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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차원 적분

※ 이 글의 내용은 예전에 썼던 <확률과 조합에서 발견한 자연대수 e>와 <원에 대한 적분 외>의 연장선상에 있다.

1차원 선에서 0부터 1까지의 선분의 길이는 두 말할 나위 없이 1이다.
2차원 공간에서 원점, (1,0), (0,1)을 지나는 이등변삼각형의 넓이는 1의 절반인 1/2이다.
이를 더 확장해서 3차원 공간에서 원점과 (1,0,0), (0,1,0), (0,0,1)을 꼭지점으로 갖는 사면체의 부피는 1/6이다.
이를 일반화해서 n차원 적분을 생각해 보면, 차원이 하나 올라갈 때마다 n차원 축을 한 칸씩만 점유하는 초입방체의 부피는 1/(n!)로 팩토리얼의 역수가 되고,  전체 초면체와의 비는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한다는 걸 알 수 있다. x^n의 부정적분은 (x^(n+1)) / (n+1) + C이다.

한편, 한 변의 길이가 2인 정사각형의 넓이는 4이고, 그 안에 들어가는 반지름이 1인 원의 넓이는 잘 알다시피 pi이다. 원과 사각형의 넓의 비는 pi/4, 즉 78.5% 정도 된다.
이를 공간으로 확장하면 한 변의 길이가 2인 정육면체의 부피는 8이고, 그 안에 들어가는 반지름이 1인 구의 부피는 4*pi/3이다. 구와 정육면체의 부피 비율은 pi/6 (약 52.3%)으로, 넓이일 때보다 비율이 더 작아진다. 이 비율 역시 차원이 증가할수록 더욱 작아진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럼 혹시 4차원, 5차원, n차원 초구의 부피를 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몰론 있다.
원의 방정식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f(x) = sqrt( r^2 - x^2 ) 라는 함수를 먼저 정의하자. 얘는 x가 0에서 r로 갈 때 임의의 구간에서 원의 높이를 나타내는, 즉 '둥긂'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함수이니까 말이다.

반지름이 r인 원의 넓이는 잘 알다시피 int( 2*f(x), x=-r..r) 로 나타내어지며 pi*r^2이라는 유명한 공식이 나온다.

그럼 반지름이 r인 구의 부피는 pi*r^2에서 r 대신 f(x)를 다시 집어넣어서 적분을 하면 된다.
int(pi*f(x)^2, x=-r..r) 가 (4/3)*pi*r^3이 된다.

4차원부터도 동일한 방식으로 적분을 계속하면 된다. 수많은 구들이 4차원에 있는 원 표면의 높이 변화량만치 연속적으로 쌓여 있는 것이므로.. 저 r 대신에 또 f(x)를 집어넣으면
int(4*pi*f(x)^3/3, x=-r..r) 은 드디어 파이까지도 제곱이 되어 4차원 초구의 부피는 (1/2)* pi^2 * r^4가 나온다. 한 변의 길이가 2인 4차원 초정육면체와의 부피 비율은 약 30.8%대로 곤두박질친다.

5차원 초구는? int( pi^2 * f(x)^4 / 2, x=-r..r)의 결과는 (8/15) * pi^2 * r^5 (약 16.4%)
6차원 초구는 pi^3 * r^6 / 6 (약 8%)가 된다. 사면체의 부피만큼이나 이것도 비율이 갈수록 곤두박질친다.
요렇게 비율이 한데 수렴하고 특히 짝수차일 때와 홀수차일 때 번갈아가며 무슨 특성이 발견되는 건 리만 제타 함수의 값하고도 비슷해 보인다. 게다가 리만 제타 함수도 n이 짝수일 때는 나름 pi^n의 유리수배가 되기도 하니, 반지름 길이가 1인 n차원 초구의 부피하고도 비록 수학적 의미는 딴판일지언정 좀 비슷해 보이는 구석이 있다.

수학 전공자 중에는 위의 적분들을 직접 손으로 푸는 용자도 있다. 그나마 짝수 승일 때는 루트가 없어지기 때문에 계산이 더 쉬워지는 편. 난 차마 손으로 풀어 볼 시간이나 자신은 없어서 그냥 수학 패키지를 돌려서 답을 구했다.
딱 보면 알겠지만 식에는 규칙성이 있다. 홀수승일 때와 짝수승일 때를 따로 생각해서 각각 차수가 2씩 증가할 때마다 pi에 붙는 제곱도 1씩 증가하고 계수는 2/n씩 증가한다고 보면 정확하다. 짝수승일 때는 1/2 (4차원), 1/24 (6차원)처럼 상수 계수가 1/n!으로 깔끔하게 증가하는 반면, 홀수승일 때는 계수가 좀 복잡하게 올라간다.

울트라 초천재가 아니고서야 4차원이 넘어가는 초구의 존재를 인간의 머리로 제대로 상상하고 실감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넘사벽'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눈과 귀로 직감할 수 없는 차원이라는 게 신앙의 영역에 있다면, 이해가 안 되더라도 말 그대로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학은 그런 게 아니라 고도의 논리와 이성의 영역에 있다.

아쉬운 대로 고차원 공간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방법은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것이다. 다음 코드는 n차원 공간을 -1부터 1까지 점을 순서대로 마구 찍은 뒤, 원점으로부터 거리가 1 이내인 점의 개수를 세서 부피 비율을 구한다. 깔끔한 재귀호출 대신 사용자 정의 스택으로 구현했다.

double GetVolume(int dim, double delta)
{
    double buf[8], vl; int pos=0, i;
    double initv=-1.0-delta;
    __int64 x=0,y=0; buf[0]=initv;
    while(pos>=0) {
        if(pos==dim) {
            for(vl=0, i=0; i<dim; i++) {
                vl+=buf[i]*buf[i]; if(vl>1.0) break;
            }
            if(i==dim) ++x; ++y; --pos; //1 이내에 들면.
        }
        else {
            buf[pos+1]=initv;
            if( (buf[pos]+=delta) > 1.0) --pos; else pos++;
        }
    }
    return (double)x/y;
}

그래서 이렇게 찍으면 결과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printf("%f\n", GetVolume(2, 0.01)); //0.785075
printf("%f\n", GetVolume(3, 0.01)); //0.523467
printf("%f\n", GetVolume(4, 0.03)); //0.302340
printf("%f\n", GetVolume(5, 0.05)); //0.164649

처음엔 -1부터 1까지 0.01씩 움직이니까 200등분을 했지만 4차원과 5차원으로 갈수록 66등분, 40등분으로 간격을 늘린 이유는.. 당연히 4승, 5승으로 급격히 증가하는 계산량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2차원과 3차원은 값이 상당히 정확히 나온 반면, 4차원과 5차원은 오차가 좀 큰 편이다.
그래도 계산이 워낙 단순무식하고 간단하므로 OpenMP 지시자를 집어넣거나 직접 손으로 코드 차원에서 스레드를 강제 분배하든가 해서 멀티코어+병렬화 최적화로 계산 속도를 몇 배 정도 끌어올릴 여지는 존재한다.

사실은 4차원 이상으로 갈 필요도 없이, 3차원 공간에 구가 여러 개 포개어져 있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학교 수학 시간에 집합 사이의 bool 관계를 구하는 문제에서 집합의 개수는 3개를 넘어간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2차원 평면에서 집합들의 모든 소속 가짓수를 벤 다이어그램으로 그릴 수 있는 한계가 3개이고 2^3, 총 8가지 가짓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3차원 공간에서 구를 4개 포개어서 입체 벤 다이어그램을 그리면 16가지 가능성을 모두 표현할 수 있다. 구 3개가 8가지 가짓수를 만들고, 거기에 위에다 4개의 구를 적당히 겹쳐 놓으면 8개에다가 넷째 구와 겹치는 놈 8가지가 또 추가되어서 16개가 되니까 말이다. 이 역시 코드로 작성해서 무식하게 확인하면 다음과 같다.

struct SPHERE { double x,y,z; };
const SPHERE fp[4]={
    {0,0,0},
    {0.4,0,0},
    {0.2,0.4,0},
    {0.2,0.2,1.5}
};
auto Square = [](double x) { return x*x; };
SPHERE d;
bool bitfl[16]={false,};
for(d.x=-1; d.x<=1.5; d.x+=0.02)
    for(d.y=-1; d.y<=1.5; d.y+=0.02)
        for(d.z=-1; d.z<=1.5; d.z+=0.02) {
            int bt=0;
            for(int i=0; i<4; i++)
                if( Square(fp[i].x-d.x)+Square(fp[i].y-d.y)+Square(fp[i].z-d.z) <=1) bt|=(1<<i);
            bitfl[bt] = true;
        }
for each(int n in bitfl)
    printf("%d ", n);

반지름은 모두 1이고, (0,0,0), (0.4,0,0), (0.2,0.4,0), (0.2,0.2,1.5)인 4개의 구를 설정한다. 그리고 -1부터 1.5까지 0.02 간격으로 뺑뺑이를 돌려서.. 각 점별로 자기가 속하는 구의 번호에 해당하는 2진수 비트들(8+4+2+1)의 합을 구한다. 그 뒤 그 합에 해당하는 플래그를 켠다.

나중에 플래그의 값을 출력해 보면 모든 비트들이 1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어느 구에도 속하지 않은 놈, 모든 구에 속한 놈, 1, 3, 4번 구에만 속한 놈, 2, 3번 구에만 속한 놈 등등 16가지 가능성이 실제로 모두 존재한다는 뜻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이다. 그 반면 구가 5개를 넘어가면 그 32, 64가지 가능성을 한꺼번에 3차원에서 표현할 수는 없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반지름이 수십~수백 정도에 달하는 충분히 큰 구의 복셀의 표면을 보는 느낌은 어떨까 문득 궁금해진다.
수학 패키지 소프트웨어들은 3차원 음함수의 그래프를 아무래도 폴리곤+와이어프레임 형태로 근사해서 보여 줄 것이다. 하지만 곡선/곡면을 폴리곤이 아니라 아예 계단현상을 볼 수 있는 복셀로 근사해서 보면 또 느낌이 굉장히 이색적일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표면에는 역시나 원들 무늬가 그러져 있구나!
앞서 보다시피 5차원~6차원 이상으로 가면 단순무식하게 점을 때려박는 것도 계산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이럴 때 정확한 초구의 부피를 구할 수 있는 건 역시나 수학 해석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분 내지 역함수인 부정적분을 할 때 변수의 차수와 계수가 왜 저렇게 변하는지는 다항함수의 차이 극한값을 구해 보면 알 수 있다. 극한부터 시작해서 미분· 적분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낸 건 정말 위대한 발견인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5/10/15 08:39 2015/10/15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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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초의 인공위성

세계에서 최초로 발사된 인공위성은 잘 알다시피 1957년 10월에 구소련이 발사한 스푸트니크 1호이다. 얘는 배터리를 이용해서 기계가 약 3주 동안 동작했으며, 약 3개월 동안 지구 궤도를 돌다가 슬슬 힘이 다하면서 지구 궤도로 떨어지고 불타 없어졌다.

그 뒤 이에 자극 받은 미국은 몇 차례 실패를 한 끝에 1958년 3월에 뱅가드 1호라는 인공위성을 간신히 띄웠다. 얘는 시기적으로 2등 콩라인에 머물렀고 당시 소련의 스푸트니크 2호처럼 생명체를 태우는 실험도 못 했지만, 그래도 기술적으로 굉장한 진보를 이룬 게 있었다.

먼저, 당시로서는 굉장한 첨단 기술이던 태양 전지를 도입해서 현지에서도 전력을 공급함으로써 기계의 수명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다. 무려 3개월간을 지상과 교신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이야 인공위성이라 하면 커다란 직사각형 집광판이 달린 모습이 당연시되고 있지만 그게 처음부터 관행이었던 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더 무서운 점은.. 얘는 궤도 진입과 관리를 어떻게 고퀄로 했는지, 발사로부터 6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지구를 돌고 있다고 한다.
물론 교신이 끊어지고 아무 동작도 못 하는 고철덩어리 우주쓰레기 신세이지만, 참 가늘고 길게 가고 있다. 앞으로 최하 200년 이상은 더 그렇게 돌 수 있다고 한다.

보이저 1호/2호가 아직도 지구와 교신이 되는 것만큼이나 참 신기한 일이다. 물론 외행성 탐사선이야 태양 전지가 전혀 쓸모가 없으니 원자력 전지를 사용한다.
미국이 처음에 인공위성을 띄우느라 삽질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나로 호 생각도 난다. 단지 차이는 미국은 한국보다 그걸 50년쯤 전에 먼저 했다는 것뿐이다. 마이카 시대도 한국보다 50년 이상 전부터 시작됐고.

2. 화약의 위력

1605년 영국의 화약 음모 사건 때 지하실에 몰래 비축된 흑색화약의 양은 문헌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지만 드럼통 30여 개 분량이었다고 한다. 화약 전체의 무게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1.x ~ 2톤을 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이들 흑색화약의 TNT 대비 위력계수는 0.55 정도로 알려져 있으므로 가이 포크스가 준비한 화약의 위력은 오늘날로 치면 TNT 1톤이 약간 안 되는 정도였으리라 추정된다.

물론 그건 음모가 성공했을 경우 의회 건물을 몽땅 박살 내고 잉글랜드 수뇌부들을 모두 날려버리고도 남는 충분한 위력이었다. 영국에서는 가이 포크스가 잡힌 날을 지금까지도 유대인들의 부림절처럼 기념하고 있고, 그때 화약의 위력이 어땠을지를 시뮬레이션하고 분석해서 역사 교양 다큐멘터리로 방영하곤 했다. 자기네 나라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그 뒤.. 1995년 4월의 미국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 때 가해자들이 트럭으로 운반해 터뜨린 폭발물은 TNT 약 2.3톤급의 위력이었다. 고층 건물이 1/3이 완전히 날아가 버렸으며 유리창은 모조리 박살 나서 수류탄 파편으로 변했고, 주변의 자동차들이 터지면서 2차 폭발을 일으켰다.

그리고 오늘날 미국이 운용하고 있는 가장 큰 재래식 폭탄 MOAB은 자기 무게는 약 11톤이고 실제 위력은 TNT 약 13톤급이다. TNT보다 더 위력이 강한 폭약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아, 참고로 1톤 정도의 무게는 교통사고 현장에서 전복된 승용차를 낑낑대며 들어올려 보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재래식 폭탄이 아니라 핵무기로 가면 폭발력 수치의 뒤에 0이 몇 개 더 추가된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리틀 보이' 원자폭탄이 TNT 16,000톤급의 위력으로 분류된다. 참고로 나중에 나가사키에 떨어진 '팻 맨'은 위력이 더 업그레이드 되어 22,000톤 정도. 쉽게 말해 수십 킬로톤이다.
'리틀 보이'의 실제 무게는 약 4670kg 남짓으로, 5톤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저런 폭발력이 나온다는 건 핵무기가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캐사기적인 비대칭 무기인지를 짐작케 한다.

1961년에 구소련이 개발하여 터뜨린 '차르 봄바'라는 초대형 수소 폭탄은 인류가 지금까지 개발한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폭탄 자체의 무게는 27톤이고 위력은 킬로급을 넘어서 50~58 메가톤 정도로 집계되었다. '메가'는 10의 6승이다. 핵무기로 가면 화약 음모 사건이니 MOAB 폭탄 같은 건 그냥 잊어버려야 된다.

옛날에 메가쑈킹 작가가 남긴 주옥같은 명대사 중에 "꽃피는 봄이 오니 메가톤급 외로움이 텍사스 소떼처럼 밀려오는구나."가 있었는데.. 외로움이 메가톤급이나 되면 사람은 멘탈붕괴를 감당치 못해 머리를 쥐어뜯고 뒹굴다 자살하고 난리가 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엄청난 외로움은 겨우 텍사스 소떼의 stampede 수준의 bandwidth와 throughput으로는 전송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과장을 해도 실제 수치가 뭔지는 알고 과장해야 하리라 여겨진다.

3. 마력과 토크

자동차의 엔진 성능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두 잣대는 일명 마력이라고 불리는 출력과, 그리고 토크이다.
물리학적으로 따져 보면 출력은 일률(단위 시간당 일을 하는 양) 단위인지라 차의 속도와 관계가 있으며, 토크는 rpm별로 이때 엔진이 내는 회전력을 나타내는 힘의 단위이다.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회전축의 길이가 명시돼 있으니 일의 단위이긴 하지만 그래도 거리는 고정돼 있고 kgf의 값만 측정하니 힘의 단위인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엔진의 토크는 최대 토크가 나오는 rpm을 지난 뒤부터는 감소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 출력이 나오는 rpm은 최대 토크가 나오는 rpm보다 더 큰 데서 나온 뒤, 그 이후부터 감소한다. 최대 출력 함수는 최대 토크 함수를 rpm 변수에 대해 적분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건 하루 중 태양의 고도가 가장 높은 때(정오 무렵)와 하루 중 가장 더울 때(오후 2~3시쯤)가 살짝 차이가 나는 이유와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태양의 고도는 토크이고 그래서 열이 축적돼서 더운 것은 출력에 대응하니까.

그리고 자동차 엔진의 출력은 사람의 심폐 기능에다가도 비유할 수 있다. 이건 체력, 특히 지구력과 결정적인 관계가 있다.
마라톤 선수처럼 심장과 폐가 워낙 발달한 사람은 평상시에 분당 맥박이 겨우 4~50회만으로도 감당이 된다고 한다. 저회전에서 토크가 굉장히 높은 디젤 엔진과 구조적으로 다를 바 없다.

4. 디스크와 드럼

자동차와 컴퓨터. 서로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두 기계에서 그래도 '디스크'와 '드럼'이라는 용어를 공통으로 접할 수 있다는 게 무척 신기하다. 잘 알다시피 이게 자동차에서는 브레이크를 구현하는 방식이고, 컴퓨터에서는 메모리를 구현하는 방식이다. 둘 모두 '드럼'은 거의 퇴출되고 '디스크'가 주류가 돼 있는 것도 비슷하다.

자기 드럼은 뭔가 하드디스크처럼 생기긴 했지만 크기가 더 크고 속도와 신뢰성이 우수했다(특히 자기 '테이프'보다야..). 반쯤은 RAM처럼 사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크기에 비해 기억 용량이 너무 적고 비싸서 196, 70년대 이후로는 증기 기관차가 퇴출되듯이 퇴출됐다. 오늘날의 하드디스크는 플로피 디스크와 마찬가지로 드럼이 아니라 '자기 디스크'의 일종이다.

자동차에서도 옛날에는 앞바퀴는 디스크 브레이크, 뒷바퀴는 드럼 브레이크 이랬던 것 같은데 요즘은 냉각이 더 유리한 디스크 브레이크가 모든 바퀴에서 대세이다. 드럼 브레이크는 버스· 트럭 같은 대형차(외부 오염에 더 강해서) 아니면 완전 반대로 경차에서나(생산 원가가 더 저렴해서) 볼 수 있다.
타이어의 휠 안쪽에 뭔가 반들반들하게 광택이 나는 커다란 금속 원판이 달려 있는 건 디스크 브레이크이고, 반대로 좀 꽹과리처럼 생긴 원형 금속 캡슐이 달려 있는 게 드럼 브레이크이다.

5. 화장실의 남녀 구분

화장실의 남녀 구분 여부는 마치 도로에서 중앙선의 존재 여부와 비슷해 보인다.
통행량이 많은 큰길엔 반드시 중앙선이 존재하지만 그냥 좁은 골목 샛길에는 통행 구분이 딱히 존재하지 않으며 심지어 일방통행도 있다. 그것처럼 가정집 안의 화장실이나 비행기처럼 비좁은 교통수단의 화장실은 남녀 구분이 없다. 그러나 대규모 공공장소 안의 화장실은 남녀 구분이 있다.

남녀 구분이 있는 화장실의 경우, 사람들은 한 성별의 화장실을 발견하면 다른 성별의 화장실도 분명 근처에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데 어떤 건물은 남녀 화장실이 건물의 한쪽 끝과 다른 한쪽 끝으로 멀리 떨어진 경우가 있는데, 이건 본인이 보기에 심리적으로 좋은 디자인이 아닌 것 같다. 화장실을 찾긴 했는데 이성의 화장실이고 내가 갈 수 있는 화장실이 발견될 기미가 안 보이면... 아예 화장실이 전혀 안 보이는 것보다 실망과 박탈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지하철역으로 치면 반대편 승강장 횡단을 할 수 없는 역과 비슷하며, 운전에다 비유하면 길을 발견하긴 했는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는 갈 수 없는 상황과 비슷하다. (일방통행 내지 좌회전 불가 같은)

여느 시끄러운 음악이나 기계음과는 달리, 전화 통화 소리가 주변 사람에게 더욱 불쾌감을 유발하는 소음이라고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전화 통화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인데 대화가 전부 들리는 게 아니라 반쪽짜리만 들려서 문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원하지 않는 반쪽짜리'를 사람들이 더욱 싫어하는 예는 이런 식으로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똑같이 목이 말라도 사막에서 목이 마른 것과 망망대해 바다 한가운데서 목이 마른 것의 차이랄까..?

그리고 화장실 얘기가 나왔으니 다른 얘기를 또 하나 덧붙이자면...
공공장소의 화장실에서 휴지는 그냥 (1) 변기에다 버릴지 아니면 반드시 따로 (2) 휴지통에다 버릴지에 대한 지침이 예상 외로 케바케이고 뒤죽박죽이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건지는 모르겠다. 마치 높임법에서 압존법이 (1) 써라(과장이 사장보다 더 높냐?) 또는 (2) 쓰지 마라(과장이 니 친구냐?)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는 걸 보는 듯하다.

6. 기타 메모

"나비: 나방"은 음악으로 치면 마치 음악에서 "장조: 단조"의 차이처럼 느껴진다.

인텔 80186 CPU와 코레일 8100호대 전기 기관차: 뭔가 (1) 숫자 형태가 비슷하고, (2) 후속 버전에 밀려 존재감 없이 싹 묻힌 물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엄지손톱 모양의 그 색 프리즘(CIE-1931 색 공간)하고, 모음 삼각도를 나타낸 포먼트 그래프가 뭔가 비슷한 점이 있어 보인다. 흰색에 속하는 (1/3, 1/3) 지점은 모음 삼각도로 치면 제일 만만한 중간 모음인 schwa 정도에 대응하려나?

컴퓨터에 화면이 너무 작아서 여러 브라우저/문서 창을 alt+tab 눌러 가며 전환해야 하는 건 작업 생산성 면에서 좋지 않다.
이것은 컴퓨터 내부로 치면 메모리가 너무 부족해서 자꾸 디스크 페이징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게 늘어나면 컴퓨터의 성능은 급격히 곤두박질친다.
자동차는 최대한 부드럽게 가감속을 하고 최대한 관성에 의지하고 엔진 배기량에 맞는 경제 속도로 달릴수록 연비와 가성비가 킹왕짱이 되는 반면, 길이 막혀서 가고 서기를 반복할수록 연비는 거의 저것만치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공회전은 말할 것도 없고, 정지 상태에 있던 차가 처음 움직일 때가 연비가 제일 쥐약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육군에는 '육군 과학화 전투 훈련단'(KCTC)라는 이색적인 부대가 있다. 여기 군인들은 전투력 고취를 위해 원정 훈련을 오는 다른 육군 부대들을 상대로 위장까지 하고서 가상의 북한군 역할을 한다. 특수부대 급으로 훈련을 굉장히 혹독하게 받고 홈그라운드인 훈련장 지리에도 능통하기 때문에 얘네들을 격퇴하는 부대가 별로 없을 정도라고 한다. 물론 싸움은 실탄이 아니라 정교하게 피격 판정을 해 주는 레이저 총 + 공포탄으로 한다. 예비군 페인트탄 같은 유치한 분위기는 아님.
이름하여 '전문대항군'인데, 이걸 읽으니까 쟤들은 버추어 파이터로 치면 듀랄 같은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이나 연료는 인체나 기계 내부에서 동일 질량 다른 물질로 화학적으로 변하는 것일 뿐이고 그 변하는 과정에서 힘이 발생한다. 물질 자체가 소멸하고 질량이 그대로 에너지로 바뀌는 것 아님. 쉽게 말해 넣은 연료의 무게와 동일한 무게의 배기가스가 나온다는 뜻이다.
또한, 소리는 진동이지 이동이 아니다. 이동이면 그건 바람이지 소리가 아니다. 물론 이동 과정에서도 진동이 있을 수 있으니 바람 소리도 들리는 것이다.

일사병(땡볕이 중심)과 열사병(고온 다습이 중심), 삭제(유출을 막음)와 암호화(유출되더라도 뭔 말인지 모르게), 불법체류(합법 입국 후 배째라)와 밀입국(애초에 입국 자체를..) 등 비슷하지만 사실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 참 많은 것 같다.
힘(찰나)과 일(힘의 축적), 열과 온도(공기 80도와 물 80도의 차이는?), 질량(??)과 무게(질량으로 인해 생긴 힘) 등.
과학을 제대로 공부하면 직관만으로는 제대로 구분하기 힘든 개념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원리를 알 수 있어서 좋다.

Posted by 사무엘

2015/10/12 08:24 2015/10/12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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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이야기

성경은 민족주의, 애국심 같은 걸 지지하고 나라 지키는 전쟁에 대해서도 아주 긍정적인 반면, 한편으로 인간의 보편적인 구원에 관한 문맥에서는 그런 이념을 초월하기도 한다. 요나서가 그에 대한 좋은 예이다. 지금까지 내 홈페이지에서 요나를 직접 심층취재를 한 적이 없었으니 오늘은 이 사람에 대해 썰을 좀 풀어 보겠다.

요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니느웨에 가서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를 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이는 19세기쯤에 한 조선의 대언자가 이웃 열도의 악명 높은 성진국에 가서 회개를 촉구하고 복음을 전하라는 소명을 받은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요나는 미래에 우리나라를 멸망시킬 적국에 가서 복음을 전하느니 차라리 죽고 말겠다는 심정이었다. 박해받고 순교하는 게 두렵다는 차원이 전혀 아니고, 그 원수들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게 싫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래서 도망치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못했다. 본의가 아니게 남의 배의 화물을 몽땅 말아먹는 민폐를 끼치고, 큰 고래에게 잡아 먹혀서 죽다 살아나는 체험을 한 뒤에야 더는 도저히 피할 수가 없어서 어쨌든 니느웨로 갔다. 그리고 영혼이 없는 “까라면 까” 식의 억지 선포를 시작했다.

완전 흉측한 몰골에 영락없는 거지꼴의 꼰대 한 명이 물고기 입에서 내던져져 나왔다. 이걸 실제로 목격한 사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봤다면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이 아저씨는 뭐가 불만인지 입은 도널드덕처럼 쑥 튀어나와서 외친다는 말이.. 하나님이고 죄고 회개고 그딴 거 없었다. 오늘날의 거리설교 퀄리티를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그냥 “이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무너질 것이다!”였다(욘 3:4).
무슨 꼴이냐 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 어느 이상한 교회에서 아저씨 두 명이 발가벗고서 트럭 위에 올라타서 “xx년 xx월에 북괴 김 정일은 남침한다”라고 써 붙이고 다닌 것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비슷하다! (김 정일이 살아 있던 시절의 일임)

그런데 믿어지지 않겠지만, 이런 엽기 퍼포먼스에 니느웨 전체가 멘붕해 버렸다. 그들은 물고기 배 속에서 살아서 나온 어느 초사이언의 외침을 신이 주는 심각한 경고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완전히 겁을 먹고 찔림을 받았다. 그의 외침을 어느 정신병자 미친놈의 저주· 헛소리· 악담쯤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그래서 국민들이, 심지어 왕까지 다 금식을 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는 초유의 부흥이 일어났다(욘 3:5-9). 요나의 입장에서는 머피의 법칙이 최악의 방향으로만 골라서 적중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요나는 적국의 영적 부흥을 목격하고는 빡돌았다. 그는 자기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성품을 지닌 분인지 잘 알았다. 그래서 “내가 완전 개쪽을 감수하면서 니느웨 멸망 예언을 했는데, 이게 이뤄지지 않게 됐으니 난 도대체 뭐가 됩니까..? 배 째세요~ 난 살기 싫소” 하면서 하나님께 앙탈을 부렸다. 이에 하나님께서 그런 골수 민족주의자 요나를 차근차근 일깨워 주는 내용으로 요나서가 끝난다.

저런 요나의 빡침과 앙탈은 어찌 보면 제 발로 삽질을 자초한 면도 있었다.
툴툴 뺀질거리지 않고 처음부터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이행해서 니느웨를 향해서 불편한 진리/진실을 사랑으로 정중하게 전했으면, 니느웨 사람들이 회심할 때 자기도 체통이 당연히 섰을 것이니 말이다.
마치 누가복음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믿지 않고 그물을 하나만 대충 던졌다가, 물고기가 너무 많이 잡히는 바람에 배가 되집히고 그물이 찢어진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다.

고래 배 속에서 요나서 2장의 기도가 정확하게 언제 어디서 드려졌는지는 난 아직 100% 단정을 못 짓겠다. 1~9절과 10절이 And로 시간 순으로 너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듯이 보여서. 특히 and 시간 순 병렬은 재창조 주장하는 진영에서 아주 좋아하지 않는가?

단, 요나는 거기서 문자적으로 완전히 끔살당했다가 부활한 것만은 절대 확실하다. 숨도 못 쉬고 독한 소화액이 분비돼 나오는 내장 안에서 도대체 어떻게 며칠을 생존할 수 있었겠는가?
이런 기괴한 체험 덕분에 요나는 예수님에 의해 인용되는 영광을 누리게 됐고(눅 11:29), 니느웨는 세상에 너보다도 못한 놈들도 있다는 까임방지권(눅 11:32)을 획득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예수님이 친히 인증을 했다는 것은 요나는 100% 확실한 실존 인물이고 그의 행적 역시 100% 역사적 팩트임을 의미한다.

* 성경에서 요나를 잡아먹은 큰 물고기(욘 1:17)의 정체는?

킹 제임스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은 그 물고기가 고래였다고 풀이를 하셨다(마 12:40). 마치 1945년 8월에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폭탄이 처음엔 그냥 무시무시한 폭탄인줄로만 알았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아예 원자폭탄이었다고 계시가 발전한 것처럼 말이다.

고래는 포유류라는 점에서 다른 물고기들과는 차원이 다르며, 창세기에서도 다른 동물들과는 별도로 유니크하게 창조되었다고 나온다(창 1:21). 그 창조의 주역이신 예수님이 고래라고 말씀하셨으니 이거 뭐 더 논쟁의 여지가 없다.
허나 non-KJV 역본들은 그리스어 '케토스'의 의미 운운하면서 다들 '큰 물고기' 내지 '바다 괴물'(공동번역, NASV, NRSV)로 표현을 바꿨다.

KJV도 구약의 애 4:3에서는 sea monster가 나온다. 그런데 거기서는 또 non-KJV들은 들개, 여우, jackal 같은 다른 육상 동물로 말을 바꿨다. KJV와는 더 큰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애 4:3에서는 이 생물체가 자기 새끼들로 하여금 젖을 빨게 한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즉, 포유류라는 얘기이며, 포유류라 하면 아무래도 육상 동물이 더 금방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래도 포유류인데? 바다 속에서 알이 아니라 새끼를 출산하고 새끼한테 젖을 주는데?
KJV는 신약에서는 대놓고 '고래'라고 했고, 구약에서는 최소한 바다에 사는 포유류라는 고래의 단서를 던지는 반면, non-KJV들은 두 곳 모두 '고래'의 특성이 훨씬 덜 드러난다는 차이가 있다.

개인적으론 재칼(jackal)이라는 단어도 참 오랜만에 듣는다. 내가 난생 처음으로 접한 곳은 알라딘 2의 I'm looking out for me 노래 직후에 나오는 대사에서. 어렸을 때는 "... dinner for the jackals!"밖에 못 들었지만 지금은 앞부분의 "Steal from us again and your scrawny body will be..."까지도 들린다. 시장터에서 깽판 치던 앵무새 이아고에게 어떤 상인이 협박하는 말이다. "한 번만 더 여기 물건 손댔다가는 네놈 몸뚱아리를 고기로 만들어서 들개들에게 줘 버리겠다!" -_-;;

Posted by 사무엘

2015/09/28 08:34 2015/09/28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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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라 vs 하지 말라

세상의 법이나 규칙 같은 것은 사람의 행동을 통제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하라'(do)보다는 '-하지 말라'(don't) 위주로 만들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시험 문제야 학습자의 심리적인 영향을 감안하여, "-틀린 예는?, -아닌 것은? -없는 것은?" 같은 부정적인 문제는 일정 비율 이상 만들지 말라고 하는 가이드라인이 있다. 그러나 법률은 아무래도 죄를 다루고 사람의 재산과 생명을 다루다 보니 심각하고 부정적인 말이 많다.

자동차나 총기, 전기톱, 독극물 같은 위험한 물건의 취급 설명서는 온갖 오· 남· 악용 상황을 금지하는 주의· 경고문으로 가득하다.
복싱은 룰의 태반이 금지 반칙 조건의 리스트라고 한다. 그 덕분에 위험한 격투기이면서도 신사의 스포츠로 품위가 유지되는 듯하다.

프로레슬링에서는 그 이름도 유명한 "Please, don't try this"(제발 따라하지 마세요!)가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대표적인 don't 규칙이다. -_-;; 옛날에는 at home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저건 다~ 전문가들이 지극히 통제된 환경에서 각본 다 짜서 하는 액션이고, 그러고도 후유증이 쌓이고 가끔은 안전사고도 나니... 일반인이 현실에서 따라할 생각이라고는 절대로 하지 말라는 뜻으로 home을 붙인 것이었다. 그런데 "응? 집이 아니면 학교나 도장에서는 해도 된다는 얘기네?" 이렇게 이상하게 받아들여서 사고 치는 친구들이 너무 많았던지라 at home은 나중에 빠지게 됐다.

don't에 비해 do 법은 "납세나 병역 따위의 의무를 수행하라" 말고는 흔치 않다.
세상법에서는 어린 자녀를 제대로 먹이고 재우고 치료하지 않은 것 정도가 꽤 적극적인 do 법의 위배이다. 이것 말고도 선한 사마리아인 법도 만드네 마네 하는 말이 있지만, do 법은 아무래도 마음의 동기를 측정 가능치 않다 보니 적용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아까 말이 나온 자녀 부양도 do 법의 위배가 걸리는 것보다는 자녀를 학대하지 말라는 don't 법의 위배까지 간 뒤에야 적발되고 처벌되는 경우가 더 많다.

성경에도 물론 don't 법이 적지 않다. 특히 최초의 법인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도 don't 법이었다. 그러나 그것 말고 do 법도 의외로 좀 있다.
십계명에서 하나님 계명과 인간 계명의 중간쯤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제4와 제5는 don't가 아니라 do 계명이다. (안식일을 지켜라, 부모를 공경하라)

부모에게는 단순히 패륜을 저지르지 '않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 그 이상의 적극적인 예우를 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don't는 그건 너무 당연한 거고, do까지 해야만 죄가 성립되지 않게 된다.
또한 안식일은 유대인과 하나님 사이의 표적으로서, 일정 주기로 강제로 쉬는 것도 당장 손해를 감수하는 믿음이 필요한 일이었다. (안식일에 전쟁이 벌어지지 않기를.. 6·25나 진주만 폭격이나 다 일요일에 벌어졌다!) "안식일에 일을 하지 말라"가 아니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라고 돼 있으니 don't가 아닌 do 형태라고 본다.

구약 모세오경을 보면, 신성모독을 저지른 어느 혼혈아만 공개처형(레 24:10-23)을 한 게 아니라, 안식일에 일을 하다 걸린 사람을 처형하는 장면도 나온다(민 15:32-36).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범 흉악범도 아니고 겨우(?) 그런 죄를 저지른 사람까지 중범죄로 간주하여 죽였던 것이다.

안식일이야 신약 시대에 직접적으로 적용이 안 되는 것이니 논외로 하더라도, 성경엔 믿지 않은 것, 기도를 게을리 한 것, 복음 안 전하는 것 등 더 적극적으로 do 법을 명시하고 있다. 종교적으로는 하지 않는 것이 죄인 것도 많이 있는 셈이다.

특히 오늘날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죄, 지옥 가는 유일한 죄"는 살인· 간음· 사기처럼 하지 말라는 짓을 저지른 죄가 아니라, 하라는 것을 안 한 죄이다!
마치 출애굽 직전에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반드시 발라 놓아야 한다거나, 놋뱀을 반드시 바라봐야만 살 수 있다거나 한 거처럼. 대단히 의미심장한 일이다.

2. 법을 만드신 분, 법 위에 계신 분

성경에는 신약에서 구약 성경을 인용한 예가 아주 많다. 이것은 성경과 성경간의 연계 효과를 강화하고 내용을 교차검증하는 매우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가령, 여느 무신론자 개독안티가 아니라 예수 믿고 교회도 댕긴다는 사람이 창세기 1~3장은 설화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바로 이렇게 치고 들어가면 된다. "야, 니가 믿는 그 예수님도 아벨이 실존 인물이고 의인이라고(마 23:35, 눅 11:51) 아주 진지하게 인증을 했구만 그럼 예수님도 팩트가 아닌 거짓을 믿은 거냐?" 이런 식이다.

어디 그 뿐이랴? 여타 성경 인용의 정확도는 변개된 성경과 그렇지 않은 성경을 판단하는 잣대 역할도 한다. 막 1:2의 대언자들 vs 이사야가 대표적인 예 중 하나이다.
그런데, 성경의 용례를 찾아보면, 예전 성경을 언제나 문자 그대로 곧이곧대로 정확하게 인용하지는 않은 예도 많다.

“의인은 자기 믿음으로 살리라”(합 2:4)는 신약에서는 ‘자기’가 빠지고 의인은 그냥 “믿음으로 살리라”(롬 1:17, 갈 3:11, 히 10:38)로 바뀐 걸로 유명하다. 그것도 무려 세 번이나 말이다. 이것 말고 또 다른 예로는 이 글을 참고하라.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예수님 역시 초림하셨을 때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게 아니라 완전하게 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안식일 때 제자들이 곡식을 비벼 먹었는데, 이때 주변 율법주의자들과 키배를 하면서 하신 말씀이 “사람의 [아들]은 곧 안식일의 [주]니라” (마 12:8)였다. 이건 결국 안식일을 뭐 어찌 하셨다는 뜻이겠는가? 이 모든 사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어떤 법을 제정한 주체에게는 자신도 그 법을 지킴으로써 자신의 권위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 그 기존 규칙을 초월하는 새로운 법을 제정할 수도 있고, 또 규칙 위에 예외를 둘 권리도 있다.
성경에는 다른 여러 사건들도 많지만 특히 에스더기가 그 두 사례를 잘 보여준다고 여겨진다.

결국은 하나님께는 두 적용을 자유롭게 할 권리가 있으며 우리는 신자로서 그 모든 판단(judgment)이 옳다고 믿는 것이다(시 119:75).
이 관계를 잘 생각해 봐야 예수님/사도들의 성경 인용은 필요에 따른 적절한 수정인 반면에, 이브와 사탄의 성경 인용은 변개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킹 제임스 성경도 God forbid 같은 표현은 축자 번역이 아니라 동적 일치 의역이라는 식으로 딴지를 거는 시비에도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 봤던 월트 디즈니 <알라딘>도 이 법의 권위와 관련된 비슷한 문제를 잘 다루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술탄이 자스민 공주에게
“법에 따르면 너는 네 다음 생일 때까지 반드시 왕자와 결혼해야만 한다구.” (The law says you must be married to a prince by your next birthday.)
라고 융통성 없게 말하지만, 나중에 결말부에서는 결국 이렇게 말하니까 말이다.

법을 고치겠다. 난 술탄(왕)이니까. 지금부터 공주는 자기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그 어떤 사람과도 결혼할 수 있다. (꼭 왕자가 아니어도)”
(물론, 사람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오락가락 이랬다 저랬다를 막으려고 현대의 민주주의 정치 체계에서는 입법과 행정을 분리하고 있다. “짐이 곧 법이다”를 제도적으로 가능하지 않게 막은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09/08 08:36 2015/09/0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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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임 바이츠만. (Chaim Weizmann; 1874-1952)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이 문과 계열의 만렙 박사였다면, 현대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은...;; 천재 과학자였다.
그리고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 미국을 끌어들여서 나라를 세웠다면, 저 사람은 영국을 끌어들여서 자기네 땅을 얻어 냈다. 서로 나이 차이도(1874 & 1875년생) 거의 안 나는 동시대 사람이다. 그러고 보니 윈스턴 처칠과도 동갑임.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임 바이츠만은 1차 세계 대전 당시에 옥수수로부터 아세톤을 저렴하게 양산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게 전시 군수 물자인 탄약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기술이었던지라 그는 이것 덕분에 완전 나라를 구한 영웅이 됐다.
영국 정부에서는 그의 노고를 치하하며 그에게 훈장을 주려 했다. 그때 그 사람이 말했다. "저는 돈과 명예는 필요 없습니다. 단지 우리 민족을 약속된 땅 팔레스타인으로 들어가서 살게 해 주세요." 성경에서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에게 자기 동족을 구해 달라고 간청하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가?

"우리 대영제국의 식민지 중엔 거기보다 더 넓고 좋은 땅도 얼마든지 있는데. 가령, 아프리카에 우간다 영토 일대는 어때?"라는 제안에도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ㄴㄴ. 런던이 지금 같은 영국 수도가 되기도 전부터 예루살렘은 원래 우리 땅이었습니다. 부디 거기를 돌려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영국 내부에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믿는 크리스천들이 물론 있었으며, 이를 토대로 1차 세계 대전의 말에 1917년에 밸푸어 선언이 이뤄졌다. 우리나라 역사로 치면 2차 세계 대전 말기에 발효된 카이로 선언 및 포츠담 선언과 비슷하다. 일제로부터 조선의 독립이 그때 명시됐으니 말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들의 귀환이 곧장 이뤄진 건 아니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 뒤, 유대인들이 몇백만 명씩이나 나치에 의해 처참하게 학살당하고 세계 질서가 확 바뀐 뒤에야 이스라엘이 세워질 수 있었다. 사람에겐 기본적으로 귀차니즘이 있는지라 박해를 안 받으면 잘 안 움직이니까.;;

어쨌거나 초대 대통령이 군인이나 외교관 같은 다른 직업이 아니라 과학자라니 참 멋있고 부럽다(우리나라는 박 근혜 대통령이 일단 전자공학과 출신이긴 하다만..). 바이츠만은 자기 실력을 민족의 독립과 건국을 위해 사용한 위인 애국자였다.

2.
이스라엘의 국가인 Hatikvah(희망)은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우연의 일치인지 <밝은 빛을 따라서 앞만 향해 나가자>라는 희망적인(?) 내용의 찬송가 멜로디로 쓰인다. 하지만 쟤네들 국가 가사는... 나 같은 비유대인이 보기에도 인간적인 감정상 정말 구슬프고 찡하고, 나라 없는 백성의 한이 레알 서려 있는 게 느껴진다. 1절 가사를 대충 드라마틱하게 의역하면 이런 내용이다.

“내 심장은 동방을 향해, 시온을 향해 오늘도 꿈틀댄다.
우리는 결코 희망을 잃지 않으리.
약속의 땅에서 자유로운 내 조국을 세우는 날을 염원한 지가 어언 2천 년.
그곳은 시온 땅의 예루살렘이어라.”


이 글에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뺏었네 나쁜 깡패네 하는 얘기는 논하지 않을 것이므로 이 점을 양해 바란다. 원래 그런 분쟁이 얼마든지 안 생길 수 있었고 이스라엘은 합법적으로 땅을 받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보상을 하는 것도 다 합의가 돼 있었는데 영국이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오해가 생기면서 내력이 복잡하게 배배 꼬인 게 있다. 그런 것까지 다 설명하기에는 시간과 지면이 부족하다.

아 그리고, 이스라엘도 사람 사는 곳이고, 모든 이스라엘 국민들이 자기네 국가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저런 노래가 너무 국뽕스럽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인 중에도 애국가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일본인 중에도 기미가요가 너무 존재감 없다고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3.
하나님이 보우하셨는지 유대인들이 참 똑똑하긴 했다. 바이츠만 말고 프리츠 하버(1868-1934)도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천재 과학자이다. 그는 공기 중의 질소로부터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인공 질소 비료를 만들어 냈다. 햇볕을 이용해 사람을 죽이는 핵을 만드는 게 아니라 공기로부터 사람을 살리는 빵을 만드는 급의 엄청난 기적을 이뤘다. 기아 해소와 인류 복지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그는 응당 노벨 상도 받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허나 그는 바이츠만과는 달리 줄을 치명적으로 잘못 섰다. 그는 독실한 유대교 신자도, 시온주의자도 전혀 아니었다. 그리고 영국이 아닌 독일에 충성했다. 그것도 아주 열정적으로. 그래서 조국을 위해 사람을 살리는 발명만 한 게 아니라 독가스도 발명했다. 1차 세계 대전 때 전장에 처음으로 살포된 염소 가스부터 시작해, 유대인 아우슈비츠 수용소 시절의 치클론 B 독가스도 다 이 사람 혼자 또는 공동 연구로 만들어졌다.

그럼 그가 그 덕분에 독일로부터라도 인정받고 떵떵거리며 살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이용 가치는 있지만 굉장히 애매한 왕따 포지션이 되어서 타지에서 무척 쓸쓸한 최후를 맞이했다. 독일로부터는 나중에 나치 당이 집권하면서 "저런 더러운 생물(=유대인)을 고위 과학자 자리에 앉혀 둘 순 없다"라고 문전박대를 당했고, 영국 등 다른 나라로부터는 "저 자식은 머리는 비상하지만 정신이 완전 맛이 간 싸이코야."라고 단단히 찍혔다.

그래도 다행히 2차 세계 대전 이전에 일찍(1934년) 죽은 덕분에 히틀러와 엮이지는 않았으며,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되거나 반대로 나치 출신의 전범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전락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가 관여한 발명품이 가까운 미래에 심지어 자기 동족을 학살하는 용도로까지 쓰인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역설이다. 그는 사람을 살린 엄청난 업적에도 불구하고 위인전에는 도저히 오를 수 없게 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과학자의 연구 윤리를 논할 때 빠짐없이 거론되는 씁쓸한 사례가 되었다.

4.
이스라엘 건국 얘기가 나왔으니 우리나라의 건국도 다시 좀 복습하고 글을 맺겠다.
1948년 5월 10일에 우리나라에서 남쪽만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었다.
그리고 14일에 이스라엘이 건국됐고, 같은 날 낮에 한반도에서는 북으로부터 대남 송전이 끊겼다.
그 달 말일인 31일엔 그 국회의원들을 바탕으로 제헌국회가 개최됐고, 당시 의장이던 이 승만의 요청으로 이 윤영 목사의 감사 기도가 이때 행해졌다.
이어 그 해 7월 17일엔 잘 알다시피 헌법이 제정되었고, 8월 15일 광복절에 맞춰서 약 3년간의 미군정이 끝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전인 1948년 3월에 이북에서는 이미 자기만의 국기와 국가도 다 정하고 분단은 기정사실이 된 상태로 북조선로동당 제2차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악의 무리들은 서로 동무 동무 하면서 비판과 삿대질이나 일삼으면서 어떻게 백성들의 재산과 자유를 빼앗고 몽땅 착취하고, 서로 감시하고 통제하고 믿질 못하는 생지옥을 만들까, 어떻게 남조선까지 몽땅 집어 삼킬까 흉계를 꾸미고 있었다.

그 반면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하나님께서 오랜 시일 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고 정의의 칼을 빼셔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시고 ...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 이 기쁜 역사적 환희의 날을 우리에게 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것은 개인의 종교관을 떠나서 매우 다행이고 자랑스럽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5/09/05 08:38 2015/09/05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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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행사변형의 넓이, 평행육면체의 부피

2*2 크기의
(a b)
(c d)

행렬이 있을 때, 이 행렬의 행렬식이라고 불리는 D 값은 a*d - b*c로 정의된다. ax+by = 얼마, cx+dy = 얼마 요런 방정식의 근을 구하는 식을 세워 보면 행렬식은 x, y의 분모에 들어가 있다. 그러니 이 값이 0이면 근은 부정이나 불능으로 빠지게 된다.

한편, 행렬식에는 기하학적인 의미가 있다. 원점에서 (a,b)를 잇는 선분이 가로변, 원점에서 (c,d)를 잇는 선분이 세로변인 평행사변형의 넓이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행렬은 한 변의 길이가 1인 (0,0), (1,0), (1,1), (0,1)이라는 정사각형을 (a,b), (a+c, b+d), (c,d)라는 평행사변형으로 옮긴다. (a+b)*(c+d)라는 전체 직사각형에다가 주변의 합동인 삼각형 두 쌍의 넓이를 빼면, 평행사변형의 넓이로 남는 것은 ad-bc뿐이다. 아래 그림을 보시라.

(a+c)(b+d) - b(a+c) - c(b+d) = d(a+c) - c(b+d) = ad + cd - bc - cd = ad-bc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평행사변형에서 대각선을 구성하는 (a,b)와 (c,d)를 연결하면 사각형을 반으로 쪼갤 수 있다. 다시 말해 원점과 (a,b), (c,d)를 꼭지점으로 하는 삼각형의 넓이는 ad-bc의 절반이 된다.

다음으로..
저렇게 두 점 A(ax, ay)와 B(bx, by)가 있을 때, A-원점-B 자취의 방향을 판단하는 공식이 있다(시계 방향인지 반시계 방향인지). bx*ay - by*ax이며, 여기에는 배후에 삼각함수 sin( alpha-beta )가 숨어 있다.

그런데 위의 두 점 (a,b), (c,d)도 코싸인/싸인 alpha와 코싸인/싸인 beta라는 극좌표 형태로 표현하면, 행렬식 a*d-b*c 역시 결국은 sin( alpha-beta )과 패턴이 동일함을 발견할 수 있다. 두 쌍의 숫자를 각각 서로 엇갈리게 곱해서 빼는 것 말이다.
이렇듯, 행렬식에 두 벡터의 사잇각에 대한 삼각함수 값이 들어있으니, 벡터의 길이만 정규화하면 각도를 구할 수 있다. 또한 두 변의 길이와 그 사이의 끼인각을 알고 있는 삼각형의 넓이는 A*B*sin(theta)/2로 간단하게 결정된다.

그리고 이 식을 확장하면 삼각형뿐만이 아니라 여러 삼각형들로 분해 가능한 단순다각형(선분들이 서로 만나지만 않으며 볼록하거나 오목할 수 있음) 넓이 내지 폴리곤 패스 방향을 구할 수도 있다. 넓이와 방향(넓이의 부호)이 같이 구해진다.

2차원에서는 이 정도로 분석이 되고, 3차원으로 가면 어떨까?
짐작했겠지만 3*3 행렬의 행렬식은 그 행렬을 구성하는 3개의 벡터들을 축 내지 기저로 삼는 평행육면체의 부피와 같다. 직교좌표에서 모든 점들의 최대치에 해당하는 직육면체의 부피에다가 또 모서리 주변의 온갖 사면체들의 부피를 빼야 하니 식이 굉장히 복잡할 것이다. 3*3 행렬의 행렬식이 항이 6개나 되고 2*2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3차원에서도 언제나 부피만 구하는 건 아니다.
차원만 2차원이 아닌 3차원으로 확장한 뒤, 원점에서 출발하는 두 벡터를 가로변 세로변 축으로 삼는 평행사변형의 넓이는 어떻게 구하면 좋을까? (삼각형의 넓이도 당연히 자동으로 포함) 즉, 3차원 공간 안에서의 2차원 평면인 것이다. 이건 2*2 행렬식보다는 어렵겠지만 3*3 행렬식보다는 쉬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벡터의 '외적'(벡터곱) 연산이 하는 일이다. 아마 고등학교에서는 내적까지만 하지 외적은 안 배우지 싶다. 단, 내적부터 먼저 개념을 좀 복습해 보자.

2. 벡터의 내적

왜 각 성분을 차례대로 곱한 것을 더하면 내적이 나오는 걸까?
이 원리의 배후에는 코싸인 제2법칙이 있다.
아까 두 변의 길이(두 선분의 길이를 각각 A와 B라 하자)와 그 사이의 끼인각을 아는 삼각형의 넓이를 구했는데, 이 경우 삼각형이 유일하게 결정되었으므로 나머지 한 변의 '길이' C도 당연히 구할 수 있다. 그 삼각형의 모든 특성이 파악 가능한 것이다. C^2 = A^2 + B^2 - 2*A*B*cos(theta) 이다.

이건 피타고라스의 정리의 일반적인 경우이며, 증명하는 방법이 상당히 많다. 여기에서는 제일 직관적인 해석학적 방법 하나만 소개하고 넘어가겠다.
선분 A와 B가 원점을 지나고 선분 A는 x 축에 평행하다고 한다면 선분 A는 (0,0)과 (a,0)을 지나게 될 것이며, 0도인 선분 A로부터 theta도만치 떨어진 선분 B는 선분 B는 (0,0)과 (b*cos(theta), b*sin(theta))를 지난다. 임의의 차원의 임의의 위치에 있는 어떤 삼각형 ABC라도 변환을 통해 그렇게 2차원 평면에서의 일반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 선분 C의 길이는 저 (a,0)과 (b*cos(theta), b*sin(theta)) 사이의 거리와 같다. 그러므로 길이의 제곱은 (a - b*cos(theta)^2 + (b*sin(theta))^2 가 된다.
이 식을 풀면 a^2 - 2*a*b*cos(theta) + b^2*cos(theta)^2 + b^2*sin(theta)^2 가 된다.
b^2항은 cos(theta)^2 + sin(theta)^2 이므로 1로 약분돼 없어지고, 결국 코싸인 제2제곱 공식이 고스란히 나온다.

그럼, A, B, C를 이제 벡터라고 생각하고 2차원이 아니라 각 축별 좌표를 코싸인 제2제곱 공식에다 대입해 보자.
A=(a1,...,an), B=(b1,...,bn) 같은 식이다. C는 두 벡터의 차이 A-B와 같다.
벡터의 절대값의 제곱은 잘 알다시피 거리의 제곱과 같기 때문에 각 성분들의 제곱을 모두 더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 [i=1..n] (ai^2 + bi^2 - 2*ai*bi) = ( ∑ [i=1..n] (ai^2 + bi^2) ) - 2*A*B*cos(theta) 로 식이 대충 떨어진다.

A와 B에서 각 성분들의 제곱을 합을 구하는 부분은 좌우변 공통이므로 소거되고.. 남는 것은
2*A*B*cos(theta) = ∑ [i=1..n] 2*ai*bi 이다. 여기서 양변을 2로 나눠 주면 내적 공식이 아주 깔끔하게 유도된다. 콜?

벡터의 내적은 그냥 숫자 하나(스칼라)만으로 답이 떨어지며, 벡터의 각 성분들을 차례대로 곱해서 더하기만 하면 된다. 내적에는 두 벡터의 사이각의 '코싸인' 값이 들어있기 때문에, 두 벡터가 서로 수직인지를 벡터의 길이와 무관하게(= 정규화 안 하고도) 간편하게 판별할 수 있다. 코싸인 90도는 0이므로!

내적은 계산이 딱히 어렵지 않을 뿐만 아니라, 2차원이고 3차원이고 어느 차원이든지간에 계산법이 동일하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두 벡터의 사이각을 구하는 용도로는 완전 딱이다. cos(alpha-beta) = cos(alpha) cos(beta) + sin(alpha) sin(beta) 인 것에도 2차원일 때의 내적 공식이 숨어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생긴 모양 덕분에 벡터의 내적을 행벡터(행이 하나. 수평선-_-)와 열벡터(열이 하나. 수직선)의 곱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행과 열뿐만이 아니라 횡과 종도 어느 게 어느 건지 종종 헷갈릴 때가 있다만..;;)

3. 벡터의 외적

그에 반해 외적은 결과값도 벡터이다. 그리고 3차원일 때에만 정의된다. 계산값의 각 차원과 피연산자들이 일대일로 딱 밀착해 있는 관계로 3차원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성분이 (a1,a2,a3)인 벡터 A와, 성분이 (b1,b2,b3)인 벡터 B의 외적은
(a2*b3-a3*b2, a3*b1-a1*b3, a1*b2-a2*b1)이라고 정의된다.
어 그런데 이거, 두 쌍의 숫자를 각각 서로 엇갈리게 곱해서 빼는 게 2*2 행렬식을 구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맞다.
그래서 벡터 A, B가 동일 평면상에 있어서 a3와 b3 같은 게 동시에 0이기라도 하면, 해당 변수가 포함된 항은 모두 소거된다. 이 경우 외적은 그냥 2*2 행렬식과 동일해진다.

또 생각할 점은.. 3*3 행렬식을 구하는 것도 특정 row와 col을 제외한 2*2 행렬식을 구하는 것의 연속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외적 구하는 공식을
(i  j  k )
(a1 a2 a3)
(b1 b2 b3)

의 행렬식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물론 여기서 i~k는 스칼라값이 아니라 각각 (1,0,0), (0,1,0), (0,0,1)에 해당하는 단위벡터이다. 그러니 스칼라와 벡터가 뒤섞여 있는 저 행렬은 대수적인 의미는 딱히 없다. 외적 구하는 공식을 좀 더 뽀대나게 표현하는 용도로만 쓰이는 셔틀일 뿐이다. 그래도 결국은 3*3 행렬식과 닮긴 닮았다.

행렬식을 구하는 공식에서 j에 해당하는 부분은 더하는 게 아니라 뺀다. 그렇기 때문에 외적 공식에서는 1,3이 아니라 3,1 순서로 쓴 뒤에 더하는 것으로.. 다시 말해 양수를 빼는 게 아니라 음수를 더한다고 표현을 달리 했다. 둘 다 동일한 의미이므로 부호에 주의하기 바란다.

벡터는 스칼라와는 달리 '크기'뿐만 아니라 '방향'이라는 정보가 추가로 들어있다.
외적 연산을 통해 구해진 벡터는 일단 크기는 두 벡터의 크기의 곱에다가 사잇각의 sin값을 곱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3차원 공간에서 두 3차원 벡터가 만드는 평행사변형/삼각형의 넓이를 구할 수 있다.

외적 식을 전개해서 크기의 제곱을 해 보면, 각각의 두 벡터의 크기의 제곱을 곱하고 거기에다 벡터의 내적값(양 벡터의 각 성분들을 서로 곱해서 더함)의 제곱을 뺀 것과 같다고 식이 전개된다. A^2 - B^2 꼴이 되기 때문에 (A+B)(A-B)로 인수분해를 하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지만 여기서는 식을 다른 형태로 바꿔야 된다.

내적에는 역시 두 벡터의 크기의 곱에다가 사잇각의 cos이 들어 있으니 이것의 제곱이라면 두 항이 결국 |A|^2 * |B|^2를 공통으로 갖고 있고 (1  - cos^2 )가 남는다. 그리고 이것이 sin^2과 같다는 건 두 말하면 잔소리이고.

외적의 크기에 벌써 이렇게 유용한 정보가 들어있는데, 방향은 더욱 흥미롭다.
짐작하겠지만 두 벡터의 외적의 방향은 두 벡터와 수직이다. 물론 위쪽도 수직이고 아래쪽도 수직인데, 해당 좌표계의 동일 부호가 향하는 쪽으로 방향이 결정된다. 두 기저 벡터에 대한 외적을 구하면 나머지 기저 벡터가 튀어나온다.

애초에 두 벡터의 외적은 그 두 벡터와의 내적이 모두 0인 벡터 중에 크기가 저렇게 AB sin(theta)로 나오는 놈을 구한 것이다. a1*c1 + a2*c2 + a3*c3 = 0과 b1*c1 + b2*c2 + b3*c3 = 0을 만족하는 (c1,c2,c3)을 직접 구해 보면 안다. 저것만으로는 식보다 미지수 개수가 더 많으니 (c1,c2,c3)가 하나로 딱 떨어지지 않고 c1과 c2가 c3의 배수인 것처럼 관계식만 나온다. 그런데 c3의 특정값일 때 c1,c2에 있던 분모가 싹 소거되고 c1~c3이 저렇게 아주 대칭적이고 깔끔하게 나오는데 그게 바로 외적값이다.

이런 유용함 때문에 외적이 3차원에서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이항연산에 딱 최적화돼 있지 않은가.
물론, 외적은 수직이라는 게 위아래가 모두 존재한다는 특성상 교환 법칙이 성립하지 않고 A×B=-B×A이다. 뭐, 4차원 이상에서는 두 벡터와의 내적이 모두 0인 벡터는 3차원일 때처럼 일직선상의 형태로 유일하게 떨어지지가 않는다. 그러니 외적과 같은 접근 방식이 큰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끝으로, 3차원에서 벡터의 내적과 외적은 삼중곱이라는 연산을 통해 한데 만난다. 3개의 벡터 A,B,C를 축으로 하는 평행육면체의 부피를 구하고 싶으면 아까처럼 벡터들을 3차원 행렬의 행렬식으로 표현해도 되지만, 밑면에 속하는 두 벡터 A×B의 외적을 구한 뒤 거기에다 C와 내적을 구하면 된다. (A×B)·C! 그게 결과적으로 행렬식을 구한 것과 같은 계산 결과가 도출된다. 왜 그런지는 아까 그 외적 구하는 행렬과 일반 행렬의 행렬식을 늘어놓고, 거기에다가 내적을 구하는 공식까지 적용한 뒤 서로 비교하며 생각해 보면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15/08/23 08:25 2015/08/23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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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은 가까운 이웃 나라이지만 기독교계 종교에 대한 정서는 거의 지구와 금성의 차이만큼이나 극과 극이다. 물론 일본뿐만이 아니라 북한 내지 중국하고 비교해 봐도 극과 극에 가까운 건 마찬가지이지만.

난 솔직히 말해 일본의 보편적인 종교관을 잘 모르겠다. 완전히 불교도 아니고 유교, 도교도 아니고 전적으로 샤머니즘이라고 봐야 하는 건지? 신사는 무엇이고 덴노(일왕/천황)는 무엇이고 이들이 정치 종교 통합적인 존재인지? 어쨌든 기독교 배경이 절대로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한국 사람들은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해도 딱히 단군을 숭배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데?

일본은 서양 문물을 잘 받아들이고 근대화를 잘해서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으며, 반대로 다른 식민지를 거느리고 침략 전쟁을 일으키기까지 할 수 있었다.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흔히 '기독교'라고 부르는 종교 교리도 당연히 전파되었고 선교사들도 들어왔다. 단, 엄밀히 말하면 기독교 계열은 아니고 스페인의 예수회가 주축이 된 천주교 중심이었다.

16~17세기 사이는 조선에서는 임진왜란이 벌어져서 나라가 작살이 나 있었고, 서양의 영국에서는 엘리자베스 1세, 제임스 1세, 찰스 1세의 순으로 왕이 바뀌고 있었다. 신대륙에서는 버지니아 주 제임스타운, 포카혼타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스페인에서는 종교 개혁을 저지하고 유럽을 다시 가톨릭화하기 위해 예수회가 만들어졌는데... 이와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 천주교가 전래되었다.

조선도 한때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없지는 않았다. 황 사영 백서 사건 같은 병크 때문에 스스로 매를 번 것도 있었고. 하지만 그 기간이나 규모는 일본의 박해에 비할 바는 못 됐다.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부터가 극렬 "안티개독"이었으며, 정말 중세 종교 재판을 뺨치는 가학· 변태적인 악랄한 고문과 형벌로 신자들을 괴롭히고 죽이고 박멸했다. 천주교고 기독교고 그딴 건 그 양반이 알 바 아니었을 테고.

다른 때도 아니고 서양에서는 킹 제임스 성경이 나오는 동안 동양에서 저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천주교 기독교를 떠나서 일단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 시기에 있었던 일들은 일본의 B급 새디스트 사극 영화의 좋은 소재가 되어 왔다. <쇼군의 새디즘>처럼.
사람을 십자가에다 묶어 놓고 산 채로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기, 미꾸라지가 가득한 어항에다 사람을 옷 벗겨서 집어넣기, 썰물 때 바다 갯벌에다가 십자가 기둥을 꽂고 사람을 거꾸로 묶어 놓기(그 상태로 나중에 밀물이 되면..;;) 이런 건 중세 서양에서는 못 본 장면 같다. -_-;;

사용자 삽입 이미지

또한, 육체적으로 끔찍한 형벌이나 고문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런 것도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당시의 기독교인을 색출, 고문, 박해하는 형태를 여러 가지로 연구하면서 철두철미하게 기독교 박해를 자행했다. 십자가나 예수나 마리아 상을 새긴 동판이나 목판 위를 밟게 함으로써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후미에 제도는, 1629년 나가사키에서 시작되어 전국에 걸쳐 오랜 기간 사용되었다."


"어디에 절을 해라", "입으로 믿음을 부인해라", 아니 단순무식하게 "김 일성 개XX 해 봐라" 식의 더 간단한 판별법도 있었을 텐데, 저건 그야말로 성상, 형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천주교 스타일에 최적화된 판별법이라 여겨진다. 나 같았으면 저런 건 걸릴 게 없었을 것이다. 마치 주의 만찬이 끝나고 남은 빵과 포도 주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누가 몽땅 집어먹거나 여느 잔반을 처리하듯이 임의 처분해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소설 <바비도>에 나오는 것처럼, 성찬식에 대한 견해 하나만으로도 서양에서는 한때 순교 사유였다. 기독교인이 천주교인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뜻이다.)

북한은 민주화에 실패하고 8월 종파 사건을 계기로 완전 김씨 일가의 철권독재 생지옥으로 전락했다. 종교도 주체사상 외에는 당연히 전면 말살. 스페인은 종교 개혁이 실패하고 다시 가톨릭 국가로 돌아가서 20세기까지만 해도 누가 '개신교인'(천주교의 입장에서 기독교의 호칭)이 되면 잡혀 가는 나라가 됐다.

그것처럼 일본도 이 박해를 못 이기고 천주교/기독교를 막론하고 양놈(이 또한 엄밀히 말하면 양놈이 아니라 유대계=_=) 종교는 거의 씨가 말라 버렸으며, 그 상태가 오늘날에 이르렀다. 개신교 계열 교파가 나중에 안 들어온 건 아니지만, 그래도 1억이 넘는 일본 인구 중에 그나마 명목상 교회 다니고 예수 믿는다는 사람은 몇십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배경이 있는 일본은 오늘날까지도 이슬람도, 공산주의도 아니고 나름 자유 진영의 강대국 선진국인 것치고는 상당히 이례적인 기독교 선교의 불모지로 여겨진다. 솔까말 기복신앙에 대한 반례이기도 하다. 뭐, 국가가 부유한 것만치 국민들이 다 잘사는 건 아니더라도 말이다. 쟤들이 과거에 한국의 크리스천들을 박해하긴 했지만 역사 전체를 통틀어 봤을 때 아예 자국민에 대한 천주/기독교 박해는 그 이상이었다는 점도 고려할 사항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이 일본 선교를 가는 건 마치 요나가 니느웨로 설교하러 가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앗시리아가 훗날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게 뻔히 보이니, 요나는 니느웨로 가기 싫어서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생쑈를 했던가? 하지만 인제 와서 일본에서 니느웨 같은 대각성 부흥이 과연 일어나기라도 할지는 좀 회의적이다. 성경적으로 민족주의를 적용할 문맥이 있고 그게 별 의미나 영양가가 없는 문맥도 있는 법이다.

한국은 역사가 워낙 스펙타클하다 보니, 조선 정부에 의한 박해보다는 일제 말기에 일제로부터의 박해, 그리고 해방 후에 공산주의자에 의한 기독교 박해가 더 부각되는 편이다. 그리고 아시아의 여느 나라들과는 달리, 기독교회가 이 정도로 양적 성장을 이루는 이례적인 선례를 세계에 남겼다. 신자라면 감사할 일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08/21 08:31 2015/08/2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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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 평전

성경에 나오는 삼손은 이스라엘의 사사치고는 너무 괴팍하고 특이했던 사람이며, 천하장사였지만 여자에게 배신을 당해서 인생을 망친 비운의 사나이라고 비기독교인에게도 그럭저럭 알려져 있다.
삼손은 혼자서 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살상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식으로 군대를 소집하고 전쟁을 벌여서 블레셋으로부터 확실하게 독립을 쟁취해 낸 건 아니었다. 오히려 명색이 민족 지도자인데 적국의 여자와 연애를 하면서 너무 똘끼 넘치게 행동했다.

민족 대표, 민족 지도자라 불리는 사람은 적국이 아니라 그냥 중립적인 외국인을 애인· 배우자로 맞이하는 것만 해도 민족 정서상 대외 평판에 절대로 좋게 작용하지는 않는다. <이 연걸의 정무문> 영화에서 일본인 여자를 사귄 진진, 그리고 에티오피아 여인과 재혼했다고 비방을 받은 모세(민 12:1) . 거기에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 승만도 그 많고 많은 한국 여자를 놔 두고 '호주댁'과 결혼했다고 비방 받곤 했다. 삼손 역시 그런 격이었다.

사사기 14장을 보자. 그는 부모의 반대를 무시하고 첫 블레셋 여인에게 청혼을 하러 갔다. 그런데 포도원에서 사자를 만났다. 이건 단순히 위험에 처한 상황이기에 앞서 여러가지로 이상한 상황이었다. 왜 포도원인 걸까?

삼손은 나사르 서원의 적용을 받는 사람이어서(삿 16:17) 머리를 깎는 것뿐만이 아니라 포도도 절대 금지이다. 단순히 알코올 성분이 든 포도주를 안 마시는 것 정도를 넘어, 아예 생 포도송이, 포도 주스, 건포도 같은 것도 먹어서는 안 된다. (민수기 6장 참고) 불자에다 비유하자면 오신채를 먹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삼손은 왜 포도원을 갔을까?
그리고 포도원에서 뱀이라든가, 혹은 여우(아 2:15)처럼 성경에도 나오고 이솝 우화에도 나오고 침입자로서 비교적 흔히 연상 가능한 동물을 만난 게 아니라, 하필 야생 맹수인 사자를 만난 걸까?

구약 역사서에서 동물 사자는 사람을 징벌하는 용도로 종종 쓰였다. 그러나 저기서는 하나님께서 삼손에게 몬스터/몹만 소환한 게 아니라 Doom 2 게임으로 치면 Berserk 파워업 치트키를 먹여 주셨다. 다윗은 돌팔매질로 맹수들을 내쫓았다지만, 삼손은 도구가 필요하지 않았으며 그냥 맨주먹으로 사자를 찢어 죽였다. FPS 용어로 치면 gib을 했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무용담은 "하나님이 나를 지켜 주셨습니다"라는 공개적인 간증거리가 될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화재 현장에서 저를 기적적으로 지켜 주셨습니다" / "오 그래요? 어디서 화재를 겪으셨는데요?" / "나이트클럽에서요" =_=;;; 이런 꼴이었기 때문이다.
삼손은 공인으로서 포도원 안에서 그런 일을 겪었다는 얘기를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나중에는 삼손이 죽인 사자의 시체에도 이변이 생겼다. 더러운 구더기가 들끓는 게 아니라 여왕벌이 들어오기라도 했는지 안에 벌꿀이 생겼다. 하지만 아무리 꿀이어도 그렇지 저건 시체 안에 담겨 있는 건데..;;
원효대사의 이야기만 봐도, 밤에 마셨던 물이 더러운 해골 안에 담겼었다는 걸 알게 되자, 그 사람이 우웩~ 하면서 난리를 치지 않았던가.

그런데 삼손은 참 멘탈도, 비위도 강했나 보다. 부정한 걸 만져서는 더욱 안 되는 나사르 인인데도 손수 사자의 시체를 뒤져서 꿀을 가져와서는 자기도 먹고 부모에게도 줬다.
이것 다음에 꿀 이야기는 사무엘기상 14장에서 또 나오는데 이것과는 어떤 영적 관계가 있으려나 모르겠다.

삼손은 혼자서 사자를 때려 잡고 그 시체에서 꿀까지 득템한 행적을, 비록 공개적으로 간증은 못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분명 뿌듯한 자랑거리라고 생각한 듯하다. 율법을 몽땅 어긴 건 안중에 없고 말이다.
그래서 결혼식을 앞두고 친구들에게 그걸 절대 풀지 못할 수수께끼 문제로 냈다. 사자와 꿀이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평범한 사람들이 떠올리기란 물론 불가능했다.

삼손의 친구들은 치사하게도 삼손의 여친을 공갈 협박해서 답을 알아 냈다. 이것은 오늘날 정보 보호· 보안의 관점에서도 의미 있는 사례이다. 이중 삼중으로 복잡하게 암호를 걸어 놔도, 관리자 당사자 내지 그 지인을 매수하거나 족치는 데 성공하면 그냥 끝이니까. 결국 모든 문제의 정점에는 사람이 있다.

이 때문에 삼손은 내기에서 졌으며, 옷 서른 벌을 마련하느라 다른 동네의 블레셋 사람 30명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게 됐다. 옷 서른 벌 때문에 30킬이라니 오늘날로 치면 그야말로 개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마가 따로 없다. "피해자들은 모조리 시체도 없이 실종"되거나 또는 "피해자들은 모두 겉옷이 없어졌다는 공통점 있음" ㅎㄷㄷㄷㄷ
그 시절에 마을 곳곳에 CCTV가 없었던 게 정말 천만다행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모든 그림의 출처는 삼손의 생애를 그린 칙 출판사 만화 전도지 <Superman?> (1990) 편.)

그리고 또 생각할 점이 있다. 피해자가 입고 있던 옷을 그대로 벗겨서 줘야 하니, 사람을 죽이는 것도 옷이 찢어지거나 핏자국이 묻지 않게 매우 조심해서 죽여야 했다는 점이다. 때리거나 칼로 찔러서는 안 되고, 뒤에서 덮쳐서 목을 조르거나 비틀기라도 해야 했을 것이다. 물론 삼손은 워낙 천하장사 인간흉기였으니, 사람 목을 움켜쥐고서 손가락에 까딱 힘만 주면 곧바로 경동맥이 작살이 났을 테고, 사람을 무슨 개미를 눌러 죽이듯이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나중에 당나귀 턱뼈로 블레셋 사람 1천 명을 죽인 건 고전 FPS로 치면 천하무적 주인공이 잡몹들을 싸그리 사냥하면서 1000 kill / frags를 달성하는 것과 똑같다. 삼손의 이야기는 은근히 게임스럽다. 턱뼈가 아니라 칼이나 창 같은 진짜 냉병기가 있었다면 삼손의 주변에 있던 적군들은 그냥 죽는 수준을 넘어 그야말로 사지가 남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단, 이 사건은 포도원에서의 사자 킬과는 달리 공적인 찬양 명분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삼손은 딱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내가 당나귀 턱뼈로 시체로 산을 쌓으며 1천 킬을 달성했도다"라고 으쓱하기만 했다(삿 15:16).
이에 삼손은 싸움을 다 이겨 놓고는 곧 극심한 갈증으로 인해 죽을 지경이 됐다.
하나님은 삼손에게 당장의 기도 응답과 승리는 주시지만 그래도 뼈 있는 경고도 같이 주셨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 경고에 담긴 메시지를 삼손이 더 일찍 간파했으면 자기 자신이나 민족이 훨씬 덜 불행을 겪어도 됐을 텐데 말이다.

이것들 말고도 삼손의 차력 기행 중에는 성을 탈출하기 위해 그 크고 무거운 성문을 잠금 장치까지 포함해 통째로 뜯어 버린 뒤, 그걸 방패 삼아 등에 지고 도망친 것이 있다(삿 16:3). 못해도 수백 kg 내지 몇 톤에 달하는 무게였을 것이다.
이 정도면 블레셋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전의를 상실케 하는 충격과 공포 도시전설 괴담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중엔 상황이 역전되어 블레셋에서 골리앗이 배출된 것이 참 공교롭다. 삼손과 골리앗이 일대일 맞장을 떴으면 어땠을까? =_=)

그런데 삼손이 그저 무식하게 힘만 셌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삼손이 가서 여우 삼백 마리를 붙잡아 꼬리와 꼬리를 묶고 불붙는 나무 조각들을 취하여" (삿 15:4)
이것도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알아야 한다. 오로지 복수를 위해서 산과 들로 나가서 여우를 300 마리나... 그것도 학살이 아니라 산 채로 수집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얼마나 들었을까?

이건 힘만 세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다. 퀘이크로 치면 Frags나 Excellent가 아니라 Impressive, Perfect, Accuracy 같은 분야에 속하는 어려운 일이었다. 생포하는 과정에서 여우를 다리 같은 걸 조금이라도 다치게 해서도 안 된다. 여우들을 꼬리에 불을 붙인 채 풀어 줘서 남의 밭을 왕창 불태워 버릴 작정이었으니 말이다. 얘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밭을 전속력으로 뛰어다닐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

삼손은 늘 개인 플레이를 하다 보니, 딱히 자기 동지· 부하나 공범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만에 하나 공범이 좀 있다 하더라도 여우를 300마리나 곱게 사로잡는 건 어떤 방법으로든 정말 보통일이 아니다. 삼손은 굉장한 근성가이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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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삼손이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너무 허무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자기의 엄청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헬스 트레이너-_-로든 성경· 정치· 군사 어느 쪽으로도 후계자 양성을 못 하고 정규전 한 번 제대로 못 치른 채 혼자 원맨쇼만 일삼다가 자폭으로 모든 것을 끝냈다.

삼손은 들릴라의 치명적이고 위험천만한 질문에 대해 너무 째째하고 진지하고 재미없게(?) "당신, 내 힘의 근원을 알려고 했다간 다쳐. 그런 건 다시는 묻지 마시오. / 내 힘은 우리 민족의 신인 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오" 이렇게 원천차단 돌직구를 날리기에는... 너무 대인배였다.
예전에 사자를 죽이던 시절부터 수수께끼와 내기를 즐기던 근성이 여전했다. 이제는 절대로 유출되어서는 안 되는 자기의 힘의 근원마저도 수수께끼 소재로 삼아서 "그게 궁금해? 그럼 내가 힌트 줄 테니 알아맞혀 보셔" 유흥거리로 생각했다. 그러면서 살얼음판위를 걷는 것과 같은 위태로운 게임을 계속했다. 이것은 그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하지만 그는 영적으로 순진하고 철딱서니 없는 구석은 있을지언정, 교활하거나 나쁜 사람은 절대로 아니었다. 동족들로부터 버림받을지언정 자기가 먼저 동족을 해치지는 않으려 했으며, 철저하게 피아 구분을 할 줄 알았다. "나 한 몸 죽어서 다른 사람들을 살리리라"라는 뭔가 요나와 예수님의 예표스러운 행적도 있다.
그 스펙과 지위에도 불구하고 여자한테는 완전 순애보였고..;; 어쨌든 교활 잔머리의 천재인 발람하고는 억만 광년 떨어진 성향이었다.

"오 하나님이여 간구하옵나니 이번 한 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들이 내 두 눈을 뺀 것을 단번에 원수 갚게 하옵소서. (...) 나를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죽게 하소서"(삿 16:28,30)는 눈물이 핑 돌 정도의 회한 서린 비장한 기도가 아닐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저 사람은 적군에게 잡히고 나서 꼴좋다고 얼마나 새디스틱한 모욕과 능멸을 당했겠는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로 치면 ㅎㅎ/ㅋㅋㅋ를 W를 붙여서 haw haw라고 표현하는 건 칙 만화 전도지의 고유한 관행이다.)

가정용 소형 맷돌이 아니라 아예 감옥에 있는 대형 맷돌은 나귀나 소 같은 동물을 동원해서 돌리는 물건이다. 요즘 같았으면 당연히 내연기관이나 모터를 쓰지 생명체는 쓰지도 않는다. 자동차에 밀려서 인력거가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삼손은 딴 데다 비유하자면, 배나 건물의 지하 기계실 같은 데서 평생 힘만 쓰는 동력 셔틀로 전락하고 말았다(삿 16:21).
작업 환경이 어두컴컴한 건 삼손에게는 별 상관이 없다. 어차피 눈이 없는 상태이니까. 사람을 무진장 귀찮게 하던 파리나 모기가 결국 생포당해서 날개가 뽑힌 것과 비슷한 격이다.

삼손의 생애를 각색한 드라마 중에는 (1) 들릴라가 마치 가룟 유다마냥 나중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삼손을 배반한 것을 후회하고 울고불고 매달리는 이야기가 들어간 게 있다. 요즘 사람들은 절대적인 선악 구도보다는 대체로 입체적인 인물 위주의 휴먼 드라마를 좋아하니까.
또한, 삼손이 마지막 순간엔 자기가 신전의 기둥을 붙드는 것을 도와 준 소년에게는 몰래 (2) "고맙소. 당신은 이 신전에서 최대한 멀리 빨리 탈출하시오."(내가 곧 신전을 무너뜨릴 거니까)라고 귀띔을 하는 애드립이 있기도 하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진실은 저 너머에"이다. (1)과 (2)는 성경에 직접적인 언급은 없는 애드립일 뿐인 것을 감안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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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따르면 삼손은 거대한 석조 건물을 맨손으로 붕괴시킴으로써, 자폭하면서 죽인 블레셋 사람 수가 생전에 죽인 블레셋 사람 수보다 더 많았다고 말한다. 저 정도 대형 신전은 폭탄 테러로 붕괴시킨다고 해도 TNT가 몇 톤짜리가 필요했겠는가? =_=;;; 이거 정말 그냥 웃어 넘길 일이 아니다.
(참고로 1995년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가 TNT 2.3톤 정도의 위력이었으며 영국의 Gunpowder plot이 위력계수 0.55짜리 흑색 화약 1.n톤이니 TNT 1톤에 약간 못 미치는 정도의 위력으로 추정됨)

성경에 기록된 생전의 kill 수만 해도 최하 1000+30+알파인데, 저 붕괴 사고로 몰살당한 사람은 제일 적게 잡아도 3천 명가량으로 추정한다(삿 16:27, 30). 블레셋 민족의 원수 삼손이 재주 부리는 꼴을 보러 사람들이 참 많이도 몰려와 있었기 때문이다. 20년 전에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죽은 사람이 600여 명, 부상자가 900여 명이니 저 살상 규모가 얼마나 엄청났는지를 추측할 수 있다.

삼손은 히브리서의 믿음장에 이름이 올라 있으며, 덕분에 자살· 자폭을 하고도 정황상 얼마든지 구원받는 게 가능하다는 예로도 언급된다. 삼손이 실존 인물일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서 만날 수 있는 믿음의 선진이라는 것을 히브리서의 저자(아마 사도 바울)가 확실하게 인증한 셈이다. "삼손도 믿음으로 신전을 무너뜨렸다." 같은 말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속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히 11:32).
또한 딸을 죽이는 대형 사고를 치긴 했지만 그래도 믿음이 있었고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 입다 역시 같이 믿음장에 있는데, 삼손은 저 사람하고도 뭔가 통하는 맥이 있어 보인다.

그나저나 머털도사가 삼손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땄나 싶은 생각이 든다. 거기에도 머리털이 다시 자라는 게 나오는데..;;

Posted by 사무엘

2015/08/18 08:27 2015/08/18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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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말에서 "교장 선생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는 높임법이 잘못 적용된 비문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처음에 말씀이 계셨느니라"(요 1:1)는 높임법이 아주 적절하게 쓰인 문장이다.
사실, '말씀'이나 '지옥' 같은 단어는 성경 용어로서 어쩌면 영어 단어보다도 잘 번역되고 잘 만들어진 단어이다. 성경 번역 같은 데서 영어에 비해 한국어의 어휘와 문법의 한계가 많은 편이지만, 그래도 한국어가 오로지 약점밖에 없는 건 또 아니다.

2. 여느 관광 여행이나 맛집 방문 같은 것이야 당연히 백문이 불여일견이며, 직접 가서 겪어 보고 체험하는 것이 더 낫다. 그런데 글을 통한 간접 체험이 당대의 직접 체험보다 더 확실하고 더 낫다고 보증이 돼 있는 유일한 예외가 있다. 무엇일까? (힌트: 벧후 1:19, 요 20:29)

3. 세상의 다른 고전 문헌이나 골동품은 아무래도 제일 오래 된 필사본이 원문, original에 가장 근접해 있을 거라고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나이가 깡패이다.
그러나 이 책만은 애초에 오래 된 필사본 같은 건 닳아 없어지고 남아 있질 않으며, 반대로 최근까지도 잡초처럼 많이 필사되어 읽히고 내용이 일치하는 것으로 교차 검증된 집단이 진본이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4. 세상의 다른 모든 텍스트들은 원어가 당연히 원저자의 의도에 가장 근접해 있고 가치가 가장 높다. 그래서 예전에 일본어 중역이던 텍스트가 나중에 직통 번역으로 재출간되고, 그 분야 전문가는 아예 원어를 공부해서 원문을 다시 구해다 읽는다.
그러나 이 책만은 번역본이 원어 원문에 꿀릴 게 없으며, 오히려 다른 n차 파생 번역본을 모두 판단하는 절대 기준이 되는 번역본을 보유하고 있다. 이건 무엇일까?

1과 2, 그리고 3만 해도 불신자의 통념을 한참 거스르며 상식을 벗어난 논리이다. 기독교는 원래 그런 종교이다.
그러나 반대로 1~3을 일단 믿는 사람이라면 4를 믿지 못할 이유는 추호도 없다고 여겨진다. 논리적으로 그렇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안 그러시는 분도 있지만, 그분의 양심과 믿음이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밖에.
이것 말고 다른 분야에서도 1~9를 다 믿으면 10도 당연히 믿지 못할 이유가 없는데 도대체 왜 저러시나, 딱히 충분히 대안이 될 만한 논리 체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싶은 게 있다.

아무리 상수도관에서 깨끗한 물이 만들어져도 가정의 수도관이 더러우면 최종 소비자는 더러운 물을 받을 수밖에 없다. 4는 앞의 다른 명제들을 성립 가능하게 하는 전제조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 다음으로, 이 4에 대한 보충 설명 차원에서 성경을 구성하는 언어 계층에 대해서 살펴보자.

1. 원어
성경의 '원문'이 기록된 언어이다. 구약은 히브리어(다니엘서 같은 일부는 아람 어라 함), 신약은 그리스어(헬라· 희랍은 그리스와 동의어).
그럼 원어로 원문만 읽으면 끝이고 성경의 내용 전수에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현실에서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인해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1) 오늘날 성경의 최초 자필 원본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또한 그 어떤 성경 필사본도 단일 필사본에 성경 66권이 온전히 집대성돼 있지 않다. 즉, 이것들은 partial이다. 내용 자체가 변개된 필사본이 있긴 하지만, 변개되지 않은 계열의 필사본이라 해도 결국은 빠짐없이 모아서 짜깁는 과정이 필요하다.

(2)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에는 이들 언어가 인지도와 중요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원어가 사어가 돼 있다.
여느 언어들이 그렇듯이 원어의 어휘 역시, 같은 단어라도 문맥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것들이 굉장히 많다. 이 단어가 여기서는 무슨 뜻인지 분별해 줄 수 있는 절대무오한 권위자 역시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사도의 표적이 없는 것만큼이나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사전· 어휘집도 100% 믿을 게 못 된다. 그러니 원어 원문만 있다고 해서 장땡이 아닌 거다. 환상을 깨시라.

2. 영어
오늘날 원어 원문이 갖고 있는 위의 문제들을 모두 해결하여 원어(영어) 원문(KJV) 차원의 지위를 가진 절대기준이다. 솔까말 기독교는 논리로만 따지면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가 있는 종교인데, 그 원천적인 권위가 무엇인지 정도는 인류 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께서 보장을 해 주셔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만 그 체계 하에서 최소한의 '논리'와 일관성을 갖추지 않겠는가. 원어 원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배교한 불신자 신학자들의 말장난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게 말이다.

원어가 불필요하다거나 무의미하다는 게 아니다. 단지 성경의 이 구절에서 이 원어를 어떻게 해석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으면 KJV의 번역을 보면 된다. 요일 2:23 후반부가 원래 필사본에 있는지 없는지 궁금하면 KJV 구절을 보면 된다는 얘기다. 원어 원문조차도 KJV로 판단 가능하다. KJV는 단순히 가장 뛰어난 번역, 우수한 번역 차원이 아닌 것이다.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 이런 번역본 KJV에 하나님의 영감이 있는 걸까 없는 걸까? 판단은 여러분이.

KJV를 최종 권위로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신자라면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적으로 생각을 해 보시라. 기독교라면 저런 절대 기준이 상식적으로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믿는 건전한 하나님이라면 언어 접근성으로 사람 차별을 하지 않으시며, 그런 것쯤은 보장해 주셨을 것 같지 않은가?

지옥에 대해 경고를 하기 위해 굳이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을 보내서 증언시킬 필요가 없듯(눅 16:27-31),
원어가 무슨 뜻인지 파악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현대인들을 위해 굳이 그 시절의 원어 토박이를 무덤에서 끄집어내어 보내실 필요가 없다. 킹 제임스 성경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나를 본 자는 이미 아버지를 보았거늘"(요 14:9)라고 책망했듯이, 킹 제임스 성경을 읽은 사람은 이미 원어 성경을 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 관계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성경 언어의 관계는 성경의 여러 비유들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3. 자국어
절대 기준인 영어 KJV를 바탕으로 건전한 교리관을 갖춘 양심적인 번역자가, KJV의 표현을 그대로(가령, '유월절' 대신 '이스터', '기뻐하라' 대신 '잘 있으라', 요일 5:6-7도 온전히 갖추고 등) 자국어로 일관성 있는 스타일로 번역할 수 있다. 그 성경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복음 전하고 신앙 서적을 만드는 용도로 쓰일 수 있다. 이것은 "신들과 같이", "절대무오한"은 못 되더라도 노아나 욥이 "완전했던" 것과 같은 완성도를 갖췄다.

해당 자국어의 특성을 이용해서 번역을 아주 적절하게 할 수도 있지만(하나님, 말씀, 지옥 등), 어휘와 문법 체계의 특성상, 그리고 해당 언어권의 문화· 관습의 한계로 인해 KJV 특유의 도치나 중의성, 운율, 미묘한 문법 요소들을 다 담지 못할 수도 있다. 그건 해당 언어나 번역자의 자질 문제가 아니다. 성경 강사가 영어 KJV를 참고하여 보충 설명을 해 주면 된다. 마치 데나리온이라는 화폐 단위가 요즘 물가로 얼마 정도라고 얘기하듯이. 오늘날 영어의 지위를 생각하자면 히브리어, 그리스어를 꺼내는 것보다야 상황이 훨씬 더 나아진 것이다.

(그럼 원어에서 영어로 번역될 때는 원어의 모든 뉘앙스가 고스란히 옮겨지는 게 가능했느냐 하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언어학적인 팩트 답변도 있고, 그것만으로 좀 확신이 안 서서 믿음의 영역으로 그냥 받아들이고 넘겨야 하는 면모도 있다. 이 글에서는 이 정도까지만 얘기하도록 하겠다.)

다만, 각 언어마다 최종 권위가 제각각 또 있는 건 아니다. 그건 최종 권위라는 게 무슨 뜻인지 파악을 못 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단지 모든 언어적인 혼란을 일축하는 중심점에 영어 KJV가 있다는 것이 KJV 유일주의 신자의 믿음이다.

'영킹 유일주의자', '이중 영감론자' 등의 누명 내지 딱지에 전혀 움츠러들 필요가 없다. 그럼 그들이 미는 대안은 뭔데? '원어 원문 유일주의자'이건 '영어 숭배자'건 '자국어 만능주의자'이건, 어느 편에 서더라도 그에 대한 멸칭은 얼마든지 지어낼 수 있다. 무엇을 선택하든지 결국은 뭔가를 신념으로 믿는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마치 무신론도 유신론만큼이나 동일하게 신념이고 신앙인 것처럼 말이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겠는가? 원어 원문은 앞서 말했듯이 실체가 없으며, 반대로 자국어 최종 권위 운운은 당장 생각해 봐도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그러느니 차라리 영어 중심이 가장 현실성 있고 균형 잡혔으며, 실제로 KJV의 출간 이래로 지난 400여 년간 역사적인 증거와 열매도 넘치는 건전한 관점이다. 애초에 예수천당 불신지옥 같은 과격하고 극단적인 교리를 믿는 신자가, 한 성경 역본만이 절대적으로 옳고 이와 일치하지 않는 역본은 틀렸다고 믿지 못할 이유는 단언하건대 절대로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5/08/06 08:31 2015/08/06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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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허라이즌스 호, 명왕성 접근

지난 7월 14일, 인류는 드디어 "명왕성과 카론의 모습을 실제 컬러 사진으로 볼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 관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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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세상에~!! 우주덕 천문학 덕후라면 저 사진 보고 감격에 눈물이 줄줄 흐르지 않을까 싶다.
이미 위키백과와 각종 인터넷 사이트들은 지금까지 상상도 아니면 작은 점으로만 존재하던 명왕성 그림/사진들을 죄다 레알 표면 사진으로 업데이트한 지 오래이다.

내가 대학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어 병특 회사에 다니고 <날개셋> 한글 입력기 버전이 3.x 후반대이던 2006년 1월, 뉴 허라이즌스 호가 발사되던 시절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그게 우주 공간에서 총알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무려 9년 반을 날아간 뒤에야 인제 명왕성에 그럭저럭 도착했다. 욕봤다. 몇 년 전에는 "쟤는 아직도 토성과 천왕성 사이의 방대한 허허벌판을 열나게 뺑이 치며 날아가고 있겠구나!"하고 생각했더랬다.

뉴 허라이즌스 호가 있는 곳은 여기서는 빛이나 전파로도 가는 데 거의 5시간 반이나 걸린다. 그리고 지난 14일 저녁에 명왕성을 제일 가까이 통과했다.
명왕성에 무슨 착륙을 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인증샷 찍고 제대로 관측과 탐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은 단 몇 시간에 불과함.

뉴 허라이즌스는 1970년대의 작품인 보이저 1, 2와 파이어니어 10, 11에 이어 21세기에 오랜만에 발사된 외행성 탐사선이다.
옛날에 보이저 2호는 때마침 외행성들이 쭉 늘어선 시기에 발사를 잘 한 덕분에, 명왕성은 말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천왕성과 해왕성의 근접 사진을 유일하게 전해 줄 수 있었다. 토성에서 천왕성, 천왕성에서 해왕성까지 가는 데 2, 3년씩 걸렸다. 그만큼 거기는 공간이 방대하다.

그 뒤, 명왕성은 나름 유일하게 미국인이 발견한 태양계 행성이라고 해서 미국에서 애착을 많이 가졌다.
하지만 해왕성 이후로 거기는 뭔가 행성다운 행성이 없고, 명왕성은 너무 작았다. 더구나 유사 궤도에 명왕성과 비슷하게 생긴 왜소행성들이 연달아 발견되면서 명왕성은 행성 지위를 잃게 됐다. 그렇게 결정된 게 하필 뉴 허라이즌스가 발사된 지 얼마 안 된 2006년 8월인 것도 참 절묘하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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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명문 사립정글고>라는 웹툰에서는 명왕성이라는 이름의 학생이 저렇게 멘붕해서 열폭· 자폭하는 장면도 나왔다. =_=;;

한편, 킹 제임스 성경 신자라면 친숙할 라킨의 <세대적 진리>라는 책에도 행성들이 늘어선 태양계 그림이 있다. 그런데 거기에는 해왕성까지만 있고 명왕성이 없다.
그 이유는 그 책 자체가 명왕성이 발견되기 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명왕성은 1930년, 1차 세계 대전도 끝나고 대공황 이러던 시절에 클라이드 톰보라는 천문학자에 의해 발견됐다. 아마 은하의 생성 방식도 성운설이 대세이던 시절이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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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모교 고등학교에는 천문 동아리가 있었는데 이름이 POP (명왕성 너머의 행성)였다. 지금도 같은 이름으로 잘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태양계에서 태양이 전체 물질들의 질량의 99%를 넘게 차지하는 중력 끝판왕인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그 중력이 내는 인력은 거리의 '제곱'에 비례해서 급격하게 곤두박질치기도 한다.
해왕성보다도 더 먼 거리에 설마 단독 궤도를 가질 정도로 충분히 무거운 행성이 또 존재할 수 있을까? 행성이 딱 8개가 있다는 건 마치 정다면체가 딱 5개 있다는 것과 비슷하게 들린다.

그리고 끝으로.. 명왕성의 '명'은 한자가 '어두울 명'(冥)이다.
'사다'와 '팔다'가 형성자로 같은 '매'이고 '주다'와 '받다'가 역시 형성자로 같은 '수'인데 '밝다'와 '어둡다'까지 같은 '명'이라니 본인은 한자 내지 중국어가 참 이상한 문자와 언어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다. 저런 반의어의 소리가 동일해도 될 정도로 중국어는 성조가 음운 변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 것 같다. 물론 한국어에서는 '어둡다'라는 한자어는 '암'(暗)이 더 많이 쓰이긴 하지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07/18 08:32 2015/07/1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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