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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물건들 추억

1. 특수한 그리기 도구(?)

오래 전에 아이패드를 보고는 문득 이런 물건 생각이 났다.
저렇게 태블릿과 비슷하게 생긴 판때기 모양의 장난감이었는데, 전기를 쓰지는 않고 안에 가루 같은 게 꽉 차 있었다. 그리고 그 표면에다 펜으로 뭘 그리면 그림이 그려졌다. 흔들거나 다른 특수한 방법으로 내용을 다 지우고 화면을 초기화할 수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내부의 가루 상태를 이용해서 단색 그림을 그리는 패드가 있었는데 이 이상 더 자세한 정보가 남아 있질 않고 인터넷으로 더 검색도 할 수 없다. 이런 거 기억하시는 분의 제보를 기다린다.

2. 카세트 테이프의 주행

지금이야 음악 감상은 컴퓨터의 디지털 기술 기반으로 완전히 바뀌었지만 옛날에는 카세트 테이프라는 게 시대를 풍미하는 음성 매체였다.
카세트 테이프에는 주행용 구멍이랄까 회전축이랄까 그게 두 개가 있다. 재생을 하면 두 구멍 중 오른쪽에 있는 것 하나만 돌아간다. 되감기를 하면 왼쪽 것이 돌아가고. 즉, 한쪽의 동력이 다른 한쪽으로도 전해지는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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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난 테이프를 재생하는 중에 두 구멍의 회전 속도가 왜 서로 차이가 나는지가 어릴 때부터 굉장히 궁금했다.
갓 재생을 시작해서 테이프들이 아직 왼쪽에 몰려 있을 때는 왼쪽 구멍의 회전이 느리고 오른쪽 구멍의 회전이 빨랐다.
그러나 한 편을 다 들어서 테이프가 오른쪽에 몰려서 오른쪽이 거대해지고 나면, 반대로 왼쪽은 빨리 돌아가고 오른쪽은 느려졌다.

지금 그 모양을 다시 생각해 보니 카세트 테이프는 직경이 다른 두 톱니바퀴의 회전으로 인한 변속이라는 개념을 설명해 주는 좋은 예였다. (테이프가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감기면서 양 구멍의 직경이 서로 달라지므로..)
아니, 더 나아가 테이프는 톱니라기보다는 벨트에 더 가까운 형태이니, CVT 무단변속기를 떠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카세트 테이프 재생기가 있으면 주행 과정에서 양 구멍/바퀴의 변속비가 얼마까지 달라지는지를 더 눈여겨보고 싶다.

3. 노래방 기계 글꼴

요즘 노래방을 가 보면 옛날에 비해 가사의 글꼴이 더 새끈한 걸로 바뀐 것만 봐도 시대가 바뀌었다는 걸 개인적으로 딱 바로 알 수 있었다.
오랫동안 노래방 가사 자막용으로 쓰인 서체는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아래아한글 40*40 비트맵 명조를 떠올리게 하는 구닥다리 비트맵 명조체였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에 아래아한글 1.x로 조판된 듯한 옛 영진 출판사 책들을 보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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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이 명조체를 대체한 것은 큐닉스 서체인 가을체와 으뜸체 정도. 노래방 기계에서는 요 둘이 굉장히 많이 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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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는 노래방에서도 서울남산이나 나눔(바른)고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4. 옛날 키보드

한동안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그러게, 한 30년 전쯤의 구닥다리 컴퓨터들은 키보드의 구성이 지금과는 살짝 달랐다. 미국 원판은 84키이고 한국에서는 한영/한자가 추가돼서 86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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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초딩 시절에 컴퓨터 학원에서 이 구식 키보드를 본 기억이 있다. 지금 키보드와 다른 점은 다음과 같다.

  • 일단 F1~F10 기능키는 왼쪽에 2열 종대로 늘어서 있고 F11과 F12는 존재하지 않는다.
  • 문자 키와 키패드 사이에 여분의 화살표 내지 키패드 기능 키들(pg dn/up, home, end, insert, del)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Num lock이 켜져 있는 동안은 키패드 기능 키들을 사용할 수 없다.
  • Ctrl은 지금 Caps lock이 있는 곳에 있다. 그 대신 Caps lock은 우측 하단에 있다. (그래 그랬다, 완전 추억 쩐다!)
  • ESC가 지금의 Num lock 자리에 있다.
  • 키패드에는 +가 지금의 엔터 자리에 있다. 그리고 / 는 키패드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지금 키보드의 전신인 101키 키보드가 나오고, 국내에서는 역시 한영/한자가 추가돼서 103키가 되었다. Windows 95부터는 Win키가 그것도 좌우에 하나씩 2개나 추가되고, 또 컨텍스트 메뉴키가 더해져서 10키가 되었고, 이것이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나저나 키보드의 연결 단자 자체도 DIN 내지 AT 단자부터 시작했다가 PS/2 단자를 거쳐 지금은 USB가 대세가 됐으니 이것도 격세지감이다.

저런 '정식 키보드'는 규격이 전부 통일되어 있는 반면, 기계마다 살짝 차이가 있어서 혼동을 주는 건 노트북 컴퓨터 키보드에서 키패드의 기능키들이 배당된 방식들이다. 특히 pg up/dn이나 home/end 같은 것.
그리고 노트북은 부족한 키의 기능을 보충하려다 보니 자체적인 fn 키도 있는데.. 일반 노트북의 경우 좌측 하단에 Ctrl fn win alt의 순으로 키가 있었던 반면, 맥북은 fn ctrl alt win으로 순서가 미묘하게 바뀌어 있어서 이것도 적응이 몹시 힘들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5/10/09 08:34 2015/10/0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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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6일 전쟁에서 기적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뭐 모세 다얀 장군의 영도력, 하나님의 기적, 국민들의 근성과 애국심, 미국의 지원 버프 등등 여러 얘기가 나도는데, 그 승리의 비결 중에는 첩보 활동도 있었다.
‘엘리 코헨’(1924-1965)은 이스라엘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급의 스파이였다. 아마 국정원 공채 같은 걸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일 게다. 우리나라 군대에서 정훈 시간에 강 재구 소령이나 연평해전 영웅을 가르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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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코헨은 유창한 외국어와 수려한 외모, 그리고 모사드가 지원해 준 자금빨을 총동원해 인심 후한 사업가로 위장해서 적국 시리아의 고위 공직자들과 인맥을 맺었다. 그러면서 전장인 골란 고원을 관광 가는 척 방문해서는, 주변에 있는 것들을 몽땅 비상한 기억력으로 암기하거나 도촬해서 이스라엘군에게 보내 줬다. 우리로 치면 북한으로 침투해서 북한의 고위 간부들을 교묘히 속인 후, DMZ 안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거기 있는 북한군 GP 등의 군사 시설 위치와 상황을 고스란히 알려 준 것과 같다. 1960년대 초엔 구글어스 같은 게 없었으니까. 그야말로 스타크래프트 맵핵의 실사판이다?

“여기서 근무하는 장병들은 땡볕에 고생이 참 심할 텐데, 빨리 자라는 유칼립투스 나무를 심어서 그늘을 만들어 놓는 게 어떨까요?”라고 제안까지 슬쩍 했는데 그게 받아들여졌다. 덕분에 이스라엘군은 나중에 유칼립투스 나무가 있는 쪽에다가만 포를 쏘면 되게 됐다. Oh shit;;

그는 무전기로 정보를 너무 오랫동안 많이 보내다가 “꼬리가 길면 밟힌다”와 같은 과정으로 결국 정체가 탄로나고 체포됐다. 기가 막힌 연전연패에 이거 아무래도 우리 내부에 첩자가 있는 것 같다는 의심을 시리아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정체 불명의 전파가 송신되는 것으로 의심되는 지역의 건물들을 일부러 강제 정전시켜 봤는데, 하필 혼자 배터리를 이용한 기기로 전파가 발사되고 있는 지점이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이것도 소련으로부터 기술과 장비 원조를 받고서야 잡아 낼 수 있었다.

범인이 잡히자 시리아 당국은 충격에 빠졌다. 그 인심 좋게 생긴 사업가가 자국의 고위직 인사들을 몽땅 농락한 골수 간첩이었다니! 그는 숱한 고문과 협박에도 불구하고 협력자를 더 불지 않았으며, 자국에다 교란용 역정보를 송신하라는 강요에 응하지 않았다. 그 대신 교묘한 테크닉으로 모스 부호를 만들어서, 어째 자기가 체포 당했다는 사실을 자국으로 알렸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애국자 엘리 코헨을 “우린 저런 요원 보낸 적 없는데?”라고 외면하지 않았다. “우리가 체포해 있는 시리아 간첩/포로 10명과 교환하자, 그걸로 모자라면 현금박치기에 트럭 등 원하는 거 다 주겠다!”고 제안했으며, 국제 여론까지 동원해서 그의 석방 내지 감형을 촉구했다.

그러나 시리아는 자기네 약점과 기밀을 너무 많이 알아 버린 엘리 코헨을 도저히 살려 둘 수 없었다. 시민들이 지켜보는 데서 그를 교수대에 매달고, 처형 과정을 동네방네 생중계했다. 사실, 생각 같아서는 그들은 그를 아예 각을 뜨고 능지처참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처형 당시 그의 몸에는 아랍어로 온갖 문구가 써진 커다란 종이가 붙어 있었는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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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이스라엘은 시신이라도 돌려 달라고 요청했으나 이 역시 단칼에 씹혔다. 그것조차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시리아의 분노와 증오심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는 돼지의 오물이 뒤섞인 채(유대교 율법에서 돼지란..) 대충 아무렇게나 매장당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제 와서는 유해를 찾을 수도 없다.

국익을 위해서라지만 거짓말과 위장을 능수능란하게 해야 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달성한다”에 따라야 하는 국정원 요원 같은 업종에 크리스천이 종사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건 크리스천이 정치인이 되는 것과도 비슷한 맥락의 문제 같다.

세상 사람들이야 믿음이 아닌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 대 국가끼리는 개인 대 개인과는 달리, 힘에는 더 큰 힘으로 대응하고 악에는 악으로 맞서야 할 때가 있다. 성경에서 간첩은 창세기의 요셉도 알고 경계할 정도의 직업이었다(창 42:9). 곧이어 출애굽기의 히브리 산파는 비록 첩보는 아니지만 일단 거짓말을 했는데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경우가 있고, 이스라엘 역시 전쟁 과정에서 당연히 정탐꾼을 운용했다. 거짓말을 동원해서 정탐꾼을 숨겨 준 창녀 라합은 완전 의인으로 칭찬받기까지 했다. 물론 그건 하나님이 “목표는 수단을 정당화한다” 급의 철학에 입각해서 인정하신 건 아니며, 믿음의 행위에다 정당방위· 긴급피난 같은 정황이 인정된 것에 가깝다.

시간과 분량 관계상 이 글에서 모든 디테일을 논하기는 어렵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예수 믿는다고 해서 국정원 요원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여겨진다. 애초에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는 군인부터가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든지 인정받는 직업이고 병역 거부는 잘못된 행동인데, 그걸 대놓고 하나 좀 자기 정체를 숨기고 하나 무슨 차이이겠는가? 상관의 명령대로 나라 지키는 궂은일만 하는 거라면 말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이런 일이 자기 양심에 걸리고 적성상 도저히 못 하겠으면 절대로 손대지 말아야 할 것이다. 너무 비위가 약해서 해부 실습을 못 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공부를 잘한다 해도 의대에 가지 말아야 하듯이. 양심에 거리낀다면 그건 죄가 된다.
적성국가에서의 첩보 임무는 실패하면 자기만 죽는 게 아니라 동료 요원까지 다 죽게 만드는 경우가 태반이니 말이다. 국정원 요원은 존재감이 있어서는 안 되는 관계로, 순직해도 전사 군인과는 달리 현충원에도 못 간다. 저렇게 대대적으로 알려진 엘리 코헨이 오히려 굉장히 예외적인 경우이다.

따지고 보면 엘리 코헨이 한 일은 엘리사가 한 일의 정확한 판박이였다. (비록 엘리사는 본업이 대언자이지 전문적인 간첩· 공작원은 아니었지만..;;) 열왕기하 6장을 쭉 읽어 보시라. 게다가 이 시절에도 이스라엘의 적국은 시리아였다!

이러므로 이 일로 인해 시리아 왕의 마음이 매우 괴롭게 되어 그가 자기 신하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을 돕는지 너희가 내게 알려 주려 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그의 신하들 중의 한 사람이 이르되, 오 내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에 있는 대언자 엘리사가 왕께서 왕의 침실에서 하시는 말씀이라도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나이다, 하니라. (왕하 6:11-12)

Posted by 사무엘

2015/09/25 19:35 2015/09/2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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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파 사건 회상

본인이 초등학교 말년이던 시절, 1994년 가을엔 오로지 살인을 위해 결성된 폭력 조직이자, 그들의 야망대로였다면 거의 반국가단체 급으로 사회에 해를 끼칠 수도 있었던 '지존파' 사건 때문에 나라가 떠들썩했다. 공교롭게도 이들이 원래 지었던 조직명부터가 '야망'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인 '마스칸'이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고전인지 현대인지, 성경 코이네인지 어느 그리스어에 저런 음가의 단어가 있는지는 내가 확인을 못 했다. 아무튼, '지존파'라는 이름은 이들을 검거한 경찰 간부가 새로 붙여 하사한(?) 이름이다.

이런 조직이 결성되고 1년 남짓만이라도 안 잡히면서 활동할 수 있었던 건 두목이 참 똑똑하긴 했던 덕분이다. 조직원이 단 하나라도 일말의 동정심과 인간성이 남아 있다간, 언젠가 이런 흉악 범죄 행각에 회의를 느끼고 조직을 배신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럴 여지부터 완전히 제거했다. 몸으로는 특수부대를 방불케 하는 치밀한 자체 훈련을 거치고, 공동으로 살인 예행연습까지 하면서 공범 의식과 팀웍을 다지고 동정심을 제거했다. 누굴 납치해서 금품을 뜯은 뒤엔 일체의 협상도 없이 피해자를 무조건 잔혹하게 죽이고, 증거를 은폐하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몸뿐만 아니라 정신으로는 부자들, 부패한 윗대가리들에 대한 증오심을 강화했다. 게다가 "여자는 친어머니래도 믿지 마라"라는 강령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로 선견지명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저게 지켜지지 않아서 잡힌 거나 마찬가지이니까.
지존파와 관련해서 주목할 만한 여성은 두 명이 있었다. 둘 다 20대 나이에 성이 이씨이고 술집 종업원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인터넷을 뒤져 보면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인 것처럼 잘못 써 놓은 글이 나돈다. 그러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먼저 등장하는 한 명은 남자친구의 차를 타고 양평에서 데이트를 하던 중에 지존파에게 커플째로 납치당한 피해자였다. 그녀는 자기도 직업 때문에 형편보다 더 고급스럽게 입고 다닐 뿐이지 절대로 당신들이 미워하는 부자가 아니고, 살려만 준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고 필사적으로 읍소를 하여 동정심을 샀다.
여자의 눈물을 보니 마음이 움직였는지, 지존파 팀원 중에서는 그녀에게 반하는 사람이 생겨 버렸을 정도였다. 이 때문에 "그래도 여자는 안 돼 / 돼!"로 팀원간에 다툼이 벌어졌다.

결국은 살려 주고 조직원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그 여인도 살인에 공범으로 가담시켰다. 당장 자기의 원래 애인인 남자--물론 맨정신은 아니고, 강제로 먹인 술에 만취해서 퍼진 상태이긴 함--를 얼굴에 봉지를 씌운 채 목졸라 죽이는 걸 거들어야 했으며, 다른 납치해 온 중소기업 사장에게는 공기총 방아쇠를 당겨야 했다.

가련한 그 여인의 입장에서는 정말 멘탈이 붕괴하는 순간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당장 자기 목에 칼침이 들이대어져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옛날에 731 부대에서도 신참이 들어오면 신고식이 뭐냐 하면, 만만한 마루타를 하나 손수 때려 죽이는 것이었다. 그걸 못 하면 그 군인이 기수열외를 능가하는 끔찍한 응징을 당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부대원들이 마루타에 대한 동정심과 죄의식을 제거하고 공범 공동체 의식을 다졌다. 악의 집단들이 하는 관행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지존파는 나중에 두목이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바람에 교도소에 갇히고, 또 다른 조직원은 다이너마이트를 다루다가 손에 큰 화상을 입었다. 그 여인은 부상당한 팀원을 병원으로 에스코트 하던 도중에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필사적으로, 정말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경찰에 신고를 했다. 이판사판인데 기왕이면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다가 죽고 피해자들에게 사죄라도 하겠다는 심정으로 내린 결심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용기 있는 행동 덕분에 지존파의 만행이 세상에 알려지고 그들은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오기 전에 검거될 수 있었다. 예전의 각종 실종 신고와 음주운전 사망 교통사고에 대해서 그녀의 증언이 일치했으며, 덕분에 사건들 간의 끊어진 연결 고리가 발견될 수 있었다.

첫 여인이 연락이 두절된 뒤에 지존파 내부의 분위기는 어떠했으려나 모르겠다. 그 와중에 그들은 웬일로 기존 강령을 정면으로 무시하면서 다른 여인을 신규 멤버로 영입했다. 한 팀원의 애인이던 '이 경숙'. 술집에서 노예계약 상태였던 듯한데 지존파에서 1000만 원이 넘는 거액을 주고 업주와 채무 내지 계약을 청산하여 그녀를 데려 온 것이었다. 식사 준비와 잡일 등, 일종의 파출부처럼 부릴 '비전투 요원'의 필요를 느꼈던 듯하다.

이 경숙은 지존파 일당이 검거되기 겨우 나흘 전에 조직에 가입한 것이어서 따라 다니기만 할 뿐 실제로 범죄 행동에 가담한 것은 없었다. 그래도 적극적인 신고와 탈출 정황이 없었으니, 범죄 단체 가입과 사체 은닉 혐의로 일단 다같이 체포되고 구속됐다. 처음에 5년형이 구형되었으나 최종적으로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으로 귀착되었다.

두 이씨 여인이 지존파 아지트 내에서 같이 마주친 적은 없다. 이 경숙은 전원 사형을 당한 남자 팀원들에 비해서 존재감이 훨씬 덜하기 때문에 결말이 잘 언급되지 않는 반면, 그래도 실명은 아주 쉽게 금방 검색된다. 순수한 피해자인 첫 여인은 그 반대로 결말은 잘 검색되지만 이름이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옛날 신문· 방송을 검색해 보면 ㅅㅎ라는 이름이 나오긴 하지만, 이것도 사실은 그냥 대외적으로만 쓰인 가명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성경에서 동명이인을 헷갈리고 마태복음의 피 밭과 사도행전의 피 밭을 헷갈리듯이 저 두 여인이 동일 인물이라는 잘못된 정보도 나도는 듯하다. 파편화된 두 정보를 취합하여 피해자 여인이 이름이 이 경숙이고, 이 사람은 탈출을 했지 검거된 지존파 멤버 중에 여성은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피해자인 첫 여인이 살인에 가담한 것에 대해서는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불가항적인 정황이 인정됐다. 검찰은 애초에 기소도 하지 않았으며, 신변 노출 없이 탈북자마냥 모처에서 집과 직장을 마련하여 새 삶을 살 수 있게 오히려 그녀를 도와 줬다. 전쟁터에서도 정말 도저히 불가피한 상황에서 항복하고 포로로 잡혔다가 송환된 군인을 무슨 여적, 항명죄로 처벌하지 않듯이 말이다.

오늘날 지존파는 당연한 말이지만 잔당이나 공범, 추종자, 후계자 따위는 전혀 남지 않고 모조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없다. 워낙 흉악하고 죄질이 나쁘며 무고할 가능성이나 교화 가능성 따윈 0인 부류에게 대한민국의 법이 관대해야 할 이유는 추호도 없었다. 온갖 범죄자들을 상대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형사, 검사 등등도 이들의 살인 공장과 유치장, 사체 화장 아궁이, 각종 흉기와 심지어 이들의 식인 행각까지 듣고 보고는.. 충격과 공포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등/지방/대법원에서는 신속하게, 남자 조직원 6명 모두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1994년 9월 말 체포, 10월 말 사형 선고, 항소심과 상고심에서도 사형 확정, 그리고 1995년 11월 2일에 곧바로 집행! 1년 남짓한 시간밖에 안 걸렸다.

군사 정권 시절도 아니고 민주화 이후에 비정치 단순 흉악 범죄자에 대해 이렇게 신속하게 사형이 떨어지고 무려 6명에게 대규모로 집행된 사례는 거의 전무후무할 것이다. 집에 불을 질러 자기 친아버지를 죽인 패륜아 박 한상도 비슷한 시기에 사형이 확정되긴 했지만, 그래도 집행은 차마 안 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잔당이 전혀 남아 있지 않으니 피해 여인은 이제 와서 신변이 공개된다고 한들 '탈출과 신고 사실' 자체로 인해 보복 범죄나 다른 불이익 따위를 당할 가능성은 전혀, 저언~혀 없다. 오늘날 적극적인 신변 보호가 필요한 여느 증인이나 내부 고발자와는 처지가 다르다.

그래도 그녀는 악마의 집단에 끌려가서 생명의 위협과 윤간을 당하고 강제로 살인에 시늉으로라도 가담해야 했던 끔찍한 트라우마를 평생 지고 가는 가련한 사람이다. 술집 업주에게서 풀려나는가 싶었는데 졸지에 흉악 범죄에 연루되어서 쇠고랑 차고 집행유예로나마 전과자가 된 이 경숙의 처지도 딱하다면 딱하지만, 그 처지가 첫 여인에 비할 바는 못 될 것이다. 애초에 두 여인은 애인의 처지가 서로 완전히 반대였으니 말이다(지존파 가해자 vs 피해자).

앞으로 이런 지존파 사건 같은 비극이 없어야 하겠지만, 사회의 모든 부조리, 불공평을 사회 탓, 정치인 탓으로만 돌리는 사고방식으로는 사회가 더 나아질 수 없으며, 그 누구라도 멘탈이 병들고 피폐해지고 분노를 엉뚱한 곳에 표출하는 병크가 곳곳에서 터질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09/23 08:36 2015/09/2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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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 이야기 외

"어린 시절, 어머니가 무대 가수로 일하다 목이 쉬어서 삑사리가 나서 청중들로부터 막 야유를 받고 있었는데.. 그때 자기가 어머니를 대신해서 천부적인 개인기를 즉석에서 선보여서 '브라보!' 동전세례와 환호를 받았더라.." 본인은 찰리 채플린에 대해서 이런 얘기를 아주 어렸을 때 읽은 적이 있다.

그것 말고 본인이 더 알고 있는 건 그 특유의 히틀러 수염 + 중년 정장 복장의 광대 같아 보이기도 하는 개그 캐릭터, 일명 Little Tramp이다. 그리고 모던 타임즈라는 풍자 영화를 만들어서 연기한 것 정도만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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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채플린은 모던 타임즈 이전부터 그야말로 리즈 시절을 누린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영화라는 매체의 초창기 역사를 함께한 산 증인이다.

채플린이라 하면 일단 무성 영화 시절의 인상이 아주 짙지만, 그는 나중에 유성 영화와 컬러까지 다 경험하긴 했다. 애니메이션과 음악만 있는 건 요즘으로 치면 플래시 무비 같은 느낌도 든다. 그 시절엔 화면 전환이나 글자 자막을 전부 아날로그 방식으로 어렵게 넣어야 했겠지만.
유튜브에 굴러다니는 영화 몇 편을 보니 저때 그 사람이 추구한 개그 코드가 이런 식이구나 하는 건 대충 알겠다. 산업 혁명의 원조 국가 출신답게 문명 사회에 대한 풍자가 많다. 밥을 떠먹여 주는 기계는 그 시절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정말 시대를 앞서갔다 싶다.

그리고 광대 연기만 한 게 아니라 각본 쓰고 연출을 하고 음악까지 혼자 다 작곡했다는 건 보통일이 아니다.
대사가 없기 때문에 시종일관 BGM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더 높던 무성 시절부터 말이다. 연기뿐만 아니라 음악의 천재이기도 했다는 점도 다시 봐야겠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만능 예능인이 맞다.
"빠라라람? (똑딱똑딱) 빠라라람!" CF에서도 들은 적이 있는 음향이었는데 이것도 원조는 채플린 영화였구나.

저 사람 콧수염 모양이 아무래도 히틀러를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실제로 닮은 게 맞았다. 채플린은 히틀러를 희화한 영화를 한두 차례 만들어서 히틀러 연기를 했다. 히틀러 당사자 역시 처음엔 자기를 풍자한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고 하지만, 1940년작 <위대한 독재자>는 풍자의 도가 지나쳤는지 나치 독일에서 국내 수입과 상영을 금지당했다고 한다. 참고로 채플린과 히틀러는 나이가 완전 동갑인 동시대 인물이었다. 둘 다 1889년 4월생이고 생일도 나흘밖에 차이가 안 남.

아인슈타인을 백발의 혀 쑥 내미는 얼굴만 보다가 젊었을 때 모습을 보면 적응을 못 하듯, 채플린도 일명 Little Tramp 코디인 중년 신사 연기 모습만이 너무 짙게 각인되어 있는지라, 젊었을 때나 말년 모습을 보면 적응이 안 된다.
채플린은 89세의 나이로 천수를 누린 뒤, 자던 중에 타계했다. 죽는 과정이 아주 이상적이었다.

다음은 그 밖의 trivia들.

1. 찰리 채플린은 가난하고 못 사는 집안 출신이었고 작품 중에 사회 풍자적인 메시지를 종종 담다 보니, 정치적 소신은 아무래도 성장보다 분배를 좋아하고 노동자를 편드는 쪽에 가까웠다. 그 자체가 문제가 있거나 잘못됐다는 뜻은 아니지만, 일련의 행적으로 인해 그는 그 살벌하던 냉전 시기에 일부 국가와 높으신 분들 계층으로부터는 좀 빨갱이 취급을 받았다. 한때 미국 입국을 금지당하기도 했을 정도이며, 한국에 채플린의 작품이 생각보다 늦게 소개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하긴, 그 시절에 헬렌 켈러도 장애를 극복한 위인이기만 한 게 아니라 굉장한 좌파 성향의 사회 운동가였고, 심지어 피카소 화가도 비슷한 성향이었다.

2.
연예인들이 인기 관리에 대한 압박감과 공연 후의 허무함 때문에 멘탈에 대미지를 입으며 지내고 급기야 마약에 빠지고 자살까지 하는 것처럼.. 저 사람도 남을 웃기는 직업과는 정반대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견디다 못해 하루는 정신과 의사에게서 상담을 받았는데.. 환자가 누군지 모르던 의사는 그에게 이런 권고를 했다.
"찰리 채플린이 나오는 영화를 몇 편 좀 보시죠? 그러면 마음이 즐거워지고 증세가 나아질 겁니다~ ^^"

이런 비슷한 사례가 또 떠오르는 게 있다.
우리나라에 정 근모 박사는 핵 물리학자 출신으로 전 과학기술처 장관, 호서대 총장 등을 역임한 분이다. 학창 시절에는 경기고를 4개월만 다니다가 그냥 고졸 검정고시 + 월반을 해서 서울대 문리과대학에 차석으로 입학해 들어갔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절대적인 학업 축적량이 부족하니, 수학· 과학만 잘하지 영어까지 바로 따라갈 수는 없었다.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교양 영어 시간 때 교수/강사의 질문에 대답을 못 해서 쩔쩔맸다. 그러자 그 선생은 정 군에게 이렇게 핀잔을 줬다.
"아니 명색이 서울대를 들어왔다는 학생이 이것도 모르냐? 여기에는 고등학교를 4개월만 다니다가 월반해 들어온 천재도 있는데!"
이에 주변의 학생들은 다 빵터졌다고 한다..;; (정 근모 박사 자서전에 언급되어 있는 일화)

3.
옛날에 내 동심을 자극하던 '찰리' 캐릭터로는 찰리 채플린 말고 만화 주인공인 찰리 브라운도 있었다. 만화의 원제가 <피너츠>였고 이 만화는 4컷 형태로 생각보다 오래 최근까지 연재되었다는 것은 작가가 작고하고 나서 한참 뒤에야 알게 됐다. 연재 기간은 1950년부터 2000년 진짜 딱 반세기에 달한다.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에서 비슷하게 그 정도로 오래 연재된 4컷 만화는 <고바우 영감>이다. 이것도 주간지 시절까지 포함하면 딱 1950-2000이다.
뭐, 채플린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그래도 얘도 20세기 추억의 만화물이고 연재 기간이 채플린이 살아 있던 기간까지 포함하고 있으니 같이 연상이 될 만도 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15/09/17 08:33 2015/09/1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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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마 빈 라덴이 죽은 지가 벌써 4년이 넘었다.
저 한 사람을 잡으려고 미국이 정말 얼마나 천문학적인 돈(= 국민 세금)을 쏟아부어야 했는지를 생각하면 아마 치가 떨릴 것이다.
정확한 근거는 모르겠다만, 한때 미국 해병대 내부에서는 "빈 라덴을 용서하는 것은 신이 하실 일이겠지만, 둘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은 우리 일이다."라는 대박 간지 넘치는 모토가 설정돼 있었다고 한다. 짱이다. 같은 메시지도 단어만 바꾸면 저렇게 센스 넘치게 표현할 수가 있구나!

뱀발을 내밀자면, 비슷한 패턴의 대사가 테이큰 3에도 있었다.
"내게 이틀만 주시오. 그러면 내가 무죄인 것과 진짜 범인이 누군지를 모두 입증해 보이겠소!"
"밀스 씨, 당신의 무죄 여부는 법정에서 판단할 일이지 내 관할이 아니오. 내가 할 일은 당신을 붙잡아서 법정에 세우는 일이지. 단지 그 뿐이오.
당신이 그 길로 도주한다면 LAPD(로스앤젤레스 경찰국), FBI, CIA가 모두 당신을 찾아 나설 것이고 당신을 저지시킬 거요."
"굿 럭." 아, 뿅 갈 거 같다.

뭐, 빈 라덴은 실제로 신에게서 용서받았을 확률은 매우 희박하며(단순 악행 때문만은 아님), 정작 실제로 둘의 만남을 주선한 것도 해병대가 아니라 해군 대테러 특수부대였다.
그 시절을 좀 회상하자면, 그는 하필 킹 제임스 성경 반포 딱 400 주년 당일에 사살당했다. (2011년 5월 2일) 이건 뭐 그냥 우연이라 치자.
듀크 뉴켐 포에버는 원래 북미 기준으로 5월 3일에 나오려 했는데 마지막으로 딱 한 번 더 연기돼서 6월 10일로 낙점됐었다.

이렇게 빈 라덴을 사살하기 위해서 미국은 전국, 전세계 각지에서 놈의 근황과 행동을 추적하고 치밀한 첩보 활동을 벌여야 했다. 미국은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나라이고 그만큼 적도 많으니까.
세계 각국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방첩 활동을 하는 국가 기관이 있다. 그것이 우리나라는 한때는 중앙정보부, 안기부였다가 지금은 국가정보원, 혹은 국정원이다. 미국이나 이스라엘처럼 국내· 국외가 나뉘어 있지는 않고 단일 기관이다.

전철 안에서 111 신고 전화를 홍보하면서 "국가정보원에서는 마약, 국제범죄, 테러, 산업 스파이 등 ..." 어쩌고 하는 방송을 종종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요즘 국정원에서 실제로 하는 일은 예전만치 오로지 대공· 대북 업무보다는 제3세계 산업 스파이 단속의 비중이 더 크다. 이런 교묘한 범죄를 잡아 내는 건 경찰만으로는 증거 확보에 어려움이 있는 관계로, 불시에 확 덮쳐서 범죄 순간의 스냅샷을 떠 주는 전문 첩보 기관의 도움이 필요하다.

국정원 요원은 딸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익을 지키기 위해서 진짜로 리암 니슨처럼 어디에 위장해 들어가고 감시하고, 필요하다면 폭력도 쓰고 희대의 난폭운전도 벌이는 등 별 짓을 다 해야 한다. 그러다 들키면 납치· 고문· 살해 등을 당하기도 하고 이때 모기관으로부터는 필요하다면 "우린 저런 요원을 보낸 적 없는데? 모름." 버림받기까지 하는 것도 국익을 위해 감수해야 한다.

국정원이 워낙 뽀대와 간지가 나고 연봉과 복리후생이 좋다고는 하지만, 그걸 다 공짜로 제공해 줄 리가 없으니.. 그저 간지만 보고 도전할 만한 곳이 결코 아니다. 임기응변과 근성, 예리한 관찰력이 부족한 사람, 그 어떤 사람과도 친근하게 붙어서 원하는 정보를 얻을 정도의 화술과 사회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 일반인 평균 이상의 지력과 체력이 없는 사람, 미행을 티 안 나게 못 하고 어디서든 거짓말을 실감나게 못 하는 사람은 저런 기관에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특히, 자기 분야의 밥벌이 기술만 평생 연마하며 살고 싶은 사람, 처자식과 평범한 가정 꾸리고 가정적인 남편이 되고 싶은 사람은 더욱 가지 말아야 한다. 고로 국정원 같은 곳은 본인에게 맞는 직장은 전~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요원 신입 공채는 SKY 출신에 외대 출신들이 대거 몰려 경쟁률이 몇십~100몇십 대 1이라고 한다.

본인이야 인간의 죄성의 본질을 아는 크리스천으로서, 절대악을 다스리기 위해 불가피한 필요악의 존재에 대해 긍정적이다. 북한 같은 절대악이 있는 우리나라 같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그 필요악이 옛날에는 잡으라는 빨갱이는 안 잡고, 반공을 빌미로 도리어 자국민에게 나쁜짓을 한 것도 있음은 사실이다. 그래서 첩보 기관인 국정원 역시 대국민 이미지가 아직까지도 마냥 좋지만은 않다.

이런 위압적이고 코렁탕 스러운-_-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서인지 국정원에서는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꽤 오래 전부터 한 달에 두 번꼴로, 국정원 요원이 하는 일이나 당할 만한 일을 소재로 추리 퀴즈를 연재하고 있다. 국정원 요원이 반쯤은 탐정 같은 일도 하는구나. 기출문제가 이미 몇백 개나 쌓여 있다.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본 사람들은 어지간히 뻔한 설정이나 스토리, 클리셰를 보면 다음 장면이 바로 예상이 되듯이, 추리 소설 덕후들은 딱 보면 바로 답이 나올 정도의 난이도라고 한다.

추리소설의 설정에만 파묻히면, 마치 Doom 2를 너무 많이 한 것처럼 정말 세상에 어디 믿을 놈 없고 기술을 어디 팔러 홀몸으로 나갔다가는 반드시 살해당할 것만 같고, 마약 조직이나 사이비 종교에 있다가 탈출하게 되면 정말 목숨을 부지 못할 것 같다.
시신을 전기 장판으로 덮어서 따뜻하게 유지해서 체온 감소로 사망 시각을 추정하지 못하게 하는 건 2008년 부산 청테이프 살인 사건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 이걸로 모티브를 딴 건지?
또한 커피에 독을 타서 누구를 독살한 건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이 어린 시절에 비슷하게 당한 일이다. 국정원 간부라면 역사· 시사· 상식의 달인일 테니 이런 것에서도 소재를 차용했을지도 모르겠다.

추리 문제를 푸는 건 어찌 보면 거짓 증언에서 설정 오류를 찾아내는 것이니, 역덕후들이 사극을 보면서 고증오류 찾아내며 낄낄대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뭔가 교집합이 있다. 나 같아서도 당장 떠오르는 철도 추리 퀴즈는 전철이 절연구간에 진입해서 좀 어두워졌을 때 객실에서 무슨 살인 사건이 터졌고, 어느 철도 덕후 탐정이
"범인이 제시한 사진은 합성· 조작된 것입니다. 2014년에는 아직 수인선 전철이 거기까지 개통하지 않았습니다."
"그 복복선 선로 구간에서 일반열차가 내선을 주행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데서 단서를 찾아내면 무척 아름다운 이야기가 완성될 것 같다.
이와 관련된 본인의 옛날 글을 한번 보시라. 거기서도 이미 '셜록 홈즈' 같다는 댓글이 있었다. ^^

실제로, 국정원 추리 퀴즈 기출문제들 중 다른 건 내가 뭔 소리인지 몰라서 대부분 그냥 해답을 봤지만,
이것만은 그냥 문제를 다 읽기도 전에, 저거 그림만 보고는 출제 의도와 논리상의 헛점을 0.n초 만에 바로 알아챘다. <전철 3호선 살인 사건> 편.

우측통행을 하는 전동차 선로 사진을 들이밀면서 '1호선 보산 역'이라고 주장하며 알리바이를 내세우다니 거 참.. ^^
아 추가로, 그림에 나와 있는 전동차가 폭이 좀 작은 편인지라,
혹시 지방 지하철의 중형 전동차 사진을 찍어 갖고 와서는 서울· 수도권 전철이라고 사기 치는 건 아닌가도 생각을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정말로 아는 만큼 보이고 시뮬레이션이 된다.
추리 소설은 걸핏하면 정체불명의 시신이 발견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역사적으로 시신의 신원이 전혀 밝혀지지 않아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은 사건도 있다. 1948년 12월, 오스트레일리아 소머튼 해수욕장의 "Taman shud" 사건은 그 많은 똘똘이들이 추리를 하고도 도저히 답을 못 구한 사건 중 하나이다. 그는 아마 어느 나라에서 보낸 흑색 첩보 요원이 아니었나 싶다.

뭐, 그런 현실 설정 말고도
"다음과 같은 도로 지도에서 다리를 최소 몇 군데를 끊으면 A에서 B지점까지 테러리스트의 도주 경로를 완전히 차단할 수 있을까?"
이건 그래프에서 단절점 내지 브릿지를 찾는 문제이니 컴공/전산 전공자에게는 익숙할 것이고,
A~E가 전부 범인이라 지목하는 사람이 다 다를 때 진짜 맞는 증언을 찾는 문제는, 이건 가로· 세로로 O X 표 만들어서 IQ 테스트 하듯이 풀면 되겠다. 실제로 이런 문제는 정보 올림피아드 문제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간단한 문자/문자열 암호 풀이 문제도 있고.
국정원 추리 퀴즈 중에서 누군가가 남긴 추상화 형태의 다잉메시지 퍼즐을 푸는 건...
지난 2009년에 어떤 만화가가 원주 시정 홍보지의 삽화에다 대통령 욕설을 교묘하게 적어 놓은 걸 찾아 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_-;;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무튼, 세상엔 걍 생업 전선에서 자기 근로만 하면서 갑님으로부터 월급 받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저렇게 맨날 머리 굴리면서 세상을 참 복잡하고 스릴 넘치게 사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한편으로 인간은 죄 때문에 죄를 감시하고 죄의 결과를 수습하느라 정치 권력이 없을 수가 없게 되었으며, 그 비효율적인 일에 무지막지한 양의 세금이 쓰이게 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난 저렇게 외국에서 탐내고 국내에서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 기술을 개발할 능력이라도 좀 있으면 좋겠다. =_=;;

* 끝으로, 국정원과 아무 관계 없는 여담..;;
국정원은 영어로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여서 영어 이니셜이 NIS이다.
그런데 본인이 난생 처음으로 본 NIS라는 글자는 페르시아의 왕자 2의 구성 파일 중 하나인 NIS.DAT였다.
크기가 거의 1MB에 달하고 아마 가장 큰 파일이었는데, 이름의 의미는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컷씬 그래픽이 들어있었다.
20여 년 전에 페르시아의 왕자 2를 디스켓으로 불법복제를 해 봤기 때문에 인상적인 파일 이름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5/08/15 08:39 2015/08/15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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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소프트웨어의 추억을 발굴하는 작업은 변함없이 계속된다.
몇 달 전엔 비트맵 그래픽 에디터 얘기를 했다. 구글링으로도 좀체 정보를 발견할 수 없던 Splash와 Image72를 찾아 냈다. 이어서 오늘은 도스용 셸 유틸리티 얘기를 해 보겠다. 출처를 도저히 알 수 없었던 한 외국산 프로그램의 정체를 또 파악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름하여 Packard Bel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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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도스 시절엔 부팅이 끝나면 화면에 뜨는 건 시꺼먼 화면에 C:\ 프롬프트가 전부였다. 이런 인터페이스로는 초보자건 전문가건 컴퓨터를 제대로 활용하기가 몹시 불편했기 때문에, 컴퓨터에 존재하는 다른 프로그램들을 빠르고 편하게 실행시켜 주는 '셸'에 해당하는 프로그램이 별도로 여럿 만들어지곤 했다.

전문가를 위해서는 MDIR이나 노턴 커맨더처럼 파일 관리 유틸리티를 겸하는 셸이 쓰였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파일 정보만 표시하면 되니 보통 텍스트 모드에서 실행되었다.
그러나 초보자를 위해, 당시의 Windows 3.0에 준하는 GUI를 표방하면서 알록달록한 아이콘이 나오는 그래픽 셸도 있었다. 골치 아픈 단축키를 외울 필요 없이 마우스 클릭만 하면 원하는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었다.

MS-DOS 버전 4인가 5부터 제공되었던 '도스셸'은 그래픽 모드에서 실행되는 것도 가능했지만 그래도 전자와 후자 중에서는 전자의 성격에 더 가까운 물건이었다. 그래도 GUI의 불모지인 도스에서 나름 마우스 드래그 드롭을 구현했고, 프로그램의 색상과 화면 모드를 다양하게 바꿀 수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자, 그 와중에 저 '패커드 벨'이라는 프로그램은 우리 집 컴퓨터에 처음부터 있었던 프로그램은 아니고, 친구 집 컴퓨터에서 접했다. 그런데 GUI가 굉장히 고퀄이고 화면이 예뻤다. 16색 VGA에서 실행되는데 투박한 표준 팔레트를 쓴 게 아니라 보다시피 자체적으로 팔레트 색상을 재정의했으니 더욱 이색적인 느낌이 났다. 색상도 그렇고 글꼴도 그렇고, 알록달록한 아이콘까지, 뭔가 프로그래머가 대충 발로 그린 게 아니라 그래픽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티가 났다. 어린 시절에 본인은 저렇게 "나만의 세계가 느껴지는 비주얼"을 보면 아주 사족을 못 썼다.

저 스크린샷에서는 안 보이지만, 원래는 마우스 드라이버가 있건 없건 마우스 포인터도 나타난다. 그런데 포인터도 운영체제가 그냥 기본으로 주는 작고 투박한 화살표가 아니라, 무려 살색의 사람 손가락 모양이다. 요즘으로 치면 웹 브라우저에서 링크를 가리킬 때 나타나는 그 마우스 포인터와 비슷하다.
화살표 키를 누르면 지금의 마우스 포인터 위치에서 그 화살표 방향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버튼으로 포인터가 이동하는데, 이것도 즉시 되는 게 아니라 부드럽게 궤적을 그리면서 이동한다. 이런 것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워드 프로세서나 그래픽 에디터가 아니고, 그렇다고 게임도 아니고.. 자체 한글 같은 것도 필요하지 않는 외국산 도스용 유틸리티가 그래픽 모드에서 가변폭 영문 글꼴 출력까지 구현한 것은 그 당시로서는 몹시 드문 일이었다.
도대체 이 프로그램은 누가 언제 어디서 만들었는지 알고 싶어서 뒤늦게 인터넷을 수소문했지만, 정보를 도저히 얻을 수 없었다.

본인은 이 프로그램의 이름이 Pen Bel(l) Desktop인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왕년에 베이직 프로그래머였으니 PB라고 하면 파워베이직의 이니셜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저 추억의 프로그램의 실행 파일에도 PB라는 문자가 포함되어 있긴 했다. 하지만 저 이름으로는 아무것도 검색이 되지 않았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얻은 곳은 IE is evil!로 유명한 이 사람의 GUI 갤러리 웹사이트였다.
도스는 말할 것도 없고 Windows 3.1 시절까지만 해도 기존의 허접 구닥다리 '프로그램 관리자'를 대체하는 싸제 셸 유틸이 수요가 있었다. 노턴 데스크톱, 그리고 MS의 흑역사 Bob 같은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어? Packard Bell 내비게이터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3.5 버전은 완전히 Bob처럼 그래픽 기반으로 바뀌었지만, 1.1은 보아하니 도스용과 완전히 같지는 않아도 색상과 외형이 웬지 도스용 프로그램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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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Support, your software처럼 큰 메뉴 구성이 꽤 비슷해 보이는 데다 자음 이니셜이 일치하기도 하니 동일 회사의 프로그램일 거라는 감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이 키워드로 구글링을 계속했다.. 그러나 일단 '패커드 벨'은 컴퓨터 제조 회사인지라 걸려 나오는 것은 온통 컴퓨터 사진밖에 없었다.

그랬는데 어느 국내 블로그에서 드디어 월척을 낚는 데 성공했다. 내가 찾던 바로 그 프로그램의 스크린샷이 나온 것이다. 프로그램과 개발사 이름이 동일하게 '패커드 벨'인 듯하다.
이 회사는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가 주력 상품이고, 프로그램은 자기 컴퓨터에 번들로 설치되는 것 위주로만 개발한 듯하다. 소프트웨어만 전문으로 만든 게 아닌데도 1991년경에 도스와 Windows용 셸을 모두 그것도 상당히 뛰어난 퀄리티로 만든 것이 무척 대단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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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도스용 '패커드 벨' 셸은 메뉴 구조가 좀 특이했다. ESC를 누르면 도스셸이나 '로터스 웍스' 같은 붙박이 고정 프로그램이 있고, 'Your software'을 골라야만 아까와 같은 프로그램 아이콘 리스트가 나타났다. 패커드 벨 컴퓨터에는 원래 '로터스 웍스'도 번들로 제공되었던 듯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새로운 프로그램을 등록하는 화면이다. 아이템에 사용할 '아이콘', 밑에 표시할 텍스트, 그리고 실제로 실행할 프로그램 이렇게 세 가지 정보를 서로 다른 화면에서 지정해 줄 수 있다. 아이콘은 저 35종류의 기성 그림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고 다른 외부 그림 파일을 사용할 수는 없다는 게 특이하고 한편으로는 아쉬운 점이다. 기성 그림들은 각각 어떤 컨셉으로 만든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저 스크린샷에서는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원래 이 프로그램은 하드디스크에 존재하는 모든 실행 파일들을 아래의 리스트에다가 표시해 준다. 그래서 사용자는 일반적인 파일 열기 대화상자를 다룰 때처럼 매번 디렉터리를 오갈 필요 없이 한 목록에서 실행 파일을 곧장 선택할 수 있었다. 이건 사실 MS 도스 셸에도 있던 기능이다. 2~30여 년 전, 한 하드디스크가 크기가 수십~100수십 MB밖에 하지 않던 시절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지금 다시 저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다면 무척 감회가 새롭고 흥미진진할 것 같다.

도스 셸 하니까 생각나는데, 옛날에 MS-DOS 4.0은 우리가 아는 그 4.0만 있는 게 아니라 '멀티태스킹 에디션'이라고 유럽 쪽에서 주로 쓰인 다른 브랜치가 있었다고 한다. 16비트 Windows가 사용하던 New Executable 포맷도 사실은 이때 처음으로 제정되었다고 하고.

또한, 국내에서 개발된 그래픽 위주 도스 셸로는 먼 옛날(1993년쯤) 이 종하 씨가 개발한 '능금'이라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옛날에는 '파란연필'이라는 텍스트 에디터도 개발했던 분인데 본인은 요것들은 옛날 컴퓨터에서 다 직접 써 봤다.
'능금'은 셰어웨어였으며, 비등록 공개판은 등록할 수 있는 그룹과 프로그램 개수에 제한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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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셸로서 '능금'이 지닌 가장 독특한 점은.. 한 아이템에 대한 아이콘을 최대 5개까지 연달아 지정해서 초보적인 수준의 '움짤'을 만들 수가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외부 파일 사용 가능함. 저 스크린샷을 보면 '그래픽'의 경우 물결이 출렁거렸고, '게임'은 테트리스 블록이 내려가는 모습이 반복되곤 했다.
그래도 '능금'의 기본 팔레트 화면과 저 아이콘들은 '패커드 벨'에 비하면 좀 아마추어 같은 느낌이 들긴 한다. ^^

Posted by 사무엘

2015/07/07 08:34 2015/07/0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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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로 뭔가 input을 받아들여서 output을 내는 나만의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면, 그 결과물이 단순히 화면으로만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걸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꼭 프린터로 출력까지는 아니더라도 파일로 저장하여 사용자의 컴퓨터에 (반)영구적으로 남는 정도는 가능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인 텍스트/그림 파일뿐만이 아니라 내 프로그램만이 인식할 수 있는 고유한 파일 포맷을 제정하고, 그 포맷이 널리 쓰이게 되는 것은 분명 해당 파일 포맷을 만든 사람에게는 기분 좋은 일일 것이다. 새로운 이미지 파일 포맷이라든가 압축 파일 포맷처럼 말이다. 본인의 경우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글쇠배열/입력 설정 파일이 이런 창조물의 범주에 속하게 됐다.

파일 포맷이라는 건 지금 당장 공간 낭비 없이 읽고 쓰기 빠르게 만드는 효율도 중요하지만, 범용성과 확장성도 대단히 중요하다. 지금 만들고 있는 프로그램이 구조와 기능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프로그래밍 언어가 하드웨어 친화와 사용자 친화라는 양 이념 사이의 tradeoff로 떨어지듯, 파일 포맷도 위의 두 이념 사이의 tradeoff를 고려하여 제정된다.

또한 파일 포맷은 거의 필수적으로 앞부분에 헤더가 들어간다. 이 파일이 요런 파일 포맷으로 된 파일이라는 것을 나타내며, 헤더가 일치하지 않으면 파일을 더 읽지 말고 에러를 출력하라는 일종의 배려이다. 헤더의 앞에는 식별자가 있는데, 요것이 또 파일 포맷마다 아주 개성이 넘쳤다. 도스 실행 파일(EXE)은 MZ, ZIP 압축 파일은 PK 등.

도스에서 파일의 내용을 보여주는 type 명령은 end-of-file을 나타내는 아스키 문자인 0x1A를 만나면 뒷부분에 텍스트가 더 있어도 표시를 멈췄기 때문에, 파일 시그니처의 끝에다가도 저 문자를 넣어 주는 게 일종의 센스쟁이 관행이었다. 딱 HWP Document File v3.0 요까지만 출력하고 멈추게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0x1A는 10진수로 26인데, 이것이 바로 지금도 copy con 다음에 종결을 위해 입력하는 Ctrl+Z와 대응한다. Z는 알파벳 26째 마지막 문자이니까 말이다.

PNG 그래픽 파일은 이 시그니처를 상당히 머리를 써서 만든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마냥 텍스트 파일로 오인하지 않게 의도적으로 맨 앞은 0x89라고 128보다 큰 문자를 집어넣고, 그 다음 PNG를 찍고 줄 바꿈 문자를 찍은 뒤 0x1A로 종결시킨다.

옛날에 아래아한글이 도스용으로 1~2.x 버전이던 시절엔 이런 미래 확장 가능성을 꼼꼼히 설계를 안 했는지 파일 포맷이 수시로 바뀌어서 하위 호환성이 깨지곤 했다. 뭐, 2.1 때는 최초로 압축 저장 기능이 생겼고 도중에 암호 체계가 뚫리는 해프닝이 있어서 불가피하게 포맷이 바뀌어야 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나마 3.0 포맷이 도스와 Windows 공용으로 무려 97 버전까지 변경 없이 잘 쓰이다가 그래도 지금은 무려 워디안 이래로 포맷이 바뀌지 않고 꿋꿋이 잘 나가고 있다. 안정화가 됐다.

그런 최소한의 융통성을 갖춘 파일 포맷을 만들려면, 결국 어떤 용도의 포맷을 만들든지간에 버전 정보를 남기고 섹션, 구획(혹은 chunk)을 설정하는 정도의 추상화는 공통으로 필요하다. 내가 아는 chunk의 정보만 읽어들이고 모르는 건 무시할 수 있게, 하위 호환이 되게 말이다. PE라고 불리는 Windows용 실행 파일에서도 이런 구획이 있고(text, rdata, data, rsrc 등), TTF 폰트 파일에도 내부에 구획이 있다(cmap, glyf, head 등). 미디(mid) 음악 파일도 온갖 구획들이 합쳐진 컨테이너 포맷이다.

그렇게 외부에서 구획을 표현하는 방식은 파일 알멩이 포맷 이전에 껍데기 '컨테이너' 포맷이라는 공통 규격으로 바뀌는 게 요즘 추세이다. 매 프로그램마다 GUI 프로그래밍을 제각각 할 필요가 없듯, 껍데기를 일일이 새로 만들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무손실 압축 파일 포맷도 컨테이너와 압축 알고리즘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건 상식 중의 상식이고, 손실 압축 알고리즘의 각축장인 동영상/소리 파일 포맷도 컨테이너와 내부 컨텐츠 포맷은 계층이 분리돼 있다.

컨테이너는 아예 human-readable한 텍스트 방식과, 그것보다는 성능을 더 중요시한 바이너리 방식 둘로 나뉜다.
텍스트는 xml이 대세를 평정하는가 싶었는데 요즘은 json도 급부상하고 있다. json은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배열이나 튜플 같은 복합 자료형을 표기하는 방식을 그대로 가져왔다는 점이 무척 참신하다. 배열스러운 나열과 key-value 형태의 데이터를 모두 표기할 수 있으며, 그 덕분에 바이너리 덤프 같은 것도 xml보다는 덜 부담스럽게 집어넣을 수 있고 공간 효율도 더 좋다.

바이너리 차원에서의 컨테이너 포맷으로 요즘 굉장히 많이 쓰이는 건 zip 압축 포맷이다. 수많은 압축 알고리즘들이 존재하지만 역시 오픈소스 앞에서는 답이 없다. zip이 세상을 평정했다. 가장 친숙하게는 MS Office 2007 이후의 문서 파일 포맷, 그리고 오픈오피스 문서 파일 포맷이 내부적으로는 zip 압축 파일이다. Java의 jar 라이브러리, 그리고 안드로이드 adb 패키지도 zip이다.

다만, 저런 프로그램들은 zip 안에다가 자기 방식으로 고유한 메타데이터도 집어넣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파일의 압축을 풀었다가 다시 압축을 했다고 해서 그것들이 해당 오피스 문서나 패키지로 인식되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

멀티미디어 파일 포맷 중에는 avi/wav가 동일하게 RIFF(리소스 교환 파일 포맷)라는 컨테이너 기반이다.
한편 Windows 세계에서는 의외로 많이 쓰이는 공용 바이너리 컨테이너 포맷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OLE Compound Binary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바이너리 규격에서 여러 프로그래밍 규격들의 통일을 시도했던 OLE/COM 기술과 역사를 같이하는 포맷인 것 같다. 난 잘 모르겠지만 아마 이 파일을 읽고 쓰는 I*** 하는 인터페이스 API도 있으리라 여겨진다.

이 방식의 파일은 D0 CF 11 E0 A1 B1 1A E1이라는 8바이트짜리 시그니처로 시작한다. 의도적으로 128 이하의 텍스트나 제어 문자는 제외한 듯하다. 그리고 앞부분엔 0xFF 문자가 수십~수백 개 나온다.
MS Office가 2007 버전이 등장하기 전에 재래식 doc/xls/ppt가 이 컨테이너 하에서 자기 데이터를 저장하곤 했다. 그리고 지금도 일반적으로는 xml+zip 기반의 docx/xlsx/pptx이지만 암호를 걸어서 저장하면 여전히 예전처럼 이 compound binary를 사용한다. 이건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을 것이다.

엑셀의 경우 대용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저장하기 위해 예외적으로 xml 대신 바이너리 포맷을 쓰는 xlsb도 지원하긴 하는데, 이때에도 컨테이너는 여전히 zip이다.
하지만 암호를 걸면 xls든 xlsb든 동일하게 컨테이너가 저 OLECB 방식으로 회귀한다.

OLECB는 Office 문서에서만 쓰이는 게 아닌 범용적인 컨테이너 포맷이기 때문에 Windows의 내부에서는 thumbs.db에서도 쓰이고 심지어 msi 패키지도 이 방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국내에서는 아래아한글이 워디안 이후 새로운 hwp 포맷이 이 컨테이너를 사용하는 중이다. 몇 년 전에 hwp 파일의 포맷이 부분적으로나마 공개되면서 요 방식도 같이 주목받은 편이었다. 워디안의 개발 당시에 OLECB를 사용하기로 한 것은 21세기에 아래아한글의 향후 행로를 결정한 매우 중대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파일 포맷이란 건 한번 정해지고 그게 대중화돼 버린 뒤에는 마치 전기 전압이나 교통수단의 통행 방향처럼 다른 방식으로 덥석 고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프로그램의 구조가 아주 간단하고 기능 구현만 빨랑 해야 할 때는 숫자/문자열 몇 개를 덥석 텍스트 형태로 덤프하거나, 구조체가 차지하는 메모리 형태를 파일로 통째로 써 버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파일을 남과 주고받게 되고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면 본격적으로 파일 포맷을 고민해야 하는 날이 온다.

이걸 처음에 신중하게 생각을 안 하면 파일 포맷은 legacy들이 가득한 누더기가 돼 가고, 참다못해 파일 포맷을 다 갈아엎게 되고 그러면서 사용자들로부터 욕도 먹을 것이다. 컴터쟁이 프로그래머로서 파일 포맷은 참 재미있는 주제인 것 같다. 그 어떤 파일 포맷이라도 결국은 튜링 기계가 인식할 수 있는 형식 언어와 문법에 속하는 방식으로 귀착된다는 점 역시 생각할 점이고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06/26 08:35 2015/06/2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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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과 사망의 차이

1.
1993년 가을에 서해훼리(페리) 호 침몰 사고 때의 일이다. 탑승자들을 구조하고 수색하는데 웬일인지 이 배의 최고 책임자인 선장이 행방이 묘연해 보였다. 그런 와중에 일각에서는 "선장이 혼자 살아서 배를 탈출하여 몰래 튀는 게 목격됐다"라는 카더라 루머가 나돌았고, 언론은 이것을 확인도 안 하고 냅다 물어서 동네방네에 소문을 냈다.
이에 경찰조차 별 의심 없이 이 말을 믿게 되었으며 선장을 대문짝만 하게 공개 수배하고 가족들을 압박하여 선장더러 자수를 권유하게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결말은? 선장은 수색 닷새 만에 기관장과 함께 배 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서해훼리호의 선장은 세월호의 선장 같은 급의 인간말종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 예전의 선장 생존 보도는 국내 언론 역사에 길이 남을 오보 흑역사로 전락했다. 그리고 그 기자들은 선장의 유가족을 찾아와서 싹싹 빌었다. 범죄자를 숨겨 주고 있다는 누명을 이제야 벗은 유가족들은 "당신들이 선장이 살아 있다고 말했으니 이제 그 선장을 살려내 보시오"라고 그들을 꾸짖었다.

2.
1996년 가을,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때에는 싸리비를 만들기 위해 싸리나무를 벌목하러 혼자 나갔던 표 종욱 일병이 덜컥 실종됐다. 군에서는 제대로 수색도 안 하고 이걸 전시 무단 탈영으로 단정짓고 탈영병을 찾는다는 방송을 전국에 내보냈다. 그의 집엔 헌병대 사람들이 와서 표 일병 내놓으라고 마치 사채업자가 빚독촉 하듯이 수시로 온갖 민폐를 끼쳤다.

그러나 이 역시 결말은? 그는 무장공비에게 살해당했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이건 부끄럽게도 군 당국이 스스로 적극적으로 수색해서 찾은 게 아니라, 사살한 무장공비에게서 노획한 '일기'에서 의심스러운 점을 발견하여 그걸 토대로 추적한 덕분에 찾은 것이었다. 그 무장공비는 위장을 위해 표 일병에게서 국군 군복을 빼앗은 상태였으며, 그 대신 표 일병은 시신 발견 당시 속옷 바람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헌병대 관계자들은 표 일병의 유가족 앞에서 그야말로 석고대죄하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생사도 알 수 없는 치욕스러운 탈영병과, 현충원에 묻히는 영예로운 전사자는 그야말로 한 끗발 차이에 지나지 않았다. (더구나 전시 탈영은 평시 탈영보다 처벌이 훨씬 더 무겁다!)

무장공비는 그를 결박하고 목을 졸라서 살해했다. 총은 시끄러운 데다 걔네들 입장에선 안 그래도 총알 한 알이 극도로 아까운 지경일 텐데 당연히 총을 썼을 리는 없다.
또한, 생지옥 북한에서 태어나서 거기서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남파 간첩이나 무장공비까지 됐을 사람이라면 목표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간성이라고는 그야말로 완전히 제거된 인간 흉기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잠수함을 좌초시키고 비밀 작전에 실패했다고 동지들끼리도 무자비하게 처형을 했는데, 하물며 자신을 발견해 버린 민간인도 아니고 적군을 살려 둘 이유는 전혀 없었을 것이다. 생포해서 인질극 협상을 벌일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기록을 찾아 보니 표 일병은 군 복무 당시 계급이 이미 일병이었다.
“이제 일병을 달고 군생활에도 적응이 되었지만 원인모를 한숨과 동경이 계속되고 있다. 언제까지 이 신세타령을 해야 하는지 내자신도 한심하다.” (고인의 일기 중)

그럼 전사자니까 이제 공식 매체에서는 '표 상병'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 제설을 하다가 사고로 죽어도 작전 중 순직이기 때문에 1계급 특진 추서인데.
탈영 중으로 잘못 알려졌을 때의 계급이 너무 깊게 인식돼 버려서 그런 것 같다. 이런 점에서 거짓 선동이라든가 오보의 해악은 더욱 큰 셈이다. 한번 생긴 사람의 편견은 쉽게 고쳐지지 않으니까.

* 그러게 사람이 없어진 듯이 보이면 덮어놓고 악한 추측부터 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하긴 출애굽기 32장의 금송아지 사건도 따지고 보면 그런 심성을 바탕으로 벌어졌다. 이때 모세는 시신이 발견된 게 아니라 멀쩡히 살아 돌아오기도 했고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06/24 08:30 2015/06/2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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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프란시스' 부자

1.
"프란시스" 쉐퍼(섀퍼) (1912-1984)는 유명한 복음주의 기독교 신학자, 철학자, 장로교 목사이며 국내에서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같은 영성 쪽의 여러 유익한 신앙 서적들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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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책의 제목인 How should we then live는 성경에서 겔 33:10의 표현을 딴 것이다.
출판 시기는 1976년이다. 정치적으로는 냉전, 공산당 혁명과 월남전, 그리고 과학 기술 분야로는 초음속기와 우주선, 대중 문화로는 비틀즈와 락 음악 같은 그야말로 격변의 시기에 말 그대로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사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면서 그 해답을 성경적 세계관에서 찾았다.

물론 현대만 다루는 게 아니다. 부제가 The Rise and Decline of Western Thought and Culture이니만큼, 로마 제국, 중세, 종교 개혁, 산업 혁명 등을 모두 다루면서 서양사를 전반적으로 고찰했다.
그렇게 살펴봤는데 역시 사회의 문제는 절대적인 진리를 거부하고 절대적인 선과 악이 없다고 주장하는 상대주의에서 유래되곤 했다. 그 결과 무정부주의가 나오고, 이로부터 야기된 혼돈을 바로잡으려고 또 다른 극단인 피의 독재자가 등장하여 학정을 하곤 했다.

영국의 명예 혁명과 미국의 독립 혁명에 비해, 프랑스의 혁명과 러시아의 혁명은 좋지 못한 결말로 끝났다. 공산당식 혁명은 언제나 끔찍한 피의 비극과 독재 학정으로 마무리 되곤 했다.
하지만 반공 우파스러운 주장만 있는 게 아니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그나마 성경적인 가치관이 심어져 있던 영국도 산업 혁명 이후에 부의 제대로 된 분배에 교회가 제 역할을 못 해서 공산주의가 등장할 빌미를 줬다. 미국은 크리스천들이 흑인 노예의 인권에 소홀하여 오점을 남겼다고도 글쓴이는 지적한다.
또한, 저런 정치 해석뿐만이 아니라 미술사· 음악사 얘기도 나온다.

방대한 책을 다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쉐퍼의 책은 그 이듬해에 10부작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출시되었다.
바로 그의 아들인 프랭크(혹은 Y가 붙어서 프랭키) 쉐퍼 (1952-)가 영화 감독, 시나리오 작가, 연설가였으며, 20대 중반의 나이로 자기 아버지가 자기 저서에 대한 나레이션을 하는 영화를 만든 것이다. 나름 굉장히 잘 만들었다. 제5편 혁명의 시대 때는 시도 때도 없이 단두대가 내려오는 장면이 나온다. ㅎㅎ

이 영화는 현재 유튜브에서 바로 검색해서 볼 수 있다. 다만, 한국어 자막이 없기 때문에 유튜브의 혜택을 볼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다.

2.
"프란시스" 메크너(1932-)는 심리학자이다. 위키백과를 보면 1960년대부터 이미 학계에서 날고 기었던 것으로 소개된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 바로 조던 메크너 (1964-)로.. 비디오 게임 개발자, 시나리오 작가, 영화 감독이다. 프란시스 쉐퍼의 아들과 비교했을 때 영화학도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물론 메크너 쪽은 종교 쪽으로는 안 가고 게임업계로 갔다. 그리고 조던 메크너는 그 이름도 유명한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을 20대 중반의 나이 때 만들어 냈다.

그 게임 특유의 던전 구조와 메카닉, 왕자의 움직임 같은 것이야 그 옛날에 조던의 머리에서 나온 천재적인 발상이다. 그리고 코딩 역시 그 사람이 애플 II 어셈블리 언어를 독학하여 직접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페르시아의 왕자>는 가족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다.
모션을 촬영할 때 연기는 남동생을 시켜서 이리저리 굴리며 했고, 무엇보다도 게임의 음악은 심리학자인 저 아버지가 전부 작곡해 줬기 때문이다. 빰 빠빠빰 빰빰 하는 그 음악을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게임을 그저 죄악시 금기시하는 우리나라 풍토와 비교했을 때, 그것도 1980년대에 조던 메크너의 집안이 시대를 얼마나 앞선 천재 집안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게임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런 게임을 만들어 냈다. 그것도 본인과 본인의 아버지, 동생이 힘을 합쳐서 말이다.

쉐퍼든 메크너든, 위키백과에 대대로 이름이 등재돼 있는 '프란시스' 부자들엔 이렇듯 굉장히 의미심장한 패턴이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5/06/18 19:25 2015/06/18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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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에 내가 좀체 다루지 않던 경제 쪽 주제에 대해서 오랜만에 글을 써 본다.
그래서, 뒷부분에 성경 얘기가 많이 나오지만 분류도 기독교 쪽이 아닌 그냥 보통명사로 했다.

세상의 모든 물건들은 담보로 맡기는 게 아닌 이상, 그 자체만을 남에게 안심하고 맡기려면 맡아 주는 사람에게 보관료를 내야 한다. 교통수단을 세워 둘 때 드는 주차료· 주기료 같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아기나 애완동물을 맡길 때도 말이다. 이게 세상의 보편적인 이치이다.

하지만 유일한 예외가 있으니, 바로 돈 그 자체이다. 돈을 맡기면 맡은 사람이 오히려 반대로 맡긴 사람에게 주기적으로 돈을 준다. 그렇게 주어지는 돈을 우리는 이자라고 부른다. 생각을 해 보시라. 돈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서는 맡는 쪽에서 막대한 경비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래도 맡은 사람이 맡긴 사람에게 돈을 준다.

이 원리를 이해하는 게 자본주의 원칙과 경제 원리를 이해하는 첫걸음임이 틀림없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다음으로 초등학교에서 가르칠 법한 제2의 핵심 원리이다.

그리고 은행들 역시 예금을 곱게 꿍쳐 놓고만 있지 않는다. 대부분의 돈을 다른 데에 투자하거나 대출을 줘서 돈을 불리는 일을 한다. 그러니 모든 예금자가 불시에 자신의 예금을 전부 인출하려 들면 은행은 못 버틴다.
이런 점에서 성경의 달란트/므나 비유에 나오는 게으르고 악한 종은 선악을 따지기에 앞서 정말 최소한의 경제 관념조차 없던 멍청한 친구였다. (마 25:27, 눅 19:23)

지금이야 우리나라가 먹고 살 만하니까 쏙 들어갔지만, 옛날에는 나라에서 국민들 보고 그렇게도 저축을 많이 하라고 홍보하고 과소비 추방하자고 캠페인을 벌였던 게.. 단순히 근검절약(?) 정신을 함양하고 외화 유출을 방지하려는 차원이 아니었다. 그건 부수적인 효과다.
저축을 많이 함으로써 은행이 돈을 많이 보유하게 하고, 이로써 초기 자본이 많이 드는 기업에다 투자를 많이 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무슨 유머 중에, 학교에서 "지금 손에 100만 달러가 생기면 무엇을 하겠는가?"를 상상해서 작문을 시키는 시간이 있었는데 어떤 애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교사가 이상하게 여겨서 "세계일주를 한다, 여자를 꼬신다" 등 왜 뭐라도 안 쓰냐고 물었더니 아이 왈, "네, 저는 100만 달러가 있으면 저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을 거예요(모든 걸 남에게 시키고)" 이랬다는데..
그 애도 알고 보면 굉장히 천진난만 순진한 타입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법칙을 일찌감치 깨달은 영악한 애라면, 그 돈으로 지금 당장 흥청망청 유흥을 즐기는 게 아니라, 어딜 투자를 하든지 해서 100만 달러를 1000만 달러 이상으로 불릴 궁리를 할 것이다.

그리고 혼자만 살 때는 돈 욕심 없이 자급자족으로 만족할 것처럼 지내던 사람이라도 처자식이 생기고 나면 어지간해서는 생각이 달라진다. 나는 상관없지만 내 자식에게 남들만치 밥 사주고 용돈 주고 비싼 학교에 옷 등등을 차려 주지 못한다면..? 그때부터는 어쩔 수 없이 돈독 오르게 된다. 그게 현실이다.

자 그럼, 돈으로 돈을 버는 것에 대해 성경은 뭐라 말할까?
일단 구약 율법에서 내가 느끼는 뉘앙스는.. 정말 천하의 개쌍놈 급의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몹쓸 짓까지는 아니지만, 어지간해서는 그러지 마라. “이방인들을 상대로라면 몰라도 동족간에는 최대한 아량을 베풀어라. 이자 따지지 말고, 못 돌려받을 걸 감수하고라도 관대하게 꿔 줘라. 손해분은 내가 친히 갚아 주겠다” 정도인 것 같다.

이건 십일조만큼이나 “신정국가+유대 민족의 믿음 테스트+이 땅에서의 복” 문맥이다. 그러니 신약 시대엔 자선행위 차원에서, 혹은 교회 지체들끼리 적용 가능한 가이드라인이 될지 몰라도, 굳이 이방인 세상 정부에서 행정법 수준의 강제 사항이 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달란트/므나 비유에서 “하다못해 이자라도 받아 왔어야지?” 같은 주인의 책망이 있는 걸 보면, 성경도 돈 자체가 악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돈으로 돈을 버는 것 자체가 악이라고는 안 하는 듯하다.

성경은 명백히 사유재산과 free market, 빈부격차를 인정한다. 사실, 돈으로 돈을 불리는 것도 아예 불가능하다면 투자라는 게 생길 수 없고 경제가 성장할 수가 없어진다. 절대적인 빈부격차 자체는 더 커질지 몰라도, 그래도 입에 풀칠도 못 하던 가난뱅이를 중산층으로, 그리고 지금 부자는 훨씬 더 큰 부자로 만드는 게 낫지 않은가?

부자가 가진 돈이 고용과 일자리를 더 만드는 발전적인 쪽에도 부분적이나마 쓰이는 게 더 나은가, 아니면 걍 오로지 부자들의 유흥과 사치에만 돈이 쓰이는 게 더 나은가?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 (“부자들 돈을 강제로 뺏어서 분배해야 된다” 이건 영락없이 빨갱이 생각이 되는 거고.)

또한 생각해 볼 점은, 성경에는 이자에 대해서 정확한 가이드라인도 안 나온다는 점이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금리나 사채 이율 한도는 최대 몇 %이고 그 이상은 악.. 뭐 그딴 얘기는 없다. 음악이나 옷차림에 대해서도 추상적인 원칙만 있을 뿐 디테일한 적용 방법은 안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 숫자놀음이 얼마인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그게 얼마이든 전혀 무관하게 인간의 불완전한 경제 제도가 인간의 죄성과 맞물리면 문제와 폐단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누구에게든지 어떤 것도 빚지지 말라”,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 “급히 부자가 되려 하는 자는 악한 눈을 가졌으므로...”, “탐욕은 우상 숭배”처럼 인간의 자유의지와 사유재산은 존중하되, 경제와 관련된 인간의 죄악을 제어하는 말씀은 성경에 이미 충분히 있다.

그런데 이게 자발적으로 이행되지 않고, 각 개인의 이기적인 행동이 집단 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공멸로 가는 경우도 있으니, 비효율적인 줄 뻔히 알면서도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서 최저임금이니 무슨 비율이니 하는 걸 강제로 정하고 복지라는 명목으로 세금을 꽤 많이 걷어 가는 일도 생기는 걸로 보인다. 참 절대적인 답이 없는 문제 같다.

NOTES:

1. 은행이 불안하다 싶으면 개인 예금주들은 전부 몰려와서 자기 돈을 빼려고 몰려올 것이고, 이러면 아까 말했듯이 그 어떤 은행도 버티지 못한다. 은행은 그런 상황을 감안하고 운영되는 기관이 아니다.
하지만 각 개인이 자기 예금을 전부 인출하려는 행위 자체는 법적으로 하나도 전혀 문제될 게 없는 행동이다. 마치 기업이 생존을 위해 구조 조정을 하고 경쟁력 없는 기업은 시장에서 도태하는 것만큼이나, 그리고 전쟁터에서 군인이 무장한 다른 적군(포로나 항복한 군인, 민간인이 아니라)을 죽이는 것만큼이나 합법이다.

2. 흔히 "올림픽 메달리스트 운동 선수의 자녀가 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될 확률하고, 재벌의 자녀가 계속 재벌로 있을 확률이 동일한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이런 말이 나도는 듯하다. 무슨 취지로 하는 말인지는 이해하겠으나 거기에 마냥 100% 공감할 수는 없다. 재능과 재화는 근본적으로 동일한 자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는 돈을 많이 가진 사람, 소득이 높은 사람에게 절대적인 액수로나 혹은 비율로나 어쨌든 더 많은 액수의 세금을 매긴다.
그러나 시험 쳐서 100점 맞고 올림픽 같은 대회에서 1등을 하는 등, 재능이 뛰어난 사람에게 재능이 뛰어난 것 그 자체만으로 세금을 부과하지는 않는다. 그랬다가는 재능의 발휘에 도무지 동기 부여가 되겠는가? 세금을 부과하더라도 그건 상금에서 세금을 일부 공제하는 형태일 뿐이다.

굳이 돈이 아니라 소위 '열정페이, 재능기부' 같은 것도 철저하게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지, 그것이 세금을 걷는 것처럼 법적으로 강제되지는 않는다. 이것이 재능과 재화의 차이인 것이다.
부모가 똑똑해서 자녀를 좀 더 편하게 살게 해 주려고 재산을 많이 물려 주는 것 자체가 죄악이라 할 수 있을까? 내 자녀였으면 그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물론 자녀가 인격도 의사결정권도 일체 없이 부모의 소유물과 다를 바 없이 취급하는 생각은 잘못되었지만, 그렇다고 부모와 자녀는 법적으로 아무 상관도 없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니 부모의 재산은 한 푼도 안 남기고 몽땅, 마치 무연고 사망자의 재산마냥 국고로 환수해 버린다면 그것도 올바른 처사이겠느냐 말이다.

또한 부모가 재벌이라고 해서 그 자녀 세대까지 재벌인 게 마냥 100%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기업은 치열한 세계 시장에서 언제 도태될 지 모르니, 경영진은 수많은 종업원들에게 꼬박꼬박 월급을 주기 위해 맨날 이대로는 안 된다며 위기 드립을 치고, 때로는 좀 더러운 짓도 하고 여론 관리도 하고, 미래에 뜨는 아이템을 예측하고 사업 방향을 구상해야 한다. 재벌이 유지될 확률이 대대로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나올 확률과 그렇게까지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문제를 이런 관점에서 볼 수도 있어야 한다. 나야 일개 학생 겸 월급쟁이일 뿐이고 무슨 대기업 재벌 재계 인사하고는 하등 아무 관계도 없는 처지이지만, 나중에 내가 무슨 있는 돈 없는 돈 꼬라박아서 사업을 해서 종업원을 고용하는 처지가 되는 상황을 상상해 보면, 지금 사회 구조가 마냥 근로자만이 약자이고 모든 기업주가 그저 갑질을 일삼는 악당이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3. 난 지금까지 정치관이나 역사관 관점에서 우리나라 체제를 방어하는 글을 쓰는 편이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우리나라의 경제관을 부정하는 불순세력의 공격도 많다. 자기들도 입고 있는 큰 혜택에 대해서는 입 싹 씻고 작은 부작용과 폐해만 자꾸 부각시키면서 우리나라를 점점 사회주의 공산주의 체계로 바꾸려고 하는 시도들.

여기에 대해서도 이론적으로 조금씩 공부하고 무장을 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난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그나마 그걸 모두가 잘살고 파이의 크기를 키우는 쪽으로 유도하는 경제 체제를 지지한다. 인간을 감히 성선설적으로 보면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선동하는 속임수에 속지 않는다. 기업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세상은 국가가 개인을 착취하는 세상에 비해서는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더 천국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05/22 08:34 2015/05/22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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