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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부터 우리나라는 정부에서 갑자기 우측 보행을 밀어붙이고 나섰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서울· 수도권 사람들은 당장 에스컬레이터나 무빙워크의 방향부터가 뒤바뀌어 그 변화를 오래 전부터 느꼈을 것이다.
수십 년간 유치원에서부터 귀가 따갑게 배워 온 “보행자 좌측, (차량 우측)”을 나라에서 왜 정면으로 부정하게 되었을까? 난 딱히 국가의 정책에 대해서 찬성이나 반대를 할 생각은 없고, 그냥 이와 관련된 교통 칼럼이나 좀 끄적여 보련다. ㄲㄲㄲ

동력 엔진이 발명되기 전에 마차를 몰 때부터, 인간은 도로를 다니는 교통수단의 통행 방향을 어느 쪽으로든 일관성 있게 통일해야 할 필요를 느껴 왔다. 여기에서 좌측이 선택되느냐 우측이 선택되느냐는, 딱히 절대적인 우열보다는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라든가 심지어 동서양의 문화와 세계관의 차이가 반영된 걸지도 모르겠다.

독자 여러분은 어느 방향이 더 직관적이고 자연스럽게 느껴지시는가?
뭐, 그것 말고도 마차 시절에 오른손으로 채찍을 잡은 마부가 채찍을 휘두르기 좋은 구도에 있는 방향이 채택되었다는 식의 루머도 전해지긴 한다.

영어와 국제 표준시와 영어 성경을 퍼뜨린 대영제국은 좌측 통행을 전세계에 퍼뜨렸다. 그러나 영국에서 독립해 나간 미국은 우측 통행을 시행했다. 그냥 반발 심리였나? ㅋㅋ
오늘날 자동차가 좌측 통행을 하는 나라는 영국, 일본, 오세아니아 주 전체(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인도, 태국 일대, 남아프리카 공화국 일대 같은 몇몇 나라밖에 없다. 딱 봐도 이들은 영국의 식민지 출신이거나 영국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여 근대화한 나라(일본)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영국이 철도를 세계 최초로 만든 나라인 만큼, 자동차가 우측이어도 철도는 좌측인 나라도 여럿 있다. 우리나라(남북한 모두)부터가 그 예이며, 중국, 프랑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이런 나라들이 지하철은 또 우측으로 건설해서 서로 꼬이는 경우가 좀 있음.

정리하자면,
산업 혁명 시절에 루저-_-;; 국력이 그리 강하지 못해서 철도를 자기보다 더 강한 나라의 영향으로 받아들이고 나중에 자동차는 또 미국 컨벤션대로 뒤죽박죽으로 받아들인 나라들이 대체로 철도 좌, 자동차 우가 된다... 이것도 우리나라가 딱 그 케이스이다.
그런 거 없이 좀 더 풍요로운 나라는 철도와 자동차가 모두 우측이고, (독일, 미국, 캐나다, 러시아 등)
영국 텃새가 강한 일부 나라는 철도와 자동차가 모두 좌측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영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태국 등)
하지만 철도가 우측, 자동차가 좌측인 흠좀무스러운 나라는 내가 아는 한 없다.

마치 왼손잡이가 드문 것만큼이나 오늘날 자동차가 좌측 통행을 하는 나라는 매우 드물다. 한국 기준으로 조수석에 운전대가 달린 자동차라... 본인부터도 상상이 잘 안 되며, 굉장히 헷갈릴 것 같다.;;; 설마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 페달 위치도 mirror되어 있으려나??

그런데 문제는 그 좌측 통행인 원조가 다른 나라가 아니라 영국이며, 그 드문 나라 축에 드는 일본도 세계를 호령하는 선진국· 경제 대국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무시를 할 수 없다. -_-;;
자동차를 수출하는 다국적 기업은 동일한 차 모델이라도 왼쪽 운전대와 오른쪽 운전대 configuration을 다 고려해야 한다. 이거 따로 만드는 원가를 줄이려고, 중앙의 조작대(에어컨, 카오디오 등이 있는 부분)를 아예 좌우 대칭으로 만들기도 한다. 소프트웨어의 로컬라이징으로 치면 아랍권의 R2L 텍스트를 고려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우리나라는 정책적으로 우측 통행을 밀어붙이기 전부터도 군대는 전통적으로 우측 통행을 한 걸로 기억한다. 본인의 훈련소 시절, 행군할 때도 마주 오는 소대가 있으면 서로 우측으로 비껴서 교행했다. 그리고 무슨 조선시대 전통 행사도 다 우측 통행을 했다고 하네?
그러던 게 좌측 통행이라는 게 한반도에 등장한 건 일제 때. 영국의 영향을 받은 일본의 영향인 셈이다.
일제 강점기가 장기화되어 일제 치하에서 자동차가 대중화했다면, 우리나라는 도로까지도 좌측 통행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는 우측이 대세라는 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거기에다 자동차를 마주 보고 걸을 수 있고 횡단보도에서도 더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 통행 방향은 자동차와 같은 방향인 우측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사실, 좌측 통행 시절에도 횡단보도는 예외적으로 우측 통행이 인정되었다. 그 이유는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러던 우리나라는 서울 지하철 2호선을 만들면서 느닷없이 철도까지도 우측으로 건설했다. 전해지는 문헌에 따르면,

1. 자동차 도로 중앙에 철교가 놓이게 되는데, 전동차의 진행 방향과 자동차의 진행 방향 사이의 이질감을 없애기 위해
2. 어차피 서울 지하철은 기존 국철과 직통 운행을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진행 방향을 바꿔도 별 문제 없을 것임

이런 요인이 감안된 거라고 한다. 그러나 2는 단견이었음이 훗날 드러났다. 이로 인해 서울 지하철 4호선과 과천선을 직결하느라 열차 통행 방향을 바꾸는 X자형 꽈배기굴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것은 철도 동호인들에게 선견지명 없는 철도 정책의 부산물이라는 까임거리를 제공하게 됐다.

하지만 잘 알다시피 철도는 조향이라는 게 아예 존재하지 않는 교통수단이기 때문에, 좌측으로 달리든 우측으로 달리든 기관사에게 헷갈릴 건 없다. 가령, 열차의 통행 방향이 다른 나라로 어떤 고속철이나 전동차가 수출된다고 하더라도, 조종간의 배치가 리모델링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

Posted by 사무엘

2011/03/13 08:41 2011/03/13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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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닥다리 기계 이야기

1. 총이 발명되면서 활은 전투 병기에서 완전히 은퇴하고, 레저 내지 스포츠용으로나 전락했다. 그런데 활이 총에 비해 독보적으로 갖는 장점은 바로 조용하다는 것.
이런 이유로 인해, 현대전에서도 일부 아주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는 저격수는 활까지는 아니어도 석궁을 써서 요인을 암살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물론, 어지간하면 저격용 소총에다 소음기를 달겠지만, 더 조용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말이다.

2. 증기 기관차는 동력원이 있으면서(마차나 글라이더나 돛단배와는 달리) 전기 에너지를 전혀 쓰지 않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디젤 전기 기관차는 말할 것도 없고, 기름을 이용하는 내연 기관도 시동 걸 때는 배터리로부터 전기 플러그의 점화가 필요하지만, 증기 기관차는 진짜로 전기 안 쓴다. (그래서 EMP 공격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_-)

3. 오늘날까지도 구닥다리 모래시계를 볼 수 있는 곳은 바로 사우나.. -_-;;
기온이 90~100도에 달하고 물로 축축하기까지 한 곳에서 시간 측정용으로 이것보다 더 좋은 물건은 없기 때문이다. ^^;;
그러고 보니 전자 기기가 무용지물인 곳에서는 쿼츠 시계가 아닌 태엽 시계를 다시 꺼내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4. 전기를 전혀 쓰지 않으면서 흔들림이 심한 곳에서 일관된 자형의 글씨를 쉽게 찍을 수 있는 기계는 역시 기계식 타자기밖에 없다.
하지만, “여행 중이거나 오랫동안 주거지를 떠나 있을 때든지, 기차나 배, 자동차, 전철 등 흔들리는 장소에서도 언제 어디서든 글을 찍어서 소식을 전하거나 기록을 남길 수 있습니다”는 오늘날 현실적으로 스마트폰이 그 역할을 대체하게 된 게 사실이다. ^^;;

5. 자전거는 동력원이 없고 가축의 힘을 쓰지도 않는 교통수단 중에서는 속도가 가장 빠르고 에너지 효율도 매우 좋다. 자전거와 타자기는 분야별로 차지하는 위상이 서로 비슷하면서 인류가 만든 대단히 훌륭한 발명품임이 틀림없다.

6. 우리나라에서도 '지멘스 옥타브'를 전파하면서 현역으로 활동 중인 8200호대 전기 기관차는 내부에 인텔 80386 CPU가 들어있다고 한다. 그나마 원래 스펙상으론 80286이 들어있었는데 한국 측의 요구로 로컬라이즈 과정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CPU가 들어갔다고. 개인용 PC에서는 10년도 더 전에 도태한 놈이지만, 이런 구닥다리들이 임베디드 환경에서는 꽤 오래 살아 있어 왔다. ATM 기기나 키오스크 같은 데서는 아직까지 윈도우 2000/NT, 심지어 윈도우 3.x 머신까지 살아 있기도 하니 말이다.

7. 80286이면 그나마 양반이다. 지금 이미 명왕성의 궤도도 넘어서 태양계의 끝에 도달했다고 알려져 있는 파이어니어 내지 보이저 탐사선은 무려 1970년대 말, 인텔 마이크로프로세서가 갓 발명되었던 시절에 발사되었으며, 여기에는 겨우 1.6MHz 램 4KB의 8비트짜리 컴퓨터가 장착되어 있었다. 2006년에 발사된 New Horizon 호에 장착된 컴퓨터와는 가히 넘사벽의 차이일 것이다.

그래도 저 옛날 컴퓨터도 지구로부터 받은 지령을 수행하고 우주에서 사진을 찍어 지구로 보내는 등 할일은 다 해 냈다. ^^;; 특히 보이저 호는 지금까지도 지구와 교신을 주고받으면서 살아 있는데, 이런 옛날 탐사선을 제어하는 것이야말로, 겨우 Y2K 문제 해결용 코볼 프로그래밍과는 비교가 안 되는 하드코어 legacy 프로그래밍의 진수일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인간이 다루는 컴퓨터의 똑똑한 성능은 상당수가 그냥 현란한 비주얼 이펙트를 보이는 데나 쓰이고 있으며-_-, 임베디드 환경에 들어가는 컴퓨터는 닥치고 전력 소모 적고 발열 적고 우주선과 방사능에 강하고 튼튼한 놈이 짱이니까...;; 그런 곳에서는 성능보다는 신뢰성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하겠다.

듣자하니 목성 근처에서는 컴퓨터들을 죄다 짜부러뜨릴 강력한 방사선이 나오고 있었다고 하는데, 여기 근처를 처음으로 탐사한 파이어니어 10호가 튼튼하게 잘 버텼다고 한다.
일반 양민은 목성에 착륙 시도를 했다간, 뜨겁지만 않을 뿐이지 마치 지옥의 행성 금성에 착륙하는 것만큼이나 고압 유독가스 폭풍과 방사선으로 인해, 도착도 하기 전에 끔살..;;

물론, 태양과 지극히 먼 춥고 캄캄한 우주를 외로이 날아가는 탐사선이 이렇게까지 오래 장수할 수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태양이 아닌 근원으로부터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얻는 방법을 개발해 냈기 때문이다. 그 이름도 유명한 원자력. 이렇게 생각하니까 대단하지 않은가? 탐사선 역시 방사선 원소를 이용한 소형 발전기로부터 수십년 간 전력을 공급받고 있으며, New Horizon 호는 본격 활동을 시작하는 명왕성 근처까지 갈 때까지는 아예 최대 절전(하이버네이션) 모드로 더욱 에너지를 아끼면서 가고 있다.

8. 컴퓨터는 음식이나 악기나 심지어 자동차와도 달리, 수제· 명품 같은 소위 '장인정신' 근성이 존재하지 않는 물건이다. 그런 근성이 존재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존재할 수가 없다. 반도체· 집적 회로라는 게 애초에 사람 손으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넘사벽급 기계니까.
(세상에 사람 손만으로는 어설프게나마도 절대로 전혀 만들 수 없는 물건은 흔치 않다. 건물만 해도 결국 사람 손으로 만드는 것인데!)

- 장인의 손맛이 살아 있는 독일제 저전력 CPU
- 3대째 그래픽 카드만 만드는 명문 가문..

이런 게 있을 리가..;; 컴퓨터 분야에는 롤스로이스, 포르쉐, 벤츠 같은 성격의 브랜드도 없다. 닥치고 인텔, AMD, nVIDIA 같은 메이커만 존재할 뿐이다. ^^;; 단순히 역사가 짧아서 그런 전통이 없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사실, 외국의 자동차 명문 브랜드는 해당 회사의 창업자 이름을 딴 게 많다. 심지어 비행기를 만드는 보잉 사도 창업자 이름을 딴 사명이니까...
하지만 컴퓨터계에서는 그런 넘사벽급 엔지니어의 이름은 간판에서는 찾을 수 없고 오히려 무어의 법칙, 황의 법칙 같은 괴랄한 법칙-_- 이름에서나 간간히 등장하는 듯하다.

컴퓨터는 인간이 수천 년간 축적한 물리, 화학, 수학 지식의 결정체요 총아이다. 정말 대단한 발명품이 아닐 수 없다. 비단 기술뿐만이 아니라 사회· 정치적으로도 충분한 배경이 마련되지 않았다면 결코 발명될 수 없었다(전쟁 같은).

그런데 전기가 맛이 갔거나 컴퓨터가 돌아갈 수 없는 곳에서는 증기 기관차, 모래 시계와 더불어 “수판”이 되살아날 가능성은 있으려나 모르겠다. ^^;;
숫자는 자연어 문자와는 달리 엔트로피가 편중됨이 없이 균일한 문자이다 보니, 빠르고 정확하게 치기가 은근히 힘들다. TV 생활의 달인 편에도 잘 나오다시피, 능숙한 수판의 달인은 일반인이 계산기 키를 다 두드리기도 전에 어지간한 사칙연산은 말끔히 해치워 버린다.

Posted by 사무엘

2011/03/11 08:49 2011/03/1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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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이전에 우리나라 영남 지방에서 살던 선비가 한양으로 가기 위해 도보나 말로 이동한 경로는 어땠을까?
전통적으로 상주-문경-충주-이천 코스였다고 한다. 일명 영남 대로. 이것은 지금의 중부내륙 고속도로와 얼추 비슷한 선형이다. 그 유명한 문경새재도 이 경로에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구도는, 일제가 20세기 초에 경부선 철도를 살짝 다른 선형으로 건설하고 그 경로를 훗날 경부 고속도로가 인증까지 하면서 크게 바뀌게 되었다. 마치 서울 지하철 2호선이 훗날 서울의 도시 모양에 큰 영향을 끼쳤듯이, 경부선은 훗날 우리나라의 도시 발전 양상을 바꿔 놨다.

일제는 경부선을 실제로 건설하기 전부터 남의 나라의 지형을 무단으로 측량하면서 노선을 면밀히 검토했다. 상주와 충주를 경유하는 전통적인 경로가 서울과 부산을 직선으로 잇는 최단 노선이라는 것도 잘 알았다. 하지만 철도를 그렇게 건설하지는 않았다.
지형이 너무 험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중부내륙 고속도로도 온통 고가와 터널이 가득한 형태로 무려 2004년에야 전구간 개통했을 정도이다.

그 대신 경유하게 된 곳이 대전과 수원이다. 우회라면 일종의 우회이다. 상주와 충주가 간선 철도인 경부선과 심지어 중앙선으로부터도 소외되어 쇠퇴한 반면, 대전과 수원은 이 경부선 덕분에 폭발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다. 특히 대전은 이름부터가 아무것도 없는 뻘밭-_-이라는 뜻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호남선까지 건설되어 영남과 호남이 만나는 교통 요지가 됐다.

이 글에서는 경부 고속도로 얘기를 좀 하겠다. 단순히 지식 설명 위주인 여타 사전류의 설명과는 달리.. 철도와 비교하면서 나만의 글빨과 색깔로 각색을 하겠다.
우리나라에 경인선 철도가 가장 먼저 생기고 그 다음 경부선이 건설되었듯이, 고속도로도 경인 고속도로가 1968년에 가장 먼저 만들어진 후, 1970년 7월 7일에 경부 고속도로가 개통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서독에서 아우토반을 구경하고 온 박통이 거기서 뭔가 동기를 얻어서 야심차게 밀어붙인 프로젝트이다. 직접 지도를 펴서 노선을 구상하고, 나들목 모양까지 스케치하고..;; 전통 시절에 건설된 88 올림픽 고속도로와는 여러 모로 비교된다.

훗날 경부 고속철도가 1992년에 기공식을 한 후 10년이 넘게 질질 끌면서 예상 경비의 n배나 더 많은 비용을 들인 끝에 겨우 완공된 반면, 경부 고속도로는 비록 좀 날림기가 있긴 해도 2년 반 만에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의 저비용으로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1km당 1억 원 꼴이었다나? 독재 정권이 뭔가 일을 추진하는 효율은 좋았다. 작년에는 잘 알다시피 경부 고속도로 개통 40주년을 맞이했다.

경부 고속도로는 일본의 동명(東明) 고속도로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연장(내 기억이 맞다면 380km대)으로 건설되었기 때문에, 둘이 자주 비교되곤 한다. 전자가 후자 건설비의 1/8만으로 건설되었다고 함.
참고로 21세기에 전구간 완공된 중부내륙 고속도로는 인플레와 토지 보상, 그리고 고가와 터널 같은 난관으로 인해 1km당 거의 경부 고속도로 전체 건설비에 맞먹는 비용이 들었다. -_-;;

경부 고속도로의 정식 명칭은 잘 알다시피 ‘서울-부산간 고속국도’였고, 처음엔 전구간 왕복 4차선으로 개통했다. 개통식은 대구에서 열렸다. 얼마나 속성으로 작업을 했으면, 차선 도색이 개통식 3시간 전에 부랴부랴 끝났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을 벌이는 것 자체가 완전 처음이었던지라 군인들도 투입하고 외국에서 중장비를 급히 수입해서 투입하고, 박 대통령이 헬기와 지프 타고 현장을 직접 지휘하는 등.. 별별 해프닝이 많았다.

개통 날짜도 그렇고 7이라는 숫자와 관련이 많은 듯한데, 건설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순직자가 공식 집계상 77명이다. 산을 넘어야 하는 대구-대전 사이가 가장 어려운 구간이었고 순직자도 대부분 여기서 발생했다. 추풍령 휴게소에는 순직자 위령비로 가는 길이 연결되어 있는데, 거기 계단이 77개이라고 한다. 거기가 그렇잖아도 공사가 어려웠던 구간이기도 하고 고속도로의 거의 중앙 지점이기도 하니 위령비를 세우기 좋은 위치이다.

경부 고속도로는 전반적으로 철도 경부선과 노선이 비슷하지만, 경기도에서 철도는 서쪽(평택, 수원, 서울 영등포구)으로 빠지고 도로는 동쪽으로 빠진다(안성, 용인, 서울 서초구). 또한, 경부선은 밀양으로 가지만 고속도로는 경주와 울산, 양산을 경유한다는 차이가 존재한다.

고속도로도 경주를 제외하고 철도처럼 지름길로 건설할까 하는 의견이 당시 있었으나, 경주를 무시하기엔 인근의 포항과 울산의 영향력이 너무 커서 지금과 같은 노선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경부 고속철도가 경주 경유 노선으로 건설되었고, 도로는 경주를 경유하지 않는 대구-부산 민자 고속도로가 훗날 따로 건설되었다는 게 흥미로운 점이다. 철도와 도로의 건설 방식이 서로 엇갈렸다.

경부 고속도로의 구간별 특징에 대해 좀 더 살펴보면,
일단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휴게소는 상행은 죽전(=마지막 휴게소)이요, 하행은 기흥 휴게소이다. 수원 나들목(IC)은 행정구역 상으로는 용인에 있는데, 여타 수도권과는 달리 폐쇄식 요금소가 있는 구간이면서 나들목 주변까지 온통 도시화가 진행되어 건물이 빼곡하기 때문에 주변 풍경이 무척 이색적이다. 일반적으로 고속도로 나들목이 있는 곳은 푸른 들판-_-이 어우러진 한적한 외곽이지 않던가.

청주-청원 사이는 확장 겸 분기점 건설 공사로 인해서 경부 고속도로 전구간에서 유일하게 터널이 없으면서 상행과 하행 도로가 별도의 지형의 도로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신탄진 인근과 김천 인근은 경부 고속도로와 경부선, 그리고 심지어 경부 고속선이 서로 굉장히 근접해서 나란히 달리는 구간이다. 영천과 경주 일대에는 도로 근처에서 중앙선과 동해남부선 철도도 볼 수 있다.
잘 알다시피 경부 고속도로는 버스 전용 차선이 존재하는 유일한 고속도로인데, 전구간은 아니고 신탄진 이북부터 적용된다.

비록 부산은 서울에 이어 전국 2위의 대도시라고 하지만 위성도시 인프라는 수도권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서울 요금소가 무려 성남시 정자동에서 벌써 등장하고 그 이북부터는 외곽 순환 고속도로도 있고 해서 통행료 징수 방식이 바뀌는 반면, 부산 쪽 요금소는 노포 나들목까지 지나서 이미 부산 시계에 진입한 뒤에야 등장한다.

경부 고속도로를 만든다고 했을 때, 당시 정치권에서는 지금 4대강이나 운하를 반대-_-하는 것만큼이나 반발이 많았다. 당연히 그때는 평범한 서민들이 차 몰고 다니는 시대가 전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고속도로 닦아서 부자들이나 좋은 일 시킨다고, 그 돈 있으면 호남이나 심지어 강원도나 좀 발전시키라고 등등..;; 훗날 대통령까지 한 유명한 정치인도 이때 길바닥에 거의 드러눕고 “배 째라” 하는 수준으로 반대했었다.

그러나 그 당시 박통은 반대를 무시하고 일을 밀어붙였고, 나중에는 이렇게 코멘트를 했다.
“내가 지금은 야당이 하도 반대해 대서 4차선만으로 끝내지만, 이 도로는 얼마 못 가 분명 비좁아질 것이다. 확장을 해야 할 때가 반드시 온다. 그러니 도로 좌우 50미터로는 건물 허가를 주지 말고 노반을 확보해 둬라.”

실제로 오늘날 경부 고속도로는 거의 모든 구간이 최하 6차선, 아니면 8차선으로 확장돼 있다. 경주-영천 같은 극소수 구간이나 아직 4차선이다. 서울 시내는 진작에 크고 아름다운 8차선으로 확장되었으나, 고속도로를 따라 다닥다닥 지어진 신도시 때문에 수도권 구간은 출퇴근 시간에 정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서해안 고속도로의 서울 시내 구간도 극심한 정체를 겪는 곳이다만, 여기는 진입로가 아예 고가인지라 4차선 상태에서 이제 더 확장도 못 하고, 어쩌면 좋을까? -_-

철도는 경부선, 고속도로는 이 경부 고속도로가 우리나라 교통망의 핵심 동맥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고속도로에 번호를 매길 때도 횡축은 끝자리가 0, 종축은 끝자리가 5이지만, 경부만은 그 상징성과 예외성을 감안하여 당당히 1번이다. 요즘은 도로도 철도도 선형이 비슷한 여러 도로를 한데 싸잡아서 한 번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지만(가령, 고속도로의 경우 25 = 논산-천안 + 호남; 55 = 대구-부산 + 중앙; 35 = 중부 + 통영-대전 등), 경부는 전구간이 일관되게 건설된 노선이기도 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1/02/28 08:25 2011/02/28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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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송 차량 이야기 외

지하철을 타면서 이따금씩 '회송 행(?) 열차'라고 하여 불이 꺼진 채 승객을 태우지 않고 휙 지나가는 열차를 보는 경우가 있다. 영어로는 forwarding이라고 쓰는 이 단어는 반송, 환송과 거의 같은 뜻이며, '차량 기지로 되돌아가는' 정도의 의미가 된다. 회송 사유로는 그 날 운행 스케줄을 모두 마쳐서, 혹은 고장이 나서, 아니면 굳이 고장이 안 났더라도 정기적인 점검을 받기 위해 등 몇 가지가 존재한다.

'회송'은 프로그래밍 언어로 치면 일종의 reserved word와 같은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 명칭(identifier)으로 쓰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신형 전동차를 들여 와서 정규 노선대로 테스트를 할 때는 전동차가 아예 '시운전'이라는 표시를 하고 다니기도 했던 것 같다. 물론 승강장의 전광판에는 여전히 '회송 행'. 이런 광경을 승객이 볼 일은 대단히 드물기는 하다.

지금이야 분당선 열차들이 죽전 아니면 보정 행으로 나뉘어 다니지만, 죽전 역이 개통하고도 한동안은 열차가 오리 아니면 보정 행으로 나뉘어 다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죽전 역 이용객들은, 보정에서 출발한 멀쩡한 빈 전동차가 '회송'이라는 명목으로 죽전 역을 생까고(?) 오리 역 쪽으로 가는 걸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이 때문에 민원이 빗발치자 2009년부터 오리 행 열차들은 모두 죽전으로 행선지가 연장되었다.

아주 짤막한 광역전철 구간만 쓱 다니고는 운행을 마치는 이상한 열차가 있다. 오이도-안산이라든가 대화-삼송도 있고, 심지어 용산-구로. 특히 용산-구로는 급행 선로를 다니면서 전혀 급행이 아니기 때문에, '구로 급행'이 아닌 '구라 급행'이라고도 불린다. ㅋㅋㅋ

얘네들은 정비를 목적으로 그 시간대에 이 기지에서 저 기지로 이동하는 것만이 목적인 차량이다. 이것 자체도 정규 운행 스케줄이다. 그냥 회송으로 때려박아도 이상할 게 없지만, 그 짧은 구간만이라도 승객을 수송하는 게 나을 테니까 배려 차원에서 그렇게 운행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열차가 걸리더라도 운행 구간이 짧다고 너무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는 마시길.
청량리까지 가야 하는데 하필 동묘앞까지만 가는 열차가 왔을 때의 허탈감에 대해서도 본인 역시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

회송 내지 out of service 차량이라는 개념은 열차뿐만이 아니라 시내버스, 그리고 심지어 택시에도 존재한다.
택시는 승차 거부가 사회적으로 많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긴 하나, 승차 거부가 가능한 몇 가지 정당한 사유가 규정되어 있다. 병자 및 만취자의 단독 탑승, 신변이 심하게 불결한 자처럼 여느 운송 약관에서도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사항도 있거니와, 택시에만 고유하게 적용되는 사항도 존재한다. “경기도 택시는 이런 여건하에서는 서울 행 승객을 거부할 수 있다” 같은 것.

그리고 또 뭐가 있냐 하면, 차고로 돌아가는 시간대에 차고와 다른 방향으로 가는 목적지를 요구하는 승객의 승차 거부가 가능하다.

자유롭게 운행 가능한 개인 택시 말고, 회사 소속 택시는 영업을 마치고 운행 교대 및 차량 정비를 위해 차고로 돌아가는 시간대가 정해져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새벽 몇 시부터 몇 시 사이이다. 이때 택시는 애초에 '빈 차'가 아니라 '회송' 비슷한 상태로 status를 표시해야 한다. 승객을 모두 생까고 차고로 돌아갈 수도 있고, 차고와 방향이 비슷한 승객은 잠깐 태우고 갈 수도 있다. 이것은 기사 재량이다. 마치 오이도-안산, 용산-구로 열차와 비슷한 맥락인 것이다.

승차 거부를 근절하려면, 승객부터가, 창문으로 행선지를 먼저 말하고 '허락'을 받고 택시를 타는 노예 근성을 버리고, 일단 탑승부터 하고 행선지를 말해야 된다고 그러더라.
물론 단거리 승객은 애초에 장시간 대기 중인 택시를 피하고, 돌아다니는 빈 택시를 세워서 타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심야에는 할증되는 것도 있고 할인되는 것도 있다. 전기라든가 각종 하드웨어적인 인프라 시설을 이용하는 건 대체로 심야에 할인되지만, 교통수단처럼 인간의 서비스가 필요한 건 응당 할증이다. 택시도 그렇고 고속버스도 그렇고.

덧붙이자면, 밤에 여자 혼자 택시를 탈 때는 카드 결제가 되는 택시를 타서 탑승 순간에 애초에 카드를 찍는 게 제일 안전하다고 한다. 자신의 탑승 기록이 카드 회사에 기록으로 고스란히 남으니까 말이다.
커플이 택시를 탔는데 기사 왈, “차에 좀 문제가 생겨서요. 남자분은 차 좀 밀어 주시겠어요?” 했다. 남자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택시는 전속력으로 떠나 버리고, 그 후 여친 되는 사람은 변사체로 발견...;; 버스 괴담만큼이나 이런 택시 괴담도 전해진다. -_-;;;

이상, 회송 얘기 끗. 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1/02/22 08:37 2011/02/22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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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이야기 -- 下

※ 북한 주민들의 진심은?

북한의 지도자들이야, 우리 남한의 관점에서는 친북 좌빨이 아닌 이상 누가 평가하더라도 평생까임권 당첨이다. 6· 25부터 시작해서 온갖 납치· 테러와 불법 무력 도발들... 거기에다 절대로 사죄 안 하고 배째라 오리발 내밀기, 입만 열면 거짓말... 한 마디로 '개XX'다. 게다가 남의 나라에까지 쫓아가서 우리나라 대통령과 고위 관리들을 한데 죽어 버리려 한 1983년의 아웅산 폭탄 테러는 정말 속된 말로 똥물에 튀겨 죽여도 시원찮을 천하의 개쌍놈급이지 않은가?

독자 중에는 박 정희, 안 두희 같은 사람을 엄청 싫어하고 그런 이름만 나와도 이를 가는 분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감방에 있다가 무엇 때문에 군 간부로 복직할 수 있었나? 6· 25 때문이다. 6· 25를 누가 일으켰나?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친일파 문제만 나왔다 하면 열폭하는 분들에게 본인이 꼭 강조하고 싶은 사항은, 우리나라의 친일 청산을 제일 방해한 존재는 바로 북한이라는 것이다.

이런 악행들은 경제 개발, 치안 유지, 정당 방위 등 그 어떤 명분도 성립하지 않으며 정상 참작이나 정당화를 할 수 없다.
허나, 북한 '주민'들의 생각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본인이 뭐라 결론을 못 내리겠다.

한편으로는 불쌍한 굶주리는 동포이고, 심지어 김 정일 정권을 같이 욕하면서 남한의 좌빨들에게 돌팔매질을 할 사람인 것 같다. 내가 전에도 말한 적 있지만 북한 주민 중에도 반공 우익의 상징인 지 만원 박사 존경하는 사람들 많다.
그러나 이들 중 일부는 주체 사상에 세뇌되어 이미 우리와는 상종 못 할 부류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진실은 어디에 있는 걸까?

유명한 사례 중 하나는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였다.
소위 말하는 북측 미녀 응원단들... 김씨 부자 사진이 비를 맞아 젖어 있는 걸 보고는 광분해서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몇 년 뒤엔, 홍수로 인해 집이 다 떠내려가고 처자식이 죽어가고 있는 마당에, 어떤 북한 사람은 김씨 부자의 사진부터 비닐에 고이 간직해서 건져 왔다고 자랑하는 게 북한 언론에 보도되었다는 소식을 본인은 들었다.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지금도 심심찮게 TV에서 본다. 대가리에 피도 안 말랐을 것 같은 어린애가 인터뷰에서 “우리는 위대하신 장군님의 은혜로 잘 자라고 있습네다. 어서 자라서 미제 원쑤들을 쳐부수고 불쌍한 남조선 아이들을 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시켜 위대한 혁명 과업을 달성하겠슴다!” 또박또박 대사를 외운다.
이 정도면 황국 신민 선서는 저리 가라 수준. 저러는 북한도 미국 없이는 못 돌아가는 나라이긴 마찬가지일 텐데 말이다. -_-

그런데... 미녀 응원단에 대해서 어느 탈북자는 다소 색다른 견해를 폈다. 저건 언론 플레이 오버액션일 뿐, 절대로 진심으로 하는 행동이 아니라고 말이다. 저렇게 사진 붙잡고 울고불고 하는 모습이 매스컴을 타야만 자신이 고국으로 돌아가서 아오지 탄광으로 끌려가지 않으며, 가족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일제 강점기를 생각해 보자. 윤 봉길 의사의 폭탄 의거 후, 국내의 신문들은 일제히 그의 행적을 규탄(?)했다. 왜냐고? 그때는 그렇게 해야만 조선 총독부의 검열을 통과하고 신문이 발간될 수 있었으니까. 독자들도 그냥 신문 기사를 재해석을 해서 읽었고,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다.

맨날 손 기정 일장기 사진을 지우는 식으로 도발을 일으켰다간 신문사가 남아날 수 있었겠는가? 저 탈북자의 주장도 그런 맥락에서 나름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일제는 과거에 '이 봉창 의사가 천황을 향해 폭탄을 던졌으나 불행히도 맞히지 못했다'라는 중국 신문의 문구에서 '불행히도'란 표현에 완전 빡쳐서 상하이 사변을 일으키기도 했다.)

※ 북한 주민들의 실상

이렇듯, 북한에서는 김씨 부자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냐에 따라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
북한 하면 일단 시청자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드는 군인들 제식 훈련과 서커스, 매스게임, 카드섹션이 생각날 것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그 퍼포먼스가 얼마나 처참한 인권 유린을 자행하면서 가혹한 훈련을 시킨 끝에 만들어진 것일지 우리 상식으로는 제대로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어린 애새끼들이 단체 기합, 몽둥이질은 말할 것도 없고 방광염에 걸릴 정도로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고 연습했다. 아픈 티 내서 간부에게 반동분자로 찍히면 가족이 평양에서 쫓겨난다든가 심지어 수용소로 간다든가.. 시ㅋ망ㅋ...;;;

우리나라도 공밀레, 공밀레 한다지만 북한에서 국비로 양성된 엘리트 과학자들은 정말로 갈려 들어갔다. -_-;;; 특히 핵실험 연구에 투입된 사람들은 과로, 방사능 피폭 등으로 김일성 대학 한 학번 출신이 죄다 죽어 나갔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가난하던 시절, 박통 시절에는 월급을 저당잡힌 채 서독으로 광부와 간호사를 보냈다지만, 북한에서 해외로 파견된 노동자는 어떤가? 월급의 진짜 8, 90% 가까이를 세금으로 삥뜯긴다. 공제 내역 중에는 충성 자금에, 김씨 부자 생일 화환값도 있다. -_-;;

그렇게 뼈빠지게 일해 가지고 월 실수령액은 겨우 10~20$가 채 될까말까인데, 그게 그래도 국내에 있는 것보다는 벌이가 월등히 더 좋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기를 쓰고 밖에 나가려고 한다. 풀뿌리 캐 먹고 귤껍질까지 먹다가 굶어죽는 것보다야 훨씬 낫잖아?
남한의 체제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형태라고 불만인 사람은, 국가가 개인을 착취하는 나라에 태어나지 않은 걸 감사해야 할 것이다.

국가에 이용당하는 사람이 저 정도인데 하물며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잉여인생 반동분자들, 특히 최고 악질로 분류된 예수쟁이들이 겪는 참상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급. 상상을 초월한다.

어린 학생이 벌로 밭에 거름을 준답시고 손으로 인분을 직접 만지다가 똥독 올라 피부병 걸리고 나중엔 태업이랍시고 폭행 당해 죽는다. 피골이 상접한 채 끝까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던 수용소 죄수가 굶어 죽고 구둣발에 목이 꺾여 죽고 심지어 용광로에서 일하다가 쇳물 세례를 받아 죽는다. 이건 전부 본인이 지어낸 말이 아니라 199x~200x년대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바로 한반도 맞은편 반쪽에서 벌어지는 엄연한 현실인 것이다.

※ 맺는 말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는 세뇌 차원에서 남한의 교회에서 불리는 찬송가 멜로디가 흘러나온다고 한다.
가사에 있는 '예수님, 주님, 하나님'이 '수령님, 장군님'으로 바뀌어서 말이다. ㄲㄲㄲㄲㄲㄲㄲ
아직까지도 저 이북 땅은 지도자를 잘못 만난 죄로 시간이 정지해 있는 것 같다. 솔직히 북한의 출판물이나 영상 자막에 등장하는 한글 서체만 봐도 우리나라로 치면 한 196, 70년대 유행 같아 보이지 않는가? -_-

구소련이 이미 옛날에 무너졌고 중국도 잘 살아 보려고 나름 저렇게 변하고 있는 마당에, 북한 같은 저런 막장 국가가 60년이 넘게 안 망하고 버티고 있고, 남한을 교묘하게 삥뜯어서 저렇게 건재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기 그지없다. 통치자들이 머리는 좋다. 왜 걔네들이 고의로 망쳐 놓은 나라 사정을 우리 세금으로 복구해야 하며, 그 원인을 어찌하여 미국의 경제 봉쇄 같은 엉뚱한 데에다 갖다붙이는가?

김씨 부자 저건 단순히 공산주의 국가를 세운 수준을 넘어서, 또 자기 정치적 라이벌만 가혹하게 숙청한 독재자 수준을 넘어서... 무고한 백성들을 “고의로” 굶겨 죽이고 도탄에 빠뜨리고 자유를 억압한 살인마, 인간 백정, 해충, 범죄자이다. 정말 심각하게 나쁜놈이다. 제아무리 우리나라의 이 명박 현 대통령이 무능하고 부패하고 삽질 많이 한다 해도, 북한 따위로부터 '력도'(逆徒) 소리 들을 레벨은 아니다. -_-;;
그러고 보니 북한은 두음법칙을 인정하지 않는구나.

저런 북한이 좋다고 설치는 부류에 대해서는 답이 없다.
우리나라 사회 구조에 대해서 불만을 가질 만한...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소위 '프롤레타리아' 계층의 사람들이 뭘 모르고서 현혹되어 북한 좋다고 으쌰으쌰 하는 건,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한 우리나라 위정자의 책임도 어느 정도 있으며 그건 이해한다 치는데,
얼마 전엔 남 부러울 게 없을 의사 중에서 국가 보안법 사범이 나오고 누가 월북이던가 했다는 소식이 들려서 본인은 그저 허탈할 뿐이었다.

물론, 비록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 역시 성경적으로 100% 이상적인 사회 체계가 아니기는 마찬가지이다.
또 우리나라의 옛날 메이저급 지도자들도 과거에 안보를 빌미로, 반공을 빌미로 병크도 많이 저지르고 조금 민주주의를 유린한 게 있긴 하지만..
난 그게 당시 우리나라 사정--100% 민주적인 수사를 진행할 만한 국력, 기술력, 행정력 등--을 감안하면 그렇게까지 지탄 받을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 자유당이 부정 선거로 집권했다고 해서, 그리고 제아무리 서슬 퍼런 유신 치하라고 해서 신앙의 자유가 억압받은 적은 없지 않았던가? 또한 그때는 교묘하게 위장한 간첩들, 좌익사범들은 약간 과격한 방법을 써서 그렇게라도 잡아냈어야 했다. 걔네들도 치사한 짓 하긴 마찬가지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북한을 배척만 하고 전국민이 과격하게 “때려잡자 김 정일” 하면서 성질 돋구고, 툭하면 전쟁 불사하고 갈 데까지 가자는 것만이 답은 아닐지도 모른다. 마치 언제까지나 과거사만 꺼내면서 일본을 무조건 배척만 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국익을 위해서는 지혜로운 거래와 협력이 필요할 것이며, 본인 역시 남한과 북한이 사이가 안 좋아야만 밥벌이가 되는 안보 장사꾼을 매우 싫어하는 건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용서하되 과거를 잊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해로운 바이러스라고 해도 숙주를 그렇게 금방 죽이지는 않는다. 숙주가 아주 죽어 버리면 자기도 죽으니까. 본인이 개인적으로 궁금한 건 북한이 저지른 천안함 및 연평도 공격이다. 저렇게 찔끔찔끔 우리에게 해를 입혀 봤자 돌아오는 건 국민들의 경계 의식 강화이고 국제 사회로부터의 고립과 원조 중단일 뿐인데...

내가 북한의 위정자라면, 꾹 참고 계속 평화 무드를 계속하면서 남한을 교묘하게 삥뜯고, 남한 국민들의 안보 의식을 다 빼 버린 뒤 결정적인 타이밍에 뒤통수를 쳤을 것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도 장기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도발을 걔네들이 왜 했는지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1/02/10 18:45 2011/02/1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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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이야기 -- 上

※ 가깝고도 먼 나라

우리에게 일본보다 더 가깝고도 일본보다 더 먼 나라, 이해할 수 없는 나라는 단연 북한일 것이다.
구성원이 소위 단군의 후손이고 우리와 같은 한국어와 한글을 쓴다고는 하지만
공통점은 그것뿐, 통치 이념과 생활 양상은 대한민국과는 극과 극, 넘사벽으로 달라져 버린 저 나라!

우리는 명목상으로는 북한과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이며, 헌법을 FM대로 해석한다면 북한은 한반도의 북쪽 미수복 영토를 무단 점거하고 있는, 우리의 적국이다.
이 북한이라는 나라 때문에 우리나라 내부에 생긴 이념 갈등은 보다시피 가히 걷잡을 수 없는 막장으로 치달아 있다.

이런 이념 싸움의 희생양이 된 사람도 많다. 단적인 예로 생각나는 건 쿠바에 사는 교민들. 그들은 구한말에 반강제로 멕시코 내지 이곳으로 이민 가서 농장에서 엄청 고생한 분들의 후손이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쿠바는 대한민국하고는 수교하지 않은 얼마 안 되는 사회주의 국가이며, 오히려 북한과 더 친하다. 그래서 대한민국으로부터는 점차 out of 안중이 되고 말았으나, 그럼 북한이라도 쿠바 교민들을 챙겨 주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들이 태극기를 쓴다고 싫어한다. 북한은 태극기나 심지어 '한글'이라는 명칭도 굉장히 싫어하는 나라이다.
그래서 쿠바 교민들은 남북한으로부터 모두 버림받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라고 한다. 남북이 분단되기 전부터 타지 생활을 했다는 죄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학교에서 사회· 윤리 교과서의 마지막 단원은 늘 북한 내지 통일 관련 주제로 편성되어 있었다.
한때 우리는 북한군을 공산군이라고 불렀고 더 깔보는 의미로는 북괴, 괴뢰군이라고도 불렀다. 우리나라가 공산주의와 이념 경쟁을 했다고도 하지만, 사실 북한은 제대로 된 공산주의 국가도 아니다. 그냥 지구상에 유례를 찾기 힘든(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개막장 또라이 군국주의 독재 국가일 뿐이다. 이런 나라의 공식 명칭에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있다는 건 신길온천 역보다도 더욱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이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위조지폐로 금융 질서를 어지럽히고 자국 인권을 유린하고 사상과 종교의 자유를 탄압한 수위는 과거의 그 악독했던 일제보다도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태평양 전쟁처럼 대놓고 '세계구급' 사고만 안 쳤다 뿐이지.
특히 오늘날은 골수 이슬람 국가가 아니면서 기독교를 저 정도로 극렬 박해하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아마 북한밖에 없지 싶다. 북한의 수도인 평양은 1907년 나름 “조선 대부흥”의 본고장이었고 한때 아시아에서 예수쟁이가 가장 많은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 정권이 들어선 지금은... 정말 OTL

※ 폐쇄적인 나라

차라리 남한과 북한을 별개의 독립적인 정권으로 상호 인정하고, 마치 중국이나 일본이나 미국에 갔다 오듯이 비자와 여권을 발급받아 시민들이 남북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면 이산가족 문제가 발생할 일도 없고 서로 잡아먹으려고 또는 통일하려고 으르렁거릴 필요도 없다. 그래서 '통일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통일이 찾아온다', '가장 빠른 통일의 길은 영구 분단'이라는 역설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북한은 그렇게 할 대인배가 못 된다. 자기 주민에게 잘 사는 남한의 모습을 보여줘서는 안 되기 때문에, 켕기는 게 있기 때문에 저렇게 미치도록 폐쇄적인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북한이 남한의 심리전, 삐라, 애기봉 전등 따위를 왜 그리도 싫어하겠는가? 그리고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언제까지나 그렇게 무식한 방법으로 주민들의 눈과 귀를 막을 수 있겠는가?

북한이 핵실험에 성공했고 무슨 미사일을 성공적으로 발사했다고 스스로 주장하지만, 세계의 해당 분야 전문가들은 이것저것 추정하면서 정황상 북한이 그걸 스스로 해냈을 리는 없다고 코웃음치고 무시한다.
과거의 달 착륙도 비슷한 맥락이다. 옛날에 구소련 같은 나라가 달에 그것도 딱 한 번 갔다 오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충분히 의심할 만도 하다.

그러나... 소위 자유 진영에 있고 전세계 나라들과 연구를 같이 하면서 연구 결과도 다 투명하게 공유한 미국이 달에 여섯 번이나 갔다 온 것은.. 정말 부인할 수 없다. 갔다 왔다는 증거가 조작되었다는 증거를 월등히 압도한다. 더구나 미국의 최강 라이벌이던 구소련--허술한 자작극 정도는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허점을 찾아내고 폭로할 능력이 있는--이 멀쩡히 있던 시절에 자작극 음모론의 가능성은 더욱 생각할 수 없다.

그만큼, 폐쇄적인 국가와 그렇지 않은 개방적인 국가의 국제 신뢰도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언론에서 이 명박 대통령, 오바마 대통령의 목소리는 들어 봤어도 김 일성, 특히 김 정일의 목소리를 아는 사람 혹시 있는가? 특히 저 뽀글이 아저씨는 켕기는 건 있어 가지고 비행기를 극도로 무서워하여 못 타고, 중국 갈 때 맨날 육로인 기차만 타고 다니는 사람이다.

바닷가재, 상어 지느러미, 꼬냑 등 산해진미를 쳐묵쳐묵하러 요리사를 세계 각국에 보낸다는 아저씨가, 돈 없어서 혹은 돈 아끼려고 비행기 대신 기차를 탈 위인은 절대 아니다. 철덕이어서 기차 타는 건 더더욱 아닐 것이고. -_-;;;;; 그냥 제일 안전하니까 타는 거다.

※ 북한의 기술 -- IT와 철도를 중심으로

북한의 표준 한글 코드에는 '김일성', '김정일'을 이루는 여섯 글자가 제각기 별도의 코드 포인트에 배당되어 있다.
이걸 국제 표준인 유니코드에다가도 등록하려고 했으나(미친놈들..-_-) 외국 학자들의 격렬한 반발로 인해 망신만 당하고 뜻을 이루지 못했다.
사실 북한은 사전상의 한글 자모 내지 한글 배열 순서도 남한과 다르다. 그러나 유니코드에는 북한 컨벤션은 철저하게 외면-_- 당하고, 남한 기준으로 한글이 배당되어 있다.
북한의 표준 글자판은 남한과 크게 차이가 없는 왼손 자음· 오른손 모음 형태의 두벌식이다.

자국 내에서 인터넷 인프라는 거의 없다고 생각하면 되고 간부들도 네트웍은 인트라넷 정도로나 한정되어 있다. 이거 무슨 군대도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소프트웨어 기술력은 무척 뛰어나다고 한다. 자체 한글 IME를 만들기도 했고, 바둑 AI라든가 컴퓨터그래픽, 손전화용 소프트웨어 등 몇몇 분야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수준이라는 듯. 월트 디즈니 사에서 라이온 킹을 만들 때 일부 CG 작업은 북한의 어느 회사에다 외주를 줬다는 것도 유명한 사실이다.

내 전공답게 철도 시설에 대해서도 말하자면, 북한은 남한보다도 더 의욕적으로 대부분의 철도를 전철화해 왔다고 한다. 그런데 장거리 간선에도 교류가 아닌 직류를 쓰고 제3궤도 집전식이다. 비록 궤간은 같은 표준궤이긴 하지만 남한과는 최소한 전기 철도의 직통 운행은 물 건너 갔다고 생각하면 되겠다(전기 규격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같은 게 없으니..). 또한 대부분의 철도 시설이 노후화하고 선형이 안 좋아 어차피 고속 주행도 무리이다. 에너지 부족은 두말 할 나위도 없고 말이다.

그리고 북한은 남한보다 1년 먼저 지하철을 건설했다. 평양 지하철은 1973년에 개통했는데 그 때문에 1974년에 개통한 서울 지하철은 북한과의 이념 경쟁의 산물이라는 루머까지 나돈다고 한다. 박통 시절에 북한이 남한보다 지하철을 먼저 만들었다는 사실을 누설하고 다니는 자는 붙잡혀서 안기부 지하실에서 코렁탕을 먹을 수도 있었다고 전해지나, 진실 여부는 불분명하다. -_-;;

뭐, 그래 봤자 오늘날까지도 북한에 지하철이 있는 곳이라곤 평양뿐이며, 노선도 겨우 두 개가 고작이다. 그렇게도 지하철을 깊게 팠고 특히 수 차례의 남침용 땅굴 제작 기술까지 보유한 두더지 같은 친구들인데, 두만강 하저 터널을 건설하던 중에 터널이 붕괴되어 대형 사고가 났던 모양이다. 결국 하저 터널은 포기.

말이 나왔으니 말이다. 남한에는 지방 광역시라도 있지 북한은 평양 빼면 나머지는 진짜 오지 황무지이고 생지옥이다. 밤에 위성 사진을 보아하니 남한은 수도권 편차는 있을지언정 전국이 그래도 불빛으로 빼곡한 반면, 북한은 평양에 불빛 약간 빼고는 어두컴컴 그 자체인 장면을 본 적이 있으신가?
걔네들은 출입증 없이는 시 경계도 못 빠져나갈 정도로 자유가 없다. 그래서 간부들에게 잘 보이고 실적 잘 내서 우리 가족만은 기를 쓰고 평양이나 평양 근처에서 지내려고 애쓴다. 그게 북한에서의 삶이다.

(다음 下에서는 북한의 더욱 어두운 면모에 대해서 얘기하고자 한다. 기대하시라.)

Posted by 사무엘

2011/02/08 18:35 2011/02/08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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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011년이다. 그래서 킹 제임스 성경(이하 KJV)을 최종 권위로 믿는 진영에서는 요즘 무척 들떠 있다.
올해가 그 성경이 출간된 지 만 400주년이 되기 때문이다. (1611년) 날짜로는 5월 2일이라 함.
KJV 신자들에게 1611은 아주 유명한 숫자이지만, 연도 이하의 정확한 날짜는 지금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이 날짜에 맞춰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 예수안에 출판사)도 400주년 기념판(5th edition)을 내려고 한창 작업 중이다.

본인에게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한 믿음이 생긴 건 2002년 무렵이다.
그 전에도 킹 제임스인지 흠정역인지 하는 고어체 성경이 있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으나, “개역성경의 영문판 정도 되는 성경이겠지” 정도로 치부할 뿐이었다.
개역성경이 “하시니라, 가라사대” 같은 말투가 있듯이 영어에도 “thou, thee, ye”가 나오는 성경이 있다는 맥락. ㄲㄲㄲㄲㄲ
또한, 마치 손실 압축인 JPG 방식으로 그림을 계속 고치고 저장하면 할수록 그림의 화질이 떨어지듯이, 성경도 여느 고문서와 마찬가지로 세월이 흐르면서 내용의 일부가 소실되어 '없음'이 생긴 줄 알았다. 진짜다.

그랬는데.. 성경 이슈에 대해 알게 되면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듯 엄청나게 충격적인 지식과 정보가 쏟아져 들어왔고, 이것들은 본인의 내면 속에 지금까지 잠자고 있던 기독교 신앙의 고유 진동수에 딱 맞춰 나를 격렬히 진동시키고 말았다. 타코마 다리가 들썩들썩하다 와르르 무너지듯, 나의 기존 통념도 와르르...;;

사연을 다 설명하자면 복잡하다만..
내가 KJV 빌리버가 된 주 이유 중 하나는... KJV 반대자 내지 현대 역본 옹호자들의 논리랄까 사고방식이, 어쩜 저렇게 불신자 기독교 안티들의 그것과 똑같을까 그 이중적인 모습에 충격 받고 분노해서였다.

나는 나보다 성경을 많이 아는 목사, 신학자가 마땅히 내 신앙을 방어해 주는 사람인줄로 알고 있었다.
걔네들은 그걸로 밥 벌어 먹고 사는 사람이다. 살인· 간음을 저질러서 지옥 가는 게 아니라 예수 안 믿어서 지옥 간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개독안티가 성경을 헐뜯고 “토끼는 되새김질을 안 하는데 성경이 잘못됐다, 뭐가 모순이다”라고 시비를 걸면, 반대편 진영에 선 사람들은 “토끼는 되새김질을 하는 게 맞다. 이거는 네가 성경을 문맥을 무시하고 당시 사정을 감안 안 하고 삐딱하게 잘못 읽어서 그런 거다 ... 어쨌든 결론은 성경은 일점일획도 손실이 없이 절대무오하고 자체 모순이 없다.” 그렇게 대응하는 게 상식적으로 당연한 이치 아닌가?

그런데 하나님 팔아서 돈과 명성을 얻는다는 사람이, 자기들부터가 그 신앙의 근간인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보존돼 있지 않다고 하고, 세상에 무오류한 성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문자적인 성경 해석을 방어해도 시원찮을 판에 같이 앉아서 헐뜯고 있으니...! 그럼 그는 그런 하나님 파는 짓은 중단하고 자기 양심껏 목사질 때려치우고 안티 진영으로 가야지 왜 거기에 들러앉아 있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독교에 대한 물리적인 박해보다도, 성경을 조롱하는 안티들의 집요한 독설보다도 훨씬 더 무섭고 치명적인 것은
기독교가 아닌 것이 기독교로 둔갑하여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현상이었다!

성경이 완벽하지 못하니까 그 완벽하지 못한 부분은 나의 해석이, 히브리/그리스어 사전이, 신학이, 교회 전통이 보완하겠다는 소리로 들려서 본인, 매우 심히 불쾌했다. 내가 아무리 멍청하더라도 그런 의도를 파악할 눈치 정도는 있다.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는, 내 신앙은 내가 지켜야겠다는 '신앙 자주국방론'(?)이 대두되었고, 작정하고 성경을 읽고 독학했다.

내 지론은 언제나 “안티는 안티답게, 신자는 신자답게”이다. 어느 것이든 모 아니면 도로 색깔과 노선만 분명하다면, 본인과 다른 신앙의 소유자라 해도 이 글 읽고서 기분 나쁘거나 불쾌해할 사람은 전혀 없을 것이다.

이런저런 사색과 공부의 결과로 본인은 기독교의 본질적인 대안이 바른 성경에 있으며, 그 대안의 실체가 바로 킹 제임스 성경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당신이 읽고 있는 멀쩡해 보이는 성경이 실은 13구절이 삭제되고 6만 개나 되는 단어가 변개돼 있습니다”라고 그러면, 언뜻 보기엔 거의 “2011년 안으로 북괴 김 정일은 남침합니다” 수준의 미친 개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를 어쩌랴, 그건 무슨 루머나 음모론도 아니고 정말로 객관적인 사실인걸.

세상에, 삭제된 게 맞고, 킹 제임스 성경의 구절이 나중에 추가된 거라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걸 나더러 믿으라는 거야? (막 9:44,48; 행 8:37 등등)
불순분자가 삭제한 게 아니라? 도대체 '어떤 사본'은 도대체 무슨 사본을 말하는 걸까?

본인은 히브리어· 그리스어 따위는 전혀 모르고, 신학을 공부한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런 것과는 인연이 거의 없는 인생을 살 것이다. 그래도 킹 제임스 성경을 최종 권위로 믿는다.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게 아니다. KJV 유일주의가 신앙면에서 건전하고 내 믿음을 세워 주고 안티들의 공격을 반박하는 사고방식이라는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다.

성경의 헛점(?)을 물고 늘어지는 안티들의 공격이 얼마나 집요하고 맹렬한지 본인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성경은 뜻만 통하면 되지 역본들이 다 같은 내용이라는 주장에는 도저히 공감할 수 없었다. (저건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차라리 KJV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 대안으로 NIV가 절대무오한 하나님의 최종 권위 말씀이고 하나님께서 쓰신 선한 간증이 있는 성경이라는 식의 논리라도 폈다면 나는 응당 NIV 맨이 됐을 것이다.
최소한 예수쟁이 행세하고 성경 말씀에 꺼뻑 죽으려면 저렇게 하는 게 정상이다. 사실, KJV 진영에 있는 사람들이 다들 다혈질 골수이고, 모 아니면 도 노선이다.

본인 주변의 모 목사님은 왕년의 유학 시절에 KJV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이거 자료 찾고 번역만 하다가 문학 박사 과정 졸업을 포기하고 수료만 하고 돌아왔으며,
다른 모 목사님은 부와 명예가 보장된 전문직 종사자이면서 사재를 탈탈 털어서 그것도 욕 얻어먹고 오해 사면서까지 10년째 성경 번역에 매달리고 계시기도 하다. 한국에 이런 올바른 성경을 번역해서 알리지 않으면, 내 양심상 배기질 못하겠다고...;; 이런 분들에 비하면 난 그렇게 강경한 것도, 골수도 아니다.

본인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다른 유명한 곳으로 '말씀 보존 학회'(말보회)라는 단체가 있다. 본인은 그곳과는 아무 개인적인 인연이 없다. 저곳은 한때 극렬 전투종족으로 기존 개신교로부터도 이단 판정을 받을 정도로 악명을 떨쳤었는데, 걔네들이 비록 간증을 잃을 잘못된 행동을 하긴 했으나, 본인은 심정적으로 그들에게 공감은 한다. 얼마나 답답하고 기성 교회에 대해 실망했으면!

내가 만약 말보회를 통해서 KJV를 접했다면, 아마 말보회 내부에서 만렙-_- 불화살 워리어가 됐을 것이다. ㅋㅋㅋㅋㅋ 지금보다 한 100배는 더 과격한 글 쓰면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주필 논객이라든가 거기 신학원 강사 등으로 한 자리 차지했을지도 모를 듯.
본인의 성깔을 아는 교회 사람 중에는, “용묵 형제가 말보회를 거치지 않고 KJV를 알게 된 건 정말 하나님의 큰 은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KJV 유일주의를 주장하면 대체로 “그래도 원어 성경이 더 낫지 않습니까? KJV 이후에도 더 나은 필사본이 발견되지 않았을까요?” 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하도 많이 들었다만... 뭐, 자연스러운 질문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최초의 성경 자필 원본은 오늘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필사본만이 전해지며, 그 필사본들이 오늘날의 성경처럼 완전한 66권 합본으로 전해내려오는 것도 아니다. 이 필사본이 전체 중 어느 조각에 속하는지, 그리고 의미가 그토록 다양하게 변하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의 의미를 단정적으로 이거라고 해석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다시 말해, KJV와 동급으로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는, '원어 성경'이라는 개념 자체가 허구이다. 둘의 비교는 무의미하다.
그러니,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KJV가 하는 역할이 자기 밥줄을 뺏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KJV를 배척하고 반대할 수밖에 없다.
KJV는 변개되지 않은 바른 원문에서 바르게 번역되었고, 바르게 집대성(compile)되었다. 따라서 바른 히브리/그리스 원어 성경이라면 KJV와 충돌하지 않을 것이다.

성경은 전통적인 고문헌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수되어 왔다. 다른 고대 문헌들은 가장 오래 된 게 원본에 가장 가까울 확률이 높겠지만 성경은 끊임없이 필사되고 사람들에게 수시로 읽히고, 그러다 닳아 없어지길 되풀이했다. 회전률이 높다는 뜻. 그렇기 때문에 많은 필사본이 존재하고 이들이 서로 일치하면 그게 곧 맞는 본문이다. (쉽죠?) 하나님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성경을 보존해 놓으셨다.

그 반면, 극소수 골동품처럼 전해내려져 온 튀는 필사본은 애초에 진작부터 버려진 가짜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마치 유다복음이라든가, 사악한 성경--'간음하지 말라'에서 not이 실수로 삭제된..;;;-- 같은 것들 말이다.

그나저나, KJV 번역을 지시한 제임스 왕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난 세속 역사를 통해 알고 있던 건

  • 엘리자베스 여왕 다음으로 즉위한 스코틀랜드 출신의 왕. 하지만 선왕보다는 그리 훌륭하지 못했다는 평판을 받음
  • 왕권신수설을 내세웠고, 좀 독재자 스타일로 의회와의 대립이 심했던 듯?
  • 월트 디즈니의 만화영화 <포카혼타스>에 나오는 제임스타운의 어원이 된 사람. (포카혼타스는 설정상 배경이 1607년이다. KJV가 한창 번역되고 있던 시절이다.)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왕의 신분으로서 국민을 위해서 국비로 성경을 번역하라고 했을 정도이니, 제임스 1세 왕은 거의 영국의 세종대왕 급이다.
“나랏말씀이 라틴어와 달라 문자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무지몽매한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여도 마침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 내 이를 가련히 여겨 새로 성경 역본을 만드노니 사람마다 쉽게 읽어 구원받고 영적으로 자라게 할 따름이니라.” 정도..;;

그 외에 더 알고 싶은 정보가 있으면 아래 사이트를 참고하자.
http://jesus-is-lord.com/kinginde.htm

물론 저 사이트의 운영자는 KJV 지지자로, 제임스 왕에 대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여러 사실들을 나열하면서 그가 아주 훌륭한 왕이었다는 요지의 주장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담배를 지독하게 싫어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성경 번역 작업에 앙심을 품은 교황청 세력에 의해 암살당할 뻔한 적도 있었다. (gunpowder 사건)
KJV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제임스 왕에 대해서도 굉장히 치졸하게 헐뜯는 경향이 있다. 그런 사람하고 싸우기 위해서는 영국 역사를 좀 공부해 놓는 것도 좋다.

킹 제임스 성경 이전에도 여러 성경 역본이 존재해 왔으나, 이 KJV만이 20세기 초까지 독자적으로 쓰이면서 전세계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고, 수많은 혼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KJV는 400년 전에 출간된 후, 인쇄 오류를 바로잡고 개정된 영어 철자법대로 표기를 고치는... 몇 차례 edition이 나왔다. 그래서 1611년 KJV의 1769년도 edition이 오늘날까지 우리가 쓰고 있는 그 정확한 본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글 개역성경도 번역 후 제정된 한글 맞춤법 통일안대로 새로운 edition이 나온 바 있는데, 바로 이와 같은 차원이다. edition은 코딩으로 치면 재컴파일이나 포팅일 뿐이지, 결코 프로그램의 로직을 바꾸는 revision이 아니었다.

영국에서 이렇게 성경의 절대 기준이 나오고 영어가 나오고 세계 표준시가 나왔다. 그뿐만이 아니라 철도 표준 규격도 여기서 정해졌다. ^^;;;
영국에서는 올해에 KJV 발간 400주년을 기념하는 우표가 발행될 것이라고 한다. (내년에는 올림픽을 기념하여 콩코드도 다시 먼지 털고 잠시 운항할 거라고 하던데.)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성경을 이단이라고 하고 있고 그 많고 많은 기독교 서점에서 역본 자체를 거의 찾을 수가 없다. 대단히 통탄할 노릇이다.
오늘날 KJV는 영국에서도 듣보잡이 돼 가고 있다. 인도에서 불교를 찾을 수 없고,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찾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나 할까..

아무쪼록 이 글이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온전한 보존에 대한 믿음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관심 있는 분이라면, 블로그 말고 이곳 대문에 HTM 문서로 등재되어 있는 <음란한 성경은 가라>, <킬로그램 원기> 같은 본인의 글도 읽어 보시길.

Posted by 사무엘

2011/01/26 08:36 2011/01/2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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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의 모세 이야기 -- 上에서 계속된다.
이 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 지식과 더불어 김 성모 화백 명대사에 대한 지식이 동시에 필요함을 밝힌다. ㅋㅋㅋㅋㅋ)

모세가 파라오 앞에서 막대기를 뱀으로 만들고, 물을 피로 만들고 각종 재앙을 행할 때,
“폐하, 저거 다~ 사기입니다. 우리 마술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라고 훼방을 놓은 이집트 마술사의 실명이, 웬 생뚱맞은 바울 서신에 거론되어 있다. (딤후 3:8) 그러나 이들도 재앙의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 결국은 GG 치고 “이건 마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가락입니다.” 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자리에 제임스 랜디 같은 마술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_=;; (가짜 초능력자 잡아내는 걸 업으로 삼던 양반.)

보라, 주의 손이 들에 있는 네 가축 곧 말과 나귀와 낙타와 소와 양들에게 임하여 매우 심한 전염병이 있으리라. (출 9:3)

이건 구제역, AI 같은 것들일까...?? 이건 정말 21세기인 오늘날에도 답이 없어서 닥치고 가축들을 매몰 도살 처분하는 수밖에 없는데.
재앙이 하나씩 지날 때마다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던 이집트가 거덜날 지경이 되었다.
이건 그야말로 생명과 무생물의 경계를 넘나들고 기상 현상이 마음대로 바뀌는 말 그대로 초자연적인 이적이었다.
경제적으로 손해를 입는 건 둘째치고라도, 이런 재앙을 겪으면서 이집트 국민들은 자기 왕에 대해서, 또 자기들이 믿던 신에 대해서 분명 심각하게 다시 생각을 하게 됐을 것이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모세 자신도 점차 믿음이 생기고 담대해졌다. 성경을 보면 알겠지만, 나중에 그는 파라오를 상대로 “아~ 그러셨어요? 님 저한테 지금 협박하는 거예요? 졸라 무섭군요” 같은 식으로 농을 치거나 말을 비꼴 정도로 간이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라오는 칠전팔기 불굴의 의지로 모세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파라오는 결코 남의 명령에 굴복하지 않는다. 누가 이기나 보자!” 파라오는 정말로 김 화백이 롤모델로 삼기에 손색이 없을 근성가이였다. 마치 돈을 계속 잃으면서도 도박을 그만두질 못하는 것처럼.

아홉째 재앙은 말 그대로 어둠의 다크에서 죽음의 데스를 느끼는 재앙이었고, -_-;;
결국 마지막 열째 재앙인 모든 장자가 몰살 당하는 재앙으로 인해, 파라오는 자기 맏아들을 잃고서야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 줬다. 앞의 재앙들이 이집트의 각종 동물· 자연 잡신들을 무력화하는 심판이라면, 마지막 재앙은 이집트가 과거에 저지른 이스라엘 유아 학살에 대한 심판이었다.

이 심판에 앞서 하나님은 이집트 탈출을 염두에 두고 유월절을 제정했다. 양을 잡아서 급하게 먹는 건 좋은데 왜 하필 피를 문설주에다 발라 놔야 할까? 아래의 그림에서 보듯,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가 묻어 있는 가정은 일명 죽음의 천사가 들어가지 않고 휙 돌아서서 열외(passover!)한 반면, 그렇지 않은 집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집트의 왕자>(이하 '이왕')에서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다. 죽음의 천사가 여러 스레드로 갈라져서 길거리 그래프를 DFS 탐색하는 듯하다.

'이왕' OST인 When You Believe가 흘러나오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시. 변덕 한번 심한 파라오는, 군대를 보내서 이들을 죽이거나 도로 잡아 오기로 작정한다.
마침 유대인들이 모인 곳은 하필 막다른 홍해 바닷가였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오병이어만큼이나 불신자들도 다 아는 성경의 그 유명하고 위대한 기적이 행해진다.

홍해 바닷물이 둘로 갈라져서 경부 고속도로가 중앙에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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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출 14:21을 보면, 하나님께서 강한 동풍으로 바닷물을 뒤로 밀어냄으로써 길을 만들었다고 하신다. 동풍이라 함은 동쪽에서 불어오는 방향이다. 동쪽으로 부는 바람이 아니다.
그런데 이집트에서 홍해를 건너 가나안 땅으로 가는 경로는 서쪽에서 동쪽 방면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바다는 모세가 있는 곳에서부터 바다 건너편으로 쭉 전진을 하면서 폼나게 밀려난 게 아니라...
바다 건너편에서부터 물 밀려나기 시작해 그 흐름이 모세가 있는 쪽으로 왔을 거라는 뜻이다. 이해하시겠는가?

그러므로, 위의 영화 장면도 엄밀히 말하면 고증 오류라는 뜻이 되겠다.. -_-;;;

백성들은 감격에 찬 표정으로 홍해를 건넌다.
그런데
http://www.youtube.com/watch?v=6ZjgH0H7DkE&feature=related
의 3:44-46 지점. 낙타가 입 헤 벌리고 '오오욱' 하는 소리가... 둠에서 좀비 몬스터가 죽을 때 나는 소리를 그대로 가져온 것 같다. ㄲㄲㄲㄲ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홍해가 갈라져서 생긴 길의 폭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살림 가득 싣고 노약자와 어린이까지 다 싣고 가는 수십, 백수십만 명의 행렬의 진행 속도가 빠를 수가 없을 것이다(창 33:13-14 참고).
이들이 모두 홍해를 건널 때까지 하나님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집트 군대의 진입을 차단하고 시야도 가리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 동안 이집트 군대는 근처에서 진을 치고 한없이 기다리다가, 유대인들을 추격하러 멋도 모르고 갈라진 홍해 밑바닥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갈라져 있던 바닷물이 원상복귀되면서 시ㅋ망ㅋ.

이때 파라오 자신도 죽었을까? 아들에 이어 아버지까지??
'이왕'에서는 파라오 혼자 살아남는 설정으로 나오고, 모세는 홍해 건너편에서 “형. 이제 영원히 굿바이.”라고 한 마디 한다.
성경에는 명시적인 언급이 없지만, 출 14의 정황으로 볼 때 파라오도 추격 작전의 선두에 나섰고 그 인원들이 한 명도 남김 없이 몰살당했다고 했으므로, 이집트는 이제 왕까지 잃고 군대도 잃고 국가가 존폐의 위기에 몰렸을지도 모르겠다.

천지창조 이래 전무후무한 기적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쁨과 자신감으로 용기백배 했다. 정말 얼마나 기뻤겠는가? 출애굽기 15장의 대부분이 그 감격을 못이겨 불러진 찬송시이다. 이 엄청난 소식은 사실 해당 지역 주변의 민족들에게도 퍼져서 흠좀무와 충공깽을 선사했다. (수 2:9-10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적을 통해 홍해를 직접 건너지 않았다면, 이집트 군대의 몰살 같은 다른 수많은 관련 에피소드들은 어떻게 설명할 거란 말인가? 그런데 이걸 무슨 얘네들은 홍해가 아닌 갈대밭을 건넌 거라고 심지어 성경 지도의 출애굽 경로도 영 엉뚱하게 설명해 놓은 책도 있다. 원어상 홍해가 아니라 갈대밭이라고 설명하는 신학자까지 있는 모양인데, 이건 거의 '싫어요'가 두음법칙 상 '좋아요'로 바뀐 개드립 급이다.
믿기 싫으면 자기가 안 믿는 거야 개인 자유이고 내가 절대로 뭐라 안 하는데, 남이 믿는 것에 대해서 엉뚱하게 해석이나 하지 마셈..;;

역사를 보면, 성경 구절을 자기의 이념적인 일에다 영적으로 적용한 사람이 있다. 몇 가지 유명한 예를 소개한다.

A father of the fatherless, and a judge of the widows, is God in his holy habitation. (시 68:5) -- 고아원을 기도만으로 운영한 조지 뮬러
Stand fast therefore in the liberty (...) and be not entangled again with the yoke of bondage. (갈 5:1) -- 평생을 조국 독립을 갈망하고, 광복 후에도 자유 민주주의를 추구한 이 승만
... The just shall live by faith. (롬 1:17 등) -- 종교 개혁자 루터


이런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영적으로 적용하여 우리나라 개신교의 성시 교독을 보면, 광복절 편에 “내가 주께 노래하리니 그분께서 영화롭게 승리하셨도다. 그분께서 말과 거기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도다.” (출 15:1) 같은 구절이 인용되어 있다. 이집트 군대의 패배를 일제의 패망에다가 비유한 모양이다.

맹렬한 김 정일 안티로 유명한 북한 인권 운동가 남 신우 씨는 “Let my people go”를 아주 즐겨 인용한다. 성경에서는 66권 전체를 통틀어 출애굽기 5장~10장 사이에서밖에 등장하지 않는 문장이다. 그가 사용하는 문맥은 물론 파라오로부터가 아니라 “인간개백정 김 정일로부터 가게 하라”이다.

이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사건은 상징적인 의미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래봤자 모세를 포함해 홍해를 건넌 이 세대들은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고 광야에서 뺑이 치다 다 죽었으니 그저 안습.
아니, 홍해를 건너면서 이제 뭘 해도 하나님 앞에서 꺼뻑 죽을 정도로 자신만만하던 그들도... 겨우 며칠 못 가 광야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하나님께 불평을 늘어놨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의 심리라는 게 그만치 연약하고 어떤 면에서는 간사하다.

모세는 120세에 약속의 땅을 몸소 밟지는 못하고, 대신 산에서 내려다보기만 하면서 감격에 찬 채로 쓱~ 쓰러져 죽었다. 성경에 따르면 그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배려하셔서 죽는 순간까지 몸이 노쇠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죽은 후에 아마도 몰래 부활, 승천하지 않았나 추정된다(유 9).

그 위대한 모세가 출애굽 2세대들을 교육하면서 예수님이 오실 것임을 암시하는 의미심장한 예언을 남겼으며(신 18:15),
신약 성경은 사도행전에서 두 번이나 그 예언을 인용하면서 그게 바로 예수님이 맞다고 입증했다(행 3:22, 행 7:37).
오늘날의 유대인들은 모세를 그렇게도 추종하면서 정작 예수님을 모른다. 다른 엉뚱한 메시야 기다린다고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지 말고 하루빨리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여야 할 텐데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1/01/21 15:29 2011/01/2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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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지난 2009년 말에 성경을 7독까지 했다. 그러나 그 후 한동안 개인적인 게으름, 바쁜 스케줄 등의 이유로 인해 성경을 읽지 않고 지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다시 각성하여, 석사 과정에 있는 동안 최소한 한 번은 더 완독해서 8독까지 달성할 계획이다.
성경을 꼬박꼬박 읽다 보면 블로그에도 성경 관련 글을 더욱 자주 쓰게 될 것이다.

최근엔 출애굽기를 읽었는데, 이번 기회에 모세에 대해서 심층 논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또 직업병이 발동하여 장문의 글을 쓰게 됐다. 특별히 성경 본문뿐만이 아니라 유명한 관련 영화인 <이집트의 왕자>(1998. 애니메이션)와 <십계>(1956)도 끼워넣었다.

영한사전을 보면 중학교 수준의 매우 중요한 단어는 별이 세 개, 고등학교 수준은 투스타 이런 식으로 등급이 매겨져 있다. 성경의 인물과 사건에 대해서 중요도 랭크를 매긴다면 모세는 단연 별 세 개짜리일 것임이 틀림없다.

★★★: 불신자들도 상식적으로 다 알고 관용적으로 인용하는 인물. 예수, 마리아, 모세, 아담, 이브, 솔로몬, 베드로, 유다, 아브라함, 다윗, 골리앗
★★: 위보다는 좀 인지도가 떨어지지만 그래도 여전히 유명하고 성경에서 상당히 중요한 인물. 여호수아, 바울, 사울, 누가, 요한, 이삭, 이스라엘과 12지파
★: 일단 성경의 책이름에 등장하는 마이너 인물들, 그리고 덜 유명하지만 그래도 성경에서 두 번 이상 언급되는 인물. 요엘, 요나, 호세아, 스가랴, 히스기야, 스바냐. 이세벨, 발람..
(-): 이 정도까지 알면 꽤 '골수'이며, 성경을 집중적으로 공부한 사람임. 아히도벨, 아비멜렉, 아사헬, 고라, 데메드리오, 맛디야, 아가보, 나봇 ...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학정으로부터 구한 민족 지도자이며, 하나님과 직통으로 대화하고 그분으로부터 율법을 받아 온 위대한 대언자이다(신 34:10-12). 골수 유대교 신자들은 '모세' 하면 정말로 꺼뻑 죽는다.

그런데 그런 모세는 그 누구보다도 출생이 위태로웠다. 이집트가 유대인들을 노예로 삼고, 심지어 남자 아기가 태어나면 강제로 죽여 버리던 시절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때는 태아 성감별이라든가 강제 낙태 기술은 없었던 듯-_-;;;
대피라미드는 불가사의가 아니며 강제 노역이나, 외계인(?)의 힘으로 만든 게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이집트가 강제 노역으로 거대한 건축 사업을 벌인 것 자체는 사실이다. (출 1:11-14)

이때 모세의 어머니는 3개월째 애를 숨겨서 키웠는데, 나중에 도저히 숨길 수 없는 지경이 되자 애엄마는 아이의 최후를 차마 자기 눈으로 못 보겠다며 아기 모세를 바구니에다 넣고 강물에 띄워 보낸다. 누나인 미리암은 바구니가 어디까지 떠내려가나 하염없이 강을 쳐다만 볼 뿐. <이집트의 왕자>(이하 '이왕')가 이 장면을 뮤지컬 형태로 잘 묘사하고 있다.

Brother, you’re safe now
And safe may you stay
For I have a prayer just for you:
Grow baby brother
Come back someday
Come and deliver us too
(자장가의 일부)

그런데 그 모세를 이집트의 공주가 발견했다. “흠. 어느 유대인 가정에서 (우리나라 정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버린 애새끼군?” 이렇게 넘길 수도 있었는데 마침 아기가 울음을 터뜨렸다. 공주는 모성애가 발동하고, 아기를 입양하기로 마음먹는다. 이건 에스더기 만만찮게 드라마틱한 스토리이다.

이때 미리암은 “공주님, 혹시 젖 먹일 유모를 찾으세요?”라고 제안했다. 덕분에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자기 친아들의 유모 노릇을 하면서, 국가로부터 삯을 받고 애를 젖을 뗄 떼까지 키웠다. 그 후 애는 국가에 반납. -_-;; .. 이 성경의 스토리이나,

'이왕'에서는 저 장면이 안 나온다, 모세는 그냥 닥치고 바로 왕궁 행이다. 공주도 아니고 왕비가 입양한다.
그러나 '이왕'에서는,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의 자기 정체성 때문에 고민하는 모세의 모습이 더욱 극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성경에 없는 내용을 나름 각색했다.

모세가 왕궁을 나섰는데 미리암· 아론 남매와 극적으로 마주친다. 미리암은 '앗, 왕자님께서 웬일로 이런 누추한 곳에...' 하다가 수십 년 전 모세의 얼굴을 곧바로 알아보고는 “아, 드디어 네가 커서 우리 민족을 해방시켜 주러 왔구나!” 하면서 잔뜩 설레발을 친다.

그러나, '이왕'의 설정상 자기 가족 얼굴도 모르는 모세는 “너 미쳤니?”라는 식으로 응수한다. 미리암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나 필사적으로 “넌 지금이라도 알아야 돼. 넌 이집트 사람이 아니라구! 친어머니가 널 강물에다 띄워 보낸 후 이집트 왕궁으로 입양된 거야! 잘 모르겠으면 아버지 되는 사람에게 물어 봐!” 라고 소리친다.
아론은 그저 데꿀멍 하면서 “왕자님, 제 여동생이 사람을 못 알아보고 헛소리를 하는가 봅니다. 무례를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만 할 뿐.

굉장히 불쾌해진 모세는 미리암 네년을 가만 두지 않을 거라고 엄포를 내리고 돌아선다. 그러나 이때 미리암이 흐느끼면서 부르는 자장가 한 소절이 모세의 옛날 기억을 깨운다.

잠시 후에 나오는 1분 30초 남짓한 벽화 CG 애니메이션은(모세의 악몽) 본인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가히 경이로움과 충격 그 자체였다. 정말 인상적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성경은 성경이고 영화는 영화. 성경에서 모세가 정체성 때문에 저렇게 고뇌한 모습을 찾기는 힘들다.
성경에 따르면, 그는 어렸을 때 유모(=친엄마 ㄲㄲ)에게서 철저하게 정체성과 사상 교육을 받은 채 궁궐로 들어갔으며, 훗날 장성해서는 애국 애족 정신이 충만하여 자발적으로 왕자 자격을 포기하기까지 했다고 나온다. (히 11:24-25; 행 7:23)

모세는 의협심이 너무 충만한 나머지, 동족을 때리는 이집트 노예 감독을 암살해 버렸는데... 정작 동족들은 그 선한 뜻을 못 알아보고 “당신은 우리도 그렇게 죽일 작정이냐?”하고 되물었다. 그렇다. 모세는 배척받은 민족주의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는 모세에게 민족주의자적인 이념은 그렇게 노골적으로 찾을 수 없다. 아무리 유대인들이 쌍것들 피지배민이라 해도, 사내아이를 죄다 죽여 버리는 건 이집트의 왕자가 보기에도 너무 불쌍하다는 식으로, 꼭 그렇게 해야만 했냐는 그냥 인도적인 차원에서 동정한다. 그가 이집트 노예 감독을 죽이는 것도 계획적인 살인이라기보다는 동작을 단순히 stop 시키려 했는데 과실치사가 발생한 것처럼 묘사된다.

이런 뉘앙스의 차이를 잘 분별하도록 하자. 마치 실존 인물인 최 용신이 얼마나 억세고 강인한 분이었는데, <상록수>의 채 영신은 상사병이나 앓는 식으로 너무 유약하게 그려져 있어서 샘골 학원 당사자들이 심 훈 소설을 싫어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모세는 그렇게 이집트에서 사고를 친 후 광야로 도피한다. 그리고 거기서 양치기 일을 한다. 십보라와 만나서 결혼하는 장면에다 저 정도 각색 애드립을 넣은 건 애교로 봐 줄 만한 수준.
영화 <십계>를 보면, 모세와 관련된 모든 역사 기록이 이집트 왕조 실록에서 말소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가히 이집트의 흑역사가 된 셈이다.

모세가 목자가 되었다는 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그의 신변에 훨씬 더 심각한 변화였다.
양치기는 이집트에서 3D 중의 캐 3D로 취급받는 천한 직종이었다. (창 46:34) 한국으로 치면 백정급? 그런데 이집트의 왕자가 이전의 모든 지위를 잃고 양치기로 전락한 것이다..
양치기는 야곱이 삼촌 라반에게 그 고충을 토로하듯이(창 31:38-40) 정말 힘들고 고달픈 일이지, 절대로 낭만적이고 전원적인 직업이 아니었다.

이집트의 왕자로 40년, 목자로 40년을 산 뒤에야 모세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집트로 돌아온다.
성경은 이때 모세의 가정이 귀환하는 도중에 겪었던, 잘 알려지지 않은 깜짝쇼 해프닝에 대해 짤막하게 기록하고 있다. 모세가 자기 둘째 아들에게 할례를 안 베풀고 있다가, 여관에서 하나님에게 끔살 당할 뻔한 것이다. (출 4:24-26)
성경을 처음 읽는 사람은 이 사건이 기록된 출애굽기 4장 뒷부분을 읽다가 이 에피소드 때문에 어리둥절해하고 깜짝 놀라곤 한다.

시간과 분량 관계상 지금 그 문맥에 대해서 모든 설명을 늘어놓을 수는 없지만, 대략 이런 상황을 상상하면 된다.

모세: 여보, (켁켁 숨막혀..) 그러게 둘째 아들에게도 (크허헉~) 할례를 해야 된다고 전에 내가 말했잖아! (나 죽겠어..) 그러니 제발 군소리 말고 지금 어서..;; (으윽~)
십보라: ㄲㄲㄲㄲㄲ 어휴 이런 야만적인 짓을 왜 하는지 몰라... (할례를 행하고 아들의 포피를 베어 던지면서) 이제 됐어요? 당신은 참 피비린내나는(bloody) 남편이군요.


십보라의 말은 기가 찬 듯한 비아냥거림에 가깝다. 모 성경 역본처럼 “당신은 피로써 맺어진 나의 달링님이에요” 같은 사랑 고백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성경의 본문으로 미뤄 볼 때, 모세는 이방신의 제사장의 딸인 십보라와 결혼한 후, 저런 할례를 포함하여 종교적인 문제 때문에 가정 불화를 겪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왕'에서 묘사된 것처럼 십보라가 이스라엘 백성하고 같이 홍해를 건너고 미리암과 함께 얼싸안고 기뻐하다가 “Look at your people. They are free!” 같은 멋진 말로 엔딩을 장식했을 가능성은.. 유감스럽지만 대단히 희박하다. 오히려 십보라는 모세를 따라다니는 데 염증을 느끼고, 도로 친정으로 돌아갔다가 출애굽기 18장에서야 다시 등장하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에서는 모세-십보라 부부가 파라오 앞에 나아가는 장면이 나오지만 이 역시 완벽한 허구이다. 성경에 따르면 오히려 영화에서 믿음을 저버리고 모세에게 야유를 퍼붓는 사람으로 나오는 아론이 모세와 함께했으며, 그가 처음부터 모세의 대변인 노릇을 했다.
모세와 아론은 이집트에 재앙을 퍼붓기에 앞서 먼저 동족들 앞에서 표적을 행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민족을 구하는 임무를 맡았다는 인정을 받았다. “파라오님, 우리 민족 대표가 이집트를 향해 할 말이 있답니다. 잠시 좀 들어 보시죠.”

그러나 모세는 사실 파라오 앞에 서는 걸 극도로 꺼리고 두려워했다. 광야에서 하나님과 대면했을 때도, 자기는 그 일 못 하겠다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하나님을 불쾌하게 할 정도로 얼마나 뒤로 내뺐던가? 예전에 이집트에서 사고 친 것도 있고, 또 한때 내 집이었던 이집트를 상대로 적대적인 행위를...
나라도 하기 싫었겠다. 나이도 80이나 되고 나니, 젊었을 때의 그 혈기와 깡은 찾을 수 없었다. 모세는 그냥 목자로 살면서 손자 보면서 잔돈으로 애새끼들 과자나 사 주고 조용하게 살다 가고 싶었을 것이다.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모세는 파라오 앞에서 대놓고 당당하게 “우리 백성을 종살이에서 풀어 주시오!”라고 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이집트 담화는 벌벌 떨면서 쥐꼬리 만하게...

“광야에서 종교 의식을 행하고 오게, 우리 민족에게 한 며칠간만 휴가를 주면 안 될까염? 안 그러면 우리 민족이(이집트가 아님!) 신님에게서 천벌을 받거든요. 유대인들이 죽으면 노예 노동력도 감소하니까 이집트의 국익에도 어차피 안 좋지..... 않겠습니까요?”


이런 애원, 탄원, 아니면 협상급이 되고 말았다.
'이왕'에서는 모세하고 형 람세스(현재의 파라오)가 극적으로 상봉해서 얼싸안는 장면도 나오지만, 성경에 그런 설정은 없으며,
파라오가 모세의 저런 연약함에 호소하는 간청에 귀를 기울였을 리도 없었다.
노예 주제에 웬 자기네 듣보잡 루저 민족신에게 종교 의식을 행하겠다니.. (이집트의 종교는 다신교적이다)
이것들이 군기 빠지고 살 만하니까 종교 타령이나 한다는 식으로 파라오는 알아들었다.

결국 제 1라운드에서 모세는 처절한 참패를 당했다. 자유가 찾아오기는커녕 파라오는 끄떡도 안 했고 오히려 노동 강도만 더욱 늘었다.
모세는 동족을 볼 면목이 없었을 것이다. 손발리 오그라들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출 5:22-23)
그런데 이때 영화에서 또 등장하는 누나 미리암. 그녀는 특히 아론과 대비되어 완전 눈물나게 훌륭하고 존경스러운 믿음의 여인으로 묘사된다. 이 점에 관해서는 모세의 누나가 아니라 거의 어머니 수준이다. 비록 성경에는 없는 대사이지만, 이런 캐릭터가 좀 있어야 영화의 감동이 살아나겠지. ㅎㅎ

Moses. Hear what I say. I have been a slave--all my life. And God has never answered my prayers until now.
God saved you from the river, he saved you in all your wanderings. Even now he saves you from the wrath of Pharaoh.
God will not abandon you. So don’t you abandon us.

“하나님은 너를 결코 버리지 않으셔. 그러니 너도 우릴 버리지 말아 줘!”

그리고 본격적으로 파라오를 굴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재앙이 시작된다. 영화에서는 그 이름도 유명한 The Plagues라는 뮤지컬이 나온다.

(글이 길어지니 이후 내용은 下에서 계속하겠다. 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1/01/19 15:14 2011/01/1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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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고등학교 수준에서 다뤄졌을 법한 전형적인 확률· 조합 문제이다.

N명의 사람이 각자 모자를 쓰고 왔는데 이 모자를 다 벗어서 모아놓았다. 잠시 뒤 이 모자를 무작위로 사람들이 찾아 쓸 때, 모든 사람이 한 명도 예외 없이 남의 모자를 쓰게 될 확률은?


수가 커질수록 소수를 발견하기 어려워지는 것만큼이나 저 확률은 0으로 수렴이라도 하는 걸까? 답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N이 커질수록 그 확률은 1/e 에 수렴한다.
즉, 대략 37% 정도 된다는 뜻이고 이는 3지선다 문제를 깬또-_-로 맞힐 확률과 고만고만함을 의미한다. (깬또는 도대체 어느 나라 어원의 말일까? 순우리말이라면 흠좀무) 하필 자연대수와 관계가 있는 확률로 수렴한다는 것도 흥미로운 점.

신기하지 않은가? 이 정도면 여러분이 감으로 예상한 확률보다 높은 걸까 낮은 걸까? 수학이 좋은 점은, 인간의 감만으로는 아리까리한 문제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답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영적인 안목만 없을 뿐이지 추상적인 세계에서는 성경만큼이나 100% 절대무오한 진리를 담고 있는 학문이 바로 수학이다.

N개의 모자를 늘어놓을 수 있는 모든 가짓수는 잘 알다시피 N! (팩토리얼)이다.
N=2인 경우라면 1 2가 2 1로 뒤바뀌는 경우밖에 없으므로 1/2 = 50%
N=3이면 6가지 조합 중에 2 3 1, 3 1 2가 존재하므로 2/6 ≒ 33.3%
N=4는 잘 세어 보면 9가지 경우가 존재하여 9/24 = 37.5%
N=5일 때는 44가지 경우가 있다. 44/120 ≒ 36.7%
그리고 쭉쭉쭉...;;

그런데 이 가짓수에서 재미있는 패턴이 발견된다.
가짓수를 나타내는 함수를 f(x)라고 정의하면, 일단 f(x)의 값은 x-1의 배수임이 반드시 보장된다.
f(5)는 4의 배수인 11, f(4)는 3의 배수인 9인 식이다.
실제로 가짓수를 세어 보면, 왜 그렇게 되는지 알 수 있다.

이 f(x)를 구하는 방법은 점화식으로 의외로 간단하게 유도된다.
패턴을 잘 관찰해 보면 f(1)=0, f(2)=1 이후로 f(x) = (x-1)*(f(x-1)+f(x-2))가 된다.

f(4) = 3*(1+2) = 9
f(5) = 4*(2+9) = 44
f(6) = 5*(9+44) = 265

숫자의 증가의 폭이 팩토리얼과 동급으로 폭발적인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 비율의 극한이 0이나 무한대가 아니라 상수로 나온다.
f(x) = f(x-1)+f(x-2)인 피보나치 수열 점화식에다가 (x-1)을 곱한 것밖에 없으나, 점화식의 특성상 그 여파는 쌓이고 쌓이면서 훨씬 더 커진다. 피보나치 수열의 일반항은 2^n 같은 지수함수급인 반면 저건 팩토리얼급..;; 팩토리얼 자체가 f(x) = x*f(x-1)로, 점화식에 덧셈도 모자라서 곱셈이 등장하니까 말이다.

본인은 1/e라고 하면 x^x 함수를 최소로 만드는 값이기도 하다는 것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x^x는 a^x 같은 지수함수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팩토리얼보다도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괴랄한 함수이다.
이 함수는 양변에 로그를 씌워서 미분하는데, 도함수는 x^x * (ln x + 1)이 된다.

양수 x에 대해서 x^x 자체는 0이 결코 될 수가 없다(x가 0에 가까워져도 함수값은 1에 수렴). 하지만 x에다 1/e를 집어넣으면 ln x + 1이  ln 1 - ln e + 1 = 0-1+1 = 0이 된다. 고로 도함수의 값은 0. 이때가 최소이며, 그 최소값은 e^(-1/e)에 해당하는 약 0.69 정도.
e 자체뿐만이 아니라 e의 역수도 이런 의미를 지닌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래 그림을 참고하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표적인 공돌이 유머인 미분 귀신 적분 귀신에 잘 묘사되어 있듯, 다항함수는 유한 번 미분하면 0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초월함수들은 미분을 거듭해도 전혀 줄어들지 않으며 오히려 쓸데없는 계수들이 덧붙거나(지수함수), 형태만 바꾸면서 뱅글뱅글 순환한다(삼각함수).

그런데 그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e^x이다. 미분해도 적분해도 형태가 전혀 변하지 않는다. ^^;;;
이 녀석은 테일러 급수로 다항식 전개를 해 보면.. 진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형태임을 알 수 있다.
테일러 급수 자체가, 특정 지점에서 주어진 함수와 함수값과 n차까지 도함수가 일치하는 다항함수를 구하는 것이니 원..

1 + x + x^2/2 + x^3/6 + x^4/4! + x^5/5! ....

이게 끝없이 반복되니까 미분하면 왼쪽으로 shift, 적분하면 오른쪽으로 shift.. -_-;;
x에다가 1을 집어넣으면 결국 자연대수 e는 1부터 시작해 팩토리얼들의 역수의 합으로 2.71828...로 시작하는 그 값이 자연스럽게 유도된다. 수학에서 원주율 다음으로 유명하고 중요한 상수이다.
2.718281828 ..1828이 잠시 반복되는 덕분에 파이보다 외우기 쉽다.

우리는 학교 수학 시간에 자연상수에 대해서 (1+ 1/n)^n의 n 무한대 극한값이라고 처음으로 배운다. 이게 e로 수렴한다는 것도 무척 재미있는 사실이긴 하나, 저 식은 수렴 속도가 매우 느려서 비실용적이다. n=1000이 돼도 아직 2.716이고 2.718에도 도달 안 해 있다.
그 반면 팩토리얼 역수의 합은 직관적이고 수렴 속도도 꽤 빠른 편이어서 좋다. 6!까지 갈 때 이미 2.718에 도달하고 9!에서 벌써 소숫점 여섯째 자리까지 일치하기 시작한다. 굿..;;

범위가 0부터 1까지인 n차원 공간상의 점 P(a1, a2, a3, ... a_n)이 있을 때, 0<a1<a2<a3<...<a_n을 만족하는 영역이 차지하는 부피(?) 내지 product는 어떻게 될까? 1/n!이다. 2차원일 때는 한 변의 길이가 1인 삼각형의 넓이가 되므로 1/2, 3차원일 때는 삼각뿔의 부피가 되므로 거기에다가 1/3을 또 곱하면 1/6이 되고, 차원이 그보다 올라가도 적분을 거듭하면 그런 식으로 값이 더욱 작아진다는 걸 알 수 있다.

미분이나 적분을 하면 항의 차수가 1 늘거나 감소하는 대신에 원래 갖고 있던 계수가 곱해지거나 나눠지는 만큼, 이 과정을 일반화하면 팩토리얼 연산도 태생적으로 연관이 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 같다. 팩토리얼은 확률· 조합 같은 이산수학 영역뿐만이 아니라 해석학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연산인 셈이다.
아울러, -1승이라 할 수 있는 1/x만 적분하면 ln x라는 완전히 다른 함수가 된다는 것도 아주 흥미로운 점이 아닐 수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1/01/06 12:23 2011/01/06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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