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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의 실상

다음은 오랫동안 게이로 살다가 수 년 전에 전향했다는 어떤 사람이 털어놓은 양심선언이다.

식성, 항문성교, 변실금, 곤지름, 찜방...
와.. ㅠ.ㅠ 정말 상상 이상으로 더럽고 혐오스럽고 충격적이고 끔찍하다..!
내 블로그를 구독하는 분들과도 한번쯤은 공유할 필요를 느껴서 부득이하게 이런 유쾌하지 못한 링크를 소개하게 되었다.

참고로 저건 종교적인 편견이나 훈계 같은 거 없다. 그냥 그 바닥의 실상만을 있는 그대로 까발려 놓은 것이니 누구라도 부담 없이 보시면 된다.
마치 알베르토 리베라의 게이 버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동성애라고 해서 사람이 무슨 자웅동체처럼 행동한다거나 하는 게 아니다.
그들 사이에서도 남자 역할과 여자 역할이 있다. 그런데 동성끼리 이성 흉내를 내려다 보니 차마 입에 담기 민망한 추잡한 짓을 하게 된다.

게다가 이들은 평생 한 배우자(?)하고만 그러는 게 아니다. 게이바에서 서로 식성이 맞고 죽이 맞는 사람끼리 원나잇 스탠드를 하는데, 평생 수십~수백 명의 파트너를 만나서 그 짓을 한다.

“... 여기에 중독되면 그때부터는 동성애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 그 쾌감은 일반 남성들은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으으.. 오싹... ㅠ.ㅠ
지금까지는 나도 그냥 장난조로 “ㅉㅉㅉ 세상에 많고 많은 예쁜 여자들을 놔 두고 같은 남자가 좋냐?” “짝! / 찰지구나” 이러면서 낄낄대기만 하고 넘어가는 편이었는데, 생각보다 심각하고 무서운 짓인 것 같다.

병맛 웹툰 작가 엉덩국은 <성 정체성을 깨달은 아이>라는 만화를 올려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는데, 한편으로 게이에 대한 이미지를 왜곡했다는 질타를 받아서 다음과 같은 해명 만화도 올렸다.

“게이라고 해서 아무 남자나 좋아하고 밝히는 건 아니라는 거군요”라는 명제는 '식성'을 감안했을 때 확실히 '참'인 듯하다.
그러나 그 작가도 앞의 저 링크에 소개된 웹툰을 좀 일독을 했으면 싶다.

아무튼,
동성애의 커밍아웃이 아니라 음지에 가려져 있던 동성애자 바닥에 대한 과감한 커밍아웃이 하나 떡 올라오니, 이미지 수습을 위한 반박도 응당 올라왔다.
“모든 게이가 다 그러는 거 아니다, 저거는 게이 중에서도 아주 예외적이고 진짜 음란한 극소수 변태들의 예일 뿐이다.” 같은 식.
그러나 친절하게도 그에 대한 재반박까지 올라와 있다.

또한 동성애에 대해서 아무리 변명과 합리화를 늘어놓는다 한들, 다음과 같은 정말 근본적인 결말까지 반박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동성애는 정말 마약 이상으로 사람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는 마귀의 속임수임이 틀림없다.

“나이 든 동성애자들은 동성애 세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습니다.
젊음의 때가 가고 30대가 넘어 식성 경쟁에서 밀려나기 시작하면 동성애자들은 그 후로 절대 고독과 외로움 속에 평생을 살아야 합니다.
나이 든 동성애자는 서로 얘기 안 해도 누가 에이즈에 걸렸는지도 잘 압니다.
하지만 젊은 동성애자나 일반인에게 이런 것들을 말해 주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나는 당신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도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당신과 함께 싸우겠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으로 동성애자 운동을 성소수자(?)라고 지지하는 대인배 진보주의자들이 많다. 한번 동성애 세계가 어떤지 제대로 알기는 한 뒤에 같이 싸우든가 말든가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사형 제도 논쟁을 할 때 “니 가족이나 애인을 죽인 흉악 범죄자한테도 사형 반대하겠냐?” 이렇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좀 '거시기하게' 논리를 들이대는 사람이 있다. 게다가 일부 박애주의자 중에는 진짜로 “응, 그래도 반대할 거다”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그런데 동성애는 어떨까? “니 아들이 나중에 남자를 데려와 놓고는 '아버지, 저는 이 남자가 좋습니다' 이래도 괜찮겠냐? 니 집 주변에 게이바가 잔뜩 있어도 애들을 안심하고 키우겠냐?” 이런 질문에 선뜻 “응!”이라고 기꺼이 대답할 사람은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다. 아무리 멋있는 걸로 치장한다 해도 죄는 결국 죄일 수밖에 없다.

흔히 이성애자 중에서도 바람 피우고 간음 저지르는 인간들도 죄 짓는 건 마찬가지 아니냐는 식으로 퉁치려 드는 사람이 있다. 그런 식의 문란한 정도로 치자면 동성애자가 훨씬 더하다. 그리고 이성애자는 최소한 부끄러운 줄은 알고 몰래 그런다. 요즘 게이들처럼 퍼레이드를 하고 난장판을 벌이지는 않았다. 오죽했으면 옛날에 에어장도 도망쳐서 에어컨 실외기에 매달려 있다가 장렬히 최후를 맞이하지 않았는가?
성경에서도 다윗이 저지른 죄는 밧세바와의 간음이다. 차라리 그 정도면 양반이지, 요나단과 그 짓-_-을 한 것이었다면 얼마나 끔찍했을까? -_-;;

사실 우리나라나 미국 같은 자유 진영 국가에서는 지금도 저렇게 게이로 사는 데 아무 지장 없다.
그런데도 저 사람들이 저렇게 합법화에 뭐에 난리를 치는 이유는 단순히 '금지되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이다.

그 정도까지 간다면 나는 이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자기가 본성에 어긋나는 흉한 짓을 해서 병에 걸려 놓고는 그걸 전부 국민 세금으로 치료받는다면, 그건 음주운전 하다가 교통사고 낸 걸 아무 처벌도 없이 단순 실수 교통사고와 똑같이 보험으로 보상해 주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인가? 결국 그렇게 해서 증가한 보험료 부담은 고스란히 다른 모든 선량한 운전자들에게 돌아온다.

멀쩡한 국어사전의 '결혼' 뜻풀이도 뜯어고칠려고 하는 거 같던데 그것도 “난 절대 반댈세.” -_-;;;; '남자'와 '여자'이던 것을 '배우자'와 '파트너' 이 따위로 바꾸는 것 말이다.
이 세상을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으려는 세력들은 그런 인권 좋아하는 진보적인 성향을 아주 교묘하게 잘 이용해 먹을 줄 안다. 종북· 용공 사상 쪽도 그렇고 말이다. 내가 그래서 그런 성향을 매우 싫어하는 것이다.

이렇듯, 동성애는 해롭지 않고 중립적이며 '취존'의 영역에 들어올 수 있는 그런 성향이 절대로 아니다. 이성애의 범주 안에 들기는 하는 죄악하고는 '레베루'가 다르다. 이 글이 나의 종교색이 전혀 가미되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굳이 성경 같은 걸 배제하고 보더라도 동성애는 망국병이고 절대로 합법화되어서는 안 된다.
게이 커밍아웃을 일베충-_- 커밍아웃보다 더 부끄러움 없이 떳떳하게 할 수 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제정신 정상인 분위기는 아니다. 그래서 내가 구태여 이런 글까지 올리게 됐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그러고 보니 성경 역본도 NIV는 고린도전서에서 게이들을 전부 까는 내용을.. homosexual offender이라고 바꿔 놓기도 했다. 게이 중에서도 offender라는 일부만이 잘못된다는 뉘앙스가 들어가게 한 것이다. 변명과 합리화는 늘 이런 식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본인이 옛날에 쓴 <음란한 성경은 가라> 글을 참고하시라.

Posted by 사무엘

2014/09/25 08:35 2014/09/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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헷갈리는 개념들 Q&A

어찌 보면 이런 것들을 인제야 깨우친 본인의 무식-_-을 인증하는 아이템들인지도 모르겠는데, 뭐 그냥 재미로 나열해 보았다. 서로 제각기 다른 분야들이다.

1. 스플래시 데미지 + 타격 데미지?

공격이라는 게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게임에는.. 그냥 목표물에만 총알의 운동량을 박아 넣는다는 설정인 일반 데미지가 있고, 그에 덧붙여 발사체가 폭발 후 파편을 터뜨려서 주변에 추가적인 데미지까지 입히는 스플래시 데미지가 있다.

난 폭탄을 직통으로 맞은 놈은 데미지가 100, 그리고 폭심지로부터 멀어질수록 데미지는 1/n 내지 1/n^2 등등으로 감소.. 이런 모델만 생각하곤 했다. 스타로 치면 리버나 시즈 탱크, 혹은 핵의 스플래시 데미지 계산 방식처럼 말이다.
그러나 둠 내지 퀘이크 같은 FPS 게임은 로켓 런처의 경우, 로켓을 맞은 것 자체에 대한 타격 데미지를 스플래시 데미지와는 별개로 계산한다. 로켓을 직통으로 맞으면 맞은 데미지 100에다가 파편 스플래시 데미지 100을 추가로 받아서 200을 먹으며, 주변에 있던 놈들은 폭심지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100 이하의 데미지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보스급 대형 몬스터들은 스플래시 데미지를 받지 않아서 로켓 공격을 사실상 절반씩밖에 먹지 않았다. 반대로 플레이어에게도 스플래시 데미지를 받지 않게 하는 파워업 아이템이 꼭 있곤 했다. (퀘이크 3 Arena의 Battle Suit처럼.)

제자리에 가만히 있던 수류탄의 폭발을 직통으로 당한 것이라면 스플래시만 있는 게 맞다. 그러나 로켓 런처의 경우 총알보다는 느리지만 그래도 총알보다 더 크고 무거운 로켓을 맞은 것이니 이놈 자체의 운동량부터 타격 데미지로 치는 것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더 합리적이긴 해 보인다. 지금까지 이런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로켓 점프는 스플래시 데미지만으로 점프를 하는 것이다. 게임에서는 구현 가능하지 않지만 로켓을 바닥이 아니라 내 배에다 대고 쐈다면 그건 타격 데미지와 스플래시를 이중으로 받는 것일 테고.

2. 자동차 직진과 후진 평행주차의 차이

평행주차는 주차 중에서도 꽤 어려운 스킬이지만, 정식 주차장이 아닌 길가에다 적당히 차를 세울 때는 반드시 할 줄 알아야 하는 스킬이다.
평행주차는 주차 지점을 지나친 뒤 후진으로 진입했다가 마지막에 핸들을 확 꺾어서 집어넣는 게 정석이다. 그런데 본인은 왜 하필 후진인지를 뭔가 수학적인 증명 수준으로 이해를 잘 못 했다. 후진으로 가능한 것은 전진으로도 똑같이 가능하지 않은가? 평행주차는 왜 전진이 후진보다 어려우며 공간이 더 많이 필요한 걸까?

그래서 머리에다 종이를 펴고 그림을 그려 보고서야 원리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핸들을 완전히 90도로 꺾을 수 있다면 후진 방식은 차 뒷부분부터 주차 지점에 박아 넣은 뒤, 앞부분은 앞바퀴의 회전을 통해 추가 공간 없이도 쏙 집어넣을 수 있다.

그러나 전진 방식은 핸들을 많이 꺾는다고 해서 차를 집어넣는 게 가능치 않으며, 회전 후에 차가 완전히 평행한 방향을 복원할 때까지 추가적인 주행 공간이 필요하다. 구조적으로 더 어려울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발상을 반대로 바꿔서 생각해도 된다. 평행 주차되어 있던 곳에서 차가 “빠져나갈 때는” 전진이 아주 유리한 반면 후진은 완전 어렵다는 걸 알 수 있다.

전진과 후진으로 모두 수월하게 방향을 틀 수 있고 평행 주차가 가능하려면 앞바퀴와 뒷바퀴가 모두 조향 가능해야 한다. 비좁은 실내에서 작업하는 걸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지게차 정도나 이런 조건을 만족한다.

3. 스포츠 사격과 군대 사격

군대 미필자나 여성분들은 잘 모르실 수도 있으니 설명하자면..
군대 사격이 거리가 더 멀고 큰 표적을 쏜다. 스포츠 사격 종목은 수십m대이지 무슨 250m씩이나 되는 거리를 쏘지는 않는다.
스포츠 사격은 가까운 대신 정밀도도 상상을 초월한다. 양궁만 해도 과녁이 얼마나 작은데, 격발이 더 쉬운 총으로는 그야말로 정말 코딱지만 한 표적을 명중시켜야 국제 스포츠로서 밸런스가 유지될 정도다.

그리고 스포츠 사격에서 사용되는 총기는 권총이든 라이플이든 정밀도 향상에 왕창 최적화돼 있다. 반동을 최소화하려고 총이 굉장히 무거우며--군대 돌격소총의 2배 이상--, 방아쇠도 아주 아주 살짝만 건드려 줘도 바로 격발된다. 스포츠용 총이 무슨 행군시의 무게를 고려한다거나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총의 살상력 내지 대인저지력은 아무래도 군인용 총만치 강하지는 않다.

영점 잡는 건 두 부류의 총으로 각각 어떻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러 정황상 군대에서의 저격수 내지 특등사수가 스포츠 사격 메달리스트하고는 완벽하게 호환되지 않는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서로 지향하는 바가 다르니까 말이다. 스포츠 사격에 무슨 조준경을 쓰고 탄환 궤도 오차 보정을 해서 수백~1km 밖의 목표물을 맞히는 게 있지는 않다.

4. 스웨덴과 덴마크

북유럽에 서로 가깝다면 가까이 있는 나라이며 3글자짜리 이름에 '덴'자가 있다는 공통점 때문에.. 난 두 나라가 정말 지독하게 헷갈리고 분간하기 어려웠다. 사실, 폴란드와 핀란드의 차이도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고. -_-

일단 스웨덴은 노르웨이와 접해 있는 큼직한 왕국이며, 스톡홀름 증후군의 본산지이다.
그리고 철덕들에게 친숙한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인버터를 제작한 ABB 사가 스웨덴 국적이기도 하다. (더 정확히는 스웨덴의 Asea와 스위스의 Brown Boveri가 합병하여 ABB라고..)
자동차 제조사 VOLVO가 스웨덴에서 출발한 기업이며, 또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이 스웨덴 출신임.

다음으로 덴마크는 그 밑에 있는 아주 작은 나라이다. 수도는 코펜하겐 되시겠다. 본토는 아주 작지만 그린란드가 덴마크령이다.
덴마크 하면 유명한 사람은 동화 작가인 안데르센이다. 그리고 프로그래밍 언어 분야에서 전세계를 평정한 괴수 컴퓨터 과학자가 두 명이나 미국이 아닌 덴마크 사람인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일이다.

한 명은 C++ 언어를 고안한 Bjarne Stroustrup (1950~)으로,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한 명은 Anders Hejlsberg (1960~)로, 왕년에 볼랜드에서 터보 파스칼과 델파이를 개발했다가, 마이크로소프트로 이직한 뒤에는 C# 언어를 설계하고 관리하고 있는 브레인이다.

5. 오르막과 단순 하중의 차이

자전거를 타는데 단순히 뒤에 짐을 많이 싣는 것하고, 짐은 없지만 오르막을 오르는 것 둘 중 “어느 게 더 힘들까? 이걸 정량적으로 수식으로 나타내는 방법은 없을까?”를 생각한 적이 있었다. 자동차로 치면 어느 게 연료가 더 많이 드느냐 하는 것이다.

당장 바퀴와 지면 사이의 마찰계수부터 시작해서 생각해야 할 개념이 많을 것이나, 그래도 중· 고등학교 수준의 고전역학 지식으로도 어느 정도 답이 나올 것이다.
뒤에 백수십 kg 정도 되는 수레를 끌고 가든, 1~2도 정도의 오르막을 오르든 똑같이 힘이 더 많이 필요하고 출발이 더 어려워지는 건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단순히 하중만 많이 실린 것은 일단 가속을 한 후에는 어느 정도 관성의 덕을 볼 수도 있으며 크게 힘든 게 없다.

그에 반해 오르막은.. 끊임없이 페달을 밟아 줘야 한다. 안 그러면 서 버리는 정도가 아니라 자전거가 뒤로 밀려난다. 단순히 무거운 하중이 걸린 차원이 아니라, 누군가가 약하게나마 뒤쪽으로 페달을 역으로 꾸준히 밟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주행하는 거리가 길어질수록 짐보다는 오르막이 확실히 더 큰 장애물이 될 듯하다.

이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사진을 찍을 때 대상 물체를 크게 찍기 위해 줌을 당기는 것하고, 그냥 대상에게 가까이 가는 것하고 차이가 무엇인지도 생각한 적이 있었다.
피사체가 단순히 2차원적인 형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둘은 동일하게 피사체를 확대하는 효과를 낸다.
그러나 당연한 말이지만, zoom을 당기는 것은 주변 배경의 원근감을 동일하게 내 주지는 않는다. 그런 차이가 있다. 이것도 오르막과 하중의 차이와 비슷한 맥락인 걸까? ㅎㅎ

6. 럭비와 미식축구의 차이?

스포츠에 완전 문외한이고 관심이 없는 본인으로서는, 둘 다 얼굴에 무슨 펜싱 선수 같은 보호구를 쓰고 손과 발을 모두 동원해서 갈색의 타원형 공을 향해 미친 듯이 쫓아다니는 구기 종목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둘은 규칙이나 체계가 많이 다르다고 한다. 얘는 더 자세한 설명은 패스.. 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4/08/04 08:20 2014/08/04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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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잡설

* 스포츠는 내가 극도로 관심이 없는 분야 중 하나이다만..

1. 잘 알다시피.. 2020년 하계 올림픽의 개최지로 일본 도쿄가 선정되었다.
전쟁 범죄를 전혀 반성하지 않은 나라, 더구나 방사선 유출 사고까지 친 나라가 어째 올림픽을 또 유치해 냈는지에 대해 의아해하는 분이 적지 않다만, 아무튼 이로써 일본은 1964년 이래로 거의 반세기 만에 올림픽을 동일 도시에서 또 하게 됐다.
일본은 1988년 올림픽에서 나고야에서 올림픽을 유치하려 했으나, 잘 알다시피 52:27의 표로 우리나라 서울에 패했던 적이 있다. 이른바 바덴바덴의 기적이다.

2. 그 전까지 역사상 올림픽을 두 번 개최한 동일 도시는 그리스 아테네(1896/2004)와 프랑스 파리(1900/1924)가 있고, 세 번은 런던(1908/1948/2012)뿐이었다.
미국은 올림픽을 네 번이나 개최한 유일한 국가이지만, 전부 다 다른 지역이다(1904/1932/1984/1996).
독일은 두 번 개최하긴 했으나, 나치 독일-베를린(1936), 그리고 서독-뮌헨(1972)이어서 둘의 위상이 서로 미묘하게 다르다.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도 다른 지역에서 두 번 개최한 나라이다(1956/2000).

3. 사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이 아니었으면 20년 전인 아예 1944년에 올림픽 개최가 예정되었을 선진국이었다. 그로부터 20년 뒤, 일본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의 개최에 맞춰 세계 최초로 상용 최대 속도가 시속 200km를 넘는 신칸센 철도를 개통했었다. 신칸센은 표준궤일 뿐만 아니라 같은 표준궤 철도 중에서도 열차의 폭이 한국이나 유럽의 철도 차량보다 수십cm가량 더 넓게 설계되었다. 그래서 한 줄에 2-2뿐만 아니라 2-3 좌석 배치도 있다. 협궤 철도의 한계에 이골이 난 걸까.

전쟁은 일본의 올림픽 개통뿐만 아니라 지하철의 개통까지도 늦췄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긴자 선이라 불리는 도쿄 지하철을 1927년에 개통했었다.
그러나 그 다음 노선인 마루노우치 선은 그로부터 또 무려 27년이나 지난 1954년에야 개통할 수 있었다.
전쟁 때문에 물자가 부족하니, 신규 철도 건설은 고사하고 이미 있는 철도 선로도 뜯어가야 할 판이었기 때문이다.

4. 2020년 이전에 일단 요 몇 년간은 남아메리카 브라질이 꽤 주목을 받을 것 같다.
2014년 FIFA 월드컵도 브라질, 2016년 올림픽도 브라질(리우데자네이루)이기 때문이다. 특히 올림픽의 경우 역사상 최초의 남아메리카 개최이다.
월드컵은 매 경기가 서로 다른 지역의 다양한 경기장에서 개최되기 때문에, 올림픽과는 달리 개최국만 지정하지 도시 이름까지 하나로 콕 지명되지는 않는다.

5. 끝으로, 축구 얘기를 좀 한 후 글을 맺겠다.
지금이야 우리나라는 홈그라운드에서 무려 4강에까지 진출한 적이 있고 얼마 전엔 원정 16강까지도 진출한 축구 강국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축구의 시작은 심히 미약했다는 걸 알 만한 분들은 다 알 것이다.

광복 후 최초 참가였던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1라운드에서 멕시코를 5:3으로 이겼으나, 2라운드에서 우리나라는 스웨덴에게는 무려 12:0으로 패해서 올림픽 역사상 최다 실점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1954년에 첫 참가한 FIFA 월드컵도 마찬가지다. 그 당시 월드컵은 스위스에서 열렸는데, 헝가리에게 9:0, 터키에게 7:0으로 졌다. 월드컵에서 9점차라는 실점 규모는 역사상 공동 1위이다.

물론 이건 부끄러워할 기록이 전혀 될 수 없다. 해방 직후에, 또 전쟁으로 전국토가 폐허가 된 직후에, 국제 스포츠 경기 참가를 위해 나라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시피하던 시절이었다. 1948년 런던 올림픽 참가의 경우, 선수들은 먼저 부산까지 열차를 타고 간 뒤 일본을 거쳐서 각종 배와 경비행기를 갈아타면서 런던까지 가는 데만 무려 3주가 걸렸었다! 배 타고 갑판 위에서 축구 연습을 했다면 믿으시겠는가?

의류비(단복, 운동복 등)나 숙소 체류 비용조차 제대로 못 내서 완전 추레한 촌티를 팍팍 낸 채, 이들은 도착 직후에 시차 적응도 못 한 채 경기를 뛰어야 했다. 사정없이 쏟아지는 공격에 골키퍼는 상처투성이가 되는 투혼을 발휘하면서 온몸으로 공을 막아 냈다. 오히려 12:0으로, 9:0으로밖에 지지 않은 게 대단하다고 외신들이 골키퍼를 칭찬할 정도였으니... 눈물젖은 빵+헝그리 정신의 결정체가 아닐 수 없다.
스포츠도 나라가 부강하고 잘 살아야 제대로 육성이 가능하다는 걸 느낀다.

Posted by 사무엘

2013/09/15 08:30 2013/09/1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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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전방 지역에 있는 PC방, 식당, 여관 같은 업소들이 군인들을만을 상대로 굉장한 바가지 요금을 받는 게 공공연한 관행이라니, 굉장히 충격이다.
이건 휴가철 때 해수욕장이나 유원지 민박들이 바가지 요금을 받는 것보다 죄질이 훨씬 더 나쁘다.

첫째는 민간인이 휴가를 떠나는 건 전적으로 당사자의 자발적인 선택과 의지인 반면 군복무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요,
둘째는 간부들은 그나마 위수지역이 넓은 편이고 승용차라도 있지, 병들은 꼼짝없이 그 지역에서 호구로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말 그 지역 상인들이 도저히 먹고 살기 힘들다면, 모든 고객을 대상으로 요금을 올리면 된다.
국가에 자기 인생을 희생하여 충성하는 군인에게 할인을 해 줘도 모자랄 판에(철도 같은 일부 공공요금은 실제로 그러함) 바가지라니, 이건 정말 군납비리만큼이나 국방부나 정부 차원에서 나서서 저런 부조리를 단호하게 근절해야 하지 않나 싶다.

수 년 전에 강원도 모 지역 모 부대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바가지가 해도 해도 너무한 지경에 이르자, 사단장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휘하의 모든 병과 간부들에게 그 지역의 상점과 숙박시설을 절대로 이용하지 말고, 휴가와 복귀 시엔 간부들 차를 타고 군부대와 시외버스 터미널 사이를 직통으로 이동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지역 상점들에 대한 보이콧을 선언한 것이다. 헌병들은 그 지역을 순찰하면서 다른 군기 위반자가 아니라 상점을 무단으로 이용하는 군인들을 적발했다.

이 일이 있고 나자 지역 경제가 다 망하게 된 상인들이 항복(?)해서 요금을 여타 지역 수준으로 내렸다나 어쨌다나.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돈과 관련된 사항만이 전부가 아니다.
다른 사례로는, 외박 나갔던 군인들이 위수지역에 있는 불량배 고등학생 패거리한테 심하게 맞고 다쳐서 돌아온 적이 있었다. (군인들은 민간인과 얽히면 법적으로 굉장히 골치아파지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면 그냥 피하거나 순순히 당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자 이 꼴을 목격한 대대장이던가 사단장이 격분했다. “어떤 놈이 감히 내 부하들을 이 모양으로 만들었나? 당장 이실직고하지 못해?”라고 다그쳐서 진상을 파악하고, 5분 대기조까지 편성해서 결국 가해자들을 잡아내고 합의 내지 처벌시켰다.

시스템 클럽에 가 보면 지 만원 박사의 회고록에도 월남전 참전 중에 겪은 비슷한 일화가 수록돼 있으니 참고하시라.

“앞으로 C-레이션(미군 전투 식량)이 필요하면 내게 전화하라. 하지만 만일 내 병사에게 손을 또 한번 대면 그 때엔 주먹과 무력으로 다스릴 것이다.” 전쟁터에서 존중돼야 할 전투병들이 옷이나 깨끗히 다려 입고 지내는 헌병 따위에게 뺨을 맞고 다닌다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까불던 헌병들이 그날 전투병들의 맛을 톡톡히 본 것이다. 그후 그 초소를 지나는 내 부대 차량들은 언제나 기분좋게 프리패스됐다.


자, 이런 것들이 바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챙겨 주고, 사기를 진작시키는 방법이다.
저런 지도자 밑에서라면 내 목숨 바쳐서 국가를 위해 싸울 수 있겠다고 병사들의 마음을 사는 방법이다!

훈련할 때, 굴릴 때는 정말 가혹하게 빡세게 굴리더라도 상벌을 확실하고 공정하게 주고, 진짜 위급한 전쟁터에서야말로 진정한 전투력과 전우애가 나오게 하고..
초병은 직속상사의 명령 외에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는다는 걸 윗사람들이 솔선수범해서 실천하고..

나라가 예산이 모자라서 병사들에게 월급을 알바 최저임금 수준만치도 못 준다면, 돈 안 드는 저런 리더십이라도 발휘할 수 있지 않겠는가?
최소한 “간부, 고참들부터 죽인 뒤에 북한군 쏘겠다” 이러는 병사는 국군내에 없어야 하지 않겠나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3/09/09 08:23 2013/09/09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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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글로 쓴 적이 있듯이 본인은 <놀라운 주의 은혜>(Wonderful Grace of Jesus)라는 찬양곡을 굉장히 좋아한다.

작사· 작곡자인 할도 릴레나스는 본인이 기억하는 위대한 노르웨이 출신 3인 중 하나이다.
5차 이상의 방정식은 대수적으로 풀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 닐스 아벨, 세계 최초로 남극점을 정복한 로알 아문센과 더불어서 말이다. (단, 할도 릴레나스는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뒤 거기서 귀화해서 살았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면 노르웨이계 미국인이긴 하다.)
곡에 대한 찬사는 그때도 실컷 늘어놓았으니 이 글에서 또 반복하지는 않겠다.

이 곡은 마지막 단에서 “O magnify the precious name of Jesus! Prase His Name!”이라는 가사로 끝나고 “magnify the precious” 마디에서는 임시표 #으로 인해 알토 및 베이스의 음이 반음 올라간다. 후렴 직전의 마지막 단에서 이 곡의 주제라 할 수 있는 “for the wonderful grace of Jesus reaches me” 가사가 나오는 곳과도 비슷한 코드(chord)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래음을 반음 올리지 않았으면 소프라노와 알토 사이의 음정이 단7도와 완전8도였을 텐데 임시표로 인해 음정이 반음 내려감으로써 이들은 모두 감음정으로(감7, 감8) 바뀐다.
비전공자인 관계로 난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증/감음정은 통상적인 완전/장/단음정에 비해 듣는 사람을 긴장시키고 자극을 주는 효과가 더 큰 것 같다. 심지어 Looking for You에도 곡 전반부가 끝날 때 완전 짜릿한 감음정 화음이 나온다.

그런데 여기서 기보법과 관련하여 궁금한 게 하나 생겼다.
그림을 보면 아시겠지만, 알토는 '레'에 #이 붙었기 때문에 반음 올린 검은 건반으로 쳐야 한다. 하지만 소프라노의 '레'는 원래의 흰 건반으로 쳐야 한다. 그래야 감음정이 나온다.
내가 알기로 올림표, 내림표, 제자리표 같은 임시표들의 scope은 해당 마디가 끝날 때까지이다. 그리고 옥타브를 불문하고 어떤 곳에서든 해당 음은 모두 임시표를 적용하여 쳐야 한다.

자, 이 임시표의 scope은 소프라노/알토 같은 화음 파트까지 초월하여 적용되는 것일까? 아니면 따로 적용되는 것일까?
위의 그림처럼 알토 파트의 '레'에 #을 붙였다 하더라도, 나는 저렇게만 악보를 그려 놓으면 원칙대로라면 소프라노의 높은 '레'도 #이 적용되지 않나 그렇게 생각했다.

실제로 컴퓨터용 악보 편집 프로그램인 Noteworthy Composer는 내 생각대로 악보를 재생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본인의 모 지인은, 임시표의 scope은 파트별로 따로 가는 게 맞으며 그 내용을 음악 교사 지도서에서도 본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그럼 도대체 뭐가 맞는 거지?

고민 끝에 동일곡의 다른 악보들을 찾아 봤다.
곡의 퀄리티에 비해서 국내에서는 생각만치 유명하지 않은 게 유감이다만,
이건 워낙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유명한 찬양이기 때문에 구글링만 하면 악보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단, 문제는 대부분이 유료로 판매하는 악보라는 점.
유료 악보 사이트들은 첫 페이지의 내용은 대부분 견본 명목으로 보여주지만, 내가 원하는 부분은 불행히도 곡의 끝부분이다. 그래서 다른 예를 찾는 데 애로사항이 꽃펴 있었다.
오랜 검색 끝에 악보를 딱 하나 어렵게 구했는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얘는 본인이 제기했던 문제를 의식해서인지 소프라노의 높은 '레'(pre-)에 제자리표가 적혀 있다.
그런데 이 방식을 아주 곧이곧대로 삐딱하게 해석하자면, 반대로 그 다음의 알토의 낮은 '레'(-cious)도 제자리표를 적용하여 쳐야 한다. 즉, 이 표기도 논리적으로 완전히 엄밀하지 못하다.

그러니 Noteworthy Composer는 이렇게 임시표를 일일이 지정해 줘야 원곡대로 음이 나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걸 보면, 악보를 읽는 것도 언제나 컴퓨터처럼 절대적인 원리원칙이 있는 게 아니라 가끔은 '유도리', 휴리스틱이 동원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표기가 엄밀하지 않은 두리뭉실한 예가 심지어 수학에도 있다. 6/2(1+2) 내지 48/2(9+3)의 계산값이 무엇이냐 하는 게 아주 큰 논란이 된 적이 있지 않았던가?

Posted by 사무엘

2013/08/17 08:20 2013/08/17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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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는 흔히 육해공 3군으로 나뉘는데, 이들의 특성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육군: 땅개로 설명 끝이다. 장병들은 병영에서 생활하면서 각종 작업이나 일과 수행을 위해 온갖 장소를 돌아다녀야 한다. 보병+소총수라는 제일 기본 보직이 있으며 이들에겐 행군 능력이 대단히 중요하다. 단, 의사 중에 TOP은 외과 의사이듯이, 육군 중의 TOP 병과는 역시 포병이 아닌가 싶다.
  • 해군: 배가 곧 생활 공간 겸 전장이기도 하다는 게 중요한 특징이다. 해군만의 그 특유의 세일러 복장이 있다. 육군에 행군과 화생방이 있다면 해군엔 전투수영이 있다. 연평해전, 천안함 등의 사건으로 인해, 근래까지 병사들 중에서 북한군의 공격으로 인한 전사자가 제일 많이 나온 곳이다.

그리고,

  • 공군: 여타 군과는 달리 공군은 소수의 전투기 조종사를 지원하고 비행장· 기지 내부를 방어한다는 개념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비전투 병과의 비중이 높으며, 병사가 무슨 비행기 타고 영공을 지키다가 전사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육군 같은 행군· 숙영은 없지만 화생방의 비중이 높다.

공군 훈련소에서 수류탄 훈련은 완전 야메로 넘기면서 교관이 “너희들이 이걸 던지는 상황이라면 전쟁은 이미 진 거다.”라고 말하는 건 유명한 일화인 듯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기지 바깥을 몇 겹으로 지키고 있던 육군 병력이 전멸했다는 뜻이므로.

군용기에는 비행기 대 비행기가 싸우는 전투기만 있는 게 아니다. 지상에다 다량의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이 전문인 폭격기도 있고, 정찰기· 조기경보기도 있다. (한편, 전투와 폭격을 겸할 수 있는 공격용 군용기를 전폭기라고 한다)
그리고 또 무시 못 할 비중을 차지하는 건 다름아닌 수송기이다. 방대한 물량이 생명인 오늘날의 전장에서 군대 유지의 생명은 보급이다. 수송기는 이 보급을 책임지는 물건이기 때문에, 비록 전투기 같은 화려함은 없을지언정 전쟁에서의 숨은 일등공신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배보다 수송량은 부족하지만 속도가 워낙 넘사벽이니..

역사적으로 볼 때 월남전의 상징이 헬리콥터라면, 걸프전 하면 수송기를 떠올려도 좋다. 다량의 수송기 덕분에 그 먼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에 미국(+다국적군)이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조종사밖에 못 타는 전폭기만 먼저 도착해 있으면 뭘 하나. 정비 인력, 각종 부품, 무장, 보급이 없는데?

군용 수송기는 웬지 프로펠러기가 많이 눈에 띄는 것 같다. 본인의 직장이 있는 판교도 아무래도 서울 공항과 가까운 곳인지라 종종 수송기가 저공으로 날아다니는 게 눈에 띈다.
굳이 군용기뿐만이 아니라 화물기가 전반적으로 그렇긴 하지만, 얘네들은 민항기에 비해 랜딩기어가 굉장히 낮은 걸 볼 수 있다. 개로 치면 다리가 몹시 짧은 닥스훈트 같은 품종? 기체가 지면에 더욱 가까이 있다. (왼쪽은 보잉 737, 오른쪽은 수송기 C-141)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것은 사실 화물을 싣는 모든 교통수단들이 공통으로 갖는 특징이다. 기체의 높이가 낮아야 무거운 화물을 기내에 반입하기가 쉬우니까. 시내버스만 해도 사람이 타기 불편하다고 저상 버스가 있는 지경인데 하물며 화물은 어떠하겠는가? 짐받이에다가 탑승교를 마련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영화에서도 종종 보지만, 수송기의 뒷문은 아예 아래로 열어젖혀서 화물을 싣는 입구 램프(ramp)로 종종 쓰인다. 중세 영화 장면에서 성(castle)문을 바닥 쪽으로 열어서 문짝을 그대로 도랑과 성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bridge)로 쓰듯이 말이다.
이렇게 비행기의 기체가 지면과 가깝게 낮아지다 보니, 날개는 기체에서 상당히 윗부분에 달릴 수밖에 없어진다. 그래야 날개 밑에다 엔진이든 프로펠러든 달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수송기의 외형은 일반 민항기와는 살짝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런 날개의 구조는 비행기의 연비 절약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특성은 아니라고 한다.
또한, 군용차만 해도 사륜구동에 차체가 온통 무거운 쇳덩이여서 튼튼하고 힘은 좋다만, 완전 기름 먹는 하마이지 않던가. 군용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전장에서 임시로 만들어진 거칠고 험악한 활주로에서도 안 부서지고 뜨고 내릴 수 있게 튼튼하고 다소 무겁게 만들어진다. 그러니 군용 수송기는 민항기보다 경제성이 여러 모로 떨어진다.

앞서 말했듯이 수송기는 전투기보다 '간지'가 덜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조종 병과를 전공한 정예 공군 장교가 도저히 전투기를 조종할 수 없게 됐을 때 차순위로 빠지는 게 수송기나 헬리콥터 쪽 보직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보직으로 가는 인원도 있긴 하지만) 그리고 전투기의 조종간을 잡은 경험만이 공군 장성으로 진급할 때나 전역 후 민항사로 재취업할 때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경력으로 인정받는다. 수송기 경력은 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송기도 전쟁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자원이니, 그 중요성을 간과하지 말아야겠다.

※ 덧붙이는 말

1. 수송기 추락 사고

우리나라는 1982년에 도대체 무슨 마가 씌였는지 군 수송기가 두 대나 산에 추락하는 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하나는 2월에 제주도 한라산이고, 다른 하나는 6월에 서울 청계산.
사고의 원인(악천후 때문에 방향· 위치 감각 상실), 사고 기체(C-123),
게다가 인명 피해(50여 명의 탑승 장병 전원 사망)까지 완전 판에 박은 듯이 똑같다.

그 이듬해에 민간에서 워낙 큰 사건· 사고가 또 나긴 했지만(KAL기 추락, 그리고 아웅산 폭탄 테러)
5공 시절에 군 내부에서 발생한 저 사고는 완전히 흑역사로 치부되고 비밀로 함구되었으며, 희생자 유족은 제대로 된 보상이나 예우도 못 받았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관련 자료를 찾기가 매우 힘들다. 저런 거야말로 재조명과 진상 규명이 필요한 이슈가 아닌가 싶다.
과격한 훈련 중에 전투기가 떨어진 것도 아니고, 순전히 날씨 때문에 육지 지형을 파악 못 해서 비행기가 떨어졌다는 게 애석하다. 뭐, 기체의 노후화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는 듯하지만 말이다.

2. 조종사가 되기

항공업계는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위험한 전문직군이다 보니, 의료계와 더불어 조직 내부의 군기가 세고 그 대신 종사자의 대우도 매우 좋은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저렴한 방법으로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방법은 두 말할 나위도 없이 공군 사관학교 + 조종 병과로 가는 것이다. 군기 바짝 든 건장한 공군 출신 조종사는 민항사에서도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이건 그야말로 엘리트 코스가 보장돼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어릴 적부터 몸 좋고 공부도 매우 잘해야 하거니와, 돈이 안 드는 대신 인생의 상당량을 국가를 위해 고된 군생활에 바쳐야 한다.

게다가 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의 의무 복무 기간은 10년이지만, 공군 조종사만은 그 기간이 15년이다. 양성 비용이 워낙 많다 보니 국가에서 좀 더 오래 뽕(?)을 뽑아야겠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예전에는 군을 거치지 않고 민간 테크만으로 조종사가 되는 방법은 사실상 외국으로 나가는 것밖에 없었다. 미국은 자동차는 이미 신발이나 다름없는 필수품이고, 진짜 돈 많은 유명인사는 자동차를 넘어 자가용 비행기까지 날리는 천조국이니 말이다.
지금은 상황이 나아져서 국내에도 차츰 항공 관련 학과가 개설된 대학이나 조종사 양성소가 생기고 있다. 그러나 국내든 국외든 그야말로 극심한 돈지랄은 불가피하다. 그 비싼 비행기를 조종하는 법을 배우는 게 돈으로나 노력으로나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항공사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조종사 양성 프로그램을 거쳐서 배출된 조종사는 한동안 자기 연봉에서 교육비가 공제된다. 그런 식으로 채무를 청산한다. 청산이 완료되기 전에 조종사가 그 회사를 퇴사한다면 미납 교육비를 모두 뱉어 주고 나가야 한다.

그러고 보니, 대한 항공 조종사 출신인 말씀 보존 학회 대표가 문득 대단하게 보인다. =_=;;; 공사가 아닌 민간 출신이다. 킹 제임스 진영을 이끄는 사람들은 다들 참 똑똑한 사람들이긴 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3/08/05 08:36 2013/08/0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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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가 되기

어느 분야든 제도권의 교육자가 되기란 무지무지 힘들다.
교육자는 자율과 자기 재량이 보장되지, 방학 있지, 생업 전선에 안 뛰어들어도 되고 경기 영향도 안 받는 안정적인 수입 있지, 사고 안 치고 잘 퇴직하면 연금까지 평생 나오지..
그래서 그만큼 이 바닥은 수요보다 공급이 너무 많고 경쟁이 치열한 레드 오션이다.
제자들에게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하면서 부와 명예를 보장받는 직업이 아무에게나 주어질 수 있을 리가 없다.

1. 초등학교

극소수 사립 학교에 들어가는 걸 제외하면, 사실상 오로지 교육대라는 전용 양성 기관을 거쳐야만 교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첫 진입장벽이 높다. 소수정예 합숙 생활, 매우 저렴한 학비, 내부의 폐쇄적인 문화와 텃새 등. 거기서 필터링이 좀 되기 때문에, 교육대생 내부에서의 경쟁은 뒤의 두 분야에 '비해서'는 덜한 편이다.

다만, 언제까지나 '덜하다는' 거지 경쟁이 없다는 건 아님. 교육대 졸업생은 여타 분야와는 달리, 오로지 교사가 못 되면 정말로 사회에서 할 게 없다는 리스크가 더 크다. 어린 초등학생을 지도한다는 특성상, 전공 분야의 전문성보다는 인성· 전인교육의 비중이 더 높기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교는 담임의 비중이 매우 높으며, 영어 같은 일부 특수 과목만 빼고 한 교사가 하루 종일 자기 반의 전과목을 가르친다.)

2. 중등학교(중· 고등학교)

중등학교는 학생의 성적과 진로 지도에 대한 부담이 가장 높은 교육 등급으로, 일단은 사범대 졸업생이 지망한다. 하지만 초등학교와는 달리, 여기는 여타 학과 전공자에게도 길이 열려 있다. 따로 교육 대학원을 나오거나 다른 방법으로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공립 학교 교사 임용에 도전할 수 있다. 그래서 진입장벽이 낮다는 특성상, 중등학교 교사 임용 시험은 정말 최악의 경쟁률을 자랑한다.

임용에서 도저히 합격을 못 하면 결국 기간제 내지 사립 중등학교, 혹은 진짜 사교육인 학원 강사를 생각하게 된다. 1순위만치 안정적이지는 못해도, 초등학교 교사 지망생보다는 선택의 폭이 넓은 편. 사립은 잘 들어가면 공립 이상으로 좋은 직장이 될 수 있긴 하나, 채용 절차가 공정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함정이다.

3. 대학 교수

교사와는 달리 교수는 애들을 잘 가르치고 좋은 성적을 내게 하는 게 일차적인 목적이 아니다. 고등 교육은 학부와 대학원으로 이원화해 있으며, 교수는 평생 논문을 읽고 쓰면서 학문을 업으로 삼는 학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 바닥은 박사 학위라는 희대의 진입 장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뽑는 숫자도 교사를 능가하는 수준으로 너무 적기 때문에 레드 오션의 진정한 종결자 분야라 할 수 있다. 지나친 학력 인플레도 한몫 했고 말이다.

책 읽은 양으로만 승부하는 인문계 지망자라면, 학원 강사나 조교로 눈물겨운 고학 생활을 수 년간 하면서 학계에 얼굴도장 찍고 지도교수에게 잘 보여야 한다.

펀드를 받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공계 지망자라면 돈 걱정은 인문계보다 상대적으로 덜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름 폐쇄적이고 군기도 존재하는 랩 사람들과 잘 어울려야 하며, 권한은 사장이고 하는 짓은 직속 상사 같은 지도교수에게도 잘 보여야 한다. 박사 과정 내내 논문 출판과 실적 압박에 시달리다, 졸업 후 나중에 교수 채용 때도 날고 기는 쟁쟁한 외국 박사들과 피 튀기게 경쟁해야 한다.
단, 이공계는 취업이 잘 되기 때문에, 굳이 교수가 아니어도 교수보다 더 높은 연봉 받는 대기업으로도 잘 빠진다. 비록 안정성은 교수보다 못하겠지만.

학문적 업적보다 포트폴리오가 상대적으로 더 부각되는 예체능 분야는 사회 경력 n년을 박사 학위와 동급으로 쳐서 석사 출신이 교수가 되기도 한다. 아니면 교육 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를 받거나.

이공계나 예체능과는 달리, 인문계는 정말 교수가 못 되면 할 게 없는데 교수 자리가 없어서 열악하게 살고 있는 박사들이 문제이다. 그 학력으로 겨우 학원 아니면 시간 강사, 연구 교수 같은 저임금 계약직이 고작이니, 고학력 실업 문제는 어찌 해결해야 좋을꼬?


Posted by 사무엘

2013/03/30 19:29 2013/03/30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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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에 대한 생각

우리나라 내지 이에 준하는 여타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이 국민에게 보장하는 자유는 여러 종류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 제2장에서 신체의 자유, 거주와 이전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등등이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자유에는 책임이 뒤따르며, 남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범죄· 이적 행위· 반역을 조장하거나, 다른 자유 이념과 모순을 일으키는 자유는 자유로 인정받을 수 없다고 우리는 아주 어릴 적부터 사회· 도덕 시간에 배운다.

이런 자유들은 당연한 것 같지만 당연한 게 아니다. 선조들이 피흘려 쟁취한 소중하고 고귀한 이념이다(대표적으로 6· 25!). 또한 이것은 충분한 경제력과 심지어 과학 기술이 뒷받침 되어야만 실현 가능하다. 옛날에 먹고 살기가 어렵던 시절에는 사회 보장 제도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었으며, 뭐 하나 잘못 사고 쳤다간 집안이 쫄딱 망하고 처자식이나 자기 자신을 노예로 팔아야만 수습할 수 있었다. 거기에다 누가 무슨 짓을 할지 상대방을 믿을 수도 없는 긴급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모든 자유가 보장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나라는 명목상 미국의 사회· 정치 제도를 벤치마킹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시작했으나, 휴전선 너머 북한의 집요한 방해 공작과 비열한 해코지로 인해, 완전히 이상적인 자유를 실현하는 데는 애로사항이 있었다. 완전 폐쇄적인 선군정치 최적화 병영 국가와, 사회 시스템이 다 개방되어 있는 자유로운 국가가, 서로 인구와 경제력이 비슷하고 다른 변수가 없다면 어디에서 어디로 간첩을 침투시키고 유언비어 퍼뜨리고 심리전을 전개하기가 쉬울 것이며, 무력 충돌이 벌어졌을 때 누가 이길 가능성이 더 높을까?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북한과 관련해서는 불가피하게 기본권을 법으로 크게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 21세기에까지 국가 보안법 같은 구시대 악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21세기에까지 우리나라 체제를 부정하고 김씨 부자에게 이로운 짓을 하는 구시대 악인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으며 법에 저촉되어 잡히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독일이 아무리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 해도 나치 및 히틀러와 관련된 매체 표현은 무조건적으로 금지하며, 누가 길거리에서 팔 뻗쳐서 “하일 히틀러!”만 외쳐도 잡아 가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정상적인 독일 국민 중에 그걸 보고 무슨 국민 기본권 침해라고 징징대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자, 여기서 표현이라는 말이 나왔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표현의 자유'라는 말이 문자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18조와 21, 22조는 개념적으로 표현의 자유의 범주에 든다고 여겨진다.

본인은 크리스천으로서 표현의 자유라는 게, 사상과 종교의 자유에 동급으로 매우 중요한 자유라고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는 크리스천에게 거리 설교 같은 복음 전파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자유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은 남에게 영향을 끼치고 역사하는 신앙이다. 표현의 자유를 배제하고서 사상과 종교의 자유만으로 크리스천 신앙을 다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둘을 서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본인은, 우리나라는 표현의 자유를 포함한 기본권의 보장이 이미 넘치도록 충분히 아주 잘 돼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체제에 대해 고맙게 여긴다. 지금까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으로 내가 믿는 프로파간다를 주변에 알리거나 교회에서 거리 설교를 하면서 공권력으로부터 구금· 체포의 위협을 느낀 적이 없다. 심지어 정치인들 비판도 아무 문제 없이 했다.

이 명박 정권 때부터 분야별로 온라인 검열이 강화된다면서 사람들이 굉장히 불안해했다. 그러나 난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난 일단 신앙과 관련된 자유가 침해받지 않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자유감을 느끼며, 그것만 보장해 준다면 심지어 독재 정권이라 해도 별로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유가 너무 많아서 그걸 오· 남용 하는 부류들이 더 문제라고 난 생각한다.

북한 관련 표현이야 나라에서 하지 말라면 좀 참고 안 하면 되고, 음란물· 성인물이야 어차피 나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니.. 나라에서 그런 규제를 가하는 사정을 오히려 이해한다. 그런 규제가 무슨 북한 같은 수준의 검열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언론들이 너무 오버를 하고 네티즌들을 막 선동했다.

글쎄, 난 이런 점에서는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식의 어찌 보면 좀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난 그게 성경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난 당신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 사상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도 당신의 말할 권리를 위해 끝까지 같이 싸우겠습니다.”


그래서 특히 진보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이 말을 자기 블로그에다가도 많이 걸어 놓고, 많이 떠받드는 것 같다.

그런데, 난 양심적으로 저렇게는 못 하겠다.
나더러 그저 소수이고 박해받는다는(?) 이유만으로 병역 거부하는 인간들, 동성애자들, 낙태 합법화, 사형 폐지론자들의 말할 권리를 위해 같이 싸우자고? 못 한다. 물론 그들은 어차피 요즘 대한민국에서 박해를 받고 있는 것도 아니고.

크리스천으로서 그런 사람들을 괴롭히고 왕따 시키고 해코지하는 것에야 물론 동참하지 않는다.
하지만 혼자 죄의 가시밭길을 가다가 혼자 망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라.
그들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으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오류를 지적하면 지적했지,
그들의 표현의 자유의 보장을 위해 싸운다거나 기도해 준다거나(?) 하는 일은 난 할 수 없다. 난 볼테르 같은 대인배가 아니다. 아니, 난 하나님보다 더 대인배여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저렇게 '행동하는 양심'의 감성을 자극하는 작품으로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라는 시도 유명하다.
물론, 정치적 무관심을 풍자하는 건전한 메시지가 핵심이며, 평소에 선을 많이 행해 놔야 내가 위급할 때 나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교훈 정도는 나도 잘 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 사회민주당원, 노조, 유대인?
그 무엇이 됐든 아무튼 내가 신념적으로 동조하지 않는 그룹이 먼저 쓸려 나갈 때, 내가 굳이 먼저 그들을 위해 같이 나서야 할 필요는.. 솔직히 난 못 느끼겠다.
그들이 남아 있다고 해서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나의 '신앙'을 방어해 주는 데 기여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말이다. 오히려 크리스천은 그런 상황에서 마 10:17-20 같은 말씀을 더 떠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글쎄, 배가 침몰한다거나 화재가 났다거나 해서 사상이고 종교고 나발이고 없이 다같이 죽게 됐을 때야 인간으로서 서로 도와야 한다. 그거야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사상과 종교 자체만이 사람을 가르는 요인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자라면서 이런 내 생각이 앞으로 또 바뀌게 될지는 모르겠다. 크리스천 중에서도 교리에 명백히 어긋나지 않는 범위 하에서 세상사의 참여에 굉장히 호의적이며, 각종 사회 운동이나 심지어 파업· 데모에 대해서도 더 열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사실 집회와 결사의 자유 자체가 헌법에 있기도 하니 말이다. 이에 대한 이견과 논쟁은 이 세상이 어차피 제도적으로 성경대로 손쉽게 살 수 있는 형태로 되어 있지 않은 이상,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 같다.

끝으로, 자유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미국 얘기를 좀 하고 글을 맺겠다.
한쪽에서는, 미국이 점점 법이 바뀌어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고 반기독교 성향으로 가고 있다고 엄청 걱정한다.
거리설교를 했다간 잡혀 가고, 학교에 성경의 개인적인 반입이 금지되고, 교회나 신학교계에서도 이제 동성애를 당당히 반대했다간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게 생겼다고 걱정한다. 특히 흑인 대통령이 부임하면서 그런 추세가 더욱 심해졌다고 그런다.

그러나 크리스천 중에서도 좌성향이 더 강한 다른 한쪽에서는, 저런 것보다는, 여전히 미국의 메이저 교회들이 저지르는 병크와 비리, 그리고 특히 정치 종교 결탁 행위만을 비판하느라 바쁘다. 그런 것들이 나라에서의 크리스천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빌미를 주고 있다고 말이다.

양 극단 중에서 진실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미국은 모든 면모를 균형 있게 이해하기가 힘든 나라인 한편으로, 대형 교회들의 폐단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별 차이 없다는 걸 느낀다.

Posted by 사무엘

2013/03/25 08:38 2013/03/25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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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류와 기류

바다라고 해서 다 똑같이 제자리에서 출렁거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내부엔 마치 무빙워크처럼 유속이 다른 일정한 흐름이 있다. 애니메이션 '니모'에서도 비슷한 개념이 약간 과장이 곁들어진 형태로 묘사되어 있듯이 말이다. 지구의 자전과 달의 인력이 참으로 지구 자신을 살아 있는 행성으로 만드는 게 틀림없다.

그런데 오늘날 당연히 알려져 있는 이런 사실이 불과 2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당연한 사실이 아니었나 보다. 1850년대에 세계 최초로 해류라는 개념을 발견하고, 바닷바람과 해류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여 항로 기상도를 작성한 사람은 매튜 머리(Mathew Maury)라는 미국의 해양학자이다.

그리고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으며, 병상에서 성경을 묵상하던 중에 시편 8:8에 나오는 '바다들의 행로'라는 단어에서 착안하여 바닷길을 발견을 해냈다는 건 아주 잘 알려진 일화이다. 덕분에 이 사람은 크리스천 과학자, 성경의 과학성, 창조 과학 같은 주제를 다룰 때 예화로 거의 무조건, 정말 자주 등장한다.

그로부터 딱 100여 년 뒤엔 해류에 이어 기류라는 것도 발견되었으니 매우 흥미롭다. 2차 세계대전의 말기이던 1944년엔 일본을 공격하고 복귀하던 어느 미군 폭격기 조종사가, 태평양을 횡단하는데 갈 때와 올 때 비행기에 걸리는 부하와 연료 소모, 소요 시간이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이것이 공중에 굉장히 빠른 공기의 일정한 흐름이 있어서 그렇다는 것을 규명했다. 바람을 타고 가느냐, 거슬러 가느냐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이것이 바로 제트 기류이다.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서 미국으로 갈 땐 한국-일본 방면 벡터로 비교적 곧게 가고 시간도 덜 걸리지만, 돌아올 땐 알래스카 쪽으로 돌아서(?) 가고 시간도 더 걸리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제트 기류가 하필 항공기의 순항 고도에 딱 맞춰 존재하는 건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육지에서 길이라 함은 단순하게만 보면 발자국이나 바퀴 자국이 많이 쌓여서 특정 목적지를 향해 쉽게 이동할 수 있게 한 일정 길이의 표식/시설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큰 길은 일정 폭 이상으로 포장까지 되어서 큼직한 수레가 적은 힘을 들이고도 편리하게 굴러갈 수 있으며, 비가 내려도 진흙탕까지 되지 않는 설비까지 갖추고 있다.

유체(바닷물 내지 대기) 중에 존재하는 '길'이라는 건 육지의 길과는 개념적으로 다른 종류이지만, 그래도 방향성을 띠고 있어서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비행기나 배의 동력 효율을 끌어올려 줄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런데 '길'을 논하자면 길 중의 길이요, 길 중에 단연 으뜸인 철도가 빠질 수 없다.
철도의 선구자들 중에 성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과학자, 기술자는 없나 궁금하다. 허나 불행히도 KJV에서 rail은 '욕하다'라는 동사로만 쓰인다. ㅜ.ㅜ 우리나라엔 <레일러>(Railers)라는 철도 동인지까지 있는데 성경에서는 그게 '욕설하는 자'라고 버젓이 번역되어 있으니, 참 딱한 노릇. 물론 두 단어는 그냥 우연히 생긴 동음이의어일 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3/01/19 08:14 2013/01/19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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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병기 이야기

인간이 무력을 행사하여 적의 인명을 살상하고 재산을 파괴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를 흔히 무기 또는 병기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중 화약을 이용하지 않고 사람의 힘만을 실어서 다루는 도구를 '냉병기'라고 하며, 나중에 발명된 총, 수류탄, 대포 따위는 그 반대인 '열병기'라고 한다.

열병기가 발명되고 널리 보급됨으로써 전쟁의 양상이 크게 바뀌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대표적으로, 갑옷이 무의미해지고 퇴출됨). 열병기는 재래식 열병기와 핵무기로 또 나뉘기도 한다. 두 말할 나위도 없이 핵무기가 위력이 워낙 사기급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글에서는 열병기가 발명되기 전에 수천 년간의 인간 전쟁사에서 현역으로 뛰었던 냉병기에 대해서 그 종류별로 살펴보고자 한다.

1. 둔기

인류가 역사상 최초로 사용한 병기는 역시 둔기(날이 안 서 있는 몽둥이, 빠따-_-, 도끼, 철퇴 같은 무기)이다. 가장 만들기 쉬운 도구이니까. 나무로 된 방망이 하나만 들고 휘둘러도 그냥 주먹이나 발로 타격을 가하는 것에 비해 질량, 모멘트(길이 증가와 더불어 회전력도..), 충격량(더 단단한 접촉면)이 모두 다 더 커지면서 살상력이 증가한다.

둔기에 대해서는 성경적으로도 이렇게 생각해 보면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카인이 아벨을 죽이는 장면(성경이 말하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살인 사건)을 묘사한 그림에서, 카인의 손에 보통 무엇이 들려 있던가? ㅋㅋㅋ 성화들이 다 고증이 잘 맞는 건 아니지만, 저 고증은 내가 보기에 정확하다. “사람을 쳐서 죽게 한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 21:12)
둔기는 자르거나 찌르는 데는 약하기 때문에, 다른 냉병기들에 비해서 오로지 무거워야 충분한 살상력을 낼 수 있다.

2. 창

길다란 막대기 위에 뾰족한 쇠붙이가 달려서 찌르기가 가능한 도구이다. 냉병기 중 가성비가 가장 뛰어난지라, 역사적으로 전쟁에서 가장 널리 쓰인 냉병기는 활과 더불어 창이라고 한다. 검이 아니라 창인 게 뜻밖이다. 창이 더 길고 더 만들기 쉽다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한 것일까? 모순(矛盾)이라는 유명한 한자어도 '창과 방패'라는 뜻이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이 옆구리에 이것을 찔리셨다. 그리고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도 그는 이것을 던졌다. 창은 손에 쥔 채로 찌르는 용도뿐만 아니라 던지는 용도로도 쓰인다는 특징이 있는데, 그래서 성경에도 javelin과 spear라는 두 종류의 창이 나온다. javelin은 던지는 용도에 맞춰져 spear보다 더 가볍고 작은 창이다.

3. 검

도검류는 몸체의 대부분이 금속날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크기 대비 살상력이 뛰어나며, '찌르기'뿐만 아니라 '자르기, 썰기, 베기'가 가능하다. 칼은 단검부터 대검까지 다양한 크기가 존재하며, 여타 냉병기와는 달리 '칼집'이라는 보조 부품이 존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정도로 베는 성능이 우수하면서 크기도 큰 칼은 만들거나 다루는 데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하다못해 부엌칼도 잘 드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주부의 일손을 돕는 정도의 편차가 아주 크다) 또한 칼은 의외로 날이 손상도 잘 되기 때문에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물건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전쟁에서는 칼의 가성비가 창의 그것에 밀린 것 같다.

그래도 병기로서의 존재감은 역시 칼 만한 게 없다. 성경은 영적 군사의 모습을 로마 병정에다 비유한 엡 6:13-17에서 방어가 아닌 유일한 공격용 무기로서 검을 언급했다. 하나님의 말씀 도끼나 창이나 철퇴가 아니라 검에다 비유한 것이다. 또한 이런 표현도 있다. “그(공권력 집행자)가 헛되이 칼을 차지 아니하나니.” (롬 13:4)

이런 점을 감안하여, 오늘날 세계 각국의 경찰은 범죄자들을 제압할 때 몽둥이 아니면 차라리 권총을 사용하지 도검류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강도가 피해자(특히 인질)를 위협할 때 칼을 쓰지, 경찰이 칼을 쓰는 것은 영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 않는가?
국민을 상대로 필요 이상의 위압감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 같다. 또한 이와는 반대로 일제 강점기 때 일제는 기선 제압 효과를 얻을 목적으로, 헌병은 말할 것도 없고 학교 선생들까지도 길다란 일본도를 차고 강단에 서게 했던 것이다.

4. 던지거나 쏘는 물건

화약을 쓰지 않는 냉병기라고 해서 근접(melee) 공격 무기만 있는 건 아니다. 부메랑이나 표창이나 활도 엄연히 냉병기이기 때문이다.

무릿매는 성경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데 쓴 아주 유명한 무기이다. 이게 생각보다 유용하며 살상력이 크다고 한다.
활은 다윗과 요나단이 신호를 보낼 때 사용한 도구이다. 사울 왕과 훗날 아합 왕은 화살에 맞아 죽었다.

냉병기를 다루던 스킬 중 궁술과 검술은 스포츠로 남아 있으나, 창은 그나마 창 던지기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활은 총이 최초로 발명되어서 화약 심지에다 불을 붙여서 발사를 할 정도로 기술적으로 왕창 허접하던 시절에는 그나마 총과 대결할 만한 승산이 있었다. 그러나 탄피가 발명되고 총이 기관총 수준으로 빠른 격발이 가능해지자, 활은 총의 적수가 되지 못하고, 마치 증기 기관차가 은퇴하듯 전쟁용으로는 은퇴하고 말았다. 단, 활의 '정숙성'만은 화약 폭발이 필요한 총이 흉내 내지 못하고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3/01/14 19:25 2013/01/14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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