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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이야기

요즘은 사회 전반에 비밀이라는 게 갈수록 없어지고 내부가 개방되고 있다. 어떤 폐쇄적인 집단에 대해서 직접 소속된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던 내부 사정이 인터넷을 통해 널리 알려진다. 이로 인한 부작용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내부의 오랜 비리나 부조리가 폭로되고 시정되기도 한다. 그러니 비밀이 없어지고 투명해지는 것 자체는 대체로 긍정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굳이 북한 주민 인권 같은 거창하고 정치적인 얘기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폐쇄적인 조직 중 대표적인 예인 군대를 예로 들면.. 2000년대 중후반에 연재되었던 주 호민 씨의 웹툰 <짬>이 미필자나 여성을 상대로 군대의 내부 사정을 대중적으로 잘 알렸다. 그저 긍정적인 면만 부각시키는 관제언론인 국방일보 같은 것 말고 말이다.
그 뒤로 2010년대에는 군대 안에서도 더욱 희소한 병과를 소재로 한 <DP 개의 날> 같은 웹툰까지 발표되었다. <짬>의 주인공이 평범한 육군 운전병인 반면, 저건 주인공이 탈영병 체포조 소속인 헌병이다.

이런 식으로 사회 복지 음지, 소록도, 무슨 특수부대, 극한 직업, 원양어선, 국정원 내부, 대성동 주민 등등..
이 좁은 대한민국 땅에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나 싶은 이야기들에 본인은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군대 체험으로도 모자라서 교도소 내지 그에 준하는 피의자· 피고인 신분 체험기까지 인터넷에 종종 올라와서 유명세를 탄 게 있다. 직접 범죄를 저질러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고, 유경험자는 부끄러워서라도 공유를 꺼리니 대중적으로 알려질 일이 극히 드문 아이템인데도 말이다.

예전에 '마사토끼'라는 웹툰 작가가 "마사토끼 아청법에 걸리다"라고.. 기소되어 재판을 거쳐 벌금형을 받기까지의 실화 각색 만화를 공개한 적이 있었다. 이분에 대해서 다른 만화 작품은 모르겠고 "물은 답을 알고 있다"를 풍자하여 탐정 만화를 그린 걸 개인적으로 아주 재미있게 봤었다. (그러고 보니 <빵점동맹>에서는 그림 말고 스토리 작가이기도 했구나.)
그랬는데 자신이 피고인 신분으로 법원에 출두하고 벌금형을 받은 체험기까지도 선뜻 웹툰 소재로 선택해서 공개했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스펙 없던 어떤 지방대 문과 계열 졸업생이 노량진에서 죽어라고 공부한 끝에 영어, 국어, 국사 등의 맥을 차례로 잡고 국가직· 지방직 공무원 시험 합격 3관왕을 달성했다. 누군지 기억은 안 나지만 그 사람은 전문 웹툰 작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꽤 준수한 그림 실력으로 자신의 시험 준비와 시간 관리 요령을 만화로 그려서 연재했으며, 본인은 이걸 본 적이 있다. 이런 성공 자랑 스토리에 비해 법원 다녀 온 이야기는 다시 떠올리고 싶은 유쾌한 경험도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마사토끼보다 더 수위가 센 만화도 나왔다. 바로 "교도소 일기"로, '엄격 진지 근엄' 짤방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의 그림은 교도소 내부에서 군기를 잡는 헌병뻘 되는 교정직 공무원을 묘사한 것이다. 무슨 나치 시절 SS 요원처럼 검은색 제복 차림이다.

주인공은 제목과는 달리 교도소에서 실형을 산 건 아니고, 구치소에만 있다가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그걸 크게 구분하지 않으며, 구치소와 교도소 무슨 용어를 선택하건 만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달라질 건 없으니(이런 데에 절대 와서는 안 된다. 범죄 저지르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 제목을 편의상 교도소 일기라고 뽑았다고 한다. 미결수들은 관대한 처분을 받기 위해 일과 시간에 판사에게 '앙망문'ㅠㅠ을 많이 써서 보낸댄다.

저기를 전근대 용어로는 '감옥'이라고 하고 '형무소'는 일본 본토에서는 지금도 쓰이는 일본식 한자어다. 오늘날 우리말의 공식 명칭은 '교도소'. 죄인을 가둬서 벌을 준다는 의미 대신 얘들을 바르게 교화한다는.. 뭔가 긍정적인 뉘앙스를 넣어서 말을 다시 만든 것이다. 가격을 인상하는 게 아니라 합리화, 재조정하듯이 말이다. -_-;;
영어로는 prison 또는 jail이라고 하는데, 한국어 같은 유치장-구치소-교도소를 영어로 정확하게 어떻게 구분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jail은 prison보다 동사로 활용도 더 잘 되는 것 같다. "I could have jailed you for doing/saying that!"처럼.

요즘 워낙 교도소의 사정이 좋아지고 공권력의 위상도 땅에 떨어진 덕분에 그냥 차라리 "깜빵이나 갈래요" 심정으로 범죄 저지르는 간 큰 사람까지 등장할 정도라지만..
근본적으로 개인 사생활과 자유가 없는 곳은 아무리 생물학적인 생존이 보장되는 곳이라 해도 사람이 갈 곳이 못 된다.
화장실 이용이 저 따위로 극도로 불편한 거 하나만 봐도 오금이 저릴 것 같다. 저기가 진짜로 국립 호텔이라고 생각하는 건 큰 오산이다.

군대에서 짬밥을 먹는다면 교도소에서는 콩밥을 먹는다. (여담이다만, 왜 '짬밥'만 사이시옷/사잇소리가 적용되어 '짬빱'이 되고 '콩밥'은 그렇지 않은지는 모르겠다. '볶음밥'과 '비빔밥', '물고기'와 '불고기'의 차이처럼 말이다. 이건 국어학계에서도 "그냥 케바케. 정말 원칙이 없다"로 귀착되고 있는 문제이다.)

경찰서 유치장은 무슨 입소대대요, 구치소는 훈련소나 보충대, 진짜 형이 확정되어 가는 교도소는 자대뻘 되려나 모르겠다.
군대에 대한 비하 발언으로 군대가 교도소와 다를 바 없네 하는 말이 있다. 군대와 교도소는 개인의 자유가 없거나 지극히 제한된다는 공통점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존재 목적이 서로 매우 다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큰 차이도 있다.

  • 군대에서는 휴대와 관리 효율을 위해서 식당에서 포크 겸용 숟가락 하나만 쓰는 반면, 교도소에서는 끝이 아주 뭉툭한 플라스틱제 숟가락과 젓가락이 쓰인다. (자해 내지 탈옥 도구로 활용 못 하게. 죄수들에게 금속류를 줘서는 위험하다)
  • 군대에서는 병사들의 체력 단련을 강조하고 권장하지만, 교도소에서는 실내에서 신체 운동이 절대 금지다. 하다가 걸리면 징계 받는다. (가혹행위 못 하게)
  • 전투복은 야외 활동 능률을 위해 상의와 하의 곳곳에 주머니가 많다. 그러나 죄수복은 정반대로 주머니 같은 거 없다. 신발에도 명백한 이유로 인해 전투화와는 달리 끈이 일체 없다.
  • 군대에서는 병사들의 선거권이 보장되지만 교도소 수감자들은 그렇지 않다.
  • 군대는 비록 몰래 목 매달아 자살하는 사람도 나올지언정, 영창 화장실이 아닌 이상 화장실 안만큼은 사용 중 완전한 폐쇄를 보장해 준다.
  • 그나마 교도소는 불침번 같은 건 없구나. 일과 시간이 끝나면 다같이 푹 자는 게 보장된다. 다만, 밤중에 화장실 이용은 여전히 편하게 못 한다.

수저조차 흉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은 교도소뿐만 아니라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줄 때도 비슷한 조치가 취해지고 있음을 생각해 보자. 실제로 9· 11 테러 때 테러범들은 스테이크 써는 용도의 플라스틱 나이프만 갖고도 승객과 조종사들을 제압했다고 하니까. 그 뒤 미국에서 운용되는 여객기들은 액체 반입 제한에다 스테이크는 미리 다 썰어 놓은 채로 주는 등, 별별 보안 제약이 더 생겼다.

다음으로, 집단 내 서열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군대에서 훈련소는 같은 날 들어와서 같은 날 나가는 동기들만으로 구성돼 있어서 형태가 제일 단순하다. 자대부터는 병들이 들어온 날이 제각각이어서 짬과 서열과 계급 차이가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복무 기간은 다들 동일하다. 또한 장교인 소대장 아래로 병 중에서도 완장 찬 분대장이 있어서 후임들을 통제한다.

그에 반해 교도소는 한 방의 수감자들이 들어온 날과 나가는 날에 아무 개연성이 없다. 연령대도 전혀 비슷하지 않다. 그러니 동기는 전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신참과 말년 서열도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해서도 절대 안 된다. 감방 내부에서 죄수들끼리 군대놀이가 행해지고 일진 같은 조직과 '짱'이 존재하고 간수 끄나풀이 존재하는데 그걸 간수들마저 죄수 관리의 편의라는 미명 하에 묵인· 동조· 방치한다면 교도소가 얼마나 개판이 되겠는가?

물론, 아예 사형수나 극도의 흉악범 또는 죄질과 별개로 멘탈에 문제가 있는 위험 죄수는 독방에 따로 수용되거나 더 엄한(= 햇빛 구경하기가 더욱 어려운) 교도소로 옮겨지긴 한다.
군대에 소규모 징계 시설인 영창이 있듯이, 교도소도 그런 목적으로 독방이 있다. 보는 눈이 없이 혼자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지만 하루 종일 아무 행동도 못 하고 벽만 쳐다보고 지내야 하니 그건 그것대로 고문이라고 한다. 독방이 무슨 왕중왕도 아니고 교도소 안의 교도소 역할을 한다.

병역 의무가 있는 나라에서 누구든지 가능한 한 군대에 안 가려고 애쓰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허나, 질이 지나치게 안 좋아서 통제가 안 되는 단점이 신체 능력이 뛰어난 장점보다 더 큰 사람은 군대에서도 아무리 사람이 부족해서 난리라 한들 받아들이지 않는다.

만만한 게 죄수들이니까 얘들을 삼청교육대 식으로 인간흉기로 개조시켜서 공작원으로 투입하거나 선원으로 부려먹는 건 인권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부려먹는 갑의 입장에서도 영화· 소설에서 보는 것만치 쉽게 가능한 일이 아니다. 언제 딴마음 품고 사고 칠지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믿고 덥석 위험한 무기나 도구를 쥐어 주고 일을 시킬 수 있겠는가? 일례로, 박통 시절에 실미도에서 몰래 양성되었던 북파 공작원들도 사형수· 죄수 출신이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일제 강점기 때도 조선인을 상대로 징병제는 갈 데까지 다 간 말기인 1938년이나 돼서야 시작됐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군대 안 가려고 장애인으로도 모자라서 전과자가 되는 것까지 불사할 정도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은 요즘 같은 평시에야 많지 않다. 하지만 옛날에 정말 나라가 전쟁에 휘말려서 위태롭고 병사들의 사망률이 높던 시절에는 "군대 가느니 차라리 감옥 가고 만다, 배째!"도 당연히 있었다.

사람이란 살면서 병원에 갈 일이 없어야 하듯이 법원이나 경찰서 같은 곳에도 정말 갈 일 없고 마주칠 일이 없는 게 제일 좋을 것이다. 피해 신고자나 증인 신분으로 가는 거면 최소한 자기 마음은 부끄러울 것 없고 떳떳하겠지만, 그래도 골치 아픈 일에 엮인 상태인 건 변함없지 않은가?

군인과 민간 공무원의 하이브리드인 군무원이라는 직종이 있듯이, 군대와 교도소의 하이브리드인 '국군 교도소'도 있다. 군인 신분으로서 영창보다는 크고(빨간 줄 그이고), 그렇다고 군번 즉각 말소에 민간인 싸제 교도소로 옮겨질 정도까지는 아닌 규모의 죄를 지은 사람이 가는 곳인데.. 이곳 역시 가서 좋을 건 전혀 없는 곳이다.

반대로 그런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에 비례해서 고소득 전문직이다. 남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스트레스와 책임감이 크고 재미없는 일을 하니까. 영적으로 보자면 저런 직업은 인간의 죄의 결과를 수습하는 직종에 속하기 때문에 저건 인류가 존재하는 한 수요가 절대 없어질 수가 없다. 옛날에 그 고상한 청교도들이 신대륙으로 건너가서 미국을 세운 뒤에도 교도소는 거의 곧장 필요해졌다지 않는가?

가령, 검사라 하면 얼마나 머리가 비상하고 공부 많이 한 사람일 텐데, 그 좋은 머리로 맨날 하는 일이 뭔가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게 아니라 남을 일단 의심하고 나쁘게 보고 기소하고 형량을 판사에게 청구하는 일이다. 정신 건강에 좋은 일은 아니어 보인다. 저것만 하다가 맛이 가 버려서 인격 파탄 막장 싸이코 검사가 나오는 것도 본인은 이해는 할 것 같다. (피의자에게 막말, 가혹행위..;; )

우리나라에 10월 28일은 '교정의 날'이라고 법정 기념일이다. 저건 9월 18일 철도의 날만큼이나 교정 분야의 궂은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날이다. 우리나라가 민간 싸제 교도소가 막 발달한 나라는 아니니, 이 바닥 종사자들은 사실상 다 공무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공무원뿐만 아니라 교도소만 찾아 다니면서 포교· 선교 활동을 하는 종교인들도 있다. 군대보다도 저런 곳이 복음이 더 절실히 들어가야 하는 곳이기도 하니까. 개인 활동을 못 하는 곳에 있으면서 성경이라도 제대로 읽고, 인생과 죄 문제와 죽음 이후 세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보라는 것이다.

사람이란 게 꿈에도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있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덜컥 장애인이 될 수도 있고, 비슷한 이치로 욱 하다가 정말 사소한 실수 때문에 은팔찌 득템에 경찰서 정모를 할 수도 있다. 굳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더라도 말이다. 사람이 죽는 급의 큰 교통사고를 내거나 경제 사범으로 몰리는 바람에 철창 신세를 질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애초에 절대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야겠지만 세상엔 이런 바닥도 있다는 걸 미리 염두에 둔다면 나중에 예상치 못한 비극이 찾아왔을 때 좀 덜 당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17/02/03 08:34 2017/02/03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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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필요악

  • 살인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살인을 저지른 자를 반드시 죽여라"라는 역설적인 법이 필요하다.
  •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군대라는 대단히 비민주적인 조직이 필요하다.
  • 어린애를 남을 배려할 줄 아는(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 포함)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애가 잘못했을 때는 정도와 수위의 조절이 필요할지언정 체벌 자체는 행하면서 키워야 한다.

필요악이라는 건 성경이 매우 적극적으로 지지할 뿐만 아니라, 이런 게 없이는 인간 사회가 돌아가고 유지될 수 없다는 걸 굳이 신앙의 힘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본성과 양심이 인지하고 있으며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정치· 비정치 분야를 막론하고 그 너무 당연한 필요악들을 말 같지도 않은 인권과 진보의 이름으로 일부 예외적인 부작용 사례만 부각시키면서 부정하는 애들은 세상을 더욱 망가뜨리고 혼란에 빠뜨리고 있으며, 더 나쁘게 말하면 국가 체제 전복까지 조장하고 있음을 난 확실하게 입증· 폭로할 수 있다.

군대를 예로 들면.. 누구 말마따나 군대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조직이지, 민주주의를 실행하는 조직이 아니다.
군대에서 계급을 없애 보는 삽질은 이미 FM 공산주의 국가이던 소련이 1920~40년대에 두루 실험해 보고는 절대 유지 불가능하다는 걸 친히 입증해 줬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뭐 니골라 당 운운하면서 개인별 영적 접근성을 제멋대로 차별하는 성직 계급에 대한 비판까지는 좋다. 허나, 아예 일체의 호칭과 직분까지 부정하면서 "사람 위에 사람 없다", "목사만 강단에서 설교하는 건 잘못됐다", "불신자를 대상으로 하는 복음 설교 외에 다른 설교는 필요하지 않다" 이런 데에 혹한 사람들이 좋은 교회 세워서 성도들을 훌륭하게 양육해 냈다는 소리는 내가 들은 적이 없다.
사역자에 의한 체계적인 말씀 선포와 성경 강해 없이 '교제'만 하는 건 교회가 아니며 신자가 제대로 자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 그렇다고 교회에서 직분이 무슨 필요악이기라도 하다는 건 아니니 이건 성격이 좀 다른 얘기지만.

12. 최대와 최저

사회나 자연에서 어떤 현상을 측정하는 잣대는 최대와 최저가 있는데, 최대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최대 만만찮게 최소를 중요하게 따져야 하는 경우가 있다.

  • 교통수단의 경우, 순간 최대 속도보다 전체 표정 속도가 더 중요하다.
  • 건강에서 최고 혈압이 높은 것보다 최저 혈압이 높은 게 더 위험하다고 여겨진다.
  • 10년 이하의 징역보다 2년 이상의 징역이 대개 더 무거운 형벌이다.
  • 낮 최고 기온 38도보다, 밤 최저 기온 28도가 체감상 더 끔찍한 무더위이다.
  • 정치인 선거만 해도.. 최선을 뽑는 것보다는 최악을 피하는 게 더 중요하다.
  • 친구의 결혼식이나 돌잔치 같은 데는 사정상 불참하더라도, 친구의 친인척 장례식 문상에는 어지간해서는 가는 게 좋다. 결혼식은 일시가 딱 정해져 있지만 장례식은 그래도 기간 range가 있는 편이어서 부담이 더 적기도 하다.

이런 것들..
그러니, 배우자처럼 평생 함께할 사람을 고를 때도, 좋아하는 것이 일치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이 일치하는 게 더 중요할 수 있다.
본인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상대방이 굳이 나처럼 철도를 좋아하거나 세벌식을 쓰지는 않아도 된다. 굳이 컴공과 출신이거나 언어학에 관심이 있지 않아도 된다. 그런 것들은 액세서리 옵션일 뿐이다.

허나, 굳이 그런 게 일치하지 않더라도 북괴 정권에 대한 생각이 일치하고 종북개빨들을 혐오하는 게 일치한다면 그거 하나만으로도 본인과 장벽이 크게 허물어지고 금세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이런 밑바닥에서 자꾸 부딪치면 다른 전공이나 취미가 일치하더라도 내 경험상 사람이 하나가 되기 굉장히 난감하고 불편해지더라.

13. 전화위복

예전에 인터넷에서 무슨 신문 기사를 봤다. 외국에서 있었던 일인데, 어떤 집에 딸이 다운 증후군에다 지능도 딸리는지 문맹이었다.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지만 그 아이의 어머니는 그래도 얘에게 딱 맞는 역할이 사회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고 여러 회사들에다 편지를 넣은 끝에 소원을 이뤘다. 어느 기업의 보안팀에서 기밀 문서들을 파기하는 업무용으로 딸을 취업시킨 것이다.
다운 증후군의 특성상 기계적인 단순노동에 싫증 내지 않고 집중 잘하고(포레스트 검프??), 결정적으로 문맹인지라 기밀 문서를 봐도 뭔 말인지 모르니 저런 일에는 쟤만 한 적임자가 없었다고 한다. 세상에~!

하긴, 맹인이 안마사 일을 하는 것도 저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적절한 거다. 안마사는 사람 알몸을 만지는 직업이니까.
또한, 왕조 시대엔 '내시'(환관)가 괜히 있었던 게 아니지.
장애(disability)가 오히려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경우라 하겠다.

과수원에 태풍이 불어서 낙과가 왕창 발생해 버렸는데..

  • 어디서는 어려운 농가를 돕자는 차원에서 그나마 손상 정도가 덜한 낙과들을 반값만 매겨서 "상품성이 좀 떨어지지만 사 주세요" 운동을 벌이는 식으로 난관을 극복했다.
  • 한편, 일본 어디에서는 떨어지지 않은 소수의 과일들을 "혹독한 태풍도 견뎌 낸 특급 과일" 이렇게 오히려 프리미엄을 붙여서 비싸게 파는 마케팅이 성공하기도 했댄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본인도 한글(과 한국어)을 굳이 알파벳처럼 만들려는 연구를 하지는 않는다. 한글이니까, 발상을 달리하여 타 언어· 문자와 구조적으로 다른 대신에 이런 완전히 새로운 활용이 가능하다는 걸 입증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14. 침

국어에서 '침'이라는 단어는 순우리말로는 입 속의 타액을 뜻한다. 그러나 한자어로는 길쭉하고 끝이 뾰족한 바늘을 뜻한다(針). 사실, 한의학에서 꽂는 침도 이것과 비슷한 물건이지만 한자는 또 다르다(鍼).
타액과 바늘· 가시는 언어적으로 서로 전혀 관계가 없는 개념이며 소리만 우연히 일치할 뿐이다. 그러므로 순우리말 침과 한자어 침은 동음이의어 관계이다. 하지만 두 침이 같은 문맥에서 므흣하게 섞여 쓰이는 경우가 몇 가지 있다.

먼저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모기.
모기는 시각이 아닌 이산화탄소와 땀냄새로 사람을 찾아낸 뒤, 바늘 역할을 하는 뾰족한 주둥이를 피부 내부로 찔러 넣는다. 그 다음에는 흡혈 중에 혈액의 응고를 막기 위해서 진짜 자기 타액도 주입한다. 이게 인체와 이상한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모기가 떠난 뒤부터 우리가 다 잘 아는 가려움과 붓기를 유발한다고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을 도대체 어떻게 하나도 안 아프게 감쪽같이 해치우는지 모르겠다. 하다못해 혈당 체크를 위해 눈꼽만치만 피를 뽑으려 해도 최소한의 따끔은 감수해야 하는데.. 무통 채혈 기술은 모기한테서 배워야 할 지경이다. 신묘막측한 기술로 통점을 감쪽같이 피해 간다고도 한다. 하긴, 모기가 피를 빨아먹는데 따끔거렸다간 모기는 절대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테니.

모기는 원래 식물의 체액만 빨아먹는 놈이었는데 인간의 타락 이후에 습성이 변태같이 바뀐 대표적인 해충일 것이다. 병원균까지 옮기는 아주 해로운 놈인데, 이런 놈이 파리보다 훨씬 둔하고 비행 능력이 떨어져서 그나마 잡기는 쉬운 게 다행이라 하겠다.

그 다음으로 스타크래프트 저그 유닛인 히드라리스크가 있다.
히드라의 공격은 설정상 등뼈에 붙은 가시를 날리는 것이다. 물론 종족 밸런스 때문에 무리해서 range 공격으로 만들어 준 것이지, 현실에서는 좀 무리가 있는 설정이다.

설정과는 달리, 게임상으로 보기에 히드라가 공격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침을 뱉는 것 같다. -_-;;;
뭔가 초록색 체액이 날아가는 듯한 게 針이 아니라 '침'인 것이다. 뽀잉 뽀잉~ 소리도 퉤퉤 침뱉는 것처럼 보인다.
옛날에 스타를 빛낸 100명의 유닛들이라는 이상한 패러디 노래에서도 "가래침은 히드라 갑빠 울트라" 이런 가사가 있었다.

세상에, 저글링도 발톱으로 할퀴어 대는데 더 거대하고 흉포한 히드라리스크가 참 지저분하고 불결한 방식으로 공격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hydra-가 hydro-를 연상시켜서.. 역시나 뭔가 더욱 액체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비록 어원상으로는 아무 관계가 없지만.. 히드라 네놈은 여러 모로 공격 수단이 spitting으로 굳어져 가는구나. 뭐 이런 잡생각을 했다.

15. 총질

스포츠 사격과 군대 사격, 펜싱과 검도, 물감과 포스터칼라, 크레파스와 파스텔 등..
체육과 미술 분야에는 뭔가 서로 비슷해 보이는데 용도가 다른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사격 같은 경우 스포츠 사격은 군대 사격보다 훨씬 더 가까이서 쏘고 표적도 더 작고, 총은 더 무겁고 반동이 적고 격발이 훨씬 더 쉽게 되는 걸 쓴다. 한쪽을 잘하는 감으로 다른 한쪽을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 스포츠 사격 금메달리스트가 곧장 군대 특등사수 저격수와 호환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총은 총알이 날아가는 궤적이 눈으로 안 보이니 궤적에 대해서 온갖 잘못된 오해가 나돌기도 하고, 실생활에서의 대미지가 너무 사기급이다 보니 각종 게임에서는 대미지가 너무 너프다운돼 있다.
많이 빗나갔다가 한번 명중해 버리면 그냥 '윽!' 즉사인데.. 그게 게임에서는 각각의 총알이 대미지를 찔끔찔끔 조금씩 주는 식으로 표현되곤 한다.

그런데 "총은 살살 쏘면 안(덜) 아파요. ^^" 이런 말은.. 참 귀엽게 들린다. 살살 쏘면 격발도 좀 덜 시끄럽게 할 수 있으려나? =_=;;;; 총을 일종의 냉병기 같은 관점에서 본 거 같다.
뽕 맞은 마린은 총을 세게 쏘니까 연사력과 단위 시간당 대미지가 올라가기라도 하는가 보다. ㅋㅋ

16. 청소

청소를 해 보면.. 뭔가 기하급수 스케일이 느껴진다. 치우고 없애고 제거해야 하는 물질의 스케일이 얼마인지에 따라서.. 동원하는 도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엄청 큰 덩어리는 손으로 들어서 치우면 된다.
팔로 안아야 할 정도로 큰 놈이 아니라면 집게로 집어서 치울 수도 있다.

다음으로 일일이 손으로 집기에는 작고 많은 이물질은 빗자루로 쓸어 담는다.
빗자루 스케일보다 약간 더 작고 많은 이물질은 청소기를 돌려서 수월하게 제거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빗자루 클래스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먼지들은 걸레로 닦아서 제거하게 된다.

이렇게 청소 도구를 교체하게 하는 이물질의 크기 경계는 실제값으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로그를 씌워서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반도체 공장 같은 데서 먼지 제거 청소를 하는 스케일은 더욱 작아질 테니까!!

17. 일광량과 하늘 색깔로부터 시간대 추정하기

동서남북 방향(= 그림자 방향)을 전혀 모른다고 가정할 때, 깜깜한 밤도, 벌건 대낮도 아닌 적당히 짙푸르거나 노을 낀 누런 하늘의 바깥 사진 한 컷만 보고 이게 해가 뜨는 중인지(새벽이나 아침), 해가 지는 중인지(저녁) 판별이 일반적으로 가능할까?

굉장히 알쏭달쏭한 질문인데..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두 하늘은 날씨가 동일하다면 색깔 차원에서는 완전히 동일하다고 한다. 그러니 다른 단서가 전혀 없이 색깔만 봐서는 진~짜 원칙적으로는 시간대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의외다. 하긴, f(x)의 값 하나만 달랑 보고는 변화량에 속하는 f'(x)의 값을 추론할 수는 없긴 하겠다.

이 말인즉슨, 영화나 드라마 찍을 때 저녁이나 새벽 씬을 편의상 그 반대 시간대에 촬영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영화업계에서는 가상의 선박을 찍을 때도 비용 절감을 위해 한쪽 현만 세트를 만들어 놓고는 좌우 미러링을 해서 좌현과 우현을 다 구현하는 게 관행이다(타이타닉, 연평해전..). 하물며 새벽과 저녁쯤은 손쉽게 바꿔치기 가능하겠다.

영화업계에서 온갖 꼼수를 써서 저비용 트릭을 구현하는 원리를 보면 마치 고도의 마술 테크닉 같기도 하고, 486급 컴퓨터에서 Doom 같은 게임을 돌리기 위해서 존 카맥이 고안해 낸 온갖 기상천외한 자료구조와 알고리즘을 보는 것 같다. 그.. 부동소수점의 특성을 이용해서 제곱근 역수(= 벡터 정규화를 위한 연산)를 굉장히 빠르고도 상당히 정확하게 구하는 알고리즘처럼 말이다.

18. 해발 고도의 기준

본인은 올해 등산 엄청 많이 다녀오면서 100~200m짜리 언덕부터 시작해 400m는 넘는 것까지 다양한 산을 올랐다.
산의 높이를 논할 때 통용되는 잣대는 해발 고도이다. 쉽게 말해 해수면으로부터의 높이이다. 에베레스트 8848, 백두산 2744, 한라산 1950 이런 것들도 해발 고도이다.

이것 말고, 해당 행성의 중심부로부터의 거리(!!)라든가, 바다가 없다고 치고 그 밑의 대륙 뿌리까지 다 쳤을 때의 높이 같은 꽤 마이너한 잣대도 있다. 그런 기준을 적용하면 지구상엔 에베레스트보다 더 높은 산도 있다.
또한, 바다가 존재하지 않는 다른 행성의 산의 높이를 논할 때는 선택의 여지 없이 저런 생소한 잣대가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해발 고도는 직관적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마냥 장땡이 아니다. 해수면의 높이는 시시각각 변할 뿐만 아니라 어느 바다의 해수면이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1m를 빛이 진공에서 진행한 거리가 아니라 미터 원기 내지 지구 자오선 길이를 기준으로 정의했던 것만큼이나 절대적이지 못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천 앞바다에서 밀물 최대와 썰물 최소를 평균한 해수면 높이를 표준 높이로 규정하고, 이를 산의 높이를 재는 잣대로 사용한다. 백두산의 높이 2744는 일제 강점기 때 저 기준으로 측정되었으며, 우리나라와 일본은 지금도 저 해수면 높이를 사용한다. 그러나 중국과 북한은 평양에서 가까운 앞바다를 기준으로 삼아서 백두산 높이가 2750 정도로 미묘하게 더 높다고 본다.

사실, 2016년 10월인가 그때는 딱히 태풍· 폭우나 온실효과도 없었는데 태양과 달의 배치만으로 바다의 수위가 올라가서 인천과 목포 해안 저지대가 잠시 침수되기도 했다. 이런 게 과연 천체의 인력이구나 싶다.
마치 철도나 도로의 기점 표지판이 있고 산에도 "여기 위치 좌표가 xxx입니다" 표지판이 있는 것처럼.. "이 지대의 높이가 해발 몇 m입니다"이라는 해발고도 원점 표지판도 만들어진 게 있다.

그리고 지금은 그게 인하공전 캠퍼스 안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7호관과 도서관 사이이며, 인터넷 지도를 통해서도 확인 가능하다. 인하공전에는 보잉 727 실습기뿐만 아니라 레어템이 하나 더 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됐다.

Posted by 사무엘

2017/01/11 08:29 2017/01/11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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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운전자라면 이미 다 아실 것이고 예전에 이 블로그에서도 몇 차례 언급한 적이 있듯, 우리나라의 고속도로에는 하이패스라는 통행료 무인 자동 정산 시스템이 있다. 고속도로의 입출구에서 모든 차들을 강제로 잠시 세워서 현금으로 통행료를 걷는 시스템은 매우 불편하고 비효율적이며 운전자에게나 회사에게나 좋을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소한 잔돈 취급을 없애서 톨비 결제 속도를 조금이라도 올리기 위해 먼저 과거에 있었던 고속도로 카드가 도입됐다 식당에서 현금 대신 식권, 버스에서 토큰이 도입된 것과 비슷한 이치다. 단, 신용카드는 안정성 문제 때문에 톨게이트에서는 취급을 전통적으로 거부해 왔다.

그 뒤, 통행료 결제를 원큐에 할 뿐만 아니라 차량을 정차시킬 필요도 없게 하기 위해 다음 세대 기술인 하이패스가 도입됐었으며, 종전의 고속도로 카드는 폐지됐다.
하이패스는 편리하기도 하고 2000년대 초에 도입되던 당시에는 나름 미래의 신기술을 염두에 둔 시스템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다소 아쉬움이 남는 물건으로 전락한 면모가 있다.

요즘은 하다못해 여느 건물의 지하 주차장에만 가도 차량 번호판이 자동으로 인식되고 따로 주차권이 발급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하이패스는 식별 태그나 카드 한 장만 구비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모든 차량들이 단말기를 사서 등록· 개통해야 하는 번거로운 체계이다.

이건 그 당시에 고려 대상이었던 보안 통신 방식과도 관계가 있으며, 또 단말기를 통해서 통행료 결제뿐만 아니라 도로 상태(정체 여부)와 기상 정보까지 중계하여 고속도로 종합 정보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장기적인 계획을 보고 내린 결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교통 정보 시스템은 싸제 내비들에게 완전히 역할이 넘어갔으니 그 예상은 빗나갔다. 굳이 하이패스에서 그런 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어진 것이다.

한국 도로 공사는 전국의 모든 차량들에 하루빨리 하이패스를 장착시키고 전국의 모든 고속도로에서 하루빨리 톨게이트들을 싹 없애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그 취지와 심정은 이해하지만, 하이패스의 보급이 늦어지고 있고 당장 내 차에조차 아직 하이패스가 없는 이유는 모든 차량들에 일일이 단말기를 달아야 하는 그 불편한 구조 때문이다. 초기의 진입 장벽이 높으니 고속도로를 자주 이용하지 않는 운전자라면 별로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다.

더구나 2000년대 이후로 전국의 수많은 고속도로들이 이 시스템 기반으로 거미줄처럼 개통돼 버렸으니 이제 와서 그걸 선뜻 고치지도 못한다.
물론 일개 건물의 간단한 무인 차량 인식 주차 시스템과, 전국에서 수십~수백만 대의 차량의 출입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금융거래를 안정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고속도로 통행료 징수 시스템이 그 규모와 신뢰성이 서로 비할 바는 못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좀 더 가벼운 시스템이 초기에 도입됐으면 하는 아쉬움은 계속 남는다.

이건 마치.. 비슷한 1990년대 말에 고속철도를 건설하고 차량을 도입할 때.. "앞으로 뭐 서울-부산을 겨우 1시간 56분 만에 왕래할 텐데, 차내에 편의 시설 같은 건 별로 없어도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객실에 콘센트를 전혀 설치하지 않은 것과 같은 급으로 예상이 빗나갔다.

2차 구간에 대전· 대구 도심 구간까지 이제 경부 고속철은 전구간이 완전 개통했음에도 불구하고 KTX는 그 정도로까지 빠르게 달리지는 못하고 있다. 그리고 철도 건설이 세월아 네월아 지연되는 동안 전국민에게는 스마트폰이 보급됐고 전기 충전 없이는 잠시도 견딜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그러니 새마을호에도 있는 콘센트가 KTX에 없는 것은 정서상 받아들여질 수 없었으며, KTX 산천에는 곧장 콘센트가 추가되었다.

서울 2기 지하철의 경우, 미래에 건설 예정인 3기 지하철과의 환승을 고려해서 나름 머리를 써서 여의도, 몽촌토성, 녹사평, 논현 등의 역을 만들었으나.. 몇 년 뒤 IMF 때문에 3기 지하철이 거의 다 파토 날 줄 그때 누가 예상했겠는가? 결국 기존 3· 7호선의 연장과 신규 9호선만이 예상대로 추진되었으며, 여러 역들 중에 여의도와 오금 역만이 미리 만들어 둔 확장 고려 설계의 수혜를 입었다.

이처럼 어떤 대규모 건축이나 공공재 시스템 구축 사업은 불과 10~20년 뒤의 미래도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표준을 잘못 정해서 후손들이 대대로 고생하는 게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글 글자판도 이 범주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경우 가정용 전기 전압 220V 승압과 철도 표준궤는 미래를 내다보고 적절한 타이밍에 밀어붙여서 표준이 다행히 잘 정착해 있다. 아직 1xx V의 굴레를 못 벗어나 있는 일본과 미국처럼 되지 않았다. 일본은 협궤까지 잔뜩 깔려서 인제 와서 이걸 어찌할 수도 없고 더 고생하고 있으니 말이다.

7.
2013년에는 베네딕트 교황이 몇백 년 만에 아주 이례적으로 재직 중에 자진 사임하더니만, 2016년엔 아키히토 일왕이 갑자기 생전퇴위를 선언했다. 어떤 조직의 최고 대빵을 종신직으로 수행하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자기 지위를 내려놓아 버리면 전직 대빵에 대한 예우도 그렇고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여러 모로 난감해질 텐데.
이 방면으로도 자꾸 이변이 터지는 듯한 느낌이다. 특히 일본의 경우 일왕이 인간선언을 한 지 70년 만의 일이다.

일왕 중에는 전임인 히로히토, 교황 중에는 요한 바오로 2세가 재임 기간도 길었고 격변의 20세기 중후반 동안 엄청난 임팩트를 남겼다. 후임 중에 아직 이들만 한 행적을 남긴 사람은 없다. 물론 아직 시간이 충분히 흐르지도 않기도 했고.

그래도 재위 기간과 영향력으로 치면 이들조차도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앞에서는 다 버로우 타야 할 것이다. 자기 나라에서 올림픽이 두 번 열리는 걸 봤으며, 또한 국가 원수로서 2차 세계 대전과 유튜브, 트위터, 스마트폰 시대를 다 경험한 할머니이다.
자기 재임 기간 동안 미국 대통령을 도대체 몇 명이나 거쳐 갔는지도 모를 지경이고. -_- 무려 1920년대생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백 선엽 장군, 송 해 씨 같은 연배와 짬인데, 은퇴도 안 했다.

8.
(1) 주민등록증과 (2) 운전 면허증과 (3) 여권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개인을 법적으로 식별하는 데 완전히 동등한 효력을 가지는 신분증이다. 하지만 이들은 개인을 입증하는 관점 내지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특성과 장단점이 있다.
민증은 한번 만들어 놓으면 기본적으로 평생 가지만, 면허증은 소지자가 주기적으로 운전 능력을 입증하는 '갱신'을 해야 하며, 여권은 유효기간이 지나고 나면 재발급을 받아야 한다.

세 신분증들 중에 발급하는 데 금전적인 부담이 가장 많이 드는 것은 여권이다. 또한 여권은 신분증들 중 유일하게 카드가 아닌 수첩 형태이며, 소지자의 집 주소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 분실을 대비해 국내 거주지와 연락처를 기재하는 란이 있긴 하지만, 이건 optional한 정보이기 때문에 주민등록상의 소재지를 정확하게 담고 있지는 않다. 쉽게 말해 국내 거주지가 바뀌었다고 해서 여권을 업데이트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과거에 자동차가 몹시 비싸고 귀하고 자동차 운전사가 완전 고소득 전문직이던 시절엔 면허증의 희소성이 매우 높았다. 그러던 것이 자동차가 넘쳐나고 개나 소나 운전을 하게 되면서 면허증이 거의 민증을 갈음하는 보편적인 신분증의 지위에 오른 것이다.
단, 면허증이 제아무리 흔해 빠진 신분증이 됐다지만 얘는 자동차를 몰 정도의 최소한의 신체· 정신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은 소지할 수 없다.

군대를 예로 들어 보면, 정말 대한민국 남자라면 '개나 소나' 다 의무적으로 가는 곳이지만, 반대로 눈 하나 없거나 엄지손가락 하나만 없어도 결코 갈 수 없는 곳이 되지 않던가? 이와 비슷한 격이다. 면허증은 신분증들 중엔 능력에 의한 진입장벽이 가장 높다.

한편, 우리나라가 못살고 외국 여행을 함부로 할 수 없던 시절엔 여권도 면허증 만만찮게 능력 진입장벽이 높았다. 당장 비행기삯은 차치하고라도 유학, 이민, 사업 출장 같은 걸 아무나 할 수 있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여권 역시 아무나 언제든지 바로 만들 수 있게 된 지 오래다. 외국 나갈 일이 없는 사람들이 '안 만들' 뿐이지, 만들고 싶은데도 '못 만드는' 사람은 없다. (상습 여권 분실로 인한 페널티에 걸리지 않은 한)

이들에 비해 민증은 제일 범용적이고 원천적이다. 면허증은 do 지향인 반면, 민증은 순수하게 be 지향이기 때문이다. (뭐, 더 정확하게 쓰자면 면허증은 may do를 나타내고 자격증은 can do를 나타낸다는 차이도 있다.)
문득 신분증들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 생각이 나서 글을 써 봤다. 이를 영적으로 적용하면 구원받는 것도 자격증을 따는 게 아니라 순수 신분증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겠다.

한 2000년대부터 국가 차원의 공신력이 있는 신분증에 들어가는 증명 사진은 당사자의 귀가 반드시 노출돼 있어야 하고, 배경은 어떻고 시선은 어떻고 옷차림은 어떻고... 같은 엄격한 가이드라인이 제정되어 적용되기 시작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건 여권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관행이다. 전자 여권의 도입 때문인지, 9· 11 테러 때문인지 무슨 계기로 이쪽 규정이 더 엄격해졌는지가 궁금하다.

9.
옛날에.. 사회 행정 금융 시스템이 몽땅 전산화되고 사회 곳곳에 CCTV 같은 게 생기기 전엔 나쁘게 말하면 온갖 편법과 비리가 횡행했다. 보는 눈이 없고 악행의 증거를 객관적으로 챙길 방법이 없어서 말이다.
단적인 예로, 세리들은 규정된 것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걷어서 차액을 '삥땅'할 수 있었다. 그래서 걔들은 비록 부유할지언정 성경이 기록되던 시절부터 이미 민족의 반역자 취급을 받아 왔다.

그런데 세금을 걷는 관원의 입장에서 역으로 실드를 쳐 주자면.. 그렇게 백성들을 잠재적 탈세자로 악하게 보고 가혹하게 착취하지 않을 경우, 소수의 진짜 나쁜놈들이 실소득을 속이고 고의적인 탈세를 저지르는 걸 감지하고 예방할 방법도 없었다. 이러니 전근대 시절엔 농민과 관리 사이의 빈부격차가 넘사벽이고 백성들의 삶이 헬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산화라는 게 없던 시절에는 열악한 검증 능력과 느린 행정 속도를 교묘하게 역이용해서 Catch me if you can 같은 초대형 사기를 치는 괴수가 있을 수 있었으며, 또 나쁜 쪽뿐만 아니라 좋은 쪽으로 예외와 일탈도 존재 가능했다.
간단한 예로는 박카스 광고라든가 영화 <진주만>에서 나오는 것처럼 원래는 규정상 안 되는데 샤바샤바 해서 이름을 추가해 넣고 군대에 쓰윽 입대하는 거 말이다.
자서전을 보면 지 만원 박사도 어렸을 때 그런 편법 유도리 덕분에 육사 같은 상급 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고 그런다.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다.

옛날엔 어느 인심 좋은 시골 의사가 환자에게 "님은 그냥 잘 챙겨 먹는 게 약입니다" 이러면서 아예 돈을 처방해 주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이랬다간 아마 의료법 위반으로 잡혀갈 것이다.
공항에서는 아무리 다 쓰러져 가는 허약한 노인이라 해도 모르는 사람의 짐을 들어 주면 안 됨. 마약 던지기 범죄에 연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옛날에 1차 세계대전 시절에는 공중전이라는 게 처음 등장했는데 텅 빈 하늘에서 전투기 조종사들끼리 마치 중세 기사의 공중 버전마냥 기사도가 잠시 꽃폈다. 도전장을 공군 기지에다 떨어뜨리고 정정당당하게 기다리고 있다가 도그파이트가 벌어지고..;; 하긴 그때는 똑같이 사람을 죽이더라도 은폐 저격은 비열하고 치사한(!) 짓거리라는 참 순진 낭만하던 생각이 통용되던 시절이어서 그렇다. 그래서 그런지 지상에서는 지휘관들이 봤으면 뒷목 잡고 쓰러졌을 '크리스마스 휴전'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1914년, 개전 직후 첫 해 일회성으로 그쳤지만).

19세기 말 미국에서는 웬 노턴 1세 황제(1819?-1880)라고 미국의 황제를 자처한 기인 아저씨가 레알 기성 정치인들의 입지까지 위협할 정도로 인기를 얻으면서 자칭 황제 행세를 하다가 갔다. 이게 진지하다면 내란죄에 근접해 보이고, 개그라면 허 경영 같은 과대망상 병맛 느낌도 들지만, 그는 위험하지 않으면서 허 경영보다는 100배는 더 제정신이고 훌륭한 인품을 지닌 사람이었다. 요즘 시대라면 나타나기가 더욱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 같다.

지금 사회가 점점 더 자극적이고 관능적인 걸 쫓아가며 물질 황금만능주의로 치닫고는 있으나, 과거의 예외적인 깨알같은 인간미 추억에만 연연하느라 그 사회 시스템이 전산화 이전 시절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회는 믿음과 양심이 필요한 형태가 아니라 법과 규정과 시스템대로만 돌아가는 형태로 바뀌는 게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과정이나 동기를 일일이 따질 시간은 없고 오로지 결과만이 중요하다.

10.
본인은 법학도가 아닌 관계로 잘은 모르겠지만.. 아래와 같은 개념은 마치 경제에서 성장과 분배 비율, 직접세와 간접세의 비율을 논하는 것만큼이나 딱 떨어지는 정답이 없고 사람 취향을 많이 타는 논쟁거리가 아닌가 생각된다.

  • 사법거래: 비록 쳐죽여도 시원찮을 큰 죄를 지었더라도, 여죄를 순순히 자백해서 행정력 낭비를 줄여 주고 공범 검거 같은 추후 수사에 큰 기여를 했다면 형량을 많이 줄여 준다. 전근대적인 고문이 말 그대로 채찍이라면, 사법거래는 당근에 해당되겠다.
  • 함정수사: 경찰 측이 용의자 내지 일반 시민에게 미끼를 던져서 일부러 죄를 짓도록 유도한 뒤, 누가 미끼에 걸리면 이때 뿅 나타나서 잡아 족친다. 암행 단속을 위해 단순히 사복 차림 내지 일반 차량으로 위장만 한 차원이 아니다.

사법거래는 공권력이 개인의 유죄를 입증하는 데 소요되는 공권력 행정력의 낭비를 줄여 준다는 점에서는 좋다. 억지로 옷을 벗기는 것보다는 당사자가 스스로 옷을 벗게 만드는 게 좋듯이 말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정의 구현이 핵심인 형사 사건에다가 "서로 좋은 게 좋은 거잖아" 식의 실용주의 경제 논리를 적용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사법 제도와는 무관한 시스템이지만 비슷한 예로 '기여입학'이 있다. 얘는 당연히 학문의 전당에다가 실용주의 경제 논리를 적용한 거라는 비판이 있다(돈으로 해결 가능하지 않아야 하는 영역에 돈을??). 미국은 사법거래와 기여입학이 모두 활성화돼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아직 천민 자본주의의 때가 완전히 벗겨지지 않은 곳에다 이를 적용하는 건 좀 무리인 듯하다.

경찰이 하는 일은 창과 방패 중 거의 언제나 방패 역할에 국한돼 있다. 오목으로 치면 늘 흑이 아닌 백돌만 잡는 격이다. 하지만 어떤 범죄는 이런 불리한 위치에만 있어서는 증거를 확보하고 적발하고 뿌리뽑기가 대단히 힘들고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경찰이 불가피하게 좀 더 적극적이고 사악(?)하게 나간다. 개인 단위의 단순 잡범이나 흉악범을 잡는 것보다는, 마약이나 조직적인 위조지폐, 탈세, 간첩처럼 범죄 조직이 뿌리깊게 얽혀 있고 말단의 행동대원 한두 놈 잡는 걸로는 일망타진이 되지 않는 범죄가 그 대상이다. 이쪽으로 일이 더 전문화되면 그건 경찰이 아닌 방첩기관의 영역이 된다.

특히 마약은 굉장히 가혹하다. 거의 연좌제에 가까운 수준으로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람은 진심· 본의 따위는 묻지 말고 몽땅 잡아 가두는 식으로 수사하지 않으면 조직을 송두리째 소탕할 수가 없는가 보다. 그러니 함정에 걸리지 말라는 차원에서, 공항에서 짐을 옮겨 달라는 부탁조차 절대로 들어 주지 말라고 나라에서 홍보를 하는 것이다. "니가 마약을 했느냐 안 했느냐"가 아니라 "마약이 결과론적으로 너를 통해서 옮겨졌느냐"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참 매정하고 비인간적으로 보이지만 공권력은 그 존재부터가 이미 필요악이다(세금을 안 내거나 지금보다 훨씬 더 적게 내는 꿈같은 세상이 상상이 되는가?). 그런 걔네들이 또 다른 필요악을 동원하는 것 자체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어 보인다. 경찰은 존재감 없이 있는 증거만을 토대로 수사해야 하는데, 적극성이 너무 커져 버리면 없는 증거를 조작해서 만들어 내는 수준까지 갈 테니 그건 또 경계해야 할 사항이다.

끝으로, 우리나라는 정당방위에 굉장히 인색한 반면, 애초에 총 들고 자기 집 지킨다는 관념이 강한 미국은 그에 대한 판정이 매우 관대하다. 이것도 사법거래· 기여입학· 함정수사 등에 대한 인식만큼이나 문화적인 차이 되겠다. 그래도 미국 쪽이 전반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책임과 자율을 더 강조하는 선진적인 체계인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7/01/08 08:29 2017/01/08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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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국은 섬나라이고 전통을 아주 좋아하며,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좌측통행을 하고 내부적으로 여러 왕국들로 갈라져 있어서 독립하네 마네 다투는 등, 유럽의 여느 나라와는 달리 독특한 점이 많다. 일찌감치 교황과 결별하여 정치· 종교적으로 내륙과는 별개노선을 갔으며, 리즈 시절에 그야말로 대영제국을 이뤘고 영어라는 자기네 언어와 킹 제임스라는 성경을 전세계에 퍼뜨린 것은 정말 비범한 면모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영국은 역사적으로 볼 때 혼자 국제(= 유럽 대륙) 추세를 거스르면서 좀 고집 부리고 삽질한 사례도 있었다.
(1) 먼저 달력 얘기부터. 잉글랜드는 그레고리력의 도입 시기가 무려 1752년으로 유럽에서 압도적으로 제일 늦은 꼴찌였다(무려 100수십 년). 율리우스력보다 오차가 더 적고 정확한 역법임에도 불구하고 종교적인 원수지간인 교황이 만든 달력을 선뜻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마 가톨릭이 워낙 절기를 많이 따지는 종교이기도 하고, 교황은 전세계에서 날고 기는 똘똘한 고위 성직자들 중에서 선출되기도 하니.. 천체의 운동을 계산하는 덴 머리가 비상하게 잘 돌아갔는가 보다.

영국의 대문호인 윌리엄 셰익스피어, 그리고 스페인의 대문호인 세르반테스는 동갑은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1616년 4월 23일, 같은 날에 세상을 떠난 걸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세르반테스는 그레고리력 기준의 날짜이고 셰익스피어는 아직 율리우스력 기준의 날짜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 실제로 같은 날에 24시간 이내의 시간차를 두고 죽은 건 아니라고 여겨진다. 뭐, 그래 봤자 기일의 차이는 2주를 넘지 않았을 것이고, 서로 다른 달력 체계에서 그렇게라도 날짜가 일치하는 것만 해도 용한 일이긴 하다.

돈키호테가 전편이 1604~05년에 출간됐고 후편은 1615년, 작가가 죽기 딱 1년 전에 완간되어 나왔다. KJV가 출간된 1611년과 동시대 되겠다.
단, 셰익스피어는 그 당시에 자국에서 출간되던 킹 제임스 성경과 관련해서 딱히 기여한 건 없는 걸로 여겨진다.

(2) 1749년엔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이 피뢰침을 발명했는데.. 피뢰침의 끝을 뾰족하게 만드느냐 뭉툭하게 만드느냐가 과학자들 사이에 논쟁거리가 되었다.
여기서 영국은 뭉툭한 피뢰침을 한동안 고집했다. 이유는.. 그게 과학적으로 옳아서가 아니라, 영국 황실에 반역하고 독립을 선언한 미국 식민지 역적놈이 뾰족한 걸 쓰기 때문이었다. 으음..

영국이 이런 사소한 데서 은근히 병맛스러운 고집을 많이 부렸구나. 무슨 에디슨과 테슬라의 교류 직류 논쟁도 아니고. 우리나라에만 당파 싸움이 있었던 게 아니다.
그러니 걸리버 여행기가 릴리풋 왕국(소인국) 편에서 계란 껍질을 어느 쪽부터 까는지를 갖고 대판 싸우는 풍자 장면을 넣었지 싶다. 그 당시 영국 상류층 사회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설정이다. 컴퓨터계에서 유명한 엔디언(비트 순서)이라는 단어가 여기에서 유래된 걸로 유명하다.

그런데, 나는 당연히 뾰족한 피뢰침이 과학적으로 집전 성능이 더 뛰어나고, 미국의 승리에 영국의 삽질로 알고 있었는데.. 영문 위키백과를 보니까 꼭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한다.

(3) 끝으로 20세기. 영국은 남극점 최초 정복 타이틀을 듣보잡 노르웨이 사람에게(로알 아문센) 빼앗긴 것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아문센에 대해서 대놓고 인신공격 음해 언플을 벌인 건 물론이고, 학교 교과서에다 자국의 스콧이 남극점에 먼저 도달했다고 대놓고 주작 왜곡 거짓말을 가르치기까지 했다. 그러다 이웃 나라들로부터 극심한 비웃음을 견디다 못해 슬쩍 고쳤다. 이 정도면 6· 25 북침 왜곡쯤은 약과인 거 같다.

그러니, 이런 영국은 자기들이 표준궤나 표준시 같은 세계 표준을 만들면 만들었지, 남이 만든 표준은 잘 안 쓴다. 도량형에 미터법도 안 쓰고, 화폐단위는 여전히 파운드를 고집하며 최근에는 유럽 연합에서 탈퇴까지 감행했다. 이런 조치에 대한 호불호 내지 정치적인 옳고 그름을 논할 생각은 없다. 단지, 쟤들이 그러고도 남을 친구들이라는 심정이 이해된다.

2.
영국 하면 왠지 빨강이 떠오른다. 레드 코트, 적기 조례 등등..
그래서 보너스로 red와 대응하는 다른 색들과 그 심상· 용도로는 어떤 게 있을까? 언어에도 유의어와 반의어라는 관계가 있는데 이런 거 찾아보니까 결과가 재미있다.

  • 황색: 주의와 경고(축구 반칙 카드)
  • 백색: 적혈구와 백혈구, 적색거성과 백색왜성(천문), 러시아 적백 내전, 전방과 후방에서 교통수단의 등화 차이(브레이크등/전조등· 후진등)
  • 흑색: 지나친 G로 인한 블랙아웃과 레드아웃(항공우주), 빨강-검정 나무 자료구조(전산), 홍차의 한국어와 영어 표현 차이. 비행기 블랙박스는 사실은 검정이 아니라 찾기 쉬우라고 고채도 홍/황색 계열 도색임.
  • 녹색: 적십자와 녹십자, 적록 색맹, 적조와 녹조, 횡단보도 신호등, 엘리베이터나 주식에서 상하 관계
  • 청색: 수도꼭지와 정수기에서 온수와 냉수, 각종 게임에서 양 진영의 깃발 색깔, 남녀(단, 성차별적이라고 요즘은 색깔 구분은 안 하는 듯), 헤모글로빈과 헤모시아닌 기반 혈액

3.
독자 여러분은 개를 식용하는 것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는가?
본인의 생각을 말하자면 개 역시 인간이 필요에 따라 키우는 여러 가축 중 하나이고, 동시에 필요한 경우 여러 단백질 공급원 중 하나일 뿐이다. 얘만 특별하게 취급돼야 할 필요는 없으며, 하물며 같은 개 중 일부 품종은 애완견용이고 일부는 식용으로 분류해야 할 필요조차 없다고 본다. 애완견이 특별히 영양학적으로 독이라도 들어있어서 못 먹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개는 특별히 똑똑하고 충성심이 뛰어나고 인간과 닮았고 무슨 감정이 있고 어떻다고..? 그게 그렇게까지 특별한 메리트가 되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개가 아무리 사랑스러워 봤자 인간과는 달리 죽으면 완전히 소멸이며, 내세에서 다시 인격체로서 만나 보지도 못한다. 또한 잡아먹히는 개가 불쌍하면,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인간에게 착취당하고 잡아먹히는 다른 동물들은 뭐가 되는가?

애견 동호인 분들께는 죄송한 얘기지만, 개만 유독 집 밖이 아닌 집 안에 들여놓고, 그걸로도 모자라 옷 입히고 고기까지 먹이면서 키우는 건 그거야말로 개를 잡아먹는 것보다 더 비인간적이고 비정상인 현상으로 보인다. 헐벗고 굶주리고 못사는 '사람'도 부지기수인데..! 애완견 키우는 분들이 다 그렇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지만 애완견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는 사람들이 다른 선과 악이나(절대악과 필요악) 생명 우선순위를 논하는 데서는 좀 이성이나 판단력이 이상하게 비성경적인 쪽으로 꼬이는 경향이 있다. 뭐, 브리짓 바르도 같은 아줌마는 그 중에서도 평균 이상 굉장히 막장으로 추해진 사례이고.

더구나 선진국들에서는 휴가철만 되면 유기견들 처리하느라 난리도 아닌데, 지금 시국에서는 개가 진정 불쌍하다면 애견인들이 "개 잡아먹지 말라"에 앞서 "개를 버리지나 마라/말자"부터 더 강조해야 하지 싶다. 식용으로 잡아먹히는 거나, 약물 주입으로 안락사 당하는 거나(주인을 못 찾아서, 혹은 주인이 고의로 인수를 거부해서) 죽는 건 똑같다.

무슨 성매매를 합리화하고 공창을 만들듯이 개 도축도 규격을 정하고 완전히 법의 양지로 끌어올리자는 얘기가 진작부터 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렇게 개도 FM에 규정된 대로 잡아먹는 나라요"라고 대외적으로 홍보를 하는 건 동네 창피한 일인 걸로 간주되는 듯하다. -_-;; 마치 눈치 보느라 흉악범 사형 집행조차 못 하듯이. 개 잡아먹는 게 그렇게도 부끄러운 일인가? 좀 민망한 현실이다. (난 개고기는 일부러 피하지는 않고 회식 자리에서 있으면 먹는 정도로 먹는다.)

4.
사람들이 자기가 실제로 소유한 것보다 더 많이 소유한 것처럼 남에게 허세 부리고 싶어하는 심정은 어디에나 있는 듯하다.
예비군들은 전투복에 자기가 이수하지 않은 온갖 특기 마크를 덕지덕지 붙여서 일명 전투복 튜닝을 하고.. 군 내부의 높으신 분들도 비슷한 맥락으로 온갖 훈장들을 제복에다 주렁주렁 붙인다.

이런 맥락으로, 자동차의 경우 엠블럼이나 머플러를 튜닝해서 실제 성능보다 더 고성능인 차인 것처럼 위장을 하는 경우가 많더라.
내 또래의 직딩이 어떻게 쏘나타 2400cc 내지 제네시스 쿠페 3800cc를 굴리나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머플러와 엠블럼만 교체해서 상위 사양인 것처럼 보이게 했을 뿐, 실제로는 2000cc 차였다.

지금까지 에쿠스 5000cc를 생각보다 자주 본 적이 있었다. 이것들 중에도 실제로는 기본 사양 3800cc이지만 엠블럼 위장을 한 놈이 있을지 모르겠다. 에쿠스는 제로백이 5~6초대인데, 성능이 성능이니만큼 3800cc와 5000cc는 제로백이 약 1초 가까이 차이가 난다고 한다. 길이가 5m가 넘는 거대한 차량이 밟으면 그렇게 쑥 가속을 받고 튀어나간다는 게 상상만 해도 신기하다. 괜히 고성능이 아니다.

자가용 승용차는 배기량이 높아질수록 성능은 좋아지지만 연료 소모량이 증가하여 연비도 떨어지며, 무엇보다도 자동차세도 왕창 붙어서 유지비가 증가한다.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가서 크기가 3종류인 집을 구경하니 마치 2000cc, 2400cc, 3000cc 차급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차량의 배기량 위장은 당장 도로에서의 안전을 위협한다거나 무슨 계급 위조 및 사칭만치 해로운 짓은 아니기 때문에 딱히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5.
옛날 자동차와 지금 자동차를 비교해 보면 엔진이 동일 배기량으로도 출력과 연비가 비약적으로 향상되고 승차감이 좋아졌으며, 그러고도 환경오염은 덜 시키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엔진의 구동 원리는 1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피스톤 왕복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않아 있다. 또한 엔진의 회전력과 토크를 바퀴를 굴리는 데 적합한 형태로 변환해 주는 변속기도 수동은 톱니바퀴, 자동은 유압 토크 컨버터로 형태가 정착해 있다.

이런 관행을 바꾸려는 시도를 한 이의를 제기하는 대표적인 발명으로는 방켈/반켈(Wankel) 또는 로터리라고 불리는 엔진이 있다. 피스톤이 동그란 삼각형 모양으로 생겼고 얘가 두 바퀴가 아니라 한 바퀴를 돌면서 흡입-압축-폭발-배기 행정을 해치운다. 그건 좀 2행정 엔진을 닮았다.

로터리 엔진은 왕복 운동을 회전 운동으로 힘들게 변환하는 계층이 필요하지 않으며 연료의 폭발을 더 직관적으로 회전 운동으로 연결해 준다. 그래서 배기량 대비 엔진의 출력이 더욱 높다는 장점이 있으나.. 기계적으로 만들기가 더 어렵고 엔진 부품의 마모가 더 심하고 유지비가 많이 들어서 엔진의 주류로 등극하지는 못했다.
장점이 있긴 하지만 아직 단점이 더 커서 실용화되지 못하고 있는 기술이라는 점에서는 무탄피 총알과도 비슷해 보인다.

또한 변속기에도 일명 CVT라고 불리는 '무단 변속기'가 있다. 얘는 N개의 단을 나타내는 이산적인(discrete) 톱니바퀴로 변속을 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원뿔대 모양의 체인에다가 벨트를 걸어서 최고단과 최저단 사이의 아무 동력비라도 표현할 수 있게 했다.
얘는 의도한 대로 잘만 만들 수 있다면 변속 충격 없이 자동 변속기처럼 부드러우면서, 연비는 수동 변속기처럼 좋은 이상적인 동력 변환 계통을 구현할 수 있다.

하지만 CVT 역시 변속기의 주류가 되지 못한 건 다 기술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얘는 대형차의 고출력 엔진에 적용되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으며, 여전히 경차· 소형차급에 머물러 있다. 자전거만 해도 체인이 견딜 수 있는 힘보다 너무 강한 힘으로 밟으면 체인이 미끄러지거나 심하면 파손되지 않던가? CVT는 그런 게 기존 변속기보다 더 취약하다는 뜻이다. 예전에 인천대교에서 퍼져서 대형 사고를 일으켰던 마티즈 CVT 때문에 CVT에 대한 더 나쁜 편견과 오해가 생기기도 했다.

아무튼, 내연기관에 왕복 운동이 아니라 회전 운동을 직통으로 만들어 내는 로터리 엔진이라는 게 있는데.. 전기 모터에는 회전 운동이 아니라 직선 운동을 직통으로 만들어 내는 모터가 있다. 바닥에 달린 유도 레일을 따라 출력을 발생시키는 이 모터를 '선형 유도 모터'라고 한다.

초전도 자기부상열차는 모두 선형 유도 모터(LIM) 기반이다. 하지만 그런 방식이 아닌 경전철도 LIM 기반인 경우가 있으며, 국내의 경우 용인 경전철이 대표적인 예이다.
일본에서는 L0계라고 불리는 '주오(중앙) 신칸센'이 개통하여 최고 시속이 무려 600km를 넘어섰다. 주행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창문은 무슨 비행기 창문처럼 작아졌으며, 앞뒤로 운전실이 없지만 그래도 앞뒤 경치를 구경할 수 없다.

그리고 열차의 앞뒤는 비행기보다도 더할 정도로 극단적으로 납작하고 뾰족해졌다. 기계가 들어갈 공간, 승객이 탈 공간을 좀 뺏겨도 좋으니 어떻게든 공기 저항을 극단적으로 줄이려고 발악에 가깝게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공기 저항은 고속 주행 교통수단의 최악의 적이며, 속도가 올라갈수록 저항도 급격히 커지기 때문이다. 비행기는 그래도 대기가 상당히 희박해져 있는 고도에서 날지만 열차는 공기 농도가 제일 짙은 지표면을 달리지 않는가?

한때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리니어'가 선로가 커브가 전혀 없이 곧은 직선이라는 뜻이라고 아주 말도 안 되는 오보를 내보낸 적이 있었다. 10여 년 전에 <인천 관광 2009년부터 전차로>라는 기사를 내보내면서 군용 탱크 사진을 내보냈던 것과 같은 급의 병크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01/05 08:35 2017/01/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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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부정행위

우리나라에서 사람 인생에 큰 영향을 주며 이 때문에 부정행위도 많은 대표적인 전국구 시험은 수능과 토익이 아닐까 한다. 수능은 10여 년 전인 2004년 11월에 치러진 2005년도 시험에서 200여 명에 달하는 수험생이 조직적으로 컨닝을 한 게 뒤늦게 적발돼서 전국적으로 난리가 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벌어졌던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과 더불어 국가적인 흑역사가 아닐 수 없다.

수능 부정 적발은 뒤끝도 굉장히 오래 간 걸로 기억한다. 이미 대학에 갓 입학한 학생이 수능 무효로 인해 입학이 취소된 건 차라리 양반이다. 더 옛날에 그냥 넘어갔던 것까지 조사를 해 보니, 심지어 대학을 졸업하고 그 경력으로 학사장교로 들어가기까지 했는데 뒤늦게 수능 무효 → 대학 입학과 졸업 무효 → 학사장교도 무효로 테크트리가 모조리 아작난 사례도 있다. 이건 학력위조 적발로 인한 임관 무효 말고, 또 별개로 있었던 사례다.

저 부정행위의 여파로 인해 수능 시험엔 일체의 전자기기가 한 치의 자비심 없는 절대금기가 되었다. 특히 시험장에서 휴대전화란 마치 공항 세관에서 마약, 군대 훈련소에서 담배와도 같은 악의 축 취급을 받게 됐다. 굳이 벨소리가 나지 않아도, 끄고 배터리까지 분리해 놨더라도, 1교시 시작 전에 전화기를 제출하라고 곱게 말로 할 때 제출하지 않은 게 적발되면 무조건 각서 쓰고 퇴장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부정행위 정황이 있건 없건 이번 수능은 무효가 되니 내년에 다시 쳐야 된다.

사실 이마저도 죄질이나 처벌 수위가 가장 약한 '규정 위반'에 속하기 때문에 이번 수능만 무효 처리되고 끝나는 거다. 하물며 대놓고 부정행위를 한 게 적발된다면 올해뿐만 아니라 1년간 추가로 수능 응시 자격 상실이 뒤따른다.
그런데 매년 전국에서 수~열몇 명 정도는 바보같이 휴대전화 규정이 걸려서 퇴장 당하는 안습한 사람이 꼭 나온다고 한다. 자기가 아니라 부모님이 넣어 놓은 휴대전화가 뒤늦게 발견된다거나..;;

시험 부정 행위는 크게 다음과 같은 네 카테고리로 나뉜다.

  • 혼자: 시력, 컨닝페이퍼
  • 다른 수험생과 짜고: 답안지 보여주기, 특정 동작으로 신호
  • 다른 외부인과 짜고: 무선 통신, 대리 시험
  • 시험 관계자와 짜고, 혹은 시험장 "밖에서" 혼자: 아예 문제와 답안 유출, 답안지 바꿔치기

'혼자' 테크닉을 봉쇄하기 위해 같은 문제지도 A형과 B형으로 막 나뉘어 배부된다. 같은 문제를 풀더라도 수험생이 마킹하는 답안이 제각각이 되게 말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치면 소스 코드의 난독화 테크닉과 비슷하다.
그리고 컨닝페이퍼를 책상 주변에다 미리 만들어 놓으려는 시도를 분쇄하려고 학생들의 고사장 좌석도 랜덤화한다. 마치 Windows Vista에서 도입된 실행 주소 랜덤화 기법이 떠오른다.
옛날에 초딩 시절에도 도학력고사 같은 큰 시험은 아예 반을 싹 바꿔서 쳤던 걸로 기억한다.

수험생간에 필기구가 가리키는 방향, 기침, 시선 등으로 신호를 주고받는 건.. 물증이 없는데 감독이 어지간히 눈썰미가 있지 않으면 혐의를 어떻게 입증해서 어떻게 잡아 내는지 궁금하다. 주고받는 학생들도 언제 걸릴지 모르는데 완전 조마조마한 상태에서 어떻게 그 짓을 할지? 멘탈이 어지간히 강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위의 1~2단계는 제끼고 최소한 외부인과 공모하는 3단계부터 시작한다. 초소형 카메라와 도청 장치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한 덕분이다. 덕분에 시험장에 출입할 때는(특히 중간에 화장실에 갔다 올 때) 애들을 공항에서 검문하듯이 X선 금속 탐지기라도 통과시켜야 할 판이다.
하긴, 굳이 시험이 아니어도 노름판 같은 데서도 이런 방식으로 사기 치는 놈들이 많긴 하다. 몰래 카메라로 상대방의 패를 다 본다거나, 밖에 있는 고수에게 바둑판을 보여주고 훈수를 듣는다거나.

차량은 시험장과 적당히 떨어져 있는 외부에서 통신을 주고받는 부정행위 공범에게 훌륭한 엄폐성과 주거성을 제공하는 도구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 부정행위 사건 이후로는 시험 시간 동안엔 시험장 주변의 반경 200m 이내에는 차량의 주정차도 전면 금지되었다. 이건 단순히 소음 방지가 아니라 이런 보안을 고려한 측면이 있다. 소음이 문제라면 차량 통과 자체를 금지시켜야지?

아예 시험지나 답안지를 사전에 빼돌리는 건 방송으로 치면 어지간한 방송 사고를 넘어 전파 납치 같은 급의 엄청난 범죄가 된다. 굳이 관계자를 매수하는 것뿐만 아니라 혼자 건물에 침입하는(!!) 짓도 여기에 해당되는데, 우리나라는 최근에 이런 사건도 두 번이나 발생한 바 있다.

대표적으로 전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사건은 2013년 말에 발생했던 연세대 로스쿨 캐비닛 사건 되겠다. 문제의 그 학생은 변호사 시험도 아니고, 학교 내부 시험 문제를 빼돌리려고 교수 연구실에 몰래 침입해서 컴퓨터에다 해킹 프로그램을 설치하려 했다. 연구실 도어락의 비번은 그 교수가 문을 열고 있을 때 옆에서 몇 차례 몰래 훔쳐봐서 '시력'으로 익혔다고 한다.

그런데 으슥한 밤에 웬 학생이 혼자 교수 연구실에 들어가는 걸 동일 로스쿨의 다른 학생이 우연히 보고 수상하게 여겨서 경비 직원에게 신고했고, 경비원이 출동했다. 경비원들이 오는 소리가 들리자 그 대담한 학생은 근처의 캐비닛 안에 황급히 들어가 숨었지만... 결국은 덜미가 잡혔다. 들켰을 때의 심정이 어땠을까? "당신은 누구요?" 개쪽에 개망신에;;;

걔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어디서든 1등이란 걸 놓쳐 본 적이 없었댄다. 물론 이전에 치른 시험들도 부정행위의 도움으로 1등을 한 게 있었겠지만 모든 성적이 송두리째 조작은 아닐 것이고, 그 친구도 기본적인 머리와 실력이 있으니 컨닝 없이도 올백· 올1등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상위권은 유지 가능했을 것이다.

학부는 당연히 서울대 졸업. 허나 로스쿨은 서울대를 못 가고 겨우 연세대에 그친(?) 것에 무척 애석해하면서 재수를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로스쿨은 어딜 가든 그야말로 전국에서 날고 기는 공부 기계 암기 괴물들의 집단이 아니던가? 법학 전공도 아닌 그에게는 서울대가 아니라 연세대 로스쿨도 감지덕지이고 엄청난 학업량을 따라가기가 버거운 곳이었다.

결국 그 친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1등 강박관념을 유지하기 위해, 어찌 보면 지금까지 늘 해 오던 대로 저런 짓까지 감행하게 됐고 그게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 그는 당연히 징계 제적을 당해서 짤렸으며 법조계 쪽으로는 영원히 발을 들일 수 없게 됐다. 몇 년 전에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 가해자가 출교 당하고 의료계에서 매장 당한 것과 같은 처지가 됐다.

이 소식을 접한 동기생들은 그를 그냥 '캐비닛'이라고 부르면서 혀를 차고 허탈해했다. "그럼 그렇지 어떻게 저렇게 시험만 쳤다 하면 올A+을 제조하는 천재일 수가 있나 싶었는데 역시 제 실력이 아니었구나. ㄲㄲㄲㄲ"
그는 최종적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동기생 출신인 본인의 모 지인에게 듣기로는, 걔는 IT 쪽으로 뭔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헐.. 뭘 해도 근성과 끈기는 있으니 나쁜 짓만 안 하면 성공은 하겠다..;;

캐비닛 사건이 가라앉고 얼마 뒤엔(2016년 3월) 웬 공무원 지망생이 정부 서울 청사 인사혁신처에 몰래 침입해서 자기 점수를 고치고 합격자 명단 문서 파일에 자신을 올려 놓다가 결국은 잡혔다. 이 사람은 공부는 그 연세대 캐비닛만치 잘한 것 같지 않지만, 잔머리와 대담성은 어쩌면 캐비닛을 능가한다고도 감히 말할 수 있다. 도대체, 무슨 약 빨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서 그 정도로 실행했는지 그 엽기성과 대담함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 서울 청사는 나름 청와대와 같은 급의 보안 시설인데 내부 헬스장에서 직원의 출입증을 훔치고, 경비가 허술한 시간대에 여러 사람들 사이에 껴서 뒷문으로 들어가는 식으로 감시를 피했다. 게다가 캐비닛의 경우 강의동 건물 자체는 출입이 가능하니 훔쳐보는 걸로 방 비번을 알 수 있었지만, 저 공시생은 처음 들어가 보는 정부 청사 안에서 하필 청소부가 편의를 위해 버젓이 적어 놓은 비번을 이용해 방에 침입해 들어갔다고 한다. (직원이 출근하기 전에 미리 방에 들어가서 청소를 끝내 놔야 하므로)

게다가 이 사람도 과거 이력은 더 화려했다는 게 밝혀졌다. 꾀병으로 약시 진단서를 받고 기간을 위조까지 해서 각종 시험에서 응시 시간을 1.5배 더 받았다. 다음으로, 매 시험의 1배수 시간이 끝날 때마다 수능 문제의 정답이 인터넷에 공개된다는 점을 이용하여, 그때 화장실에 가서 사전에 잘 숨겨 놓은 휴대전화로 인터넷에 접속 후 답을 알아 와서 마킹을 했다. 이런 허점을 찾아냈다는 것 자체가 보통 잔머리가 아닌 거 같다~!
또한 대학 진학 후에 7급 공무원 시험의 지역 예선급 시험을 학원에서 칠 때는 대놓고 문제 유출까지 해서 압도적인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러니 여죄를 수사한 경찰들부터가 경악하고 "얘는 국정원 같은 데에 특채 좀 시켜야겠다 ㄲㄲㄲㄲ" 이런 반응을 보였을 정도였다. 거기는 그야말로 위장과 조작이 직업인 곳이니, 혹시 사법 거래라도 하면 난폭운전 폭주족을 F1 서킷으로라도 보내는 인재 활용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_-;;

그야말로 영화 Catch me if you can을 떠올리게 하는 행적이 아닐 수 없다. 그 영화의 배경에서는 그래도 사회 시스템이 전산화되기 전이었으니 그 짓이 가능했을 뿐이다. 지금은 서버 DB를 직접 해킹하지 않는 한, 어설프게 엑셀/워드 문서 몇 개에다 점수 조작하고 자기 이름 넣어 봤자, 없던 공무원 자리가 하나 더 뿅 생겨서 자기 신분이 성공적으로 조작될 리는 만무하다.

컨닝을 소재로 기가 막힌 첩보물 학원물 짬뽕을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웹툰으로는 <빵점동맹>을 참 재미있게 봤는데, 재미는 있지만 그래도 현실과는 많이 동떨어진 허구라는 점을 감안해야겠다. 백 희지는 주토피아에서 토끼 주디 같고 남캐인 임 수영은 여우 닉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게 정성껏 컨닝을 할 시간과 머리가 있으면 공부나 빡세게 하라고 다들 말한다. 하지만 차근차근 공부하는 데 필요한 지적 능력과, 정교하게 컨닝하는 데 동원되는 지적 능력이 같지는 않은 관계로.. 사람을 변별하는 중요 시험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부정행위를 자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각박한 경쟁 사회에서 앞으로 또 무슨 엽기적인 부정행위자가 적발되어 뉴스 사회면을 장식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 여담

1. 이 글에서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토익도 나라 망신을 시킬 정도의 대규모 부정행위가 몇 번 저질러지고 적발된 적이 있다. 그래서 이 때문에 다수의 선량한 토익 응시자들이 싸잡아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불법복제 때문에 정품 사용자가 도리어 피해를 입은 것처럼 말이다. (올라가는 구입 가격, 제품 인증 관련 번거로움)

2. 그러고 보니 정부 서울 청사는 더 전에 2012년에도 어떤 이상한 사람이 무단으로 뚫고 들어가서 투신 자살까지 했었다. 어째 그리 보안이 허술한지 그것도 질타 사항이다.

3. 예전에 '짜장면'이 표준어로 인정받게 됐을 때 '컨닝'도 같이 좀 등재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자장면만큼이나 커닝도 완전 현실성이 없지 않은가?

Posted by 사무엘

2016/12/20 08:29 2016/12/20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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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나라의 자동차세는(영업용 말고 자가용) 차의 배기량에 비례하는데, 이것도 정비례하는 건 아니고 비례상수 자체가 배기량에 따라 3단계로 정비례해서 커진다. 예전에는 단계수가 더 많던 것이 근래에 그나마 더 간소화가 된 거라고 들었다.
그러니 자동차세는 배기량 n에 대해서 약하게나마 O(n^2)에 가까운 형태이다. 작은 차는 저렴한 세금으로 우대하고, 겨우 5인승 승용차 주제에 너무 돈지랄 대형차를 굴리면 세금도 더 많이 매기겠다는 취지이다.

2000cc 이상일 때부터가 최대 rate가 적용된다. 단, 통상적으로 2000cc급이라고 불리는 쏘나타, K5 같은 중형 승용차는 제원상의 실제 배기량이 1998cc 같은 식이기 때문에 최대 rate를 턱걸이로 피해 간다. =_= 영미권에서 10달러짜리 물건을 일부러 9.99$ 이런 식으로 선전하는 것과 동일한 꼼수를 동원해서 성능 대비 최대한 절세를 시행하고 있는 셈이다.

2.
2016년 여름. 전국에 폭염 주의보, 경보, 특보가 며칠째 내려질 정도로 살인적인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한반도가 슬슬 아열대 기후로 진입하고 열대야가 이변이 아니라 한여름의 일상적인 모습이 될 거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 때문에 에어컨의 사용과 전력 소비량이 폭증했다. 그런데 가정용 전기 요금이 비현실적인 징벌적 누진제를 적용받고 있다고 말이 많다.

누진제 자체는 우리나라가 아직 못살고 석유 파동크리까지 터졌던 시절에 도입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6단계 누진제는 그때부터 있었던 게 아니다. 누진제에 대한 해석마저도 정치 성향별로 진영 논리로 갈라져서 "친기업 재벌 우대를 위한 음모" vs "북에다 몰래 전기 퍼 주기 위한 음모" 이러는 듯한데, 진실은 어느 한쪽에만 편중돼 있지는 않아 보인다. 다만, 가정용 전기 요금 체계가 지금과 같은 형태로 가장 마지막으로 업데이트된 때는 노 무현 정권 시절이긴 하다.

과거에 언론에서 '징벌적'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던 다른 문맥이 뭐냐 하면 '카이스트의 징벌적 등록금' 제도였다. 지난 학기 GPA가 B0 3.0에 미달되면 0.01당 6만원꼴로.. 그러니 GPA가 2.0이면 600만원을 내게 하는 것이었다.
뭐, 다시 찾아보니 엄밀히 말해 이건 '누진제'는 아니다. 개막장 GPA라고 해서 6만원이라는 '단가'가 더 올리가지는 않는다.

또한, 굳이 금전적인 불이익이 없더라도 원래부터 한 학기 GPA가 C0 2.0도 안 되면 학사경고이고, 전체 GPA가 그 따위면 애초에 졸업도 못 했다. 그러니 그에 근접하는 2.x대의 평점은 뭔가 페널티를 줄 법도 한 열악한 상황인 건 사실이나... 안 그래도 누군가는 반드시 중하위권을 차지할 수밖에 없는 '상대평가' 하에 전국에서 날고 기는 괴수들이 피튀기게 경쟁하고 있는데 단가 자체가 '징벌적으로' 지나치게 높긴 했다. 성적이 아닌 다른 특기로 입학한 비과학고 출신 친구들이 피해가 제일 컸다. 2011년에 학생 4명이 자살을 하는 참극이 벌어진 뒤에야 그 제도는 폐지던가 전면 완화던가 어쨌든 상황이 바뀌었다.

다시 현행 전기 요금 얘기로 돌아오면.. 얘는 6단계로 100KWh의 배수를 넘길 때마다 기본 요금과 임율이 거의 1.6배씩 증가한다. 이건 제곱도 아니고 아예 지수함수 수준으로 보인다. 바야흐로 O(2^n). 다만 1~2단계와 마지막 5~6단계 사이의 증가폭이 더 크다. 가정에서는 6단계인 500KWh 이상은 정말 절대로 쓰지 말라는 얘기다.

3.
누진제가 지수함수라면, '종량제'는 O(1)이던 것을 O(n)으로 변경하는 것에 해당한다. 건물별 쓰레기 수거 비용이 먼 옛날에는 그냥 건물의 면적에 비례하는 고정된 값이었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는 배출하는 쓰레기의 양에 정비례하는 O(n) 종량제로 바뀌었다.

이거 그 시절로서는 굉장히 파격적인 변화였다. 쓰레기는 반드시 유료로 구입한 종량제 전용 봉지에 넣은 것만 수거하는 관행이 첫 도입된 것이기 때문이다. 쓰레기 중에 재활용 가능한 건 재질을 최대한 분리해서 배출하고, 재활용 불가능한 건 저렇게 배출 방식을 바꿨다. 이런 과정을 통해 1인당 쓰레기 배출 1위였던 우리나라의 불명예스러운 위상도 차츰 개선됐다.

허나, 인터넷 통신비를 데이터 패킷/트래픽에 대한 종량제로 매겼다가는 아마 혼돈의 카오스가 펼쳐지지 싶다.
물론 자유를 악용하여 인터넷 트래픽을 쓸데없이 점유하는 소수의 악질적인 스패머와 악성 코드 유포자들이 끼치는 민폐에 대해서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한때 '다음'에서 뻘짓이라 욕 먹으면서까지 온라인 우표라는 걸 도입하려 했던 심정 자체는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문제가 무식하게 돈으로 찍어누른다고 해서 해소가 되겠나..;;
극소액이라도 통신비가 데이터 패킷 단위로 유료화가 된다면 동영상 재생은 올스톱될 것이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돈 아까워서 각종 소프트웨어들의 업데이트도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네트워크 전체의 보안에도 악재가 될 것이다.
지금은 무선 와이파이 태더링 같은 데서나 패킷량 O(n) 요금을 볼 수 있으며, 이것도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통해서 얼마든지 피해 갈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인터넷 종량제조차도 과거의 PC통신 시절보다는 훨씬 나은 거라고 봐야 할 것이다. 1980년대 먼 옛날에는 일반 전화건 PC 통신이건 사용 시간에 관계없이 한 통화당 n원이던 꿈 같은 시절이 있었으나, 이내 '시간 비례' 종량제로 요금이 결국 바뀌었다. 업/다운로드 없이 가만히 있기만 해도 모뎀으로 전화가 연결돼 있는 한 요금이 계속 올라갔으니 이거 뭐..

스크롤의 압박이 있는 긴 텍스트는 일단 캡처만 해 놓은 뒤, 나중에 전화 끊고 PC 통신을 종료하고 나서 차근차근 읽어야 했다.
동영상 재생도 아니고 채팅을 몇 시간 하다가 다음 달에 전화비 n만원 폭탄을 맞았다(25년 전 물가 기준!). 그림 한 장 음악 한 곡 없이, 겨우 사람 손가락으로 생성하는 텍스트 나부랭이가 정보량이 얼마나 된다고..;;

지금으로서는 믿을 수 없는 과금 체계가 아닐 수 없었다. 한 가지 더.. 2010년대엔 무선 와이파이 인터넷으로도 100Mbps대의 속도가 나오고 유튜브로 고화질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보는 시대가 열렸지만, 아날로그 전화선 기반인 모뎀은 1990년대 말, 겨우 56Kbps대의 속도가 기술적인 상한선이었고 이내 전용선으로 체제가 바뀌었다는 점도 생각할 사항이다. K와 M 사이에는 무려 1000배의 차이가 있다.;;

4.
지금까지 요금제에 대해 거론한 내용들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O(1) 복잡도의 요금제가 쓰이던 곳이 갑자기 O(n)으로 바뀌었을 때(종량제), 그리고 O(n)이 기대되는 곳에 갑자기 터무니없는 O(n^2), O(2^n)에 준하는 요금제가 시행되면(누진제) 사람들은 빡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너무 평범한 결론이 도출된다.;;

단, 주차 요금이나 연체료· 과태료 중에서는 일정 시간이 경과하면 오히려 rate가 더 줄어들거나 완전히 0이 되는 것도 있다. 이미 매겨진 요금이 탕감· 면제되는 게 아니라, 증가하는 속도가 말이다.
주차장의 경우, 주차된 시간에 비례해서 요금이 몇백· 몇천원씩 쭈욱 올라가지만 하루에 최대 얼마는 초과하지 않는다.
인천 공항 장기 주차장은 하루에 최대 얼마인데, 주차된 지 며칠째부터는 그 최대 요금이 살짝 낮아지는 제도가 있었다. 외국에 장기 출장을 가서 꼬박꼬박 주차장 요금 셔틀 역할을 해 주는 고객에 대한 배려이며, 누진제의 반대 경우라 하겠다.

그런데 이것도 케바케이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는 공영 주차장이나 상가 주차장은 몇 시간 이상째부터는 아까의 자동차세처럼 rate가 더 올라가기도 한다. "여기 안 그래도 공간 비좁아 죽겠는데 볼일만 보고 빨리 나가라. 어지간하면 여기는 차 끌고 오지 마라"라는 무언의 경고 되겠다. 주차장의 회전률을 올리기 위한 조치이다.

공기 저항 같은 자연 현상뿐만 아니라 이 세상 제도에도 non-linear한 복잡도를 가진 것들이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복리 이자도 그 예일 것이다. 그런 걸 보면서 그런 제도가 어떤 배경에서 정립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이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11/14 08:33 2016/11/1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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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래의 후손이 보라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옛 말이 있다. 비록 인간은 개인 단위로는 수명이 유한하지만, 기록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존재가 잊혀지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이런 기록 덕분에 인간은 과거 선조들의 경험을 전수받고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며, 지식과 정보를 축적할 수가 있다.

조선 시대의 실록은 굉장히 값진 문화 유산이다. 오늘날은 컴퓨터가 발명되고 반도체 기반의 초소형 고밀도 기억장치가 등장한 덕분에 예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엄청난 문자 및 멀티미디어 정보를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
단, 여기에 저장된 정보는 접근을 위해서 역시나 복잡한 컴퓨터 장비가 필요하며 열과 자성, 충격, 습기 같은 물리적인 악재에 취약하다. 충분히 백업을 하지 않으면 삽시간에 몽땅 소실될 위험도 있다.

비록 비효율적이고 저장 밀도도 안습하지만, 수백· 수천 년을 버티고 살아남은 정보 저장 매체는 결국 돌판이나 종이책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 반면, 수백 년 전의 인류가 사용한 플로피 디스크 내지 자기 테이프가 발견되었다면 후손들은 과연 해독이 가능할까?

뭐 아무튼, 굳이 정보뿐만이 아니라도 인간은 "지금 이 순간에 우리는 이런 걸 향유하며 살았다"라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종종 '타임캡슐'이라는 걸 만들어서 매립해 왔다. 한 시대를 대표하고 추억이 될 만한 물건들을 커다란 통에다가 넣어서 밀봉하고 땅 속에 파묻어 둔다. 그 뒤 지금으로부터 수십~수백 년 뒤에 개봉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1994년에 서울시에서 서울 도읍 600주년을 기념해서 타임캡슐을 제작한 것이 유명하다. 다른 건 모르겠고 아래아한글 2.5 패키지가 포함된 것이 본인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요즘이야  플랫폼이 Windows로 넘어가면서 아래아한글의 점유율이 그 시절 만하지 않은데 나중에 그 2.5 패키지를 보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요 캡슐은 남산 한옥 마을 인근의 타임캡슐 광장에 매립돼 있다. 설정상의 개봉 예정일은 600에다가 400을 더해서 1000이 되는 무려 2394년. 그런데 미래의 서울시장이나 대통령이 수틀려서 자기 권한으로 그냥 조기 개봉해 버려도 할 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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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말고도 여러 기관과 단체에서 이것저것 타임캡슐을 만들어 묻은 게 의외로 굉장히 많다는 걸 본인은 처음 알았다. 이런 용도의 캡슐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업체가 있을 정도이니 자세한 건 여기를 참고하면 되겠다.

타임캡슐은 뭔가 킬로그램 원기 내지 인간의 냉동보존 같은 느낌이 드는데, 꼭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공기와 습기를 완벽하게 차단한 채로 보존이 잘 돼야 한다. 안 그러면 보관된 물건들은 수백 년 뒤에 낡고 썩는 바람에 후손들은 쓰레기밖에 건질 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케네디 대통령 시절에 매립된 모 타임캡슐을 겨우 50여 년 뒤에 조기 개봉했는데, 캡슐이 습기를 제대로 차단하지 못한 바람에 매장품이 이미 다 폐품으로 전락한 사례도 있었다.

2. 외계인(?)이 보라고

자, 그럼 후손들이 보는 타임캡슐만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성격이 위의 것과는 좀 다르지만 일종의 우주 스케일인 타임캡슐(?)도 있다.
1972년과 1973년에 발사된 외행성 탐사선인 파이어니어 10호와 11호는 혹시 마주칠지 모르는 외계인에게 인간의 존재를 소개하기 위해서 요런 그림이 그려진 동판이 장착되었다. 유명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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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에 이런 것까지 생각할 만한 사람은 외계인 덕후 과학자인 칼 세이건밖에 없다. ㄲㄲㄲㄲㄲ)

일단 외계인이 보는 게 목적이니 인간의 언어와 문자는 전혀 동원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는 GUI 운영체제에서 우리가 흔히 접하는 아이콘과도 비슷한 컨셉이 된다.
당장 보아하니 이 탐사선이 어디서 왔는지를 태양계와 지구를 통해 표현했고, 이걸 만든 주체인 호모 사피엔스를 그림으로 묘사했다. 옷을 그려 넣으면 옷까지 신체의 일부라고 외계인이 오해(!)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부득이 사람을 알몸 형태로 그렸다.
그것 말고 다른 의미도 있는데 귀찮아서 검색은 생략한다.

굳이 비주얼한 것 말고 다른 인위적인 의미를 외계인에게 전달하는 방법은 그야말로 우주 공통인 수학· 과학 원리를 동원하는 것밖에 없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그래서 영화 <컨택트>에서도 전파 신호가 2 3 5 7 11 13 같은 소수 수열 주기로 오는 걸 인지하고는 주인공이 "이건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발생시킨 신호야. 노이즈가 아냐!"라고 흥분· 감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수학이 문자이고 물리학이 언어가 되는 셈이다. "같은 우주에서 살고 있다면 이들도 같은 물리 법칙을 발견했을 것이고 우리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파이어니어 이후, 1977년에 발사된 보이저 1호와 2호는 가히 외행성 탐사선의 끝판왕인데, 얘는 아예 축음기와 음반이 들어갔다.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서 금칠까지 한 엄청 비싼 음반이다.
이 음반에는 파도와 바람 같은 자연의 소리, 시대별 주요 음악, 세계 55개 언어로 발성한 인삿말(한국어도 포함) 등이 수록되었으며 음반 뒷면에는 파이어니어 금속판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다른 상징적인 그림도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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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외행성 탐사선에 실린 물건은 기껏 지구의 땅 속에 묻힌 타임캡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먼 미래를 상정하고 만들어졌다. 물론 이걸 누군가가 실제로 발견하고 읽어 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저건 지구의 타임캡슐과는 달리, 사실상 그냥 상징적인 퍼포먼스일 뿐이라고 봐야 한다.

가까운 별이나 행성 하나까지 가는 데도 거리가 기본이 광년급이다. 외계인의 존재 가능성을 차치하고라도 그 우주에서 좁쌀, 먼지보다도 작은 탐사선을 누가 발견한다는 기약이 있을까? 차라리 태평양 망망대해에서 유리병에다 구조 요청 쪽지를 넣고 밀봉 후 병을 흘려보내는 게 훨씬 더 희망적이다.

그래도 인간이 이런 식으로 땅 속과 우주로, 서로 다른 방식과 목적으로 미래에 누군가가 보라고 자신의 족적을 남긴 내역이 있다는 게 흥미롭다.
뭐, 성경적으로야 우주 공간에 지구 말고 다른 곳에 지적 생명체가 있을 가능성이란 없을 것이고 거기에 너무 집착하는 건 별로 권장할 만한 행동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혹시 아는가. 기독교를 변증할 때도 "인간이 아직 밝혀내지 못한 무수히 넓은 영역 안에 하나님이 전혀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십니까?" 이런 말을 하는데, 같은 논리로 "인간이 아직 탐사하지 못한 무한히 광대한 우주 안에 인간 말고 다른 지적 생명체가 전혀 없을 거라고 생각되십니까?" 이건 종교색을 떠나 자연을 탐구하는 관점에서만 보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이니까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엔 만화가 박 무직 씨가 그린 <호텔>이라는 만화가 꽤 히트 쳤다. 거기서는 인류가 지구 온난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멸망하기 전에, 거대한 '호텔'을 지어서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해서 남긴다. 그걸 까마득히 먼 미래에 외계에서 온 지구인의 후손(?)이 발견한다. 뭔가 지구 버전과 우주 버전을 합친 느낌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10/03 19:35 2016/10/03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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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차량 + 대포

전차와 자주포를 구분할 줄 아는지 여부는(외형, 용도 모두) 아마 일반인과 밀덕을 구분하는 가장 기본적인 잣대가 아닐까 싶다. 군사 디테일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느 것이든 그저 똑같은 탱크로 보이겠지만, 둘은 그 본질이 완전히 다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차는 적진을 향해 말 그대로 돌진해서 싸우는 역할을 하는 차량이다. 눈에 보이는 상대적으로 가까운 적을 향해서 포를 직사로 쏜다.
그 반면 자주포는 대형 곡사 화포에다가 움직이는 기능을 부가적으로 추가한 형태이다. 탱크만치 험지와 급경사, 물 속까지 돌아다니지는 못하지만 수~수십 km 밖에 있는 표적에다가 위력도 훨씬 더 강한 포를 쏜다.
스타크래프트 탱크에다 비유하면 전차는 말 그대로 탱크 모드이고, 자주포는 시즈 모드에 대응하는 셈이다. 게임에서는 한 차량이 두 모드를 겸하는 재주꾼이지만 현실에서는 둘은 별개로나 운용 가능하다.

군용차 중에는 전차보다 더 무장이 작은 장갑차도 있다. 이런 차량은 전차보다도 더욱 이동과 방어에 특화돼 있으며, 무장은 있더라도 포가 아닌 중기관총 같은 더 가벼운(?) 형태로 국한되곤 한다.
심지어 바퀴도 궤도가 아닌 일반 고무 타이어가 달려 있기도 하다. 굴삭기가 궤도형도 있고 고무 바퀴형도 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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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군용차의 속성에는 이동 능력과 전투 화력이 일종의 tradeoff 형태로 존재한다. 그래서 장기에서도 이런 점을 반영하여 차(車)와 포(包)가 가장 값어치가 높은 말인 것이지 싶다. 적절한 작명이다. "차 떼고 포 떼고"라는 관용구는 핵심요소를 빼서 엄청난 핸디캡을 부과하겠다는 얘기이며, 윷놀이로 치면 윷과 모를 빼고 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말(馬)이나 코끼리(象)를 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2. 드래군

스타크래프트의 프로토스 공격 유닛 중에는 '드래군/드라군'이라는 놈이 있다. 영어로는 dragoon인데 '용'을 뜻하는 dragon과 철자가 아주 비슷하다(O가 하나 더 붙었을 뿐).
드래군은 우리 문화권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근세 서양에 존재했던 기마병을 뜻한다. 시기가 중세 이후이기 때문에 무슨 두꺼운 갑옷 차림에 냉병기 무장은 아니고, 그 대신 머스킷으로 무장해 있었다.

그런데 영한사전을 찾아보면 드래군의 원래 우리말 번역이 '용기병'이라고 그러길래.. 저 '용'은 도대체 무슨 한자이고 무슨 뜻으로 말이 저렇게 번역되었는지가 몹시 궁금해졌다.
설마 했는데 그 용은 龍이었다. 드래군들이 지닌 장구류(깃발, 헬멧)에 용 모양의 휘장이 붙어 있었다고 말이다. 불과 천둥을 내뿜는 머스킷 총구가 서양 문화권에서 용의 입을 연상시켰는가 보다.
영어로도 '드래곤'과 굉장히 비슷한 단어인데 한국어 '용'도 그걸 노린 건지, 마치 dung과 '똥'과 비슷한 급의 우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토스의 드래군은 다리가 넷 달렸고 덩치도 아주 크다. 비슷한 테란 메카닉 유닛인 골리앗보다도 더 크다.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프로토스 용사들의 수족만 기계로 교체한 거라면 외형이 이족보행 로보캅처럼 됐을 텐데, 저렇게 '기마병'을 표방하느라 다리 개수도 늘어난 듯하다. 원래 프로토스 족이 근본적으로 인간보다 덩치가 더 큰 걸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군대 조직 생각을 하다가 문득 스타크래프트 추억이 다시 떠올랐다.

3. 육군 보병을 지원하는 화력

전쟁에서 가장 본질적인 주역은 예나 지금이나 땅개 보병 소총수이다. 사람은 결국 물이나 하늘에서 사는 게 아니라 땅에서 사니까.. 그리고 온갖 최첨단 무기들이 등장하고 그로 인해 특수하고 전문적인 병과들도 많이 생겼지만, 얘들도 존재 목적은 결국 보병이 벌이는 전투를 보조하고 지원하는 것으로 귀착되기 때문이다. 전장에서 난관에 부딪힌 보병 부대가 통신으로 "우리는 현재 적에게 포위됐다. / 이런이런 장애물 때문에 진격을 못 하고 있다. 여기여기 좌표를 폭격해 주길 바란다! 지원 바란다!" 식으로 후방 기지에다 연락을 한다.

군대에 어떤 기계가 도입되면 기계 덕분에 인력만으로 할 수 없는 넘사벽 급의 일을 거뜬히 하게 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기계는 아무 환경에서나 제 능력을 발휘 가능한 게 아니며, 유지 보수하고 관리하는 인력을 추가로 필요로 한다. 기계는 사람보다 생물학적으로 척박한 곳에서는 더 잘 견디겠지만, 너무 복잡하고 정교한 물건이라면 충격이나 진동에는 의외로 취약하고 신뢰성이 마냥 무한하지 않다. 만능 강화복이나 로봇 병기 같은 게 2010년대에도 실용화되지 못하고 여전히 공상과학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총체적인 가성비를 따졌을 때, 알보병은 현대전에서도 가성비가 그렇게까지 꿀리지 않는다. 군사 분야에서 알보병이라는 병과가 송두리째 100% 기계로 대체되지는 않았으며, 기계는 자기 전문 영역에서만 언제까지나 인간을 보조하는 형태로 운용되고 있다.

보병을 지원하는 화력은 크게 포격과 폭격으로 나뉜다. 포격은 앞서 소개했듯이 자주포로 어마어마하게 먼 표적에다 포를 쏘는 것이며, 폭격은 공군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폭격기들이 직접 날아와서 적진에다 폭탄을 떨구고 가는 것이다. 비주얼은 폭격이 더 멋있을지 모르지만, 포격이 더 안전하고 저렴하며 포탄을 더 안정적으로 공급받으면서 더 오래 지속적으로 공격을 할 수 있다.

한편, 위의 것과는 성격이 좀 다르지만 저격도 매우 훌륭한 지원 임무이다. 적군 한 명을 죽이기 위해 소모하는 총알 효율로는 이거 뭐 게임이 안 되니까..
다만, 얘는 화력 덕후나 지휘 통솔 공동작업 같은 일반적인 군사 이념을 추구하지는 않으며, 혼자 하는 잠입 액션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나름 전문직 병과임에도 불구하고 포병 장교나 전투기 조종사와는 달리 장교가 아닌 부사관 계열로 간주된다. 해군으로 치면 여느 군함이 아니라 잠수함 근무에다 비유할 수 있겠다고 본인이 언급한 적이 있지 싶다.

적군의 대포 사격은 우리 역시 대포 사격으로 대응하고 제압하는 편이며, 적군의 저격수를 제압하는 것도 일반적으로는 아군의 저격수이다. 급이 같아야 서로 싸움이 되는가 보다.

4. 군용기

수송기: 군용기 중에서 말 그대로 이동과 수송에 가장 특화돼 있으며 민항기와 가장 비슷한 역할을 하는 물건이다. 모든 전쟁에는 전투 인원보다 보급· 지원 인원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군용기에서도 수송기는 비록 직접 교전을 하지는 않아도 역할이 가히 절대적이다. 공중급유기도 수송의 일종으로 봐야 하려나?

정찰· 조기경보기: 수송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아래의 비행기들처럼 본격적으로 공격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공중이라는 특성상 땅과 바다의 어떤 기계도 할 수 없는 첩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명백한 이유로 인해 군용기 중에서 무인화가 가장 먼저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폭격기: 무장을 잔뜩 실어서 아래의 땅을 쑥밭으로 만드는 일에 최적화돼 있다. 군용기 중에서 실질적인 kill 수를 제일 많이 달성하고 20세기 전쟁사를 가장 거창하게 장식한 물건이 바로 폭격기이다.
항공 폭탄은 그냥 중력의 힘으로 낙하만 하는 것이니 포탄· 미사일이나 어뢰와는 달리 추진을 위한 기폭제나 엔진이 필요하지 않고 순수하게 본연의 임무인 파괴를 위한 폭약만 잔뜩 집어넣어서 만들면 된다는 큰 장점이 있다. 다만, 요즘은 정밀 유도 미사일의 발달 덕분에 옛날처럼 무식한 융단폭격 전술이 그렇게까지 막 쓰이지는 않는다고 한다.

전투기: 얘는 수송기나 폭격기, 혹은 동급의 전투기 같은 다른 군용기를 떨구는 일에 최적화됐다. 공중에서 매우 빠르게 날아가는 비행기를 공격하는 것은 지상의 목표물을 공격하는 것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전투기는 기동성이 그 어떤 군용기보다도 뛰어나며 무장도 최첨단으로 달려 있다. 여러 비행기 조종사 중에서도 전투기 조종사는 되기가 가장 힘든 전문직이다.
전투기는 과격한 기동 때문에 탑승자 대비 연료 소모도 많은지라, 커다란 전투기의 내부도 겨우 2명이 타는 좌석을 빼면 다 연료를 싣는 공간이다. 여객기는 공간 확보 때문에 연료가 날개 안에 실려 있는 편이지만, 전투기는 날개 주변에다가는 무장을 싣는다.

5. 총포

일반 총(개인 소화기급은 사정거리 수십~수백 m, 대형 중화기급은 수 km): 총구에서만 불이 뿜어져 나오고, 그 뒤에 총알 하나에서 탄두 하나가 목표물의 특정 지점에 곱게 박힌다. 작은 권총 정도는 비교적 자유로운 자세로 쏠 수 있지만 장거리 사격은 화력이나 정확도 면에서 영 무리이다. 적어도 강선이 새겨진 소총급은 돼야 군인이 개인 화기로 쓸 만하며, 이런 총은 개머리판을 어깨에 댄 채로 쏴야 한다.
혼자 들고 다닐 수 있는 소총도 잠깐 동안이나마 자동 연사 기능이 있다(방아쇠를 한번 당기고 있는 동안 계속 총알이 나가는..). 하지만 총열 순환과 냉각 기능이 있고 위력이 더 강한 중기관총 같은 급이 되면 운용을 위해 여러 인원이 필요하며, 경화기를 넘어 중화기의 범주에 들기 시작한다.

산탄총: 총구에서만 불이 뿜어지는데 총알 하나에서 단일 탄두가 아니라 여러 쇠구슬들이 퍼지면서 목표물에 박힌다. 이것도 스플래시 대미지인지?
이런 총기는 사정거리가 짧기 때문에 전투용으로는 부적합하며, 인명 구조를 위해 자물쇠를 부수고 문을 딸 때 혹은 그냥 사냥 용도로 쓰인다. 마치 칼 중에서도 부엌칼처럼 어째 비군사적인 목적으로 유용한 구석이 많다. 물론 그래도 부엌칼이나 샷건 역시 사람을 얼마든지 끔살시킬 수 있는 위험한 흉기인 건 자명한 사실이다.

대포(사정거리 수십 km): 사람이 혼자서 들고 다닐 수 없는 물건이다. 옛날에는 성벽 요새나 군함에 달려 있었으며, 야전에서는 커다란 수레바퀴를 굴려서 운반하곤 했다.
그 시절에는 대구경 화포답게 무슨 볼링공 같은 거대한 탄환이 날아가서 목표물을 박살내곤 했으나, 요즘 대포에서는 그냥 단단한 탄두가 아니라 고폭탄이 날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총구뿐만 아니라 명중 지점에서도 불꽃과 폭발이 일어나며, 넓은 영역에 파편이 날리면서 '스플래시 대미지'가 발생한다.

로켓과 미사일(사정거리 수백~수천 km): 대포보다도 더 강하고 정확한 화력을 원한다면 결국 탄환에다가 직접 로켓 엔진을 달아서 추진시키는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이 20세기 중후반이 돼서야 등장한 미사일이라는 물건이다. 얘는 발사 직후(총)나 명중 직후(포)뿐만 아니라 날아가는 동안에도 꽁무니에서 불과 연기가 피어오른다. FPS로 치면 얼추 로켓 런처처럼 되는 셈이다.
미사일은 고작 수십 km가 아니라 수백~수천 km를 날아서 대륙을 건널 수 있는 지경이 되었으며, 목표물을 향해 스스로 자세를 잡는 유도 기능도 갖추고 있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에다가 고작 재래식 폭탄이 아니라 핵폭탄을 장착하면 가히 인류 역사상 최강의 병기가 탄생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북한이 하는 짓을 보면 알 수 있듯, 핵무기의 개발에는 장거리 발사체의 개발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과거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 때처럼 일개 폭격기가 적국의 영공 깊숙한 곳까지 친히 기어 들어와서 핵폭탄을 떨구는 짓은 오늘날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뭐, 로켓 기반 화기 중에도 바주카처럼 상대적으로 작은 놈도 있긴 하지만, 대략적인 추세가 이러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6/09/28 08:31 2016/09/2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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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한국어가 한편으로는 끔찍하고 한편으로는 구수한(?) 욕설이 유난히 발달해 있다고 하는데.. 사람 사는 곳은 동서고금 어디나 마찬가지이고 다른 문화권에서 폭언과 욕설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한국어는 다양한 욕설 표현에 비해 '똥'이 단순 비하(똥컴, 똥차, 똥폰..) 이상으로 저주나 다른 욕설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는 게 이례적이다. (shit, 쿠소 등)

미국은 마초이즘에 입각한 군사물에서 욕설이 많다.
듀크 뉴켐 3D/포에버에서는 게임 중에 개마초 주인공의 궁시렁궁시렁 성인 욕설을 들을 수 있으며,
둠도 게임 자체는 스토리가 부실하지만 이를 배경으로 한 둠 코믹스는 매 장면들에 강렬한 욕설을 동반한 명대사들이 즐비하다.
포레스트 검프에서는 카우보이 모자를 쓴 훈련소 교관이 그냥 말 끝마다 '갓댐'인 거 다들 기억하실 것이다.

이거 끝판왕은 역시 월남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풀 메탈 자켓>에 나오는 하트만 상사. 후대의 전쟁 영화에 등장하는 악질 교관의 표준 컨셉을 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훈련소를 수료하고 나가는 날 네놈들은 일당백 인간 흉기 전사로 개조돼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네놈들은 그냥 인간 이하의 구더기, 토사물만도 못한 개 쓰레기들이다! 알겠나~~!"

제3자가 들으면 그야말로 웃음이 나오기까지 할 정도의 찰진 욕설, 특히 부모 패륜 드립과 음담패설이 넘쳐난다. 흔히 군대에서 총(개인 화기)은 니 애인, 니 불알보다도 더 소중하게 간수하라고 그러는데, 실제로 그걸 빗댄 섹드립 군가를 부르는 것도 있다. 똑같이 내 총인데, 이건 전투용, 저건 유흥용이라고.. -_-;

듣기로는 시나리오 작가가 써 준 정식 대사 외에 배우의 즉흥 애드립으로 들어간 것도 많다고. 이런 욕도 어지간히 창의력이 뛰어난 언어의 마술사가 돼야 만들어 낼 수 있지 아무나는 못 한다. 근데.. 현장에서 그 욕설을 듣고 진짜로 웃어 버린 고문관은 저 교관한테 완전 찍혀서 군생활이 꼬인다.

스타 1에서 시즈 탱크를 지겹도록 클릭했을 때 나오는 대사 중 하나가 What is your major malfunction?인데.. 이것도 출처가 이 영화에서 하트만 상사의 대사이다. 사실은 "너 미쳤냐 쳐돌았냐? 도대체 어디 장애가 있냐? 대가리에 총 맞았냐?" 급의 꽤 강한 비하· 모욕 뉘앙스가 들어간 갈굼이다.

이건 반전 컨셉으로 군대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비판하고 깔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저런 묘사가 마초스럽고 멋있다며 미군 관계자들이 좋아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왜, 국내에서도 10여 년 전에 MBC 제5공화국 드라마가 방영되니까 이 덕화 씨의 연기 덕분에 멋있다고 도리어 전 두환 팬클럽까지 생겼다지 않는가? 정치 견해 때문이 아니라 그냥 멋있다고. -_- "좋아, 아주 좋아"처럼 말이다..;; 원래는 그 드라마가 군사 정권을 얼마나 비판하고 까는 컨셉인데도 역효과가 난 것이다.

21세기 이후에 오늘날까지 전대갈, 전땅크 하면서 그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멋있어하는 이미지는 거기서 유래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싶다. 또한 이건 옛날에 얼짱 강도 현상수배 포스터가 나돌자 그 사람 팬카페가 생겼던 것과도 비슷한 이치이다. -_-;;
(얼짱 강도도 참 오랜만에 다시 회상하네. 그 예쁘장한 아가씨는 남자 친구 잘못 사귄 죄로 강도 공범 혐의로 어린 나이에 전과가 생겼을 뿐만 아니라,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알려져 버리기까지 해서 인생이 한동안 굉장히 꼬였지 싶다. 안됐다. 그 뒤로 개명에 성형이라도 하고서 새 삶을 잘 살고 있길..;;)

창작물이 아니라 실존 인물 중에서는 성깔 하나는 둘째 가라면 서러웠던 조지 패튼 장군이 있었다. "제군들은 이제 제대 후 고향에 가서 손주들에게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할아버지는 2차 대전 때 후방에서 꿀이나 빨고 있지 않았다. 조지 패튼이라는 빌어먹을 개XX와(a son-of-a-goddamned-bitch named George Patton) 함께 최전방에서 용감하게 진군했다'라고 말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예 연설을 저렇게 했다.

정치· 군사· 안보 같은 심각한 주제 말고 다른 분야에서는 '욕쟁이 할머니'라는 컨셉· 기믹이 있다. 한국만의 고유한 문화인지는 모르겠다.
10여 년 전에 웹툰 츄리닝에서는 미국인 손님이 들어오자, 주인공인 욕쟁이 할머니 역시 영어를 직접 구사하진 못해도 비장한 표정과 함께 꼴뚜기질로 기선 제압을 했다는 병맛 만화가 올라오기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60년대 말이던가 박 정희 대통령이 전주에 시찰을 와서는 삼백집이라는 실존 콩나물국밥 식당을 이용했는데, 그 당시 거기도 주인장이 내공 백 단의 욕쟁이 할머니였댄다.
처음엔 수행원들이 미리 방문해서 배달 주문을 하려 했으나, 당연히 "이 썩을놈들이 얻다대고 배달 같은 소리나 씨부리고 쳐자빠졌네(혹은, X랄이야).. 직접 와서 쳐먹어!"라는 불호령과 함께 단칼에 문전박대를 당했다.

주인장은 직접 찾아온 박 대통령에게도 인정사정 없이 욕으로 상대했고.. 식사 중인 박통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 보더니 반숙 계란 요리를 서비스로 가져와서는 "어라, 이눔 봐라? 네놈은 신문에서 보던 박 정희랑 어찌 그리 얼굴이 묘하게 닮았더냐? 그런 의미에서 옜다, 이거나 더 쳐먹어라." 그랬댄다.. =_=
박통은 껄껄 웃으면서 "내가 박 정희를 닮은 게 아니고 박 정희가 날 닮은 거요"라고 넘겼댄다. 주인장은 그건 "에라이 니미럴 염병하네"라고 응수했을 테고.

박통은 훈훈하게 밥을 잘 먹고 서울로 돌아갔다. 그 식당 주인장은 몇 년 후 노환으로 타계했지만, 전해지는 야사에 따르면 그때 그 놈팽이는 대통령을 아주 닮은 사람이었을 뿐이라며, 설마 진짜 박통이었을 거라고는 죽는 순간까지도 절대로 믿지 않았다고 한다.

군사 쪽이든 민간 쪽이든.. 욕도 아무 컨트롤 없이 무개념으로 싸지르면 정말로 교양 없고 무례한 양아치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욕을 해도 때와 장소와 대상을 가려 가면서 센스 있게, 창의적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듣는이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자기 본업의 장인 정신까지 포함해서 "츤데레"스럽게 구사해야 할 거다.
이런 가이드라인을 준수할 자신과 멘탈이 없다면, 차라리 언제나 정중하게 바른말 고운말 컨셉만 유지하는 게 자신의 대외 평판에 나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02/21 08:29 2016/02/21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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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이 죽었다

“왕을 해하려 하는 모든 자들은 그 청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삼하 18:32)
성경에서 다윗은 아들 압살롬이 죽은 것을 부하의 이 말만으로 바로 알아채고 멘붕에 빠졌다.
사람의 생사를 확인하는 과정이 저렇게 은유적이고 드라마틱한 경우가 실제 역사나 창작물에서 종종 있었다.

1979년 10월 26일엔 잘 알다시피 박 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했다. 당시 대통령의 주치의였고 국군 수도 병원 서울 지구의 원장이던 김 병수 공군 준장은 엄중한 감시 하에서 얼굴도 모르는 어느 VIP 중상자의 의학적 사망을 인증했다. 허나, 복부를 보고서 이 사람이 다른 외국 귀빈이나 극비 첩보 요원이 아니라 대통령 각하임을 직감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국군 보안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하지만 그는 청와대 경호원의 감시 때문에 이 사실을 마음대로 발설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때 전화를 건 우 국일 준장이 거기 상황을 눈치 채고는, 대답을 예/아니요로 아주 간접적으로만 하면 되게 상황을 만들어 줬다.

작고했나? / 예
차 실장(차 지철)이냐? / 아니요
코드 원(각하)이냐?


이로써 군부는 대통령의 죽음을 확인하게 됐다. 무슨 통화를 했느냐는 경호원의 추궁에 김 병수 준장은 즉석에서 이렇게 둘러댔다고 한다.

거긴 아무 일 없냐? / 예
너 혹시 지금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냐? / 아니요
알았다. 여기도 잘 지키고 있으니 걱정 말고 있어라. / 예


2. 사람이 살았다

사망이 아니라 생존을 은유적이면서도 아주 짜릿하게 잘 표현한 경우는... 비록 실화가 아니라 영화 속 허구이긴 하지만 <에어 포스 원> 대사를 따를 게 없다. 이 영화는 딱 두 마디만 기억하면 된다. “내 비행기에서 내려! (Get off my plane)”와 바로 이것.

“자유 24호, 콜싸인을 변경합니다. 자유 24호가 이제 에어 포스 원입니다! (Liberty 24 is changing call signs. Liberty 24 is now Air Force One.”
“와아아~~~!!”


대통령이 죽거나 실종돼 버렸다면, 이 비행기는 대통령의 유가족만 탔기 때문에 콜싸인이 에어 포스 원이 아닌 다른 명칭이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라이터를 켜라>도 "열차가 부산 역에 안전하게 멈춰 섰다. 다시 반복한다. 열차가 ..." 이런 방송과 함께 중앙 통제실이 환호 분위기로 바뀐다는 점에서는 <에어 포스 원>의 결말과 좀 비슷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간지는 훨씬 덜하다.

정부에서 운용하는 물리적인 대통령 전용기가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현실에서는 그 특정 비행기가 아니라 대통령이 탑승한 비행기가 그냥 에어 포스 원이 된다. 물론 평소에는 대통령은 줄곧 그 전용기만 타겠지만 말이다. 이것은 오성장군 군대 계급인 원수랑, 국가 수장을 뜻하는 원수만큼이나 서로 혼동해서는 안 될 개념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이것은 병역특례 티오하고도 비슷한 개념이다. 처음엔 병특 지정 회사들이 병무청으로부터 올해는 총 몇 명을 채용할 수 있다는 티오(인원 편성)를 받는다. 하지만 회사가 티오를 써서 일단 사람을 채용한 뒤에는, 그 티오는 회사가 아니라 복무자 자신의 소유가 된다.

어떤 회사가 2명 티오를 받아서 그만치 채용을 했다고 치자. 그런데 도중에 한 명이 전직· 만료하고 나간다 해도 그 회사는 다른 한 명을 병특으로 또 채용하지 못한다. 반대로 그 복무자는 병특 지정 업체이기만 하다면, 이미 티오를 다 쓰고 없거나 애초에 올해 티오를 한 명도 못 받은 회사로도 얼마든지 전직이 가능하다. 복무자 자신이 곧 추가적인 티오이기 때문이다.

즉, 회사 사정이 어떤지와 무관하게 업계 전체의 관점에서는 '병특 인원 보존의 법칙'이 성립한다. 그러니 이 제도는 상대적인 약자인 복무자에게 유리할 뿐만 아니라 병무청의 입장에서도 인원 관리하기가 수월해서 좋다. 복무자가 사고로 죽기라도 해야 그 티오가 그 사람이 당시 종사하던 회사로 돌아가지 싶다.
얘기가 어쩌다가 옆길로 한참 샜지...;; 아무튼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곧 에어 포스 원인 것만큼이나, 병특은 복무자 자신이 곧 티오인 시스템이라는 얘기를 엮어서 하고 싶었다. -_-;; 본인이 산업 기능 요원 출신이기도 해서 말이다.

3. 넌 죽을 것이다

사람이 죽었거나 살았다는 통보에 이어 마지막으로 이번에는 죽을 거라는 경고 차례다. 이 분야는 간지 넘치는 대사가 픽션이 아닌 현실의 정치 분야에도 꽤 있다. 예전에 한 번씩 인용한 적이 있는 대사들이지만 다시 복습해 보고자 한다.

(1) “빈 라덴을 용서하는 건 신이 할 일이다. 그러나 빈 라덴과 신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건 우리가 할 일이다.
너무 멋있지 않은가? 이것은 빈 라덴이 살아 있던 시절에 미군 해병대의 모토였다고 한다. 그런데 '빈 라덴'을 임의의 '테러리스트'라고 말만 바꿔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또 유사한 드립을 쳤다고 한다.

(2) “아이를 살려 보내면 너도 살고, 아이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
예전에도 한번 언급한 바 있지만, 1980년 가을에 이 윤상 군 유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전대갈 아저씨가 남긴 대통령 특별 담화이다. 나중에 가해자가 잡히고 아이가 죽은 채로 발견되자, 전대갈은 실제로 사법부에 압력을 넣어 강제로 사형을 때려서 가해자도 죽여 버렸다.
삼권분립의 관점에서는 좀 아슬아슬하게 월권을 한 것이진 하지만, 요즘처럼 강력 사건에 가해자 인권만 있고 피해자 인권이 처참하게 짓밟히고 있는 시기엔 저렇게 시원시원하던 옛날이 그리울 때도 왕왕 있다.

(3) “지금이라도 내 딸을 보내 주면 그걸로 일이 끝날 거다. 하지만 안 보내면 난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 네놈을 기필코 찾아 내어 죽여 버릴 거다.”
테이큰, 브라이언의 전화 대사 의역.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난 복수극 영화 취향인가 보다. <테이큰>, <킬 빌>, <에어 포스 원>이 딱 내 스타일이다.
성령 충만으로 용서하는 게 가능한 맥락이 아니라면(개인이 아닌 공권력/국방 문제라든가..) 악당은 다 때려 부숴야 제맛 아니겠는가? 성령 충만은 악에게 굴복하는 나약함을 조장하는 게 결코 아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괜히 쓸데없이 종교색 표방하면서 성경이나 교회 왜곡하는 것들은 극혐(<밀양> 같은 거). 세계관이 너무 비현실적이거나 뭔 어설픈 열린 결말 이런 것도 싫음.

Posted by 사무엘

2016/02/15 08:34 2016/02/15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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