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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빨고 영상물 만드는 실력은 일본이 무척 탁월한 편이니 먼저 일본 얘기부터 좀 하겠다. 2000년대를 풍미했던 일본 환타 CF 시리즈가 떠오른다.
A반 가죽점퍼(록커) 선생부터 시작해서 아침 멜로 드라마 여선생까지 골고루 나오고, 별난 선생 때문에 학교 생활이 참 고달픈데 그래도 결론은 기승전..환타이다. 나중에 번외편으로 교장 선생편도 있었다.
DJ 선생은 학생에게 문제 풀이를 시킬 때도, 그리고 풀이의 정오 여부를 알려 주기 전에도, 심지어 교장 선생이 훈화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완전 음악에 심취해서 지내더라.

뭐, 그래 봤자 환타는 인공 색소와 설탕이 가득하고 마치 콜라만큼이나, 스팸 가공육만큼이나 몸에는 별로 좋을 게 없는 탄산음료일 뿐이겠지만, CF에서는 한자 선생이던가? '트로피칼 후르츠'를 강조하면서 열대 과일을 표방한다는 선전을 잔뜩 했다.

그리고 공익 광고 중에 이런 게 있었다.
학교에서 동물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 어떤 애는 도대체 뭐가 씌였는지 흰 도화지 몇 장째를 온통 새까맣게 도배할 뿐이다. 장난 깽판을 친다고 보기에는 아이의 표정이 너무 진지하고 눈이 초롱초롱하니, 차마 대놓고 혼내지도 못하겠고.. 그래서 선생과 부모는 그 아이에 대해 정신 감정을 의뢰한다.
그런데, 각각의 종이들을 가로 x칸 세로 y칸으로 연결하니까 아이는 무진장 큰 시꺼먼 고래를 그리고 있었다는 게 밝혀진다.
...;; 아이의 잠재성과 창의성을 어른의 잣대로 단정짓지 말라는 뭔가 의미심장한 광고였다.

다음으로, 토요타보다는 아니고 '혼다'라는 일본 자동차 회사에서 2000년대에 창의성과 근성이 돋보이는 2분짜리 CF를 두 편 선보였다.
혼다 시빅(Civic)이라는 아반떼급 준중형차 CF는 무슨 합창단이 자동차의 엔진음과 주행음, 바깥 소음을 사람의 발성 기관만으로 흉내 내는 궁극의 비트박스를 시전했다. 컴퓨터에서 아주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아스키 아트 텍스트 파일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심지어 씨디를 집어넣어서 카오디오에서 음악이 나오는 것까지도 비트박스로 재현했다.

그리고 혼다 어코드(Accord)라는 쏘나타급 중형차 CF는.. 근성 도미노 스타일이다. 자동차 부품을 일렬로 쭈욱 늘어놓고 하나만 툭 건드려 주니까 나사가 돌아가고 나사 하나의 무게 차이 때문에, 기름 몇 방울의 무게 때문에 시소가 기울고 뭐가 툭 굴러 떨어지는 장치가 열몇 개씩 이어진다. CG가 아니라 진짜 다 실제로 세팅해서 촬영한 것이며, 세팅을 처음부터 전부 갖추는 데만 몇 시간이 걸렸을 정도의 극도의 근성의 산물이라고 한다.

옛날에 월트 디즈니 만화영화 <뮬란>에서 황제의 대사 중에는 "A single grain of rice can tip the scale. (쌀 한 톨의 무게 차이만로도 저울이 기울어질 수가 있는 법일세)"가 있었다. 영화에서 그 대사는 뮬란이 바로 전쟁이라는 저울의 승패를 가르는 그 쌀알이 될 거라는 복선이다만, 저 CF는 황제의 그 대사의 물리적인 실사판이나 다름없었다. ㄲㄲㄲ 다만, 타이어가 관성만으로 오르막을 저렇게 오른다거나 기름통이 너무 잘 굴러가는 건 현실성 개연성이 좀 떨어져 보여서 어색하다.

저것과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도 옛날에 근성 도미노의 원조가 있었다. 바로 지금은 KCC로 바뀐 고려 화학의 '고려 페인트' CF다. 고려 페인트 광고는 지금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참신함과 기발함 덕분에 굉장한 호평을 받으며 회사 이미지의 제고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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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페인트의 도미노 CF는 원조가 첫 등장한 게 1989년이고 2차가 1992년, 마지막 3차가 1996년으로, 총 세 종류의 버전이 있다. 저 엄청난 양의 도미노는 CG가 아니며 실물을 직접 만들어서 쓰러뜨리며 찍은 거라고 한다. 세팅 하느라 굉장히 고생 많았을 듯. 1992년 당시의 신문 기사를 보면, 2차분 CF의 경우 8만 개에 달하는 도미노 칩을 사용해서 제작되었다는 보도가 있다. 도미노는 개념상 카드섹션 매스게임의 무인 버전뻘 되지 않을까 싶다. =_=;;

사실, 1990년대 초는 미국 할리우드의 영화/애니메이션 업계에서조차 CG가 이제 막 슬금슬금 도입되던 과도기 단계였다. 가령, 월트 디즈니를 예로 들자면, 1989년에 나온 <인어 공주>가 CG가 전혀 없이 100% 셀 애니메이션만으로 만들어진 '마지막' 작품이고, 그 뒤 <미녀와 야수>, <알라딘>에서는 배경부터 시작해 CG가 조금씩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니 우리나라는 그 시절의 CF는 아직 아날로그 기술만으로 실사 제작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1990년대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기술 격차는 갈수록 줄어들고, 우리나라 역시 기상천외한 CG 합성 CF들이 곧 등장했다. 당장 떠오르는 건 하이칼스(1993) Alias라는 워크스테이션급 CG가 온통 도배가 돼 있다.

비주얼 다음으로 청각적인 면을 살펴보자면, 고려 페인트의 1차 CF에서는 도미노가 쫙 넘어지는 동안의 BGM은 그냥 피아노 건반으로 음이 또르르르르르 올라가는 소리 위주이다. 마치 보글보글에서 잔기가 하나 늘었을 때 나는 소리(점수가 일정 숫자 돌파, 혹은 EXTEND 보너스)와 비슷하게 들린다.
2차에서는 '도도 도 솔파미레도'로 시작하는 C장조 전자음 BGM이 추가되어서 음향이 더 미려해졌으며,
3차에서는 도미노가 실사 사진으로 바뀌는 효과가 더 부각되고 BGM은 뭔가 코러스가 곁들어진 명랑한 외국 팝송으로 바뀌었다.

본인은 3차 CF에서 나오는 A플랫 장조의 짤막한 BGM을 무척 좋아했다. 저런 음악이 있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이 역이 고려 페인트 CF의 일부인 줄은 모르고 있었는데 도미노 CF에 대해 검색하던 과정에서 지금까지 끊어져 있었던 연결 고리를 되찾았다.
고려 페인트 CF에는 클래식 음악이 쓰였고 출처가 뭐냐 하면 그리그의 <페르 귄트 모음곡 - 솔베이그의 노래>라고 각종 지식인, 개인 블로그, 음악 음원 사이트에 잔뜩 소개되었으며 심지어 1996년도의 신문 기사에도 올라 있다.

그런데... 저건 도대체 고려 페인트의 어느 CF에 들어간 음악이지?? 아시는 분?
내가 듣기에는 2차 버전, 3차 버전 그 어느 것도 여자 솔로인 "솔베이그의 노래"하고는 하나도 닮은 구석이 없는데?

딱 들어 봐도 CF에 들어간 음악은 명랑한 장조이지만 저 원조 클래식은 단조풍이다.
원곡을 리메이크 했다고도 볼 수 없고 그냥 완전히 다른 음악이다. 저 세 편의 고려 페인트 도미노 CF에는 클래식이 들어간 적이 없다. 3차 CF에 들어간 그 명랑한 BGM의 정확한 출처를 알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래 전에 한번 다루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의 역대 공익 광고들을 또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내가 인생에 대한 기억이 본격적으로 생겨서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 바뀐 게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이다. 그래서 그 시기에 텔레비전 화면을 본 기억이 많이 남아 있다. 그 시절엔 환경 오염, 반공, 마약 등을 소재로 하는 공익 광고는 강한 훈계조에 섬뜩하고 무섭기로 악명 높았다.

시꺼먼 감방 같은 배경에서 "마약은 모든 것을 빼앗아 갑니다."가 흘러나온다든가(1989) 올가미가 휙휙 던져지기도 하고..(1991) 국민 소득 4천$, 소비 수준은 2만$. 풍선이 뻥 터지는 과소비 추방 광고(1989)까지. 어린애들은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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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초딩 시절, "두껍아 두껍아..."로 시작하는 요 1990년작 CF를 직접 본 기억이 있다. 음산한 BGM과 함께 흰 바닥에서 시꺼먼 얼룩이 불어나는 게 공포 그 자체였다. 마약 광고보다도 더 무서웠다. ㅠ.ㅠ 하물며 저 얼룩이 블랙이 아니라 핏자국을 표방하는 레드였다면 아마 최악의 안구 테러가 됐을 것이다.

사실은 고려 페인트 이전에도 도미노를 소재로 한 광고가 있었다. 바로 도미노 블럭이 쓰러지는 걸 범죄자들이 소탕되는 것에다 비유한 1989년도 공익 광고이다. 본인은 이걸 직접 본 기억이 있다.
20년 남짓한 세월 동안에도 영상 문화의 흐름이라는 게 정말 확 달라졌다.

그 중에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고퀄의 공익 광고는 "필름 역주행"(1991, 1분)이다. 처참한 정면 충돌 교통사고가 난 동영상을 뒤로 돌려 보니 결국 발단은 질펀한 술자리. "필름은 되돌릴 수 있어도 생명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와 함께 영상이 끝난다. 이건 당시 무슨 국제 광고 공모전에서도 입상했다고 한다.
시대 정황상 역시 CG의 도움을 그다지 받지는 못했을 텐데 설마 자동차 두 대를 진짜로 충돌시켰을까? 어떻게 만들었까 싶은 생각도 든다. 8만 개짜리 도미노 블럭이야 그래도 생명의 위협이 없으니 근성으로 만들었다 치더라도. 아니면 충돌해서 운전자가 튕겨 나가는 부분만 실제 배우 대신 정교한 마네킹으로 대체했을 수도 있다.

그로부터 20여 년 뒤에 만들어진 음주운전 추방 광고는.. 아주 경쾌한 BGM과 함께 맥주잔이 출렁거리면서 도로를 질주하다가 교통사고가 나는 걸로 끝난다. 묘사가 훨씬 덜 간접적인 형태로 바뀌었으며, 앞부분만 봐서는 오히려 맥주 상업 광고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결말부에는 역시 "즐거우셨습니까? 인생의 마지막 운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라는 경고문이 나온다.

이렇게 내 기억에 남는 CF들을 좀 늘어놓아 보았다.
작곡가, 기자, 작가(글/사진), 영화 감독처럼 뭔가 창의력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평생 한두 번 찾아올까 말까인 '명작운', '특종운'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난 영상이나 음악은 아니고 아시다시피 글과 코드를 주로 창조해 왔다. 하지만 음악 쪽도 언젠가 내가 만든 곡에 내가 꺼뻑 가는 작곡을 하는 순간이 왔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프로그램 쪽이야 난 날개셋을 계속 만들지 않았으면 진작에 철도로 전공과 직업을 바꿨을 수도 있다. -_-;; 어쩌다가 약을 단단히 빨고서 이렇게 아무도 관심 안 갖는 분야의 엽기적인 프로그램의 창조자가 됐는지 모르겠다.
여러 분야의 글 중에서 기독교/성경 쪽만 예를 들자면, <음란한 성경은 가라>에 아마 평생의 명작운이 전부는 아니어도 대부분 투입되지 않았나 싶다. 그게 정말 독보적인 대박을 쳤으며 킹 제임스 옹호 진영과 반대 진영 모두에 내 이름을 알렸다.

페인트 광고에 근성 도미노가 나오고, 자동차 광고에 궁극의 부품 도미노와 합창단 비트박스가 나오는.. 그런 급의 명CF가 앞으로 또 국내외에서 얼마나 등장할지 지켜볼 일이다.
본인 역시, 30여 년 평생에 뭔가 똑같은 내용을 공부하고 암기해서 치는 시험에서 남보다 앞서고 뭔가 재미를 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 대신 남 안 하는 짓, 창의적인 분야에서 뭔가를 기여하고 명성을 얻은 편이었다. 그런데 그게 꼭 부귀영화를 가져오는 분야는 아니어서 문제이긴 하다만=_=, 난 앞으로도 계속 그 방면을 파면서 살게 될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6/02/09 08:35 2016/02/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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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 (Frozen)

우리나라는 동북 아시아 CJK 중 유일하게 12월 25일 성탄절이 빨간날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딱 1주일 뒤에 있는 1월 1일 신정도 빨간날이다.
지난 2015년은 성탄절과 신정이 금요일이고 그 뒤에 토요일과 일요일이 이어져서 황금 연휴가 두 주 연속으로 있었다. 그 사이 기간을 연차 휴가로 연결하면 직장인도 사실상 겨울방학 기분을 낼 수 있었을 듯하다. 장기간 외국 여행도 가능하다.
그래서 그런지 금요일 오후 당일은 도로도 왕창 막히고 지하철도 혼잡했다. 그러나 연휴 동안은 도로와 지하철이 텅 비어서 한산했다.

그때는 밤 10시에 텔레비전에서 이색적인 프로가 방영되었다.
12월 25일엔 종교 케이블 방송도 아니고 공영 방송인 KBS1에서 주 기철 목사 다큐를 방영했으며, 그 다음날 26일 같은 시각엔 OCN에서 그 이름도 유명한 월트 디즈니 <겨울왕국>을 방영했다.

본인은 전국· 전세계가 Let it go로 열광하던 그 시절에도 <겨울왕국>을 보지 않았다. 너무 바빠서..;; 그 대신 얼마 후 개봉했던 <신이 보낸 사람>은 봤다.
그로부터 2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 TV 방영이 될 정도가 돼서야 <겨울왕국>을 보게 됐다.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저 노래들이 어느 문맥에서 등장하는지가 궁금하기도 해서 주의 깊게 시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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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뒷북인 주제에, 저걸 보며 아이디어 메모를 남겨 놓은 게 한 페이지가 넘었다. =_=;; 주 기철 목사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내 블로그에서 다룬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긴 한데, 일단은 겨울왕국 얘기부터 먼저 하겠다.

- 연관 검색: 제목이 '테이큰'처럼 '-en'형 불규칙 동사의 과거분사형 한 단어로 구성되어 있어서 인상이 왠지 좋게 느껴졌다. Frozen. 참고로 난 '테이큰' 광팬이다.;;

- 연관 검색: 극지방 근처 북유럽 하늘 → 오로라 → 안나와 엘사 → 아 맞다 옛날에 "오로라 공주" 이런 거 나오는 만화영화가 있었는데.
검색을 해 보니 80년대 말에 <SF 서유기 스타징가>, 국내에서는 <오로라 공주와 손오공>이라고 소개된 일본 애니가 있었다는 걸 확인했다.
일본은 그렇고 비슷한 시기에 미국산 애니로는 <우주 보안관 장고>가 있었다. 보안관이라니 역시 발상이 미국스럽다..;; 내가 '텍사스'라는 단어를 태어나서 최초로 접한 매체가 저거였다. '캘리포니아'는 건포도 제조지로 처음 접했고.

- 연관 검색: '안나'라는 이름은 포카혼타스에서는 인디언들 언어로 작별 인사 '굿바이'라는 뜻인 게 와 닿는다. 기억하시는지? 만났을 때 인사인 '윙가포'의 반의어이다.

- 잠깐 깨알같이 등장하는 룬 문자로 쓰인 책이 인상적이었다.

- 월트 디즈니는 내가 알기로, 없는 눈을 CG로 만들어 내는 기술이 세계 최정상급이라고 들었다.
하긴, 대전 액션 게임들이 눈 덮인 바닥을 실시간으로 렌더링하는 것도 보면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사람이 그 위로 밟거나 자빠지면 자국이 물론 패인다.

- 엘사는 뭔가 초월적인 자기 능력을 컨트롤을 못 한다는 점에서 가위손 같기도 하며, 섬뜩한 쪽을 더 부각시키면 M에 나오는 주인공 박마리 같기도 하다.
애들의 기억을 지우네 뭐네 하는 게 M스럽게 느껴지며, 가위손의 경우 거기에도 나름 얼음으로 조각품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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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은 액체 상태의 물 위를 걷긴 했는데, 엘사는 아예 물을 실시간으로 꽁꽁 얼려 버려서 얼음 위를 달려간다. 물이 비열이 얼마나 높은 물질인지를 생각한다면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 없는데, 어느 게 더 기술 레벨이 높은 건지는 내가 판단을 못 하겠다.

- 안나는 정말 '금사빠'다. "나 미친 소리 좀 해도 돼? 나랑 결혼해 줄래?" /
"나 더 미친 소리 좀 해도 돼? 응! 그럴게! ^^" 우와 정말..;; ㄷㄷㄷㄷ
그 반면 한스는... 라이온 킹 Be prepared 같은 악역 노래 하나 없이 관객까지 뒤통수 칠 정도로 180도 돌변하는 게 디즈니의 관행상 이례적이다.

- 눈사람 올라프는 정말 플라나리아 급의 초재생능력의 소유자이다. 사지가 잘리고 데굴데굴 굴러도 살아 있는데, 그래도 녹으면 죽는 듯하다. 플라나리아도 사지가 1/n로 짤려도 다 살아나지만, 살고 있는 물이 조금만 더러워지면 녹아 버린다. 세포 구조가 아주 단순한 덕분에 외부적인 생존성은 강하지만, 복잡한 물질대사를 할 수 없어서 내부적인 생존성은 쥐약이기 때문임.

- 주인공이 타고 있던 말이 도망가고 겨울에 눈 쌓인 숲 속에서 늑대 떼에게 쫓기는 것, 그리고 악당들이 주인공이 사는 산 속의 성에 쳐들어가는 건.. <미녀와 야수>를 쏙 빼닮았다.

- 영하 수십 도 이하의 혹한에서 쇠붙이 수갑이 깨져 버릴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석(Sn)은 실제로 그렇게 부스러진다. 이것 때문에 남극 탐험을 갔던 영국의 스콧 일행, 그리고 러시아로 원정 갔던 나폴레옹까지 낭패 보고 고생했었다.

- 기온이 올라서 현실에서 주변의 눈이 녹는 장면은 저 영화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지저분하다. 곳곳이 축축하고 도로는 온통 진흙투성이가 되고...;;
그리고 군대에서 제설의 트라우마를 경험한 분이라면 애초에 겨울왕국 같은 영화가 결코 낭만적으로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 영어에서 heart는 사람의 장기인 '심장'도 되고 추상적인 '마음'도 되는 중의적인 단어인지라 성경 번역에서도 다루기가 까다롭다. 그래서 결말부에서 이런 대사도 나오는 게 인상적이었다.
한스: 어, 언니가 니 heart를 얼려 버렸잖아? (그런데 너 어떻게 생물학적인 목숨이 붙어 있지?)
안나: 지금 여기서 heart가 얼어붙어 있는 놈은 너뿐이지! (너 완전 인간 말종이야)

- 겨울왕국과 비슷한 분위기의 다른 매체로는 영화 <투모로우>, 이말년 씨리즈 제100화 <얼음탑의 마법사들>, 계몽사 어린이 세계 명작 미국편 <샴라크의 크리스마스>를 참고하면 될 듯하다. 게다가 이말년 씨리즈는 겨울왕국보다 훨씬 먼저 만들어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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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얼음 마법을 잘 쓰기 위해선 마음을 차갑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지금부터 한 명씩 나와서 쌀쌀맞게 대하는 연습을 한다. 실시!"

- "몇몇 좋은 부분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애들 영화입니다.", "전형적인 디즈니 영화입니다."라고 SNS에서 영화에 대해 본인에게 힌트를 준 분이 있었는데, 본인 역시 이에 적극 공감한다. 결말이 좀 허탈하고 오글거리게 느껴질 수도 있다.
고전 게임 <보글보글> 오락실판의 해피 엔딩에 이런 말이 나오지 않던가. 딱 그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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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gratulations!
Now you found the most important magic in the world.
It's "LOVE" & "FRIENDSHIP"!

Posted by 사무엘

2016/01/26 19:32 2016/01/26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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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초등학교 때 GWBASIC으로 프로그래밍을 시작했다. 8비트나 자기 테이프 같은 건 경험하지 못했고 16비트 교육용 PC가 최초로 프로그램을 짜 본 컴퓨터 환경이었다. 중학교 때는 전국 PC 경진대회가 정보 올림피아드로 바뀌는 것을 겪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이 상협 씨던가 1990년대 후반에 <칵테일>이라는 멀티미디어 저작도구를 개발해서 벤처를 차리는 것을 봤다. 지금 그분은 언론에 일체 등장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가 너무 일률적이고 꽉 막혀 있다고는 하지만 그때는 그나마 그 분위기에 많이 편승하는 편이었다. "나이 타파, 학벌 타파,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 간다, 하나에 미쳐야 산다" 이러던 시절이었으며, 본인 역시 그런 풍조의 덕을 봤다.
내가 그때 컴퓨터보다 새마을호를 먼저 많이 타고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Looking for you를 들었으면, 난 컴퓨터 대신 철도를 직업과 전공으로 선택하게 됐을 것이다. 그래도 철도는 컴퓨터 프로그래밍만치 학교 교육과정하고는 완전 딴판인 오덕질을 요구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난 지금과는 꽤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 싶다.

뭐, 지금은 그때에 비해 컴퓨터 프로그래밍 특기자에 대한 거품이 많이 빠졌다. 일류 공대들의 컴공/전산학과의 입결은 2000년대 초반보다 훨씬 더 낮아졌다. 사실은 나조차도 전형적인 IT 엔지니어 형태의 길을 갈 사람이 아닌 건 오래 전부터 스스로 느끼고 있다.
기술은 끊임없이 상향평준화하고 있고 어지간한 건 다 오픈소스다 뭐다 하면서 무료로 풀리고 있는데, 앞으로 컴퓨터 코딩만으로 무슨 창의적인 물건을 더 만들 수 있으며, 먹고 살기 위해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난 그런 건 모르겠고 단지 아무도 관심 안 갖는 한글 입출력 기술 쪽 연구만 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칵테일보다도 더 전, 까마득한 옛날에 1980년대에도 언론에 이름을 날렸던 10대 고딩 프로그래머가 국내에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눈길이 간다. 이 글에서는 두 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박 현철 씨.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컴퓨터 하드웨어의 조립만으로는 한계를 느끼고 프로그래밍 공부를 직접 시작했다. 그래서 하드웨어를 직접 제어하여 (보아하니) 일종의 전자식 타자기처럼 한글 문장을 찍어 주는 초간단 한글 워드 프로세서를 개발했다. 무려 1982년의 일이다.
저 때가 얼마나 옛날이냐 하면, 한글 입력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지금의 표준 KS X 5002 두벌식 글자판이 거의 저 무렵에 제정되었다. 그리고 국내 열차 승차권의 전산 발매가 시작된 게 1981년이며, 그것도 한번에 왕창 된 게 아니라 경부선 새마을호부터 시작해서 1984년까지 끌었을 정도이다.

당시 이분을 소개한 TV 동영상을 한번 보시라.

별도의 하드웨어 없이 소프트웨어만으로 화면과 프린터로 한글을 찍는 프로그램이라니!
워드 프로세서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어서 프로그램의 이름이 그냥 '한글 워드 프로세서 버전 1.0'이었다.
이걸로 이분은 겨우 17세의 나이로 전국적으로 매스컴을 타고 일약 스타가 됐다. 굴지의 대기업들 전산실에서는 스카웃에 유학 등 각종 러브콜을 보냈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 당시 비슷한 연배의 천재이던 김 웅용 씨를 신기하게 여겼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분은 그런 지나친 관심을 부담스러워했으며, 당장의 부귀영화보다는 그저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개발자' 노선만을 고지식하게 추구했던 것 같다.
그로부터 30여 년의 세월이 지나서 50대 중년이 된 이분은 작은 회사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일단은 아직까지도 개발자로 종사하고 계신다. 잠시 미국에도 갔다 오고 창업을 하기도 했지만, 운이 없었는지 사업 수완이 부족했는지 실패하고 빚도 지고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관련 신문 기사: 스티브 잡스를 꿈꿨지만 현실은 참담했다

사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와 함께 동업을 사람들도 그저 그의 유명세와 재능을 이용만 해 먹으려는 먹튀형이 많았다고 한다.

오, 나름 이념 쪽의 소신을 밝힌 것도 있다. "국내의 많은 진보 인사들이 잡스를 존경한다는 사실에 난 충격을 받았다. 잡스는 (빌 게이츠와 같은 급의 세계정복만을 이루지 못했을 뿐) 여러 행적으로 볼 때 악덕 독재 경영자의 전형이다. 그런데도 한쪽에서는 한진 중공업 김 진숙(노동 운동가)을 옹호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스티브 잡스를 맹신하다니, 그건 논리적인 모습이 아니라고 본다."
빌 게이츠만이 절대악이고 더구나 그의 대안이 스티브 잡스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저분의 말을 한번 곱씹어 봤으면 싶다.

그리고 최근에 또 이분의 인터뷰 기사가 인터넷에 소개됐는데..
이분은 그 어린 나이와 그 옛날에 한글 워드 프로세서를 개발한 분답게 굉장한 '한글빠'라는 것이 밝혀졌다.

관련 신문 기사: 한글은 세종대왕이라는 천재가 후손들에게 준 선물

한글빠 + 고딩 나이로 한글 입력 프로그램을 만들고 지금은 철도 관제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니..
난 고딩 때 날개셋 한글 입력기 1.0을 만들었으며 지금은 완전 철덕이다. 처지만 빼면 여러 모로 완전 나의 롤모델이 아닐 수 없다.
꼭 뭐 돈방석 위에 앉아야 하나, 자아 성취를 이뤘다면 저 정도도 충분히 성공한 게 아닌가..;; 엄청 고지식한 것까지도 나랑 완전 똑같다.

그 다음으로 비슷하게 주목받은 분으로는, 고딩 때 최초의 "한글 롤플레잉 게임"인 <신검의 전설>(1987)을 개발한 남 인환 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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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는 같은 나이의 어느 괴수 고등학생이 Another world를 만들었다지만, 그래도 그보다 전에 우리나라에서는 애플 2 어셈블리를 독학한 고등학생이 국내 최초의 상용 게임을 만들어 냈다니 참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글 출력, 그래픽, 기획 등등 다 혼자 했다는데, 학교 공부를 어지간히 땡땡이 치지 않고는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없었지 싶다.

그는 똑같이 애플 2 플랫폼에서 <페르시아의 왕자>를 만든 조던 메크너처럼 영상 종합 예술에 관심이 있었는가 보다. 뭐, 게임 개발자로서는 같이 연계해서 나쁠 게 없는 분야이다. 그는 1990년대 초엔 무명이나마 영화 배우로 잠시 활약하다가 다시 게임 업계로 돌아오고, 지금은 온라인 게임 개발사의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한글 워드 프로세서 같은 '애국심 마케팅 + 생산용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게임을 만들어서 그런지, 이분이 1987년 당시에 막 매스컴을 타고 대기업 스카웃을 받았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 와서는 게임 개발을 한 이분이 돈도 더 많이 벌고 더 잘나가고 있는 듯하다. 역시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SI 같은 품팔이가 아닌 방식으로 돈을 벌려면 게임밖에 답이 없나 싶은 생각이 든다.

...;;
본인 역시 고등학교 나이 때 컴퓨터 프로그램을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 덕분에 전국 대회에서 상도 받고 언론도 타 봤다. 그런 특권을 입은 사람으로서 나 역시 가능한 한 잘됐으면 좋겠고, 그때 입상했던 프로그램이 계속해서 명맥이 유지되고, 내 연구의 뒤를 잇는 후배들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린애가 컴퓨터를 뚝딱 해서 뭐 좀 비범한 걸 만들어 내면 언론에서 금방 '한국의 스티브 잡스, 한국의 빌게이츠' 드립을 치며 온갖 호들갑을 떨고 애를 막 비행기를 태운다. 그러나 그 열기가 좀 가라앉거나 그 애가 약간 실패라도 하면 분위기는 싹 바뀐다. 본인은 개인적으로 그런 냄비근성 관행부터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주목을 받는 아이도 겨우 그런 것에 일희일비 연연하지 않는 근성과 멘탈을 갖출 필요가 있다. 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게 프로그램 개발 공부와는 별개로 필요한 인생 공부라는 느낌이 들었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언론이 스티브 잡스보다 데니스 리치를 더 중요하게 언급해 주기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서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오늘도 8.x 다음 버전의 개발이 계속 진행 중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나에게서 한글 입력기 새 버전을 창조해 낼 자유를 앗아 갈 수는 없다. 정말 극소수 예외가 아닌 한은 대한민국은 아직은 '노오력'하는 사람이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닌가 싶다. 부정적인 예외만 작정하고 찾자면 뭐 나보다 훨씬 천재인데도 시대를 못 타고 나서 인정 못 받고 무진장 불우하게 살다가 간 경우도 엄청 많을 테고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01/21 08:33 2016/01/21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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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한 죽음, 영웅 이야기

1. 장기를 기증하고 죽은 어린이

'리앙 야오이'라고 중국에서 11살짜리 소년이 뇌종양을 앓다가 지난 2014년 6월 6일에 세상을 떠났다. (☞ 자세한 내용) 그런데 그 아이는 전에 학교에서 뭔가 배운 게 있었는지, 기왕 죽더라도 남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서 장기 기증을 유언으로 남기고 죽었다.
그래서 아이의 부모는 유언을 따라 아이의 신장, 간 같은 주요 장기를 다른 환자에게 기증해 줬으며.. 그 장기 이식 수술을 마친 의사들은 아이의 시신의 옆에 늘어서서 허리를 90도로 팍 숙이고 진심으로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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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굶는 건 의사로부터 굶으라는 처방을 받았을 때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의사는 남의 의학적인 생명을 관할하는 전문직이다. 그러니 부자를 강제로 굶게 만들 수 있다. 남에게 "병 빨리 낫고 싶으면 / 건강을 되찾고 싶으면 이렇게 하세요, 저건 하지 마세요"라고 고자세로 훈수를 놓으면 놨지, 의사가 남에게 저 정도로 감사와 경의를 표할 일이 평소에 얼마나 있겠는가? 그런데 환자이던 고인이 자기 장기 기증을 하면서 갔으니, 저건 정말 의대생 시절 해부 실습용 시신 기증에 맞먹는 예우를 해 줘야 할 것이다.

저 사진을 보니 문득 떠오르는 생각: 초록색 아니면 파란색의 solid color(순색) 배경을 볼 수 있는 분야가 크게 둘 있는 것 같다.

  • 외과 의사의 수술복
  • 일기예보나 일부 영화처럼 크로마 키를 사용하는 촬영 현장

(군인 전투복은 황록· 갈록 등에 가까우니 이 범주에 속하지 않음)

2. 6· 25 국군 전사자 유해

다음으로 군대 이야기이다.
이 명박 정권 시절이던 2012년 5월 25일, 6· 25 전쟁 중에 다른 지역이 아니라 '북한 지역'에서 전사한 국군 무명 용사의 유해 12구가 처음으로 우리나라로 운구되어 왔다. 정확히는 장진호 전투에서이다. 장진호는 인명이 아니라 함경남도 장진군에 있는 호수의 이름이며, 저 전투는 UN군이 트라우마급의 참패를 당했던 치열한 전투였다.

6· 25 전쟁은 잘 알다시피 (1) 초반에 남한이 대구와 부산까지 밀림 (2) 인천 상륙 작전을 계기로 확 북진 (3) 중공군 때문에 다시 후퇴 뒤, 1951년 하반기쯤부터는 지금의 휴전선 일대에서 고지 탈환 엎치락뒷치락이 2년간 계속되고 후방은 사실상 일상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그러니 대한민국 국군이 저렇게 북쪽 끝에서 전사했다는 건 국군이 일시적으로나마 쭉쭉 북진해 있던 1950년 가을경의 일이다.

북한은 만만한 호구 겸 자존심 문제가 걸려 있는 남한하고는 손잡지 않고, 오히려 원쑤 미 제국주의자들과 협정을 맺어 자국 영토 내의 장진호 전투 전사자 유해를 합동으로 발굴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북한에 아마 돈 많이 쑤셔넣어 줬을 듯) 미국은 거기서 발굴된 유해를 미 합동 전쟁 포로· 실종자 사령부(JPAC)로 옮겨 신원 확인 작업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12구가 아시아 인종으로 분류되었다.

이 단계가 돼서야 대한민국 국방부 소속의 유해 발굴 감식단이 나서서 추가 감식을 실시한 결과 그 유해는 국군 전사자로 확인됐으며, 그 중 2구는 김 용수· 이 갑수라고 신원이 완벽하게 확인되고 유족들과 연결까지 되었다! 저런 걸 도대체 어떻게 다 확인할까? 현대 과학 기술의 위대함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서 거의 70년간을 북한 땅에 파묻혀 있던 무명 용사의 시신은 하와이로 갔다가 대한민국 땅으로 귀환하게 됐다. 위안부 할머니와 일본군 만행을 배경으로 <귀환>이라는 영화가 제작 중이라고 들었는데 이것도 또 다른 종류의 "귀환"인 셈이다.
시신은 군 수송기를 통해 서울 공항에 도착했으며, 이때는 대통령, 국방부 장관, 한미 연합사 사령관 같은 최고의 높으신 분들이 쭈욱 도열해서는 관을 향해 이등병마냥 각 잡고 거수경례를 하면서 최고의 예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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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사람들이 현직에 있으면서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각 잡고 경례할 일이 도대체 있겠는가? 의사들이 장기 기증을 하고 죽은 아이의 시신에게 깍듯이 예를 갖추고 경례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남을 구하기 위해 죽음도 감수하는 직업으로는 경찰, 소방관, 군인, 보디가드· 경호원=_= 등이 있다.
이에 덧붙여 기독교 역시 나를 사랑하여 누군가가 나를 위해 대신 죽어 주었다는 걸 가르치고 믿는다. 물론 저런 세상 직업에서의 죽음과는 성격이 좀 다르며, 죽음뿐만 아니라 부활까지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3. 불굴의 의지로 43년 만에 귀환한 국군 포로 조 창호 중위

1994년 10월 23일, 겨우 이틀 전에 성수대교 붕괴 사고 때문에 전국이 떠들썩하던 시절에, 서해상에 어느 괴선박이 남하해서 우리나라의 어업 지도선에 나포되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먼 옛날 6·25 때 납북되었던 국군 포로가 타고 있었다.

조 창호 중위(1932-2006). 그는 연세 대학교의 전신인 연희 학교를 다니다가 겨우 대학 새내기 나이 때 6· 25 전쟁을 맞이했다. 그 옛날에 대학생이면 굉장한 엘리트였으니 그는 국군 포병 장교로 임관하여 전투에 참가했다. 그러다 1951년 5월, 강원도 인제에서 중공군에게 밀려 대참패를 당했던 그 '현리 전투' 때 그는 포로로 잡혀서 북한으로 끌려갔다.

그는 다른 국군 포로들과 함께 탈출을 계획했다가 적발되어 13년간을 북한 내부의 온갖 오지에 있는 강제 노역소에서 복역하며 고생했다. 농장과 광산에서 온갖 중노동을 해야 했으며, 작업 중에 사고로 몸의 이곳저곳이 다치고 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포로들이 다수가 희망을 잃고 북으로 전향해 버린 것과 달리, 그는 끝까지 전향하지 않았으며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는 요양을 빙자하여 변방에서 늘그막을 보내게 되었는데, 거기서 한 조선족 상인과 접촉하면서 고향의 가족들과 서신 연락이 닿고 더 나아가서는 탈북에 기적적으로 성공했다. 그래서 그는 1951년 이래로 무려 43년 만에 남한 땅을 다시 밟게 되고 가족들과 상봉했다. (북한에서 새로 둔 처자식들과는 안타깝지만 이별이지만)

그는 곧바로 병원에서 총체적인 치료와 회복에 들어갔다. 이 놀라운 소식이 전해지자 그 당시 김 영삼 대통령, 국방 장관에 육군 참모 총장까지 높으신 분들이 줄줄이 문병 와서 이 위대한 노병 영웅을 깍듯이 예우하고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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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참모 총장에게 "귀환"을 정식 보고했고, 서울 현충원에 가서 실종-전사자로 처리되어 있던 자기 이름을 손수 지웠다. 국가로부터는 훈장(보국훈장 통일장)을 받았으며, 6· 25 당시 계급이었던 소위에서 중위로 진급한 뒤 곧바로 육사 생도들의 사열을 받으며 전역했다. 모교인 연세 대학교로부터는 명예 졸업장도 받았다.

그는 그 뒤 12년을 더 살다가 2006년 11월에 향년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6· 25 당시에는 아직 정식으로 있지도 않았던 군진수칙을 43년간 몸으로 실천한 대한민국의 참 군인이었다. 국가에서 공식적으로는 없는 사람으로 간주하며 쥐도 새도 모르게 보낸 북파 공작원이 아니라, 대놓고 국가 정규군으로 전투에 참가하다가 북으로 끌려간 포로들에 대해 우리는 평소에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 걸까?

1. 나는 대한민국 군인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신명을 바치겠다.
(중략)
4. 나는 만약에 포로가 되더라도 아국이나 우방에 불리한 여하한 적의 권고나 우대도 거절하며 추호도 적을 돕지 않겠다.
(중략)
6. 나는 만약 포로가 되어 심문을 받더라도 계급·성명·군번·연령을 제외하고는 진술을 회피하며 아국과 우방에 불리한 서명, 기타 여하한 요구에도 응하지 않겠다.
7. 나는 조국에 신명을 바친 대한민국 군인임을 명심하고 나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 나는 조국을 사랑하며 조국은 나를 보호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국방부 훈령 제27호 군진수칙의 일부)

Posted by 사무엘

2016/01/03 08:33 2016/01/0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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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코딩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전설적인 인물을 좀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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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예쁘장하게 생긴 아가씨는 무려 아폴로 11호 우주선을 총괄 제어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한... 열혈 공순이 되시겠다. 이름은 마가렛 해밀턴(1936~). (마가렛 대처..는 영국의 정치인 이름이고.)

지금은 이미 80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되었지만 저 사진은 1968~1969년경에 촬영되었으니, 지금 내 나이 때 저런 일을 해낸 것이다.
IBM PC도, 인텔 마이크로프로세서도, C/파스칼도 없던 시절에 프로그래밍을 도대체 어떻게 했다는 건지 실감이 안 감. 기껏해야 어셈블리어, 포트란, 코볼 정도나 있었을 텐데.
우주선이나 전투기에는 Ada 언어가 많이 쓰인(쓰였)다고 하지만 이마저도 거의 1980년대는 돼서야 등장한 언어이다.

저기 옆에 있는 서류더미는..;; 프린트된 전체 소스 코드 리스트라고 한다.
그녀는 노가다 코딩만 한 게 아니라 수학자· 과학자· 공학자의 영역을 넘나들면서 아폴로 우주선의 달 착륙을 가능하게 했으며, 그 까마득한 옛날에 사실상 소프트웨어 공학이라는 학문 영역을 새로 개척했다고 한다. 이런 사람의 숨결을 받아서인지 NASA가 예로부터 컴퓨터 프로그램 최적화의 종결자 소리를 듣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한 마디로 여군 장성인 그레이스 호퍼의 뒤를 이은 미국의 천재 여성 프로그래머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그녀는 나중엔 자기 이름을 따서 Hamilton Technologies라는 회사도 차렸다.
주요 솔루션이 Universal Systems Language이라고 하는데.. 말만 들어서는 PL과 SE 분야의 융합 같기도 하고 도대체 핵심 기술이 무엇인지가 봐도 모르겠다. 너무 추상적이어서 그런지...

저 때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개봉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시절이니, 그 당시에 딱 현업에서 종사하고 있었던 저분은 그 영화를 보는 눈이 남달랐을것이다. 아니 아예 영화 제작 과정에서 기술 자문도 해 주지 않았을까.

이 사람과 대등한 레벨의 괴수를 우리나라에서 찾자면 아무래도 성 기수 박사를 꼽을 수 있겠다.
일단 1934년생으로 연령도 비슷하고, 하버드 최단기 박사 졸업에다 우리나라 컴퓨터 역사의 산 증인인 분이기 때문이다.
우주선 시스템은 아니지만 88 서울 올림픽의 전산 운영 시스템을 총괄 개발했다. 게다가 이분 역시 원래 전공은 항공 우주로 NASA 입사를 지망하기까지 했으며, 1960년대의 컴퓨터와 프로그래밍 환경을 접했던 분이기 때문에 일치하는 면모가 많다.

저런 천재들을 보면 난 지금까지 도대체 뭘 하고 살았나 싶은 자괴감이 든다.

그리고 여담.

  • 저 사진에 있는 마가렛 해밀턴의 옷차림처럼, 무릎까지 올라오는 미니스커트(!)가 세상에 첫 등장한 것도 1960년대 후반의 일이다. 그러니 저 복장은 그 당시로서는 최신 패션이었다..!
  •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는 grasshopper(메뚜기)와 단어 발음이 참 묘하게 비슷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5/12/26 08:39 2015/12/26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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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재 양성 기관

대기업· 공기업이나 정부 기관 같은 거대 조직은 망할 일이 없이 안정적이고 임직원에게 복리후생도 좋다 보니, 똑똑한 사람들이 들어가려고 많이 몰린다. 그런 조직은 일단 뽑은 사람들을 자기 조직의 일원으로 동화시키려는 목적으로, 또 이미 입사한 간부들이라 해도 부려먹기만 하는 게 아니라 때때로 재교육을 하려는 목적으로 자체적인 연수 내지 교육 기관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법조계에는 사법 연수원이 있으며, 군대 내부에도 장교를 첫 양성하는 사관학교뿐만 아니라 기존 장교들을 재교육하는 학교들이 자운대에 있는 게 그 예이다.
이런 교육기관들은 입소자들의 합숙(?)을 목적으로 도시의 외곽 내지 산기슭에 있는 편이며, 존재가 대외적으로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사실은 알려져야 할 필요도 없고.

(1) 한전 인재 개발원
태릉 사격장, 서울여대, 서울 과학 기술 대학교 사이의 산기슭에 있다. 한전에 합격한 신입사원들은 여기서 연수를 받는다. 연수 시설치고는 보안 수준이 이례적으로 청와대· 군부대와 동급인 최고이다. 지도에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으며, 항공 사진 지도에는 숲으로 완전히 가려져 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던 중, 공채를 뚫고 한전에 합격해서 연수까지 다 받은 어떤 사람의 수기를 본 적이 있다. 만인이 부러워하는 안정적인 공기업에 합격했다만, 급여가 당장 그렇게 많지 않고 결정적으로 첫 발령지가 강원도 깡촌인지라 무척 고민 중이었는데.. 마침 인서울 근무를 하는 다른 대기업으로부터 추가 합격 통지가 오는 바람에 한전을 퇴사하고 직장을 옮겼다고 한다. 당장 연봉은 더 높을지 모르지만 일은 더 빡셀 텐데.. 그래도 인서울인 것이 결정적인 메리트였다고 한다. 공기업과 대기업을 나란히 선택해서 들어간 그 글쓴이가 참 대단하다.

(2) 국가 정보 대학원
국정원에 합격한 신입 사원..은 아니고 요원들이 비밀리에 직무를 위한 연수를 받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부지도 어지간한 군부대 급으로 넓다. 소재지는 성남시 운종동으로, 반경 수 km 이내엔 이 경석 선생 묘, 대한 송유관 공사, 고기리 유원지, 한국학 중앙 연구원이 있는 깡촌이다.
얘 역시 (1)처럼 100% 은폐이므로 지도에서 찾을 생각은 하지 말 것. 단, 국정원 본원과는 달리, 근처 도로의 이정표에는 잠깐 언급이 돼 있는가 보다.

원래 이 기관은 서울 이문동의 천장산 동쪽 구석, 의릉 인근에 있었으나 2003년경에 이전을 했다. 지금은 거기 일대는 한국 예술 종합 학교 캠퍼스가 돼 있다.
천장산 서남쪽 구석의 홍릉 일대는 잘 알다시피 수백· 수천 명의 이공계 박사들이 근무하는 과학 연구소들이 즐비하다. 여기 부지가 너무 좁아졌고 또 서울이 북한과 너무 가깝다는 안보 문제도 있고 해서 1970년대엔 나라에서 대전 대덕에 연구 단지를 추가로 만들고, 카이스트도 거기로 이전을 시킨 것이다. 다만 지금은 인서울 연구소들을 모두 이전하려는 계획도 있는 듯하다.

(3) 서울특별시 인재 개발원
시에서 운영하는 연수원도 있다. 서울시 인재 개발원은 예술의 전당 옆 서초 IC 근처의 우면산 기슭에 있다. 지도에는 표시가 돼 있고 내부의 로드뷰까지도 별 제한 없이 제공되지만, 최소한의 보안이 필요한지 항공 사진만은 흐리게 처리되어 있다.

여기는 서울시 소속 공무원들이 입소하여 교육· 연수를 받는다. 하지만 지방에서 서울시 공무원 공채를 지원하러 상경한 수험생들의 숙소로도 쓰이는가 보다. 전국에서 서울만이 유일하게 타 지방 사람들도 공무원 취업에 지원을 할 수 있다.

(4) 코레일 철도 인력 개발원
철도 회사에도 인력 양성 기관이 응당 존재한다. 코레일의 경우, 철도 박물관과 한국 교통 대학교 의왕캠(구 철도 대학)사이라는 아주 적절한 곳에 있다. 여기는 자사 직원의 재교육뿐만 아니라 철도 차량 기관사 지망생들의 학원 역할도 한다.
여기는 항공 사진으로 딱히 가려져 있지는 않다. 여기 대신 구로 역 인근에 있는 철도 교통 관제 센터는 매우 중요한 곳이다 보니 완전히 은폐되어 있다.

코레일 말고 서울시의 지하철을 운영하는 공기업인 서울 메트로와 서울 도시철도 공사도 자체적인 인재 개발원을 두고 있다. 원래는 두 회사가 따로 썼는데 서울시의 조율로 한데 통합했다고.
서울 남산 어디 모처에도 무슨 기관의 연수원이 있는 걸 옛날에 지도에서 봤는데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설마 이전했나?

2. 대한 송유관 공사

우리나라에 에너지 기업으로는 SK 에너지 같은 사기업 내지 '한국 석유 공사' 같은 공기업이 있는데, 그와 더불어 송유관 시설 자체만을 관할하는 기업도 있다. 본사는 아까 잠시 언급했던 국가 정보 대학원과 가까운 위치에 있다.

외국에서 수입된 석유를 비축해서 국가적으로 관리하는 시설들은 다 발전소와 동급의 보안이 필요한 기간 시설이기 때문에 민간 지도에 나오지 않는다. 또한, 이런 기름은 유조차로만 수송하는 게 아니며, 경부 고속도로의 노선과 얼추 비슷한 선형인 온산-울산-경주-대구-대전-천안-성남에 이르기까지 송유관이 매설돼 있다고 한다. 그 송유관의 중간엔 역시 항구로 통하는 몇몇 지선도 있다.

하긴, 그 많은 석유를 전부 엘리베이터로만 나르기에는 양이 너무 많다. 에스컬레이터도 좀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다니지도 않고 그렇다고 통상적인 화물을 수송하는 것도 아닌 선이 매설되어 있다는 게, 마치 해저 인터넷 광케이블과 비슷해 보인다. 우리 땅 밑엔 신기한 시설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

석유 공급과 관련된 범죄는 크게 (1) 유사 석유 제조..;; (2) 면세유를 무단 유출 판매하여 차액 챙기기, 그리고 아예 (3) 지하 수십 m에 매설된 저 송유관을 근성으로 뚫어서 기름을 직통으로 탈취..로 나뉜다.
(3)은 개념적으로 은행 현금 수송 차량을 털거나 TV 방송에서 전파 납치를 하는 것과 별 차이 없다. 혹은 폐전자기기 재활용 업체에서 회수되는 금 같은 귀금속을 직원이 몰래 조금씩 빼돌리는 짓하고도 비슷하다.
물론 송유관 공사 같은 데서는 송유관의 유압을 측정해서 누유가 발생하고 있는지 체크를 하기도 하니, 오차 범위에 들 정도로 조금씩 찔끔만 빼돌린다고 한다.

3. 자동차 주행 시험장

다음으로, 옛날 엑셀 추억의 CF 영상을 하나 시청하도록 하자.

여기서 드는 의문: 이거 어느 도로에서 찍은 걸까?
이건 여느 고속도로나 시내 도로는 아니고, 자동차 연구소 안의 주행 시험용 전용 도로이다.
지금이면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교통 안전 공단 내부의 주행 시험장에서 찍을 수 있었겠지만 저 모델의 엑셀이 출시된 건 무려 1980년대 말이다. 그때는 저 시설이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그렇다고 레이싱 서킷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길이 너무 곧고 넓고 평평하다.

외국에서 찍은 게 아니라면 저건 현대 자동차가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주행 시험장에서 촬영했을 것이다.
1980년대에는 울산 공장 근처에 시험장이 있었고, 그로부터 몇 년 뒤엔 남양읍(동) 연구소에 또 시험장이 신설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엑셀의 CF는 엑셀 개발의 산실이던 남양 연구소의 주행 시험장에서 곧바로 찍지 않았나 싶다.

이건 사람이 뛰는 운동장· 경기장이 아니고 경마장도 아니다 보니 한 바퀴 도는 전체 거리가 거의 4~5km에 달할 정도이고 반경이 그런 경기장보다 훨씬 더 크다. 동일 축척의 항공 사진들을 한데 대조해 보면 자동차 주행 시험장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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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설은 자동차가 나름 시속 200~250km급으로도 밟을 수 있게 설계돼 있다. 초고속 주행 테스트도 해야 되니까... 이런 이유로 인해, 뱅글 도는 곡선 부분은 원심력의 상쇄를 위해 노면 cant(좌우 기울기)가 굉장히 크게 잡혀 있다.

자동차 제조사가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주행 시험장은 나름 기업의 자산이고 보안 시설이기 때문에 항공 지도 사진에도 완전 은폐까지는 아니지만 흐리게 표시돼 있다.
여담이지만 현대 자동차 미국 연구소는 모하비 사막에도 주행 시험장을 운용하고 있다고 한다. 노후 비행기들이 가는 모하비 공항이 있는 그곳 말이다.

4. 남북 분단 관련

우리나라에서 봉인된 장소의 갑중갑은 단연 정치· 안보 분야 쪽일 것이다.

(1) 오리지널 판문점
본인도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된 건데.. 6· 25 중 당시에는 판문점이 지금의 판문점 위치에 있지 않았다. 지금 판문점은 휴전선의 선형에 맞춰서 오리지널 판문점보다 동쪽으로 약 1km쯤 이전하여 새로 만든 것이다.
물론 그게 시점이 1953년 10월이므로, 휴전 거의 직후부터 판문점이 지금의 위치에 있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휴전 협정이 이뤄졌던 그 장소는 지금은 완전히 북한 영토로 넘어갔으며, 옛 판문점은 지금 판문점에서 먼발치 너머로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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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옛 장단면사무소 건물
군사 분계선 안의 경의선 철길 주변 사진을 보면, 장단 역 옛 부지라든가 "죽음의 다리"(판문점 인근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 말) 따위는 있는 그대로 보존돼 있는 듯하다.
단, 장단 역은 전쟁 폭격으로 인해 돌 위에 돌 하나 안 남고 사라진 반면, 옛 "장단면사무소" 건물은 폐건물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 사실이 나를 자극한다.

물론 얘는 민통선 정도가 아니라 위험한 DMZ 안에 있기 때문에 개인의 접근이나 관광은 불가능함.
그리고 인터넷에 나도는 주소 중에 '동장리 어쩌구' 하는 주소는 잘못됐다. 언론에서 공개한 주변 사진을 보면 이 건물은 분명 길가에 있는 반면, 동장리 일대는 아무리 뒤져도 허허벌판일 뿐 길이 보이지 않는다.
'도라산리'로 시작하는 주소가 길가에 있는 맞는 주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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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노동당사는 38선 시절에 북한 치하에 있다가 우리가 수복한 폐건물인 반면, 옛 장단면사무소 건물은 38선 시절에는 남한 관할이다가 나중에 봉인되어 버린 폐건물이라는 차이가 있다.

이런 곳에 실제로 드나들고 싶은 분이라면 열심히 공부해서 각종 공기업, 관공서, 군부대에 취업(!)을 하거나, 기자가 돼서 방문 취재를 하면 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12/23 08:25 2015/12/23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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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BC 뉴스데스크

나무위키를 돌아다니다가 거의 성지순례 급의 진귀한 동영상을 발견했다. 바로, 역대 MBC 뉴스데스크 오프닝 화면의 역사이다.

본인은 1981년에 제정되어서 87년까지 쓰였다고 하는 BGM을 기억한다.
현란한 신시사이저 소리를 배경으로 굵직한 "시~솔 ... !@#!!@# .. (옥타브 up) 솔 솔라 시~솔~" 쿠우우웅~~ 멜로디가 깔리는 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30년 전 그 옛날에는 고전과 현대 음악을 두루 섭렵한 방송 기획자가 심혈을 기울여 선곡한, 아주 참신한 음향 효과였지 싶다. 곡명은 구스타브 홀스트의 Jupiter, the Bringer of Jollity의 도입부를 또 일본에서 리메이크한 곡이라고 한다.

물론, 본인이 TV에서 저걸 직접 본 건 거의 유치원을 갈까말까 하던 꼬마 시절이었으며, 선사시대(내가 직접 남긴 기록이나 기억이 없는)에서 역사시대로 옮겨간 직후였다. 1988년부터 음악이 딴 걸로 바뀌었다고 하니 올림픽을 하기도 전에 교체됐다. 난 그렇게 일찍 바뀐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만.. 그래도 1987년 7월에 새마을호 전후동력 디젤 동차가 투입됐던 시절엔 아직 이 시그널송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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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바뀐 지 10년이 넘었지만, 저 MBC 영문 서체는 아직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영문 서체는 Banco라는 기성 서체이지만 '뉴스데스크'라는 한글은 영문 서체의 느낌을 보고 손으로 획을 그려 만든 일종의 캘리그래피?로고타입?에 가까워 보인다. 한글까지 포함된 완전한 문화방송체 서체는 90년대에 가서야 나중에 개발된다.

그리고 옛날에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뉴스의 시그널송이 끝난 뒤에 광고 리스트가 뜨는 동안은.. 웬일인지 무슨 기계가 탈탈탈탈~ 돌아가는 소리가 나왔다. 윤전기를 돌리는 소리라고 하는데 그땐 왜 그런 소리를 넣었을까? 1990년대가 넘어서야 탈탈탈 소리 대신에 그때도 BGM이 나오게 바뀌었다. 그리고 광고 리스트도 세로쓰기가 아닌 가로쓰기 형태로 바뀌었다.

1980년대 아니랄까봐, 그때는 반드시 대머리 대통령의 근황부터 먼저 전하는 땡전뉴스 관행이 KBS와 MBC에 공히 있었던 듯하다. 그것도 모자라서 하도 '한편 이 순자 여사께서는...'이 관용구로 많이 등장하다 보니, 대통령 영부인의 호가 '한편'이라는 개드립도 나돌았다.

그때는 강 성구 앵커도 종종 보이는데... 맞다. 1988년 8월에 "귓속에 도청장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라는 희대의 엽기적인 방송 사고를 경험한 그 앵커이다. 그 사람은 훗날 MBC 사장에 국회의원까지 역임하면서 굉장히 승승장구하고 성공했으나.. 2013년엔 음주운전과 식당 주인 폭행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2. 만화영화 주제가들

다음으로 만화 주제가도 빼놓을 수 없다. 옛날에는 성우에 대해서 글을 썼었는데 내용을 더 보강하겠다. 먼저, 요술 공주 밍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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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작곡하고 딸이 불렀구나(당시 10~11살).;;; 과연 음악 가문이다.
하긴, 아버지는 억만장자 수학 교재 저자이고 딸은 서울대 수학과 교수인 집안도 있고,
아들은 로토스코핑으로 아케이드 게임을 만들고 아버지는 거기 들어갈 음악을 만든 집안도 있지. =_=;;

저건 내가 태어나기 거의 직전에 방영된 만화영화인지라, 본방을 직접 보는 건 불가능-_-했고 다른 경로로 주제가만 들어서 알고 있었다. 듣자하니 엔딩이 굉장히 충격적이었다는데.. (제작사에서 주인공인 밍키를 어이없게 죽여 버렸다고..)
주제가는 가수의 목소리가 참 곱고 노래 잘 부른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을 했다. 곡도 동요스럽게 잘 만들었고.
그리고 밍키 주제가 같은 경우, 화음이 최하 3부 정도 있다. 가장 높은 화음은 원래 파트하고 같은 목소리가 아닌데 누가 같이 불렀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랜다이저 역시 본방을 보지는 못한 엄청 옛날 작품이긴 하다만.. 이거 주제가도 남자 목소리에 같이 곁들어져 있는 여자아이 목소리는 역시 동일한 정 여진이다.
명랑하고 경쾌하고.. 가사를 좀 바꾸면 거의 군가로 불러도 될 것 같다.
가사가 "빠~ 빠빠빠. ... 태양을 향해라 용기를 마셔라" 이렇게 시작하는데.. '용기'(courage) 다음에 '마시다'(drink)라니, 참 독특 희한한 연어 관계이다. 저게 뭔 말인지 궁금해진다.

다음으로, 세월이 흘러 본인이 직접 본방을 본 적이 있는 만화영화를 몇 개 소개하겠다. 말괄량이 뱁스은비 까비의 옛날 옛적에는 가수가 모두 조 갑경이다.
전자는 동영상의 화질은 좀 개판이다만, 별로 신경쓸 것 없고 노래만 들으면 된다. 어차피 그 당시의 영상 자체를 보고 싶으면 유튜브에서 tiny toon adventures라고 영어 원판을 시청하는 게 훨씬 나을 테니까. 노래는 정말 귀엽고 깜찍하고, 동심을 마음껏 자극하는 창법으로 부른 게 느껴진다.
후자의 경우, 당시 KBS2 텔레비전에서 금요일 저녁에만 방영한 국산 애니 시리즈였는데, 덕분에 본인의 불금 엔터테인먼트를 책임지곤 했다. 노래 자체는 남녀 듀엣이기 때문에 남자 가수도 포함돼 있다.

미국 만화영화 중에는 미키마우스에다가 슈퍼맨을 합친 컨셉인 듯한 마이티마우스도 있었는데.. 국내에서는 MBC에서 1992년에 수입· 번역해서 방영을 했었다. 단선 선로에서 마주 보며 달려오는 열차를 마이티마우스가 양팔로 충돌을 막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 열차의 속도와 무게를 생각한다면.. 정말 불가능 중의 불가능임. 미국 애니 특유의 극도의 과장 연출이 아니고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저건 주제가를 익명의 어린이 제창으로 불렀다.

그리고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까지만 얘기를 하고 글을 맺겠다. 나디아는 일본 문화 개방도 하기 전에 이례적으로 세계관이 좀 심오하고 스케일이 크고 매니악한 일본 애니가 방영된 경우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거 주제가를 부른 가수는 윤 익희이다.

텔레비전에 UHF와 VHF 채널 다이얼 두 개가 있고, 화면과 소리로 white noise를 볼 수 있던 아날로그 시절, 광고 리스트가 무려 세로쓰기로 뜨던 시절이 갑자기 그리워진 다. ^^ 옛날에는 컴퓨터까지 갈 것도 없이 텔레비전만으로도 정말 최첨단 전자 기술이긴 했겠다.
아아~ 그리고 나도 작곡 스킬 좀!!! ㅜ.ㅜ 이런 음악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참 대단하고 부럽다. 이미 있는 곡을 편곡만 하는 건 자동차로 치면 그냥 정비나 튜닝에 불과하지만, 작곡은 예전에 없던 새로운 자동차 모델을 개발하는 것과 같은 급일 테니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12/07 19:35 2015/12/0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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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고문

인간이 자체적으로 무슨 사기적인 기술을 개발한 것을 가리킬 때는 '공밀레'라는 명사와 '약빨다'라는 동사가 쓰인다. 그 반면, 이건 도저히 인간의 기술이 아니라고 여겨질 때는 '외계인(을) 고문(했다)'라는 엄청난 관용구가 있다.

저 고문은 문맥상 顧問(adviser, consultant)이라고 해도 말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 拷問(torture)을 가리킨다. -_-;;; '문'은 동일하지만 '문'을 하는 방법이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자기가 약을 빨든 남을 고문하든, 모두 정상적인 방법은 아님이 분명하다.

1. I want you라고 징병 포스터에 얼굴마담으로나 등장하던 엉클 쌤 아저씨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외계인을 칠성판(?)에다 묶고 손수 무자비하게 족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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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의 회장님까지도 기업의 미래를 위해 손수 집도하시였다.... 응? 이 정도면 고문이 아니라 그냥 생체실험인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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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끄응...;; 메모리 반도체의 본좌와 비메모리 반도체의 본좌가 나란히 손잡고 정보를 쪽쪽 빼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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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과 삼성을 능가하는 웬 반도체 전문가가 무슨 일로 UFO를 타고 이 누추한 지구까지 친히 방문했다가 순순히 납치 당해서 지구인에게 기술을 털려 줄지는 미지수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벌어졌다가는 지구인의 입장에서는 훗날 외계인으로부터의 보복과 후한이 두렵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옛날에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에서는 지구인이 외계인의 컴퓨터를 해킹까지 한다는 막장 설정까지 있긴 하다.

마지막 동영상의 출처가 뭔지는 다들 아실 것이다. 혹시나 해서 말인데 1947년 여름에 진짜로 외계인 비행접시이건, 미국이 몰래 테스트하던 비행체이건, 아무튼 우리 입장에서는 UFO라 불릴 만한 비행체가 미국 서부 로스웰의 들판에 떨어진 것 자체는 팩트이다. 단지 문제의 외계인 해부 동영상은 음모론 대박을 노린 몇몇 사람들의 주작이다. 하지만 상당한 고퀄이긴 했는지, 한때는 영화 특수효과 전문가와 현직 의사들까지 여러 사람들을 성공적으로 낚았다.

본인이 중고딩 시절에 그 동영상에서 인상적으로 관찰한 건 첫째, 시신의 손발가락이 6개씩이었다는 것이다. 성경에도 유전자가 변이되어 진짜로 울펜슈타인 3D의 뮤턴트처럼 된 거인들이 손발가락이 6개였다고 나오니까 말이다.
그리고 둘째, UFO 잔해로 추정되는 무슨 철도 궤조 모양의 I-beam 표면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문자/부호들이 써져 있었다는 점이다. 그 중엔 임금 왕(王)자와 동일한 모양의 글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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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외계인도 한글 같은 문자를 쓰지는 않는구나” 이런 생각을 먼저 했는데, 삼성이나 인텔 관계자가 외계인을 납치하면 그런 건 관심 없고 진짜로 반도체 기술부터 쪽쪽 빼 갈 것 같다. 로스웰 사건이 벌어졌던 1947년은 이제 막 에니악 컴퓨터가 발명돼서 실전 배치되던 까마득한 옛날이었다. 그리고 저 일이 있은 후 1947년 말~1948년 사이에 트랜지스터가 발명되었다니, 우연치고는 참 기가 막힌다.

무한에 가깝게 너무나 방대 광활한 우주에서 오로지 지구에밖에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신앙이 없는 사람이라면 논리적으로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사항이긴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5/12/05 08:32 2015/12/0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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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넷 아시아 서버에 들어가 보면 무려 2015년 말인 지금까지도 스타크래프트 1을 하는 사람이 제법 보인다. 방을 만들어 놓으면 새로운 사람이 의외로 금방 들어와서 1:1이고 2:2이고가 된다.
이들은 도대체 어디서 뭘 하는 사람들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스타에 자신의 10대와 20대 시절의 추억을 남긴 건 확실한 분들일 것이다.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아직 활동 중인 건 일면 반가운 소식이긴 하지만, 이 사람들이 만만한 스타 초짜일 거라는 생각은 접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
2015년, Windows 10이 나온 이 시점에서 640*480 256색 펜티엄 + 윈도 95급 컴용 초 구닥다리 스타 1을 찾아서 하고 있는 사람들이 갓 입문한 뉴비 하수일 리가 있겠나..;; 방 이름을 "초보만요"라고 아무리 붙여도 실제로 초보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얼마 전엔 오랜만에 고딩 동창을 만나서 PC방에서 몇 판 땡겨 봤다.
스마트폰 덕분에 단순 인터넷 서핑용으로 PC방을 이용할 일은 전혀에 가깝게 없어졌고 게임마저도 모바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지만..
자그마한 스마트폰이 헤비 게임 매니아들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PC방이 아무리 코너에 몰린 산업이라고 해도 당장 몽땅 싸그리 폐업할 지경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확실하게 느낀 건 스타를 하는 사람들의 평균적인 수준이 옛날과는 달라졌다는 것이다.
무한/유즈맵이나 찾아 하는 초딩 따위는 없으며, 아저씨들 실력은 다들 왕창 상향평준화했다고 봐야 한다. 하긴, 아직도 리니지 1이나 퀘이크 아레나를 하는 사람도 있다니까 뭐..

본인의 대학 학부 시절엔 나보다도 못하는 사람, 황당무계한 플레이를 하는 애들도 종종 보였다. 팀플도 이만치 하면 나 같은 하수가 꼽사리로 껴도 승리도 종종 하곤 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_=;; 만나는 상대방마다 단위 시간당 모으는 자원, 뽑아내는 유닛이 장난이 아니다.

저글링이나 질럿 같은 밀리 유닛은 뭉치는 컨트롤도 꽤 잘한다. 그냥 어설프게 어택 땅만 했다가는 대등한 유닛 수로도 몰살 당한다는 교훈을 뒤늦게 얻었다. -_-;; 에휴...
스타를 잘하려면 크게 다음과 같은 네 분야에 충실해야 할 것 같다. 운전으로 치면 집중, 방향 감각, 비상 대처 요령처럼 제각기 서로 다른 분야이다. 허나, 말은 쉬워도 실제로 지키기는 어렵다.

  • 제일 기본적인 구도는: 일꾼을 꾸준히 많이 뽑아서 자원 왕창 모으고, 그 자원으로 물량 왕창 뽑아서 힘싸움을 한다.
  • 그러기 위해: 자원이 너무 남거나 모자라지 않게 하고, 서플라이 병목이 발생하지 않게 관리한다.
  • 장기적인 전략: 수시로 적진 정찰해서 무슨 테크나 전략으로 대응할지도 판단 잘한다. 그리고 말라죽지 않으려면 멀티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 마이크로 컨트롤: 전투 중일 땐 세세한 유닛들 컨트롤도 잘해 주고..;; 전장에서의 컨트롤과 본진에서의 컨트롤을 멀티태스킹으로 해야 한다. (전투 중에도 계속 유닛 뽑는 것 잊지 말 것)

스타(1998)는 실시간 전략 시뮬 분야에서, 퀘이크 3 아레나(99~2000)는 FPS 분야에서 세기말을 장식한 정말 불멸의 명작이었다. 너무 완성도가 높게 잘 만들어졌고, 후속 작품까지 팀킬할 정도로 너무 장수했다.

특히 아직까지 퀘이크 투기장을 어슬렁거리는 애들은.. 정말 인간이길 포기한 괴수들이라고 그 악명을 익히 들었다.
초짜가 한 명 들어왔다가는 그냥 눈 깜짝할 사이에 죽는다. 레일건 같은 즉발 무기는 당연히 초정밀 원샷 원킬이며, 로켓 런처나 심지어 수류탄 같은 비선형 무기까지 남이 움직이는 궤적까지 예측하면서 다 맞힌다. 거기에다 이동 속도는 그냥 축지법 쓰는 수준. 아무리 death cam 기능이 있어도 누가 날 죽였는지 확인조차 어렵다.

그러니 초짜는 질려서 다 떨어져나가고, 고수들만 남아서 평균 실력은 더욱 상향평준화하니 난이도는 더욱 헬인 매니아 게임이 돼 간다고.
스타도 장수한 만큼 그런 경지에 도달한 지 오래다. 오늘은 스타를 하면서 오랜만에 든 생각을 더 끄적여 보겠다.

.1.
스타크래프트에서 각 종족별로 건물을 짓는 걸 보면 잘 알다시피...
프로토스는 프로브가 워프 게이트만 만들어서 건물이 알아서 소환되게 하며, 테란은 SCV가 손수 건물을 짓는다. 그리고 저그는 드론이 자기 몸을 직접 건물로 변이시킨다.
지구상의 동물 중에도 비버처럼 재료를 물고 와서 SCV 스타일로 건축을 하는 동물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저그에서 반영이 되지 않았다. 덕분에 morph 이런 말을 난 언어학에서 접하기 전에 스타에서 먼저 접했다.

스타 3종족의 빌드 형태를 프로그래밍에다 비유하면.. 프로토스는 작업이 비동기적이다. 함수를 호출해서 작업을 요청하면 그 작업은 별도의 스레드에서 백그라운드로 돌며, 그 상태로 함수 실행이 즉시 끝나고 되돌아온다.
Windows에서는 CreateProcess, TerminateProcess 같은 프로세스 관련 요청들이 대체로 비동기적이며, Windows RT 환경에서는 상당수의 작업들이 동작 형태가 비동기적으로 바뀌었다. 동기화를 위해서는 특수한 언어 문법을 동원해야 할 정도가 됐고.

테란이야, 함수를 호출하면 그 작업이 다 끝난 뒤에 함수 실행이 끝나고 제어가 되돌아오는 가장 일반적(순차적, 동기적)인 형태이고..
저그는 마치 Windows에서 배치 파일을 이용해 실행 중인 자기 파일을 제거하는 것처럼.. 작업 요청을 외부에다 해 놓은 뒤 자기 자신을 신속히 종료해야 다음 작업이 진행되는 형태이다.
성경에도 유언은 유언을 남긴 사람이 죽은 뒤에야 효력을 발휘한다는 말이 있는데(히 9:16), 그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2.
그나저나 이것도 종족별 컨셉인지는 모르겠는데, 프로토스는 건물이 완성되어도 어떤 형태로든 알림이 원래 전혀 없었구나. 지금까지 이걸 한 번도 따져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테란이야 미니맵으로도 위치가 하이라이트되고 SCV가 "Job finished!"라고 맵 전역에서 우렁차게 복창을 하기 때문에, 화면 어디를 보고 있건 건물 완성 이벤트를 모를 수가 없다.
저그는 맵 전역에서 들리는 소리는 없지만 그래도 미니맵으로 위치 하이라이트는 해 준다. 프로토스만 완전 나몰라라이다. 건물이 소환되고 있는 곳을 눈여겨보고 있어야 한다.

3.
프로토스는 건물과 유닛을 현장에서 생산하는 게 아니라 워프 게이트를 열어서 고향 행성으로부터 소환하는 것으로 설정돼 있다. 심지어 지상 유닛들은 죽는 것도 죽는 게 아니라 치명상을 입을 뿐이고, 그 즉시 고향 행성으로 소환돼 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질럿과 템플러는 죽더라도 테란· 저그의 지상 유닛과는 달리 피를 흘리는 시체가 남지 않는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단지 사라질 뿐"이라는 맥아더 장군의 연설처럼 되는 설정인 셈이다. (단, 드라군의 최후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자..;;)

그리고 프로토스도 모든 유닛이 소환은 아니다. 생명체가 전혀 들어있지 않은 몇몇 '로봇 유닛'은 현장에서 생산한다. 넥서스에서 생산하는 일꾼 프로브, 그리고 로보틱스 퍼실리티의 유닛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얘들은 프로토스라 해도 생산 중일 때 opening warp gate가 아니라 buliding이라는 말이 뜨며, 프로브와 리버는 죽을 때 그냥 폭발하며 터지지 연기처럼 사라지는 효과는 없다. 또한 퀸의 브루들링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4.
스타에서 모든 종족의 건물들은 파괴되고 나면 잔해가 지면에 한동안 남아 있는다. 테란의 건물들도 공중에 뜬 상태에서 공격을 받아 터진 게 아니라면 잔해가 남아 있다.
그러나 프로토스는 건물 중에 파일런과 '실드 배터리'는 예외적으로 잔해가 남지 않고 그냥 펑~ 터져 없어진다. 파일런이야 성격이 좀 특이한 건물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왜 실드 배터리도 잔해가 남지 않는 걸까?

링크로 소개하는 이 동영상은 프로토스가 테란을 상대로 매너 파일런으로도 모자라서 적진에다가 실드 배터리까지 박은 플레이 영상이다. 그래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 질럿이 아군 기지가 아니라 적진 한복판에서 실드를 보충까지 하면서 SCV와 마린을 때려잡는다. -_-;;;

물론 파일런과 실드 배터리는 곧 파괴된다. 그런데 이들은 아무 잔해를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사라진다는 걸 알 수 있다. 비슷한 방어 건물인 포톤 캐논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신기한 일이다.

5.
건물에 "나 생산/업그레이드 중이요!" 상태를 거짓말 전혀 못 하고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종족은 테란이다. 모든 생산· 연구 건물들은 동작 중일 때 불빛이 반짝거리고 기계가 돌아가는 게 보인다.
저그는 알을 부화하고 있는 것이야 다 보이지만, 업그레이드 건물들은 연구 중인 게 티가 잘 안 나는 편이다. 단, 스파이어는 업그레이드 중일 때 꼭대기의 지붕 부분이 뭔가 돌아가는 것 같던데.

프로토스는 일단 생산 건물인 게이트웨이(지상 유닛)와 로보틱스 퍼실리티는 생산 중인 티가 전혀 나지 않는다. 생산 건물이 이렇게 조용한 경우는 세 종족 중 프로토스가 유일하다. 단, 프로토스도 넥서스(일꾼)와 스타게이트(공중 유닛)는 생산 중일 때 불빛이 반짝거린다. 연구 건물의 경우, 일반 업그레이드를 담당하는 포지와 사이버네틱스 코어는 상태가 보이지만 나머지 건물들은 조용한 듯(시타델 오브 아둔, 템플러 아카이브, 플릿 비콘 등).

6.
골리앗은 카론 부스터(대공 사거리 증가) 업그레이드를 하고 나면 사거리만 느는 게 아니라 미사일의 비주얼 이펙트 자체가 바뀌는구나!
우와, 지금까지 꿈에도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정말 놀랍다.
어떤 형태로든 사거리 업그레이드가 있는 유닛은 각 종족마다 하나씩 마린, 히드라, 드래군 정도가 있고 골리앗은 브루드워에서 좀 특이한 형태의 업그레이드가 추가된 경우이다. 대공에 한해 사거리가 +1 정도가 아니라 무려 +3으로 크게 늘어나는 것이니 비주얼이 같이 바뀔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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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옛날에는 드론이라고 하면 6드론/9드론 저글링 이런 게 먼저 떠올랐는데, 세월이 흘러 요즘은 드론이 소형 무인기를 뜻하는 용도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5/11/22 08:31 2015/11/22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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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문서를 처리하는 기계의 역사를 살펴보면 기계식 타자기가 발명된 뒤 나중에는 전자식 타자기가 만들어지고, 그게 더 나중에는 컴퓨터가 달린 휴대용 워드 프로세서 기기 형태로 발전했다.

그 뒤 특정 장치에 구애받지 않고 범용 컴퓨터에서 동작하는 워드 프로세서 소프트웨어도 개발되긴 했지만 이 역시 특정 컴퓨터 내지 프린터 번들의 성격이 강했다. 아무래도 워드 문서의 최종 목적지는 인쇄였던지라 프린터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윤곽선 글꼴이 없었으니 글꼴부터가 애초부터 프린터의 해상도에 따라 도트판/레이저판으로 나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척박한 여건에서 옛날 도스 시절에 '한글'을 처리할 수 있는 워드 프로세서가 몇몇 컴퓨터 선구자들에 의해 개발되었다. 그래픽 모드에서 실행되었던 도스용 한글 워드 프로세서로 제대로 살아남은 건 아래아한글밖에 없다.
관공서에서 많이 쓰였던 '하나' 내지, 삼보 컴퓨터 번들로 제공되었던 '보석글'(엄밀히 말하면 순수 국산 프로그램은 아님)은 그래픽 기반이 아니었기 때문에 편집 중에 각종 속성들은 태그 부호로 표시되었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0.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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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까지 금성이 아닌 LG 소프트웨어라는 브랜드로도 생각보다 오랫동안 개발됐다. 95년이면 아래아한글은 이미 Windows용까지 나왔을 정도였으니 시대에 너무 뒤쳐지긴 했다. 물론 금성/LG 소프트웨어에서도 그 시기에 다른 팀을 꾸려서 Windows용 '윈워드'라는 제품을 개발했으며 이걸 2.0까지도 만들긴 했지만... 더 오래는 못 갔다.

‘하나’도 아래아한글처럼 문서 확장자가 hwp였다. 하지만 둘은 동일한 포맷은 물론 아니었다. 아래아한글이 하나 문서를 읽거나 쓰는 건 ‘공용(공통) 파일’이라는 이름으로 최소한 아래아한글 2.5나 3.0 등 도스용 에디션의 막바지 시절에야 추가됐다. 자기 hwp와 구분을 위해 확장자는 일부러 kwp라고 했다.

하나와 아래아한글 모두 관공서에서 사랑받은 프로그램답지 않게 한때 보안이 좀 허술했다. 하나의 경우 암호를 걸어서 저장해도 암호가 문서 파일의 헤더에 평문으로 버젓이 저장되었는지 군대에서 이렇게 암호를 뚝딱 풀어서 중대의 영웅으로 추앙받았다는 분의 무용담이 전해진다.

한편, 1994년경엔 아래아한글 2.1 (2.1과 2.5 공용) 파일 포맷의 암호도 어느 서울대 출신의 천재 해커에 의해 뚫려서 화제가 됐는데..
이건 이적행위 증거를 찾으려고 지금의 국정원, 당시의 안기부에서 작정을 하고 해커를 고용해서 뚫은 것이었다고 한다. 개발사인 한컴이 이적행위를 했다는 건 물론 아니고, 사용자 중에 불온문서를 만든 사람이 있었다는 뜻.
단순한 오덕질이나 사적 이익 때문이 아니었다는 점이, 그리고 또한 단순히 한 특정 문서의 암호만 brute force 방식으로 대입해서 알아낸 게 아니라 전반적인 암호화 알고리즘 자체를 파악하고 예측하는 데 성공해 버렸다는 점이 무척 놀랍다.

그 당시 한컴은 2의 32승 운운하면서 “암호를 걸었던 사람이 암호를 잊어버리면 우리조차도 암호를 풀 수 없다. 암호를 뚫으려면 130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언론 보도까지 내면서 아주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3.0 버전에서는 즉시 암호화 알고리즘을 변경해야 했다.

그럼 다음부터는 자체한글 '그래픽' 모드에서 실행된 프로그램 얘기를 하겠다.
본인은 오래 전에 윤곽선 글꼴로 한글을 찍는 기능이 어떤 형태로든 있었던 도스용 프로그램을 주목하여 몇 가지 예를 든 적이 있다.
아래아한글 2.x를 제외하면 그래픽 에디터 내지 배너 프로그램이 걸려들곤 했는데, 그것들 말고 아래아한글과 비슷한 급의 상업용 워드 프로세서로는 다음 두 프로그램이 있다. 단, 본인은 어렸을 때 이들 프로그램을 직접 써 보지는 못했다.

1. 사임당

난 10여 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5만원권 지폐를 신권 형태로 첫 발행했을 때 이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지폐에 들어간 모델 때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써 본 적도 없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그렇게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임당은 윤곽선 글꼴, 위지윅, 컬러 지원, 그래픽 처리 등의 기술적인 면에서는 아래아한글 2.x 초반대 버전보다 더 뛰어나면 뛰어나지 절대로 못하지는 않았던 매우 우수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런 기능들은 따지고 보면 오히려 아래아한글이 도입 타이밍이 더 늦거나 전문용에만 오랫동안 봉인돼 있었다. GUI만 봐도 뭔가 비범한 구석이 느껴지지 않는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기 '무른연모'라는 글자를 보아하니 휴먼샘체/팸체(안상수체는 아님) 같은 한글 가변폭 글꼴도 잘 지원하고 있었다.
사임당은 분명 시대를 앞서갔던 프로그램이었지만, 위키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비싼 가격과 강경한 복제 방지 정책 때문에 그리 많이 보급은 못 됐으며 아래아한글을 실질적으로 위협하지 못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사임당의 개발사인 한컴퓨터 연구소/주식회사도 오늘날의 한글과컴퓨터 못지않은 워드 프로세서 개발 전문 기업이었다. 예전부터 사임당의 전신인 '한글 2000'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사임당 말고도 저가 보급형 프로그램인 '쪽박사, 글박사' 같은 프로그램을 따로 개발했다. 글박사의 경우 본인도 초딩 시절에 컴퓨터 잡지에 소개된 걸 본 기억이 있다. 무려 1992년에! 하지만 이 역시 실물을 직접 써 보지는 못했다.

사임당, 글박사 등의 스크린샷을 보면 저기서 만든 워드 프로세서들은 전통적으로 세로획도 1픽셀인 고딕 계열 글꼴을 UI 표시용 한글 글꼴로 써 왔다. 세로획이 2픽셀인 명조 계열 글꼴을 사용한 아래아한글과는 대조적이다.

2. 21세기 워드

아래아한글과 사임당으로도 모자라서 도스에서 한글 윤곽선 글꼴을 지원했던 그래픽 워드 프로세서가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금은 알집과 카발(온라인 게임)로 유명한 그 회사가 먼 옛날 초창기에 만들었던 제품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본인은 실물을 써 보지는 못했지만 컴퓨터 잡지에서 광고를 한 건 봤다. 글꼴을 가지고 대놓고 아래아한글을 디스하고 있었다.
모 제품은 가격이 8만 8천원이나 하는데도 글꼴이 꼴랑 다 깨지는 비트맵 명조로밖에 안 나오는 반면,
우리 21세기 워드는 그거 거의 반값으로도 아주 미려한 윤곽선 글꼴 신명조가 나온다고...;;

디스 당한 모 제품은 뭔지 직접적으로 언급은 안 돼 있지만, 누가 봐도 아래아한글 2.0이던가 2.1의 일반용인 건 뻔한 노릇이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아래아한글도 2.5 버전에 와서야 일반용/전문용 구분을 없애고 16비트 컴퓨터에서도 컬러와 윤곽선 글꼴을 실현시켰지만.. 때가 좀 늦은 조치였다.

21세기 워드는 글자 크기 조절과 윤곽선 글꼴을 빼면 나머지 워드로서의 기능은 아래아한글 1.5x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화면을 딱 봐도 색상이나 글꼴은 아래아한글 1.5x를 대놓고 오마주한 것 같지 않은가? ㅎㅎ
단, 한글의 비트맵 글꼴 명조체는 아래아한글 1.5x가 사용하던 그 명조와는 다르다. 아래아한글은 custom 3차원 조합 테이블을 사용한 약간 더 정교한 글꼴인 반면, 21세기는 그냥 그 당시에 널리 통용되던 초중종 8*4*4벌 도깨비 조합 규칙으로 구현된 명조이다.

어떻게 아냐고? 다 방법이 있다.
도깨비 조합형은 세로줄형 모음에서 받침 ㄴ일 때와 이외의 다른 모음일 때의 구분이 없다. 그래서 '편'(집)일 때와 (입)'력'일 때 ㅕ가 길이가 똑같아서 받침 ㄴ일 때 아래 공간이 약간 허해 보인다.
그 반면, 지금 <날개셋> 편집기의 '바탕'으로 채용돼 있는 아래아한글의 명조는 받침 ㄴ일 때 세로 모음들이 딱 1픽셀 더 길어서 아주 조금 더 균형이 잡혀 보인다. 이런 작은 차이가 존재한다.

사소한 글꼴 디테일 얘기는 그렇고.
그 당시 이스트소프트는 파릇파릇한 공대생 몇 명이 갓 창업한 벤처/스타트업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에 기술과 영업 역량에 한계가 있었다. 물론 그 여건에서 천재 프로그래머 몇 명이 이 정도를 뚝딱 만든 건 정말 대단한 일인 건 맞지만, 그런 몇 가지 차별화 요소만 갖고 아래아한글이라는 기득권 아성을 무너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21세기 워드는 사임당 정도의 엘리트주의로 간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렇게 망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걸 계기로 이스트의 창립자분은 뭔가 깨달은 게 있었는지, "그냥 기술적으로 뛰어나기만 한 제품"이 아니라 "사용자에게 잘 어필되고 실질적으로 팔리는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실용주의 노선으로 생각을 급선회하게 됐다고 한다. 하긴, 에디슨도 처음엔 자기 오덕질대로만 외곬스러운 발명을 하다가 나중에야 그렇게 깨닫는 계기가 있었다고 들었다.

21세기 워드를 만들었던 회사는 그로부터 6, 7년쯤 뒤 21세기가 실제로 임박하자, 이번엔 '새 폴더'를 비롯해 아주 익살스러운 외형의 압축 프로그램을 무료로 뿌리면서 컴백했다. 본인은 2000년 말, 알집을 4.8대 버전 때 처음으로 접했다. 그런 식으로 잘나갈 수도 있었고 "개인에게만 무료, 기업은 유료" 정책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는데.. 프로그램이 압축 본연의 기능이 탄탄하지 않다는 나쁜 소문이 2000년대 초중반에 워낙 퍼지면서 안 쓰게 됐고.. 지금은 빵집을 거쳐서 반디집이 국민 압축 프로그램 타이틀을 물려받았다. 빵집은 퀄리티가 나쁘지는 않았으나 보다시피 개발이 중단됐으니 말이다.

워드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딴 얘기가 길어졌네.
아무튼, 저 두 프로그램들은 아래아한글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로부터 20여 년 뒤, 도스가 아닌 Windows 얘기이긴 하지만 지난 2014년 가을엔 삼성조차 1992년 이래로 개발돼 왔던 훈민정음을 완전히 포기하고 MS 워드로 복귀를 선언했다. 훈민정음은 처음부터 Windows용으로 개발됐고, 버전 4.5 시절엔 마치 Visual Basic 4처럼 16비트용과 32비트용이 동시에 따로 출시된 탄탄한 제품이기도 했는데 말이다.

훈민정음이 GG를 쳤는데 그럼 아래아한글은? 지금까지 쌓인 인프라가 워낙 많고, 또 아래아한글과 워드는 내부 구조가 서로 너무 다르다 보니 사용자가 하루아침에 전멸하고 쫄딱 망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갈라파고스화' 알박기 덕분에 겨우 연명하고 있는 비중도 크며, 학교· 군대· 관공서가 아닌 사기업에서 HWP의 입지는 이미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젠 워드, 엑셀 같은 너무 흔한 필수 프로그램은 그냥 다 공짜로 뿌리는 거나 다름없는 세상이 되기도 했고.
그러니 이스트도 결국은 돈 되는 건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진작부터 과감하게 카발을 개발한 것 같다. 이 컴퓨터 소프트웨어 업계가 앞으로 어찌 되려나 참 눈 돌아가겠다.

Windows의 개발 역사에 대해서는 현직 마소 고참 개발자인 레이먼드 챈 아저씨가 The Old New Thing이라는 개인 블로그에서 10년이 넘게 오늘날까지도 구수한 입담으로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것처럼 개인적으로는 아래아한글 1.0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몽땅 꿰뚫고 있는 어떤 개발자가 아래아한글 내지 그 시절 경쟁 워드 프로세서들의 역사를 구구절절 회상하는 코너가 좀 있으면 좋겠다. 필기체가 개발된 사연, 1.2 버전에서 테트리스 게임이 개발된 사연, 한컴 2바이트 코드의 제정 경위, 옛날 공 병우 박사와의 인연 등등 얘기가 엄청 많을 것 같은데..!

Posted by 사무엘

2015/10/30 08:34 2015/10/30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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