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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는 북한의 남침용 땅굴은 총 4개이다. 그리고 이들은 발견 순서대로 1(1974년)부터 4(1990년)까지 번호가 매겨져 있다.

북한이 남침 땅굴을 판 사상적 근거로는 1971년 9월 25일 “하나의 갱도는 10개의 핵 폭탄보다 더 효과적이다”라는 김 일성의 교시가 제시되곤 한다. 뭘 하는지 알 길이 없는 비밀 스텔스 폐쇄국가인 북한이 땅 속을 두더지처럼 헤집으면서 한반도에 나이더스 캐널 네트워크를 깔아 놓는다면 무섭긴 할 것 같다. 그래서 우리나라 정보 기관들은 북한이 땅굴 발파 기계를 대량 수입했다는 첩보 하나만으로도 전전긍긍해야만 했다.

종북들의 눈엔 한반도에 땅굴이란 공식적으로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땅굴처럼 생긴 건 다 자연 동굴일 뿐인가 보다. =_=;;
그러나 반대로 '땅굴 덕후' 기질이 있는 안보 연구가들은 우리나라에 이것보다 땅굴이 훨씬 더 많이 깔려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의 대외 인지도와 신뢰도는 예수회/프리메이슨 세계 정복설이나 광주 5·18 북한군 개입설 급의 후덜덜한 수준이다. (긍정이나 부정이 아니라, 그냥 흠좀무스럽고 엄청나다는 뜻임.)

그런데, 오늘날 같은 수준의 인터넷 인프라에 '비해서' 남침 땅굴과 관련된 정보는 구글과 네이버를 총동원해도 이상할 정도로 잘 안 찾아진다. 내 느낌으로는 그렇다. 각종 위키나 백과사전에 등재된 설명도 너무 부실하다. 땅굴의 발견 경위, 작전에 참여한 부대의 신상 정보, 발견 과정에서 벌어진 위험 상황 등을 한데 열람하기가 너무 어렵다. 사람들의 관심이 적은 걸까?

단적인 예로, 한국어 위키백과에 '제n땅굴'이라고 땅굴마다 독립된 표제어조차 개설되어 있지 않은 걸 보고 본인은 정말 굉장히 놀랐다. (내가 써 넣을까ㅋㅋㅋ)
그래서 오기가 생겼다. 6·25 발발일을 기념하여, 평양 시내까지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구글 어스를 이용하여 4개의 땅굴들의 입구를 찾아 보았다.

1. 제3땅굴(1978): 도라산 역과 도라 전망대보다 살짝 북서쪽으로

앞서 글을 쓴 적이 있듯이 이 땅굴은 서울 및 판문점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위협적인 놈이며 길이도 가장 짧다. 그리고 첩보를 바탕으로 의심 지대을 탐사하던 중에 발견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DMZ 내부의 의심 지대 곳곳에다 구멍을 뚫어서 시추봉을 집어넣고 동향을 살폈는데, 한 시추봉이 지하의 발파 충격으로 인해 튀어오르고 물이 솟는 등 이상 증세를 보인 것이다.

관광객은 도라산 역, 도라 전망대, 통일촌 일대의 안보 관광의 일환으로 이 땅굴을 방문할 수 있다. 출입구는 승강 전동차를 타고 가거나 그냥 도보로 왕래할 수 있는데, 전동차를 타면 요금이 몇천 원 더 비싸진다. 도보 출입구와 전동차 출입구는 서로 다른 곳에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곳은 본인이 직접 갔다 와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구글어스에서 위치를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남방 한계선(좌측 하단의 선)이 10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리고 땅굴을 이용하면 군사 분계선의 거의  200m 앞까지 지하로 도달한다고 한다.

2. 제2땅굴(1975): 토교 저수지보다 북동쪽으로 수 km

제1과 제2땅굴은 모두 DMZ를 경비하던 병사가 지표면에서의 이상 현상을 발견하고 신고하여 조기에 발견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초창기이다 보니 심도가 이후의 땅굴보다는 얕았던 편. 하지만 2땅굴은 1땅굴에 비해 터널 단면적이 더욱 커지고 대담해져 있었다.

2땅굴이 있는 곳은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이다. (우리나라는 DMZ나 민통선 내부도 독립된 행정구역이 할당되어 있다) 이곳은 최근에 경원선 북쪽 끝에 생긴 역의 이름이 '백마고지'일 정도로 6·25 당시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며, 결국 우리나라가 수복해 낸 38선 이북 지역이다. 백마고지 역이라든가 38선 시절에 북한이 사용하던 로동당 청사 정도는 그래도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월정리 역과 제2 땅굴까지 가는 건 패키지 관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곳은 본인이 아직 직접 가 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땅굴 입구의 정확한 위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토교 저수지'를 먼저 찾은 뒤에 거기서 쭉 올라가 보면, 도로 위에 검은 아스팔트 덧칠이 덕지덕지 되어 있는 이 지역을 찾을 수 있다. 지상 사진은 내가 참조 목적으로 구글링을 통해 임의로 긁어 온 것임. 땅굴 입구 역시 여기 근처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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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땅굴은 탐사와 발견 과정에서 국군 장병의 인명 피해(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비극의 땅굴이기도 하다. 입구에는 희생자 위령탑이 만들어져 있다.

3. 제4땅굴(1990):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이현리

예전의 세 땅굴과는 다소 다른 위치와 시기에 발견되었다. 이로써 강원도 동부도 땅굴 안심 지대가 아님이 입증되었다.
지상의 이상 징후만으로 조기에 발견된 1, 2나, 첩보에 따른 수색에 의해 발견된 3과는 달리, 이 땅굴은 교본대로 평범하게 땅굴 탐사를 하던 중에 산지 아래의 지하 140m의 굉장히 깊은 곳에서 꽤 어렵게 발견되었다. 그래서 이 땅굴은 발견 당시 남방 한계선 이남으로 이미 1km가 넘게 진행되어 있던 상태였다.

양구군 이현리를 찾은 뒤 북쪽으로 울창한 숲이 있는 곳으로 가 보면 땅굴이 있는 지점을 찾을 수 있다. 도로 이름도 '땅굴로'이다. 땅굴 근처에는 '남침 분쇄'라고 적힌 기념탑이 세워진 광장이 있다. 이곳 역시 각종 전망대, 전쟁 기념관 같은 연계 관광 상품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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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땅굴은 길어서 그런지, 땅굴들 중 유일하게 땅굴 내부를 전동차를 타고 구경할 수 있다. (3땅굴은 출입구의 경사로에만 전동차가 다님) 제3궤조 집전식이라거나 한 건 아니고, 전동차가 자체적으로 배터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운행 후엔 충전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땅굴은 탐사 과정에서 '헌트'라는 이름의 군견이 희생되었다. 화약 냄새를 맡고 지뢰를 찾도록 훈련받은 독일산 셰퍼드였는데, 물에 잠겨 있던 목함 지뢰를 밟고 그만 장렬히 산화했다. 그 대신, 10여 명의 분대원들이 당했을지도 모를 희생을 몸으로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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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못 하는 짐승이라지만 이것은 너무나 숭고하고 값진 희생이었다. 그래서 헌트에게는 소위 계급과 인헌 무공 훈장이 추서되었으며, 땅굴 입구에 '충견지묘'라고 적힌 무덤과 동상이 세워졌다. 누가 일계급 특진을 한다고 소위가 되지는 않으니, 소위는 영예로운 죽음을 맞이한 군견에게 적절한 계급 포상인 것 같다. (고 한 주호 준위에게 소위 계급이 추서되지는 않았잖아?)

4. 제1땅굴(1974):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포춘리

가장 먼저 발견된 제1땅굴을 가장 나중에 소개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이건 땅굴들 중 유일하게 입구가 남방 한계선 이북의 DMZ 내부에 있으며,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초창기의 땅굴인 만큼 얘는 다른 땅굴들보다 훨씬 얕고 작고 소심한 규모이다. 사람이 서서 걸을 수도 없을 정도로 터널 단면적이 작다. 단면이 아랫변이 더 긴 사다리꼴 형태이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 봐도, 이 땅굴의 주변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이게 유일하다. 어느 언론사 기자가 남방 한계선 철책 근처에서 줌을 당겨서 촬영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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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바탕으로 본인은 저게 아마 제1 땅굴의 입구가 아닌가 추정한다. 지상 사진과 좀 비슷해 보이지 않는가? 땅굴 입구의 위쪽 언덕은 나무가 없이 풀만 나 있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주변에 이것 말고 다른 대안이 될 만한 인공물은 보이지 않는다. 서울 시청으로부터는 직선 거리로 약 60km가량 떨어져 있다.

우측 하단에 있는 경계선이 바로 남방 한계선이다. 그리고 땅굴 근처의 서쪽 상단에 있는 수직선은 군사 분계선은 아니며, 아마 GP 초소를 드나드는 길이지 싶다. GP는 아무래도 북한 땅을 내려다봐야 하는 곳이니, 언덕 위의 높은 지대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이를 보면, 그저 학교 교과서나 언론 보도를 통해서만 존재에 대해 들었던 남침 땅굴이 더욱 현실성 있게 느껴질 것이다. 또한 땅굴들도 다 같은 땅굴이 아니라 제각기 특징과 개성이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본인이 캡처한 4장의 구글어스 사진들은 모두 같은 배율로 맞춰져 있다. 그리고 지도 화면에 남방 한계선이 같이 찍힌 땅굴은 1과 3 이렇게 둘이다. 1은 입구가 남방 한계선으로부터 5~600m 정도 떨어져 있고, 3은 그야말로 코앞임을 알 수 있다.

비록 땅굴을 의식하여 그 주변으로 우리나라의 군사 시설들이 배치되는 건 사실이긴 하지만, 땅굴 자체는 우리나라의 군사 시설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 애들이 직접 만든 물건이다. 이 정도로 아주 간접적으로만 위치에 대한 힌트와 항공 사진을 노출하는 건, 설령 이북 간첩들이 본다 하더라도 새로운 정보를 주는 게 아니며 안보면에서 그리 문제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ㅎㅎ

Posted by 사무엘

2013/06/25 08:29 2013/06/25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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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수단별로 운전에 관여하는 승무원 및 승객을 상대하는 승무원의 수는?

1. 버스: 1 / 0
운전사 한 명만 탄다. 옛날에는 안내양이 탑승하여 1 / 1이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음.

2. 서울 1기 지하철 및 코레일 광역전철들: 2 / 0
기관사와 차장이 탑승하여 2명이다. 단, 전방의 한 운전실에 두 명이 있는 게 아니라 앞쪽에 기관사, 뒤쪽에 차장이 있다.
지하철의 특성상 객실에 상주하는 승무원은 없다. 하지만 차장이 하는 일이 승객을 상대하는 일에 가깝긴 하다.

3. 서울 2기 지하철 및 지방 지하철들: 1 / 0
그러나 철도는 차량과 행로에 대한 가장 정교한 제어가 가능한 교통수단이다. 최첨단 컴퓨터 시스템과 신호 설비의 도움으로 요즘 지하철은 1인 승무, 아니 그것도 모자라서 무인 운전이 대세가 되고 있다. ATS, ATC에 이어 ATO 시스템이 개발된 덕분이다.

4. 광역전철 신분당선: 0 / 1
2013년 현재, 경전철이 아니라 표준궤 중전철 중에 완전 무인 운전을 시행하고 있는 유일한 노선이다. 운전실이 없는 대신, 간단한 안내 방송과 승객 통제만 하는 승무원 한 명이 객실에 상주하고 있다. 그런데 듣기로는 승무원이 모든 차량에 언제나 있는 건 아니라고는 하던데..

5. 경전철들 (부산 4호선, 의정부, 용인): 0 / 0
이들은 완전 무인 운전일 뿐만 아니라 차체에 일체의 승무원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종착역에 도착한 뒤에도 내리라고 아무도 닦달을 안 하며, 그냥 놀이 삼아 열차를 탄 사람들이 눌러앉아 있을 수 있다.

6. 일반열차: 2 / n
대형 기관차를 운전하는 인원은 기관사와 부기관사 2명이다. 그러나 코레일에서는 장기적으로 기관차 승무 인원을 1명으로 줄이려 하며, 이에 상응하는 각종 열차 운영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중이다.
객실에는 흔히 차장이라 불리는 여객전무, 그리고 그 아래에 약간명의 승무원들이 있다.

7. KTX: 1 / n
900명이 넘는 인원을 태워서 시속 300km로 질주하는 KTX에는 의외로 기관사 1명만이 운전실에 탑승한다. KTX가 그러한데 하물며 일반열차의 기관차의 승무 인원도 줄이려 하는 건 당연지사이다.

8. 비행기: 2 / n
잘 알다시피 기장과 부기장, 혹은 조종사와 부조종사가 조종간을 잡는다. 옛날에는 여기에다 항공 기관사(flight engineer)가 추가되어서 운전 승무원이 3명이었으나, 지금은 각종 기기가 자동화된 덕분에 사라졌다.
GPS가 없던 시절엔(민간용으로 풀리기 전) 항공 기관사가 별을 보고 지금 비행기의 위치를 파악하고 항로를 분석하는 일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민항기는 법적으로 승객 4~50명이던가 그 수에 한 명꼴로 스튜어디스가 반드시 할당되어 있어야 한다.

요컨대, 운전 인력만으로 따지면 자동차는 예나 지금이나 1을 유지하고 있다.
철도 차량은 0~2로 상황이 가장 다양하나, 요즘 대세는 0 아니면 1로 가고 있다.
비행기는 옛날에 3이었다가 요즘 대세는 2이다. 설마 대형 여객기의 조종 인원수가 2보다 더 줄어들 일은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싶다.

끝으로, 배는 어떤지 궁금하다. 배는 운전 승무직이 항해와 기관 분야로 더욱 세분화되어 있지 싶은데, 이쪽도 전자화와 자동화의 조류를 따라 승무원 수를 줄이려는 트렌드가 있으려나?

배에는 다른 교통업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도선사라는 전문직이 있다. 수십만 톤급의 초대형 선박을 생소한 항구의 좁은 통로 안으로 제대로 유도해 넣는 건 자동 운전은커녕, 이미 있는 기관사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이때는 도선사에게 배의 조종간을 맡겨야 한다. 뭔가 육상· 항공 교통수단에는 존재하지 않는 고유한 문화가 있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3/06/23 08:37 2013/06/23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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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바보 3유형

내가 생각하는 3대 크리스천 바보

1. 유대인을 예수님을 죽인 민족이라고 정죄하거나 싫어하는 사람
2. 예수님은 믿고 사랑한다고 하지만 교회는 싫어하는 사람
3. 성경 맹신주의, 성경의 우상화.. 이런 말을 쓰는 사람

애초에 불신자야 저런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관계 없지만, 예수 믿는다고 하고 스스로 크리스천이라고 종교 정체성을 밝히는 사람이 저렇게 생각한다는 건 정말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다음은 아이템별 간단한 해설이다. 내가 괜히 ‘바보’라는 말까지 쓰는 게 아니다.

1. 반유대주의

우리도 그들보다 하나도 나을 게 없는 죄인이라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아니 그럼 예수님이 인류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안 죽으셨으면, 우리가 대신 죄 가운데 죽어서 지옥에 가게 됐을 것이다. 도대체 유대인을 특별히 미워해야 할 명분이 어디 있는가?

성경의 기독교는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절대로 반유대주의를 가르치지 않는다. 정작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안 믿고 기독교를 매우 싫어하지만 그래도 크리스천들은 유대인들을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의 문자적인 회복을 예언하며, 이 교리가 사실 화체설, 마리아, 연옥 만만찮게 천주교와 기독교 사이의 매우 큰 교리 차이이기도 하다.

물론 유대인들도 죄악에 빠졌을 때는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여타 민족들을 이용하여 그들을 벌하고 심판하셨다. 많은 불신자들이 간과하는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게 많은 만큼, 계약 위반시 뱉어야 할 것도 많았다. 역사적으로 쟤들이 뭔가 죽이고 학살한 게 더 많았나, 아니면 반대로 자기들이 당한 게 더 많았던가?

그 ‘여타 민족’에 크리스천이 껴야 할 필요는 전혀 없으며 그래서는 안 된다. 유대인들을 심판하는 도구로 쓰였던 사람들이 최후가 좋았던 적은 없다.

2. 교회 무용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그러나 당신이 사랑하는 예수님이, 당신이 싫어하는 교회의 머리이기까지 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수님은 크리스천들을 위해 기독교 국가, 기독교 기업, 기독교 학교가 아니라 교회라는 별도의 조직을 창립하신 것이다.

예수님을 기쁘게 하고 싶고 훗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떳떳하게 회계 보고를 하고 싶다면, 당신은 아주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주변에 도저히 마땅한 교회가 없다거나), 성경대로 믿고 행하는 지역 교회에 소속되어 교회를 신실하게 섬기면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

세상에 어차피 완벽한 교회란 없고 당신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만 이뤄진 교회도 없다. 한 치의 허물도 없는 완벽한 교회가 있다면 당신이 거기에 가입하는 순간 그 무결성은 깨진다.
대형 교회는 부패하고 돈만 밝힌다고 싫고, 작은 근본주의 교회는 교조주의적이고 ‘가오’가 안 난다고 싫다면 그건 뭐 무슨 상황이든 싫다는 변명일 뿐이다(마 11:18-19).

3. 성경(말씀) 무용론

이건 도대체 기독교의 믿음의 근간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극심한 무지의 소치가 아닐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에 대해서 어떤 지위를 부여하시는지를 기록해 놓았다. ‘하나님’이 들어가야 할 곳에 성경이 들어가는가 하면(요 7:38,42; 롬 9:17, 11:2; 갈 3:8,22 등) 시 138:2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자신의 모든 이름보다 크게 높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이름도 이미 얼마나 높은 존재인지는 빌 2:9 같은 구절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그 높은 성경을 안 믿으면 무엇을 믿겠으며, 아무리 굳건히 믿어도 시원찮을 성경이 어찌하여 ‘맹신과 우상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난 비슷한 맥락에서, 일부 행실이 바르지 못한 크리스천, 육신적인 신자를 빌미로 성경을 폄하하고 특히 킹 제임스 성경 탓을 하는 주장을 매우 싫어하고 경계한다. 문제의 본질을 완전히 잘못 짚은 발상이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논증은 윤 성목 목사님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참고로 바보 크리스천 말고, 바보 불신자에 대한 불편한 진실은 성경에서 시 14:1이나 눅 12:20에서 다루고 있다. 이 역시 누구나 간과해서는 안 될 사항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3/06/18 08:31 2013/06/1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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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보수, 우파'라고 하면 대체로 이런 성향을 싸잡아 일컫는 게 아닐까 싶다.

  • 역사· 이념적으로는 이 승만· 박 정희 전대통령에 대해 매우 옹호적이다. 이런 진영이 우리나라를 열악한 여건 속에서 비록 일부 과오도 저질렀지만 그건 위태롭던 시대 정황상 불가피한 것들도 많았고 전반적으로는 잘한 게 훨씬 더 많다. 폐허 속에서 경제 부흥과 자유 민주주의를 일군 대한민국 역사와 정체성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 정치· 군사 방면으로는 북한에 대해 적대적이고 그들의 안보 위협을 좌시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종북 좌익들의 선동 때문에 매우 위태로운 지경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반사 심리로 북한 주민 인권에도 관심이 많다.
  • 도덕· 윤리 측면으로는 동성애 반대, 사형제 찬성, 체벌 옹호 등 말 그대로 과거의 보수적인 가치관을 그대로 존중한다.
  • 경제 쪽에서는 사유 재산과 시장에서의 자유 경쟁(정부의 규제나 개입이 최소화된), 작은 정부, 선별적 복지를 최대한 민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이듯, 성장이 최선의 복지이다. 그리고 친기업 정책이 최선의 일자리 창출 방법이다.
  • 종교 쪽은 꼭 일치하라는 법은 없지만 어쨌든 대체로 친기독교 성향이고, 최소한 기독 안티는 아니다.

이런 것들을 보수라고 부른다면 나는 꼴보수이다. 그리고 이걸 우파라고 부른다면 난 극우라 불려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사회 통념적으로 지극히 건전하고 바람직하며, 성경과 하나님 앞에서 한 치 부끄러울 게 없는 이념을 수꼴이라고 부른다면 난 기꺼이 수꼴이 돼 주겠다.

이런 방면엔 여러 유명 논객들이 있다. 저마다 프로필이 화려하며, 과거에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자기 분야에 기여하고 국가를 발전시킨 이력들이 있는 분들이다.
그런 분들 중, 본인은 최근에 정 창인 박사의 블로그를 알게 되었는데..

1. 북한으로 자유를 확산시켜 북한 동포를 억압적 독재 체제로부터 해방하는 것이 바로 자유 통일입니다.
2. 우리가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면 건국 대통령 이 승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우리가 바른 의사 소통을 원한다면 한글만 쓰기를 생활화하여야 합니다.


우와! 블로그 소개글에 기재된 문장 하나하나가 지극히 공감되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박사님께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곧장 성사됐다. 내가 먼저, 그것도 오프라인에서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페친 신청을 하는 경우는 매우 극히 드물다.

사실, 1940년대생에 육사 출신의 유학파 박사 군사 평론가라는 점에서 이분은 지 만원 박사와도 프로필이 비슷하다. 대북 강경론, 이 승만· 박 정희 빠, 한글 전용이라는 지론도 동일하다. 지 박사 역시 필요 이상의 한자 교육은 필요하지 않으며 한글 전용을 지지한다는 것을 글로 표명한 바 있다. (왜냐 하면 보수 진영에 잘 알다시피 유명한 한자 혼용론자 논객도 있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박사는 '보수'가 지니는 여러 속성들 중 저 세가지 세부 분야를 더욱 특화하여 미시는 듯하다. 박 정희의 경제 성장보다 이 승만의 반공 이념 건국을 더 밀고, 특별히 한글 전용도 더 강하게 주장한다는 뜻이다. 본인과는 그런 세부적인 취향까지 일치한다. 그러고 보니 정치· 철학 박사이면 이 승만하고 전공 분야도 아주 비슷하다?

난 사실 거의 15년 가까이 전의 고등학교 시절에 한글 학회 소식지 <한글 새소식>을 통해서 이분에 대해 사실 먼저 알고 있었다. 1999~2000년 사이에 한글 전용을 강한 호소력으로 지지하는 글을 투고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글 하나가 아니라 <한글 사랑은 곧 나의 사랑>이라고 아예 시리즈로 아주 길게 글을 연재하셨다. 물론 저 블로그에서도 글을 다시 볼 수 있다. 이제는 문자관뿐만 아니라 다른 이념까지 일치하는 분이 되었으니 더욱 존경스럽게 보일 뿐이다.

지금 정 박사의 블로그는 첫 화면부터 <백년 전쟁>이 거의 성경 변개나 황 우석 논문 조작 급의 저질 퀄리티라는 걸 낱낱이 까발리는 반박 자료들로 가득하다.
여기서 백년 전쟁이란 중세에 영국과 프랑스가 싸우고 잔 다르크가 활약한 그 전쟁이 아니라, 이 승만에 대해 완전히 있지도 않은 사실 왜곡과 날조로 인격 살인과 난도질을 해 놓은 쓰레기 영상물의 이름을 일컫는다. 유튜브를 통해 이미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보고 퍼 날랐다고 한다. 내가 이 승만을 좋아한다는 걸 아니 몇몇 좌파 성향(?)의 지인들이 나보고도 그걸 좀 보라고 권하기도 했었다.

앞부분 조금만 봐도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오던데, 저분은 실제 미국 유학 생활을 토대로 더욱 조직적으로 <백년 전쟁>을 어디서 내밀지도 못할 정도로 철저하게 반박해 놓았다. 이 사람들이 정말로 켕기는 게 있으니 이런 조잡한 방법으로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을 능멸하고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려고 한다는 게 느껴진다.

여러분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이유야 어쨌든 우리나라가 친일 청산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기에 본인 역시 어린 시절엔 민문연 같은 단체가 존재의 의미가 있고 뜻 깊은 일을 한다고 인정을 했었으나.. 이런 걸 보면 정이 완전히 확 떨어지고 만다. 군사 정권 시절 같았으면 모조리 빨갱이로 몰려서 대표가 사형 당했어도 할 말이 없고 자업자득이었을 것이다..

이런 엉터리들이 이 승만 박사를 음해하기 위해 이런 엉터리 영상물을 만들었다. 이 승만 박사가 지하에서 통곡할 것이다. 이 승만 박사의 신발끈을 맬 자격도 없는 놈들이 감히 이 승만 박사에게 막말을 하고, 그것도 있을 수 없는 인격 모독과 인격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 이런 저질들이 바로 민족 문제 연구소--그 소장은 임 헌영이며 이사장은 함 세웅이다. 그리고 4.9 평화 재단, 그 이사장은 문 정현이다--의 실체다. (본문 중에서)


(* 본인 주: 사실, 이 승만 박사는 지하가 아니라 지금 하늘에 있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3/05/14 08:27 2013/05/14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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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은 누구는 애초부터 지옥 가라고 창조하셨고 누구는 천당 가라고 창조하셨다.
  • 빛이 없으면 자동으로 어둠이고 어둠이 먼저 있어야 빛이 필요하듯이, 선과 악도 서로 양 날개와 같은 존재이고 상대방을 드러내기 위해서 필요하다.

이런 부류의 모든 거짓 교리들은 성경에 대한 무지의 소치이다(저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면 당신은 복 받은 사람이다).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충족하는 성경의 하나님을 완전 잔인무도하고 무지막지한 신으로 왜곡함으로써 불신자에게는 회개하고 구원으로 이를 통로를 원천 차단하고, 안티들로 하여금 기독교를 더욱 모함하고 조롱할 빌미를 제공한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천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런 교리들이 잘못되었음을 널리 알려야 한다.

내가 예정론에 대해서 무엇보다 분노를 느끼는 건, 죄에 대한 관념을 완전히 왜곡한다는 점 때문이다.

생각을 해 보라. 왜 하나님이 죄인을 지옥으로 보낼 수밖에 없나?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게 할 수밖에 없었나? 주위를 둘러보면 어지간히 평균적인 '교인'들보다 인격적으로 도덕적으로 훌륭한 불신자들도 얼마든지 있는데도 우리가 어째서 감히 길거리에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가?

죄라는 것이 얼마나 참혹하고 예수님의 보혈을 대가로 요구한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존재인데, 지옥에 가야 마땅한 죄인을 무슨 죄인 역할극 악역 배우쯤으로 미화하는 이 무시무시한 교리는.. 마귀로부터 유래된 게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파라오와 헤롯의 유아 학살,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 일본군 731 부대 생체 실험, 지존파, 북한 정치범 수용소가 전부 연기였다는 말인가?

파라오는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곱게 내보내 줘도 어차피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으며 그게 피차 더 나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열 가지 재앙에 나라 경제를 완전히 말아먹고 험한 꼴을 다 당한 뒤에야 풀어 주게 됐다. 하나님은 파라오의 완악한 마음을 이용해서 그의 마음을 더욱 완악하게 '보호 장치'를 해제해 버리셨으며 재앙을 통해 영광을 받긴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영광 좀 받아야겠으니 너는 좀 이스라엘 백성 풀어 주지 말고 완강하게 버티고 있어 봐라. 나는 그 짓을 시키려고 너를 창조했다”는 절대 아니다!

하나님은 역사적으로 악역을 활용하였으며, 좀 대놓고 말하자면 그들을 조롱하며 갖고 노신 적은 있다. 허나 당사자는 악역을 자처할 필요가 전혀 없었으며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사실 어떤 경우에도 악역을 맡아서는 안 된다. (그 중 제일 해서는 안 되는 악역은 유대인을 심판하는 도구이다.) 악역은 죄이며 죄에는 심판과 형벌이 따를 뿐이기 때문이다. 악역을 자처해 봤자 삽질 잔뜩 하고, 시간· 돈 날리고 손해 보는 건 우리뿐이다.

하나님은 그 파라오인들 구원하고 싶지 않으셨겠는가? 그가 나중에라도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었다면, 유대인들을 악하게 다룬 것과는 별개로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 개인의 구원에 관한 한은, 이는 히틀러, 도조 히데키, 스탈린, 심지어 오늘날의 이북의 인간 악마 인간 백정 김씨 같은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칙이다.

성경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부정하는 운명 예정론을 결코 지지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아무리 전지전능하다고 해서 자기가 무슨 아무 감정도 없는 로봇 컴퓨터이거나, 세상을 그런 기계처럼 만들어 놓은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죄악으로 인해 인간을 지은 것을 슬퍼(repent)했다는 구절마저 성경에 들어있는 것이다. 로봇, 컴퓨터는 '정지 문제' 하나도 풀 수 없는 튜링 기계일 뿐이다. 0과 1만 분간할 수 있을 뿐, 선과 악을 분간할 수는 없으며 죄에 대한 책임도 질 수 없는 물건이다.

인간은 불가항적으로 죄인으로 태어난다. 하지만 하나님 역시 불가항적인 이유만으로 사람을 결코 지옥에 보내지도 않는다. 지옥은 언제까지나 사람이 선악을 스스로 분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의로 지은 자기 죄로 인해서 가는 것이며, 인간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자발적으로 거부하여 제 발로 간다. 즉 전적으로 100% 후천적인 요인만 작용한다.

요컨대..하나님에게 미리 아심은 있다.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에게 이런 운명의 데스티니가 보장되었다는 예정 정도는 성경적으로 물론 있다. 허나, 인간 개개인의 구원 여부를 미리 정해 놓은 예정 따위는 없다. 미리 아심은 read-only operation일 뿐이다. 혼동하지 말자.

기독교의 구원 교리는 딱 체계가 잡혀 있고 논리가 있다. 인간의 이성으로 다 이해할 수 없는 교리를 믿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도 안 되는 황당무계한 낭설을 맹목적으로 떠받드는 게 아님을 알아야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3/05/12 08:36 2013/05/12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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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생이라면 페스카마 호 선상 반란 사건을 기억하시는가?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의 딱 한 달쯤 전인 1996년 8월경에 벌어진 참극이다.

페스카마 호는 원양어선이었다. 어업, 아니 선원 생활이라는 건 정말 고되고 힘든 일이다. 그리고 저기서 하는 일은 대규모 육체 노동이 그렇듯이 정교한 팀웍이 요구되며, 누구 한 명이 실수하면 큰 영업 손해와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원들 조직 내부엔 군대만큼이나 엄한 군기와 규율이 존재해 왔다.

그랬는데, 업무에 미숙하여 폭언과 인격모독--당한 사람의 입장에서 쓴 표현--을 자주 당하던 조선족 선원들과, 한국인 선장 및 선원 사이에 마찰이 생겼다. 그들은 나중에는, 옛날에 공산주의자들에게 현혹되어 기업 무너뜨리려 위장 취업한 붉은 노동자들처럼, 업주가 정황상 도저히 들어 줄 수 없는 임금과 복지를 요구하면서 태업과 꾀병을 일삼고, 정상적인 조업을 지속적으로 방해했다.

아무리 구슬리고 타일러도 말이 안 통하니, 선장은 참다못해 조업을 중단하는 손해까지 감수하면서 인근의 항구에다 그들을 하선시켜 버리기로 결정했다. 그들이 그렇게도 원하던 대로 말이다. 단,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손해들을 걔네들에게 청구하고, 그들을 앞으로 다시는 배를 못 타게 만드는 블랙리스트 낙인까지 업계 전체에다 찍으면서 말이다.

예상 외의 강경한 조치로 인해 돈이고 일자리고 다 잃고 인생이 송두리째 꼬이게 된 그들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7명의 한국인 선원을 한 명씩 꾀어내어 흉기로 잔인하게 살해하여 바다에 던지고, 자기네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조선족 1명, 그리고 범행을 우연히 목격한 인도네시아 선원 3명까지 추가로 살해했다. 총 11명. 그러나 항해에 필요해서 살려 둔 1등 항해사 한국인 선원이 목숨을 건 기지와 노력을 다한 덕분에 범행은 꼬리가 잡혔다.

선원들을 11명이나 살해하고 배를 탈취한 건, 오늘날의 소말리아 해적들도 차마 못 저지른 매우 극악한 범죄이기에 저 조선족 선원 6명은 전원 사형이 선고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지존파가 모조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것을 생각해 보라.
그러나 그들을 선량하고 불쌍한 동포라고 적극 변호하여 조직적이고 잔인한 살인극을 우발 범행으로 둔갑시키고,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시키고, 그나마 수괴 1명만 최종적으로 사형 선고된 것조차 그 미만으로 크게 감형시킨 일등공신은 바로..

'독재자의 딸'(?)을 대신하여 지난 18대 대선에서 대통령이 될 뻔했던 유력 대선 후보였다.
덕분에 이때도 피해자는 싹 묻히고, 오히려 살인범 조선족들에게 국민 성금이 가고, 중국 내부에서까지 “한국에서는 중국인이 한국인을 죽여도 무거운 처벌 안 받는구나” 하는 인식이 퍼졌을 정도였다. 훗날 어민을 빙자한 중국 해적들이 한국 공권력을 아주 우습게 여기게 되는 데에도 이 사건이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해석하는 건 좀 비약일까?

세상에 조선족 포함 외노자들이 사회적 약자이니 인권 보호하자고 외치는 배부른 사람들치고, 자기 바로 옆집에 외노자가 사는 걸 좋아할 사람이 과연 있을지 양심을 걸고 솔직하게 묻고 싶다. (오 원춘이 어디 출신이더라? ㄲㄲㄲ) 세상에 약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약자를 가장한 악인을 분간할 방법이 없으니 생기는 것이다. 주한 미군이 여성을 성폭행· 살해한 것하고 외노자가 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 언론에서는 절대로 동등한 비중으로 다뤄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런 와중에 피해자 인권은 없고 오로지 불쌍한 척 하는 놈, 가해자 인권만 챙기는 세상을 만드는 데만 열심인 사람이 정권을 잡아서 국정을 계속 그런 식으로 운영했다면 이 나라는 얼마나 더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얼마나 사회 기강이 무너지고 막장으로 치달았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몸서리가 쳐진다. 현 대통령이 발언한 취임사에서 언급되었던 상당수의 건전한 문장을 들을 수 없거나 정반대의 논조로 바뀐 채 듣게 됐을 가능성이 높다.

내 블로그의 옛날 글들을 보면 아시겠지만, 본인은 정작 대선 기간 도중에는 정치 발언을 극도로 자제하고 삼가 왔다. 오히려 그땐 <날개셋> 한글 입력기 6.71 작업하느라 바빴다.
겨우 신변잡기· 흠집내기 식의 신문 기사 한두 개를 근거로 특정 후보의 호불호 같은 내 정치관을 표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 지난 일이고 흥분도 좀 가라앉았을 테니, 빼도 박도 못할 검증된 심성, 팩트를 기반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내 의견을 표출해 보련다. 이번 대선 결과는 정말로 축복이고 다행이며, 우리나라가 국운이 최소한 몇 년은 더 남아 있다는 증거이다. 여당이 예쁜 구석이 있어서가 결코 아니라, 야당이 해도 해도 너무하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3/04/27 08:43 2013/04/27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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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무신론자 중에서
“세상에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내세도 심판도 없다. 내 마음대로 얼마든지 상대적인 잣대로 살아도 된다. 그걸 모르고 하나님이나 찾는 무능하고 어리석은 인생들이 너무 불쌍하다. 나는 그들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무신론이 진리임을 알리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하고 내 생명이라도 내어 놓겠다
이렇게 말하고 행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킹 제임스 성경을 알고도 받아들이지 않는 구원받은 크리스천 중에서
“내게는 개역성경/NIV가 최종 권위인 하나님 말씀이다. KJV야말로 6만 구절의 단어를 변개하고 13구절을 후대에 ‘추가’하여 하나님 말씀을 뜯어고친 무시무시한 죄를 저질렀다. 나는 이 엄청난 사실을 정반대로 알고 있는 KJV 지지자들을 계몽하고, 진짜 절대무오한 다른 성경을 대안으로 내놓겠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시겠죠?
두 진영은 서로 계산 결과만 다른 게 아니라 계산 과정과 초기의 변수, 생각하는 전제 조건부터가 완전히 다릅니다.

* 평소의 내 블로그 스타일답지 않게 무지하게 짧은 글이 돼 버렸는데..
그래도 내 생각의 핵심은 다 담겨 있으니..ㅎㅎ

Posted by 사무엘

2013/04/20 08:27 2013/04/20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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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진실
지 만원 지은 <제주 4·3 반란 사건>을 읽고

난 어린 시절부터 근대로 갈수록 우리나라 역사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임진왜란 이후로 우리 민족이 뭔가를 발명하고 정복하고 성공하고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누렸다는 식의 좋은 기록을 거의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백성들은 탐관오리의 학정에 줄곧 고통받았으며 개혁은 한계에 부딪혀 실패하기만 했다. 나중에는 좋든 나쁘든 한 나라의 왕비라는 사람이 외국 침입자에게 살해당하는 희대의 치욕을 당하기까지 하고, 궁극적으로 주권이 외세에 완전히 빼앗기는 것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끝난다. 빼앗긴 주권을 훗날 극적으로 되찾기는 하지만 이것도 우리 힘으로 스스로 이룬 것이 아니며, 덕분에 이념 대립과 국토 분단, 동족상잔 같은 또 다른 비극이 이어진다.

그래도 알고 보니 우리나라 역사에는 비극만 있는 게 아니었고 지도자 복이 없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정말 하늘이 내려 준 은인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지도자가 그 가난하고 열악하고 위험하던 여건 속에서 한반도의 공산화를 반쪽만이라도 필사적으로 막고 올바른 이념으로 국가를 세웠으며, 미국을 든든한 우방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기반 위에서 우리 민족은 기적적인 경제 성장까지 이뤘다. 이 정도면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국가관과 역사관을 지닌 사람이라면 자기네 나라의 내력에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지 않은가?

하지만 있는 그대로 가르쳐지고 대대로 전수되어야 할 대한민국의 역사는 불행히도 심한 공격을 당하고 있다. 공이 과를 객관적으로 월등히 압도하는 지도자가, 역사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후세에 의해 저열한 중상모략과 부관참시를 당하는 꼴을 본인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피아식별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벌어진 민간인 오폭이 조직적인 민간인 학살로 와전되고, 반역자가 소위 민주화 투사로 둔갑하는 것을 보니, 이건 정치색을 떠나서 정말 뭔가 한참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과거 일제의 만행에 그렇게도 분노하던 사람들이 북한이 더 최근에 저지른 잔학한 테러, 무력 도발, 민간인 학살을 왜 그토록 쉽게 잊어버리는가? 사람의 자유를 빼앗고 도덕과 정신을 무참히 파괴하는 사악한 북한의 사회 시스템을 왜 그리도 만만하게 생각하는가?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인터넷을 하면서 북한 김 정은 정권을 비웃을 수 있는 게 누구 덕분이고 무엇 덕분인지 혹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정녕 없는가?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우리 국민들이 사상이 글러먹어서 북한 정권을 직접 지지하기 때문이 결코 아닐 것이다. 단지, 가슴으로만 애국을 할 뿐 머리와 시스템적인 안목으로 애국을 못 해서 극소수 불순분자가 벌이는 역사 왜곡과 선전 선동, 시체 장사에 속아 넘어갔기 때문이다.

북한은 남한을 예전처럼 무력으로는 도무지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에 남한의 정신 기강부터 먼저 무너뜨리고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발달된 인터넷 인프라를 이용하여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우리 사회의 치부만을 편파적으로 들추고, 정부과 국민 사이에 극심한 불신풍조를 조장한다. 국가에 몸바쳐 충성한 애국자를 수구꼴통으로, 반역자를 민주투사로 바꾸는 역사 왜곡은 덤이다. 이것은 남을 교묘하게 쓰러뜨리려는 모든 '악의 무리'들이 분야를 불문하고 공통적으로 취해 온 전략이다.

제주 4·3 사건도 그런 예에 속한다.
책의 저자는 이 사건을 조명하기 위해, 해방 직후에 한반도가 분단된 과정은 두 말할 나위도 없고 아예 일제 강점기 때 한반도에 공산주의 사상이 처음으로 들어온 배경부터 면밀히 파헤쳤다. 그 내역을 보노라면 한반도가 공산화되느니 차라리 일제 치하에 있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왕 먹힐 거면 소련이 아니라 일본에게 먹힌 게 오히려 축복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미국· 일본 등 그 당시에 나름 선진국 축에 들던 나라들은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던 소련 발 공산주의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었다. 그들이 내세우는 프로파간다는 마치 이단 종교 교리처럼 무지한 사람들을 현혹하고 선동하기 매우 좋은 형태였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적인 배경을 모른 채 오늘날의 북한은 공산주의하고는 무관하다는 식으로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임을 이 책은 알려 준다.

한반도 본토에서 떨어져 있던 제주도를 공산주의 체제로 뒤엎으려는 계획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진행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본인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또한 박 헌영은 6·25를 사주한 것 이상으로 4·3 사건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에 씻을 수 없는 반역죄를 저질렀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사건이 좌익과 우익이 모두 연루된 처절한 피의 비극으로 끝난 데는 일차적으로는 '빨갱이'들의 교묘한 위장 전술과 잔학성, 피아식별의 어려움, 그리고 다음으로 상대편 진영에 대한 극심한 불신과 증오, 보복 심리라는 요인이 작용했다.

이 사건은 친북 세력이 일으킨 반란임이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그 어떤 좌편향 인사라도 감히 북한 쪽을 일방적으로 두둔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파 성향의 정권 때 반란의 주동자가 명예가 회복되고 훈장이 추서되기까지 했다고 한다. 사건의 피해자인 당시의 제주도민들조차도 이것은 불순분자가 일으킨 무장 반란일 뿐 남북 북단을 반대하는 항쟁(?)이라고는 여기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사건이 그렇게 왜곡되어 재해석되고 있는 것은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책을 덮으면서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하나는 이것이다. 이런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는 책을 왜 현업에 종사하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응용수학을 공부한 시스템공학 박사가 썼을까? 이 책을 쓰기 위해 막대한 기회비용을 감수하면서 얼마나 많은 문헌들을 읽고 공부해야 했을까?

희극인지 비극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다른 분야에도 이런 예가 종종 있어 왔다. 세벌식 한글 타자기를 발명한 천재인 공 병우 박사는 안과 의사였고, 오늘날 흠정역이라고 성서 공회 성경보다 더 나은 우리말 성경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는 분은 기계공학을 전공한 공대 교수이다. 머리가 시대를 앞서 가는 선각자들이 맑은 영혼과 양심의 자유를 추구하면서 좁은 길을 먼저 간 덕분에, 다른 국민들도 더 똑똑해지고 삶이 더 윤택해져 왔다. 어느 분야든 그 맥이 부디 끊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비정상적인 국가인 북한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이 더욱 궁금해졌다.
숙주가 완전히 죽어 버리면 바이러스 자신도 죽는데, 북한은 왜 하필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조차 가지 않은 최악의 길만 골라서 가 있을까? 북한도 처음에는 그래도 여러 당이 존재하고 주민들을 먹여 살릴 최소한의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어쩌다가 주민은커녕 군인들마저 못 먹여 살릴 정도로 나락으로 떨어졌을까? 북한 수뇌부들은 지금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들은 아직까지도 그렇게도 남한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고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많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의 저자는 정치색이 굉장히 강한 논객으로 세상에 알려져 있고, 사람마다 사상적인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분이다. 그러나 저자의 일부 극단적인 평론이나 주장에 공감하지 못하여 선뜻 받아들이지는 않을 수 있어도, 친일하고는 아무 관계 없는 프로필을 가진 멀쩡한 군사 평론가를 친일파로 몰고 가는 것은 여론 조작과 선동의 결과로 풀이할 수밖에 없다.

또한 북한의 비열하고 집요한 대남 도발사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만큼이나 객관적으로 입증되어 있다. 이것이 정면으로 뒤집히고 반박될 일이란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없을 터이며 4·3 사건에 대한 기록도 그러할 것이다. 팩트가 정치색으로 매도되지 않으면 좋겠고, 저자에 대한 편견 하나 때문에 진실까지 가려지는 일도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정말 만에 하나 이 책이 정치색을 띠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정치색은 무슨 불확실한 음모나 들추고 국가에 대한 피해의식과 불신을 조장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 대한 감사와 애국심을 북돋우는 건전한 정치색일 것이다.

우리나라에 아직 지 만원 박사 같은 분이 있는 것은 과거에 조선이 러시아 대신 일제에게 먹힌 것보다는 훨씬 더 큰 축복임이 틀림없다. 대한민국의 역사만 제대로 알아도 자부심은 충분히 생기며, 환단고기 같은 위서로 대리 만족을 얻어야 할 필요조차 없다. 이런 책이 널리 읽혀서 전쟁을 겪은 적이 없는 세대에게 공산주의의 해악이 알려지고 자유와 안보의 소중함이 전파되고, 북한의 대남 도발사가 있는 그대로 폭로되며 내 조국은 이런 위태로운 와중에도 오뚝이처럼 굳게 일어선 나라라는 사실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3/02/13 19:26 2013/02/1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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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국토 분단과 관련된 몇 가지 용어에 대해 살펴보자.

1. 우선, 38선과 오늘날의 휴전선은 다르다.
38선은 일제의 패망 이후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나눠서 지배하기 위해, 지형을 고려하지 않고 지리적인 위도 38도를 기준으로 땅을 수평 분할한 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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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면 오늘날 남한과 북한 사이의 실질적인 국경 역할을 하고 있는 휴전선은 6· 25가 휴전/정전으로 끝나면서 나중에 생겼다. 꼬불꼬불한 곡선 형태로 38선 시절에 비해 서울이 북한과 더욱 가까워진 반면, 강원도 쪽 영토는 남한이 훨씬 더 많이 수복하여 속초와 고성이 남한 땅이 되었다.

휴전선은 일명 군사 분계선(MDL)이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미터법이 대세인 우리나라에서 그 길이가 유독 마일이라는 단위로 일컬어지는 흔치 않은 존재이다. (155마일)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2. 흔히 휴전선 하면 이런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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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전방 GOP라 불리는 곳에서 근무하는 국군 병사들이 곁에 바싹 붙어서 순찰하고 정비하는 그 철조망은.. 한반도를 딱 반으로 가르는 그 '휴전선'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민족 대표 33인이 서울에서 벌인 3· 1 만세 운동과, 그 후에 유 관순이 음력 3월 1일에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벌인 만세 운동만큼이나 서로 혼동하기 쉬운 개념이다.

국군 병사들이 지키는 철조망은 휴전선 이남의 '남방 한계선'을 나타내는 철조망이다. 물론 북한 쪽에는 '북방 한계선'이 있다. 이것은 실제 휴전선과는 명목상 2km정도 떨어져 있으나, 그게 칼같이 지켜지는 건 아니어서 2km보다 더 가까이 있는 경우가 많다.

어쨌든 남과 북의 군인이 동일한 단일 철조망을 공유하면서 진짜 코앞에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게 하기에는 피차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각자 자기 진영의 철조망을 갖고서 서로 거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휴전선을 포함하여 남북 양쪽의 한계선 사이의 공간이 바로 천연 자연의 보고라고 불리는 그 이름도 유명한 비무장지대(DMZ)이다. 금강초롱과 끈끈이주걱까지 서식한다고 하나, 거기는 지뢰도 엄청 많이 묻혀 있는 위험한 지대이다. -_-

동쪽 강원도 쪽으로 갈수록 DMZ는 첩첩산중 지형이 되지만 서쪽 경기도는 DMZ가 평지이다. 판문점이 있는 공동 경비 구역(JSA)은 DMZ에 속하며, 대성동 마을도 이례적으로 JSA 인근 DMZ 내부에 있는 마을이다. 그리고 DMZ는 마치 뉴욕 한가운데의 UN 본사처럼 UN의 관할에 있는 땅이니, UN 본사를 판문점으로 옮기겠다는 허 경영의 공약(?)은 완전히 터무니없는 발상은 아닌 듯하다. -_-;;

남방 한계선과는 달리, 진짜 오리지널 휴전선(군사 분계선)은 극소수 육로로 월북이나 귀순을 하는 용자 말고는 접근하는 사람이 없다시피하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구간은 진짜 60여 년 전 휴전 당시에 만들어진 철조망이 시뻘겋게 녹슨 형태로 방치돼 있거나, 아예 애초에 철조망도 없이 낡은 표지판만이 남아서 여기가 군사 분계선임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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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남북의 군인들이 전방에서 매일 철통같이 순찰하고 정비하는 철조망은 휴전선이 아니라 거기에서 파생된 남방 한계선임을 기억하자. DMZ 내부까지 들어가는 병사는 JSA에서 근무하는 권총 든 헌병이라든가 GOP보다도 안의 GP 순찰병 정도밖에 없다.
이런 위험한 곳에까지 들어가는 병사는 체력 좋고 사상이 확실하게 건전한 사람만을 엄격하게 가려서 뽑는다.

3. 끝으로, 민간인은 남방 한계선까지라도 선뜻 갈 수 있는 게 당연히 아니다. 남방 한계선보다 더 수 km 남쪽으로는 드디어 민통선이라고 불리는 민간인 통제선이 있다. 민통선은 무슨 남방 한계선처럼 전구간이 살벌한 철조망이 둘러져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동차 도로는 마치 청와대 근처처럼 헌병 초소로 가로막혀 있으며, 아무나 드나들 수 없다.

민통선 내부 구간을 방문하려면 사전에 방문 신청을 하고 군인들로부터 신원 확인을 받는 등 여러 번거로운 절차가 필요하다. 도라산, 제진, 월정리 역은 바로 민통선 내부에 있는 철도역이다. 그래도 여기는 DMZ와는 달리, UN 관할이 아닌 엄연히 대한민국 영토인 건 맞다. 휴전 직후에는 민통선 구간이 남방 한계선으로부터 무려 10~20km가까이나 떨어져 있기도 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다시 북쪽으로 많이 올라갔다. 통제가 완화되었다는 뜻이다.

※ 별첨

우리나라에는 현충원 같은 묘지만 있는 게 아니라, 사실은 '적군 묘지'도 있다. 스펀지 같은 데에 소개될 만한 아이템이 아닌가 싶다.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산 55에 소재한 적군 묘지에는 6·25 이래로 우리나라에서 죽은 북한군, 중공군, 무장공비, 테러범들이 묻혀 있다. 찾아와 줄 유족이 있을 리 없는데도!
1968년 김 신조 무장공비 침투 사건 때 사살된 공비들, 1987년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범 김 현희의 파트너(자살)까지 다 묻혀 있다고 하니 놀랍기 그지없다. 자세한 건 링크 참고.

제아무리 제네바 협약 같은 게 있다지만, 적군에게까지 이런 예를 갖추는 우리나라는 정말 인심 좋은 나라이다.
하긴, 해방 직후에 일본 민간인들이 권력을 잃고 본토로 쫓겨날 때도, 한국인들이 폭동· 약탈 하나 없이 고이 보내 줘서 걔네들이 무척 감탄했다는 일화도 전해지는데.. (그런데 저 나쁜놈들은 우키시마 호 폭침 사건으로 은혜를 끝까지 원수로 갚았고..)

그런데 더욱 경악할 만한 안타까운 사실이 있다. 저 적군들은 그래도 북한의 입장에서는 나름 자기네 나라로부터 명령을 수행하다가 순직/순국한 호국영령들이다. 미국의 경우, 자국 군인이 죽으면 지구 끝까지 추적해서라도 유해를 찾아 오는 걸로 익히 유명하며, 한국도 나름 그 원칙을 수행하려 노력 중이다.

허나 북한은 한 번도 우리나라에 자국 병사의 유해 인도를 요청하거나 제의한 적이 없다. 특히 각종 지저분한 테러 공작의 경우, 공작원의 시신 인도를 요청했다간 그 행위를 자기가 저질렀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꼴이 되니 절대로 안 한다.

인권이고 예우고 뭐시고 없는 북한 정권은, 이용 가치가 끝난 병사나 공작원은 자기네 인력이라도 철저히 무시하고 토사구팽하는가 보다. 남과 북이 사이가 좋던 시절에 판문점을 통해 쌀과 소와 관광객이 오고 가긴 했어도, 북한군 유해가 갔다는 소식은 여러분도 지금까지 들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1996년의 강릉 잠수함 무장 공비 침투 사건 때 사살된 북한군의 유해는 북한으로 송환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는 북한이 자기들이 벌인 만행에 대해서 “유감 표명”까지 했을 정도로 예외적인 경우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3/02/03 08:18 2013/02/03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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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철도를 광적으로 좋아하며, 이것의 영향을 받아서 교통수단의 전반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그래서 비록 기계 공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교통수단의 내부 원리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편이다. 오히려, 내가 겉으로는 전산을 전공한 프로그래머 및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먹고 살고 있지만,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로 가자면, 컴퓨터 쪽의 논리 회로 같은 내부 구조보다는 교통수단들의 내부 구조에서 '신기함과 호기심'은 더 느낀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자동차 엔진의 원리에 대해서 몇 차례 블로그에다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자동차의 제원을 나타내는 각종 숫자들의 의미를 좀 더 몸에 와 닿게 느끼는 방법은 없을까?
더 구체적으로는... 자동차 엔진의 힘과, 자전거 페달을 밟는 내 발의 힘을 서로 비교해 보면 어떨까?

물론 이건 중· 고등학교 시절의 물리 지식만 적용해서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금방 답을 구할 수 있다.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 물리는 고전 역학만 생각해 봐도 정말 고도의 사고의 추상화를 요구하는 고차원적이고 어려운 학문이다. 특히 미적분이 없이는 이 학문이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이 세상에 겉으로 드러나는 힘을 결정하는 수많은 요소들을 다 계층별로 분류하고 나눠서 각 계층만을 따로 생각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힘, 일, 에너지 등의 개념과, 단위의 차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만 감을 잡아도 물리는 반은 먹고 들어간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정작 학창 시절에는 그런 고민을 할 기회가 없이 그저 입시를 위한 계산 테크닉 암기만 했야 했던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본론으로 들어간다.
요즘 4기통 2000cc급 가솔린 엔진 중형차의 최대 토크가 20kg·m/4600rpm 정도 된다고 한다. 이때 /는 per이라는 뜻이 아니라 at이라는 뜻이다. 'rpm 당 얼마'가 아니라, '이 rpm에서 얼마'라는 뜻. (그리고 kg는 정확히는 kgf 즉, 질량이 아닌 중력의 단위이다)
어지간한 가솔린 엔진의 출력 그래프를 보면 최소 회전수에 가까운 1000~2000rpm대라도 최대 토크의 60%정도는 보통 나오니, 12kg쯤 된다고 쳐 보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품은 의문은, 저 숫자의 의미가 정확히 무얼까 하는 것이었다.
토크는 말 그대로 비트는 힘, 회전력이며 팔씨름에서 이기기 위해 커야 하는 값이다. 그 자체는 하나도 어려울 것 없는 개념이다.

그런데 저게 너무 작은 값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로 오르막을 오를 때만 해도 힘들어서, 일어나 한쪽 페달에다가 내 체중을 다 힘주어 싣는다. 그것만 해도 100kg에 가까운 힘은 족히 걸릴 텐데? 이 힘이 만만찮기 때문에, 요즘 한창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제발 걷거나 뛰지 말라고 캠페인을 하고 있지 않은가.

1톤이 넘는 무게를 끌면서 백수십 마력짜리 출력을 자랑하는 자동차의 최대 토크가 겨우 10~20kg대라고? 쌀 한 가마니 무게가 채 안 될 텐데?
여러분은 그런 생각이 안 드시는가?
하지만 이것이 단견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단위에서 명시된 회전력에서 회전축의 길이이다. 사람이 발로 돌리는 성인용 자전거의 크랭크암은 길이가 겨우 17cm이고 넉넉잡아도 20cm가 채 되지 않는다. 그에 반해 자동차의 토크는 이것의 무려 5배가 넘는 1m짜리 회전 반경을 가정하고 명시된 수치이다. kg·m에서 m이 바로 그런 의미인 것이다. 회전력은 회전 반경의 길이에 정비례한다는 건 시소를 타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테고.

똑같이 자전거의 페달에다 체중을 실어도 17cm짜리 크랭크암에다 싣는 것과 1m짜리 크랭크암에다 싣는 것의 차이는 어떨까? 다시 말해 자동차는 공회전 수준에서도 10kg·m 이상급의 토크가 나오니, 이는 자전거의 크랭크암 길이 기준으로는 5배 이상의 50~60kg급의 힘이 기본으로 나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둘째, 사람과 기계가 넘사벽급의 차이를 보이는 변수는 역시 회전수이다.
사람이 크랭크를 돌리는 회전수는 죽을 힘을 다 해 전속력으로 최고 빨리 달릴 때라 해도 100수십rpm이 될까말까이고, 전속력 질주가 아니라면 평소에는 겨우 수십 rpm에 불과하다. 체중을 다 싣는 페달링은 몇 번만 하고 나면 지쳐서 더 못 한다.

그에 반해 자동차 엔진의 회전수는 기본 단위가 1000이다! 시동 유지를 위한 최소 회전수가 이미 수백에서 시작하며, 사람이 체중을 다 실어서 끙끙거리며 공급하는 힘을 자동차는 단위 시간당 적게는 수십 배, 많게는 수백 배나 더 많이 끊임없이 뿜어낸다. 그 힘이 쌓이고 축적되어서(=적분) 차를 굴리는 일을 한다.

즉, 사람이 페달을 체중으로 내리치는 순간적인 충격량이 몇 번 좀 커 봤자, 그건 전기로 치면 순간적인 전압이 좀 높은 정전기에 불과하다. 그것만으로는 사람을 잠깐 찌릿하게는 해도 감전시킨다거나 다른 일은 못 한다. 진짜 승부는 그게 지속적으로 흐르는 척도인 전류에서 결정된다.

이것이 바로, 500ml 우유팩 1개짜리 부피의 엔진 실린더 4개에서 휘발유를 분사하고 폭발시켜서 나오는 힘의 실체이다. 하긴, 가스나 석유가 적은 양이라도 좋지 않은 곳에서 한꺼번에 폭발하는 사고라도 났다간 주변이 어떻게 되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 괴력이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1톤짜리 쇳덩이에다 자전거 체인을 연결해서 사람이 페달을 밟아서 가는 것하고, 1톤짜리 자동차에다 시동 걸어서 액셀러레이터 밟아서 가는 것의 차이가 여기서 유래된다.

끝으로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변속기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자동차 엔진도, 1톤이 넘는 쇳덩어리를 지탱하고 있는 바퀴에다 곧바로 엔진의 크랭크축을 연결하고서 동일한 회전수를 유지하게 할 수는 없다.
엔진 자체의 힘은 본질적으로 비록 사람보다야 강하다 해도 생각만치 강하지는 않다. 앞의 계산에서 보았듯, 5배 좀 해 봤자 토크가 수백 kg 이상으로 뻥튀기된 건 아니다. 그 대신 속도가 훨씬 더 빠르다(높은 회전수).

그래서 높은 회전수로부터 토크를 더욱 뻥튀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변속기이다.
요즘 승용차는 최저단인 1단의 기어비가 3.7에서 4.0 사이이고, 고속인 4단 정도는 돼야 크랭크축의 회전수와 바퀴의 회전수가 1.0x대로 비슷한 직결이다. 5단 이상이 초고속 주행에 속하는 오버드라이브.
정지 상태에서 4단에서 바로 출발이 가능한 자동차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정도로 동력을 제어해 준 뒤에야 자동차는 비로소 나아가기 시작한다.

물론, 자전거에도 고급 차종에는 변속기가 있다. 그러나 자동차의 변속기와 자전거의 변속기는 성격이 무척 다르다.
외형적으로는 자동차의 변속기는 수동 기준으로 기어와 기어가 곧바로 맞물리는 반면, 자전거의 변속기는 체인을 거치는 형태이니 그렇지 않다.
하는 역할도 다르다. 자동차는 높은 회전수로부터 더 큰 힘을 얻는 게 주목적이기 때문에 최고단의 한두 단계만이 오버드라이브이다.

그 반면, 사람이 페달로 자전거의 크랭크축을 회전시키는 속도는 근본적으로 몹시 느리다. 그래서 자전거의 변속기에는 자동차보다 더 다양한 단수가 존재하며, 언덕을 오를 때나 쓰는 몇몇 저단 기어를 제외하면 나머지 단계는 모두 크랭크축보다 바퀴를 더 많이, 최고 2~3배까지도 돌릴 수 있는 오버드라이브이다. 정말 가볍게 잘 밟아지지만 답답할 정도로 안 나아가는 자전거의 최저단이 자동차의 변속기로 치면 3~4단 정도 된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이런 차이로 인해 자동차에는 변속기가 닥치고 없으면 안 되는 필수품인데 비해, 자전거에는 변속기가 언덕 오르는 걸 편하게 해 주거나 좀 더 고속 주행을 위해 쓰이는 고급 사양쯤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즉, 자동차의 변속기는 힘을 뻥튀기시키지만, 자전거의 변속기는 힘 버프보다는 속도 버프의 목적이 더 크다. 그리고 속도 버프는 전문적인 자전거 라이더 외의 계층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물론, 좋은 변속기를 적절히 잘 활용하면 자전거 운전이 정말 편리해지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자전거의 변속기는 비싸고 정교한 부품이며(자동차의 부품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조심스럽게 안 다루면 고장도 잘 나는 편이다.

이렇게 물리적인 디테일을 생각해 보니 자동차가 얼마나 위대한 발명품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또한, 연소나 폭발 없이도 결코 작지 않은 크기의 힘을 순간적으로나마 낼 수 있는 포유류의 근육에 대해서도 생물학적으로 경이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자전거용 자동 변속기가 있다면, 언덕을 오를 때도 비록 속도가 느려질지언정 평지일 때와 동일한 부담이 페달에 걸릴 것이고, 그러면서 평지에서는 알아서 고속 주행도 알아서 되니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아무래도 무게, 가격 등의 수지가 안 맞을 것이다.. ^^;;

끝으로, 자동차가 사용하는 내연 기관이야 저렇게 회전수별로 경제 운전이 가능한 대역과 최대 토크가 나오는 대역이 따로 존재하고 기복이 있는 반면, 전기 모터는 회전수에 관계없이 비교적 균일한 토크가 나온다고 한다. 내가 그쪽 디테일은 잘 모르지만 말이다.
수백~수천 톤에 달하는 KTX가 정지 상태에서 출발할 때는 얼마나 큰 회전력이 필요할 것이며, 그걸로 시속 300까지 내려면 또 얼마나 높은 회전수가 필요할까? 당연히 톱니바퀴로는 이 정도 스케일의 동력비 변환은 절대 불가능이다.

물론 일반 도로 위를 고무 타이어로 달리는 게 아니라 레일 위를 쇠바퀴로 달리는 것이기 때문에, 정지 마찰력이 작은 것이 고속화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게다가 철도는 전차선을 설치하여 동력비 변환이 유리한 전기로 달리는 게 가능하니 철도는 여러 모로 효율이 좋은 육상 교통수단이라 할 수 있다. 자전거와 자동차 얘기만 하려고 했는데 또 글을 철도로 맺게 되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ㅋㅋㅋㅋ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3/01/29 08:30 2013/01/2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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