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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석유

휘발유(가솔린)와 디젤은 내연기관 기반 자동차의 양대 동력원이다. 양 엔진의 차이점이야 자동차에 대해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기초 상식 축에 든다. 하지만 기계공학적으로 고찰했을 때 같은 2또는 4행정 엔진이면서 두 엔진이 본질적으로 왜 그런 차이가 발생하는지, 왜 양 엔진이 요구하는 연료에 차이가 있는지 같은 것까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해당 분야 전공자 공돌이가 아니면 흔치 않다. 물론 본인도 그만치 잘 안다는 뜻은 아니다.

휘발유, 등유, 경유 같은 연료는 석유를 분별 증류 기법으로 추출하어 얻어진다. 소를 한 마리 잡고 나면 앞다리 뒷다리 등심 안심 같은 다양한 부위별로 고기가 나오고 내장과 뼈도 나오듯, 석유도 그 자체는 다양한 탄화수소 화합물의 복잡한 혼합물이다. 그래서 끓는점이 겨우 몇십 도에서 대략 300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질이 섞여있다. 밀도는 기름답게 물보다 약간(수~10% 남짓) 가벼운 정도.

원유는 보통 시커먼 색깔인 반면, 정제된 차량용 연료는 시커멓지 않고 오히려 투명에 가깝다는 게 인상적이다. 갓 캐낸 원유에서 자동차에 엔진에다 주입해도 탈이 안 날 정도의 깨끗한 연료를 추출하는 것은 바닷물· 강물로부터 식수를 얻는 것 이상의 첨단 기술이다. 그래서 산유국이라 해도 정제 기술이 마땅찮으면 외국에서 석유를 역수입해야 하며, 반대로 땅에서 석유가 안 나는 우리나라 같은 나라도 역설적으로 석유를 수출하기도 한다.

휘발유 엔진은 말 그대로 석유에서 가볍고 휘발성이 매우 높은 물질을 연료로 사용하며, 디젤 엔진은 휘발유보다는 밀도가 더 높고 불이 덜 잘 붙으며 끓는점도 더 높은 경유· 중유를 사용한다. 순수하게 제조 원가만 따진다면 둘은 가격 차이가 거의 없거나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휘발유가 더 저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세금 보정으로 인해, 주유소에서는 승용차 연료로만 쓰이는 휘발유가 범용성이 더 뛰어난 경유보다 더 비싸다.

요즘은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의 85% 정도로 책정돼 있다. 그러나 몇십 년 전에는 더 저렴해서 거의 6, 70%에 불과하기도 했다. 디젤도 승용차 연료로 많이 보급되었고, 또 환경 문제도 있고 해서 그나마 옛날에 비해 더 비싸진 것일 뿐이다. 그나저나 디젤 엔진이 왜 범용성이 더 뛰어난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얘기하도록 하겠다.

2. 휘발유 엔진과 디젤 엔진의 차이

휘발유와 디젤(앞으로 '엔진'이라는 단어의 표기를 종종 생략할 것임)은 서로 다른 연료를 사용하며 연료를 연소하는 방식이 다르다. 전자는 점화 플러그를 사용하지만 후자는 압축 착화 방식을 사용한다. 휘발유 엔진은 시동을 최초로 걸 때뿐만 아니라 시동을 유지하는 데에도 전기 에너지의 도움을 소량이나마 지속적으로 받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휘발유 차량은 점화 플러그도 차량의 성능에 큰 영향을 주는 부품이다. 얘는 폐차할 때까지 반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한 부품이 아니며 성능이 조금씩 열화되는 소모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엔진오일보다는 긴 주기이지만 그럭저럭 교체해 줘야 한다. 허나 이건 차덕 급이 아니면 인지하기 쉽지 않은 사실이다.

뭐, 디젤도 전기 '불꽃'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일 뿐, 시동 걸 때 전기로 스타터 모터를 돌리지 않는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얘는 오히려 스파크보다도 더 힘든 메커니즘을 사용한다. 요즘 차량들은 기술의 발달로 인해 많이 나아졌다지만, 디젤은 저런 특성상 휘발유 차량보다는 시동이 잘 안 걸릴 확률이 더 높다. 특히 날씨가 추울 때 말이다. 어렸을 때 차에 시동이 잘 안 걸려서 운전자와 탑승자가 고생하던 모습은 아무래도 승용차보다는 트럭에서 훨씬 더 많이 구경했던 것 같다.

휘발유와 디젤 엔진이 성능이 서로 큰 차이가 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같은 배기량일 때 디젤 엔진의 토크가 훨씬 더 강하며(1.x~2배 가까이) 더 저회전 상태에서도 그 최대 토크가 금세 발휘된다.
디젤은 안 그래도 더 에너지 밀도가 높은 연료를 사용하는 데다 열효율이 더 좋은 관계로, 힘만 좋은 게 아니라 연비도 더 좋다. 그런데 연료의 단가마저도 비록 정치적인 이유가 더 크긴 하지만 디젤이 더 싸다. 그러니 이런 경제성만 생각하면 세상의 모든 자동차가 디젤 엔진으로만 만들어져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디젤 역시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비록 공밀레 기술 개발로 인해 정말 많이 극복되었다고는 하지만, 휘발유에 비해 고질적인 단점으로는 소음과 진동, 그리고 공해(오염) 문제가 있다.
디젤 엔진은 동급 배기량의 휘발유 엔진보다 더 강한 힘을 내부적으로 견뎌야 한다는 특성상, 더 비싼 부품을 써서 더 크고 무겁고 튼튼하게 만들어야 하며, 엔진오일도 더 비싼 디젤용을 써야 한다. 초기의 차값부터 시작해 기름값 외의 유지비까지 전반적으로 좀 더 깨진다는 점을 감수해야 한다.

또한 성능면에서도, 디젤이 저속 토크가 강하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나 속도까지 곱해진 전반적인 출력은 정작 동 배기량의 휘발유 엔진보다 오랫동안 뒤쳐져 있었다. 회전수를 휘발유 엔진만치 높게 올리는 게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는 터보차저(공기 과급기) 같은 다른 메커니즘의 도움을 받아서 극복되고 있으며 요즘은 디젤도 실린더의 스트로크를 낮춰서 과거의 디젤답지 않은 고rpm을 추구하는 게 추세이긴 하다.

디젤의 성능을 평가절하하는 또 다른 요인은 반응성이다. 디젤 엔진은 토크가 좋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능과 별개로 반응성이 떨어지고 '둔하다'. 단순히 엔진이 좀 무거워서 둔한 차원이 아니다. 그래서 정작 제로백이 휘발유 차량보다 불리하다. 경주용 자동차나 스포츠카가 디젤로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것도 기술의 발달로 인해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극복되었겠지만, 디젤 엔진의 좋은 힘은 근본적으로 간지나는 스포츠카의 급발진보다는 트럭에다 짐 잔뜩 싣고 오르막 오르는 용도에 더 유리한 게 사실이다.
반응성 말고도 엔진 브레이크 효과 역시 토크가 상대적으로 약하고 상시 rpm이 높은 휘발유 엔진이 더 강하며, 하이브리드와의 접목도 덩치가 더 작고 연비도 더 낮은 휘발유가 더 유리하다. 겨울에 히터를 켰을 때 더 빨리 더운 바람이 나오는 쪽도 휘발유 엔진이다.

단, 터보차저와의 접목은 디젤이 약간 더 유리하다. 휘발유 승용차에서 터보는 아직까지 액세서리 고급 옵션에 가까운 반면, 요즘 디젤 차에서 터보는 성능 보완을 위한 사실상 필수품 취급을 받고 있다.

3. 환경 문제

오늘날 디젤 엔진이 극복해야 할 가장 큰 태클은 환경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디젤은 근본적으로 휘발유보다 더 '더티'한 연료를 사용하며 매연을 내뿜는다. 정지 상태에서 가속할 때, 다시 말해 저회전 상태에서 엔진이 부하가 많이 걸릴 때 뿌뿌뿡~ 매연이 특별히 더 심하다.
지금처럼 천연가스 버스가 도입되기 전, 옛날에 길거리의 시내버스들의 뒤쪽 엔진 부분을 보면 온통 시커맸다. 이게 평범한 흙먼지가 아니라 다 불완전 연소의 산물인 탄소 알갱이였다. -_-;; 트럭의 경우도 과적은 도로 파손이나 차량 안전뿐만 아니라 매연 발생의 관점에서도 매우 좋지 않다.

그에 반해, 휘발유는 저런 매연이 없으며 촉매 변환만 잘 돌려 주면 배기가스 문제는 거의 없다.
휘발유는 잘 알다시피 노킹 방지 첨가제에 들어간 납 성분이 문제 되었지만 이것도 무연 휘발유로 극복되었다. 그런데 경유는 어째 납 대신 유황 성분이 문제를 일으켰다. 황의 연소로 인해 이산화황(아황산가스)이라는 해로운 공해 물질을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화석 연료가 연소해서 사람 몸에 좋은 게 나오는 일은 없는 법이다.

그러니 오늘날까지도 디젤 차량은 세계 각국에서 굉장히 강한 환경 규제가 걸려 있으며 이는 선진국으로 갈수록 더욱 엄격하다. 선진국은 시민들이 눈이 높고 환경 생각할 만치 돈과 기술도 있으며, 수십 년 전에 이미 대규모 스모그나 공해병 같은 병크와 시행착오도 먼저 경험했으니 환경에 대한 경각심이 있다.

국내의 경우 디젤 차는 구입할 때부터 차값에 환경 개선 부담금이 포함되며, 정기적으로 무슨 검사를 받고 매연 저감 장치를 장착하고 어쩌구 절차를 거쳐야 한다. 디젤 엔진 자체를 매연이 안 나오게 만들 수는 없는지, 그 대신 후처리 보정 장치가 추가되어야 하고 이것은 엔진의 덩치와 차량의 단가를 올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엔진룸의 부피가 승용차 급으로 비슷하다면 디젤 엔진은 공간 부족으로 인해 동급 덩치의 휘발유 엔진만치 큰 배기량이 들어가지는 못한다.

또한 시민의 안전을 위해 지하철역에 몽땅 스크린도어를 설치한 것처럼 디젤 기반인 수많은 시내버스들을 죄다 천연가스 기반으로 개조· 교체하는 게 세계적인 추세이다. 실제로 이것만으로도 공기 질을 이 정도나마 개선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그와 반대로 선진국에서 다 쓰고 퇴역시킨 차량을 저가에 수입해서 굴리는 개발도상국의 도시들이 공기 사정이 열악하다. 당장 떠오르는 게, 시커먼 구닥다리 경유 버스와 2행정 오토바이들로 가득하던 베트남이구나.

4. 실린더 크기의 한계

오늘날 휘발유 엔진은 그냥 소형 발전기· 예초기· 동력톱이나 오토바이· 승용차 엔진으로 머무르고 있다. 그 반면, 디젤 엔진은 버스· 트럭, 철도 기관차· 선박 등 본격적으로 거대한 기계들을 돌리는 만능 엔진으로 등극해 있다.
왜 이런 특성과 차이가 존재하는 걸까? (한편으로 천연가스는 구조적으로 디젤보다는 휘발유 엔진과 더 비슷하지만 택시와 버스에 모두 쓰인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로는 휘발유 엔진이 대형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 실린더가 가질 수 있는 부피는 거의 500~600cc가 실용적인 가성비가 유지되는 한계라고 한다.
그러나 디젤 엔진은 그런 제약이 없어서 무슨 선박 엔진 같은 집채만 한 초거대 단일 실린더도 만들 수 있다. 단순히 연비나 토크가 좋아서가 아니라 이것 때문에 디젤 엔진이 선택의 여지 없이 쓰인다.

정말 그런가 확인해 보자. 대형 버스에 준하거나 그 이상의 고배기량인 엔진을 휘발유 기반으로 얹은 슈퍼카들을 보면..
6700cc 12기통 (롤스로이스 팬텀..;; )
8000cc 16기통 (부가티 베이론)
배기량을 기통수로 나누면 진짜로 500~600cc대를 벗어나지 않는다. 실린더 수가 무지막지하다.
그러나 디젤로 가면 현대 자동차 F 엔진은 3900cc 배기량이 4기통이요,
버스 엔진을 보면 6000cc부터 심지어 11리터급이 그냥 6기통만으로 커버된다. 이런 게 휘발유 엔진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뜻이다.

물론 내연기관은 흡입, 압축, 폭발, 배기 각 행정별로 발생하는 힘이 일정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상태가 서로 제각기 다른 실린더들이 어느 정도는 여럿 있어야 엔진의 진동이 줄어들고 승차감이 좋아진다. '툭툭툭툭'거리는 엔진음이 '두두두두/들들들들'로 바뀐다.
하지만 무려 12기통, 16기통 이건.. 어쩔 수 없어서 저렇게 만든 것이지, 만들고 싶어서 저렇게 만든 건 아니리라 여겨진다. 승차감이 문제라면 휘발유보다 진동이 더 심한 디젤이 겨우 6기통인 건 어떻게 설명할 건가?

기통수가 너무 많아지면 휘발유 엔진도 어차피 디젤처럼 복잡하고 무거워지며, 제어하기 힘들어진다. 하지만 휘발유 엔진의 정숙성과 신속한 반응성을 살리기 위해 무리해서 트럭· 버스였으면 디젤을 쓸 것을 휘발유 엔진을 고집한 것이지 싶다. 물론 디젤에 비해 연비는 길바닥에다 그냥 동전을 뿌리는 수준으로 감수하고 말이다.

뭐, 오토바이 중에 배기량이 거의 1700~2000cc에 달하는 대형 모델 중에는 겨우 2기통 엔진인 것도 있다. 그건 자동차에는 적용하기 곤란한 방식으로 보어· 스트로크 비율을 보정해서 실린더당 800cc가 넘는 체적을 구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로 손꼽히는 Benz Patent-Motorwagen 삼륜차도 원시적인 950cc짜리 휘발유 단기통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성능은 1마력이 채 될까말까인 비효율의 극치 수준임. 자동차계의 에니악;;)
그리고 에쿠스/EQ900의 기함급인 VL500도 8기통이니 실린더가 휘발유 엔진치고는 약간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비록 디젤이 소음· 진동과 공해 문제가 있고 더 무겁고 복잡하지만 그래도 엔진으로서의 기술 수준은 단순 휘발유 엔진보다 더 높으며 범용성도 더 뛰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범용성 때문에 경유가 더 저렴하기까지 한 것이다.
휘발유 엔진은 딱히 고안자의 이름을 따서 '오토 엔진'이라고 불리지는 않는 편인데, 디젤만 고안자의 이름이 매번 언급되는 건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경유· 중유까지 diesel fuel이라고 불리지 않는가.

사실 휘발유에다가도 압축 착화로 점화해서 디젤 엔진의 장점을 적용해서 연구가 있긴 하다. 일명 HCCI 또는 GDCI 엔진. 그러면 휘발유로도 디젤 엔진 같은 고연비의 달성이 가능해지며, 결정적으로 단일 엔진에서 휘발유와 경유를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점화 플러그 없는 휘발유 엔진은 아직까지는 어댑터 없는 노트북, 탄피 없는 총알, 혹은 돼지고기 육회만큼이나 쉽지 않은 영역인 것 같다.

지금 내가 모는 차뿐만 아니라 디젤 차, 후륜구동, 하이브리드, 전기차 등 다양한 차들을 몰면서 차이를 분석해 보고 싶다. 특히 전륜과 후륜의 차이라는 언더스티어/오버스티어의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사실, 자동차 학원에서 운전 연습을 할 때 1종 보통의 특성상 디젤+후륜에다 수동 변속기이기까지 하여 승용차하고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1톤 트럭을 실컷 몰아 본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경험은 기억에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 연료 분사와 흡기 메커니즘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차근차근 더 공부해 보고 싶다. 아직은 공개적인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이론을 숙지하지 못한 상태이다.

글을 맺으면서 드는 생각인데, 자동차가 내연기관이 주류가 된 것처럼 총기도 일단은 탄피가 빠지는 화약 격발 방식이 주류가 돼 있다. 공기총은 자동차에다 비유하면 전기 자동차 정도 되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7/04/25 08:36 2017/04/2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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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이야기

나는 전기 에너지라는 게 실체가 무엇이고 본질적으로 어떻게 존재 가능하고 인간이 무슨 면모를 어떻게 측정하고 제어 가능한지 전혀 이해를 못 하고 있다.
더구나, 원자력· 방사능처럼 무슨 원자 단위 미시세계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제외하면 일상생활에서 중력이 아닌 다른 모든 힘들은 근원이 따지고 보면 전자기력이라니 이것도 이 나이 되도록 그 의미가 실감이 안 간다. 인간의 근육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화약이나 내연기관처럼 열과 폭발에 의해 발생하는 힘도 근원이 이거라는 말이지 않은가? 인간이 그런 열기관으로 지구의 중력을 뚫고 달까지 갔다 왔는데, 그 힘의 근원이 중력일 리는 없을 것이다. 중력과는 별개이고 중력보다 훨씬 더 큰 힘의 원천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따지자면 난 질량이라는 것도 본질적으로 무엇인지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그게 하필 무엇이기에 무슨 원동력이 있어서 그렇게 남을 끌어당기는 힘을 내는지 말이다.

(사실, 이 자연계에 존재하는 힘의 원천들 중 중력은 가장 약하고 작은 힘에 속한다. 그냥 작은 게 아니라 소숫점 개수가 확 달라질 정도로 매우 작다. 물리 시간에 배우는 만유인력 상수가 괜히 10의 마이너스 몇 승 규모인 게 아니다. 엄청 작기 때문에 반대급부로 얘는 주로 천체의 운동 같은 방대한 세계에서 주로 의미를 지닌다.)

전기에 대해서 아주 기본적인 개념에 속하는 전압과 전류 정도는 흔히 아래로 흐르는 물에다 비유해서 설명하곤 한다. 전압은 수압 또는 물이 처음에 떨어지는 높이에 해당하며, 전류는 물의 흐름 정도에 해당한다고.
허나, 눈에 보이지 않고 질량도 없고 광속으로 흘러 없어지는 그 기운(?)이 어떻게 물이라는 액체에다 비유가 가능한지 그 이유부터 모르겠으며, 그 전기라는 물 자체는 어디에서 나며 어떻게 수집 가능한지 모르겠다. 게다가 직류와 달리 교류는 그 전압이 파동처럼 시시각각 변하면서 심지어 마이너스까지 된다. 이런 건 물 비유로도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

아무튼 전기는 참 알 수 없는 존재이다. 건전지와는 달리 교류 전기 콘센트는 + - 구분이란 게 존재하지 않고 아무 쪽으로나 꽂아도 되는 게 어릴 때부터 좀 신기하긴 했다.
직류와 교류 전기는 민물고기· 바닷물고기 관계와 아주 비슷해 보인다. 둘 중에서는 면적이 더 넓고(장거리) 염분을 걸러내야 하는(변압) 바닷물이 아무래도 교류에 어울리는 것 같다. 연어는 직-교류 겸용 전동차이며, 차량 기지가 직류 서울 지하철 구간에 있는 서울 메트로 소속 1호선 전동차에 대응하는 셈이다.

뭐, 또 다른 비유를 동원하여 전기를 엔진이 내는 출력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전압은 토크이고 전류는 엔진 rpm 그 자체, 전력은 이들이 곱해져서 단위 시간 동안 산출하는 일률에 얼추 대응하는 게 맞다.
우리나라는 잘 알다시피 가정용으로 공급되는 전기가 먼 옛날엔 100V이다가 이제는 220V로 완전히 바뀌었으며, 이 과정에서 플러그의 모양도 바뀌었다. 고압으로 송전할수록 송전 손실이 줄어드는 건 사실이지만, 가정용 전기를 승압한 이유가 이 때문은 아니다. 장거리 송전 자체를 무슨 100이나 220V 단위로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승압을 한 이유는 안전보다 효율을 약간 더 추구해서 전기 시설들의 전반적인 복잡도와 부하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이게 주된 이유이고, 보조적인 이유는 외국에서 밀수입된 100V 기준의 외국 가전 제품들을 함부로 쓰지 못하게 해서 국산 전자기기 제조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이게 아니었으면 승압 사업을 무려 1970년대에부터 작정하고 추진할 필요는 없었다. 흑백 TV도 마을에서 잘사는 집에나 한두 기 있었고 에어컨 같은 건 꿈도 못 꾸던 시절에 굳이 고전압 설비가 있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승압 자체는 미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들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대세가 됐으니 그 당시에 미래를 내다보고 잘 추진한 과업이었다.

이렇게 공급 전압을 올린 것은 자동차로 치면 엔진의 배기량을 올린 것, 컴퓨터 CPU와 소프트웨어로 치면 비트수를 올린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같은 구조의 엔진이면 배기량에 얼추 비례해서 엔진의 토크+출력도 올라가니까.
승압을 하면 전력 소비가 많은 기기를 써도 이미 전압도 높기 때문에 큰 무리나 과열 없이 돌릴 수 있다. 경차로 에어컨 틀고 오르막을 고속으로 오르면 차가 굉장한 무리를 받고 경차의 장점인 연비조차도 다 물 건너가듯, 저전압으로 무리해서 높은 전력을 뽑아내는 건 대략 좋지 않다.

교류 220V이긴 한데 우리나라는 국제적으로는 흔치 않은 60hz 주파수를 택해서(세계적으로는 50hz가 대중적임) 같은 220V들끼리도 호환이 잘 안 되게 했다고 한다. 철도로 치면 이웃 나라와는 일부러 궤간을 다르게 하는 것과 같은데, 오늘날처럼 어지간한 전자 기기들이 내부적으로 변압을 다 하고 어느 정도 가변 전압에 대비돼 있는 여건에서는 별 의미가 없는 제약이 된 걸로 보인다.

흔히 혼동하기 쉬운 개념이 하나 있다. 전기료가 부과되는 단위는 전력이 아니라 그게 축적된 '전력량'이다. 그래서 단위 역시 킬로와트가 아니라 킬로와트"시"이다. '전력=마력=와트=일률' 이렇게 단위의 차원이 동일하고 그걸 시간에 대해 적분한 '와트시=일=주울'이 차원이 동일하다. 자동차의 연료 소비량이 단순히 엔진 배기량, rpm이나 주행 거리에 정비례만 하지는 않고 여러 변수가 있다는 것을 같이 생각하면 납득 가능하다.

그에 반해 스마트폰용 보조 배터리는 용량을 그냥 전류/전하량의 단위인 암페어로 나타낸다.
차량용 블랙박스가 자동차 배터리의 고갈을 감지하고 자동으로 꺼지도록 설정하는 기준은 전압이다.
내가 잘은 모르지만 자동차의 배터리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의 배터리보다 훨씬 더 무겁고(납이 들어있다! 위험한 황산 용액은 덤.) 용량도 큰 반면, 자기 충전 상태를 엄밀하게 나타내는 메커니즘이 없는 것 같다.

최첨단 전자 기기들로 무장한 오늘날 2010년대의 자동차들도 시동이 꺼진 동안에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처럼 "지금 배터리가 몇 %가량 남았습니다. (방전 위험이 있으니 전기 장치들을 끄거나 시동을 걸어 주세요)" 계기판에 숫자로 표시해 주는 걸 내가 본 적이 없다. 연료 경고등처럼 이런 기본적인 기능이 없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자동차 배터리의 방전은 스마트폰· 노트북의 배터리 방전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인데도 말이다.
그러니 방전 징후를 감지하기 위해서는 전하량이 줄면서 전압도 같이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화학 전지의 특성만이 사용되는 것 같다.

다만, 자동차 배터리는 그 한여름 땡볕에도, 혹은 심지어 교통사고가 나고 화재가 발생했을 때에도 스스로 발화하거나 터지지는 않는다는 것도 흥미로운 점이다. 배터리의 폭발 때문에 인공위성이 궤도가 바뀌고 고장 나고 우주 쓰레기가 증가하기까지 한다. 또한 흑역사로 전락한 삼성 갤럭시 노트 7의 경우를 생각해 봐도 이건 중요한 변수가 아닐 수 없다. 하긴, 배터리뿐만 아니라 냉장고 냉매도 어떤 경우에도 폭발하지 않는다는 게 대단한 장점이다. (프레온 가스 vs 암모니아. 후자를 사용하는 거대 냉동 창고에서는 지금도 가끔씩 폭발 및 질식 사고가 발생한다)

이렇듯, 자동차 배터리는 사람이 들고 다니는 전자 기기들의 배터리와는 특성이 여러 모로 다르긴 하다.
자동차 제조사(=대기업)에서 자차에 직접 장착한 순정 내비는 있다. 하지만 순정 블랙박스는 없다. 시동이 꺼진 자동차의 배터리를 지속적으로 소모하는 부품을 자동차 제조사에서 직접 넣는 것을 걔들이 책임소재 차원에서 기피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블랙박스는 중소기업 보호 업종으로 지정돼 있다고도 어디서 들은 것 같다.

그럼 다시 전기 얘기로 돌아오면..
전압은 왕창 높지만 전류가 극단적으로 낮은 대표적인 전기는 정전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잠깐 짜릿하게만 만들고 이내 없어져 버린다. 정전기는 적당한 습기를 만들어서 예방 가능하지만, 한편으로 물은 전기를 잘 흐르게 해서 감전의 위험을 높이기도 하니 이 역시 대단한 아이러니이다. 마치 촛불은 불어서 끄지만 큰 불은 후후 불면 오히려 잘 타는 것, 물건이 매달린 실을 살살 당겼을 때와 확 강하게 당겼을 때 실이나 물건이 떨어지는 결과가 달라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

우리가 평상시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콘센트에다 전자 기기를 꽂고, 전기로 달리는 열차를 잘 타고 다닌다. 허나, 어린아기가 콘센트 구멍에다가 쇠젓가락을 집어넣는다거나.. 성인도 전차선에 신체나 낚싯대 같은 게 닿아서 감전 당하는 사고가 아주 가끔은 발생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편리하게 사용하는 전기가 실은 얼마나 위력적이고 위험한지를 알 수 있다.

인체는 전기가 통하긴 하는데 곱게 흘려 보내 주는 게 아니라 내부에 저항도 제법 있는 구조이다. 그래서 일정 한도 이상의 고압 전기가 일정량 이상 쫘르륵 흐르면 일종의 전기 신호로 반응하던 모세혈관 신경 등이 다 터지고 망가지며, 저항으로 인한 열 때문에 내장이 중화상을 입으면서 꽤 처참하게 죽는다. 전기를 이용해서 고문 방법과 사형 방법이 모두 괜히 개발된 게 아니다.

전기 없는 인간 생활이라는 건 상상할 수 없다 보니 전기와 관련된 일자리도 마를 날이 없다.
비유를 들기 위해 컴퓨터 쪽을 보면.. 학원만 간단히 나와서는 SI 갑을 관계 계약을 한 뒤 완전 글자판떼기 노가다 코딩으로 연명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세계 수백· 수천만 이상의 사람들이 매일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유지보수하고 운영체제를 만들고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드는.. 가히 IT업계의 최전방에서 덕업일치까지 실현하며 사는 괴수도 있다.

그런 것처럼 전기 전자 쪽도 단순 시설 유지보수부터 시작해서 석박사급의 최첨단 회로 설계와 기술 개발까지 온갖 등급의 엔지니어들이 존재한다. 일례로, 서울 강남 구룡 역 근처의 수도 전기공고는 과거에는 졸업 후에 곧장 한전 취업이 보장돼 있어서 최강의 입결을 자랑하는 실업계 고등학교였다.
이런 전기 기술자 양성 시설 중에는 의외로 지도에 가려진 보안 시설도 있다. 철도 수색 역 바로 근처에는 숲으로 가려진 전력 기술 교육원이 있고, 한전 인재 개발원도 그냥 산 속에 가려져 있다. 요런 유사 시설이 안양 어딘가에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개인적으로는 마치 열기관의 이론적인 열 효율을 계산하듯이 어떤 전기 에너지로 낼 수 있는 전동기의 이론적인 최대 출력, 전등의 최대 밝기, 충전과 발전의 차이와 물리적인 효율 한계, 물을 전기 분해하는 데 드는 에너지 이런 것들에 대한 감을 깨우치고 싶다. 그런 감이 있으면 자동차에서 전자 기기를 켜는 게 엔진에 얼마나 부하를 주고 연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도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옛날에 자전거 바퀴에 연결되어서 헤드라이트를 켜던 발전기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긴 했는데 지금은 그런 물건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전자공학 괴수들은 그런 거 감을 다 정확하게 잡고 있으려나?

또한, 전에도 한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직류 장거리 송전과 변압은 무선 송전만큼이나, 핵 융합이나 수소 연료 전지만큼이나 여전히 떡밥인 것 같다.
보통 발전기를 generator라고 하는데, 특별히 도체를 자기장 안에서 운동시켜서 교류 전기를 만들어 내는 발전기를 alternator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거의 모든 발전기들이 다 이 원리로 전기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태양과 무관한 에너지원을 사용하는 별종 원자력 발전소라 하더라도 핵 융합 발전이 아닌 한 결국은 증기 터빈 기반이다.

교류 발전기가 전자석과 대응한다면 화학 전지는 영구 자석과 비슷한 개념에 대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 에너지 공급 없이 어째서 자체적으로 쇠만 끌어당기는 영구 자석이 존재 가능한지를 깊게 설명하려면 양자역학 수준의 이론이 필요하다.
또한 전자기 유도 방식이 아니라 빛으로 전기를 만들어 내는 광전지는 원리는 모르겠지만 직류 전기를 생성한다고 한다. 정렬 알고리즘 중에 비교 연산으로 정렬을 하지 않는 변칙적인 알고리즘을 보는 것 같다.

전(자)기 쪽은 너무 심오해서 썰을 풀 거, 공부해야 할 걸 찾자면 한도 끝도 없다.
맨 처음에 전자기학의 근간은 물리학이 닦았겠지만 그 뒤로 물리학은 양자역학 등 너무 미시적이고 초월적인 세계로 트렌드가 이동하고, 전자기학으로부터 실생활에 유용한 기술을 개발하는 학문 영역은 전기· 전자공학으로 넘어갔다. 화학· 생물학으로부터 화학공학과 생명공학이 파생되어서 별개의 과가 되었지만 물리학으로부터는 물리공학이 아니라 기계· 전자공학이라고 최소한 두 과가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물리학에서 파생된 공학들이 이공계에서 취업이 제일 잘 되는 과이다.. ^^;;

Posted by 사무엘

2017/04/16 08:32 2017/04/16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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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텔레비전 수상기

자동차, 컴퓨터, 전화기만큼이나 텔레비전이 기술적으로 무섭게 발전한 것도 보면 굉장히 경이롭다.

  • 디지털: 노이즈라는 게 없어졌다는 게 솔직히 아직도 잘 안 믿긴다. 옛날 아날로그 특유의 무신호 치지직 화면(white noise)도 없어지고 화면조정용 색깔막대 영상도 볼 일이 없어졌다. 같은 전파를 주고받는 방법을 도대체 어떻게 바꿔서 이런 게 실현된 걸까? 디지털에서는 오류가 너무 심해서 화면이 아예 안 나오면 안 나왔지, 치직거리면서 나오지는 않는다.
  • 고화질: 두 말하면 잔소리. 화질이 정말 엄청나게 좋아졌다. 단, 디지털과 고화질이 동치 개념은 아니기 때문에 과거엔 아날로그 기반으로 HD 규격이 나온 게 있기도 하다.
  • 왕창 크고 평평하고 납작한 수상기: 과거의 브라운관 TV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브라운관은 화면 크기에 정비례해서 두께까지 왕창 두꺼워지기 때문에(공간 복잡도 O(n^3)!) 일정 수준 이상으로 대형화가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리고 어차피 영상 신호의 화질도 요즘 같은 대화면을 받쳐줄 만치 좋지 않았다.

TV를 흔히 '바보 상자'라고 부르는데.. 요즘 텔레비전은 차라리 패널(panel)에 가깝지 이제 상자 모양이 아니다. 옛날에(2006년) 한국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서 텔레비전에 중독된 현대인을 풍자하는 black box라는 이름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서 오타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입상한 바 있다. 텔레비전 안에 온갖 희한한 세계가 펼쳐져 있다. 허나, 요즘 텔레비전의 모양으로는 그런 소재를 설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바보 상자'라는 개념은 영어권에도 있어서 fool's tube라고 하는데.. 튜브 역시 브라운관의 잔재가 담긴 별명인 건 동일하다. 그래도 '유튜브'가 이 별명을 잘 활용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또한 요즘 텔레비전은 무슨 형광등 켜지듯이 켠 직후에 서서히 밝아지면서 화면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밝기와 색감 등 잡다한 요소들을 조절하는 다이얼 같은 것도 다 사라졌으며, 정 조절이 필요하면 모니터 자체에 내장된 프로그램 UI를 통해서 소프트웨어적으로 조절한다. 그래서 모니터에 다이얼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상하좌우 화살표와 Enter, ESC에 해당하는 key가 있으며, 화살표 key가 트랙패드 같은 걸로 대체된 물건도 있다.

한때 TV는 평범한 월급쟁이 가정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고가 사치품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부잣집이나 공공장소에 옹기종기 모여서 TV를 시청해야 했다. 그리고 잠금 장치가 달린 TV 전용 케이스도 있을 정도였다.
지금이야 뭐 개인용 스마트폰으로 TV 방송을 시청하는 시대가 된 지 오래이다. 그러니 텔레비전 케이스도 '컴퓨터 책상'만큼이나 아련한 옛날 추억이 돼 간다. 하지만 지금 당연한 것이 생각보다 가까운 과거에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2. 대한뉴스

요 근래부터 옛날 대한뉴스 영상들이 유튜브에 올라오고 있어서 재미있게 본다. 경부 고속도로 개통이나 국민 교육 헌장 선포 같은 유명한 사건도 있지만 본인의 주 관심 분야는 철도 개통 쪽이다. 화면 중앙에 태극 마크 워터마크가 엷게 첨가됐지만 전반적인 화질은 괜찮다.

대한뉴스는 무려 1953년부터 1994년 말까지 국립 영화 제작소에서 만들었던 '나라 안팎 사정 기록 영상'이다. 만드는 곳의 특성상 뭔가 국방일보스럽고 정책 및 프로파간다 홍보(긍정적인 것만) 성격이 강하긴 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잘 보존된 역사 기록이며 영상 실록 역할을 한다.
그 시절엔 이게 전국의 모든 극장에서 영화 상영 전에 의무적으로 흘러나왔다고 한다. 레퍼토리는 두 주 간격으로 교체되었다고. 국산 영화를 일정 비율 이상 강제로 상영해야 하는 스크린 쿼터라든가.. 과거에 음반에 의무적으로 건전가요를 한 곡 넣어야 했던 것과 비슷한 관행이다.

하지만 대한뉴스가 그저 정권의 나팔수 이상으로 오늘날 귀중한 영상 자료인 이유는 이것 말고 딱히 대안이 없는 시기도 있기 때문이다.
1950~60년대에도 텔레비전 방송 자체는 물론 있었다. 하지만 여러분 중에 박통 말고 이 승만 대통령이 텔레비전에 나온 걸 기억하거나 다른 매체를 통해 본 분 계시는가? 없을 거다. 그 시절에 방송되었다 하더라도 지금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그때는 TV를 갖고 있는 집이 극소수였다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시청자 말고 방송국의 입장에서도 물자 사정이 열악했기 때문에 영상 기록을 지금처럼 몽땅 저장(아카이빙)할 여건이 못 됐다. 하물며 그 당시 최첨단을 달리던 방송 장비나 저장 매체는 얼마나 비쌌겠는가? 게다가 외제 수입 일색이기까지 했지 않겠는가?

녹화라는 건 꼭 필요한 것만 아주 신중하게 골라서 해야 했으며, 또한 한 테이프를 계속해서 덮어써서 녹화하면서 우려먹어야 했다. 그러니 그 시절의 방송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그 시절의 영상 기록은 외국인 선교사나 종군기자의 촬영분이 아니라면 그냥 닥치고 국가가 알아서 고이 보관해 놓은 대한뉴스로 가야 한다. "새로운 특급열차는 우리 이 대통령 각하께서 무궁화호라고 명명해 주셨는데.."(1960년 2월) 이렇게 전해지는 보도 자료는 출처가 무슨 KBS 같은 전파 타는 뉴스 방송이 아니라 대한뉴스라는 영화라는 것이다. 하긴, 저 때는 아직 "KBS"라는 이름의 방송사조차 존재하지 않았었다.

대한뉴스를 아무 거나 골라서 틀어 보면 건전가요나 행진곡 풍의 촌티 풀풀 나는 BGM에, 감정이라고는 싹 빠진 국어책 읽기 같은 건조한 남자 목소리가 참 인상적이다.
그리고 단순히 정책 홍보가 아니라 뭔가 초등학생 선생님이 애들 가르치는 듯한 설명충 스타일이다. "그럼 태백선 열차를 타고 우리나라 최고의 시멘트 생산지인 어디어디로 가 보시겠습니다." 같은 식. 무지한 백성들을 선진조국 창조 건설의 역군으로 계몽하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_=;;

정말 격세지감 그 자체이다만, 196, 70년대에 농촌 깡촌 오지에서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알 길이 없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저런 거라도 필요했다. 옛날에는 깜깜한 방에서 무성 영화를 틀어 놓고 "우리나라 바깥에는 이런 곳도 있고 이런 일도 벌어지고 있답니다"라고 변사가 따로 설명해 주면 사람들이 입 헤 벌리고 구경했으며, 소파 방 정환은 영사기도 아니고 영사기 내지 프로젝터의 전신인 환등기만 갖고도 온갖 덕질을 했지 않던가. 게다가 국내에서 영화는 텔레비전보다 더 일찍부터 컬러로 바뀌기도 했다.

개나 소나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올리고 그게 순식간에 인터넷 상으로 퍼져나가고 1인 방송 미디어까지 등장한 오늘날의 잣대로 그 시절을 그저 꼬질꼬질하다고 판단하는 건 적절하지 못하다. 당시의 최첨단을 달리던 영화· 방송의 분위기가 저렇게 꼬질꼬질할 정도였으면 오프라인 사회 분위기는 훨씬 더 권위주의적이고 보수적이었다고 봐야 한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이거 기억 나시지 않는가?

허나, 집집마다 전화와 신문, 올컬러 TV가 싸게 보급되고 지식과 소식의 소통 속도가 빨라지면서 대한뉴스는 존재 의의와 가성비가 급격히 떨어졌다. TV 뉴스로 진작부터 접한 나라 안팎 소식을 한참 뒤에 극장에서 대한뉴스로 뒷북으로 접하는 지경이 됐다. 그러니 대한뉴스를 폐지하자는 여론이 진작부터 거론되었으며, 얘는 그래도 1994년 말까지 꿋꿋이 만들어지고 상영되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건 어찌 보면 PC 통신이 인터넷에 밀려 사라진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시기를 따지자면 방위병이 폐지된 때와 동일하며, 수인선 협궤 철도가 없어지기 딱 1년 전의 일이다.

옛날에는 텔레비전은 방송 시간이 지금보다 훨씬 짧았다(24시간 방송이 시작된 것 자체가 21세기부터..). 그리고 기술과 자재의 부족으로 인해 생방송이 많았고, 영화는 후시녹음이 많았다. 아니면 똑같이 후시녹음을 하더라도 후시녹음을 한 어설픈 티가 요즘 영상물보다 훨씬 더 났다. 배경은 너무 조용하고 배우 목소리는 울리고 입 모양 씽크가 안 맞는 등.

철도 분야의 대한뉴스를 몇 편 보니, 열차 달리는 장면에 같이 삽입된 열차 소리는 십중팔구 화면 속의 그 열차가 실제로 달리는 소리가 아니다. 화면엔 디젤 기관차 내지 지하철 전동차가 달리는데 소리는 증기 기관차 달리는 '쉭 씩'인 식이다. 이런 것도 당연히 화면 따로 소리 따로인 후시녹음이다.
베테랑 기관사가 역을 저속으로 통과하면서 통표를 확 낚아채거나 거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요즘은 볼 수 없는 장면이다.

그리고 끝으로.. 옛날에 영상물에다 자막은 어떻게 만들어 넣었을지가 궁금해진다. 텔레비전 화면에 넣는 방법과 영화 화면에 넣는 방법이 서로 달랐을 텐데.
옛날에는 그냥 닥치고 어설픈 흰색 손글씨밖에 없었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서체는 활자로 바뀌고 흰 글씨 주변에 검은 테두리가 추가되었다.

요즘은 자막도 흰 별도의 배경에다가 검은 글씨 형태로 넣는 추세이다. 그래서 배경이 없이 고딕· 둥근고딕· 엑스포체 같은 옛날 서체로 자막이 들어간 영상을 딱 보면 1990년대 영상인 게 느껴진다. 아래의 자막들을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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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7/03/16 08:35 2017/03/1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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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저항에 대한 생각

물이나 공기 같은 물질은 고정된 형체가 없기 때문에 물리학적으로 유체(fluid)라고 분류된다. 얘들은 비록 형체가 없을지언정 자신만의 밀도와 점성이 있기 때문에 그 안에 담겨 있는 다른 물질(기체 속의 액체/고체, 혹은 액체 속의 고체)을 상대로 이것저것 힘을 작용한다. 부력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저절로 작용하는 힘이지만 양력과 항력은 유체 속에서 고유한 운동을 하는 놈에게만 덤으로 생기는 힘에 속한다.

유체역학에서 항력이라고도 불리는 이 저항은 물체의 운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계산하는 일을 무척 어렵고 복잡하게 만든다.
가장 기초적으로는, 종이나 나뭇잎을 높은 데서 떨어뜨렸는데 자유 낙하하지 않고 팔랑거리며 천천히 떨어지는 게 공기의 저항 때문이다. 미개하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공기 저항과 중력 가속도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서 막연하게 가벼운 물체는 천천히 떨어지고 무거운 물체는 빨리 떨어지는 줄 알았던 듯하다.

하지만 공기를 쫙 뺀 진공 속에서는 깃털과 쇠구슬이 엄연히 동일한 속도로 떨어진다. 또한 달에 간 아폴로 월면차가 인증을 했듯이, 거기는 그 가벼운 흙먼지조차도 지구처럼 자욱한 연기 형태로 남지 않고 파도 물보라처럼 곧장 깔끔하게 낙하해 없어지는 걸 알 수 있다. 지구의 물보라보다 천천히 떨어지기 때문에(중력 가속도가 더 작음) 뭔가 실사 같지 않고 게임에서 나타나는 흙먼지 이펙트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걸 1970년대 초에 CG로 재연한 게 아니라면 이건 지구에서 자연스럽게 촬영하기란 불가능하다.

공기의 저항이란 게 없다면 낙하산도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이 공기 저항 덕분에 무려 수 km에 달하는 높은 고도의 구름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고도 사람이 다치거나 물건이 부서지지 않는다. 이거 생각해 보면 꽤 신기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빗방울이 일정 속도 이상으로는 더 가속이 되지 않는 덕분이다.

하물며 공기보다 밀도가 월등히 더 높은 물의 저항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공기 중에서 총알을 빠르게 발사시키는 총은 물 속 불과 수십 cm 깊이에 잠겨 있는 목표물에도 거의 무용지물이다. 운동 에너지 1/2 mv^2에서 차라리 v를 크게 희생하고 m이라도 더 높인 작살총을 쏘는 게 더 나을 정도이다.

물 속에서 다리로 바닥을 저벅저벅 디디면서 빠르게 걷기란 저항 때문에 불가능에 가깝다. 작정하고 수영을 하며 나아가는 사람을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 신발조차도 거추장스럽기 때문에 벗어야 할 정도이다.
수영은 단순히 물에 떠서 생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물에서 빠르게 나아갈 수 있게 한다는 의미도 있다. 비행기가 단순히 공중에 뜨는 것뿐만 아니라 빠르게 비행하는 것도 중요하듯이 말이다.

유체 속에서 운동하는 물체에 작용하는 항력은 물체의 속도가 올라갈수록 급격히 커진다. 설마 지수함수 급은 아니지만 일단 유체와 그 물체 사이의 상대속도의 '제곱'에 비례하며, 이것 말고도 유체의 밀도와 물체의 운동 방향 단면적, 그리고 유체의 모양이 결정하는 '공기저항(항력) 계수'에 비례한다. 더 자세한 것은 위키백과 설명과, 이 분야 전공자로 추정되는 어떤 분의 블로그 글을 링크하는 것으로 설명을 생략하겠다.

이 저항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동력은 아예 속도의 3제곱에 비례한다. 저 항력 방정식에다가 속도가 한번 더 곱해지기 때문이다. 이러니 공기 중에서 달리는 차량은 고속에서의 가속이 급격히 힘들어지며, 일정 속도 이상부터는 공기 저항에 적극 대비하는 설계가 대단히 중요해진다.

물론, 정지 상태에서 첫 출발하는 것도 정지 마찰력의 극복 때문에 힘이 대단히 많이 필요하며, 저단 기어가 이런 이유 때문에 존재한다. 하지만 경제 속도를 넘어선 고속은 안 그래도 엔진이 토크가 떨어지고 힘을 쥐어 짜다시피하는 상태인데 공기 저항 때문에 더욱 어려워진다.

심지어 자동차에 에어컨이 아무리 엔진 힘을 깎아 먹는다 해도, 어지간한 고속 주행 중엔 그냥 그 에어컨을 켜는 게 창문을 열어서 바람 저항을 받는 것보다 더 나을 정도이다. 승객도 시원하고 차에도 부담이 덜 가고.. 공기의 저항이란 게 에어컨의 오버헤드에 맞먹을 정도라는 뜻이다.

이러니 부가티 베이런이 500마력에서 1000마력으로 엔진 출력을 두 배로 올렸는데도 최고 속도는 시속 300대에서 겨우 400대로밖에 못 올렸다.
아예 공기와의 마찰열까지 고려해야 하는 건 왕복엔진 자동차 수준에서 걱정할 일은 아니겠지만 차체는 아니어도 타이어가 열받는 것 정도는 현실성이 있다. 이건 무슨 법칙에 근거해서 발생하는 현상이며 무슨 변수로 기술 가능한지 잘 모르겠다.

공기 저항의 극복을 위해서는 물체의 단면적을 그저 작게만 만드는 게 장땡이 아니다. 일명 '유선형'이라고 불리는 매끄러운 설계가 필요한데, 그 수학 이론적인 배경은 잘 모르겠다. 단지 베지어 곡선이라는 것도 비행기를 설계하는 어느 엔지니어가 이 분야만 파다가 만들어 낸 곡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공기 저항 공식에서 단면적 외의 다른 변수가 바로 '항력 계수'이며, 주요 도형에 대해 알려진 항력 계수는 다음과 같다. 유명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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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계수들은 도형의 모양을 기술하는 수식에 대해 온갖 적분 등 복잡한 연산을 동원해서 산출했는지, 아니면 그저 경험적으로 얻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아, measured라고 써 놓은 걸 보니 경험적으로 얻은 값인 듯.

위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 의외로 그저 동글동글하게만 만드는 것도 장땡이 아니다. 물론 걔도 아예 각이 진 놈들보다는 계수가 작지만 말이다.
정말로 동글동글하게 만들어야 하는 건 사방팔방으로부터 가해지는 극심한 수압을 견뎌야 하는 잠수정이다. 그리고 걔들은 고속 주행이 목표인 물건이 아니다.

하다못해 골프공조차도 매끈한 구가 아니며, 표면이 온통 옴푹 패여 있다. 이 역시 나름 유체역학적으로 공기 저항을 극복하고 잘 날아가라고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며, 골프공 제조사의 고유한 기술과 노하우가 담겨 있다. 이걸 영어로 dimple이라고 하는데, 사람 얼굴에 옴푹 패인(?) '보조개'라는 뜻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여 년 전 대우 에스페로가 광고에서 항력(공기 저항) 계수가 0.29라고, 그 당시 국산 양산차들 중 최저인 과학적인 외형이라며 이 수치를 최초로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자랑을 쳤었다. 마치 뇌세포의 성분 DHA가 들어간 '아인슈타인 우유'처럼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좋아 보이게 마케팅을 한 셈이다. 본인은 이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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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페로는 첫 출시되었을 때는 쏘나타 같은 2000cc급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후기 모델들은 아반떼 같은 준중형급으로 엔진을 다운사이징한 게 이례적이다. 물론 차체의 크기는 동일한 채로 말이다.)

한편, 이륜차는 단면적이 일반 자동차보다 작음에도 불구하고 공기 저항에는 의외로 그리 유리한 외형이 아니다.
오토바이는 워낙 가볍고 단위 중량 당 마력이 큰지라 초반 가속은 자동차를 아득히 관광 태운다. 하지만 의외로 시속 200 이상급의 고속은 헉헉대는데, 다름아닌 공기 저항에 걸리기 때문이다. 이륜차가 그런 고속 주행을 하면 안전 관점에서도 심각하게 안 좋기도 하고 말이다.

엔진 없이 사람의 발로 페달을 밟아 달리는 자전거도 돈지랄을 한 경량화에다 기어비 최적화, 초인적인 라이더 같은 최상의 변수를 동원하면 순간적으로나마 거의 시속 100을 능가하는 고속을 낼 수 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의 초고속 주행 기록은 앞에서 커다란 우산? 양산?을 후방으로 펼쳐 주고 주행하는 자동차를 바짝 붙어서 따라가면서 세운 거라고 한다. 다시 말해 공기 저항을 앞의 자동차가 대신 받아 주니 고속 주행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단체 관광버스들이 교통사고의 위험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앞뒤로 대열운행, 일명 떼빙을 여전히 일삼는 이유는 1차적으로는 다같이 무리해서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서일 것이다. 허나, 보조적인 이유로는 연비 때문이기도 하다고 한다. 커다란 선두가 공기 저항을 다 받으면서 출발하니까 뒷차들은 상대적으로 나아가기가 쉽다고..
그 정도로 연료 절감 효과가 존재하고 경험적으로 입증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원리는 철도 차량에도 적용 가능할 듯하다. 단순히 쇠 레일+쇠 바퀴로 인한 마찰 계수 감소 말고, 다수 차량의 밀집 운행으로 인한 효율 증대도 장점이 되겠다.

사실, 자동차의 옆에 툭 튀어나와 있는 백미러는(후면경) 유체역학적으로는 굉장히 안 좋으며, 방해가 되는 물건이다. 비행기의 날개처럼 양력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돌출된 것도 아니고..
허나 운전을 위해서는 절대로 없어서 안 되는 필요악이기 때문에 달려 있다. 이걸 자그마한 카메라로 100% 대체가 가능하다면 연비 개선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상...;;
열역학에서는 이상 기체라는 개념까지 설정해서 기체가 열과 압력을 받아서 액화나 기화하고 그 과정에서 열을 수송하는 과정을 수식으로 설명한다. 거기는 물리뿐만 아니라 반쯤은 화학에도 속하는 영역 같다. 물론 엔진이나 냉동 기관 같은 게 다 열역학 이론에서 비롯된 기계이므로 이건 굉장히 중요한 학문이요 기술이다. 에어컨이 발명된 덕분에 인간이 거주하고 도시를 건설할 수 있는 영역이 크게 넓어졌으며, 냉장· 냉동고가 발명된 덕분에 식품의 장거리 수송과 장기간 보존이 가능해졌다. 동력 엔진의 발명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고.

하지만 유체역학에서는 그렇게 기체의 상태 변화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 안에서 운동하는 강체의 에너지 효율을 다룬다. 서로 영역이 다른 셈이다. 하지만 자동차나 비행기가 만들어졌는데 걔네가 조금이라도 연료를 덜 소모하고 더 경제적으로 움직이게 하려면 차체를 유체역학적으로 잘 디자인 하는 게 필수이니 두 역학 분야는 동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바늘과 실 같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11/11 19:29 2016/11/11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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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를 구성하는 기체들

지구 대기권을 구성하는 '공기'라는 물질은 아무 색도 맛도 냄새도 없어서 '공기수송'처럼 존재감 없음을 비유하는 대상이 되곤 한다. 하지만 이 공기는 실제로는 생각보다 구성이 복잡하고 무게와 압력도 있는 물질이다. 공기 덕분에 양력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어서 그 무거운 비행기가 뜰 수 있으며, 반대로 자동차나 비행기는 공기에 의한 마찰과 저항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고속화가 힘들다.
즉, 공기는 물리적으로 엄연히 존재감이 있으며, 화학적으로 성분도 제법 다양하다. 오늘은 오랜만에 기초 과학 상식을 복습해 보고자 한다.

기체는 눈에 안 보이고 몹시 가볍기 때문에 양 내지 성분 비율을 논할 때 부피가 참 직관적이긴 하지만, 그건 온도와 기압을 동기화시켜야 제대로 된 비교가 가능하다는 맹점이 있다. 기체의 '질량(무게)'과 '부피'는 중학교 과학 시절부터 날 참 헷갈리게 했던 주제이며 지금까지도 별로 와 닿지가 않는다. (그냥 시험 점수를 위해서 달달 외우는 정도를 넘어 본질과 원리를 밑바닥부터 싹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

'몰'이라는 단위도 따지고 보면 질량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하지만 공기 중의 약 78%가 질소라고 할 때 그 비율은 일단 내가 알기로 1기압에서의 부피 비율이다. 실생활에서 기체의 양이라고 했을 때 현실적으로 더 큰 의미를 갖는 건 질량보다는 부피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1. 질소

공기에서 3/4 내지 4/5 가까이 차지하는 가장 많은 물질은 질소이다. 무슨 유독가스가 '공기보다 무겁다/가볍다'라고 할 때 그 레퍼런스와 가장 가까운 기체는 응당 질소이다. 질소는 원자 번호가 7번으로 얘보다도 가벼운 원소는 수소, 헬륨 등 극히 드물다. 공기보다 가벼운 가스보다는 무거운 가스가 더 많다.

무색 무미 무취 무독성에 안정적이고 물질의 변화를 촉진하지 않는 기체가 지구 공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점으로 보인다. 질소처럼 공기 중에 75~80%씩이나 들어있는데도 호흡 시 인체에 아무 탈을 내지 않는 기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물론 산소가 없이 질소'만' 그렇게 꽉 차 있으면 사람은 응당 질식(사)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고압 심해에서 있다가 갑자기 나올 때 혈관 내에서 기포를 형성해 혈관을 막는 '잠수병'의 주범 기체도 질소이다. 아무래도 대기에서 차지하는 성분이 많기 때문에 그렇다.

변질 걱정 없이 굉장히 장기간 보존해야 하는 공산품은 진공 포장을 하는데, 식료품의 경우 산화 방지를 위해 일명 '질소 밀봉 포장'을 해서 보존한다. 이게 과도하다 보니 "질소를 한 봉지 구입하시면 감자칩을 요만치 보너스로 드립니다"라는 개드립이 나오기도 했다.
비행기 랜딩기어 타이어에는 일반 공기가 아니라 100% 질소를 주입한다. 착륙 마찰열로 인한 발화· 연소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기 위해서다. 얘를 액화한 액체 질소는 초강력 냉각과 냉동 용도로 쓰인다. 산소보다도 끓는점이 더 낮다.

그런데 얘는 그저 안정적이고 다른 원소와 결합하지 않는 비활성 기체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자동차 실린더 같은 고온 고압에서는 환경 오염 물질인 질소 산화물로 합성되기도 한다. 그리고 질소 화합물은 아이러니하게도 폭발물의 제조에도 쓰인다.
더욱 신기한 것은 이런 질소가 의외로 단백질의 주요 구성 성분이고 비료의 원료라는 것이다. 산소만큼이나 질소도 알고 보면 생명 유지에 매우 중요한 원소인 셈이다. 물론 이건 대기 성분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원소로서의 특성일 뿐이기 때문에 공기 중의 질소를 쌩으로 바로 활용하는 건 가능하지 않았다. 그러다 '질소 고정' 같은 과학 기술의 발전을 통해 20세기에 와서야 가능해졌다.

2. 산소

질소가 단백질을 구성하여 생명체를 존재 가능하게 한다면, 산소는 그 생명체가 본격적으로 생명 활동을 할 수 있게 한다. 산소가 없이는 인간 포함 코로 호흡하는 생명체들은 단 몇 분간도 살 수 없다.
공기 중에 산소 농도가 높으면 사람 역시 조금만 숨을 쉬어도 더 크고 많은 신체 활동을 할 수 있다. 반대로 산소가 부족한 고산지대에서는 전문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인이라면 발을 땅에서 떼어서 걷는 것만으로도 100미터 전력질주를 한 듯이 숨이 차서 고생하게 된다.

모든 신체 활동에 산소가 쓰인다. 하지만 근육을 쓰는 비중이 더 높기 때문에 오래 했을 때 근육이 땡겨서 못 하는 건 무산소 운동이다. 반대로 팔다리 근육은 그다지 힘든 상태가 아닌데 오로지 숨이 차서 못 하는 건 유산소 운동이다.
가만히 있으면서 무거운 기구를 들거나 옮기기를 반복하는 힘 쓰는 운동은 대체로 무산소이다. 그 반면, 수영· 등산· 달리기처럼 순간적으로 강한 근력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꾸준한 신체의 이동을 수반하는 운동들은 대체로 유산소 운동이다. 둘은 비슷한 자질 같지만 서로 완전히 동등하지는 않다.

화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산소는 말 그대로 '산화'라고 불리는 물질의 화학 반응에 그야말로 터보 모드 가속을 넣는다.
익히 아는 바와 같이, 꺼져 가는 불씨를 순수 산소 속에다 집어넣으면 불길이 확 일어나서 탄다. 자동차 엔진의 터보차저는 본질적으로 하는 일이 공기를 더 집어넣는 건데,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산소를 더 집어넣는 거라고 볼 수 있다.

철 같은 금속도 불꽃을 일으키며 맹렬하게 타 버려서 어떻게 태우느냐에 따라 산화철로 바뀌거나 아예 녹는다. 금속을 녹일 정도인 초고온의 불꽃을 만들기 위해서는 연료를 특수한 걸로 많이 투입해야겠지만, 고농도의 산소를 공급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산소는 자신은 아무 변화 없이 화학 반응을 촉진만 하는 '촉매'가 아니다. 화학 반응을 일으킨 뒤 자신은 다른 원소와 결합하여 '산화물'이라는 다른 물질로 바뀌어 버린다. 제일 흔하고 만만한 산화물은 바로 이산화탄소 되겠다. 동물은 호흡으로, 그리고 각종 동력 엔진들은 폭발과 연소를 통해 온통 산소를 없애고 이산화탄소를 배설하기만 하는 반면, 녹색 식물은 광합성이라는 경이로운 메커니즘을 통해 물과 빛, 이산화탄소를 역으로 산소와 양분으로 바꾼다.

현대 과학으로도 이런 식물이 하는 일을 흉내 내고 대체하는 기계는 못 만들고 있다. 그나마 인간이 백열등과 형광들을 거쳐서 LED라는 사기적인 빛을 만드는 것까지 성공한 덕분에, 미래엔 날씨를 안 가리는 실내 농업이 가능할지 논하는 정도이다. 질소 공급이 해결됐고 빛 문제도 해결됐다고 치는데 다음으로 물 문제는 변덕스러운 자연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조달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산소는 여러 모로 유익한 기체이긴 하나, 그렇다고 산소가 공기 중에 지금의 질소가 있는 것만치 대부분을 차지해 버리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된다. 불이 너무 쉽게 붙고 화재 진압을 하기 너무 어려워진다. 그리고 사람 같은 생물체 역시 폐에 과부하가 걸리고 산소 중독이 발생하여 신체 이곳 저곳에 탈이 난다.
나중에 언급할 일산화탄소 중독에 걸려서 죽어 가는 사람이라면 헤모글로빈에 달라붙은 일산화탄소를 떼어내기 위해서 100% 고압 산소 주입 처방을 내리긴 한다. 허나 그건 예외적이고 특수한 응급 상황이기 때문에 그러는 거다.

산소에는 지금까지 언급한 것과 같은 유익한 산소만 있는 게 아니다. 노화를 촉진하고 인체의 수명을 깎아먹는 '활성산소'라는 것도 있다. 둘 다 같은 O2이지 않은지? 이게 화학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물도 경수만 있는 게 아니라 얼음이 가라앉는 '중수'라는 게 있을 수 있는데 활성산소도 뭔가 돌턴의 원자설 범위를 넘어서는 미세한 차이가 있는 산소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3. 이산화탄소

탄소는 그야말로 마법에 가까운 화합물을 만드는 능력이 있는 만능 원소이다. 다이아몬드, 흑연, 그을음 검댕이 다 동일 원소 기반의 물질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얘가 불꽃을 활활 내어 타면서 산소와 결합하고 난 기체 찌꺼기가 이산화탄소이다. 그나마 식물이 있으니 산소와 이산화탄소 사이를 오가면서 탄소가 재활용 순환이 가능하다.

단, 이것도 조건이 있다. 산소 공급을 잘 받으면서 '완전 연소'를 이뤘다면 불꽃이 파랗고 에너지도 더 많이 나면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좀 답답하게 '불완전 연소'를 했다면 불꽃은 노래지고 에너지가 덜 나며 연기· 그을음이 발생하면서 부산물도 일산화탄소가 나오게 된다.

이산화탄소는 질소나 산소 같은 기체와는 특성이 많이 다르다. 끓는점이 그런 기체들보다 훨씬 더 높아서 비교적 쉽게 액화나 응고 가능하다. 드라이아이스라고 다 들어 보셨을 것이다. 또한 얘는 물에도 더 잘 녹는 편이며, 이때 물을 탄산이라는 비교적 약한 산성으로 바꾼다. 탄산은 톡 쏘는 맛이 좋아서 청량음료를 만들 때 쓰인다.

이산화탄소는 공기에 대략 0.03%(백분율), 혹은 표현을 달리하면 300ppm(백만분율) 정도 존재하니 질소와 산소에 비하면 가히 극미량이다. 사람이 내뱉는 숨은 산소가 몽땅 이산화탄소로 바뀐 게 아니라 20% vs 0.03%이던 것이 16% vs 4% 정도로 바뀐 수준이라고 한다. 다만, 최근에는 화석 연료 소비의 증가 때문에 전지구적인 이산화탄소 농도가 0.04%로 증가했다고 전해진다.

이산화탄소는 연소의 부산물로 나온 물건인 만큼, 산소와는 정반대로 불을 꺼 버리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질소나 산소보다 인체에 훨씬 더 해롭다. 위키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공기 중에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찔끔찔끔 증가하여 0.x%정도가 되면 슬슬 나른함이 느껴진다고 한다. 그리고 공기 전체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사람의 날숨과 근접하게 되면(이산화탄소 2~3%) 점점 호흡이 거칠어지고 어지러움이 느껴질 지경이 된다.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정상적인 날숨의 농도인 4%대를 초과하게 되면 두통, 구토 등 본격적인 이상 증세가 나타난다. 호흡을 통해서 이산화탄소를 내보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폐가 상하고 운동 능력이 떨어진다. 수 시간 이상 이런 환경에 노출되면 영구적인 장애와 사망까지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도 이산화탄소 농도이면 촛불쯤은 바람 없이도 곧바로 꺼뜨릴 수 있다고 한다.

10%를 넘는 이산화탄소에 노출되면 사람은 불과 몇 분 만에 활동 불가능에 빠지고 의식을 잃는다. 물에 얼굴까지 잠긴 것과 마찬가지로 신속하게 질식한다. 하물며 이산화탄소가 지금의 산소 농도와 비슷한 수준으로 있다면.. 사람은 그런 곳에 들어가는 즉시 폐가 이산화탄소로 인해 작살이 나면서 기절하고 죽는다.

이런 이산화탄소는 유감스럽게도 온실효과를 일으키며 지구 온난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양도 얼마 안 되는 주제에 인간에게 끼치는 민폐가 꽤 크다. 그래서 세계는 지금도 탄산가스 배출을 줄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그런데 태양계에서 지구의 이웃인 금성은 대기의 무려 95% 가까이가 이산화탄소이며 양도 엄청 많아서 대기압이 지구의 90배에 달하는 완전 미친 행성이다. 이 정도 공기압은 바닷속 수심 900미터에서 받는 압력과 비슷해서 빈 깡통쯤은 곧장 찌그러지며 어지간한 잠수함들조차 내려가지 못하는(심해 전용 잠수정 필요) 살인적인 압력이다.
이러니 금성은 낮과 밤, 여름과 겨울, 적도와 극지대 구분이 없이 지표면 전체가 1년 내내 섭씨 450~500도에 달하는 고온 고압 불지옥을 자랑한다. 가스형 행성도 아니고 지구와 가장 가까운 행성이 어쩌다 저 지경이 됐는지가 참 안쓰러울 뿐이다.

4. 일산화탄소

일산화탄소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분자에서 탄소 원자가 이산화탄소보다 하나 더 적다. 원래는 이산화탄소가 생겨야 할 상황에서 뭔가 2% 부족한 여건 때문에 생기는 물건에 가까우며, 똑같은 무색 무미 무취..이지만 그런 것치고는 원조인 이산화탄소와 비교했을 때 특성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마치 같은 산소 원자 기반임에도 불구하고 기체 분자로서 산소와 오존은 서로 확 다르듯이 말이다.

이산화탄소가 섭씨 -100도 이상의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도 액화· 응고하는 것과 달리, 일산화탄소는 다시 질소· 산소처럼 -200도에 가까운 엄청나게 낮은 온도에서 액화· 응고한다. 또한 일산화탄소는 이산화탄소처럼 더 반응할 게 없어서 불을 꺼뜨리지 않으며, 산소와는 불꽃까지 내면서 활활 타며 반응해서 원래 의도했던 목적지인 이산화탄소로 변한다.

사실, 진공이라고 해도 정말 아무 물질도 없는 0의 진공은 만들기가 거의 불가능하듯, 현실에서는 대체로 완전연소가 이뤄지는 상황에서도 일산화탄소는 극미량 찔끔찔끔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차가 엄청 많이 다니는 도심은 농촌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뿐만 아니라 일산화탄소의 농도도 상대적으로 더 높다. 불완전연소가 일어나서 사람 건강이나 기계의 동작 효율에 좋을 건 하나도 없다.

산소는 질소만큼 있으면 위험하고 이산화탄소는 지금의 산소만큼만 있어도 사람을 즉사시킬 정도인데.. 일산화탄소는 그 적은 이산화탄소만큼만 있어도 극도로 위험하다. 이산화탄소는 농도를 논할 때 퍼센트와 ppm이 번갈아가며 쓰이지만 일산화탄소는 스케일이 워낙 작기 때문에 십중팔구 ppm으로 농도를 기술한다.

일산화탄소가 위험한 이유는 잘 알다시피, 사람의 뻘건 혈액 속에 존재하는 철 이온 기반 헤모글로빈이 산소보다 일산화탄소와 반응을 거의 200배가 넘게 더 잘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 걸까..? 그러니 일산화탄소가 정말 극미량만 있어도 헤모글로빈이 병신이 돼 버리고 뇌 방면 산소 공급에 애로사항이 꽃핀다. 곧바로 두통, 어지럼증, 체력 저하가 발생하며 심하면 사망. 단적으로 말해 연탄가스 중독의 주범이 요놈이다. 옛날에는 이걸로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아니면 뇌가 손상되어 평생 장애인이 되거나.

일산화탄소의 부피 대비 농도가 겨우 10ppm만 돼도 당장 죽지는 않지만 거기서 수십 분간 있어 보면 사람의 컨디션이 살짝 달라진다. 호흡 계통에 문제가 있는 환자는 겨우 이것만으로도 몸 상태가 더 나빠질 수 있다.
농도가 지금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비슷한 급의 세 자리수 ppm에 진입하면 혈액이 본격적으로 제 기능을 못 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금방 숨이 차고 신체 활동이 힘들어진다.

1000ppm이 넘어가는 농도에서 몇 시간째 노출되면 사람은 드디어 금세 의식이 몽롱해지며 얼마 못 가 매우 높은 확률로 픽 쓰러져 죽는다. 이산화탄소가 이 정도 농도이면 아직 그냥 아주 살짝 나른함이 느껴질 정도에 불과하며, 건강과 생명엔 여전히 아무 지장이 없다. 얘는 치사량이 이산화탄소의 수백 분의 1 이하에 불과해서 훨씬 더 위험함을 알 수 있다.

전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로봇은 동력 계통의 유연함이 인간의 근육에 미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기계는 생명체와 달리 방사선 피폭에 강하고, 또 호흡을 하지 않기 때문에 유독성 기체 속에서도 잘 버티는 게 장점이다.
사실, 생명체도 헤모글로빈이 아닌 헤모시아닌(구리 이온) 기반인 무척추동물들은 일산화탄소 중독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헤모시아닌은 산소 운반 효율도 헤모글로빈의 1/4에 불과하다는 게 단점이다. 개미나 바퀴벌레를 터뜨려 죽였는데 무슨 피 빨아먹은 모기도 아닌 것이 죄다 시뻘건 혈흔을 만들어 낸다면 그것도 참 골칫거리이지 싶다.. -_-

5. 특별판: 수소

원래는 지구의 대기에서 질소와 산소 다음으로 많이 있는 기체는 '아르곤'이라는 진짜 비활성 기체이다(부피 비율은 대략 1%가량). 얘도 화학적으로 다른 용도가 있긴 하지만 워낙 화합물을 안 만들고 존재감도 없다 보니 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겠다. 그 대신, 질소, 탄소, 산소 얘기가 다 나온 마당에 왠지 누락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수소 얘기를 하고서 글을 맺겠다.

수소는 원자 번호 1번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으며, 지구뿐만 아니라 우주를 통틀어서 가장 가볍고 가장 흔하고 많은 원소이다. 그리고 산소와 반응도 아주 격렬하게 한다. 불꽃이 튀면 퍽 하고 타 버리는 게 무슨 천연가스 같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천연가스 같은 연료로 사용하기에는 수소는 너무 가볍고 한편으로 위험하다. 지구 대기에 수소를 거의 찾을 수 없는 이유는 그 가벼운 수소를 대기로 가둬 두기에는 지구의 중력이 충분치 못하기 때문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지만, 수소를 채운 풍선이나 비행선이 하늘로 둥둥 뜨는 걸 생각하면 좀 이해가 될 것이다. 너무 가볍고 자유로운(?) 기체답게 액화와 응고는 절대영도보다 겨우 10~20도 높은 극한에 근접해야만 가능하다. 압축과 보관도 평범한 기술로는 할 수 없다.

탄소가 붙은 탄화수소(알코올, 천연가스 등) 계열이 아니라 순수하게 수소만을 연료로 활용할 수 있다면 효율도 좋고 고갈 걱정도 없고 탄산가스가 아닌 수증기만 나오는 매우 깨끗한 엔진을 만들 수 있을 텐데.. 그건 다름아닌 저런 기술적인 난관으로 인해 21세기인 오늘날까지도 아직 제대로 실용화가 안 된 채 떡밥에 머무르고 있다. 또한 원소로서의 수소가 아니라 수소 기체는 지구상에 흔치 않으며, 물을 전기 분해해서 수소를 얻는 비용도 그리 만만찮다는 걸 알아야 한다.

수소는 앞서 소개한 기체들과는 달리, 대기 중 농도가 얼마인 곳에 인체가 노출되면 무슨 반응이 오고, 독성이 있고 하는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수소가 그만치 대기 중에 섞여 있었다가는 자기가 진작에 스스로 폭발해서 다른 화합물로 변해 버리고 없기 때문에 인체의 반응 자시고 할 게 없다. 폭발이 위험한 거지 딱히 폐에 생화학적인 민폐를 끼칠 여지는 없다.

이런 수소는 자기 바로 다음으로 가벼운 비활성 기체 원소인 헬륨과는 특성이 완전히 상극이다. 헬륨은 수소 같은 반응성이 없으며, 양도 수소보다 훨씬 적고 값이 더 비싸다.
수소가 들어간 화합물 중에 물이야 워낙 특이하고 유명한 놈이다. 그것 말고 그다지 깨끗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화합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메탄(탄소+수소): 자연에서는 쓰레기가 썩을 때, 더 구체적으로는 식물이 부패· 분해될 때(초식동물의 소화 과정도 포함) 생성된다. 그러니 쓰레기 매립지에는 이렇게 생성된 메탄을 수집해서 연료로 활용하는 설비도 있다. 하지만 메탄 자체는 천연가스의 주성분이며, 무색 무취로 별로 더럽지 않은 물질이다. 메탄과 메탄'올'의 차이는 CH4와 CH3OH의(수산화기 OH) 차이에서 유래된다.
  • 황화수소(황+수소): 달걀 썩는 악취의 주범으로, 황을 포함한 단백질이 부패할 때 난다.
  • 암모니아(질소+수소): 대변이 아니라 소변 테크로부터 유래되며, 화장실의 지린내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6/10/17 08:39 2016/10/17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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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력: 공기보다 가벼운 가스를 잔뜩 실어서 뜬다. 배가 물에 뜨는 것과 개념적으로 동일한 원리임. 비행선이나 기구는 둥실둥실 우아하게 뜨고 내릴 수 있으며 공중 정지가 가능하고 연료도 적게 들어서 좋다. 그러나 얘는 중량 대비 동체의 부피가 너무 커지며 비행 속도도 대단히 느려서 실용성이 떨어진다. 엔진이 꺼졌다고 바로 추락하지는 않지만, 피탄 면적이 너무 크기 때문에(가스가 새면?) 그게 안전 관점에서 안 좋다.

(2) 양력(고정익. 동체가 움직여서 생성): 고성능 엔진으로 공기+배기가스 혼합 가스를 내뿜어서 추력을 만들긴 하지만, 추력으로는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고 그 뒤 날개로 양력을 발생시켜서 뜬다.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끊임없이 빠르게 움직여야만 양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조종이 까다로우며, 이착륙 시엔 매우 길고(가속) 넓은(날개 폭..) 활주로가 필요하다. 그래도 장거리 비행에 충분한 비행 속도와 경제성(항속거리)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식이 바로 이 방식이다.

(3) 양력(회전익. 날개 자체가 공기를 휘저어서 생성): 엔진으로 로터를 회전시키고 그걸로 직통으로 양력을 발생시켜서 뜬다. 고정익기보다 더 불안정하고 조종과 자세 제어가 까다로운 데다, 느리고 연비도 안 좋다. 하지만 활주로 없이 달랑 뜰 수 있고 공중 정지가 가능하기 때문에 여전히 고정익기와는 별개의 활용 영역이 존재한다.

(4) 추력: 날개 없이 연료를 태운 배기가스를 내뿜는 반작용 추력만으로 뜬다. 날개도 없이 초기에 굉장한 고도와 속도를 얻을 수 있으나, 연료 소모가 너무 극심하여 연료와 중량 대비 항속 거리가 매우 짧다. 이건 비행기보다는 로켓이나 미사일, 우주선의 동력원으로 더 적합하다. 지구 중력을 탈출하려면 닥치고 위로 솟구쳐 올라가야 하며, 달이나 우주 같은 곳은 애초에 대기가 없어서 부력이고 양력이고가 전혀 발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기가 없다는 말은 연료를 태울 산소도 없음을 의미하므로, 연료 자체를 산화제와 함께 섞어서 만들어야 한다.

(2)의 원리로 날도록 만들어진 비행기/비행체라도 중량 대비 엔진 출력이 캐사기급으로 좋다면 제한적으로 (3)이나 (4) 같은 기동을 할 수 있다.
그래서 F-22 같은 최신 전투기는 무슨 로켓처럼 수직 상승이 가능하다. 그리고 사람이 안 타서 가벼운 무선조종 항공기 같은 것도 실속에 빠졌을 때 엔진 출력을 최대로 올리고 차라리 프로펠러가 있는 쪽이 위로 향하도록 하면.. 프로펠러가 마치 헬리콥터 로터처럼 돼서 비행기를 호버링 상태로 최소한 추락 사고는 안 내고 보전이 가능하다. 반쯤은 틸트로터 비행기처럼 운항 가능한가 보다.

물론 덩치 큰 여객기에게는 저런 건 어림도 없는 소리다. 동체를 수직으로 세웠다가는 곧바로 추락한다..;;

이런 기계들 말고 새와 곤충 같은 생명체가 공중에 뜨는 건 일단 (1)과 (4) 부력과 추력은 제끼고 시작한다. (1)은 크기 압박, (4)는 분출과 힘 압박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구현 가능하지 않다. 결국 남는 건 양력인데, 생물의 비행은 고정익과 항공익 어느 하나로 딱 떨어지지는 않아 보인다.

날개를 직접 퍼덕여서 상하 압력차와 양력을 만드니, 대놓고 고정익은 아니다. 게다가 어디서든 간편하게 떴다가 내릴 수 있으니 고정익의 한계를 갖고 있지 않다. 새가 무슨 활주로가 필요하다거나, 주변 공기를 다 빨아들여서 온갖 요동을 치고 후폭풍을 일으키며 날지는 않는다!
하지만 긴 날개를 쫙 펴서 글라이더처럼 활강하는 새도 있기 때문에 고정익 비행 원리도 사용하지 않는 건 아니다. 고정익 항공기를 발명한 선구자들이 새들의 날갯짓을 눈에 불을 켜고 관찰한 건 다 이유가 있다.

새들은 하늘을 날기 편하라고 여느 육상 동물들보다 시력이 아주 좋으며, 덩치 대비 폐활량도 훨씬 더 우수하다고 한다. 뼈도 가볍고 공기구멍이 많다던데, 그럼 골다공증이 인간에게는 병이지만 새들에게는 자연스러운 현상인가 보다.

지상에서 무려 9~10km 위인 어지간한 여객기 순항 고도에서 나는 철새들도 있다. 이들은 그 먼 길을 어떻게 찾아가는지 정말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매 같은 새가 공중을 날다가 거의 8~90도로 급강하해서 지표면의 작은 동물이나 물고기를 채어 가는 건 어지간한 전투기의 기동 뺨치는 스킬이다. 이런 기술은 절대로 그냥 저절로 생길 수가 없으니 '지적 설계'의 근거로 인용되기도 한다.

큰 새가 아니라 벌새나 참새 같은 극단적으로 작은 새들은 활강 따위 없이 닥치고 죽어라고 날갯짓을 해야만 공중에 뜰 수 있다. 이는 헬리콥터의 특성에 더욱 가깝다. 날개를 퍼덕이는 횟수가 초당 수십 회에 달하기 때문에(분당 2~3천 회) 소리가 '퍼덕퍼덕'이 아니라 말 그대로 엔진 소리처럼 '부웅', 영어로는 droning이 된다.

이 때문에 요런 동물들은 체력 소모가 장난이 아니며, 덩치 대비 식사량도 엄청나게 많다. 내연기관으로 치면 회전수가 왕창 높은 오토바이용 2행정 숏 스트로크 엔진 같다. 디젤 엔진과는 스타일이 완전 반대다.
새들은 그렇게 힘들게 공중에 떠 있다 보면 곧 지치기 때문에 착륙해서 쉬어야 한다. 옛날에 중국에서 "저 새는 해로운 새다" 운동이 벌어졌을 때, 사람들은 무슨 무기를 쓴 게 아니라, 모조리 쭈욱 도열해서 참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쉬질 못하게 해서 비행 중에 지쳐 떨어지게 하는 방법으로 참새를 잡았다.

새 다음으로 곤충으로 가면.. 전세계에서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이고 있는 동물은 같은 사람이 아니며, 사자· 호랑이 같은 맹수도 아니고 뱀도 아니고.. 모기라고 한다. 곱게 피만 빨아먹고 꺼지는 게 아니라 나쁜 병원균을 같이 옮겨서... (그래도 모기 다음의 굳건한 2위는 사람이 맞댄다. ㄲㄲ)
모기는 비행체로서는 힘이 아주 부족하며 항속거리도 짧다. 지상에서 스스로 10층 이상의 고층 빌딩을 오르지는 못하며, 엘리베이터나 계단 복도 등을 타고 올라온다고 한다.

하지만 모기는 기동성은 최고이다. 공중정지부터 시작해 그야말로 상하좌우전후 6방향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그나마 민첩하지 않아서 파리보다야 훨씬 쉽게 잡을 수 있는 게 다행이다. 게다가 피를 빨아먹은 뒤엔 무거워서 민첩성· 반응성이 더욱 떨어지기 때문에 인간에게 잡힐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원하는 시뻘건 액체를 얻었으면 빨리 여기를 빠져나가고 사라지는 게 사람과 모기에게 모두 좋을 텐데, 그런 것까지 생각할 정도로 모기가 똑똑하지는 못하다. 게다가 모기의 '웨엥' 날갯짓 소리는 흡혈 이상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극도의 불쾌감과 모기에 대한 살생 충동을 부추기는 요소이다.

* 여담: 복엽기

라이트 형제가 최초로 발명한 비행기를 포함해 1910~1920년대까지의 비행기의 형태는 복엽기가 대세였다. 복엽기란, 날개가 위아래로 두 겹이 달린 비행기를 말한다. 그게 옛날 비행기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건 한눈에 봐도 공기 저항을 최소화한 '에어로다이나미컬'한 디자인은 아니어 보이는데.. 초창기에 비행기의 모양이 저랬던 이유가 무엇일까?
날개를 두 겹으로 배열하면 같은 속도에서 공기를 더 많이 부딪치고 양력도 더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2배까지는 아니어도 1.x배 정도는 말이다. 또한 이렇게 하면 한 날개에 걸리는 공기의 압력 오버헤드를 분담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었다.

옛날의 비행기는 100여 년 전의 열악한 엔진+날개 기술로 일단 어떻게든 공중에 뜨는 걸 목표로 했다. 속도는 일단 안정적으로 뜬 뒤에 그 다음에 생각할 문제였던 것이다. 애초에 고정익기는 이륙할 때(양력)와 착륙할 때(제동) 모두 뒷바람이 아닌 맞바람이 필요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금속으로 더 튼튼한 비행기 날개를 넣는 기술이 개발되고 엔진의 성능도 향상되면서 비행기의 트렌드는 단엽기로 바뀌었다.
헬리콥터로 치면 상하로 로터가 둘 달린 동축 반전 로터가 만들어졌다가, 나중에는 지금 같은 테일로터 방식이 주류가 된 것과 비슷한 변화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 여담: 라이트 형제에 대해서

세상을 바꿔 놓은 발명들이 일단 개발된 뒤에도 아무 탈 없이 곱게 정착하고 실용화된 건 아니었다.
자동차의 경우 영국에서는 잘 알다시피 멀쩡하게 잘 만들어 놓고도 적기 조례라는 규제 병크(기존 마차 운수업자들 보호..) 때문에 자동차 기술이 유럽의 다른 나라보다 뒤쳐지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세계 최초로 동력 비행에 성공한 라이트 형제는 이제 유명인사가 되고 돈방석에 앉은 게 아니라... 자국 정부 기관으로부터는 외면받고, 비행 기술을 시샘하는 동종업계 종사자들로부터는 웬 표절 도용 소송을 당해서 굉장히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됐다. 그 동안 정작 프랑스와 영국, 심지어 일본 같은 경쟁국에서는 라이트 형제를 VIP로 대접했으며, 한편으로는 비행기 제조 기술을 빼내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

한국도 아니고 선진국에 엔지니어· 덕후의 천국인 미국이 그것도 자국 국민으로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발명을 한 라이트 형제를 당대에 그렇게 홀대했다는 건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형인 윌버 라이트는 여기 저기 쓸데없는 소송에 말리면서 몸과 마음이 쇠약해졌으며, 1912년에 40대 중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동생인 오빌 라이트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비행기 기술이 지금의 컴퓨터 기술만큼이나 가히 폭발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본 뒤, 1948년에 죽었다. 1903년에 플라이어 1호를 띄우고도 40년이 넘게 더 살아 있었던 것이다.

오빌과 윌버가 한 비행기를 같이 타고 조종한 건 1910년 5월 25일의 가족 비행이 마지막이었다. 지금까지는 여든이 넘은 친부가 "둘이서 한 비행기를 타다가 추락 사고라도 나서 다 죽어 버리면 비행기 연구의 맥이 끊어지지 않느냐? 그러니 연구 중에 비행기엔 반드시 한 명씩만 타고 다른 한 명은 땅에 있어라"라고 당부했기 때문이라고 함..;;

그리고 끝으로, 라이트 형제는 목사의 아들인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런데 평생을 비행기에 미쳐 사느라 두 사람 모두 독신으로 살다가 갔다..;; 후세는 못 남겼지만 전세계인들이 영원히 기억하는 이름을 남겼다.
비행기를 발명해서 유명해지고 신문 기자로부터 혹시 결혼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을 받자 이들은 이렇게 대답한 것이 잘 알려져 있다.

  • 오빌: 형부터 결혼하면 그 다음에 나도 할 거예요.
  • 윌버: 비행기와 부인에게 둘 다 쓸 시간은 없습니다. (!!)

그래서 둘 다 독신이 됐대나 어쨌대나..;;

Posted by 사무엘

2016/08/04 08:38 2016/08/04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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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의 역사 -- 下

(上으로부터 이어짐)

4. 총기의 최종 발전 형태는 탄피+후장식

과거의 활, 그리고 총 중에서도 일명 BB탄을 쏘는 장난감 에어소프트 건이라든지 공기총 같은 물건은 아무래도 총알을 밀어내는 힘의 근원이 총기로부터 나온다. 그러니 화살이나 총알 같은 건 발사체 전체가 날아가 버리고 없다. 또한 발사 과정에서 딱히 열이나 폭발 같은 게 없으며 소리도 조용한 편이다.

그러나 화약의 힘으로 총알을 발사하는 화기는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발사체를 날리는 힘은 총이 아니라 화약에 있으며, 총은 (1) 그 화약을 격발하는 트리거를 제공하고 (2) 총알이 최대한 곧게 날아가게 방향을 잡는 역할만 할 뿐이다. 아, 자동소총이나 기관총이라면 (3) 지속적으로 급탄하는 기능도 추가로 중요하겠지만.

탄환+화약+뇌홍이 탄피에 감싸져서 총알 하나에 딱 일체화가 됨으로써 장전이 더욱 간편하고 내부 구조가 더욱 정교한 총을 만들 수가 있게 되었다. 이는 (1) 후장식 장전과 (2) 총열에 아까 설명했던 강선을 가능케 했다.
후장식이란, 총구 안쪽으로 총알과 화약을 역으로 집어넣지 않음을 의미한다. 총알의 자료구조가 스택에서 큐로 바뀐 셈이다.

이것은 가히 엄청난 장점인데, 장전을 위해서 총의 방향을 매번 뒤집었다가 다시 조준을 안 해도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사수의 입장에서는 자세를 바꾸지 않고도 누운 채로, 앉은 채로 지속적인 장전과 사격이 가능하고, 총열을 더 길게 만들 수도 있다.
두두두두 콩 볶듯이 발사되는 기관총을 만들기 위해서는, 총알이 들어가는 방향과 발사되는 방향이 당연히 따로여야 한다. 그러니 전장식으로는 어림도 없고 후장식이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하지만 후장식은 만들기가 더 어렵다. 총구 외에 급탄을 위한 구멍이 추가로 존재해야 하는데, 이게 격발 때에는 정말 완벽하게 막히고 밀폐돼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안 그러면 총 쏘다가 새어 나온 화약 역풍을 사수가 맞아서 죽거나 다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쓰고 난 탄피는 즉각 잘 사출돼야 한다. 화약은 폭발해서 연기처럼 사라졌으며, 탄환은 날아가고 없으니 남는 것은 껍데기인 탄피뿐이다.

탄피는 고온 고압의 화약 폭발을 견뎌야 하는 관계로 아무 금속으로나 아무렇게 쉽게 만들 수 있지는 않다. 가성비를 감안했을 때 보통 황동으로 만들며, 요즘 총알들이 다 누런 황금빛인 건 이 때문이다. 다만 실제로 날아가는 탄환은 적당한 무게를 통한 파괴력을 얻기 위해 납으로 만든다. 탄피는 격발 과정에서 딱히 심각하게 변형이나 손상되지는 않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수거 후 재활용이 가능하다.

탄피는 총알 내부의 복잡한 부품들을 일체화해 주고, 또 엉뚱한 타이밍에 오발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내용물을 잘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니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구성요소이긴 하지만..
그래도 총 쏘는 병사의 입장에서는 탄피는 격발 후에 남는 골치아픈 쓰레기일 뿐이다. 제대로 수거하지 않으면 평시 훈련 중에도 영 좋지 않거니와, 전쟁 중에도 흘린 탄피는 적군에게 자기 위치와 동선을 노출하는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각종 추리 소설에서도 사건 현장에 탄피가 발견된 것은 빼도 박도 못할 총기 격발 흔적이므로 탐정에게 중요한 단서로 작용한다.

그래서 화약 기반 총기에도 '무탄피총'을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연구가 과거에 진행되기도 했다. 격발 후에 총알의 모든 부위가 사라지고 없다면 총의 입장에서도 딱히 탄피 사출 기능을 만들 필요가 없으며, 총알이 더 가벼워지거나 반대로 같은 무게로 파괴력이 더 강해질 수 있으니 좋을 것이다.
그러나 무탄피 탄약은 총알 전체를 위험한 화약으로 감싸는 와중에 총기 과열 상태에서도 오발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너무 어렵다. 현재로서는 여전히 가성비가 크게 떨어지며, 가까운 미래에 실용화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5. 탄창, 기관총

후장식+탄피의 도입으로 말미암아 총기는 연사· 난사가 가능한 단계로 발전할 기술적인 기반이 갖춰졌다. 단, 이제 급탄을 어떻게 할지가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었다.
격발을 하고 나서 무슨 레버를 당기고 노리쇠(볼트)를 젖혀서 이전 탄의 탄피를 빼내고 다음 탄의 장전을 자동으로 하는 것이 바로 볼트액션 내지 레버액션, 펌프액션 방식이다. 대략 1차 세계 대전 때 쓰인 개인 화기는 이런 수준이며, FPS에서 샷건도 그러하다. 가령, Doom의 샷건은 펌프 액션이고, Doom 2에서 도입된 슈퍼샷건은 브레이크 액션이다. 전자는 펌프 손잡이 같은 걸 찰칵 당겨서 장전하고, 후자는 아예 총열을 구부려 꺾어서 장전하니까 말이다.

그 뒤, 별도의 배출과 장전 동작이 없이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나가고 탄피가 빠지며, 다음 탄이 자동으로 장전까지 되는 총이 나왔는데 이것이 '반자동 소총'이다. 이제는 사수는 총 쏠 일이 있으면 정말 방아쇠만 까딱까딱 당기면 되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도 자동화 수준이 상당하다.

완전 '자동 소총'은 까딱까딱조차도 필요 없이, 방아쇠를 당긴 채로 그대로 있으면 알아서 2발 이상의 총알이 두두두두 날아가는 총이다. 과거 그 불편하던 화승총을 쏘던 군인이 이런 총을 보면 아마 까무러치지 않을까 싶다.
이 자동 소총의 단계에 도달하기까지 가야 한 길이 참 멀고도 험난했다. 요즘 군인에게 지급되는 소총은 '반자동/자동' 모드를 바꿀 수 있다. 자동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탄약 절약이나 오발 방지를 위해서는 반자동도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발전을 거듭한 끝에 드디어 분당 수십~수백 발을 발사하는 기관총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총과 총알 모두 마치 자동차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정밀 기계/재료공학의 산물이 된 덕분이다. 그래서 임진왜란 때 조총을 쐈던 일본군은 그로부터 300여 년 뒤엔 기관총을 가져와서 동학 농민군을 처참하게 학살할 수 있었다. 이제 재래식 냉병기는 총을 든 군대를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로 이길 수 없어진 것이다. (물론 중기관총은 사람이 혼자 들고서 쏠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지만)

이제 연사 가능한 총에다가 지속적으로 총알을 공급하기 위해, 탄창이라는 물건이 추가로 발명되었다. 실전에서는 다 쓴 탄창을 빨리 떼어내고 새 탄창으로 교체하는 게 전투원의 생존 능력과도 직결된다. 탄창은 단순한 박스 모양인 것도 있고, 총알의 모양(앞쪽과 뒷쪽의 직경이 다름)대로 휘어진 모양인 것도 있다. 기관총은 영화에서 보니 딱히 탄창 없이 탄띠로만 연결된 총알들을 콩 볶듯이 쏴 제끼는 것 같다. 급탄 자체에도 동력이 필요할 텐데 다 스프링의 탄성만으로 충분한 건지 모르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SIG 550 돌격소총용 반투명 탄창. 출처는 위키백과)

일부 볼트액션형 옛날 총은 총기 내부에 총알이 대여섯 발 정도 한꺼번에 들어가는 '내부 탄창'이 있기도 하다. 이건 권총으로 치면 6개의 총알을 한 실린더 안에 한꺼번에 넣어서 돌려 가며 쓰는 리볼버와도 비슷한 형태인 것 같다. 내부 탄창과 외부 탄창은 증기 기관차로 치면 탄수차가 따로 있는 놈과 없는 놈의 차이와도 같은데, 그쪽도 별도의 탄수차가 있는 형태가 더 유명하듯이 총기도 탄창 하면 외부 탄창이 더 자연스러운 형태이다.

하긴, 총알의 장전이 어렵던 시절에는 미국 서부의 보안관은 미리 장전되어 있는 권총을 두세 개 차고 다니기도 했다. 반대로 '개틀링'이라고 불리는 중대형 기관총은 약실이 아니라 총열을 여러 개 묶어서 돌아가면서 사용했다. 연사로 인해 한 총열에 집중되는 과열 부담을 덜기 위해서다.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총알을 격발하다 보면 폭발로 인한 열을 감당할 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발열 제어는 장전과 격발 문제를 해결한 고성능 총기가 그 다음으로 추가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등극했다. 총기를 식히는 방법은 자동차 엔진을 식히듯이 수랭식 아니면 공랭식으로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여기까지가 개인용 총기 내지 소화기(小火器)의 발달사이다. 그러고 보니 군인용 돌격소총은 Doom 2에 나오는 피스톨, 샷건, 체인건 중에 어느 부류에도 정확하게 떨어지지 않는 것 같다. 피스톨보다는 위력이 훨씬 더 세고, 그렇다고 산탄이 발사되는 건 아니고, 자동 연사도 되긴 하지만 게임에서처럼 여러 총열이 돌아가는 것도 아니니...

6. 기타 여담

(1) 화약 안 쓰는 장난감 총만 다뤄 봤거나 총질이란 걸 FPS 게임에서만 해 본 사람이라면, 나중에 군대 같은 데서 탄피 튀어나오는 진짜 총을 처음으로 쐈을 때 무지막지한 소음은 물론이거니와 반동 때문에 놀라게 된다.
반동은 '작용과 반작용'이라는 물리 법칙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현상이긴 하나, 격발 직후에 사람과 총기를 움찔하게 만들기 때문에 조준 자세를 흐트리고 총알의 명중률을 크게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총알이 총 밖으로 완전히 나오기 전에 그 찰나의 짧은 시간 동안에 총열이 흔들려서 총알의 진행 방향이 어긋나게 되기 때문이다.

이 반동을 사수의 어깨의 힘으로 받아내라고 보다시피 총기에 개머리판은 화승총 시절부터 진작에 만들어져 있었다. 반동을 받더라도 총알 진행 방향의 정확히 뒤로만 가고, 총구가 흔들리지 않게 말이다. 설령 어깨에다 받치지 않는 자그마한 권총이라도 일단 한 손만으로 쏘는 건 굉장한 무리다. 정확한 사격과 사수의 안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FM이 권장하는 바른 자세로 총기를 양손 파지(손에 움켜쥠)해야 한다.

둠 코믹스를 보면 주인공 아저씨가 허구헌날 '존나 큰 총' 타령만 해 댄다. 그러나 너무 크고 화력이 강한 총은 현실에서는 격발 때 반동도 감당할 수 없어서 혼자서 다룰 수 없을 것이다.

(2) 옛날에 둠 게임(1, 2 모두)은 주인공은 샷건이고 로켓이고 그 어떤 화기를 발사해도 반동이 전혀 없는 반면, 몬스터가 죽을 때는 뒤로 밀려나는 게 꽤 찰지고 과장되게 구현되어 있었다. 이럴 때는 바닥이 아주 반들반들한 얼음판(마찰이..)이기라도 한 것 같다. 심지어 회전 모멘트까지 반영했는지, 나보다 위에 있는 몬스터를 하체를 피격해서 죽이면 몬스터가 뒤가 아닌 앞으로 살짝 밀려오며 죽기도 한다.

둠의 소스 코드를 보면 몬스터들에 무게(mass)라는 속성이 있다. 어차피 기술적으로 아직 반쪽짜리 3D 수준이던 둠에서 무게 정보를 막 진지하게 활용한 건 아니고, 뒤로 밀려나는 정도를 판단할 때나 사용했다. 그래서 아주 가벼운 소형 몬스터인 좀비맨을 BFG로 그것도 놈 쪽으로 돌진하면서 쏴 죽이면.. 그 좀비맨은 그야말로 광속으로 뒤로 밀리면서 핏덩어리로 변했다.

현실에서는, 몬스터에게 총알을 박아서 그렇게 뒤로 밀리게 할 정도면 나도 총을 쏠 때 그 정도로 뒤로 밀리는 반동을 받는 게 마땅하다. 발사체 자체가 엔진이 달려서 자력으로 날아가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내가 그런 반동이 없었다면 몬스터도 그 자리에서 고꾸라져 죽을 뿐이지, 한낱 총알이 그 무거운 몬스터를 그렇게까지 크게 밀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나저나 스타크래프트의 마린이 사용하는 가우스 소총은 설정상 개머리판이 없다. CMC전투복만큼이나 그렇게 현실적인 설정은 아닌 듯.

(3) 사람이 말소리를 내는 걸 실탄 사격에다가 비유하면, 성대를 울리지 않는 속삭임(whisper)은 공포탄 발사에다 비유할 수 있다.
성대를 떨어서 음성을 내지 않고 속삭이기만 해도 주변이 조용하다면 가까이에 있는 사람은 말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공포탄도 비록 탄환이 들어있지는 않지만, 화약 폭발로 인해 발생한 고온 고압의 배기가스만으로도 총구로부터 몇 m쯤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충분히 중상을 입힐 수 있다.

완벽한 살상이 아니라 경고· 위협이나 경상만을 목표로 하는 탄환으로 공포탄만 있는 건 아니다. 탄환으로 암염 덩어리가 들어있는 소금탄, 그리고 고무 덩어리가 들어있는 고무탄도 비살상 탄환의 범주에 든다. 물론 이것들도 납 재질의 실탄보다만 덜 위험할 뿐이지, 급소에 가까이서 잘못 맞으면 치명상이 될 수 있으니 절대적으로 조심해야 한다.
전자는 <킬 빌 2>, 후자는 <폰 부스>라는 영화에서 각각 주인공이 맞은 바 있다.

(4) 리볼버에 하필이면 약실이 원형으로 6개가 들어있는 이유는 수학적으로 볼 때 2차원에서의 kissing number와 관계가 있어 보인다.
육상 경기에서 준비 땅 신호탄을 발사하는 권총도 꼭 리볼버 모양이었던 것 같다.

(5)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천혜의 요새에다 세워진 성 하나를 함락시키는 건 어지간한 화력의 보조 없이는 방어자의 몇 배를 상회하는 병력을 동원하고도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오죽했으면 고대· 중세엔 성벽의 정확한 높이가 상당히 중요한 군사기밀이기도 했다. 사다리를 만들 때 매우 요긴히 활용되는 정보이니까. 다만, 사다리를 성벽을 타고 오르는 건 너무 위험하고 공격자의 피해가 막심하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하고 다른 방법(땅굴, 성문 파괴 등)을 도저히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일 때만 불가피하게 쓰였다.

하지만 요즘은? 성 하나쯤이야 미사일을 쏴도 되고, 결정적으로 공성전의 종결자는 공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래로 폭격만 하면 끝...이다. 물론 공군 등 저런 현대적인 무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에, 화포의 성능이 크게 발전한 것 하나만으로도 전통적인 공성전이라는 건 의미를 상실했다. 세상이 그만치 변했다.

(6) 1860년대의 남북 전쟁은 아직 후장식 탄피 기반 소총이 등장하기 전의 전쟁이었지만 그때부터 벌써 사격의 달인인 저격수가 운용되었던 모양이다. 총기 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전열보병 전술이 10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몸을 숨기는 저격수 사격으로 확 바뀐 것이다.
때는 1864년 5월 9일이었다. 북군의 제6군단장이었던 존 세지윅 장군은 몰래 숨어 있는 남군 저격수들을 무서워하여 부하들이 행군을 못 하고 벌벌 떨자 사기 진작을 위해 몸을 훤히 드러내고 팔을 흔들면서 이렇게 갈궜으나..

"야 이놈들아, 겨우 총알 한두 발 날아오는 것 때문에 겁 먹고 숨었냐? 그러면 전장에서 적군들이 진짜로 눈앞에서 총을 갈겨댈 때는 어쩔 참이냐? 뭐, 저격수라고? 그래 봤자 이 정도 장거리에서는 사람은커녕 집채만 한 코끼리가 있어도 못 맞.. (탕) .. 으윽!"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ㄲㄲㄲㄲㄲㄲ
그는 장거리 저격을 당해서 총알을 왼쪽 눈 아래에 맞고 그대로 즉사하고 말았다. 그의 용감한 솔선수범 행동은 안타깝게도 병사들의 사기 진작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남군 소속의 저 무명 저격수는 졸지에 적군의 쓰리스타를 사살하는 초대박 전과를 올렸는데, 얼마나 큰 포상을 받았을까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6/07/13 19:26 2016/07/1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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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의 역사 -- 上

1. 개인 화기로서 등장한 최초의 총은 화승총

전쟁이라는 건 그걸 겪는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고 비극이다. 하지만 옛날에 이미 일어났다가 끝나 버린 전쟁에 대해서 우리가 뭘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이제는 후손들도 깨달은 게 있는지, 최소한 인류를 멸망시킬 능력이 있는 주류 국가들이 대놓고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 식민지를 만들지는 않는다. 시대가 바뀌었고, 핵무기까지 등장할 정도로 무기의 화력이 역설적으로 너무 강해진 탓이다. 앞으로 미래가 또 어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3차 세계 대전은 2차가 끝난 지 70년이 넘은 2016년 현재까지는 여전히 떡밥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인간이 활, 칼, 창 같은 냉병기로 싸우던 시절부터 돌격소총, 전투기, 핵무기, ICBM이 존재하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성경은 전쟁과 싸움의 근원은 한결같이 '인간 내면의 정욕'(lust)이라고 말한다(약 4:1). 이거 하나 때문에 사람 죽이는 기술이 어떤 식으로 기상천외하게 발달해 왔는지를 과학 기술 역사와 연계해서 살펴보는 것은 밀덕이나 역덕에게 나름 의미가 있어 보인다. 냉병기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에서도 몇 년 전에 다룬 적이 있다.

흔히 혼동하기 쉬운데, 활은 새총과는 달리 줄의 탄성이 아니라 활대의 탄성을 이용해서 화살을 날린다.
이건 마치 케이블카와 스키장 리프트의 차이와도 비슷해 보인다. 전자는 차량 위에 달린 바퀴가 케이블 위를 굴러가는 형태이기 때문에 개념적으로 모노레일과 비슷하다. 하지만 후자는 차체는 가만히 고정돼 있고 케이블 자체가 움직임으로써 차체 내지 좌석을 이동시키니까 말이다.
총보다 화력이 약하고 다루기도 까다로운 활로 아들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맞힌 빌헬름 텔은 정말 대단한 인물이긴 하다. 실존하지 않은 가상의 캐릭터이더라도 말이다.

그러다가 총이 발명되면서 인간은 지구상의 그 어떤 맹수도 죽일 수 있는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올랐으며, 같은 인간끼리 싸우는 전쟁의 양상도 크게 바뀌었다.
기존 갑옷이나 방패 같은 방식의 방어구는 화살이나 냉병기가 아니라 훨씬 더 큰 운동량을 가진 총알을 막는 건 어림도 없었다. 아니면 인간이 거동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지금보다 더 두껍고 무거워져야 했다. 그러니 그런 건 퇴출되었고, 차라리 방탄조끼나 헬멧으로 형태가 바뀌었다.

다만, 총이 하루아침에 모든 냉병기를 싹 밀어낸 건 아니다. 총도 똑같이 길다란 총구가 있고 방아쇠가 달렸다고 해서 다 같은 총이 아니다.
총은 총알을 강한 화력으로 편하고 지속적으로, 또 단위 시간당 많이 발사하기 위해서 수백 년 동안 끊임없이 내부 구조가 바뀌고 발전해 왔다. 쉽게 말해 서울-부산 열차의 운행 시간이 단축되고 컴퓨터의 연산 속도가 빨라진 것만큼이나 총의 격발 성능도 향상되어 왔다. 시대에 따라 그 양상이 명백한 편이므로 총이 등장하는 옛날 역사물을 만든다면(만화, 영화, 게임 등) 정확한 고증을 반영해야 오늘날의 똑똑한 역덕· 밀덕 시청자나 사용자들에게 털리지 않는다.

옛날에는 화약을 제조하는 기술부터가 최고급 최첨단 기술이었다. 재료의 가격은 말할 것도 없고. 그리고 그걸로 차라리 대포도 아니고 더 작은 개인 화기를 만드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초창기의 총은 지금처럼 방아쇠만 당기면 바로 펑~ 발사되는 형태가 아니었다. 탄환과 화약을 잘 뭉쳐서 총구 안으로 쑤셔 넣고, 그 화약도 심지에다 따로 불을 붙여서 격발하는 등, 그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름하여 match lock, 화승총 또는 조총이다. 숙달된 사수라 해도 1분에 겨우 한 발을 쏠까 말까 수준에 불과했다. 방아쇠는 화승을 화약 접시와 연결하는 역할을 했지, 그런다고 바로 격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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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우리 선조부터가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임진왜란 때 이런 불편한 조총으로도 왜군에게 쳐발려서 나라가 멸망할 뻔했다. 하긴, 스페인의 신대륙 개척자(혹은 침략자)인 코르테스와 피사로도 임진왜란보다 불과 몇십 년 더 전에 그런 비슷한 수준의 총(거기에다 중화기인 대포까지 덤)으로 중남미의 비문명인들을 잘만 제압하고 멸망시켰었다.

그 시절에 총은 불(火)과 천둥, 짙은 연기를 내뿜으면서 '탕' 하니까 사람이 죽는 캐사기 무기가 아닐 수 없었다. 적군을 죽이는 게 아니라 겁을 주는 용도로도 이만한 물건이 없었으며, '겁 주는 용도'로는 오늘날까지 공포탄이 그 역할을 톡톡히 분담하고 있다.

2. 전열보병

옛날 화승총에 쓰인 흑색 화약은 한번 발사되고 나면 주변이 온통 연기로 자욱해져서 연기가 걷힐 때까지는 목표물을 제대로 볼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무기가 아닌 전술 차원에서의 얘기를 좀 덧붙이자면, 그 시절에 총과 총끼리 교전이 붙었을 때는 오늘날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단순무식한 전술인 '전열보병'이라는 게 가능했다. 양 진영이 아무 엄폐물도 없는 개활지에서 한 100미터 간격으로 횡대로 쭈욱 늘어서서는 "영국 신사들이여, 그대들이 먼저 쏘시오" /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사양하겠소. 귀측에서 선빵을 날리는 게 어떻겠소?" 이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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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트리어트>의 한 장면.)

무슨 전쟁놀이도 아니고, 철없는 고삐리들이 건물 옥상에서 현피 뜨는 것도 아니고.. 병사들 목숨을 갖고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싶은데.. 저건 단순히 낭만적인 기사도 차원에서 나온 관행이 아니다. 그 시절엔 그 전술의 천재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조차 전열보병의 불가피함과 효율을 인정하고 있었다.

먼저 쏜 쪽에서 일제히 격발을 하고 나면, 비록 맞은 쪽의 1열은 상당수 사망과 부상을 면치 못하지만, 먼저 쏜 쪽은 연기가 걷히고 긴 재장전 작업이 끝날 때까지 완전히 무력화 상태가 됐다. 그럼 맞은 쪽은 그 사이에 상대방을 향해 더 가까이 더 접근해서 반격을 하면 됐다. 실제로, 역사적으로는 먼저 쏜 쪽이 전투에서 지고, 반대로 1빵을 맞은 진영이 이긴 사례도 있다.
이런 식으로 총격을 교환하면서 전진하다가 병사가 너무 많이 죽고 전열이 먼저 흐트러지는 쪽이 졌다. 그 잔여 병력들은 항복하지 않는 한 그냥 적군 기병이나 냉병기 육탄전 병사들이 알아서 정리하면 됐다.

물론, 죽을 게 뻔한 상황에서 전열보병의 제1열로 서는 건 보통 멘탈로 가능한 게 아니었다. 과거 사다리를 타고 성을 오르는 공성전에서, 맨 먼저 사다리를 타는 1타는 그야말로 총알받이요, 그냥 죽으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였듯이 말이다. (당장 우리 임진왜란 공성전에서도 볼 수 있듯, 돌팔매질, 뜨거운 물 등등..) 그런데 이런 선구자 아방가르드가 없으면 전투가 제대로 진행될 수가 없었다.

그러니 그런 1열 1타는 당근과 채찍을 동원해서 강제로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다. 1타를 뛰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오는 병사는 종전 후에 나라에서 엄청난 벼슬과 보상을 약속하고, 전사하더라도 최고의 예우에다 유족들이 연금 타서 평생 먹고 살 걱정 안 하게 해 줬다.
반대로 1열로 서 있다가 무서워서 혼자 도망가는 놈은 사기 유지 차원에서 가혹한 태형과 채찍질로 거의 반 죽여 놓는 식으로 다스렸다. 적군에게 죽을 확률은 95%쯤 되지만 그래도 호국영령으로서 아주 영예롭게 산화하는 것인 반면, 아군 지휘관에게 죽는 건 100%이고 겁쟁이 졸장부로 아주 치욕스럽게 뒈지는 구도를 만든 것이다. =_=;;

그 시절에는 군복, 아니 전투복이 오늘날로 치면 사관학교 생도 예복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아주 형형색색 화려했다. 뿌연 연기 속에서 피아식별을 하는 게 더 중요했으며, "군대에 가면 저렇게 멋있고 간지나는 옷도 입는구나" 하는 긍정적인 홍보 효과도 덤으로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갑옷이 사라진 뒤에 초창기의 총기가 가져온 레어한 관행이다.

총기가 격발만 된다면야 활보다 화력이 강하지만 초창기에는 보다시피 그 격발이 너무 더디고 재장전도 힘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의 필요성이 지금보다 훨씬 더 절실했으며, 지금 같은 개인 단위 위장과 각개전투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3. 성냥에서 부싯돌로, 부싯돌에서 뇌홍으로

옛날 총은 격발 방식뿐만 아니라 총열의 내부 구조도 오늘날과 차이가 있었다. 총열 내부에 강선이 파이지 않아서 기껏 발사된 총알도 뱅글뱅글 돌지 않고 궤도가 안정적이지 못했다. 허나, 강선은 정교하게 파인 홈 형태인데 이건 옛날 기술로 제대로 만들기가 매우 어려웠다. 또한 그 강선의 이점을 살려 제대로 날아가 주는 총알을 만들 기술도 부족했다.

격발 방식 말고, 총열에 강선이 없다는 관점에서 옛날 총을 흔히 '머스킷'이라고 부르며, 오늘날의 강선이 파인 개인 화기를 '라이플'(소총)이라고 부른다.
강선도 없는데 총알이 최대한 곧게 나아가게 하려면 닥치고 총신을 곧고 최대한 길게 만들어야 했다. 옛날 화승총이 구조는 아주 단순해 보이는데 어지간한 작대기 지팡이처럼 엄청 길쭉한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라이플은 기술이 한참 발달한 뒤인 19세기에야 등장했기 때문에 그 전까지 쓰인 총기는 다 머스킷 형태였다. 월트 디즈니 <포카혼타스>를 봐도 머스킷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프랑스의 소설 <삼총사>도 제목의 원래 의미는 그냥 총이 아니라 '머스킷 사수 트리오'(three musketeers) 정도다.
포카혼타스의 경우 위기· 절정부 장면을 보면, 토머스가 인디언 코쿰을 죽이면서 "both eyes open.."(조준할 때는 두 눈을 뜨고)라는 충고를 뇌까릴 때, 총의 심지가 타오르는 게 보인다. 1600년대의 match lock 방식 총이니까 그렇다.

화승 방식은 당장 비만 와도 심지가 꺼져 버리고 총을 쏠 수가 없으니, 불편해도 너무 불편하다. 그래서 일단 격발 방식이 총 내부에 부싯돌을 내장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담배에다 비유하자면, 불 붙이는 도구가 성냥에서 라이터로 바뀐 것과 같다. 총도 그런 변화를 겪었다. wheel lock, 그리고 뒤이어 flint lock이라는 방식이 등장했는데, match lock보다 사용이 더 편리해지긴 했지만 총의 구조는 예전보다 훨씬 더 복잡해지고 제조 단가가 더 올라갔다. 그래서 가성비 면에서 옛날 방식을 완전히 대체하기까지는 1세기 이상 시간이 더 걸렸다. 휠락은 말 그대로 방아쇠 주변에 동그란 바퀴 같은 장치를 볼 수 있으며, 플린트락은 총신 위쪽에 부싯돌처럼 생긴 돌출 부품이 있다.

그러다가 19세기에는 새로운 기폭제를 기반으로 '퍼커션 캡'이라는 방식이 도입되면서, 총기는 격발 방식이 부싯돌 점화가 아닌 뇌관 기반으로 바뀌었다. 툭 건드리기만 하면 부싯돌보다 불꽃이 훨씬 더 잘 일어나는, '뇌홍'이 든 캡슐을 탄환+화약과는 별개로 따로 장전한다. 총기의 방아쇠는 그 캡슐을 자극하는 역할만 한다. 그럼 그 뇌홍의 불꽃으로 인해 화약이 폭발하고, 그 힘으로 총알이 날아가게 된다.

퍼커션 캡은 거의 400년간 총기에 존재하던 화약 접시를 퇴출시켰으며 장전 속도를 크게 향상시켰다. 미국의 남북 전쟁을 포함해 19세기의 주요 전쟁들에는 부싯돌 방식 총기를 퍼커션 캡 기반으로 개조한 머스킷이 맹활약을 했다. 전열보병 전술도 사라졌으며, 병사들이 입는 군복도 미국 독립 전쟁 시절보다 훨씬 더 칙칙하고 단순해졌다. 그리고 이 탄환, 화약, 기폭제를 하나로 통합하여 간소화시킨 것이 바로 오늘날의 '탄피'가 되었다.

여담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세포이의 항쟁"이 왜 일어났는지도 그 시절에 총의 격발 방식을 알고 있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뭐, 탄환과 화약을 감싸는 주머니에 쇠기름· 돼지기름이 발라져 있었다고? 그럼 난 그걸 입으로 물어뜯고 총을 쏠 때마다 힌두 교/이슬람 교 율법을 어긴 꼴이잖아?" 이런 종교 규범 광역 어그로 때문에 용병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오늘날의 편리한 자동 소총이라면 그런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下에서 계속됨)

Posted by 사무엘

2016/07/11 08:34 2016/07/11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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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가 벌써 중후반기로 들어섰다.
세상은 3, 40년 전의 SF물들이 전망했던 것처럼 인간이 무슨 달과 화성에 식민지를 개척하는 식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초음속기와 우주 왕복선은 퇴역했고, 컴퓨터에서 싱글코어 무어의 법칙은 유효기간이 끝났다.
그러나 그런 게 아닌 다른 쪽으로는 과학 기술이 여전히 꾸준히 발달해 왔다. 제품의 외형은 크게 변화가 없을지 몰라도 그 내부는 이곳 저곳이 발전했다.

대외적으로는 1년 남짓 전부터는 기름값이 웬일로 다시 2000년대 초 수준으로 내렸고, 대학가에서 2000년대에 잠시 주춤했던 컴퓨터/전산학 지망자가 다시 늘고 있다. 컴퓨터 얘기를 좀 더 늘어놓자면 2000년대에 한창 닷넷에 밀려 C++이 죽었네 마네 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닷넷이 시들시들하고 C++ 언어가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

1999년, 2012년 등 각종 시한부 종말 예언은 예나 지금이나 전혀 적중하지 않고 불발탄으로 끝났다. 북한은 새끼 돼지 휘하에서 예나 지금이나 체제가 잘-_- 유지되고 있다. 중동에는 소말리아 해적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웬 이상한 또라이 이슬람 막장 국가가 태동하여 2차 세계 대전 이래로 국제 세계를 하나로 단결시키고 있다. 이 과학 기술 내지 국제 정세라는 건, 한국어의 종결어미와도 같아서 정말 그때가 돼 보지 않고서는 스토리를 정녕 알 수 없는가 보다.

컴퓨터 CPU의 집적도와 코어 수가 올라가고, 저장 매체의 용량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만큼이나 이 시대는 디스플레이 내지 조명 장치가 눈부시게 발달한 것의 혜택을 크게 입고 있다. 아무리 기가 막힌 저전력 고성능 초소형 CPU가 발명됐어도, 전자식이 아니라 기계식인 하드디스크는 근본적으로 진동과 충격에 약하기 때문에 걸어 다니는 사람의 주머니 속에서 동작하기는 영 무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디스플레이 장비가 브라운관밖에 없거나, 액정이라고 해 봤자 계산기의 흑백 액정 같은 것밖에 없었어도 지금과 같은 스마트폰이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토머스 에디슨이 살아 생전에 발명을 그렇게도 많이 했다지만, 그의 대표적인 발명은 축음기와 백열등 전구라는 양대 산맥으로 요약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 백열등은 가히 세상을 바꿔 놨다. 성경이 말하는 "빛과 소금" 중에서 '빛'에 해당하는 발명이다. 전등은 깜깜한 밤에 빛을 얻기 위해 굳이 연료를 태워서 불을 피울 필요를 없게 만들어 줬다.

그에 반해 등잔, 양초, 등유 램프 같은 건 연기가 남고 화재의 위험이 있으며, 결정적으로 빛이 그렇게 밝지도 않다. 어느 못사는 집에서 전기료가 밀려 단전되는 바람에, 촛불을 켜고 자다가 촛불이 넘어지고 집에 불이 나서 일가족이 죽었다는 뉴스.. 21세기에도 가끔은 흘러나온다.
이 얼마나 불편했는가? 그에 비해 전등의 빛은 그 당시로서는 얼마나 우아하게 보였을까? 오죽했으면 에디슨이 죽었을 때 미국 전역에서 1분간 전등을 소등했을 정도였다.

다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백열등은 전기로 빛을 내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지만, 한편으로 증기 기관차만큼이나 가장 무식하고 비효율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어느 분야이든 전기를 에너지를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끌어 쓰는 방법은 V=IR 법칙에 의거하여 물리적인 저항을 만드는 것이다. 졸졸 흐르는 강물 내부에다 물레방아라는 저항을 설치해서 동력을 얻듯이. 전동차는 저항 제어 방식이 가장 먼저 등장했으며, 백열등 역시 근본 원리는 가느다란 필라멘트를 저향열로 달궈서 빛이 덤으로 나게 하는 것이다.

연료와는 달리 대놓고 아주 태워 버리는 게 아니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에디슨은 필라멘트로 쓰기에 가장 좋은 재료를 찾기 위해서 수백~수천 번의 실패를 거듭하면서 근성을 발휘했다는 일화가 전해져 온다. 가장 무식하고 비효율적인 방식의 전등조차도 그냥 쉽게 만들어진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 시절엔 동그란 곡면인 전구 모양의 유리조차도 사람이 입으로 불어서 힘들게 만들어야 했다.

단순 저항으로 전기를 활용하는 모든 방식의 문제는 열이다. 전기 에너지 중 일부만이 빛이나 동력 같은 인간에게 유익한 형태로 쓰이고, 나머지는 열로 다 빠져나간다. 대놓고 전열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면 저건 좀 개선돼야 할 점이 아닐 수 없다.
오래 켜 놓은 전구는 사람이 만지면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거워진다. 그리고 과거의 저항 제어 전동차 역시 회생 제동조차 없던 시절엔 열로 손실되는 에너지 때문에 객실 내부까지 찜통으로 변하고 비효율과 고충이 장난이 아니었다.

나중에 발명된 형광등은 내부적으로 형광 물질을 사용하고 내부 구조도 백열등보다 더 복잡하다. 필라멘트가 있긴 하지만 그거 자체가 시뻘겋게 달궈져서 빛을 내는 형태는 아니기 때문에 열이 덜 난다. 등의 모양이 왠지 백열등보다 더 길쭉하고, 같은 전기를 쓸 때 광량도 더 많고 수명도 더 길다. 쉽게 말해 더 효율적이고 모든 면에서 백열등보다 더 나았다.

그런데 과거의 형광등들은 잘 알다시피 점등 딜레이가 있었기 때문에 "형광등 같다" 그러면 머리의 반응이 좀 더딘 사람을 상대로 좀 부정적인 비유에 쓰이곤 했다. 정작 만화 같은 매체에서는 아주 비효율적인 백열 전구가 뿅 켜지는 것이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걸 나타내는 긍정적인 심상이었는데 참 대조적이다.

오늘날은 이런 전구에까지 반도체를 동반한 LED 방식이 대세가 돼 있다. 전력 소모와 광량에 관한 한, 형광등보다도 더 성능이 좋은 끝판왕이라고 한다. 단점은 반도체의 특성상 초기 제조 비용이 비싸고 열에 약한 것 정도가 고작이다.
생긴 건 꼬마전구마냥 자그마한데(형광등은 이 정도로 작게는 못 만들지 아마?) 거기서 백열등 전구로는 상상할 수 없는 아주 희고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며, 발열도 별로 없다. 이게 그냥 이뤄진 게 아니다. 스마트폰에 내장된 손전등 기능도 응당 LED 기반이며, 24시간 가동되는 길거리의 신호등들도 다 LED 방식으로 교체되고 있다. 설치만 하면 얼마 못 가 설치 비용을 회수하고 이득이 나기 때문이다.

반도체라고 하면 으레 컴퓨터를 떠올리기 쉬우나, 반도체가 꼭 그런 데에만 쓰이는 물건은 아니다. 시계가 기계식 태엽을 쓰다가 건전지를 집어넣는 쿼츠 방식으로 바뀐 것도 반도체 기술이 가미된 것이다. 전자식 시계는 가격과 성능, 정확도 등 모든 면에서 기계식 시계를 처참하게 관광 태웠다.

또한 전동차가 VVVF 제어 방식으로 바뀐 것도 반도체 기술 기반이다. 동력 성능, 유지보수 난이도 등 모든 것이 종전의 저항 및 쵸퍼 방식보다 우위이다. 초기에는 시끄러운(?) 가속 구동음만이 유일한 단점으로 제기되었지만 철덕에게는 그건 아름다운 음악-_- 소리이지 단점이 전혀 아닐 뿐더러, 요즘은 소음 문제마저도 다 개선됐다. (소음이 인간의 가청 주파수 대역 이외로 금방 넘어가거나..)

형광등이나 LED등이 백열등과는 너무 압도적인 성능 차이가 나기 때문에 나라에서는 아예 백열등을 퇴출까지 시키려 할 지경이 됐다. 마치 컴퓨터계에서 IE6이나 제로보드 4를 퇴출시키려 하는 것처럼 지금 이상의 생산이나 수입, 판매를 금지한다. 백열등은 딱히 유연휘발유나 프레온 가스처럼 그 자체가 위험하거나 환경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지만, 에너지 소비량 대비 효율이 너무 안 좋기 때문이다.

참고로 현재 지구상에서 현역으로 가장 오래 뛰고 있는 백열등은 미국에 소재한 '센테니얼 전구'라고 한다. 무려 since 1901이고 한 세기가 넘게 켜져 있었다고 한다. 소등 시간은 몇십 년에 한 번 꼴로 몇 시간이 고작임. 세계 최고령 전구라고 재조명과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1970년대부터였다.

허나, 지금으로부터 먼 미래에는 형광등조차도 LED보다 효율이 낮으며 수은이라는 위험물질 문제도 있는지라 퇴출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전기· 전자 공학 기술이 계속 발전하다 보면 기술 트렌드가 어찌 보면 복고풍을 탈지도 모른다. 한때는 실용성이 다른 기술에 밀려서 사장됐다가 나중에 그 한계가 극복되면서 다시 조명받는 것 말이다.

대표적인 예는 전기 자동차이다. 한때는 기름 자동차보다 가볍고 구조가 간단하고 성능도 좋다는 장점(시속 100km도 먼저 돌파) 때문에 널리 보급되었지만, 배터리 충전 시간과 항속거리에 치명적인 발목이 잡혀서 굳이 석유 회사의 로비가 없이도 슬금슬금 밀려 사라졌다.

하지만 지금은 기름값과 환경 문제 때문에 전기 철도뿐만 아니라 전기 자동차도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새로운 유전이 자꾸 발굴되고 채굴 기술도 눈부시게 향상되었다지만 석유가 지구에 무한히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석유는 단순히 태우는 연료뿐만 아니라 플리스틱 같은 다른 화합물을 만드는 데에도 쓰인다. 자동차의 동력원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교류 전기에 밀려 사라진 고전압 직류 송전도 그 당시에 문제되었던 한계(송전 손실, 변압)를 반도체 기술로 극복하고 다시 부각되고 있는 것 같다. 솔직히 교류는 전기 공학을 우리 같은 사람이 감당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주범이긴 한데..;; 단점만 없으면 직류 위주로 가는 게 더 간단하고 좋긴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직류 송전 기술의 배후에도 반도체 기술이 있다.

그나저나 무선 송전 기술은 정말 실용화가 가능한지 모르겠다. 이게 제대로 된 물건이 나오면 전기 문명에도 일대 혁신이 일어날 것이다. 철도에는 전차선까지는 몰라도 팬터그래프가 필요 없어지고 전기 철도 시설의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릴 것이다.

끝으로, 전기 쪽 잡다한 자료들을 찾다가 본인은 흥미로운 동명이인 과학자 pair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를 소개하며 글을 맺겠다.

  • 독일 브라운: 로켓(새턴 V), 전기공학(브라운관)
  • 영국 플레밍: 미생물학(스코틀랜드 출신, 페니실린), 전기공학(잉글랜드 출신, 양손 법칙)

듣자하니 그 당시에 무선 통신의 선구자이던 이탈리아의 굴리엘모 마르코니는 브라운· 플레밍과도 같이 만나서 연구를 했다고 한다. 어느 브라운과 어느 플레밍인지는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테고.

Posted by 사무엘

2016/04/11 19:36 2016/04/11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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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음속 자동차

예전에 한번 하이브리드 교통수단에 대해 논하면서 초음속 자동차 얘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저 바닥도 이제 시속 1000km를 훌쩍 넘어 서양권의 상징인 시속 1000마일을 추구하는 경지에 가 있다. (☞ 전투기 엔진에 티타늄 바퀴.. 초음속車, 시속 1609km 돌파하라)

시속 200~400 정도까지를 내는 통상적인 스포츠카 슈퍼카도 아니고 초음속 자동차 정도까지 되면 실용적인 관점에서야 당연히 돈지랄의 극치일 뿐일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소수(프라임)를 발견한다거나 원주율을 몇백억 자리까지 더 구한다거나, 액체 질소까지 동원한 극한의 오버클럭질로 컴터 속도를 8GHz가 넘게 끌어올린다거나, 멀쩡한 코드를 마개조해서 난잡한 코드 경연대회(IOCCC) 출품 작품을 만드는 것처럼.. 그냥 그 분야의 지적 호기심과 기술의 극한을 추구하는 연구라는 것에 의의를 둬야 한다.

차는 적당하게 빠르게 달려서 맞바람을 맞으면 일반적으로는 아주 좋다.
사람만 시원한 게 아니라 엔진도 라디에이터를 통해 그렇게 바람을 쐬어 줘야만 냉각이 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냉각수를 사용하는 수랭식이지만, 그 냉각수를 식히는 데는 이런 공랭식 메커니즘이 기여하는 게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 해도 자동차가 엔진 공회전을 너무 오래 하고 있으면 위험한 이유는.. 그런 맞바람에 의한 라디에이터 냉각 효과가 없는 상태에서 엔진이 계속 돌아가며 열을 받기 때문이다. 단순히 연료 절약이나 배기가스 환경 차원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땅에서 차량이 상상을 초월하게 얼마나 빠르게 움직여야 도대체 '공기와의 마찰열'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 되고, 심지어 타이어가 구름 마찰력조차 감당을 못 해서 타 버리는 처지가 되는지 나로서는 실감이 안 간다.
콩코드 정도로 날면 성층권에서도 공기와의 접촉 부분이 섭씨 몇백 도대로 올라간다고 그러고, 무슨 재돌입하는 우주왕복선쯤 되면 공기와의 마찰열이 심각한 수준이 된다고는 하는데, 어쨌든 어느 것이든 감이 안 잡히긴 마찬가지이다.

저런 초음속 차량은 엄청난 가감속 거리 때문에 자동차 회사 연구소 안의 도로에서도 테스트를 할 수 없으며, 미국이나 호주 같은 넓은 대륙 안에 있는 사막에서 최하 30km에 가까운 직선 코스를 만들어야 한다. 하긴, 소닉 붐 소음 문제도 있으니 비행기는 바다 위에서만 초음속 비행이 가능할 것이고 자동차의 초음속 주행 가능 장소는 먼 사막 아니면 답이 없겠다.
아니면 아예 지하로 내려가든가. 육상 교통수단이 일말의 실용성을 유지하면서 저렇게 초음속으로 달리려면 진공 튜브 속을 달리는 궤도 기반 대중 교통수단으로 가야 하지 싶다.

오로지 찰나의 순간이나마 최고 속도만을 최대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초음속 자동차는 피스톤 회전 엔진이 아니라 제트/로켓 엔진 기반이며, 정지 상태에서 대략 55초 정도면 최고 시속 1609km에 도달한다고 한다. 같이 참고할 만한 비교 대상은 다음과 같다.

  • 나로 호는 발사 54초 만에 음속을 넘어섰다. 물론 얘는 수평 주행이 아니라 중력을 정면으로 거스른 수직 상승부터 시작한다는 게 감안할 점이다.
  • 한편, 프랑스의 슈퍼카 '부가티 베이론'은 1000마력짜리 엔진으로 정지 상태에서 최고 시속 400km까지 55초가 걸린다고 한다.

부가티 베이론은 시속 400이 55초니까 4로 나눠서 제로백은 13초냐 하면.. 그건 당연히 전혀 아니다.
얘는 제로백은 무슨 오토바이가 튀어나가듯이 단 2.9초 만에 달성된다. 200km/h가 7.3초, 300km/h가 16.7초여서 속도가 증가할수록 추가적인 가속은 기하급수적으로 느려지고 힘들어진다. 공기 저항과 엔진의 역학적 한계 때문에 경제 속도와는 갈수록 멀어지는 셈이다.

준중형급의 일반 양산형 승용차는 연비 따윈 안드로메다로 보내고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액셀러레이터를 끝까지 밟아야 제로백이 10초대에 나올까 말까다. 그런데 작용/반작용 비행기 엔진도 아니고 피스톤 왕복 엔진만으로 그 커다란 차체가 3초 이내에 시속 100에 도달하는 건 가히 사기적인 성능이 아닐 수 없다. 아예 비행기 엔진을 표방하는 초음속 자동차라면 운전자는 처음엔 거의 누운 자세로 있어야 하며, 출발인지 발사인지 직후엔 무슨 전투기 급가동 때처럼 몇 G의 가속도에 피가 한쪽으로 쏠리는 걸 견디야 한다.

부가티 베이론의 경우, 시속 400km 상태로 30분을 달리면 믿거나 말거나 타이어가 홀랑 타 버린다고 한다. 고속 주행에 최적화돼서 비행기 랜딩기어급으로 무진장 비싼 전용 타이어를 써도 그런다. 하지만 시속 400km 상태로 15분을 달리면 연료가 먼저 바닥나 버리기 때문에 타이어가 타는 걸 실제로 볼 일은 없다고 한다.;;;

초음속 자동차야 고무 타이어로는 아예 택도 없고, 티타늄이라고 100% 금속 재질인 타이어를 쓴다고 한다.
시속 500~600km를 넘어서는 시점부터는 고무 타이어가 마찰열을 버티지를 못하는데, 사실은 쇠바퀴로 쇠 레일 위를 달리는 철도 차량도 비슷한 속도 영역에서 비슷한 원천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자동차와는 달리 마찰 때문에 바퀴가 타 버리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지만, 그 반대가 문제다. 마찰이 너무 작은지라 바퀴가 레일 위를 미끄러지고 혼자 헛돌아 버리기 때문에, 더 가속을 할 수 없다.

그러니 궤도 교통수단이 그 이상 속도를 내는 건 아예 지상에서 살짝 뜨는 자기 부상 열차 쪽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건 철저히 통제를 받으면서 지상에서 정~말 조금만 미묘하게 뜨는 걸 말한다.
도로를 달리는 초음속 자동차는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는 한편으로, 고속 주행 중에 차체가 떠 버리지 않게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비행기처럼 아예 이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뜨면 조향이 안 되고 차를 통제할 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끝으로, 초음속 자동차는 제동도 여느 자동차처럼 디스크/드럼 방식 브레이크로 하는 게 아니다. 초음속을 달성한 후엔 최대한 어서 감속하고 안전하게 정지해야만 테스트 도로에서 오버런으로 인한 대형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그래서 후방으로 낙하산까지 펴면서 별 짓을 다 해야 한다. 여러 모로 통상적인 자동차의 개발 방법론이 통하지 않으며, 공중에 뜨지만 않을 뿐 비행기나 다름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왕복 엔진에 고무 타이어를 쓰는 자동차가 그냥 몇백 m 깊이까지만 들어갔다가 나오는 일반적인 잠수함이라면, 초음속 자동차는 경제성을 희생하고라도 1만 미터 아래의 해구 밑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게.. 작고 둥글고 단단하게 아주 극단적으로 특수하게 설계된 잠수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 잠수정은 내려갈 때는 추를 달고 내려갔다가 뜰 때는 그걸 버리고 와야 한다. 그리고 너무 강한 압력을 버텨야 하는 관계로 유리창도 못 만든다. 초음속 자동차가 최고 속도를 찍었다가 금세 낙하산 펴고 허겁지겁 감속을 해야 하듯, 저것도 정말로 내려갔다가 허겁지겁 올라오는 것 자체에만 의미가 있다.

2. 비행기의 실속

그럼 다음으로는 진짜 비행기 얘기이다.
지난 2013년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공군 기지를 출발한 보잉 747 기반의 미국 화물기가 추락 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비행기는 이륙하여 잘 상승하나 싶었는데 얼마 못 가 실속에 빠져 공중에 멍하니 있더니만 그대로 땅으로 곤두박질쳐 버렸다. 추락 지점엔 대폭발이 발생했고, 승무원 7인은 안타깝지만 전원 끔살을 면치 못했다. 이 추락 과정은 주변을 주행하던 자동차의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녹화되어 기록으로 남았다.

이 비행기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발생할 것일까?
녹화 영상을 본 전문가들은 비행기가 아마 테러 공격을 의식해서(아프가니스탄임) 고각으로 무리하게 급상승을 시도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것 자체는 블랙박스 영상만 보고 판단 가능한 사항이다.

그런데 이 비행기에는 장갑차가 몇 대 적재돼 있었서 굉장히 무거운 상태이기도 했다고 한다.
인제 와서는 확인을 할 방법이 없고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급상승 중에 장갑차를 고정하던 장치가 풀려서 화물들이 와르르 구르고 무게중심이 엉망이 된 게 아닐까 하는 추측도 있다. 이 정도로 비정상적인 상황이 아니고서야 비행기가 저렇게 어처구니없게 땅으로 떨어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거 무슨 세월호 침몰과 비슷한 과정인 것 같았다.
급상승은 배로 치면 급선회, 급변침이다. 세월호는 그걸 시도하다가 짐들이 와장창 굴러서 한데 쏠렸으며, 이 때문에 배 전체가 기울고 급기야 벌러덩 나자빠져 침몰해 버렸다.

저 화물기도 급상승으로 인해 화물 쏠림 → 기우뚱 → 실속 → 추락이라면 정말 세월호와 비슷한 방식으로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기계 자체의 결함이나 외부 피격이 아니라 스스로 잘못된 조작으로 인해 파멸을 맞이했다는 점에서는 말이다.

비행기와 배는 땅 위를 굴러가는 게 아니라 유체 위 또는 속을 주행하는 물건이니 무게 배분과 중심 잡기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특히 고정익 비행기는 한번 자세가 잘못돼서 양력을 잃었으면 무슨 자동차마냥 액셀을 밟아서 엔진 출력만 낸다고 해서 바로 다시 뜰 수 있는 게 아니다. 충분히 하강하면서 공기를 타고 속도를 얻어야 다시 뜰 수 있다. 그럴 만한 충분한 고도가 없으면 그냥 추락.;;
그러니 비행이 참 어려운 것 같다. 뭐, 헬리콥터는 고정익은 아니지만 고정익보다 더 불안하고 위험하면 위험했지 사정이 나은 건 절대 아닐 테고.

3. 우주로 가는 방법

물체를 단순히 양력을 이용해서 잠깐 공중에 띄우는 게 아니라, 아예 지구 대기권 밖의 우주로 보내려면 로켓 말고는 사실 답이 없다. 자동차와는 비교가 안 되는 엄청난 양의 연료를 싣고 그걸 순식간에 다 태워 버려야만 그런 힘이 나올 수 있다.
다만, 비행기 이전에 비행선이라는 게 있었듯이 옛날에는 로켓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우주에 가는 것도 특히 쥘 베른의 SF 소설 같은 데서 종종 소개되곤 했다. 하긴 그때는 화성의 외계인이 지구로 쳐들어 온다는 <우주 전쟁>이라는 소설도 있었고, 금성 정도면 극지방에 충분히 사람이 건너가서 살 만하겠다고 상상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1) 대포: 초고성능 초대형 대포를 쏴서 물체를 처음부터 지구 탈출 속도를 능가하는 가속도를 줘서 날려 보낸다. 이 대포야말로 둠 코믹에 나오는 BFG(X나게 큰 총포)여야 할 것이다. 제랄드 불 박사가 이 방식의 끝판왕인 space gun이라는 걸 발명해서 부분적으로 성공도 했다.

우주 대포는 복잡한 로켓 엔진이 필요하지 않으며 방대한 양의 연료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게 큰 매력이다. 실제로 우주로 나가는 로켓들은 부피와 무게에서 십중팔구가 연료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사 직후에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짜부러뜨리는 살인적인 G는 뭐 어찌할 수가 없다. 그러니 인간 같은 생명체는 원천적으로 탑승 불가이며, 무생물이라 해도 실을 수 있는 물체의 크기와 무게는 어마어마한 제한을 받게 된다.

(2) 엘리베이터: 아예 저 높은 하늘 끝 우주까지 바벨 탑처럼 근성으로 우주 사다리 + 엘리베이터를 만들자는 발상이다. 하지만 잘 알다시피 그런 구조물을 만들기가 대단히 어려우며, 건설 중 또는 운용 중에 사고가 났을 때의 위험성이 너무 치명적이다. 아울러 저 위험성에 비해서는 작은 단점이겠지만, 우주로 나가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것도 문제가 된다.

인간이 하늘을 날아서 우주로 나간다는 건 지금으로부터 150년쯤 전에는 여전히 실현 불가능한 꿈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다. 당대의 쟁쟁한 물리학자 석학이 "공기보다 밀도가 높은 기계 기반의 비행체란 존재 불가능하다"라고 대놓고 그랬을 정도이다.
그러니 어차피 불가능한 일인데 이와 관련해서 그 무슨 현실성 없고 황당한 상상인들 못 했겠는가?

그 시절에는 현실성으로 따지자면 로켓이나 우주 대포나 우주 엘리베이터나 다 그 나물에 그 밥으로, 동등한 SF의 영역에 있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오늘날 가히 우주 기술의 근간으로 정착한 액체 로켓 기술(by 로버트 고다드)마저도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고 병맛 취급받았다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만치 답이 없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술이 발달하면서 최종 승자는 로켓으로 굳어졌다. 엘리베이터 같은 시설물이 없어도 되고 그것보다 상승 속도가 빠르고, 그렇다고 우주 대포만치 강한 G를 야기하지도 않으려면 결국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힘을 발사체가 직접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04/03 08:39 2016/04/03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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