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호 역시 그렇게 몰락하고 있다.
- 돈 졸라 많이 벌긴 하는데 쓸 일 별로 없다 (사람 접대를 안 하니, 품위 유지비 같은 것도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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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에서 방정식이란, 미지의 변수가 존재하여 이 변수의 값이 무엇이냐에 따라 성립 여부가 달라지는 등식을 말한다.
사실 일차방정식.. 즉, 미지수에 대해서 잘 해 봤자 상수배의 곱만 존재하는 간단한 방정식만 해도 인간의 지적 수준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 가령, "아날로그 시계에서 5시와 6시 사이에 긴 바늘과 짧은 바늘이 겹치거나 직각이 되는 시각은?" 같은 것도 일차방정식으로 풀어 낼 수 있으며,
마음속으로 어떤 수를 생각해서 뭘 곱하고 뭘 했는데 언제나 무슨 수가 딱 떨어지게 나오는 것은 마술이나 독심술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구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는 말이다. 놀랍지 않은가?
그리고 차수는 일차인데 변수가 여러 개인 경우가 있다. 미지수도 n개이고 식도 n개. 이런 형태의 문제를 푸는 것은 실용적인 가치가 대단히 높기 때문에, 행렬이라는 추상적인 모델로 간단히 표현하여 선형 대수학이라는 별도의 분야까지 수학에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행렬도 굉장한 발견이라고 생각함. 이런 개념을 만듦으로써 어마어마한 양의 문제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식에 미지수 자체의 제곱이 들어있으면 이차방정식으로 방정식의 격이 올라간다. 여기서부터는 제곱근, 인수분해 같은 개념이 등장하고 예전보다 살짝 더 어려워진다. 하지만 2차 정도는 인수분해 뿐만 아니라 일반해를 구하는 근의 공식조차 유도가 가능하다. 이미 수백 년 전에 발견되기도 했고, 그렇게 어렵지 않다.
이공계를 나온 친구라면, 비록 입시 코스를 통과했더라도, 수학 감각 자가유지 테스트 차원에서라도 근의 공식 유도 정도는 이따금씩 해 볼 만하다.
참고로 이차방정식의 양변을 x로 나누면 분수 방정식이 된다. 그래프 모양은 2차 방정식과 완전히 다르지만, 반대로 양변에 x를 곱해서 이차방정식 풀듯 풀면 된다. 단, 풀고 나서는 분모를 0으로 만드는 무연근만 버리면 된다. (수학에서 0으로 나누는 게 용납된다면 "모든 수는 0이다" 같은 궤변도 증명할 수 있고 별별 게 다 가능해진다.) 분수 방정식은 비록 정석적인 형태는 아니지만, 조화평균처럼 나눗셈이 수반되는 곳에 미지수가 있을 때 쓰인다.
2차 방정식보다도 차수가 올라간 3차 이상부터는 일반해를 구하는 공식은 2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과는 비교도 못 할 정도로 살인적으로 복잡해진다. 대학교 수학과 교수라도 안(못) 외운다. ^^ 학교에서 3차 이상의 고차 방정식은 인수분해가 안 되는 이상한 식이 다뤄지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3차 방정식은 2차항을 소거하여 x^3 + p*x + q = 0 형태로 바꾼 후 푼다. 즉, 임의의 3차 방정식은 저 꼴로 본질적인 정보량을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본인의 지인 중엔 손으로 3차 방정식의 일반해 공식을 스스로 유도해 냈다고 자랑하던 녀석이 있었다. 뼛속까지 수학과 물리를 진심으로 벗삼아 즐기는 놈인데, 흠좀무.
4차 방정식 역시 일단 3차항을 소거한 뒤 풀이하는데, 임의의 케이스에 대한 일반해 공식은 3차보다도 더욱 길고 아스트랄하다. 과연 대수학(algebra)의 무서움이다. 그냥 저런 게 있다는 것만 알고 넘어가면 된다. 실용적인 가치는 별로 없으며, 실생활에서 그 정도 방정식을 풀 일이 있으면 그냥 numerical하게 근사해를 사용해도 아무 지장 없다.
그런데..
문제는 5차 이상부터이다.
수학 쪽으로 조금만 상식이 있는 분이라면 잘 알 것이다.
5차 이상의 방정식은 대수적인 방법으로 해를 구하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P=NP 같은 것처럼 아직 해답을 못 찾은 게 아니라, 원천적으로 절대 존재 불가능하다는 게 증명이 되어 있다.
인수분해가 안 되는 놈이라면 얄짤없이 포기하고 일찌감치 numerical 근사해로 만족하라는 뜻.
왜... 왜 없는 것일까? 그것도 왜 하필 5차부터?
2차부터 4차까지 일반해를 대수적으로 구하는 근의 공식을 살펴보면
비록 말도 못 하게 복잡하더라도 그 연산 자체는 평이하며 우리의 이해가 가능한 수준이다. 식의 계수에 대해서 적당하게 사칙 연산 씌우고, 거듭 제곱하거나 (거듭) 제곱근을 구하는 작업을 유한 번 적용해 주면 답이 나온다. 즉, 이들 방정식의 해는 대수적 연산이라는 언어로 기술이 가능하다. (좀 전산학적인 개념이 들어가는군..)
그런데 5차 이상의 방정식은 해 자체가 그런 대수적인 방법으로 얻을 수 없는 수에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냄으로써,
일반해 공식이 원천적으로 존재할 수 없음을 증명한 것이다.
아니, 사실은 저것도 직접적인 증명이 아니라, 5차 방정식의 일반해를 대수적인 방법으로 기술했을 때 모순이 생긴다고.. 귀류법을 이용해 증명했다.
헐, 그런 수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수이며 어떤 특성을 가질까? 루트라든가 기존 대수적 조작을 통해서 특성을 기술할 수 없는 수?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초월수도 아니고?? 아마 이런 수는 별 특성이 없고 의미가 없다 보니 그렇게 연구가 잘 안 돼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왜 하필 5차부터 그런 경우가 생기는 걸까? 잘 모르겠다. 그런 걸 알면 내가 이 자리에 안 있지.. ㅋㅋㅋ
※ 외전: 방정식 연구자들의 말로
3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최초로 찾아낸 사람은 타르탈리아라는 수학자이다(16세기 사람). 그는 이 사실을 절대로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는 조건을 걸고 카르다노라는 의사 겸 수학자에게 해법을 전수해 줬는데... 제자인지 라이벌이지 뭐 어떤 사이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이 카르다노라는 양반, 아예 책을 써서 해법을 공개적으로 발설하는 것도 모자라서, 그걸 자기 이름으로 떠벌리면서 3차 방정식의 해법의 발견자로 '카르다노'라는 이름을 학계에 당당히 올려 버렸다.
타르탈리아로서는 "저런 쌍노무 새퀴, 인간말종 호로자식을 봤나!" 정말 이성을 잃을 정도로 노발대발하고 카르다노를 향해 매일 축시의 저주를 거행했을 것이다. -_-;; 그것 때문이었을까? 카르다노는 아들이 어머니(=카르다노의 아내)를 살해하고 그 죄에 대한 벌로 아들도 덩달아 처형 당하는 가정 팀킬-_-을 겪었다. 그 역시 도박에 빠져 가난하게 지냈으며, 나중엔 죽는 날짜를 예고한 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하긴, 타르탈리아도 그 천재성에 비해 가난하고 어린 시절이 불우했으며 후천성 장애를 얻어 말더듬이였으니 더욱 안습.
4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은 카르다노의 제자이고 사실상 그의 양자였을 거라고 추정되는 로도비코 페라리가 최초로 발견했다. 이쪽은 다 16세기 이탈리아 라인이구나. 그런데 그 역시 술과 도박에 빠져 지내다 손가락 장애를 얻고 나중엔 무려 애인 또는 여동생으로 추정되는 여인에게 독살 당했다. -_-;;
그리고 끝으로, 5차 이상의 방정식에 대한 연구는 19세기에 와서야 잘 알다시피 갈루아와 아벨이라는 두 천재 덕후 수학자가 확실하게 종지부를 찍었다. 수학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들이 얼마나 불운한 천재였는지 알 것이다.
닐스 헨릭 아벨(노르웨이)은 5차 이상의 방정식은 대수적으로 풀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최초로 증명하고 이외에도 여러 분야에 탁월한 논문을 남겼다. 그 분야 중 하나는 타원 함수는 아마 20세기 말에 와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는 데도 쓰인 이론인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는... 너무 천재여서 능력을 인정을 못 받은 채, 가난에 찌들고 살다가 26세의 나이로 결핵과 영양실조로 인해 사실상 굶어 죽었다... ㅎㄷㄷㄷㄷㄷ 그가 죽고 나서 이틀 뒤에, 드디어 베를린 대학 교수로 임용됐다는 편지가 도착했으니, 지못미 아벨. ㅠ.ㅠ
갈루아(프랑스)는?? 아벨보다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는 않은 덕후였다. 불세출의 논문을 하나 쓴 게 프랑스 과학원의 병신 같은 실수로 인해 분실되어 심사도 제대로 못 받았고, 겨우 21세의 나이로 치정 문제에 연루되어 권총 결투 중에 목숨을 잃었다...;;;
죽기 전날 유언장처럼 쓴 노트가 후대의 수학자들을 놀라게 한 논문이 되었다. 그는 아벨과는 다른 방법으로 5차 방정식의 대수적 풀이 불가능성을 증명하고 더 나아가 n차 방정식의 대수적 풀이 가능 조건을 논하면서 군론(group)이라는 분야를 개척했다. 군 이론에 기초한 방정식의 갈루아 이론은 완전히 이해되는 데만 7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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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서울 지하철 5, 9호선; 공항 철도) 김포공항 역은 여러 건물로 이루어진 김포 공항 단지(complex? ㅋㅋ)의 딱 중앙에 자리잡아 있다.
내부엔 자연 채광이 들어오는 로터리가 하나 있는데 그 로터리의 남쪽은 국내선 청사 방면이요, 북쪽은 국제선 청사 방면이다.
그리고 서쪽은 한국 공항 공사 본사 방면이고 동쪽으로 가면 9호선과 공항 철도 공용 승강장이 나온다.
하지만 인천 공항 개항 전에는 지금의 한국 공항 공사 건물이 국내선 청사였고, 지금의 국내선과 국제선 청사는 각각 국제선 1청사와 2청사였다고 한다. 인천 공항에 비해 지금 김포 공항은 정말 규모가 작음을 알 수 있다. 있던 건물도 각종 상업 시설로 개조를 많이 했기 때문이리라. 비록 공간에 한계를 느껴서 인천 공항을 더 만들게 됐지만, 김포 공항도 왕년에 한 나라의 허브 공항 역할을 할 정도였으니 원래 작은 크기는 결코 아니다.
전철이 있는 로터리는 5호선의 뒷쪽(상일동· 마천 방면)에 치우쳐 있는 편이기 때문에, 서울 도심에서 5호선을 타고 김포 공항 국내선을 이용하거나 공항 철도로 여행을 계속하려면(인천 공항 국제선), 진행 방향 기준 뒷칸을 타는 게 환승에 유리하다. 하지만 흔치는 않은 경우이지만 김포 공항 국제선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앞칸을 타는 게 유리하다.
5호선과 9-공철 승강장은 서로 L자형으로 교차하며, 둘의 고저 차이가 무척 크기 때문에 환승 거리는 약간 긴 편이다. 5호선은 김포 공항을 경유하기 위해서 심한 드리프트를 한 후, 방화 방면으로 북쪽으로 향하게 된다. 마치 월드컵 경기장을 경유하기 위해 드리프트가 생긴 6호선과 비슷한 맥락이라 하겠다.
그 반면 9호선과 공철은 수평을 향하고 있으며 잘 안다시피 평면 환승에다 직결 운행까지 예정되어 있다. 2기 지하철에는 전혀 없고 1기 지하철인 1, 3, 4호선에서나 볼 수 있던 직· 교류 겸용 전동차를 9호선에서 보는 날이 과연 올까?
전철역 환승 로터리에서 국내선이든 국제선이든 공항 여객 터미널까지는 여전히 250~300미터 가까이 긴 통로를 통과해야 한다. 사실 어느 정도 되는 규모의 공항에서, 국내선과 국제선 청사는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까지는 안 되더라도 버스 한 정거장 정도 거리는 된다. 여기는 무빙워크가 진작부터 존재해 왔다. (종로3가 역 무빙워크보다 훨씬 더 일찍) 물론 인천 공항도 전철역에서 터미널까지 거리가 꽤 길기 때문에 무빙워크가 중간 통로에 있다.
각종 표지판들은 인천 공항은 잘 알다시피 군청색 바탕의 전속 서체를 쓰고 있는 반면
김포 공항은 짙은 고동색 바탕의 맑은 고딕 서체를 쓴다.
무선 인터넷은 인천과 김포 모두 잘 되는 것을 확인했다. 인천은 네이버가 제공했는데 김포는 알 수 없는 이름이 뜬다.
인천 공항은 지하 1층 로비(환전과 로밍 시설), 1층 도착장, 2층 항공사 사무실, 3층 항공사별 탑승 수속 부스 겸 탑승장으로 딱 나뉜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위로 3층이 내려다보이는 4층에 일부 식당가가 있다.
김포 공항의 구조는 이와는 약간 다르다. 국내선과 국제선 모두 1층 로비 겸 도착장, 2층 항공사 부스이고 2층보다 공간이 좁은 3층에 몇몇 식당들과 더불어 탑승구가 있다.
한편 부산의 김해 공항은 어떻더라? 딱 들어가서 비행기를 탈 때까지 계단을 이용한 기억이 없는데 잘 모르겠다. 공항까지 지하철이 아닌 버스를 탔기 때문에 애초에 위쪽의 탑승층에서 내린 것일 수도 있다.
국내 대부분의 국제공항들은 국내선과 국제선의 비중이 서로 비슷한 수준이다. 그에 반해 인천 공항은 압도적으로 국제선의 비중이 높다. 그렇지만 인천 공항에도 국내선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가령, 대구는 KTX에 밀려 김포 공항 노선은 없어졌지만 하루 단 한 번 인천 공항으로 바로 가는 노선은 있다.
인천 공항 내부의 국내선 이용 통로는 마치 서울 역으로 치면 서울-천안 급행 전동차를 타는 통로처럼 아주 작고 평상시엔 찾기도 쉽지 않은 그런 시설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항공을 포함해 모든 원거리 대중교통들은 탑승 전에 별도의 직원이 승차권/탑승권을 검사하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최소한 철도만은 그런 게 (거의) 없다. 지하철은 아예 기계가 개· 집표를 대신하고 있고 일반열차는 그런 절차가 사실상 완전히 사라졌다. 아마 KTX 정도나 입석· 자유석 승객을 중심으로 하여 승무원이 차내 불시 검문이나 아주 가끔씩 하고 있을 것이다.
김포 공항을 주말에 답사하니 역시 인천만치는 아니어도 북적북적 분주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여행 가는 승객도 많고, 출장이라도 오고 가는지 검은 양복 넥타이 부대 아저씨들도 많이 보였다. 나도 어서 성공하고 돈도 많이 벌어서 KTX도 많이 타고 비행기 많이 타고 다니고 싶다.
Posted by 사무엘
회사 외근 업무 때문에 가끔씩 금천구 가산동 쪽을 방문할 때가 있다. 여기는 내가 다니는 교회하고도 아주 가깝다. 하지만, 정확한 연혁은 모르지만 10,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여기 일대는 다 황량한 ‘공장’이었다고 한다.
여기를 둘러보면서 바로 느낀 게 있었다. 교통수단의 소음 때문에 고생 좀 하겠다는 것. 근처에는 경부선 철길이 지나는데(가산디지털단지-독산) 여기는 KTX와 전동차까지 포함해 전국에서 열차가 가장 자주 드나드는 구간이다. 그런데 딱히 방음벽도 없다. 열차가 정말 시도 때도 없이 관통하고 디젤 기관차 소리는 10수십 층짜리 빌딩 안에서도 아주 선명하게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하나 더, 비행기가 있다. 금천구, 구로구 정도가 되면 김포 공항에 도착하는 비행기들은 굉장한 저공 비행을 하면서 착륙을 준비한다.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여객기가 무려 세 대나 지나는 걸 보기도 했다. 당연히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하긴, 분당도 성남 서울 공항 인근인 편이기 때문에 여객기가 아닌 정체 불명의 비행기가 저공 비행을 하는 걸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빈도가 김포 공항 인근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뭐 기차 소리가 자주 들리면 나야 좋다. ^^ 철길 바로 뒤에 집을 장만하고 싶다.
비행기는 개인적인 생각에 이륙할 때 소리가 굉장히 멋있지만, 순항 중일 때의 소리는 별로이다.
덧.
1. 가산디지털단지(1호선)와 독산은 모두 "폼 | | | | 폼"의 형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둘은 경부선이 2복선화한 최소한 80년대 이후에 개통한 역이라고 언뜻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추측은 절반만 맞다. 독산 역은 신길과 같은 시기인 무려 1998년에 개통한 추가역이 맞으나, 가디단은. 1974년 초기부터 가리봉이라는 이름으로 영업해 왔다고 한다. 그럼 역이 완전히 이설 내지 리모델링을 겪기라도 했다는 말인지 궁금하다.
2. 올해 초에 1호선 경부선 구간에 당정 역이 개통한 데 이어, 조금 있으면 병점 차량 기지 내부에 서동탄 역도 개통한다.
3호선 수서-오금 연장에 이어 올해도 여기저기서 개통 소식을 들리는 게 즐겁다. 다음 달부터는 KTX 2까지 바로 투입된다니!
그나저나 고속철 2단계 구간과 경춘선 전철, 공항 철도 2단계 구간은 과연 올해 안으로 볼 수 있으려나 궁금하다.
3. 안전을 빌미로 재미있는 철도 볼거리가 점점 줄어드는 건 좀 아쉽다. 스크린도어가 일반 지하철 승강장의 촬영 범위를 크게 줄여 놓은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전망 좋기로 소문나 있던 버티고개 역과 옥수 역도 이제 예전의 그런 전망이 아니다.
게다가 화재에 취약하다면서 5호선 신금호와 7호선 가산디지털단지 역 승강장의 암반 인테리어도 철거되었다니 안타까운 소식이다.
Posted by 사무엘
http://xkcd.com/681/
천문 과학에 대한 통찰력과 위트가 두루 엿보이는 정말 탁월한 그림.
지구를 탈출하여 달로 갈 때는 집채만 한 로켓과 어마어마한 양의 연료가 필요하지만, 달에서 지구로 귀환할 때는 아주 작은 비행체만 있어도 되는 이유가 이 그림 한 장으로 명쾌히 설명된다.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기란 그렇게도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
그래서 로켓 부품의 재활용성을 최대화하기 위해 우주 왕복선이란 게 발명되었지만, 요즘 발사되는 우주 왕복선들은 그냥 지구 궤도만 돌다가 돌아온다.
학교에서 배우기를 지구의 탈출 속도는 초속 11.2km라고 한다. 이것은, 지표면에서 공을 초속 11.2km로 던져야만 그 공이 다시는 지구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일 뿐, 공이 자체적으로 추력을 낼 수만 있다면 당연히 그보다 느려도 된다. 이렇게 지구를 탈출했더라도 태양을 탈출할 정도로 빠른 속도를 내지 못한다면 지구를 탈출한 물체는 궁극적으로는 태양을 빙글빙글 돌게 된다.
초속 11.2km만 해도 지표면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이며, 인간이 발명한 동력 기관만으로는 만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 탐사선들은 인근 행성의 중력을 통해서 가속을 받는 방법으로 연료 없이 장시간 비행을 계속한다. 참고로, 보이저 내지 파이어니어 호처럼 태양계 밖으로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는 우주 탐사선들은 주행 속도가 초속 15~20km에 달하고 있다. 그 속도로도 목성형 행성들을 하나씩 통과하는 데 2~3년씩 걸리곤 했다.
지구상의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게 목적인 일반 비행기와는 달리, 로켓은 오로지 위로 뜨는 것만이 목적이므로 비행기처럼 이착륙 따위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다. 항공기에는 내연 기관이 아니라 터보 프롭, 터보 팬, 램 제트 등 여러 가지 방식을 통해 공기로부터 추진력을 얻는 엔진이 존재하나, 지구의 중력을 탈출하여 공기가 없는 곳에서도 날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로켓 방식이 유일하다. 과거에 로켓은 미사일 같은 무기로나 쓰여 왔으나 이 추진력을 지구를 탈출하는 데 써 보자는 생각을 체계적인 학문으로 처음 정립한 사람이 바로 20세기 초의 독일과 소련의 천재 과학자들이었다.
우주 왕복선은 일반적인 항공 역학을 이용하여 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전투기나 여객기 같은 날개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과거 SF 소설의 삽화에는 우주를 나는 비행기(?)에도 아주 폼나는 날개를 그려 놓곤 해 왔다.
끝으로 사진 추가.
http://ko.wikipedia.org/wiki/%ED%8C%8C%EC%9D%BC:Speed_of_light_from_Earth_to_Moon.gif
http://ko.wikipedia.org/wiki/%ED%8C%8C%EC%9D%BC:Mars_Moons_Orbit_distance_flipped.jpeg
화성의 위성과 지구의 달이 얼마나 극과 극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다.
일단 화성 자체가 반지름이 지구의 거의 절반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행성인데, 그 작은 화성을 저렇게 확대하고도 화성의 위성은 먼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실, 화성의 두 위성은 구 모양을 이루지도 못할 정도로, 위성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작은 돌덩어리일 뿐이다. (지름 10~20km대) 공전 주기도 대단히 짧고 화성으로부터 불과 1~2만 km대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참고로 지구의 정지 궤도가 3만 5천 km대이고, 포보스의 궤도는 지구로 치면 중궤도 정도 수준밖에 안 된다.
그 반면 달은? 크기가 그 큰 지구의 무려 1/4에 달하며(지름 약 3500km), 지구와도 무려 38만 km나 떨어져 있고 아주 서서히 지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지구 크기를 저렇게 줄여 놓아도 달도 선명하게 보이는 게 신기하지 않은지? 달은 정말 지구에게 어울리지 않는 인위적이고 비정상적으로 큰 위성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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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곽으로 갈수록 점차 좁아지는 길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길이 점차 좁아진다는 것은 고속도로와 철도 모두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칙임이 틀림없다.
철도 경부선만 해도 서울 시내 구간은 무려 3복선이다. 하지만 구로 이남부터는 2복선으로 줄고 천안 이남부터는 그냥 복선이다. 경부선을 빠져나가 대구선, 경북선 같은 지선으로 들어서면 아예 단선이 된다.
경부 고속도로에서도 이와 같은 양상을 볼 수 있다. 최근에 본 기억으로(2009년 가을) 판교 인근은 정말 드라마틱하게 변하고 있었다. 나들목을 새로 만드는 듯했는데, 이쪽 구간의 어마어마한 차선 수에 기겁을 했다. 최하 10차선은 된 것 같았다. 경부 고속도로는 이미 대부분의 구간이 8차선이어서 굉장히 넓은 축에 드는데, 그런 구간마저 좁게 느껴질 정도였다. 분당 정자동의 서울 톨게이트를 통과하는 순간 다시 예전의 8차선으로 복귀.
여기는 장거리 이동자뿐만 아니라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매일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이다. (경기도 동남쪽은 철도가 없이 아파트만 잔뜩 지어진 지역이어서 교통이 매우 열악하다. 지금 용인-서울 고속도로라든가 중부 고속도로, 그리고 외곽 순환 고속도로 같은 급의 철도는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12차선으로 시작한 고속도로도 수도권을 벗어나면 8차선으로 감소하고 나중에는 경부 고속도로의 원래 형태인 4차선으로 되돌아간다. 호남 고속도로만 해도 아직도 대부분의 구간이 4차선이고, 논산-삼례 구간은 이제야 차선 확장 공사가 한창이다.
그런데 수도권과 지방의 길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결과는, 도로와 철도가 서로 살짝 다르다.
잘 알다시피 철도는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엄청나게 낙후해 있다. 경부선과 호남선 일부 구간만 빼면, 시속 7, 80대로 뚝 떨어진다. 그 대신 이런 지역의 고속도로는 교통량이 별로 없다 보니 차들이 시속 140 이상으로 과속한다. 화물차라든가, 무조건 FM대로 규정 속도를 준수해야 하는 고속버스는 예외이고 승용차들이 그렇다는 뜻이다. 지방으로 갈수록 철도의 경쟁력은 떨어지고 자가용 없이는 못 사는 양상이 짙어진다. 이는 어쩔 수 없는 귀결이다.
그 반면, 경부선 대전 이북으로 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여기는 그렇지 않아도 지형도 평지인 데다, 철도는 호남/전라/장항선이 전부 집결하는 구간이다 보니 마치 서울 지하철 2호선만큼이나 집중적으로 개량 투자를 받아 왔다. 그래서 고속도로가 정체가 시작되는 천안-평택-수원 구간은 오히려 철도가 최고의 선형을 자랑하며, 열차가 물 만난 고기처럼 달리기 시작해 시속 140까지 달린다. 인구가 밀집할수록 철도의 경쟁력은 올라가는 셈이다.
2. 수원
본인은 지금까지 태어나서 수원에는 거의 갈 일이 없었을 뿐더러 가더라도 무조건 철도만 이용했다.
수원은 철도가 발달해 있고 위치상으로도 수도권 편입이기 때문에 서울에서 수원으로는 고속/시외버스 노선이 있을 리가 없고 빨간 광역 버스만 존재한다. 버스 노선은 이미 철도가 들어서 있는 서쪽 대신, 철도가 없는 동쪽 위주로 발달해 있음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매우 아이러니하게도 수원의 버스 터미널들은 대체로 경부선 철길 쪽에 있다. 경부 고속도로 수원 IC는 행정 구역상으로는 수원이 아닌 용인에 있다. 그럼 대전-수원을 드나드는 고속버스는 어느 도로를 이용해서 이동하는지? 철도에 비해서 경쟁력이 있는지 무척 궁금해진다.
대부분의 지방 도시들은 고속도로 진입로가 외곽에 있다 보니 주변에 산과 들밖에 안 보이는 반면, 수원 IC는 고속도로로 들어서는 순간까지도 주변에 온통 건물뿐이다. 여기는 나름대로 폐쇄식으로 요금을 징수하기 때문에 톨게이트까지 있는데도 주변 경치가 그러하니까 무척 이색적으로 보였다.
3. 인천
본인은 수원뿐만 아니라 인천도 자동차로 방문한 경험은 전혀에 가까울 정도로 없었다. 하지만 작년에는 인천 송도 신도시에서 열린 무슨 행사에 참석할 일이 있어서 난생 처음으로 시외버스를 타고 가 봤다. 분당-인천 사이니까 외곽 순환 고속도로와 제2 경인 고속도로 경로가 딱이었다. 청계 TG와 남인천 TG를 거치면서 통행료는 1500원 정도 빠져나갔다. (여기는 수도권이기 때문에 과금 방식이 폐쇄식이 아님)
성남에서 인천으로 가는 버스는 승차권에 좌석 번호가 배당돼 있지 않고(지정석이 아닌 자유석), 심지어 승차권을 끊을 필요조차 없이 시내버스 타듯 교통 카드 결제도 가능했다. 그만큼 단거리에 수요가 많은 노선이라는 뜻인데, 왜 배차 간격은 30분씩이나 되는지 모르겠다. 저런 버스가 약간만 격이 더 낮아지고 싸지면 영락없이 빨간 좌석 광역버스가 되겠다.
버스는 우등-_-은 당연히 전혀 아니고 45인승이었는데, 벌써부터 서서 가는 사람이 생길 정도로 승객이 많았다. 그런 데다가 인천으로 바로 가지 않고 모란 역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승객을 더 태우고 갔는데, 버스는 완전히 콩나물시루 상태가 되었다. 야탑에서 모란을 경유해 가는 건 외곽 순환 고속도로로 치면 인천 방면이 아니라 서울, 남양주 방면으로 거쳤다 가는 것이기 때문에 동선이 좋지 않다. 노선을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4. 분당-수서
서울 동남부를 통과하여 성남 방면으로 가는 자동차 도로로는 외곽 순환 고속도로뿐만이 아니라 분당-수서 고속화 도로라는 아주 걸출한 도로가 있다. 올림픽 대로(강남) 내지 청담 대교(강북)와 합류하여 길 한번 정말 잘 뚫려 있다. 본인이 경험한 이 도로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서울 시내에서는 높은 고가로 달리다가 어느 새부터인가.. 한 야탑, 미금 정도를 지난 뒤부터는 평지로 내려가고, 그 이남부터는 지하도가 굉장히 자주 나오면서 기존 도로들과 입체 교차를 한다. 도로 형태가 무척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처음에는 외곽 순환 고속도로와 나란히 달리다가 정자쯤 와서부터는 경부 고속도로와 나란히 달린다. (지도를 보면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될 것임)
- 달리면서 저 너머로 모란(8호선), 수서(3호선) 차량 기지 구경도 할 수 있다. 전동차 차량 기지를 구경할 수 있는 고속도로로는 인천 공항 고속도로(130)의 88IC 인근(5호선 방화), 그리고 외곽 순환 고속도로(100)의 강일 IC 인근(5호선 고덕)이 더 있다.
Posted by 사무엘
Posted by 사무엘
※ 정지 사진
사진술이란, 화학 물질을 잘 이용하여 빛의 강약을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어떤 영상을 보존하려는 기법이다.
최초의 흑백 사진이라 흔히 알려져 있는 것은 1825년 프랑스의 조제프 니세포어 니엡스라는 사람이 남겼는데, 노출 시간이 무려 8시간에 달해서 태양이 한 나절 동안 만들어 낸 그림자가 모두 사진에 담길 정도였다.
19세기 중반에 유럽에서는 이미 흑백 사진 기술은 사실상 안정화가 되었다.
그러나 흑백으로 만족하지 않고 천재 물리학자인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빛이 RGB 세 축으로 분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낸 후 1861년, 최초의 컬러 사진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물론 지금처럼 쉽게 한 방으로 찰칵 찍은 게 아니라, 색깔 축별로 사진을 세 장 찍어서 정교하게 합성하여 만든 것이므로 방법이 쉽지는 않다. 그 전에는 흑백 사진에다가 수작업으로 색을 입히는 작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2차 세계 대전은 물론이고 1차 세계 대전과 1900년대 초를 찍은 컬러 사진도 "존재"는 한다. 단지 실용화가 안 됐을 뿐이지. 컬러 사진 기술 자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일찍 등장했다. 한국에서는 6· 25 사진조차도 컬러를 보기가 쉽지 않으나, 서양인이 구한말 1900년대 초에 서울 모습을 찍은 컬러 사진도 극소수 전해 내려오는 게 있다. 컬러 사진은 1920년대에 코닥 사에서 컬러 필름을 대량 생산하면서부터 보편화되었다.
※ 영화
기술적 토대는 19세기 말에 마련되어서 정말 초라한 흑백 무성 영화로 시작했다. 찰리 채플린 같은...=_=
그때 영화는 진짜 말 그대로 환등기 같은 걸로 틀어 주는 움직이는 그림일 뿐이었으며, 음악을 따로 곁들이거나 내레이터가 중간 중간 라이브로 설명을 해 줬다.
여기에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 기술이 결합하여 동영상에 소리까지 첨가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이다. 단순히 움직이기만 하던 그림이 말하는 그림으로까지 발전했다.
그 후 한동안 흑백 영화 전성기가 이어지다가 컬러 영화는 2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1940~50년대부터 차츰차츰 등장하기 시작했다. 십계(1956), 벤허(1959)가 그 초창기의 컬러 영화이며, 심지어 우리나라 6· 25 직후의 참상도 누가 컬러로 찍어 놓은 희귀 영상 기록이 남아 있다.
※ 텔레비전
비록 화질이 영화보다는 못하지만, 동영상과 소리를 전기 신호로 바꿔서 장거리로 송수신하는 방식이니, 기술적 난이도는 가장 높다고 볼 수 있다. 그 원리는 1920~30년대에 완성되고 실용화됐다. 발명자의 이름을 따서 음극선관(CRT)의 이름을 브라운관이라고도 일컫는다.
미국에서 1931년에 시험 방송이 시작되고 영국에서 1937년, 세계 최초의 TV 방송국인 BBC가 개국했다. 한국에서는 1956년이 돼서야 TV 방송이 첫 시작했다(물론 다 흑백). 즉, 일제 강점기 때엔 우리나라에 TV가 없었고, 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지고 있다는 방송은 다 라디오를 통해서나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컬러 TV는 은근히 등장이 늦었다. 기술 개발이 성공한 건 1950년대이지만, 미국에서도 가격 장벽이 낮아지고 본격적으로 보급된 건 60년대가 돼서였다. 그래도 달 착륙 동영상을 흑백이 아닌 천연색으로 볼 수 있게 된 건 정말 천만 다행이다. 70년대 중후반부터 흑백은 이미 골동품 내지 휴대용 초소형 TV용으로나 전락했다.
우리나라는 잘 알다시피 5공 시절인 1980년대 초반이 돼서야 컬러 TV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서 3S 정책이라는 비아냥거림은 있다. 그런데 그럼 박 정희 때는 컬러 TV가 전혀 없었고 땡전 뉴스부터 천연색으로 나오기 시작했다는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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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수천 년을 살아 오면서 뭔가 기록을 남기는 방법이란 글 아니면 기껏해야 그림밖에 없었다. 사진처럼 기가 막히게 초상화나 풍경화를 잘 그리는 화가가 장땡이었다. 아니면, 사람 얼굴 윤곽은 데스마스크 같은 걸로 남기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던 것이 사진술이 개발되어 사진을 남기고 심지어 동영상을 만들고 이를 전파로 만들어 송출까지 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전과 그 후의 인류의 삶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은 발명이 아닐 수가 없었다.
1900년대 초에는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덕분에, 사람의 실물 사진도 모자라서 살아 있는 사람의 뼛속 사진까지 이미 찍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발달한 사진술은 얼마 안 있어 금성과 달 같은 우주의 모습까지 담아 오는 데 성공한다.
사진을 한번 팟 찍으면 내 영혼이 빠져나가는 줄 알고 혼비백산했을 당대 사람들이 이해가 될 만도 하다.
사람을 해부하지 않고 자기 손의 뼈 사진을 봤을 때 그 심정이 어땠을까?
당대의 화가들은 사진술의 발명으로 인해 자기 정체성을 심각하게 재고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도 지금도, 도시 건물 같은 거.. 완전 실사 뺨치게 그리는 걸 업으로 즐기는 화가도 있다)
우리는 지금 불과 200여 년 전 사람들조차 상상도 할 수 없던 대단한 문명의 이기를 당연하게 사용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스팸 메일 없는 이메일을 상상할 수 없듯,
사진술의 대중화와 동시에 인류는 이제 음란물과의 전쟁을 치르기 시작하게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Posted by 사무엘
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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