 서신서들 첫머리에 마르고 닳도록 나오는 표현이다.
지금까지 난 은평구라 하면 지하철 3/6호선, 북한산 이런 것만 떠올랐는데 앞으로 은평구를 다시 보게 될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6/06/29 08:33 2016/06/2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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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이야기만 몇 콤보로 계속되는 와중에 오랜만에 또 프로그래밍 얘기를 좀 하겠다.

본인은 예전에 열차나 건물(대표적으로 영화관)에서 좌석 배당 알고리즘이 어떻게 될까 궁금해하면서 이와 관련된 썰을 푼 적이 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점을 최대한 균등하게 순서대로 뿌리는 ordered 디더링의 가중치, 다시 말해 흑백 음영 단계 테이블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 당시엔 의문 제기만 하고 더 구체적인 해답을 얻지는 못했다.

그래픽 카드가 천연색을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이제 컴퓨터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생존형'(?) 디더링의 필요성은 전무해졌다. 비디오보다는 아주 열악한 네트워크 환경에서 그래픽의 용량을 극도로 줄일 필요가 있을 때에나 특수한 용도로 제한적으로 쓰이는 듯하다. 색상뿐만 아니라 해상도도 왕창 올라가면서 이제는 글꼴의 힌팅조차 존재감이 많이 위태로워졌을 정도이니 세상이 참 많이도 변했다.

하지만 ordered 디더링이라는 건 점을 평면이나 공간에 최대한 골고루 질서정연하게 뿌리는 순서를 구하는 문제이다 보니, 계산 알고리즘의 관점에서는 실용적인 필요성과는 별개로 굉장히 흥미로운 문제인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제는 이런 무늬 패턴을 볼 일 자체가 거의 없어졌다..)

흑과 백이 정확하게 반반씩 있는 50% 경우를 생각해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흑과 백은 대각선으로 엇갈린 형태로 존재한다. 수평선이나 대각선 형태가 아니다. ▤나 ▥가 아니라 ▩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므로 아주 간단한 2*2 크기의 음영이라면
(1 4)
(3 2)

가 된다. 수평선인 (1 2)(3 4)나 수직선인 (1 4)(2 3)이 아니라, (1 4)(3 2)라는 것이다.
그러니 태극기의 괘는 패턴이 (3 5)(4 6)이기 때문에 수직선에 가깝다. 그리고 이거 무슨 승용차에서 운전사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좌석의 위치별로 상석에서 말석 순서 테이블과 비슷하다는 느낌도 든다.. -_-;;

시작점인 1은 언제나 좌측 상단으로 고정해서 생각해도 일반성을 잃지 않는다. 그럼 다음 2의 위치는 1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대각선이므로 역시 자동으로 결정된다.
그럼 (1 4)(3 2) 대신 (1 3)(4 2)는 불가능한 방향이 아니긴 하지만, 관례적으로 2 다음에 위쪽이 아니라 왼쪽에다가 3을 찍는 걸 선호하는 듯하다.

자, 그럼 얘를 조금 더 키워서 4*4 음영은 어떻게 될까?

(1 ? 4 ?) - (1 ? 4 ?) - (1 13 4 16)
(? * ? *) - (? 5 ? 8) - (9 5 12  8)
(3 * 2 ?) - (3 ? 2 ?) - (3 15 2 14)
(? * ? *) - (? 7 ? 6) - (11 7 10 6)

테이블의 크기가 딱 두 배로 커지면 새로운 숫자들은 언제나 기존 테이블의 틈바구니에 삽입된다. 그래야 균형이 유지될 수 있다.
각각의 틈바구니에 대해서 원래 칸의 대각선 아래 (+1, +1), 그리고 바로 아래 (0, +1), 바로 옆 (+1, 0)의 형태로 (5~8), (9~12), (13~16)이 매겨진다. 그랬더니 무슨 짝수 마방진 같은 복잡난감한 퍼즐이 채워졌다.

컴퓨터그래픽에서 실용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음영은 8*8 크기이다. 모노크롬/16색 시절에 단색 패턴 채우기 함수들은 전부 8*8 패턴을 사용했다. 그러므로 얘는 음영을 64단계까지 표현할 수 있다.

8*8 패턴은 역시 4*4 패턴의 틈바구니에 삽입된다. 16 다음에 17이 들어가는 위치는 어디일까? 1과 2 사이에 5가 삽입되었던 것처럼 1과 5의 사이에 17이 삽입된다. 그리고 패턴 크기의 절반인 4픽셀 단위로 n, n+1, n+2, n+3이 (x,y), (x+4,y+4), (x,y+4), (x+4,y)의 순으로 번호가 매겨지는 건 변함없다.

거의 난수표 수준의 복잡한 테이블이 완성됐다. 규칙성이 뭔가 감이 오시는지? 그래픽 라이브러리들은 마치 삼각함수 테이블만큼이나 미리 계산된 디더링 테이블을 내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16*16 256단계 음영 테이블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각 구간을 순서대로 각개격파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분할 정복이나 재귀호출은 아닌 것 같다.

이런 숫자를 생성하는 코드를 작성하기 위해, 먼저 다음과 같은 변수들을 클래스나 전역변수 형태로 정의하자.

int mtrix[N][N]; int cs, ce;
static const POINT PTR[4] = {
    {0,0}, {1,1}, {0,1}, {1,0}
};

void Draw(int y, int x, int delta)
{
    for(int i=0;i<4;i++)
        mtrix[y+PTR[i].y*delta][x+PTR[i].x*delta]=ce++;
}

Draw는 특정 지점에서 n 간격으로 (0,0), (n,n), (0,n), (n,0)의 순으로 ce부터 ce+3까지 번호를 매겨 주는 역할을 한다.
이를 이용하면 2*2의 경우는 Draw(0, 0, 1)을 통해 간단히 만들 수 있다.

void Case2()
{
    cs=2; ce=1; memset(mtrix, 0, sizeof(mtrix));
    Draw(0, 0, 1);
}

앞서 살펴보았던 4*4는 이런 형태가 되고..

void Case4()
{
    cs=4; ce=1; memset(mtrix, 0, sizeof(mtrix));
    for(int a=0;a<4;a++)
        Draw( PTR[a].y, PTR[a].x, 2 );
}

더 복잡한 8*8은 Draw를 어떤 순서대로 호출해야 할지 따져보면 결국 규칙성이 도출된다.
그렇다. 2중 for문이 만들어지며, 16*16은 3중 for문이 될 뿐이다.

void Case8()
{
    cs=8; ce=1; memset(mtrix, 0, sizeof(mtrix));
    for(int a=0; a<4; a++)
        for(int b=0; b<4; b++)
            Draw(PTR[a].y + PTR[b].y*2, PTR[a].x + PTR[b].x*2, 4);
}

void Case16()
{
    cs=16; ce=1; memset(mtrix, 0, sizeof(mtrix));
    for(int a=0; a<4; a++)
        for(int b=0; b<4; b++)
            for(int c=0; c<4; c++)
                Draw(PTR[a].y + (PTR[b].y<<1) + (PTR[c].y<<2),
                    PTR[a].x + (PTR[b].x<<1) + (PTR[c].x<<2), 8);
}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로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정답이었다. 식을 도출하고 보니 규칙은 허무할 정도로 너무 간단하다. n중 for문을 재귀호출이나 사용자 스택 형태로 정리하는 건 일도 아닐 테고.
이 정도면 평면이 아니라 3차원 공간을 점으로 촘촘하게 채우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PTR 테이블은 (0,0,0), (1,1,1)부터 시작해서 정육면체의 꼭지점을 순회하는 순서가 되므로 크기가 8이 될 것이다.

그리고 참고로 8*8 음영 행렬은 아래의 코드를 실행해서 생성할 수도 있다.

int db[8][8];
for (int y = 0; y < 8; y++)
    for (int x = 0; x < 8; x++) {
        int q = x ^ y;
        int p = ((x & 4) >> 2) + ((x & 2) << 1) + ((x & 1) << 4);
        q = ((q & 4) >> 1) + ((q & 2) << 2) + ((q & 1) << 5);
        db[y][x] = p + q + 1;
    }

내가 처음에 for문을 써서 작성한 코드는 함수로 치면 일종의 매개변수 함수이다. (t에 대해서 x(t)는 얼마, y(t)는 얼마)
그런데 저건 그 매개변수 함수를 y=f(t) 형태로 깔끔하게 정리한 것과 같다. 식이 뭘 의미하는지 감이 오시는가?

이런 걸 보면 난 xor이라는 비트 연산에 대해 뭔가 경이로움, 무서움을 느낀다.
덧셈이야 "니가 아무리 비비 꼬아서 행해지더라도 까짓거 덧셈일 뿐이지. 결과는 다 예측 가능해" 같은 생각이 드는 반면, xor에다가 비트 shift 몇 번 하고 나면 도저히 예측 불가능한 난수 생성 알고리즘이 나오고 암호화/해시 알고리즘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지극히 컴퓨터스러운 연산이기 때문에 속도도 왕창 빠르고 말이다.

2002년에 우리나라에서 열렸던 국제 정보 올림피아드에서도 'xor 압축'이라는 제출형 문제가 나온 적이 있다. 임의의 비트맵 이미지가 주어졌을 때, 이걸 사각형 영역의 xor 연산만으로 생성하는 순서를 구하되, 연산 수행을 최소화하라는 게 목표이다.

한 점에 대해서 가로/세로로 인접한 점 3개를 추가로 조사하여 흑백 개수가 홀수 개로 차이가 나는 점을 일종의 '모서리'로 간주하여 각 모서리들에 대해 plane sweeping하듯이 xor을 시키면 그럭저럭 괜찮은 정답이 나온다. 단, 이것이 이론적인 최적해와 동일하다는 것은 보장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제출형으로 출제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모서리 판정도 xor로 하면 간단하게 해결된다는 것이다.
(pt[x][y]==1)^(pt[x+1][y]==1)^(pt[x][y+1]==1)^(pt[x+1][y+1]==1) 같은 식. 이유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난 Bisqwit이라는 필명을 쓰는 이스라엘의 무슨 괴수 그래픽 프로그래머의 코딩 동영상에서 저 코드가 흘러가는 걸 발견하고 가져왔다. 흐음..;; Creating a raytracer for DOS, in 16 VGA colors 뭐 이런 걸 올려서 시청자들을 경악시키는 분이긴 한데, 물론 레알 16비트 도스용 Turbo C나 QuickBasic 컴파일러로 저런 걸 돌린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건 알파고 AI를 개인용 데스크톱 컴퓨터로 돌리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니 너무 쫄지 않아도 된다. (VGA 16색인 건 맞지만 메모리와 속도는 그 옛날 기계 기준이 결코 아님.)

엑셀에다가 저 16*16 음영 테이블을 입력한 뒤, 수식을 이용해서 숫자 n을 입력하면 그에 해당하는 음영이 생성되게 워크시트를 만들어 보니 재미있다. 이번에도 흥미로운 덕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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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6/06/26 08:33 2016/06/26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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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얘기, 프로그래밍 얘기, 철도 얘기로 가득하던 내 블로그가 어째 여행 블로그처럼 바뀌어 간다. 그렇다고 무슨 외국처럼 거창한 델 가는 것도 아닌데..;;

(1) 그린벨트 안도 아니고, (2) 청계천처럼 하천 근처가 아니고, 경주나 서울 올림픽 공원 일대처럼 (3) 유물 유적이 있는 것도 아닌 대도시 도심 한복판에 갑자기 녹지 공원이 있으면, 본인은 어떻게 해서 여기는 개발되지 않고 공원이 들어설 수 있었는지 궁금증을 느낀다.
아무 이유 없이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변의 건물들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가 빠져나갔는데, 그 부지가 또 개발되지 않고 공원으로 보존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전에는 서대전네거리 역 교차로의 한 귀퉁이에 서대전 시민 공원이 있다. 거기는 놀랍게도 부지의 절반 이상이 사유지라고 한다. 물론 1970년대 더 옛날에는 아예 군부대가 있었는데 이전하면서 사유지가 된 것임. 지주 되시는 분이 그래도 건물 한두 채쯤은 너끈히 지어서 임대료만으로 먹고 살 재산권을 많이 희생한 덕분에 공원이 유지되어 온 것일 텐데.. (게다가 위치도 최강 역세권이다!) 2010년대 중반이 돼서야 국가에서 공원 부지를 정식으로 매입하려는 중이라고 들었다.

거기 말고 서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공원은 여의도 공원이 아닐까 싶다. 얘는 처음엔 황무지였다가 일제 강점기 때 여의도 공항 활주로로 쓰였고, 나중에 김포와 서울 공항이 생긴 뒤엔 여의도 광장을 거쳐 공원으로 탈바꿈했음을 모르는 분이 별로 없을 것이다.
도심은 아니지만 월드컵 경기장 인근의 하늘 공원은 원래 난지도였다가 지금처럼 환골탈태한 것이다.

서울 보라매 공원은 옛날에 공군 사관학교가 있던 곳이었다. 1985년이니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에 이전한 셈이며 그나마 서울 지하철 7호선의 역명 덕분에 '보라매'라는 이름이 그럭저럭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같은 7호선이 지나는 광진구의 서울 어린이 대공원은 원래 처음엔 골프장이 있었는데 서울시에서 매입하여 박통 시절에 유원지를 만든 것이다.
인서울 영역에 골프장이 있었다는 게 실감이 안 간다. 더구나 골프가 지금보다 훨씬 더 사치스러운 스포츠였을 시절에 말이다.

한강 인근의 선유도 공원은 원래 수돗물 정수장이 있던 곳이 공원으로 바뀐 것이다. 수풀과 시멘트 구조물이 적절히 섞여 있다 보니 본인은 이 공원이 현실에서 툼 레이더 맵 실사판과 가장 닮은 장소라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 왔다. 얘 역시 서울 지하철 9호선에 동일 이름의 지하철역이 생긴 것 덕을 봤다.

자, 그리고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2010년대에는 전철역 덕분에 이름이 알려진 공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서울숲(분당선)이다. 원래 서울숲에서 가장 가까운 역은 2호선 '뚝섬'이었으나(7호선 '뚝섬유원지'가 아님) 더 가까운 곳에 역이 추가로 생겼다.
먼 옛날엔 서울숲 부지에 골프장과 경마장이 있었다고 한다. '동대문 운동장'만큼이나 아련한 추억이 아닐 수 없다. 골프장은 모르겠다만 경마장은 역시 30년 전쯤에 이미 과천으로 이전했다.

중랑천과 한강이 합류하고 강변북로와 동부 간선 도로가 만나며 성수대교 북단이 근처에 있는 이 금싸라기 땅에 처음에는 물론 아파트를 지으려는 계획도 나왔고 심지어 야구 돔구장을 지으려는 계획도 논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간에 IMF도 거치고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여기는 공원으로 보존될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응봉산에 올라서 서울숲을 내려다보고 나니 여기 가고 싶은 생각이 더 들었다. 그래서 등산까지 갈 수는 없을 정도로 바쁠 때는 산책으로 운동을 대신하려고 서울숲을 한번 찾아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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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 안은 나무들이 우거진 곳, 넓은 공터, 연못이 모두 갖춰져 있고 경치가 괜찮았다.
참고로 서울숲 일대의 부지는 중앙에 있는 성수대교 북단 교차로의 좌우 상하 2*2 격자로 나뉘는 형태이다.
(A B)
(C D)

서울숲의 입구가 있으며, 가장 넓고 지하철역과 가장 가깝기도 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서울숲 공원 역할을 하는 구역은 B이다. 그리고 대각선 건너편에 있는 C는 생태 공원이다. 꽃사슴을 구경할 수 있다.
D에는 곤충 식물원과 수도 박물관이 있지만, 한편으로 대부분의 부지가 상하수도 관련 시설이어서 보안 봉인이 돼 있기도 하다. 차도를 건너면 성수대교 붕괴 사고 희생자 위령탑으로도 갈 수 있다고 하는데 난 이쪽은 제대로 못 가 봤다.
끝으로 A는 서울숲이 아니며 삼표 산업이라는 기업의 공장이다. 당인리 발전소와 더불어 강변북로를 달리면서 볼 수 있는 공장 시설 두 곳 중 하나이다. 아마 이 공장은 언젠가 외곽으로 이전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B~D는 자동차 도로 밑으로 길이 이어져 서로 통한다. 그렇기 때문에 건너가기 위해서 차도를 횡단한다거나 하지는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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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공원(C 구역) 쪽으로 가 봤다. 사슴을 방목하는 영역은 다 울타리와 철망이 둘러져 있어서 사람이 드나들 수 없게 돼 있었다. 산책 가능한 영역은 얼마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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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원래 계획은 D 구역도 한 바퀴 돌고 다시 B 쪽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생태 공원에는 강변북로를 횡단하여 한강 공원으로 가는 다리가 놓여 있었다. 둘이 서로 이렇게 연결된 것이다. 그것도 자전거도 다닐 수 있게 계단이 아니라 경사로 형태로 말이다.
이에 본인은 계획을 변경하여 그리로 나갔다. 매주 1회 이상 이 다리 아래를 자동차로 지나 왔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이 다리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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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한강이다. 저 멀리 동호대교와 옥수 역이 보인다. 본인은 옥수가 아니라 중랑천 + 응봉산 방면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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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산과 그 아래를 철길을 달리는 ITX-청춘 열차이다. 그 뒤 귀가하는 길은 응봉산을 오른 뒤에 돌아가는 길과 같다. 저기서 서울숲으로 바로 가는 길이 이렇다는 걸 처음 알았다. 서울에서 의외로 가까운 곳에 이런 숲 컨셉의 공원과 강변이 있으니 이 정도면 답사할 가치가 있고 블로그에 이렇게 사진까지 올릴 가치가 있다.

여담을 보태자면, 강남에는 양재 시민의 숲이라고 숲을 표방하는 공원이 있다. 이 역시 2011년에 개통한 신분당선의 역명에도 들어갔으니 2012년에 개통한 분당선 선릉 이북 구간과 시기적으로 비슷한 구석이 있다. 본인 역시 예전에 거길 방문해서 각종 위령비 사진을 찍었고 근처의 윤 봉길 의사 기념관도 들렀었다.
다만 이 공원의 경우 그냥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 개최를 기념하여 조성되었으며, 더 과거에 부지에 무슨 사연이 있었다거나 하지는 않아 보인다.

끝으로, 분당선 서울숲 역은 광역전철 분당선이 압구정로데오 이후로 한강 이북으로 진입한 뒤 만나는 첫 역이다. 강은 서울 지하철 5호선처럼 하저터널로 건너고 말이다. 서울숲 바로 다음은 종점인 왕십리이다. 뚝섬 역과는 500미터 남짓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분당선 서울숲-왕십리와 야탑-모란 사이에는 절연 구간이 있다. 직-교류 절연이 아니라 같은 교류-교류 절연이다. 그래서 남영-서울역만치 유명하고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일부 전동차의 일부 칸에서는 여기를 지날 때 객실 형광등이 아주 잠깐 꺼졌다가 다시 켜지는 걸 볼 수 있다. 서울숲 하니까 역시 철도와 관련하여 이런 게 떠올랐다.

Posted by 사무엘

2016/06/23 19:29 2016/06/23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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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불곡산 (성남)

경기도 성남과 광주는 산들로 가로막혀 있어서 전통적으로 생활권이 서로 단절돼 있다. 성남 분당에서 어디서든 동쪽으로 끝까지 진행해 보면 결국 인적이 뜸해지고 산이 나오는데, 그 산을 넘으면 행정구역이 바뀐다. 본인은 바로 거기 일대를 탐험하고 싶어진 관계로, 하루 날 잡아서 분당의 동남쪽에 있는 불곡산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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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곡산 등산 진입로는 분당동 주민센터, 정자동 이마트, 분당 서울대 병원 근처 등 여러 곳이 있다. 본인은 그 중 이마트를 선택해서 정상을 향해 북쪽으로 산을 올랐다. 위의 사진은 등산 진입로 근처의 풍경이다. 지난번에 검단산을 오를 때처럼 날씨는 흐린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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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곡산은 전반적으로 등산로가 넓고 잘 닦여 있었다. 가끔 벤치와 운동 기구가 놓인 공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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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줄을 잡고 암반을 타고 오르는 험한(?) 구간이 딱~ 한 군데 있었다. 하지만 다른 곳으로 우회도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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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번 암반을 오르자 산등성이에 진입하고 이정표가 나타났다. 정상은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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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는 역시 운동 기구와 함께 책꽂이가 비치된 정자가 있었다. 단, 이 산은 내가 지나간 곳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전망대 같은 건 전혀 없어서 역시 산 아래 경치는 감상할 수 없었다.
전망대가 없고 정상 표지석도 꽤 찾기 힘든 곳에 짱박혀 있어서 난 처음엔 여기가 정상이 아닌 줄 알았다.
어쨌든 산에서 제일 높은 곳에 땅밟기를 성공했으니 1차 목표는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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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는 곧장 광주 방면으로 하산할 수도 있고, 산등성이를 따라 분당동이나 태재고개 등 북쪽으로 산행을 계속할 수도 있었다.
북쪽에 정상보다는 낮지만 '형제봉'이라는 다른 봉우리가 있다고 해서 본인은 그쪽으로 향했다. 등산로는 역시나 전반적으로 폭도 크고 돌 밟을 일이 없을 정도로 아주 잘 닦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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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봉은 불곡산 정상에서 1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여기도 간단한 정자와 운동 시설이 있었지만 역시나 전망대 같은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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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봉까지 들른 뒤, 본인은 분당동이 아니라 반대편 광주 방면으로 하산하기 위해서 태재고개 쪽으로 계속 산을 탔다. 성남을 넘어 광주로 진입할 때쯤 되자 언제부턴가 등산로가 좁아지고 산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태재고개를 몇백 m 앞두고 수풀 속에서 위와 같은 이정표가 나타났다. 여기서 지체없이 광주 뒷골 방면을 선택했다. 태재고개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지만 광주의 산기슭 마을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궁금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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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옷, 드디어 이런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기자기한 빌라들이 늘어서 있는 광주시 오포읍 신현리 마을 어딘가에 착륙했다. 가장 가까운 길 모퉁이에는 '상태길68번길'이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큰길을 향해 몇백 m 정도 걸어가니 마을 입구가 있고, 근처에 버스 정류장도 보였다. 버스를 타니 말로만 듣던 지방도 57호선에 차들이 바글바글 몰려 있었다.

이곳을 떠날 때는 시내버스 17번을 탔다. 덕분에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성 요한 성당, 율동 공원, 분당동 주민센터를 비롯해 성남대로와 분당선 일대만 돌아다닐 때는 접할 수 없던 분당 시가지 내륙 쪽의 모습을 차창 밖으로나마 잘 구경할 수 있었다. 버스가 워낙 꼬불꼬불 돌아서 다니니 투어용으로는 좋았다. =_=;;

사실, 북쪽의 분당동 주민센터 쪽에서 입산해서 형제봉부터 들른 뒤 불곡산 정상까지 남쪽으로 내려가는 경로도 생각할 수 있었다. 동선의 관점에서는 그게 더 낫다. 하지만, 불곡산 정상에서 광주 방면으로 곧바로 하산하는 경우 귀가하는 연계 교통편이 문제가 됐다.
상태마을보다 더 외진 농촌 마을에 도달하게 되며, 이마저도 탐험이 목적이라면 오히려 더 나은 선택이다. 허나 여기는 대중교통이 아예 없는지라 버스를 타려면 어차피 상태마을까지 북쪽으로 몇백m~수 km를 걸어가야 한다.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하산하자마자 곧장 버스를 탈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하게 북남이 아니라 남북으로 코스를 짰다. 기왕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려면 산길로 이동하는 게 낫다고 판단해서이다.
단순히 헬스장의 러닝머신 위를 뛰거나 동네 주변을 조깅하는 것에 비해 등산은 여행과 탐험이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집에서 상대적으로 멀리 외진 곳으로 나간다는 특성상, 중간에 취소를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가기 전에 시간과 체력 분배, 교통편 같은 계획을 잘 짜야 된다. 이것도 많이 해 보면 계획 짜는 것 자체에 재미가 붙는다.

Posted by 사무엘

2016/06/21 08:31 2016/06/2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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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검단산 (하남)

이번에는 서울 동부의 하남에 있는 검단산을 올랐다. 성남에 남한산성과 인접한 동명이산 '검단산'도 있지만, 하남 검단산이 등산 대상으로서 훨씬 더 유명하다.
덕분에 청량산 이후로 거의 한 달 만에 하남시를 다시 방문했다. 이 산 입구는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와 가깝고 하남 내부에서도 여러 시내버스들의 종점이기도 하다. 서울 지하철 5호선이 여기 부근까지 연장 공사 중이었다.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라 하면 본인이 기억하고 있는 건 거의 10년 가까이 전에 학생들이 <블랙박스>라는 현대 문명 풍자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서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무슨 애니메이션 공모전에서 입상했다는 것이다. 안산에 있는 디지털미디어 고등학교와는 커리큘럼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등산을 가느라 말로만 듣던 유명한 학교의 근처를 덤으로 지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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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고등학교 근처에서 출발하는 등산로는 유 길준 묘지를 경유하는 경로와, 현충탑을 거치는 경로로 두 갈래가 있었다. 본인은 전자를 선택했다. 전자가 약간 더 길고 완만하고, 진입로도 더 큼직하게 잘 만들어져 있었다. 위의 사진과 같은 큼직한 길이 유 길준 묘지가 나올 때까지 이어졌다.
단, 산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경사가 급해지고 바닥은 점점 돌밭으로 변해서 오르기가 힘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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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길준 묘를 지난 뒤부터 등산로는 더 험하고 좁아졌다.
방금 전에 본 이정표에 따르면 여기가 해발 285m 정도의 고도였다. 이정표는 400미터대에서 한 번 더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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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산은 지금까지 오르던 산보다는 다소 높은 산이었다(해발 657m). 걷고 또 걸으면서 산을 올랐다. 드디어 뭔가 전망대처럼 생긴 장소가 나왔다.
이 산은 날씨가 좋을 때 오르면 서울의 아차산처럼 꼭대기에서 한강을 내려다볼 수 있으며 특히 팔당댐을 볼 수 있다. 경치 하나만 기대하고 검단산을 선택했는데 이 날은 하필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아래는 그저 뿌옇기만 할 뿐, 중앙 고속도로도, 한강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ㅠㅠ 순수하게 등산 그 자체와, 하산 장소에만 의의를 둬야 했다.

참고로 정상은 사진의 전방에 뿌옇게 보이는 저 봉우리의 꼭대기였다. 아직 저만치 더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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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만난 이정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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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상 직전에 헬리패드가 나타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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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거의 2시간 만에 도달했다. 여기가 딱히 구름 속에 들어간 것도 아닌데 산 아래가 어쩜 이렇게 하나도 안 보일 수가 있나 모를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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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은 팔당댐 인근의 작은 마을인 '아랫배알미' 방면으로 했다. 주변 풍경은 전반적으로 이런 식이었다. 해가 안 나고 하늘은 우유처럼 완벽한 흰색이었다.
아랫배알미 마을에서 하남 시내로 가는 마을 버스가 하나 있는데(2-1), 수요가 수요이다 보니 차는 한두 시간에 한 대꼴이었다. 산중턱엔 이 버스의 시각표가 어느 나무에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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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다른 산도 그렇고 산기슭에 이렇게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진 등산로가 종종 보였다.

보통 서울 외곽의 산속이나 산기슭에는 군부대가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데, 팔당댐 근처의 검단산 기슭에 있는 것은 군사 시설은 아니었다. 그 대신 군사 시설에 준하는 다른 보안 시설이 있었으니 바로 상수도 취수장이었다. 평범한 집이나 공장처럼 생긴 건물이 철조망으로 둘러져 있고 '사진 촬영 금지' 경고문까지 붙어 있었다. 그리고 여기 강 일대는 단순히 위험해서 "수영 금지"가 아니라 그냥 접근 금지, 경작 금지 등 여러 제약이 가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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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는 한강 이북을 따라 달리는 도로가 강변북로이고, 이남은 올림픽대로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여기는 한강 이북으로 국도 6호선이 지나고, 이남인 저기는 국도 45호선이다.
강 건너 저 멀리 뿌옇게 보이는 산은 예빈산 내지 예봉산이다. 나중에 날씨가 맑을 때 저기를 올라서 팔당댐과 한강을 다시 구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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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팔당댐 사진은 아쉽지만 이거 하나로 때웠다. 시간과 체력이 허락한다면 저기를 건너가서 도보나 자전거 여행을 할 수도 있었지만 난 그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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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시 배알미동.
여기서 마을 버스를 탄 뒤 시내에서 서울 지하철역으로 가는 버스, 서울 지하철을 순서대로 갈아타며 귀가했다.
단순히 도시의 팽창을 방지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혹은 '공항이나 청와대, 군부대 근처여서' 같은 이유도 아니라 상수원 보호를 위한 그린벨트라니, 여기는 강이 송두리째 말라 버리는 천재지변이 없는 한 그린벨트가 풀릴 일은 절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색다른 장소를 구경했다.

그리고 한강도 상류로 올라가서 이렇게 폭이 좁아지는 걸 보는 것도 이색적이었다. 서울에서는 한강이 지하철 1정거장 거리 이상의 어마어마한 폭을 자랑하는 하류이니 말이다. 물론 그 물은 왕창 더러워져 있기 때문에 그대로 마실 수 없으며 사실 수영조차도 권장되지 않는다. 서울의 덩치가 커지면서 취수 시설은 역사적으로 점점 더 상류 쪽으로 옮겨져 왔다.

Posted by 사무엘

2016/06/18 08:33 2016/06/1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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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요즘 운동을 빙자한 등산과 여행을 많이 다니느라 올해 상반기엔 프로그램 개발이 많이 더뎠다. 그래서 이번엔 4개월이라는 시간 동안에 버전을 0.1밖에 못 올렸다.
그 와중에도 개발 아이디어는 계속 떠올라서.. 8.x 중후반 정도까지 갈 것 같던 버전업 이정표가 9.0까지는 너끈히 갈 지경이 됐다. 이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참 총체적인 난국이구나.

입력기와 타자연습의 변화 사항은 지난달에 공지한 것 그대로이고 더 변한 게 없다. 그러니 이전 글을 참고하면 된다. 이벤트 처리 수식은 글쇠배열의 추가 옵션으로 이렇게 깔끔하게 구현됐다. 옵션 3개밖에 없던 대화상자가 옵션이 8개로 늘면서 덩치가 제법 두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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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여기서는 이벤트들 중 "문자 연속 입력 단절 감지하기"라는 개념에 대해서만 추가 설명을 좀 하겠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조합 상태 여부에 따라서 동일한 글쇠가 서로 다른 문자를 입력하거나(T변수), Bksp가 서로 다른 단위로 한글을 지우는(글자 or 낱자) 것을 지원했다.
그런데 이번 8.5에서는 이에 덧붙여, 굳이 한글이 아니더라도 일명 '타이핑'이라고 불리는 연속된 문자열 입력을 시작했는지, 아니면 그게 단절됐는지 그 타이밍을 알 수 있게 했다. 이것은 굉장히 의미심장한 새로운 기능이다.

연속 입력의 단절은 마우스 클릭이나 화살표 키로 cursor의 위치가 일괄 변경됐을 때, 윈도우의 키보드 포커스가 바뀌었을 때 같은 외부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 텍스트 에디터/워드 프로세서들은 undo도 연속된 문자열 입력은 한번에 없애 버리지만, 이런 단절이 일어나면 보통 undo 단위를 분리한다.
그러니 연속 입력이라는 건 이 undo 단위와도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얼추 비슷한 개념이다. 또한, 한글이 입력(=조합) 중이라면 응당 문자 연속 입력 중이지만, 문자 연속 입력 중이라고 해서 반드시 한글 조합 중인 것은 아닌 것으로 관계가 성립한다.

8.5에서는 Backspace 동작방식 설정 대화상자가 아래와 같이 바뀌었다. 제1동작과 제2동작을 세로로 배열하던 걸 가로 형태로 바꿨기 때문에 대화상자가 예전보다 좀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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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새로 추가된 기능은 '연속 입력 상태 여부'이다.
이전 버전까지는 오로지 '한글 조합 중 여부'에 따라서 제1동작(조합 중일 때)과 제2동작(그렇지 않을 때)을 구분했다. 거기에다가 '한 번 정해진 동작을 계속 적용'하는 옵션 하나만이 지원되었다. 이 옵션을 켜면 1과 2 중 한번 정해진 동작이 Backspace를 연타하는 동안 계속 유지되었고, 그렇지 않으면 이전 Backspace의 결과로 인해 한글 조합 여부가 달라지기만 해도 동작 방식이 바뀌었다.

그런데 상태 판단 기준을 '연속 입력 상태 여부'로 바꾸면, 조합 상태를 막론하고 연속 입력 중일 때는 제1동작이 선택되고, 그렇지 않으면 제2동작이 선택된다. 굳이 Backspace만을 연타하고 있지 않아도, 당장 한글을 조합 중이지 않아도 타이핑 중이라면 낱자 단위로 지우고 달라붙기 기능 같은 걸 쓰고 싶다면 이 기능이 굉장히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즉, 한 Backspace 동작의 지속성은 '연속 입력 상태 여부'가 가장 길고, 그 다음이 '조합 여부 + 연타'이며 제일 짧은 건 그냥 '조합 여부' 옵션인 것이다.

그럼 이 '연속 입력 상태' 정보를 Backspace에서만 활용 가능한가 하면 물론 그렇지 않다. 지우기뿐만 아니라 입력에서도 활용 가능하다.
다만, 연속 입력 상태라는 아무래도 한 글자 입력이라는 단위를 초월하는 영역의 정보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날개셋> 한글 입력기를 사용하는 구현체가 공급해 주지, 한글 입력기가 직접 관리하고 있지는 않는다.

글쇠배열 수식에서 T 변수는 "지금이 조합 중인가?"를 나타내는데, 그런 것처럼 "지금이 연속입력 상태인가?" 같은 정보가 변수로 따로 주어지지는 않는다. 단지, 연속입력 단절이 발생했을 때 이벤트가 발생하고, 그 이벤트 때 특정 수식을 실행시킬 수 있다. 여기서 뭔가 사용자 변수(소문자)의 값을 변화시켜서 그 값의 변화를 감지함으로써 연속입력 단절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이 수식은 글쇠배열의 추가 옵션 대화상자에서 설정 가능하다.

세벌식 글쇠배열과 관련해서 내가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활용 방법은 최종 배열에 있는 쉼표와 마침표이다.
쉼표와 마침표는 평소에 문장 부호로 많이 쓰이지만 자리수 구분이나 소수점 때문에 숫자 입력 중에도 많이 쓰인다. 그렇기 때문에 Shift를 누른 상태에서도 계속 그대로 입력 가능한 게 좋다. 하지만 그런 제한된 경우 말고 평소에 쉼표와 마침표가 한 글쇠배열에 중복 등재되어 있는 것은 낭비이다.

마치 / 자리에 /와 ㅗ를 조건부로 모두 배당하는 것처럼, Shift+쉼표/마침표는 숫자를 연속 입력하는 중일 때에만 쉼표와 마침표가 찍히고, 나머지 상황에서는 다른 기호나 특수글쇠가 입력되게 할 수 있다. '공통 전처리'와 '연속 입력 단절 이벤트' 수식에다가는 어떤 소문자 변수 플래그를 끄고, 숫자가 입력된 직후에는 그 플래그를 켜게 해서 Shift+쉼표/마침표는 그 플래그의 존재 여부에 따라 서로 다른 문자가 입력되게 하면 된다.

이거 작업을 하면서 Backspace 설정을 저장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8.5에서 저장한 입력 설정은 8.4 등 이전 버전에서는 Backspace 옵션이 보존되어 있지 못할 것이다.
그럼 새 기능 소개는 이 정도로 마치고, 지금부터는 미래의 떡밥이랄까 썰이나 좀 나누고자 한다.

썰1. 제5의 빠른설정

<날개셋> 한글 입력기에 '빠른설정'으로는 두벌식/세벌식, 쿼티/드보락이라는 가장 널리 쓰이는 글쇠배열을 낱자 결합과 오토마타까지 한번에 세팅해 주는 '기본 글자판 설정'이라는 게 3.0 시절부터 존재했다. 그 뒤엔 복벌식· 신세벌식과 한글 로마자 입력 방식을 세팅해 주는 추가적인 빠른설정이 2006년에 나온 3.9에서 추가되어 이 형태가 지난 10년 간 유지돼 왔다. 그 뒤, 이번 8.5의 바로 다음 버전에서는 아주 중요한 빠른설정이 하나 더 추가될 예정이다.

내 프로그램 내부에서는 낱자 결합 규칙이라는 걸 오로지 A+B → C 한 형태만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글 입력 방식에서 낱자 결합 규칙이라는 건 한 낱자를 만드는 미시적인 규칙과, 낱자와 낱자를 결합해서 겹낱자를 만드는 거시적인 규칙으로 구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PC에서야 키보드에 글쇠 수가 충분히 많으니 어지간한 낱자는 한 타 만에 바로 입력되고 미시적인 규칙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글쇠 수가 매우 적은 모바일용 입력 방식에서는 ㅁ+가획 → ㅂ(나랏글), ㅇ+ㅇ → ㅁ(천지인) 같은 미시규칙이 제각각이고, 그 반면 거시규칙은 어느 입력 방식이나 차이가 없다. ㅂ이나 ㅅ 각각의 낱자를 어떤 방식으로 입력하건 겹받침 ㅄ의 입력은 가능해야 하며 ㅂ+ㅅ의 결합으로 ㅄ을 입력한다는 건 변함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도깨비불 현상은 미시규칙이 아니라 언제나 거시규칙 단위로 발생한다. ㅄ은 ㅂ과 ㅅ으로 분리되지만 ㅂ이 ㅁ과 가획으로 분리되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휴대전화 입력기들은 backspace도 각각의 입력 단계가 스택에 저장되는 게 아니라 저 거시규칙 단위로 적용되는 편이다. 이런 미시/거시규칙 구분이 없이 정말 임의로 특수 도깨비불을 처리해야 하는 입력 방식은 한글 로마자 방식 정도밖에 없다(ch, l, x 등;;).

물론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특수 도깨비불 규칙과 결합 축약 규칙들을 이용해 저런 동작들을 모두 구현할 수 있다. 그러나 사용자가 거시구조 단위에서 발생하는 파생 동작을 미시적으로 일일이 다 세팅을 해 줘야 한다. ㄶ, ㅀ의 입력을 구현하기 위해 나랏글이라면 중간의 ㄴ+ㅇ, ㄹ+ㅇ 같은 가상의 상태를 모두 넣어야 하고 그런 임시 낱자는 가상 낱자에다 한글 출력 치환까지 써서 표현하는 방법을 정해 줘야 한다. 일종의 노가다이다.

'초· 종성 공유 낱자 결합 규칙' 옵션을 쓰면 초성에는 미시규칙만 존재하고 종성에는 이를 바탕으로 최대 2단계의 거시규칙이 존재하는 일종의 'special case'에만 한해서 위의 작업들을 모두 자동화할 수 있다. 현대 한글을 입력하는 대부분의 휴대전화 입력 방식들이 이 기능의 혜택을 입을 수 있다.

그러나 옛한글까지 동원되면 어떨까? 초성과 종성에 서로 다른 거시규칙이 적용돼야 하고 그 단계수도 3단계까지 있을 수 있는데 이건 답이 없다.
이럴 때 미시규칙으로부터 거시규칙을 곱한 product들을 자동으로 관리하고 가상 낱자, 특수 도깨비불, 낱자 축약, 다단계 낱자 분리 등의 규칙들을 임시 낱자까지 감안하여 일관되게 자동으로 생성해 주는 것이 제5의 빠른설정이 하는 일이다.

제5의 빠른설정은 종성을 입력하는 중에 종성에 존재하지 않는 초성을 입력하려는 시도가 감지됐을 때(예: 옛한글의 정치음· 치두음) 이것을 종성에다 임시로 표현하거나 아니면 초성으로 옮겨 준다.
그리고 '허용 한글 범위' 제약에 걸리지만 중간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입력되는 글자들을 자동으로 찾아 주며(예: '썅'을 입력하는 과정에서 '쌰'를 불가피하게 입력해야 하므로),
종성-초성 음절간 연속입력이 불가능한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미시결합과 거시결합이 충돌하는 경우를 모두 찾아 준다(예: 천지인에서 ㅝ와 ㆌ는 입력 순서가 동일하기 때문에 충돌함)

그야말로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지금까지 꾸준히 추가해 온 복잡한 고급 기능들을 총괄제어하는 끝판왕이 될 것이다.

썰2. 한자의 추가 지원 가능성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공식적으로 유니코드의 BMP(기본 외국어 평면) 영역에 있는 28000여 자의 한자에 대해서 독음과 부수에 의한 입력을 지원한다. 한중일 통합 한자, 호환용 한자, 그리고 확장 A까지이다. 그 이상 확장 B부터는 지원하지 않고 있다.

물론 유니코드에 등록된 모든 한자들은 부수, 획수, 음 같은 기본적인 신상 정보가 Unihan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 공개돼 있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이를 활용 가능하다. 그러나 <날개셋> 한글 입력기에서 유니코드의 모든 한자들을 그렇게 지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으며, 그래야만 할 필요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확장 B부터는 코드 번호가 16비트 범위를 초과하는 surrogate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까지 받아들이려면 한자 처리와 관련해서 16비트 크기를 전제하고 만들어진 파일 구조나 API를 여러 군데 확장해야 한다. 단순히 데이터만 추가로 집어넣어 주면 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확장 작업이 꼭 필요할 정도로 명분과 가성비가 성립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내 프로그램은 엄연히 중국어 입력기가 아니라 한글 입력기이고, 한국어 문화권에서는 이미 있는 BMP 영역의 확장 한자도 일상생활에서 거의 쓸 일이 없기 때문이다.
괜히 쓸데없이 한자 후보 목록만 복잡하게 만들고 목록을 불러오는 시간을 잡아먹는다고, 평상시에는 이미 있는 것조차도 오히려 숨기고 4888자 상용 한자만 불러오게 하는 옵션이 따로 있을 정도이다.

독음 입력의 경우 확장 B까지 추가되면 '가, 이, 사' 같은 음은 정말 헬게이트 수준으로 딸려 나오는 한자 후보가 너무 많아질 것이고, 무엇보다도 이런 한자들의 한국어 한자음은 누가 무슨 근거로 제정하느냐 하는 문제가 생긴다. 본인은 이와 관련된 자료를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다. 이제 surrogate에 있는 한자들은 현대 중국어에서 막 쓰인다기보다는 그냥 옛 문헌에서나 아주 가끔 등장한 레어템 벽자(僻字)들이거나, 아니면 어디서 인명용으로 인위로 만들어진 듣보잡 글자들이 아닐까 생각도 한다.

다만, 한글 독음은 그렇다 치더라도 '부수로 한자 입력' 기능은 그래도 확장 B의 모든 한자를 입력할 수 있으면 좋긴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이건 언제까지나 '한글' 입력과 관련된 다른 기능들이 모두 구현되고 완성된 뒤에나 해 볼 만한 생각이다. 우선순위가 아주 낮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한자는 현재 전세계에서 현역으로 쓰이고 있는 문자들 중 유일한 표의/표어문자이며, 정말 다른 문자들은 엄두도 못 낼 엄청난 양의 글자 수를 자랑하고 있다. 자세히 뜯어 보면 한자도 정사각형 안에서 뭔가 심오· 오묘한 제자 원리를 갖추긴 한 듯하지만, 근본적으로 배우기가 너무 어렵고 숫자로 치면 아라비아 숫자가 아니라 로마 숫자 같은 접근을 한 문자이다.
문자라는 게 정해진 유한한 틀과 체계가 없이 중구난방으로 임의 생성이 가능하다면 그건 엄밀히 말해 문자가 아니라 아직 그림의 범주를 못 벗어난 상태가 아니겠는가? 문자표에서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한중일 통합 한자 리스트를 보면.. 뭔가 참 막막하다는 느낌이 든다.

썰3. 파일 포맷이 또 바뀐다면?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현재 사용하는 입력 설정 파일 포맷은 2008년에 나온 5.0 버전 때 큰 틀이 잡혀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3.0 방식이 나온 이후로 4년 만에 바뀐 것이다.
이 포맷은 압축을 하지는 않지만(어차피 무슨 이미지나 문서 포맷도 아니고 파일 크기가 굉장히 작음..) 날개셋문자 수식 같은 정보들을 최대한 조밀하게 기록하고 나름 확장성도 생각해서 설계되었다. 하지만 긴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운 chunk들이 덕지덕지 추가되면서 내부 구조가 좀 지저분해져 있긴 하다.

유니코드에 한글 자모가 더 추가되어서 내부 자모 순서가 재조정되는 이변이라도 발생하지 않으면 이 파일 포맷이 가까운 미래에 또 바뀔 일은 매우 희박하다.
만약 파일 포맷을 바꾸게 되면, 그때는 지저분한 chunk들을 정리하고 다음 사항을 반영하려 한다.

첫째, 내부에 저장되는 데이터 중 (1) 한글 입력기의 동작을 실제로 바꾸는 설정/옵션과, (2) 동작에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사용자에게 표시되는 데이터(후보 설명문 같은), (3) 제어판을 열지 않은 이상 사용자에게 전혀 보이지 않는 단순 주석 데이터(오토마타 상태 설명문 같은) 영역을 더 엄격하게 구분해서 필요하다면 (2)나 (3)은 손쉽게 생략 가능하게 할 것이다.

둘째, 이때쯤 수식에 ++와 -- 단항 연산자를 추가해 넣을 의향이 있다. C언어가 제공하는 것처럼 전위형과 후위형 모두 말이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수식은 C언어 스타일이지만 이런 단항 증가/감소 연산자를 현재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연산자가 제공되지 않은 이유는.. 단항 연산자는 프로그래밍에서 반복문을 구현할 때 사실 가장 많이 쓰이는데 내 프로그램의 수식은 그렇게 프로그래밍까지 가능한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용자 변수라 하더라도 한도 끝도 없이 1씩 증가/감소시키는 것보다는 a=(a+1)%N처럼 순환을 전제로 하는 증가가 더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이런 여건을 감안했을 때 ++와 -- 연산자는 딱히 유용하지 않다고 판단되어서 넣지 않았다.

사실, 먼 옛날에는 +=, -= 같은 합성 대입 연산자조차 지원하지 않았다가 지난 4.4 버전에서 10종이 대거 추가되었다. 가감승제 4, 나머지 1, 비트 3 (and or xor), 비트 좌우 이동 2 이렇게 총 10종류이다.
내 프로그램은 내부적으로 연산자의 식별 번호를 우선순위 순으로 부여하고 있는데 새로 추가된 연산자들은 메모리에 저장되는 코드값과 디스크에 이미 저장된 코드값이 달라서 번거롭게 보정을 해 줘야 했다. 마치 문자의 코드값과 사전 배열 순서가 동일하지 않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3.x 파일 포맷에서는 합성 대입 연산자들이 나중에 추가된 관계로 그런 보정이 존재했지만, 5.0에서 파일 포맷이 바뀔 때 연산자 저장 방식을 동기화시켰다. 지금 또 연산자가 추가되면 나중에 파일 포맷이 바뀔 때 새로운 순서가 반영될 것이다. ++와 --는 고려 대상이긴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이유도 있고 해서 우선순위가 막 높지는 않다.

썰4. 게임 체계의 개편

예전에 말한 적이 있나 모르겠는데.. 장기적으로는 현재 타자연습에 있는 게임도 체계를 크게 고치려 생각 중이다.
방어력 업그레이드를 없애고, 둠/퀘이크의 아머 내지 스타크래프트의 실드 같은 보조 맷집 정도만 넣지, HP와 관련하여 그 이상 더 복잡한 다단계 체계를 두지는 않을 것이다. 체력을 100 이상으로 비정상적으로 많이 비축해 놓을 수 없게 할 것이다.

그 대신 체력 보충 바이러스가 더 자주 나오고 위력이 강해진다. 한 번만 받아도 어느 주인공이든 전체 체력의 절반이나 전부가 곧장 회복된다. 어려운 레벨에서는 죽기 직전이 됐다가 바이러스 한 방 먹고 살아나는 스릴이랄까 '들쭉날쭉' 기복이 더 커진다. 이를 위해 어쩌면 레벨의 난이도를 지금보다 더 낮출 수도 있다.

현재의 게임 체계는 레벨 1부터 시작해서 체력과 방어력 업그레이드를 무슨 경험치처럼 채워야만 상위 레벨에서 버티기가 더 수월해지는 구조이다. 이걸 타파하려 한다.
주인공들 중 '한별'은 오타 페널티가 있는 대신 저렇게 맷집을 축적하는 게 가장 유리한 주인공이었다. 그 메리트가 없어지는 대신, 점수가 가장 높다거나 다른 방법으로 보상을 줄 생각이다.

한별은 어려운 대신에 잘 다루면 가장 강력한 주인공이고, 미르는 오타를 내도 되는 대신에 다른 페널티가 큰 주인공, 그리고 아름은 그 중간.. 이 구도는 변함없이 유지된다.
그런데 떨어지는 단어를 쳐서 없애는 게임에서 현실적인 변수는 저런 타자의 용이성과 체력 맷집밖에 없는데.. 체력 맷집 체계를 단순화· 평준화시키고 나니 다른 방법으로 주인공별 차별화를 어떻게 시킬지가 고민이다.
현재로서는 머리가 아파서 구상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아이고~ =_=;;

Posted by 사무엘

2016/06/15 08:31 2016/06/15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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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응봉산

산이라 하면 아무리 못해도 해발 200~300미터 이상은 돼야 등산의 대상이 되고 동네 뒷산 대접이라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서울 시내엔 100미터 남짓에 불과해 그냥 어지간한 고층 건물 높이밖에 안 되는 언덕도 있다. 낮을 뿐만 아니라 딱히 산맥이 길게 이어져 있지 않아서 능선 산책로도 별로 없다. 강서구에 있는 우장산, 동부에 있는 천장산, 봉화산 같은 산이 그 예이다.

서울 지하철 5호선이 상일동과 마천 방면으로 찢어지는 지점에는 일자산이라는 낮은 산이 있어서 전방을 가로막고 있다. 일산선의 정발산 역에는 근처에 호수 공원과 더불어 말 그대로 정발산이 있는데, 얘 역시 산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한 감이 있는 그냥 언덕(hill)이다.

이번에 본인이 답사하여 소개하고자 하는 산은 응봉산이다. 얘 역시 '등산'이라는 말을 붙이기에는 좀 낮은 산이다. 그래도 산까지 가는 데 자동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청계천과 중랑천 공원을 거쳐서 자전거만으로 이동해서 추가적인 운동을 했다.
응봉 역의 출구로 나가니 '응봉산 팔각정'을 가리키는 이정표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가파른 주택가 골목길을 한참을 올라가자 드디어 흙으로 된 산길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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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길로 진입하기 전에도 잠시 이런 공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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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는 길은 대략 이러했다. 나름 꽃도 예쁘게 피어서 풍경이 아니라 식물들 사진을 찍는 사람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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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 펼쳐진 하천은 중랑천이다. 강 건너편을 좌에서 우로 훑으면 웬 공장이 있고, 그 다음에 서울숲과 성수대교(저 멀리 한강을 건너는 빨간 다리)가 순서대로 보인다. 그렇잖아도 여기는 중랑천이 한강과 합류하고, 동시에 동부 간선 도로가 강변북로와 합류하기 직전 지점이다.

중랑천을 횡단하여 내가 있는 쪽으로 가까이 오는 저 다리는 응봉교가 아니라 용비교이다.
생각 같아서는 여기서 별로 멀리 떨어지지도 않은 서울숲까지도 자전거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저 다리는 자동차로만 건널 수 있으니 무효다. 저기는 나중에 따로 가 보게 될 듯.
응봉과 서울숲 모두 전철로는 왕십리 역에서 한 정거장 거리이다. (각각 중앙선과 분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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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산을 오르면 이렇게 중앙선(수도권 전철 노선명)/경원선(원래의 노선명) 선로를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 응봉산의 가장 매력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응봉산 전체와 그 아래를 지나는 중앙선 전동차를 같이 찍은 사진도 있다. 마치 일본에서 후지산을 배경으로 달리는 신칸센 사진을 찍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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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도달하면 넓은 공터에 이런 전망대와 팔각정이 있다. 낮고 부담 없이 오를 수 있으니, 여름엔 여기에 돗자리 깔고 누워서 잠도 자고 싶을 것 같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이런 공원과 하천, 언덕에다 철길까지 있는 곳은 그야말로 천혜의 요지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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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도 응봉산 만만찮은 고지대 같은데, 실제로 그러하다. 상왕십리-신금호-행당 사이는 '대현산'이라고 응봉산과 비슷한 높이의 산이 있다. 하지만 저기는 꼭대기까지 온통 건물들이 지어져 있다.
이런 식으로 궁극적으로는 서울 시내 지도를 뒤져서 해발 100미터대의 고지대들에 대해 전반적으로 다 찾아보는 것도 가능할 듯하다. 특히 대학교 위주로 말이다. 서울 시립대 근처에는 배봉산이 있고, 고려대 근처에는 개운산, 경희대 근처에는 천장산이 있다.

서울 현충원의 터가 있는 산은 '서달산'이라고 불리는 야산이다. 한강 근처에 나름 굉장히 입지가 좋은 곳인데 이 승만 시절부터 여기는 국군 묘지로 조성되었다.
끝으로, 일반인은 접근할 수가 없겠지만 용산의 주한 미군 부지도 일명 '둔지산'이라고 불리는 나지막한 언덕 고지대라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6/06/12 19:33 2016/06/12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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