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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上

우리나라에는, 전국민이 알 정도로 시끄러운 사고를 쳐서 20세기에 교도소에 갔다가, 출소 후 기독교에 귀의하여 21세기의 여생을 이 분야의 사역에 바치겠다고 공언한 사람이 최소한 둘 있다. 이들의 발언은 매스컴에도 보도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누군가 하면......;;
하나는 삼풍 백화점 사장이던 이 한상 씨이다(회장이던 이 준 씨의 아들). 몽골 선교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잘 알다시피 고문 기술자라는 말을 만들어 내며 한때 악명을 떨쳤던 이 근안 씨이다. 요 몇 년 전에 아예 목사 안수를 받았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그야말로 저주의 이름으로 전락한 삼풍 백화점!
당시 경영진은 돈에 눈이 먼 나머지, 전세계의 건축 전문가들을 경악케 한 전대미문의 비리와 편법을 동원하여 백화점 건물을 혹사시켰다. 그러다 결국 1995년 6월, 거대한 백화점 한 동을 지진이나 외부 폭격도 없이 제 발로 와르르 무너뜨리는 초대형 병크를 터뜨렸다. 4층 기준으로 설계된 건물을 5층으로 무단 증축하고, 미관을 위해 기둥 수를 줄이고 있던 기둥도 굵기를 줄이고, 윗층에는 무거운 온돌을 얹고, 옥상에는 규정 하중의 몇 배나 더 무거운 에어컨까지 얹고... 전문가들은 그 상태로 건물이 어떻게 6년씩이나 버텼는지를 더 신기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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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죄질이 더욱 나쁜 이유는, 건물이 붕괴할 걸 알고도 자기네만 쏙 피하고 영업은 계속 강행시켰다는 점 때문이다. 귀중품을 지하로 옮기고 고위 임원들은 미리 대피하고서 말이다. 이건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때 패닉 상태에 빠져서 자기 혼자 마스터 키를 빼들고 전동차를 탈출해서 달아나 버린 기관사와는 차원이 다른 악행이다.

이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던 1천 명이 넘는 종업원과 쇼핑객은 건물과 함께 그대로 폭삭..
성수대교가 무너진 지 불과 8개월 남짓 만에, 대한민국 건국 이래로 평시에 최다 사상자를 낸 최악의 참사를 일으키고 국제 망신까지 초래했다.

한편, 이 근안의 과거 행적도 충격과 공포이다. 심문 전에 기선 제압용으로 한주먹으로 사과를 으스러뜨리는 퍼포먼스부터 시작해 물 고문, 전기 고문, 통닭 고문, 잠 안 재우기 등등.. 말이야 쉽지 당해 보면 정말 차라리 죽여 달라는 말밖에 안 나온다. 그는 말했다. “내가 손대기만 하면 누구라도 불게 돼 있어.”

고문 출장까지 갔던 그가 돌연히 목회를 선택한 것은 단순히 흉악범이 회개하여 목사가 된 것과는 다른 차원이며, 왕년에 크리스천들을 핍박하던 바울이 회심한 것과도 성격이 다르다.

고문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반인권적이고 사악한 행위이다. 성경의 그 엄한 구약 율법조차 사형은 백 번 인정할지언정, 고문은 절대 없다.
다만, 이 근안을 까는 글은 인터넷에 이미 널리고 널렸으니 본인은 for the sake of completeness 차원에서, 일부러 좀 다른 관점에서 논리를 잠시 펴도록 하겠다. 오죽했으면 인류 역사에 고문이란 게 존재했을지도 잠시 생각해 보자.

뻔히 드러나 있는 혐의를 일단 부인부터 하고, 아무 죄책감도 없이 거짓말로 태연하게 잡아떼기만 하던--그래 봤자, 밑져야 본전이므로-- 인면수심 흉악범 김 길태를 보고 열불이 안 났을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 고문이란 저런 신발샛길을 위해 존재하는 거라는 게 본인의 육신적인 심정이었다. -_-;;

그리고 2006년 이래로 결국 미제 사건으로 남은 전북 대학교 이 윤희 씨 실종 사건을 기억하는가? 딸을 잃은 아버지는, 강력한 용의자이자--그러나 무능한 수사로 말미암아 증거 확보와 유죄 입증엔 실패-- 딸의 스토커이던 뻔뻔한 남학생으로 하여금 읽으라고 쓴 공개 성명서에서 이렇게 절규했다.

“이 사건을 맡은 수사관이라면 누구라도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 정도 사건은, 30년 전만 해도 물고문에 고춧가루 한방이면 일도 아니었을 거라고 말이다. 네놈 선배들이 피땀 흘려 이뤄낸 민주화의 열매를 네놈 같은 녀석이 악용하는 게 통탄스럽다.” (☞ 원문이 있는 곳 클릭)

요즘 같은 첨단 과학 수사 기법과 심리 프로파일링 같은 기술도 없던 시절에 흉악 범죄에 맞서서 치안은 유지해야겠고,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 정말 누가 누군지 모르는 간첩 불순분자도 우글거리던 시절,
비열하고 부작용의 우려도 만만찮으나 저비용으로 성과를 제일 간단하게 내는 방법을 현실적으로 외면할 수 있었겠냐 말이다.

고문을 옹호나 정당화할 의도는 절대 없으므로 오해 없기 바란다.
단지 전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는 그의 과거 행적이 그저 아무 이유 없이 하늘에서 그저 뚝 떨어진 건 아니라는 걸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더 잃을 게 없으니 배째라 하는 악질을 다스리는 제일 쉬운 방법은, 그 녀석들에게도 “더 잃을 게 있다는 걸” 일깨우고 공포에 빠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죄를 다스리기 위해 인간이 이열치열로 만들어 낸 차선책 중 하나가 고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이렇게 서로 다른 분야에서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두 사람은 동일하게 징역 7년이라는 죄값을 치렀다. 가정 전체가 풍비박산 났고 가족들까지 밖에 얼굴을 들고 다니질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 한상의 집안은 피해자 배상금 명목으로 전재산을 압류 당했으며, 이 근안의 자녀 중엔 아버지가 누군지 밝혀지자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다 못해 직장을 그만두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몽골로 떠난 후 언론으로부터 수 년째 별다른 소식 없이 잠적해 있는 이 한상과는 달리, 이 근안은 불과 몇 개월 전까지도 언론 인터뷰에도 적극 응하면서 국내에서 활동 중인 것 같다. 그런데 발언의 수위가 다소 우려스럽다.

그래, 만에 하나 그는 왕년에 정말로 국가 명령에만 충성한 사람일 수 있으며, 고문도 상부 기관의 명령 내지 묵인하에 실적 쌓으려고,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수행한 것일 수도 있다. 무고한 사람 잡은 것보다는 그래도 진짜 흉악범이나 간첩을 잡은 공이 더 클 수도 있다. 나라가 망하기라도 한 것도 아닌데, 당대 상황을 감안하지도 않고 어제의 충신이 무작정 오늘의 역적으로 뒤죽박죽 평가 잣대가 바뀌는 언론 플레이도 본인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말은 목사 타이틀을 갓 얻은 그의 지금 처지에서 할 말이 아니다. 그런 변명은 그가 회개의 열매부터 충분히 보인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이 근안 목사에게서 그리스도를 발견한 주변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옹호하는 발언을 자발적으로 한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아직도 그로 인해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린 사람, 파탄 난 가정이 즐비한 현 시국에서 그의 자기방어 변명성 발언은 더욱 많은 사람을 실족시키고 복음을 비방할 빌미만을 불신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선과 악, 죄와 벌, 회개 같은 것은 민감한 주제이다. 성경이 매우 중요하게 다루며 오늘날 사람들이 반드시 정확하게 갖추고 있어야 하는 개념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이라든가 복음에 대해 요즘 나돌고 있는 무수한 오해들도 불식시킬 수 있으며, 불신자에게 복음을 정확하게 전한다든가 교회 내부에서 죄로 인해 간증을 잃은 사람을 다루는 과정도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저 두 사람의 경우를 생각하면서 저런 개념을 재정립을 한 번쯤 할 필요를 느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기독교는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종교 중 하나인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굳이 종교라고 풀이하자면, 인간의 모든 문제의 원인을 죄 때문이라고 규정하며, 그 죄를 인간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좀더 구체적으로는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해결하고 내세의 구원까지 얻으라고 가르치는 종교이다.

그 교리는 인간의 머리로 만들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래서 자연인들 보기에는 완전 황당무계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믿음으로 가능하다고 가르친다. 그거야말로 인간의 지혜와 시스템을 초월하는 기독교의 본질이기 때문에, 그 교리로 인해 복음이 초기에 비방 받고 조롱 받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한 귀결이다. 성경은 그것 자체만으로 두려워하거나 쫄 필요는 절대 없다고 거듭해서 강조한다. 하나님이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 주신 간증도 무수히 많으며, 그 어리석음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역설적으로 드러나는 게 바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께 다음과 같은 원칙은 변함이 없다. (下에서 계속)

Posted by 사무엘

2011/10/29 08:40 2011/10/29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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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찬송 몇 곡

Wonderful Grace of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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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렇게 선율이 아름다운 찬양도 있구나!’ 생각이 곧장 들어서 자료를 검색해 봤다.
작사· 작곡자는 Haldor Lillenas. 사실 그는 20세기 초의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평생 수천 편의 찬송시를 지은 굉장히 유명한 분이며, 저 Wonderful Grace of Jesus는 그의 작품 중에서도 으뜸으로 손꼽히는 가장 유명한 곡이라고 한다. 그럼 그렇지..;; 왜 우리나라의 통일 찬송가에 수록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참고로 저 곡이 발표된 때는 1918년. 유럽에서는 독가스와 탱크가 첫 등장한 1차 세계 대전이 끝나 가고, 우리나라는 일제의 무단 통치 하에서 신음하던 시절이었다.

이 곡을 모르는 분이라면 한번 들어 보기 바란다. 후렴을 돌림노래 비슷하게 편성한 것도 그렇고, 너무 우아하고 멋있지 않나..?
증오심으로 가득한 “개미를 죽입시다 개미는 나의 원수” 짤과는 정반대로, 구원받아서 진심으로 기쁘다는 감격이 느껴진다.
곡 전체를 통틀어 당김음 하나 없는데도 전혀 단조롭지 않다.

Sing On, Ye Joyful Pilgri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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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ful Grace of Jesus에 필적하는 미려한 선율을 자랑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참 즐거운 노래를>로 잘 알려져 있다. 이것도 구원받은 크리스천이라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불멸의 명작이지 않던가.

한국어 가사도 아름답지만, 영어 원문 가사는 크리스천이 이 세상에서 떠돌되 방랑자가 아닌 순례자의 삶을 살고 있다는 심상이 더욱 잘 드러나 있다.
그 곡의 작사자는 Carrie M. Wilson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이는 필명일 뿐, 그 이름도 유명한 Fanny J. Crosby 여사의 작품이라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Meekness and Maje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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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소개한 세 곡보다는 훨씬 더 나중에 발표되었고 어찌 보면 CCM에 가깝다.
영국의 그 유명한 Graham Kendrick의 곡으로, 저분 하면 <비추소서>(Shine, Jesus, shine), <God Is Good>, <Heaven Is In My Heart> 등이 바로 떠오를 것이다.
좀 더 매니악한 분이라면, 주찬양 선교단 8집 <Hosanna! 이 땅을 고치소서>의 타이틀곡의 뒷부분에 이어지는 <Lord Have Mercy On Us>가 저분의 곡이라는 것도 아실 테고.

허나, 본인은 Meekness and Majesty을 그분의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단연 일품으로 친다.
예수님을 너무 사실적이고도 서정적으로 잘 묘사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rhyme을 봐라. -ty, -ce, -le 등을 포함해서 단어 선택을 정말 절묘하게 했다.
화음도 특히 후렴 부분은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 느낌을 잘 살리려면 꽤 어려운 chord를 넣어서 연주해야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1/10/23 19:21 2011/10/23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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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교리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원색적인 문구에 잘 요약되어 있듯, 뭐니뭐니해도 내세관이 아주 분명하다는 게 특징이다.
이걸 믿지 않는 분이라면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고 본인 역시 그들을 설득할 생각이 없다.
다만, 그 교리가 논리적으로 성립하려면, 어떤 사람이 구원받아서 하늘로 가며 하늘나라에서의 삶은 어떨지 이런 면모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1. 어린아이들은 무조건 하늘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내가 예전 글에서도 쓴 적이 있지만, 너무 어려서 스스로 선이나 악을 판단할 수 없으며 아직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질 능력이 없는 아기, 영· 유아, 어린이, 정신박약아, 지적 장애인은 죽으면 무조건 하늘로 간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분명한 논리로 요약할 수 있다.

- 그들은 구원자 예수님을 자기 의지로 스스로 영접하지 못하지만, 거부하지도 않았으므로(못하므로)
- 그들이 태생에서부터 아무 죄가 없고 순수하고 깨끗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법적으로 그들에게 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에

아멘!
다윗이 삼하 12:23에서 이 사실을 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어른들의 욕심과 잘못 때문에 이런 애들이 죽는 것은 분명 슬픈 일이고 죄악의 결과이다. 당장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하여 태어난 첫 아이도, 다윗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명목으로 1주일을 열병을 앓다가 죽었다. 애가 무슨 잘못이 있나?

하지만 그들이 죽어서 하늘로 가는 것 자체는 나쁜 게 아니며, 오히려 아이를 잃은 부모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 다윗은 죽어서 하늘나라에서 그 아이도 다시 보게 됐을 것이다.

심지어 2000여 년 전에 예수님이 태어나던 당시에도, 헤롯 왕이 예수님의 동갑내기 2살 이하 유아들을 대상으로 학살극을 저지른 적이 있다. 온 인류의 구원자가 태어난 덕분에 주변의 동갑내기 아기들이 다 뒈져셔 지옥으로 떨어졌을 리는 없잖아? 아이들이 죽어서 가는 곳에 대해서는 이 이상 어떤 논쟁도, 이견도 필요하지 않다.

2. 그러나 동물은 죽으면 끝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기를 쓰고 기독교의 지옥 교리를 부정한다. 그 대신 내세우는 것이 영혼 멸절이다. 즉, 죄인은 그냥 자기 인격체가 완전히 없어지고 끝난다는 것.
그러나 성경에 따르면 영혼 멸절은 사람이 아닌 다른 짐승들에 한해서만 성립한다.

발생· 유전학적으로 사람과 굉장히 비슷한 유인원 동물이 존재하여 소위 진화론의 근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말을 하는 것, 불을 다루는 것 이상으로 사람이 짐승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영적인 위상이라고 성경은 말한다(전 3:21).

사람은 불멸이지만 짐승은 죽으면 그걸로 끝이다. 가령, 어떤 개가 아무리 충성스럽고 어지간한 인간 말종 개차반보다도 낫다 하더라도, 개는 개일 뿐이다. 짐승은 지옥에 가지 않는 것만큼이나 하늘로도 가지 않으며 완전히 없어진다.
지금 당신이 현 세상에서 보는 바로 그 동물은, 비록 지금 아무리 사랑스럽게 보일지라도 내세에서 볼 수 없다. 이 사실을 알면 사람과 짐승 사이의 우정(?)을 다룬 각종 문학 작품에도 그리 애착이 가지 않게 될 것이다.

3. 사람 식별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성경에는 예수님 같은 생사람을 못 알아봐서 실수를 한 주변 사람들 얘기는 나오지만, 정작 고인을 못 알아본 경우는 없다.
예수님이 변모하시고 모세와 엘리야가 내려왔을 때, 제자들은 모세와 엘리야의 생전 모습을 전혀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사진 같은 것도 없던 시절!) 그들을 바로 알아봤다(눅 9:28-34).
그리고 예수님이 미래에 지구에 재림하실 때도 세계 어디에서도 이 사람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못 알아볼 사람은 없을 거라고 성경은 말한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할지 그 디테일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하늘나라에서는.. 신참이 한 명 들어올 때마다 마치 공항 입국장처럼 지인들이 이름 적힌 피켓 들고 사람 찾는 광경은 없을 걸로 보인다. 시대를 초월한 상봉이 이뤄질 때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1번과도 연동하여, 하늘나라에 가서 어떤 사람으로부터 “내가 예전 세상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지적 장애아였을 때 형제님이 나를 잘 보살펴 주셨군요. 정말 고맙습니다” 같은 인사를 들을 걸 생각해 보라.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게 이런 데서 나오는 법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왜 장애인을 만들었는지에 대해서조차도 답을 주고 있다. 이런 게 감히 아메바· 원숭이 진화론이나 귀신 이야기 따위와 비교가 되겠는가!

4. 이 땅에서와 같은 결혼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늘에 있는 천사와 같다”라는 한 마디로 모든 논란이 끝난다.
하늘에 있는 사람들은, 육신을 입고 현 세상에서 살던 때와 같은 결혼의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배우자가 죽었을 때 재혼이 가능하다. 성경은 간음과 음행을 그토록 싫어하지만, 과부에게 평생 수절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이건 무척 중요한 개념이란 걸 알아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다윗의 범죄처럼 간음을 재혼으로 합리화하기 위한 살인에 대해서도 이미 다 예상하고 언급하고 있고, 이 체계를 악의적으로 비비 꼰 트집성 질문에 대해서도 해답을 마 22:23-33에서 마련해 놓았다. 난 성경에서 이 논리 체계를 발견하고서는 개인적으로 무릎을 탁 치고 감탄했었다.

더 현실적인 예를 들어 보겠다.
소설 <상록수>의 스토리를 잘 아실 것이다. 지금 안산에 가면 상록수 공원이 있는데, 거기에는 실제 여주인공인 최 용신하고, 그분과 약혼한 사이였던 김 학준이 나란히 묻혀 있다. 김 학준에게는 훗날 실제로 결혼한 부인(길 금복 여사..)이 따로 있었는데도 말이다.

근본적으로는 김과 최가 연애 기간이나 약혼 기간을 너무 길게 잡지 말고 가능하면 어서 결혼을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게 훗날 문제가 되긴 했다. 또한, 옛 약혼녀 옆에다 묻어 달라고 부탁한 김의 이런 유언 때문에 가정에 내부적으로 좀 갈등이 일기도 했다. 상식적으로 충분히 갈등이 있을 만도 하지 않은가? 이건 대놓고 저지른 불륜은 아니지만 뭔가 좀 미묘한 감정 싸움이다.

허나, 세 분 다 크리스천이었고, 세 분 다 지금은 고인이 되어 하늘에 있다. 그들이 거기서 한데 만나서 이 세상에서와 같은 질투와 갈등을 겪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시겠는가?
이런 맥락에서 보면, 세상 매체에서 말하는 '영혼 결혼식'이라는 건 부질없는 개념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5. 다른 건 못 가져가도 자식은 가져간다

저 하늘나라에 우리가 도대체 돈을 가져가겠는가, 집과 차를 가져가겠는가, 심지어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가져가겠는가?
다른 건 못 가져가도 육신의 자식은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보고 지내게 된다.
아 물론, 이건 제대로 키워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식에 한해서 말이다.
아니면 차라리, 앞의 1번 항처럼 엄청 어렸을 때 불의의 사고로 잃은 자식이라면, 부모가 구원받았다면 최소한 하늘에서는 다시 만날 수 있다.

요즘 정말 결혼할 엄두를 못 내고 애 낳고 키울 엄두를 못 낼 저출산 시국인 거 나도 너무나 잘 안다.
또한 하나님은 음행을 극도로 정죄하는 것만큼이나 그와 반대로 결혼한 부부끼리의 사생활은 그 어떤 형태라도 무조건 존중해 주시며, 이는 자녀 계획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어느 게 정말 영원을 생각하는 투자인지 크리스천이라면 이 변수도 잘 생각해 봐야 한다.

6. 이 땅에서 갖고 있던 기억은 과연?

이건 무척 재미있으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이다.
현 세상에서 습득된 개개인의 인격과 지식이 그곳에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가령, 본인의 철도 덕후 기질은 하늘나라에서도 변함없을 것이기 때문에 본인은 거기서 온 우주를 누비는 철도를 구상하고 있을 것이다.

거기서는 육신의 성별이나 나이가 의미가 없을 것인데,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부활한 예수님처럼 33세 남자처럼 될까? 내 애인과 어머니까지? 거기까지 당장 여기서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세상에서 사랑하고 친하게 지내던 가족과 지인들 중 상당수가 예수 안 믿고 죄 가운데 죽어서 지옥· 불못으로 영원히 이별을 하고 말았는데 우리가 과연 하늘나라에서 기쁘게 지낼 수 있겠나?”라는 고전적인 질문이 있다.
일단,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따지기나 하지 말고 당장 가족과 지인에게 복음부터 전해야 할 것이다. -_-;; 그렇게 자기 할일부터 다하고 그것 때문에 무시와 따돌림과 핍박까지 당했는데도 그들이 끈질기게 복음을 거절한 것이면 그들이 자업자득이고 우린 덜 슬프겠지.

(그리고 당신의 신앙을 비웃고 조롱할 가능성이 훨씬 더 많은 사람들과 당신이 지금까지 지나치게 잘 어울리고 아쉬울 것 없이 지내 왔다면, 당신의 영적 본분에 대해서도 어차피 다시 생각을 좀 해야 할 것이다.;;)

큰 백왕좌 심판 후에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자기 백성들에게서 눈물을 닦아 주실 거라는(계 21:4) 약속이 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성도의 죄악을 다시는 기억도 하지 않는 것처럼(할렐루야!), 그리고 반대로 지옥에 떨어진 죄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기수열외'되고 단절되고 잊혀지는 것처럼, 이때 우리는 과거의 '흑역사'에 해당하는 온갖 쓰라리고 아픈 기억들이 말 그대로 '포맷'되기도 할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이 세상에서의 기억은 영원히 남는 것도 있고 잊혀지는 것도 있지 않을까 싶다.

7. 고참, 말년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무한대에다가는 1을 더해도 무한대이고 1억을 더해도 무한대이다. 하늘나라도 영원하고 지옥· 불못도 영원하다.
하나님의 사고방식에는 은퇴· 졸업 같은 게 없다. 수료만 있을 뿐이다. 나는 이 말을 어렸을 때 주일학교를 수료하고서 목사님에게서 들었다.
마치 마태복음 1장은 오로지 '낳고'만 있지, 창세기 5장처럼 '죽었더라'가 없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랄까?

군대에 고참· 말년이 있고 이등병부터 말년병장까지 계급별로 온갖 독특한 문화가 존재하는 건 '제대'가 있기 때문이다.
군대에 영원무궁토록 갇혀 있어야 한다면 그런 관행이 생기겠는가? -_-
명심하자. 내세에서는 고참, 말년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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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늘나라와 지옥 구성원하고, 하나님이 실제로 생각하시는 하늘나라와 지옥 구성원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굉~장히' 차이가 크다.
예수님을 절대적인 의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 사람이라면 절대적인 선과 악 관념이 있을 수가 없다. 그저 상대적인 권선징악 패러다임에다 “이런 사회 시스템 하에서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지”, “남들만치만 하면 되지”, “이 상황에서는 어느 누구라도 해먹지 않을 수 없지”, “죄도 적당히 즐길 줄만 알면 되지”의 악순환을 벗어날 수 없다.

완전히 반성경적인 내세관을 전달하고 있는 웹툰 <신과함께> 같은 걸 보아라, 기반 사상이 딱 저것이다. (개인적으로 내용을 무척 재미있게-_- 봤으나, 안타깝긴 하다.;;) 내세를 소재로 하면서 성경을 배제한다면 솔직히 저 수준을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으니 말이다.

하늘나라(그리고 지옥)에 대해서 이 글과 비슷한 방향으로 알 레이시 목사가 디테일을 재미있게 잘 논증한 바 있다.
예전에 말씀과 만남 출판사에서 <천국은 있다>(Window of Heaven)라는 책이 나왔고, 이걸 현재 그리스도 예수안에 출판사에서 <천국과 지옥 바로 알기>라고 천국편과 지옥편 합본을 내놓았으므로 관심 있으신 분은 참고하기 바란다.

끝으로, 글을 맺기 전에 한 마디 더... 하늘나라는 거룩~하고 경건한 꼴통들만 있어서 조용하고 따분하고 지겹기 그지없는 곳인 반면,
오히려 지옥이 신나고 화끈하고 다이나믹한 곳이라는 식의 말도 안 되는 드립에 결코 현혹되지 말기 바란다.
성경이 말하는 지옥은 아버지와 함께 럭키짱 만화책이나 볼 수 있는 곳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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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대사가 '지옥'으로 알려져 있는데, 짤방을 뒤져 보니 '저승'이구나..)

Posted by 사무엘

2011/10/16 08:42 2011/10/16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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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약 율법과 말라기 구절을 근거로 십일조 헌금을 부과하고, 심지어 솔로몬을 따라 일천번제(?)라는 이상한 헌금 제도까지 시행하는 교회가 적지 않다.
2. 목사는 거~룩한 “주의 종”이고 구약으로 치면 레위 인이다. 교회 예배당은 거룩한 ‘성전’이다.
3. 안식일은 고증상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이라며, 어떤 교회는 토요일에 예배를 드린다. 안식일도 모자라서 유월절을 지키는 곳도 있다.
4. 오늘날 수많은 개독안티들은 모세오경을 집중적으로 공부하여 트집을 잡는다. 그러면서, 기독경 바이블이 말하는 신은 반인륜적이고 잔인하고 장애인을 비하하는 신이라고 공격한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고 행한다면 이런 것도 그대로 행하겠냐ㅋㅋ라고 막 빈정댄다.
5. 성경을 잘 모르지만 어쨌든 위의 조롱을 좀 의식하는 사람들은.. “구약의 하나님은 진노와 심판의 신인 반면, 신약의 하나님은 자비와 사랑의 신”이라는 식의 드립? 쉴드?를 친다. 이 사람들은 구약 성경을 근거로 제시되는 각종 ‘보수적인’ 기독교 윤리관(사형 제도, 동성애, 낙태, 옷차림과 외모 등등등)에 대해서도, 동일한 알고리즘을 적용하여 쏙 빠져나간다. -_-;;


이 모든 사례는 성경을 바르게 나누지 않아서 발생하는 촌극이다. 그 사례가 겨우 저 다섯 가지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신약과 구약 교리를 잘못 분간하여 저질러지는 병크는, 기독교회가 존재하는 한 아마 지구상에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_- 구원받은 크리스천이든, 개독안티이든, 성경을 공부하지 않으면 방향만 다를 뿐 그 누구라도 똑같이 걸려 넘어지고 오류에 빠지게 된다. 성경은 그렇게 호락호락 만만하게 쓰여진 책이 아니다.

위의 다섯 사례들에 대한 본인의 코멘트는 이러하다.

1. 이스라엘 백성과 신약 성도는 복, 믿음에 대한 구도와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말 3:10 같은 십일조에 대한 보상 자체가 오늘날의 크리스천에게는 약속되어 있지 않다. 성경 어디에도 신약 성도가 예수 잘 믿거나 교회 열심히 잘 다니거나 헌금 많이 하면 물질적인 복을 받고 부자 된다는 약속은 없다. 신약 성도들이 이미 받은 영적 복은 엡 1:3에 규정되어 있고, 헌금 원칙은 고후 8:12 같은 자발적인 규정이 전부이다. (이 관행에 대해서 통탄하는 어느 목사님의 글)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몸과 시간과 물질을 바치지만, 그 일을 하는 동기에다 구약의 마인드를 집어넣는 건... 정말 생뚱맞고 안 어울리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미 받은 믿음으로 헌신할 뿐이지, 걔네들처럼 ‘십일조 바치면 정말로 하나님으로부터 보상 받는지 따져보자’ 이러는 구도이기라도 하단 말인가?

2. 구약 성경은 말할 것도 없고 벧전 2:9, 엡 2:21, 고전 3:16 같은 구절과 비춰 봤을 때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 -_-;;;
물론 본인은, 자긴 그 잘난 제사장의 의무를 다하지도 않으면서 입으로만 만인 제사장 운운하는 뺀질이를 아주 싫어하며, 목사와 교사 직분 자체를 부정하는 모임도 명백히 잘못됐고 비성경적이라고 여긴다.

3. 오늘날 신약 교회가 지키는 주일은 안식일이 아니며, 그와 아무 관계가 없다. 일요일 예배는 예수님이 부활한, 더 정확히 말하면 부활이 알려진 날에서 유래되었을 뿐이다. 태양신 축제와 연관 짓는 건 성탄절, 이스터 정도로 족하다. 일요일 자체는 아무 문제될 게 없다.

4. 이런 부류들은 도대체 어디부터 상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고환이 상한 자, 안면이 함몰된 자는 군대에 가지 못할지니라”고 하면, 얘네들은 군대가 장애인을 비하하고 차별하는 집단이라고 드립을 칠 친구들이다. 가나안 백성들을 다 진멸하라고 명령한 하나님 탓할 줄만 알지,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 명령을 100% 이행 안 하고 걔네들로부터 안 좋은 거 배워서 동화되다가, 죄에 빠져서 하나님에게서 똑같이 큰 벌 받은 건 눈에 안 들어온다.

트집 잡는 게 다 저런 식이다. 저 친구들은 성경에서 그런 의문과 이해가 안 되는 부분만 해결되면 성경을 믿겠다는 의향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게 아니다. 그들의 불순한 의도를 알기 때문에, 나도 더 친절하게 설명 안 할 생각이다.
수학의 ‘수’짜도 모르는 초딩이 “님들아, 입실론 델타 증명부터 로피탈의 정리까지를 A4 한 장에다 내가 알기 쉽게 좀 설명해 주셈” 질문 달랑 던져 놓고는, 답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욕지거리 하는 것과 같은 꼴.

그리고 끝으로,
5. 성경 66권을 통틀어 짐승과 수간하지 말라고 명령되어 있는 곳은 구약 율법밖에 없다. 그럼, 저 논리대로라면, 신약 크리스천들은 짐승과 수간해도 괜찮겠다. ㄲㄲㄲㄲ
저 사고방식의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의 성품이 시대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 게 절대 아니라는 데 있다. 단적인 예로, “하나님은 소멸시키는 불”이라는 명제는 신약과 구약에 동급으로 인용되어 있다(신 4:24, 히 12:29). 그리고 구약 율법에도 정말 가난한 자, 어려운 자를 배려하는 사랑의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난 구절은 얼마든지 있다.

신약과 구약의 공통점과 차이에 대해서 여러 할 말이 있지만, 요약하고 또 요약하자면 이렇다.
구약 시대는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선택하셨다. 각자 자기 favorite gods들을 찾아 떠난 이방 민족들을 상대로 누구의 신이 진짜 신인지 객관적으로 맞장 뜨는 구도였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는 신정 국가 컨셉의 특이한 규범이 많았고 당장 눈에 띄는 보상에 대한 약속도 많았다. 그러나 몇몇 얘네들의 민족적 특수성이 감안된 규범을 제외하면, 윤리와 관련된 대다수 규범들은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유익한 것들이다.

그 후 신약 시대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는데 정작 유대인들은 그분을 거부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방인을 상대로 교회를 만들고, 교회로 하여금 유대인들의 질투심을 유발해서 유대인들까지 예수님을 믿게 만들 작정이었다.
그래서 신약 규범은 비격식· 비가시적이고, 자율적이고, 영적인 것이 많다. 그런데 그게 더 수준이 높다.

다만, 이런 하나님의 경륜의 저변에 깔린 공의와 사랑이라는 두 성품은 시대를 불문하고 불변 동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사실을 전제에 깔면 신구약과 관련된 상당수의 오류를 예방할 수 있다.

불신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신자? 개독?)들은 도대체 왜 너네 주장만 맞다고 생각하느냐? 맞다는 근거로 맨날 성경을 들이대는데 그건 순환논리이고 우리 같은 불신자한테는 씨알도 안 먹힌다.”
본인은 왕년에 종교 배틀을 한두 번 벌여 본 것도 아니고, 걔네들의 심리 정도는 다 꿰뚫고 있다.

그런데, 참 애석하게도... 진짜로 성경은 순수한 동기로 먼저 믿어야지 나머지 부분도 나중에 차츰 이해가 되게 된다. 나도 저것보다 더 속시원한 반격을 하고 싶어 죽겠는데, 더 할 게 없다. 성경 신자들의 신앙은 세속 논리학의 관점에서 봤을 때 당연히 순환 논리도 갖고 있고,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도 범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하나님이 나 자신을 두고 맹세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겠는가.

단, 일단 먼저 믿어서 나쁠 게 절대 없는데도, 안티들은 성경을 잘못 적용한 극단적이고 이상한 부류들이나 들먹이면서, 그걸 일반화하여 종교가 사람의 정상적인 이성을 마비시키고 우민화한다고 깐다. 그건 그렇지 않다고 그 정도는 본인이 반박해 줄 수 있다. 이해나 증명이 불가능한 몇몇 핵심 명제만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그 이후부터 기독교 교리는 그걸 바탕으로 철저한 논리와 일관성과 질서 그 자체이다.

본인은 구약 율법과 크리스천의 관계를 군대에다 비유한 적이 있다.
율법은 군인에게 부과되는 온갖 제약과 규율들이다. 그 중에는 각종 심신 단련과 규칙적인 생활처럼 인간에게 궁극적으로 유익한 게 많다. 인간에게도 유익하고 군대가 돌아가는 데도 필요하니까 그런 게 명시된 거겠지.

마치, '10시 취침, 6시 기상'은 전세계 군대나 민간인들이 지켜서 나쁠 게 없는 규정인 반면, '우리의 주적은 북한'은 20세기 중반 이후의 대한민국이라는 민족의 특수성 하에서만 유효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리고, 개독안티들이 비판하는 건, '전시에 적진으로 도주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같은 법규를 보고는, 잔인하고 반인륜적이라고 욕하는 것과 거의 똑같다. 저 군법이 과연 잔인하고 반인륜적인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신약 교회의 크리스천은 민간인이다. 그걸로 끝이다. -_-;;
내가 아는 한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이보다 더 확실하게 먹혀드는 비유는 없을 거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가 낳은 사람들 가운데 침례자 요한보다 더 큰 자가 일어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왕국에서 가장 작은 자가 그보다 크니라. (마 11:11)

위의 말씀은, 제아무리 뼛속까지 FM인 1등급, A급 병사라 해도, 제대한 민간인보다는 못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뭐가 못하다는 건지 모르는 분은 없을 테고.

오늘은 요기까지만 쓰련다.
신약 vs 구약과 더불어 자매품(?)으로는, 신구약 ‘과도기’의 교리와 신약 교리를 잘못 분간하는 오류가 있다는 걸 아울러 밝힌다.

요놈의 주된 부작용으로는 치유나 방언 같은 잘못된 은사주의 교리가 있다. 그래서 행 2:38이 교회 성도들에게 직접 적용되는 교리로 왜곡되고, 막 16:17-18을 오늘날 크리스천들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 버린다. 배운 적이 없는 외국어를 구사하고, 중환자에게 안수만 하면 병이 즉시 낫고, 청산가리 같은 걸 마셔도 안 죽고..;; 우리가 시도했다가는 다윈 상 수상자밖에 되지 않을 것 같은데? -_- ㄲㄲㄲㄲㄲㄲㄲㄲ

이건 다른 책보다도 마태복음과 사도행전과 히브리서를 잘못 적용했을 때 나타나기 쉬운 증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1/09/30 08:46 2011/09/30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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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말, <날개셋> 한글 입력기 6.2가 공개된 때와 아주 비슷한 타이밍에, 그리스도 예수안에 출판사에서는 영어 킹 제임스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KJV 출간 400주년 기념판’을 내놓았다. 버전으로 치면 5판이다. 4판이 나온 지 3년 만의 일이다.

2~4판 사이에서도(특히 3판에서) 한국어 문장에 revision과 breaking change가 적지 않았지만, 2011년은 아주 특별한 해이지 않던가. 영국에서 KJV 출간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미국은 의회가 아예 KJV가 미국에 남긴 공적을 기리는 성명서를 냈을 정도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예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의 엄청난 공을 들여서 번역을 다시 가다듬었다. 전체적으로 예전보다 좀 더 영어 직역에 가까워졌다.

성경이 무슨 컴퓨터 프로그램도 아닌데, 본문을 자꾸 패치한다고 해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 책을 만드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모두 시간과 돈이 들고, 번거롭고 귀찮고 골치아프다. 성경은 모름지기 권위가 담긴 텍스트여야 하는데 명분이야 어떻든 자꾸 바뀌어 버리면, 그럼 예전 판은 무슨 신세가 되는지에 대한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요즘 컴퓨터 프로그램이 보안 업데이트를 귀찮더라도 자꾸 해 줘야 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그걸 왜 꼭 해야 하며,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프로그램 개발자는 너무 자세히 알려 줄 수 없다. (당연히, 모방범죄 같은 안 좋은 파급효과 때문)

성경 번역자도 이와 비슷한 처지인지라, 성도들에게서 안 좋은 소리와 심지어 오해까지 받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사명감 때문에 이런 개정을 하는 것이다.

이미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에 법인까지 만들면서 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하고 이를 교계에 가장 먼저 알린 단체는 대한 항공 조종사 출신의 모 목사가 설립한 ㅁㅂㅎ라는 곳이다.
이들은 교리도 그럭저럭 건전한 편이었으나, 초창기에 세상 교회를 상대로 appeal을 굉장히 잘못하는 바람에 이곳과 더불어 킹 제임스 성경은 한국 교회에서 이상한 이단으로 완전히 낙인찍혀 버렸다. 그게 1990년대 중후반의 흑역사이다.

진리를 정말 성령 충만한 애끓는 사랑으로 호소하며 전해도 말귀 못 알아듣는 사람이 태반이며 열매가 맺힐까말까인데, 그걸 육신의 깡을 동원한 온갖 과격· 극단적인 표현으로 밀어붙였으니 튕겨나오는 역효과는 100배이다. 뭐, 나라도 겪었을 시행착오이니 ㅁㅂㅎ를 그렇게 욕할 생각은 없다.

둘 다 잘못했다. 비록 ㅁㅂㅎ도 잘못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성경이 역본마다 다르고 변개· 삭제된 말씀이 있다고 해도 아무 경각심도 안 느끼고 최소한의 진실 규명도 안 하는 사람들 역시, 크리스천의 자질이 굉장히 의심되는 부류가 아닐 수 없다! 교회 다니고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의 영감성과 무오성, 보존에 대해서는 불신자 내지 개독안티와 동일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요즘 굉장히 많다.

그런 사람들은 도대체 자신의 신앙의 정체성과 근간이 뭔지 난 정말 궁금하다. 겨우 그런 허술한 근간으로 예수쟁이 행세하고 교회 댕기기에는, 기독교계가 요즘 저지르는 병크가 너무 많고 예수쟁이들보다 인격적으로 훌륭한 불신자들도 너무 많으며 반기독교 정서는 너무 팽배해 있지 않은가?

아무튼, 이런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한국의 킹 제임스 성경 진영은 안 그래도 소수이던 것이 n갈래로 더욱 소수로 쪼개지는 비극을 겪었다. 이때 모 공대 교수가 다시 동지들을 모아서 ㅁㅂㅎ의 <한글 킹제임스 성경>과는 별개로 성경 번역을 시작하였고, 그래서 나온 것이 <킹제임스 흠정역>이다. 초판이 나온 게 2000년 여름인데, <날개셋> 한글 입력기 1.0이 태어난 시기와 비슷하다.

성경 번역이란 건 자금과 지지 기반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치성도 띠고 있다. 본인은 그래서 우리나라 KJV 진영의 양상을, 우리나라 근현대사에다 비유해 보곤 했다.

일제의 갑작스러운 패망 이후 우리나라는 온갖 정치 집단과 이념 세력의 각축장이 되었고 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 이처럼 한국 교계도 개역성경의 권위가 무너져 내리고 ㅁㅂㅎ 진영까지 분열된 후, 어중이떠중이가 다 KJV를 번역하겠다고 나서면서 난장판이 되었다.
(단, 그렇다고 해서 개역성경이 일제 같은 존재는 절대 아니다. 오해 말길!)

이때 흠정역의 주 번역자는, 우리나라의 독립 운동가 겸 정치인으로 치면, 이 승만 같은 일을 해냈다. 당연히 긍정적인 면에서 말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를 간단히 설명하겠다.

일제 강점기 때 국내의 독립 운동가들이 무력 투쟁 정도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반면, 이 승만은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랐다. 미국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국제 사회의 냉정한 현실을 직시했고, 당대의 강대국이던 미국을 일본이 아닌 한국의 친구로 만들려 애썼다. 그리고 당대의 여타 민족 지도자들과는 달리, 공산주의의 해악을 완전히 간파하고,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 이념이 지켜지는 국가를 한반도에다 세우고 정부를 수립했다. 이북처럼 자기 지지자들만 잘 먹고 잘 사는 개막장 독재 국가를 세우지 않았다!

그것처럼 흠정역의 주 번역자 역시, 명색이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공대 교수이다. 객관성과 정확성을 생명으로 여기는 분야에서 학문 하는 훈련을 한 사람이다. 그는 성경 번역자라는 소영웅주의에 도취해 자신을 드러내고 appeal한 게 아니라, ㅁㅂㅎ로 인해 치명적으로 실추된 KJV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했다. 그리고 자기가 만든 성경이, 성경 오타쿠들이나 자기 교리 노선· 자기 진영을 지지하는 사람들만 보는 성경이 되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기존 성경의 컨벤션을 존중하고, 교리적으로 튀는 번역을 절대로 하지 않았다. 이거 정말 대인배적인 마인드이지 않은가? 난 그 의도가 존경스럽다.

기존 개신교회들이 변개된 성경을 쓰고 잘못된 관행을 저지른다고 비판하고 까기만 하는 건 쉽다. 나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로 하여금 어떻게든 KJV를 읽게 하려고 노력한 끝에, 자기 출판사를 기성 기독교 인터넷 서점에 입점시키는 데 성공한 것은 과연 KJV 교계의 이 승만 같은 사람의 업적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지금까지 어느 KJV 진영도 한국 기독교회에 KJV를 이런 방식으로 알리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잘한 건 티가 별로 안 나는 반면 못하면 바로 티가 나고 온갖 괴담과 비방, 오해가 나돌기 딱 좋은 분야이다. 이 승만이 악의적인 세력들에 의해 부관참시 당해 온 것만큼이나 저 번역자도 성경 번역 하나 때문에 지금까지 이단 소리 듣고, 반대편 진영으로부터 욕도 얻어먹고 험한 꼴 꽤 많이 봤다. 평범하게 자기 연구만 계속하면 돈도 훨씬 더 많이 벌고 교수로 아주 편하게 잘 살았을 텐데, 지금까지 인생의 어마어마하게 많은 부분을 성경 하나 때문에 희생한 것이다.

어쨌든 여러 모로 유사점이 보인다. 본인은 이런 식으로 비교한 글을 예전에 모 기독교 커뮤니티에다 올린 적이 있다. 당사자더러 보라고 쓴 글은 아니었지만, 어째 정보가 퍼져 나갔는지 그분의 사모님께서 그 글을 보고는 본인에게 따로 연락을 주셨다. “우리 쪽에서 직접 말하기 민망한 심정을 잘 이해하고 대변해 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이다.
뭐, 그래도 이 승만을 그저 증오하는 사람들은 그 글을 보고도 불편해하더라. ㅋㅋㅋㅋㅋ

그에 반해, 흠정역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간 모 진영이 있다. 예수스 크리스토스, 파울로, 밥티스마 같은 말을 일일이 만들면서 완전히 자기네 진영에서만 쓰는 독자적인 번역을 만들었다. 기존 개신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여타 KJV 진영과도 일체의 교제를 끊고는, 자기 말고는 전부 배도하고 타락했다고 거의 사람 취급을 안 한다. 내가 보기에는 덜 배운 친구들이 이 승만이 친일 공화국 만들었다고 욕하는 것과 쎄임쎄임이다. 머리에 든 게 부족하면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보인다.

양 진영이 맺은 열매는 난 이렇게 비유하겠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notice&write_id=81
그분은 채팅과 교제를 통해 많은 추종자를 얻었지만 저(흠정역 진영)는 성경과 교회들과 성도들을 얻었습니다.

http://systemclub.net/bbs/zb4pl5/zboard.php?id=new_jee&no=2563
김 구는 아들에게 유언장을 남겼지만, 이 승만은 국민에게 대한민국과 주권을 남겨주었다

이게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꾼을 쓰신 수준의 차이이다! 킵바이블 사이트의 글과, 시스템클럽의 글을 이런 식으로 비교해서 종합한 사람은 지금까지 나밖에 없지 싶다. ㅋㅋ

말이 길어졌다. 이런 이유로 인해 본인은 그리스도 예수안에 킹제임스 흠정역 진영을 지지하며, 이 성경을 쓰는 교회에 다니고 있다. 흠정역이라는 이 우리말 성경은 만만하게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게 아니다. 킹 제임스 성경 진영을 국내에 이 정도로 정착시키기까지 성도들의 무수한 노력과 헌신, 기도가 있었다. 부디 KJV에 대한 근거 없는 이단 낭설이 하루빨리 불식되고, 이 땅에 바른 성경과 바른 교리가 굳게 서고 이를 전파하는 지역 교회들이 많이 세워지길 바랄 뿐이다.

(흠정역 홍보 동영상 클릭)

Posted by 사무엘

2011/09/19 08:13 2011/09/19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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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에서 ‘남산’은 보통명사와 고유명사의 경계가 모호한 단어이다. 그래서 한국에는 남산이 여러 군데 있다. 경주에도 남산이 있고 서울에도 남산이 있다. 그럼 애국가 2절 가사에 있는 남산은 특정 남산일까 아니면 보편적(?)인 남산을 가리킬까?

서울의 남산은 용산구와 중구, 정말로 서울의 정중앙에 있는 산이다. 그렇게 크거나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산은 산이다. 한때는 국가의 첩보 기관이 이 근처에 있었던지라 남산에 끌려갔다는 말은 코렁탕 같은 단어와 연관되어 무척 무서운 말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다 옛날 이야기이다.

대도시의 한가운데를 가로막고 있고 또 그렇게 크지도 않은 산이다 보니, 교통 편의를 위해 이 산을 정면으로 관통하는 터널이 진작부터 뚫렸다. 그것이 바로 ‘남산 n호 터널’이라고 알려진 터널들이며 이때 1<=n<=3이다. ‘제n’ 대신 ‘n호’라고 번호가 붙은 게 좀 특이한 작명 컨벤션이다. 혼잡 통행료가 징수되는 터널로도 알려져 있다.

세 터널은 모두 길이가 1.3~1.6km에 달하여 한강 다리보다 길이가 길며, 간격이 좀 긴 지하철 역간 거리 정도 된다. 이들 터널이 건설되던 시절에는 광폭 터널 같은 기술은 없었기 때문에, 크고 아름다운 서울 도로를 주행하다가 겨우 2차선 나부랭이의 좁고 낡은 터널로 들어가면 좀 놀라게 된다.

가장 먼저 건설된 남산 1호 터널은 용산구 한남동에서 중구 필동을 거쳐서 명동과 종로 2가로 그대로 이어진다. 남쪽으로는 한남 대교와 경부 고속도로로 직결. 그야말로 강남과 종로를 잇는 핵심 교통축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왕복 2차선 터널 하나만 있다가 나중에 터널을 하나 더 건설하여 왕복 4차선이 되었다. 그래도 오늘날의 교통량을 감안하면 여전히 좁다.

남산 2호 터널은 1호 터널과는 반대 방향으로 남산을 X자로 관통한다(물론 양 터널끼리는 입체 교차하며 만나지 않음). 중구 장충동과 용산구 이태원동을 연결하는데, 북쪽 방면에서의 진입로는 큰 도로와 바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야 한다. 즉, 접근이 좀 불편하다.

2호 터널은 남산 터널들 중에 가장 길지만 4차선이 아니라 여전히 2차선이고, 유일하게 혼잡 통행료를 징수하지 않는다. 1호와 3호가 ↖ 선형인 반면, 2호만 ↗ 선형인 것도 특징이다. 2호는 나머지 둘과는 달리 경유하는 시내버스도 전혀 없다. 2호는 아무래도 명동 같은 도심과 직접 맞닿아 있지는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끝으로 남산 3호 터널은 남쪽은 2호와 비슷한 용산2가동에서 시작하여 중구 회현동 내지 명동으로 간다. 북쪽으로는 서울 시청으로 가고, 남쪽으로는 반포 대교를 따라 고속버스 터미널, 예술의 전당(남부 순환로)과 우면산 터널까지 쭉 갈 수 있다. 1호와 비슷한 위상이며 1호 터널의 역할 분담을 위해 건설되었을 거라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요컨대 남산 터널들 중 2호만 위상이 좀 다르다.

난 정말 21세기엔 남산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철도도 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해 왔다. 특히 신분당선은 강남 역에서 한남 대교와 남산 1호 터널의 선형을 따라 광화문까지 연장돼야 하는데 웬 엉뚱하게 용산으로 가게 됐다고 하니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특히 서울 지하철 4호선은 용산 미군 기지와 남산을 피하느라 강북의 선형이 굉장히 이상해졌고 1호선과 어정쩡하게 중복 노선이 되어 있다.

2호를 제외한 남산 터널들은 비록 통행료를 걷는다고 하지만 고속도로 통행료와는 좀 다른 개념이다. 시설 이용료라기보다는 서울 중심부에 대한 불필요한 통과 교통의 억제가 목적이기 때문에, 차에 3명 이상만 타고 있으면 면제이다. 그리고 밤 9시 이후와 오전 7시 이전 사이에는 통행료를 걷지 않는다.

Posted by 사무엘

2011/08/23 19:25 2011/08/23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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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 the hood

예나 지금이나 생긴 것, 하는 일은 비슷한데 내부 메카니즘은 상당히 달라진 물건은 어떤 게 있을까?

※ 헬리콥터

회전익 항공기는 뱅글뱅글 돌아가는 로터의 영향을 받아 동체까지 반대 방향으로 돌게 된다. 그래서 이 현상을 상쇄하기 위해서 탠덤 형 헬리콥터는 동체가 길쭉하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시계/반시계) 도는 동일 크기의 로터가 앞뒤로 달려 있다. 철도 차량으로 치면 전후동력형 동차와 비슷한 형태. 그리고 동축 반전 로터형은 그 로터를 위아래 높이만 다르게 하여 동일 위치에 포개 놓았다. 양방향으로 도는 로터 두 개를 모두 배치함으로써 동체의 회전을 방지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그러나 동축 반전 로터는 만들기가 더 어렵고 고속 주행의 효율이 떨어진다는 점 때문에 오늘날 대부분의 헬리콥터는 꼬리날개(테일 로터)를 수직 방향으로 따로 다는 방식을 쓰고 있다. 뭐, 테일 로터 방식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어서 동체를 뜨게 하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 잉여 로터에다가 엔진의 출력이 쓸데없이 낭비된다는 점, 그리고 테일 로터는 사람이 끼여서 죽거나 다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는 점이 지적되곤 한다만...
어쨌든 요지는, 옛날에는 꼬리날개의 기능을 다른 형태로 구현한 헬리콥터도 있었다는 것이다.

※ 마우스

구슬을 굴리던 방식에서 광학 레이저로 위치를 탐지하는 방식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사실은, 볼마우스가 바닥 매체에 관계없이 동작 가능하고 가끔은 사람이 일부러 트랙볼처럼 아래의 볼을 직접 굴려서 포인터를 움직일 수도 있어서 심리적으로는 무척 편하다. 그러나 볼에 먼지와 이물질이 껴서 주기적으로 청소가 필요하다는 건 답이 없는 문제이다. 청소를 안 해 주면 동작이 금세 뻑뻑해지고, 포인터가 잘 안 움직이고...;; 불편하다. 청소 때문에 볼은 필연적으로 분리가 무척 용이한 구조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공공 PC에서 마우스의 볼은 자주 분실되기도 했다.

오늘날, 아래에 볼이 달려 있지 않은 요즘 마우스를 보면 본인은 옛날 생각이 난다. 초창기의 광마우스는 반드시 바닥에다 마우스 패드를 깔고 써야 했고 가끔 마우스 포인터가 오작동으로 움직이는 등 단점도 있었으나, 요즘은 많이 개선되었다.

※ 아날로그 시계

생긴 건 1부터 12까지 일정 간격으로 새겨진 원판에 시침과 분침(, 그리고 초침)이 놓인 구조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하지만 옛날의 시계는 태엽과 톱니바퀴로 돌아가는 구조이던 것이 오늘날의 시계는 반도체를 이용한 전자식 쿼츠 시계로 다 바뀌었다. 예전에 글로 쓴 적이 있듯이, 둘은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 쿼츠 시계는 단순히 전기 에너지로 기계식 시계를 돌리는 시계가 아니다.

※ 모니터

21세기엔 컴퓨터 모니터든 텔레비전이든, 크고 아름답고 둥글기까지 하던 브라운관이 디스플레이 장비에서 완전히 퇴출되었다. 그 타이밍이 플로피 디스크나 카세트 테이프의 퇴출과도 시기적으로 비슷한 것 같다.
컴퓨터의 두뇌인 집적 회로가 더욱 작고 정밀해진 것만큼이나 디스플레이 장비의 소형화도 스마트폰 같은 작은 컴퓨터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다. 고작 단색, 혹은 청색이 표현 안 되던 저해상도 화면도 이젠 안녕이다.

액정 모니터는 전기 적게 먹고 전자파 안 나오고, 작고 가볍다. 물론, 단점도 없지는 않아서 특히 초창기엔 비슷한 크기와 성능의 브라운관 모니터보다 상당히 비싸고, refresh rate 및 최대 해상도가 떨어지고 색감이 좀 시원찮으며, 설계 해상도 외의 해상도에서는 픽셀이 번지고 불량 화소 같은 문제가 있었다만.. 오늘날은 역시 상당수 개선되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옛날 브라운관 모니터는 다양한 해상도에서도 픽셀이 번지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모니터를 처음 켰을 때는 무슨 형광등처럼 화면이 표시되는 데 딜레이가 길며 그것도 서서히 fade in이 됐었다. 이런 장면 역시 액정 화면에서는 볼 일이 없어져 있다.

※ 철도 차량

잘 알다시피, 옛날의 그 크고 아름답던 증기 기관차가 디젤로 바뀌고, 나중에는 최종 완전체인 전기 동력차로 바뀌었다.
그리고 똑같이 전동차도 처음에는 원시적인 저항· 쵸퍼 제어이던 것이 오늘날은 만렙인 VVVF 기반 제어로 바뀌었다.
심지어 VVVF 내부에서도 서열이 있어서, 처음에 GTO 소자이던 것이 더 조용하고 효율 좋은 IGBT 소자 기반으로 바뀌었다.
전기 철도는 힘 좋고(탁월한 가감속력) 조용하고 공해 물질이 배출되지 않으며 동력비 조절이 유연하다는 압도적인 장점으로 인해 철도의 주류로 자리잡았다. 특히 전기 없이는 고속철이나 지하철이 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 프린터

한 20년 전의 컴퓨터 입문 서적을 보면 프린터의 메카니즘으로는 도트, 열전사, 잉크젯, 레이저 4종류가 있다. 그 중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건 역시 잉크젯과 레이저. 그렇게도 비싸던 레이저 프린터가 이렇게까지 싸져서 가정용으로 보급된 건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잉크젯은 프린터 값이 잉크 카트리지 값보다 더 싼 기형적인 물건이 됐고..

마치 오늘날 286, 386 급-_- CPU는 키오스크나 우주선-_-, 임베디드용으로나 제한적으로 쓰이듯, 도트와 열전사는 영수증이나 각종 토큰 같은 걸 찍는 용도로 물러났다. 그나마 도트는 진짜 완전히 사라진 듯하고, 요즘 기계는 영수증도 열전사 방식으로, 언뜻 보기에 레이저 프린터가 돌아가는 것처럼 조용히 쓰윽~ 인쇄하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1/08/11 08:28 2011/08/11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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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 이야기

본인은 성경을 믿는 크리스천으로서 분명한 종말론자이다. 그리고 어찌 보면 시한부 종말(그것도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도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종말 날짜를 1년 단위 이하로 구체적으로 확정한다거나, 한술 더 떠서 그 종말 날짜에 맞춰 현 사회로부터 이탈을 감행한다거나 무슨 특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는 결코, 절대로 주장하지 않는다.

그런 걸 부추기는 인간들은 그 어떤 명분을 내세우든지 무조건 성경을 벗어난 이단 사이비이며, 세상에 민폐 끼치는 사회악이다. 그들이 순진한 사람들 내지 현 사회에 불만 많은 약자들을 현혹하여 가정 파탄내고 사람 인생 망치고, 성경에 입각한 건전한 진짜 종말론까지 죄다 사이비로 매도시킨 해악을 생각하자면, 그들은 가히 “숨쉬지 마라, 산소 아깝다. 네놈을 살려 두긴 쌀이 아까워!” 급의 암적 존재들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서 본인이 말하는 종말론이란, 이 인간 세상이 언제까지나 이대로 지속되지는 않으며, 특히 여러분에게 더 잘 와닿게 말하자면, 21~22세기를 넘길 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 맥락에서이다.

특히, 예수님이 가까운 미래에 공중과 지상으로 재림할 것이고(특히 공중 재림의 경우 휴거 포함) 성경에 기록된 것 그대로 세상이 끝날 뿐, 무슨 핵 전쟁이나 태양의 백색왜성화, 온실효과, 외계인 침략 같은 것 때문에 인류가 허무하게 멸망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지구에 재림하실 터인데 달이나 화성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이걸 생각하면 크리스천은 각종 SF물도 김이 확 빠지고 재미없어서 못 본다. -_-;;

종말에 대해 성경은 무어라 말하는가?
일단 종말 자체는 있으며, 말세엔 재림이고 종말이고 뭐고 다 안드로메다로 보낸 채 사람들의 내세관 자체가 무뎌질 거라는 예언이 성경에 있다. 베드로후서 3장이 다 이런 내용이다. 예수님은 속히 올 거라고 성경의 끝부분에다 약속해 놓으셨다. (계 22:20)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종말의 날짜를 결코 알려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 ... (막 13:32)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 때나 그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신의 권능 안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행 1:7)

천국, 지옥을 보고 왔다는 얘기가 순도 100% 구라인 것만큼이나, 어느 날 어느 때에 예수가 재림하고 휴거가 일어나고 세상 종말이 온다는 소리도 순도 100% 구라이다.
전자는 장소의 금기이고 후자는 시간의 금기라 하겠다. 우리 착한 크리스천들은 절대로 그런 데에 현혹되지 말기 바란다. 천국, 지옥 자체는 절대적으로 존재하며 재림과 휴거(흔히 말하는 종말) 역시 절대적으로 사실이라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맥락에서 말이다.

인간이 종말의 시기를 정확히 알고 있다면,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그 날짜가 되기 전에 이미 종말이 온다.
개그 만화 일화 종말편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다. 아니, 세상은 그보다 훨씬 더 막장으로 치닫는다. 그때 사람들이 그 애니에 묘사된 대로 곱게 똥이나 처바르고 앉아 있겠는가? -_-;;;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러분이 인간을 창조하고 언젠가 세상을 심판하려고 스케줄을 짜 놓고 있는 신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런데 인간들이 신이 생각도 안 하고 있는 날짜를 잡아서 종말드립을 치고 있으면, 신이 보기엔 이것들이 무신론자 이상으로 얼마나 같잖고 한심하게 보일까? 종말의 사유를 자기들이 제공해 놓고는(자승자박) 또 종말에 대비도 하겠다고 설치는 꼴이다.
신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라. 미쳤다고 종말 날짜를 인간들에게 계시해 주겠는가?

윤 성목 목사님의 글 클릭.
...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자신들의 예언이 틀리면 회개하는 법이 없습니다. (언제나 변명만 할 뿐입니다)
... 2012년은 정말 기대되는 한 해입니다. 많은 종교 단제에서 2012년에 재림, 종말, 심판 등을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 예언이라면 적중률은 무조건 100%이다. 단 하나라도 틀리면 그건 거짓말이다. 죄가 단 하나라도 있으면 안 되는 것과 정확히 동일한 맥락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의 예언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인 것도 결코 아니다. 수 6:26와 왕상 16:34 (여리고 재건자), 그리고 왕상 13:2와 왕하 23:16 (요시야 왕)정도로 섬뜩할 만치 정확하게 맞아떨어져야 한다.

오죽했으면 참 계시와 거짓 계시를 구분하는 방법은 아주 허탈하게도 '그 계시의 성취 여부'라고 성경에 쓰여 있을 정도이며(신 18:22), 거짓 대언자로 판명된 사람은 사형으로 즉결 처분이었다(신 13). -_-;; 신정 국가 이스라엘에서는 그게 마치 위조지폐를 유포하는 것만큼이나 건전한 신앙의 기강을 문란케 하는 악질 중의 악질 중죄였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요즘 이단 사이비 교주들은 한국이나 미국 같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만나서 참 좋은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다. -_-;;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20세기 초반에 미국에서 여러 번 시한부 종말론을 시전했다가 버로우 탄 적이 있다. 그들의 흑역사이다. 종교와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종말설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10년도 더 전의 Y2K 문제는 어땠던가?

특별히 한국에서는 1992년 10월 28일 다미선교회 휴거 병크가 한국 교회에서 재림· 종말 신앙의 씨를 완전히 말려 버렸다. 특히 요한계시록은 이단 교리들의 원천으로 매도되면서 사 29:11-12와 같은 급의 금기· 봉인의 책이 되고 말았다. 난 성경을 믿는다면서 휴거와 예수님의 지상 재림을 안 믿는 사람을 보면 놀라는데, 그쪽에서는 나를 보고 또 놀라더라.
(참고로, 정말 재미있게도 그 이튿날인 1992년 10월 29일은 연세대 마 광수 교수가 외설 혐의로 체포되었던 날이다. ㄲㄲ 우연의 일치이겠지..)

그런데, 이 많고 많은 거짓 종말론자들이 예언이 빗나간 후에 공개적으로 사죄하고 회개했다는 소리는 난 정말 못 듣고 지냈다. 이것도 신기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이 빨리 뒤집어 엎어져 버리길 바라는 사회 부적응자, 그리고 진리가 아니라 자기가 믿고 싶은 걸 믿는 잘못된 욕심쟁이 위주로, 잘못된 종말론에 현혹되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있어 왔다. 그리고 이런 수요(?)에 부합하는 거짓 교사, 거짓 대언자는 앞으로도 없어질 일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조차도 “저런 혹세무민하는 나쁜놈들은 생기는 족족 내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 죽여 버리겠다”고 약속하신 적이 없다. 오히려 너희들이 진짜로 재물이 아닌 주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갈망하고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서 저런 낚시꾼들의 출현을 종종 허락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음을 잊지 말자(신 13:3).

하나님이 너무해 보이는가? 성경의 하나님은 완전히 마음이 삐딱해져 버린 사람에게는 잘못된 기도에도 응답해 주시고, 그를 심지어 더욱 완악하게 하고(출애굽기의 파라오), 그가 잘못된 생각에 그대로 속아넘어가게(아합 왕) 골탕도 먹이는 다이나믹한 분이다.

폴 워셔(Paul Washer) 목사 같은 분은 한술 더 떠서 “저렇게 이단 교리에 속아넘어간 사람들은 불쌍한 피해자가 아닙니다. 자업자득이며, 그 마음 상태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심판의 결과일 뿐입니다”라고까지 부르짖는다. 그분은 행실에 변화가 없는 사람은 아예 구원도 못 받은 거라는 식으로 너무 또 주권 구원 내지 행위로 가는 경향이 없지는 않는 듯하나, 그래도 잘못된 은사주의와 종말론이 난무하는 오늘날 교계에 오아시스 같은 용기 있고 훌륭한 분인 건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예수님은 과연 언제쯤 다시 오실까? 휴거는 언제쯤 일어나고 세상은 언제쯤 끝날까?
점점 그때가 임박하고 있다는 막연한 말만 할 수 있을 뿐 그건 정말 나도 모른다.
기름값이 1리터당 얼마가 되고 대학 등록금이 얼마가 됐을 때쯤 끝이 날지, 서민 경제가 얼마나 더 파탄나고 국가의 부채가 얼마까지 치달으며, 이 명박보다 얼마나 더 막장인 대통령이 나올 때쯤 세상이 끝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암울한 예만 드니, 종말이 생각보다 가까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_-;;;;; ㄲㄲㄲㄲㄲㄲ

난 다음에 누가 대통령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3, 4년쯤 뒤엔 “차라리 2MB 시절이 나았어” 분명 이런 말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오래 전부터 예상해 왔다. 하지만 2MB 님을 몸서리치게 싫어하는 분들은 “그건 아니야. 정말 2MB가 역사상 최악이야. 다음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저놈보다는 나을 거야”라고 얘기를 하는데...;;;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_-;;

비록 앞서 예를 들었던 그런 나쁜 시한부 종말론만치 해롭지는 않지만, 성경을 믿는 일부 사람들이 실수를 저지른 것도 있다. 세상 정세와 과학 기술을 성경에다 너무 아전인수격으로 갖다붙인 나머지 베리칩이 666이고 유럽 연합이 요한계시록의 열 뿔이라는 식으로 드립을 많이 쳤다. 의도야 어떠했든, 오류는 오류였다고 정직하게 인정해야 할 것이다.
무화과나무 비유를 들면서 이스라엘의 국가 수립을 목격한 세대가 예수님의 재림도 목격할 거라고까지 하는데, 그렇다면 재림은 1950년대로부터 늦어도 7, 80년 안으로 일어나야 한다. 과연?

난 '개인적으로는', 정말 내 추측으로는 우리 부모 세대는 아슬아슬할 수도 있고, 내가 중장년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아마 끝이 올 것 같다. -_-;; 7, 80년까지는 아니더라도 100년 안으로. 어쩌면 32비트 유닉스 time이 끝나는 2038년대와 근접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하늘나라 가서 이 예측의 오차가 얼마나 됐나 분석해 볼 생각이다. ㄲㄲㄲ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각종 세상 정세와 전쟁, 재앙을 보고 “말세야 말세. 세상은 곧 끝장 날 거야”라고 탄식했지만 종말은 그리 호락호락 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세상이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이상한 양상을 보이며 막장으로 치닫는 속도를 보면 또 오래 지속은 못 될 것 같고.. 이런 생각들을 종합한 타협점을 그 정도로 잡고 있다는 뜻.
이건 내가 전혀 책임지지 않는 추측이므로 그냥 재미로 읽고 잊어버리는 게 여러분의 정신 건강에 좋다.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 난 분명히 이렇게 얘기했다.

어떤 경우든, 미리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빠져나가고 벙커 짓고 농사 짓는다거나 하는 뻘짓을 할 필요가 없다. 특히 대환란 통과론자들의 공갈에 현혹되지 말라. 그냥 마지막 순간까지 사회에서의 자기 본분에 충실하고 신실하게 주의 일을 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종말 대비책이다.

크리스천은 먼 앞날을 내다보고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안목도 키울 필요가 있다. 왜냐 하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아담 이래로 전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인 것만큼이나, 그분의 재림도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런 중요한 날을 그렇게 호락호락 예측 가능한 날에, 그것도 하나님 모르는 죄인들이 만들어 낸 과학 기술이나 국제 정세에 그리도 쉽게 휘둘려 집행하실 리는 없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 언제 오시더라도 우리는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정신줄 놓고서 헛짓 안 하는 건데..-_- 역시나 주님은 너무 빨리 오셨어!” 라고 탄식할 수밖에 없게 될 입장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자마자 하늘로 당장 데려가시지 않고, 왜 이 험악한 세상에 불신자들과 함께 어울려 놔두고 계신지를 생각해 봐도 답은 명확하지 않은가?

Posted by 사무엘

2011/07/25 08:32 2011/07/2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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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갖가지 종류의 상(prize)이 있다.
그 중 세계구급인 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그토록 입상자를 배출하려고 애써도 결국 못 받고 있는 노벨 상(과학 분야)이 있고, 수학 분야에서 노벨 상보다 더 받기 어렵다는 필즈 상이 있다.
그리고 전산학계에는 튜링 상이 있고, 사회· 정치 분야에는 막사이사이 상도 있으며 교육· 문화 분야에는 세종대왕 상도 있(었)다고 카더라.

이런 상들은 연구 실적을 기관에서 따로 평가하여 입상자가 결정되는 상이지만, 아예 contest, competition을 치러서 입상자를 결정하는 대회 성격이 짙은 상도 있다. 각종 올림픽, 올림피아드가 그 예이며, 이런 곳은 상이 메달의 형태로 등급이 매겨져 있다.

그런데, 이런 세상의 많고 많은 상 중엔 영예(honor, pride)가 아닌 굴욕(humiliation)에 가까운 상도 있으니,
다윈 상이라고 혹시 들어 보셨는가?
이건 개그 내지 풍자 성격으로 온라인 공간에서 수여되는 상인데...
열성 유전자를 지닌 사람이 자신의 씨를 스스로 끊음으로써 인류의 발전/진화-_-에 공헌한 경우 수상할 수 있다.
공식 홈페이지는 여기. http://www.darwinawards.com/

그래, 한 마디로 개소리이다. -_-;;;
쉽게 말해서 ㅂㅅ같은 개죽음을 맞이하거나 최소한 생식불능이 된 사람이라면 이 상을 받을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조건이 있다.

1. 수상자는 기막히고 놀라울 정도로 충분히 멍청한 짓을 하거나 어이없는 일을 당해야 한다.
2. 수상자는 그로 인해 죽거나 고자가 돼야 한다. 내가 고자라니
3. 그 행동은 의도했건 안 했건 자신의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의지로 인해 야기된 것이어야 한다.
4. 당연한 말이지만, 수상자는 정상적인 지적 능력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
5. 행적에 신빙성이 있어야 한다. 공신력 있는 매체에 보도되었다거나, 증언이 충분히 믿을 만하다거나.

예를 들자면,
- 공짜로 음료수를 마시기 위해 자판기를 기울이다 자판기에 깔려 죽은 사람. -_-;;; (1994년)
- 독사에게 물렸는데, 병원에 안 가고 술집에서 술이나 퍼 마시면서 깡으로 “난 독사에게 물리고도 끄떡없어”라고 자랑을 하고는 곧 죽어 버린 어느 미국인 남성 (1997년)
- 자기 집에다가 수심이 자기 키보다 얕게 수영장을 설치하고는 다이빙 후 목이 부러져 죽은 사람 (1998년)
- 광산에서 수정을 캐고 있었는데 위에 달려 있던 수정이 떨어지면서 거기에 정통으로 찔려 죽은 멕시코의 광부.. (2001년)
- 벌집을 옮기려고 온몸을 얼굴까지 보호막으로 둘러쌌는데, 작업 중에 그만 밀폐된 비닐봉지 안에서 질식사한 농부.. 숨구멍을 안 뚫었다. -_-;; (2002년)

이런 사람들이 받아 왔다. ㄲㄲㄲㄲㄲㄲㄲㄲ

이런 상이 다루는 사건들이든, 이런 상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이든 모두 단순히 엽기 해외 토픽 정도로 치부될 법도 한데
이 다윈 상은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작년(2010) 여름에 우리나라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첫 다윈 상 수상자가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대전 지하철 서대전네거리 역에서 휠체어 탄 채로 추락사한 어느 장애인.. ㅠㅠㅠㅠㅠ

구체적인 스토리를 아는 분도 있겠지만...
고인은 8월 25일, 지하철 타러 내려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아주 간발의 차이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한참 전에 먼저 탄 어느 60대 여인 혼자만을 싣고 매정하게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가 버렸다.
내가 알기로 지하철의 엘리베이터는 한번 문이 열리고 나면 닫히지 않고 굉장히 오랫동안 열려 있으며, 주행 속도도 아주 느리다. 비장애인들이 남용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러니, 이 엘리베이터를 놓치면 또 몇 분이 그냥 날아가는지 모른다.

나라도 짜증 났겠다. 그래서 고인은 빡쳤는지, 닫힌 엘리베이터 문을 휠체어로 쾅쾅 들이받았다. 그런데 2타 때는 약한 엘리베이터 문이 벌어졌고, 3타 때는 그가 그대로 밑으로 엘리베이터 문 아래로 추락해 버렸다.
서대전네거리 역이 얼마나 깊은 역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역이 무슨 여의나루나 만덕 같은 역이 아닌 이상, 설마 사람이 추락사할 높이였겠나 싶다. 허나, 몸이 불편했던 장애인은 충격을 최소화하는 자세를 유지하지 못했는지, 아래의 엘리베이터 상부에 휠체어에 앉은 채로 떨어져서 그대로 사망. 떨어지면서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_-;;;

여인이 탄 엘리베이터가 아래층에 막 도착하려던 찰나, 그 장애인과 휠체어가 엘리베이터 카 위로 쾅 떨어졌으며, 충격을 받은 엘리베이터는 그대로 불이 꺼지고 고장이 났다. 결국 그 여인도 엘리베이터 안에 한동안 갇혔다. -_-;;; 마른 하늘에 날벼락.
이 모든 장면은 CCTV에 고스란히 찍혔다.
동영상은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퍼졌으며, 외국에까지 소개되면서 네티즌들은 이 사람을 올해의 다윈 상 1등급 수상자로 뽑게 되었다.

듣자하니, 당시 엘리베이터에 구조적인 이상은 없었다고 한다. 무거운 휠체어로 그 속도로 저 정도로 작정하고 쾅쾅 들이받는 건 어차피 설계 기준을 초과하는 충격이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관리자의 관점에서는 면책 사유가 성립한다고. 그러니 고인의 죽음은 정말 빼도 박도 못하고 자업자득인 꼴이 됐다. 완전 캐굴욕. 그저 묵념뿐이다.

다윈 상의 취지 자체가 고인드립인 건 말할 것도 없고, 한국식 정서라면 망자에 대한 명예 훼손감일 텐데. 에휴...;;
사실은 찰스 다윈조차도 그런 상의 이름에 자기 이름이 붙은 것으로 인해 통탄할지도 모르겠다. 다윈에 대한 고인드립 ㄲㄲㄲㄲㄲ
하지만 다윈 상의 발상 자체가 진화론적이니 이 역시 자업자득이다.
참고로,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나라는 한때(일제 강점기 때) 다윈의 기일을 기려서 과학의 날을 제정하기도 한 적이 있다. 왜 하필 다윈일까.;;

에어장 목사 정도면 다윈 상의 범주에 들지 궁금하다. 그런데 그건 굴욕적이긴 해도, 바보짓이라기보다는 천하의 개쌍놈짓을 하다가 자업자득으로 명을 다한 것이기 때문에 조금은 성격이 다르다 하겠다.

다윈 상 자체에는 뭔가 노골적인 종교적 이념이 없지만, 그래도 이건 창조· 진화 논쟁을 의식해서, 더 나아가 기독교를 좀 조롱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다는 뉘앙스가 전혀 없다고 말하면 그 역시 거짓말일 것 같다. 날으는 스파게티 괴물(FSM 날스괴;;)처럼 말이다. 유한 상태 기계가 아니다!
FSM 의 공식 홈페이지: http://www.venganza.org/

FSM 하니까 여러 모로 라면교 교주가 떠오르던데.. 한국 버전은 라면이고 양놈들 버전은 스파게티이다. -_-;;
라면교 교주는 끓는 물에 돌아가셨다가 3분 만에 부활하셨다거나, 극악한 사탄의 무리인 비빔면과 짜파게티 무리를 조심하고 적그리스도인 뿌셔뿌셔에게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는 둥 그냥 웃고 넘길 수 있는 패러디 수준인 반면..
FSM에는 좀 더 수위가 높은 비수가 꽂혀 있다.

FSM 신도들이 웬만하면 하지 말았으면 하는 짓
1. 웬만하면 나를 믿는다고 남들보다 성스러운 척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남이 나를 믿지 않는다고 마음 상하지 않으며, 어차피 안 믿는 자들에게 하려는 말들이 아니므로 말 돌리지 마라.
2. 웬만하면 내 존재를 남들을 괴롭히는 핑계로 사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
6. 웬만하면 내 신전을 짓는데 수억금을 낭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더 좋은 데 쓸 데가 많다.
7. 웬만하면 내가 임하여 영지를 내린다고 떠들고 다니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웃을 사랑하랬다. 좀 알아 먹어라.
뭐 이런 것들이 있다.

흔히 “종교는 나약한 사람들이나 의지하는 수단이지. 난 차라리 내 주먹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거보다 조금 온화(?)한 사람이 한다는 말은 뻔하다. “뭐, 심신 수양을 위해서 종교 하나 갖는 거 나쁘지는 않지. 하지만 너무 빠지지는 말고, 특히 네 종교만 옳다는 독단에 빠지지는 마라”

국내외의 유~명한 개독안티 석학들은 종교가 지금까지 저질러 온 온갖 폐해들, 종교 때문에 벌어진 각종 참극은 둘째치고라도 그게 사람의 이성을 얼마나 마비시키고 우민화해 왔는지를 지적한다.
그걸 직설적으로 표현 안 하고 교묘하게 sarcasm을 섞어 풍자하다 보니 FSM 같은 것도 만들어진 것이리라.
애초에, FSM교는 “어이쿠! 창조론과 지적 설계를 가르칠 정도로 학교 교육이 막장으로 치닫는다면, 아예 날으는 스파게티 괴물님을 가르쳐도 되겠네요 ㅋㅋㅋㅋㅋ” 이런 비꼼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난 그런 것에는 별로 대응할 필요를 못 느껴서 대응 안 한다.
걔네들의 말 중에서 한 20~30% 정도는 특정 문맥에서 '몇몇 가정이 성립한다는 전제 하에서' 맞는 말도 물론 있다.
마치 성경에서 “어리석은 자가 '마음 속으로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라는 문장 자체는 참인 것과 같은 맥락에서 말이다.

신을 찾아 온 것도 인간이고 그 신이 필요없다고 신 없이 살자고 부르짖는 것도 인간이다. 그런데 과연 신 없이 인간이 잘 살면 얼마나 훌륭하게 잘 살 수 있을까?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과연 당신의 혼을 사랑하고 걱정해서 그렇게 말하는 걸까?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에게 진짜 중요하고 필요한 가치는 눈으로, 시스템으로 측정할 수 없으며 돈과 권력과 과학 기술로 얻을 수 없다.
그걸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의 입시 위주 교육 제도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고, 아무리 사회 개혁을 외쳐도 사회 구조는 여기서 저기로 쳇바퀴만 돌 뿐 바뀌지 않는 것이다. 잘 생각해 봐라.
아무리 돈을 쳐발라서 스펙 완벽한 배우자와 결혼해도 행복한 결혼 생활을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상류층들이 이혼을 엄청 많이 한다. 이래도 아직 이해가 안 되겠는가?

뭐 이런 예가 부지기수이다. 인간이 우주에 갔다 오고 핵무기를 발명하고 지구촌을 인터넷으로 연결했다 한들, 과연 저 구도가 본질적으로 바뀔 수가 있을까?
이건 내 주관적인 생각이다만, 세상에 사람들의 빈부 격차가 이토록 심하고 환경과 여건 차이가 난다고 해도 하나님이 공평하다고 하는 이유가 이런 곳에 있는 것 같다. 인간에게 진짜로 공평해야 하는 건 여전히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저렇게 영적으로 불만족스럽고 부족한 것이 존재하는 한, 무신론자들이 아무리 날뛰어도 절대자를 찾는 사람(굳이 기독교가 아니어도)은 없어질 수 없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무신론자 중에 미신에 빠진 유신론자들이 너무 불쌍한 나머지 그들을 위해 대신 죽을 정도의 사랑을 그들에게 베푸는 사람이라도 나오지 않는 이상 말이다.
세상에 저런 데에 왜 매달리는지 내 머리로 진짜 이해가 안 되는 시한부 종말론자, 도박 중독자, 이단들도 세상에 절대로 안 없어지고 있는데 그것보다 훨씬 더 건전한 게 당신의 논리에 설득되어 없어질 거라고? 꿈 깨라.

끝으로..
나의 종교가 '철도'라고 말한다면 그건 맞을 가능성이 높다. ㅋㅋㅋㅋ
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복음은 나에게 종교가 아니다. 편의상 여타 종교들 중 하나인 것처럼 분류하는 경우는 있지만 본인이 개인적으로 그걸 종교 차원에서 받아들이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도대체 기독교는 왜 이리도 교파가 많고 이단들도 많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간단하다.
“윈도우즈에만 온통 악성 코드나 보안 이슈가 들끓고 있고 맥OS나 리눅스는 바이러스가 거의 없는 것과 비슷한--같지는 않지만-- 이유 때문입니다. 설마 그게 OS의 기술적 우열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하시지는 않겠죠?

Posted by 사무엘

2011/07/02 08:15 2011/07/02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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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하면 철도 매니아라면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철 차량을 납품한 국가(알스톰)를 바로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는 철도뿐만이 아니라 항공 분야에서도 우리나라와 깊은 인연이 있다. 그 내막을 들어 보면 놀랄 것이다(이미 상식 차원에서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과거에 지구를 누비는 민간 여객기(특히 대형)를 만드는 회사는 오로지 미국 보잉 사밖에 없었다. 독점이었다.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물건을 만들어 낼 기술과 자본력을 갖춘 곳이 지구상에 흔할 수가 없으니까.
실제로,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단일 건축물(위에 천장과 지붕이 있는-_-)은 바로 보잉 사의 비행기 생산 공장이라고 한다. 뭐, 미국 국방성도 무지하게 크고 아름답다고 하고, 또 미국 모처에 있는 퇴역 전투기 야적장도 가히 억소리 나는 규모라고는 하던데. 아무튼..;;

1970년대가 되자 이 민간 여객기 시장에 프랑스, 영국, 독일이 연합하여 끼어들었다. 그들이 세운 회사는 그 이름도 유명한 에어버스. 독일과 영국에서 부품을 만들어서 이들을 프랑스가 최종 조립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 연구해서 콩코드만 만든 게 아니라, 독일까지 끌어들인 후 더 실용성이 높은 아음속 여객기도 개발해 낸 셈이다. 비행기 하나 개발하는 데 얼마나 많은 돈과 노력이 들었을까?

허나, 비행기는 잘 알다시피 가히 상상을 초월하게 비싼 물건이며, 다른 어느 교통수단보다도 주행 중의 risk가 크고 안정성과 신뢰성이 중요하다. 그래서 에어버스 여객기가 개발된 뒤에도, 보수적인 기존 항공사들은 지금까지 무난하게 안정성이 검증되어 온 보잉 비행기를 그냥 이용하지, 역사 짧은 파릇파릇한 회사에서 갓 만든 비행기의 도입을 꺼려 왔다.

우리나라만 해도, 최근에 도철(SMRT)에서 음 사장의 주도하에 야심차게 지하철 전동차를 자체 개발했지만, 수출은 고사하고 정작 근처의 서울과 인천시에서조차도 품질을 못 믿겠다고 회의적인 반응이었던 걸 기억하라.
지하철이 가다가 선로 위에서 좀 멈춘다고 해서 승객이 다칠 리도 없겠건만, 그 안전한 철도 차량 도입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닌데 하물며 여객기는?
그래서 에어버스 여객기는 '홈그라운드'인 영국, 프랑스, 독일 국적의 항공사에서밖에 이용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래서는 이윤은커녕 언제쯤 개발비나 제대로 뽑을 수 있으려나 하는 상황이었는데 1979년, 우리나라의 대한 항공이 꽤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변화를 꾀한다는 명목으로 에어버스 항공기를 대량 도입하여 이를 국내선과 아시아권에서 무사고로 성공적으로 잘 운영한 것이다. 그래서 에어버스가 세계에 널리 보급되고 민항기 시장에서 보잉 사와 대등한 양분 구도를 차지하게 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프랑스로서는 한국이 이보다 더 고마울 수 없었다. 당시의 대한 항공의 회장(겸 한진 그룹 회장)이던 故 조 중훈 씨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90년, 프랑스에서 굉장히 높은 등급의 훈장을 받았으며, 그 뒤에도 프랑스를 방문이라도 한다치면 거기서 완전 국빈급 예우를 받았다고 한다. 보통은 자국의 고위 정치인 또는 군 장성이나 받을 법한 등급의 훈장을 외국의 민간 기업인이 받은 것이다. 덧붙이자면 그의 아들도 나중에 프랑스에서, 아버지의 것보다는 등급이 낮지만, 훈장을 받았다.

뭐, 그가 매국 행위라도 해서 외국에서 훈장을 받은 것도 아니고, 국내 기업을 외면하고 외국 기업을 선택한 것도 아니었으니, 어쨌든 한국과 프랑스에서 모두 해피엔딩 스토리를 만든 것이고 잘 하긴 한 셈이다. 한때는 대한 항공이 사고를 많이 내서 특히 1997~99년 사이엔 1년 간격으로 비행기를 한 대씩 깨먹은 흑역사가 있는데, 그건 다 보잉 기종이었고 에어버스 기종은 아니었다. =_=;;;

이런 와중에 미국과 유럽에 이어, 잘 알다시피 중국까지도 항공· 우주 산업에 본격 뛰어들었으니 무서운 일이다. 우리나라는 언제쯤 이공계 육성 다시 좀 하려나. ㄲㄲㄲㄲㄲㄲㄲㄲ
심지어 나로 호도 차라리 러시아가 아닌 중국과 공동 연구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나돌 정도이다.

유럽 국가 중에서 프랑스는 상술했듯이 우리나라의 철도와 항공하고 이런 깊은 인연이 있고,
관련 국가로 또 이탈리아가 생각난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차라는 현대 포니를 디자인한 사람은 쥬지아로라는 이탈리아 디자이너이고,
아시아 음반으로서 세계를 석권한 88 올림픽 주제가 <손에 손잡고>를 작곡한 사람도 이탈리아 사람
이다.
뭔가 한국적인 정체성이 느껴지는 작품에 이런 외국인의 손길이 있다는 게 흥미롭다.

Posted by 사무엘

2011/05/30 08:21 2011/05/30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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